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CJ : 한국의 체게바라, 김종필; 사카린 밀수 사건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는 우연이란 없다 국유본론 2013
2013/06/12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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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과 CJ : 한국의 체게바라, 김종필;
사카린 밀수 사건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는 우연이란 없다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6/12
1. 사카린 밀수 사건은 빅터 로스차일드 VS 국유본 귀족 대립 갈등이 낳은 필연적 사건
기존 주장들은 사카린 밀수 사건을 단지 국내적 정재계 문제로만 바라본다. 허나,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론을 통해 줄곧 한국의 주요한 사건들은 국제적인 사건임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당대 국유본 황제인 빅터 로스차일드가 빌더버그 세계체제 구축을 위해 일으킨 제 3차 대전이라는 것이 예다.
해서, 몇 가지 국내외적 당대 상황을 짧게 정리한다.
하나, 빅터 로스차일드 황제는 영화 007에서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당 스펙터처럼 혹은 천재 과학자처럼 공산주의 신질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 주요 정보부를 장악했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자신이 직접 영국 정보부에 침투한 뒤 로스차일드 가문 배경을 이용하여 요직들에 자기 사람들을 심었다. 영국 정보부는 1947년에 영국 정보부 지부 격인 CIA 창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케네디 대통령 당선과 암살은 빅터 로스차일드가 배후다. 1973년 국유본 권력이 교체되기 전까지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 혹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영지였다. 소련 KGB에 케임브리지 친구를 보내 관리하였고, 이스라엘 모사드에 이스라엘 건국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관여한 만큼 정보부를 사유화하다시피했다. 이렇듯 빅터 로스차일드는 당대 주요 4대 정보조직을 장악하였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가문 내력대로 정보를 중시하였다. 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나오는 정보, 영국 정보부 등 주요 정보부에서 획득한 정보, 마지막으로 중국에까지 자신의 개인 심복을 파견할 정도로 형성한 사조직 정보라인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여 정보의 다양성, 신속성, 정확성을 기했다.
여러분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대출 목적, 담보, 대출자금 사용 내역 등이 낱낱이 드러난다. 은행들의 은행이었던 국제결제은행과 스위스 비밀 은행을 장악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쪽발왕, 쪽발일성, 쪽발돼중, 박정희, 카스트로, 체게바라, 트로츠키, 레닌, 아이젠하워, 엘리자베스, 처칠, 루즈벨트 등의 약점과 행동반경을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정보부와 사조직을 활용하여 이중삼중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분류한다.
헌데, 이러한 빅터 로스차일드 국유본 권력도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르면 약화하기 시작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 노예민주당이 영국 자유당처럼 몰락하기를 기대했다. 반면, 국유본 귀족들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까지 노예민주당이 붕괴하고 노동당이 들어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국유본 귀족에게 신세계 질서로의 빠른 이행을 위해 이권 포기를 요구하였던 반면, 국유본 귀족들은 이권 보장이 없다면 신세계 질서도 없다고 맞섰다.
둘, 한국은 1957년 전까지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1958년부터 국유본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국유본 사회 실험장이었다. 이 시기 국유본은 조봉암에게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지시해서 조봉암이 대통령이 되는 줄 알고 병쉰처럼 열심히 영어 공부하다가 뒈지기도 했다. 419시위와 한일회담 반대투쟁도 배후에 국유본 CIA 공작이 있었다. 물론 516 혁명도 국유본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없었던 혁명이었다. 체게바라 쿠바혁명, 나세르 이집트혁명처럼 그 모두가 국유본이 배후다.
한국이 다시 국유본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일, 국유본 수뇌부가 한국 전쟁을 일으킨 뒤 십 년 뒤 베트남 전쟁을 벌이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며,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 만큼 오랫동안 전쟁을 하는가가 관건이기에 칠레에서 신자유주의 실험을 하듯 한국에서 사회적 실험을 한 것이며, 삼, 마지막으로 베트남 전쟁으로 공산화 도미노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를 상쇄시킬 정도의 엔블록 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헌데, 이승만이 반기를 들었다. CIA에서 중앙정보부 설치를 강력 주장하고 그 실무자로 이후락 간첩을 추천했는데 항일운동가이자 대마도 반환을 주장할 만큼 외교의 달인인 이승만이 이를 경계하여 국방부 산하 부대로 정보부를 격하시켰다. 이에 국유본은 이승만 제거를 결정하고 419를 일으켜 이승만을 하와이로 망명시켰다. 이후 들어선 쪽발돼중의 스승, 쪽발면은 쪽발이 색희답게 총리 산하 정보부로 승격시켰다. 허나, 쪽발민주당은 너무나 무능하였다. 국유본이 아무리 도와주어도 쪽발민주당은 인물들이 대부분 병쉰색희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해서, 국유본이 자신에게 대들지 않을까 경계해야하지만 능력은 있는 세력을 집권하게 한 뒤, 감시자, 견제자를 두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부가 탄생하였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이스라엘 중도좌파 마파이정부에게 세계 최초로 박정희 정부를 인정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그간 국유본이 한반도에서 독점적으로 지원했던 쪽발일성정권이 크게 당황하여 맑스레닌주의 노선에서 주체사상 노선으로 갔다. 1920년대 쪽발국이 그간 국유본의 전폭적 지원을 받다가 왕따 당할 때와 같은 상황인 게다.
셋, 박정희 정부에서는 국유본 기대에 부응하듯 마침내 정부 차원의 중앙정보부가 설치되었다. 수장은 김종필이었다. 김종필은 박상희 딸과 결혼했다. 박상희는 박정희 형이었는데, 동학 혁명에 나섰던 무관 아버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다. 일제 때 지역에서 동아일보 기자 활동을 하던 그는 남로당이 일으킨 대구폭동 때 사망한다. 박상희는 박정희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박정희가 쪽발교장과 다투고 교사직을 그만둔 뒤 만주사관학교에 지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김종필, 유원식 등 516혁명을 일으킨 주요 인사들은 남로당원 등 좌익이었다. 이들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후원을 받았던 것이다. 해서, 김종필 등은 체게바라 쿠바 혁명, 나세르 이집트 혁명 케말 파샤 터키 혁명 등을 집중 연구했던 것이다.
국유본이 아무나 중앙정보부장을 시킬까. 그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보부장을 김종필이 맡게 된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 계열인 김종필이 유원식, 김정렴 등과 함께 했던 화폐 개혁이 대실패로 끝나게 된다. 유원식은 장농에 있던 화교 돈을 수거하려 했다며 변명했지만 기득권은 냉정했다. 특히 미국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유는 동학농민전쟁을 동학난이 아니라 동학혁명으로 격상시킨 중도좌파 민족주의 박정희 정부가 적산불하 등으로 재산을 불린 쪽발놈현 스승 쪽발지태 차명계좌나 쪽발민주당 재산 등 쪽바리 재산을 장악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한 것을 눈치채었기 때문이다. 빅터 로스차일드와 달리 기득권에 민감한 국유본 귀족들을 중심으로 쪽발재산을 놔두라고 박정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결국 한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박정희 정부가 사정사정해서 겨우 수습할 수 있었는데, 김종필, 유원식 등 정부 내 공산주의자 퇴진 조건이 붙었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났다.
김종필과 이후락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미국에 유학했다. CIA와 연계되었다. 정보부장이었다. 박정희 감시자였다.
차이점이 있다. 국유본 알파오메가이다. 김종필이 알파라면 이후락은 오메가였다.
여기까지 상황을 소개하기로 하고.
인월리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1. 이창희가 사카린 밀수 담당자였다면 이창희에게 사카린 밀수가 돈이 될 것이라고 유혹한 색희는 누굴까?
2. 정부 차원에서 긴밀한 협조로 밀수가 이루어졌다면, 지방 세관에 불과한 부산 세관이 무슨 힘이 있다고 정부 차원에서 벌인 일에 초를 칠 수 있을까?
3. 누가 신문사에 정보를 흘렸을까?
4. 이병철은 사건 직후 왜 미국 대사관 사람들을 만나 열띤 변명을 해야 했으며, 이후 이후락계만 지원하고, 김종필계에는 자금 지원 없었다고 강조하고, 이후 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 의원 낙선운동하고 야당 쪽발민주당 인사들에게 떡값 돌리기 시작해야 했나?
"1966년 5월 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 4천여만달러까지 들여왔다.
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 |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 씨)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 |
http://andocu.tistory.com/entry/이병철사위-김규-미대사관직원만나-사카린사건은-김종필계가-이후락계-제거-공작
이병철삼성회장의 사위 김규 전 서강대교수가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당시 주한미국대사관직원을 만나 언론이 사카린밀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김종필계가 이후락계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공작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2/09/16 - [분류 전체보기]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김규 전교수는 또 사카린밀수사건이 2만달러정도의 단순밀수사건이라고 설명하는등 미국측에 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며 삼성감싸기에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인 홀부르크 브래들리가 작성한 김규면담보고록에 따르면 이병철회장의 세째사위인 김규 당시 동양방송 전무가 1966년 9월 21일 오후 브래들리에게 전화를 걸어 TV방송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비료의 사카린밀수사건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햇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오후 3시 30분 반도호텔에서 만났으며 이자리에서 김규는 사카린밀수사건은 지난 5월 하순에 한국비료 임원 5명중 1명인 이일섭이 2만달러어치정도의 사카린 원료를 밀수하다 적발된 것이라며 당시 삼성은 이일섭을 해고한 것은 물론 밀수금액의 4-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마무리된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김규는 또 세관이 사카린밀수사건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상적인 밀수사건의 하나로 처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규는 지난 5월하순 마무리된 사건이 새삼스레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은 정치문제, 언론문제, 재정문제등 세가지 문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규는 지난 7월 공화당내 김종필계가 밀수사건을 눈치챈뒤 이후락계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밀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한뒤 이를 이슈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김종필계와 이후락계의 권력투쟁으로 삼성사카린밀수사건이 이슈화됐다는 것입니다.
김규는 김종필계가 삼성의 사카린밀수관련정보를 자신들이 컨트롤하는 경향신문에 흘렸고 경향신문은 신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이 언론사를 운영하는데 대한 언론사들의 반발도 사카린밀수가 이슈화된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이 창간한 중앙일보가 부수를 급속히 확장하면서 다른 신문사들을 위협했기 때문에 중앙일보의 기세를 꺽기 위해서 사카린밀수를 크게 보도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김규는 또 삼성이 대한민국 최대재벌이기 때문에 경제계와 금융계가 전반적으로 이병철과 삼성그룹을 싫어했으며 이들은 이 기회에 삼성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파워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격대열에 합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언론사의 대대적인 삼성사키린밀수사건 보도가 경제계의 대대적인 지원하에 이뤄지고 있고 사주들도 동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김규는 마침 이날 오전 박정희가 발표한 재벌의 언론소유금지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으며 한국인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서로를 헐뜯고 싸우면서 자멸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규는 한숨을 쉬면서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은 현재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한뒤 만약 폭등등 심각한 사태가 이어진다면 정부붕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김규가 미국대사관직원에게 말한 것은 삼성은 별로 잘못한게 없는데 권력투쟁, 언론계와 재계의 삼성에 대한 견제등으로 삼성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김규의 주장중 김종필계와 이후락계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다는 정치적 상황은 정확했지만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이 2만달러짜리 단순밀수사건 운운한 것은 사건을 축소하고 진실을 은폐한 것입니다.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은 삼성이 한국비료를 짓는다며 건설자재를 들여오면서 사카린뿐만 아니라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양변기등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들여온 대기업의 조직적인 밀수였습니다.
김규등은 이날 이후에도 미국측을 접촉하며 이병철회장의 지시로 작성된 삼성의 정세분석보고서등을 건네며 이 사건이 김종필계의 정치공작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게 됩니다.
한국비료 사카린밀수사건은 경향신문이 1966년 9월 15일 특종보도하면서 이슈화됐고 일주일뒤인 9월 21일 김두한의원이 국회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등 파문이 걷잡을수 없이 번지자 이병철회장은 이날밤 가족회의를 소집, 회사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을 밝히
고 이튿날인 9월 22일 은퇴와 함께 한국비료 국가헌납을 공식발표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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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국유본이 사실을 장악한 세상에서
인드라는 언제나 진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남영덕은 "나는 의열단이오.
나는 한일합병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 의열단에 가입한 후 조선을 위하여 생명을 바쳤소이다
. 나는 조선민족에게 각성을 주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살았은즉
나의 형벌에 대하여는 사형도 좋소이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1923년 8월 13일 의열단 공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서민 등골 빼먹는,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한국의 야스쿠니, 쪽발놈현 무덤은 한반도에 저주를 내리는 대못이다
쪽발놈현 무덤 철거하고,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하자
빠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인드라 블로그 운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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