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국제유태자본이란 무엇인가,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은 리뷰게시판 국제유태자본론 입문서 소개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예전에 쓴 글이나, 리뷰게시판에 고정시키기 위해 다시 올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없이는 이 기자회견을 이해할 수 없다
* 인드라 월드리포트를 대신하여 씁니다. 해서,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1/28로 보아도 됩니다. 아울러 국제유태자본 첩자들이 인드라 블로그와 이웃들을 종교집단으로 몰아가는 현상에 놀라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로서는 최상의 전략입니다. 하여, 역으로 그것 이외에 국제유태자본론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데에 유념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방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간 국제유태자본은 인드라 현상을 종교적으로만 다루어왔습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론은 종교적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하여 라이프니쯔의 영적 연결론으로 확대시키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됩니다. 그간 인드라는 영적인 메시지를 숱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드라가 여기기에 과학적인 것이라 보기 힘들기에 무시했습니다. 해서, 당장 무엇이 될 것처럼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드라가 중시하는 것은 입소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국유본 첩자로 보이는 아해들이 인드라 아이디나 착한마녀 아이디로 익명성을 이용해서 여기저기서 장난치고 있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그넘들이 어떤 넘들인지 잘 알 것이니 따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그런 넘들에게 넘어갈 정도면 어차피 한번은 크게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큰 자들이기에 개의치 않겠습니다. 강조합니다. 인드라가 원하는 바는 단 몇 년안에 무엇이 된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사이비라 할 수 있습니다. 평생 가도 어려울 작업입니다.) 조용하지만, 막을 수 없는 도도한 강물 흐름처럼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이 세상에 퍼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친일언론, 어용언론에 대한 비판이면 족합니다.
열심히 공부해라. http://blog.naver.com/miavenus/ 일단 인드라 사이트 가서 공부해.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은 모조리 다 폐기처분하고 ... 새로이 공부 시작해.
음모론:
모두가영악한국제유태자본의보이지않는손에조종되는꼭두각시인가? 믿기지 않는다.
국제유태자본(IJC, International Jewich Capital, 國際猶太資本)이란 무엇인가
1. 국제유태자본이란 무엇인가
국제유태자본은 인드라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국제유태자본이란 개념의 원조가 누구냐, 혹은 누가 국제유태자본론의 권위자냐, 혹은 전문가냐, 라고 묻는다면, 인드라다, 라고 답변하면 된다. 인드라가 시중에 굴러다니는 용어들을 취사선택해서 국제유태자본론을 구성한 것이다. 이전에는 여러 논자들이 다국적 자본, 초국적 자본, 초국적 금융자본, 국제투기자본, 국제금융자본 등등을 사용한 바 있다.
국제유태자본론을 구성한 계기 중 첫번째는 정치경제학적인 맥락이다. 즉, 맑스주의 반성과 경제학 주류이론인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의문이었다.
오늘날의 맑스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과 유사하다. 매번 회개한다고 하면서 정말 회개하는지는 본인 자신들만 알 따름이다. 진정으로 세상을 직시하였는가, 아니면 말 잘 하는 목사처럼 그저 기도할 때만 써먹는 진실 타령인지 의문인 것이다. 인드라가 보기에, 아직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면 신앙의 범주 외에는 없다. 이로 인해 오히려 맑스의 긍정적인 면들을 되살리는데, 맑스에 대한 까칠한 부분까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맑스주의자가 아니면서 맑스를 여전히 ‘친구’로 여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에 그들이 방해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맑스주의자가 그러하듯 초기에는 정운영이 자신의 저서 ‘피사의 전망대’에서 말한 대로다.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했으므로 맑스주의를 매장할 것이 아니라, 이왕의 시도가 좌절되었기에 이제야말로 한번 그 원형대로 재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유토피아처럼 진정한 사회주의란 지구상에서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고 가정하여 이론적으로 무오류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간신히 유지한 이론은 오직 자신의 대가리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맑스와 자본론을 과학적으로 읽자”던 ‘맑스주의의 교황’ 루이 알튀세르 취지와는 달리 ‘과학적’ 사회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아나키즘적 대안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서, 대개의 맑스주의자가 그러하듯 자신이 교조적인 맑스주의자였음을 반성하고, 르네상스적 개벽을 선언한다. 다양한 맑스주의적 개혁이 등장하면서 맑스주의의 풍부함을 되살려내려 애를 쓴다. 즉, 아나키스트로서의 맑스, 혹은 철학적인 맑스의 부각인 셈이다. 하지만 실패의 유형만 다를 뿐, 반복적인 좌절이기는 마찬가지인 아나키즘을 만나게 되고, 마치 교황을 죽이려다가 무신론자를 만나는 것처럼 헤겔을 죽임으로써 부활한 칸트에 당황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맑스 기획 또한 실패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회주의는 이제 ‘공상적’일 뿐만 아니라 ‘선험적이고, 주관적인’ 사회주의가 되어 공허한 울림만을 주게 된다. 해서, 대개의 맑스주의자가 그러하듯 공상적이고, 선험적이며, 주관적인 사회주의 대신 과학적이고, 경험적이며, 객관적인 모델, 혹은 지속가능하고, 구체적인 모델로 관심이 이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속가능하고, 구체적인 모델에 대한 관심은 사회민주주의에서 제3의 길까지 가다가 마침내 케인즈주의에 이르게 된다. 케인즈주의에 대한 관심은 맑스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알란 신필드에 따르면, 많은 60년대 급진주의자들이 ‘내밀한 케인즈주의자’였다는 것이다. : 선언 150년 이후; 이후; 335p”
케인즈주의는 뉴딜정책은 물론 전후 서구 황금시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란 루즈벨트 자신도 실패를 시인한 바 있듯이 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실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책이다. 또한 전후 서구 경제가 황금시대를 누린 것은 금본위제를 없애고 관리통화제도를 지지하는 케인즈주의 때문이 아니라 금본위제 지지라는 안티-케인즈주의적인 브레튼우즈 체제 덕분이다. 그리고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카터 정권이 케인즈주의 정책을 무리하게 실시하자 케인즈주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다. 그로 인해 볼커의 전환이라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넘어가는데 결정적인 일익을 담당하였음에도 여전히 케인즈주의를 우상숭배를 하는 이상한 풍조가 지속된다. 하여, 인드라가 보기에 케인즈 주장이란 것을 심하게 평가절하를 한다면, 맬더스의 공황 대책을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맬더스의 지주계급 대신 국가로 바꿔치기한 것이 다름 아니라고 보기에 대안이기에는 미흡하다고 여겨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경제학 원론을 접하여 깨달은 학부적 수준 정도로 공부를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는 척하면서 진보이론인양 포장하는 풍조를 보면, 오히려 케인즈를 강조해야 잘 나가는 경제학자로 포장하는 양상이 각국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자면, 누가 배후에서 일을 꾸미지 않는 이상 참으로 괴이한 현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통화주의를 누르고 경제학 주류로 부상하여 숱한 노벨경제학상을 배출한 ‘합리적 기대가설’에 의하면,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고급 정보를 선취매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누구도 오랫동안 시장의 강자로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오랫동안 세계 시장을 장악한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은행(FRB) 이사회는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축통화인 달러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고, 이를 최소한 6개월 전에 내부적인 결정을 한다고 할 때,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장악한 이들이라면 언제까지나 시장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지배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에서 국제유태자본론이 잉태되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보편적이되, 처음부터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기독교처럼 ‘유럽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나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태어난 이후에 자본주의가 도입되었다면 결코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역사에서 중국에 대한 조공적 외교 관계, 사실상의 식민지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당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여겼다. 또한 우리는 현재 노예에 대해 부자연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당대에는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제도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약에 대한 그대의 생각은 과연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세뇌된 것인가. 미국에서 마약이 자유스러운 것처럼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자유스럽게 통용이 된다. 하여, 3S정책에 대해 그대의 생각은 과연 강제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비판적 이성 산물인가. 자본주의는 근대에 들어서서 초기에는 유럽에서부터, 그리고 19세기서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이식된 인위적인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은 왜 발생하는가. 이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신흥종교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 문명은 유럽에 토대하였으며, 유럽주의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다. 해서, 유럽적인 갖가지 토템 신화가 기독교 문명에 녹아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문명이 좁은 유럽에서 넓은 미국으로 이주하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유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미 유럽화한 기독교와는 다른 기독교, 혹은 종교가 요구되었던 게다. 이는 최초의 유럽 이주민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박해받던 생각밖에 없으므로 교리만 다를 뿐, 종래의 유럽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반면 미국 이주 2세대서부터는 토착민적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신론과 유니테리언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이 끊기자 고립적인 양상으로 흘러 두 가지 현상을 낳았다. 하나는 미국에서 푸리에적인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 공동체, 혹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 공동체를 낳았고, 다른 하나는 에머슨처럼 초절주의 사회사상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목표가 유럽주의와 아메리카와의 적극적인 결합이었던 만큼 사회사상은 엉뚱하게 인도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막히면 조상들 행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조상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가 인도로 가는 지중해 경로가 막히는 바람에 발생한 새 항로를 찾기 위한 시도였다. 해서, 2세대 역시 유럽주의적 종교관에서 막히자 아메리카를 새로운 인도로 간주하여 상상 속의 인도를 불러냈던 것이다.
그처럼 자본주의 맹아론 역시 국제유태자본이 세계체제 전략상 일본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적대하자 외부 지원이 끊긴 일본 정권이 자력갱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기응변적 상황을 그럴 듯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천황사상의 절대화요, 이를 뒷받침한 것이 자본주의 맹아론이었던 것이다. 흡사 근래 일본 조몬 토기 사기사건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이를 모델로 한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나 김일성의 자력갱생론은 모두 사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식민지근대화론이 적절한 것도 아니다. 식민지근대화론 맥락은 간단하다. 내용적으로 근대화는 오직 국제유태자본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혹은 정치적으로는 알량한 자존심을 구한다는 차원에서 부차적인 요인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가령 일본 근대화론에서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처럼 일본인 인기 1위인 료마를 영웅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근대화론에서는 김일성이나 박정희를 영웅화시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식민지근대화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 체제에 관한 것이다. 남한은 박정희 체제에서부터 비로소 자본주의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 이전까지 국제유태자본은 한반도에서의 자본주의 체제 성립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의 방위비 절감이라는 전략적 목표 하에 일본과의 신안보협약 체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세계수직분업체계에서 엔블록권으로서의 한국에서의 경제성장을 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한국은 일제시대서부터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승만 시대의 토지개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시대서부터, 구체적으로 한일수교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최근에는 호남에서 김대중을 영웅화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식민지근대화론 모두 유럽주의를 내용적으로, 형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인드라는 강조한다. 진실은 입에 쓰다. 설탕처럼 달콤하지 않다.
국제유태자본론을 형성한 계기 중 두 번째는 정치적인 맥락이다. 친일파 노무현은 초창기 무디스의 신용 등급 위협 움직임에 놀라 항복한 일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리처드 롤리스의 주문을 기대 이상으로 초과달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인지 친일파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재임 때에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때 ‘시장’이란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국내로 범주를 국한시켜 재벌, 특히 삼성에 혐의를 둔다. 그러나 버블 시기에 다른 지수관련주와 달리 삼성전자만 주가가 내내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점이나 이건희와 삼성이 사법당국의 감시 속에 처해 있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권력이란 차기 정치권력을 창출하는 힘이 있어야 할 터인데 삼성이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다고 볼 수가 없다.
지난 십년간 한국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세력이 삼성일까. 지난 십년간 한국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세력이 삼성일까. 지난 십년간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한 세력이 삼성일까.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 때 이미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면 삼성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분리 완화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또한 외환시장을 삼성이 장악했다면 한국 수출구조로 볼 때, 적정 수준이라는 천 원 이하로 원화 가치가 절상되었을까. 마지막으로 주식시장을 삼성이 장악했다면, 구태여 마치 외환보유고마냥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도 하지 못한 채 현금 보유를 잔뜩 할 이유는 없지 않았겠는가. 무엇보다 외인이 하는 대로 주식투자하면 돈을 번다는 신화가 지난 십년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까닭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장은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의 시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의 시장, GNP 개념이 아니라 GDP 개념으로서의 시장, 국내에 투자하는 외인 자본까지 포괄하는 시장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인자본, 그중에서도 투자은행, 투자은행 중에서도 일등 투자기업인 골드만삭스가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말을 갈아탔다.
친일파 노무현은 말년에 레임덕(Lame Duck)이 없는 기이한 정치 풍경을 제공했다. "레임덕이라는 말은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이다. 18세기에 런던 주식시장에서 빚을 갚지 못한 증권 거래인과 관련해서 만들어졌다. 1761년 한 남자가 Horace Walpole 경에게 쓴 편지에 처음 그 말이 나왔다. “당신은 황소와 곰과 절음발이 오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를테면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된 증권 거래인을 가리키는 말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정치색을 띠게 된 것은 1860년대였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 부캐넌(James Buchanan)을 묘사하는 데 썼다. 부캐넌이 연방의회가 열리고 있는데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했던 현상을 일컬은 것이다.http://spri.jinbo.net/praxis/praxis_0709.php"
재보선만 했다 하면 패하는 노무현 정권, 재보선 40전 40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노무현 정권, 여당 지지율 5% 이하의 노무현 정권이었는데, 뜻밖에도 레임덕이 없었다. 차기 대통령이 여당 후보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누렸다. 친일파 노무현이 원하는 대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말이다.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노무현이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누렸다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노무현의 힘이 아닌 시장 권력의 힘인 것이다. 다시 말해, 노무현이 레임덕이 없었던 것도, 삼성 특검이 이루어진 것도, BBK 특검이 성립한 것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장 권력의 힘인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노무현이 막판에 정부 기자실을 없애려고 시도한 것인데, 이는 모건스탠리가 일본 정부에 권고한 사안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여, 인드라는 대선 과정 중에 국내 친일, 어용 언론의 보도 태도와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을 느끼던 중 두 가지 단서를 잡았던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한나라당 경선 중에 발생한 아프간 샘물교회 사건이다. 인드라는 그 이전까지 여론 형성 과정을 여당의 쉬운 상대 택하기, 즉 노명박 컨셉으로만 보아왔다. 그런데 아프간 샘물교회 사건은 노명박 구도를 넘어선다. 노명박 힘만으로는 어려운 것이 아프간 샘물교회 사건이며, 이는 911에 준하는 국제적인 커넥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서, 국제유태자본론을 구성할 수 있었다. 두 번째가 이명박 대선 운동이다. 이명박 대선 운동은 지난 십년간 보아오던 한나라당 선거운동이 아니었다. 데자뷰 현상처럼 마치 십 년 전 친일파 김대중 선거운동을 떠올리게 충분했던 것이다. 십 년 전 인드라는 친일파 김대중을 지지한 바 있다. 심지어 친일민주당이 야당일 때 친일민주당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한 바도 있다. 그래서 이 방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할 수 있다. 홍보 뿐만 아니라 조직적 대응 면에서도 그때그때 일사불란하고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지난 시기 김대중, 노무현 대선 팀과 똑같았다.
이를 통해서 인드라는 역대 대선을 재검토하였으며, 동시에 역대 주요 정치적 사건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예서, 인드라는 여러 가지 놀라운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지 국내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정치, 나아가 정치 일반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도달한 것이다. 가령 의회민주주의의 기원을 영국 권리장전에서부터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를 로마 원로원에서 검토하고, 영국 의회주의를 야만 영국에 문명을 전파한 로마제국이 남긴 식민기구에서 찾는다면? 미국 독립을 이끈 주요 정치인들이 알려진 것과 달리 추악한 면모를 지녔다면? 무엇보다 아편무역으로 인해 동서양의 부가 역전된 것은 근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인도회사, 300인위원회, 빌더버그, 삼각위원회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을 형성한 계기 중 세 번째는 루카치의 소설이론에서 비롯된다. 루카치의 소설론이란 문제적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한마디로 문제적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다. 문제적 인간이란 당장 그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단순히 존재하고만 있는 우연적인 현실을 이질적이고 당혹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여, 이 문제가 문제적 인간 내면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여 문제적 인간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하여, 문제적 인간이 현실을 극복하는 순간 세계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움직인다. 해서, 인드라는 어느 순간 국제유태자본론을 해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왜 하필 이러한 소명이 인드라에게 주어졌는지는 인드라 자신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애써 생각해보자면, 1980년대에는 루카치의 소설이론, 그리고 1990년대는 데리다의 해체론으로 이어지다가, 2000년대에는 국제유태자본론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서, 문제적 인간과 국제유태자본론 사이에는 해체론이 매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때, 해체론의 주요한 고민은 무엇이었던가. 지연되고, 연기되는 것들에 대한 규정이었다. 인드라는 이렇듯 지연되고, 연기되는 문제를 개인 대 집단으로 보았다.
부르주아적 개념은 늘 개인으로 귀결된다. 가령 사회가 단 한 명에 불과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라는 명제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민중적 개념은 늘 집단으로 귀결된다. 그 어떤 훌륭한 기획이라도 사회 분업화를 가져온다면, 즉 특정 집단을 소외시하는 사회 차별을 명시한다면 올바른 기획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은 마치 빛의 이중성으로 설명되는 입자와 파동과 같다.
맑스-헤겔의 관계 : 수정주의적 해석
http://blog.naver.com/mdpsjk/20023242948
이때, 발견한 것이 맑스-헤겔의 수정주의적 해석이었다. 맑스에 따르면, 헤겔 사상은 부르주아의 정신적 화폐이다. 맑스주의자에 따르면, 맑스 사상은 노동자의 정신적 화폐이다. 그런데 수정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둘은 상호보완적이며, 수평적 관계이다. 만일 맑스-헤겔 사상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지시하는 것이거나 현실과 일치하는 맥락이 있어야 한다. 하여, 인드라는 당대 주류 부르주아적 이론과 주류 노동자계급 이론과의 상관 관계에 대하여 분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놀랄만한 결과를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소련 스파이였다? 이를 통해 데이비드 록펠러와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 가령 노엄 촘스키, 카스트로 등을 검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끄 데리다는 왜 해체론에서 과제를 끊임없이 연기하고, 유보함을 택했던 것일까. 왜 자끄 데리다는 남미 좌파 혁명군의 책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했던가. 그리고 일급 이론가 자끄 데리다의 문제 제기를 이급 이론가 노엄 촘스키는 한없이 불편했었던 것일까. 노엄 촘스키는 정치적 주장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깎아먹은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가 그나마 체통을 유지하는 것은 그의 언어이론인 변형생성이론, 혹은 변형생성문법 때문일 것이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75370
그런데 자끄 데리다는 요상하고도 교묘하게 노엄 촘스키의 언어 이론에 대해 딴지를 건다. 한마디로 언어란, 그리고 언어 습득이란, 보편적이지 않으며, 선험적이지 않다는 게다. 자끄 데리다의 이론은 마치 양자역학처럼 당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론을 부정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신비주의적이라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마이클 라이언은 ‘해체론과 변증법’에서 인드라와 유사한 관점을 선보였다. 이에 대한 인드라의 독법은 한마디로 긍정적인 독법이었다. 비판적인 독법이 아니라 긍정적인 독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문제의 시작이요, 해법이라는 게다. 가령 대개의 이론은 이론 전개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를 회피하는 반면, 해체론과 변증법은 오히려 이를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언제나 자신의 외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외부는 어느 다른 편의 중심도 아니다. 오히려 경계, 혹은 표면, 또는 현상에 교묘하게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늘 변동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인식할 때, 짧은 순간 자신 앞에 세상이 아름답게 펼쳐지나 이내 벚꽃처럼 활짝 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는 여운으로 남아 대개의 인간은 평생 예서 추억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반면 극소수만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삶을 견딜 수 있지만, 그때그때마다 삶에 일상적이어서 무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을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이는 좀 더 이론 전개를 해야 하나 난해해지므로 이쯤해서 생략하겠다.
하여, 국제유태자본론은 이론(논픽션)과 음모론(소설) 사이에 있다. 음모론인 동시에 이론이며, 논픽션인 동시에 소설이다. 하여, 국제유태자본론은 소설인가, 라고 묻는다면 소설이다. 또한 국제유태자본론은 이론인가, 라고 묻는다면 이론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국제유태자본이며, 세상사를 만들어갈 힘이 있기에 국제유태자본은 국제유태자본론의 주장을 얼마든지 거짓으로 만들 수 있다. 해서, 문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완성할 수 없는 음모 이론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만일 음모 이론이 부분적으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현실을 지배하는 이들이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자신과 관련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반대 경향의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또한 음모 이론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면, 푸코의 추처럼 국제유태자본이 음모 이론 중에 가장 나은 안으로 국제유태자본론을 택하여 연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음모이론을 현실 문제와 연결을 시키고, 그 반응과 역반응을 살피고, 그 방향성을 예상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인드라는 이를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혹은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보고 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론은 가위바위보 게임론이기도 하다. 예서, 이웃들은 왜 인드라가 네이버에서 파워블로그로 선정되지 못하였는가라고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방문객 수나 이웃 수를 보더라도 충분히 파워블로그로 뽑힐 수 있지 않느냐, 말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을 잘 아는 이들은 인드라,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국제유태자본 등의 연관 검색어를 왜 하지 않느냐 비판적일 것이다. 그 모든 경우는 다음과 같이 여기면 된다. 지난 십년간 네티즌들이 알게 모르게 넷통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도 넷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하여, 국제유태자본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완결이 되지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는다. 이제 막 태동한 이론이다. 해서, 국제유태자본론은 그 어느 이론보다도 '인드라망 지성'을 요청한다. '인드라망 지성'은 글쓰기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하이퍼 텍스트를 추구한다. 동시에 이웃의 덧글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웃과 네티즌과 함께 가는 인식론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아는 만큼 존재론적으로 확증이 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2. 국제유대자본이 아니라 유태자본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이다
왜 국제유태자본인가. 국제, 유태, 자본 모두 한자어이다. 반면 유대는 뜻이 같되, 라틴어 Judaea(유다이아)에서 온 원어 발음에 보다 가까운 용어이다. 해서, 한자어 조합이 보다 무리가 없다. 국제통화펀드가 아니라 국제통화기금인 이유와 같다.
그리고 유태자본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인 이유는 무엇인가. 유태자본이라 하면 근대 이전까지 소급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근대사회에 대한 이론이자 소설이며, 전근대사회에 대한 것은 근대사회 설명을 위한 구성적인 맥락에서만 고려가 된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국제유태자본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동인 중 하나를 일국적 차원을 넘어섰다는 데에 둔다. 아울러 유태자본이라 하면 이스라엘적인, 시오니즘적인 경향으로만 해석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오늘날 이스라엘 사태나 과거 수에즈전쟁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국제유태자본론에서는 반시오니즘이 현재 국제유태자본 이너서클에서 주류이며, 국제유태자본 내부 분파로 시오니즘파와 반시오니즘파로 구별한다.
인드라가 국제유태자본을 사용한다면 대체로 세 가지 경우다.
하나는 가끔씩 총자본으로서의 개념으로 쓸 때가 있다. 이는 완전시장처럼 이론적으로만 구
성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사용하는 까닭은 개념 전개가 보다 원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개념을 사용할 때에는 국제유태자본=헤겔의 절대정신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국제유태자본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제국 정치구조를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과거의 황제이며, 현 황제는 데이비드 록펠러이다. 300인위원회가 원로원처럼 있고, 빌더버그라는 민회가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여 최종 안건을 처리하는 듯싶다. 이외에 데이비드 록펠러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삼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삼각위원회는 아시아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로마제국 속주 의회 정도로 봄이 적당한 듯싶다.
세 번째는 두 번째 개념을 보다 확장한 것으로서 정치경제적인 영역을 모두 포괄한다. 세계은행, 국제결제은행, 신용평가기관, 국제연합, 미국 연방준비은행, 미국, 영국, 이스라엘 정보기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 주요 정치인, 에너지, 곡물, 언론, 군수 금융 기업. 마지막으로 이들의 지시를 받는 각국 하수인들.
3. 국제금융자본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이다
비록 국제금융자본이 오늘날 국제유태자본의 핵심 역량이기는 하여도 에너지, 무기, 식량, 언론과 정치권을 장악한 이들의 면모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국제유태자본의 총자본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국제금융자본 대신 국제유태자본으로 명명했다. 동시에 이러한 용어 규정은 이들 자본이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기원이 있음을 드러내어 영원불멸한 사회적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유태적인 속성에 따라 초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선민적인 기원이 있음을 나타내어 이들의 '위선‘을
지시하고 있다.
국제유태자본은 세 시기를 통과해왔다. 첫 번째는 17세기 초반 주식시장이 개설된 이래 19세기 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약 이백년 동안의 시기다. 인드라는 이 시기를 국제유태자본의 태동기라고 본다. 두 번째는 19세기 공황 발생 이후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까지이다. 이 시기를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성립기라고 본다. 세 번째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 시기를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전성기라고 본다.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전성기인 세 번째 국면이 금세기말까지 가리라 보고 있다. 그래봐야 이전 시기보다 더 단축된 약 백여 년간의 기간일 뿐이다. 국제유태자본 봄이 이백여 년이라면, 국제유태자본의 여름은 백오십여 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제유태자본 가을은 기껏해야 백여 년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의 겨울은 더욱 짧을 것이다. 하여, 인드라는 다른 좌파에 비해 자본주의가 더 오랫동안 작동할 것으로 보는 편이다. 동시에 국제유태자본이 현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할 이유도 없다는 점에서 세 번째 국면이 통과하게 되면 다른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 국제유태자본의 쇠퇴기이자 네 번째 국면은 21세기말, 22세기 초반에 등장하며, 그 기간은 다른 기간보다 매우 짧은 오십여 년에 그칠 공산이 크며, 이 시기는 천지개벽하는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준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또한 이때의 시스템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양상이 다른 체제일 것이며, 아마도 상시적 전시체제일 가능성이 짙다. 전 세계적으로 인적, 물자 교류가 극도로 통제되고, 배급제로 식량 배급이 이루어지며,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는 세계가 아닐까 싶다.
4. 국제유태자본론은 비판적 세계체제론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자본주의 국가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국가 역시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차이가 기존의 반미주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과 다르다. 아울러 전통적 좌파가 내세
운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도 다르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오늘날 왜 세계가 반미주의 운동이 대세가 되었는지를, 왜 중심에서의 혁명보다 변두리에서의 민족해방운동만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유태자본론은 진영론 역시 국제유태자본의 기획으로 보기에 진영론과 민족해방운동론을 연속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유태자본론과 유사한 주장을 펴는 경향을 국제사회주의자 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4인터내셔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각종 혁명적 트로트키 계열 정당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환원론적인 입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전통 좌파는 민족해방파에게 박제화가 된 반미주의란 자본가의 이익을 증대시킬 뿐인 관념적 주장이라고 비판하며, 민족해방파는 전통 좌파에게 박제화가 된 맑스레닌주의란 미제의 이익을 증대시킬 뿐인 관념적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국제유태자본론 입장은 둘 다 옳은 입장이라는 게다. 둘 다 박제화가 되었다. 즉, 모두 역사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론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까지는 진영론이 타당했으며,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민족해방론이 타당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는 둘 다 무효화가 되었다.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까지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같은 제 3세계는 정치적으로 통제를 받았을지라도 경제적으로는 자율을 보장받았다. 세계 체제를 위해 각국 보호 무역주의를 용인하였으며, 그만큼 각국 내부에서 경제 자율권을 인정했다. 반면 1970년대라는 과도기를 거쳐 본격적인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세계 체제를 위해 각국 보호 무역주의를 억제하였으며, 그만큼 각국은 경제 자율권을 상당 부분 박탈당했다. 가령 과거에는 경제 관료가 하는 역할이 상당했지만, 이제는 경제 관료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국가 권력의 중추인 경제 운영 주체가 국제유태자본으로 넘어갔다.
국제유태자본론은 1907년, 1929년 대공황은 물론 오늘날의 금융위기도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이 특정한 목표를 지니고서 인위적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간주한다. 또한 1차,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모두 국제유태자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한국전쟁 실체 규명에 적극적이다.
5. 국제유태자본은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상당수 한국인들은 국제유태자본론을 처음 접하면서 묻는 질문이 그들이 주변부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가. 해서, 경향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관심이 없을 것이다, 라는 의견과 한국인이 우수해서인가라고 반문을 한다. 국제유태자본론의 답변은 한국인과는 아무 상관없이 국제유태자본이 한반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오직 지정학적인 요인 하나 뿐이다.
국제유태자본은 한반도를 아시아의 발칸으로 여겼다. 발칸이란 독일과 함께 국제유태자본이 근대 유럽에서 전쟁게임을 벌이기 최적이라고 평가하는 전쟁터 중 하나이다. 해서, 오늘날 중동문제도 발칸의 확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브레진스키는 이집트에서 중국 신장까지 발칸지대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반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은 한반도 분단과 한국 전쟁을 획책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매카시는 1950년 9월 연설에서 1945년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한국에서 전쟁하기로 계획을 짰으며, 십 년 후 베트남에서도 전쟁을 일으키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유태자본론은 루즈벨트와 스탈린 배후에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있었으며, 그의 구상에
서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전적으로 국제유태자본의 덕분이다. 국제유태자본의 세계 지배 분할과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맞아떨어진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여, 자본주의 맹아론은 국제유태자본에게 일시적으로 왕따를 당해 발생한 1920년대 일본 군국주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근대화식민지론은 국제유태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굴복한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위기의 산물에 불과하다.
조선과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못나서가 결코 아니다. 국제유태자본의 전략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왜 중국이 국제유태자본처럼 하지 못했는가, 하는 소극적 책임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인드라는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했던 것은 지중해 민족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로마제국이 당대에 제국이 될 요인이 있었을 뿐이라고 정리한다. 이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한다면, 로마제국 치하의 식민지 백성이 고심해야 할 대목은 왜 우리는 로마시민보다 열등한가 따위 자괴감보다는, 우리는 로마제국의 침략만 없었으면 로마시민처럼 되었을 것이라는 망상보다는, 로마제국의 장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장점을 키워가는 전략만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장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장점을 강화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국제유태자본론에서 인드라가 당면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다. 한반도 통일은 이미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다.
6. 국제유태자본론의 현 경기 전망은 어떠한가
전기 신자유주의가 피라미드 회사라면, 후기 신자유주의(Post Neoliberalism; 인드라가 명명한 것임)는 다단계 회사이다. 보다 합법적이게 된다. 즉, 동의가 필수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통합이다. 세계는 금융 위기 이전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에 호응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하여, 당장 위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국유화 시도들은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는 2009년 3월에 가장 침체 국면이 될 것이고, 이후 3월말, 4월초부터 오바마 경기 회복쇼가 펼쳐지면서 2009년 10월, 혹은 사사분기에 단기 고점을 찍을 것이다. 이후 2010년에는 2009년보다는 경제 상황이 낫지만, 여전히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할 것이다. 이때 국지전 성격의 전쟁이 파키스탄 등지에서 발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경기는 조금 더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빠르면 2010년 삼사분기, 늦어도 사사분기부터 경기 회복기로 접어들 것이다. 이후 2012년 상반기까지 슈퍼 버블 시대가 열릴 것이지만, 2012년 하반기에 잠시 침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내 극복하고, 2015년까지 상상할 수 없는 울트라 슈퍼 버블(Ultra Super Bubble: 인드라가 명명한 것임) 시대가 열릴 것이다. 해서, 3월 위기설은 경기 전망에 따른 침체 국면을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작전세력이 유포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루머를 퍼뜨리고, 그에 따라 선물옵션 시장에서 큰 이익을 얻고자 함이다.
주가는 경기에 6개월 선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주가는 2008년 10월말, 11월초가 대바닥이며, 2009년 3월까지 오바마 랠리 대반등이 올 것이다. 다만, 흐름은 두 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만일 연말 산타랠리로 간다면 연말까지 1300 이상이 가능하나, 연초부터 폭락하여 오바마 취임 직전까지 1000선에 걸칠 수 있다. 이후 다시 주가 상승하여 1500~1400으로 나아가다 3월말 직전에 꺾이는 모양새다. 다른 하나는 산타 랠리가 예상보다 저조하여 코스피 지수 1200 이하에서 멈추고 연말연초에 완만한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3월까지 급등락 없이 오바마 랠리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그 어떤 경우이건 2009년 3월말, 4월초에 단기 고점을 찍고, 주가는 휭보를 할 것이며, 10월, 혹은 연말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 그러나 2010년에 들어서면서 주가는 무섭게 치솟을 것이며, 2011년 말까지 대세상승장이 올 것이다. 이후 주가는 2012년에 숨고르기를 한 후 2012년 말부터 2015년까지 폭등할 것이다.
부동산은 주가에 1년 후행하는 경향을 전제할 때, 2009년 10월 혹은 사사분기가 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내가 애초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제로 금리에 가까운 금리 인하, 엄청난 감세, 오바마가 내건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부동산 경기가 이르게 회복되어 3월쯤에 저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해서, 주가가 3월쯤 단기 고점을 형성한 뒤 유동자금 중 일부가 부동산 쪽으로 향할 수 있다. 다만 부동산 하락이 멈추었을 따름이지, 본격적인 회복 국면은 2010년부터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2011년에 가서야 본격적인 상승이 이루어질 것이다. 해서, 최근 1인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2년간 면제하는 것도 2011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활황 국면이 될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닥은 이미 지났다. 다만 한번쯤은 재차 바닥인 양 몸부림치는 국면이 와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한국 코스피 기준으로 1100을 한 번은 하향 이탈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다. 혹은 다우지수를 8100 정도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갈 곳을 못 찾아 방황하는 자금이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 자금에게 한 번은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오바마 집권 이후에 잠시 이런 시기가 찾아왔다가 이내 주가를 회복하고 치고 올라가리라 본다. 오바마가 100일 뒤, 4년 뒤에 내세울 성적표를 고려해보자. 자신이 집권한 날 다우지수 종가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4년 뒤에 보여줄 성적표를 추정하자. 답은 나온다. 내가 국제유태자본의 기획자라면 당연히 오바마 취임식 날에는 주가를 폭락시켰을 것이다. 최저에서 최고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다 극적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랠리는 지금부터이다.
국제유태자본은 한국에 대해 왜 리디노미네이션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가하는가. 그 실익이 무엇인가. 인드라는 부동산시장이 아니라 주식시장에 있다고 본다. 국제유태자본이 향후 울트라슈퍼버블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증시 폭등이 일어나야 한다. 이때 한국은 주요 선진국 시장 중 하나인 동시에 선물옵션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라스베가스 하우스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해서, 주가 삼천이 아니라 주가 육천 정도로 가주어야 울트라슈퍼버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수인 게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이명박의 의지가 아니라 국내 CEO의 의지가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의 의지임을 파악해야 한다.
7. 국제유태자본이 한국 경제에 기대하는 것은?
국제유태자본이 주목하는 바는 국민연금이다. 자산규모 230조원의 세계 4위 대형 연기금이다. 라자드 펀드가 장하성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공공연히 연기금 장악 의도를 드러내기도 한 바 있다.
세계 GDP 총합이 60조 달러이며, 파생상품 규모는 600조 달러이다. 한국은 GDP가 1조 달러이며, 파생상품 규모는 약 5조 달러이다. GDP로는 전 세계 약 2% 시장이며, 파생상품으로는 약 1% 시장이다. 그럼에도 국제유태자본이 한국 경제에서 주목하는 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물옵션시장이다. 하루 35조원이 거래되며, 미국, 유럽에 이어 3위권이다.
세계 전체 외환거래는 영미가 50%,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 홍콩, 호주까지 해서 75%를 차지한다. 반면 한국은 18위권으로서 0.8%로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외환거래 시장은 주요국보다는 낮지만, 이탈리아, 인도와 비슷하며, 대만, 멕시코, 네덜란드, 스페인보다 큰 시장이다. 세계 외환시장의 주요 국가가 아니면서도 주식거래 및 외환거래 등이 전면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시장은 주요 시장에 비해서 규모가 작지만, 여타 다른 시장에 비해서는 크다는 점에서, 마치 테마주로 해먹을 정도인 수준, 코스닥에서 대장주 소리를 듣거나, 막 코스닥에서 거래소로 이사한 졸부 주식인 수준, 헤지펀드 먹거리로 삼기에 좋은 수준이 한국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한국 원화 가치가 변동성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유태자본이 주목하는 바는 산업은행과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들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산업은행장을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것이기 보다는 국제유태자본이 직접 임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산업은행은 한국은행처럼 국제유태자본의 직속 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 주요 정치인들은 친일파 김대중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금융허브론을 말한다. 그러나 금융허브국가의 허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오랫동안 국제유태자본과 거래를 해온 도시국가들이다. 국제유태자본은 17세기 이후로 동인도회사를 통해 마약장사를 해왔고, 이들 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도시들이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이다. 유럽에서야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소국에서 우표팔기로 세탁하거나, 혹은 모나코처럼 카지노로 돈세탁을 했다 할 수 있으며, 두바이에서는 황금의 초승달 지역 자금을 세탁한 금융허브국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특징은 국제유태자본의 300인 그룹 가문이거나 영연방국가이거나 과거 영국 식민지였다는 특징과 함께 도시국가라는 특징이 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의 한반도 금융허브론은 한시적인 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국제유태자본이 중국과는 상하이방을 중심으로 연계하고 있는데, 인드라는 상하이방이 부활하면 한국의 금융허브론도 조용해질 것으로 본다. 상하이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유서 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8. 국제유태자본론이 보는 한국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은?
“카간(KAGHAN)-카자르 군주를 의미한다, 타타르어 '칸'에서 온 단어인데 타타르어로 '칸'은 왕자 라는 뜻이다. 이븐 파들란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카간을 강바닥에 묻었다. 카간은 언제나 또 한 명의 군주와 권령을 나누었고, 단지 제일 먼저 아침 문안 인사를 받는 정도의 권위만을 더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카간은 유서 있는 왕가에서 나왔는데, 이 가문은 아마도 터키 계통이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왕 혹은 '베이' 라고 불리던 카간의 동료 군주는 카자르 제국의 평민 출신이었다. 9세기에 씌어진 야쿠비 문서를 보면, 카간은 6세기에 이미 칼리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카자르 민족의 공동 통치에 대하여, 알 이스타흐리가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아랍력으로 320년에 씌어진 이 기록은 다음과 같다. 카자르의 정치와 행정에서 그 군주는 카자르 민족의 카간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은 카자르 왕 '베이'보다 지위가 더욱 높다. 하지만 카간을 임명하는 것('카간' 이라는 직위를 내리는 것)은 바로 왕이다. 카간을 새로 임명하고 싶을 때, 왕은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비단 조각으로 목을 조른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거의 숨이 끓어질 지경에 이르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배할 생각입니까? 하고 묻는다.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은 '얼마만큼이오' 라고 대답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대답한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죽는다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때가 되어도 죽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말한 그 해를 채우자마자 살해된다. ; 밀로라드 파비치의 카자르 사전 중에서”
국제유태자본이 이명박을 교체할 생각이었다면 올 9월과 10월이 적기였다. 그러나 국제유태자본은 이명박을 구원했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을 죽일 만큼 코너에 몰아 국제유태자본의 권능을 보여준 뒤 다 죽은 이명박을 부활시켰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친일파 김대중, 노무현처럼 이명박 역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BBK, 탄핵, 쇠고기, 그리고 최근의 용산참사까지.
또한 이명박을 지지했던 골드만삭스를 보면 된다. 골드만삭스가 노무현 정권 때 장밋빛 그림을 그려주어서 친일민주당 측이 좋아죽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골드만삭스가 오바마를 지원하고, 이명박을 지지한다. 인드라는 청계천 프로젝트도 국제유태자본이 이명박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루빈사단이란 골드만삭스 출신을 의미한다. 또한 차기 황제가 유력시되는 국제유태자본의 황금 가문 출신이 골드만삭스를 지배하고 있다.
비유하면, 깡패를 고용하여 길에서 미인을 괴롭힌다. 위기의 순간, 백마 탄 우리의 국제유태자본이 등장한다. 깡패를 물리친다. 미인은 국제유태자본에게 환호하며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한미통화스왑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국제유태자본의 권능을 신처럼 떠받들게 된다. 과연 한국 국내 정치세력 중 그 누가 국제유태자본의 권능에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몇 안 되게 국제유태자본에게 부여받은 권리를 행사하여 강만수는 세 가지 점에서 위기 상황의 한국에서 재상으로서 적임자 역할을 했다. 우선 재벌의 인수합병 대출자금을 막아서 이로 인해 비록 조중동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을지라도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은행의 잠재적 부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과감하고 선제적인 금리인하 정책이다. 한겨레 등 어용언론의 비판이 있었을지라도 강만수로 인해 한국은 9월 위기설 등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어용언론 말대로 했다면 한국은 당장 국가부도상황이 되었다. 말하자면, 어용언론 한겨레는 국가부도 원흉 전문 언론이다. 마지막으로 실물경제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등이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그런 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키코 사태에서 부터 근래 중소기업 자금 융통까지. 비록 은행권이 난색을 표하나 강만수 팀에서는 많은 압력을 가했다. 반면 신임 장관에게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과연 강만수처럼 욕을 먹으면서 고대 재상 관중처럼 현명하게 처신할 것인가 기대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다. 현실적으로 한국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은 뚜렷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하에서의 전망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GDP에서 내수 부문 수치를 올려주는 것 중 건설 분야만큼 매력적인 분야는 없다. 통치자는 케샤르나 진시황제 흉내를 낼 수 있고, 국민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으므로 청계천처럼 환호를 할 것이며, GDP로 잡히니 실적은 실적대로 잡힌다. 실물 내수가 부진해도 경제지표에 착시효과를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내내 실물 내수가 갈수록 침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지표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것이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국제유태자본은 식민정권의 대토목공사를 겉으로는 비판하더라도 속으로는 환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지원하는 정권을 튼실하게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고, 이후 정권이 바뀌면 실정 책임을 대토목공사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타 삼피이다.
해서, 녹색뉴딜이니 뭐니 비록 그것이 헛소리요, 실효가 없는 케인즈주의적 맹탕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본격적인 경제회복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요, 국제유태자본에게 바치는 일종의 공물이기도 하다. 비축된 자원이 뻔한 상황에서 사방이 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직 원군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원군이 멀리 있어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동안 버티면 승리할 수 있지만, 버티지 못하면 함락당하는 것이다. IPTV가 소총수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재정 상황이 여유가 있다 할 수 있으므로 올 한 해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 근래 이머징마켓 중에 중국, 한국 등을 거론하는데, 사실 오늘날 중국 경제 여건을 보면, 중국보다는 한국이 유력하다. 특히 자통법이 통과되면 한국의 파생상품 규모가 최소한 두 배 이상 늘어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욱 개방된 체제가 요구된다. 최근 산업은행이 한화에 퇴짜를 놓았다. 현재 한국에는 헐값에 매물로 내놓은 알짜배기 회사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국제유태자본이 긍정적 신호만 준다면 대기 자금이 엄청나게 덤빌 것은 확실하다.
셋, 양의 자극을 줄만한 것이 별로 없다. 기술 혁신? 특별한 것은 없다. 오직 하나 기댈 것은 한반도 통일뿐이다. 약간의 국지전을 감수하고서라도 당장 통일이 가능한 시나리오라면 밀어붙여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이 향후 벌어질 울트라슈퍼버블을 위한 재료로 통일을 택한다면 1조 3천억 달러로 추정되는 통일비용 부담을 감안하더라도 북한 특수가 과거 베트남 특수, 중동 특수만큼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15년 이내로 통일이 가시화되고 있다. 통일은 이미 진행중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인드라 교육 혁명 공약 12조와 같은 안을 제시할 것이다. 물론 대안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교육 혁명 공약 1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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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국제유태자본과 연관된 국내 인사는 누구인가
국제유태자본론은 남북한의 역대 대통령들과 주석을 예외 없이 모두 국제유태자본이 임명하였다고 보고 있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최근 북한 당국의 김정운 후계자 역시도 국제유태자본이 임명했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삼각위원회는 록펠러의 귀염둥이, 노엄 촘스키가 전 세계 자유주의 지성들의 모임이라고 한 바 있는, 록펠러의 친위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각위원회 비공개 서울회의에서 친일파 노무현이 기조발제를 한 것만 봐도 여야 모두에 영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각위원회 회원이자 국제유태자본의 포용정책을 이름만 바꾸었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스칼라피노가 이명박을 중도파라며 호의적이었던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인드라는 정몽준이 삼각위원회 명단에 올랐기에 홍석현이 유엔사무총장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정몽준이 대통령이 결코 될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또한 CFR 기관지 포린 어페어에는 아무나 기고할 수가 없는데, 친일파 김대중이 국제유태자본의 포용정책을 기조로 한 햇볕정책을 기고한 바 있다. 이외에 <글로벌 아시아>라고 있는데 동아시아재단(EAF·이사장 정몽구)이 '아시아판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를 지향해 만든 영문저널로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데이비드 플롯 홍콩대 교수가 각각 편집장과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록펠러와 반기문과의 관련으로 이어지는 아시아소사이어티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공개된 자료에 불과하므로 그 실체에 비해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아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이미 1950년대에도 야당인사인 조봉암과의 루트도 만들어서 그에게 영어 과외 공부를 하라고 지도할 정도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해서, 자신이 한국 주요 정치인이라고 여기는데, 국제유태자본에게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여야를 불문하고 자신이 허당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이 내세우는 정치적 대안은 친일민주당 해체 및 대안 정치세력 형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제유태자본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현재 5% 정도 지지율에 불과하여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친일민주당을 도와주기 위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서 이상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성과는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3월이 가기 전까지 효과가 없다면 한 번 더 사건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그럼에도 한국 민중의 시각이 크게 달라질 것인가 인드라는 의심하고 있다.
현재까지 차기 대통령은 국제유태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가 유력하다. 이는 캐슬린 스티븐슨의 존재로도 입증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시기에도 국제유태자본이 총선 직후부터 이년 정도까지만 박근혜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이명박에게 집중했던 만큼 5년 내내 박근혜에게 힘을 실어줄 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10. 국제유태자본을 극복하는 길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95:4:1이기도 한 사회관계에서 국제유태자본은 대부분의 인간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지만, 다른 한편 그 개가 ‘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행동하기를 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인간을 미친개로 만들고는 정치적으로 그 개가 미쳐서 자신이 새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상상 속으로만 날아서 일정 수준에 도달한 미친 개에게 ‘미친개’가 아니라 ‘비둘기’라는 이름을 국제유태자본은 부여한다. 영화 ‘매트리스’에서 매트리스 안의 인간은 비둘기처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막다른 쥐는 고양이를 물게 되어 있다. 해서, 언제나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다만 그 탈출구 역시 장악하고 있다는 차이이겠다.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은 세계 바깥으로 나가 프로듀서를 당혹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국제유태자본을 프로듀서로 여긴다. 아니다. 국제유태자본은 이때 프로듀서를 비판하며 트루먼 편을 들 것이다. 그리고 국제유태자본은 담당 프로듀서를 해고하고, 또 다른 프로듀서를 고용하여 ‘트루먼의 바깥세상 나들이’라는 또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할 것이다.
왜 국제유태자본은 모든 것을 갖추고 왜 지금 하지 않는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필요한 힘을 갖추었지만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보다 더 큰 금융혼란과 경제 대공황이 와야 하고, 대규모 전쟁이 불가피하다. 그래야 인류는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의 공포심에 못 이겨 국제유태자본에게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그러자면, 눈치 채지 못하게 설마, 설마 하게 자연스럽게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이것이 내가 그간 강조한 국제유태자본의 약점인 ‘위선’이다. 미래에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국제유태자본의 책임이 아니어야 하는 게다.
해서,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대결은 국제유태자본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제유태자본의 무기는 금융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을 무력화시키지 못한다면, 국제유태자본의 털끝 하나도 손대지 못할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의 힘은 금융에 있다. 따라서
국제유태자본을 극복하는 길도 금융에서 시작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인드라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장기판의 졸로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다가 끝내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 이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자. 그런데 저승을 다스리는 자의 오류로 이 자가 이전의 기억을 모두 지닌 채로 환생을 한다. 그것도 자신을 장기판의 졸로 이용하다 버린 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만일 보다 많은 이들이 국제유태자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세상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이들이 라이프니쯔의 영적 연결론처럼 국제유태자본론으로 결집한다면, 언젠가는 SF영화의 로봇반란처럼, 영화 매트릭스의 인간 반란처럼 장기판의 졸이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
하여, 국제유태자본론은 오늘날 그대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상식이 국제유태자본이 조작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