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늘가까이(2) : 전범의 아들이자 학습원 출신 미야자키 하야오를 키운 건 국유본 인드라 VS ?

2013/03/31 05:45

http://blog.naver.com/miavenus/70164458271

   

   

   

인드라 VS 늘가까이(2) : 전범의 아들이자 학습원 출신 미야자키 하야오를 키운 건 국유본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3/31-18

   

   

"국제유태자본, 미야자키 하야오,  천공의 성 라퓨타

       

   

늘가까이:

아......감사합니다. 왕 뜬금없지만....사진 중에 "스머프랑" "마녀배달부 키키"가 있네요... 블로그 중에 로스트룸 리뷰를 해놓으신 것 봤는데.. 그것도 당췌 어렵더군요.....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는 어느 정도 다 본 편이라서... "천공의 성 라퓨타"도 다시 한 번 봤는데요.. 스머프랑. 라퓨타.. 인드라님이 높게 평가하시던데... 스머프는 어느 님이 "공산주의" 관련해서 한번 하신 것 같고, 라퓨타에 대해서도 리뷰한번 시간되시거나 심심할 때 한번 부탁을 드릴께요.... 맥주 한5000천 드시고 쓰셔도 되욧!!!

   

        

   

INDRA:  

글 감사드린다. 나타샤가 세계 유명 작품에 참여한 바 있는 이십여 년 경력의 감독급 애니메이터여서 부부간 대화를 하려면 공부가 필요했다^^! 게다가 인드라가 국내 만화영화 티브이 시리즈물 기획 및 시나리오를 한 바 있어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 인드라의 문화 분석은 국제유태자본론처럼 독특한 면이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이런 점을 전제하고, 늘가까이님의 리뷰 요청을 받고 '로스트룸'에 대한 분석처럼 천공의 성, 라퓨타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1. 데즈카 오사무,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 = Japan + animation,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일본 특유의 구성이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을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보통 아니메(アニメ, anime)라고 한다. 현재 전 세계 애니메이션의 60%가 일본제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C%95%A0%EB%8B%88%EB%A9%94%EC%9D%B4%EC%85%98

   

출발은 늘 어두운 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예외일 수 없다. 미국 디즈니의 하청에서 시작한다. 일본 애니메이터들은 하청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면까지 충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철완 아톰 鐵腕アトム'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였다. 1952년부터 《소년지》에 연재되던 《아톰대사》라는 데스카 오사무의 원작 만화를 1963년 무시 프로덕션에서 총 193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로 제작한 것이다. 일본 최초의 텔레비전(TV) 애니메이션영화이다. 철완 아톰의 성공은 오늘날 심형래의 괴수영화 작업처럼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영역에서의 혁명이었다. 후학들은 데즈카 오사무의 열정에 고무 받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서, 데즈카 오사무 수준이 얼마나 일본에서 독보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으려면, 당대 애니 수준을 잠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원화맨으로 참여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결론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었다 하여 가끔 인용이 되는 '걸리버의 우주여행'이다. 아울러 천공의 성, 라퓨타의 라퓨타가 걸리버여행기의 라퓨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참고할 대목이다. http://blog.naver.com/k2zeby?Redirect=Log&logNo=10027596574

           

   

데즈카 오사무는 디즈니와 같은 작품 수준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재패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로 거론되는 '프레임의 압박'이 그것이다. 디즈니는 초당 24 프레임이라는 풀 프레임을 구사하면서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준 반면 데즈카 오사무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프레임 수를 줄이고, 줄여야만 했다. 또한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터들의 작화 단가도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판을 받게 되는데,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만한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게 된 것은 데즈카 오사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조건에서 작업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개척자가 감수해야 하는 어두운 면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를 다행으로 알아야지, 자신이 데즈카 오사무보다 독보적인 인물로 나서려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을 잘 만든다고 쳐도 품격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러 경로를 통해 오해의 여지를 최소화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할 것이지, 왜 데즈카 오사무를 끌어들인 것일까^^!

                           

   

http://hajime0901.egloos.com/4648019

http://hajime0901.egloos.com/501697

   

   

데즈카 오사무의 뒤를 이어 재패니메이션의 두 번째 혁명을 이끈 이가 있으니 '반딧불의 묘(1988)'의 다카하타 이사오였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생 스승이자 선배이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창설한 동업자이기도 했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토에이사 노조 부위원장이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토에이 노조 서기장을 맡았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열정을 이끌어 낸 것은 마법사 샐리, 또는 요술공주 샐리의 성공이었다.

                                

   

마법사 샐리

http://blog.naver.com/kuruming?Redirect=Log&logNo=80014868867

                                                              

요술공주 샐리의 성공은 토에이사의 성공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토에이 동화의 마법소녀 시리즈 제1탄이자, 일본 전체를 통틀어도 처음으로 방영된 마법소녀물이며, 재패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인 미소녀시리즈의 효시라고 볼 만만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요술공주 샐리'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만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요술공주 샐리의 성공은 이후 전대물의 원조, '사이보그 009'등 연이은 히트로 이어졌던 것이다.

       

                                     

"특징적인 점은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장편', 일반 TV 시리즈물을 '단편'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화를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보는 구조가 많으며, 제작을 맡아 진행하는 감독 역시 '전체 시리즈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각 화(단편)의 감독으로 분류한다. 이 점은 스탭롤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제작사가 '감독'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데 비해,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시리즈 디렉터'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등 다른 회사와의 차별화를 꾀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C%97%90%EC%9D%B4_%EC%95%A0%EB%8B%88%EB%A9%94%EC%9D%B4%EC%85%98

                 

   

오오카와 히로시 사장은 일본의  디즈니사를 지향하였는데, 이때 특징적인 양상은 티브이 시리즈물을 단편으로 취급하여 독립적 구조를 만들었고, 이는 감독의 연출력을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다카하다 이사오라는 걸출한 인물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토에이사에서 다카하타 이사오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감독하였는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문학 전공으로 도쿄 대학 출신의 엘리트답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다카하타 이사오는 토에이를 떠나 이후 대중성에 늘 천착해야 했다.

   

http://blog.naver.com/chinppo?Redirect=Log&logNo=80024771281

   

   

다카하타 이사오는 다른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감독과는 다르게,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전에 애니메이터로 일한 경험이 없다. 해서, 그는 오츠카 야스오를 만나는데, 오츠카 야스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승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애니메이션 수업을 했다고 한다. 오츠카 야스오는 캐릭터 디자인에 뛰어났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애니메이션으로 보기 드물게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여 대박을 터트리는 등 세계명작동화 시리즈가 대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 디자인의 오츠카 야스오, 구성의 타카하타 이사오가 각각 작화감독과 일부 공동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http://www.pandora.tv/channel/ch_main.asp?ref=na&ch_userid=st170&id=33407988&redirect=prg&mode=view

   

   

http://ko.wikipedia.org/wiki/%EC%84%B8%EA%B3%84%EB%AA%85%EC%9E%91%EA%B7%B9%EC%9E%A5

           

   

오늘날 일부에서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를 과소평가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이는 당대의 관점을 무시한 평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현재적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기획과 제작은 늘 불화인 게다. 기획과 제작이 분리될 때의 기획이란 영업 기획을 의미하며, 이는 작품의 예술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터들이 만들면서 늘 자괴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코 묻은 동심을 유혹하여 돈을 번다는 것이다. 해서, 애니메이터들은 언제나 이를 회피하거나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익성을 무시하거나, 과거를 폄하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 이해라고 볼 수 없다. 재패니메이션이 일본만이 아닌 세계에서 평가받을 수 있었던 물적 기초를 마련한 것이 다름 아닌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였다. 세계명작동화는 주로 18세기~19세기 유럽을 무대로 하여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행복을 찾는다는 줄거리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들로 인해 당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디즈니사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해서, 각국의 방송사 등 수입사들은 디즈니사에 비해 싸구려이면서도 수준이 있었기에 현대차처럼 수입을 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세계명작동화를 보고 자라난 한국, 유럽 등의 세계 청소년들이 자라나서 성인이 되어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세계명작동화가 없었다면 '천공의 성, 라퓨타'가 나올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타쿠 성인 취향의 마이너류와 자신을 구별했다는 점을 덧붙인다. 이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재패니메이션계에서 늘 주류였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톱 크래프트'(トップクラフト)를 모체로,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1985년 6월 15일에 도쿠마 서점의 출자로 주식회사로서 설립되었다. 사장은 도쿠마 서점의 사장인 도쿠마 야스요시(間康快)가 취임하였으며, 스튜디오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톱 크래프트의 대표이사였던 상무 하라 도루(原徹)였다. 처음에는 작품마다 스탭을 모집하여 완성 후 해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애니메이터의 급료도 수당제였으나, 이후 인재 육성의 차원에서 애니메이터의 급료를 고정 급료제로 하는 등, 고품질의 안정적인 작품 제작에 거점을 두게 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8A%A4%ED%8A%9C%EB%94%94%EC%98%A4_%EC%A7%80%EB%B8%8C%EB%A6%AC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공동 연출한 작품은 미래소년 코난(1978)이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성공으로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그리고 만든 첫 작품이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인 것이다.

   

             

   

2. 천공의 성 라퓨타를 만들기까지의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누구?

http://haanel01.tistory.com/348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연보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5&eid=JyOa+JlzIJpmWy2OAr8W141NcYfSuD4X&qb=66eI67KV7IKsIOyDkOumrCDtlZjslbzsmKQ=&enc=utf8&pid=fQvvYwoi5TVsstgWiY4sss--400101&sid=SfDBiHKC8EkAAFCbbAs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일본 도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큰 아버지는 미야자키항공 사장으로 군용 비행기 부품을 납품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회사의 중역으로 제작자였다. 재미있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버지가 불량 부품을 고가에 납품하여 돈벌이를 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패전하자 집안은 몰락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결핵을 앓아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결핵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치료로 인해 자주 이사를 다녀야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0%80%EC%BF%A0%EC%8A%88%EC%9D%B8_%EB%8C%80%ED%95%99%EA%B5%90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흥미로운 이력은 가큐슈인 대학 입학이다. 일본에서 가큐슈인(學習院) 대학은 귀족학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만화광 아소 다로도 가큐슈인 대학 출신으로 300인위원회의 '스탠포드 대학'과 영국 런던 대학에서 경제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영친왕과 덕혜옹주도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등 전쟁 전에는 일본 왕족과 귀족들만 입학이 허용되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전후 평민 입학이 가능하여 시오노 나나미도 이곳 출신이지만, 수업료도 매우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서, 시오노 나나미야 로마사 열정 때문에 가큐슈인을 갔다고 치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굳이 학습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대학 때부터 친소련과 맑시즘에 경도된 이유가 당대 대학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킨 미국에 대한 반발이 영향을 주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게다가 비싼 수업료를 고려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집안이 정말 몰락을 했는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치경제학 전공을 택한다. 다른 한편 동아리에서는 만화동아리가 없어서 아동문학연구회에서 활동한다. 이 두 가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치경제학 전공 이력은 그가 연출한 작품들이 대체로 당대 유행하던 시대사상을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아동문학연구회 활동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늘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해적과 할머니, 노파인데, 이 해적과 할머니의 모델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누구인가.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C%8A%A4%ED%8A%B8%EB%A6%AC%EB%93%9C_%EB%A6%B0%EB%93%9C%EA%B7%B8%EB%A0%8C

   

                            

말괄량이 삐삐 - Pipi Longstocking

http://blog.naver.com/russiacamera?Redirect=Log&logNo=40061010183

                                         

   

그렇다.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자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다. 그녀가 만든 삐삐 캐릭터는 입센의 '인형의 집' 주인공보다 혁명적인 캐릭터로서 자유분방하고, 무적의 소녀였던 것이다. 이는 이전까지 소극적인 보조자 역할로 만족해야했던 여성상에 대한 일대 혁신이었다. 무엇보다 1969년에 만든 독일-스웨덴 합작 드라마로 전 세계에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삐삐, 너는 왜 그렇게 큰 구두를 신어? 삐삐가 대답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수 있으니까.

                

   

- 어느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공부도, 숙제도 안 한다더라. 그럼 뭐하는데?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초코렛을 먹는다던데... 선생님은 뭐해? 음... 초코렛을 까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소련 작품 '눈의 여왕'을 보고서 감동을 받았다는데, 인드라 생각으로는 그림보다는 스토리 면에 방점을 찍은 듯싶다. 그런데 예서 흥미로운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토에이사를 나와 A프로에 들어가서 처음 시도한 기획이 말괄량이 삐삐의 만화영화화였다. 이를 위해 스웨덴까지 날아갔으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거절한다^^! 해서, 그녀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그녀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냉정한 척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는 죽기 전에 고백을 할까^^! 팔할이 말괄량이 삐삐였소???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에서 첫 연출을 맡는다.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른 작가들이 만화에서 인기를 끈 작품을 만화영화화하는 것과 달리 아동문학이나 SF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던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http://pds7.egloos.com/pds/200804/23/49/The_Incredible_Tide.pdf

   

http://werdna.egloos.com/4665936

                  

   

예서, 주목할 것은 작품 선택과 각색 능력인 게다. 당대 독일 녹색당이 등장하는 등 환경 문제가 대두되자 이 이슈를 SF작품에서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세계명작동화 등으로 익숙해진 그림체로 말괄량이 삐삐처럼 무적의 발가락을 자랑하는 코난 캐릭터와 다이스 선장 캐릭터를 만들어내었다는 것. 해서, 이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구성 논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원작에서 배경을 가져오는 대신 캐릭터는 말괄량이 삐삐의 재구성을 통한 단순화가 법칙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미국의 것을 모방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식 제작 시스템이 상당 부분 혼재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 감독의 역할은 특정 원작(동화, 만화, 소설 등)을 애니메이션화시키는 기능인의 개념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에 비해 애니메이션 감독의 지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테크니션(TECHNICIAN)으로서의 감독이 아닌 크리에이터(CREATOR)로서의 감독이 요망되던 시점에서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가 TV 시장에서 이러한 선입견을 바꾸어 놓은 첫 번째 인물이었다면, 상업용 극장 애니메이션계에 등장한 최초의 아니메 작가는 단연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1984년 3월 11일 개봉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카도카와의 <환마대전>에는 미치지 못하는 흥행 성적을 거두지만, 평단으로부터는 예상을 초월하는 극찬이 이어진다."

http://blog.naver.com/k2zeby?Redirect=Log&logNo=10040866471

   

   

오늘날 미야자키표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 보는 이들이 많다. 원작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품성에서는 극찬을 받지만, 흥행에는 실패한다. 이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입장은 가혹할 만큼 극장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 비판적이다. 비록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 인해 다음 작품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흥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흥행이 되어야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으며, 스탭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든 것이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이다.

   

                   

   

3. 국제유태자본과 천공의 성 라퓨타

"1984~5년의 탄광노조 파업을 영국 언론은 '스카길의 스트라이크'라고 이름 붙였다. 스카길의 아버지도 鑛夫(광부)였고 영국 공산당원이었다. 스카길도 7년간 청년공산동맹원으로 일하다가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는 스탈린을 옹호했고, 바웬사가 주도한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비판했다. 스카길은 소련으로부터도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파업이 영국과 폴란드에서 일어났다. 자유를 앞세운 폴란드의 파업은 공산세계를 붕괴시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철밥통을 지키려던 영국 탄광노조의 파업은 自滅(자멸)함으로써 대처의 신보수주의적 개혁을 가능하게 했다. 두 상반된 노조운동이 全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사회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에선 협력한 셈이다." http://blog.naver.com/keeponwalk?Redirect=Log&logNo=60054407591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파즈는 탄광촌 탄광견습공이다. 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력을 감안한다면 천공의 성 라퓨타는 대처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라고 인드라는 반문하는 것이다.

                     

   

MI5 고위간부였던 피터 라이츠의'스파이캐처(Spycatcher) - 어느 첩보부 고위간부의 적나라한 자서전'이라는 충격적인 책이 출판되었다. 1985년 영국 정부는 이 책의 출판을 금지하도록 권고할 정도로 엄청났던 셈이다. 이 책의 요지는 MI5의 책임자와 빅터 로스차일드가 소련의 간첩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간 영국 노동운동에서 탄광노조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달랐다. 탄광노조가 파업하면 정권이 바뀐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탄광노조가 격렬하게 대처와 맞설 때 이 사건이 터졌고, 대처 수상은 탄광노조를 이긴 전후 최초의 정치인이 되어 1987년 총선에서도 승리를 하게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인드라는 이전 글들에서 폴란드 자유노조연대 파업은 록펠러의 브레인, 브레진스키가 벌인 공작임을 폭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영국 탄광노조 파업은? 빅터 로스차일드가 데이비드 록펠러를 상대로 해서 최후로 반격을 노렸던 것일까? 빅터 로스차일드는 록펠러에게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패배를 당한다.  1986년에 이르러서야 록펠러의 지원에 힘입어 대승을 거둔 대처 정부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스파이 혐의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승자의 관용을 베푼다.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알려진 '러드로의 학살'이 일어났던 콜로라도 주 탄광의 주인도 록펠러였다. 여기서도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수십 명이 죽었다."천사양반, 그 착해빠진 옷 좀 벗지 그래!

 http://blog.naver.com/cat_power?Redirect=Log&logNo=130009491790

   

록펠러 가문이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존 롤스의 '정의론'을 수용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데이비드 록펠러는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할렘에 관심을 두어 재개발에 나섰고, 록펠러 4세인 제이 록펠러는 바로 '탄광촌' 문제에 집중했던 것이다.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늘 세계 이슈에 관심을 두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소식을 모를 리는 없겠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안을 몰락시킨 인물은 다름 아닌 빅터 로스차일드가 아닌가?

              

   

이러한 세계사적인 재발견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승이자 선배이고 동료인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를 나오게 한 것인가.

                              

   

4.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가 만난 라퓨타

"스위프트는 앞으로는 "무식한 분노"를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겠으니 다행이라고 자기 묘비에 직접 써넣은 사람인데,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핵심은 분노다. 불의가 자행되는 것을 보고서 느끼는 격분이다. 분노는 괜히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주제를 모르고 아무 데나 나서는 값싼 감정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잘잘못을 명백히 가릴 수 있고 피해자가 누가 보아도 억울한 처지에 있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스위프트가 연민을 느낀 대상은 어디까지나 개인이었다. "나는 존이든 피터든 토머스든 개인한테만 애정을 느낀다." 반면에 "민족이든 직종이든 지역 사회든" 집단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그는 "역겨워하고 지겨워했다."조너선 스위프트

http://blog.naver.com/urbanitas222?Redirect=Log&logNo=60019555325

             

   

조너선 스위프트는 화성에 두 개의 달이 있다는 예지를 발휘할 만큼 그의 소설에는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에서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그의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반중력으로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를 창조한다.

                     

   

"거인국을 가까스로 탈출하여 도착한 곳은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이다. 학문과 철학,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그곳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어리석은 사고와 가치관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일생동안 학문을 연구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작업은 일상생활에 아무런 활용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이에서 태양광선을 추출해 내는 계획, 얼음에 열을 가하여 화약으로 만드는 일, 대리석을 부드럽게 하여 베개와 바늘꽂이로 만드는 일 등등. 여기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과학자에 대한 풍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http://blog.naver.com/seh318?Redirect=Log&logNo=110045413972

             

   

지나가듯 한마디! 걸리버 여행기에는 동해가 등장한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8290007

   

조너선 스위프트에게 라퓨타는 결코 이상향이 아니었다. 스위프트는 밀 수확량을 두배로 늘리는 과학적 연구에는 환영했지만,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과학 연구에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조너선 스위프트의 세계관은 오늘날 국제유태자본의 산하기구인 로마클럽의 탈제로 성장, 탈산업화프로그램과 묘하게 일치가 된다.

   

                             

   

"라퓨타의 이미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원래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라퓨타 제국의 요새로서 <미래소년 코난>의 삼각탑의 자리를 대신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이하바와 인더스트리아로 구성된 쌍극자(dipole)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라퓨타의 물리적 구조의 경우, 상층부에는 거대한 나무줄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의 낙원이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 양식의 기둥들과 풀밭이 깔린 정원, 오염되지 않은 동식물들, 비석에 꽃을 바치고 새의 알까지 보호하는 로보트 병사가 평화로운 대기를 발산한다. 반면, 하층부에는 라퓨타의 에너지 원천인 중추 비행석과 대학살용 빔무기 장치, 전투형 로보트 병사들의 제조공장과 격납고가 자리하고 있다. "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5&eid=7fq/b8Kfptfg8qffds5uneaW2MtZhEDb&qb=7L2U64KcIOudvO2TqO2DgA==&enc=utf8&pid=fPz79loi5UKsssXxoqwsss--417164&sid=SeyxxPON7EkAAEX8Bt0

          

   

미래소년 코난에서는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가 극과 극이다. 그런데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라퓨타가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의 결합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라퓨타의 상층은 하이하버처럼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반면 라퓨타의 하층은 인더스트리아처럼 어둠과 공포와 탐욕, 그리고 살상무기가 가득한 곳이다.

                           

   

스파이 캐처에서 폭로된 세계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간 품어왔던 하이하버 모스크바와 증오해왔던 인더스트리아 런던이 실은 하나의 세계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껏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상의 현실보다 천공의 이상을 꿈꾸어왔으며, 그것을 형상화시킨 것이 라퓨타였다. 그런데 그 라퓨타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선악을 동시에 지닌 묘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라퓨타의 큰 나무다. 이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일까, 괴테가 말한 푸르른 생명의 나무일까, 카발라의 생명의 나무일까. 참고로 인드라가 만든 무지개 요정 통통에서도 생명의 나무가 등장한다^^!

   

   

5. 웨일즈 탄광촌

"19세기 초반 탄광마을에서 일하는 고아 파즈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소녀 시타와 만나 [비행석]을 둘러싼 군과 해적들의 투쟁전에 말려들어 [天空의 城 라퓨타]탐색 대모험을 떠난다. 전반부의 빈틈없는 활극전개에서 후반의 기계문명, 독재체제의 비판과 같은 무거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의 宮崎작품의 집대성적인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宮崎는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浮島 라퓨타 제국]을 원점으로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소년 파즈와 소녀 시타의 이미지를 부풀려서 현대로 통하는 모험 판타지를 구상. 마법과 주문을 사용한 [만화영화의 부활]을 외치며 아이들이 순수한 동경을 가질 수 있는 공상세계를 지향하는 한편, 병기의 경이와 자연과의 공생이라고 하는 현대적 테마도 채택하고 있다. 또 탄광마을 [슬랙계곡]의 입체적인 구조나 사람들의 생활묘사에는 [우리 마을은 푸르러졌다]의 무대인 영국 웨일즈 지방의 취재가 살아 있다. 작화수준, 미술수준 모두 一級. 제작에 즈음하여 책임있는 제작 체제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회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창설되었다. 高畑勳는 [나우시카]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프로듀서로서 宮崎를 지지해 주고 있다. "

http://cafe.naver.com/hirak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7

         

   

미야자키 하야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 배경을 실사로 구현하기 위해 2주 동안 웨일즈 지방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내건 명분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나타났던 네덜란드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한다. 완벽한 배경 그림을 원했다는 것이다.

       

   

" 1942년에 열린 14회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은 존 포드 감독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가 차지했다. 그 해 작품상 후보에는 모두 10편이 올랐었는데 후보작 중에는 오슨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과 죤 휴스톤 감독의 [말타의 매] 등이 있다. (작품상 후보작이 5편으로 축소된 것은 1945년 시상식 때부터이다.) [시민 케인]이 영화사 100년의 최고걸작이라는 평가는 그 어떤 영화개론서에도 꼭 나온다. 오손 웰즈의 놀라운 데뷔작 [시민 케인]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 이 영화는 1942년 1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아버지 역의 도널드 크리스프), 촬영상, 미술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명 제작자 대릴 자눅(Darryl F. Zanuck)은 이 영화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항할 대작으로 준비했단다. 웨일즈에서 직접 로케이션 촬영까지 할 계획이었지만 전쟁(2차 세계대전)으로 좌절된다. 대신 산타모니카 근처에 대규모 세트장을 만들어 완벽한 웨일즈 탄광촌을 재현해 냈다고 한다. 산타모니카 풍광이 너무 좋아 탄광촌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워 흑백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 http://www.kinocine.com/1456

   

   

영화 How Green Was My Valley는 로스차일드가 세계를 지배하기 직전인 18세기말 영국 웨일즈 탄광촌이 무대이다.  존 포드는 분노의 포도를 만드는 등 명감독이며, 이 작품 또한 명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보다  How Green Was My Valley가 작품상을 받았던 것은 이차세계대전이라는 당대 정세에 기인한다. 이 시기는 국제유태자본이 한편으로 트로츠키를 암살하여 미국 국내 정치를 안정시킨 뒤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서 미소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독일 등과 싸우던 시기였기에 차별화를 기해야 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두 마리 토끼 전략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대가 함께 보는 구성력. 젊은 층은 말괄량이 삐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서 구하고, 장년층은 해적에게서 전공투의 희미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며, 노년층은 18세기말 웨일즈 풍경을 떠올리며 1940년대 영화를 회고한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는다. 다른 한 편 How Green Was My Valley도 하지 못한 현지 로케이션을 감행하여 원본에 대한 콤플렉스를 떨쳐낸다.

   

   

6. 미래소년 코난, 로디 맥도웰, 파즈

http://blog.naver.com/pima21?Redirect=Log&logNo=20060132198

               

   

로디 맥도웰에서 라퓨타의 파즈를 겹쳐보기도 한다. 로디 맥도웰과 미래소년 코난의 합체가 파즈가 아닐까? 말괄량이 삐삐의 남성적 존재였던 미래소년 코난에서 자유분방함이 다소 사라지고, 우울함이 가미된 것이 파즈로 보인다.   역할 비중이 작아지고, 이 비중만큼 비중이 늘어나 라나에서 시타로 변신한 듯싶다. 또한 일부는 해적 도라에게로 가서 해적 도라에게서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어 보이는 말괄량이 삐삐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아예 마거릿 대처와 겹쳐 읽는다면 어떠할까^^! 너무 파격적인가. 스토리를 구성해보자. 파즈(마거릿 대처)는 어느 날 시타(영국 여왕)의 부름을 받는다. 해적 도라 일당(록펠러)과 무스카 일당 (빅터 로스차일드 경, 앤서니 블런트 경) 은 시타(영국 여왕)를 차지해야만 세계를 재패할 수 있기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다. 이때 무스카 일당(로스차일드)에게 잡혀 있던 시타(영국 여왕)가 해적 도라 일당(록펠러)의 공격으로 지상으로 낙하하여 파즈(마거릿 대처)에게 안기고 만다^^!

          

   

파즈와 시타는 우여곡절 끝에 라퓨타(영국 제국과 소련 제국의 부활)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스카 일당의 공세. 이때 해적 도라 일당과 반무스카 전선을 형성하고 무스카 일당과 싸운다. 이때 시타는 무스카 일당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라퓨타 파괴(영국, 소련 제국의 침몰)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깨닫고 파멸을 명한다. 두 얼굴의 라퓨타(영국 제국과 소련 제국)는 저 하늘로 영영 사라진다. 파즈와 해적 도라 일당은 우정 어린 관계가 되고, 파즈는 시타라는 권력을 얻고, 해적 도라 일당은 부를 움켜쥔다.

   

                        

그래서일까. 걸리버 우주여행(1965)에서는 여왕이 악한으로 묘사되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오히려 소공녀와 같은 위상의 시타로 등장하는 것이다.

   

               

   

   

   

7. 태양의 제국과 붉은 돼지, 그리고 지브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1987)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36

   

태양의 제국 원작자 발라드

http://blog.naver.com/soyanglover?Redirect=Log&logNo=50046162869

   

1984년 SF 작가 발라드의 반자전적 소설인'태양의 제국'이 출판되었고, 이는 발라드의 최대 히트작이 되어 1987년에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이 영화 줄거리는 정세에 상관없이 비행기를 사랑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일본인의 포로 학대라든가, 전쟁 고발 따위는 실종된 듯싶다. 대신 일본 포로수용소에 갇힌 영국 소년의 일본 비행기 사랑 이야기에 민감한 주제가 된 게다. 해서, 이런 스토리 라인은 당연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게다. 마침 이는 비행기에 남다른 애착이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는 상상력을 듬뿍 안겨준 게다. 해서,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맛을 보여준 뒤 붉은 돼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비행 씬인 게다. 게다가 스튜디오 이름도 지브리(GHIBLI)가 되었다. 지브리란 기브리의 일본식 발음으로 리비아 사막 바람을 지칭하지만, 이보다는 이탈리아 비행기 이름인 게다. 우연의 일치일까. 독일, 일본도 아닌 이태리 비행기를 선택한 것이?

                                

   

8. 게드 전기, 완성판, 로봇

   

"필자: <게드 전기>는 어슐러 르귄의 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세계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가령 '진실의 이름'에 관한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시키고, '세계의 균형'에 관한 문제는 <원령공주>와 닿아 있다.

고로: 당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슐러 르귄이 쓴 판타지 소설 <어스시(Earthsea)>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었다. 그 이후의 모든 작품이 <어스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 역시 그 중 하나다. 예전에 토토로와 인간은 하나였다.

필자: 그렇다면 토토로가 <어스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용인 셈인가?

고로: 맞는 말이다(웃음). 나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 아버지인 동시에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아버지이다. 르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철학을 제공한 부모 격인 셈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르귄은 나의 할머니가 되는 셈이다. " http://blog.daum.net/bungai007/8671218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 전기'를 만들어 흥행에 참패했다. 그는 왜 알면서도 이와 같은 길을 간 것일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아버지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괄량이 삐삐에서 찾아야 하고, 요술공주 샐리, 세계명작극장, 미래소년 코난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대중적 성공을 바탕으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슐러 르귄의 영향은 나우시카에서 시작하여 이웃집 토토로 이후 모든 작품에 적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 대한 평가에서 주례사 상찬을 빼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날 영화 제작계 전반에서 단편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상업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하는 도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과정일까? 인드라가 볼 때에는 작품성이 있는 단편을 만들던 이가 상업영화에 성공한다면 이는 애초에 상업영화에 재능이 있는 감독이 명분을 위해 단편 하나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잠시 외도를 한 것일 뿐이다. 마치 1980년대에는 운동권이 유행이다 보니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이도 잠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유행일 따름이다. 노동운동 잘 한다고 사법고시 패스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사법고시 합격할 정도이면 노동운동을 해도 좀 더 머리를 써가면서 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겠다. 해서,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인생에 있어서 터닝포인트로 기록될 작품인 게다. 이후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로스차일드가 지배하기 시작한 19세기 이전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듯싶다. 근대 이전의 일본 말이다. 해서, 천공의 성 라퓨타 배경도 로스차일드가 지배하기 전인 18세기 말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여 국제유태자본이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를 통해 일본 근대화를 시켜준 역사적 사실이 사라지겠는가. 국제유태자본 덕분에 메이지 유신 등 근대화에 성공하고, 러일전쟁도 승리를 할 수 있었고, 조선, 만주 침략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1960~1970년대에 만화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국제유태자본의 덕분인데 말이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식 농사를 잘 못 해서 후회하고 있을 듯싶다. 여전히 로스차일드적인 박정희식 저항 끝의 죽음을 택하고 말겠다는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부터 친일파 김대중식 록펠러의 개가 되는 굴욕으로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그래서인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귀를 기울이면을 만들었던 콘도 유시후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지 모른다. 콘도 유시후미의 죽음으로 인해 미야자키 하야오마저도 세상을 뜬다면 지브리 스튜디오는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데즈카 오사무는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는데, 왜 미야자키 하야오는 친일파 김대중처럼 제자 한 명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독식하고 있는 것일까. 왜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면 자식을 잡아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괴물이 떠오르는 것일까.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는 죽어가고 있다. 대작가에 대한 주례사적 상찬에는 팬들을 속일지언정 미야자키 하야오 스스로는 가식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차대전으로 인한 집안의 몰락에 대한 복수는 빅터 로스차일드에 대한 복수로 끝났다. 군수품 팔아서 돈벌이한 아버지나 전쟁으로 돈을 번 록펠러나 한 편인 셈이다. 게다가 보상도 해주었다. 이제 이 세계에 적은 없다. 세계의 가장 큰 권력자와 한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녹색 아나키로 위장한 이념을 살짝 벗기면 인종주의, 지역주의 외에 남은 것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지금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송장인 게다.

   

'1984년의 파즈와 시타.뒤가 「틱 대령」.이렇게 해 보면 각하와 무스카 대령은 처음은 나뉘지 않았지요.야심가로, 두 명을 집요하게 쫓는다고 하는 설정은 무스카 대령에 계승해지고 있습니다만, 왕가등이 세세한 부분은 아직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선 자신이 읽은 범위에서는 방금전 소문에 나와 있던 자손이 있다 라는 이야기, 실리고 있었습니다. 캐릭터 메모에 「레프카의 선조」(이)라고 쓰네요.정말 부인 있던 것 같습니다."

<일어> 천공의 성 라퓨타, 초기 구상과 완성판의 차이

 http://d.hatena.ne.jp/makaronisan/20070616/1181930305

[번역] http://seoga.com/j/d.hatena.ne.jp/makar

onisan/20070616/1181930305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해진 대본보다 콘티로 작품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이는 캐릭터와 대체적인 설정만 정해두고 간다는 것이며, 스토리는 오히려 작품 진행과정과 함께 이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 드라마와 같은 효과를 낳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로 한 것보다 장면 연출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사전제작제에 비해 완성도가 뒤떨어질 수 있으나 당대 시사적인 내용과 유행과 격차가 크지 않을 만큼 반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드라는 파즈의 트럼펫에서 라스트라다의 젤소미나를 떠올렸다. 한층 순수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로봇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로봇물에 유일하게 참가했던 철인28호와 비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점 중 하나로 부각되는 각종 추격신과 전투신은 루팡 3세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9.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후의 명작

미야자키 하야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끝으로 이후 작품에서 악으로 명확히 지목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애매할 따름이다. 그나마 선악이 희미하게 남아 있던 작품이 천공의 성 라퓨타가 마지막이었다. 해서, 인드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작품을 천공의 성 라퓨타로 보는 것이다. 인드라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그가 살아오면서 느낀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일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서 이웃집 토토로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드라 평가로는 이웃집 토토로가 훨씬 더 대중적인 작품임을 인정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사회 문제 개입이 없다는 점에서 마이너스인 게다. 또 다른 논자는 붉은 돼지를 대표작으로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이웃집 토토로로 인한 강박에서 탈출하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도라는 점에서 역시 천공의 성 라퓨타를 넘어섰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붉은 돼지와 이웃집 토토로로 인해 천공의 성 라퓨타가 후대 작품들의 결정체라는 인상만 받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최고의 명작을 만들게 되면 그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 아무리 노력해도 시시하게 되고 만다는 법칙이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듯싶다.

             

   

천공의 성 라퓨타를 떠나보내는 이유는 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발 디딛고 있는 현실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이상을 획득할 수 없다. 그 현실을 죽이는 이상이라면 과감하게 이별할 수밖에 없다. 인드라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과거인 전공투적 정신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향작이며, 이를 칭송하는 것은 인드라가 전향했다는 의미인가? ㅎㅎㅎ 전혀 아니다. 인드라는 비틀즈, 체 게바라, 브레진스키처럼 당대의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예서, 누군가 인드라의 예술론은 루카치의 발자크론에서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더라도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http://video.naver.com/2007112220043366216

   

   

저 지평선이 빛나 보이는 건

어디엔가 너를 숨기고 있는 까닭이야

많은 등불이 반가운 것은

저 등불 중 한곳에 네가 있는 까닭이야

   

자 떠나자. 한 조각의 빵,

칼과 램프 가방에 채워 넣고 

   

아버지가 남기신 애틋한 마음

어머니가 주셨던 그 눈빛

지구는 돌고 있어. 너를 숨기고

빛나는 눈동자. 반짝이는 등불

지구는 돌고 있어. 너를 태우고

언젠가 반드시 만날 우리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남기신 애틋한 마음

어머니가 주셨던 그 눈빛

지구는 돌고 있어. 너를 숨기고

빛나는 눈동자. 반짝이는 등불

지구는 돌고 있어. 너를 태우고

언젠가 반드시 만날 우리들을 태우고"

국제유태자본, 미야자키 하야오, 천공의 성 라퓨타 국유본론 2009

2009/04/24 22:56

http://blog.naver.com/miavenus/70046077660

   

   

   

해외 후원

   

영문은행명 : kookmin Bank

   

계좌번호 : 524968 - 11 - 001819

   

Jong Hw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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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후원

국민은행 524902 - 96 - 101910 김종화 

   

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단군이래 최악의 매국노,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

파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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