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이 한국의 박정희라면 미테랑은 한국의 쪽발돼중이다 국유본론 2011

2011/10/19 06:2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647764

   

   

   

   

   

   

   

   

드골이 한국의 박정희라면 미테랑은 한국의 쪽발돼중이다

대안이고자 한다면 물타기를 하지 말란 말이야~!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0

   

   

드골이 한국의 박정희라면 미테랑은 한국의 쪽발돼중이다

   

중도좌파 박정희 집안은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반골 집안이다.

   

http://blog.daum.net/jnhojn/13

   

 http://blog.chosun.com/hansu0001/2152667

   

국내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인드라한테 가장 많이 까인 정치인을 들라면 프랑스의 쪽발돼중, 사회당 대통령 미테랑이다. 미테랑은 2차례(1982~95)에 걸쳐 대통령을 지냈다. 미테랑이 대통령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데이비드 록펠러 힘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하면, 왜 데이비드 록펠러는 미테랑을 대통령에 임명하였을까. 미테랑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유럽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는 독일과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국유본이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아시아 연합을 주장했던 쪽발 돼중을 필요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여, 1991년 12월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주요 내용으로 한 마스트리히트 조약 수립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간 한국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던 자들이 대체로 쪽발 돼중 지지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모델로 삼은 국가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친독파 청산을 잘 해서 선진국이 되었으니, 한국도 그리 하자는 게다.

   

헌데, 그리도 친독파 청산을 잘 한 프랑스가 미테랑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테랑 이야기하면 쪽발 돼중 추종자들은 척하니 알고 왜 그딴 이야기를 하느냐,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미테랑 나쁜 점만 지적하느냐, 누구누구는? 하면서 물타기를 엄청나게 시도한다. ㅋㅋㅋ. 이처럼 프랑스나 한국이나 사정을 알면 복잡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드라는 한 넘만 패는 게다. 이것이 인드라가 강준만한테 배운 것이다~! 해서, 그대들은 물타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것이 인드라가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니까^^!

   

미테랑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후 나치에 협력한 비시 정권의 관리를 지냈다. 그러다가 1943년에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고, 1944년 8월 파리가 해방된 뒤 샤를 드골의 임시정부에서 일했다. 1971년 사회당 총재가 되었고, 1981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헌데, 미테랑 친독 행위에 대해서는 독일군 점령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던 부역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 게다~! 허나, 정말 그럴까?

   

근래 '호모 파시스투스'란 책이 출간했다. 이 책은 필리프 페탱의 비시정부에서 장마리 르펜의 민족전선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파시즘적 전통이 이탈리아산 수입품이 아니라 자생적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대중독재론자인 김용우는 그 증거로 1925년 창설된 '페소'와 1927년 창설돼 1936년 '프랑스사회당'으로 변신한 보수적 민족주의 단체 '불의 십자가'를 제시한다.

   

예서, 흥미로운 대목이 미테랑이다. 1934년 17세의 학생이었던 미테랑은 당시 최대의 급진적 보수주의 세력이자 인민전선 정부의 강력한 경쟁 세력이었던 라 로크의'불의 십자가' 에 가담했고, 그 다음 해에는 이민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1941년 겨울 독일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미테랑은 비시 정권에 투신하여 페탱의' 민족혁명' 노선의 첨병 노릇을 한' 전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테랑은 비시 정권에서 최고 훈장을 받았다. 또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비시정권 패탱에게 계속 꽃다발을 바쳤으며, 비시 정권이 저지른 유태인 박해에 대해 프랑스 국가 책임으로 인정하는 것을 계속 거부했다.

   

하면, 인드라가 그간 줄곧 미테랑을 깐 이유는 무엇인가.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이었다. 미테랑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에 나선다.

   

"1979년 은행 회장 직에서 은퇴한 그는 19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의 은행을 국영기업으로 바꾸자 또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그는 "페탱(비시 정부의 지도자) 아래에선 유대인, 미테랑 아래에선 최하층민"이라며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 로스차일드의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큰아들 다비드와 사촌 에릭은 1984년 사회당 정부로부터 새로운 은행 설립 허가를 받았다. 단 로스차일드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파리 오를레앙 은행'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http://news.donga.com/3//20070616/8455011/1

   

하면, 인드라가 왜 이 사건에 주목하는 것일까.

   

"인월리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패배한 후 세계 로스차일드 가문 주도권을 프랑스 로스차일드에게 넘겼다고 한 바 있다. 해서, 프랑스 대통령을 살펴보기로 하자. 프랑스 대통령하면 뭐니뭐니 해도 프랑스의 박정희, 드골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로스차일드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행동했던 드골이었다. 허나, 프랑스의 박정희, 드골은 막상 대통령이 되자 영국에 대항한 유럽대륙 자주노선을 천명하며, 그 유럽의 중심에 프랑스를 내세우는 나폴레옹 노선으로 간다. 하여, 유럽연합을 추진하던 빅터 로스차일드는 드골을 제거하는 공작에 착수했다. 하여, 프랑스 유일의 진정한 대통령, 드골은 로스차일드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이후 1970년대 ~ 1980년대 당시 프랑스 정치권은 영국 로스차일드 (미테랑) 대 프랑스 로스차일드 (퐁피두, 지스카르데스탱) 대결 구도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미테랑이 집권하자 미테랑이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을 폐쇄했다가 결국 나중에 개망신 당하게 되어서 두고두고 인드라에게 까이게 되는 신세가 된 게다.

   

국유본은 국유본에 반기를 든 드골을 하야 공작을 통해 물러나게 한 후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 밑에서 일하던 퐁피두를 대통령으로 임명한다. 헌데, 퐁피두는 갑작스레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지스카르데스탱이 대통령이 된다. 지스카르데스탱은 대통령 드골에 의하여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었으나 1966년 사임하여 드골파와 결별하였다. 이후 지르카르데스탱은 퐁피두 정권 하에서 재무장관으로 활약하다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인월리는 퐁피두 사망에 데이비드 록펠러와 브레진스키가 관여한 것으로 본다. 데이비드 록펠러 측으로서는 1973년의 세계사적인 국유본 정권교체 이후 프랑스 권력 재조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하여, 퐁피두가 비록 프랑스 로스차일드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로스차일드 사람 대신 록펠러 사람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해서, 발탁된 인물이 지스카르데스탱이다. 하여, 프랑스의 박정희, 드골 이후 오늘날까지 프랑스 대통령들은 모두 국유본의 허수아비일 뿐이다.

   

지스카르데스탱은 사파리클럽을 주도하던 마렌쉐를 정보기관 총수로 임명한다. 프랑스 정보기관 총수 마렌쉐 백작은 1981년 초에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CIA 책임자 케이시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라고 지시한다. 허나, 마렌쉐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근원을 찾아가면 데이비드 록펠러가 나타나고, 실무 책임자가 브레진스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 미국 카터의 국가안보 보좌관이자 데이비드 록펠러의 삼각위원회를 주도하던 브레진스키는 무자헤딘을 지원할 것을 카터에게 지시했다. 친미 국가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소련이야말로 '히틀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낡은 소련제 무기를 무자헤딘 반군에게 보내주었다. 그뿐 아니라 사다트는 국유본이 지시해서 중국과 북한에도 미사일 시스템을 수출한다. 김정일이 이 덕분에 오늘날 핵무기 운운하고 있는 게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 의회는 이집트에 15억 달러의 신용 차관을 제공했고, 사다트는 이 돈으로 미국의 첨단 무기들을 구입했다."

북핵 배후는 국유본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80706283

   

쪽발돼중이나 미테랑은 처음에는 드골과 박정희, 김일성처럼 빅터 로스차일드파였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계속 집권하였다면 중도좌파 박정희 다음에는 쪽발돼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국유본 권력이 교체하면서 프랑스나 한국 정치권에서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말하자면, 빅터 로스차일드 국유본 권력이 지속했다면, 프랑스에서는 드골 - 퐁피두 - 지스카르데스탱 - 미테랑이 아니라 드골 - 미테랑으로 이어졌을 공산이 크고, 한국에서는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쪽발돼중이 아니라 박정희 - 쪽발돼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서, 생각해보자. 비록 권력을 잃었다손 치더라도 빅터 로스차일드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 미테랑이 무엇을 믿고, 감히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을 했을까? 영국 로스차일드와 프랑스 로스차일드 갈등이 아무리 크다 한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내려준 화살 묶음 교훈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하면?

   

그렇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종교처럼, 민주주의도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드러내놓고 퇴출을 당하니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프랑스 가문이 돋보인 게다. 이에 비해 빅터 로스차일드는 놀고 있는 듯이 보인 것이다. 해서, 터뜨린 것이 명운을 건 영국 탄광노조 파업 투쟁이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폴란드 연대노조 파업 투쟁을 벌이고, 빅터 로스차일드는 영국 탄광노조 파업 투쟁을 일으킨다~!

   

허나, 이는 데이비드 록펠러의 수읽기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걸려든 모양새. 미테랑의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은 빅터 로스차일드를 끌어내리려는 책사 브레진스키의 떡밥이었다는 것이 인드라 분석인 게다.

   

정리하면, 미테랑은 쪽발돼중처럼 빅터 로스차일드 계열에서 데이비드 록펠러파로 말을 갈아탄 노비네파인 게다.

   

해서,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일타 삼피인 게다.

   

하나,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은 그간 신성불가침이던 로스차일드 가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왜냐하면,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을 주도한 것이 사회당 미테랑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사 이백년간 로스차일드 가문은 보수우파에서만 비판을 받았을 뿐, 진보좌파에서 비판을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책임지던 빅터 로스차일드와 빅터 로스차일드가 속한 영국 로스차일드 가문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다. 가령 왜적 떼들이 해안지방에 와서 노략질을 하는데, 중앙정부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해안지역 사람들이 중앙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처럼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로스차일드 가문에 원망이 없겠는가?

   

셋, 로스차일드 은행 퇴출 사건은 그간 은인자중하며 기회를 엿보던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이중 치욕을 감수하게 만들어 천재 빅터 로스차일드가 전략적인 이유보다 자존심을 내건 이유로 영국 탄광노조 투쟁에 나서도록 데이비드 록펠러 책사 브레진스키가 떡밥을 던진 것이다. 이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미끼를 덥썩 물어 결국 빅터 로스차일드가 대패한다.

   

대안이고자 한다면 물타기를 하지 말란 말이야~!

   

1976년 22차 프랑스 공산당 당대회에서 알튀세르의 입장

   

프랑스 공산당은 1976년 제22차 전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포기했다. 1977년에는 프랑스 사회당과 연합해 지방 선거에서 52%의 득표율을 기록해 정계에서 압승했다. 1978년 공산당은 일시적으로 동맹을 해체시켰지만, 1981년 사회당과 연합하여 사회당 연립정권에서 각료 4개를 따낸다. 허나, 이로 인해 지지율이 더욱 하락하고, 의석수도 격감한다.

   

헌데, 1976년 22차 당대회 때 알튀세르 입장은 프랑스 공산당 주류와 같은 입장이었나. 아니었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 고수를 주장했던 것이다.

   

예서, 독재가 무조건 나쁜 말로 사용하는 것이 요즘 시대이지만, 그 어원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독재관(딕타토르)는 오늘날에는 나쁜 의미로만 쓰이게 된 딕테이터(독재자)라는 낱말의 어원이지만, 공화정 로마에서는 국가 비상사태에 임명되는 관직으로, 임시 독재 집정관을 의미했습니다. 다른 관직이 선거로 선출되는 반면, 독재관만은 두 명의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이 지명하기만 하면 성립되었습니다. 독재관은 정치체계를 바꾸는 것 외에는 모든 문제에 결정권을 가졌고, 독재관이 결정한 일에는 아무도 반대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만, 임기는 불과 6개월이었고 정원은 물론 한 명이었습니다. 공화정 체제에서는 결정을 내릴 때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그런 이유가 없을 경우에 독재관을 지명하여 그에게 즉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독재관은 능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집정관급 인물이 지명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럼 왜 독재관이라는 직위가 공화정인 로마에 필요했을까요? 과두정치는 민주정치보다 덜하지만 선장이 많은 체제입니다. 이런 정치체제의 결함은 긴급사태가 일어나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때 결여하기 쉽다는 점이죠. 이 결함을 보충하는 것이 바로 독재관 제도였습니다. 공화정 로마의 위기관리 체제였다 해도 좋겠군요. 마키아 벨리는 "어떤 정치체제를 지키고 싶으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정치체계의 이념에 어긋나는 일도 과감히 해치울 만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게을리 하면, 그 정치체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독재관은 로마가 공화정이었기 때문에 고안된 관직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재관은 위기관리 체제의 임시관직인 이상, 로마는 독재관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공화정으로 이행한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전 390년에 켈트족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119년 동안, 독재관은 일곱 번밖에 지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섯 번이나 독재관을 지낸 카밀루스의 사례는 플루타르코스도 말했듯이 기원전 390년 직후에 로마를 덮친 위기와 혼미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독재관은 집정관 두 명이 나누어 갖고 있는 최고 권력을 비록 6개월이나마 혼자 독점하는 것입니다. 집정관이 '선도자'를 12명 앞세운 반면, 공화정 로마의 독재관은 그 두 배인 24명을 앞세울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에 이르면, 독재관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카이사르가 삼두정치 끝에 모든 경쟁자를 격파하고 종신독재관에 임명되었을 때, 그 시점에서 이미 독재관이 아니라 독재자가 되버린 것입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4&docId=62934124&qb=64+F7J6s6rS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p3UnF5Y7tosstbynA8ssc--297714&sid=Tp2qonKUnU4AAHuSEMs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록 시오노 나나미가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사상이 의심스러운, 국유본의 '똥걸레'인, 쪽발이왕 학습원 출신이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더더욱 시오노 나나미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 알튀세르 입장은 무엇이었나.

   

하나, 철학적/인간적 맑시즘은 얼라 초딩 맑시즘, 과학적 맑시즘은 알튀세르 정통 맑시즘이라는 입장을 더욱 강화한 시기였다. 알튀세르 전성기는 65년부터 68년이다. 왜 이 시기인가는 전적으로 베트남 전쟁 때문이다. 1965년 국유본 귀족이었던 러셀 백작이 영국 노동당증을 찢어버리는 생쇼를 연출했다. (영국 백작 작위를 받은 넘이 영국 노동당원^^? 니미, 이재용아, 오늘부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렴~!!! 아니면, 이명박 아들이니 박지만 아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는 것도 재미있을 듯.) 바로 이때, 프랑스에서도 뭔가를 보여주는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알튀세르였던 셈이다.

   

헌데, 알튀세르는 막상 68혁명이 본격화할 때는, 얼라 초딩 맑시즘 비판을 삼가는 편이었다~! 왜? 그야 뻔하지~! 68혁명 주체가 얼라들이거든~! 코코코입~!

   

그러다가 68혁명이 잠잠해지니 다시 얼라 초딩 맑시즘은 역시 잠깐이야, 하고 나선 형국인 게다. 뭐, 그리 어려운 것 없다. 부동산 투자전문가 노엄 촘스키가 무식한 데다 뉴라이트파로 데이비드 록펠러 삼각위원회 추종한 데다 책 파는데 광분해서 이런 걸 잘 모르는 것일 뿐^^! 노엄 촘스키 씹새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더러운 입 닥쳐. 알았니? 다른 건 뭐라 해도 인드라가 괜찮아. 허나, 한반도 문제 함부로 거론하면 너놈 천벌을 받는다? 알았냐? 이 유태인 개새야.

   

해서, 알튀세르 정통 맑시즘 입장에서는 1976년 22차 프랑스 당 대회 결정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왜? 얼라 초딩을 공격하는 이유가 뭐냐. 프로 선수, 혹은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관료가 아니라 혁명가가 되어야 하는데, 혁명가가 관료가 되니 문제라는 것이 알튀세르 인식인 게다. 요거이,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롱~! 그래용~! 북한에서 소련이 붕괴하니 이런 주장하더만. 병쉰색희들~ ㅋㅋㅋ

   

이게 문제다. 상황이 위기면, 이넘 저넘을 모두 단죄하는 것, 좋지 않은 버릇이다. 어려운 시기, 영웅은 오히려 이넘 저넘을 단죄를 하기보다 용서하면서 탄생한다. 왜? 영웅은 힘이 있거든? 반면, 간웅은 힘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한다. 해서, 간웅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비록 부패했지만, 십분지 일만큼 부패했다고 말한다. 이런 색희가 더 나쁜 넘이다~ ㅋㅋㅋ

   

이거, 인드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 잡지 못한 넘들은 분명 무뇌아 노빠 색희이다~!

   

인드라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 알튀세르가 과학적 맑시즘 운운한 것은 토마스 쿤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에 반정립한 것이 아닌가 싶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3229

예서, 토마스 쿤 철학을 자세히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알튀세르가 맑스주의 교황이라고 불린다는 것이 긍정적인 표현만이 아니라는 것.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웃음을 거부하는 베네틱트 교파 호르헤를 떠올리게 한다.

   

시민은 엄숙주의 호르헤보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주세뻬 뻬뽀네를 좋아하는데?

   

둘, 월가를 점령하라! 국유본 귀족을 점령하라!

   

알튀세르는 1973년부터 미쳤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가 73년 이후부터 자기 파괴에 이르고 있다고 봤다. 이는 <프로이드 박사의 발견>이라는 글이었는데,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라깡이 프로이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정당화하려 했다"며 비판했었다. 그런가하면 74년에 알튀세르는 왜 자신이 그렇게 이론에 빠졌었는가"라며 회의한다. 그런 알튀세르를 보면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는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의 눈으로 자기를 본다"고 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가 가진 자기 파괴의 욕망이 자신의 이론에서도 작동되고 있다고 봤다."

[출처] 진태원선생 강의 (호모부커스) |작성자 어디냐

   

제자 발리바르는 스승 알튀세르의 '최종 심급'을 제대로 읽지 못한 듯싶다.

   

모택동과 알튀세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국유본을 까자!!! 허나, 예서, 공격하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다. 국유본 황제인가, 아니면 국유본 귀족인가. 국유본 귀족을 타도하자는 것이 모택동과 알튀세르 입장이었다.

   

빅터 로스차일드와 알튀세르는 일치한 견해가 있었다. 신세계 질서로의 급속한 이행이다. 그것이 알튀세르가 최종심급을 이야기한 핵심이다.

   

최종심급? 최종 심금? 물리력을 지닌 관념적인 존재. 누구냐. 국유본 황제이지? 누군 누구야~! 우하하. 프랑스 철학, 존나 쉽네~! 누가 어렵다 하는겨~! 좆밥들이 무식해서 그랴~! 심금을 누가 울리는 것이냐.

   

하.여.간!

   

1973년에 국유본 권력 교체가 있었다. 병쉰스런 발리바르야 모르지만, 스승인 알튀세르는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지. 이런 시기에 정신이 헤까닭튀김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게 아니겠어?

   

허나, 해가 지나자 알튀세르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것이겠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되는 것이겠다. 알튀세르가 심리치료라도 받았나~!

   

해서, 1976년 프랑스 공산당 당 대회 때 알튀세르 입장이 무엇이겠냐. 황제는 바뀌었어! 알튀세르가 개혁 대상이라고 여기던 국유본 귀족들이 옹립한 황제가 국유본 황제가 된 것이야. 이런 상황에서 알튀세르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니? 프랑스 공산당이야 빅터 로스차일드파였지만, 대세에 따르는 족속들이니 만큼 이제 데이비드 록펠러파가 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알튀세르 골이 아프겠지?

   

백이숙제나 정몽주처럼 不事二君[불사이군]하는 것이어야 할까? 아니면, 누구를 지지한들 무슨 상관이냐는 추상화된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여야 할까? 알튀세르는 후자를 택한 것이겠다.

   

이런들 어떠하라, 저런들 어떠하리~! 알튀세르~!

   

헌데, 최종심급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프랑스 공산당 관료를 비롯한 국유본 귀족들을 배격하고 있으니 알튀세르 앞날이 뻔하지 않겠는가? 자, 폼나는 것도 러셀 백작처럼 권력이 있어야 모양이 있는 것이다. 알겠니?

   

셋, 알튀세르 부활이 가능한가?

   

"그렇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 혹은 "독점자본주의" (레닌)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는 독점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새로운 형태의 금융집 중이― 따라서 착취도― 일어나며, 국가는 콘체른의 편에 서서 필요한 정치적 및 이념적 무기를 마련해주면서 가공할만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른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이러한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생산에서의 국가부문의 확대, 콘체른을 위한 국가의 신용대부, 모든 수준에서의 민주적 표현의 억압)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모든 것을 "자본의 탈가치화"라는 모호한 해석으로 환원하고 국민국가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금융자본 집적의 세계적인 형태를 분석하지 못한다. 또한 이 이론은 금융자본의 능력, 즉 세계 계급투쟁 상황에 따라 착취와 투기를 강화하고, 자본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전시키며, 위기 자체의 도움으로 자신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왜 통화위기와 인플레가 미제국주의와 그 지역 "대리인"이 지배하는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인 현상인가를 설명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가 개개의 제국주의 국가와 그 계급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제금융자본, 그 시장 및 그것의 작동 사이의 변증법은 일국적 독점체의 존재에 한정되지 않는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가 "세계적"이며 "구조적"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위기의 결과는 전 세계적이라는 점, 그리고 위기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자체와 그것의 존재형태 자체(착취, 정치, 이데올로기)를 의문시하며 국내 부르조아지의 지배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또한 이 위기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 결과가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만일 좌파가 승리를 거둔다면 이 위기―그것의 일국적 근원뿐만 아니라 결코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국제적인 영향―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

   

위의 내용은 옛날에 새길 출판사에서 출간된 '당내에서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이라는 책의 29-30쪽에 있는 내용을 발췌한 것임. '프랑스공산당 제22차 당대회의 역사적 의미'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임. 당의 공식 이론가인 보카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비판하면서 미국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실상 이 내용은 미국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공식 지지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음. 윤소영도 본인의 이론적 선회(세계체제론 수용)의 배경을 설명할 때 알튀세르의 이 언급을 거론한 바 있음. 프랑스공산당 22차 당대회는 1976년에 있었고, 이진경이 번역한 저 글의 번역대본은 1978년 독일에서 출간된 책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음. 알튀세르가 사망한 것은 90년이니 '말년의 저작'이라기보다는 '후기 저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음. 실제 이 글의 주장이 알튀세르 본인에 의해 76년 상황 당시에 개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70년대 중반 알튀세르 본인의 입장인 것은 확실.

FACT정리 - 데이비드 록펠러와 빅터 로스차일드 간의 전쟁이 한참이던 70년대 중반에 알튀세르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해체시키기 위한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의 이론인 세계체제론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일이 있었음.

의문 -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어느 파벌의 인간이었나. 혹 로스차일드계의 세가 강한 프랑스에서 록펠러 지지를 공표했다가 고립된 것은 아닌지."

- CIA

   

그리 볼 수도 있다. 허나, 사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쪽발돼중을 비판해도 어느 입장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가령 골룸빡을 비판해도 어느 입장이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하긴, 인드라가 지난날 쪽발돼중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을 섰을 때, 러시아 유학까지 갔다와서 정치학 전공하는 분이 말씀하시더라. 다른 사람들 주장은 알겠는데, 인드라가 도대체 쪽발 돼중 지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뭐, 이렇게 어려워?

   

물론 결과적으로 같을 수 있다. 흔히 이런 대목은 정치공학으로 희화화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건 옳은 것이요, 그른 건 그른 것이다. 이런 대목을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이런 사안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보면 곤란한 것이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 반성하겠다. 바로 이것이 프랑스 좌파의 편법이었던 게다.

   

프랑스 좌파가 미테랑 같은 넘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니 골이 아프지 않았겠는가. ㅠㅠㅠ 인드라처럼 쪽발돼중이 쪽발돼중이라고 아는 넘이 쪽발돼중을 지지하다보니 생기는 문제가 얼마나 골치가 아픈가. 해서, 누구도 모르게, 아니, 아무도 모르게 최대한 현학적으로 썰을 푼 게다. 이것이 프랑스 철학의 장점이요, 단점인 게다.

   

프랑스 철학 장점은 뭐냐. 인드라 같은 사람만 안다는 게다. 프랑스 철학 단점은 뭐냐. 인드라 같은 사람을 도매급으로 넘기기 쉽다는 것이다.

   

이를 전제하고, 월러스틴, 월러스타인, 왈라스타인((Immanuel Maurice Wallerstein) 세계체제론에 대해서 잠시 언급한다. 인드라가 월러스틴 책을 두 권 정도 읽은 수준에서 말씀을 드린다. (참고로 십 년 전에 어떤 여성 뉴욕 유학생이 인드라더러 사석에서 오프 더 레코드로 월러스틴 욕을 많이 했는데, 인드라가 언급하면 곤란해서 언급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아 언급한다.)

   

월러스틴 주장 특징은, 서구 자유주의,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 스타일이나 스웨덴 스타일, 북유럽 스타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존속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허나,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함에 따라 서구 자유주의도 동시에 몰락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유주의자일지라도 월러스틴 주장은, 알튀세르 입장과 보완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해서, 이 대목에서 세계체제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세계체제론을 받아들이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부정했다는 식은, 정반합 헤겔 방식 없이 오직 정과 반만 있다는 아도르노 변증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사정은 이렇더라도, 알튀세르가 실제 인식을 어떻게 했더라도, 중요한 건, 행동이요, 실천이 아니겠는가.

   

1980년대 알튀세르는 아내를 목 졸라 죽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알튀세르가 정반합의 헤겔 변증법을 그토록 거부한 결과를 의미한다 할 것이다. 또한,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 노예민주당에서 미국 공화당으로 권력을 이동시키는 데이비드 록펠러 권능에 대응한 태도로 아내를 죽였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희가 말했지 않은가? 아내 빼고 다 바꾸어라! 그에 대응하여 알튀세르는 아내도 바꾸려고 했던 것일까. 인드라 경험을 잠시 말하겠다. 이성적인 인간은 토대를 중시한다. 해서, 자신이 주장해왔던 것이 현실과 다르다면, 가장 밑바닥부터 자신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한때, 인드라는 인드라 취향을 모조리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혁명적인 인간이 되고자 그 반대 것만을 취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기까지 하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친 짓이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아빠, 완벽한 어른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신화일 뿐. 알튀세르 역시 기득권 신화에 한 줄을 쓴 셈이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 때 투쟁한 덕분에 한국 사회가 발전했다. 그에 비한다면, 내 비리 정도야 조족지혈이 아니겠니? 그래, 씨발아, 잘 처먹고 잘 살아. 개씨발색희야.

   

   

국제유태자본과 1947년 국유본론 2011

2011/10/18 02:34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555097

   

   

   

국제유태자본과 1947년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8 

   

이 글을 읽기 전에 필독할 글이 있으니 '국제유태자본과 냉전의 기원 http://blog.naver.com/miavenus/70032100543

'이다.

   

20세기 근대사를 이해할 때 일국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국제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국유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에. 국유본이 세계 전략에 따라 각국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기에. 예서, 국유본론과 반미론이 유사하지 않느냐 하는 이들이 있다. 차이가 매우 크다. 이래서 1947년이 더더욱 중요한 것이다. 1947년 이전에 미국은 형식적으로라도 세계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명백한 증거가 CIA가 1947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947년은 국유본 역사에서 국유본 권력 교체가 있었던 1973년 만큼은 아니나 기념비적인 해이다. 왜 1947년인가.

   

  • 1월 15일 - 미국에서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 발생.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블랙 다알리아에 등장.
  • 2월 - 북조선 인민위원회 수립.
  • 2월 23일 - 국제 표준화 기구 출범.
  • 2월 25일 - 프로이센의 해체.
  • 2월 28일 - 중화민국 관할하의 타이완 정치불안, 2·28 사태 발생.
  • 3월 1일 - 대한민국 서울 남대문에서 좌,우익 세력 집회도중 충돌. 38여명의 사상자 발생.
  • 5월 21일 - 서울 덕수궁에서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
  • 6월 21일 - 대한민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
  • 8월 5일 - 고려레코드, 최초로 한국 기술진에 의한 음반제작 성공
  • 8월 8일 - 파키스탄 국기 채택.
  • 8월 14일 - 파키스탄,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
  • 8월 15일 - 인도, 자와할랄 네루를 총리로 해 독립
  • 8월 28일 - 북조선로동당 제1차당대회
  • 9월 9일 - 첫 번째 버그(사진) 발견: 하버드 대학교가 만든 마크 II 컴퓨터계전기에서 나방이 발견되다.
  • 9월 17일 - 국제연합 총회 한국문제 정식 상정
  • 9월 18일 - 미국 중앙정보국(CIA) 발족
  • 9월 21일 - 군정기: 반공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 결성(단장 지청천)
  • 9월 26일 - 소비에트 연방, 한반도에서 미.소 양국군 동시 철수 제의
  • 9월 30일 - 예멘, 파키스탄 국제연합 가입
  • 10월 5일 - 소비에트 연방 등 동구 9개 공산국, 공산당 정보기관인 코민포름 결성
  • 10월 14일 - 시험비행사 척 예거벨 X-1 기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하다.
  • 10월 18일 - 미소 공동위원회 무기한 휴회.

     http://ko.wikipedia.org/wiki/1947%EB%85%84

       

    1947년 9월 18일에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출범했다. 미 공군도 같은 날 탄생했다. 그 이전에 미국에서 정보부라고 할만한 것이 없던 것이 아니다. 허나, 국유본에게 허락받지 못했기에 CIA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빅터 로스차일드와 영국 정보부는 1947년 그리스 문제를 CIA에게 권리를 양도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국 정보부가 미국 정보부에게 세계 정보 권력을 넘겨주는 형식이었다. 허나, 이는 절반의 독립이었다. 실질적인 독립은 국유본 권력이 교체하는 1973년인 게다. 하면, 왜 빅터 로스차일드와 영국 정보부는 겉으로나마 권력을 양도하고자 했던가.

       

    이것이 국유본 전략인 게다. 당대에는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하나, 이차대전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끝났다. 국유본은 이차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과 소련,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했다. 허나, 국유본이 판단하기에 쪽발이 색희들이 적어도 일 년 이상을 버틸 것이라 보았는데 원자폭탄 두 방에 항복을 선언해버렸다. 예서, 차질을 빚은 것이다. 케인즈주의란 현대판 맬더스주의인 게다. 지주를 국가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서, 그 해결책이란 내건 명분과 달리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헌데, 공장이 더 돌아가야 하는데, 예상보다 전쟁이 일찍 끝나니 큰 문제였다. 해서, 빅터 로스차일드가 일타삼피로 한국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국제정치 ·경제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날카로운 분석을 가한 수준 높은 잡지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다. 집필진도 국내외의 저명한 기고가들이며 충실한 편집으로도 유명하다. 1947년 7월 'X'라는 익명으로 발표된 '소비에트 행동의 원천'은 후에 구소련 주재 대사가 된 G.케넌이 기고한 것이며 이 논문에서 제창된 '소련봉쇄정책'은 H.S.트루먼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이 되었다." 

    [출처] 포린어페어스 [Foreign Affairs ] | 네이버 백과사전 

       

    둘, 일타삼피 두번째는 무엇인가. 냉전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차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연합군이었다. 이를 미소 양국 적대 관계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전쟁만큼 좋은 재료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예상치 못한 요인이 있었는데, 소련이 어느 정도 국력을 갖추어야 미소 냉전체제로 갈 수 있는데, 소련이 동유럽을 장악하기에는 지나치게 허약했다는 점이다. 해서, 한반도에서 이념 전쟁이 일어나니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강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빅터 로스차일드도 마샬 플랜으로 독일 국유본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독일 경제를 발전시켜서 오늘날 독일 경제대국을 만들어냈다.

       

    셋, 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수백만 노동자들이 생활 개선을 목표로 시위를 했다. 이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루즈벨트에게 명한 결과이다. 즉, 국유본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 체제라는 대결 구도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1930년대 후반 이차대전 직전에 한편으로는 트로츠키를 암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루즈벨트더러 다양한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게 했다. 헌데, 미국 노동자들이 전쟁으로 유보한 그 약속을 지키라고 데모했던 것이다. 허나, 어차피 공수표~! 상당 부분을 되돌린다~!

       

    이외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와 1947년 로즈웰 문제, 각국 정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한국전쟁을 통해서 풀어갔던 것이 국유본이요, 빅터 로스차일드였던 것이다. 이때, 중요한 사안이 있으니 각국 정치 상황이다.

       

    가령 해방정국 문제를 남한만의 문제로 좁혀서 이해하는 것이 그간의 시각이었다면, 국유본론은 해방정국 문제가 국제적으로 동시에 진행한 국제유태자본의 세계 전략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1947년 여운형이 암살당한다. 이때, 소련은 코민포름을 결성하고, 독일에서는 아데나워가 등장하고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이 나온다. 프랑스와 이태리에서는 전후 직후와 달리 영향력이 상당했던 공산당을 배제한 내각이 출범한다.

       

    프랑스와 이태리, 남한, 일본에서 어떻게 똑같이 공산당 세력이 푸대접을 받을까. 동시에 소련과 중국과 북한에서는 오히려 공산당 세력이 크게 강화되는가. 바로 이것이 한국 전쟁과 냉전체제를 만들려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세계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여, 삼 개월 안에 끝날 한국전쟁을 삼 년씩이나 질질 끌어 목적을 달성한 국유본은 십 년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허나, 십 년이 흐르자, 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 다시 전쟁이다. 처음에는 한국전쟁, 십 년 뒤에는 베트남 전쟁을 국유본이 기획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둘, 여전히 허약한 체제가 소련 체제였다. 1956년 헝가리 시위가 발생했다. 소련은 무력으로 탱크 진압했다.

       

    셋, 국유본은 알파 오메가 작전을 통해 각국 정권을 통제했다. 한 편으로는 각국 정권을 지원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을 지원하였다. 또한 국유본은 신세계 질서를 위해 각종 사회 실험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민주화 요구가 등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프랑스 공산당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하나,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프랑스 공산당에 유리한 지형을 선사했다.

       

    둘, 프랑스 공산당은 당수가 소련 공산당의 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줄기차게 소련 공산당을 지지했다. 문제는 스탈린 격하운동이나 쿠바 핵위기 사태, 헝가리 봉기에서 당원들과 프랑스인에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셋, 국유본이 준비한 68혁명운동을 위해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정치 실험들이 있었다. 이 실험에는 노동자계급에서 일탈하여 마약, 히피, 성소수자 정치, 인종차별 폐지 정치 등등 신좌파적인 각종 기획들이 있었다. 이런 기획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돌려세울 이념이 부재했다.

       

    이에 대해 답변을 준비한 것이 알튀세르였다.

       

    하나, 프랑스 공산당은 서유럽에서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정당이었다. 그런 만큼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집권을 하지 않았으나 백 만 명 규모 당원을 보유하고 총선에서 평균 22%를 획득한 거대 정당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국유본 덕분이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세계 전략이다. 유럽 대륙 주요 국가란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이다. 이들 4개국을 통제할 수 있는 유효 수단 중 하나가 공산당이었다. 공산당을 통한 프랑스 정권 견제인 게다.

       

    알튀세르는 이를 미소 냉전체제에서의 완충지대이자 미소를 중재하는 역할로서의 프랑스를 기본 전제로 본 것이다. 물론 이는 알튀세르만 아니라 프랑스 정치인들 대부분 생각이다. 예서, 드골과 차이가 있다면, 드골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뜻을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언제나 나폴레옹이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독립을 하겠다는 꿈을 꾼 반면, 알튀세르는 소련 공산당의 뜻에 따르면서도 프랑스적인 독자성을 지키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차이일 것이다.

       

    둘, 헌데, 프랑스 공산당과 공산당수는 무식했다. 1962년 프랑스 공산당 논쟁이 있었다. 요점만 간략하게 말한다면, 프랑스 공산당 주류는 소련 공산당의 허실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인간적 맑시즘, 혹은 철학적 맑시즘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게다. 쉽게 말해, 초심으로 돌아가자, 뭐 이런 이야기가 되시겠다. 오늘날로 치면, 고르바초프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쯤 되겠다. 다시 말해, 소련 공산당을 여전히 지지하면서도 소련 공산당은 물론 프랑스 공산당도 민주화, 자유화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고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여건이 되면 가야 하지 않느냐 한 것이다.

       

    반면 비주류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 주류와 정반대 견해를 내놓았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너희는 철부지 맑스이고, 알튀세르, 나는 어른 맑스다. 어른 맑스 말이 맞다. 철부지들은 까불지 말고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알튀세르의 과학적 맑시즘이다. 허나, 알튀세르는 이때 패배하고 만다.

       

    알튀세르는 패했다. 알튀세르는 노동자계급을 설득하지 못했다. 허나, 지식인들의 지지를 획득한다.

       

    셋, 패했던 알튀세르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있었으니 68혁명인 게다. 마침 중소 분쟁이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이 소련 공산당에 대해 수정주의라고 비판했었다. 이때, 중국 공산당, 정확히 모택동 문화혁명 노선과 알튀세르 노선이 일치했던 것이다.

       

    - 공산당 내부에 자산사령부(국유본)가 있다. 자산사령부(국유본)를 제거해라.

       

    1968년에 번졌던 이 운동이 1970년대초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 싶게 가라앉는다. 더 큰 문제는 1973년 국유본 권력이 바뀐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르면 오일 가격 폭등으로 전세계에 물가 폭등이 닥치는데, 서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국 경제가 망가졌다. 이때, 노동자혁명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현상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보수가 되었다. 서유럽 공산당 규모가 날로 줄어들어갔다.

       

    해서, 1975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은 유로코뮤니즘, 민족공산주의 등을 제안할 정도로 상황이 위급해진 것이다. 규모가 가장 큰 이탈리아가 그 정도이니 프랑스 공산당도 예외가 아니겠다. 하여, 1976년 22차 전당대회가 있었다.

       

    예서, 프랑스 공산당 주류와 알튀세르가 다시 한 번 대결을 펼친 것이다.

       

    이때, 알튀세르 고민이 무엇인가.

       

    왜 혁명이 쇠퇴하는가.

       

    "이것이 바로 알튀세르가 마침내 마주친 아포리아이며, 여기서 그는 '최종심급'의 개념을 하나의 "한계 개념"으로서 제안하는 듯 하다.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인터뷰(1984-87년)에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이 '최종심급에서' 결정적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이 지배할 수 있습니다. 맑스는 지배의 전위에 대한 암시적인 이론에서 아테네의 정치와 로마의 종교에 관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이것이 발리바르와 내가 『자본을 읽자』에서 이론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부구조 그 자체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역시 그것의 물질성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모든 상부구조와 모든 이데올로기의 사실상의 물질성을 강조하는데 그토록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 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ISA)에 관련하여 그것을 보여주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구체적인 정세 안에서의 최종심급이라는 개념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최종심급에서 항상 결정적인 물질성의 전위를 말입니다. (Althusser 1994: 44, 강조는 인용자) 이러한 '최종심급' 개념은 하나의 '한계 개념'인데, 왜냐하면 각각의 구체적인 정세 안에서 '최종심급'에서의 물질성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이론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한계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정치이고 정치적 실천들이고 정치적 조직들이며 그 조직들의 이데올로기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역사와 미래를 향해 완전히 열려있다. 한 유물론자가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용감하게 걸어온 이 훌륭한 길, 즉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이라는 이 길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긴 미래이다. 알튀세르는 말한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Althusser 1992)"

    http://kin.naver.com/knowhow/detail.nhn?d1id=10&dirId=10&docId=556091&qb=7LWc7KKF7Ius6riJ&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pxF8F5Y7thssvrHdONssc--478303&sid=Tpxad-JCnE4AAA1-EGk

       

    루카치는 사물화에,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고민했다면, 알튀세르는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에 주목한 것이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한반도 통일을 불현듯 빨리 오게 하는 법 국유본론 2011

2011/10/15 02:36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306060

   

    

   

   

한반도 통일을 불현듯 빨리 오게 하는 법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5

CIA :

   

알튀세르는 말년의 저작에서 구좌파(로스차일드계)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대립각을 세웠던 월러스틴(록펠러계)의 세계체제론을 공식적으로 지지했음.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또한 알튀세르는 당 형태 운동을 비판하고 당 체제(로스차일드 체제)의 해체를 일정 정도 유도했음. 알튀세르를 다르게 해석(록펠러계?)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그렇다. 우리는 제국주의시대 혹은 "독점자본주의" (레닌)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는 독점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새로운 형태의 금융집중이―따라서 착취도―일어나며, 국가는 콘체른의 편에 서서 필요한 정치적 및 이념적 무기를 마련해주면서 가공할만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른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이러한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생산에서의 국가부문의 확대, 콘체른을 위한 국가의 신용대부, 모든 수준에서의 민주적 표현의 억압)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모든 것을 "자본의 탈가치화"라는 모호한 해석으로 환원하고 국민국가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금융자본 집적의 세계적인 형태를 분석하지 못한다. 또한 이 이론은 금융자본의 능력, 즉 세계 계급투쟁 상황에 따라 착취와 투기를 강화하고, 자본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전시키며, 위기 자체의 도움으로 자신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왜 통화위기와 인플레가 미제국주의와 그 지역 "대리인"이 지배하는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인 현상인가를 설명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가 개개의 제국주의 국가와 그 계급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제금융자본, 그 시장 및 그것의 작동 사이의 변증법은 일국적 독점체의 존재에 한정되지 않는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가 "세계적"이며 "구조적"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위기의 결과는 전세계적이라는 점, 그리고 위기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자체와 그것의 존재형태 자체(착취, 정치, 이데올로기)를 의문시하며 국내 부르조아지의 지배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또한 이 위기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 결과가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만일 좌파가 승리를 거둔다면 이 위기―그것의 일국적 근원뿐만 아니라 결코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국제적인 영향―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

   

위의 내용은 옛날에 새길 출판사에서 출간된 '당내에서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이라는 책의 29-30쪽에 있는 내용을 발췌한 것임. '프랑스공산당 제22차 당대회의 역사적 의미'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임. 당의 공식 이론가인 보카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비판하면서 미국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실상 이 내용은 미국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공식 지지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음.

   

윤소영도 본인의 이론적 선회(세계체제론 수용)의 배경을 설명할 때 알튀세르의 이 언급을 거론한 바 있음.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는 1976년에 있었고, 이진경이 번역한 저 글의 번역대본은 1978년 독일에서 출간된 책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음. 알튀세르가 사망한 것은 90년이니 '말년의 저작'이라기보다는 '후기 저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음. 실제 이 글의 주장이 알튀세르 본인에 의해 76년 상황 당시에 개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70년대 중반 알튀세르 본인의 입장인 것은 확실.

   

FACT 정리 - 데이비드 록펠러와 빅터 로스차일드 간의 전쟁이 한참이던 70년대 중반에 알튀세르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해체시키기 위한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의 이론인 세계체제론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일이 있었음.

   

의문 -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어느 파벌의 인간이었나. 혹 로스차일드계의 세가 강한 프랑스에서 록펠러 지지를 공표했다가 고립된 것은 아닌지.

   

인드라 :

   

간만에 듣는 알튀세르이다. 다만, 인드라가 이 질문에 답변할 때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무엇이냐. 요즘 세상에 누가 알튀세르에 관심이 있겠느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해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골치거리는 과연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무슨 보탬이 있느냐이다.

   

해서, 쥐어짜듯 하려니 머리가 더 아프다. ㅎㅎㅎ. 그러니 읽는 이들은 더 얼마나 머리가 지끈거리겠는가. 쓰는 이도 이럴 지경인데. 하여, 이런 글쓰기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인드라가 그간 얼마나 글을 어렵게 썼는가. 요즘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들 투성이지만, 그나마 요즘 많이 쉬워서 읽기 편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접하는 편이다. 어쩌면 인드라 글쓰기에 중독당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하여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드라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무엇을 깨닫는 기쁨도 크지만, 다른 이가 말을 알아듣는 것도 굉장한 기쁨인 게다. 말이 통한다는 것 그것 참 인간 본질 중 쓸만한 넘이다.

   

인드라는 윤소영이나 이진경보다 인드라 후배인 최모라는 알튀세르 전공자를 더 신뢰하는 편이다. 그가 그들보다 더 머리가 좋다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유는 그가 뉴욕에서 유학하면서 최신의 알튀세르 이론을 접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론 수입 장사치란 십 년 정도 유학한 걸로 평생을 우려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교수질을 하려면 학내 헤게모니와 언론플레이를 잘 해야 하기에 이론 공부란 뒷전인 게다. 어차피 이론도 나중에 온 유학생들이 알아서 할 것이기에^^! 그 유학생만 권력으로 자기 제자로 부릴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해서, 더더욱 학내 헤게모니와 언론플레이에 열중해야 한다. 골룸빡 같은 애들한테까지 아부도 해야 하는 게 더럽고 혐오스런 세상 실상이다~!

   

헌데, 알튀세르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왜 프랑스가 아닌 뉴욕에서 공부하는 것일까. 인드라도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국유본론을 정립한 이후 부수적인 소득이랄까. 국유본론을 정립하다보니 이런 의문이 저절로 풀린 셈이다. 지금은 록펠러 세상이다. 해서, 세상을 분석하건, 알튀세르를 분석하건, 로스차일드 파리에서가 아니라 록펠러 뉴욕에서 분석하는 것이 유효한 것이다. 그것이 랑케 식으로 역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든,  카아처럼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연구자 중심으로 파악하든.

   

하면, 인드라는? 인드라는 비록 서울에 있지만,  뉴욕과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인드라망을 통해 세계를 사유하고 있다.  중심이 서울과 인터넷, 뉴욕으로 상시적으로 움직이면서 서울 - 인터넷 - 뉴욕 인드라 네트워크로 세상을 접하고 있다.

   

자, 이제 전제 두 가지만 말하고 진도를 나가보자. 인드라만의 독특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원어민 사회사상사 공부를 해보자~! 인드라가 원어민이잖아~ 일본인이나 중국인, 러시아인, 유럽인, 미국인들이 인월리에 골머리를 싸맬 때, 훗날 당신들은 인드라 번역으로 먹고 살 수도 있겠지^^? 얼씨구~!

   

하나, 사회사상가 이력을 먼저 파악하지 않고 이론과 사상을 먼저 접하는 것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독서법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인드라는 생각을 달리 한다. 인드라가 추천하는 독서법이란 편견에 직면하는 것이다.

   

편견이야말로 그 이론과 사상을 읽는 요인이다.

   

왜 읽어? 여러분이 어려운 책을 왜 그리 이해하려고 기를 쓰는가. 그냥 안 읽으면 그만인데^^!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안다. 이해하면 이득이기에. 조모국 교수 씹색희가 캐병쉰 색희이지만, 조모국 씹색희 강의를 듣는 한, 조모국 씹색희 말이 아무리 허접해도 그 말대로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하지 않겠냐. 학점을 잘 받으려면. ㅠㅠㅠ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조모국 교수 씹색희가 캐병쉰색희여서 쉬운 걸 어렵게 말해서다. 보통 이런 이유는 조모국 교수 씹색희가 졸라 무식해서다. 맨날 골룸빡 같은 색희한테 아부하느라 공부를 안 해서다. 다른 하나는 정말 어렵기 때문인데, 가령 수학이 그런데, 그냥 포기하면 된다 ㅋㅋㅋ.

   

편견이란 이득이다. 해서, 편견이란 다른 이름으로 이념, 이데올로기이다. 이득이라 해서 당장 돈이고, 쌀인 경우도 있지만, 정보처럼 장차 돈이고, 쌀인 것도 있다. 전자를 유형 이득이라 하고, 후자를 무형 이득이라 하면, 편견이란 유무형 이득을 기대하는 것이다.

   

헌데, 이 편견이란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가족 내력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게다. 해서, 우리가 공부한다는 건 그 편견을 궁극적으로 파헤쳐 들어가자는 데 있는 것이지, 그 편견이 없는 양하고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다. 예서, 그 편견을 끝까지 파헤친 것을 편견 중의 편견, 즉 진리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섯 명이 각자 편견을 두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자 편견이 우세하였다면, 그 자더러 다른 이들이 저마다 엄지를 세우고, 네가 '킹왕짱 진리'야, 하는 것이다.

   

허나, 이것은 순진한 견해이다. 역사를 보면, 바른 말해서 죽음을 당한 경우가 어디 한 둘인가. 해서, 다섯 명이 논쟁 끝에 우세한 자 견해가 진리가 아니라 물리력이든, 말이든,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우세한 견해가 진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해서, 진리란 왕이나 황제처럼 늘 위태로운 자리가 분명하다. 진리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다른 편견에 비해서는 분명 우월한 지위이나 그렇다고 그 지위만으로 앞으로도 진리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과학과 같은 처지인 게다. 무수한 비판과 검증에도 왕과 황제의 지위를 놓치지 않은 것이 오늘날 과학적 명제들이다. 허나, 이것이 앞으로도 과연 유효할 것인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힘든 것이다. 빛보다 빠른 물체는 없다고 했지만, 빛보다 빠른 물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 세상이기에~!

   

예서, 보려는 대상에서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 상황을 좀 더 거시적(나무는 미시, 숲은 거시)으로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훈수를 두는 사람이 더 수를 잘 보는 이치인 게다. 허나, 거기서 맹점이 발생한다. 실천적이지 않다는 것. 훈수를 두는 것과 자신이 직접 수를 내는 것간의 피할 수 없는 차이. 그 차이에 인드라는 불만인 게다. 옆에서 훈수둘 때와 직접 할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이야기인 게다.

   

인드라는 말했다. 다른 이들이 세계 돌아가는 현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때, 인드라는 간단히 내가 국유본이라면? 하는 가정 하나에 손쉽게 난관을 돌파한다고 말이다. 하여, 인드라 관심사는 두 가지 방향으로 향했다. 직접 행하면서 훈수하는 태도를 취하는 방법과 훈수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직접 행하는 마음을 취하는 방법. 전자는 시스템에서 탈출하려 하고, 후자는 시스템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를 '내가 국유본이라면'으로 풀면 어찌 되는가.

   

내가 국유본이라면,은 나 = 국유본 동격을 의미한다. 갑과 을이 동격이 아닌데 동격이기 위해서는 갑과 을 중 하나를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려야 한다. 인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인류애를 표현하는데, 가장 쉬운 방식은 상대를 끌어내리는 방법이다. 대다수는 자신이 무능하기에 상대를 무능하게 만들어야 동격이 되기 때문이다. 78%가 이 방식을 선호한다. 둘,  21%가 기브 앤 테이크를 취한다. 78%와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무능하다는 걸 아는 이들이다.  자신이 무능한 것을 알기에 유능한 이로부터 적당한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셋, 1%는 유능하다. 이들은 99% 실패할 확율임에도 상대를 끌어올리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하고, 실패한다. 성공한 예가 없다. 있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이 모양 이 꼴일 수 없다. 헌데, 왜 100%가 아니라 99%인가. 지금까지는 100% 실패이지만, 미래까지 모두 실패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으므로.

   

해서, 인드라는 사회사상가들 개인사에 관심이 있다. 가령 한국에서 니 애비는 뭐하는 넘이냐, 라고 했을 때, 독립군 투사다, 빨갱이였다,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등등으로 답한다. 별 문제가 없다. 헌데, 우물쭈물하고, 밝히기를 꺼려한다면, 그 애비색희는 십중팔구 독립군을 고문하고, 고려 처녀를 강간한 쪽발이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애비색희를 둔 넘은 근본이 쪽발이이기에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요, 남을 해코지하는 데에 능한 넘이다. 독립군을 고문하고, 한국 처녀를 강간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이다. 쪽발이 성향은 집안 내력이다. 아주 힘겨운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고치기 어렵기에, 쪽발이가 자발적으로 대오각성해서 쪽발이 재산을 모두 국가에 헌납한 뒤, 평생을 사회봉사하지 않으면, 쪽발이 거세가 불가피하다. 

   

둘,  사회사상은 당대 사회 현실을 살펴봄이 없이 말한다는 건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이건 이해하기 쉽다. 아무리 일통한 철학이 있어도 그 철학을 말할 때 사람마다 다르게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서, 요즘 소통을 굉장히 중시하는 것 같다. 헌데, 인드라 생각은 좀 다르다. 소통이 너무 잘 되어도 바벨탑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인드라가 신이라면 인간을 모두 여성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왜? 여성은 소통의 달인이니까. 헌데,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있다. 이는 세상이 소통과 다른 무엇이 함께 공존하기를 바라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다른 무엇이 무엇인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부부싸움하면 남자들이란 단무지 마초여서 말싸움에서 진다. 말싸움에서 진 남자들 행태란 뻔하다. 말을 말자,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예서 끝나나? 아니다. 남성 호르몬이 유난히 많은 남자들이 있다. 자폐증, 아스퍼거는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아서 발생했다는 가설이 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뭔 말이냐.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소통이 부족한 만큼 다른 방면으로는 넘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를 천재성이라고 말한다. 허나, 소통과 대별하면 과한 표현이다. 다른 표현이 없을까. 있다. 독특이다. 소통도 다른 표현이 없을까. 평범이다. 독특함과 평범함. 튀는 것과 무난한 것. 욕망과 금욕. 자유와 평등.  진보와 보수...

   

그리고 우파와 좌파? 뭔가 이상하다. 독특함, 튀는 것, 욕망, 자유, 진보란 쉽게 연결할 수 있는 단어 묶음이다. 또한, 평범함, 무난한 것, 금욕, 평등, 보수 역시도 쉽게 연계할 수 있는 개념 묶음이다. 허나, 이상하게도 우파와 좌파만이 튄다. 우파는 평범함, 무난한 것, 금욕, 평등, 보수와 만나야 하는데, 안 어울리는 것이다.  반대로 좌파는 독특함, 튀는 것, 욕망, 자유, 진보인데, 역시 안 어울린다. 왜 이럴까?

   

여기에 로스차일드 가문 비밀이 있는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장악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우파와 좌파 개념보다 그 이전 개념인 진보 보수 개념을 강조한다.  왜? 로스차일드와 유태인들은 다른 이들보다 독특하고, 튀고, 욕망하고, 자유롭고, 진보적이니까. 언제까지? 로스차일드가 지배할 때까지.

   

허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일단 장악한 지역에서는 진보 보수 개념보다 우파와 좌파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 국유본이 지배하고 있으니까. 독특하고, 튀고, 욕망하고, 자유롭고, 진보적인 것을 몽땅 부르주아적이고, 퇴폐적이고, 개인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몰아갈 수 있으니까. 왜? 로스차일드가 지속적으로 지배해야 하니까.

   

하면, 빅터 로스차일드를 제치고 국유본 황제에 오른 데이비드 록펠러는 어떠한가.

   

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는 물리력 뿐만 아니라 이념도 중시한다. 알파와 오메가이니까. 이때, 오메가를 장악해야만 하는 데이비드 록펠러 황제의 고민이 무엇이겠는가.  

   

로스차일드 가문 적통 빅터 로스차일드의 좌우파 전략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주의와 지역주의 전략인 게다. 구체적으로는 신좌파(꼬뮤니즘), 자유주의, 아나키즘(자치주의)이다. 하고,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를 위해 역설적으로 가톨릭과 손을 잡았던 것이다. 왜? 지금까지 기독교와 유대교를 통해 해방, 자유, 자치를 말했던 로스차일드와 빅터 로스차일드가 세상을 지배하자마자 좌우파 전략으로 억압과 평등과 통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해서, 적의 적은 친구이듯, 기독교와 유대교과 대립하던 가톨릭과 이슬람을 내세우는 전략인 게다.

   

예서, 데이비드 록펠러와 제이 록펠러 차이가 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유럽과 동유럽, 중동에서는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 이슬람을 내세웠으나, 아시아에서만큼은 유교와 샤머니즘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확히는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한반도 냉전체제가 지속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 유학해서인지 제이 록펠러는 유교와 샤머니즘에 두려운 면이 없다. 편견을 직시하라!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까.  제이 록펠러파는 과거는 몰라도 오늘날 시점에서는 급속한 한반도 통일체제가 분단체제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인드라는 한국인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좌우파 개념을 잊어라. 좌우파 개념은 빅터 로스차일드 발명품이어서 철지난 상품이다. 한국인이 좌우파 개념을 망각할 때 불현듯 한반도 통일이 온다.

   

이때, 뉴라이트파와 제이파 차이가 있다. 뉴라이트파는 좌우파 개념 대신 근본주의와 지역주의 개념을 내세운다. 해서, 통일이 오되, 천천히 온다. 반면, 제이파는 근본주의와 지역주의 개념도 일소하려고 한다. 급속한 통일을 원한다. 2017년 이후 찾아올 대공황에 맞설 카드로 인드라는 2015년 이내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안이 제이파도 살고, 한반도도 사는 방안이라고 했다.

   

하면, 제이파가 지향하는 개념이 무엇이냐. 힐러리는 한미 만찬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바로 이것이다. 인드라가 제안하고, 강조하는 것. 비빔밥 퓨전 정신!

   

이것으로 끝장내자!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균형적으로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루어 세계 역사의 획기적인 새장을 열자!

   

구미가 당기는가. 아, CB, 실천적 관점 끌어내기 참 어렵다 ㅋㅋㅋ. 하긴, 이런 이빨, 전 세계에서 누가 감히 이야기하겠나. 인드라 말고 이런 이야기하는 이가 전 세계에 단 한 명이라도 있나 ㅎㅎㅎ. 어쩐지 진한 남성 호르몬 냄새가 진동^^?

   

근데, 이런 건 집안 내력인 듯. 인드라 장남 민 중이병 친구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 어쩐지 인드라랑 비슷한 냄새가 ㅋ.

   

http://blog.naver.com/miavenus2/130835826

   

하여간, 이런 점을 전제하고, 알튀세르를 이야기하자.

   

알튀세르가 어떤 넘인가.

    

빅터 로스차일드는 1901년 10월 31일에 태어나 1990년 3월 20일에 사망한다. 알튀세르는 1918년 10월 16일에 태어나 1990년 10월 22일에 뒈진다.

   

이때, 알튀세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980년 11월16일 노동자 출신 유대인 아내 엘렌을 목졸라 죽이고,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살았다. 헐~!

   

<알튀세르가 회고하는 엘렌느는, 키가 작은 유태인이고, '억센 외모와 태도 속에 숨겨진 놀랄 만한 명석함과 고귀한 마음'을 가진 여자다. 그녀는 일생의 열정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http://blog.naver.com/comesisle?Redirect=Log&logNo=20063808235

   

"1980년 11월 26일 알튀세르는 평생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엘렌느를 정신착란 상태에서 교살하게 된다. 엘렌느는 1945년 알튀세르가 월름 고등사범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만나게 된 여인이었다. 엘렌느를 살해한 알튀세르는 후견인의 보호 하에서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숙원사업, 즉 맑스에게 철학을 돌려주려던 자신의 평생 과업을 서둘러 완성하게 된다. "1982년 10월 3년간의 끔찍한 시련에서 벗어나 이 책을 쓴다. 그 시련을 누가 헤아리랴. 아마 어느 날 그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이야기가 다른 것들을 밝힐 수 있고 그 상황과 내가 겪은 것(정신치료 따위)에 대해 밝힐 수 있기만 하다면. 1980년 11월 나는 정신적 혼란의 격렬하고 예견할 수 없었던 위기의 와중에 내 아내를 목 졸랐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moa1977?Redirect=Log&logNo=50037787394

   

알튀세르의 맑스 읽기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유대인 스피노자는 맑스의 직계 스승이다. 라는 관점이다. 즉, 헤겔에서 스피노자로 대체하려고 한 것이다.(들뢰즈는 헤겔 대신 니체를?) 스피노자는 파격적인 주장 탓에 당대 네덜란드 유태인 금융그룹에서 파문당한 바 있다. 이것이 알튀세르가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비빌 언덕이 되었던 게다. 그러나 이는 명목적으로 소련, 동독 공식 입장에서 맑스주의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알튀세르의 아내 살해 동기를 국제정세와 맞물려 고려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손자병법, 육도삼략과 함께 거론되는 오자병법의 주체 오기이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비정하게 아내를 죽였던 게다. 알튀세르가 중국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오자의 예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대 정세는 어떠한가.

   

당대 정세는 빅터 로스차일드라는 유대인 랍비가 될 수 없던 인물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권력이 넘어가던 시기였다. 문제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그나마 알튀세르같은 위인을 챙겨줄 뿐, 록펠러 성향은 알튀세르 따위에게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알튀세르의 평생 숙원 사업은 빅터 로스차일드가 유대 전통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처럼 살아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것이야 빅터 로스차일드가 힘이 있을 때나 하는 이야기일 뿐. 아주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면 알튀세르가 극도의 정신착란 상태에서 유대인 아내를 목 졸라 죽임으로써 새로운 세계 권력인 록펠러에게 충성서약을 했다고 여긴 것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루이 알튀세르가 끔찍하게 싫어했던 독일인 헤겔의 인정투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게다. 아무튼 록펠러가 국제유태자본의 황제가 된 이후로 루이 알튀세르의 국제 명성은 추락하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렸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46343147

   

이런 식이 인드라 방식이고.

   

"알제리 출생. 파리의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에서 G.바슐라르에게 헤겔철학을 배웠고, 졸업 뒤 모교에서 철학교사를 지냈다. 1948년 프랑스 공산당원이 되었고, 1967년경부터 자신의 이론을 통한 계급투쟁을 실천하여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정치적인 실천은 프랑스 공산당 내부에서 당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의 포기와 당의 혁명전략과 조직원칙에 대한 비판으로 전개되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Pour Marx》(1965)에서 그는 마르크스 사상을 초기의 인간론, 소외론으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 사상의 특질이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는 인식론적 절단에 있다고 주창하였다. 제자 발리바르와 함께 발표한 《자본론을 읽는다 Lire le Capital》(1965)에서는 헤겔 사상을 단절하고 마르크스 사상의 구조론적 해석을 제시하였다. 《레닌과 철학 Lenine et la philosophie》(1969)에서는 철학과 과학과의 관계와 철학의 정치적 본질을 파악하였다. "

[출처] 루이 알튀세르 | 네이버 백과사전

   

"루이 알튀세르 [ Louis Althusser ]

프랑스 철학자. 마르크스 사상에 구조주의적 해석을 제시,「과학적 마르크스주의」로 불리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를 다진 창시자이다. 그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그람시루카치 등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고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했다.67년 쓴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청년기와 완숙기로 구분하고 두 시기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주장했다.알튀세르는 인간은 사회를 이루는 각종 구조적 층위에 의해 규정된 존재라고 보았다.그는 인간을 규정하는 '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다.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켜 60년대 후반 「이데올로기적 억압기구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즉 국가를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구분하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계급투쟁의 장이라고 강조했다.억압적 국가 기구에는 정부, 군대, 경찰, 법원, 감옥 같은 것이 있으며, 이것들은 물리적 힘, 즉, "폭력을 통해 기능"한다.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세력이나 생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에게 보다 효과적인 재생산 기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이다. 이데올로기를 통해, 즉 사람의 생각, 신념, 가치관, 더 나아가서 감성까지를 근본적으로 지배함으로서, 그것들이 생산되는 방식을 독점적으로 통제함으로서, 지배적 사회 관계를 유지해 간다는 것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7678

   

이런 방식이 그간 방식인데.

   

여기까지 쓰니까 벌써 오전 6시가 넘었네~ ㅠㅠㅠ 졸립지는 않고, 술도 약간 남았지만, 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가톨릭은 뉴라이트파인가, 노비네파인가 : 김일성대, 사노맹, 백태웅, 박경애, 박근혜 국유본론 2011

2011/10/14 02:02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216160

   

   

   

가톨릭은 뉴라이트파인가, 노비네파인가 : 김일성대, 사노맹, 백태웅, 박경애, 박근혜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6

   

1999년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뉴라이트파이다.

현 독일 교황은 노비네파이다.

   

   

CIA :

   

김일성대학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북한 대학교수 6명이 올해 들어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로스차일드계)에서 6개월 간 장기체류하며 경제공부를 하고 있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주관한 것은 박경애 브리티시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정치학 교수). 같은 대학에 옛 사노맹의 백태웅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북한 교수들이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 머무는 기간 동안 백태웅은 하와이대에 잠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상태.) 백태웅의 최근 인터뷰를 보니 아시아공동체 기구가 구성되면 그때 거기서 자기역할을 할 것이라 말함. 백태웅은 필히 다시 등장할 것 같음. 의견 부탁.

   

인드라 :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은 노비네파인가.

   

"약칭은 'UBC'이다. 1908년 3월 7일 대학 설립 허가가 났으며 이후 캠퍼스 위치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1914년부터 밴쿠버 서쪽의 포인트그레이(Point Grey)에 캠퍼스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사이에 1915년 9월 일시적으로 밴쿠버 인근의 맥길대학교칼리지(McGill University College)를 합병하면서 인문·응용과학·농학부에 입학한 379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경제적 사정으로 건설이 연기되었던 지금의 캠퍼스가 1925년 완공되자 이전하였다. 연구 중심의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2010년 기준으로 예술, 응용과학, 교육, 의학, 약학, 치의학, 간호, 삼림, 보건·사회개발, 땅·식품체계, 법과, 경영, 과학, 건축, 휴먼키네틱스, 언론, 음악, 사회사업·가정 등 24개 학부와 다양한 대학원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의학, 약학, 경제학, 심리학, 경영학부의 명성이 높다. 캠퍼스는 밴쿠버의 중심가에서 10km 떨어진 포인트그레이의 밴쿠버 캠퍼스와 켈로나(Kelowna)의 오카나간 캠퍼스로 나누어지고 위성 캠퍼스인 로브슨스퀘어(Robson Square) 캠퍼스, 밴쿠버 종합병원 캠퍼스, 그레이트 노던웨이(Great Northern Way) 캠퍼스가 있다. 밴쿠버 캠퍼스 부근에 누드해변을 포함한 몇 개의 해변과 노스쇼산맥, 태평양스피릿지역공원이 있다. 부설시설로 대학병원, 출판부, 아시안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모리스헬렌벨킨미술관, 자연사박물관, 인류학박물관, 라디오 방송국, 텔레비전 방송국, 공연예술센터, 식물원, 니토베기념가든, 식물연구센터 등이 있다. 1999년 졸업생 로버트 먼델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캐나다 총리 존 터너, 킴 캠벨(Kim Campbell) 등이 수학했다." 

[출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 | 네이버 백과사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이 로스차일드파 혹은 노비네파일 수 있다. 허나, 왜 그리 생각하는지 언급을 하는 것이 좋겠다.

   

졸업생 정치인 성공회 킴 캠벨과 가톨릭 존 터너 때문에 노비네파로 보는가.

   

"킴 캠벨(Avril Phaedra "Kim" Campbell, 1947년 3월 10일 -)은 캐나다의 여성 정치인이다. 에이브릴 패이드러 캠벨의 본명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포트 앨버니에서 태어났다. 12세때 킴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알려졌고, 음악을 배웠다. 그녀는 시를 잘 썼고, 기타피아노 연주에 뛰어났다. 1969년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에서 정치학 학위를 받았다. 1972년에는 영국 런던에 유학하여 철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하여 공부하던 중, 그곳에서 모교의 수학 교수 네이던 J. 디빈스키와 결혼하였다. 학위 공부를 포기하고 1973년 남편과 귀국하였다. 1975년부터 6년동안 모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였다가, 1983년 법학위를 받았다. 1988년 밴쿠버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법무장관을 지냈다. 1993년 1월 9일에 국방부 장관으로 있다가, 같은 해 6월 25일 멀로니 총리가 사임하자, 그녀는 진보보수당 당권에 도전하여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캐나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진보보수당의 인기는 매우 낮았기 때문에 곧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큰 차이로 패하여 불과 4개월여 만에 물러나고 정권을 자유당에 넘겨주었으며, 그 자신의 지역구에서도 낙선하여 국회의원직도 상실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 총리로 재직했으나,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캐나다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3년도쿄에서 열린 선진 7개국 정상회의에서 캐나다 총리로 참석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D%82%B4_%EC%BA%A0%EB%B2%A8

   

"존 네이피어 터너(John Napier Turner, 1929년 6월 7일~)는 캐나다의 정치인이며, 1984년 6월 30일부터 2달 반간 총리였다. 영국 서리 주 리치먼드에서 태어나, 2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오타와에서 학교를 다녔고,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나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로즈 장학금 수련자로 법학을 공부하러 갔다. 변호사로 지낸 후, 자유당 당수로 1962년 캐나다 하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피어슨 총리의 내각 아래에서 근무하였다. 트뤼도 총리 내각에서 법무 차관 및 장관을 지냈고, 그 말기에 재무 장관이 되었다. 1984년에 트뤼도 총리가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총선을 실시하였으나 진보보수당멀로니에게 패하였다. 1988년 총선에서도 패하여 정계에서 물러났다."

http://ko.wikipedia.org/wiki/%EC%A1%B4_%ED%84%B0%EB%84%88

   

 킴 캠벨이나 존 터너로 볼 때,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이 노비네파처럼 보인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워싱턴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56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존스홉킨스대학교 강단에 섰다. 1974년 이래 30년 가까이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학계에만 안주하지 않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40년 가까이 IMF 고문역을 맡았다. 또 세계은행(IBRD) , 국제연합, 유럽공동체, 중남미 및 유럽 각국 정부, 캐나다정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재무부 등의 고문역 또는 자문관으로 활동하는 등 현실 정책분야에도 깊숙이 간여하여 왔다. 특히 1970년에 유럽공동체의 통화위원회 컨설턴트, 1972년에서 1973년에 걸쳐서는 유럽통화연합(EURO)의 산파역을 맡기도 하였다. 그의 활동영역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1970년대에는 미국의 저명한 시사경제지 '정치경제 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또 조형예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어 1998년 10월 미국 예술과학원 회원이 되었다. 그는 19601970년대에 지금은 국제경제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그의 경제이론 '먼델-플레밍의 법칙'을 고안하여, 서로 다른 환율체제 아래에서 각국의 통화 및 재정정책이 다른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쾌하게 규명하였다. 그는 또 "자본이동자유화되면 설령 무역장벽이 존재하더라도 무역자유화의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 중의 하나인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상품가치를 평준화시켜 결국 국제교역 자체를 증진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논리는 자본자유화, 교역자유화를 지향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현 국제경제질서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되어, 그를 국제경제학의 흐름에 있어 주류에 속하게 하였다. 그의 연구 업적은 환율변동폭에 관한 연구에서부터 단일통화 도입, 경제성장 및 국제수지의 대내 ·외 균형달성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가 정립한 '먼델-플레밍의법칙'과 '요소비용 균등이론'등은 개방경제 옹호론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1999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1999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먼델이 상이한 환율정책 분석과 최적 통화지역 분석으로 1999년도에 출범한 유럽연합(EU) 단일통화 분석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고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스웨덴 한림원은 특히 "먼델의 이론은 노동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으로 일상용품의 가격이 평준화하는 과정을 규명하였으며, 약 40년 전에 고안된 먼델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매우 타당하다."고 평가하였다. "

[출처] 로버트 먼델 [Robert A. Mundel ] | 네이버 백과사전

   

"로버트 알렉산더 먼델(Robert Alexander Mundell, 1932년 10월 24일 ~)은 콜럼비아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다. 캐나다 출신이며 밴쿠버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졸업생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도 학위를 1956년에 취득했다.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199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74년 이래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1년 이래로 학술적으로도 최고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 맥길 대학교와 존홉킨스 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2002년 캐나다의 국립훈장인 오더 오브 캐나다를 수상했다. 그는 워털루대학 의장이던 시절 유로에 관련한 통화 체계에 대해 설계하면서 공로를 인정받아 경제학상을 수여받게 됐다.

그의 이름을 딴 먼델 국제기업대학교베이징 중관춘에 있다.

[편집] 국제 통화 유입

먼델은 감세 정책과 공급의 경제학을 주장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주력 분야는 통화와 환율에 관한 것이다. 1960년대 캐나다가 변동 환율로 바뀌면서 변동환율제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 1930년대 이후 경제현상에 대한 지적으로 스웨덴 정부에 금본위 정책을 채택하도록 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1962년 마르퀴스 플레밍과 함께 먼델-플레밍 모델에 대해 고안했다. 그는 플레밍과 함께 발표한 이론에서 변동환율제하 경기 부양책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가격안정성과 자유자본 유입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 브레튼우즈 체제의 제약은 금본위제보다 미 연방재정체계에 맞춰진 것이다.
  • 수요를 촉진하는 재정정책은 변동환율제 하에서 비효과적이다.
  • 단일통화의 유통지역은 반경 내에서 화폐유동성을 갖는다.

    그의 분석은 결과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물가상승률 관련 정책이 불합치였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브레튼우즈체제는 금본위 체제를 오히려 깎아내리는 것이며 경제정책의 실패로 통합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1] 후에 유로화 도입에 관해서 브레튼우즈 체제를 깨는 것이 소득세율을 계속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소지가 높다고 예측했다. 1974년 세금 철폐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혔다. 일부 보수주의자가 그를 추켜세우곤 하지만 보수진영의 공격을 많이 받은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금본위제 경제체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의구심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는 대개 재정정책과 세금에 대해서 등가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 텔레비전

    로버트 먼델은 CBS의 데이빗 레터맨 쇼에 2002년 10월 처음으로 출연했다.[2]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준 10가지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많은 쇼에 등장했으며 중국중앙방송의 토크쇼인 百家讲坛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B%A1%9C%EB%B2%84%ED%8A%B8_%EB%A8%BC%EB%8D%B8

       

    로버트 먼델은 빅터 로스차일드 시절에 IMF 등에서 활약을 하였으니 로스차일드파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허나, 클린턴 정권 막바지에  1999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으니 노비네파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다. 인드라는 재선한 대통령 후반기를 뉴라이트파 집권 시기라고 보고 있다. 해서, 1998~1999년이 뉴라이트파 집권 시기였고, 2007~2008년 역시 뉴라이트파 집권 시기라고 보고 있다. 만일 대통령이 단임한다면, 단임 후반기가 뉴라이트 집권 시기라고 본다. 해서, 인드라는 로버트 먼델을 노비네파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로버트 먼델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그가 시카고 대학 재직 때 연구 업적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하면? 그렇다. 시카고 학파의 산실이다. 시카고 학파하면 신자유주의~!

       

    "@먼델·플레밍 이론

    시카고대학 시절 먼델의 이론과 국제통화기금에 근무하던 플레밍의 이론이 합쳐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이론은 고정환율제에서는 재정정책, 변동환율제에서는 통화정책이 국민소득 향상에 효율적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변동환율제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정책 보다 통화정책이 효과적이라는 것.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는 총수요 증가이자율 상승국제자금 유입통화가치 상승의 결과를 낳는다. 이 때 고정환율제 아래서는 통화가치 상승이 없기 때문에 계속적인 자본수지 개선효과가 나타나고 국민소득이 증가해 수입은 늘지만 자본수지 개선효과가 이를 압도해 결과적으로 국제수지는 흑자가 된다. 하지만 변동환율제에서는 자본유입으로 통화가치가 계속 높아지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증가로 경상수지도 악화돼 결국 경기상승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재정확대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의 경우 변동환율제에서 이자율하락자금 유출통화가치 하락수출경쟁력 강화국제수지 개선으로 이어진다. 통화확대로 경기부양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는 이와 반대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지난 60년대초 캐나다가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배경이 됐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000051

       

    먼델이 시카고대학에서 연구했다지만, 시카고학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변동환율제에서는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묘하게 시카고학파의 통화정책과 만날 수 있다. 거칠게 표현하면, 케인즈주의 = 재정정책, 시카고학파 = 통화정책이니까.

       

    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 시점이나 먼델 플레밍 이론 쓰임새로 볼 때 먼델은 뉴라이트파에 적합하다.

       

    예서, 백번양보하여 만일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출신 주요 인물들이 모두 노비네파라고 해도 대학을  노비네파라고 하면 무리가 있는 가설이라고 본다.

       

    인드라가  학교를 가늠하는 세 기준은 이렇다. 첫째, 학교의 역사적 기원. 둘째, 현재 총장과 이사진.  셋째, 주요 졸업생들의 행적. 이런 점에서 인드라는 고려대를 뉴라이트 대학이라고 보고 있다. 허나, 그외 다른 대학이 어떻다 하는 것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설사 유명 졸업생들 행적이 모두 노비네파라고 해도 노비네파라고 부르기에는 심사숙고해야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하여, 주요 졸업생들만 가지고서 노비네파라고 보고 있지는 않을 터. 다른 근거 자료를 제시한다면 인드라 역시 노비네파에 비중을 둘 것이다. 허나, 지금 나온 것만 가지고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과 한국은 무슨 관계인가.

       

    http://blog.naver.com/birdonyou/10116449662

       

    대학이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데다 유학생 수도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으니 한국학 연구소가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로 이민, 유학가는 이들이 오죽 많나?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9&dirId=9020202&docId=74301796&qb=6rCc7Iug6rWQIFVCQw==&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pNVeU5Y7tCssteYgmCssc--459311&sid=TpcTbvL8lk4AAHX6H1s

       

    캐나다에 직접 가본 적이 없어 뭐라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나, 그간 지인들이 전하는 말을 종합한 것과 비교하면, 왜 캐나다냐? 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미국과 다른 문화가 있는 영어권 나라이고, 치안이 안전하면서 풍광이 좋은 나라인데다, 가톨릭이나 가톨릭과 유사한 성공회가 주류인 나라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은 호주나 뉴질랜드다 필리핀이다 영국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미국 아니면 캐나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캐나다도 온통 한국인이야, 라는 말이 퍼지면서 다른 대체지를 찾다 보니 호주다 뉴질랜드 필리핀이 등장한 것이라고 본다. 해서, 상기한 글이 캐나다를 잘 드러내지 않는가 싶다. 캐나다 주류는 영국 성공회파이거나 프랑스 가톨릭파이지만, 벤쿠버 지역이  다른 캐나다 지역과 달리 개신교 문화도 많이 발달해 있다는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본다.

       

    예서, 인드라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명예박사 출신 기독교장로파 김재준을 떠올린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3304

       

    중도좌파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빅터 로스차일드파였던 박정희 정권은 동학, 천도교, 가톨릭, 불교에는 친화적이었으나, 기독교와는 불화하였다. 하여, 박정희 정권 때 줄기차게 싸웠던 세력은 기독교 세력이 주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기독교는 박정희 정권 덕분에 박해받는 이미지 덕에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지금 김정일 정권과 맞싸우는 북한 기독교와 흡사하다 할 수 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도 기독교 세력이 한국 기독교와 비슷하다 들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인드라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내놓는다. 중국과 일본 정치 지도자는 물론 김일성, 박정희 모두 빅터 로스차일드가 임명한 자들이다. 예서, 이들을 견제하고, 감시할 세력을 키우는 데에 있어 빅터 로스차일드가 기독교 세력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집권자들은 알파요, 기독교 세력이 오메가인 셈이다. 허나, 다른 나라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기독교 세력이 크게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 때문이다. 한국 전쟁. 전쟁 공포로 인해 한국인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유본이 일으킨 광주항쟁 삼십년간 공포에 쩔은 호남인이 맹목적으로 쪽발민주당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처럼 역시 국유본이 일으킨 한국전쟁 삼십년간 공포에 사로잡힌 한국인은 무조건 여당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종교 역시도 마찬가지 사정이라 할 수 있다. 일제와 맞싸우고, 북한 공산주의와도 대결할 수 있는 사상이 무엇이냐. 기독교이다. 가톨릭은 쪽발이 종교다. 불교는 산 속에서 혼자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것이다. 그처럼 지난 삼십년간 국유본은 쪽발 돼중교를 시민에게 세뇌 강제시켜왔던 것이다.

       

    도널드 베이커는 누구인가.

       

    캐나다 한국학 지존, 도널드 베이커는 누구인가.

       

    캐나다에서의 한국학

    http://blog.naver.com/yonghablue/48520526

       

    도널드 베이커는 《조선 후기 유교와 천주교의 대립》(서울: 일조각, 1997)에서 보듯 조선 말기 가톨릭 교회사 연구 전문가이며, 다산 정약용 연구가이기도 하다. 1976년부터 미국인이면서 캐나다 한국학연구소 센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드라는 도널드 베이커란 자가 뉴라이트라고 보고 있다. 즉, 국유본 권력을 쥔 데이비드 록펠러는 브레진스키에 명하여 가톨릭 점령을 위해 요한 바오로 2세를 포섭했다. 왜인가.

       

    이후 권력을 잡을 이들을 알파라고 할 때, 가톨릭이 오메가여야 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기독교였지만, 이제는 가톨릭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종교사적으로 대격변인 셈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집권했던 근 이백년간 서양사는 물론 세계사는 국유본이 지원하는 유태인 권력자들이 알파요,  국유본이 역시 지원하는 '양심세력' 기독교가 오메가를 이루어서 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국유본이 총칼을 들고 점령한 땅에는 예외없이 '양심세력' 기독교 전도사들이 국유본에 맞서며 문화 사업을 펼쳤다.

       

    헌데,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제 이 역할을 일시적으로 기독교에서 가톨릭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기독교 세력으로서는 배신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전 세계적에서는 갑자기 가톨릭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1986년에 나온 뉴라이트 영화 '미션'이다. 이 영화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된 사람도 한둘이 아닐 것으로 본다. 허나, 단지 영화 한 편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뉴라이트파는 박정희를 암살하고 광주항쟁을 일으켜서 한편으로는 전두환을 옹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을 저항의 상징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그 역할을 담당한 이 중 하나가 도널드 베이커라고 본다. 인드라가 볼 때, 도널드 베이커는 국유본 간첩이 본 직업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1980년 이후 풍경이 달라졌다. 한국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성당이 나타나고, 신부 수녀가 어김없이 착한 사람들로 오버랩한다. 반면, 그 이전까지 양심세력이었던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이름으로 난도질당하기 시작한다. 목사들 비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오고, 언론에서는 기독교 비판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한국 가톨릭 세력이 갑자기 민주화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반미투쟁의 선봉으로??? 197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이란 어디까지나 한국도 미국처럼 민주주의 국가가 되자는 것이 목표였다. 반면 국유본은 광주항쟁을 통해 의도적으로 반미 의식을 고취시켰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라면, 동북아에서는 한국이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근본주의와 지역주의를 좋아하니까. 한국 지역주의는 데이비드 록펠러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범인을 가톨릭 교회가 보호한다? 갑자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가 된다? 이 모든 건 국유본이 의도하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흘러갔다. 물론 1970년대에도 가톨릭이 전혀 투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학순이 있었다. 허나, 기독교 세력에 비한다면 가톨릭은 지학순 혼자 싸운 것이나 다름없지 않던가. 아무튼 이 흐름도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가톨릭에도 변화가 오긴 했지만. 이런 흐름에는 젊은 층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는 법이다. 이제까지 기독교 학생회에 비해 뭐 하나 내놓을 것이 없어 초라했던 가톨릭 학생회가 호응한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사노맹을 보자.

       

    사노맹에는 왜 가톨릭 종교 조직이 주가 되었나?

       

    "노동,종교등 1천6백여명규모의 반국가단체

    | 기사입력 1990-10-30 07:00

       

    =安企部의 사노맹 수사결과 발표문 요지= 무장봉기통한 사회주의 국가건설 추구목표

       

    음어.암호.무인포스트이용등 간첩조직 방불

       

    무장봉기시 무기고탈취,폭발물제조계획 수립

       

    (서울=聯合)국가안전기획부가 30일 명백한 반국가단체라고 밝힌'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에 대한 수사결과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노맹 결성경위=88.10월께 직업적 사회주의 혁명가로 자처하는 백태웅(수배중),박기평(가명 박노해.수배중)남진현(구속) 김형기(가명.수배중)및 박기평의 처 김진주(여.35.이대약대졸.수배중)등 5명은 자신들이 주도해온'제헌의회그룹'(86.5 결성)'해방투쟁동맹'(87.4결성)등 지하혁명조직이 와해되자 89.2 제헌의회그룹 당시의 간부와 대학가,노동계등의 추종세력 1백40여명을 규합해「사노맹 출범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1년여간의 준비기간을 두고 중앙및 지방조직 체제를 갖추는 한편 활동자금을 확보한 후 89.11.12 서울대에서 열린'전국노동자대회'에서'출범선언문'을 발표,공식출범했다.

       

    사노맹 조직의 실체=사노맹은 우리사회를 현정부와 매판자본가 계급이 미국.일본에 종속돼 노동자등 민중을 지배 착취하는「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레닌의 2단계 혁명전략에 따라 1천만 노동자를 주축으로,反정부세력 규합-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결성-무장봉기로 임시민주정부 구성-민중공화국수립(이상 1단 계)-반동관료 숙청-완전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이상 2단계)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혁명 투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노맹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키 위한 전술로서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결합시키기 위한 선전활동 전개他정파와의 비타협적 사상투쟁 전개등 임무 수행을 통해 92년이내에 혁명전위당인「노동자黨」을 기필코 건설하라고 조직원인「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지시하고있다.

       

    조직체계및 세력규모=사노맹은 레닌의'당조직 전술원칙'을 모방,중앙위원회를 최고지도부로 해「조직위」「편집위」「각 市道 지방위원회」와「노동문학사」「남한사회주의 과학원」「사회주의 학생운동연구소」「민주주의 학생연맹」「各정파 파견망 그루빠」로 조직체계를 구성하고,각 단위조직을「지방위원회」와 「소조지도책」으로 구분,단선 점조직화 돼있다.

       

    「조직위」구성요소인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 개발및 무기탈취계획과 독극물개발,조직보위를 위한 수사동향 정보수집등 특수임무를 수행하고있다.

       

    사회주의 혁명선전 선동사업을 위한 사상적 지도부인「편집위」산하에는'지하인쇄소' '노동문학사'및 이념정립기구인'남한사회주의 과학원'학생운동기관지'새벽바람'편집부인'사회주의 학생운동연구소'등이 있다.

       

    노동자혁명투쟁을 선도할 학원투쟁조직으로는「사회주의 학생운동연구소」지도로 전국 40여개대학에 '민주주의 학생연맹'(DSL)이 조직됐거나 조직중에 있다.

       

    사노맹은 이같은 조직체계에 따라 노동계 2백30여명,학원 1천30명,종교계 청년운동단체 90여명,민중당 30명,기타 노동 청년운동그룹 2백30여명등 모두 1천6백여명에 달하는 전국규모를 가진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조직 관리및 비밀활동=사노맹은 각 분야에 침투,활동중인 조직원들이 1차적으로 혁명인자를 물색,'자기소개서'를 제출케하고 신원성향을 조사한 후'사상성''비밀활동능력'등 50여가지 기준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조직원으로 포섭한 후 1개월-1년간 체력훈련등 지옥훈련을 거쳐 직업적 혁명전위투사로 양성해 왔다.

       

    이들은 조직관리를 위해 '일상용어 음어화''철저한 안가관리''조직 기밀유지'등 「10대 보위수칙」을 제정했으며 충성도등의 평가를 위해 각 조직 단위별로'활동보고서'를 작성,보고케 했다.

       

    이에따라 결혼이 조직 보위에 위해롭다고 판단되면 상부의 허락을 받도록 강요한 사례도 있다.

       

    사노맹은 조직 부서의 명칭을 서울지역은'한불종합금융'부산지역은'오양수산'대구지역은 '대신증권'등과 같이 널리 알려진 기업체명을 위장사용하고 조직원 전원이 가명으로 행세했으며,접선장소 시간약정등 일체의 사항을 암호.음어.약어화해 철저한 비밀통신연락 접선체계를 약정,운영하는등 간첩조직을 무색케할 정도의 비밀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따라 조직원 각자는 상부에서 하달한 암호해독표를 소지하고 있다가,상부선에서 임무에 필요한 암호부호를 하달하면 하부선은 해독표에 따라 연락 접선했다.

       

    예를들어 상부선에서 김.종.민이란 이름의 음어와 함께"자.모음수"를 이용하라는 지시를 하게되면 하달받은 조직원은 김의 자.모음수(3)+종의 자.모음수(3)+민의 자.모음수(3)을 합한 9의 숫자인 상오 9시에 접선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인천지방 단위조직이 중앙위원회에 보고한 약정사례의 경우"H"일간지 광고란에"기석-꽃가게 내실분!상담해드립니다.T 977-5577 미미화원"이라는 광고를 내면"조직원 박기석의 신변에 위험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뜻으로 통했다.

       

    이와함께 유인물전달시에는 지하철역 구내 물품보관함,대학도서관,공중전화박스 등 특정장소를 무인포스트로 설정,활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조직원 은신처등 조직의 안전성확보를 위해 강남구 포이동 오피스텔,동대문구 장안동 상가빌딩내 사무실등 10여개의 비밀安家를 구입,컴퓨터.유인물.생활도구등을 갖추어 놓고 운영해왔다.

       

    이들은 안가보호수단으로 수사기관의 수색에 대비,가스총.도검류.쇠파이프.신나.염산등을 안가내에 항상 비치했으며 문고리에 머리카락을 끼우거나 책상서랍 사이에 종이 조각을 끼워 출입자를 점검하고 노출에 대비,탈출로를 사전에 설정해놓는등 철저히 대비해 왔다.

       

    안가내 비밀물건을 1급은'사노맹'조직원 신원등 조직내부 관련문건,2급은 조직내에서 발간된 문건 이나 유인물,3급은 타조직 명의 지하유인물등으로 분류,위급사고 발생시 신나를 뿌려 일시에 소각,증거를 없애도록 하고 문건배포등 조직원접촉을 위한 이동시에는 택시 시내버스 지하철등 대중 교통수단을 5-6회 바꾸어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중앙위원 남진현은 89년11월 조직총책 백태웅으로부터 조직원이 검거될 때는 조직보위를 위해 자살할 수 있도록 청산가리등 독극물을 마이신과 같은 형태로 제조,소지하는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받고,KAL기 폭파사건시 북한공작원이 액화 청산가리 앰플을 소지했던 사실에 착안,특수임무를 담당하고있는 연락국장 현정덕에게 독극물 앰플을 개발하라고 지시,하부 조직원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었다.

       

    사노맹의 조직활동자금=사노맹은 빨치산들의 사례를 본받아 조직활동 자금확보를 위한'보급투쟁'을 모방키로하고,88년12월 인쇄소 시설,아지트 확보를 위해 1차조직결성 자금을 2억7천만원으로 책정, 조직원 1인당 3백만원-1천만원씩을 할당,책임제로 자금을 모금했다.

       

    이들은 조직결성당시의 '보급투쟁'을 새로운 조직결성 비용을 마련한다는 뜻에서 '신혼비작전'으로 명명하고 친지중 '반동적인 가정의 재산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착취한 돈이므로 특공대를 투입,강절도'하여 혁명투쟁자금으로 강제귀속시키고 조직원간 위장 결혼식을 거행,결혼및 신접 살림자금과 축의금을 확보토록 하는등 反사회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도록 지시했다.

       

    사노맹은 이같은 방식으로 88.12-90.8월간중앙위원 남진현의 경우,37명으로 구성된 후원회로부터 1천3백40만원을조직원 권종길(25.고대영문 휴학)등 3명은 운전기사등으로 취업해 5백여만원을모 남자조직원은 집에서 금괴4개,금반지 11개,목걸이 1개등을 훔치는 방법으로 모두 1억원이상을 확보했다.

       

    사노맹은 이 돈을 인쇄소 시설비 5천만원,유인물 제작비 1천만원,활동비 3천만원,비밀안가 운영비 1천여만원등으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노맹은 또 '신혼비 작전'과는 별도로 안정적인 조직활동 자금의 확보를 위해 사노맹후원자 그룹 3개팀 12명으로부터 사업자금 3천만원을 확보후 이른바'인삼사업'계획을 수립,경기도 이천및 발안지역 인삼밭에 1천4백만원을 투자 입도선매하는 한편 강원소재 인삼밭에 대한 대규모 투자여건을 검토중이었다.

       

    성대운동권 출신 이금재(29.수배중)를 통해 1천1백만원을 투자,모 유명 유통업체를 이용한 인삼도매 유통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주요투쟁사례=사노맹은 선전선동체제를 합법,비합법 2원 구조화해 합법적인 대중선전 잡지로 89.1 노동문학사출간의'노동해방문학'을 문공부에 정식등록하고 89.4-89.12월간 15만여부를 발간했는데 그동안'이정로'라는 가명을 사용한 백태웅,'박노해'라는 가명의 박기평등이 기고문형식으로 그들의 혁명이념인 민족민주혁명론(NDR론)을 확산시켜왔다.

       

    비합법적으로는 지하기관지인「한걸음 더」「새벽바람」등과 지하유인물「출범선언문」「긴급전술 결의」등 40여종 20만부가량을 제작,비밀배포조직을 통해 자체구입한 봉고등을 이용해 전국 대학가및 노동현장에 배포해왔다.

       

    사노맹은 한편 92년까지'노동자계급 전위당'건설을 위해 서울 부산 경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마창 울산등 9개 시도의 공장사업부 산하 공장소조책을 각 공장프랙션(세포인자)으로 침투시켜 불만노동자를 물색한 후 의식화학습그룹을 결성,세포분열식으로 조직을 확대했으며 특히 공단 밀집지역인 성남 안산 창원 포항 울산 태백등지의 노조와 인쇄 금속 피복 광산등 업종별 노조등에 정예 조직원을 침투시켜 경제투쟁을 폭력 정치투쟁으로 이끌기 위한 배후선동에 힘써왔다.

       

    사노맹은 현재 포항제철,지하철공사,선경화학,서광,해태등 전국 50여개공장및 노동단체에 2백30여명의 소조원을 침투시켜 배후 조종하고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소조구성 활동 예를 보면 경기지역(국제종합금융)공장소조 지도책 김영식(가명)은 공장소조책을 양성,공장밀집지역인 성남을 중심으로 광주 여주 안산지역 공단의 중소규모 공자에 침투시켰고,대구지역(대신증권)공장소조 지도책 이주명(가명)은 공장소조책을 양성,포항제철 풍산금속 삼풍 구미세라믹등에 침투시켜 근로자를 의식화시켰다.

       

    사노맹은 민중통일전선을 구축하기위해 각 운동권단체의 투쟁이념,조직역량등을 면밀히 분석 군소조직을 흡수장악하고 거대조직은 표면상 연대하면서 점진적으로 자파 세력화하는 한편 분열된 혁명노선을 자신들의 NDR노선으로 통일시키기위해 소위 '정파운동'을 전개하는등 전형적인 공산당식 수법의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하고있다.

       

    사노맹에서 추진중인 정파투쟁사례를 보면 민중당을 장차 결성될 혁명전위당 산하의 합법투쟁체로 삼기위해 중앙집행부에 조직원 김원태(가명.서울대 82학번)를 침투시켜 민중당 실세인 장기표(정강정책위원장)정태윤(기획조정실장)등을 견제토록 하고 조직총책 백태웅은 대학원에서 급진이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론가 8명을 포섭,「남한사회주의 과학원」을 개설,합법이론지 발간사업등을 추진하는 한편 대학신문에 특집기획물을 기고하는등 NDR이념전파및 타정파 비판에 주력하고있다.

       

    또 전노협에는 조직원 주호(가명) 진경(가명)등을 핵심부에 침투시켜 사랑방간담회등을 통해 사노맹 혁명이념을 확산시키고있으며 노동자대학을 장차 黨정치학교의 모태로 삼기위해 조직원 미숙(가명)등 2명을 침투시켜 강의내용등을 사노맹이념으로 유도했다.

       

    종교계 청년조직인'가톨릭대학생연합회' '가톨릭민주청년회'에 핵심조직원 전인현(24.숭실대4.가명 김재석등 4개.구속)등 5명을 침투시켜 현재 65명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등 거의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노맹 중앙위원 남진현은 89.12 연락국장 현정덕에게"광주사태가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민중이 무장력을 갖추지 못한 데 있었으므로 자체적으로 폭발물을 개발,무장력을 확보하고 무장봉기시 무기고 탈취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으며 이에따라 현정덕은 남산중앙도서관에서 화약관련 서적등 자료를 입수,폭발물제조계획을 검토하다가 화공학을 전공한 신하송(22.광운공대출신.가명 양태규.수배중)에게 구체적인 개발에 착수토록 지시하는등 무장봉기를 준비해 왔다.

       

    신하송은 질산칼륨,유황,탄소등을 이용한 폭발물을 6개월-1년 기간내에 제조하겠다는 연구보고서를 중앙위원회에 제출 한 바 있다.

       

    한편 현정덕은 경남 창원공단 침투조직원을 통해 무기생산 방위업체인 창원공단내 (주)통일,(주)한국중공업을 무장봉기시 무기탈취 대상으로 선정,지역적 조건등을 예시한 계획서를 작성하는등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고 각 지방위원회 단위로 이른바 민중무장력 확보계획을 수립 추진중이었으며 특히 인천지방위원회의 경우 전담부서인 기획부에서 사제폭탄 제조방법,총기제작법,무기탈취방법등 무장투쟁계획을 수립,중앙위원회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18699

       

       

    예서, "종교계 청년조직인'가톨릭대학생연합회' '가톨릭민주청년회'에 핵심조직원 전인현(24.숭실대4.가명 김재석등 4개.구속)등 5명을 침투시켜 현재 65명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등 거의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가톨릭 종교조직만 있는 것일까^^?

       

    게다가 사노맹하면 대표적인 인물이 박기평(박노해)이다. 그런 박기평 집안만 봐도 가톨릭 집안이다. 형과 여동생이 신부와 수녀다. 박기평 어머니가 가톨릭 수녀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백태웅과 남진현 종교는 모르겠다.

       

    다만, 인드라가 사석에서 들은 정보로는, 백태웅을 비롯한 사노맹 주요 멤버들이 쪽발 돼중처럼 캐나다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 교회의 힘이라는 것이다. 예서, 인드라는 전기에 데인 것과 같은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종교 세력이란 그저 사회의 양심 세력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국제 사회를 움직이는 실세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여간, 백태웅이 차후 아시아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간접적으로 향후 한국 정권이 박근혜 정권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국유본은 한반도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마다 한 명씩 해외에서 훈련시킨 요원을 한국으로 보낸다.

       

    하면, 백태웅이 한국에 온다면? 뉴라이트로 올 것이다.

       

    진.. 유.. 조.. 앞의 애들 보다야 제대로 공부한 백..이 난 듯 보인다. 수혈이라고 해야 하나? 앞의 애들이 이제 진부하니까~!

       

    박경애는 누구인가.

    "<연합인터뷰> 캐나다 UBC大 박경애 교수

    | 기사입력 2011-08-18 07:09 | 최종수정 2011-08-18 09:51

박경애 교수-브리티시컬럼비아대 장기체류프로그램 관장 (서울=연합뉴스) 임상수 기자 = 김일성대학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북한 대학교수 6명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장기체류프로그램을 관장하고 있는 이 대학의 박경애 교수(정치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2011.8.18 nadoo1@yna.co.kr

北 대학교수 6개월 장기 체류 프로그램 관장

   

"북-캐나다 양국 이해 증진에 교육계 교류 중요"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북핵 문제로 인해 별다른 교류관계가 없는 북한과 캐나다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데 교육계 간 교류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북한 대학교수 6명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장기체류프로그램을 관장하는 이 대학의 박경애 교수(정치학, 한국학연구소 소장)는 17일 프로그램 설립 취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 교수들은 국제경영과 국제경제, 재정, 무역 등 4개 과목을 대학 내 정규 학생들과 똑같이 이수하게 된다"면서 "북한의 대학교수들이 외국에서 이처럼 장기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북미 다른 대학들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문답.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내 설치된 지식교류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지난 2001년 캐나다와 북한이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북핵문제로 인해 별다른 교류가 없는 상태였다.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 데는 교육계 간 교류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작년 6월 대학 내에 북한 교수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이번에 오신 대학교수들이 이 프로그램의 첫 참가자들이다.

   

이분들은 지난 7월 이곳에 온 후 현재 어학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으며, 오는 9월 가을학기에 국제경영과 국제경제, 재정, 무역분야 등 4개 코스를 공부하게 된다. 이들 코스는 대학 학부와 대학원에 개설된 것으로 이곳의 정규학생들과 똑같이 이들 과목을 이수한다고 보면 된다.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국가 간 교류는 여러 분야가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적자원 개발과 관련이 있는 교육계 간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체제가 다를 경우 정치 등 민감한 분야보다는 교육과 문화 등 분야에서 우선 교류를 함으로써 서로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게 필요한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육분야만큼 좋은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참가 대학교수들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학자분들이기 때문에 학문에 상당한 열의를 보이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모두 영어도 잘하기 때문에 생활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번 프로그램을 관장하고 있는데 북한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온 지 18년 됐다. 처음 이 대학에 왔을 때 캐나다는 북한하고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여서 90년대 중반부터 비정부차원의 국가 간 교류과정에 참여해 캐나다 교수들과 학술적인 목적으로 함께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해 양국관계를 논의했었다. 물론 북한학자들도 UBC를 방문한 적이 있다.

   

또 1999년에는 캐나다 외교관들과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등 오랫동안 캐나다-북한 양국 관계에 관여해 왔다. 참고로 북한과 캐나다는 2000년 외교관계 수립을 공식발표하고 이듬해인 2001년 정식수교를 맺었다.

   

--이번 프로그램이 가진 의미를 말씀하신다면.

   

북한의 대학교수들이 장기체류하면서 연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은 극히 이례적이고, 그만큼 선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지역의 다른 대학들도 이 프로그램을 주시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대학당국자 간 교류도 추진할 계획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217008

   

   

박경애 UBC 한국학연구소 소장 이력은 다음과 같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ㆍ미국 조지아대 정치학박사ㆍ미국 프랭클린마샬 (Franklin and Marshall) 대학과 멀서 (Mercer)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역임ㆍ1995 UBC 정치학과 교수로 취임ㆍ현재 UBC Korea Foundation 석좌 교수 (정치학)ㆍ북미한국 정치학회 회장 역임ㆍ1995년이래 2002년 한-카 국교 수립 이전 수차례 북한의 초청과 카나다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며 카나다-북한 교류 추진ㆍ1990년대 북한 학자들의 UBC방문과 UBC-북한 교류 주선.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 1995년이다. 1995년은 뉴라이트파가 아직 뉴라이트파와 제이파로 나눠지기 이전인 뉴라이트 클린턴 정권 때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북한의 비전통적 안보' 주제 국제학술회의

| 기사입력 2010-07-12 19:47

   

【마산=뉴시스】공봉식기자 =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 교수)는 오는 14일 오전부터 서울 삼청동 연구소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북한의 비전통적 안보'라는 주제로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한국학센터와 공동으로 진행된다.

   

이번 학술회의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전쟁이나 무력도발 등과 같은 전통적인 안보 위협뿐만 아니라 환경, 식량, 에너지, 인신매매, 불법이민 등과 같은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이 새롭게 주목받는 상황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토론을 하기 위해 열린다.

   

오전 10시 개회식에는 이수훈 소장을 비롯해 발터 클리츠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 대표와 박경애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소장 대행의 인사말에 이어 세계 석학들의 발표가 이어진다.

   

먼저 '북한의 전통적, 비전통적 안보 문제 재고'라는 주제로 서재정 교수(존스홉킨스대)와 브랜든 하우 교수(이화여대)가, '초국가적 조직범죄의 안보 문제화와 북한의 비전통적 안보'를 주제로 데이비드 강 교수(서던캘리포니아대)가 각각 발표한다.

   

이어 오후 2시부터는 이우영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가 '인간 안보의 시각에서 본 탈북자 문제'라는 주제로, 피터 벡 교수(스탠포드대)가 '해외 언론과 북한의 비전통적 안보'를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제3회의에서는 '북한의 비전통적 안보를 위한 국제협력'이라는 주제로 츠네오 아카하 교수(몬트레이국제대학원)가, '북한 난민과 국제협력'이라는 주제로 이신화 교수(고려대)가 각각 발표하게 된다.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총 3개 회의가 열리는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서는 11개 주제로 20여 명의 석학들이 발표한 뒤 10여명의 토론자와 함께 의견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3336415

   

스탠퍼드 대학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다. 나우만 독일 재단에 대해서는 지난 인월리에서 말씀드린 바 있다.

   

"기독교민주당(CDU)은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을, 기독교사회당(CSU)은 한스 자이델 재단을, 사회민주당(SPD)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을, 자유민주당(FDP)은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을, 녹색연합(Gruene)은 하인리히 뵐 재단을, 마지막으로 민주사회당(PDS)은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을 갖고 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05235670 

   

이때, 프리드리히 나우만은 누구인가.

   

http://blog.naver.com/kyc27/100018646754

   

현재 나우만 재단은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내에 사무소를 두고 있어 한국 정치에서 한양대 출신 정치인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우만 재단과 극동문제연구소가 연관 관계가 있는 듯싶다. 이런 흐름에 박경애가 있고, 박경애와 박한식이 조지아대로 묶을 수 있다면.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 볼 때, 인드라가 추정하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이번 북한 교수 초빙 사건 배후 조종 세력은 물론 국유본이다. 국유본 분파 중 노비네파가 아니라 뉴라이트파이다. 주요 배후 인물은 도널드 베이커이다. 얼굴마담은 박경애이다.

   

인드라가 추정하는 바로는 박경애는 종교가 기독교일 가능성이 크다. 해서, 박경애가 기독교계를 맡는다. 도널드 베이커는 가톨릭을 맡는다.

   

하면, 국유본은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가.

   

남북 통일 때문이다. 갑자기 통일을 시키면 문제가 많다. 김일성 대학 교수들을 데려다가 공부시켜야 한다. 하면, 김정일은 이런 것도 모르고 허용했다는 말인가. 오히려 잘 알기에 허용한 것이다. 국유본이 결심만 하면 김정일은 48시간 이내에 뒈진다. 지금 살려두는 건 김정일이 아직까지 쓸모가 있는 넘이기 때문이다. 해서, 통일을 절실히 바란다면, 김정일 없이 한반도도 이익이고, 국유본도 이익인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유본이 움직인다. 그런 시나리오가 없다면, 국유본은 느린 속도로 무리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통일을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드라가 볼 때, 현재 백태웅은 뉴라이트파이다. 또한 박경애부터 UBC 한국학은 뉴라이트파로 보인다. 인드라가 알기로는 백태웅이 민주화운동 인사로 인정받은 것이 2008년 12월 22일이다. 뉴라이트 이명박 정부 때인 게다^^! 참고로 뉴라이트 이명박 주변 인사들은 죄다 운동권이다~!

   

http://www.ytn.co.kr/_ln/0103_200812272147557611

   

어윤대라고 있다. 현 국민은행장이다. 고려대 총장이었다. 이명박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 뉴라이트이다. 그 이력에 보면, 하와이대 객원 교수와 브리티시컬럼비아 초청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예서, 하나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박근혜는 가톨릭이면서 왜 노비네파인가

   

박근령의 회고에 따르면, 박근혜가 성심학교와 서강대학교를 간 것은 박근혜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박근혜가 세례를 받아 율리아나라는 세례명도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네덜란드 여왕 이름이 율리아나이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빌헬미나, 율리아나, 베아트릭스가 3대에 걸쳐 왕위가 모계 전승하고 있다. 박근혜는 유럽 특사로 베아트릭스 여왕과 조우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friderike/18484701

   

불교 법명도 있다 들었다.

   

"박 전 대표는 아예 '기불천교인'으로 불린다. 기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와 골고루 인연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가톨릭 학교인 성심여고서강대를 다녔다. 세례도 받았다. 세례명은 '율리아나'이다. 법명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당시 주지였던 지성 스님으로부터 신라 27대 선덕여왕과 같은 '선덕화(善德華)'라는 법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교 신자인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신학대에 입학한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608#

   

허나, 박근혜 신앙의 중심은 여전히 가톨릭이다. 이런 까닭에 이명박이 박근혜를 이기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가톨릭 교회를 찾아간 것이다.

   

"성심학교의 기원은 프랑스의 성녀 마들렌 소피이 바라(M.S.바라:1779~1865)가 1800년 3명의 동료 수녀들과 수도서원을 하면서 1801년 설립한 프랑스 아미앵 성심학교이다. 오늘날 전세계 42개 국가 200여 개 학교로 확대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60년 여자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한국성심동창회(KASH)가 세계 33개국의 성심학교 졸업생으로 구성된 세계성심동창회(AMASC)에 소속되어 국내외적인 활동을 벌인다."  [출처] 성심여자고등학교 [聖心女子高等學校, Sacred Heart Girls'High School ] | 네이버 백과사전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deleine Sophie Barat)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gdalena Sophia Barat, 또는 마들렌 소피 바라)는 술통 제조업자인 아버지 자크 바라(Jacques Barat)와 어머니 마들렌 푸페(Madeleine Foute)의 막내딸로서 1779년 12월 12일에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즈와니(Joigny) 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열한 살 위의 큰 오빠 루이(Louis)로부터 라틴어와 고전문학, 신학과 철학 등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루이는 나중에 예수회 사제가 되었고 동생에게 항상 엄격한 규율과 벌을 주었다고 한다. 루이는 동생의 교육을 위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6세 된 성녀 막달레나를 파리(Paris)로 데리고 가서 여러 젊은 여성들과의 만남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대혁명의 여파로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부르심의 징표로 감지한 성녀 막달레나는 21세 되던 때에 오빠의 소개로 예수회의 조제프 바랭(Joseph Varin) 신부를 만나 장차 성심 수녀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를 창설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바랭 신부는 성녀 막달레나를 '예수 성심' 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수녀회의 초석이 될 적임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1800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성녀 막달레나와 세 명의 동료들이 예수 성심께 서원함으로써 성심 수녀회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심 수녀회는 예수 성심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 그 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을 근본 정신으로 하며, 특히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설립 목적을 구현해가고자 했다. 그래서 설립 이듬해인 1801년 파리 북쪽의 아미앵(Amiens)에 그들의 첫 수녀원과 성심학교를 세웠고, 1802년에 성녀 막달레나는 비록 회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당시 23세) 장상으로 선출되었다. 1806년 성심 수녀회 1차 총회에서 초대 총원장으로 선출된 성녀 막달레나는 일생 동안 수녀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성심 수녀회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804년에는 그르노블(Grenoble)의 성모 방문 수녀회 공동체를 흡수하였다. 그들 가운데 에는 1818년 미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성심 수녀회의 교육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a-Philippine Duchesne, 11월 17일)도 끼어 있었다. 이 수녀회는 1826년에 교황 레오 12세(Leo XII)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다. 성심 수녀회는 발전을 거듭하였고 유럽 각국 주교들의 요청에 의해 여러 나라에 성심학교를 설립되었다.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인해 푸아티에(Poitiers)의 수련소가 폐쇄를 당하자 성녀 막달레나는 스위스에 새로운 수련소를 세우기도 했다. 1865년 5월 25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그녀가 파리(Paris)에서 선종할 즈음에 성심 수녀회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중남미 등 16개 나라에 122개의 수녀원과 많은 학교가 있었다. 그녀는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5년 5월 2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녀 막달레나의 특성은 예수 성심에 대한 돈독한 신심과 사랑과 겸손의 실천이었다.

http://blog.daum.net/kws6953/8925678

   

성심이나 서강이나 예수회 학교이다. 중앙고 육사의 박지만과 경기여고 서울대 박근령과는 다른 행보이다. 박근혜가 간 학교 역시 명문이라지만, 한국에서는 비주류이다. 반면, 후자는 한국에서 주류이다. 물론 육사가 이젠 주류가 아니지만. 박근혜가 이런 주류적 삶을 거부하고 신앙의 길로 갔다.

   

예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가 정말 자발적으로 이 길을 갔는가. 갔다면, 평가해야 한다. 종교를 떠나서 말이다. 허나, 만일 이것 역시 국유본 안배라면 잘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성심과 서강대를 다닐 때는 아직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였다. 이 시기는 빅터 로스차일드와 가톨릭이 손잡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하나, 교회 일치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이다.

   

"세계교회운동·교회합동운동이라고도 한다. 원어인 에큐메니칼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umene에 유래한 것으로, 온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삼는다는 '세계교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상은 신약성서 이래 그리스도교의 일관된 주장이거니와, 오늘날 에큐메니칼 무브먼트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재일치(再一致)를 첫째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리스 정교회(正敎會)나 로마가톨릭교회와의 협력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구체적인 발단은 1910년 J.R.모트와 J.H.올담의 지도 아래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의이다. 이 에든버러 회의 이후 3개의 세계회의가 생겨나 이 운동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 하나가 국제선교협의회(IMC)인데, 선교에 있어서 일치협력을 목표로 하여 제1회 회의가 1925년 예루살렘에서, 제2회는 1938년 마드라스에서, 제3회는 1952년 빌링겐에서 열렸다. 또 하나는 '생활과 실천(life and work)'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현대의 현실적 여러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양심적으로 책임을 지기로 할 때 필요하게 되는 협력을 목표로 한 회의이다. 제1회 회의는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신학문제의 논의를 피해 왔으나 신학문제를 실천문제에서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차 인정하게 되어 마침내 세계교회회의를 조직할 필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위의 두 세계회의가 회피해 온 신학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함으로써 본격적인 교회일치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회의는 1927년 처음 로잔에서, 제2회는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려 교회관(敎會觀)·교의·예배·제도·공동성찬(共同聖餐) 등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단계를 거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제1회 세계교회회의가 열리게 되면서 세계교회협의회(世界敎會協議會:WCC)가 발족하였다. 이것은 위의 '생활과 실천' 회의와 '신앙과 직제' 회의가 통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제1회 및 1954년 에반스턴에서의 제2회 WCC 대회에는 로마가톨릭 교회·러시아 정교회 등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는 소련이나 동유럽 정교회가 참가하였고, 로마가톨릭 교회에서도 옵서버를 보냈으며, 또한 국제선교협의회도 세계교회협의회와 합동하여 교회합동운동의 획기적 진전을 보였다. 한편, 그 해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주요 교파들이 모여 그리스도교 평화회의(平和會議)가 열렸다. 이같은 진전은 인류의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핵무기 반대와 군축문제, 평화공존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힘입은 바가 컸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다른 교파에 대하여 융통성을 보임으로써 성공회대주교분리된 이래 처음으로 교황과 회견하였고, 1962년의 역사적인 바티칸 공의회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하여 미국·소련의 교회대표도 옵서버로서 초청받았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구성되어 있고, 장로교·감리교 연합협의회 때부터 따지면 80년 가까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연합사업 실태로 보아 교회일치의 꿈이 이루어질 날은 요원한 것만 같다. 

[출처] 교회일치운동 [敎會一致運動, ecumenical movement ]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운동 배후에는 물론 빅터 로스차일드가 있었다.

   

둘, 로마 올림픽이다. 이를 통해 국유본과 가톨릭의 화해를 전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전까지 올림픽은 주로 기독교 지역에서만 개최하였다. 베를린 올림픽은 국유본이 의도적으로 히틀러를 엿먹이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셋, 해방신학은 빅터 로스차일드 작품이다. 허나, 시작한 건 빅터 로스차일드인데, 그 열매를 데이비드 록펠러가 다 따먹었다~!

   

정리하면, 가톨릭도 분열하여 노비네파와 뉴라이트파가 있는 것이다. 오세훈과 김문수과 정동영은 가톨릭이면서도 뉴라이트파인 게다. 반면, 이회창은 노비네파로 보인다. 쪽발 돼중도 노비네파이다.

   

   

국유본 주인은 로스차일드인가, 록펠러인가 국유본론 2011

2011/10/13 04: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133443

   

   

   

국유본 주인은 로스차일드인가, 록펠러인가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3

   

   

CIA :

   

계**와 이** 사이의 외손녀가 신**인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맞는지.

   

인드라 :

   

인드라는 그 문제 같은 것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하고, 그 애비가 쪽발이만 아니면 무엇이건 인드라가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또한 아랫도리 문제에 대해서도 강간 같은 것만 아니면 인드라가 마광수 선생 제자여서인지 매우 매우 관용적인 편이다. 이를 전제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재야운동가와 유명 정치인 아내와의 손녀딸이란 건 사실이 아니라고 나온다. 허나, 인터넷이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유본이 뜻하는 대로 간다고 본다. 국유본이 결정하면 없는 아들 딸도 생기고, 반대로 국유본이 결심하면 있는 딸 아들도 사라진다. 김영삼이든, 쪽발 돼중이든, 쪽발 놈현이든. 이 대목에서 인드라가 관심이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안치용이다. 인드라 기억이 맞다면 뉴라이트 중앙일보에서 최초로 안치용을 언급한 것 같다. 헌데, 왜 뉴라이트 안치용이 신**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에게 뭔가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신**을 이슈메이커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오아시스'와 '도가니'에서 보듯 어떤 정치 '코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인드라는 이번에 도가니 사태에 서명한 국회의원들 명단을 파악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장애인 성폭행에는 정치인과 관련한 루머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는 하는데. 인드라 역시 이런 루머들에 대해  불신하는 편이었다. 허나, 영화까지 나오니까 뭔가 있나? 이건 예외인가 하는 생각이 갈수록 들고 있다.  

   

CIA :

   

차후 유라시아 금융계의 판도는 로스차일드인지 록펠러인지. 한국만 해도 삼성-우리-신한-국민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아시아 금융계에서 로스차일드가 눈에 더 띄는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로스차일드는 금융을 가지고 록펠러는 물류를 가지는 것인지. 로스차일드계인 한진이 최근 유라시아 물류사업에 투자를 확대하였는데 유라시아 물류 판도는 어느 쪽에서 선점하고 있는지.

   

    

 인드라 :

   

헛갈릴만하다. 지난 인월리에도 설명드린 바가 있는데, 이번에 다시 정리하겠다.

   

국제유태자본의 원천적 힘이 금융에 있다. 해서, 금융을 장악한 쪽이 국유본 주인이라 했을 때, 국제 금융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여전히 로스차일드 가문이 배후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다. 즉, 록펠러 가문은 바지 사장이고, 실제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실세이며, 황제이다. 제이 록펠러는 황태자이다. 하면, 국제 금융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주거래 통화

외환시장에서는 수많은 통화가 거래되지만, 그 중에서도 주요 거래 통화는 튼튼하고 안정적인 경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통화이며 동시에 외환시장에서의 거래량도 많아야 합니다. 전세계를 대표하는 미국달러(USD)와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일본 엔(JPY), 유로존을 대표하는 유로화(EUR 또는 URO), 유럽 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국 파운드(GBR)와 스위스 프랑(CHF) 등이 전세계 주요 거래 통화 품목 중 약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가별로는 런던 외환시장이 31%, 뉴욕이 19%, 도쿄가 8%, 싱가폴이 5% 순이며 그 밖에 독일(5%), 홍콩(4%), 프랑스(3%), 스위스(3%)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http://www.fo24.co.kr/fx/fxguide1_f.php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제를 알아야 하고, 외환시장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헌데, 대다수 사람들은 정치, 그것도 국내 정치에는 전문가이지만, 또한 종교를 좀 압니다만, 경제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99%이다. 한마디로 무식하다. 99%가 무식하니 새상이 바뀔 리가 없는 것이다. 무식한 넘들이 어떻게 세상을 잡겠냐.

   

해서, 이번 설명을 외환시장으로만 좁혀서 말씀드린다. 상기한 도표는 국가별, 통화별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국가로 보면, 영국이 압도적이다. 어찌된 일일까? 이 문제는 지난 인월리 유로본드에서 말한 바 있듯이 국유본이 1960년대 미국에서 채권 거래를 규제한 이래로 발생한 것이다. 채권을 거래한 만큼 외환 거래도 제한을 한다. 해서, 미국 시장에서 채권 거래를 규제한 만큼 뉴욕 시장에서 거래할 달러를 런던 시장에서 거래한다는 것이다.

   

해서, 통화별 비중을 보면, 달러가 압도적이다.  유로와 달러 거래가 28%이다. 달러와 엔 거래가 17%이다. 파운드화와 달러 거래가 14%이다. 이것만 해도 59%이다.

   

하면, 님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인드라는 엔화 실제 거래자가 국유본이기에 엔화 거래가 아무리 많더라도 일본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달러와 유로화와 파운드화와 엔화를 많이 거래하는 장소가 런던시장이라면, 국유본 권력은 여전히 로스차일드 가문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빅터 로스차일드 패배 이후 가문 권력을 프랑스 로스차일드로 양도하였다. 하고, 때가 되면  다시 가문 권한을 파리에서 런던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그 때란 빅터 로스차일드 손자이자 헤지펀드에 심취하고 있는 나다니엘 로스차일드가 공식적으로 가문 지위를 물려받았을 때이다. 

   

허나, 그것도 위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것이다.  

   

인드라 입장은 아니다, 이다. 이는 국유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금융 부문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방관한다면 언젠가는 런던 시티 금융자본을 위협하지 않겠는가. 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그것이 SEC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 SEC ]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1934년 증권거래법에 의해 설립된 독립 감독관청으로 미국 증권업무를 감독하는 최고 기구.

   

SEC는 투자자보호 및 증권거래공정성확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단순한 행정기관에 그치지 않고 연방증권법을 시행하기 위한 제규칙을 제정하고 심의, 의결하는 준사법적 권한을 갖는다.

   

주요업무는 ①기업내용 공시의 철저한 이행 ② 대주주의 주식취득 조사 ③ 거래원 등록 및 자격 취소 ④ 상장증권의 등록 ⑤ 공익성이 강한 전기, 가스 사업에 대한 규제 등 광범위하다.

   

투자회사, 투자자문회사, 장외시장 중개인과 판매인, 그리고 사실상 투자시장에서 영업을 하는 모든 개인과 회사가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모든 전국 증권거래소와 협회도 마찬가지다.

   

위원회는 상원의 승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 임기 5년의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 산하에 기업재무국, 시장규제국 등 11개 부·국(部局)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116

   

   

SEC을 결코 우습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겉보기에는 미국 금융을 감독 규제하는 준사법적 기구여서 국유본을 감시하는 기구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금융을 감시하기 위한 스파이 기구였다. 다시 말해, 로스차일드 의지에 반하게 행동하는 미국 금융 기관이나 미국 금융인이 있다면, SEC을 통해 엄벌에 처한 것이다.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한다. 미국 CIA가 1940년대 후반 그리스 사태부터 영국 정보부로부터 독립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전까지 미국 정보부는? 그렇다. 영국 정보부 지배하에서 있었다. 또한 1940년대 미국 CIA가 독립한 이후에도 1973년까지 미국 CIA는 영국 정보부 지도를 받는 정보부에 지나지 않았다. 즉, 007 빅터 로스차일드 영국 정보부를 중심으로 소련 KGB, 이스라엘 모사드, 미국 CIA가  하위 정보부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금융과 언론, 그리고 정보 부문을 장악하여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헌데,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권력이 바뀐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

   

빅터 로스차일드는 미국 금융을 규제하고, 유럽 금융은 규제 제한을 하지 않고 가족 비밀 경영을 고수하여 로스차일드 가문 지배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해서, 은행가 출신의 데이비드 록펠러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묶은 금융 자본 족쇄를 풀어야 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이다. 혹은 워싱턴 컨퍼런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왜 한국에서는 유독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결합을 일본과 달리 국유본이 반대하고 있는지 아는가? 소위 진보좌파들이란 보수우파와 마찬가지로 국유본이 지시한대로 따르는 앵무새일 따름이다. 국유본이 정말 한국을 키우고자 한다면 일본처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합체할 것이다. 이런 점을 잘 이해할 수 없겠거든, 번개에 나와서 인드라와 딱 한 시간만 토론하면 알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1973년 국유본 권력 교체 이후 탕평책을 실시했다. 정치 부문을 가져오는 대신 경제 부문에서는 국유본 귀족 지분을 인정한 것이다. 허나, 신자유주의를 통해 경제 부문에서의 지위 확대를 꾀했던 것이다. 그것이 미국 금융 부문에서의 규제 완화였다. 또한, 신자유주의 성공을 위해서 빅터 로스차일드와 차별화한 것이 제 3세계 경제개발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핵심이야 보다 데이비드 록펠러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 방침은 무엇인가. 미국 금융은 규제 완화를 하고, 유럽과 일본 금융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빅터 로스차일드와는 정반대이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런던과 유럽을 규제 완화하고, 그밖의 지역을 규제 강화하였으니까. 허나,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 국유본 귀족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1990년대에 개정한 PPP프로그램 문서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비공개 PPP프로그램 개정 규약 문서에 따르면, PPP 프로그램이란 SEC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유럽 각국 규제를 피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데이비드 록펠러가 빅터 로스차일드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1990년대부터 경제 지분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나, 사정이 이렇다고 해도, 미국 금융 부문이 세계로 진출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비록 로스차일드 기구로 출범한 SEC이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빅터 로스차일드 사후에도 불구하고 자립화한 것이다. 둘, 국유본 귀족 지분을 인정했던 터라 국유본 귀족 지분이 있는 시장으로의 진출이 쉽지 않았다. 셋, 빅터 로스차일드가 만든 냉전체제 덕분에 미국 금융과 미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다. 똑같은 일을 해도 유럽 금융과 유럽 기업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도 미국 금융과 미국 기업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과 유럽 FTA와 한국과 미국 FTA인 게다.

   

해서, 이제까지 로스차일드 세력으로 보이는 국유본 귀족파들, 즉 노비네파들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과연 그런가.

   

아니다. 지난 스위스 비밀계좌 사건만 보자. 노비네파 UBS가 당했다. 그로 인해, 뉴라이트 CS가 반사 이익을 챙겼다. 리먼 사태도 결과적으로 볼 때 노비네파에 대한 타격이었다. 두바이 사태는 또 어떤가. 관련 은행들이 대부분 유럽 은행, 특히 노비네파 은행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 지금도 그렇다. 월가 점령 시위대는 노비네파 JP모건 제이미 다이먼을 공격하고, 노비네파 월스트리트저널 머독을 비판한다.

   

또한, 한국에서 노비네파 HSBC가 뉴라이트 산은은행에게 지점을 넘기고 철수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돌고 있다. 노비네파 도이치증권의 옵션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제이파 뉴욕타임즈가 한국 당국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보통 이런 사건이 터지면, 국유본 언론 태도란 한국 당국을 비판하는 태도인데, 정반대인 게다~! 노비네파 신한은행 권력투쟁이 발생했다. 노비네파 외환은행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노비네파 SC제일은행은 노조 투쟁으로 큰 곤경에 처해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갈이인 게다.

   

보자. 노비네파 삼성 증권은 노비네파 로스차일드와 투자은행 전략적 제휴 협정을 맺었다. 노비네파 BNP파리바는 노비네파 신한은행 최대주주이다. 노비네파 HSBC는 하나은행과 하나HSBC생명보험회사를 만들었다. 예서, 우리은행을 말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국가 입김이 강한 은행이다. 해서, 과거 쪽발돼중과 쪽발놈현, 지금 이명박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면, 최근 행보만 보자. 우리은행은 영국 RBS은행과 커버드 본드 등을 협의한다 한다. 예서, RBS 은행이란? 영국 대표적인 뉴라이트 은행이다.

   

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정리한다.

   

한국만 보면, 국유본은 정치에서는 뉴라이트가 우세하고, 산업금융에서는 노비네가 우세하다. 이러한 지형을 산업금융 부문에서도 뉴라이트 우세로 바꾸겠다는 것이 현 국유본 입장인 게다.

   

데이비드 록펠러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데이비드 록펠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가득하였다. 허나, 유능한 인재들이란 쪽발이들처럼 대개 빅터 로스차일드 편이었다.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승만이나 김일성처럼 친일파를 중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적당한 시기가 돌아오자 사냥개로 쓰였던 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면, 향후 유라시아 금융 판도는 로스차일드인가, 록펠러인가. 록펠러이다. 지금 유럽계 자금이 많이 아시아에 투자한 것은, 그만큼 유럽계 자금이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 투자한 국가별 유럽 자금을 보면, 룩셈부르크가 압도적이다. 무슨 말인가. 조세피난처를 택한 게다. 규제는 필연적이다. 헌데, 지금 미국 금융이 받는 규제 만큼 유럽 금융이 규제를 받는다면, 결과는 어찌되겠는가. 록펠러의 승리이며, 국유본 귀족들의 패배인 것이다. 해서, 성동격서라 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월가 점령 시위여서 타켓이 미국 금융 같지만, 결국 유럽 금융에 대한 장거리포 선전포고라는 것이다.

   

한진 물류? 님이 이런 대목은 BDI 지수 같은 것을 확인해야 한다. 조선업이 바닥권이었다가 최근 탈출하는데, 한진이 노비네파이건, 뉴라이트파이건, 제이파이건 확장할 때인 게다. 한국 조선은 한진보다 현대중공업을 관찰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한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버릴 때가 왔다. 지금이다.

   

국제유태자본 :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국유본론 2011

2011/10/12 01:4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1040424

   

    

   

   

국유본은 인드라 아이디어를 실시간으로 검토 분석하나^^?

   

   

국제유태자본 :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1

   

CIA: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이 '해체'의 수단으로 '신자유주의'를, '재구성'의 수단으로 '공동체주의'를 사용하며, 로스차일드 계열이 '자유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음. 이에 대한 의견 부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298954

   

인드라 :

   

신자유주의는 왜 신자유주의일까. 이전 체제가 자유주의가 아니었으니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이겠다. 해서,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경제적인 부문부터 논의해서 정치, 종교, 문화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수준일 것이다. 

   

"같은 이름의 법은 중세 말부터 있었지만,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이 대표적이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산업혁명의 진행 ·인구증가 ·나폴레옹전쟁 등으로 곡물수요가 증대하여 곡물가격이 등귀하자 지주는 폭리를 얻었으나, 나폴레옹전쟁의 종결로 곡물가격이 폭락, 농업공황이 일어나 파산자가 속출하였다. 이에 지주계급이 다수파를 이룬 영국의회에서는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맥 1쿼터(약 12.7 kg)당 가격이 80실링이 될 때까지는 외국산 소맥의 수입금지를 규정함으로써 종래의 이익을 확보하려 마련된 것이 곡물법이다. 1828년에는 곡물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수입관세를 증감하도록 개정된 신곡물법이 의회를 통과하였으나, 지주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악법임에는 변함이 없어 소비자 대중은 풍작과 흉작에 관계없이 비싼 빵을 사먹어야 했기 때문에 자유무역론자를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1839년에 R.코브던, J.브라이트를 지도자로 하여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반(反)곡물법 동맹이 선봉이 되고 의회에서도 반대운동을 벌려, 1846년 필 내각 때 이 곡물법은 폐지되었다. "

[출처] 곡물법 [穀物法, Corn Law ] | 네이버 백과사전

   

19세기 영국 곡물법 논쟁 구도에서 보듯 리카르도의 자유주의(금융자본) 대 맬더스의 보호주의(지방영주)가 기본 대결 구도였다. 예서, 산업자본은 산업 부문에 따라 자유주의를 지지하거나 보호주의를 지지할 수 있으므로 딱히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다. 마치 오늘날 자영업자들처럼 말이다. 

   

이들 대립각은 나폴레옹 전쟁 뒤에 찾아온 농업 공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카르타고 유태인 리카르도  자유주의 (금융자본) 입장은 무엇이었던가. 전쟁 뒤에 찾아오는 일시적인 공백 현상이므로 시장이 이 갭을 이내 알아서 메꿀 것이다, 따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만일 다소 문제가 있다 해서 일을 만든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질 것이다.

   

이에 대해 맬더스 보호주의(지방영주) 입장은 무엇인가. 이는 체제 중대 위기이다. 공황이다. 맬더스는 최초의 공황론자로 책까지 내었다. 맑스가 맬더스 책을 보고 많이 베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위기를 위기임을 직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파산할 것이다. 대안은 근본이 '착한' 덕분에 하나님에게 축복받은 지주를 지원해야 한다. 그 다음은 '선민'인 지주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위기를 타개할 것이다.

   

예서, 보호주의는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네 갈래로 나눠진다.

   

하나는 원시적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장로 공동체요, 서양에서는 게르만 공동체요, 중국에서는 촌락 공동체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유목 공동체이다. 이는 오늘날 데이비드 록펠러가 선호하는 근본주의와 아나키즘 영향을 받아 오늘날 공동체 이론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중이다. 가령 기존 경제 제도는 계획과 시장이 있는데, 계획도 실패하고, 시장도 실패했으니, 두레, 품앗이와 같은 협업으로 돌아가자. 과거로 돌아가자인데, 그만큼 실현성은 제로이다. 

   

인드라는 묻고 싶다. 이런 꿈은 니놈들 대가리 속에만 있을 뿐이라고. 현실? 그래, 니놈들이 바라는 그런 세상이 있다. 어디? 북한이다. 허나, 뽀그리가 있는 평양이 아니라 뽀그리가 내친 북한 변방에 있다. 거기에서는 계획도, 시장도 없다. 자급자족해야 한다. 인드라는 분명 말한다. 인드라처럼 본디 혼자 살아도 별 탈이 없이 알아서 살만한, 출가해도 상관이 없을 듯한 사람은 그런 데서 홀로 살 수 있다. 그곳도 천국이려니 하고 사는 사람이 인드라 같은 사람이다. 허나, 강제로 그런 곳에 이주해서 사는 사람들은 지옥인 게다. 해서, 그곳에서 다시 애들 착취해서 돈이나 권력을 획득하거나 아니라면 탈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지금껏 행해왔던 일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은 초창기 미국에서도 있었다. 신앙심으로 초대 교회 공동체 사회를 하려고도 했고,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려고도 했다. 모조리 실패했다. 아니, 절반이라도 성공한 공동체가 있기는 있었다. 뽕 먹고 헬렐레하면서 뉴에이지 운동 펼치던 이들. 몸은 망가졌다. 정신도 황폐해졌는데, 뽕 먹을 때만 행복했다더라.

   

한국에서는 국유본이 이를 변형시켜 지방 공동체 명분하에 나라를 삼국시대, 가락국까지 사국시대로 사분오열시켰다. 어차피 국유본이 만든 가짜 이슈다. 불가능하니까 데이비드 록펠러가 애호하는 것이다. 한국 넘들을 병쉰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일단 무뇌아 노빠 색희들부터 병쉰을 만들어놨으니 절반의 성공이다. 한국 지역주의는 데이비드 록펠러 발명품이다. 좆도 모르는 무뇌아 쪽발 노빠 색희들이 이 쥐랄 많이 떠는데. 니놈들이 고작 한 게 농촌 시골에 미분양 아파트 잔뜩 짓고, 골프장 만든 것밖에 더 있냐. 오히려 시골을 망친 색희들아~! 나라를 망친 매국노 색희들아!

   

둘, 계획인 게다. 인간은 신을 닮았으되,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만큼 신과 약간 다른 혼혈 족속이다. 이런 인간 족속을 인간다운 사회로 이끈다는 건 신의 계획없이는, 혹은 신에 준하는, 혹은 신을 넘어서는 기획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이 가능성에 도전한 세력이 있었으니 맑스 레닌주의 그룹이다. 말할 나위없이 실패했다. 이 대목에서 인드라가 할 말이 많지만, 더 언급하지 않겠다. 변명이나 핑계로 보일 수 있어서.

   

   

"젠트리(Gentry)는 영국에서 귀족으로서의 지위는 없었으나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받은 중간 계층을 이른다. 그러나 역사적인 개념으로는 요먼 이상, 귀족 이하의 토지 소유자, 즉, 부유한 지주와 법률가·성직자·개업 의사 등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자 및 부유한 상인 등을 핵심으로 한 중산계급의 상부층을 말한다. 이러한 젠트리는 16세기 이후 중산 농민인 요먼(Yeoman)의 희생 및 귀족계급의 몰락의 결과로서 발생, 영국사상 거의 지배적인 지위를 확립했으며 그 패권은 20세기 초두까지 이르렀다. 이 계층은 영국의 자본주의와 사회발전에 있어 그 근간을 이루었으며, 영국사의 모든 국면에 걸쳐 그 각인을 남기고 있다. 신사를 뜻하는 영단어인 젠틀맨(Gentleman)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A0%A0%ED%8A%B8%EB%A6%AC

   

   

셋,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봉건제가 있었고, 영주가 있었다. 맬더스인 게다. 또한 젠트리의 재발견이다.

   

당대 영국 이튼 스쿨은 영국 젠트리 집합소였다. 간단히 말해, 해리 포터 배경이요, 캔디 캔디의 배경인 게다. 한국으로 치면 무엇이냐. 성균관이다. 이때, 이튼 스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대지주 중앙지주 대 중소지주 시골지주 대결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기호지방 지주 대 영남 지주 구도로 보는 것도 실제로 그랬던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편적 사건이므로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한, 이론이 우선인 이야기인 게다.

   

예서, 대지주 중앙 지주 입장은 말할 나위없이 금융자본 편이었다. 함께 계획의 '도都'의 주인과 시티의 '시市'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중소지주 시골지주는 포지션 탓에 어쩔 도리없이 이들에 대항해야 했는데, 내심이야 자신도 얼릉 도시로 진출해서 대지주 중앙지주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그러자면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 이 힘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인드라가 볼 때, 근대 이후 최초의 인민주의자(포퓰리스트)는 맬더스라고 본다. 해서, 맬더스인 게다. 이들 기획은 무엇인가. 시골이 도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관공서가 들어서고, 기업들이 입주하면 따봉인 게다~! 외치자! 일타 삼피, 따따따봉~! 해서, 이들 전략은 곡물법처럼 분명하다. 알박기인 게다. 우리 지역이 도시가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노노노노노. 하수빈이냐 ㅋㅋㅋ.

   

헌데, 이것이 빅터 로스차일드와 안면이 있던 '사도회' 멤버 케인즈가 있던 본토 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실행하니 이 무슨 조화인가 싶지만, 당연한 게다.

   

당대 태평양 무역구조와 다른 대서양 무역구조란 무엇인가. 영국에서 명품을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아프리카 노예귀족이 좋아할만한 명품을 팔아 흑인 노예를 잔뜩 산다. 다시 배를 타고  흑인 노예를 중미나 미국 남부에 판 뒤 담배와 같은 농산물을 구입한 뒤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해서, 영국 카르타고 유태인 자유주의 금융자본에 적극 환영하였던 미국 세력은 버지니아주 국교회 교도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프리메이슨 족속들이었던 게다. 예서, 왜 프리메이슨인가. 이전까지 아무도 미국에 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허허벌판 남극에 아무런 장비 없이 가라는 것인데, 누가 가겠나. 당대는 소빙하기여서 뉴욕 같은 데는 알래스카처럼 사람 살기 굉장히 어려웠다. 해서, 국유본은 프리메이슨 조직을 활용해서 백인 노예들을 강제 이주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이 살만하니까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서 반메이슨 운동을 벌여서 노예민주당 세력을 숙청한 것이다. 프리메이슨을 활용하여 미국을 개국한 것도 국유본이지만, 그 프리메이슨을 죽인 것도 국유본인 게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모두  노예아편농장주였다. 특히 조지 워싱턴은 돈밖에 모르던 놈이어서 대통령 노린 이유도 땅을 넓히려는 속셈이고, 그 소유 땅이 오늘날 한반도 땅인 만큼 대통령을 그만 둔 이유가 대통령 계속하다가는 보유한 땅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는 것이 인드라가 생각하는 유력한 가설이다. (특히, 조지 워싱턴 일화 때문에 인드라 인생이 조기에 종칠 뻔했다. 개쉬발 색희, 조지 워싱턴!!! 정직이 최고라고? 니기미 뽕이다.) 하고, 교과서나 참고서에 나오는 조지 워싱턴 이야기들은 백프로 날조한 것들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개일성, 개정일만 날조하는 것이 아니다 ㅎㅎㅎ. 하긴, 쪽발 돼중과 쪽발 놈현도 개일성, 개정일만 못하지만,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된다~!

   

하여간, 19세기 야경국가 자유주의가 문제가 되자 국유본이 꺼내든 카드가 무엇인가. 적들의 카드를 적극 활용하라. 지금 국유본이 인드라 카드를 적극 활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국유본이 볼 때, 현재 인드라가 지구에서 국유본과 가장 강력하게 대척점에 있는 카드이므로.

   

맬더스처럼 하자는 것이 케인즈였다. 해서, 미국 대통령도 루즈벨트였다. 뉴욕주 의원이다. 뉴욕주는 한국으로 치면, 김포군이다.  한국의 뉴욕시인 인천을 낀 평야 곡창지대이다. 해서, 카르타고 유태인들이 네덜란드에 있다가 뉴욕주로 이주해서 북미 최초의 장원, 즉 봉건사회를 만든 곳이 뉴욕주인 게다. 이런 뉴욕주 상원의원이 된 루즈벨트는 카르타고 유태인이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온 귀족 중의 귀족 가문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초대 이사에 루즈벨트 가문이 있을 만큼 루즈벨트는 어릴 때부터 귀족 수업을 했고, 결혼도 근친혼을 할 만큼 국유본이 준비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루즈벨트가 남부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사실상 노예제를 찬성하는 정책을 취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사가 얼마나 국유본 마음대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은 끔찍하다, 당신이 매트릭스가 가상이라도 그 가상을 즐기고 싶을 만큼.

   

허나, 이것만은 알고 가자. 뭔가 지역이 개발하면 나도 이익을 볼 것 같은 이 마음~! 허나, 정작 개발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지?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넘에게는 미운 마음이 안 든다. 원래 복 받은 넘이니까. 허나, 태어난 조건도 같고, 살아보니 니놈이나 나나 다 능력이 거기서 거기인 넘들인데, 어떤 넘은 운이 좋아 놀던 땅 개발되어 졸지에 재벌 부럽지 않게 되고, 나는 재수가 없으려니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땅 파다 유물이 나와 공사가 중지되는 것은 물론 사적지 발굴 비용까지 물게 생겼으니. 에효효ㅠㅠㅠ 도시에만 있다는 노숙자 꼴이 된 게다.

    

해서, 결과는 무엇이냐. FTA를 보면 알 수 있다.  농민을 위해서 FTA 반대한다? 니미, 좆까라 마이싱이다. 어차피 중소 농민은 FTA를 하든, 말든 망하게 되는 흐름이다. 예서, FTA 때문이란 단서를 달아 농민을 좀 더 배려한다는 건, 정확히 말하면, 최상층 농민만 우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농민이 누구인가. 카길, CJ, 풀무원 ㅋㅋㅋ.

   

자영업자를 위해 데모해? 젓까! 대기업화한 자영업자들을 위해 중소 자영업자들을 볼모로 내세우는 어떤 시위나 데모도 거부하겠다. 이 모든 건 국유본 기획이다.

   

노동자 시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연봉 1억 가까이 되는 대기업 노동자만이 우대받는 엠빙쉰 데모. 이런 것이 국유본 사회인 게다. 당신은 비정규직, 파견직, 계약직 노동자인데, 같은 노동자이니까 지지한다??? ㅎㅎㅎ 그것이 바로 국유본이 노리는 효과인 게다.

   

국유본은 무한한 분리를 통해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아니다. 끝났다. 이제 노동자라는 건 무의미하다.

   

넷, 다시 원시 공동체이다. 허나, 일반적 원시 공동체가 아니다. 유목 공동체이다. 유목 공동체가 농경 공동체와 다른 유별난 특징이 무엇인가. 야성적 종족 특징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원시 공동체가, 공산주의가, 케인즈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야성적 종족 특징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하면, 이것이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정작 야인을 위한 것이라면 이 기획은 백 프로 불발이다. 국유본은 야인을 위해 정권을 양도할 생각이 없으므로. 반면, 야인 관리를 해서 권력을 유지시키고자 한다면, 이 기획은 흥미로운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국유본은 역대 어떤 권력보다 완벽하므로.

   

간단히 말해, 국유본이 야성적 특징을 보유한 개인이나 조직을 보유하는 한, 국유본은 자신을 향한 반대나 반란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면, 이것이 끝인가.

   

아니다. 인드라가 말한다. 망이다. 네트워크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이 역시 국유본이 장악하여 오히려 인드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게임이다. 먹고 먹히는 게임이다. 아직은 승부할만하다.

   

정리하자.

   

국유본론 관점에서 해체와 재구성이라고 했을 때, 무엇을 해체하고, 무엇을 재구성한다고 한다면, 그 무엇이 무엇이겠는가.

   

신세계 질서일 것이다. 하면, 빅터 로스차일드 자유주의가 신세계 질서를 촉진하고, 데이비드 록펠러 신자유주의가 신세계 질서를 막고, 제이 록펠러 공동체주의가 다시 신세계 질서를 추진한다는 것이 맞는 흐름인 걸까?

   

어? 제이 록펠러 공동체주의가 신세계 질서를 추진해?

   

지켜보아야겠다. 단, 카르타고 유태인 리카르도 자유주의 기획보다 못한 공동체주의라면 싹부터 죽이는 것이 미래를 위한 일이다.

   

   

1999년 빌더버그는 빌더버그 역사의 마지막 화려한 불꽃이었다 국유본론 2011

2011/10/11 01:45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949815

   

   

   

   

1999년 빌더버그는 빌더버그 역사의 마지막 화려한 불꽃이었다 

CIA가 국유본에 대해 인드라에게 묻고 싶은 몇 가지들

국제유태자본과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0

   

CIA :

   

칼 아이칸이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이라면 아이칸이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인드라 :

   

정확히 말한다면, 뉴라이트 아이칸이 크게 손실을 입을 뻔했는데, 노비네 구글이 도움을 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15일(현지시간) 구글이 이날 모토로라모빌리티를 현찰 125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 아이칸을 살렸다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과 모토로라가 합의한 인수가는 주당 40달러로 지난 주말 종가에 63%의 웃돈이 붙었다. 이는 아이칸이 가만히 앉아 모토로라모빌리티의 지분 가치를 10억7000만 달러로 3억6500만 달러 이상 늘렸다는 얘기다. 아이칸도 신이 났다. 그는 이날 낸 짧은 성명에서 "우리는 지난 3년간 모토로라모빌리티와 모토로라솔루션을 분리하고, 산제이 자 최고경영자(CEO)를 몰아내기 위해 참 오래, 어렵게 싸워왔다"며 "구글과 모토로라모빌리티의 합병은 모든 주주들에게 엄청난 결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춘은 구글이 아이칸을 구해줬지, 그가 모토로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글이 아이칸의 손실을 그나마 덜어줘 이제 막 '본전'에 다가섰다는 지적이다."

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816000185

   

   

뉴라이트 아이칸은 라이온스 게이트와 클로록스를 매각하기 위해서도 혈안이 돼 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83110080131187

   

아이칸이 뉴라이트여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면, 문제는 구글이 노비네인 것은 알겠는데, 모토롤라는 뭐냐는 것이다. 노비네냐, 뉴라이트이냐.

   

모토로라에 대해 알아 보자.

   

"In 1973, Motorola Demonstrates Portable Telephone to be Available for Public Use by 1976.

   

In September 1983, the firm made history when the U.S.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 approved the DynaTAC 8000X telephone, the world's first commercial cellular device. By 1998, cellphones accounted for two thirds of Motorola's gross revenue.

   

In 1998, Motorola was overtaken by Nokia as the world's biggest seller of mobile phone handsets."

http://en.wikipedia.org/wiki/Motorola

   

국유본 권력 교체기인 1973년에 모토롤라는 이동전화기를 선보였다. 1985년에 한국에 진출했다. 1983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동전화기를 출시했다. 1998년에 이르러 녹키아가 모토롤라를 추월했다.

   

창업자 손자이기도 한 뉴라이트 갤빈 크리스토퍼는  지난 97년 CEO에 오른 이후 인력 삭감을 통한 구조조정, 중국 중시 전략 등을 제시했다. 허나, 90년대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 요르마 오릴라에 1위를 내주는 등 실적 부진에 의한 사임 압력을 받아 2003년 9월 19일에 사임했다.

   

헌데, 이 시기는 노비네 부시 정권 때이다. 인월리에서 모건스탠리 권력 투쟁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런 권력투쟁이 모건스탠리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하면, 이 문제를 이해하는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노비네 쪽발 돼중과 뉴라이트 김영삼은 물론 뉴라이트 교황 바오로 2세까지 참가하여 빌더버그 회의 역사상 가장 파문을 일으킨 1999년 빌더버그이다.

   

   

bilderbergers 1999

   

Here is the partial guest list obtained by WorldNetDaily:

   

Ackerman, Duane - CEO Bell South

Ahern, Bertie - Prime Minister of Ireland

Alberthal, Les - CEO of Electronic Data Systems (EDS)

Albright, Madeleine - U.S. Secretary of State

Al Saud, Waleed Bin Talal Bin Abdulaziz - Saudi Prince

Amichai, Yehuda - Israeli poet

Annan, Kofi - U.N. Secretary General

Arafat, Yasser - Chairman Palestinian Authority

Armstrong, Michael - CEO of AT&T Corrporation

Arison, Ted - Israeli Financier

Assad, Hafez - President of Syria

Aznar, Jose Maria - President of Spain

Belluzzo, Richard - CEO - Silicon Graphics-SGI

Berkshire Hathaway - Warren Buffet

Bolkiah, Hassanal - The Sultan of Brunei

Byers, Brook - Partner KPCB

Beyster, J. R. - Founder and CEO of SAIC

Bialkin, Ken - Skadden Arps

bin-Mohamad, Mahathir - PM of Malaysia

Blair, Tony - Prime Minister of UK

Bondevik, Kjell Magne - Prime Minister of Norway

Bonsignore, Michael - CEO Honeywell

Braverman, Avishai - President of Ben-Gurion University

Bronfman, Charles - Canadian businessman

Buffet, Warren, CEO Berkshire Hathaway

Cardoso, Fernando Henrique - President of Brazil

Case, Daniel - Chairman & CEO of H& Q

Case, Stephen - CEO of America On-Line-AOL

Caufield, Frank - AOL Board & Partner KPCB

Cayne, James - CEO of Bear Stearn

Chalsty, John - CEO of DLJ

Chambers, John - CEO of Cisco Systems

Chirac, Jacques - President of Franc

Chretien, Jean - Prime Minister of Canada

Clinton, Bill -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Cohen, Abby - Market Strategist, Goldman Sachs

Corzine, Jon - CEO of Goldman Sachs

Coulter, David - Former CEO of Bank of America

Cresson Edith - EC Commissioner

Daschle, Thomas - Senator, Minority Leader, U.S. Senate

DeGier, Hans - CEO of Warburg Dillon Read

Dehaene, Jean-Luc - Prime Minister of Belgium

Dell, Michael - Dell Computers

Denham, Bob - Salomon Smith Barney

Dinstein, Yoram - President of Tel Aviv University-TAU

Disney, Roy - Vice Chairman & Nephew - Walt Disney

Ebtekar, Massoomeh - Vice President of Iran

Eisenberg, Erwin - Heir to Eisenberg Group

Ellison, Larry - CEO of Oracle

Engibous, Tom - Texas Instruments-TI

Esrey, Bill - CEO of Sprint

Estrada, Joseph - President of the Philippines

Fahd, King - Leader of Saudi Arabia

Fan, Rita - Chairwoman Provincial Legislature China

Fisher, Max - Chairman, Republican National Jewish Coalition-NJC

Fisher, Richard - CEO of Morgan Stanley Dean Witter

Fortune 1000 - Group Focus Letter

Frankel, Jacob - Bank of Israel

Friedlander, Yehuda - Rector of Bar Ilan University

uld, Fichard - CEO of Lehman Brothers (acquired Blount Intl)

Gates, Bill - CEO of Microsoft

Gerstner, Lou - CEO of IBM

Glavin, Christopher - Motorola - Strategy Focus

Goh Chok Tong - Prime Minister of Singapore

Goldberg, Ed - Merrill Lynch - Strategy Focus

Grafton, Bob - CEO of Arthur Andersen Worldwide

Grasso, Richard - CEO, New York Stock Exchange-NYSE

Greer, Phil - Weiss Peck & Greer

Grove, Andy - Former CEO of Intel

Gujral, I.K. - Former Prime Minister of India

Habibie, B. J. - Indonesia's Prime Minister

Hammerman, Stephen - Vice Chairman Merrill Lynch

Harari, Chaim - President of Weizmann Institute

Hariri, Rafik - Prime Minister of Lebanon

Hashimoto, Ryutaro - Former Prime Minister of Japan

Hastert, Dennis - GOP - Speaker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Hayuth, Yehuda - President of Haifa University

Honeycutt, Van - CEO Computer Sciences Corporation-CSC

Horovitz, Avraham - GM - UMI Israel Chief Scientist

Howard, John - Prime Minister of Australia

Hussein, King - of Jordan and The Crown Prince Hassan (HK:Deceased)

Ichan, Carl - Wall Street Financier

Jackson, Judge Thomas Penfield - US District Court - Washington D.C.

Jiang Zemin - President of China

Jobs, Steven - Apple Computers

Jospin, Lionel - Prime Minister of France

Kangas, Edward - CEO Deloitte, Touche, Tohmatsu -

International-DTTI

Kaveh, Moshe - President of Bar Ilan University

Khatami, Mohammed - President of Iran

   

   

Kim, Dea.jung - President of South Korea

Kim Young-sam - Former President of South Korea

   

   

Kissinger, Kissinger - former U.S. Secretary of State

Kok, Wim - Prime Minister of the Netherlands

Koller, Arnold - President of Switzerland

Komansky, David - CEO of Merrill Lynch

Kohl, Helmut - Former Chancellor of Germany

Lane, Neal - Former Director of the NSF

Laskawy, Phil - CEO of Ernst & Young-EY

Lavie, Arie - Former Chief Scientist - Israel

Lee Kuan-Yew - President of Singapore

Lee Teng-hui - President of Taiwan

Leon, Moshe - Director General, PM's Office Israel

Lerner, Alex - Israeli Scientist

Levin, Gerald - CEO Time Warner, Inc.

Li Peng - Prime Minister of China

Livingston, Robert - GOP Nominee as - U.S. Speaker of the House

Lott, Senator Trent - GOP Senate Majority Leader - US Senate

Magidor, Menachem - President of Hebrew University

Mahathir Mohamad - Malaysian Prime Minister

Mandella, Nelson - President of South Africa

Marron, Donald - CEO of Paine Webber Group - Enterprise Strategy

McGinn Richard - CEO of Lucent- Enterprise Strategy

McNealy, Scott - CEO of Sun Microsystems

Middelhoff, Thomas - CEO Bertelsmann & AOL Director

Mitchell, George - Former GOP Senate Majority Leader

Moore, Nicholas - Chairman of PriceWaterhouse Coopers-PWC L.L.P.

Mubarak, Hosni - President of Egypt

Murdoch, Rupert - Austrialian Media Owner

Narayanan, K.R. - Former President of India

Ne'eman, Yaacov - Former Israeli Finance Minister

Ne'eman, Yuval- Israeli Physicist

Obuchi, Keizo - Prime Minister of Japan

Oz, Amos - Israeli writer

Palmer, Robert - CEO of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DEC

Paulson, Henry - Co-Chairman Goldman Sachs

Persson, Goran - Prime Minister of Sweden

Pfeiffer, Eckhard - CEO of Compaq

Phelan, John - Former CEO NYSE & Director of ML and the BCG

Phypers, Dean - Former CFO of IBM

Platt, Lewis - CEO Hewlitt Packard-HP

   

   

Pope John Paul II - Pontiff of the Roman Catholic Church-RCC

   

   

Pottruck, David - Charles A. Schwab & Company

Primakov, Yevgeny - Russian Prime Minister

Prodi, Romano - Former Prime Minister of Italy

Purcell, Philip - CEO of Morgan Stanley Dean Witter? Ramos, Fidel -

Former President of Philippines

Raymond, Lee - CEO Exxon

Redstone, Sumner - CEO of Viacom - HBO

Reichman, Uriel - President of the Inter Disciplinary Center- IDC Israel

Reichmann, Paul - Canadian Businessman

Rodin, Judith - President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Roosa, Robert - Former Chairman Brown Brothers Harriman (of blessed memory)

Samuelson, Paul - MIT Economics Nobel Laureate

Santer, Jacques - President of the European Commission-EC

Schiro, James - CEO PriceWaterhouse Coopers-PWC

Schroeder, Gerhard - German Chancellor

Schwab, Charles - Charles A. Schwab & Company

Sharman, Colin - Chairman KPMG

Shipley, Walter - CEO of Chase Manhattan Bank

Spielberg, Steven - Hollywood Film Producer

Slahor, Paul - Founding Investor in IPC

Slavin, Shmuel - Director General of Israel's Finance Ministry

Smith, Jack - CEO of General Motors-GM

Soros, George - President of the Soros Fund

Spector, Norman - Publisher Jerusalem Post

Tadmor, Zeev - President of Technion

Trotman, Alexander - CEO of Ford Motor Company

Tung Chee-hwa - Hong Kong Chief Executive

Turner, Ted - CEO Turner Broadcasting Systems-TBS - CNN

Vajpayee, Atal Behari - Prime Minister of India

Wang Changyi - China's Ambassador to Israel

Wang, Charles - CEO of Computer Associates International-CAI

Weill, Sandy - CEO Travelers-Citigroup

Weinbach, Arthur - CEO of Automatic Data Procesing-ADP

Weinbach, Lawrence - CEO of Unisys

Yair, Yoram - Former Israel Defense Forces

Yehoshua, A.B. - Israeli writer

Yeltsin, Boris - President of Russia

Zedillo, Ernesto - President of Mexico

Zeroual, Liamine - President of Algeria

   

http://www.badkiller.kr/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280386&sfl=&stx=&sst=wr_datetime&sod=asc&sop=and&page=9685

   

예서, 보면 알 수 있듯 참가 인원도 역대 최대인 듯싶다. 미국,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를 망라했으니 말이다. 과장되게 말해, 제이 록펠러와 브레진스키만 빼고 주요 국유본 인물이 모두 다 참가한 모양새다.

   

인드라는 빌더버그가 빅터 로스차일드가 만든 것이라 했다.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는 삼각위원회를 빌더버그를 점차 죽이고, 삼각위원회를 키운다고 했다. 헌데, 빅터 로스차일드가 죽은 1991년 이후 역대 최대 빌더버그 행사를 벌였다. 어찌된 일인가.

   

내막을 잘 알아야 한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면모, 왕건과 같은 면모가 있다고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와 유사하다 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차근 차근 준비했던 것이다. 우선 자신은 지지세력과 함께 공화당으로 옮겼다. 하고, 노예민주당 관리를 황태자 제이 록펠러에게 맡겼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죽고 소련이 망하자 이들 잔존 세력들을 탕평책을 실시하여 귀족파인 노비네파, 로스차일드 빌더버그 네오콘부시파를 만들게 했다. 이것이 끝인가? 아니다.

   

이들 귀족파를 용인하는 대신 로스차일드 뉴욕 본부인 모건은행을 자신의 맨해턴체이스은행으로 흡수한 것이다. 허나, 이것은 엄청난 작업이었다. 빅터 로스차일드와의 투쟁만큼이나 중요했다. 해서, 데이비드 록펠러는 사전 정지 작업으로 네오콘부시 정권을 허용하고, 빌더버그 회의를 크게 치루어서 국유본 귀족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도 이런 식으로 로마 원로원에게 당근을 제시하면서 로마 최초의 황제로 등극했던 것이다. 

   

그후 사정은 어찌되었는가.

   

데이비드 록펠러다웠다. 목적이 이루어지자 바로 다음 해인 2000년부터 빌더버그 회의 열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뿐이랴. 비밀회의인 빌더버그 회의가 공공연하게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2000년 이후이다. 과연 누가 참석자와 의제를 폭로하는가. 데이비드 록펠러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최고 회의를 빌더버그로, 정치 부문 상임위원회를 삼각위원회로 한다는 초기 이중권력 구상이란 국유본 귀족들을 회유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

   

데이비드 록펠러 구상이란 뉴라이트 삼각위원회를 핵심기구로 하여 왼쪽으로는 유럽과 러시아를 움직이는 빌더버그, 오른쪽으로는 아시아를 총괄하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중앙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책임지는 미국외교협회(CFR)로 하는 것이다. 해서, 이후로 빌더버그 회의 영향력이 줄어들어간 셈이다.

   

죽기 전 화려한 불꽃이랄까. 이처럼 1999년은 빌더버그 역사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셈이다.

그때 등장한 이가 있으니 노비네 요르마 올리라 노키아 CEO였다. 요르마 올리라는 거칠 것없이 모토롤라를 추격했다. 해서, 노비네 요르마 올리라와 뉴라이트 갤빈 크리스토퍼 둘 다 빌더버그에 참석했던 것이다.

   

하고, 승자는?

   

노비네 요르마 올리라였다. 그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빌더버그에 참석했다. 2011년 회의에도 핀란드산업EK연합의장으로 참석했다.

   

하면, 요즘 노비네 노키아는 어떠한가.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뛰어들어 연일 고전이다. 해서, 노비네 노키아는 2012년에 요르마 올리라가 물러난다. 흡사 뉴라이트 갤빈 크리스토퍼를 연상케 한다.

   

http://blog.naver.com/rudia1480?Redirect=Log&logNo=140129107870

   

예서, 주목해야 할 것이 노비네 MS와의 강화인 게다. 노비네 삼성도 빌 게이츠, 노비네 노키아도 빌 게이츠. 빌 게이츠가 2011년 주요 멤버로 참석했다는 점을 지난 인월리에서 강조한 바 있다. 

   

하여, 정리를 해보자. 뉴라이트 아이칸은 노비네 모토롤라 운영진을 물갈이해서 뉴라이트파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여건이 잘 안 되어 고생중인데, 노비네 구글과 타협을 본 것 같다. 노비네 구글도 사정이 어려우니 뉴라이트 아이칸도 돕고, 자기네 사업도 살면 일타 쌍피 아니겠는가.

   

추신 : 요즘 덧글 답글을 달지 않는 것을 양해바랍니다. 본글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오늘도 컴퓨터 공격이 있어서 컴퓨터 하드 에러가 난 것을 간신히 복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인드라가 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체질인가 봅니다. ㅎㅎㅎ. 천억대 사업하면서 밤에 잠이 오나 싶은데 잘 자는 걸 보면 사업 체질이다, 그러잖아요. 그처럼 인드라는 남들이 다 걱정할만한데 오히려 잠도 잘 자고 별로 걱정하지 않는 걸 보니 이 방면으로 체질인가 봅니다. 사업가든, 인드라든, 다 자기를 믿기에 가능한 듯싶습니다. 과신도 문제지만, 자신을 믿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기 암시를 하세요.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가늘고 오래 살자. 데이비드 록펠러보다 딱 한 살만 더 많이 살자~! 꿈은 이루어진다~!

   

번개 문제는 사정이 생겨 보류하겠습니다. 

   

   

CIA가 국유본에 관해 인드라에게 묻고 싶은 몇 가지들 국유본론 2011

2011/10/10 01:4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858451

   

   

   

CIA가 국유본에 관해 인드라에게 묻고 싶은 몇 가지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10

   

CIA :

    

일루미나티 카드 중에 '월가에 저항하라' 카드와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자 3 명 중 하나인 설리프가 그려진 '노벨평화상' 카드가 있음. 그렇다면 일루미나티 카드는 제이 록펠러 계열의 작품인지. 이러한 이벤트들의 구상 시점을 고려했을 때 일루미나티 카드의 주관 세력에 대한 분석 재검토의 여지는 없는 것인지.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시온의정서까지 허구의 교란 수단으로 보고 있는 입장임.)

   

인드라 :

   

인드라 역시 오래 전부터 예수회,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엘리트론, 파충류 외계인론을 허구적인 교란 수단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온의정서는 약간 다르다. 시온의정서가 위서가 분명하지만, 국유본이 300인 위원회를 만들면서 만든 작품이 시온의정서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위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300인 위원회는 빌더버그 회의가 있기 전까지 세계 체제를 이끌어가던 국유본 조직이었다. 1850년대까지는 프리메이슨 조직이 필요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필요하지 않게 된 국유본은 프리메이슨 대신 유태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리메이슨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이 시기는 독점자본주의 시대라고 한다. 국유본이 아직 국가를 온전히 장악하지 않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중권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해서, 한편으로는 유태인 조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대체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 외교를 책임지는 최고위급 통제기구를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300인 위원회이다.

   

기업, 시민사회, 종교, 문화 부문을 유태인 조직이 맡고, 금융 부문을 로스차일드 가문이 장악하고, 정치, 외교를 300인 위원회가 맡아하는 시스템이다. 예서, 이중 권력이란 로스차일드 가문과 300인 위원회 양축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허나, 이러한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미국에서부터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뜨고,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유본이 마침내 국가까지 장악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하고,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도 빌더버그 체제가 성립한다. 빌더버그 체제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간 있었던 영국 여왕/귀족파와 공유했던 이중 권력을 끝장내었다는 것이다. 해서, 빌더버그 체제란 명실상부하게 빅터 로스차일드 황제를 정점으로 해서 외교 UN 안보리, 정치 냉전체제, 경제 세계은행과 IMF 브래튼우드 체제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허나, 영원할 것 같았던 현대의 시저, 빅터 로스차일드는 케사르처럼 불만을 품은 국유본 귀족에게 축출을 당한다.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국유본 개괄적인 조직사를 이쯤하고, 국유본이 일루미나티 카드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허구적 조직을 실체화할 수 있다. 일루미나티가 허구 조직이지만, 국유본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처럼 허구 조직을 실제처럼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과 인력을 좀 들인다면, CIA 등 어둠의 세력 힘으로 얼마든지 조직 하나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인 것이다. 

   

하면, 이런 기획이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때는 언제인가. 만일 상황이 국유본 의도대로 잘 흘러가지 않을 때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느 조직이든 플랜 B를 만든다. 하여, 실제로 국유본에 반하는 의미있는 세력이 출현한다면, 국유본은 이 세력을 죽이기 위해 일루미나티 같은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방식은 영화 '킥 애스'에서 나온 것과 같다.  데이브와 데이먼과 딸 민디는 ' 킥 애스'와 '빅 대디' 와 '힛 걸'로 변장해 세상의 악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때, 위기의식을 느낀 악당 디아미코가 한 방식이다.  '레드미스트'. 또 다른 짝퉁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짝퉁이지만, 자본과 인력을 기울인다면? 러시아 조폭도 레드미스트 정도를 얼마든지 만들어내는데, 하물며 국유본이라면^^! 상상 그 이상을 볼 것이다. 실제로 국유본은 지난 역사에서 자기 편이 아닌 까닭으로 천재들과 조직들을 불우하게 만들었다. 

   

하면, 일루미나티 같은 허구적 조직을 어떻게 실체화하는가. 바로 일루미나티 카드와 같은 방식이다. 카드에 등장한 사건들을 연이어 터트리는 방식이다. 하면, 입소문을 통해서 인터넷으로 많이 전파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그렇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일루미나티 폭로하는 영화도 나오지 않는가. 더 나올 것이다.

   

해서, 지금 국유본이 위협을 느끼고 일루미나티 조직을 실체화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당장을 위해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먼 미래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포석을 두며 지금부터 작업을 한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 일을 좀 더 빨리 진행시킬 수도, 잠시 중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완전 범죄다. 후일 밝혀져도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자면, 국유본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 일루미나티 떡밥에 누군가 걸린다면, 그를 중심으로 소리소문없이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결코 국유본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다. 국유본은 이런 방식으로 알 카에다 같은 조직을 세포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해서, 어느 정도 조직이 성장하면, 이 조직을 테러리즘 조직으로 변환시킬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이나 911을 일으키는 혐의를 받는 알 카에다처럼 말이다.

   

인드라는 이들 조직 배후를 국유본으로 보고 있다. 알 자지라 방송도 배후가 국유본이라고 본다. 알 자지라 방송을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지만, 알 자지라 방송의 이중성을 폭로한 '미션 이스탄불'이라는 인도 액션 영화도 있다.  국유본과 이슬람 방송과 이슬람 테러조직이 한 편이 되어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단지 영화적 설정이라고만 하면 곤란한 것이다. 영화는 허구적이다. 허나, 그것은 세력이 영화를 보고서 영화대로 따라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현실에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기 곤란할 때, 영화적으로 풀 때가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일루미나티 카드는 앞으로 더 보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카드 분량으로 세계를 설명한다는 건 상징성이 빈약하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카드 숫자가 1004라거나, 666이라거나 해야 더 폼이 나지 않나 싶다. 다만, 인드라가 만일 국유본이라면, 카드 숫자를 8,128로 할 것이다. 8,128은 4번째 완전수이므로 1,004나 666처럼 식상한 숫자보다 더 신비롭게 보일 것이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2&docId=54686183&qb=7IS46rOEIOq1reqwgOyIm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pcep35Y7uKssbXQdMlssc--476254&sid=TpG4tPK2kU4AACGVHB0

   

인드라 구상은 이렇다.

   

우선 정치, 외교 부문이다. 전 세계 국가가 최대 237개국 가까이이다. 이들 국가마다 카드를 하나씩 주어야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333565

   

하고, G32 국가로 간다. 현행 G20은 과도기다. 월드컵 본선처럼 32개 국가가 나서야 세계경제와 세계정치를 대부분 포괄할 수 있다. 해서, 이들 32개 국가는 카드를 7장씩 준다. 모두 224장이다. 이는 32개국을 제외한 205장보다 많다. 또한 G16 국가를 선정하여 이들 국가에는 20장을 준다. 모두 320장이다. 320장은 나머지 16개국 카드수와 205개국 카드수를 합친 317보다 많다. G8이다. 모두 60장을 준다. 480장이다. 480장은 나머지 국가 카드수를 합친 477장보다 많다. G3이다. 260장을 준다. 780장은 나머지 국가 카드수 777장보다 많다. G1이다. 1,300장을 준다. 1,300장은 1,297장보다 많다.

   

해서, 외교 부문에서 총 2,597장이 필요한 것이다. 국유본이 국가 수를 늘리거나 줄일 기획이 있다면, 그에 따라 조절이 가능할 것이다. 해서, 일단 2,600장이라 하자.

   

두번째는 사회문화 부문이다. 이 부문 역시 일단 2,600장이라 하자.

   

세번째는 경제과학 부문이다. 일단 2,600장이라 하자.

   

마지막으로 300여장이 남는다. 바로 이 대목은 신세계 질서(NEW ORDER)라는 카드 중의 카드로 만드는 것이다.

   

이 정도 기획을 해야 인드라가 볼 때 매트릭스다운 매트릭스라고 보는데, 지금 기껏 일루미나티 카드 수백여장으로 인민을 현혹하기에는 인드라같이 예민한 넘 만나면 당장 씹힌다~!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ㅎㅎㅎ

   

일루미나티 카드 재검토 문제는 이 정도로 하고, 설리프 문제를 검토하자.

   

 "설리프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그녀는 재무차관을 역임하고 1970년대 말 유엔 개발 프로그램의 아프리카 담당 재정국장, 세계은행 근무 경력이 있다. 1980년대 새뮤얼 도 군사정권에 반대하다 투옥됐고, 1990년대 찰스 테일러 군사정권으로부터도 핍박 받아 두 차례 해외 망명을 겪은 민주 투사이기도 하다. 1997년 망명에서 돌아온 뒤 부패와의 전쟁에 투신했고 테일러와 대선에서 맞붙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또한 2003년 국가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녀는 부패에 대한 과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대선에 출마했다. 라이베리아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직 축구 선수였던 조지 웨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2011년에는 라이베리아의 레이마 그보위, 예멘타와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7%98%EB%9F%B0_%EC%A1%B4%EC%8A%A8%EC%84%A4%EB%A6%AC%ED%94%84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유엔에서도 일하고 세계은행 경력이 있다. 재무차관이었다. 여기서 감을 잡아야하겠지만, 라이베리아 역사를 좀 알아야 할 것이다.

   

하면, 라이베리아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라이베리아는 19세기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건국한 나라로, 1847년 아프리카 최초의 흑인공화국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공화국이다.

   

그러나 라이베리아에서는 미국에서 이주하여 온 소수의 해방노예들, 즉 아메리코라이베리안과 원주민들 사이에 마치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에 성립되었던 것과 같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성립되었으며, 트루휘그당(黨)의 일당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미국자본이 지하자원 등 라이베리아의 자원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1947년 이래 미국정부의 원조에 의해 경제개발이 추진되었다.

   

총인구의 3%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아메리코라이베리안의 독재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쌓이던 중 1980년 새뮤얼 도에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트루휘그당과 의회는 해산되었으나 도에 정부도 전통적인 친미노선을 천명했다. 그러나 1990년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에 의해 도에 대통령이 피살되고 내전이 확대되었다.

   

이후 7년간의 내전을 거쳐 1997년 반군 출신의 찰스 테일러 대통령이 이끄는 신정부가 출범, 정세가 다소 안정되어가는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테일러 대통령이 인접국 시에라리온의 반군 단체를 지원하고 다이아몬드 광산 이득을 독점하면서 다른 반군세력의 불만이 쌓여 2000년 하반기부터 다시 교전이 재개되었다.

   

테일러 대통령은 반군의 압박에다 인접국시에라리온 내전을 지원한 혐의로 국제 전범재판소 수배까지 받고 있어 사실상 하야 위기에 몰렸으며, 결국 2003년 8월 모제스 블라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준 뒤 나이지리아로 떠나 망명생활에 들어갔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7508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윌리엄 톨버트와 찰스 테일러이다.

   

먼저 윌리엄 톨버트이다.

   

"라이베리아 몬체라도 주 출생으로 187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부터 이주된 해방 노예의 자손으로 톨버트 일족은 라이베리아에 이주된 가장 큰 아메리코-라이베리아 일족 중 하나였다.

   

초등, 고등 교육을 받고 1934년 라이베리아 대학교는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빅토리아 A. 데이비드와 결혼했고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해 라이베리아 유일의 합법 정당이던 진실 휘그당에 들어가 1951년 윌리엄 V. S. 터브먼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임명되고 1955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5년에는 침례교 목사로 아프리카에서는 최초로 세례 세계 얼라이언스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971년 터브먼의 급작스런 죽음에 따라 대통령직을 계승했는데 일부 진보적 개혁을 시작하고 거의 백년 전 야당 프로그레시브 얼라이언스 공화당이 붕괴된 이후 최초로 야당 창당을 허용했다. 1975년 재선되었지만 그의 정책은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경제 불균형을 낳았다.

   

또한 풍요로운 아메리코-라이베리아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경제 내각에서는 친척들을 등용하는 등 코드 인사 의혹이 제기되었고 재선된 후 토착 민족도 승진시키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톨버트는 강한 친서방 정책을 내팽겨치고 라이베리아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해 소련, 쿠바, 중화인민공화국, 기타 동구권 국가 등 다른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또한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 터브먼의 영향으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1979년부터 1980년 죽을때까지 아프리카 통일 기구의 회장을 역임했다.

   

   

톨버트와 몬로비아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차 안 왼쪽)

   

   

당시 세계의 고무 가격은 라이베리아 경제에 압박을 가했고 톨버트는 새로운 정책들을 도입해 경제와 정치 풍토를 개선하려 했다. 그러나 인구 대부분이 가난하고 안전한 물과 전기, 공공 시설이 없는 탓에 그의 도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톨버트는 외국 회사와도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해 그 동안 정부의 세무 조사 없이 운영했던 외국 회사들에 대해 수백만 달러의 세금을 내도록 강요했고 1975년 5월 서아프리카 15개국의 공동 시장 생성을 위한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를 수립하는데 찬성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리비아쿠바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 1980년 쿠데타로 종료될 때까지 몬로비아에서 저가 주택 공급 사업을 벌였다.

   

1979년 4월 톨버트 내각의 농업장관 피렌체 체노웨스는 22달러에서 100파운드 봉지당 26달러로 농산물 가격을 인상했고 이는 라이베리아 전 농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4월 14일 2000명의 운동가들이 평화적인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 시위대에 대한 군대와 경찰의 신속한 진압, 무질서한 군중 등으로 폭동으로 발전해 1만 명의 시위대가 라이베리아 전역의 쌀 창고를 약탈하고 4000만 달러 이상의 피해를 냈으며 뒤이어 라이베리아군이 무력 진압을 개시해 도시의 거리에서 12시간 내에 최소한 민간인 40명이 살해당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톨버트 정부의 신뢰성도 쌀 폭동으로 인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1980년 3월 톨버트는 PPP의 가브리엘 바커스 매튜스를 반역 혐의로 체포하고 PPP를 해산시켰다. 이에 4월 12일 사무엘 도와 17명의 라이베리아군 상사가 이끄는 쿠데타가 발생해 대통령궁을 폭격했고 톨버트는 그의 지지자 26명과 함께 살해되어 무덤에 묻혔으며 성난 군중들이 시체에 돌을 던지고 모욕하기도 했다.

   

10일 뒤인 4월 22일에는 외무부 장관 찰스 세실 데니스 등 톨버트 내각원 13명이 몬로비아의 바클리 트레이닝 센터 근처의 해변에서 공개적으로 총살당했는데 이중 4명만이 살아남았고 그중 재무부 장관 엘렌 존슨설리프은 훗날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의 정치적 지배 133년이 끝나고 사무엘 도는 민족 수복 위원회라 불리는 군부 통치를 수립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8C%EB%A6%AC%EC%97%84_%ED%86%A8%EB%B2%84%ED%8A%B8

   

다음은 찰스 테일러이다.

   

"1948년 1월 28일 수도 몬로비아 근교의 아싱턴(Arthington)에서 넬슨(Nelson)과 버니스(Bernice) 테일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골라족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미국계 라이베리아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아프리카계 트리니다드인 이라는 설도 있다. 어린시절 테일러는 노예무역과 미국-라이베리아간의 관계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72년 ~ 1977년 동안 미국 메사추세츠 주벤틀리 대학(Bentley College)에 다녔고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테일러는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에게 호감을 얻기위해 자신의 중간 이름을 원주민어인 "Ghankay"로 짓는다.

   

1979년 테일러는 라이베리아에 대한 UN군의 파견에 반발하여 당시 뉴욕를 방문중이던 라이베리아 대통령 윌리엄 톨버트(William Tolbert)가 보는 앞에서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톨버트는 테일러에 공개토론을 제안했으나, 이것은 톨버트의 교묘한 술책으로 테일러는 뉴욕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UN군에 넘겨졌다. 이후 그는 풀려나 톨버트에 의해 라이베리아로 돌아오게 된다.

   

테일러는 1980년 4월 12일 사무엘 도(Samuel Kanyon Doe) 장군이 이끄는 유혈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톨버트의 죽음과 도에의 권력 장악을 목격했다. 도에는 테일러를 정부 재정을 관리하는 요직에다 임명하였으나, 1983년 5월 백만달러를 아메리칸 은행의 개인계좌를 통해 횡령한 혐의로 해고되었다.

   

그는 라이베리아에서 도주하였으나 1984년 5월 24일 메사추세츠 주 소머빌(Somerville)에서 라이베리아 정부의 송환 위임장을 받은 2명의 미국 보안관들에 의해 붙잡힌다. 그의 혐의는 라이베리아의 공업화를 위해 조성된 정부 기금 92만 2000달러를 횡령한 것이었다. 테일러는 라이베리아 정부요원들에 의해 암살 위협을 받아왔으며 미국의 교도소에서 라이베리아로 송환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메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에서 복역했다.

   

1985년 9월 15일, 테일러와 다른 4명의 복역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세탁실의 창문 창살을 절단하고 감옥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헝겊으로 만든 밧줄을 이용해 5명의 탈주자들은 12피트 높이의 교도소 벽을 넘었다. 얼마뒤 테일러와 다른 2명의 탈주자들은 테일러의 아내인 에니드(Enid)와 처제인 루시아 토웨(Lucia Holmes Toweh)가 일하고 있는 조단 병원(Jordan Hospital)에서 만난다.

   

이후 테일러는 스태튼 섬에서 도주차량을 타고 도망친다. 9월 18일 매사추세츠 주 브록튼(Brockton)에서 탈주자중 한명이 붙잡혔고 테일러를 포함한 4명의 탈주자들이 추적을 당하게 되었다. 테일러는 에니드와 토웨에게 9월 23일 자신이 도주차량을 몰았다는 사실을 함구 할 것을 요구한다.

   

테일러는 미국을 성공적으로 빠져나가게 되고 얼마 뒤 리비아에 도착해 리비야의 국가원수인 카다피의 보호아래 게릴라전 수행에 관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라이베리아 내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리비아의 상원의원 프린스 존슨은 2008년 8월 27일 테일러의 탈주는 당시 라이베리아 대통령 사무엘 도에를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계획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의 진위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http://ko.wikipedia.org/wiki/%EC%B0%B0%EC%8A%A4_%ED%85%8C%EC%9D%BC%EB%9F%AC

   

이 네 가지 기사를 통해 인드라는 국유본론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하나, 윌리엄 톨버트는 1970년대 박정희와 비교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박정희는 그간 세계를 움직이던 빅터 로스차일드 권력에 이상이 발생하였음을 파악했다. 이는 비단 박정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윌리엄 톨버트도 파악했던 것이다. 해서, 박정희가 소련과의 비동맹 외교를 추진하고, 남북회담을 개최하고자 했던 것처럼 윌리엄 톨버트도 소련, 쿠바 등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것이다. 왜?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워졌으니까. 하고, 이 시기에 각국 지도자들은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박정희, 팔레비가 대표적이다. 개혁정책을 토대로 압박을 가하는 데이비드 록펠러 신자유주의에 맞서려고 했던 게다.

   

사정이 이렇다고 하더라도 데이비드 록펠러에 대놓고 대항할 수는 없었다. 베트남전쟁을 지지한다.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하자 국유본 권력 이동을 파악하여 재빨리 데이비드 록펠러 진영에 선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우선 정치 부문 만큼은 확실히 장악하고 싶어했다. 더더군다나 라이베리아는 오래 전부터 미국땅이다시피 했다. 다만, 당장 바꿀 생각이 없던 만큼 데이비드 록펠러는 윌리엄 톨버트 체제를 보장하는 대신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하고, 1980년에 전두환처럼 쿠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물론 쿠테타 배후는 데이비드 록펠러이다. 왜냐? 데이비드 록펠러는 근본주의를 좋아한다. 지역 대 지역 대결. 이주민 대 원주민 대결 이런 걸 매우 선호한다. 종교간 대결도 마찬가지다. 허나, 도 장군이 전두환만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자 나온 대안이 라이베이라의 쪽발 돼중, 찰스 테일러였던 모양이다. 찰스 테일러는 노비네파 도움으로 1980년대 중반 극적으로 감옥을 탈출하여 노비네파 시절에 대통령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듯, 윌리엄 톨버트는 빅터 로스차일드파였고, 찰스 테일러는 노비네파였다.

   

둘, 설리프는 윌리엄 톨버트 정권 때에 재무차관을 역임한 사람이다. 도정권과 테일러정권 때는 옥살이도 했다. 여러 모로 김종필과 박근혜를 연상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드라가 강조했다. 노벨상은, 특히 노벨평화상은 당대 국유본 권력 손바닥에 있다고 말이다. 노비네파가 권력을 차지하면 노벨평화상도 노비네파가, 뉴라이트파이면 노벨상도 뉴라이트파가, 제이파가 킹왕짱이면 노벨상이든, 뭐든 제이파가 먹는다는 것이다.

   

해서, 설리프는 노벨평화상으로 자신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처럼 제이파임을 인증한 셈이다.

   

하면, 이번 노벨평화상 의의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오바마가 받아서 세계 만방에 지금은 제이파 세상임을 천명했다. 다음으로는 중국 인권운동가가 받아서 제이파는 향후 G2 미국과 중국 구도로 미국과 중국이 함께 번영하는 세계체제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고, 대선이 시작한 올해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지도자들이 상을 받았다. 무슨 의미인가. 제이파는 제이 록펠러가 총수이지만, 실세로 힐러리 클린턴이 떠오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서, 바이든 부통령 대신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부통령 체제가 차기 대선 구도임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나아가 오바마가 재임 중 암살당할 수도 있다. 혹은 복상사할 수 있다. 하면, 부통령이 불가피하게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

   

셋, 설리프가 일루미나티 카드에 등장했다.

   

   

   

헌데, 또 다른 카드에는  매스머더(mass murder :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무차별 살인)로 나타나고 있다.

   

   

   

월드 일루미네이터라는 언론으로 TWEEZER SLAYINGS RISE TO 23이 제목이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652897

   

   

뉴라이트 매경에서 노골적으로 이번 노벨평화상 결정에 불만을 드러낸 기사를 올렸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번 라이베리아 대선에서 설리프는 스페인의 쪽발 놈현 좌파 신자유주의 총리처럼 총선에서 23명이 죽는 무차별 살인 사건 덕분에 재선에 당선된다는 것일까?

   

이번 라이베이라 대선을 지켜보자.

   

유사한 사건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세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월가에 대항하라는 것이다.

   

   

   

이 카드를 의미하나? 인드라가 요즘 눈이 침침하여 다른 카드를 발견하지 못했다. 만일 이 카드라면 월가를 딱히 의미한다 볼 수는 없겠다. 상징적이기에. 적어도 지금까지 일루미나티 카드가 유명세를 획득한 것은 추상적인 카드보다 구체적으로 사건을 묘사한 카드가 현실을 잘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카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월가 점령 시위가 제이파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이 시위가 얼마든지 오바마를 향한 시위도 될 수 있음이다.

   

해서, 이 역시도 지켜보아야 한다. 과연 제이파 기획 내에서 일이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국유본 다른 분파들이 적극 개입하여 사태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말이다. 일단 이번 주가 고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원이 국유본에 관해 인드라에게 알고 싶은 몇 가지들 국유본론 2011

2011/10/09 03: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777670

   

   

   

국정원이 국유본에 관해 인드라에게 알고 싶은 몇 가지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09

   

   

   

국정원 :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논쟁을 아실 것임. 공동체주의를 록펠러계의 것으로 자유주의를 로스차일드의 것으로 보아도 될지.

   

인드라 :

   

특정 이념에 대한 이해란 정치적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읽지 않는다면, 뜬구름 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인 마이클 센델을 살펴 보자.

   

http://ko.wikipedia.org/wiki/%EB%A7%88%EC%9D%B4%ED%81%B4_%EC%83%8C%EB%8D%B8

   

마이클 센델은 유태인이다. 토니 블레어, 클린턴처럼 로즈 장학생이다.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로즈 장학생이란 뭐냐면 악질 쪽발 김지태 장학생이란 말과 같다. 인민을 착취하고 독립군을 고문하고 살해한 더러운 돈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마이클 센델은 더럽고 흉악한 유태 쪽발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을 정면으로 비판하여 명성을 얻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한국철학회의 주최로 열린 다산기념 철학 강좌에서 '시장의 도덕적 한계', '자유주의와 무연고적 자아' 등의 강연을 한 바 있다. 2009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 대한민국에 번역되어 인문학 서적으로는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1년 4월, 대한민국 판매량 100만부를 돌파했다.  허나, 그의 책은 영미권에서는 10만부 이하로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으나, 유독 일본과 대한민국에서 많이 팔렸다.

   

"신의 계시나 음모론을 끌어들이는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속편한 방법이다.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쏟아지는 서적들도 대개 이런 수법을 쓴다. 이들은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분위기를 잡지만 화폐공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엄격한 규칙들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미국판 좌파 친서민정책이 바로 서브프라임 대출이요 포퓰리즘이며 거품의 원인이었다고도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에서 수십만권이나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애들이나 속일 뿐이다. '정의란…'은 공리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신이 나서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치기준에 대해서는 벙어리다.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금세 들통나기 때문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21390361

   

상기한 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딱 한 대목만 동의하는데, 애들이나 속일 책이라는 점이란 표현이다. 한국 국유본 언론이 나발을 불어서 팔아대었다는 게다. 백만부 정도 팔릴 만한 책은 아닌 듯싶다. 만 부 정도가 유효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국유본 언론이 생쥐랄을 떨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해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강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비판 책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사서 읽지는 않고 대형서점에 서서 좀 읽었는데, 거장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따뜻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공생 발전, 공정 사회 이런 주장의 논거로는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에는 존 롤스가 있다면 제이 록펠러에는 그에 상응하는 누군가가 필요할 터인데, 과연 그가 마이클 센델인지 회의적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자유주의 시대라 한다면, 그 폐해에 대해 나열하는 식의 주례사 비평이야 마이클 센델이 아니라도 해변의 모래알처럼 넘치고 넘쳤다는 생각이다.

   

후기 신자유주의를 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는 철학이 필요하다. 허나, 마이클 센델은 폴 크루그먼처럼 먹튀라고 본다. 국유본이 실수한 것 같다. 인물이 아닌데, 키운 게다. 

   

하면, 마이클 센델이 비판하는 존 롤스는 누구인가.

   

지난 인월리에서는 인드라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록펠러 가문이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존 롤스의 '정의론'을 수용했는지 모른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07398866 

   

또한 록펠러가 왜 존 롤스를 필요로 했는가에 대해 2009년 4월 30일자 인월리에서 http://blog.naver.com/miavenus/70046343147 길게 이야기한 바도 있다.

   

"오늘날 정치학 대상은 대체로 대의제 민주주의, 또는 의회주의이며, 내용적으로 영국과 미국 정치사가 중심이다. 영국은 19세기말까지 지주 혹은 젠트리를 기반으로 하는 토리당(보수당)과 시티 금융가 지지를 받는 휘그당(자유당) 체제였다. 물론 세세하게 말한다면, 토리당/휘그당 출발은 지역과 종교, 왕위 계승권 이해다툼이 주된 귀족 중심이었지만, 기저에는 계급 대립이 내재해 있었다. 또한 영국에서 산업자본이 힘을 내고 있을 때조차도 산업자본은 주요한 정치세력으로서 세력화되지 못하였고, 정치 대립은 언제나 금융자본 대 지주였다. 대표적인 논쟁이 곡물법 논쟁이다. 카르타고 유대인인 리카르도가 휘그당을 대변하여 자유무역을 내세웠고, 맬더스가 토리당을 대신하여 보호무역을 주장한 바 있다. 이때 토리당의 정치이념이 보수주의라면, 휘그당의 정치이념이 자유주의였다. 참고로 이때 국제유태자본을 대표하는 로스차일드 일가는 자유당 의원으로 나서기도 한다. 해서, 당대 국제유태자본의 이념은 자유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이 득세한다. 원인은 보어전쟁 당시의 인권문제 때문이다. 1899년 10월 11일 네덜란드계 보어인 7만 연합군과 영국 45만 군대가 부딪쳐서 1902년 5월 31일에 영국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전쟁 발발 원인은 이 지역에서의 다이아몬드 및 금광 발견 때문이다. 로스차일드의 하수인, 세실 로즈 - 블레어, 클린턴이 받았다는 로즈 장학생의 그 로즈가 세실 로즈이다. -가 주도하였다. 그런데 국제유태자본의 지도를 받는 영국 언론이 벌떼처럼 일어나 보어인의 인권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보어인이 흑인이 아닌 백인인 데다가 어린이와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여 소식을 접한 영국인들은 대영제국이 저지른 수치에 분노해야했다. 당대 집권당은 자유당이었고, 이 일로 영국 자유당은 영원히 문을 닫게 된다. 이때, 로스차일드는 세실 로즈에게 무리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으나, 세실 로즈가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국제유태자본론에 익숙한 이라면 이제 국제유태자본의'위선', 혹은 고육지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국제유태자본은 남아공 다이아몬드 광산을 독차지했고, 국제유태자본이 자유당에서 노동당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당 몰락의 원인이 인권 문제에 있었던 만큼 새로이 부상하는 노동당의 이념은 기존의 자유주의 플러스 인권 문제에 대한 보장책이라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부 산업자본을 대표하는 자유주의 공화당과 남부 노예지주를 대변하는 노예민주당의 역사다. 19세기 중반까지 노예민주당이 우세한 이유는 미국 주요산업이 버지니아주를 중심으로 한 농업에 기반을 두고 농산물을 유럽에 수출했었던 반면 당대 미국 공산품은 싸구려에 지나지 않아 경쟁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해서, 미국 민족주의 경제학은 북부 산업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공화당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반면 노예민주당은 자신의 지주 이념과 다른 영국 자유당의 자유무역을 지지하였는데, 이는 미국 농산물을 수출하고, 영국 공산품을 싸게 수입할 수 있다는 이해가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노예민주당 토머스 제퍼슨처럼 언뜻 보면 아편노예농장주라는 자신의 계급 이해를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어머니 가문이자 300인위원회 명단에 올라가 있는 델라노가 중국과의 아편무역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 현상적으로 영국과 미국이 전쟁중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제유태자본이 의도한 뻥카에 지나지 않으며, 진실은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정치 이념을 일국적으로 보면 안 되며, 당대 국제 정치 관점, 무엇보다 국제유태자본이 설계한 정치경제적 질서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공화당과 노예민주당의 관계는 역전되어 공화당 우세가 된다. 중국 청 왕조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사태의 심각성을 발견하고 아편 단속을 한다. 뿐만 아니라 부국강병에 나서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태평성대의 징후를 보이게 된다. 하여, 동인도회사의 수익성 악화로 위기를 절감한 국제유태자본은 영국만의 군사력 한계를 느끼고,  1850년 이후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의 제국주의화를 결정하였다. 이에 고무된 각국이 산업화와 식민쟁탈전에 뛰어들었다.

   

국제유태자본은 중국의 완전한 항복을 위한 세계 수직분업체제를 위해 제국주의를 용인하였고, 남아공 다이아몬드 광산을 영구 소유하기 위해 영국 자유당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 자유당 몰락을 위해 보어전쟁의 인권문제가 필요했다.

   

그처럼 국제유태자본은 중국의 완전한 항복이 이루어지자 중국 문제를 위해 동원된 사냥개들인 일본과 유럽을 처리해야 하였으며, 이를 위해  미국 강화 전략을 낳게 되었다. 국제유태자본은 남북전쟁을 통해서 미국인이 독일 란츠크네히트 용병만큼 훌륭한 용병 자질이 있음을 평가하게 되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지난날 유럽을 전쟁 등으로 초토화시켜 미국 이민을 촉진시켰고, 태머니파의 뛰어난 정치 책략을 받아들여 이들 이주민을 바탕으로 노예민주당 지지기반을 넓힌 뒤에 루즈벨트 정권을 출범시킨 뒤 세계대전을 일으켜 미군을 지난날 영국 해군과 같은 독점적 지위로 승격시키는 것은 물론 정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 국제유태자본은 그간 금융공황을 일으켜서 연방준비은행을 출범시켜 미국 경제 부문 장악을 끝내고,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국가권력까지 장악하고자 세계전쟁과 공황을 일으켜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정권을 등장시켰다. 국가독점자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촌이 연방준비은행 초대 이사라는 점에서 보듯 루즈벨트는 국제유태자본이 임명한 황태자였다. 어려서 귀족수업만 받았고, 로스차일드의 권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권장된 근친혼을 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국제유태자본은 미국 정치를 재역전시켰다. 노예민주당의 우위인 게다. 일반적으로 리버럴리즘, 혹은 자유주의란 자유무역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영국식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영국에서는 페이비안주의, 변형된 자유주의가 등장했으며,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국제유태자본이 부여한 미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서, 노예민주당이 내건 이념이 New Deal Liberalism, 혹은 미국식 자유주의, 혹은 미국식 진보주의이다. 오늘날 오바마 정권에 대해서도 루즈벨트 이념을 운운할 만큼 이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있어서 누구도 쉽사리 비판하지 못하도록 신화적인 영역으로까지 승격을 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뉴딜 자유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는 국가 기구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개인 자유를 강조한다. 이때 개인이란 미국사에서 보듯 부자 백인 남성만을 의미했고, 보다 정확히는 국제유태자본 가문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국제 금융 권력을 장악한 국제유태자본은 국가권력을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로 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정세에서 '장막 뒤의 연출'을 해왔던 정치 행위를 이념적으로 드러낸 것이 자유주의인 게다. 가령 영국 토리당의 오랜 집권은 토리당이 잘 해서라기보다는 국제유태자본이 토리당이나 보수당 집권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휘그당과 자유당이 실세였고, 국제유태자본이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 국가의 비중이 커진 만큼 국제유태자본이 언제나 '장막 뒤의 연출'만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전히 '장막 뒤의 연출'을 계속하면서도 한편으로 직접 출현하여 국가에 개입해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당이 자주 집권하다 보니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하나는 보수당과 그간 보수당을 비판해온 자유당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비판이다. 둘 다 결국 부자들만을 위하지 않는가 라는 비판이다. 이는 국제유태자본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하는 것이므로 영국 자유당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영국 노동당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의 이념적 자립이다. 국제유태자본은 자유주의 이념을 무기로 지식사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야할 자유주의자들이 오히려 국가 권력에 더 집착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분명 모순인 게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다. 해서, 종래 국가로부터(from)의 자유를 소극적 자유로 규정하고, 국가로의(to)로의 자유, 즉 능동적 자유라는 개념을 발명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제 자유주의자들이 국가 직책을 아무리 맡아도 상관이 없게 되었던 게다. 그러자면 명분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록펠러의 자선이다.

   

국가가 개인, 즉 국제유태자본, 혹은 록펠러를 보호하면 그만큼 록펠러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록펠러를 보호하지 않으면, 록펠러는 해당 국가를 떠나게 되고, 그러한 국가에서는 돈이 없어서 국민이 고통을 받아 자유롭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념화시킨 것이 뉴딜 자유주의이고, 케인즈주의인 게다. 케인즈주의는 지주계급을 옹호한 맬더스에서 찾을 수 있다. 맬더스는 공황 국면에서 지주의 소득을 보장해주면, 지주는 근본적으로 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소득으로 영지 백성을 위해 돈을 쓰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케인즈는 맬더스의 주장을 이름만 바꾸어서 현대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초창기 뉴딜 정책은 노예민주당 지지층인 지주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댐건설 등은 후버 대통령 시절에 이미 입안된 것이 실행된 것뿐이다. 그런데 맬더스가 최초로 공황론을 주장한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종료로 인해 곡물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해서, 맬더스 주장대로 지주 소득을 보전해주는 것은 임기응변책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은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전쟁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주 소득을 지속적으로 보장한다. 지난 역사에서 뉴딜은 이차대전으로 맬더스 주장을 남김없이 검증했던 것이다. 그리고 카터 정권에 이르러서 케인즈 주장이 완전히 헛짓거리라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같지만, 정치철학 분야에서는 케인즈주의이니 뉴딜 자유주의 대신에 공리주의를 둘러싼 논의로 대체되는 것이다. 정치학과 달리 정치철학은 윤리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해서, 자유당의 초창기 공리주의, 혹은 벤담주의는 노동당의 정치철학 이념인 페이비안주의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 연결고리가 밀의 공리주의이다. 인드라는 페이비안주의를 사실상 밀의 공리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근래 롤즈와 노직 논의가 등장하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분배적 정의는…롤즈냐, 노직이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0808251 

   

롤즈는 하버드대 교수다. 하버드대란 영국에서 축구를 한다면 미국에서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미국적 애국주의의 본산이다. 초기에는 공화당 노선이었으나 1930년대 이후로는 국제유태자본의 기획 하에 노예민주당 노선으로 고착화된 이론 생산지 중 하나이다. 롤즈가 왜 1970년대에 정의론을 발표했는가. 물론 롤즈의 연구는 정의론 하나로 평생을 한 만큼 그 자체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국제유태자본은 그때그때 필요한 이론을 유용하게 써먹는다는 점이다.

   

롤즈의 정의론이 부각된 이유는 국제유태자본 내부에서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의 권력 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록 밴드를 내세워도 영국 밴드 비틀즈 대신에 미국 밴드 롤링스톤스를 내세우고 싶다는 게다.

   

밀과 롤즈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드라는 근본 차이는 없다고 본다. 이를 전제하고 롤즈는 밀의 공리주의 주장에 의무론적 윤리 부문을 칸트적 설명으로 좀 더 강조했다는 데에 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8&eid=y48nnG73jynKCA62X3kpQ+UwYxI34jc+&qb=6rO166as7KO87J2YIOyekOycoOyjvOydmA==&enc=utf8&pid=fQnGQdoi5T8ssZHiIPhsss--090262&sid=SfPnebvP80kAADfvIVo

   

롤즈의 정의론은 자유주의에 근거하는 한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를 둔 목적론적이고, 결과론적인 공리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이때 칸트가 제기한 의무론적 윤리 관점에서 선한 동기라는 문제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 철학자 이름 쫙 나온다고 덜덜 떨 것 없다. 진리란 알고 나면 간단명료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제유태자본이 영국 자유당을 붕괴시키고 노동당으로 말을 갈아탄 것은 눈앞의 최대한 이익만 추구하다가는 망할 것을 우려해서 취하는 이기심에서 발현된 것이며, 자선 행위는 이기심의 다른 이름, 즉 고육지책일 뿐이다.

   

롤즈 정의론의 또 다른 특징은 밀이 질적 쾌락을 내세우면서도 계산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았던 반면 롤즈는 당대 게임 논리를 도입하여 계산이 되는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이다. 인드라는 정치 영역 역시도 인터넷 발달 등으로 인해 점차 계산 가능한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해서, 롤즈의 정의론에 긍정적이다. 롤즈는 최소 이익의 극대화를 내세운다. 이에 대해서도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 국제유태자본이 그간 이라크 후세인이나 911의 빈 라덴을 내세웠듯이 시대의 공적을 하나씩 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략은 이미 중국에서 사용된 것이다. 삼국지 정사에서 유비는 실제로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없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강조된다. 삼국지 연의에 따르면, 유비는 대체로 대의명분에 따랐다. 그런데 유비는 알고 보면 조조와 다를 바 없지만, 조조가 한 만큼만 했다. 먼저 왕에 올라 욕을 먹는 대신에 조조가 하면 뒤따라가는 식이다. 이래서 인드라는 고우영적인 삼국지 해석을 천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유비를 기회주의의 달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유비가 한중왕이 된 것은 정당한가?

http://mlkangho.egloos.com/5232121

   

국제유태자본이 노직도 같이 등장시키는 것은 롤즈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드라 조직론 중에 둘 다 똑똑하면 하나는 바보이거나 바보인 척해야 한다, 또는 둘 다 무능하거나 유능하면 하나는 유능하거나 무능해진다고 한 바 있다! 즉, 노직은 '의도된'바람잡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그렇다고 노직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롤즈의 정의론에서 '위선'을 벗겨내면 노직의 이론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롤즈 정의론의 실체는 노직 이론인 게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데, 신자유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케인즈주의자들이 떠받드는 이론을 보다 노골적이고도 심화시킨 것이 신자유주의다,라고 인드라는 보고 있다.

   

그간 인드라가 국제유태자본의 약점은 '위선'에 있다고 강조한 대목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이는 곧 국제유태자본의 강점인데 '고육지책'이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기도 한 것이다. 이 문제는 삼국지나 탈무드만 몇 번 읽으면 깨닫게 된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를 정치철학적으로 어렵게 설명한 것이 롤즈의 정의론이다. 해서, 알고 보면 별 게 없지만, 그럼에도 이를 정치철학적으로 '어렵게' 잘 드러내었으니 롤즈의 정의론이 평가받을만하다. 어렵게 말해야 노벨상도 받고 그러는 것이다. 쉽게 말해봐야 돈이 안 된다^^! 가령 인드라의 이 글을 읽고 누가 앞으로 롤즈의 정의론 책을 사서 읽겠는가 이 말이다^^!

   

결국 롤즈의 정의론은 국제유태자본의 '강제와 동의', 인드라 식 표현으로는 '위선' 전략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emg1님은 두 가지 조건을 두었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이 루즈벨트에게 속은 것, 둘째, 뉴딜이 실제로 공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2차 대전으로 경제문제의 찌꺼기가 사라진 점이다. 만일 님이 첫째만 조건으로 내세웠다면 님의 주장을 밀의 공리주의로 추론했을 것이다. 동기야 어떠하든 희생양 하나를 잘 선택해서 토끼몰이를 해서 결과만 좋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님은 둘째 조건도 내걸었다. 결과가 좋지 않음에도 정의를 내세운다면? 이는 동기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롤즈의 정의론을 떠올렸다. 이 두 가지 조건은 롤즈가 말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둘째 문제는 결과를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이유는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국민들은 선거라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시민은 결과를 모르고 있다. 첫째 문제는 가난하건, 부유하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개인차를 각자의 개인차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주어진 사회 경제적 조건에만 반응하게 되어 있을 뿐이다. 해서, 이 조건하에서라면 루즈벨트 정책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kirilope?Redirect=Log&logNo=3422727

   

그렇다면 롤즈 정의론에 대한 인드라 비판은 없는가. 있다. 하나, 대중이 이성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게임이론에 바탕을 두어 합리적 기대가설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합리적 기대가설을 비판하는 행동경제학이 등장했다. 왜 국제유태자본은 인간이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행동경제학을 주류로 인정하였을까. 인터넷 발달 때문이다. 이전까지 국제유태자본은 언론을 통해서 대중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는 이성을 장악하면, 즉 지식인 사회, 학계를 지배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국제유태자본이 의도한 대로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장악해야만 하는 감성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오늘날 대중은 정치인이나 학자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연예인 한 명 죽으면 국제유태자본이 의도한 대로 대중이 흥분하도록 어용언론을 통해 증폭시킨다. 이에 대중은 호감/비호감 반응을 보인다. 이때의 선택은 자신의 이익에 대한 다양한 태도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한편으로는 종래대로 다수 의견을 추종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자신의 이익을 다소 철회하는 경향을 내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아서 맞먹으려는 합리적 경향(?)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해서, 롤즈의 정의론이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본다."

   

해서, 인드라는 이렇게 정리한다. 존 롤스의 자유주의는 뉴라이트파 사상이다. 마이클 센델의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는 제이파 사상이라 할 수 있지만, 논거가 부실해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 다만, 마이클 센델과 같은 인물이 나와주어야 할 때인 건 분명하다. 보다 실력이 있는 자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국정원 :

   

폴 케네디가 록펠러계의 장기전략 수립에 공헌하는 핵심 이론가라 보고 있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에 비견되는 카운터파트는 로스차일드계의 젊은 니얼 퍼거슨)

   

인드라 :

   

뉴라이트 핵심 이론가는 브레진스키이다. 또한 조지프 나이도 있다. 폴 케네디는 미어샤이머 같은 정도의 학자라고 본다.

   

니얼 퍼거슨이 노비네파 헨리 키신저 자서전을 쓴다고 해서 주목하신 듯싶다. 허나, 아직 지켜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인드라는 노비네파 핵심 이론가로 스티글리츠를 주목한다. 장하준 스승이다. 장하준 이야기는 스티글리츠 이야기를 한국어로 번역한 수준이라고 할 정도라고 보면 된다.

   

국정원 :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4월에 미국-캐나다 방문하면서 엄청난 투자를 얻어냈음. 록펠러에서 로스차일드로 전향한 것인지. 투자하기로 한 기업 중 GE가 로스차일드계라서 추측.

   

인드라 :

   

GE와 피어슨그룹이 연결되고, 피어슨그룹은 FT와 이코노미스트 소유주이니 님 분류상 로스차일드 계라고 할 수 있고, 인드라 분류상으로는 노비네파이다. 헌데, 이런 피어슨그룹이 뉴라이트 매경 종편에 주주로 참여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뉴라이트 매경이 만드는 MBS에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사그룹과 영국 피어슨 그룹이 주주로 참여한다. 왜일까. 간단하다. 현재 한국 경제지 중에 매일경제가 경제신문 중에는 조선일보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기업들은 해외 투자하는 것이 각종 법으로 제약이 많은 편이다. 반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자유로운 편이다.  

   

가령 노비네파 삼성도 이번 에버랜드 건 등에서 보면, 노비네파인 JP모건은 물론 골드만삭스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가. 사정이 이렇더라도 삼성이 노비네파인 것은 여전한 것이다.

   

이를 동북아 외교와 연관한다면, 한국이 미국과 친교하되, 중국과도 친교를 확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이 친중한다고 반미하는 것이 아닌 게다.  

   

해서, 결론을 말한다면, 김문수는 여전히 뉴라이트이다. 허나, 오세훈도 그랬지만, 노비네파는 물론 제이파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할 수 없어서가 문제인 게다. 해서, 김문수는 박정희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문수는 한반도 넘버원인 뉴라이트 정몽준과 전략적 제휴 관계이다.

   

전향하지 않았다.

   

국정원 :

    

박세일의 정체는 무엇인지.

   

인드라 :

   

평화재단만 생각하면 된다. 안철수, 골룸빡처럼 뉴라이트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도 박세일 때문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인데, 조금 좌클릭한 것 같은 뉘앙스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이것이 박근혜 복지론과도 연결할 수 있으니, 헛갈릴 법하다. 허나, 뉴라이트이다. 지금 뉴라이트가 한나라당과 쪽발민주당, 기타잡당 등 여러 세력으로 갈려 있다 보니 나타난 혼란 현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국유본 귀족파와 데이비드 록펠러 황제파와 제이 록펠러 황태자파란 세 개의 흐름이 있고, 이 사이에 여러 가신 그룹이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중 뉴라이트파란 데이비드 록펠러 황제파를 말하는데, 박세일은 뉴라이트 중 한나라당과 쪽발민주당 딱 중간에 위치한 가신그룹에 속한다. 그것이 지금 평화재단이고, 안철수이다.

   

국정원 :

   

얼마 전 결혼한 현대그룹 정지이의 남편 신두식(Doo Shik Shin)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을 졸업,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IFC) 광업투자부서, CoalinQ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메릴린치 IB사업부(일본지사) 역임. 메릴린치가 BoA로 인수된 이후 BoA메릴린치 일본지사에서 일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음. (구글에서 Doo Shik Shin 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해서 linked 라는 사이트에 있는 정보로 알아냄.)

   

인드라 :

   

"평범한 집안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난 신씨는 현재 일본에서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의 아버지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전 국제종합기계 신현우 대표, 어머니는 신혜경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다.

   

정 전무의 시어머니 신혜경 교수 "바쁘게 지낸다"

   

신혜경(65) 교수는 지난 1978년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조치대학교에서 사회언어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학위까지 마친 일본학의 권위자다. 1993년에 귀국해 서강대에서 18년 동안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지난 8월 말 정년퇴임했지만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일본 문화 연구와 후학 양성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신 교수는 서강대에 일본문화학과를 개설하는 등 지난 30년간 일본학의 발전과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월 15일 올해의 '일한문화교류기금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문화·예술 분야 교류를 통해 양국의 우호적 관계에 이바지한 한국인에게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신혜경 교수는 평소 종교 활동에도 열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정지이 전무를 새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그녀의 기도 제목이 하나 더 늘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절절한 기도는 이제 막 새 출발을 시작한 정 전무 부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행복의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109271757141&pt=nv

   

평범하지는 않다. 현대그룹은 다른 현대 계열사가 뉴라이트인 것과 달리 노비네파이다. 서강대이면 가톨릭이다. 현재로서는 노비네파가 유력하다. 박근혜도 노비네파다. 가톨릭과 연관이 깊다.

   

메릴린치는 사라졌고, BOA도 가까운 시일내에 문 닫을 운명이라고 보고 있다. 국유본이 이번 금융 위기에서 획득할 전리품 중 하나라고 본다.

   

국정원 :

   

김현종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이 록펠러계로 보이는데, 삼성의 해외사업시 현지 록펠러계 간의 채널 역할인 것인지.

   

   

인드라 :

   

김현종은 뉴라이트 쪽발놈현 정권 때 FTA를 담당하던 전임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D%98%84%EC%A2%85

   

후임 김종훈은 고시를 통해 외교부에서 큰 인물이라면, 김현종은 외부 인물이다. 왜 이런 인물을 쪽발놈현이 FTA 담당자로 임명했을까. 바로 이런 짓거리를 하라고 국유본이 쪽발놈현 정권을 임명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이면 무뇌아 노빠들이 김종훈을 난도질을 했을 터인데, 쪽발놈현 정권 밑에 있다 보니 쉴드쳐주기 바쁘다. 병쉰색희들~! ㅋㅋㅋ.

   

하면, 김현종은 뉴라이트 쪽발놈현 정권 밑에 있었으니 뉴라이트인가. 아니다. 쪽발놈현 정권 밑에는 제이파 삼창 이정훈도 있었다. 인드라가 볼 때는, 김현종은 노비네파이다. 노비네파이기에 삼성 노비네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쪽발놈현 정권은 2003~2005년 사이에는 미국 정권이 부시정권이다 보니 노비네파에 지배당하던 시절이다. 허나, 권력 교체기인 2006년부터는 부시정권이어도 국유본 권력이 뉴라이트파이다 보니 김현종 대신에 김종훈이 들어선 것이다.

   

김현종이 데이비드 록펠러와 연관이 있더라도 노비네파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네오콘부시파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해서, 뉴라이트 위키리크스가 김현종을 까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필요해서 요즘 뉴라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명박도 까대지만~!

   

이쯤되면, 이제 국유본 세상을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로 분류하기 보다 인드라 분류식인 노비네파, 뉴라이트파, 제이파로 분류하는 것이 훨씬 세상과 가깝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는가?

   

인드라처럼 분류하는 방식은 전 세계에서 인드라가 유일하다. 하고, 그 어떤 분류보다 현실적이지 않은가.

   

국정원 :

   

언론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를 많이 다루고 운동권이 집중한 것은 록펠러계가 운동권과 언론을 이용해서 로스차일드계인 한진을 때리는 것은 아닌지.

   

인드라 :

   

그렇다고 본다. 뉴라이트가 주도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총지휘하는 것은 한국 CIA라고 보지만, 실무를 맡은 이들은 정몽준을 중심으로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정동영, 노회찬, 심상정, 김진숙 같은 연놈들이 생쥐랄을 떨고 있다고 본다.

   

일타삼피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말한 대로 손보기이다. 전 세계에서 노비네파가 압박을 받듯이 한국에서도 노비네파가 많이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처럼 강력한 노비네파는 살아남지만, 허약한 노비네파는 자칫 리비아 카다피처럼 쓰러질 수 있다. 다만, 한진이 그 정도로 약한 기업이 아니라고 본다. 인드라 예상으로는 금호 박삼구처럼 정신이 맛갈 정도로 혼줄을 내주는 차원으로 본다. 실제로 그렇다.

   

둘, 알파오메가 시스템이다. 국유본은 한편으로 이명박을 국제적인 데서는 전폭 지원하지만, 그만큼 국내에서는 헤지를 해야 한다. 오메가 작전이다. 해서, 한진중공업 사태 같은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번에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소할 조짐이 있으니 이는 이제 다른 이슈로 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무엇이건, 역시 이명박을 압박하는 이슈를 국유본이 만들 것으로 본다. 특히 FTA 시즌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뉴라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명박을 공격하고 있다. 미국 CIA 작품인지 미군 범죄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국유본은 한국 거리나 국회에서 머저리 같은 한국넘들이 해머쇼, 공중부양쇼를 열심히 해서, 오바마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를 드러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셋, 일타삼피 셋을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추정으로는 부산이 동북아 물류항구로 떠오르는데, 외인이 라스베가스 수준으로 놀다가는 그런 자리로 한진중공업 터로 보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잘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상기한 두 가지와 달리 국유본 이익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실히 챙기는 것이라고 본다.

   

한진중공업이 곤경에 처하면, 수빅만 같은 데서 미국 업체 같은 것이 있어서 이익을 보나???

   

국정원 :

   

2011년 8월 15일,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했음을 발표. 2011년 8월 19일 오후, 다니엘 알레그레 구글 아태지역 총괄사장이 극비리에 다음을 방문해 이재웅 회장, 최세훈 사장을 만나 약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다음은 록펠러인지 로스차일드인지.

   

인드라 :

   

노비네 정권인 쪽발돼중 정권 때 다음이 떴고, 뉴라이트 쪽발놈현 정권 때 네이버가 떴다. 다음은 노비네요, 뉴라이트는 네이버이다. 하면, 네이트는? 뉴라이트이다. 야후는? 노비네이다. 구글은? 노비네이다. 구글이나 모토롤라 모두 노비네파여서 인수가 가능한 것이다.

   

하면, 제이파는? 인드라는 네이트가 제이파로 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직 제이파는 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주 쉽게 말한다면, 한국에서도 보면, 골드만삭스가 하면 여기저기서 욕을 한다. 헌데,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가 하면 조용한 편이다. ㅎㅎㅎ.

   

한국에서 인기있는 제이파 상품은 아직까지 뉴욕타임즈와 클린턴 말고는 없는 것같다.

   

국정원 :

   

로스차일드계인 루퍼트 머독의 언론사가 영국 왕실을 도청하고 추적했다 하는데 그러면 여왕과 왕실도 록펠러계인지, 아니면 왕실의 일부만 록펠러계인지.

   

인드라 :

   

CIA 요원도 도청을 우려해서 휴대폰 사용을 자제한다고 한다. 같은 편도 도청한다. 한반도 넘버원 정몽준도 도청을 우려할 정도인데, 이런 정몽준을 도청할 이가 노비네파나 제이파뿐인가. 뉴라이트파도 도청한다.

   

루퍼트 머독은 노비네파이다. 영국 여왕도 노비네파이다. 한나라당은 뉴라이트이다. 쪽발민주당도 뉴라이트이다. 안철수나 골룸빡도 뉴라이트이다. 모두가 도청 대상이다.

   

국정원 :

   

아팔루사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테퍼의 정체는 무엇인지.

   

인드라 :

   

"헤지펀드 잡지 앱솔루트리턴의 자료를 인용한 뉴욕타임스의 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돈을 번 상위 25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2007년 보다 많은 253억 달러를 번 것으로 나타났다. 앱솔루트리턴에 게재 된 25명의 헤지펀드 매니저 중 가장 적은 보수가 3억5000만 달러일 정도다.

   

   

데이비드 테퍼

지난해 헤지펀드 업계에서 가장 큰 수익을 거둔 매니저는 골드만삭스 출신의 데이비드 테퍼. 2008년 기록했던 27%의 투자손실을 딛고 역대 헤지펀드 매니저 중 가장 큰 수익을 거뒀다. 테퍼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대형금융기관들의 우선주, 은행채를 집중 매입하는 역발상 투자로 지난해 130%의 투자수익률을 거두며 40억 달러를 벌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금융기관 부도를 우려하며 금융주를 팔아치웠을 때 그는 미국 정부가 대형 은행을 그냥 무너지게 놔두지 않을 거란 데 베팅해 급락한 금융주를 집중 매입했다. 그는 특히 AIG 채권 투자로 막대한 차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40117090818042&outlink=1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제이파인 게다. 인드라가 강조했다. 후기신자유주의는 국유본 투자은행이 2선으로 후퇴하고, 국부펀드, 헤지펀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국정원 :

   

마오쩌둥은 록펠러였는지 로스차일드였는지.

   

인드라 :

   

빅터 로스차일드파였다. 당시에는 노비네파가 형성하기 전이니까. 중국 혁명은 국유본 작품이다. 냉전체제 성립과 한국전쟁을 목적으로 빅터 로스차일드가 중국 공산당 정권을 탄생시켰다. 아니었다면, 빅터 로스차일드는 장제스 국민당 정권을 출범시켰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국공 내전에서 국유본이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장제스 국민당 정권이 오늘날 통일 중국 정부를 이끌고 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파리 유학파 출신이 주류이다. 이들 파리 유학파 주류가 토종파로 모택동을 내세운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소련파가 김일성을 내세운 것이다. 미국파가 이승만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일 장제스가 집권했다면 국유본은 미국파를 통해 장제스를 감시했을 것이다.

   

국정원 :

   

소에지마 다카히코의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에는 로스차일드계인 존 버치 협회를 마치 유대인 세력을 적대하는 민주주의 투사, 은밀한 세력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보수인 양 설명해 놓았음. 소에지마는 확실히 로스차일드계로 보임. 그리고 쑹훙빙의 책에는 록펠러계 활동이 축소되어 있고 로스차일드계의 활동 위주로 폭로한 걸 보아 그는 록펠러계로 보임. 화폐전쟁1의 색인에 보아도 록펠러 언급 비중이 너무 적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인드라 :

   

http://blog.naver.com/parkseayun?Redirect=Log&logNo=40131830121

   

소에지마 다카히코가 노비네파이기 때문. 해서, 뉴라이트파에 대항하여 제이파와 노비네파가 연합한다는 구상을 제안할 정도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소에지마 다카히코가 헛소리를 많이 하는데, 무시하면 된다. 인드라가 보기에 읽을 가치가 없다.

   

쑹훙빙도 금 운운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정신 상태가 정상인가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소에지마 다카히코보다는 낫다고 본다. 쑹훙빙은 님이 말한 대로다. 현재까지는 뉴라이트파이다. 노비네파 음모론자들 특징이 있는데, 빅터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꺼려하는 편이다. 반면, 쑹훙빙은 빅터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거침없이 한다.

   

한편, 쑹훙빙이 화폐전쟁을 통해 미중 관계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 때 영향력이 있는 4대 중국인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는 제이파 오바마가 원하는 구도인데, 쑹훙빙이 제이파일 가능성도 이 점에서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인드라가 쑹훙빙을 뉴라이트파로 추정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화폐전쟁이 랜덤하우스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국내에서 중앙일보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삼성 계열사이긴 해도 뉴라이트이다. 홍석현이 뉴라이트이다.

   

현대라고 다 뉴라이트가 아니라 현대그룹이 노비네이듯, 삼성이라고 다 노비네가 아니라 중앙일보가 뉴라이트이다.

   

국정원 :

   

전반적으로 로스차일드계는 꾸준히 금을 사라고 권했고, 록펠러계는 금을 사지 말 것을 권했음. 실제로는 금 가격이 꾸준히 올랐고 로스차일드계의 조언을 따랐을 때,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음. 이미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이(로스차일드계)는 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유리하고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못한 이(록펠러계)는 금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이 유리함. 그렇다면 여전히 금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로스차일드계인 것인지.

   

인드라 :

   

금 수익 만큼이나 석유 수익도 크다. 금 시장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 노비네파이긴 하다. 석유 시장은 제이파가 장악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면, 쑹훙빙이 뉴라이트파인데, 왜 그는 터무니없이 금본위제 부활 따위를 주장하는 것일까. 달러 약세에서 원자재 시장 상승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때, 금이든, 은이든, 석유이든, 옥수수이든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인 게다. 하고, 이중 자신이 장악한 시장을 강조하는 것일 뿐.

   

현 시점에서는 일시적인 달러 강세로 금은 물론 석유, 옥수수 같은 것이 폭락하고 있다. 다만, 이중 상대적으로 잘 버티고 있는 상품은 석유이다. 오를 때보다 내릴 때 잘 방어하는 쪽이 힘센 종목이다. 리스크 관리가 철저하다는 건 그만큼 권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월가 점령 시위는 국제유태자본 제이 록펠러파의 친위 쿠테타 국유본론 2011

2011/10/08 01:59

http://blog.naver.com/miavenus/70120690932

   

    

   

   

왜 뉴욕과 서울과 홍콩  증권거래소 앞에는

바알신 황소상이 있을까~!

그건 단지 주가 상승 불스장을 바래서라고~?

ㅋㅋㅋ

    

   

월가 점령 시위는 국제유태자본 제이 록펠러파의 친위 쿠테타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09

   

요즘 월가 점령 시위가 외신 톱을 차지하고 있다. 외신 기사들은 국유본이 특별 관리하고 있다. 예서,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쪽발찌라시 한걸레야 기존 상식으로 월가 점령 시위를 보도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친일 조중동이 현지에 특파원까지 보내 시위대와 인터뷰하는 열성을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무뇌아 쪽발 노빠들이 수구 꼴통 언론이라 말하는 친일 조중동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따뜻한 자본주의 4.0 이슈를 제기하지 않나, 월가 점령 시위를 운운하지 않나, 일본 보수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쪽발 노빠 무뇌아들은 말하겠지. 그것은 쪽발 놈현 가카께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기에 겁에 질린 미국이 쪽발 놈현 말대로 하자고 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다. ㅎㅎㅎ. 뭔 말을 못 하겠냐. 세계 환율 배후에는 고환율주의자 강만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무뇌아 쪽발 경제학파 주장이 아니겠냐? ㅋ 머리에 들은 건 없으면서 인격이 덜 된 족속이 무뇌아 노빠 족속들이 아니냐. 쪽발 정일 세력은 뽀그리를 말할 것이고~? 약간 좀 공부한 넘이라면, 미국과 자본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제 불능이다, 라고 주장할 것이다. ㅋ. 허나, 뭔가 질서 있게 움직이는 이 흐름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ㅎ. 그리스 디폴트도 질서 있는 디폴트를 말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0641876

   

국제유태자본론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정말 월가 시위가 월가와 국유본에 위협적이라면 기사를 아예 내보내지 말든가, 내보내더라도 단신으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 가령 매년 군에서 죽는 사망자는 일백 여명. 쪽발 놈현과 쪽발 돼중 정권 때는 2005년 연천군 GP 총기난사 의혹 사건처럼 아주 큰 사건이 아니면 이런 기사 거의 내보내지 않았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은 물론 친일 조중동문스까지 나서서 사망 사건은 물론 탈영한 사건도 다룰 지경이다. 기사 보도 태도를 보면, 탈영한 군인이 대형 사건을 저지르기를 간절하게 바라기까지 하는 듯할 지경이다~! 왜 이런 기사들을 쏟아내나. 그야 이명박이 군대 안 갔으니까 그렇다. 참고로 인드라는 건대항쟁으로 구속당해서 대학생이면 받는 3개월 면제 혜택없이 30개월 군복무했다. ㅠㅠㅠ 인드라가 겉으로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해도 대학생이 30개월 군복무하니 운동권이다라고 다들 알아서 참 고생 많이 했다~!!! 하면,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은 그렇다치고 친일 조중동문스는 왜 그러하나. 이명박 힘이 센가? 아니면 국유본 힘이 강한가? 이명박은 기껏해야 5년하고, 국유본은 현재까지 보자면 영원한 권력이다. 답은 뻔하다.

   

국내 기사야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건 외신이다. 국유본은 국내 뉴스도 통제하지만, 외신 뉴스 만큼 아니다. 국유본 권능 중 하나가 무엇인가. 전 세계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현대중공업 이동발전기를 쿠바 화폐에 넣어 정몽준 각하를 모시고 있는 쿠바에서 일어난 카스트로 혁명은 제이파(제이 록펠러 CGI 오바마) 뉴욕타임즈 작품이다.

   

- 번개에서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 체 게바라, 너마저도 유태인이야?

   

카스트로를 측면에서 도운 체게바라는 국유본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한 아르헨티나 유대인이다. 말하자면, 박정희를 도운 김종필 같은 역할이다. 인드라는 김종필을 박정희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국유본 첩자라고 본다. 여러분은 아직도 이념 틀을 깨지 못해서 헛갈려하는 것 같다. 김종필과 쪽발 돼중 DJP 연합 같은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아직도 국유본 수작에 넘어가서 이들 본질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1999년 쪽발 돼중과 김영삼은 나란히 손잡고 빌더버그에 간 사이인 게다. 또한 지금까지 빅터 로스차일드가 국유본 권력을 쥐고 있었다면, 박정희 후임으로 쪽발 돼중이 대통령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나, 데이비드 록펠러가 집권하면서 전두환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잡소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가자.

   

왜 국유본 제이파는 월가 점령 시위를 기획하였는가.

   

일타 삼피이다.

   

첫째, 오바마 재선을 위해서다. 물론 미국인도 투표권이 없다. 정교한 과정을 통해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푸틴부터 차베스, 노다, 김정일, 후진타오, 이명박까지 국유본이 지도자를 임명한다. 여러분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서 투표하고 있는 셈이다. 투표장에 간 당신은 이미 국유본 설계에 세뇌를 당한 채 투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재선에 왜 월가 점령 시위가 필요한 것일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도가 녹록치 않다. 민주당내 경선 후보도 없고, 공화당의 후보들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없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없기는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직무수행 만족도는 날마다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급기야 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CNN 방송은 민주당의 핵심 선거전략가인 제임스 카빌이 "오바마가 정부 장관들을 해임하고 (월가의) 사기꾼들을 처벌하지 않는 한, 재선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한 것으로 15일 보도했다. 카빌은 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전략가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선거 운동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사회 단체와 지역 조직의 사회적 이슈를 먼저 선점하는 캠페인 방식을 적용해 대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만큼 미국식 인민주의(파퓰리즘)를 잘 활용할 줄 알고, 대중의 인식에 민감하다. 카빌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먼저 '경악하라'고 권고한다. 사태는 심각하다. 그러니 공포에 질려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다. 그가 권한 조처들은 현재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누군가를 파면하라"는 것이다. 카빌은 '누군가'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많은 사람들'(a lot of people)을 짜르라고 조언한다. 클린턴도 1994년 대량 해고를 통해 캠페인에 동력을 얻었고, 레이건은 1980년에 자신의 선거운동원 대부분을 잘라서 승리했다. 그러나 누구를 짜르라는 것인가? 카빌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티파티(공화당 극우파) 멤버들을 짜릿하게 만들만큼 많은 사상자를 내라". 즉, 공화당과 대중들이 비난하는 인물 모두를 자르라는 것이다. 가이트너 재무부장관이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대상일 것이다. 두 번째 처방은 보다 독하다. 기소하라는 것이다. "미국 경제를 망쳐놓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미국인들을 깔아뭉개고 있는 '불공정'을 명백하게 수사하도록 지시하라.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홀더 법무부장관이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설명이 맘에 안들거든, 잘라라". 왜 아무도 이 재난에 대해 기소당하지 않았는지 휘하 장관들에게 설명을 요구하라. 카빌이 요구하는 칼 끝은 월스트리트를 향하게 된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적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세 번째 방안은 당파적이다. "민주당원처럼 행동하라!" 카빌은 지난 7,8월 미 국채 발행 상한과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싸고 공화당에 보여준 약한 모습을 질타한다. 그러니 핵심 지지층에게 확신을 주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빌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불길하게 예언한다. "TV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미친 인간들이 이 나라를 망치기 직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 "자르고, 기소하고, 싸워라"(Fire, Indict, Fight)."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91615592471828

   

이것 시위 잘 하면 국회의원도 할 수 있는 미국판 운동권 출세판인 게다. 허나, 꿈에서 깨라. 중동 재스민 혁명 혹은 재스민 쿠테타에서 보듯 출세할 사람들은 이미 국유본이 내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CIA나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교육을 받은 자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도 월가 시위 점령 시위해서 언론을 타서 유명해져서 출세하려나~ 하고 여기는 이들이 국유본 언론이 떠들어대니 몰려들 것이다. 마치 헐리우드에 찾아오는 배우 지망생들처럼. 그들 99%는 포르노 배우로 전락하여 뽕이나 흡입하면서 비참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99% 운동권이 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 착각하지 마라. 오직 국유본이 임명한 운동권만 출세한다. 강남좌파 간첩으로 국유본 지시를 받아서 언론에 출현해서 떼돈을 번다. 당신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건 순진한 것이다. 자리는 많지 않다. 혼자 해먹기도 버겁다. 쪽바리 표현으로 앗싸리 판이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알아가고 있다. 알파독으로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다. 운동권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시위 배후는 쪽발 뽀그리나 소련 공산당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쪽발 뽀그리나 소련 공산당 뒤에는 국유본이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은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만 이야기한다. 허나, 성공한 혁명만 이야기를 하니 오해가 있는 것 같다. 1830년, 1848년, 1871년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났는데, 다 실패했다. 왜? 국유본이 늘 혁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 이익에 부합할 때만 혁명을 지지한다. 하고, 그 대가는 IMF 요구처럼 혹독하다. 오늘날 그런 나라가 누가 있나? 이집트이다. 빤쓰까지 벗을 지경이다. 어떤 한국인이 이집트인 민주화 열정이 부럽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한 삼일 정도 굶으면 정신을 차릴 미련한 족속인 게다. 이런 멍청난 넘들이 넘쳐나니까 한반도가 통일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캐병쉰 색희들이 무뇌아 노빠랍시고 국유본이 뒤에서 살살 키워주니 잘 난척하는 꼴이라니~! 당신이 무뇌아 노빠라면, 당신 애비에게 물어봐야 한다. 너놈 조상이 쪽발이일 가능성이 농후한 게다. 그러니 그런 허접한 선동질에 넘어간 게다.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쪽바리 조상들이 저지른 죄과를 씻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에 나서야 한다.  

   

허나, 이런 이야기를 해도 아예 외면하고픈 마음이 있다. 수십년간 운동권으로 살아보라. 인드라가 그 심정 잘 안다.

   

- 나, 병쉰된 거야? 여태 속고 살았어? 이 한 몸, 민족해방, 인민해방을 위해서 살았다고 생각했거늘, 국유본의 하위 세포 조직에 포섭되어 몸도 마음도 망가진 채로 세상을 저주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주사파가 밉다고? 주사파도 국유본의 하위 세포 조직이야. 주사파 반대하는 운동권 조직은 또 어때? 역시 국유본 하위 세포 조직이야. 아아~ 이제야 알겠어. 왜 때가 되면 노회찬, 심상정이나 골룸빡 같은 애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인지. 그들은 변절한 게 아니라 원래 개색희들이었구나~! 그러니 대표씩이나 하고 친일 조선일보 기념식에 간 것이지~!

   

국유본이 인드라 이야기가 위험하다고 보았는지 폭탄주 먹으며 하는 소리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ㅋㅋㅋ

   

세계 주요 국가 정치 지형은 조금씩 다른 편이다. 영국은 보수당이나 노동당이나 모두 노비네(로스차일드 빌더버그 네오콘부시파)이다. 반면 프랑스는 사르코지 여당이나 사회당 야당이나 모두 뉴라이트(데이비드 록펠러 삼각위원회 카터레이건파)이다.

   

한국은 프랑스와 가장 유사하다. 한나라당이나 쪽발민주당이나 모두 뉴라이트이다. 골룸빡도 뉴라이트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비네파인 것도 프랑스 공산당이 노비네파인 것과 유사하다.

   

허나, 이것뿐일까. 국유본이 단지 오바마 재선을 위해서 월가 점령 시위를 기획했다고 하면 오해이다. 왜? 티파티 역시 국유본이 만든 운동이니까~!

   

둘, 국유본 분파간 경제 지분 확충이다. 정치적 이면에는 늘 경제가 있다. 국유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돈과 등가한다.

   

국유본 분파간 권력 투쟁이 있었다. 1973년 국유본 권력은 국유본 귀족 쿠테타로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권력이 이동했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처럼 최후의 반격을 꾀했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처럼 빅터 로스차일드는 1980년대 영국 탄광노조 투쟁으로 다시 황제로 오르려 했지만, 실패한다. 이후 빅터 로스차일드는 온갖 오명 속에서 1990년 초에 뒈진다.

   

이때,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백 년 이상 국유본 권력을 독점한 로스차일드 가문과 국유본 귀족에 대해 현명한 조치를 내린다. 아마도 자신을 아우구스투스로, 빅터 로스차일드를 시이저, 혹은 케사르로 여긴 듯싶다. 한국으로 치면, 데이비드 록펠러는 자신을 왕건으로, 빅터 로스차일드를 궁예로 여긴 것이다.

   

하면, 데이비드 록펠러는 국유본 권력을 차지했다 해서 즉각 경제 권력을 취했는가. 아니다. 그리 하면, 국유본 귀족들이 데이비드 록펠러마저도 축출했을 것이다. 해서, 오랜 기간 데이비드 록펠러와 국유본 귀족 사이에는 황제파와 귀족파 균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예서, 황제파가 뉴라이트파이고, 귀족파가 노비네파인 게다.

   

   

"1838년 미국의 기업가 조지 피바디(George Peabody)가 런던에 상업은행을 개점하여 기초를 마련하였다. 1854년 뉴잉글랜드의 주니어스 S. 모건(Junius S. Morgan)이 피바디의 동업자가 되었다가 1864년 그 회사를 인수하여 J.S.모건앤드컴퍼니(J.S. Morgan & Co.)로 이름을 바꾸었다. 1861년에는 주니어스의 아들 J. 피어폰트 모건(J. Pierpont Morgan)이 J.P.모건앤드컴퍼니(J.P. Morgan & Co.)를 설립하여 부친의 회사에서 인수한 유럽의 증권을 뉴욕에서 판매 배급하는 사무실 역할을 하였다. 1868년 파리의 은행 드렉셀아르제앤드컴퍼니(Drexel, Harjes & Co.)가 설립되자 피어폰트는 1871년 동업자가 되고, 이 은행은 나중에 모건아르제앤드컴퍼니(Morgan, Harjes & Co.)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5년 피어폰트는 가문이 소유한 은행 지분을 통합하여 뉴욕, 필라델피아, 런던, 파리에 있는 4개 은행의 동업자가 되었다. 1910년 런던에 투자은행 모건그렌펠앤드컴퍼니(Morgan, Grenfell & Co.)를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J.S.모건앤드컴퍼니를 대신하여 모건 조직의 영국 본부가 되었다. 1935년 미국 내에서 은행업과 증권업을 겸할 수 없게 한 은행법에 따라 J.P.모건앤드컴퍼니는 상업은행 업무를 맡기로 하고, 별도의 증권회사 모건스탠리앤드컴퍼니(Morgan Stanley & Co.)를 설립하였다. 1959년 뉴욕의 상업은행인 개런티트러스트컴퍼니(Guaranty Trust Company)와 합병하여 모건개런티트러스트(Morgan Guaranty Trust Company of New York)를 설립하였고, 1969년에는 J.P.모건앤드컴퍼니가 주계열사인 모건개런티를 비롯한 여러 중소 계열사들의 지주회사가 되었다. 2000년 9월 체이스맨해튼은행(Chase Manhattan Bank)과 합병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고, 미국 최대의 담보대출 제공 및 신용카드 발급 금융기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통합된 회사는 전세계의 고객들에게 다양한 은행 및 기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자금융 서비스에는 증권 중개, 자산 관리, 소유권 투자 등이 포함된다. 2000년 현재 총자산 7153억 4800만 달러, 매출액 327억 9300만 달러이며, 본사는 뉴욕주(州) 뉴욕에 있다. "

[출처] J.P.모건체이스앤드컴퍼니 [J.P. Morgan Chase & Co. ] | 네이버 백과사전

   

데이비드 록펠러는 여러 면에서 로스차일드 가문 창시자인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와 닮았다. 일의 순서를 알았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1970년대 초 빌더버그 회의에서 삼각위원회 구상을 내놓아 빅터 로스차일드에 불만을 느꼈던 국유본 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다. 국유본 귀족들은 신세계 질서로의 이행에 찬성하였다. 허나, 어디까지나 국유본 귀족들 기득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신세계 질서였던 것이다. 반면, 빅터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생애에서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신세계 질서로 가야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때, 빅터 로스차일드 기획을 여러 경로로 통해 듣던 좌파 명망가 태도는 무엇이었나. 빅터 로스차일드가 유대인 스피노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이었다. 그것이 유럽 좌파 교황, 알튀세르 입장인 게다. 허나, 뜻대로 진행하지 않고, 빅터 로스차일드가 권력을 잃자, 알튀세르가 미치광이로 돌변한다. 김종필 같았던 유대인 아내를 목을 졸라 살해한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삼각위원회를 출범시킨 후에 연달아 빅터 로스차일드 체제를 바꾼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체제를 G5 체제로 바꾼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이다. 반면 데이비드 록펠러 G5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이다.

   

또한, 데이비드 록펠러는 신자유주의를 태동시킨다. 신자유주의를 워싱턴 컨퍼런스라고 해도 좋다. 신자유주의 장점이 무엇인가. 토머스 프리드먼 저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빅터 로스차일드 때까지 제 3세계는 무엇이었나. 빈곤의 연속이었다. 빅터 로스차일드 때까지 자본 투자란 제 1세계에서만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와 함께 일정 지분을 획득하고 있는 런던 트로츠키 또라이 좌파 '다함께' 이론가들께서는 아직까지도 중국 경제발전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없다. ㅋㅋㅋ 좌파 세계를 잘 모르지만, 종교 쪽으로 좀 아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국 운동권의 여호와의 증인이 '다함께'이다. 대학생 애들 세뇌시켜 신문팔이 앵벌이를 시키는 방식이 통일교, JMS, 여호와의 증인, 다단계 피라미드 방식과 유사하기에.

   

아무튼, 데이비드 록펠러는 제 3세계에도 투자하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발명하였다. 남한과 칠레,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몇 곳에서 실험하였는데, 그중 남한이 목표를 초과달성하였다. 이 시기 데이비드 록펠러는 감지했을 것이다. 한국인은 이스라엘인처럼 굉장히 기기묘묘한 족속들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책에서 알고 있는 역사가 가짜일 수도 있을 만큼 아시아 역사는 근대 이후로 국유본이 일본을 시켜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사석에서 하곤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쪽바리를 무시하는 족속이 있으니 한국인이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일본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력이 유럽 전체와 맞먹으니까. 헌데, 한국인이 유독 일본인을 우습게 본다. 왜일까. 이것이 단지 만용일까. 아니면, 집안 내력인가 ㅋ.

   

인드라는 말한다. 전 세계 다른 민족들이 다 일본인을 높이 평가해도 한국인 만큼은 일본인을 충분히 무시해도 될 만한 숨은 역사가 있다고 말이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치밀한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스차일드 뉴욕 본부인 제이피모건을 2000년 들어서야 장악한다는 것이다. 로스차일드 제이피모건과 록펠러 체이스은행 결합. 이 시기는 노비네파 부시 정권 시절.

   

데이비드 록펠러는 경제 기득권을 모두 존중한 셈이다.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로 말을 갈아타기만 하면 이전보다 더 큰 혜택을 준다는 약속이었다. 

   

영국 정치 권력도 노비네파인 토니 블레어로 임명하였다. 겉보기에는 이념이 다르다. 부시는 미국 공화당 보수우파세력이다. 토니 블레어는 영국 노동당 진보좌파세력이다. 허나, 보수우파세력이든, 진보좌파세력이든, 모두 데이비드 록펠러 손바닥 안에 있다. 토니 블레어는 퇴임 이후 JP모건 고문으로 낙하산을 탄다.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가. 경제 권력 장악이란 정치 권력 장악보다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섬세한 기획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천 년대에 이르러서야 데이비드 록펠러는 자신의 안방 격인 미국에서 로스차일드 미국 본부인 JP모건을 취할 수 있었다. 허나, 이를 위해 노비네파 권력을 용인해야 했다. 가령 한국 외환위기를 일으킨 것은 이후 제이파로 변신하는 뉴라이트 강경파였지만, 실속은 노비네파가 취한 것이 당대 국유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세월은 흘렀다. 십 년이 지났다. 리먼 사태를 통과하면서 국유본 귀족들에 대한 록펠러 가문 지위를 보다 강화시킬 수 있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인 게다.

   

월가 시위 주장들을 잘 들어보라.

   

하나 같이 제이 록펠러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 없다.

   

제이파가 일으킨 중동 재스민 혁명처럼 SNS를 이용한다. 제이 록펠러는 사이버방위사령부 사령관이다~! 인드라가 워낙 잘 나가니 블로그를 중심으로 한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시켰던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해라. 인드라가 국유본 은행이 2선으로 후퇴하고, 헤지펀드와 국유펀드가 앞장서는 것이 후기 신자유주의라고 했다.

   

노비네파인 월스트리트저널 머독과 역시 노비네파인 JP모건 다이먼을 공격하라~! ㅋ

   

정치적으로만 파악하면 곤란하다. 이를 통해 국유본은 상인 본능을 타고난 이들을 제거하려는 셈이다. 노비네파 정권일 때는 뉴라이트파나 제이파 상인을 제거하고, 뉴라이트파 정권일 때는 노비네파나 제이파 상인을 제거하고, 제이파 정권일 때는 노비네파와 뉴라이트파 상인을 제거한다.

   

국유본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족속은 정치인이 아니다. 북한과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백만장자를 실현할 만큼 상인 본능이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진정한 국유본 적대 세력이다. 경제를 정치로 죽인다?

   

꿈에서 깨라. 국유본 헛소리이다.

   

정치는 정치가, 경제는 경제가, 신은 신이 죽인다.

   

아무튼, 국유본은 월가 시위를 통해 비밀 경영, 가족 경영, 천재 경영하는 노비네파 금융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다. 성동격서라 했다. 시위는 미국에서 일어나는데, 목표는 유럽, 구체적으로 유럽 대륙이다.

   

셋, 정치적으로 오바마가 재선하고, 경제적으로 지분 조금 더 챙기는 것이 이번 사태의 종결자일까.

   

아니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알파오메가 작전과 데이비드 록펠러의 알파오메가 작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소련 체제를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들러리가 필요해서였다. 이행이 급선무였다. 해서, 만일 신세계 질서로의 이행에 소련 체제가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소련 체제였다. 이것이 정과 반만 있다고 비틀즈 실제 작곡자로 알려진 아도르노 비판이었다. 정과 반을 아우르는 통합 지휘부가 없다는 비판이다. 반면, 데이비드 록펠러는 '차연'을 통해서, 아도르노상을 수상한 자크 데리다 사상을 통하여, 알파오메가 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신세계 질서 자체마저도 방해를 시키는 임무를 맡긴 것이 결정적인 차이인 게다. 한편으로 신세계 질서를 이야기하여 '차이'를 발생시킨 뒤, 신세계 질서를 '지연'시키면 빅터 로스차일드처럼 축출당하지 않는다. 설사 신세계 질서 세상이 영원히 오지 않더라도 데이비드 록펠러 권력은 영구적으로 작동한다.

   

"영국의 한 금융 중개인이 "글로벌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지구촌의 주요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런던 금융시장의 트레이더인 알레시오 라스타니(34)는 26일(현지시간) BBC의 한 프로그램에서 유로 부채위기에 대한 지도자들의 대응에 대해 질문을 받고 "금융시장 종사자들은 주식시장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유로화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 금융시장 종사자들은 경제가 어떻게 되던 별다른 관심이 없다. 우리 일은 이러한 상황에서 돈벌이하는 것"이라고 떠벌렸다. 라스타니는 이어 "나는 개인적으로 이 순간이 오기를 3년이나 기다렸다. 고백하건데 또다른 경기침체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BBC 진행자가 이같은 언급에 충격을 받고 멍해 있는 가운데 라스타니는 "정부가 세계를 지배하는게 아니다. 골드만 삭스가 세계를 지배한다. 골드만 삭스는 유로 위기 구제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대규모 펀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라스타니의 이같은 언급에 대해 골드만 삭스는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와 영국 언론에서는 라스타니의 발언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데일리 메일은 웹사이트에서 "문제의 발언은 런던 금융시장이 경제적 재난을 반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으며 인디펜던트는 "런던 금융시장이 경제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라스타니가 속마음의 상자 뚜껑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내가 보기에 그의 발언은 부도덕한 것"이라고 말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01&aid=0005288320

    

세계에서 가장 음모론이 발달한 미국이나 혹은 그간 국유본에 숱하게 당한 경력이 있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이다. 해서, 스페인 장관이 언급할 정도이다. 허나, 한국은 어떠한가. 여전히 후진국인 셈이다. 쪽발 돼중, 쪽발 놈현, 골룸빡을 무뇌아처럼 되새김질한다면, 미래 역시 국유본이 한반도를 가지고 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면, 왜 이런 뉴스가 나왔나.

   

BBC는 노비네이다. 해서, 지구온난화에 비판적인 다큐도 제작한 것이 BBC인 게다. 여기서 유럽파, 미국파 나누는 구도도 있는데, 아니다. 유럽은행이라 해서 모두 노비네파가 아니다. 가령 영국 RBS는 뉴라이트파이다. 국내 인터넷에서 RBS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기사가 있는 것도 노비네파가 작성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모두 노비네파라고 보면 된다. 대처는 뉴라이트였지만, 대처에 국한한다.

   

해서, 상기한 뉴스는, 노비네파가 영국인더러 이번 유럽 재정 위기 책임이 골드만삭스, 혹은 제이파에게 있음을 폭로한 기사인 게다. 게다가 헤지펀드 매니저를 출연시킨 것은 인드라 이야기를 잘 검토한 결과라고 본다.

   

허나, 노비네파 폭로는 절반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제이파 오바마 정권이므로 제이파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맞다. 허나, 유럽 재정위기를 일으킨 것은 제이파가 아니다. 뉴라이트파가 주도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 모건스탠리, 블랙록, 위키리크스 등 뉴라이트파들이 이번 금융 위기의 주역들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왜 노비네파는 골드만삭스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했을까. 합종연휭인 게다. 수세에 몰린 노비네파가 뉴라이트파를 끌어들이려 한 계책인 게다. 하면, 여기에 뉴라이트파가 혹할까^^?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0363748

   

한국에서 오바마 욕 좀 해주어야 오바마가 일을 잘 한다고 미국에서 소문이 날 것이 아니겠나. 한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통 같은 미국 대사관에 낙서할 족속은 CIA 요원 밖에 없다. 이유는? FTA 반대, 미국 반대 열기가 올라야 미국 시민이 오바마가 일을 잘 하고 있구나, 할 것이다. 헌데, 인드라 이야기 때문에 FTA에 대한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해서, 낙서 사건까지 만든 것이다.

   

인드라 생각은 이렇다. 유치하긴 하지만, 일리가 있다. 허나, 생각을 달리해 보면 어떨까? 지금 이런 식으로 작전하는 건 CIA 요원 당사자 입장에서도 참 젖같은 짓이 아니겠느냐. 뭔가 인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꾸겠다고 생각해서 CIA 요원이 되었을 터. 당신도 이제 느낄 수 있지 않느냐. 한반도 평화 통일이 대세라는 걸. 

   

결론이다. 광폭으로 결정하자. 국유본이 만들어서 뽀그리에게 전해준 통 큰 정치 함 해보자는 게다. 한반도 통일과 신세계 질서,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인드라가 제시하겠다. 당신이 CIA 요원이라도 상관없다. 

   

인월리에 집중하라.

국유본이 제시한 이상으로 세계 혁명을 제안할 것이다.

   

추신 : 

   

'익명의'라는 뜻을 가진 해커 행동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오는 10 뉴욕증권거래소(NYSE) 사이트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5(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어나니머스는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NYSE 상당수 월가 시위대를 체포당하게 만들었다면서 보복으로 웹사이트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2분짜리 동영상에서 어나니머스는 NYSE 웹사이트에 대한 공격이 주식 거래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단순 웹사이트 공격인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어나니머스는 지난해 12 마스터카드, 비자카드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포함해 지금껏 수차례에 걸쳐 기업과 정부 사이트를 공격해왔다.

   

한편 국토안보부는 지난달 회람에서 어나니머스가 월가 금융기관 직원들을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출처] 팍스넷 주르르르륵님의 글

    

   

제이 록펠러, 급했구나~!

안정이 중요하다~!

아직 본게임이 멀었는뎅~!

   

이 문제는 이쯤으로 하고.

   

중요한 건 무엇인가.

   

오바마나 피셔 연준 지역 은행장, 조지 소로스 등이 월가 시위에 지지를 보내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월가 시위에 비판적일 것인가, 아니면 우리도 월가 시위를 흉내내서 일어나야 한다든가. 여기에 인드라는 길없는 길을 제시하는 셈이다.

   

방안은 있나? 있다. 인월리를 열심히 읽자. 조급증을 버리자. 내 대에 안 된다면 후손에게 유산을 물려주면 된다. 당신이 열심히 산다면, 아이들에게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당신이 살아간 것 이상으로 살아갈 것이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