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 메이지유신의 주역,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 국유본론 2009

2009/01/18 07:32

http://blog.naver.com/miavenus/70040636893

   

   

   

국제유태자본: 메이지유신의 주역,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

- 부제 : 일본 근대화는 오직 국제유태자본 덕분, 하여, 친일민주당 해체만이 답이다

   

oaker:

잘 보았습니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시기를 바라며... 아리랑 3호 발사업체를 기존의 러시아가 아닌 일제 침략을 주도했던 당시 최고 군수업체인 미쓰비시사로 바꿔 버렸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미쓰비시사는 다른 나라 위성 발사를 단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회사로 이명박 정부가 첫 선물을 미쓰비시사에 넘겨버린 것이라 할 수 있죠.. 솔직히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죠.. 물론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겠지만,(더군다나 당초 러시아는 기술 이전까지 약속했지만) 이건 기술이전은 커녕 아무런 국가 이익도 없는 조건이랍니다.. 또한 미쓰비시사는 과거 일제 침탈 행위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 일본 소송과 관련 책임회피로 어떠한 사과도 없는 일본 핵심 극우 사업체 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49175&CMPT_CD=P0000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왜 자꾸 이런 안타까운 점들만 저에게는 보이는지.. 대체 이명박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자꾸 저에게는 이런 면만 보이는지 모르겠구요.. 인드라선생님의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ㅠㅠ

   

INDRA:

글 감사드린다.

   

"국제유태자본의 영향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만일 한반도에 관심이 있다면, 가령 브레진스키의 평가처럼 남한에 그간 평가하지 않던 경제적 요소가 있다면, 그만큼 국제유태자본이 남한에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 가치를 평가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한반도를 초토화할 수 있습니다. 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보다 치열한 세계 이성 없이 함부로 국제유태자본과 맞짱 뜨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을 충분히 연구할 것이며, 그들을 넘어섰다고 여기기 전까지 그들의 힘을 존중해야 합니다."

국제유태자본:명치유신에서 러시아혁명까지

http://blog.naver.com/miavenus/70031192464

   

일단 사태의 배후를 보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해서, 당분간은 오마이뉴스 같은 무식한 찌라시를 읽지 않거나,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아리랑1호

http://100.naver.com/100.nhn?docid=734450

아리랑2호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B%A6%AC%EB%9E%91_2%ED%98%B8

   

아리랑1호는 미국이, 아리랑2호는 러시아와 이스라엘, 프랑스가 참여했다. 그리고 아리랑3호는 일본이 참여한다. 이제 국제유태자본론을 공부하고 있다면 이 정도 대목에서 눈치를 채어야 한다. 이번 아리랑3호 제작 결정도 이명박의 의지가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의 의지임을 말이다. 그리고 미국 노예민주당으로 정권이 되면 국제유태자본 내 분파 중에 친일파들 위상이 부각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극우회사다 라는 방식보다 무엇보다 미쓰비시중공업에 분노하기 전에 미쓰비시중공업이 어떤 회사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쓰비시중공업을 알기 위해서는 국제유태자본과 일본,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나가사키하면 히로시마와 함께 원폭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국제유태자본은 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였을까.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7&eid=PAq0m4QXj1GDXmYSGccwBM9gwh7l1Nwh&qb=s6qwobvnxbAgv/jA2sb4xbogwMzArw==&pid=fU54kloi5UCsscivbBKsss--463456&sid=SXJGFHLycUkAAGP@Owg

   

나가사키에는 미쓰비시공업단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가사키에는 왜 미쓰비시공업단지 등이 있었을까.

   

난학은 정말 대단하였는가

http://blog.naver.com/deokbusin?Redirect=Log&logNo=140037961722

   

막부는 나가사키만을 개항하는 조치를 취한다. 해서, 혹자는 일본이 임진왜란 때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근대화의 기틀을 다져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학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 포교 영향이 굉장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나가사키인가. 이 지역은 해류가 형성되어 있어서 중국이나 조선으로 가다가 난파하면 나가사키나 구마모토 지역으로 간다고 한다. 그만큼 고대서부터 여러 면에서 입지가 뛰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내가 알고 있는 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해서, 한국인들 중에 온천이다, 뭐다 해서 일본을 가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특히 가까운 쿠슈 지역 왕래가 잦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인이 일본에 여행을 갈 때 역사 공부를 조금은 하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제: 그대는 무죄다, 무식하니까

http://blog.naver.com/miavenus/70021475440

   

청년 한국인들은 청년 일본인들이 역사에 무지하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의 이면을 본다는 점에서 청년 일본인이나 청년 한국인 모두가 역사에 무지한 것은 아닐까.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청년 일본인이 청년 한국인보다 우위에 있을 수도 있다.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72080

   

나가사키에 가면 구라바엔이라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다. 구라바엔이란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과 정원 등을 포함한 공원을 말한다. 

   

"Thomas Blake Glover, 스코틀랜드인으로 1859년에 나가사키에 왔다. 무역을 주로 하면서 근대 산업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고 또한 메이지정부를 세우는데 기여를 했다. 이런 공적으로 그는 the Second Class Order of the Rising Sun상을 받았다. 1911년 73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이 기념상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61년 10월년 세워졌다. Tsutomu Tagawa, 나가사키 시장"

http://blog.naver.com/coston/40016090733

   

거상 그라바

http://www.newmanagement.co.kr/read.asp?idx=254&class1=7&class2=6&page=1

   

스코틀랜드인이라는 대목에서 재미있다. 최초의 영란은행장도 스코틀랜드인, HSBC 은행장도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글로버도 스코틀랜드인. 그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 그렇다면 토머스 글로버는 누구인가. 그는 21살에 일본에 왔으며, 24살에 회사를 차린다. 그는 무역상이었는데, 주로 취급한 품목은 무기류였다. 가령 그가 수입한 품목에는 운요호도 있었다.

   

운요호 사건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119712&contentno=119712

   

그렇다면 토머스 글로버는 평범한 무기상일까. 이 시대에 평범한 무기상은 없다. 그는 그야말로 근대 일본에서 종횡무진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톰 크루즈조차 울고 갈 정도이다. 왜? 그는 일본인으로 귀화하였고, 그의 아내는 푸치니의 나비부인 모델로 알려졌으며, 그는 일본 유신정권에서 맹활약하는 인물들을 대거 영국에 유학을 보낸 장본인이며, 대표적으로 일본 최초의 철도와 조선소, 그리고 최초의 기린맥주 사장이었으며, 메이지유신 때 국제유태자본의 기획에 따라 해리 파크 공사의 지시를 받아 막부정권을 무너뜨리는 무기를 사츠마 - 조슈번에 지원을 했으며,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업을 이와사키 야타로라는 미쓰비시 창업자에게 넘겼다는 데에 있다. 

   

이와사키 야타로 다카시마 탄광

http://blog.naver.com/modernday?Redirect=Log&logNo=10032314796

   

한마디로 메이지 유신은 국제유태자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나는 강조한다. 부채에 허덕이던 독일이 순식간에 경제 회복을 하고 군사대국으로 나간 기간이 불과 십 년이 안 된다. 아무 것도 없던 북한이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을 받아 한국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던 기간이 불과 오 년이다. 그처럼 일본이 국제유태자본의 힘으로 동아시아 군사대국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십 년도 아니고, 십 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에 혹해서는 안 된다. 막부 정권이 무역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사츠마와 조슈번이 양이를 내세운 것이 아니다. 사츠마-조슈번이 선택된 이유는 평화애호주의 막부정권에 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전쟁발광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신선조가 남긴 '의'

http://blog.naver.com/miavenus/70024188807

   

당시 국제유태자본은 아편무역으로 큰 수익을 누리고 있었다. 해서, 미국 독립까지도 허용하면서 중국 아편침략에 올인을 했던 것이다. 미국 독립은 순전히 아편무역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인드라의 시각이다. 하여, 동서양의 부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 핵심은 중국이었다. 그런데 청나라가 아편의 심각함을 뒤늦게 깨닫고 단속에 나선다. 그러자 국제유태자본은 19세기 초반 절정기를 지나서 중반에 이르러 아편전쟁까지 일으킨다. 문제는 영국 군대가 이 시기부터 세계 각 지역에서 거센 저항을 받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중동과 수단에서는 몰살당하기도 한다. 하여, 국제유태자본은 직접적인 통치보다 간접적인 통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해서, 자신을 대리할 현지 바지사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었던 셈이다. 하여, 일본이 아시아에서 근대화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요인, 99%의 요인은 국제유태자본의 의지였으며, 국제유태자본이 일본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순전히 지정학적인 이유가 전부였던 것이다. 하여, 인드라는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조선과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못나서가 결코 아니다. 국제유태자본의 전략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왜 중국이 국제유태자본처럼 하지 못했는가, 하는 소극적 책임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했던 것은 지중해 민족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로마제국이 당대에 제국이 될 요인이 있었을 뿐이라고 정리한다. 이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한다면, 로마제국 치하의 식민지 백성이 고심해야 할 대목은 왜 우리는 로마시민보다 열등한가 따위 자괴감보다는, 우리는 로마제국의 침략만 없었으면 로마시민처럼 되었을 것이라는 망상보다는, 로마제국의 장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장점을 키워가는 전략만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장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장점을 강화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8/12/24

http://blog.naver.com/miavenus/70039283990

   

예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18세기 일본과 한국의 문화 개방 운운은 다 헛짓거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까지도 일본은 쇄국정책이었으며, 양이론이 우세했다. 하여, 천황 제도는 20세기 국제유태자본이 만든 조작된 상징에 불과하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이 필요로 하는 한, 일본 천황 제도는 유지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국제유태자본은 필요에 따라 조선 왕조를 없애버린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조선 근대화가 늦은 이유에 조상들 탓을 절대 하지 마라! 바로 그것이 국제유태자본에 저항적이었던 유교와 대원군을 말살하기 위한 국제유태자본의 전략임을 간파해야 한다.

   

그렇다면 토머스 글로버는 한국과 인연이 없나? 조선 개항을 이끌었던 영국 해리 파크 공사처럼 있다.

   

"베넷은 영국 인천영사관이 철수한 뒤 그 건물에 거주하며 영국 인천영사를 겸했던 사람이다. 그는 1897년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글로버 하나와 결혼했다. 그의 부인인 글로버 하나는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글로버하우스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이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글로버 하나

http://enews.incheon.go.kr/main/php/search_view_new.html?idx=3264&section=11&section_sub=11&pg=8

   

국제유태자본에게 있어 당대 조선은 첫째, 중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중국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있었으며, 둘째, 영국 외상의 분단 발언에서 보듯 조선의 발칸화를 시도하여 이후 한국전쟁까지 기획했으며, 셋째, 이를 위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적극 권장했던 것이다.

   

원인은 국제유태자본이다. 일본은 시다바리에 지나지 않는다. 미쓰비시는 전후 해체되었다가 국제유태자본의 지시에 따라 다시 합체되었다. 해서, 명목상으로는 이차대전의 책임이 없는 셈이다. 하여,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국제유태자본이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탄 두둑한 日, 글로벌 기업 포식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1/07/200901070430.asp

   

   

상기한 기사를 역설적으로 읽는 것이 국제유태자본론을 공부중인 이들다운 일이다. 내가 미네르바를 비판한 대목이 국제유태자본 관점이 아니라 일본자본, 화교자본 따위 가상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은 이제껏 남한과 북한 정권을 만들어내어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으며, 김정운을 차기 북한 정권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와 아소 다로 정부를 만들었다. 아소 다로에 대해서는 훗날 일본 역대 정권을 서술할 때, 제대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딱 하나 말한다. 노무현 정권을 그리도 추켜세웠던 골드만삭스, 그리고 오바마 정부를 탄생시켰던 골드만삭스, 데이비드 록펠러에 이어 차기 황제로 주목받는 제이 록펠러가 지배하는 골드만삭스가 후쿠오카 올림픽을 적극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소 다로는 구슈 정치인, 과거 사츠마번 정치인이다. 일본 정치는 유신세력인 조슈번과 사츠마번에 의해 움직이는데, 이들 상당수는 기시 노부스께처럼 일본인으로 귀화한 한국인이며, 이들을 배후조종하는 이들은 국제유태자본이다.

   

혹자는 아리랑3호를 한일 스왑체결 대가로 본다. 참으로 어리석은 견해다. 차라리 그런 견해를 펼치자면 이명박-아소 다로 회담 전문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inhyangin?Redirect=Log&logNo=110040603979

   

나는 말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친일민주당의 덫을, 친일파의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친일민주당 해체가 중요하다. 국제유태자본에게 시민들이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역사를 잊지 않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하여, 친일민주당 해체가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대 할머니들이 주장할 몫이다. 국제유태자본과 친일민주당의 놀음에 놀아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에 불어 닥친 전운도 국제유태자본의 기획에 지나지 않는다. 열흘간의 이스라엘 휴전 대신 택할 카드가 북한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후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만 말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한반도 통일 과정이다. 한반도인은 이 기회를 친일민주당 해체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이 되어 후손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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