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리 VS 국유본 : 왜 이집트인가 인드라 VS ?

2013/04/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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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리 VS 국유본 : 왜 이집트인가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4/01-39

   

"국유본 : 왜 이집트인가.

   

인월리 : 남유럽 위기 사태가 왜 그리스부터 시작되었는가.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최초 유럽의 위기는 그리스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동유럽과 아일랜드부터 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단연 이슈의 중심은 그리스였다. 그리스와 이집트를 비교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하나, 상징성이다. 유럽문명을 그리스 로마 문명이라고들 한다.  국유본은 역사가 오랜 데서부터 작업하는 습성이 있다. 말하자면, 역사가 오랜 지역에 대한 기묘한 복수심이 있다. 역사가 오래되어봐야 무슨 소용이냐. 왕년에 잘 나가봐야 별 수 있냐.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도 반만년 단군 운운하는데, 국유본이 질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일제의 식민화와 분단에는 당대의 이익도 크지만, 국유본의 질투도 작용하지 않았겠나 이렇게 보기까지 한다. 사실 한반도는 단군 이전부터 최근 가덕도 신석기 인류가 발견된 데서 보듯 당대 세계 최고 최대 문명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인류는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지도 모른다. 이 점은 인월리에서 강조한 바 있다. 

   

그리스는 또한 카르타고 유태인과 인연이 있다. 알파벳을 발명한 페니키아인.  중동에서 수메르어가 종교적인 언어로, 아카드어가 외교적인 언어로 쓰였다면, 페니키아어는 상업적인 용도가 뚜렷했다. 그만큼 지중해에서 가장 상업적인 민족이 페니키아인이었다. 헌데, 이들 페니키아인이 페니키아에서 밀려나 카르타고나 스페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등지로 중심지를 이동한 것은 그리스인 영향이 크다. 그리스인 또한 페니키아인처럼 상술과 해상활동에 능했다. 해서,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은 대립 갈등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인에 밀려나 본거지를 오늘날의 튀니지, 카르타고로 옮겨 이제 카르타고인이 된 이들은 또 다른 적을 맞이하는데, 그 적이 바로 로마인이었다.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한니발이라는 이름 석자 남기고,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에 의해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역사에서 삭제된다. 하면, 카르타고인들 모두가 죽었던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스페인과 북부 아프리카 지역, 특히 이집트 지역, 가나안 지역에 많았다.

   

이들은 로마시대에 자신이 카르타고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하고, 이들은 대부분 개종했다. 유대교로!  해서, 이 시기 유대인 수는 열 배 넘게 증폭했다. 출생이라는 자연적 인구 증가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이다. 하면, 왜 유대교인가. 당대는 신의 시대였다.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인은 자신들의 신을 저주했다. 다른 신을 믿어야 했다. 허나, 그 다른 신은 사두개인, 혹은 사독인이 믿는 종교처럼 지중해 종교가 아니어야 했다. 지중해 신이 아니어야 했다. 지중해 신이 아니면서 최근 유행하는 신이 누가 있나? 바로 유대교였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두개인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 영혼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이것이 지중해 종교의 특징이었다. 이들 사두개 유태인들은 오늘날 그리스에 가장 많이 산다는 보고가 있다. 이들은 그리스인과도 잘 융합했으며, 로마인에 대해서도 친화적이었다. 같은 지중해 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바리새인은 내세를 믿었다. 영혼의 부활을 믿었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 바리새인은 그리스 로마 종교를 증오했다. 이 그리스 로마 종교를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첫걸음이라 믿었다. 바리새인의 주축은 카르타고 유대인이다. 예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바빌론 유수에서 온 선지자들이 바리새인 출발이 아닌가. 일면 맞다. 허나, 그 바리새인을 적극 옹호한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카르타고 유대인들이다. 바리새인들이 한 짓거리가 무엇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한 짓이 이교도와 떡친 이들을 모조리 도륙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에 가장 찬성했을 이가 누구인가. 누구보다 그리스로마문명을 선조로부터 반대한 카르타고 유대인인 셈이다. 또한 바리새인들 대부분이 상인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이전까지 유대인들은 다윗으로 상징되는 목동이거나 노예였을 뿐이다. 상인이 아니다. 그저 양치기였다. 한마디로 순박하지만, 무식하다. 반면, 카르타고 유대인들은 교활하지만, 유식하다. 비교해봐라. 오늘날 당신이 그리는 유대인 이미지, 순박하고 무식하다냐, 아니면 교활하고 유식하냐인가. 당연 후자다. 로스차일드와 맑스와 프로이트의 조상은 사두개인이 아니다. 카르타고 유태인이다. 프로이트가 한니발을 존경하고, 맑스가 자신을 세익스피어 고전에 나오는 흑인 무어인으로 닉네임을 쓰고, 암셀 로스차일드 얼굴이 땅딸하고 까무잡잡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서, 바리새인이 인도 카스트 제도 투쟁에서 발생한 종교 혁명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혼 부활, 또는 윤회란 한마디로 지배자 아리안족에 항거한 드라비다족의 순교 투쟁을 위한 이념이었다. 현실에서 드라비다족이 아리안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서, 드라비다족이 발명한 것이 바로 게릴라식 자살특공대이다. 하면, 자살특공대에게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세론이다. 최초의 내세론은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 현실에 개입하는 실천적 산물이었다. 바로 이것이 카르타고 유대인에게는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압도적인 로마인들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했다. 허나, 이를 꿈속에서라도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카르타고 유대인과 드라비아인의 고민은 같았다. 드라비다족의 내세론은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불교를 잉태하였고, 아리안족에게도 영향을 주어 힌두교를 탄생시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만들기도 한 셈이다. 그 뿌리는 아리안족의 카스트 제도에 항거한 드라비다족의 자살특공대였다.

   

하여, 이들 카르타고 유태인들은 1세기 무렵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과 대혈전을 벌이기도 한다. 예서, 재미있는 것은, 이 혈전을 벌인 카르타고 유태인들 거주지역인데, 이 거주지역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잘 사면서 오래된 지역이라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평창동, 한남동이다.

   

오늘날 국유본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순혈 유태인이 아니다. 국유본은 그런 개념을 애초에 비웃는다. 국유본이 중시하는 것은 개종 유태인이다. 더 확장해서 말한다면, 유대교 자체가 아니다. 국유본이 믿는 종교 자체가 위선 덩어리이므로 이들은 종교의 해체를 원하고 있다. 이들 방식은 흥미롭다. 당신이 믿는 교황, 목사, 랍비, 스님이 되어 그 종교를 망치는 것이다. 그것이 국유본 방식이다. 바로 이런 데서 국유본의 힘이 증가되는 것이다. 또한 국유본이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적 자원이다. 전 세계 똑똑한 놈들만을 선별해서 미국 이민을 허용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와 머리가 비상한 젊은 층만을 선별해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 사이에는 큰 격차가 발생한다."

카르타고 유태인에서 이집트 사태를 읽는다 국유본론 2011

2011/02/23 03:24

http://blog.naver.com/miavenus/70103596408

   

   

   

   

   

유경 호텔은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이 1억 달러를 투자하여 건축중인 평양 소재 건물이다. 무바라크 정권이 친미정권이자 친북정권인 이유. 또한 리비아 가다피 친구가 차베스나 김정일 뿐만 아니라 이태리 베를루스코니 총리이기도 한 것을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국제유태자본론이 유일하다.

   

수에즈에서 나세르, 그리고 자산 동결까지

서울에서 인월리가 국유본에게 길을 묻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2011/03/03

   

"둘, 역사성입니다.

   

   

" 1798-1801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인해 유럽은 중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이전까지 성지 순례 코스 정도로 여겨지던 팔레스틴에서 유럽 각국의 고고학 발굴이 시작됩니다. 영국의 성서 고고학자 및 목사들은 1865년에 Palestine Exploration Fund를 설립하여 1869년에 시나이 반도 조사단을 파견합니다.... 1869년은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개통한 해이기도 합니다. 이때 수에즈 운하 공사를 재정적으로 도운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는데, 부채와 재정 위기에 몰린 이집트 외세정권이 1875년에 수에즈 운하 회사 지분을 디즈레일리에게 넘기면서 영국도 44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합니다.... 에드워드 팔머 교수의 이야기를 읽으니, 영국정부가 당시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을 수행하며 고고학 탐험이라는 연막 아래 고고학자들을 철저히 이용해 먹은 것을 알게 됩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의 본명은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년), 당시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을 수 년 동안 탐험한 고고학자로, 1911년 이집트에서 잠시 플린더스 페트리와 일하기도 합니다.... 다음해 1915년, 영국 정부는 존 필비(Harry Saint John Philby, 1885-1960년)를 바그다드에 보냅니다. 존 필비 역시 아랍학자/탐험가/작가로서 그의 아들이 캠브리지 5인방 킴 필비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존 필비의 임무는, 아랍 국가주의자들의 반란을 책동하여 당시 독일 편이던 오스만 제국을 제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랍 국가주의자들은 영국의 봉이었네요. 이집트에서는 반란을 진압 당하고 아라비아에서는 반란을 책동 당하고~. 아랍 국가주의자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댓가로, 영국정부는 시리아에서 예멘에 이르는 통일 아랍국가 건설을 지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이 1915년 10월에 발표된 맥마흔 선언(McMahon Declaration)입니다. 아랍인들에 우호적이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존 필비는 영국정부의 말을 믿고 1916-1918년의 "아랍 반란(Arab Revolt)"을 배후주동합니다. "

수에즈 by  수반아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081661162

   

   

"영국 동인도회사는 1857년 세포이항쟁 결과로 문을 닫게 된다. 헌데, 신묘하게도 1857년 공황이 발생한다. 이뿐만 아니다. 이집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에즈운하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이 모든 배후에는 로스차일드가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874년에 가서야 문을 닫지만, 그 이전까지 지리한 청산과정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국유본은 두 가지 대안을 마련했다. 투자은행 격인 '외국 및 식민지 신탁회사'와 상업은행 격인 'HSBC 은행'의 출범. 1870년대말에 이 모든 기획을 주도했던 영국 하원의원이자 전쟁의 신, 라이오넬 로스차일드가 숨을 거둔다. 하고, 1880년대부터 상원의원 내티 로스차일드의 시대가 시작한다....

하면, 왜 국유본은 '외국 및 식민지 신탁회사'가 필요하였는가. 영국 동인도회사는 당대 로스차일드의 치밀한 각본 하에서 흑자 부도한 셈이다. 해서, 부를 축적한 주주들을 위한 대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세포이 항쟁이 끝난 후 십년 동안 세밀하게 시나리오가 짜여졌고, 그후에야 비로소 외국 및 식민지 신탁회사가 설립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에즈 운하가 영국 소유가 된 것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유태자본과 뮤추얼펀드, 피델리티, 그리고 펀드의 미래 (1) http://blog.naver.com/miavenus/70094744015

   

상당수 음모론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수에즈이다. 한마디로 유태인 영국 총리 디즈데일리 총리와 로스차일드간의 밀담을 통해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접수한다는 내용이다. 허나, 앞뒤 생략하고, 이런 대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음모론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인드라 생각이다.

   

하고, 이런 이야기는 다른 음모론에서 듣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벤자민 디스데일리(Benjamin Disraeli). 그의 성, 디스데일리에서 앞의 D와 뒤의 I를 빼면 이스라엘이다^^!

   

   

1820년대이면 이미 유럽에서는 로스차일드 형제들이 귀족 지위를 취득할 때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전과 달리 유태인들도 이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단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사가 아니었다. 반면 영국 혁명에서 보듯 그 누구보다 유태인 덕을 보았던 영국에서는 오히려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치 입문이 1850년대에야 이루어졌고, 귀족 작위는 1870년대에 가야 이루어진다.

   

   

   

   

예서, 프리메이슨이니 일루미나티이니 하는 것이 유용했던 이유를 짚어본다. 하나, 귀족 작위는 장자나 그에 합당한 이들에게만 세습되었다. 그외의 자손들은 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이로 인해 당대 교황 대 국왕의 권력투쟁 와중에서 국왕 편을 들어 출세를 도모한 귀족들이 많았다. 둘, 로만 카톨릭에 대항하는 개신교 종교세력은 유태인 만큼이나 정치 세력을 원했던 바,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프리메이슨이다. 다른 한편, 영국과 달리 역사적 조건이 상이한 독일에서 프리메이슨의 변형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일루미나티이다. 셋, 허나, 이들은 모두 유태인들이 공직 진출을 제한하고 있을 때의 산물이다. 해서, 유태인들이 공직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다시 말해, 유태인들이 더 이상 얼굴마담을 필요치 않자 이들 조직은 급속도로 쇠퇴했다. 두 조직이 사실상 해체한 것이나 다름없을 때, 유태인들이 세를 확장하고, 이 세를 바탕으로 당대 영국 귀족들과의 합작 형태로 만든 것이 19세기 말엽 300인위원회이다. 하고, 이를 완벽하게 국유본적 조직으로 만든 것이 빅터 로스차일드이며, 빌더버그가 그 실체이다. 이후 빅터 로스차일드가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패한 이후 실질 권력은 빌더버그에서 삼각위원회로 넘어갔다. 오늘날에는 CGI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면,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왜 수에즈는 결국 로스차일드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일까. 국유본은 처음부터 수에즈에 개입할 수 없었다. 수에즈 이권은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 자본과 프랑스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유본이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는 수법을 잠깐 소개하자. 수에즈 운하는 공사가 계속 지체되었는데 이유는 뻔했다. 국유본의 사주를 받아 국유본 언론이 운하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한다 어쩐다 하고 비판을 해대었다. 공사가 지지부진하니 이를 통해서 수에즈 운하에 투자한 프랑스 자본을 크게 취약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유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임을 잘 간파해야 한다. 또한 영국에서는 수에즈에 관심을 지니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영국이 잘 나가는 이유는 대서양 무역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수에즈에 관심을 기울인다 함은 대서양 루트 대신 이전의 인도양 루트로 되돌아가니 세계 패권이 영국에서 다시 이태리, 혹은 프랑스로 되돌아가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다. 헌데, 이는 국유본이 기획적으로 인도에서 사건을 일으키면서 해소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도에서 국유본 기획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수에즈가 부각이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현지 통치 세력을 장악하는 일이다. 이는 사이드 파샤 때에 이루어졌다. 하면, 왜 사이드 파샤는 수에즈 운하를 찬성하였을까. 여기에는 크림전쟁을 비롯한 이해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국유본이 사태를 국지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 문제를 해결하고, 외교 문제를 해소하고, 정치 문제를 완결한 뒤에야 디즈데일리와 로스차일드가 만났던 것이다. 헌데, 대체적인 음모론은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다. 그저 특정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고, 이를 역사적인 흐름으로 펼치지 못하는 것이 그간 음모론의 결정적인 약점인 것이다.

   

   

   

   

"1954년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들이 극장, 카페 그리고 미국 소유 시설 등 외국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장소들에 폭탄을 설치했다. 이것은 폭동이 일어나 가멜 압델 나세르 정부를 뒤흔들고 시나이 반도에서 영국군의 철수를 지연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당국은 이같은 음모를 포착하고 많은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을 체포했고,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국방장관 핀하스 라본은 사임했다. 라본 사건이라 불리웠던 계획은 무산됐다."

http://www.ppi.re.kr/policy/bbs/board.php?bo_table=cb_ITS&wr_id=180

   

벤 구리온이 탈당한 계기는 1954년에 벌어졌던 라본 사건 때문이다. 그간 라본 사건은 핀하스 라본 국방장관의 책임으로 알려졌는데, 알고 보니 벤 구리온이 라본 사건을 라본에게 떠넘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이 진실인가. 인드라는 뭔가 여기에 음모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라본 사건

http://en.wikipedia.org/wiki/Lavon_Affair

   

이 시기 이집트 정세는 어떠한가. 나기브는 1952년 7월 G.A.나세르 등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 파루크를 추방하고 혁명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그 해 9월 총리에, 1953년 6월 공화국 선포와 동시에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허나, 혁명의 철저화를 주장하는 나세르와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1954년 11월 실각당하여 감금되었다가 1960년 석방되었다. 헌데, 라본 사건이 1954년 여름에 발생한 것이다. 라본 사건은 혁명의 철저화를 부르짖는 나세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난 인월리에서 인드라는 중동 정치, 특히 국유본이 나세르를 지원한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 방한, 친일 고려대, 삼각위원회, 그리고 이명박  http://blog.naver.com/miavenus/70087754302

   

   

"나세르는 국제유태자본의 중동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대 정세에서 국제유태자본은 중동에서 김일성 플러스 박정희를 만들어내어야 했다. 수에즈전쟁 때문이다. 이 전쟁은 전투에서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전쟁에서는 오히려 이집트가 승리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빅터 로스차일드를 이해하면 답이 나온다. 이란 정세 때문이다. 1941년 집권한 팔레비는 아버지를 따라 근대화와 민족주의 노선을 병행하였으나, 국제유태자본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온건파였다. 반면 모사데그는 국제유태자본과의 일전을 결심할 정도의 급진파였고, 이는 석유 국유화로 나아간다. 이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팔레비를 1953년에 로마로 망명시킨 뒤, 3일 뒤 장군 자헤디(18901964)의 쿠데타로 모사데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마치 국제유태자본의 정보원이자 이란의 전두환인 호메이니를 내세워 이란의 박정희, 팔레비를 축출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중동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국제유태자본에게는 이 민심을 약화시킬 대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세르요, 수에즈전쟁이다. 해서, 이후 나세르는 줄곧 반제, 반미, 반영 노선 이미지로 주가를 높여왔지만, 1970년에 이르러 더 이상 나세르의 쓰임새가 사라졌다. 왜냐하면 국제유태자본 입장에서 볼 때, 나세르에게 한 번 더 업적을 주기도, 그렇다고 그간의 이력을 모두 까먹을 정도로 나세르를 급변신을 시킬 수도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갑자기 반미, 반영, 반이스라엘, 반제 투사가 친미, 친이스라엘이 된다면 얼마나 골 때리겠는가. 국제유태자본론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이해하겠지만, 대다수 인민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해서, 나세르는 심장마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까지 국제유태자본이 기다려준 것은 1960년에 시작한 아스완댐 공사가 1970년에 끝났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10월 26일 ,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후 국제유태자본에게 암살당했는데, 10월 26일이 팔레비 생일이라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이명박이든 필요하면 추켜세우다가 가치가 다 하면 휴지통에 버린다.

   

헌데, 이 사건이 십 년 뒤에 새삼스레 다시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벤 구리온의 집권욕 때문인가. 인드라가 판단하는 한, 벤 구리온은 레닌과 같은 인물이다. 혁명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던지는 이스라엘의 이순신이다. 그러한 벤 구리온에게 라본 사건은 굴욕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해서, 벤 구리온은 명예 회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라피당 창당으로 이어진다.

   

하면, 이 라본 사건이 우연일까. 인드라는 그리 여기지 않는다. 국유본의 섬세한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즉, 빅터 로스차일드의 계획이 있지 않았나 보고 있다. 당대 이스라엘 정치는 중도좌파 마파이당이 1948년 건국 이후부터 장기집권을 했다. "

국유본은 북한을 이스라엘로 여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66722702

   

   

예까지 읽었다면,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네오콘부시 정권인 동시에 친김정일 정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리비아 가다피가 쿠테타를 일으킨 명분이 나세르 방식으로 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유본 세상에서 좌우정권 이런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국유본이 각국 정권을 활용하기 위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란 용어를 처음 만든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이 현재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이 끝나면 중동 · 북아프리카(MENA · Middle East and North Africa)가 브릭스에 필적할 정도로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닐 회장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당장은 이 지역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혁명은 매우 낙관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고 말했다. 중동 · 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적극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이 같은 장기적인 효과에 주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30123731 

   

우리가 중동 사태에서 확인할 것은 이것이다. 지금 당장 김정일 수중에 얼마가 있든, 내일 당장이라도 그 돈은 모두 국유본 돈이 된다는 것이다. 자산 동결. 이것만 확인하면 된다. 그 실체가 바로 국유본이다."

수에즈에서 나세르, 그리고 자산동결까지 국유본론 2011

2011/03/03 07:35

http://blog.naver.com/miavenus/70104189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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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단군이래 최악의 매국노,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

파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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