국제유태자본과 프리메이슨
국제유태자본과 프리메이슨 국유본론 2008
2008/08/12 05:39
http://blog.naver.com/miavenus/70033923704
국제유태자본과 프리메이슨
국제유태자본을 거론할 때마다 마주치는 논의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 주요한 문제 중 하나가 종교적인 문제이며, 그 대부분은 프리메이슨 논쟁이다.
해서, 나는 국제유태자본론을 전개하면서 프리메이슨 논쟁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프리메이슨 논란이 국제유태자본의 자기 방어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을 공격하는 논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리유카바 최의 진술에 동의할 것이다.
앤드류 잭슨과 은행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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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은 최초의 포퓰리스트이다. 왜냐하면 당대 미국 정세는 각 주에서 백인 남성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재산권을 기준으로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물론 여전히 남부에서는 여성들과 흑인 노예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따라서 새롭게 투표를 하게 된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여전히 선거권에서 배제된 인간들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챙길 수 있는 정치적 책략을 찾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중의 요구를 재빨리 받아들인 이가 앤드류 잭슨이었다. 앤드류 잭슨은 대중의 적개심 향방을 은행가다, 라고 지목하였다. 왜냐하면 상대가 애덤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상대가 애덤스가 아니었다면 앤드류 잭슨은 연방은행에 대한 반대에 나섰을까? 더 나아가 만일 앤드류 잭슨 출신이 오하이오주가 아니라 버지니아주였다면 보다 강력하게 반대했을까?
즉, 앤드류 잭슨은 자신의 반영 전사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연방은행 문제를 이슈화시켰을 뿐이다. 연방은행의 기한은 1936년까지로 그가 대통령 선거를 한 1928년 시점에서 8년 잔여가 있었다. 해서, 연임을 목표로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이슈는 없었던 것이다.
앤드류 잭슨을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앤드류 잭슨은 다른 미국 대통령처럼 철저히 모략적인 자였을 뿐이다. 그가 1830년 인디언 추방법을 제정, 반포한 것만 떠올려보길 바란다.
또 다른 이유? 앤드류 잭슨은 다름 아닌 프리메이슨이었다.
이제까지 이리유카바 최 따위의 프리메이슨 비판가들은 이런 점을 배제한 채 프리메이슨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연방은행에 대한 공격을 한다. 그렇다면 모순이 발생한다. 앤드류 잭슨은 프리메이슨이었는데 왜 연방은행을 공격했을까? 말이 안 되지 않나?
이에 대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1931년에 미국에서는 반메이슨당이 출현한 바 있는데, 그들이 목표한 바는 정확히도 안티-잭슨 노선이었다. 그들 정치운동이 탄력을 받은 까닭이 앤드류 잭슨이 프리메이슨이기 때문이었다.
반메이슨 정당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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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앤드류 잭슨은 장로교 신자였다. 프리메이슨이라면 이집트 사탄 신앙을 지닌 자들인데 어떻게 장로교 신자일 수 있겠는가 이 말이다. 우습게도 연방주의자로 내몰린 애덤스는 프리메이슨적인 종교사상과 유사한 유니테리언이었다. 제퍼슨은 이신론이었는데, 후에 유니테리언 신자 다름없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정리하면, 프리메이슨과 반메이슨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선거 전술이었을 뿐이다. 당대에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비밀 조직이 인기를 끌었다. 해서, 요즘 시민단체에 명함을 내미는 따위처럼 프리메이슨 조직에 슬쩍 이름을 올리는 것이 당대 정치하는데 유리했음은 자명하겠다. 그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이 된 까닭은, 미국 각 주에서 선거권자 제한을 완화시킨 데 기인한다.
해서, 앤드류 잭슨을 반대하는 측은, 앤드류 잭슨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포퓰리즘적 대응에 나섰는데, 그것이 바로 반메이슨 운동이었다.
반메이슨 운동을 이끈 이들 중에 위드라고 있다. 위드는 반메이슨 운동의 지도자이자 휘그당과 공화당 결성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쇄소 견습공 출신에 불과하던 호레이스 그릴리를 뉴욕 트리뷴지 발행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위드는 윌리엄 헨리 해리슨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그간의 연방당, 그리고 공화당, 반메이슨당에 어울리지 않는 버지니아 출신이다. 그만큼 위드는 철저하게 포퓰리즘적 관점에 섰다. 헨리 해리슨을 추천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앤드류 잭슨처럼 반영전쟁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할 때는 극단적인 대립보다 오히려 적과 유사한 후보를 내세워야만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일 수 있다. 그 외에 헨리 해리슨을 최초의 이미지 선거를 한 포퓰리스트로 평가하지만, 나는 앤드류 잭슨을 원조로 본다.
반메이슨운동은 연방은행 타도보다 훨씬 먹히는 이슈였고, 마침 국제유태자본이 마련한 공황사태로 인해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앤드류 잭슨처럼 어디까지나 선거용 전술이었을 뿐이다. 해서, 휘그당과 결합하게 된다. 휘그당이란 것이 무엇인가. 영국에서 젠트리를 옹호하는 토리당과 맞서서 시티지구 은행가를 옹호하는 당이 휘그당이 아니었던가.
결국 프리메이슨 주장은 허구적일 따름인 게다.
나는 프리메이슨보다 오히려 유니테리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편이다. 유니테리언은 유대교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학구적 종교집단으로 부상한 바 있다. 그대가 알든, 모르든 세계사의 변환은 종종 신흥 종교의 발전 여부를 고려하기도 한다. 뉴욕 시티대학(City University)의 연구자 코시민(Barry A. Kosmin)과 라크맨( Seymour P. Lachman)의 조사에 따르면 유니테리언의 49.5%가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며(상대적으로 유대교인은 46.7%, 천주교인 20%, 몰몬교도 19.2%, 침례교도 10.4%가 대학을 졸업) 불균형적이지만 전세계의 수준 높은 학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 5개 주의 주지사가 공공연한 유니테리언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