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한국 분단의 기원 국유본론 2008
2008/06/19 04:13
http://blog.naver.com/miavenus/70032275323
18대 총선 이슈 연구
10-16. 국제유태자본과 한국 분단의 기원
하나, 이 글쓰기를 읽기 위한 전제 조건
빅터 로스차일드에 관한 글을 더 쓸까 하다가 한국 분단의 기원부터 다루자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전 글쓰기에서 국제유태자본이 왜 한국을 '베틀 로얄'의 전쟁터로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 글을 읽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조건을 답니다.
하나, 국제유태자본이 한국사, 혹은 동양사에 무지할 것이라는 무지를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그들은 사냥을 할 때 무작정 하지 않고 반드시 대상에 대한 연구를 선행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근래 논의되는 재야의 한국사 논의, 백제사라든가 혹은 대륙 백제, 대륙 고려설, 그리고 청과 신라 관계, 한단고기 등등 그 모든 것은 99% 일본에서 왔는데, 더 핵심적인 사안은 국제유태자본의 면밀한 검토 위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단지 중계만 했을 뿐입니다.
둘, 근대사와 제국주의사를 연구할 때 정치인 중심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크게 범하는 오류가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대한 과대평가입니다. 현상적인 세계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이차대전 이후, 정확히 영국이 그리스 권한을 미국에 넘기겠다는 통고문 이후입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은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권한을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근대사와 제국주의사의 핵심은 금융자본인데, 보다 정확한 규정은 국제유태자본이다, 라는 것입니다. 해서, 정치인을 중심으로 보면, 일국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게 되지만, 국제유태자본을 중심으로 보면, 저절로 국제적인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맑스가 싫다면, 이제는 맑스를 잊고 싶다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사라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경제에 대한 이해 없는 정치논의란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고귀한 동기를 찾고자 한다면, 경제사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셋, 내재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레닌이 쓸 데 없이 외부주입론을 말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레닌의 외부주입론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했기에 베트남 호치민 등이 감동을 받았으며, 중국 혁명을 추동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2차 대전 전후처리였습니다. 이미 일차대전 직후부터 아일랜드나 이스라엘 독립 문제로 골치를 썩혀온 국제유태자본이 대안으로 삼을만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민족해방론이었으며, 이를 위한 정치경제학으로 삼은 것이 내재적 발전론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좌파와 신좌파를 가르게 되는 경계선인 것입니다. 따라서 일각의 시각과 다르게 주사파도 신좌파인 것입니다. 소위 1967년 5.25교시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경계로 북한은 이전과 다른 체제로 변화한 것입니다. 후르시초프 사망 때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북한 군사비가 5.25 교시 이후로 급격하게 증가하여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하여간 이런 문제는 차후에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중요한 점은 내재적 방법론의 목적이 신식민지시대의 국제유태자본의 역할을 은폐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송두율? 언젠가 송두율에 대해서도 논하게 되겠지만, 송두율의 내재적 분석이란 이미 있던 제 3세계에 대한 내재적 분석을 북한에 적용한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송두율이 북한 김철수다,라는 간첩 논란에 대해서 법원이 판정하였지만, 나는 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나의 관점에서 송두율이 이중간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판단하기에, 송두율은 국제유태자본이 북한에 파견한 자가 아닌가 분석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 말할 기회가 올 것입니다만, 지금 한정된 자료로는 실증적인 분석이 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자료들은 대부분 막아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한적으로 풀려나오는 자료들은 국제유태자본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풀어놓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자료들은 여전히 대부분 막아놓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둘,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 맑스주의가 짱인 듯
근대 한국 분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유태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먼저 떠올립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국제유태자본이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공황을 일으킨 것처럼 다목적용으로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루즈벨트는 국제유태자본이 만든 가장 전형적인 꼭두각시였습니다. 루즈벨트의 치적으로 케인즈주의 뉴딜정책을 거론하는데 케인즈가 국제유태자본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케인즈주의를 무식하고도 간단하게 규정하겠습니다. 정부가 헛돈을 쓰면 경기가 풀린다는 주장 아니겠습니까. 이런 규정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정부가 헛돈을 쓰면 욕을 먹었습니다. 진실로 혁명적으로 중앙집권적인 법가 제도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던 진시황이 망한 것을 진시황의 만리장성 사업에 두기도 합니다. 대원군도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케인즈주의가 사실 뭡니까. 진시황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일으키면 국가재정이 파탄이 나고 망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습니다. 그런데 케인즈주의가 장악하면서 사태는 정반대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의 미래'의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가 포린 어페어스에서 말합니다. 미국의 경제는 문제가 없다, 오직 정치만 문제가 있을 뿐. 그가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드 자카리아가 국제유태자본 기관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열정적으로 토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핵심은 케인즈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정치적으로 냉전이나 탈냉전이냐, 혹은 미국 외교에서 고립주의냐, 세계경찰주의이냐 논쟁과 같은 것입니다. 그 내면은 국제유태자본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케인즈주의를 써도 국가 경제는 망하게 되어 있으며, 그 잘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백날 적용해도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입증하라굽쇼~! 문국현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유한킴벌리의 외환위기 대처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한킴벌리처럼 하고 싶었던 한국 기업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흑자 도산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문국현 자제들의 비정규직 신화와 유사한 환상일 뿐입니다. (이 글에서 문국현 비판을 본의 아니게 하다 보니 이 글쓰기 이후로 문국현과 창조한국당 지지도가 조금 오를 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제유태자본은 대공황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이유는 가장 가까이는 최초의 영국 노동당 내각에 대한 경고(영국에서는 노동당만 정권을 잡으면 경제적으로 환란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차후에 말씀드립니다. 예외적인 경우는 블레어 정권인데 블레어가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로즈장학생이라는 점과 블레어 정권이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국유화된 영국중앙은행을 사실상 독립시킨 것이었습니다.)와 더불어 미국 경제를 장악한 이후 링컨 이후 자신들을 견제하는 공화당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였으며, 마지막으로 히틀러의 독일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국제유태자본이 왜 이런 일을 할까 여긴다면, 금융자본의 본성 때문입니다. 주식하면 다 알게 되듯이 변동성이 커야 그만큼 이익을 보기 때문입니다. 주식의 기원 중 가장 타당한 가설이 신대륙 정복에 나선 탐험대 비용을 대는 대신 받는 영수증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잘못되면 수익은커녕 본전을 다 잃게 되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비용 대비 수천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공황에 대해 맑스와는 다른 견해가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나는 말합니다. 아니다. 맑스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국제유태자본이 탄복할 정도로, 프란시스 윈의 맑스 평전에서 영국 여왕 측이 회동을 했을 정도로, 국제유태자본의 시스템을 그 주체도 아니면서 자료만 가지고서 파악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자본론이란 아인슈타인의 이론처럼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꼽을 정도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유태인이었으며, 국제유태자본이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로자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도 아들러, 베른슈타인, 라쌀레 등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유대인이라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유로 맑스의 자본론이 국제유태자본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일이란 인간이 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다수의 인간은 숙명적으로 가축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극소수의 인간들만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공황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맑스주의가 폐기되고 맙니다!!! (아, 나는 구십년대 트리에에 있는 유럽 맑스 생가를 찾았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안해, 맑스, 내 머리에서 네가 얼마나 힘들었니?) 그러나 호킹이 뜬다고 아인슈타인을 무시할 수 있으며, 아인슈타인이 잘 나간다고 뉴튼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여전히 필요한 영역에서는 맑스가 짱인 것입니다. 데리다가 주장하는 바도 그것입니다. 맑스가 필요하다!!!
셋, 한국 분단론의 기원
한국 분단론은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안과 명의 위학증(魏學曾) 안(1593년), 영국 외무장관 킴벌리(Lord Kimberley) 안(1894년), 일본 육군 원수 야마가다 아리토모(山縣有朋) 안(1896년), 러시아의 주일공사 로만 로마노비치 로젠(Baron Roman Romanovich Rosen) 안(1903년)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차대전 직전에는 루즈벨트가 다시 분단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분단이 논의될 때마다 분단 경계선은 38선, 39선, 평양 경계, 조선 8도를 남북 4도로 분할 등등 다양하게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람은 킴벌리 경입니다. 그는 영국 자유당 정권하에서 외무장관을 하던 사람입니다. (유한킴벌리의 본사, 킴벌리클라크의 창업주 중 한 사람인 킴벌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참고로 외국 이름 중에 킴이라고 하면, 상당수가 킴벌리의 약칭이기도 합니다. 킴벌리는 서양에서 애용되는 이름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영국 자유당은 1830년에 휘그당을 주축으로 토리당 자유주의 분파를 받아들여 재조직화를 한 당인데, 한마디로 국제유태자본당이다, 라고 보면 됩니다. 라이오넬 로스차일드가 자유당으로 출마했으니까 말입니다. 자유당은 유태인도 의원을 할 수 있는 법안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해서, 한국적으로 비유한다면, 토리당은 박근혜당이고, 휘그당은 이명박당이었던 것입니다. 국제유태자본이 이명박을 지지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명박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이명박당더러 자유당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갑니까. 다만 영국과 다른 점은, 당대의 휘그당과 달리 오늘날 통합민주당이 워낙 부실하다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물도 없고, 정책은 더더욱 부실하고, 오직 의존하는 것이 국제유태자본이니, 국제유태자본도 속이 타는 것입니다. 마치 구한말 때 이토오 히로부미가 영친왕을 기대하고 있는데 영친왕이 술이나 처먹고 기생질이나 하는 것처럼 오늘날 통합민주당이 딱 그 꼴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이 민주노동당을 고려할까 하고, 접촉을 해봤지만, 이 친구들은 영 국제외교관계에 깡통인 아해들이어서 대화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고... 최소한 국제주의자들이 인정할만한 좌파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조건을 갖춘 세력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국제유태자본 한국지부에서 본사에 보고서를 쓴 듯싶고^^!
아무튼 킴벌리경이 처음부터 킴벌리경이 된 것이 아니고, 최초의 킴벌리경이 된 것입니다.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아프리카에서 서기관으로 일할 때 오늘날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대박을 터뜨리게 됩니다. 해서, 그 지역이 킴벌리가 되었고, 그 자신도 킴벌리경이 됩니다. 이 지역에서는 전에 언급한 대로 세실 로즈, 혹은 세실 로더스가 활약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금 시세를 결정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런던과 취리히에서 이루어지는데 로스차일드가 주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금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킴벌리 프로세스입니다. 헬싱키 프로세스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채굴된 금 중 소재가 밝혀지지 않는 약 이만톤의 금이 있습니다. 나머지 금은 6:4 정도로 정부와 민간으로 소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만톤의 금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참고로 미국 부자들은 달러 가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주 애용하는 방식이 광물 취득인데, 유태인이라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은 등에 투자한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연도별 금 시세 확인하는 노력을 좀 해보면 국제경제 돌아가는 것을 잘 알 수도 있습니다.
히로세 다까시가 환경운동을 하다가 환경운동의 분열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 국제유태자본인 모양입니다. 해서, 내놓은 책이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이란 책인데 내놓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하여, 어떤 이들이 나더러 일본 번역물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조용히 속으로 웃을 뿐입니다. 히로세 다까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 소개된 것만 보아도 국제유태자본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금 시세 조종자를 따로 두는 등 혼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대목에서 한마디 합니다. 이스라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다이아몬드 연마 산업입니다.
보수당 총리 유태인 디즈데일리와 자유당 총리 글래드스턴은 역대 영국 총리 중 높이 평가되는 총리입니다. 이들은 빅토리아 여왕을 도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만들었습니다. 해서, 영국인들이 국제유태자본의 핵인 로스차일드에 호의적인 것입니다. 물론 197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빅터 로스차일드에 관한 이야기 후속편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일본을 특화시킵니다. 1870년대가 영국 제국주의의 절정이어서 그 이후에 개항한 조선과 중국과 달리 일본 근대화를 용인할 수 있었다든가, 사츠마번과 영국이 전투를 했는데 일본이 완강하게 버티어서 인정을 했다든가... 모두가 개소리입니다. 그와 같은 논리라면 조선이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모두를 물리쳤는데 왜 국제유태자본이 조선을 무시했습니까. 엿 까는 소리 마세요^^! 또한 그 당시 영국 제국군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패배해서 열 받은 영국군대가 수단인을 학살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왜 수단은 독립국이 되지 못했습니까. 자, 온갖 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지금 당장 벗어던지기 바랍니다. 툭하면 모두 일본에서 온 것으로 여기는, 식민지 근성 남김없이 던져버리기 바랍니다. 나는 강조합니다. 일본이 근대화한 것은 100% 단지 지정학적으로 국제유태자본의 쓰임새 때문인 것입니다. 당대 영국 제국주의는 오늘날 브레진스키의 구상처럼, 미국 제국주의처럼 재배치를 고려할 만큼 이때부터 노쇠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그들은 아시아에서 영국을 대신할 파트너를 찾았던 것입니다. 적임자는 물론 일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분단은? 그렇습니다. 백 프로 국제유태자본의 의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 모델이 된 것은 아일랜드입니다. 강대국 영국으로 인해 수백년간 압제를 당한 불운의 국가, 아일랜드. 흥미롭게도 반문화의 근원 중 한 갈래가 아일랜드 문화이기도 합니다^^! 참 대단한 국제유태자본이죠^^! 내가 좋아하는 인물 중 셋 중 하나가 유대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배낭여행을 간다면, 꼭 아일랜드를 가보길 권합니다.
여러분은 분할통치를 알고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저항이 드센 지역에 대한 합리적인 통치 방식은 분할통치였다는 점입니다. 국제유태자본은 한반도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인들이 얼마나 반역적인지를 말입니다. 해서, 그들이 마련한 것은 분할통치, 즉 분단이었으며, 한반도를 발칸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킴벌리경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청일전쟁 직전에 일본 측에 제의한 것으로 보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킴벌리 경이 존 콜먼이 300인 위원회에서 밝힌 명단에 있다는 것입니다. 존 콜먼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정보요원이며, 공부를 열심히 한 학구파이기도 합니다.
캐스퍼 와인버거의 '넥스트워'나 지미 카터의 한국 핵전쟁론을 여러분은 결코 간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후 약 오십년 뒤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또한 오십년 정도 흐른 뒤에 핵 선제공격론 등 전쟁설이 유난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전후 이란 분단에 관해 러시아 남하를 막는다느니, 어쩌니 하는 제국주의적 설명에만 취할 것입니까.
미국은 얼마든지 한국을 분할점령이 아닌 전체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 때문에 일본과의 교전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차대전까지 세계의 중심은 런던이었으며, 런던의 중심지인 은행가 시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시티를 움직이는 가문이 로스차일드였습니다.
킴벌리 백작
http://en.wikipedia.org/wiki/John_Wodehouse,_1st_Earl_of_Kimberley
이란의 분단
http://blog.naver.com/cjseong123?Redirect=Log&logNo=60052114039
아일랜드의 역사
http://blog.naver.com/wak_wak_wak?Redirect=Log&logNo=120023216234
명치유신
http://blog.daum.net/wyesschoi65/11042247
이토오 히로부미와 야마다가 아리토모
http://kr.blog.yahoo.com/kkja4321/1317770
명치유신의 주역은 유태인이다
http://blog.naver.com/sweetkl?Redirect=Log&logNo=110030856330
버치중위와 뉴먼대령
http://blog.naver.com/gyuraeman?Redirect=Log&logNo=100002713828
한반도 분단론
이차대전 중 연합군의 전후 조선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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