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홍명보 : 인월리 5년 독자의 무엇을 할 것인가 국유본론 2013

2013/06/25 08:00

http://blog.naver.com/miavenus/70170321194

   

   

   

인드라 VS 홍명보 : 인월리 5년 독자의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6/25

   

홍명보 :

인드라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부터 다시 인월리를 정독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10 여년 가까이 축구를 한 뒤 지방 4년제 대학에서 그만뒀습니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군대를 갔다온 뒤 꿈도 없이 아무런 특기도 없이 그냥 다니니까 다니고 있습니다. 편입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쪼금이라도 높은 학교에서 다녀야 경쟁력이 붙지 않을까 해서요. 그러나 이러한 목표다 왜? 잘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동기 부여가 힘들고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무얼 할까? 이러한 질문이 머릿 속을 괴롭힙니다. 인드라님 바쁘신데 이러한 물음 드려서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인월리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앞당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올해 23살이 되었습니다. 인월리를 접한지 대략 5년 가까이 된걸로 기억하는데 전역 뒤 대학 2년이 되면서 지식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커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인월리를 정독할까하는데 국유본론 중간결산 카테고리를 쭉 보는게 나을까요. 글이 분량이 너무 방대해서 ㅠㅠ 다 읽을 순 없고,,, 국유본 분파 정리나 딱 나눠지거나 요약된 글들을 봐서 전체적인 이해력을 더 기르고 싶습니다. 항상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주시는 일에 감사합니다. p.s 아 그리고 여쭤볼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프랑스 사주? 설이 있던데 안중근의사가 독립운동가로서 잘못 포장되있는건가요?ㅜㅜ 항상 수고하세요.

   

인드라님 안녕하세요. 인월리를 고3시절 처음 접한 뒤 어언 4년이 흘렀습니다. 읽고 난 뒤 그냥 아~ 그렇구나 라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년도별로 사건과 스토리를 구성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려합니다. 이 일은 순전히 국제유태자본에 대한 저의 이해를 높이고 제편집이 불가능한 형태로 제 주변과 인터넷을 통해 전파하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해보려 합니다. 중간중간 자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INDRA:

고맙습니다. 인드라가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말씀드립니다. 십대, 이십대에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는 일이란 흔치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목표 의식없이 상황에 휩쓸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듯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안 다니건 말입니다.

   

국유본 황제, 제이 록펠러를 봅니다. 그는 하루종일 방바닥에서 좌삼삼 우삼삼 뒹굴뒹굴거리면서 놀까요? 아니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할까요? 후자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도 한달 내내 서류더미에 파묻혔다고 합니다. 역대 국유본 황제들을 보면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일 중독 환자가 아니면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업무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제이 록펠러는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입니다. 아무에게나 자유 의지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자유 의지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인류의 약 5% 정도가 될까요?

   

자유 의지를 생존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섬에 가두거나 해서 단 한 명만이 살아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능력을 발휘해서 생존하는 겁니다. 한국 축구에서는 차범근, 홍명보, 박지성 등이 있겠지요. 이들이 전체 축구선수들 중에 몇 프로일까요.

   

어느 직종이나 그러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극악한 생활형편입니다. 인류가 수천년 살아왔는데, 이 문제가 왜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일까요?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본디 그러하다.

   

허나, 답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선각자들도 답은 이미 알았습니다. 다만, 연이어 나온 질문에 각자 길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천입니다. 그 실천이란 놈 역시도 '본디 그러함'입니다만, 시작을 알 수 있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마다 '본디 그러함'을 성찰할 뿐입니다. 인드라 신이 수많은 아바타로 변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인드라 삶에 화두처럼 잡혀 수십년간 고민한 것이 이제는 국유본론으로 흘러 고민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이 록펠러도 젊었을 적에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합니다. 국유본 황제가 '아무나' 됩니까. 록펠러 가문 사람이라도 그중에는 운명의 무게에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정신파탄자도 나옵니다. 

   

아무 정신.

   

인드라가 청년 시절에는 '아무 정신'이었습니다. 아무나 대통령해도 되는 세상, 아무나 재벌해도 되는 세상, 아무나 영화 만들고 배우하는 세상, 아무나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다만, 찰나적으로 나타날 따름입니다. 신의 기적이 그렇겠지요. 인드라가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된 것도 신의 기적이겠습니다.

   

다른 예가 있나요?

   

트루먼쇼 같은 것입니다. 제이 록펠러 국유본 황제가 신이 아니지만 신처럼 연출해서 잠시 세상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국유본 언론은 이를 국민의 승리라느니, 혁명이라느니, 기적이라느니 포장합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됩니다. 쇼였다는 걸, 사기였다는 걸.

   

인간은 이미 중독이 되어 쇼라는 걸 알면서, 사기였다는 걸 알면서 새로운 쇼와 사기를 찾고 있습니다. 매트릭스에 등장한 빨간약 먹을 걸 후회하는 놈처럼 말이지요.

   

인드라가 신에 중독되나 여러분이 국유본 황제에게 중독되나 중독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니 눈앞에 보이는 국유본 황제에 중독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수 있겠습니다. 인드라도 유신론자가 아니었다면 국유본 황제에게 중독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입니다. 다만, 인드라만의 고유한 체험이 있다 보니 신에 중독되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광신적인 건 아니죠. 누구에게 권하지 않잖아요? 무슨 교회를 가거나 절에 가거나 인드라가 종파를 창시할 생각도 없잖아요?

   

인드라는 신을 술로 생각한답니다. 술 중에 고급술이죠. 여려분이 마시는 술은, 국유본 술은 싸구려 술이구요. 그러니 인드라는 소마를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죠. 해서, 소마를 나눠 마시는 게 좋지 않냐 생각도 하지만, 인드라에게 좋은 소마가 여러분 입맛에 꼭 맞는 건 아니잖아요? 평소에는 혼자 먹는 게 좋고, 가끔 가다 소마를 마셔보겠다는 사람들과 마시는 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자유 의지란 5% 이내 사람들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5%. 한국에서는 강남좌파처럼 살기가 될 겁니다. 자기 자신이나 자식 빽으로 군대 보내지 않고, 평생 놀면서 남들에게 공갈협박하고 쪽발이에게 협찬만 받는, 서울시장 하는...

   

이전에 자유의지는 박정희에게서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아무나 한번은 박정희가 됩니다. 하고, 어느 날, 자유의지는 쪽발놈현에서 꼭지를 이루었습니다. 그 이전에 쪽발일성, 쪽발돼중이 잠시 있었지만 말입니다. 해서, 이제는 아무나 한번은 쪽발놈현이 됩니다.

   

거기서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인드라 자유의지는 다시 박정희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전의 박정희는 물론 아닙니다. 정반합이라고 헤겔적 변증법입니다. 그것이 박근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요즘 흐름으로 보면, 이제 한국인의 자유의지는 박근혜로 통일될 듯싶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박근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된 박근혜에 대한 애증이 뒤섞이는 셈입니다. 이것밖에 안 되나 울고, 넘어섰구나 해서 기쁘고, 그러면서도 그너머를 보고픈 꿈은 계속되는.

   

5%의 싸움은 사실 95% 삶과 무관하면서도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누가 이기건, 누가 대통령이 되건 서민들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다만, 중세 귀족들이 전쟁이라도 하면 죽어나는 건 영지민이듯 삼차대전이었던 한국 전쟁, 625 전쟁은 5% 자유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세계사적인 사건이지만, 나머지 95% 인민에게는 가난과 고통과 죽음만 안겨준 전쟁이었을 뿐입니다.

   

   

95% 정도는 상황에 순응합니다.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체념이랄까요. 포기랄까요. 체념이나 포기라면 젊은이로서는 스스로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인류의 지혜가 있습니다. 숙명론의 장점인데,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부탄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이유가 있습니다.

   

의지를 지닌다는 것, 목표를 삼는다는 것. 열정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됩니다. 

   

노숙자를 봅시다. 일하지 않아도 봉사단체에서 밥을 줍니다. 자거나 술을 먹습니다. 성공하겠다, 누구를 지켜주겠다는 등 아무런 의무감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오늘도 술만 먹습니다. 구걸 행위를 한 이들에 따르면, 가장 밑바닥에 도달하면 의외로 다시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네요. 생각할 필요없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술 먹고 싸우고 자다가 어느날 길에서 시체가 됩니다. 까뮈의 북아프리카 삶, 지중해 햇살을 떠올리게 하지요.

   

노숙자는 극단적인 예입니다. 대다수가 숙명론자라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것을 체념, 포기하지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이 중요하지. 사람들에게는 늘 일,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자이든, 가난뱅이이든, 심지어 노숙자에게도 말입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이지만, 자신에게는 사소한 일이 아니지요. 그 일에 적당히 묻혀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이 이십대에는 취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헌데, 신기하게도 나이 30대가 되면 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알고 보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닌데요. 이십대에는 꿈이 있으니까 이것 저것 가리는 게 많습니다. 막상 궂은 일 한다고 해도 얼마 가지 못합니다. 허나, 30대에 접어들면 그것이 취사선택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닥치는 대로 하게 됩니다. 게다가 30대만 되어도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 이넘저넘 사업하니 동업하다 쫄딱 망하는 일도 겪게 되는 거죠. 해서, 이십대 때에 이런 일로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래도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멋대로 살 때인 겁니다. 어차피 마음대로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나 삼십대에 접어들면 다 비슷하거든요. 후회는 삼십대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뭔가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 있으면 됩니다. 인드라도 보세요. 이십대에 뭐 있습니까. 맨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랬잖아요? 취업 학원도 대학 졸업하고 일년간 다니고, 취업 원서 백군데 내어서 다 떨어지고? 그래도 이십대 때는 이런 게 다 남는 것이더군요. 막말로 홍명보는 쪽방에서 일년 내내 오직 인월리만 읽으며 정리하고 덧글 달았다고 해도 남는 거죠. 실제로 그런 인월리 분들이 몇 되구요. 그래서 청춘 아닙니까.

   

나이를 먹으면 숙명론자 경향이 되는데, 호르몬 작용 등 육체적 변화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바뀝니다. 길을 가다 보니 포기할 것, 체념할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십대, 이십대 때는 모든 것이 다 가능성이 있게 보이니 0.1% 확률만 있어도 혹시나 싶어 사용 안 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창고에 처박아둔 물품처럼, 일년 내내 냉장고 깊숙한 곳에 잘 보존되어 유통기간 한참 지난 식품처럼 방치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대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가지치기를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미련이 남습니다. 애틋함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 미련과 애틋함을 추억으로 남겨두고 제 갈 길로 보내줍니다. 그것들이 고물상으로 가든, 어디로 가든 비로소 그 쓰임새를 발휘할 것입니다. 재활용되든, 쓰레기가 되서 땅에 묻히든. 이제껏 서로 궁합이 맞지 않아 서로를 고생시킨 셈이니 잘 된 것 아니겠어요.

   

인드라도 나이를 먹습니다. 대청소를 합니다. 다른 이들처럼 나이를 먹어가는군요. 나타샤는 가끔 말합니다. 인드라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구요. 철부지라고도 하지요.

   

대부분은 숙명론자로 가지만 가끔 인드라처럼 다른 길로 가는 사람도 있는 거죠. 인드라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마음 가는대로 가니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간다 해서 다른 이들과 별나지 않습니다. 인드라는 인드라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이 록펠러는 제이 록펠러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그 지랄을 하는 것이고,

인드라는 인드라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이 길을 걷는 것이고,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저 길로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본디 그러함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정리를 참 잘 합니다. 보기 좋습니다. 허나, 잘 생각해보세요. 인월리가 잘 정리 요약된 글이 아님에도 왜 님이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건 인드라 글 중 몇 개 글을 읽어보고 꽃혔기 때문입니다. 해서, 국유본론에 관심이 생겨서 전체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인 겁니다.

   

해서, 다른 분들이 님 정리된 글에 흥미가 있을까요? 아마 밋밋한 걸요? 가령 신에 관심이 있어야 신학 책이라도 보는 것 아니겠어요? 특정 게임에 빠져야 캐릭터 키우기, 레벨업 방법에 대한 요점 정리가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겠어요? 축구를 미친 듯이 좋아해야 축구 국가대표선수 이름들 좔좔 외울 뿐만 아니라 유럽리그 구단 벤치 멤버까지도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지 않겠어요? 허나, 님이 인월리를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그 열정이 없다면 아무리 지인에게 말해줘도 그 지인에게 요약본이란 별 게 없을 것입니다. 연대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다릅니다. 필요한 작업이지요. 반복이 될 겁니다. 전체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할 때가 있다가 다시 지금 쓰고 있는 인월리 같은 글 하나에 흠뻑 취해서 백번, 천번 같은 글을 읽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깨달아가는 삶인 게죠.

   

   

던힐: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가 가장 좋은 듯싶습니다. 글을 읽는 입장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글이 전체적으로 매우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들고 조급함이 없어 보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좀 의문점이 있습니다. 만주지역 마약근거지로 간다고 해서 한반도가 굳이 금융 중심지로 변하다는 게 선뜻 이해가 안가서요. 요즘 같은 초고속인터넷 시대에 특히 금융 같은 것이라면 굳이 한반도 보다는 일본도 고려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국제유태자본이 한국에 통일을 제시하면서 부탁을 하지 않아도 이미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그들이 한국 눈치를 볼 이유가 있냐는 소리죠. http://blog.daum.net/chris1n0/2250945 인드라님...이글을 읽고 너무 충격에 빠져서 일도 손에 안 잡힙니다.... 인드라님... 그 글을 보고 너무 충격과 허탈감에 빠져 끊었던 담배도 피웠습니다..... 저야 이제 더 살아봐야 30~40년 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대체 어찌되는 건가요...

   

INDRA:

글 감사드린다. 관련 글은 예전에 읽은 바 있다. 웹진 시대소리가 내세우는 테마 중 하나다.

   

안중근이 영일동맹을 훼방하기 위한 프랑스의 소모품이라고?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yvePkRnNX7hVz0CVzcVZbzceoqV/Uips&qb=vsjB37HZIMfBtvu9ug==&pid=fSuWndoi5TlsscdJNJlsss--370840&sid=SVBqPWZVUEkAAATmKMo

   

이토 히로부미는 왜 러일전쟁 개전을 반대했던가

http://cafe.naver.com/sunonthetre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8

   

안중근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수밖에 없었는가

http://blog.naver.com/tonma?Redirect=Log&logNo=20015626991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다. 하나, 프랑스 측에서 이토를 죽여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영일동맹이 약화되어 프랑스의 아시아 지위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영일동맹이 약화된 흔적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없다. 이후에도 영일동맹은 잘 작동되었다. 러시아와 일본 관계가 특별히 악화된 것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안중근이 프랑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 하나에만 의지하는 가설이다.

   

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오히려 한일합병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조선을 영국의 홍콩 지배처럼 자치권이 상당히 부여된 느슨한 식민지 국가로 남게 할 수 있었는데 이토 암살로 강경파가 득세하여 자치권이 없는 식민영토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암살 이전에 이미 강경파의 한일합병에 대해 승인한 바 있다. 해서, 암살이 한일합병을 앞당긴 것이 아니다. 또한 당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지역이 조슈-사츠마번이다. 이들 지역이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로서 한반도와 관련이 깊다. 하여, 국제유태자본이 아편전쟁 이후 이들 지역민을 중심으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도록 지원하고 영일동맹을 맺었던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 느슨한 식민지론 따위란 허구라는 점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조선을 병합하고자 했다. 다만 명분을 만들어갔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햇볕론인 게다. 햇볕론이 김정일에게 얼마나 기분이 나쁜가. 옷을 홀딱 벗으라니... 친일파 김대중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는 도널드 그레그 전 한국 CIA 부장이 햇볕정책과 대소봉쇄구상인 케넌 구상이 닮았다고 김대중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햇볕정책이란 국제유태자본이 만든 포용정책을 번역한 데에 불과한 것이다. 그처럼 이토 히로부미의 주장이 바로 조선인에 대한 햇볕론인 게다. 해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란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독재자이지만 독립군 가문 출신인 김정일 아들 김정남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남한에 와서 친일파 김대중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왜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를 만나려했나? 유태인국가를 협의하기 위해? 그렇다면 왜 상대가 재무장관인가. 외무장관이어야지.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만주 부설 철도와 관련한 땅따먹기요, 다른 하나는 한일합병에 대한 러시아의 의중을 살피는 것이었다.

   

정리하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테러가 아니라 전쟁 중 발발한 사건이다. 또한 조선이 원해서 한일합병을 한 것이라는 일본 측의 주장이 날조라는 것을 밝혀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친일파 김대중 따위나 주장할 법한 허구적 논리가 더 이상 유포되지 않았으면 싶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들을 보면, 대개 친일언론 동아일보 따위에서 나온 까닭에 일본 군국주의 사관을 이름만 바꾼 것이 많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소련 정권은 민족 자주 원칙에 따라 공화국, 자치 공화국, 자치 주 등을 구성하였는데, 실제로는 이론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련 정권의 민족정책은 소수민족들에 대한 분할 지배가 실질 목표였다. 하여, 러시아 민족에게 오랜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타르인들은 800만이 넘어도 공화국이 주어지지 않고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또한 고려인, 독일인 등은 일정 규모 이상의 수에도 불구하고 자치주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잘 정착하고 있는 고려인을 강제이주를 시키기도 했다. 연해주의 고려인 이주 계획은 1922년부터 거론되었다. 가령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한인 10만 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소련정권 들어서도 연해주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옛 러시아 정책 그대로 연해주에서 유럽인 이주를 권장하는 한편 동양인 이주를 제한하였다. 그러다가 일본이 연해주를 침략하기 위해 한인들을 첩자로 이용하고 있다는 설이 강제 이주의 구실이 되었다. 이는 물론 스탈린 정권의 구실이었을 뿐이다.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1만6천2백72가구 7만6천5백25명이, 카자흐로 2만1백70가구 9만5천2백56명이 이주됐다. 총 17만1천7백81명, 3만6천4백42가구였다.

   

스탈린 정권에 있어서 강제 이주는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이차대전 중에는 노동자, 농민을 동원하여 우랄산맥 서쪽의 공장을 우랄산맥 동쪽으로 뜯어서 옮겼는데, 말이 공장 이전이지, 그야말로 가장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을 써서 이때 죽어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이 덕분에 소련은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국제유태자본의 예상보다 일찍 이차대전을 종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태인자치주는 어떻게 볼 것인가. 이차대전의 산물이다. 유태인자치주는 러시아에 살던 유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찌 독일의 공포를 피해 러시아로 이주한 유태인을 위한 임시 거주지 성격이 짙었다. 이 당시 국제유태자본은 이차대전을 일으키기 위해 히틀러 정권에게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였다. 히틀러 정권을 키워주어야 세계대전 규모의 전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나키즘 프로젝트라고도 한다. 이로 인해 독일이 단시일 내에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국제유태자본은 나찌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유도하였다. 동시에 유태인 학살을 일으키기 위해 유럽 유태인 이주를 제한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그의 책 '나의 투쟁'에서 보듯 국제유태자본의 의지대로 미영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국제유태자본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히틀러는 독일 내 유태인 이주정책을 취했다. 히틀러는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마다가스카르로 독일 내 유태인들을 이주시킬 생각이었고, 이주 계획까지 만들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유는 국제유태자본 때문이다. 유럽 각국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던 국제유태자본은 유럽 내 유태인 이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각국에 비해 스탈린 정권은 국제유태자본에 대해 자율성이 큰 편이었으므로 이차대전 이전부터 유태인 이주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스탈린 정권 외교정책은 리트비노프와 몰로토프 두 노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스탈린의 기조는 전쟁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전쟁을 제국주의 국가끼리 할 때, 미국처럼 소련이 불간섭주의로 일관하여 실익을 챙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스탈린 노선을 국제유태자본은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런던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한 금융가 집안 출신의 외무장관 리트비노프는 국제유태자본 노선에 동조한 반독일 전쟁 노선을 줄곧 주장했다. 하지만 스탈린을 설득시킬 수 없어 이차대전 직전 물러났다. 이어 스탈린의 외교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몰로토프가 등장하여 그 유명한 독소불가침정책을 채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국제유태자본이 아닌 것이다. 결국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스탈린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리트비노프가 다시 외무장관이 되었다. 유태인자치주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제유태자본 핵심과는 상관이 없는 소련의 외교 산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럽에 산재해있던 유태인 대중에게,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에게 유럽 국가 중 소련이야말로 유태인을 가장 잘 대우해주는 국가임을 선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련의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시오니즘 주류는 자신들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시온이 의미하는 바는 땅에 대한 신앙이다. 마치 한반도인 상당수가 백두산을 신성시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버리고 만주를 택한다? 이는 한민족주의자들이 만주를 버리고 이스라엘을 택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불성설이다. 해서, 히틀러의 마다카스타르 이주 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스탈린의 연해주 이주 계획도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이 허락하지 않아서이지만, 시온주의자들도 팔레스타인 땅 이외에 다른 지역을 고려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유태인자치주 내 다수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스탈린 정권이 고려인 강제 이주를 강제한 실제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세 가지 목표가 있었으리라 추론할 수 있다. 하나, 유태인 자치주와 연관이 있다. 고려인의 개간 능력은 소련 정권도 인정하고 있다. 해서, 고려인이 거주하는 땅이 유태인 이주가 즉시 가능할 정도로 가장 매력적이었다. 둘, 연해주에 동양인을 제한하고, 유럽인을 이주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 합병된 상황이므로 어느 민족보다 더 많이 조선인 이주민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연해주 정치상황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셋, 민족 지배분할 정책 때문이다. 소련 정권은 카자흐나 우즈베키스탄에 산재한 민족들을 지배하기 위해 고려인과 같은 이질적인 소수민족을 투입하여 이들끼리의 분란을 꾀해 이이제이(以夷制夷)하고자 했다.  

   

유태인 인구 분포

http://blog.daum.net/leeshon/5727841 

   

러시아계 유태인 이동 : 알리야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01&eid=aSc3ci2xVd9Pus5fogIPuaEOdkYZrjfH&qb=t6+9w77GIL7LuK6+3w==&pid=fSt7Swoi5TVssb1DUj8sss--140512&sid=SVAwh1wcUEkAAC7zEwk

   

러시아계 유태인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로 대도시에서 살며, 주된 직업은 고학력 전문직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중국에 가도 북경이나 상해, 홍콩에서 살 것이며, 일본에 가도 도쿄나 오사카에 살 것이며, 한국에 가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살 것이다. 따라서 유태인들이 전쟁을 피해 일시적으로 유태인 자치주와 같은 시골에 가서 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없는 게다.

   

유태인자치주는 소련 민족 정책 중 가장 하위 자치 단위라 할 수 있다. 비판자들이 말하는 대로 러시아혁명을 이끈 대다수가 유태인이라면 유태인자치주 정도가 아니라 유태인공화국을 세워야 하지 않았겠는가? 더 나아가 소련 자체가 유태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유태인자치주를 유럽도 아닌 만주에 세울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내가 아는 한, 볼셰비키 유태인들은 유태인공화국에 냉담했다. 하여, 낙담한 시온니스트들이 볼셰비키 운동에서 탈퇴하여 시작한 것이 시온주의 운동이었다. 시온주의 주류가 대부분 러시아계 유태인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볼세비키를 지원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 전략적 목표란 영국 왕실과 러시아 짜르와의 관계, 중국 문제, 중앙아시아 자원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유태인 탄압설도 있지만,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러시아 짜르가 유태인을 탄압하도록 일을 꾸몄다고 보아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유태인을 아랍인이나 영국인처럼 숙주로 삼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서로의 공동 이해로 일시적으로 뭉친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해서, 러시아혁명 직후 국제유태자본이 유럽 각국을 동원하여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을 지원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왕따를 시켜서 경제난을 가중케 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후 국제유태자본과 소련 정권, 그리고 일본 정권은 소원한 관계였다. 그러다가 국제유태자본이 이차대전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유대인인 트로츠키를 암살하고 나서부터 스탈린 정권과의 밀월 관계, 혹은 적대적인 공존을 시작했다. 대중 앞에서는 서로에 대해 맹비난을 하면서도 군비 경쟁으로 쌓여만 가는 스위스 비밀금고 자금 결제를 위해 해마다 스위스 어느 호텔에서 비밀회합을 하였다. 스위스는 오직 그 때문에 이차대전 중에 중립국이 될 수 있었다. 스위스인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기획 아래 스탈린이 협조하여 냉전체제 판짜기를 하기 위한 사실상의 삼차대전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려인 현주소와 연해주 상황은 어떠한가?

   

"1937년 강제 이주 후 귀향하여 거주하는 사람이 6만5천여 명, 일본에서 편입된 사할린사람들이 3만5천여명, 해방이후부터 6.25전쟁과 휴전을 거쳐 1955년까지 북한에서 노동자로 팔려온 사람이 8천여명, 한-소 수교이후부터 지금까지 벌목장 및 수산현장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을 제외한 미귀환자 1천5백여명, 라이따이한과 조련계 출신 250여명 북한 일꾼 9,700여명, 한국인 1,300여명 등 합계 12만750여명이 거주 및 활동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푸틴정부는 우랄산맥 동쪽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생필품장사꾼 120만 명 중 1/10은 조선족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allphoto?Redirect=Log&logNo=140018393305

   

"러시아 정부는 불법 체류 중인 중국인들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07년 1월부터 러시아 정부에서는 연해주 지역 중국인들의 20%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추방될 거라 엄격히 선포하고 있으며 현재 엄격한 단속으로 인해 많은 수의 중국인이 다시 중국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1월 28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많은 경찰들이 우스리스크 중국시장까지 지원 나와 중국인들을 추방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러시아 몇 가지 정보들

http://blog.daum.net/kttk1/8912680

   

한인 자치지역 건설을 환영하는 러시아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5946&logId=3527153

   

근대 이전 연해주 지역에는 아이누족과 유사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야만 상태로 오랫동안 농경보다 사냥을 위주로 살았으며, 한국인과는 다른 족속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인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팽창과 진출을 계속하였고, 이들의 시베리아 진출 과정은 앵글로색슨족의 아메리카 대륙 서부 개척과는 전혀 그 양상이 달랐다. 앵글로 색슨족의 개척이 그 곳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씨를 말렸던 것과는 달리,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러시아인과 혼합되었고 다른 민족간의 결혼도 보통 이루어졌으며, 사회적인 편견도 오직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존재하였다. 즉, 러시아인들은 원주민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 관리들의 원주민 정책은 러시아인과 전혀 차등없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의 시베리아 진출은 군사력 혹은 정치적 힘에 의한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고 단순히 생업을 위해 이민가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약 60년 사이에 러시아는 우랄산맥에서 오호츠크해 연안까지 진출하였다. 러시아인들의 생업을 위한 이민이 증가하면서,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앙 정부가 시베리아 자원개발계획과 함께 시베리아 통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해주는 청나라 영토로 였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에 영국과 프랑스는 애로호사건과 선교사 피살 사건을 구실로 청나라와 전쟁을 선포하였다.(제2차 아편전쟁) 이 전쟁을 통하여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와 톈진 조약(1858)를 맺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조약의 파기를 요구하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베이징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중재 아래의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1860)년 체결하였다. 러시아는 중재의 대가로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획득하였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MVKOskHfSQbJU3hgQ5Ja4rMkpJ6BcNmV&qb=t6+9w77GIL+sx9jB1iDBobfJ&pid=fSu8floi5TNssaNptENsss--353860&sid=SVBqPWZVUEkAAATmKMo

   

역사적으로 본다면, 연해주는 만주의 일원이었으며, 이런 까닭에 연해주는 청나라 영토였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이 아편전쟁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연해주는 중국땅이었을 것이다. 물론 고대로 올라간다면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들어 한반도인의 고토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한인 이주사는 어떠한가. 19세기 후반부터 인구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가 이민을 받기 시작하였고, 조선에서 흉년이어서 고향을 등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등 주로 동쪽 조선인이 이주했다.

   

정리하면, 그간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국제유태자본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서, 헛된 꿈을 꾸기보다 블라디보스톡 지방정권,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 등과의 경제협력 강화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천착함이 의미 있어 보인다. 가령 내가 이십대라면 블라디보스톡 같은 데서 한 번 꿈을 펼쳐보고 싶기도 하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8/12/24 국유본론 2008

2008/12/24 11:54 수정 삭제

http://blog.naver.com/miavenus/70039283990

   

   

안중근 프랑스 사주 음모론은 조선 독립군 활동이 없었으면 조선 해방과 발전이 더 빨리 왔을 것이라는 논리적 구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 제국으로 한반도가 편입이 되었다면 잘 살았을 것이라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문제는 단순히 역사적 진실을 캐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실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실천 문제가 있겠습니다.

   

중국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명품입니다.

   

요즘 중국 영화 심상찮습니다. 한국 영화가 미경이 썅년과 씨족스런 쪽발놈현빠들에 의해 <광해> 따위로 망해가는 것과 비교가 됩니다. 여러분! 요즘 솔직하게 한국 영화 부끄럽지 않습니까. 한국 영화가 영화입니까. 이십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팬이었던 인드라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중국 정신세계는 날로 진보하는데, 한국 정신세계는 씨족스런 쪽발놈현빠 개색희들 때문에 날로 퇴보하여 매우 안타깝습니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았으니 기대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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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국유본이 사실을 장악한 세상에서

인드라는 언제나 진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남영덕은 "나는 의열단이오.

나는 한일합병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 의열단에 가입한 후 조선을 위하여 생명을 바쳤소이다

. 나는 조선민족에게 각성을 주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살았은즉

나의  형벌에 대하여는 사형도 좋소이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1923년 8월 13일 의열단 공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서민 등골 빼먹는,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한국의 야스쿠니, 쪽발놈현 무덤은 한반도에 저주를 내리는 대못이다

 쪽발놈현 무덤 철거하고,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하자

빠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인드라 블로그 운영 안내 

http://blog.naver.com/mia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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