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FTA 국유본론 2011

2011/11/23 01:53

http://blog.naver.com/miavenus/70124790155

   

   

   

   

   

"마치 쪽발 놈현 정권 때 찢어죽일 지주 조병갑의 후손이 고위직을 역임케 하는 등 쪽바리들이 쪽발 놈현 정권 최고위직에 있으면서, 농민, 노동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등 민심을 잃자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처럼 한국 민중이 분노하여 떨쳐 일어난 것처럼 세이스가 나선 것이다. 허나, 국유본 언론은 이를 철저하게 은폐시켰다. 쪽발 놈현이 죽었을 때, 상당수 인민은 쪽발 놈현이 죽었다고 잘 죽었다고 죽을 넘 죽었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허나, 뉴라이트 네이버 등 포털부터 시작해서 공중파 방송, 친일 조중동이 하루 종일 쪽발 놈현 찬양만 보여주니 이삼일만에 한국인 대다수가 세뇌당했던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의 힘인 것이다. 하루 종일 쪽발 찬양에 나서면 인민 모두가 쪽바리가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일본 지진에 성금을 보내기 마련인 것이다. 지진 피해로 터키나 중국에도 사상자가 났는데, 왜 일본에만 유독 지진 성금이었던가. 그것이 국유본 미디어의 힘이라는 아직도 모르는가? 다만, 인드라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유본은 인드라가 다시 쪽발 노빠들이 나서주기를 원하나? 하고 분석해서 다음 날 뉴스에 쪽발 노빠들, 아직 안 죽었어, 이런 뉴스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 국유본아, 이거 웃기잖아. 쪽발 노빠 정치인들이 FTA 지지하고 나서는 모양새가 너무 웃기잖아~! 통일은 아직도 멀었건만. 이럴 때, 인드라라도 나서서 씹어주어야 쪽발 노빠 색희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 발광할 것 아니겠어? ㅎㅎㅎ."

http://blog.naver.com/miavenus/70124612263

   

인드라는 친일 조중동이 쪽발노빠 정치인인 안희정 같은 애를 등장시킬 때 FTA 비준이 임박했음을 간파했다. 국유본이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쪽발노빠 정치인을 내세우니 인드라로서는 최후까지 쪽발 노빠 십색희들을 자극해서 FTA를 미루어보려고 했는데 국유본이 마이동풍이었다.

   

이제 FTA 비준하였으니 인드라 전술을 말할 시점이다. 국유본이야 알고 있었겠지만, 여러분들은 모르니. 인드라는 그간 FTA 비준하면 오바마가 재집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왕이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라든가, 오바마 대선 직전이라든가에 날 잡아서 공중부양쇼, 해머쇼를 해야 대박이 난다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헌데, 국유본은 그 이전에 행했다.

   

하면, 왜 인드라는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오바마 골드만파에게 몰아주기 위함이다. FTA 통과로 미국 주가가 대폭등한다. 이에 세계 주가도 폭등한다. 미국인들이 한미 FTA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한국인은 초죽음이다. 이리 해서, 오바마 골드만파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하고자 했던 것이다. 해서, 그 대가로 한반도 통일에 매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허나, 여기에는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맹점이 있다. 국유본이 골드만파만 있나. 노비네파도 있고, 뉴라이트파도 있다. 국유본이 일치단결하여 만든 FTA 과실을 골드만파가 다 먹지는 않더라도 약속한 지분 이상을 취득한다면 국유본 다른 분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바마 정부 입장과 다른 타 국유본 분파들 입장에서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 아닌 때에, 미국 대선 투표일과 멀리 있는 날에, 한국에서의 적당한 반대가 수반한 FTA 통과가 최적이었던 게다. 국유본 분파 모두에게 적당한 FTA 처리. 이것은 한반도 통일에 유리할까? 인드라는 최소한 유리하지는 않다 이렇게 보았다.

   

해서, 국유본 분파 중 골드만파에 전술적으로 화끈하게 올인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보았건만. ㅠㅠㅠ

   

국유본은 인드라 전술을 일찌감치 간파했는지 미국 주가나 한국 주가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국유본은 월가 점령 시위대에게 한미 FTA 비준 반대 한국 대사관을 점령하라,라는 지령을 내렸다. 한미 FTA가 미국인에게도 굉장한 손실이라는 게다. 

   

이는 그간 한미 FTA는 무조건 한국에 손해이고, 미국에 이익이라는 좀비적 수준에서 FTA를 이해한 이들은 골치가 아플 것이다.

   

"인드라가 척보기에 FTA 연말까지 갈 분위기가 아닌 듯해서 쪽발노빠븅신색희들에게 분발을 촉구했건만.. 그래도 선동이가 밥값은 하는구나. 선동이가 국유본이 FTA용으로 국회의원 만들어준 은혜 잊지 않고 연막가스쇼를 보여주었구나. 이걸로 연말에 동남아 섹스골프관광 예약했냐? ㅋ 하긴, 새로운 걸 보여주어야지. 공중부양쇼, 해머쇼는 식상했지. 무난하기는 했는데, 연말 온가족이 모여앉아 미국인들이 이 쌩쇼를 생방송으로 봤어야 하는데. 오바마가 많이 아쉽겠다 ㅋㅋㅋ "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4758987

   

인터넷상에 뿌려진 FTA 반대 좀비 주장들 중 90% 이상은 거짓 주장이다~!

여러분이 FTA에 대해 뭘 아나? 모른다~!!!

   

인드라 그간 주장한 바가 무엇인가.

   

한미 FTA는 한국의 이익도, 미국의 이익도 아닌, 국유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라고 했다. 자, 이를 월가 시위대 입장에서 보자. 월가 시위대가 FTA 비준 반대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월가 시위대 주장이 맞다면, 한미 FTA 비준이 미국에게 불리한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한국에 유리하다고 볼 수 없으니, 인드라 주장대로 국유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월가 시위대 주장인 것이다. 다른 한편, 월가 시위대가 국유본 지시로 FTA 비준을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가정하자. 즉, 실제로는 한미 FTA 비준으로 미국이 이익인데, 국유본 지시로 FTA 비준을 반대하는 척할 따름이라고 말이다. 이 역시도 국유본의 지시에 의한 것이니 인드라 주장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

   

예서, 좀 더 나아가 보자.

   

한미 FTA로 피해를 본다?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농민? 한국 대표 농민은 뉴라이트 카길이다. 한국 대표 농민 뉴라이트 카길 입장에서 한미 FTA는 호재다. 카길 만큼은 아니나 풀무원, CJ 이런 기업도 호재다. 하면, 빈농은? 빈농은, 한국 FTA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어렵다. 남은 층은 중농이다.

   

제약계? 한국 대표 제약계는 의사도, 한의사도, 정부도, 국유본 언론도 다 쌩깔 만큼 의료계 절대 강자가 아닌가~! 농이 심했다. 어차피 국유본과 손잡은 애들은 안철수처럼 잘 나간다. 바이시밀러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 주변에 병원 없이 버티는 옛날 동네 약국 같은 데는 FTA를 하든, 말든 갈수록 장사가 안 되고, 경쟁이 치열해서 문닫기 마련이다. 남은 층은 중산층 제약계다.

   

지적재산권? ISD? 삼성이 요즘 애플이랑 싸운다. 한국 대표 삼성을 위해 설마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게다. 하면, 영세 자영업자나 영세기업? 어차피 FTA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나날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은 층은 중산층이다.

   

그렇다. 남은 층은 중산층이다. 이들이 투표한다. 선거가 있으면, 하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이런 층이 전체 시민의 50%이다. 어차피 어떤 넘이 하건, 하층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상층도 투표하지 않는다. 어떤 넘이 집권하건, 역시 상관이 없으므로. 이런 층이 전체 시민의 1%이다. 남은 것은 49% 중산층이다. 출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장에서 부장으로 이사로 출세하려면 줄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헌데, 1987년이면 중산층이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의 경제적 능력만큼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서, 민주화다 뭐다 했다. 허나, 지금은? 한국은 민주화되었다. 돈이 모자라서 그렇지, 원하면 어디든 여행가고, 교육받고, 출세할 수 있다. 언론 자유도 누리고 있다.

   

하면, 이제 중산층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보고서 달려가는 것이다. 허나, 이런 층은 전체 인류의 1%에 불과할 만큼 영웅적인 층이다. 이런 이들이야 투표와 FTA를 연계한다는 것 자체가 지능이 떨어지는 행위로 생각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기브 앤 테이크 층이다. 22% 정도는 합리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허나, 남은 27%는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이 어려운 만큼 이들은 파시즘 국수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대안없는 FTA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 국유본이 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머지 50%는 중산층도 아닌 하층이므로 FTA가 되든 말든, 하루 생계에 신경쓰기에 무관심할 것이다.

   

이제 국유본은 27%의 무뇌아 좀비들을 쪽발 노빠들로 무장시켜서 나머지 22% 합리적 중산층을 공격할 것이다. 바로 이런 실험을 국유본이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 같다.

   

무뇌아 쪽발 노빠들이 길거리에서 매국노쇼를 보여주고, 친일 조중동이 연일 이 문제를 핫이슈로 거론하는 과정에서 22% 합리적 중산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2017년~2018년쯤 예정된 전세계 경제공황에서 한반도에서 어떤 게임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고, 한반도 통일 과정에도 반영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보낼 시기라고 본다.

   

국유본이 FTA를 이런 식으로 통과되길 지시했기에 다른 변수가 없다면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패배가 확실하다. 허나, 쪽발 돼중도 당선되면 IMF 재협상한다고 했다가 입 싹 닦았다. 견제 잘 하라고 뽑아준 안희정 같은 애가 결정적인 대목에서 한미 FTA 찬성하는 것 봐라~! ㅎㅎㅎ 니미, 다 똑같은 넘들이고. 게다가 길거리에서 개쑈한다고 다 출세하는 것 아니다. 어차피 길거리에서 개쑈하고 출세할 넘들도 정해져 있다. 지금 월가 시위대 지도부 1% 중 일부가 고급 호텔에서 지낸다는 뉴스 못봤냐? 그런 애들이 데모해서 국회의원도 되고, 국회의원 되어서 연막가스쇼도 하는 것이다. 시위대 99%는 결국 인생 낭비한 죄로 노숙자가 될 것이다. 그 시간에 돈을 좀 벌었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추신 : 하여간 개씨발 쪽발노빠븅쉰색희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는데, 국유본 지시대로 슬쩍 흘렸던 것이겠지~! 연말까지 좀 버텨주지, 씹색희들이. ㅋㅋㅋ 올 연말에도 태국섹스관광 가냐? 요즘 한국인들 중 너네들처럼 인생 편하게 사는 넘들이 있냐? 씹색희들아~! 일 좀 잘 해라? 응?

   

추신 2 : 통일. 고작 유엔 인권 요원이 방한하는 걸로 다 되겠냐. 내일 당장 정일이나 정은이 하나 골로 보내라. 이런 건에 정일이나 정은이 정도 제물이 필요한 법이야. 안 그러면 부정을 타서 국유본 니네들 남은 삶에 분명 좋지 않을 것이다. 제물 하나 바쳐. 알겠어?

   

   

한반도 여성들이여, 전 세계 여성들이여! 떨쳐 일어나 한반도 혁명을 일으키자! 국유본론 2011

2011/11/16 02:1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4157169

   

   

    

   

   

   

   

한반도 여성들이여, 전 세계 여성들이여! 떨쳐 일어나 한반도 혁명을 일으키자!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16

   

요즘은 국유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같다. 한국, 일본, 영국에서 동시패션으로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하더니, 오늘은 뉴욕과 서울에서 자작극을 벌인다~! ㅋ 그럼 내일은 평양과 시리아에서 정권 퇴진 탱크 압살 사건이 벌어지는 것인가~~~~! 조작이 본질인 축구가 국유본 지시로 졌다는 건 한민족에게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국유본 때문에 매일 고생하는 레바논 인민에게 기쁨을 주었다. 광래횽, 좋은 일 했다, 고마워~! 나라를 위해 큰 희생하셨다. 이만한 희생을 치루었으니 이제 통일 한 길로 박차를 가하자!! 뽀그리 정일이에게 똥침을 넣어서 하루바삐 통일하자^!^ 해서, 오늘은 기념으로 시리아, 레반트, 수메르 이야기를 한다.

   

참고로 인드라의 수메르 신화 이야기는 전 세계 최초라는 것을 밝힌다~ ㅋ. (늘 전 세계 최초를 이야기하는 인드라의 명성 밝힘증은 언제 치유가 될 것인지~!)

   

1.  아브라함과 달의 신, 난나 Nanna (바빌로니아/ 신 Sin)

   

수메르에서 주요 일곱 신은 다음과 같다.

   

안 An (바빌로니아  아누Anu) - 하늘의 신

   

키 Ki () - 땅의 신

   

엔릴 Enlil (아카드/벨Bell , 바빌로니아/엔릴, 엘릴Ellil) - 대홍수를 일으킨 신

   

엔키 Enki (바빌로니아/ 에아 Ea) - 홍수를 막으려 한 신

   

이난나Inanna (바빌로니아/ 이쉬타르 Ishtar) - 금성의 신

   

난나Nanna (바빌로니아/ 신 Sin) - 달의 신

   

우투Utu (바빌로니아/ 샤마쉬 Shamash) - 태양의 신

   

이중 왜 달의 신, 난나인가.

   

아브라함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실존 인물이라면 기원전 이천 년 무렵 인물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가설 중 유력한 가설이다. 이 시기는 셈족이 수메르족을 정복하고 수메르 문화를 받아들이던 시기이다. 유럽에서 라틴어를 종교어로 사용했듯 셈족도 수메르어를 종교어로 채택해서 수메르 종교를 수용했던 것이다. 해서, 달의 신 난나가 이 시기에 셈족 이름인 신으로 불린 것이다. 이런 시기에 셈족인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하란을 경유해서 가나안에 이른다. 헌데, 우르와 하란이란 어떤 도시였을까?

   

 http://blog.daum.net/han0114/17049411

   

수메르인은 다신론이었지만, 도시 별로는 사실상 유일신을 모시는 특징이 있었다. 가령 우르와 하란은 달의 신, 난나를 최고신으로 모시는 도시였다. 하면, 언제부터 달의 신, 난나가 이 지역에서 최고 신이 되었을까. 이는 우르와 하란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이다. 하면, 이 시기에 우르를 중심으로 달의 신, 난나를 최고신으로 믿게 되었을까.

   

인드라 추정으로는 홍수와 관련이 있다. 대홍수 이후 수메르 지역 최대 관심사는 물 관리였을 것이다. 이때, 왜 달의 신, 난나였을까. 수메르인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해서, 조수간만의 차에 달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일찌기 파악했던 것이다. 오늘날 과학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달은 태양보다 조수간만의 차, 즉 밀물 썰물 현상에 1: 0.43으로 두 배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해서, 보름달과 초승달이 뜨면, 태양과 달이 지구를 양쪽에서 끌어당겨 조수간만 차가 크게 발생하고, 태양과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직각이면 조수간만 차가 적게 발생한다.

   

하여, 수메르족은 초기에 십진법을 쓰다가 난나 신을 숭배하면서부터 육십진법을 사용한 것이다. 기존 설명으로는 기원 전 이천년대부터 육십진법을 쓴다고 하지만,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난나 신을 숭배하는 것 자체가 달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며, 달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수의 체계도 육십진법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많은 이들이 수메르도 태양신을 믿었다면서 한국과 관련이 있는 양 하는데, 이런 놀음, 이제 그만하자~! 이런 것 다 일본에서 이미 한번씩 다 써먹은 것들이다~! 그런 일본도 유럽에서 복사한 것이지만~! 인드라가 강조하는데, 수메르에서 태양신, 별 인기가 없었다~!

   

헌데, 수메르족 난나 시절 상징이 보름달인 반면, 셈족 신 시절 상징이 초승달이다. 왜일까.

   

인드라 추정으로는 수메르족과 셈족 기질 차이인 것 같다. 수메르 신전에서 달의 신, 난나 신전을 지킨 이들은 여 사제였다. 난나 신이 남성 신이었기에. 반면, 여성 신전은 남 사제가 지켰다. 수메르족은 고도의 문명을 건설한 족속답게 여남평등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셈족은 배고프고 거친 마초들 집단. 이 마초들이 수메르족을 정복했을 때, 마초들이 수메르 남성들을 '폭풍'처럼 모조리 도륙했다. 다른 한편, 수메르 여성들을 '폭풍'처럼 강간하였는데,  셈족이 특히 열광했던 여성들은 분명 달의 신, 난나 신전을 지키던 여 사제들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남성 신이 부각하는 것이다. 누구? 엔릴. 사막의 폭풍. 오늘날도 북한 인민을 학살하는데 앞장서는 군단 이름, 쪽발이 김정은 부대 이름이 폭풍 군단이다~! 니 애비, 쪽발이 정일이가 시켰지? 국유본 지시를 받고서~? 시일이 아무리 지나도 공소시효없이 인류 범죄 사건으로 다루어 쪽발이 김정일과 김정은을 인류 반역죄로 엄벌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 똥침으로 죽이는 것이 효과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무튼 보름달과 초승달의 차이가 무엇인가. 오늘날 신화를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보름달이란 음기가 충만한 때이다. 반면, 초승달이란 음기가 가장 약할 때이다.

   

다시 말해, 셈족 시절부터 난나는 최고신의 지위를 내놓았던 것이다. 하고, 떠오르는 신이 엔릴이었다.

   

셈족 때부터 달의 신, 신은 초승달과 초승달과 닮은 황소의 뿔을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한국에서 붉은악마 탓에 치우천황 상징이라고 롯데월드 같은 데 놀러가면 여학생들이 반드시 착용하는 것이 뿔달린 장식인데, 이것 유래가 수메르에서 온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ㅎㅎㅎ. (인드라가 대표적인 붉은 악마 이론가 중 하나였다 ㅠㅠㅠ) 이것이 다 국유본의 치밀한 각본인 게다. 국유본이 달리 할로윈 데이이니 빼빼로 데이이니 크리스마스이니 강조하는 줄 아나? ㅋ

   

허나, 이것이 달의 신, 난나의 원형이었을까? 인드라 추정으로는 삼각대만이 난나의 원형으로 본다. 왜? 삼각대란 카메라 삼각대에서 보듯 안정, 균형을 의미한다. 이처럼 조수 간만의 차에서 달과 태양과 지구가 직각 삼각형일 때, 혹은 이시스의 삼각형, 피타고라스의 삼각형일 때, 밀물 썰물 차가 가장 적다.

   

하고, 수메르족이 육십진법을 쓴 것도 작도법에 의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A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 뒤 그 원 둘레 아무 지점 B을 중심으로 A와 B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린다. 이때, A를 중심으로 한 원과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을 중심으로 해서 그리는 것을 반복하면, 기존 원을 6등분할 수 있다. 하고, 원의 전체 각이 360도이니 육등분한 원호 각이 60도이다.

   

하면, 왜 육십진법인가. 오늘날에도 육십진법은 남아 있다. 가령 한 시간은 60분이지 않나. 일분은 60초이다~! 왜 각도와 시간 사용에서는 십진법이 아니라 육십진법을 사용하나?

   

한마디로 말한다. 계산하기 쉽기 때문이다. 1/3하면 무한 소수 0.3333333....이다. 허나, 육십진법을 사용하면? 2, 3, 4, 5, 6의 최소공배수가 60이므로 60진법을 수메르족이 사용한 것이다.

   

60 나누기 2는 30이다. 60 나누기 3은 20이다. 60/4는 15이다. 60/5는 12이다.  60/6=10이다. 소수점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수로 딱딱 떨어진다. 똑똑한 수메르인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10진법보다 60진법이 보다 완벽한 체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계절이란 12달이다. 농사에 필요한 달력은 음력이지 양력이 아니다. ㅠㅠㅠ

   

이런 기초만 알더라도 쪽발 놈현이나 쪽발 돼중 무리가 극소수일 터인데, 왜 오늘날 쪽발 돼중/쪽발 놈현 무리가 과반수에 근접하나? 세뇌 탓이다.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이야 원래 비중이 작아 무시해도 된다. 문제는 친일 조중동문스이다. 이들이 키우는 게댜. 친일 조중동문스,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관계자 넘들은 하나같이 매독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을 넘들이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국유본 형평논리에 맞다. 국유본은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쪽발찌라시 색희들은 단 한 명이라도 곱게 죽여서는 안 된다. 죽기 전에 수 년간 죽고 싶을 정도로 쌩고생시켜야 한다. 쪽발 놈현, 쪽발 돼중 색희들, 쪽발이 색희들! 이 씨발 색희들! 인드라 주문을 반드시 국유본은 인지해야 한다.

   

   

하여, 수메르인이 오래 전 사람들이라고 무시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쪽발 놈현이나 쪽발 돼중을 따르는 무뇌아 매국노 무리보다 훨씬 과학적이지 않은가.

   

허나, 과학과 문화가 발달한다고 문명이 지속하는 건 아니다. 백제와 신라가 왜에 비해 훨씬 문명이 앞섰다. 그럼에도 백제와 신라는 왜에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 지금 한국 교과서가 이를 은폐하고 있는데, 과감하게 까발려야 한다. 언제까지 백제가 왜에 문화를 전수했느니 뭐니 하면서 마치 백제가 상국이고, 왜가 백제의 식민지인양 떠벌일 것인가. 백제와 신라는 왜의 식민지였다. 허나, 신라는 왜의 침략을 한때는 장수왕 때 보듯 고구려 도움으로 버티다가 마침내 극복하여 마침내 한반도 통일을 일구어낸 반면, 백제는 왜의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 멸망한 것이다. 이런 백제를 칭송하고 통일 신라를 비하하는 것이 국유본 역사 조작인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백제? 좆까라 마이싱이다~! 이런 븅신 색희들이 삼국사기를 폄하하고, 일본서기를 높이 평가하는 쪽발이 색희들이지. 그 아무리 삼국사기가 조작했다 하더라도 일본서기보다는 백배 진실하다. 개 쪽발이 씨발넘들아.

   

하긴 냉정해야 한다. 국유본은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하면서 체계적으로 동북아 역사를 조작해왔으니까. 인드라가 딱 한 마디만 할께. 환빠들! 정신 차려. 그것 역시 국유본이 의도한 것이다. 한단고기, 천부경. 인드라가 보기에 모두 국유본의 조작이다. 반면, 그 반대로 환빠 비판하는 색희들도 국유본의 똘마니들이고, 그넘들 이론도 죄다 국유본 이론을 카피한 거야. 이 개색희들, 환빠 앞에서는 이론질하지만, 인드라 앞에서는 깨갱한다. ㅎㅎㅎ. 특히 하플로 타입 지 좃대로 해석하는 꼴이란^^! 환빠도 국유본, 환빠 비판하는 환까도 국유본인 거야. 우리는 환빠와 환까 사이에서 냉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샜다. 하여간, 수준 높은 수메르족을 정복한 이후 셈족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수메르 문명을 받아들였지만,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계승과 발전.

   

이때, 계승 발전이란 해답을 던져 주었던 것이 아브라함이 아니었을까?

   

   

2. 물의 신, 수메르 남무와 페니키아 아세라, 그리고 그리스 가이아

   

대모신이라고 있다. 한마디로 엄마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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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마고라고 한다.

   

"마고신화는 우리민족의 생성 신화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단군 한웅 한인 이전의 이야기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단군신화를 역사적 실체로 보면서, 그 이전에 홍수신화나 마고신화 따위가 생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신라때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를 보면,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麻姑城)의 여신(女神)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 백소, 청궁, 흑소씨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인구 증가로 마고성의 식량인 지유(地乳)가 부족해지자 백소씨 일족인 지소씨가 지유 대신 포도를 먹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다. 마고성 안에서 지유만 마실 때는 무한한 수명을 가졌던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된 후 천성을 잃고 수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낀 황궁씨가 마고 앞에 복본(復本·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사람들을 4파로 나눠 성을 떠난다.

   

그중 황궁씨는 일행을 이끌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가서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된다. 황궁씨의 자손은 유인, 유호,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진다.

   

또 마고 할머니 신화도 전해져 오는데, 마고할머니는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거인(巨人)'으로, 중국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반고'에 해당한다. 마고할머니는 한라산을 베고 누워 한다리는 서해에, 또 한다리는 동해에 두고 손으로 땅을 훑어 산과 강을 만든었다고 한다."

   

허나, 이 마고란 표현조차 과연 동양에서 유래하였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카르타고를 다스리던 가문이 마고 가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유본이 동양 역사를 조작하기 위해 만든 것이 마고 신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허나, 이것은 의혹만으로 남을 따름이다. 좀 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각설하고, 엄마신 남무는 물의 신이었다. 태초에는 물이었다. 수메르 신화를 봐도 지구는 물이다. 인간도 구성 성분이 78% 물이다. 해서, 그 아무리 마초 셈족이라도 엄마신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해서, 등장한 신이 아세라이다.

   

이때, 아세라는 성소인가, 신인가.

   

http://minjungtheology.or.kr/7

   

http://im1155.blog.me/40041775867

   

http://blog.naver.com/dfgiyo/140051277028

   

http://khi4040.blog.me/20036411502

   

인드라 추정은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초기 가나안 이주민들은 엄마신 남무를 존숭했을 것이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신 남무 영향력이 약화하였을 것이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폭풍처럼 강간해서 정액을 비처럼 뿌리는 신, 엔릴~! 혹은 인드라 ㅍㅍㅍ (인드라도 인도와 동남아에서는 폭풍과 번개와 비의 신이다. 제석천 단군, 인드라 신을 영접하기 위해 아시아 여성들이 홀딱 벗는 예식을 한다고 한다. )

   

예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핵심은 남편과 아내가 아니다. 엄마와 아들이다. 모계 사회에서는 엄마가 중심이다. 허나, 부계 사회에서는 아들이다. 당장 역사 시대로 보면, 엄마가 정권 잡고 휘두르는 때와 아들이 커서 할 말하는 때가 있다. 진시황제가 대표적인 예다.

   

이를 그리스 시대를 빗대 프로이트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만들어냈다. 허나, 유태인 프로이트가 존경한 인물은 혁명이 성공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유태인 입국이었던 크롬웰과 카르타고/페니키아/수메르인 한니발이다.

   

한마디로 외디푸스 컴플렉스란 수메르족 엄마신을 극복한 셈족의 신화를 찬미하기 위한 교묘한 국유본의 장치인 것이다. 해서, 이 엄마신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섹스, 난교 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 간의 섹스. 최소한 동격을 이룰 수 있다.

   

해서, 마초 셈족 시기부터 아들이 엄마를 범해서 부부가 되는 신화가 홍수처럼 나타난 것이다.

   

엄마는 아들을 늘 자기 밑으로 본다. 허나, 아들이 엄마를 범한 뒤라면 엄마는 불가항력적으로 아들을 남편과 동등하게 대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수메르 이난나와 바빌론 이슈타르와 앗시리아 세미라미스

   

엔릴이 처음부터 세상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엔릴은 젊은 신이었다. 반면, 아누는 노회한 신이었다. 아누가 왕이라면, 엔릴은 왕자인 게다. 혹은 아누가 전 왕조라면 엔릴은 후임 왕조인 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 년이 흐르면 늘 발생하는 일이 왕조 교체이다. 이때, 환영받는 신이 아누일까, 아니면 엔릴일까.

   

하여, 젊은 신, 엔릴은 점차 권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때, 권력을 확장한다는 건, 신의 상징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가령 달의 신, 난나가 했던 역할인 비의 신을 대신한다는 것. 그만큼 풍요의 신을 대체한다는 것.

   

이때, 기존의 신, 난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호모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오늘날 중동 세계에서 남성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혐의는 동성애이기도 하다. 이렇듯 난나를 중성 신으로 만들다가 어느 순간 여성 신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 신이 난나의 딸, 이난나인 것이다.

   

하면, 이난나는 어떤 신인가.

   

"이슈타르(Ishtar, IŠTAR

   

나꼼수 협찬 에스티 로더는 뉴라이트파 국유본론 2011

2011/10/28 02:46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421562

   

   

   

나꼼수 협찬 에스티 로더는 뉴라이트파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8

   

예수의 돌 :

   

인드라님, 안녕하신지요. 요즈음 나꼼수가 인기인데, 유일하게 협찬한 - 직접은 아니고 '쪽발찌라시' 시사IN에 협찬 - 회사가 Origins라는 스킨케어회사더군요. 알아보니 유명한 에스티 로더 화장품의 자회사(브랜드)인데, 이건 어느파 소속일까요? 결과적으로 나꼼수는 어느 쪽 파벌에서 미는 오메가(or 알파)프로젝트인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인드라 :

   

에스티 로더는 뉴라이트파이다.

   

"에스티로더 기업은 1946년 조셉 로더(Joseph Lauder)와 그의 아내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가 뉴욕에서 화장품을 생산하면서 설립되었다. 처음 초기에는 슈퍼리치 크림, 크림팩, 클린징오일과 스킨로션의 4종 만을 생산하였고, 2년 후에는 뉴욕의 삭스 피프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백화점에 매장을 오픈 하였다. 이후 15년간 사업영역을 확대해가며 미국에서 제품을 꾸준히 판매하였다.  

   

1960년 전세계적으로 판매망을 확대하였으며, 런던 해롯백화점에 처음으로 매장을 오픈하였다. 그 다음해는 홍콩에 사무실을 열었으며, 1964년 남성을 위한 향수와 그루밍(grooming)제품을 생산하는 아라미스회사(Aramis Inc)를 설립하였다. 1967년에는 경영재무분야 편집장들이 지정한 최우수 여성기업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1968년 클리니크(Clinique) 연구소를 설립하고, 피부과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고, 알러지 테스트 및 무향의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하였다. 또한, 에스티로더의 클리니크 브랜드는 남성을 위한 '세컨드라인(second line )을 소개한 최초 여성화장품으로, 1976년에 "남성을 위한 스킨서플라이즈(Skin Supplies)"라는 독립라인을 오픈 하였다.

   

1981년 구소련에서까지 제품이 판매되면서 세계적으로 약진하였다. 현재에도 꾸준히 개별 소매점 뿐만 아니라 전세계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003년에는 직원수가 2만 여명에 달했고, 판매액은 50억 달러에 이르렀다. 2004년 2월 십대를 타켓으로 출시되었던 '제인(Jane)'이 매각되었고, 2006년 4월 1999년에 매입했던 스틸라(Stila) 브랜드를 매각했다. 로더가(家)가 주식의 70%를 보유할 정도로 로더가에 의해 기업이 경영되고 있으며, 현재 CEO는 로더의 손자인 윌리엄 P.로더(William P. Lauder)이다. 매년 유방암 의식향상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

[출처] 에스티 로더 [Estée Lauder Companies ] | 네이버 백과사전

   

에스티 로더 [Estee Lauder, 1908.7.1~2004.4.24]

  

요약

미국의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의 창업주로 '세계 화장품 업계의 거장', '세일즈의 귀재'로 불린다.

본명

멘처(Josephine Esther Mentzer)

별칭

세계 화장품 업계의 거장

국적

미국

활동분야

경제(화장품업)

출생지

뉴욕 퀸스지구

 

   

본문

본명은 조지핀 에스터 멘처(Josephine Esther Mentzer)이다. 1908년 8월 1일 뉴욕 퀸스지구에서 이민자 부모인 체코계(系)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았던 로더는 일찍이 화학자인 삼촌 쇼츠(John Shotz)가 만든 미용크림을 미용실 등에 팔러 다니면서 화장품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자신이 직접 만든 화장품을 미용실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며 고객을 확보한 뒤, 화장품이 인기를 끌자 1946년 남편 조지프(Joseph) 로더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를 창업하였다. 1948년부터는 뉴욕의 백화점에 제품을 납품해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굳혔고, 업계 최초로 무료 샘플과 고급 매장 전략으로 고객을 확보하면서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로 성장시켰다.

   

에스티 로더사(社)는 2004년 현재 종업원 2만 명에 10여 개의 화장품·향수 회사를 거느린 세계 최대의 화장품 그룹으로, 매년 120여 개국에 1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만도 47억 달러에 이른다.

   

1982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다가 19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8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천재 경영인 2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에스터 로더사는 격주간 종합경제지 《포춘 Fortune》이 2003년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349위에 올랐다. '세계 화장품 업계의 거장', '세일즈의 귀재'로 불린다.

[출처] 에스티 로더 [Estee Lauder ] | 네이버 백과사전

   

에스티 로더는 조지 소로스처럼 헝가리계 유태인이다. 유태인의 미국 집단 이주는 다섯 번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건국 이전 시기로 이때  루즈벨트 가문이 입성하여 뉴욕주에서 영주가 된다. 이 시기 이주한 유태인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들로만 구성되어 오늘날 국유본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정착한 유태인은 그 인구 규모가 매우 적다.

   

두 번째는 1830년대부터 남북전쟁까지 시기까지이다. 이 시기는 서유럽에서 혁명이 실패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던 시기여서 서유럽인이 많이 이주하였는데, 이때 유태인도 일부 들어왔다.  이 시기에도 유태인 유입이 크지 않았다.

   

세 번째는 1880년대부터 일차대전 전까지이다. 이 시기에 오늘날 미국 유태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유럽 유태인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흔히 말하는, 카자르/하자르 유태인이 이들이다. 오늘날 뉴욕에서 유태인 명성에 걸맞지 않게 택시 운전을 하며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유태인이 있다면 십중팔구 카자르/하자르 유태인, 혹은 동유럽계 유태인이다.

   

네 번째는 히틀러 정권 시기부터 이스라엘 독립 때까지이다. 다섯 번째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소련 붕괴로 인해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에스티 로더는 세 번째 시기에 이민을 온 유태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면, 에스티 로더는 왜 뉴라이트파인가.

   

http://piafpiaf.blog.me/120002791692

   

에스티 로더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레너드 로더와 로널드 로더이다.

   

이중 중요 인물이 둘째 로널드 로더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3322049

   

http://blog.naver.com/pandacho/15002794904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339545

   

로널드 로더가 크림트 그림을 샀다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헌데, 재벌이 그림을 사는 건, 상속과 관련이 있다. 미술시장 인플레가 극심한 비밀은 바로 국제유태자본 귀족 가문들의 비밀스런 재산 상속에 있다. 이외에도 쪽발 놈현 재단처럼 재단 기부를 통한  상속 등이 있다. 한국의 더럽고, 추잡한,  쪽발 돼중, 쪽발 놈현, 재벌이 독창적으로 재산 상속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국유본에게 배운 것이다.

   

이런 로널드 로더와 수십년 지기가 있다. 누구?

   

베냐민 네타냐후 (Benjamin Netanyahu) 이다. 그는 누구인가?

   

"베냐민 "비비" 네타냐후(히브리어: בִּנְיָמִין "ביבי" נְתַנְיָהוּ‎, 1949년 10월 21일 ~ )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다. 리쿠드 당 소속으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제9대 총리를 지냈으며 2009년에 다시 총리에 임명되어 현직 총리로 재직중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인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대학 교수인 부친을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6년간 군복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근무하였다.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1984년 ~ 1988년UN 대사를 지냈다. 198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츠하크 샤미르 정권에서 각료로 재직하였다. 1993년 리쿠드 당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1996년 총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총선에서는 동시에 총리를 별도로 직선으로 뽑도록 되어 있었다. 총선 직전 팔레스타인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실시할 것을 내비치며,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당시 총리를 공격하였고, 결국 그는 페레스를 1% 포인트 차로 제치고 총리로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였고, 또한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다. 총리로 재직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야세르 아라파트와 대립하기도 했으나, 미국과 요르단의 중재로 와이리버 협정을 체결하여 영토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 체결은 그를 지지하던 우파의 신임을 잃게 된 결과를 초래했고, 개인적인 문제와 부패 스캔들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1999년 총리 선거에서 노동당에후드 바라크에게 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그는 리쿠드 당의 당수직도 내놓고 잠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 후 아리엘 샤론 정권의 각료로 참여하게 되어, 2002년 ~ 2003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였고, 2003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아리엘 샤론이 맡고 있던 리쿠드 당 당수직도 다시 노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8월 9일 샤론 총리의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에 반대하며 재무장관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샤론 총리가 리쿠드 당을 탈당하고 카디마 당을 창당하자 그 해 12월 리쿠드 당 당수직 선거에서 다시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2006년 총선에 출마하였다. 총선 결과 리쿠드 당은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카디마 당에 빼앗겼으며, 총리는 카디마 당의 에후드 올메르트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여 자신이 다시 총리가 되면 이란 핵시설에 선제 공격을 하겠다고 발언하는 등[1] 초강경 우파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 후 이스라엘 정국은 경제위기, 집권당인 카디마 당의 부패 스캔들, 가자 지구 문제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비리에 연루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이후 새 정부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2009년 2월,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가자 사태가 쟁점이 된 총선 기간 중에도 강경 우파 행보를 이어갔으며, 이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에 카디마 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작용하여 그와 리쿠드 당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총선 결과 그가 이끄는 리쿠드 당은 카디마 당에 1석 차로 패했으나, 그는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등과 연정을 구성하여 3월 31일 총리 자리에 올랐다."

http://ko.wikipedia.org/wiki/%EB%B2%A0%EB%83%90%EB%AF%BC_%EB%84%A4%ED%83%80%EB%83%90%ED%9B%84

   

"리쿠르당은 데이비드 록펠러 뉴라이트 카터레이건 정당입니다. 카디마당은 제이 록펠러 CGI 오바마 정당입니다. 노동당은 로스차일드 빌더버그 네오콘부시 정당입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6061510

   

네타냐후는 현 이스라엘 총리이다. 동시에 로널드 로더의 수십년 지기이기도 하다. 로널드 로더는 세계 유대인 회의 의장이자  세계유태인회의 산하 미술품 회수위원회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클림트도 유태인, 클림트 그림 속에 있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은 유태인 제당업자의 부인. 해서, 로널드 로더가 유태인 미술품 회수 차원에서 나선 것이다. 속으로는 재산 상속이겠지만.

   

로널드 로더는 오바마 정부 때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오바마 이스라엘 조치에 격분하여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이 로널드 로더였다. 허나, 어느 순간 오바마 정부를 옹호하고 나선다. 이것이 뉴라이트의 전형적 모습이다.

   

나꼼수나 쪽발 찌라시 시사인이 뉴라이트파인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 허나, 뉴라이트 네이버가 나꼼수를 여러 각도에서 키우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주부나 싱글 검색에서 자주 나꼼수를 노출시키는 것은 뉴라이트 네이버의 꼼수가 아닐까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다. 또한 쪽발 찌라시 시사인이 삼류 찌라시임에도 뉴라이트 네이버에 배치한 것만 봐도 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뉴라이트 네이버는 보수우파라고 해도 뉴라이트 계열인 데일리안이나 뉴데일리를 취급하지, 독립신문이나 빅뉴스를 취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진보좌파라고 해도 뉴라이트 네이버는 뉴라이트 언론만 주로 취급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잘 나가는 언론이면 뉴라이트가 아니라도 배치하지만^^!

   

무엇보다 나꼼수를 키우기 위해 뉴라이트 홍준표가 나선 것을 유념해야 한다. 처음에는 박원순 까는 듯싶다 이내 본색 드러내서 일억 원 피부샵 터뜨린 것만 봐도, 또한 골드만파 유시민을 비판했던 무뇌아 쪽발노빠 정봉주가 나꼼수 뒷배경이라는 데에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위한 일회용 뉴라이트 온라인 조직이었지 않나 싶다. 일억 피부샵 허위사실 유포로 주부층들 상당수가 어지간하면 나경원 찍으려고 했는데 깬다 싶어 기권하거나 박원순 찍었다는 이야기를 나타샤에게 직접 들었다.  나타샤 말로는 동네 아줌마들이 죄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란 이야기다 ㅋㅋㅋ. 이거 주장한 의사가 거짓이 모두 탄로나자 깨갱했는데, 그럼 뭐하냐? 선거 끝났는데~!

   

사실 인드라는 고기준에 딱히 반감이 없다. 고기준이가 인드라 글 많이 참고하고 읽으면서 딴지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디시갤에게 물먹으면서 권토중래한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좀 들었는데, 많이 타락한 것 같다. 돈 맛을 알면 인간이란 타락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인드라는 고기준을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 인드라는 고기준처럼 돈 벌 생각이 없기에. 고기준이 경쟁자는 쭝권이인데. 둘 다 많이 타락해서 둘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 같다. 고기준이 쪽발 놈현 시장을 독점하자 이에 불만을 느낀 기득권자, 쭝권이가 지랄하는 양상인데. 솔직하게 말한다면, 인간 말종들 싸움이어서 관심이 없다.

   

쪽발 놈현파 애들은 하나같이 다 인간성이 쓰레기인지, 오프라인에서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뉴라이트가 일처리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사냥개들을 처리하는 시간인 것 같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선거는 국유본 뉴라이트와 인드라의 승리 국유본론 2011

2011/10/27 01:55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333479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선거는 국유본 뉴라이트와 인드라의 승리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7

   

1. 10월 보선이 25일이나 27일이었다면 모르되, 10월 26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날짜는 국유본이 정하는 것이다.

   

2. 재보선이 지나치게 많다. 세금 낭비다.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 법을 고쳐서 앞으로 선거에서 당선자 과실로 공석이 된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자리는 다음 선거 때까지 공석으로 남겨둔다. 즉, 재보선을 없애는 것이다. 국유본이 재보선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론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 효리를 내세우면 득표율이 0.1% 상승 이런 것을 계산한다는 것이다. 해서, 국유본이 재보선을 없애자하면 결사 반대할 것이어서 실현가능성은 없다. 다만, 국유본이 아무리 반대한다 하더라도 주장할 건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이 없으면 의회 일이나 행정 일이 제대로 되겠냐 싶지만, 지금 공석이 된 서울시를 봐도 알 수 있다. 별 문제가 없다. 또한 벨기에에서는 오랜 기간 무정부 상태이다.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새로운 실험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3. 어떤 이는 이토록 비리가 많은데 뭘 믿고 뉴라이트 박원순이 나왔나, 폭로가 될 지 몰랐냐 하는 분이 있다. 이에 대해 말한다. 톰 카스트로 식 선거 방식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톰 카스트로라는 사기꾼이 가짜 아들 행세를 해서 유산 상속을 받으려 할 때 톰 카스트로가 어떻게 했냐면 가톨릭 교회에 편지를 썼다. 무슨 편지? 톰 카스트로가 사기꾼이라는 편지를 쓴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유산 상속을 받으려면 오히려 자신이 사기꾼임을 숨겨야 하는데, 오히려 드러낸다? 왜일까? 답은 당대 영국 종교 대립에 있었다. 톰 카스트로의 편지를 받은 가톨릭 교회 신부는 폭로 글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결과는? 당시 영국은 국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가 주류여서 가톨릭 신부에 적대적이었다. 가톨릭 신부가 톰 카스트로를 집중 공격하니 다수파 기독교도는 톰 카스트로를 자기 편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해서, 이후, 어떤 이들이 톰 카스트로더러 가짜 아들이라고 주장해도 당시 영국사회 주류는 톰 카스트로를 감쌌던 것이다. 한마디로 사기꾼은 진영 논리를 잘 이용해먹은 것이다.

   

바로 이 방식을 이번 서울시장에서 국유본이 쓴 것이다. 성희롱범 뉴라이트 참여연대 강용석이 뉴라이트 박원순을 고발하게 한 것이다. 하면, 이 경우만 그랬나? 아니다. 뉴라이트 신지호를 통해 뉴라이트 박원순 집안이 쪽발이 집안일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게 만들었다.

   

인드라가 만일 한나라당 선대위를 맡았다면 무엇을 공격했을까. 우상호를 공격했을 것이다. 우상호가 광주 새천년나이트홀에서 벌인 행각을 소상하게 밝혀서 이슈화시켰다면 여성표 다 날아갔다. 이런 우상호를 대변인으로 뽑은 뉴라이트 박원순의 여성관을 묻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만, 이때 주체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어서는 맞불 작전으로 무효화하니 여성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다. 껄껄껄~!

   

4. 허나, 사기꾼 행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거 국면에서는 득표에 도움이 되지만, 선거 국면이 끝나면 도리어 족쇄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령 학력 문제이다. 당당하게 왜 단국대 4년 다닌 것을 말하지 않고, 서울대 법대를 그토록 강조했는가 비판할 수 있다. 허나,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뉴라이트 박원순에게 득이 되는 비판이다. 왜?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대학 진학률이 매우 낮았다. 10% 정도나 될까. 나머지들은 먹고 사느라고 정신없었다. 십대 때 무작정 상경한 분들이 대다수다. 해서, 피땀흘려 오늘날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어르신들은 청년들보다 훨씬 똑똑한 머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또, 청년층은 어떠한가. 청년들 가운데서도 공부를 하고 싶지만, 집안 형편상 대학에 못 간 이들도 많았다. 가령 나타샤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대학을 다녔다. 하고, 우리 주변에 방통대이니, 디지털대학이니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다 학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학력이 있다고 취직이 더 잘 되는 게 아니다. 단지 남들에게 꿀리기 싫을 따름이다. 한마디로 간판 하나 따내고 싶은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를 건들여 주었기에 뉴라이트 박원순 학력 문제는 오히려 뉴라이트 박원순에게 득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허나, 이것이 선거 국면에서는 유리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어떨까?

   

거짓말 여부가 부각할 것이다. 거짓말한 정황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인 게다. 다시 말하자면, 행정가로서의 자질 문제로 부각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선거 토론회에서 여실히 나타난 것이 아닌가. 선거 국면에서 시민들이 자질이 좋다고 해서 뽑아주나? 여러분은 착각하고 있다. 자질 운운하는 것은 모두 국유본 언론이 제시한 것이다. 여러분이 실제로 그들 자질을 얼마나 아나? 모른다. 오직 국유본 언론이 제공한 것만 안다. 여러분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그처럼 국유본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 선거 국면에서는 조용했지만, 서울시장이 된 후부터는 이명박을 대하듯 혹독하게 뉴라이트 박원순을 타격할 것이다. 물론 역할 분담이 있을 것이다. 같은 국유본 언론이라도 친일 조중동은 뉴라이트 박원순을 선거 국면 때 호의적인 시선에서 입장을 바꾸어 이명박 대하듯 비판적인 시선을 보낼 것이고, 쪽발찌라시 국유본 언론 한경오프엠은 박원순 방어에 날밤을 깔 것이다.

   

5. 뉴라이트 안철수 바람은 크지 않았다. 국유본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헛 것이다. 한국노총이 조합원들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뉴라이트 안철수 바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총선 때 뉴라이트 안철수가 총대를 매고 나오지 않는다면 어렵다고 본다. 다만, 노비네 박근혜나 뉴라이트 안철수나 국유본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헛것이다.

   

6. 서울시장도 비한나라당, 서울시의회도 비한나라당이다. 하면, 서울 국회의원도 다수파가 비한나라당, 대통령도 비한나라당이면 권력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셈이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국유본이 지시한 탓도 있지만, 한나라당 내부 뉴라이트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지는 선거를 했다고 본다. 가령 정몽준 직계 뉴라이트 홍정욱은 막판에 선관위를 탓하면서 투표 독려를 해서 언론을 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또한 뉴라이트 사기꾼 홍준표는 뉴라이트 박원순더러 고향 2년 후배라는 식으로 말한다~!

   

뉴라이트 박원순은 최근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적도 있다.

   

아무튼, 지자체장과 지자제 의원이 모두 비한나라당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오히려 최소한 서울에서는 '견제론'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총선에서도 견제론을 주장할 것이고, 총선에서 설사 견제론이 먹히지 않더라도 대선 때 더더욱 견제론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서울시장 일년 정도 한 시점이면, 뉴라이트 박원순 실체가 드러나니 금상첨화인 게다.

   

7.  중요한 건, 한나라당이니 쪽발 민주당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한나라당이 변화해야 한다. 대안은 오직 하나. 김관진처럼 능력 있고 청렴한 호남 출신 인물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와서 압도적인 표차로 영호남표를 골고루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호남인도 쪽발 돼중을 잊을 수 있을 것이고, 영남인도 박정희와 함께 김관진 같은 인물을 칭송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나가 된다. 종교는 무종교가 좋다.

   

허나, 지금 국유본이 시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을 놔두고, 자꾸만 쪽발 민주당에서 영남 출신 사람을 뽑는 지랄을 하는데, 이럴수록 나라가 더 분열한다. 이런 시도는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뉴라이트 안철수 같은 애들은 그냥 하던 일 계속 했으면 싶다. 뭐, 그래봐야 국유본이 지시하면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오겠지만, 정치 나와봐야 나라 망치기만 할 것 같다.

   

 한나라당을 바꾸어야 한다. 보수우파가 바뀌어야 세상이 제대로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국유본이 후보를 내세워도 부모가 호남 출신인 사람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오세훈 부모가 호남인이라고 하고, 나경원 부모도 호남인이다. 한국에서 '나'씨이면 대표적인 호남 성씨가 아닌가. 나경원은 서울이지만. 이것이 문제인 게다. 이런 것으로는 호소력이 없다.

   

하면, 나경원은 뉴라이트인가. 아니다. 노비네파이다. 노비네 이회창 계다. 종교는 가톨릭이다. 즉, 노비네 가톨릭인 게다. 인드라가 강조했다. 지금 정치는 한나라당, 쪽발민주당부터 시작해서 거의 대부분 정당을 뉴라이트가 장악하고 있다고 말이다. 뉴라이트들이 낮에는 싸우지만, 밤에는 작당하고 있다고 말이다.

   

결국 노비네 나경원은 물먹은 것이다. 향후 김민석이나 정동영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이야기다. 홍준표가 겉으로는 도와주는 척해도 결국 뒤로는 호박씨 깐 것을 두고 두고 기억하길 바란다. 현존하는 정치 사기꾼 넘버원, 뉴라이트 홍준표를  믿는다는 건 그만큼 정치력이 없다는 게다. 그만큼 뉴라이트 홍준표가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껄껄껄!

   

8. 마지막으로 인드라는 세 가지 지점에서 승리했다.

   

하나, 투표를 하지 않아서 다수파에 속했다. 다만, 총선과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50%가 넘을 것이므로  투표를 신중하게 고려하겠다.  인드라 한 표가 당락을 결정한다는 생각 때문에 투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유본이 어차피 짜놓은 판이다. 이미 당선자는 선거 전에 결정된다. 50%가 넘을 것으로 예측하는 선거에서만 다수파이기 위해 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투표율 50%를 넘지 않는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둘, 국유본이 기획한 뉴라이트 박원순의 자뻑쇼 선거로 인해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뉴라이트 박원순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고발도 이미 몇 건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드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지인이 뉴라이트 박원순을 찍고 왔는데, 그가 과연 뉴라이트 박원순을 좋아해서 찍었을까? 그런 생각을 뉴라이트 박원순은 잘 해보아야 한다. 또한, 그간 뉴라이트 박원순이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인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뉴라이트 박원순이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에서 사실상 무일푼으로 일하던 이들이 느낄 심리적 박탈감을 과연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셋, 한국 시민단체 현황이 뉴라이트 박원순을 통해서 남김없이 까발려졌다. 론스타에서 돈 받았고, 도요타 재단에서 돈을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박원순을 지지하면 안 되는 단체와 개인들이 뉴라이트 박원순을 지지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진보연하던 자들의 정체가 홀라당 드러난 셈이다.

   

한국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는 셈이다.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는 셈이다.

   

존재하는 것은 국유본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보수우파의 본산이 아니라 실은 그저 국유본의 한 지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9. 이 글을 끝으로 뉴라이트 박원순을 앞으로 비난하지 않고자 한다. 오직 박원순의 긍정적인 면만 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원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서울시장, 잘 해봐라.

   

추신 : 맹박이나 원숭이나 인드라가 만든 용어인데 ㅋ. 인드라 글 처음 본 이들은 인드라를 이명박빠인 줄 착각하는 분도 많다. ㅎ. 지난 대선 때 지독하게 이명박 씹던 사람이 인드라인데. 하여간 형평성이 있으니 재임 때까지로 하자. 기본 마음이야 좋게 생각하겠지만, 평생 좋은 면만 말할 수는 없지. 나라 일 잘 하라는 의미이니까. 하여간, 잘 들 나라 좀 이끌어주소서. 국유본에게 임명받았으니 그 몫은 해줘야지요~!

   

아무튼, 국유본에게 퍼주어도 적당히 퍼주어라? 오케이?

   

또 하나. 배일도. 이 사람 왜 나왔나? 표 분산하려고? ㅎㅎㅎ. 이제껏 그런 생각이 많은 것 같은데. 아니다. 장세동 같은 사람이 왜 나오나. 이 모든 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국유본 기획인 게다. 선거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알려면 배일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배일도가 당선되려고 나왔겠니? 지금 선거 자금 때문에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박찬종도 그렇고 잘 만 살더라 ㅋ

   

   

국제유태자본과 서울시장, 오세훈과 박원순 국유본론 2011

2011/10/26 23:39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326109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시나리오대로 오세훈이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6539682

   

오세훈은 막판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듯 치킨을 먹으며 민생투어를 마쳤네요.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16854631

   

여기에 박근혜는 스탠퍼드를 언급하며 확실한 언질을 주더군요.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16901945

   

향후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시나요?...

   

해서, 오세훈은 선거에 시장직을 걸었다. 단지 쪽발 민주당 요구 때문일까. 아니다. 선빵 개념이다. 같은 일을 당해도 선빵을 날리면, 악재가 호재가 된다. 이번 오세훈 경우가 그렇다. 만일 오세훈이 시장직을 걸지 않았다면 이번 건은 오세훈 정치 생명을 끝장나게 할 수 있었다. 반면 오세훈이 선빵을 날린 덕에 이는 중단기적으로 오세훈에게 시련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세훈 인지도도 높이고 지지율도 올릴 수 있는 천금의 기회인 것이다. 여기서 스탠퍼드 대학으로 유학가서 대통력학 공부한다면 차기는 몰라도 차차기에는 굉장히 무서운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6979078

   

오세훈 前 서울시장 스탠퍼드大로 내년 연수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0734192

   

   

"이 대목에서 서울시장 판세 등에 궁금한 분들에게 답변드립니다.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딴 허접한 일에 왜 관심을 기울이나요. 어차피 골룸빡이 국유본에게 후장을 대준 게 이번 선거인데 무엇이 궁금합니까. 혹 조금이라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없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그러자면, 인식 혁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골룸빡이 안 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인터넷에서 설명하세요. 그저 인드라에게 기대하는 정도라면 국유본은 코웃음치며 골룸빡을 서울시장으로 만들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투표권이 원천봉쇄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정녕 선거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인드라에게 의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보다 여러분 스스로 골룸빡이 서울시장이 되면 국유본에게 불리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면, 국유본은 골룸빡 서울시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여러분 기획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하면, 왜 인드라는 그와 같은 기획을 하지 않느냐구요? 말했잖아요. 인드라는 국유본에게 제안했어요. 김관진 국방장관을 내세운다면, 틀림없이 서울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유본이 보기에 인드라 제안이 비합리적이라고 보았나 봅니다. 해서, 이와 같은 제안을 국유본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인드라는 침묵할 수밖에요. 대신 국유본은 인드라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 방미에 김관진을 데려가는 예외적인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김관진이 그렇다면 차기나 차차기 대통령이 될까요~! 알 수 없습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408792

   

"잘  들어라. 박골룸. 니가 아무리 국유본 빽 믿고 서울시장 후보까지 나온다고 하더라도 또 빽으로 서울시장 당선되더라도 너 같은 색희를 난 절대로 서울시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국유본에게 경고한다. 박골룸 같은 넘을 서울시장을 시킨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박골룸, 니가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은 물론 친일 조중동에도 이런 기사 못 나가게 막는 것을 보면, 니 힘만으로는 아닐 것이고, 니 뒤에 국유본 빽이 있다는 것인데, 얼굴 뻔뻔하게 겉다르고 속다른 짓거리를 하는 것 보니 니 애비도 쪽발이냐?"

http://blog.naver.com/miavenus/70118868282

   

"박원순을 비판하는 것이, 한나라당 정권 유지 차원이면 곤란하다. 만일 그 정도라면, 인드라는 차라리 침묵하겠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해서다. 사익을 전혀 무시할 수 없지만, 공익과 충돌한다면, 최선이 윈윈이되, 아니라면 공익을 택해야 한다.  박원순을 비판하는 것은, 한국 시민운동의 종말을 알리기 위함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8910689

   

   

"골룸빡 같이 더러운 씹색희가 서울시장이 된다 해도 인드라는 골룸빡 긍정적인 면만 보자고 마음 공부중인데요. "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694488

   

   

데이비드 록펠러 사후 국유본 권력 이동과 상하이방, M&A, 힐러리 클린턴 국유본론 2011

2011/10/26 02:25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253382

   

   

   

인드라는 허풍쟁이~!

   

데이비드 록펠러 사후 국유본 권력 이동과 상하이방, M&A, 힐러리 클린턴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6 

   

CIA:

   

본인은 음모론 저서에서가 아니라 M&A 사례들을 분석하다가 의도치 않게 두 파벌(록펠러계-로스차일드계)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음. 1차적으로 각 기업들의 지분소유관계 및 사업 제휴관계를 제일 우선시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추적, 2차적으로 출신학교(사립귀족학교-대학교) 성향 위주로 파벌과 인맥을 구분하고 있음. 이렇게 보았을 때 데이비드 록펠러계 인사들과 제이 록펠러계 인사들이 상당 부분 지속적으로 겹치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있음. 그래서 제이는 데이비드에게서 특정 컬러의 역할을 부여받은 하위동맹대상 정도로 파악중. 의견 부탁.

   

인드라 :

   

일차적으로 지분 소유 관계 및 사업 제휴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해서, 이 방면으로 보다 세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만, 지분 소유 관계에서 국유본끼리 각국에서 반독점법을 피하고자 교차 지분 소유하는 경우가 있는 등 지분 소유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면이 많다. 특히 오늘날 상당수 거대 기업들 개인 지분이 미미한 편이다. 압도적으로 지분을 차지하기 보다 자기 소유 지분을 줄이되, 우호 지분들을 많이 늘리는 것이 예다. 이를 보완하는 분석이 사업 제휴 관계 분석인데, 이 역시도 전략적인 동맹인지, 전술적인 제휴인지가 불분명한 면이 있다. 일단 이 대목에서 둘 이상의 연관 관계가 밝혀진다면 전술적인 제휴를 넘어선 것으로 잠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간 것이 국유본 소유 관계이다. 국유본은 인적 네트워크를 그물망처럼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 해서, 지분을 다수 보유한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데이비드 록펠러와 제이 록펠러 인사들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왜인가. 제이 록펠러가 록펠러 4세로 본격적으로 움직인 시기가 상원의원이 된 1985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역사적 기원을 오래 잡아도 고작 26년인 게다. 

   

냉정하게 보자면, 골드만파가 본격적으로 분파를 만든 시기를 따지면, 클린턴 정권 이후인 게다. 다시 말해, 노비네파 정권인 부시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 골드만파이다. 뉴라이트파 중에 노비네파 대응 방식에서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리가 되었던 게다. 예서, 공화당 뉴라이트파는 당연 온건파로 분류할 수 있다. 문제는 노예민주당에서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리가 된 것이다. 예서, 노예민주당 뉴라이트 온건파는 뉴라이트파로, 노예민주당 뉴라이트 강경파는 골드만파가 된 것이다.

   

해서, 님 분류상 겹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 예전에는 뉴라이트파였는데, 지금은 골드만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클린턴이 있다. 클린턴이 뉴라이트파였는데, 지금은 골드만파가 아니던가.

   

둘, 뉴라이트파인지, 골드만파인지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권력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왕과 왕자 사이에서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역사에서 얼마나 많았던가. 어느 한 편으로 확실히 서는 경우도 있겠지만, 중립적 태도를 지키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셋, 골드만파는 새롭게 분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만큼 세 분파 중 알려진 바가 없다. 해서, 지금까지 뉴라이트파인 줄 알았는데, 어느날 보니 골드만파로 나서는 인물이나 조직이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

   

M&A(인수합병)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와 유사하게 국유본 권력투쟁이 첨예화되었던 시기였다. 정치 부문과 기업 부문에서 총성없는 전쟁이 일어났다. 해서, 님의 분석 중 국유본을 만난 것이 우연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동시에 과거 인수합병 과정만을 살펴 본다면, 오늘날 국유본 분파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로스차일드 대 록펠러 구도로만 볼 우려도 있는 것이다.

   

CIA :

   

데이비드 사망시 제이와 상하이방이 연합하여 데이비드의 지분을 노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보게 됨. 후계구도와 관련한 정보가 있는지.

   

인드라 :

중국은 공산당 일당 체제이다. 허나, 내부를 보면, 두 개의 분파가 있다. 공청단과 상하이방이다. 일부 중국 정치 연구자들은 태자당을 내세워 3개 분파를 말하기도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17/2011101700218.html

   

허나, 인드라는 이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청단과 상하이방은 각각 명분이 있고, 지역적, 계급적 기반이 있고,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태자당이란 중국 언론에서조차 비판을 받을 만큼 이름부터 부정적인 의미인 데다 명분, 기반이 없다. 오직 하나 출세한 관료 자제라는 인맥 하나인데, 이것만으로 역사적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앞으로 중국에도 세 개 분파가 형성할 것이라고 보지만, 그것은 태자당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 대신 다당제를 도입하거나 하였을 때, 다당제에 찬성하거나 긍정적인 이들이 등장하여 공청단과 상하이방 양쪽 모두에게 대립하면서 등장할 것으로 본다. 공청단은 이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부정적일 것이다. 반면, 상하이방은 경제 부분에서의 개혁개방에는 찬성 정치 개혁에는 반대하는 당파와 정치 개혁에도 찬성하는 당파로 분리할 것이다.

   

해서, 공청단 = 노비네파, 상하이방 = 뉴라이트파, 다당제파 = 골드만파로 나뉠 것이다.

   

   

이때, 골드만파 지역 기반이 어떻게 되겠는가. 현재는 동남부 해안 지대를 모두 상하이방이 석권하고 있지만, 경제발전을 지속하면, 동남부 해안지대가 남북으로 갈라질 것으로 본다. 즉, 천안문 사태에 보다 강경한 홍콩 지역을 중심으로 한 광동성 인근과 상하이방으로 분리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골드만파 지역 기반은 홍콩을 중심으로 한 광동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명분은 조자양의 복권이 될 것이다. 예서, 대만까지 흡수통일한다면, 홍콩, 광동, 복건, 대만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골드만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인드라가 그간 숱하게 상하이방에 대해 말했지만, 다시 한번 상하이방에 대해 알아보자.

  

  

   

본문

1985년 상하이 시장, 1987년 상하이서기장 겸 중앙정치국 위원, 1989년 당 총서기를 거쳐 1990년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라 중국의 당과 정부의 전권을 완전히 장악한 장쩌민[江澤民]의 후원에 힘입어 중국의 실세를 차지하고 있는 상하이 출신의 인물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상하이는 장쩌민이 정치 기반을 다진 곳으로, 이후 상하이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 대대적으로 중앙 권부로 모여들었는데, 1991년 경제부총리를 거쳐 제5대 총리를 지낸 주룽지[朱鎔基]도 상하이 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 밖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웨이지엔싱[尉健行]·리란칭[李嵐淸], 중앙정치국 위원 딩관근[丁關根], 상무부총리 황쥐[黃菊],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우방궈[吳邦國], 외교부장 탕자쉬엔[唐家璇],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주임 정페이엔[曾培炎], 교육부장 천즈리[陳至立], 국가안전부장 쉬용웨[許永躍], 건설부장 위정셩[兪正聲]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상하이방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03년 현재까지 중국 정치의 실세로서 정치 이념보다는 경제에 중점을 두고 중국을 마치 상하이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대부분이 외국어에 능통해 외교협상능력이 뛰어나며, 실제로도 중국의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외교를 담당해 온 대표적인 지역 인맥이다. " [출처] 상하이방 [上海幇(상해방) ] | 네이버 백과사전

   

"상하이방(중국어: 上海, 병음: Shànghǎi Bāng)은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을 말한다.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진압하고 이를 지지했던 자오쯔양을 사임시킨 뒤 강경진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상하이 시장 장쩌민을 차기 후계자로 지명한다. 장쩌민은 상하이 시장 시절 같이 일했던 인물들을 대거 상경시키는데 이들이 상하이방이다. 전 국무원 총리 주룽지,현 중앙당교교장 쩡칭훙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장쩌민이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사임한 이 후 급격히 그 힘이 쇠퇴하였지만 아직도 중국 공산당 주요 요직에 배치되어 있으며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장쩌민의 최측근이었던 쩡칭훙은 후진타오에게 국가 주석을 내놓으라며 정면 도전을 하였고 장쩌민이 중심이 된 상하이방이 태자당과 손을 잡고 시진핑을 차기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이들의 파워를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하이방은 중국 최대의 도시이자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상하이 시를 기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상하이방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를 차차기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후진타오 주석이 중심이 된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은 리커창을 차기 국가주석으로 지원했으나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연합 전선에 밀려 국무원 총리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상하이방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점차 공청단의 파워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가 사실상 그들의 마지막 활동영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밖에 대표적 인물들은 우방궈, 자칭린, 류치, 저우융캉, 리창춘, 류윤산 등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83%81%ED%95%98%EC%9D%B4%EB%B0%A9

  

한마디로, 등소평 - 강택민 - 시진핑 라인이 상하이방인 게다. 예서, 상하이방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등소평만 이해해도 된다. 

   

해방 되고는 마오쩌둥 주석을 잊지 않고, 부자 돼서는 덩샤오핑에게 감사 드린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54

   

한마디로 해방하고서는 김구 선생에게 감사하고, 부자가 되어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것이다. 하고, 통일을 이룬 뒤에는 인드라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공청단이란?

   

http://blog.naver.com/yeesang_/130100606990

   

http://blog.naver.com/gguduk/120043759091

   

흥미롭게도 공청단은 모택동의 문화혁명기에는 홍위병에 밀려 활동이 정지당했다. 그러다가 1978년 제 10차 전국인민대표회의 때부터 활성화되었으니 국유본의 안배란 가히 놀랍기 그지 없다 하겠다. 이 시기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를 비유하면, 국유본이 한편으로는 4대강 사업을 통해 국유본이 기후무기를 동원하였는지 올해 유난히 홍수를 많이 일으켰음에도 홍수 예방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반면 의도적으로 낙동강에서 석면과 물고기떼 죽음을 CIA를 통해 일으켜서 헤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영남에서는 이명박을 더 존경하면 곤란하다는 의미이며, 그외의 지역에서는 이명박을 칭송해야 한다는 입장인 게다. 이런 것이 국유본 사업 방식인 게다.

   

이런 공청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호요방이다.

   

   

"중국의 정치가. 공산주의청년단 업무를 맡다 문화대혁명으로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가 해산되고 홍위병(紅衛兵)의 비난을 받고 실각되었다. 그 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복권됨에 따라 당 제11기 중앙위원,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당 중앙서기처 총서기 등을 거쳐 당 제11기 6회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에 선출되었다.

국적

중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중국 후난성[湖南省] 류양현[瀏陽縣]

   

본문

후난성[湖南省] 류양현[瀏陽縣] 출생. 1933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34년 장정(長征)에 참가하였다. 1945년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주임, 중앙군사위원회 총정치부 조직부장, 1949년 신민주주의청년단 중앙집행위원, 1956년 당 제8기 중앙위원을 거쳐 1957년 중국 민주주의청년단 중앙위원, 중앙 제1서기, 1964년 공산주의청년단 제9기 중앙상임위원 겸 제1서기 등으로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공산주의청년단 업무를 맡았다.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가 해산되고 홍위병(紅衛兵)의 비난을 받고 실각되었다. 그 후 1973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복권됨에 따라 다시 활약, 1975년 중국과학원 부비서장, 1976년 당 제11기 중앙위원, 당 중앙조직부장이 되었다. 1978년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그해 11월 당 제11기 3회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격되고 1979년 당 중앙비서장 겸 선전부장, 1980년 2월 당 제11기 5회 중전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당 중앙서기처 총서기로서 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1981년 6월 당 제11기 6회 중전회에서 문화대혁명에서의 마오쩌둥[毛澤東]의 오류를 비난하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에 선출되었다. 1982년 당 기구 개편으로 중앙서기처 총서기가 되었다. " [출처] 후야오방 [胡耀邦(호요방) ] | 네이버 백과사전

해서, 공청단이란 비록 모택동과 관련이 없더라도 모택동 - 호요방 - 후진타오 - 리커창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해서, 후일 골드만파 조자양파 홍콩광동파가 결성한다면, 그 계보는 장개석 - 조자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알고 보면, 장개석도 소련에서 공산주의 교육을 받던 인물이다. 본디, 국유본 기획 속에서는 장개석이 중국을 통치하기로 해서 소련 유학을 갔던 것인데, 한국 전쟁을 계획하다보니 장개석이 대만으로 물러났던 것이다.

   

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무엇이냐고. 티토라는 미래에서 온 인물이 만든 지도라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냐고 말이다.

   

미국이 분열하여 동부가 아시아 식민지가 된다는 발상과 같다.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16735

   

미국 분열 주장한 러시아 전직 KGB 요원. 이 사람은 일백프로 국유본 인물이라고 지난 인월리에서 인드라가 강조한 바 있다. 해서, 이 사람이 주장한 바는 역설적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이 분열한다, 하면 미국인 기분이 좋겠나. 안 좋다. 그처럼 중국이 분열한다, 이러면 중국인 감정이 좋겠나. 안 좋다. 바로 이런 것을 노린 것이다. 이는 미중 G2 구도를 위한 떡밥이다. 해서, 그자체 엉터리다 보면 된다.

   

허나, 바로 이런 엉터리임에도 이를 현실화하려는 이가 있으니 그가 누구인가. 인드라이다. (쯔압!)

   

일단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하기로 하자.

   

보다 중요한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데이비드 록펠러 사후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한 이후에 등장할 국유본 시나리오는 여럿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셋만 이야기하자.

   

하나, 제이 록펠러가 데이비드 록펠러가 정치적으로 하던 대로 행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넬슨 록펠러 사망 이후 노예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중심이동을 했다. 이에 따라 노예민주당 일부를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이건이었다. 사실 레이건은 열성 노예민주당원이었다.

   

이처럼 제이 록펠러가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뉴라이트 부문을 흡수하는 것이다.

   

허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비록 공화당으로 중심 이동을 했더라도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것이 아니다. 반면, 제이 록펠러는 현재 노예민주당 상원의원이다. 이런 제이 록펠러가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동한다?

   

논란을 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국유본 최고 강령인 '위선'을 위배하는 것이다. 인드라 생각에 이 시나리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 수준에 육박한다고 본다.

   

둘, 제이 록펠러가 노예민주당에서 정계은퇴하는 것이다.

   

제이 록펠러가 노예민주당 상원의원이라는 직함이 있는 한, 공화당 뉴라이트를 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화당 노비네파에게는 더더욱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이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은 제이 록펠러가 노예민주당적을 포기하는 것이다.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가 경제적으로 하는 것처럼 사실상 무게중심을 공화당과 노예민주당 중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하면, 공화당은 누가 맡을 것이며, 노예민주당은 누가 맡을 것인가.

   

공화당을 맡을 사람이 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52144882

   

스티븐 록펠러 주니어 5세손이다. 넬슨 록펠러의 손자이다. 오늘날 평창올림픽 주역이라고 인드라에게 평가받을만한 인물이다. 그라민은행, 혹은 미소은행의 창시자다. 또한 교육대통령이라 부를 만큼 교육문제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조계종을 통해 사대강 반대를 지시했다. 조계종도 뉴라이트 조계종이 있고, 노비네파 조계종이 있다. 사대강 반대하던 이전 조계종 지도부가 노비네파이고, 지금 조계종 지도부는 뉴라이트파이다. 평화재단 법륜도 뉴라이트이다.

   

현 시점 스티븐 록펠러 주니어는 5세가 아니라 5세손이다. 5세는 고유 명칭으로 록펠러 5세손 중 딱 한 명에게만 부여하는 이름이다. 로마 황제식 명칭이랄까. 아무튼 스티븐 록펠러가 5세손 중에는 가장 강력한 5세 후보이지만, 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하기 전이므로 5세손이다. 하여, 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한다면, 록펠러 가문은 5세를 지명해야 하는 것이다.

   

해서, 스티븐 록펠러 주니어가 공화당과 노비네파를 맡는다면, 제이 록펠러가 공화당 뉴라이트파와 노예민주당을 맡는 것이다.

   

문제는 골드만파가 뉴라이트파가 된다는 것이다. 예서, 그간 골드만파가 맡았던 진보좌파적인 부문을 과연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발생한다.

   

셋, 제이 록펠러가 독창적인 길을 가는 것이다.

   

제이 록펠러가 노예민주당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이전보다 더 정치적인 면에서 발언을 하지 않는다. 마치 월터 로스차일드처럼 의회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방침을 정하는 것이다. 또한 노예민주당적을 유지하면서 공화당 뉴라이트파가 제안한 법안에 가급적 찬성하는 것이다. 반대를 하지 않는다. 노예민주당이 낸 법안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발언을 하지 않는 대신 공화당 뉴라이트가 낸 법안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면 실제로 노예민주당적을 포기한 효과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화당과 노비네파를 스티븐 록펠러 주니어를 5세로 임명한 뒤 그에게 맡긴다. 허나, 공화당 뉴라이트파를 흡수한다.

   

다른 한편, 공백이 된 노예민주당 지분에는 자라나는 록펠러 6세손 중 하나를 발굴한다. 허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여, 이 시기까지 차선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끌어들인다. 그가 바로 빅터 로스차일드의 손자, 나다니엘 로스차일드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 금융자본이 지금보다 현격하게 축소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미국 금융 부문과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NWO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록펠러 가문 권력 재편을 위한 기획으로 이번 금융위기가 활용당하는 것일 수 있다.

   

현재까지 인드라 분석으로는, 세번째가 가장 유력한 가설이라고 본다.

   

아니, 이런 시나리오를 국유본이 작성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직 인드라 머릿 속에서만 나온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전제하고, 데이비드 록펠러 사망 후 제이 록펠러가 상하이방 지분을 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유본 내부 사정과 중국 사정을 겹쳤을 때, 세번째 시나리오로 세계를 구성한다면, 사태가 어느 쪽으로 흐르겠는가이다. (아! 씨부럴~ 이런 건 돈 받고 컨설팅해야 하는뎅~!)

   

허나, 무료다. 인드라 방침이다~! 껄껄껄^^! 어느 순간 유료가 될 지라도 결코 가난한 자에게는 장벽이 없을 것이다. 번개하면, 사업화하라는 말 간혹 듣는데, 인드라는 단호하다. 결코 가난한 자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인드라가 돈 벌려고 국유본론을 전개하나? 전혀 아니다. 소명이다. 인드라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국유본론이다.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 귀하게 쓸 것이다. 인류를 위해 쓸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 쓸 것이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하여간!!!

   

제이 록펠러는 상하이방을 지지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새로 로스차일드 가주가 된 나다니엘 로스차일드 계열이 과감하게 조자양 정신을 운운하며 나서면서 국유본 삼개 분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즉, 데이비드 록펠러 생전에 중국이 삼개분파로 분화한다면 다음과 같은 구도이다.

   

공청단 - 노비네파, 상하이방 - 뉴라이트파, 홍콩파 - 골드만파

   

허나, 데이비드 록펠러 사후에 중국이 삼개분파로 분화한다면 다음과 같다.

   

공청단 - 네오콘파, 상하이방 - 뉴라이트파, 홍콩파 - 로스차일드파

   

예서, 노비네파는 로스차일드 본가파와 국유본 귀족파가 분리하는 것이다.

   

하면,  이 구도는 언제까지 계속하는가.

   

제이 록펠러가 죽고, 록펠러 6세손이 록펠러 6세가 될 때이다. 이 시기, 인드라는 록펠러 세상에 위기가 오리라 보고 있다. 대략적으로 2070~2080년 이후이다. 하고, 이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록펠러 가문은 22세기에 몰락할 것이다. 해서, 국유본 권력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허나, 그 이후 세상이 과연 평등 평화 세상인지는 알 수 없다. 국유본 세상보다 더 후퇴하고 악랄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국유본이 망하는 건 필연이나, 그 이후 다가올 세상은 여전히 선택이다.

   

CIA :

   

얼마 전 럼스펠드인지 딕 체니인지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게 좋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왜 로스차일드가 제이 측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인지.

   

인드라 :

   

이 문제에 대하여 인드라가 시나리오를 쓴 바 있다.

   

"하면, 이번 노벨평화상 의의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오바마가 받아서 세계 만방에 지금은 제이파 세상임을 천명했다. 다음으로는 중국 인권운동가가 받아서 제이파는 향후 G2 미국과 중국 구도로 미국과 중국이 함께 번영하는 세계체제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고, 대선이 시작한 올해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지도자들이 상을 받았다. 무슨 의미인가. 제이파는 제이 록펠러가 총수이지만, 실세로 힐러리 클린턴이 떠오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서, 바이든 부통령 대신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부통령 체제가 차기 대선 구도임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나아가 오바마가 재임 중 암살당할 수도 있다. 혹은 복상사할 수 있다. 하면, 부통령이 불가피하게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858451

   

이에 대하여 국유본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힐러리 클린턴은 48시간을 중시하는 것같다.

   

힐러리 클린턴이 생포하거나 사살하거나하고 발언한 이후 카다피는 인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처럼 인드라가 힐러리 클린턴 향후 정치 일정을 요구하니 힐러리 클린턴이 48시간 이내에 답변을 하였다.

   

힐러리, 퇴임 후 사생활 즐기고파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1091064

   

이건 우연이다, 라고 할 분이 있을 것 같다.

   

하나 더 말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690932

   

인드라가 10월 8일에 월가 시위대 배후로 골드만파를 지목했다. 이후로 국유본 언론이 연이어 시위대 배후로 골드만파 지목하는 것 봐라~! 여기에 결정적인 대목이 무엇이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77&aid=0002444133

   

   

10월 10일자로 인드라 아이디어를 그대로 써먹었다.

   

48시간 이내다.

   

결론은 명확하다.

   

국유본은 인월리를 실시간 분석하여 써먹고 있는 셈이다.

   

정확히는 골드만파가 인월리에 가장 열성적이다.

   

문제는 현 국유본 권력을 쥔 세력이 골드만파이지만,

   

다른 국유본 분파에 비해 가장 열악하다.

   

해서, 이 난관을 벗어날 궁리가 가득하다.

   

   

하면, 이런 대목에서 인드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있다.

   

인드라는 분명하게 요구 조건을 밝힌 바 있다.

   

   

하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 사회복지와 경제발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 364억원과 세계여행 10년이다.

   

셋, 인류 혁명이다. 

   

세번째에 대해서는 인드라가 그간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으나, 상기한 두 조건이 충족하는 경우 제안할 것이다. 세번째 조건에 대해 요구한다면, 국유본 귀족들이 아무리 썰을 풀어도 인드라 이빨에 당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하겠다.

   

국유본이여!

   

인드라에게 올인해라!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 CIA와의 대화는 여기가 끝~! 

   

   

국제유태자본과 환율, 옥수수, 금과 은, 주가 전망 국유본론 2011

2011/10/25 20:27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227171

   

    

   

   

인간지표 인드라

   

국제유태자본과 환율, 옥수수, 금과 은, 주가 전망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월드리포트 11.10/25

   

환율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과 환율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592788

   

강조하지만, 각국 환율에 각국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세계 환율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국유본이며, 국유본 고유 권한이다. 이런 권한에 도전하는 세력이 있다면 국유본이 보고만 있지 않는다. 물론 예외가 있다. 세계 환율을 움직이는 배후에는 강만수가 있다는 무뇌아 쪽발놈현경제학파에 대해서는 예외로 친다. 이유는, 하도 병쉰스러워서이다. 게다가 이 무뇌아 쪽발놈현 색희들이 이런 주장을 해외에 가서 주장할 때 분명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 강만수 음모론은 국내용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어차피 무뇌아 쪽발노빠애색희들이 무식해서 써먹는 것이니까 이해해주세요. 저, 사실 알고 보면 쪽발이입니다. 말 잘 들을께요. 흑흑흑.

   

한반도 통일과 평화,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서는 애비색희가 쪽발이일 가능성이 큰 무뇌아 쪽발놈현애들을 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다. 병쉰스럽고, 무식해서 써먹을 데가 없다. 매국노짓거리만 골라서 하니까. 하긴, 바로 그런 이유로 국유본이 지지하고 있기는 하다. 무뇌아 쪽발노빠 머리에 똥만 가득 차서 좀비짓을 잘 하니까.

   

"국유본 언론, 특히 한국 국유본 언론은요. 작전 세력과 연계해서 기사를 작성하므로 롬살롱 기사가 많다는 걸을 참고해야 합니다. 룸살롱 기사란 작전 세력과 술 먹고 쓰는 기사라는 것이지요. 특히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쪽이 도요타 재단이나 론스타한테 돈 받고 기사를 쓰는 것인지 아주 구라가 심하니 무시하는 게 좋습니다.

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도 세력은 뉴라이트 세력이거든요. 

역외환시장을 보면 거래량이 더 늘어나지 않고 휭보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해서, 뉴라이트 모건스탠리 목표가인 1,144원이 일단 경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일 환율이 1,144원을 하향이탈한다면, 국유본이 1,100원 이하로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사표시요, 연말 1,050원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환율이 1,144원에서 튕겨나간다면, 당분간 환율은 1,144원에서 1,200원 사이로 박스권이 형성될 것 같네요. - 홍천 번개 후기와 환율 중에서"

   

지난 홍천 번개 글에서 말한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다.  해서, 국유본이 다시 어떤 대형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는 1,144원에서 하향이탈하였기에, 그 밑으로는 1,000원선까지 딱히 지지선이 없다.

   

    

달러인덱스 30분 차트와 일일 차트입니다.

   

   

   

   

usd 리보 3개월 물 차트입니다.

   

   

   

   

   

테드 스프레드 차트입니다.

   

   

   

   

usd 리보 삼개월물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유럽 재정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테드스프레드가 휭보한다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유럽 재정위기를 시장이 대부분 반영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악재는 나올 만큼 나왔다는 것이며,

앞으로 시장이 유럽 재정위기 악재에 덜 반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로달러 차트입니다.

   

   

   

브라질 레알달러 차트입니다.

   

   

인도 루피달러 차트입니다.

   

   

중국 위안달러 차트입니다.

   

   

멕시코 페소달러 차트입니다.

   

   

인도네시아 루피달러 차트입니다.

   

   

터키 리라달러 차트입니다.

   

   

   

   

유로달러 차트와,

브릭스달러 차트와 믹트달러 차트 공통점.

중국 위안화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외환시장 거래량이 폭발했다는 것입니다.

거래량이 9월 들어 폭등했다가

휭보 후에 거래량이 서서히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유본이 전세계적으로 외환 작전을 펼친 뒤

고가에 팔아먹는 모양새입니다.

이 자금으로 헐값이 된 각국 주식과 부동산을 취득하겠지요.

   

   

한국 원화달러 차트입니다.

   

   

   

   

   

1차 지지선은 1,100원이며, 2차 지지선은 1,050원입니다.

   

   

옥수수 차트입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7560785

   

인드라가 국유본더러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한 이후로 옥수수 가격이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다가 근래 반등하는 추세입니다. 하면, 이제부터 다시 오르나 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내년까지 농산물 가격이 안정화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물론 국유본이 각종 기후무기를 이용하여 농수산물 가격을 움직일 수 있지만, 인드라가 보기에는 현 수준도 매우 높은 물가 수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유본이 재스민 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고물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단, 이보다 더 높은 물가 수준을 장기간 기록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죽이는 것과 같으므로 당분간은 물가 수준을 낮추리라 보고 있습니다. 해서, 인드라가 농수산물 가격이 안정할 것이라는 기조는 별다른 징조가 없다면, 내년 2012년 9월 1일까지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습니다.

   

   

옥수수나 금, 은과 같은 원자재 투자는 골드만삭스도 투자하지만,

유럽계 은행들이 레버리지(차입)를 많이 해서 투자하는데,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은행들이 대폭 자기 자본 확충하기에

금이나 은, 옥수수와 같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릴 자금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해서, 당분간 휭보할 것으로 봅니다.

이때, 은 가격은 국유본이 만든 은값 음모론 가격대가 30달러이므로

당분간 30달러 전후로 해서 가격이 움직이리라 볼 수 있습니다.

   

   

   

금값은 1,650달러에서 휭보하는데요.

현재로서는 연말에 1,600달러 근처에서 끝날 것같은 흐름이로군요.

   

   

   

   

다우지수는 박스권을 벗어나는 상승 추세 모양새입니다.

   

   

   

   

   

인드라가 한국 증시와 관련해서는 다우지수보다

나스닥과 S&P 500, 필반을 보다 중시하는데요.

이유는 삼성전자 때문입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포스코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오랜 기간의 박스권을 탈출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고 대세상승을 말하기에는 어려운데요.

이유는 거래량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레버리지 규제로 인해 거래량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 모양새가 나타나는데,

앞으로 어찌될 지는 모르나,

바로 이러한 모양새가 현재 국유본이 원하는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거래량까지 실리면 대세상승인데요.

이러면 2013년까지 금리동결 및 저달러 정책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미국 실물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기 전까지는

국유본은 QE3도 검토한다는 등의 경기 부양책을 계속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달러 기축통화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도 바라지 않기에

지금처럼 유럽 재정위기 같은 것을 계속 일으켜서

균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 균형을 찾으러 가는 복원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코스피 지수 2,000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 이상 넘어가면 국유본이 또 다른 무슨 사건으로

세계 주가를 뒤흔들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국유본 입장에서

위기는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권력자들은 금융위기를 좋아합니다.

금융위기가 자꾸 발생해야

보다 많은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거든요.

   

아무튼 오늘 한국 증시 조정이 기가 막히게 되어서요.

내일 주가 흐름을 주목할 수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국유본이 누구도 알 수 없게

코스피 지수를 만들어놨거든요.

   

오르건, 내리건 다 할 말이 있게 만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내일 주가 흐름이 올해 한국 증시 흐름 향방을

가늠하는 지표로 작용할 것 같네요.

   

내일 증시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와이는 뉴라이트파인가, 노비네파인가, 골드만파인가? 국유본론 2011

2011/10/24 02:55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065055

   

   

   

   

   

   

   

하와이는 뉴라이트파인가, 노비네파인가, 골드만파인가?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4

   

   

"-카메하메하 4세

   

1854년에 카메하메하 3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 그의 조카 알렉산더 리홀리호(Alexander Liholiho, 카메하메하 3세의 이복 누이인 Kinau의 아들이자, 카메하메하 1세의 손자, 재위 1855~1863년)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카메하메하 4세는 산업을 주도하면서 하와이에 경제적인 붐을 가져왔다. 하와이 섬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라하이나와 호놀룰루는 무역을 위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카메하메하 4세는 미국 방문 때 받은 인종적인 모욕에 대한 분노와 갈수록 깊숙이 파고드는 미국의 강력한 힘에 두려움을 느낀 반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받은 좋은 인상으로, 하와이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을 점점 키워 주었다. 그가 남긴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퀸스 병원의 설립이다. 세균에 대한 면역이 없는 하와이인들이 외국인과의 접촉으로 여러 가지 병원균에 전염되어 사망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왕실은 항상 염려해 왔던 것이다.

1863년 카메하메하 4세는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후계자로 그의 맏형 로트(Lot)를 지명하였다.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9&dirId=9020201&docId=74396904&qb=7ZWY7JmA7J20IOyYgeq1rQ==&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p9KyU5Y7udssvoOjsossc--005318&sid=Tp8lufLlnk4AACIPF4M

   

졸라 웃긴 역사 해석이라고 본다. 지금부터 인드라가 관련 자료를 보지 않고 눈앞에 상상하는 대로 소설을 써보겠다. 하고, 이 소설이 과연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1943년 사태 핵심은 누가 봐도 카메하메하 3세의 토지 개혁 정책에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근대화를 말할 때, 해당 정권이 개혁을 하지 않아서, 개방을 하지 않아서 근대화에 실패했다고들 한다. 전혀 아니다. 짜르 황제부터 시작해서 이슬람 군주 등 상당수 군주들이 개혁 개방 조치를 취했다. 근래에는 누가 있었나. 이란 팔레비 국왕이다. 팔레비 국왕이 쫓겨난 이유는 백색 개혁 때문이다. 국유본은 정권이 국유본이 끼어들 틈없이 개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유본이 허락하는 개혁이나 혁명이란 국유본에게 이권을 준 뒤 그 대가로 얼마간의 개혁, 혁명 정책을 허용하는 것이다. 

   

하면, 이 시기 하와이에 들어온 백인들은 미국에서 온 이들인데, 왜 영국 영사가 총대를 매었나. 당대 국유본 세력 중에 가장 끗발이 있으니까. 당대 세계 최강은 영국이었고, 미국이야 영국으로 독립한 지 불과 70년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오늘날로 치면, 영국은 일본이고, 미국이 한국인 셈이다. 이런 판에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땅을 매입해서 농장을 차렸다가 마다가스카르 정권이 어느날 토지개혁을 주창하면서 외국인 토지 국유화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똥밟은 거지, 뭘!@! 해서, 한국 정부가 나서는 게 압력이 클까. 일본 정부가 나서는 게 압력이 강할까. 후자인 게다. 해서, 영국 영사가 나서고, 영국 함대가 나선 게다. 이때까지 영국 함대가 킹왕짱이었지, 미국 함대는 X도 아니었다~!

   

 예서, 초점은 하와이인의 별다른 저항이 없었음에도 왜 영국 함대는 점령을 풀었느냐 하는 점이다. 왜 하와이 왕조를 복원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때, 영국이 지금부터 하와이는 영국령이다, 하고 선언하면 그만이었을 터인데 말이다.

   

어떤 해석을 보면, 먼로주의의 영향이라고 한다. 하와이가 비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첫사례라고 말한다. 미국 외교의 승리라나? 헌데, 힘없이 외교가 이루어지나? 힘없이 외교가 이루어지는 사례는 딱 하나밖에 없다. 봐주는 것. 지금 미국이 북한을 봐주는 것과 같다. 국유본은 결심만 하면 48시간 이내에 뽀그리를 뒈지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안 하는 이유는 뽀그리가 아직 쓸만한 개색희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국유본은, 로스차일드는 하와이 왕조를 아직 무너뜨릴 때가 아니라고 본 것같다.

   

일타 삼피로 접근하자.

   

하나,  1840년에 시작한 아편 전쟁이다. 아편 전쟁으로 국유본은 육군, 정확히는 용병을 필요로 했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인구 대국. 중국과 맞서기 위해서는 유럽은 물론 러시아, 일본, 미국을 총동원해야 했다. 이러한 계산법에 따라 장차 미국 로스차일드 지부가 되는 모건 은행을 탄생시킨 피바디를 런던에서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왜? 제국주의 시대 개막을 위하여! 1843년 이전까지는 각 국가는 로스차일드 눈치만 보았다. 허나, 1943년 이후에는 국유본이 허락했다. 영국처럼 마음껏 세계를 약탈하라! 예서, 만일 하와이에 다이아몬드나 금 광산이 있었다면, 국유본이 다른 지역을 대안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둘,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교두보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것이 하와이이다. 하와이에 왜 차후에 미군기지를 건설했겠는가. 대 아시아 공략인 게다.

   

셋, 분명 왕권을 주는 대신 토지개혁에서 예외적인 조항들을 만들어서 외인 토지 취득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 뒤에 국유본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기획하고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뒤로 빠진다. 이제 미국인이 나서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 셈이다. 독박이다. 허나, 그 대가로 미국은 하와이를 삼킨다. 영일동맹과 같은 것은 그나마 역사적으로 드러난 밀약이지, 당대 전 세계에서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밀약이 있으리라.

   

인종 문제도 관련이 없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왕권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국인이야 겉으로는 사람 좋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개고기 타령을 너놈 집에 화염병으로 불타오를 때까지 할 만큼 상대를 아주 우습게 보는 전형적인 족속이어서 인종 문제를 속으로 더 따졌을 것이고, 미국인이야 아직 귀족 수업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평민 출신이어서 꾸밈없는 태도로 인종 멸시를 했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이 외교 관계를 좌지우지할 만큼은 아닌 게다.

   

해서, 카메하메하 4세 입장에서는 국유본 속셈을 모른 채 하와이를 삼킬 수 있음에도 삼키지 않고 왕권을 보존시킨 영국 태도에 감읍하였을 것이며, 반대로 그 이후 꾸준하게 권력을 강화시킨 미국 태도에 크게 경계하였을 것이다.

   

   

"-카메하메하 5세와 왕조의 종말

로트(Lot Kamehameha, 카메하메하 5세, 재위 1863~1872년)는 그의 할아버지 카메하메하 1세 때의 찬란했던 왕권을 다시 복원하는 데 힘썼다. 동시에 주민들에게 세심한 정책을 펼쳤던 그는 주법(酒法)의 폐기를 반대하고, 주민들과 자유롭게 어울렸다. 또한 사탕수수 산업의 증진을 위해 노동을 권장하기 시작했고, 이민 부서를 설치하여 외국으로부터 많은 노동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정부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1864년에 헌법을 작성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이 헌법은 하와이 역사상 어느 헌법보다도 가장 긴, 23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되기는 했지만, 결국은 왕정을 무너뜨리게 된 반대파를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 직계 후손이 없던 카메하메하 5세는 그의 누이인 빅토리아 카마말루(Victoria Kamamalu)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그녀는 1866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다시 파우아히 비숍(카메하메하 1세의 증손녀)에게 왕관을 물려주려 하였으나 그녀는 사양하였다. 결국 카메하메하 5세의 죽음으로 인하여 더 이상 카메하메하 직계의 대는 이어지지 못했으며, 이는 곧 그 왕조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선거로 뽑은 왕, 루날릴로

   

새로운 왕조가 왕과 귀족에 의해 선출되었다. 카메하메하 1세의 이복 동생의 후손인 윌리엄 찰스 루날릴로(William Charles Lunalilo, 재위 1873~1874년)는 왕실 의회의 선거에 의해 6대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경쟁자 데이비드 칼라카우아(David Kalakaua)를 투표에서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어, 의회의 승인을 받아 왕이 된 것이다.

그의 재위 기간에 왕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지방 하와이안 세력들과의 싸움이 표면화되고, 반면 왕조정치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경제면에서는 사탕수수 재배가 발달하여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을 계속하였다. 파우아히 공주의 부군인 찰스 비숍을 포함하여 세 명의 미국인을 내각에 기용하고 있던 왕의 정부는 사탕수수의 이익을 늘리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하여 미국과 상호조약을 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미국측의 진주만 양도 요구와 맞물리자 원주민들은 분노하였고, 결국 루날릴로 왕은 그 조약을 철회하였다. 그는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술을 많이 마셔, 왕위에 오른 지 1년 25일 만인 그의 39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

   

-칼라카우아 왕

   

루날릴로의 뒤를 이은 사람은 이전의 왕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그에게 패한 데이비드 칼라카우아(David Kalakaua, 재위 1874~1891년)였다. 칼라카우아는 단 한 사람의 적수였던 엠마(Emma) 여왕을 쉽게 물리치고 입법회의에 의해 왕으로 당선되었다. 매우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재능있는 사람이었던 그는 폐지되었던 훌라 댄스를 부활시키는 등 사라져 가는 하와이 전통문화를 되살리려고 노력하였다. 또 미국을 방문하여 상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하와이의 설탕을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상품 또한 관세 없이 수입해야만 하였다. 이를 기회로 미국의 자본가들은 점차 하와이에서 그들의 세력을 넓혀 갔으며, 그 힘은 정치에까지 미쳐 진주만을 미국 해군의 보급기지로 한다는 조항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1881년에 그는 8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첫목적지는 일본이었으며, 중국을 거쳐 빅토리아 여왕이 있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에서 영국 왕실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대관식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하와이에서도 대관식을 열겠다고 마음먹었다. 1879년부터 공사에 착수했던 이올라니 궁전(Iolani Palace)은 1882년에 완공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그가 왕위에 오른 9주년을 기념하여 1883년 2월 12일, 스스로 거대한 대관식을 열어 왕관을 썼다. 그러나 이것은 낭비였으며, 너무 사치스러웠다. 이로 인한 많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하와이 왕국을 약하게 만들었고, 결국 많은 하와이의 땅이 백인들에게 팔려 넘어갔다. 그는 하와이 왕국의 위신을 높여 세계에 알리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백인들의 세력은 갈수록 커졌다. 유혈혁명으로도 정세를 바로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1887년, 결국 그는 백인들이 강요하는, 왕권을 제한하는 신헌법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헌법에 따라 각료의 파면권까지 의회가 갖게 되었고, 왕권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러한 정치분쟁이 심해지자, 그는 요양을 위해 1890년 11월 25일에 샌프란시스코로 떠났으며, 거기에서 1891년 1월 20일 사망하였다."

   

이 시기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데미안 신부이다.

   

데미안

http://blog.chosun.com/cheonhabubu/4066734

   

"2005년 기준 하와이의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교(Christianity): 351,000 (28.9%),로마 가톨릭이 대부분.
  • 불교(Buddhism): 110,000 (9%)
  • 유대교(Judaism): 10,000 (0.8%)
  • 기타종교(Other): 100,000 (10%)*"

    http://ko.wikipedia.org/wiki/%ED%95%98%EC%99%80%EC%9D%B4_%EC%A3%BC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05년 기준 하와이 주요 종교가 로마 가톨릭이다. 왜? 데미안 신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예서, 왜 데미안 신부가 중요한가. 데미안 신부를 성인으로 인정한 것이 뉴라이트 요한 바오로 2세이기 때문이다.

       

    http://cafe.naver.com/holyvatica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514&

       

    http://www.kccosd.org/book/export/html/7427

       

       

       

    뉴라이트 시대에 한국 가톨릭이 크게 부흥한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도 천주교가 크게 부흥했다. 모두 데이비드 록펠러 덕분이다. 가톨릭에서 왜 데이비드 록펠러를 살아 있는 시성으로 만들지 않을까. 인드라 생각으로는 데이비드 록펠러 만큼 가톨릭 신자를 확장시킨 역사적인 인물은 전무후무하다고 본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어렵다면 브레진스키만이라도^^!

       

    하여간, 인드라가 보기에 로마 가톨릭이 뉴라이트 요한 바호로 2세에 들어와서 성인 칭호를 남발한 경향이 없지 않는 것 같다. 그 덕에 가톨릭 교세가 크게 신장한 것 같기는 하지만, 외형만 키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ㅎㅎㅎ.

       

    이 사건 외에 중요한 사건은 노동력 부족 때문에 아시아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중국인이 왔다. 헌데, 중국인이 누군가. 세계 3대 상인. 중국인은 일을 하다가 이내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수완이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위협을 느낀 미국인이 중국인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해서, 그 다음에 수입한 것이 쪽발이랑 필리핀인인 것이다. 쪽발이랑 필리핀인은 장사란 걸 잘 몰랐다. 열심히 일했는데, 섬 종족 특징이 하나 있었다. 폐쇄적이라는 것. 자기들끼리 잘 뭉친다는 것. 뭉쳐서 노동 쟁의, 소작 쟁의를 시작한 게다. 임금 올려줘라, 생활 개선하라~! 똥자루만한 넘들 때문에 백인들이 골치 아프기 시작한 게다.

       

       

    하여, 나온 대안이 무엇이었나. 한국인 수입이었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다. 허나, 한국인 하와이 이주도 20세기 들어서서 중단하고야 말았다. 하와이 이민을 가야하는데 멕시코 이민으로 행선지가 바뀐 사태로 인해 중단되었다는데, 인드라 생각으로는 이것은 핑계이고, 실제로는 백인이 일정 수 이상의 민족을 제한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해야 하는데, 이때 인구 비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서, 영연방 국가나 이런 나라에서는 초기 백호주의 정책을 펼쳤고, 백인 숫자를 늘이기 위해 영국에서 십대 청소년 백인들을 납치하다시피 끌고 간 일이 많았다고 한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칼라카우아 왕이 죽은 후, 그의 여동생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재위 1891~1893년)가 뒤를 이어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칼라카우아 왕이 외유 중일 때는 섭정을 맡기도 했던 여왕은 의지가 강하고 정치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하와이를 미국과 합병시키려는 소수 백인들로부터 하와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되찾는 데 온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그녀의 반대파들은 합병을 지지하는 연맹을 결성하여 왕권을 제한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미국 해군 함대의 선원과 해군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왕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헌법을 공표하려고 했다. 조직적인 군사력을 갖춘 합병파는 여왕이 만든 신헌법 초안에 대하여 일종의 쿠데타라 칭하며, 이올라니 궁전을 봉쇄하고 임시정부를 수립, 여왕에게 퇴위를 강요했다. 이렇게 하여 하와이 100년 왕국은 비운의 여왕 릴리우오칼라니의 퇴위로 막을 내렸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을 노래한 알로하오에(Alohaoe)는 그녀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신하와이,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와 미국의 합병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퇴위로부터 1년 반 후인 1894년 7월 4일, 임시정부는 하와이 공화국을 선언하고, 돌(Sanford B. Dole)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와이 합병 문제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논란이 많았으나, 당시 스페인과 미국과의 전쟁으로 태평양에서의 전략적 요충지가 필요했던 미국 의회는 1898년 7월 7일, 드디어 하와이와 미국의 합병을 승인해, 하와이는 미국땅이 되었다.

    미국의 속령이 된 하와이의 도지사로 취임한 사람은 공화국 시대의 대통령이던 돌이었다. 그의 사촌 제임스 돌이 파인애플 통조림 제조와 수출에 성공하면서부터 파인애플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여 설탕과 함께 하와이의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로써 하와이는 백인 자본가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영국을 방문해서 영국 여왕을 만난 릴우오칼라니 여왕 왈, 자기 몸에는 영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했단다. 깜짝 놀란 영국 여왕이 물으니, 자기 조상이 영국인을 잡아먹어서 영국인 피가 흐른다고 했다나~!

       

    이처럼 기가 강했다는 점에서 명성왕후와 같았던 여왕이었으니 백인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왕권을 물려줄 리가 없었다. 막판에 외군 군대의 힘을 빌려서 저항해보려는 책략은 고려왕국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아무튼 여왕은 강력 저항하다가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게다.

       

    예서, 샌포드 돌이 대통령이 된다. 여기가 또 다른 포인트인 셈이다. 샌포드 돌. 돌? 어디서 들어본 사람이 있을 듯. 그렇다. 그 후예 중에 밥 돌이 있다.

       

    하면, 밥 돌은 노비네파일까, 뉴라이트파일까. 공화당 의원이니 골드만파는 아니다.

       

    "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어 선거전에 나섰으나, 민주당카터-먼데일 조에 패했다. 상원의원 선거에 1974년, 1980년, 1986년, 1992년 연속으로 당선되며 상원의 대표적인 거물이 되었고, 1985년부터 상원의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대표 겸 상원 다수당 대표로 큰 권한을 행사했다. 1986년 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에 빼았겨, 다수당 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으나, 계속 공화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1994년 선거에서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다수당 지위를 되찾아 다시 다수당 대표가 되어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대립하였다. 공화당에서는 온건파에 속하여 당시 하원의 대표가 된 뉴트 깅그리치에 비하면 심한 대립을 조장하지는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 여러 차례 도전하여, 1980년 공화당 예비선거에 나섰으나, 저조한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고, 1988년에는 유력한 후보로 예비선거에서 중북부 몇몇 주에서 승리했으나, 조지 H. W. 부시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1996년 선거에서는 상원 다수당 대표로 공화당 온건파의 지지를 얻어 예비선거에서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하며 마침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그 해 6월 11일, 자신의 상원의원직까지 사퇴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집중하며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을 공격했다. 당시 만73세로 미국의 역대 양대 정당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지금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73세의 고령의 그는 23세나 젊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패기를 꺾지 못하고 낙선했다. 대통령 선거 후 바로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듬해 초 그에게 2차 세계 대전에서의 공적과 그동안의 정치 활동을 기려 미국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B%B0%A5_%EB%8F%8C

       

    데이비드 록펠러는 로스차일드파 닉슨을 물러나게 한 뒤 뉴라이트 제럴드 포드를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런 제럴드 포드와 함께 밥 돌이 패전처리 포수로 나섰으니 뉴라이트인 게다. 하고, 공화당에서 온건파로 활동한다지 않은가. 노예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온건파다, 라는 말은 다른 말로 뉴라이트파다, 라고 보면 90%이상 맞는 말이다. 뉴라이트파의 정치 노선이란 보수우파정당에서는 진보좌파로, 진보좌파당에서는 보수우파로 움직여라! 이니까.

       

    게다가 밥 돌은 공화당에서 대선 때마다 노비네파인 부시 부자와 대립한다. 이는 밥 돌이 뉴라이트파임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클린턴 재선 가도에서 희생양을 자처한 뒤 정계은퇴하여 클린턴에게 최고 훈장을 받는 그림은 더더욱 그가 뉴라이트임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과의 일화도 있다.

       

    밥 돌이 한국에 온 적이 있는데, 타이거 펀드 때문이다.

       

    헤지펀드의 모든 것

    http://cafe.naver.com/usstoc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33&

       

    타이거 펀드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3100

       

    줄리언 로버트슨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281

       

    타이거 펀드는 소로스 펀드와 함께 세계 헤지펀드 계를 양분하던 헤지펀드였다.  헤지펀드 장점이 무엇이었나. 유럽은행에서는 투자와 상업은행이 분리되지 않아 그다지 헤지펀드 필요성이 없었지만, SEC의 규정 때문에 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미국 금융계는 규제를 덜 받는 헤지펀드로의 유혹이 강렬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에서 헤지펀드 열기가 이상과열 기미까지 보이는 것과 맥락이 같다.

       

    허나, 이것이 연이은 주가 폭락으로 헤지펀드가 외면을 받기 시작하여 1971년 140개였는데, 1974년이면 헤지펀드 수가 30개까지 줄어든다. 이러한 결과로 위협을 느낀 국유본 귀족들은 모건스탠리의 로버트 볼드윈처럼 왕정 쿠테타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월가 시위와 당시의 궁정 쿠테타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국유본 권력이 교체했지만, 상당 기간은 이중 권력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뉴라이트 카터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나 당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그런 시기였던 셈이다. 이러던 것이 넬슨 록펠러가 죽고, 데이비드 록펠러가 민주당에서 뉴라이트를 이끌고 공화당으로 가서 뉴라이트 레이건을 당선시키자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타이거 펀드 줄리언 로버트슨은 기적과도 같은 수익으로 헤지펀드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것이 1980년이다. 뉴라이트 투자자들은 대개 뉴라이트 레이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던 타이거 펀드가 언제 망하나. 1998년이다. 하고, 결국에는 파산했다. 언제? 노비네 정권 시절에~! 같은 뉴라이트라도 소로스는 안 망했는데? 소로스는 노예민주당 계열 뉴라이트이고, 줄리언 로버트슨은 공화당 계열 뉴라이트인 게다.

       

    해서, 줄리언 로버트슨은 클린턴한테 패해서 정계은퇴 직전인 밥 돌을 움직여서 한국에 가서 로비 좀 하라고 부탁하는 게다. 왜, 둘 다 공화당계 뉴라이트였기에.

       

    하면, 당시 타이거펀드는 한국에 무슨 볼 일이 있었나?

       

    http://mrcoree.blog.me/14353636

       

    간단히 말하면, 타이거 펀드가 SK텔레콤을 경영권 장악을 위한 적대적 인수 작전을 펼쳤고, SK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SK 계열사 지분을 투자하여 SK 계열사가 부실해진 틈을 타서 소버린이 나서서 역시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면,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색희는 누구냐.

       

    누구긴 누구야. 친일 조선일보에 칼럼을 내시며, 뉴라이트 고려대 경영대 학장이며, 전 쪽발민주당 의원 사위이며, 뉴라이트 참여연대 인사인 동시에, 그 유명한 라자드 펀드 얼굴마담 장하성이다.

       

    이때, 장하성이 열심히 타이거 펀드를 옹호하는 꼴이라니. ㅋㅎㅎ.

       

    바로 이런 대목에서 국유본이 장하성 같은 넘 충성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잘 모른다. 배울 만큼 배운 넘들이 왜 저리들 바보 같은 논리로 아부를 떨고 있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단순히 정치하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도 있다. 아니다. 코가 꿰어서 그런 게다. 병쉰 짓을 하라고 국유본이 지시했기 때문에 병쉰 짓을 하는 것이다. 그걸 잘 이해해야 한다. 동네에서 천재 소리 듣던 이가 왜 여의도나 청와대에 가면 한결같이 병쉰되나? 국유본 지시 때문이다.

       

    국유본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록위마

    http://100.naver.com/100.nhn?docid=701683

       

    밥 돌로 돌아가자. 대통령에서 탈락한 밥 돌 로비를 누가 받아주겠는가.

       

    "-태평양 전쟁과 하와이 주의 승격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하와이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전쟁이 일어남과 동시에 태평양 지역의 전초기지가 된 하와이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경제의 기반도 자리잡혀 갔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하와이는 미국 연방에 편입되었다. 1959년,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의해 하와이는 주(州)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해 8월 21일,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의 포고로,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하와이 경제의 주역이던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재배는 인건비가 높아져 점차 사양화되고 있으며, 대체 산업으로 관광이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여객기의 발달은 관광산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해 1978년부터는 하와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연방정부의 군사비 지출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다. 주(州)로 승격되어 4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날, 인종 차별은 자취를 감추고, 각국에서 온 이민들끼리의 결혼으로 인종적 의식조차 엷어지고 있다. 하와이로의 한국인 이민은 1903년에 시작되어, 현재 약 3만 4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다양한 지위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해당 지역은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다. 독도 주민 편입과 같은 열기가 일어나는 셈이다.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승격한다. 주로 승격시켜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는 게다.

       

    문제는 무엇인가. 이로 인해 하와이 주산업이었던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왜? 하와이 주로 승격하자 하와이 주민은 미국 시민과 동등한 자격을 갖춘 만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임금 인상와 복지 개선이 이루어져서 원가가 크게 늘어나니 다른 지역 농산물과 경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등장한 대안이 관광 산업이다. 해서, 이 시기 1960년대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가 하와이 공연을 하는 등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진 셈이다.  

    http://kmw1203.tistory.com/116

       

       

    http://www.youtube.com/watch?v=kbyqC1Rl2vk&feature=player_embedded

       

       

    http://youtu.be/GzYEi8h0Y5M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그 유명한 마우나케어골프장(Maunakea Golf Course)에 도착한다. 1964년 당대 최고의 재벌 록펠러의 요청으로 로버트 트렌트 존스가 디자인했다. 1959년 하와이가 미국 영토로 편입됐을 때 하와이 주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록펠러 총수를 이곳으로 초청했다고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골프장과 호텔을 건축하기로 결정했고 코할라코스트(Kohala Coast) 해변가 용암밭 위에 18홀 규모로 파72( 6552야드)의 걸작품을 완성시켜 놓았다.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83107404132720

       

    뉴라이트 쪽발 놈현, 이 븅쉰 색희가 지역균형발전이란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국에 골프장 건설하고, 쪽발 놈현 색희랑 뉴라이트 이해찬 씹색희가 나라가 난리나도 골프치던 것 생각나냐? 이거 다 어디서 배운 솜씨냐. 이 무뇌아 색희들이 지들 머리에서 이런 것 생각했겠냐고. 머리에 똥만 든 쪽발이 색희들이 말이야. 하긴, 홍수나도 골프치는 건 쪽발 뽀그리도 마찬가지더라, ㅎㅎㅎ.

       

    하고, 쪽발 놈현이나 이명박이나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게 뭐야. 관광이잖아. 관광 한국, 관광 서울.

       

    역사만 보면, 하와이는 뉴라이트가 아니겠는가?

       

    허나, 역사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링글은 여러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하와이 최초의 유대인 주지사이자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며, 하와이에서 40년 만에 배출된 공화당 출신 주지사다. 지난 2004년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회장을 맡을 정도로 거물급 인사로 성장한 그에게 '민주당' 출신 오바마 당선자의 하와이 행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쌍수 들고 환영하자니 다른 당 출신 대통령과의 밀월이 부담스럽고, 모르는 척 하자니 '속이 좁다'는 비판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둘의 접촉은 이 서신교환이 전부였다. 지난 8월 이후 3번이나 하와이를 찾은 오바마와 링글은 아직 직접 대면한 적이 없다. 예정된 회동도 없다. 그러나 '오바마 특수'를 누리고 있는 관광업계처럼 하와이 발전을 위해서라도 오바마와 친분을 쌓아두라는 현지 여론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 지적이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224010336320470010

       

    헌데, 왜 이런 기사 끝에는 꼭 골드만파 뉴욕타임즈 인용이 있을까^^!

       

       

    전임 린다 링글은 하와이 최초 유대인 주지사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유대교 랍비를 모시고 예배를 본 뒤 공식 업무를 수행할 정도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다. 그녀는 두 번 이혼한 이혼녀이고, 낙태 찬성자이다. (음~ 그러고 보니 오늘 친구 민이 낙태 찬성파 급우들이랑 토론 모임을 하던데~!) 낙태 찬반 여부는 미국 정계에서 총기 소유 문제나 의료보험 문제처럼 주된 이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낙태 찬성이라는 것은, 린다 링글이 뉴라이트 성향임을 웅변한다 하겠다. 

       

       

    또한 린다 링글이 노비네 정권 때 하와이 주지사였다지만, 정치적 인맥을 보면, 매케인과 훨씬 가까운데, 매케인 역시 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린다 링글은 40여년간 집권하지 못한 하와이 집권을 위해 노예민주당 성향의 공화당 인물로 뽑힌 셈이다. 해서, 린다 링글은 뉴라이트인 게다.

       

    하고, 지난 사십년간 노예민주당이 독점한 것이 하와이 주지사였다. 노예민주당이라면 뉴라이트파 아니면 골드만파일 터. 여기에, 골드만파는 아들 부시 정권 때 생긴 국유본 분파라고 했을 때, 1973년 이후로는 하와이 주지사는 뉴라이트파가 독점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 하와이 주지사는 네일 아베크롬비, 혹은 닐 아베크롬비이다. 노예민주당 의원 소속으로 오바마의 대학친구이자 하와이의 국회의원이었다. 골드만파라는 이야기다.

       

    오바마가 명색이 하와이 출신인데, 린다 링글이 오바마를 불편하게 하니 바꿀 수밖에!!!

       

    여기서 잠깐~!!!

       

    오바마 출생의 비밀은~!!

       

       

       

    욕망의 하와이 : 오바마의 실제 아빠는 누구?

    http://www.cyworld.com/cutesun21c/3707622

       

       

    자, 여기까지 인드라 분석법 둘을 활용했다.

       

    하나는 주도 인물이나 조직의 이력과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하와이 중심 세력을 조사하여 파악하는 것. 이러면, EH 카아 식,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 이해다, 라는 셈인가.

       

    여기서 끝인가?

       

    ㅎㅎㅎ.

       

    아니다. 인드라가 지금은 좌파가 아니지만, 과거에는 좌파였다. 해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물적 토대, 혹은 물리력, 아니면, 자금 흐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해서, 이 문제는 개인이나 조직보다 지역이므로 이외로 문제가 쉽게 풀린다.

       

    오늘날 하와이 수입은 대체로 어디서 오나? 이것만 알자.

       

    관광에서 달라진 바 있나? 없다.

       

    뉴라이트이다.

       

    예서, 하와이 관광이 활성화하려면?

       

    달러 약세.

       

    달러 약세일 때, 한국인들이 하와이 관광 많이 갔을 때, 한국인들이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던 하와이는 어디에? 하와이 관광. 대대적인 시설 보수와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

       

    허나, 이것이 하와이 문제일까.

       

    하와이 주민 문제도 있다. 하와이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이는 관광지 물가가 천정부지인 것과 같다. 제주 이런 데 가면 물가 굉장히 높다. 하와이도 예외는 아니다. 해서, 관광 산업으로 인해 하와이 주민은 투잡으로 고생해야 한다. 이런 데에 실망해서, 린다 링글이 혹 이집트에 간 욥처럼 하와이 문제를 잘 풀어줄 수 있을까 싶어 뽑은 것인데, 하와이 주민 삶은 여전하다. 하면, 노예민주당, 오바마 친구를 뽑았으니 이제 살 길이 트였는가.

       

    알 수 없다.

       

    혹 모르지. 인드라가 요구한 대로 국유본이 한반도를 2015년 이내로 통일을 시켜주면 인드라가 엄청난 썰을 풀어서 뉴라이트 하와이 산업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이야기를 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http://cafe.munhwa.com/literarture/1310

       

       

선물옵션, 스탠퍼드와 이우귀족학교, 국민대, 모건스탠리, 국유본 계보 국유본론 2011

2011/10/23 16:2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016063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선물옵션, 스탠퍼드와 국민대, 이우귀족학교, 모건스탠리, 국유본 계보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3

   

   

CIA 시리즈를 2주간 하다 보니 다른 분들 질문에 소홀한 듯하여 글을 올린다.

   

하늘천  :

   

인드라님 잘 지내시죠? 벙개에서 한번 뵐려고 하는데 시간이 잘 안나네요.. 담에는.. 혹시 인드라님 팍스넷 선물옵션 게시판에서 활동 하고 계신지요? 제가 선호하는 회원이 인드라님하고 같은글을 올렷네요 ㅎㅎ 블로그 친구인가?

   

http://bbs.moneta.co.kr/nbbs/bbs.normal1.qry.screen?p_message_id=12962294&p_bbs_id=N00401&p_page_num=1&p_current_sequence=zzzzz%7E&p_start_sequence=zzzzz%7E&p_start_page=1&direction=1&p_favor_avoid=&service=stock&menu=menu_foptionchams&depth=11&sub=1&top=5&p_action=&p_tp_board=&total=&p_hot_fg=&cntnum=5&p_total=239&p_beg_item=&p_blind_fg=S&p_blind_url=lst&p_search_field=NICK_NM&p_search_word=%BE%C6%B8%AE%B6%FB%BA%AF%B0%EE

   

이 분 귀신 같은 분입니다. 파생 대가임. 현재 네이버 카폐에서 유료리딩을 하고 있는분임다. 저는 항상 블로그에서 정보를 귀동냥으로 수익만 쫒아다닙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메모게시판 하루도 안 빠지고 잘 보고 있습니다^^^

   

인드라 :

   

모르는 분이다~! 팍스넷 선물옵션 게시판은 인드라가 심심할 때 가끔 가보는 게시판이다. 주식 동향 같은 것을 알고자 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 막장 폐인들 헛소리를 즐기는 맛에 간다. 선물옵션 게시판에서 주식 동향을 알고자 하면 깡통을 찬다. 선물옵션 게시판은 95% 정도가 외인, 기관, 부띠끄, 명동사채업자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약 5% 정도는 선물옵션으로 재산 탕진하여 피시방이나 고시원 같은 데서 새우잠 자면서 기십만원으로 옵션하는 이들이다.

   

예서, 가끔 상기한 분과 같은 분들이 나타나는데~!

   

인간지표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지표란 나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실력이 없으면 인간지표도 할 수 없다. 이런저런 투자대회 같은 데서 우승 경력이 있거나, 실전투자를 해서 많은 돈을 벌거나, 아니면 이론적인 면에서 탁월하거나 해야 한다. 실력이 있으니까 인간지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면, 국유본은 인간지표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번개에서 어떤 분이 질문을 주셨다. 국유본이 시장을 지배해서 주가를 조작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아갈수록 국유본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리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허나, 바로 이런 문제를 국유본이 어떻게 피해가는가.

   

피해가는 방법 중 하나가 인간지표인 게다.

   

하나, 합법성을 획득한다. 게시판 같은 데서 인간지표가 그럴 듯한 예측을 하는데, 그 예측대로 주가가 움직이고, 이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의 호응을 받는다. 비록 국유본이 뒷받침한다지만, 말이 되게 주가나 선물옵션이 움직이므로 금감원 같은 데서 움직일 이유가 없다. 이때, 인간지표는 흡사 골드만삭스나 HSBC, 모건스탠리처럼 움직인다.

   

둘, 국유본이 인간지표 말대로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지표 주장 반대로 한다. 이러면, 돈 잃은 투자자들이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국유본? 어차피 너무 높은 존재라 비난할 수 없다. 월가 시위대처럼 고작해야 머독 정도의 국유본 귀족, 혹은 국유본 가신들이다. 그처럼 인간지표도 마찬가지인 게다. 그가 국유본 인물이건, 아니건, 국유본이 인간지표 말대로 하다가 반대로 돌면 그 비난을 고스란히 인간지표가 받는다. 국유본이 받을 비난까지 독박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타격을 받으면 엘리어트 파동 주창자인 엘리어트처럼 주식 투자 실패로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가다 기관 펀드매니저가 자살하는 사례가 이런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 고객이 아무나한테 주식 위임을 하나? 나름 실력이 있다는 매니저에게 위임을 하는데, 어느 순간 투자 실패하면 잠적 자살로 이어진다.

   

셋,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시장에 수많은 정보가 난무하더라도 시장 참가자들은 그 누구의 말도 쉽사리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여기는 것과 옳다고 여겨 이를 행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고급 정보로의 유혹, 모든 정보에 대한 불신 양 극단으로 흐르는데, 그 어떤 것이건, 국유본이 의도하는 결과가 된다. 국유본은 100% 승률 게임을 하고 싶어하기에 인간지표를 만든 것이다.

   

해서, 인드라든, 인간지표든, 그 누구든 백 프로 신뢰를 하지 말아야 하며, 투자 판단은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인드라 말대로 해서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그건 인드라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금전운이 좋기 때문이며, 반대로 인드라 말대로 해서 돈을 잃었더라도 그것 역시 인드라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금전운이 나쁘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을 인드라가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분들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대로 투자해야 한다. 하고, 애널리스트들 이야기를 무조건 배타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투자기법을 배우는 건 투자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허나, 실전매매까지 위임하는 건 극히 위험하다. 아무리 주식투자 고수일지라도 한순간에 돈 다 날리고 잠적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를 전제하고, 한국 금융판에서 인드라가 꽤 알려진 편이다. 직간접적으로 인월리를 많이 참고한다고 알고 있다. 도이치 옵션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인드라 번개에 도이치 은행 상무가 다녀가기도 했다. 인월리 경제 부문이 골드만삭스나 HSBC, 바클레이즈, 모건스탠리 리포트처럼 영양가가 있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동시에, 인드라는 인드라 닉 외에는 다른 닉으로 글이나 댓글을 쓰지 않는다. 상기한 분은 아마도 인월리가 자신이 투자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고 여겨서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정리해서 올린 것 같다. 번개 때 보면 선물옵션 투자하는 분들이 종종 오신다.

   

고통꽃 :

   

안녕하세요 인드라님. 처음 댓글을 달아봅니다. 저는 한참 수능 준비하는 광주의 문과 고3학생입니다. 가끔씩 들러서 글을 읽고는 하는데 학교에서 배우던 지식과 매우 달라서 혼란이 오곤합니다.^^ 특히 윤리나 언어영역 같은 경우 좀 한 시대의 주축이 되는 이론을 너무 우상화하는 듯한 글이 나오면 괜히 비판하면서 읽게 되면서 가끔 지장이 있곤 합니다..ㅠㅠ 윤리과목에서도 자본주의를 배울때 교과서에서도 신자유주의로 단원이 끝나고 결국에 아무런 대안이나 질문도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체제니까 너희는 경쟁이나 해라 라는 식으로도 보이고, 뭐 좀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인드라님만큼의 엄청난 사회와 문화 경제에 관한 통찰력이 부족한것은 사실입니다만 멍청한 기존 매트릭스에서 벗아나기 위해서는 인드라님의 조언과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글을 쉬는 시간에 자주 읽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광주라 그런지 많이 강압적인 게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체벌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1, 2학년때 정말 많이 맞기도 하고, 공부를 조금 더 잘 한다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는 혜택을 받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학교 친구들은 전교 50등안에 드는 아이들을 동경하고 너나할것 없이 in서울을 외치고 아니면 목포해양대나 한국해양대,경찰대 나와서 특이한 직장가지고 돈 많이 벌자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저도 한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분통이 터지려 합니다.ㅠㅠ

   

저도 1,2학년때는 공부를 꽤나 했는데(슬렁슬렁 대충햇죠..ㅠ) 고3이 되니 야간자율학습은 도저히 못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때려치우고 집에서 공부하는데 50등 밖으로 밀려나버렸네요.ㅎ 빨리 정신차리고 26일 남긴 시점에서 열심히 해야하는데 이러고 있습니다.ㅠㅠ

   

아, 이야기가 좀 새버렸네요.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현 대한민국 (물론 과거도 다를바는 없었지만)의 수능 체계나 교육과정은 단순히 국유본 노예들을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나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도 겉으로는 입학사정관이나 수시로 많은 아이들을 뽑겠다고 하지만 실상 뽑히는 아이들은 부모 잘만나서 스펙 잘쌓고 동시에 공부잘하는 학생들이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촌구석인 광주에 있기때문에 수능만 드립다 파고 내신이 조금 더 좋은 아이들은 이제 좀더 좋은 대학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도 또 우매하고 은밀한 지역주의때문에 광주 고등학교 스스로도 열등감에 빠져서 '우리는 수능 점수가 전 광역시에서 최고야...뿌잉뿌잉'하며 자위를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ㅋ 결국에서 지금 시대에 뒷배경이 있는 한류가 급부상하고 있고 미국이 FTA 비준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흔들의자에 앉아 '이제 한국따까리들이 비준빨리통과시켜라..'하니 MB씨는 예 알겟습니다 하면서 오바마 앞에서 손만 샤바샤바 비비고 잇는 이 판국에 일련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그리고 수능으로써 따내는 네임밸류있는 대학에 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또 요즘 국유본에서 눈여겨보는 한국 대학이 있나요? 왠지 국민대도 그런 축에 낄 것 같기도 해서요..ㅎ

   

인드라 :

   

고 삼이면 인월리 읽기를 미뤄두고 일단 수능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는 인드라가 한결같이 말하는 대목인데요. 취업준비생, 고시생 분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하다가 좀 지쳤을 때, 잠시 들어와서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인월리에 빠지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웹툰이나 디시갤러리 같은 데서 스트레스를 풀 것, 인월리에서 푼다 이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봅니다.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란 언제든 바쁘지 않을 때가 없겠지만, 누가 봐도 바쁠 때는 잠시 인월리를 끄고 사는 것도 좋습니다~!

   

이를 전제하고, 광주에만 체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인드라 장남 민도 체벌 때문에 최근 고통을 호소해서요. 이 문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수학 열등반에 있는데요. 인드라 장남 민이 아스퍼거여서 교사가 보기에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해서, 더더욱 맞고, 방과후에도 남고 그랬는데요. 학부모, 교사, 학생이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저희 부부는 대화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앞으로 해당 교사가 체벌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인드라 장남 민이 계속 전교 꼴찌를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대학 보낼 생각도 없는 편인데요. 문제는 민이 행복해야지요. 민이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많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윤리 과목에서 충돌한다는 건, 인드라도 학창 시절에 겪은 문제입니다. 인드라가 생각하는 정답은 교사가 내준 시험문제에서는 오답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정답을 쓸 것인가, 아니면 오답을 써서 점수를 향상시키는가. 인드라는 후자였습니다. 불필요한 반항은 본인만 손해입니다. 만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카이 문제는 1980년대까지 해당하는 문제였습니다만, 신자유주의가 본격 열린 2000년대 이후에는 달라집니다. 과기고, 외국어고 등에 가는 이들 중 흐름을 아는 이들은 스카이 대학을 선택하기 보다 곧바로 외국 명문대를 선택하는 예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드라 이웃 중 특수고에 다니던 한 여학생이 외국 명문대를 지원 합격해서 다니더군요.

   

여러분이 아셔야 하는 게 외국계 회사들이 학벌을 따지지 않는다고 아는데,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드라가 알고 있는 사례를 보면, 결국 외국계 회사들이 결과적으로 보면 학벌을 더 따지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게다가 외국계 금융회사를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스펙이 엄청납니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스카이 대결이지만, 2000년 이후로는 전 세계 대학 출신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삼성, 현대도 외국인 출신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습니까? 상시 구조조정의 결과로 실력과 충성도 있는 자들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목할 학교는 스탠퍼드 대학입니다. 한국에 어지간한 사람은 다 스탠퍼드를 갑니다. 심지어 이번에 오세훈도 인드라 조언대로 스탠퍼드 대학으로 연수간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학력이면 북한 김정일도 한 수 접어두니 참고하셔야 합니다. ㅋ

   

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이 문제이지요. 우리 부부 생각은 바로 그 때문에 민이 다른 길을 가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못 올라갈 나무 쳐다보지 말자, 이런 것입니다. ㅎㅎㅎ.

   

한국에서 주목할 대학교? 말씀한 대로 국민대학교가 앞으로 유망할 수 있습니다. 국유본 인물로 간주할 수 있는 이재오, 손석희, 김두관 라인이 있고, 국민대학교 총장들이 굉장히 정치적인 인간들이어서요.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이들이란 전시장 효과일 수 있는 겁니다. 동문 선배 중에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다 잘 나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몇 사람만 국유본에게 선택당해서 잘 나갈 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지연, 학연, 군대연을 무시할 수 없지만, 국민대 학맥이 만일 국정 요직을 독차지한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고려대 학맥이 많이 해먹는다 해서 문제인데요. 과거에는 부산상고 학맥이, 목포상고 학맥이 해먹는다 이런 말 나오고요. 아, 그리고 상고도 과거에는 오늘날 특수고와 비슷했어요. 인드라가 다닐 때도 공고와 상고는 좀 달랐습니다. 상고 커트라인이 높았거든요. 빨리 사회에 나가서 돈 벌고 싶은 이들이거나 은행에 가고자 하는 이들이 가려고 해서요. 엘리뜨 학교였다고 봅니다. 요즘에 이우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이런 데요. 난 이런 이우학교 같은 학교를 대안학교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귀족 학교입니다. 자신을 진보적 인사라고 하면서 자식을 귀족 학교에 보내는 자들은 인드라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교육 운운하면 줘패버리고 싶습니다. 다만, 진보좌파 말하지 않고 이우학교를 보내면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귀족 학교에 보내서 인맥 형성하려고 하는 차원이니까요. 그건 인지상정이니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지가 돈 많아서 비싼 돈 들여서 자식들 귀족 수업 받겠다는데, 자식들 둔 입장에서 이해못할 바 아닙니다. 인드라도 돈이 많으면 보낼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요. 인드라는 이제 진보좌파도 아니니까요. 보수우파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드라가 혹 아이를 이우학교에 보내면 그 다음부터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입 닥치겠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이우학교? 그래, 이우학교 같은 귀족 학교 보내니 돈 많아서 좋네, 씨발. 이렇게 욕질이나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드라 입장은 매우 과격합니다만, 인드라가 교육 문제를 거론하면서 왜 내 돈 들여서 국유본이 원하는 세뇌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뭐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나타샤가 매우 슬퍼합니다. 이론을 현실에 대입시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인드라가 이 대목에서 문체를 약간 달리한 건 님이 고삼이라고 자신을 밝혀서 그래요. 공부 열심히 하고, 남은 기간 동안에는 인드라 블로그 출입을 자제하길 바랍니다.

   

   

He War:

   

제가 요즘 궁금해하는 것들인데요. 시간나시면 읽어주세요. http://blog.naver.com/twins4767/140735152

   

인드라:

   

"로버트 볼드윈(90)은 70년대 중반부터 83년까지 모건스탠리를 이끌었다. 당시 한 임원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볼드윈은 늘 일방적으로 말했고 남 앞에서 폼 잡으려고 했다"며 "그는 황제처럼 모건스탠리를 다스리려 했다"고 증언했다. 볼드윈 치세 동안 모건스탠리는 가장 공격적으로 비즈니스했다. 자기자본을 주식·채권·파생상품에 베팅했다. 증권 세일즈 부문을 설치해 증권시장의 새 주역으로 떠오르는 각종 펀드에 주식과 채권을 팔아 많은 수익을 거둬들였다. 모건스탠리는 볼드윈의 지휘 아래 10배 이상 성장했다.

   

이런 볼드윈의 위세와 공적도 80년 더블딥(이중 침체) 앞에서 무너졌다. 당시 미국과 유럽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지고 남미엔 외채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극도의 불확실성에 휘청거렸다. 볼드윈은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증권 인수와 트레이딩 부문 사이에 갈등도 불거졌다. 결국 볼드윈은 83년 축출되다시피 모건스탠리를 떠나야 했다. 절대권력의 몰락은 힘의 공백과 내분을 초래하는 법이다. 로버트 그린힐 등 2인자 그룹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내분은 회사 위상을 추락시켰다. 모건스탠리는 투자은행 정상의 자리에서 2위 그룹으로 밀려났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8771

   

론 처노의 금융 제국 JP모건을 읽다가 느낀 의문점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따르면, 로버트 볼드윈은 궁정 쿠테타를 감행했다. 이런 대목들을 여기저기에서 가져와서 분석한 결과 인드라가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의 국유본 권력교체가 국유본 귀족 반란, 즉 궁정 쿠테타임을 추론한 것이다.

   

이를 전제하고, 책에 의하면, 로버트 볼드윈은 대공황파(노비네파)가 완고하게 자리잡은 모건스탠리에서 1960년대말부터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는데,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던 로버트 볼드윈이 1970년대에 이르면서 대활약을 펼친다. 왜? 이미 1973년 이전부터 국유본 귀족들의 반란이 시작되었고, 이는 여기저기서 조짐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로버트 볼드윈이 1983년까지 모건스탠리를 황제처럼 지휘했다는 데서 로버트 볼드윈이 뉴라이트파임을 알 수 있다. 카터레이건이 뉴라이트파이니까.

   

이때, 중요한 건 막바지에 로버트 볼드윈이 실적 부진으로 물러났다는데, 이것은 겉으로의 명분인 게다. 신자유주의 기법상 제 3세계에 꿔 준 돈은 일타삼피 목적으로 준 돈이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외채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걸 명분삼아 세계 경제를 돌리려면 국유본 은행 책임자 누군가도 총대를 매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정교한 국유본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지난 서브프라임모기지, 리먼사태서부터 최근 유럽 재정위기까지 모두 본질이 놀랍도록 같다.

   

   

"왜 데이비드 록펠러는 투자은행이 아닌 상업은행에서 일했는지 궁금합니다(빅터의 눈치를본 건가요??)  마지막으로 제이 록펠러는 투자은행을 2선으로 후퇴시키고 헤지펀드와 국부펀드를 내세우기로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먼스와 UAE의 아부다비토후국이 운영하는 아부다비투자청과 맨시티를 인수한 UAE대통령의 이복동생 만수르도 제이 록펠러가 밀어주게 될 것인지 쓸데없이 궁금해서 두서없이 적어봅니다.ㅋ "

   

데이비드 록펠러가 상업은행에서 일한 것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본다. 미국 투자은행이 지금이야 전통적인 증권 인수 부문외에 거의 모든 분야에 투자가 가능하지만,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에는 그러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자통법 이전의 국내 증권사 정도 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가 본격 열린 오늘날에야 증권사가 잘 나가지만, 과거에는 은행이 금융업에서는 알짜 기업이었다. 이것만 생각해도 된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제임스 사이먼스는 인드라가 주목하는 퀀텀 펀드인데, 지난 도이치 옵션 테러 사건 때 범인이 아니냐 의혹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인드라 분석으로는 뉴라이트파인데, 골드만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번 글에서는 이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나중에 분명 말할 기회가 오리라 본다.

   

국유본 은행이 2선으로 물러나고 헤지펀드와 국부펀드가 나선다고 했을 때,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겠는가.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해 유럽 은행들은 레버리지(차입) 규모를 대폭 줄여서 자기자본 확충을 꾀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 빈 공백을 누가 메꿀 것인가, 하면 당연 헤지펀드와 국부펀드인 게다. 실제로 유럽 자금이 빠진 곳을 중동, 일본, 중국, 미국 자본으로 메꾸어지는데, 이때, 상당수 자본들이 사모펀드와 같은 헤지펀드이거나 국부펀드이다.

   

이중 국부펀드만 본다면, 세계 7대 국부펀드 상당수가 노비네파이지만, UAE 쪽은 뉴라이트파로 볼 수 있다.

   

인천소방 :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1743938

   

   

인드라 :

   

재미있는 시도이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인드라도 도표를 만드려고 준비중이었다. 비단 인드라 뿐만 아닐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아직 많은 분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아는 분야에서는 정확할 수 있지만, 모르는 분야에서는 부정확할 수 있다.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면 이런 대목일 것이다.

   

해서, 앞으로 이러한 도표들을 많이 만들어서 발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러다 보면, 서로 공통분모가 나타나고, 나름 객관적인 도표를 작성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전제하고, 인드라가 몇 가지 달리 생각하는 대목을 말씀드린다.

   

하나, 인드라는 현대기아자동차를 뉴라이트 게열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 계열사 중 노비네파는 현대그룹뿐이라고 보고 있다. 인천소방님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노비네파로 보는 이유가 궁금하다. 월마트 같은 곳이 골드만파가 아니겠나 보고 있다.  산탄데르는 뉴라이트에 많이 경도한 상황으로 본다. 더 많은 기업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리라 본다.

   

둘, 이회창은 노비네파이다. 이정희는 골드만파가 아니다. 인맥상 뉴라이트와 가까운 편인데, 정동영 쪽과 가까워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모르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뉴라이트 정동영 노선이라는 것만 고려하면 뉴라이트이다. 한국 주요정당은 모두 뉴라이트가 장악하고 있다. 한나라당, 쪽발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모두 말이다. 최근 자유선진당에서 내분이 일어났는데, 이 역시도 이회창이 노비네파인 반면 새로운 주류세력이 뉴라이트여서 혼선이 있는 것으로 본다. 오세훈도 뉴라이트이다. 전반적으로 인천소방님이 노비네파에 관심이 많아 뉴라이트파와 골드만파 정보에는 미진한 면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최근에 형성된 분파이기도 하니 인천소방님만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인드라 역시도 많이 정보가 부족하다. 해서, 좀 더 많은 분들이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북한 정권을 고려하면, 김일성은 박정희처럼 빅터 로스차일드파인 반면, 김정일은 노비네파인데, 최근 뒈지지 않기 위해 뉴라이트에 아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연예인에 대해서는 인드라가 잘 모른다. 다만, 아이돌 기획사 정도는 분간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수만은 노비네, 박진영은 뉴라이트, 양현석은 골드만이다. 타블로가 양현석 기획사에 들어갔으니 골드만파이다. 스탠퍼드대학이 뉴라이트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골드만파 대학이라고 잠정적으로 본다. 아울러 이영애는 노비네파이고, 신민아는 뉴라이트가 확실한 것으로 본다.

   

SBS는 뉴라이트이다. 쪽발 MBC는 노비네파였는데, 쪽발 놈현 정권 이후로 뉴라이트로 바뀌었다. 쪽발 한걸레가 노비네파인 반면 쪽발경향은 뉴라이트이다. 프랑스 언론 중 르 피가로나 르 몽드 모두 뉴라이트이다. 반면 리베라시옹은 노비네파이다.

   

셋, 한국 기독교 주요 계파인 장로교가 모두 노비네파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이명박이 개신교도인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가톨릭처럼 뉴라이트 개신교가 있고, 노비네파 개신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경우 남부 침례교가 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넷, 특정 국가나 지역이 뉴라이트이냐, 노비네파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 가령 한국은 노비네파와 뉴라이트파가 교대로 정권을 잡은 셈인데, 이 경우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로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 이명박 현 대통령이 뉴라이트파라고 해서 대한민국을 뉴라이트 국가로 확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섯, 시중은행만 고려하자. 국민과 산은, 우리은행은 정권따라 바뀌는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쪽발 놈현 때부터 작업을 해온 데다 유럽계 자금이 급격히 빠지는 추세에서는 뉴라이트 은행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즉, 차기 정부가 누가 되든 사람만 바뀔 뿐, 뉴라이트 은행일 가능성이 크다. 가령 최근에도 우리은행은 뉴라이트 RBS와 커버드 본드 협약을 맺었다.

   

론스타, SC제일은행, 신한은행이 확실한 노비네파이다. 문제는 하나은행이다. 김승유 하나회장은 뉴라이트파에 가까운 인물이나 이번 외환은행 인수에 참여하면서부터 HSBC(론스타의 뒷배경임)와 유착관계를 이루고 있다. 해서, 인드라는 아직까지 하나은행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뉴라이트였는데, 근래 노비네파가 된 것이 왜인가. 외환은행 인수 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인가. 바로 그렇다면, 예서, 논란 여지가 있는 셈이다. 특정 분파에서 다른 분파로 말을 갈아탈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산탄데르 은행과 하나은행의 행보는 충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할 수 있다. 이는 국유본 조직 구조상 매우 중요한 이슈일 수 있다. 즉, 분파를 자유로이 선택한다는 것과 한번 정한 분파는 바꾸지 못한다는 것 사이에는 인드라 조직론적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라고 본다.

   

   

국제유태자본과 하와이 국유본론 2011

2011/10/21 07:11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814355

   

   

   

국제유태자본과 하와이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1

   

CIA :

   

하와이는 전반적으로 로스차일드계의 세가 강한 것으로 보임. 의견 부탁.

   

인드라 :

   

아마도 백태웅 하와이 건 때문인 듯싶다. 국유본이 백태웅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크게 써먹으려고 준비중인데, 김일성대학 교수와 한 지역에서 같이 있으면 괜한 오해거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뉴라이트 백태웅을 하와이로 보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하와이대학에는 서대숙이 있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연결할 수 있으니 박경애까지 두루 연결하는 셈이다. 서대숙은 누구인가. 한국 학자로는 처음으로 기존 정통론자 입장인 북 정권 김일성이 가짜 김일성이 아니라 만주 여러 김일성들 업적을 가로챈 것이 있을 지라도 김일성 중의 하나라는 수정론자 입장을 내놓은 뉴라이트 학자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서대숙이 노비네파가 아니라 뉴라이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혹은 625전쟁은 스탈린 지시를 받은 김일성이 오판한 침략 전쟁이다, 라고 보는 것이 전통론자 관점이자 노비네파 관점이라면, 서대숙은 브루스 커밍스처럼 내재적 관점에서 내전이다, 이런 식으로 수정론적 입장이자 뉴라이트파 관점인 게다. 실제로 이런 수정주의 학자들이 삼각위원회에 있고, 내한도 많이 했다.

   

하면, 뉴라이트파는 왜 수정론적 입장을 갑자기 내놓았는가. 좌우 이념 구도를 근본주의/지역주의 구도로 전환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자, 이런 점을 뒤로 하고. 하와이.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한 하와이이기도 하다. 우선 근대 이후 한국 최초 집단 이민 지역이라는 점만 생각한다면,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 이야기

http://cafe.naver.com/forstudy7.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79&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2&docId=47613572&qb=MTgyMOuFhCDrs7TsiqTthLQg7ZWY7JmA7J20&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1&pid=gqu68F5Y7uRssa7jUXNssc--439301&sid=TqBmunI3oE4AAEWkGkU

   

해서, 하와이가 국유본 분파 중 어느 분파가 지배적인가를 논하면서 자연스럽게 왜 한국인이 최초로 하와이에 이민을 가야 했는지, 또 하와이가 오늘날 한국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여러 모로 유익하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시작하겠다.

   

인드라가 인물이나 조직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하와이를 분석한다면, 하와이의 역사, 하와이와 주변국들간의 관계, 하와이 경제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본다는 것이다.

   

첫번째,  하와이 역사이다.

   

"최초의 하와이인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점차 남쪽과 동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이들은 솔로몬과 피지, 그리고 마침내는 뉴질랜드를 기점으로, 동쪽으로는 이스터 섬, 북쪽으로는 하와이 제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3각형의 폴리네시아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 문화권 안에는 사모아, 통가, 타히티, 마르케사스 등의 제도들이 포함되며, 이들 섬들은 오래 전부터 서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와이 비숍 박물관의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하와이 제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마르케사스 섬(타히티의 북동 지역)에서 쌍둥이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서기 750년경에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후 서기 1000년경에는 타히티와 소시에테 제도의 다른 부족들이 하와이로 이주해 와 인구가 늘어났다. 이들은 이미 살고 있던 부족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대 하와이 사회를 형성하였다. (이하 하와이 역사 인용은 네이버 지식인 검색 결과임.)"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9&dirId=9020201&docId=74396904&qb=7ZWY7JmA7J20IOyYgeq1rQ==&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p9KyU5Y7udssvoOjsossc--005318&sid=Tp8lufLlnk4AACIPF4M

   

인드라가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가본 박물관 중 하나가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이다. 인근  박물관들을 합쳐 달렘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소장 규모가 큰 박물관 중 하나여서 대영박물관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베를린을 여행지로 택했다면 한번쯤 가볼 만한 곳으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더 나아가 대영박물관보다 더 인상적인 유물이 있었으니 폴리네시아 유물이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48800

   

대영박물관이나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을 둘러 보면, 한편으로 식민지에서 정말 많이 유물을 빼앗아왔구나, 하며 절로 한숨이 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 후손들도 보존하지 않았을 유물들을 정성껏 관리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 말로 제국의 향기인가?하고 아무나 제국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해주기도 하여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때, 폴리네시아 진열관을 보면서, 왜 폴리네시아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독일과 폴리네시아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폴리네시아가 그리 중요한 지역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 의문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풀 수 있었다.

   

왜 폴리네시아인가.

   

"육지 총면적 약 2만 6000 km2. 폴리네시아란 '많은 섬들'이라는 뜻이다. 육지면적은 작으나 섬들이 분포하는 해역은태평양의 거의 반을 차지하며, 서부의 엘리스 ·통가 ·사모아 ·토켈라우 ·피닉스 제도(諸島), 중부의 쿡 ·라인 제도, 남동부의 투부아이 ·소시에테 ·투아모투 ·마르키즈 제도, 북부의 하와이 제도 및 남동쪽 끝의 이스터섬 ·살라이고메스 제도, 남서단의 뉴질랜드섬 등이 포함된다.

   

폴리네시아의 낮은 섬들은 대부분 산호초이고 높은 섬들은 거의가 새로운 현무암 화산이다. 폴리네시아는 전체가 대체로 균일한 기후를 나타내는데, 대부분의 섬들이 남동 무역풍영향권에 속하여 높은 섬들의 바람받이에는 강수량이 많아 삼림이 무성하고 바람그늘에는 강수량이 적다. 또 바람그늘 쪽에는 강수가 없는 경우가 꽤 많아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도 적지 않다.

   

광대한 해역에 섬들이 산재하지만 주민은 폴리네시아인(人)으로서의 현저한 동질성을 보여, 남서단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族)의 언어가 오늘날에도 최북단 하와이의 카나카족에게 통한다.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북부(하와이)는 미국, 서부(사모아 ·통가 ·피닉스 ·쿡 등)는 영연방 제국, 동부(소시에테 ·투부아이 ·투아모투 등)는 프랑스, 그 동쪽(이스터 등)은 칠레에 의해 관할되어 왔으나, 근래에는 사모아(1962.1) ·통가(70.6) ·투발루(엘리스 제도, 78.10) 등의 독립국도 생겨났다.

   

폴리네시아인은 형질적으로 꽤 명확한 단일 인종을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남녀 모두 큰 키(167.5174.8 cm)에 당당한 체구를 지니며, 피부는 밝은 갈색이고 모발은 직모(直毛) 또는 파상모(波狀毛)이다. 지적 수준은 오세아니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폴리네시아 서부, 즉 통가 ·사모아에서는 멜라네시아인(人)과의 혼혈이 꽤 두드러지나 동부로 옮아가면서 폴리네시아인으로서의 순수성이 높아진다. 폴리네시아인이 아시아에서 옮겨간 것은 기원전 수세기 때이며 그 후 10여 세기 사이에 폴리네시아 전역에 분포되게 되었다.

   

카본데이팅(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측정)에 의한 폴리네시아인의 거주증거는 가장 오래된 것이 르키즈의 BC 150년경으로 추정되고, 이스터섬이 4세기경, 하와이가 9세기, 뉴질랜드가 14세기경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수세기경에 동남아시아해안지대에서는 일부 벼농사가 영위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역시 타로감자 재배와 어로가 생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문화사적으로는 하크경(耕:Hackbau)의 문화단계인데, 폴리네시아인은 그와 같은 문화를 가지고 바다를 건넜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아우트리거의 배나 더블카누로 널리 태평양을 항행하고, 하늘을 32등분한 해도를 사용한 해상민족이었다.

   

사회적으로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에 비해 한층 엄중한 신분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부계(父系)를 원칙으로 하며 토지의 상속은 모두 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점에서 멜라네시아(특히 뉴기니와 폴리네시아의 중간)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토지소유 형태를 예로 들면 일반적으로 말단의 경우 가족의 장(長)이 토지를 소유하나, 다시 씨족이나 부족의 장(長)이 중층적(重層的)으로 토지지배의 권한을 가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족의 장이 토지를 소유하되 그것은 근대적인 토지 소유의 개념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큰 친족집단(부족)에 속하는 토지의 일부를 일정한 관습적 상속권에 의해서 관리하는 데 불과하며, 따라서 토지 사용권을 소유하는 데 불과하였다.

   

식민정책의 결과로, 또는 세계경제와의 관계가 밀접해지는 데 따라 가족 중 평민 남자로서 자신의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는 자가 각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대로 자유로이 토지를 처분할 수는 없다. 결국 공동체적 토지소유에서 개인적 토지소유로의 발전도 근대적인 의미의 법적 근거에 따른 자유로운 개인소유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편, 법적인 근거에 의해 개인적 토지소유제로 전면 개편된 하와이나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의 토지가 거의 외래 플랜터(농원주)의 수중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본래 폴리네시아의 토지소유는 부족장으로부터 씨족장에게, 다시 씨족장으로부터 가족장에게 할당된 것이어서 부족장, 씨족장, 그리고 가족장은 각각 대추장(大酋長), 고위 추장, 보통 추장이라는 신분에 해당되어 사회적 신분관계가 엄격하였다. 그리고 하와이의 카메하메하 왕조나 타히티의 포마레 왕조와 같이 근세 유럽인이나 유럽 무기의 힘을 빌려 다른 부족을 정복해서 일종의 봉건국가를 형성하기까지에는 초(超)부족적인 통일국가의 형성이 불가능했다.

   

통가에서는 10세기경 투이통가라고 일컬어진 성스러운 왕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으나 그 정치적 영역은 통가타푸섬 내부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 통가 제도 전체를 초부족적으로 지배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 사모아에서는 19세기 중엽까지 몇 개의 왕가(부족장의 가계)에 의해 각자의 영역이 통치되어 오는 동안에 부족간의 싸움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으나,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는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외국 세력의 간섭에 의해서 비로소 명목상의 통일국가가 성립되었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상술한 바와 같이 주민의 사회적 지위가 대추장 ·고위 추장 ·보통 추장 ·평민이라는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밖에 추장에게는 반드시 몇 사람의 대판추장(代辦酋長)이 딸려 있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대판추장은 추장을 대신하여 지방이나 읍 ·면을 다스리거나 추장을 보좌하는 일을 맡는데, 대판추장도 계층구별이 있다.

   

일반적으로 추장의 지위에 있는 자는 대단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대변인의 역할을 대판추장이 맡았다. 또 추장에게 부수된 권위는 자연히 추장으로 하여금 아랫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 금령(禁令)을 발하게 하여 행동을 제약하여 왔다. 이것이 이른바 '타부(tabu/tapu)'로, 추장의 보이지 않는 마력(魔力), 즉 '마나'의 발현이다. 터부(taboo)란 말은 타부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폴리네시아인의 종족국가는 마나적 ·신권적(神權的) ·터부적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

[출처] 폴리네시아 [Polynesia ] | 네이버 백과사전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전 세계로 퍼졌는데, 인류가 가장 늦게 도착한 지역이 폴리네시아 지역인 게다. 인류가 가장 늦게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도 그 시기가 최소한 13,000년 전이다. 반면, 폴리네시아에서 발견한 최초의 사회는 아무리 많이 잡아야 고작 3,200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하나, 인류 중 가장 멀리 간 인류가 폴리네시아인이다. 또한 도망쳐 달아난 것이든, 모험한 것이든, 인류 중 가장 먼저 세계의 끝에 도달한 이들이다. 이는 유럽인들이 근대 이후 두번째로 폴리네시아에 도달하였기에 유럽인들에게는 남다른 것이다. 즉, 이들 폴리네시아인과 유럽인들을 비교해보고 싶은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대표적인 저작이다. 소극적으로는 유럽인들의 폴리네시아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고 싶을 것이다. 능동적으로는 폴리네시아인과 유럽인의 공통 분모를 발견하여 진취적인 인류상을 찾아서 이를 퇴보하지 않고 발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둘, 폴리네시아인은 태평양과 섬이라는 지형 덕에 유라시아 대륙과 교류없이 격리한 채로 살아왔기에 인류학적인 분석 자료로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다.  민족학 = 인류학.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년 전 유라시아 대륙인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주는 셈이다.

   

셋, 인도네시아나 파푸아 뉴기니 같은 지역에서 보듯 이 지역은 향신료를 비롯한 자원 보고이다. 앞으로는 해상 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에서 자원 쟁탈 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다. 한편으로 이 지역에 사는 폴리네시아인을 연구한다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 인간은 환경에 상당히 좌우하므로 유럽인도 폴리네시아에 오래 살면, 풍토로 인해 현지화하므로 이 지역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 지역을 관리하기 위한 일인 게다.

   

이를 전제하고, 폴리네시아인은 왜 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는가.

   

이에 인드라는 이 방면 연구가들 가설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최초에는 아프리카를 건너 아시아로 간 이들 중에 일부는 인도를 거쳐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 루트를 통해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이다. 허나, 이들은 한꺼번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천 년 전까지 주기적으로 이 지역에 도달하였다. 왜인가. 북방 민족과 북방 민족에 내쫓긴 중국인 혹은 화인 덕분이다.

   

인류 중 보통 남방계라 불리는 부류는 해안가를 따라 인도 - 동남아 - 중국 남부로 해서 한반도와 일본, 알래스카까지 올라갔었다. 다른 한편, 인류 중 북방계라 불리는 부류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통과하여 몽골과 중국, 한반도와 일본, 알래스카에 도달하였다. 이들은 충돌하였는데, 상대적으로 문화 전파가 잘 이루어진 초원지대 북방계가 앞선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서 왕족과 귀족계급인 북방계와 노예 신분인 남방계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해서, 일부 남방계는 북방계를 피해 남하하였다. 

   

허나, 바로 이것이 훈족의 이동으로 게르만족이 이동하여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처럼 동남아 지역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딱히 없다. 다만, 삼국지연의를 통해 추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촉오 삼국시대 때 촉은 삼국 중 가장 세력이 약했다. 약한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제갈공명이 남진정책을 썼다는 구라를 펼치는 것이 삼국지연의이다. 허나, 이는 정말 구라다. (프라다가 아니라 구라다. 제갈공명은 프라다를 입지 않는다^^? 인드라 식 썰렁한 개그임.) 역사적 현실은 제갈공명이 남진했다해도 아무리 뻥튀기해봐야 그것은 오늘날 운남성이나 귀주성 정도라는 것이다.

   

http://blog.daum.net/yoont3/11300855

   

예서, 인드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런 일이 당나라 때도 그랬듯이 중국사에서 수시로 있었다면, 또한 '객가'에서 보듯 북방계를 피해 숱하게 남방계들이 강남으로 쫓겨 내려왔다면, 이들 남방으로 쫓겨온 '객가'가 낯선 땅에서는 어떤 존재였겠느냐이겠다.

   

이는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집트에서는 노예 생활하던 유태인들이 가나안에 이르러서는 가나안에 살던 이들을 어떻게 했나. 신의 이름으로 학살했다. 인종 청소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동남아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이다. 국유본이 마약 생산하랴, 향신료 생산하랴, 대거 중국 콜리들을 동남아로 끌어왔다. 헌데, 이들 중국인들이 비록 국유본 허락이 있었지만, 세계 3대 상인답게 동남아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해서, 결과는? 말레이지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원주민이 화교에 매우 적대적이다.

   

바로 이것이다. 중국과 만주, 한반도에서 북방계에게 내쫓긴 일부 북방계와 남방계는 일본과 대만, 필리핀, 동남아시아로 도망쳤을 것이다. 하고, 이들은 도망친 지역에서 무엇을 했겠나. 북방계처럼 똑같이 학살을 저지르고, 계급사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예외적인 것은 홍익인간을 주창한 한반도 만주 지역인데, 이들 지역에서는 북방계 남방계 신화가 공존하는 만큼 홍익인간 재세이화 공생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세계를 주도하는 국유본으로서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남방계가 인류가 왔던 족적을 되돌리며 동남아시아로 유턴을 하면, 동남아시아에 있던 족속들이 갈 곳이 어디이겠는가. 동남아시아에 남아 노예로 살든가, 아니면 인도로 가던가, 폴리네시아인 게다.

   

예서, 특기할 사안은 식인 문화이다. 풍랑을 견디는 등 악조건 속에서 카누에 의존하여 섬으로 탈출한 폴리네시아인이다. 이들은 조상을 따지면 다 같은 한 조상이다. 언어로 따지면, 폴리네시안 언어가 대만이나 중국 동남 해안 출신 언어와 유사하단다. 헌데, 이들은 백 년만 떨어지면, 심한 방언 탓에 다른 족속으로 여긴다는 게다. 즉, 같은 족속이라도 먼저 섬에 도착한 폴리네시안이 섬에 적응하여 야만화하면, 백 년 뒤 쯤에 나중에 섬에 도달한 폴리네시아인이 한계 상황에서 식량 부족 해결과 난관을 헤쳐가는 영성을 획득하기 위해 먼저 도착한 폴리네시아인을 동물로 간주하여 사냥하고 식인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먹어치운다는 것. 잔인하고, 끔찍하다. 다만, 같은 족속에서 출발한 인간이 포유류나 생선류를 섭취하는 것을 볼 때, 진화론적 사슬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신이 예비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벤처기업이 많은 고생을 하며 기술을 개발하여 성취를 맛보지만, 이내 이는 재벌의 사냥감이 되고 만다. 허나, 그 재벌 역시 국제유태자본이 요리하는 것이다.

   

예서, 국제유태자본의 음모를 파헤치는 음모론이 국제유태자본을 깨부순다?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프리메이슨론, 일루미나티론, 예수회론, 엘리트론, 외계인론 등 숱한 음모론들을 죽이고서야 생존 길이 열린다고 보는 것이 인드라요, 국제유태자본론이다.

   

" 선장의 하와이 제도 발견

이러한 하와이 제도의 잠을 깨운 것이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다. 쿡 선장은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 소시에테 섬의 북쪽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리졸루션(Resolution),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두 척의 영국배를 가지고 항해를 시작했다. 1778년 1월 18일, 그는 멀리서 오아후 섬을 발견했으나, 역풍이 부는 바람에 배가 서쪽으로 밀려가, 이틀 후인 1월 20일에 카우아이(Kauai) 섬의 와이메아(Waimea) 부근에 상륙하였다. 영국 해군의 샌드위치 공작 밑에서 복무했던 쿡 선장은 공작을 기리기 위해 그가 발견한 섬들에 대해 샌드위치 섬이라고 이름을 붙여 세계에 소개했다. 샌드위치라는 말은 공작이 샌드위치를 즐겨 먹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1850년대까지 하와이 제도는 샌드위치 섬이라고 불렸다. 선원들은 섬의 원주민들과 무역을 하기 시작하여 멜론, 호박, 양파와 같은 야채들이 섬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과정에서 임질과 매독 같은 무서운 전염병도 함께 전해져 하와이인들을 파괴시켜 갔다.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쿡 선장이 발견할 당시 하와이 제도는 인구가 30만 명 정도였는데, 80년 후에는 6만으로 줄었다고 한다.

   

쿡 선장의 죽음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고 있는 북서 항로를 찾아 항해를 계속하던 쿡 선장은 1778년 11월에 다시 샌드위치 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여러 섬들을 순항하다가 1779년 1월 16일에 하와이(Hawaii) 섬의 케알라케쿠아(Kealakekua) 만에 배를 정박시켰다. 그는 이곳에서 배를 수선하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은 후, 2월 4일에 북쪽으로 떠났다. 그가 떠나자, 그 동안 많은 식량을 빼앗겼고 두려움을 느꼈던 섬 원주민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3일 후, 쿡 선장의 배는 큰 폭풍우를 만나 앞돛대가 망가진 채 수리를 위해 다시 하와이 섬으로 되돌아왔다. 섬 주민들은 쿡 선장 일행을 더 이상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고, 선원들에게 대항하여 싸웠다. 디스커버리(Discovery) 호의 가장 큰 보트가 없어져 버린 어느 날 밤, 쿡 선장은 부하 선원들과 함께 마을의 추장을 붙잡아 사라진 보트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마을의 원주민들은 힘을 합쳐 추장을 구출해 내고, 그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에 다른 부족의 추장이 영국군의 대포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모여든 군중의 공격성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쿡 선장은 급히 철수를 지시하였으나, 충돌을 피하지 못하고 원주민의 단검에 찔려 죽었다. 그러한 혼란의 와중에 그의 배도 불타 버렸다. 하와이 섬의 원주민들은 싸움에서 숨진 많은 부족민들의 시신을 거두고 부상자들을 돌보았으며, 쿡 선장과 부하 네 명의 시신도 거두었다. 클라크 선장이 쿡 선장의 시신 일부를 케알라케쿠아의 만에 붙였으며, 나머지 부분은 싸움에 참가했던 다른 부족의 추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른 영국의 선박들은 2월 22일, 케알라케쿠아 만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갔다.

   

100년의 하와이 왕조

-카메하메하 대왕의 하와이 통일

카메하메하(하와이어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 재위 1795~1819년) 왕은 하와이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때에 있었던, 가장 강력한 지도자였다. 그의 출생은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하늘이 크게 갈라지면서 천둥 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멎자, 서쪽 하늘에서 꼬리를 길게 단 유성이 떨어졌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파에아라고 이름 붙여진 이 남자아이는 쑥쑥 자라 건강하고 힘도 세며, 무예에도 조예가 깊은 청년이 되었다고 한다. 쿡 선장이 발견할 당시, 하와이 제도는 각지에 사는 부족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컸던 것은 하와이 섬의 왕 칼라니오푸우(Kalaniopuu)였다. 카메하메하는 이 왕의 조카로, 어린 시절부터 그의 궁전에서 자랐다. 젊은 날의 카메하메하는 1778년과 1779년에 왕과 함께 쿡 선장의 배를 견학하였다. 카메하메하는 거기에서 서양 문명을 접하고, 현대적인 총포의 위력 앞에서 과학적인 지식을 배웠다. 1782년 칼라니오푸우 왕이 죽자, 카메하메하는 하와이 섬의 경쟁 부족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1790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으로 카메하메하는 케오우아(Keoua) 족을 제외한 전 부족을 통일하였다.

1790년, 그는 현대적인 무기와 두 명의 전 영국 선원의 도움으로 마우이와 몰로카이 섬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오아후 섬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케오우아 족의 침략 소식을 듣고 다시 하와이 섬으로 돌아왔다. 신의 도움이 필요했던 카메하메하는 전쟁의 신을 위해 카와이하에(Kawaihae)에 거대한 돌사원을 세웠다. 그후 마우이와 카우아이의 추장들이 큰 배를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카메하메하는 이들을 물리쳤다. 카메하메하가 이보다 더 큰 신의 도움을 받은 사건은, 불의 여신 펠레가 킬라우에아 화산을 폭발시켜 케오우아의 세번째 부대를 전멸시킨 것이다. 이후 케오우아는 카메하메하로부터 카와이하에 대사원의 봉헌식에 초청을 받아 왔다가 한 추장에게 살해되었다. 1794년 카메하메하는 마우이와 몰로카이를 탈환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오아후를 정복하였다. 이리하여 카우아이를 제외한 하와이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1795년, 그는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를 수도로 정하고, 스스로를 카메하메하 대왕이라고 칭하며 왕국을 수립하였다. 1810년에는 그 세력이 대단해져, 카우아이의 추장, 카우무알리가 싸우지 않고도 충성을 맹세해 왔다. 이렇게 해서 하와이 제도 전체를 제패한 카메하메하는 외국과의 교역을 시작으로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서구 문명의 영향 속에서도 그는 조상들이 섬겨 왔던 하와이 신을 숭배하고 풍습을 중요시하여, 섬 원주민들을 당혹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현명하게 식민지를 통솔하였다. 그리하여 1819년 5월 8일, 그가 죽을 때까지 하와이는 그의 탁월한 통치력 덕분으로 태평양의 많은 섬들 중 유일하게 독립된, 평화로운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국유본 덕분에 성공한 일본 메이지유신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 메이지유신은 국유본이 치밀하게 계획한 것인 반면, 하와이는 자연발생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이하메하는 영국 선원 덕분에 하와이를 재통일할 수 있었고, 왕이 되었다. 예서, 또 일본과 차이가 있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인은 쪽바리왕을 몰랐다. 즉, 쪽바리왕이란 국유본이 지시해서 유신정권이 만든 가짜인 게다. 어디서 근본이 없는 천박한 색희를 지금부터 쪽바리왕이다, 하고 임명한 것이다. 이것이 국유본 특유의 수법인 게다. 아편장사를 하다가 공산주의자에게 총맞아 뒈진 쪽바리 집안인 근본없는 천박한 색희, 김일성을 북조선 왕조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튼 1800년대 초반 하와이 왕국 현황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으니 하와이 국기인 게다.

   

   

   

"하와이 주기를 보면 참 재미나다. 바탕은 미국 국기인데 50개  별이 들어갈 자리는 영국 국기 모양이다. 1812년 하와이에 온 영국인 조지 밴쿠버 선장이 영국 여왕이 보낸 영국 국기를 카메하메하 대왕에게 선물하니 카메하메대왕은 영국국기로 다른 부락 정복을 표시했다. 그때로부터 하와이는 영국 국기를 국기로 삼았다. 그 후 1820년 미국 선교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미국인들이 힘을 키웠다. 미국인들은 거센 항의를 들이댔다. 하와이 정부는 영국이나 미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고 고안해 낸 것이 하루씩  미국 국기와 영국 국기를 번갈아 내걸다가 나중엔 아예 미국 국기와 영국 국기를 나란히 내걸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미국 국기와 영국 국기를 반반씩 넣어 국기로 삼았다."

http://kr.blog.yahoo.com/kinxun518/533

   

예서, 미국인이라고 나오는데, 이들은 누구였을까?

   

"1820년 3월 30일에 New England의 조합교회(Congregational Church) 선교사가 처음 하와이에 오게 됨으로써 기독교가 구체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1839년까지 총인구 13만 가운데 약 15,000명의 조합교회 교인이 늘어났다. 1835년에 Ladd and Co.라는 회사가 Koloa 사탕수수 농장을 Kauai 섬에 설립함으로 많은 농장들이 세워졌다. 그래서 1843년에는 미국인들이 실질적으로 하와이를 장악하게 된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2&docId=47613572&qb=MTgyMOuFhCDrs7TsiqTthLQg7ZWY7JmA7J20&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1&pid=gqu68F5Y7uRssa7jUXNssc--439301&sid=TqBmunI3oE4AAEWkGkU

   

   

"이들은 미국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새로운 가나안이라고 믿었으며,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되는 새로운 나라를 미국에 만들고자 주력하였다. 그 결과 미국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의 기반을 만들게 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A%8C%EC%A4%91_%EA%B5%90%ED%9A%8C

   

회중파 전도사 동향은 정치권을 앞선다. 1820년대이면 미국이 캘리포니아 주는 커녕 동부에서 텍사스 같은 지역으로 확장하던 시기여서 캘리포니아 주 편입을 꿈조차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 회중파는 하와이까지 진격한다.

   

헌데, 회중파 생각이란? 미국이 가나안이라고? 그렇다. 그 논리를 확장하면, 하와이도 가나안인 셈이다. 구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이란? 낙원 이미지도 있지만, 선민이 신의 뜻에 따라 행하는 인종 청소 이미지도 있는 것이다.

   

헌데, 회중파 전도사들은 앞장 서서 하와이까지 건너간 셈이다.

   

"-카메하메하 2세와 선교사의 영향

위대한 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남인 리홀리호(Liholiho, 카메하메하 2세, 재위 1819~1824년)가 왕위에 올랐다. 카메하메하의 총애를 받았던 왕비 카아후마누(Kaahumanu)는 그의 후견인이 되어, 스스로를 섭정여왕이라 칭하며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하와이 역사에 그녀가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1820년 미국의 보스턴으로부터 선교사단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영어로 교육을 시킴으로써 사람들은 영어를 학습 문자로 갖게 되었다. 기독교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있었던 카아후마누는 전통적인 관습이나 카푸(Kapu)라고 불리던 인습적인 계급제도를 비판하며, 마침내 카메하메하 2세로 하여금 이 제도를 폐지하게 하였다. 선교사들은 이 계기를 놓치지 않고 기독교 종교개혁운동을 펼쳤고, 일부 과격파에 의해서 성전과 많은 우상물들이 파괴되었다. 이로써 하와이 문화는 종교와 섞이게 되었고, 이것은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 혼란을 가져왔다. 외래인들로 인하여 서구 사상이 하와이에 들어오기 전까지 카푸 제도는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 100년 이상이나 전해져 오던 것이었다. 그것은 이 제도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또한 잘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824년 카메하메하 2세와 그의 부인 카마말루(Kamamalu)는 영국 국왕 조지 2세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했는데, 홍역에 걸려 그해 7월에 죽었다. 그들의 시신은 바이런 경이 진두지휘한 영국 군함에 실려 하와이로 되돌아왔다.

   

-카메하메하 3세

1824년, 카메하메하 2세의 뒤를 이어 나이가 10살이나 어린 동생 카우이케아오울리(Kauikeaouli)가 9살의 나이로 카메하메하 3세(재위 1824~1854년)가 되었다. 카메하메하 3세가 통치하던 30년간은 하와이 왕조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린 시대였다. 그는 1840년에 헌법을 공포함으로써 하와이가 전제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의 기강을 확립해 나갈 수 있게 했으며, 토지제도개혁(1842년) 등 국가 체제의 정비에도 노력하였다. 1850년에 그는 수도를 마우이의 라하이나에서 오아후의 호놀룰루로 옮겼다. 경제의 중심은 백단향 채취와 고래잡이에서 온난한 기후를 이용한 사탕수수의 재배로 옮겨갔다."

   

 "UA MAU KE EA O KA AINA I KA PONO(우아 마우 케 에아 오 아이나 이카 포노; The life of the land is perpetuated in righteousness; 대지의 생명은 정의 가운데 영원히 존재한다) 유래: 1843년 카메하메하 3세 때 호놀룰루 주재 영국 영사와의 사이에 토지문제와 부채문제로 분쟁이 있었음 당시 영국의 조지 포레트(George Paulet) 경이 군함으로 내항하여 카메하메하 3세를 굴복시키고 하와이 왕조국기를 내리게 한 후 영국기를 게양하여 하와이를 영국령이라고 선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843년 2월) 그 후 5개월 후인 1843년 7월에 영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리처드 토마스(Richard Thomas)경이 와서 카메하메하 3세의 복위를 인정할 때까지 5개월간 하와이는 비공식적이었지만 영국령이 되어 영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1843년 7월 31일 하와이 왕조가 복원되었을 때 카메하메하 3세가 "대지의 생명은 정의에 의해 보존된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이 바로 하와이 왕국, 하와이 공화국, 하와이주(州)의 표어로서 계승되어 온 것입니다."

http://www.callupcard.co.kr/cummunity/bbs_view.html?BCode=cummu_board_4&page=1&uid=4&type=1&viewtype=2&sm=4

   

1840년대 유럽은 1848년 2월 혁명으로 대변하는 혁명의 시대였다. 예서, 참고해야 할 것은, 1830년 7월 혁명이나 1848년 2월 혁명이나 혁명 주체 세력이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 즉, 국유본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개입하지 않는다. 만일 개입하였다면, 1848년 2월 혁명은 성공했을 것이다. 이처럼 로스차일드 가문이 혁명만 있으면 다 지원한 것이 아니다.

   

1843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영국 군대가 하와이를 점령함에도 불구하고 영국 군대가 물러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1843년은 로스차일드의 미국 지부인 조지 피바디 상회(런던) 설립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하와이를 둘러싸고 영국, 프랑스, 미국이 영토 분쟁을 한다면, 로스차일드 가문 의중을 따라야 했던 것이다.

   

인드라가 볼 때, 로스차일드 가문이 하와이를 미국으로 넘긴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당대 영국 해군이 세계 최강이었지만, 반면 영국 육군이 매우 허약했다. 해서, 영국 군대는 일시적으로 특정 지역을 장악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해당 지역을 오래도록 통치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영국 해군은 중국에 집중해야 했다.

   

해서, 이 모양새는 일부 반발하는 국유본 귀족들을 잠재우고, 미국에 관해서는 훗날을 기약한 셈인 게다.

   

-- 술을 많이 먹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오늘은 여기까지.

   덧글 달지 않아 미안합니다만, 이 시리즈가 끝나고, 선거가 마칠 때까지

   덧글놀이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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