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인월리 10대 뉴스 5

쪽발타도해방투쟁과 한반도 통일로 동아시아 시장을 키우는 것이

미국 자동차 산업 근본 해결책이다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4/02/06 

 

"파란벽돌:

인드라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꾸벅~. 주식과 관련해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요즘에 국내외 자동차업계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미국에서는 빅3가 위험하다고 다시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일본의 도요다의 영업적자 전망이 자동차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합니다. 울 나라 쌍용차에서는 중국 애들이 노조가 구조조정안을 들어주지 않으면 중국애들이 철수한다고 하고,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는 사측의 비상경영선포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2008. 10월 대바닥 대비 가장 적게 반등한 분야가 바로 이 자동차 업계입니다. 오바마의 주 지지 세력이 미 자동차업계로 알고 있는데요. 향후 세계의 자동차 업계의 전망 및 국내 자동차 판도 변화에 대해서 의견을 여쭙습니다. 꾸벅~

 

INDRA:

파란벽돌님 글 감사드린다. 예상되었던 수순이다. 이제 금융위기에서 실물경제 위기로 나아간다는 국제유태자본의 시그널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일제히 자동차 부문이 이슈가 된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자동차 부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사양 산업이다. 미국 자동차 부문이 사양 산업임에도 미국에서 쉽게 정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 고임금, 저효율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 부문이 이윤이 해마다 줄어들지만 포드 자동차에서 보듯 과거 황금시대의 미국 제조업 상징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둘, 자동차 부문은 다른 분야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매우 크다. 따라서 정치적 이슈가 되기 때문에 정치인이 정리를 결정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안 그래도 국제유태자본의 미국 탈산업화 프로그램 비판이 거센데, 자동차 산업을 정리하면 이를 입증하고,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기에 어떤 식으로든 구제를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협의 파산도 구제의 한 방식이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셋, 미국 자동차 산업은 군수산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이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미국 군사력의 유지다. 미국 달러의 힘은 미국 군사력에서 나온다. 

 

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어떠한가. 한국 GM만을 보자. 한국 GM은 전 세계 GM 공장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공장이다.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높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자동차 산업의 힘이다. 이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내가 수차례 강조했지만 베이비붐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 베이비붐 세대와 일본 단카이 세대는 이미 은퇴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상당 부분 경쟁력을 상실한 반면 단카이 세대가 은퇴한 일본 도요타 생산 시스템은 세대간 효율적인 기술 이전으로 간신히 모든 공세로부터 방어하는 수준이다. 해서, 준공황 국면에서도 고급차 분야에서는 일본차의 선전이 기대가 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되기 때문에 수요도 줄지 않는다. 또한 고급차여야 이문도 중소형차에 비해 굉장히 좋다. 그러나 단 하나 그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엔고’다. 가격 경쟁력에서는 도리가 없다. 아무리 고급차에서 크게 이익을 내도, 중소형차, 혹은 대중차에서 박리다매로 먹는 것보다는 약과인 게다. 일본차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왔던가? 미국, 유럽 명품 고급차 분야였던가? 아니다. 중소형차다. 일본차의 경쟁력은 중저가에 있었다. 처음부터 명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없다. 싸구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게다. 저임의 노동력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이제 중소형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다이는 가격 대비 품질 면에서 세계가 인정받고 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생산성이다. 현재 세계에서 한국 노동자만큼 노동생산성이 높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나라가 없다. 이러한 경쟁력은 향후 약 십 년에서 십오 년 정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겹친다면 무적인 게다. 해서, 불황임에도 올 하반기에 현다이 중소형차 수출이 호조였던 것이다.

 

골드만삭스 "현대·기아차 사지마라"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8121811504909180&outlink=1

 

미국 자동차 부문이 어렵다고 해서 한국 자동차 부문도 어렵다고 여기는 단세포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위기는 기회인 게다. 경쟁 측면에서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게다. 불황 국면에서 한국 자동차 부문에서, 특히 중소형 부문에서 세계에서 지배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여준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기관이 내놓는 보고서에서는 역설적으로 읽을 줄 알면서 해외 정치권, 언론, 증권사 보고서에는 액면 그대로 믿는 미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단지 세련되었을 뿐, 쇼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단 현대, 기아차는 중소형차 수출 호조와 환율 수혜로 인해 현금 보유율이 많다. 해서, 당분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양호한 상태로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구조다. 해서, 현대차의 경우 잔업, 특근, 야간작업을 중지하면서도 휴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차 협력업체도 사정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차 협력업체와 그 이하로 보인다.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것이 국제유태자본이 기획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위기로 몰아넣은 뒤 목적을 달성한 후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주한 중국 대사 "쌍용차 지원 아끼지 않겠다"

http://www.wownet.co.kr/news/wownews/view.asp?bcode=N07010000&artid=A200812120062

 

쌍용차의 경우 주인인 중국에서 나섰다. 그러나 노조가 항의하고 나서서 문제가 꼬이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는 산업 부문의 중국으로의 빠른 이전이 가속화되었고, 대우조선도 그런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 같지만, 산업자본 중시 정책으로 겉보기에 차별화하려는 때문인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싶다. 장기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자동차 부문이 경쟁력을 갖추어나가는 것이 대세이겠으나, 중단기 관점에서는 한중 양측이 모두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아직은 중국산 자동차를 구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것이 소비자들의 냉정한 판단일 것이다. 한국 GM이 심각하다. 하지만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서조차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일전에도 내가 말했듯이 독과점 때문에 현다이는 어려워도 여차하면 삼숭이 인수하면 그만인 게다. 한국 GM은 GM과 결별하는 순간 날개를 달고 승천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계 각국이 자동차 부문 구제 금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뉴스는 한국에서도 지원책이 나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노조는 적당히 저항하는 시늉을 한 뒤 항복할 것이다. 예비된 수순으로 갈 것이다.

 

한국 자동차 부문만을 이야기했다. 이를 한국 제조업 전체에서 조망한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환율이다. 한국 제조업이 정작 걱정해야 할 시기는 2009년 3월 이후다. 왜냐하면 2009년 3월 이후에는 자통법이 통과되기 때문에 국제유태자본은 한국 환율을 급속도로 하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이 1100원대로 고정시키면 적정선이고 다행인데, 반대로 900원대로 추락시키면 심각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제유태자본은 한국 환율 900원대 이하를 겨냥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한국에서 아무리 어떤 묘안을 짜내더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 해서, 이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 희망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국제유태자본은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노리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해서, 오히려 1980년대 후반과 같은 엔고, 저유가, 저금리 같은 상황이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 만일 지금 일본이 타켓이라면 한국에게는 기회이며, 한국이 타켓이면 일본이 기회이다. 더 나아가 한중일에서 보자면, 보다 복잡한 게임인 게다. 중국이 타켓이면, 한국과 일본은 기회다. 이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중일에게 중요한 변수는 내수가 아니라 수출이다.

 

정리하면, 실물 경제 위기는 내년 3월까지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 문제이기는 하나, 예상되었던 만큼 수순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본다. 큰 틀은 이미 정해졌다. 부시의 자동차 부문 언급이나 이명박의 부동산 언급은 기간 조정책인 게다. 해서, 금융위기만 지나가면 한국 자동차 부문의 전성기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강만수가 일을 잘 하고 있다. 강만수의 선제적 금리인하 요구, 환율 정책, 재벌들의 인수합병용 대출 자금 억제 등은 잘 한 일이다. 오늘날 조중동 등과 어용언론, 친일민주당이 강만수를 비난하는 이상으로 강만수는 일을 잘 하고 있다. 강만수 퇴임 시기는 저들이 모두 강만수를 칭찬할 때다. 저들이 칭찬한다면, 그때의 강만수는 매우 위험하므로 즉시 퇴진시켜야 한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저들이 일을 저지르고, 그 책임을 몽땅 강만수에게 뒤집어씌우는 이 구조를 말이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8/12/24 국유본론 2008

2008/12/24 11:54 수정 삭제

 

"그자리에;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미국의 대부분 자동차회사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GM대우차는 대부분의 매출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지요. 삼성자동차와 쌍용차도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GM대우차가 GM과 분리될 시 훨씬 경쟁력 있어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음...아마 그러할지라도 국내에서 힘들 겁니다. 워낙에 현대기아차가 압도적이라. 아, 참 그리고 현대차가 지난 10,11월에 큰 수출실적을 올린 것은 값싸고 품질 좋은 막강한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밀어내기 수출로 인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 쌓인 재고만 해도 20만대가 넘습니다. 연말 국내 실적을 튀기기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이는 내년 1월 실적 보고를 보면 바로 드러나죠. 질문입니다. 요즘 월리엄 엥달의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을 읽고 있는데요, 70년대 오일쇼크 때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이 1온스당 38달러인 금값을 두 배로 올리라고 미국 측에 압력을 가했는데요. 어째서 달러를 평가절하하라고 한 건지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글을 읽으면서 지난 10월에 있었던 오일 값 급속 상승과 달러환율 폭등 등이 마치 70년대 오일쇼크와 흡사하게 이루어지더라구요. 유태자본들이 꼭 두 번씩 같은 수법을 써 먹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른 질문은, 70년대 말에 제 3세계국가들이 오일값 폭등으로 인해 엄청난 물값 상승을 겪었는데 이를 타개하고자 핵발전소를 건설하고자 노력하잖아요. 물론 프랑스와 독일도 중동국가나 제 3세계에 핵발전소 사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시도했는데, 유태자본들이 석유를 통한 지배권을 놓기 않기 위해 방해한 것을 볼 수 있는데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이 유태자본의 자작극인지 알고 싶습니다. 유형이 꼭 이와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이요. 현재 강만수만큼 이 환율대란에 잘 대응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명박은 유태자본의 밑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태자본 입장에서 자기들 이익에 반하는 강만수를 내치도록 MB를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리 언론에서 떠들어대도 그렇지 않고 있잖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MB정권이 내년도부터 본격적으로 4대강 수질개선사업 등 상수도, 가스, 전기, 의료, 은행 등등 민영화에 박차를 가할 것 같은데 이 모든 사업들은 한 나라의 기간이 되는 중대 사업들 아닙니까? 서민들을 유효하게 통제할 수 있는 좋은 수단들이니 이를 민영화하게 되면 나라 부채는 메꿀 수 있어도 나라 경제 꼴이 브라질처럼 또는 아르헨티나처럼 될지도... 설령 그렇게 안 되더라도 노무현 정권에서 끌어다 쓴 단기외채를 메꾸기 위해 모든 중요 사업들을 민영화하는데 앞장서는 MB정권은 유태자본의 그야말로 말 잘 듣는 종 아닌지요. 어쩌면 MB는 이들과 적당히 타협하는 쪽을 택해서 추진해 나가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대한민국엔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대안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네요. 양심을 기반으로 깨어나는 국민들의 영성을 믿을 뿐... 한 나라 지도자의 운명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을 성서와 지난 세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데 우리가 선거를 잘 치뤄야겠습니다.


INDRA;

글 감사드린다.


미국 현대차 재고 비상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nagoya&folder=2&list_id=7620273


현대차 위기의 본질

http://blog.naver.com/sondongsuk?Redirect=Log&logNo=110013697487


현대차를 위한 세 가지 제언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10061


현대車 비상경영 속 우울한 41주년 생일

http://car.moneytoday.co.kr/news/news_article.php?no=2008122809204593330


현대차 밀어내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밀어내기는 연초, 연중에도 있는 등 상시적인 것이다. 이번 10월, 11월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해서, 단지 연말 실적 내기위한 밀어내기로 수출 실적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수출 실적에 밀어내기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밀어내기에도 불구하고 수출 실적이 좋은 것은 환율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환율 때문에 현대차가 10% 가격 인상을 결정하기도 했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수익률이 좋아진 이상 현대차는 미국 딜러들에게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였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신차 할인율이 높게 적용되었으리라 본다. 미국 중하층은 유사한 가격이면 일본차를 사지만, 현저하게 차이가 나면 현대차를 산다.


내가 자동차 회사를 다닌 적이 있어서 밀어내기를 잘 알고 있다. 밀어내기란 생산이 판매를 결정하는 전형적인 경영 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밀어내기를 할 정도로 현대차 그룹은 ‘공격적인’ 생산에 집착하는가. 매출은 급증해도 영업이익률이 크게 감소함에도 말이다. 이익률이 낮더라도 이익금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해서, 미국차들이 이런 식으로 오늘날까지 흘러오다가 파산을 눈앞에 둔 것이다. 하여, 향후 십여 년간은 현대차 그룹의 방식이 통용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이후는 보장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도요타 시스템이다. 나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주일 정도 라인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이어서 힘들지, 적응하면 괜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도요타 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요구한다. 다른 하나는 혼다의 기술 혁신이다. 이 기술이란 국제유태자본이 일본에게 건넨 원천 기술이기보다는 응용 기술이 대부분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향후 십년 이내에 획득하지 못하면 현대차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GM대우가 삼성과 연결된다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혹독한 구조조정이 요구될 터인데 삼성이 이를 견딜 재간이 없을 것이다. 반면 해외자본인 경우에는 한국 어용언론이 국제유태자본에 이미 길들여 있어서 쌍용차처럼 노동자들을 마구 대하더라도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 즉, 효율적인 면에서는 국내 대기업이 맡는 것이 순리이나, 국내 대기업 역량이 경제 영역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취약한 편이므로 성사되기는 힘들다는 딜레마가 있다. 아무튼 현행대로 가면 GM대우 파산할 가능성이 짙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화하듯, 달러와 금을 연동시키는 사고패턴이 사라지기까지는 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것이 1970년대다. 오일파동 시의 금값 문제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금 가격을 온스당 두 배 가격으로 요구한다는 것은 유럽 금융자본의 요구인 게다. 만일 유럽 산업자본이면 금값 폭등, 달러 약세에 당연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국가 내에서도, 같은 자본이라도 자본의 성격에 따라 이해를 달리한다. 가령 곡물법 논쟁이 대표적이다. 리카르도는 금융자본 편에 서서 곡물법 폐지를 바랐다. 반면 맬더스는 농업자본 편에 서서 곡물법 유지를 바랐다. 남북전쟁도 마찬가지다. 북부와 남부의 이해가 다른 것은 유명한 일이다. 해서, 금융자본 대 산업자본의 시각으로 보자면, 당대 금융자본은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섬을 반기는 입장이었다. 하여, 이 과정이 단축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미국이 주도적으로 달러 평가절하를 해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이는 미국 금융자본 +유럽 금융자본 +미국 산업자본의 이해가 모아진 것이다. 반면 유럽, 일본 산업자본의 이해는 약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유태자본은 왜 이란이라크전을 일으켰나

http://blog.naver.com/miavenus/70031435407


나는 윌리엄 엥달을 높이 평가하나 일부에서는 그의 논의에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가령 이란 팔레비 정권에서 호메이니 집권 배경을 원자력에서 찾는 것이 예다. 이란 호메이니 집권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논자는 마약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윌리엄 엥달의 시각은 원자력에 초점이 모아진다. 해서, 이 귀결은 체르노빌 음모론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체르노빌산업?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3&dir_id=1309&eid=dQIqLFTNpEGOkHxADSWxRrEhe5pBQS2S&qb=w7y4o7PruvQ=&pid=fSOhMloi5UlssaYR%2Bfwsss--482974&sid=SVcMAEPtVkkAAFI3ZJs


체르노빌 사건 완전 분석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1&eid=s30v/AvZvwtE9bAmWzbDIwOhLBBfSC3x&qb=w7y4o7PruvQ=


체르노빌 사태가 자작극이라는 단서가 나온 것이 없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자작극이라고 간주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간의 다른 사건과 비교하여 흡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 체르노빌 음모론이란 체르노빌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체르노빌 사건이후 그 피해에 대해 홀로코스트산업처럼 과장하였다는 비판이다. 이는 옹호론과 비판론으로 분류가 된다. 하나는 방향이 옳다면 선의의 거짓말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게다. 그러나 이러한 옹호론은 911로 이어지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비판론은 14년이 지난 후 원자력 기구가 조사해보니 사건 직후 31명의 사망자 이외에 1800여명이 치료 가능한 갑상선암에 걸린 것이 최대의 건강 피해라고 했다. 이는 피해자가 오십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심지어 한국 어린이에게서 갑상선암이 발생하는 것은 체르노빌 때문이라는 억측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수치이다. 그러나 비판론 역시 액면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그들 역시도 시민의 이익보다는 특정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해서, 어느 쪽 주장을 수용하기 보다는 양쪽에 모두 비판적인 관점에서 국제유태자본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읽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오늘날 과학자 그룹과 시민단체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들이 연구를 계속하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 혹은 자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은 국제유태자본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부란 국제유태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따라서 어떤 과학자 그룹과 시민단체의 진정한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 활동 지원금의 스폰서만  알면 된다. 다만 이 과정도 돈세탁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작심해서 조사하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능력이 안 되어서 조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으므로 조사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강만수만큼 이 환율대란에 잘 대응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명박은 유태자본의 밑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태자본 입장에서 자기들 이익에 반하는 강만수를 내치도록 MB를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리 언론에서 떠들어대도 그렇지 않고 있잖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


무척 좋은 질문을 주셨다. 왜 아직까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나 여길 정도다. 흥미롭게도 연말을 맞이하여 한국 정부가 개입하여 연말 환율을 1250원대에 맞추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내가 보기에 국제유태자본이 강만수 포지션 역시도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올해 내내 인드라는 강만수 칭찬을 하였고, 지금도 그렇다. 왜? 인드라가 역대정권에 대해 일 년은 무조건 허니문 기간을 지키기 때문에?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또한 인드라가 반골이어서? 다른 이들이 강만수를 모두 비난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이유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다만 상기한 이유들은 모두 부분적이다. 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국제유태자본과 인드라가 강만수를 통해 진행된 한국경제 진행 상황에 일치된 견해를 지녔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슬쩍 언급한 적이 있다. 강만수가 물러나도 2009년 3월 이후, 그러니까 자통법 실시 직후에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당시에 이 말에 주목하는 이웃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이야 단기적 전망에 따라, 혹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강만수를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명박 정부가 물러난 이후에 강만수를 평가하면 분명 부정보다는 긍정이 앞설 것이라고 나는 본다. 지금도 맹렬히 강만수 퇴진을 부르짖는 일부 경제학자들조차 말이다. 왜 이러한가는 상황이 지속되므로 강만수가 퇴임한 이후에 제대로 거론할 일이다. 아무튼 현 시기 강만수는 최적임자다.   나는 누구도 현재 강만수를 대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국제유태자본 역시도 마찬가지 생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하나 힌트로 말한다면, 전에도 언급한 바, 강만수는 노무현 정권 때의 이해찬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국제유태자본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식민지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자율성이 있다. 국제유태자본이 무식하게 힘만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유태자본이 오히려 반미주의를 전술적으로 촉발시키는 것과 같다. 나는 묻는다. 내년 초부터 유류세 인하분을 원상복귀 한다고 한다. 이것은 강만수의 의지일까? 국제유태자본의 취지인가?


4대강 사업은 오바마의 토목공사와 같은 성격이다. 얼마 전에 전북저축은행이 지급정지에 들어갔다. 이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언론이 이 대목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이전에 이미 내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지금 한국 부동산 문제는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다. 그리고 은행으로 보아도 외국계 은행이거나 지방 은행이다. 요즘 집값 떨어졌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집사려는 사람들 푸념이 날로 넘쳐나고 있다. 언론에서는 반값이라는데 직접 품을 팔며 알아 본 결과로는 대부분 서울 지역에서 요지부동이라는 게다. 언론플레이와 현실간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해서, 4대강 사업은 지방 건설사 살리고, 일부분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다. 해서, 겉으로는 비판해도 자유선진당, 친일민주당 모두 속으로는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반대하면 안 그래도 바닥 민심이 싸늘한데 외면을 받는다. 밑바닥 민심은 친일민주당이 겉으로만 반대하기를 현재 바라고 있다. 반대하는 것은 집권을 해야 하니 이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진짜 반대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나야 기본적으로 케인즈주의에 부정적이므로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낮은 점수를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외 각종 민영화 사업에 대해서다. 일단 충격적인 발언부터 하면 김대중, 아니 김영삼부터 저런 사업들이 하나하나 조금씩 진행되어온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부가 서건, 정부 조직에서 진행되어오는 것들이다. 님도 알다시피 한국의 대다수 법안들은 당정협의를 거쳐 등장한다. 즉, 공무원이 법안을 만든다. 그리고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무식한 편이다. 물론 일부가 시민단체 등을 통해 등장하지만, 이 경우 법안이기 보다는 발의안 정도에 불과하다. 아울러 시민단체 안이라는 것도 국제유태자본이 소스를 건네주지 않으면 자가발전이 힘든 형편이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갑자기 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처럼 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페론 정부가 농민 보호를 위해 국제 곡물 카르텔에 저항하여 나라가 망한 것인데, 한국도 박정희 때에 결사 항전하였는데 아르헨티나처럼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세계수직분업체계상 한국은 공업지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은 세계의 공장이요, 굴뚝인 셈이다. 한국이 한국인의 힘만으로 GDP 1조 달러 대의 10위권 국가가 되었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국제유태자본의 기획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한나라당이나 친일민주당이 대안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국제유태자본과 진지하게 타협하는 과정만이 남았다. 영국의 예처럼 친일민주당을 퇴장시키고 민주노동당을 대안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친일민주당으로 계속 갈 것인가. 한국인은 이 대목에서 국제유태자본에게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친일민주당 체제로 가는 것은 한국인에게 모욕적인 처사라고 말이다. 현재 국제유태자본은 계속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8/12/31 국유본론 2008
2008/12/31 02:28 수정 삭제

 

 

"알팔파:

오바마가 워싱턴 사교 클럽인 알팔파에 초대되었다고 하는데 이 클럽의 성격은 어떤 것인지요? 늘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푸른숲:

http://kr.blog.yahoo.com/h960742/1233368?c=4

크리스 페인 감독의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 2006년)는 아주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이다. 근데 여기에서도 유태자본 냄새가 나서 살펴 봐 주세요. 200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중국 쿤밍에서.


INDRA:

알팔파님, 푸른숲님 글 감사드린다. 자유의 여신상을 삼키고 디워를 일본 전역에 깔았던 소니픽쳐스가 배급하고 크리스 페인이 감독하였으며, ‘포레스트 검프’, ‘라이언일병 구하기’, ‘다빈치코드’의 톰 행크스, ‘컨스피러시 씨어리’,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의 멜 깁슨이 출연한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에 대한 인드라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근래 환경을 다룬 헐리웃 영화들이 봇물처럼 등장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역시 전기자동차를 통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예서, 인드라는 의심을 품는다. 톰 행크스와 멜 깁슨(국제유태자본이 그들에게 부여한 헐리웃 정치 포지션을 고려한다면)과 시대정신 동영상, 그리고 랜덤하우스에서 출판되는 화폐전쟁을 오버랩을 시키면서 만일 이 사태에도 국제유태자본이 개입되어 있다면 크리스 페인의 다큐에서 노리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이겠다. 바로 이런 대목이 국제유태자본론이 힘을 발휘해야 할 대목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이론과 음모론 사이의 좁은 문을 헤치고 나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시보레 볼트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 차원의 판매 전술의 일환, 둘, 환경문제, 특히 탄소세 문제를 되돌릴 수 없이 만들어버리려는 국제유태자본의 전략이라는 의혹을 지니고서 접근을 해보기로 한다. 


노이즈마케팅이란?

http://100.naver.com/100.nhn?docid=770334


이 다큐에서는 어느 한 편만을 집중 부각시키는 바람에 차분하게 생각하게 만들기 보다는 다분히 선동적인 효과로 인해 인간의 균형 감각에 따라 다른 문제는 없을까 하는 시도를 낳게 만든다. 마치 시대정신 동영상과도 같다고나 할까. 의도적인 기독교 비판만 없었다면 보다 성공적이었을 영화를 엉터리로 만들듯이 다큐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는가’는 그 스스로 음모론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굳이 음모론적으로 전개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는데 말이다.


하여, 인드라는 만일 그렇다면 그들 뜻대로 따르기로 했다. 다큐가 간과한 면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인드라는 기계공학도 출신이다. 게다가 자동차 회사에 근무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이 방면 전문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만큼 인드라도 자동차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이를 전제하고, 이제 인드라와 함께 전기자동차에 관한 노이즈마케팅을 검토하기로 하자.


“1996년 미국의 GM은 'EV1'이라는 전기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GM이 전기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공해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전체 판매량의 10~20%를 전기차로 팔도록 강제한 '배기가스 제로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GM은 톰 행크스, 멜 깁슨 등 유명스타들에게 판매하면서 마케팅을 강화했다. 게다가 EV1은 1회 충전으로 160㎞를 달리고 소음도 없이 시속 130㎞를 내는 성능으로 휘발유차의 판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업계, 석유업계, 자동차부품 업계는 전기차를 죽이기로 합의하고 억지 문제점을 퍼뜨리고 로비를 통해 2003년 '배기가스 제로법'을 철폐시켰다. 이후 GM은 EV1 이용자들의 항의에도 아랑곳 않고 생산라인을 철폐하고 그동안 팔린 1200여대를 회수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두 폐차해버렸다. 게다가 한 번 충전에 500㎞를 달리는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한 업체를 적대적 M&A(인수합병)로 인수한 뒤 전기차 생산을 반대해온 석유회사에 팔아버렸다. GM이 전기차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지속했다면 구제금융을 받고 구조조정하는 상황에 몰렸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바꾸려는 작은 노력이 세상을 움직인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0334331


마치 필요 이상으로 미네르바를 홍보하듯이 메이저 언론에서 전기자동차에 관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굳이 독자가 알고 싶지 않아도 친절하게 자동차업계, 석유업계, 자동차부품업계가 전기자동차를 죽이기로 합의했다는 음모론을 강조한다. 연예인 스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론은 탄소세로 울트라슈퍼버블을 만들지 않는다면, 국가든, 회사든 요절을 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 기사로 읽혀지는 것이 인드라만의 상상일까.


그렇다면 이에 대해 정면 반박하는 기사는 없을까. 아니나 다를까 친절하게도 있다.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자처럼 게임 안의 NPC가 “정말 대단하군요. 여기까지 오시다니 그대의 지혜에 감탄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듯싶다.


“그는 GM과 석유회사가 음모를 꾸며 의도적으로 EV1 프로젝트를 실패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잘 생각해보라고 강조한다. 가솔린 3.78ℓ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볼트의 180kg짜리 배터리는 EV1의 배터리보다 무려 270kg이나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EV1 프로젝트의 주도자였고 초기 시보레 볼트 프로젝트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존 베리사는 “당시에는 좋은 배터리 기술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효율적인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V1은 한 번 충전해서 104~152km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EV1의 배터리는 무려 450kg에 달하는 납축전지로 가격 역시 너무나 비쌌다. EV1의 제2세대 모델은 항속거리를 225km까지 연장했지만 대형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하는 탓에 코발트, 바나듐 같은 값비싼 소재가 많이 사용됐다. 결국 배터리의 단가는 4만~5만 달러까지 뛰어오르고 말았다. 베리사는 EV1 프로젝트 때문에 GM이 무려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는 “EV1으로 기술적 가능성을 연 것은 분명 성공”이라면서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볼트는 한 번 충전해서 64km를 달릴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성능 가지고는 소비자들이나 관계당국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GM이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의 인증을 얻으려면 볼트의 배터리는 사용기간 10년, 그리고 주행거리 24만km에 대한 품질보증이 있어야 한다.”

전기자동차 시대 좌우할 배터리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skypark50&folder=9&list_id=10308239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이웃 분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나, 또 낚인 거야? 전기자동차에?’ 일단 초점은 배터리가 되겠다. 값싸고, 가볍고, 크기가 작은 배터리만 개발되면 게임 끝이다.


그런데 배터리에 대해서 인드라는 여러분처럼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는 배터리가 맛이 갔다는 것 외에 알지 못한다. 그리고 보닛을 열고서 묵직한 배터리를 쳐다보고 한마디를 할 뿐이라는 게다. “교체할 때가 되었나?“ 그런데 그 배터리가 EV1에서 무려 450킬로나 나간다 이 말인가. 그리고 그 배터리 단가가 환율 1400원 기준으로 무려 오천육백만원에서 칠천만원이다. 자동차 값이 아니다. 배터리값이다. 하기는 그러하니 고액 연봉의 연예인들이 주로 썼을 게다. 요즘 귀족들이 아니면 친환경 농산물 누가 사먹나. 서민이야 농약 잔뜩 먹은 농산물 사먹는 게다.


아무튼 친환경 미래 자동차인 시보레 볼트를 통해 전기자동차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시보레 볼트는 하이브리드차다. 즉 순수 전기자동차가 아니라는 게다. 하이브리드란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의미이므로 전기와 함께 다른 동력원(휘발유, 디젤, 에탄올, 태양광 등)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동시에 갖춘다는 점이다. 순수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는 비슷한 것 같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다. 보통 휘발유차의 부품 수는 2만개, 전기자동차는 7천여 개인데 반하여 하이브리드는 2만 3천개다.


둘째,  여전히 비싸고, 무게가 나가는 배터리. 여전히 배터리 값만 만 달러, 1400원 기준 천사백만 원이다. 그런데 주행거리도 여전히 짧은 데다 배터리가 휴대폰 배터리 폭발 위험처럼 폭발할 위험까지 있다는 게다.


셋째, 미국인들 중 상당수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고 있어 각자 차고가 있겠다. 해서, 플러그인 전기자동차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 반면 주차할 곳이 없어 길가에서 주차시키는 한국, 아파트 중심의 한국과 같은 곳에서 플러그인 전기자동차란 한마디로 재앙이다. 주유소처럼 충전소를 곳곳에 세우면 그만이라지만, 전기란 것이 순간적으로 충전되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소시킬 방안은 없는가? 있다.


전기자동차 인프라 구축

http://blog.naver.com/biz1khan?Redirect=Log&logNo=10041751336


초창기에는 하이브리드카로 가되, 기술이 개발되는 대로 순수 전기자동차로 가고, 가격 문제는 배터리를 빼면 전기자동차 값을 저렴하게 할 수 있으므로 배터리를 뺀 채 판매하며, 배터리 충전 대신 배터리 자체를 아예 교환하는 배터리 교환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배터리는 고가이므로 소비자에게 임대를 하는 게다. 업계의 이익은 하이브리드카로 과도기 국면에서 상당 부분 실현된다는 점에서 수익구조까지도 보장되는 듯하다. 자, 그렇다면 시간이 문제일 뿐, 방해요소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왜 방해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정말 방해하는가.


“영국은 브라운 수상이 직접 나서서 전기자동차 산업계를 키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스페인은 2014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자동차를 보급한다는 계획을 발표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프로젝트베터플레이스란 유태계 미국회사와 손잡고 2011년까지 50만개의 충전소와 2만대의 차량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포르투갈은 닛산과 손잡고 전기자동차를 보급합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인텔의 전회장 앤디그로브의 말처럼 "역사상 이렇게 급가속되는

사업을 본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기자동차 사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전 CIA 국장 제임스 울시나 전 국무장관 죠지 슐츠, 그리고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업체인 구글 까지도 자회사를 통해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전기자동차에로의 쏠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맥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고성능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개발하는 사람에게 3억 달러라는 거금을 상금으로 내 걸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급변하는 시장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9&dir_id=906&eid=JmLurIDuBKFdFmPHnQzb63Fad6SMHz/L&qb=wPyx4sDatb/C9w==&pid=fhDvidoi5UKssuaKkxssss--116204&sid=SYk@hSgviUkAAFMve28


록펠러의 액슨 모빌과 같은 석유업계, 자동차업계, 부품업계가 부정적이라면 과연 상기한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이 가능하겠는가. 그보다는 오히려 록펠러가 뒤에서 열심히 도와주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부시에 이은 공화당 후보 매케인마저 배터리 홍보에 나섰다?


예서, 록펠러가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일까를 아주 잠깐만 추적해보자.


“세계적인 경기불황 속에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도 크게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 정유 회사인 미국 엑슨모빌의 자회사가 경상북도 구미에 2차 전지 분리막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엑슨모빌 자회사, 구미에 3억弗 투자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810/e2008100918531069890.htm


자, 이제 문제는 깨끗하게 해소되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혹시라도 우리의 국제유태자본께서 전기자동차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여기지나 않았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분들이 있다면 안심해도 된다. 우리의 국제유태자본은, 그리고 국제유태자본 중의 국제유태자본인 록펠러 황제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전기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깊다. 왜냐하면 세계 환경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환경운동가이기 때문이다.


BBC : 위대한 지구 온난화 사기극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C3qyH7rPLJs$


지구온난화 회의론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엑손모빌사

http://blog.naver.com/iknowiknow?Redirect=Log&logNo=40051804641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는데 이 당시 인드라가 소액주주운동이랑 환경운동을 국제유태자본 카테고리로 씹고 다녔던 게다^^! 국제유태자본은 위선에 민감하다.)

'석유왕' 록펠러 후손들의 반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7/2008052700036.html


엑손모빌이 용가리통뼈이겠는가. 환경운동가이면서 소액주주운동가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석유왕 록펠러 황제 가문의 압력에 무조건 굴복해야 국물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하여, 석유업계 1위를 잠재웠으므로 이제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석유업계 문제는 없다. 아울러 당분간 성능 좋은 배터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하이브리드카를 이용해야 하므로 부품업계 문제도 해소되었다. 남은 것은 자동차 회사이다. 그런데 전기자동차란 블루오션 분야여서 새로운 수요를 낳을 것이므로 자동차 회사도 불만일 수 없다.


GM 회장, "GM 경쟁력은 자동차 배터리가 될 것"

http://aving.net/kr/news/default.asp?mode=read&c_num=112150&C_Code=06&SP_Num=221&mn_name=exhi

도요타, 2012년까지 도심형 전기배터리 자동차 출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2472446

GM, LG화학과 볼트자동차 배터리 공급사 선정예정

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90112/4360595.htm


심지어 인텔도 나선다.

인텔, 자동차 배터리 사업 추진

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379187&g_menu=020600


남은 문제는 없는가. 있다. 전기는 무엇을 통해 획득하는가.


발전소 비율이 수력: 2.1%, 원자력: 40.2%, 석탄: 37.3%, 석유: 8.2%, Gas :12.1%이니 화석연료 58: 원자력 40 : 수력 2 정도이다. 해서, 잘 생각해보면, 환경적인 면에서 그다지 차이가 큰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문제는 당분간 화석연료 대안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2007년 GDP가 약 1조 달러인데 석유 수입이 세계 3위일 만큼 에너지 수입액이 2007년 기준 약 1000억 달러이다. 이 금액은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한 금액 합쳐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예서, 한국의 환율을 생각한다면 그대는 경제 센스쟁이다^!^) 게다가 한국은  화석연료의 비중이 굉장히 높고, 이산화탄소 증가율이 세계 1위를 기록이다. 국제적으로 탄소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한국은 다시 ‘나는 봉이야’,라고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게다. 하지만 한국은 원자력만으로 안심할 수가 없다.

 

“일본이 거대 위성을 띄워 우주 공간에서 태양광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프로젝트를 현재 구상 중"이라며 "이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도 없고 원자력 폐기물도 없는 데다 전 인류가 사용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

폐기물 해결책 없는 원자력 대안론 성급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8052621060869018&outlink=1


그렇다면 도대체 삼각위원회 회원이라는 한국 관계자들은 외교를 어떻게 하고 있길래 이러한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클럽 정기 모임에는 오바마 외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존 로버츠 대법원장,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힐다 솔리스 노동부 장관,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새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였다. 한국에선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초대됐다. 정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축하한다. 전 세계는 성공하는 미국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잘하길 바란다"고 말했고,오바마 대통령은 "고맙다"고 답했다고 정 최고위원 측은 밝혔다.”

오바마가 찾은 美 최고 사교클럽 `알팔파`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0298011


“현대중공업은 이미 군장국가산업단지 내 181만㎡(약 55만평) 부지에 세계 최대 건조도크(700m×115m×18m)와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1650톤) 등 모든 선종의 선박 건조가 가능한 대형조선소를 1조 2천억 원을 투자하여 2009년 8월 준공목표로 건설을 한창 진행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산업 외에 저탄소 녹색성장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풍력발전사업을 전라북도에서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에 풍력발전설비 대규모 투자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44704&sc=naver&kind=menu_code&keys=25


이렇듯 한국에서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2015년까지 전기자동차 100만 대를 생산하고, 가솔린과 에탄올을 동시에 연료로 쓸 수 있는 자동차를 살 경우 7000달러의 세금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당선인의 공약 때문인지 첨단 미래기술의 산실인 일리노이 주의 국립 아르곤 연구소에는 활력이 넘치고 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1070081


울트라슈퍼버블 준비는 잘 진행되어가고 있다. 이제 2015년 이내 한반도 통일이라는 재료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만을 지켜보면 될 듯싶다."

알파파가 전기자동차를 노이즈마케팅 했나? 국유본론 2009

2009/02/05 15:1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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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 

요즘 기름값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전기차가 이슈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저속 전기차(중소기업 주도)가 언론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슈와는 다르게 정부에서는 전기차 보편화에 말만 적극적이지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조금도 고속 전기차만 지원해주다고 하고 충전시설 인프라 구축도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저속전기차가 도심을 운행하려는 지금 정부는 아직도 먼가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속전기차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기아차는 올해는 전기차 시험운행을 하고 내년(2010)이후부터 본격 생산 및 시판을 한다고 합니다. MB와 현대가와의 인연 때문에 발생하는 밥그릇 보호인가요. 아님 국유론의 전기차 보편화 전략이 2011년 이후일까요?

 

INDRA:

글 고맙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인월리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순수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는 비슷한 것 같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다. 보통 휘발유차의 부품 수는 2만개, 전기자동차는 7천여 개인데 반하여 하이브리드는 2만 3천개다.”

알파파가 전기자동차를 노이즈마케팅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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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저 위의 부품 수는 곧 국내시장 일자리를 의미한다. 자동차 산업이 수익율 면에서 영화산업이나 반도체산업보다도 안 좋다하나, 여전히 효자 산업인 이유는 무엇인가. 고용 창출 능력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이란 현대자동차를 정점으로 하여 1차 협력업체서부터 시작해서 2차, 3차 협력업체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여기에 동네마다 있는 정비업체까지 고려한다면. 게다가 반도체에 비해 대부분 부품소재 시설장비가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헌데, 저 위의 부품 개수를 비교해보자. 휘발유차 부품 수 2만개, 전기자동차 7천개.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절반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술 개발이란 에디슨과 테슬러에서도 알 수 있듯 철저하게 자본에 종속이 된다. 해서, 님은 고민해보아야 한다. 만일 님이 전기자동차로 인해 님의 직장이나 혹은 님 부모님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해도 전기자동차에 찬성할 것인가. 이 문제를 찬반을 떠나 잘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이를 전제하고, 이명박과 정몽구는 영웅시대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달리 개인적으로는 별로 안 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이 현대건설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태가 있었다는 비화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정몽구는 지난 정권 때부터 한나라당과 친일매국수구민주당 양쪽에 절묘하게 줄타기를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이번 금속노조의 현대자동차 비판 뉴스가 친일매국수구찌라시들인 한경오프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아울러 전기차 문제는 배터리 문제가 핵심이다. 배터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전기차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해서, 이것은 이명박이 현대 밥그릇 보호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이슈가 된 문제이므로, 이는 이명박 손을 떠난 문제다. 해서, 후자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국유본의 지원으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강력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해서, 안심하기를 바란다. 노무현보다는 약간 더 이명박에게 권한이 주어졌다 하나 이명박 역시 김대중, 노무현처럼 국유본의 얼굴마담, 로봇일 따름이다."

천안함은 침몰하지 않았다 침몰한 것은 천암함이다 국유본론 2010 

2010/05/07 07:11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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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로스차일드VS 데이비드 록펠러 : 모겐소 계획과 로마클럽, 탈산업화, 리콜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4/04 

 

대부분의 음모론에서는 로마 클럽을 중시합니다. 허나, 인드라는 로마 클럽을 대단치 않게 봅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드립니다.

 

로마 클럽은 1965년 데이비드 록펠러의 사유지인 이탈리아 Bellagio에서 열린 "세계 지배의 조건 - The condtions of World Order" 란 컨퍼런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68년 이 그룹은 1968년 데이비드 록펠러 후원으로 로마 클럽(Roma Club)으로 명칭하고,  "성장의 제한: Limits to Growth"이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후원이라니 뭔가 있음직해보입니다. 책도 내놓구요. 특히 로마클럽을 주목하게 한 인물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일급 정보원 출신이며 '300인 위원회'의 저자인 존 콜먼일 것입니다.

 

"로마 클럽은 빌데르베르크 회의 (Bilderberg Conference) 와 함께 아직도 300인 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지부이다. 로마 클럽은 원래 모건소 그룹 (Morganthau group) 의 핵심 멤버인 고(故) 아우렐리오 페체이 (Aurellio Peccei) 가 1968년에 건 한 통의 전화로 이루어졌다.

이는 현재 '신세계질서' 라고 부르는 단일세계정부의 계획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단일 세계정부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는데, 신세계 질서보다 훨씬 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세계질서라는 이름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어서 혼란을 빚지만 단일세계정부는 그렇지 않다.

페체이의 전화에 호응한 사람들은 미국, 프랑스, 스웨덴, 영국, 스위스, 일본에 있던 가장 파괴적인 '미래 입안자들'이었다. 1968년에서 1972년까지 로마 클럽은 신과학의 과학자, 세계주의자, 미래 입안자, 국제주의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밀착된 기관이 되었다. 페체이가 지은 책 <인간의 자질>은 NATO 의 정치적 좌익세력이 채택한 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다음은 <인간의 자질>에서 발췌한 글이다.

"기돌교 국가들이 첫 밀리니엄을 맞이한 이래 처음으로 군중은 정말 자신들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미지의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여 가슴을 졸이고 있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진정한 의미의 현재인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사악한 용의 이야기를 지어냈지만 만약 그런 사악한 용이 있다면 '그건 인간 자신이다'...... 마치 모래 함정에 빠진 것처럼, 우리 인간은 뛰어난 능력과 성취로 인해 힘을 많이 쓰면 쓸수록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우리는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병적 상태와 전체 인간 시스템에 대한 부적응을 단지 주기적 위기나 일시적 현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지겹도록 되풀이해서 말해야 한다. 신기술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던 때부터 인간은 무절제한 인구 증가, 성장에 대한 열광, 에너지 위기, 현실적 또는 잠재적 자원부족, 열악한 환경, 어리석은 핵무기와 관련하여 많은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이는 훨씬 나중에 로마 클럽이 산업 발전을 둔화시키기 위해 내세운 가짜 '환경보호운동'의 프로그램과 일치한다.

로마 클럽의 예상된 대응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탈산업화' 아이디어를 꾸며내어 널리 퍼뜨리고 이를 반문화운동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마약, 로큰롤, 섹스, 쾌락주의, 악마주의, 마술, 환경보호론 등이다.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 (Tavistock Institute), 스탠퍼드 연구소 (Stanford Research Institute), 사회관계연구소 (Institute for Social Relation) 등 사회정신학에 관련된 광범위한 연구조직들은 로마 클럽에 대표나 자문위원을 보내고 '물병자리 음모 (Aquarian Conspiracy) 를 채택하기 위한 NATO 의 계획에 지도적 역할을 해냈다.

단일세계정부라는 이름은 몇 세기에 걸쳐 알려진 반면, 신세계질서라는 이름은 1991년에 벌어진 걸프 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듯하다. 신세계 질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오랫동안 여러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며 발전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미래의 발전'으로 이해하면 잘못 안 셈이다. 신세계질서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단일세계정부라는 용어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아우레리오 페체이는 가까운 친구인 알렉산더 헤이그 (Alexander Haig)에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자신을 ' 환생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로 여기고 있었다. 바이스하우프트의 탁월한 능력을 많이 지닌 페체이는 현대의 일루미나티를 조직하고 조종했다. 그는 이어 NATO를 조종하고 그 정책을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페체이는 대서양 경제위원회를 30년 가까이 이끄는 동안 조반니 아넬리 ( Giovanni Agnelli) 의 피아트 자동차회사의 최고경영자였다. 아넬리는 같은 이름의 이탈리아 검은 귀족 가문의 멤버이면서 300인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회원이었다. 그는 소련의 경제개발계획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로마 클럽은 앵글로아메리칸 자본가들과 유럽의 유서깊은 검은 귀족 가문들, 특히 런던, 베네치아, 제노바의 이른바 '귀족' 이 결합한 대표적인 음조 조직이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경기후퇴와 불황을 불러오고 그에 따른 관리능력을 보유해야만 한다.

300인 위원회가 목표로 삼는 것은 불황에 뒤이은 사회적 혼란을 세계적 규모로 차츰 확대하여 이 지구상에 '복지원조'를 받게 될 사람들은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300인 위원회는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의 대부분을 폴란드의 지주 펠릭스 제르진스키 (Felix Dzerzhinsky) 의 철학에 기초를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인간을 가축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여기고 있다.

영국 정보부에 근무하는 친구인 시드니 라일리 (Sydney Reilly. 볼셰비키 혁명 때 실제로 제르진스키를 조종했다) 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는 가끔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제르진스키는 붉은 테러단 (RedTerror apparatus) 을 이끌었던 괴물이다. 다음은 그가 술집에서 라일리에게 한말이다.

"인간은 하찮은 존재야. 며칠만 굵기면 어떻게 되는지 보라구. 살아남으려고 죽은 동료들을 먹기 시작하지. 자신이 살아남는 일밖에 관심이 없어. 가치있는 건 그것뿐. 스피노자 (Spinoza) 의 말 따위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로마 클럽은 또한 정보기관을 따로 가지고 있으며 데이비드 록펠러의 인터폴 (Interpol) 에서 '자금을 빌리고 있다."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들은 그들과 밀접하게 협조하는 사이이며 KGB 와 모사드 (Mossad)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유일한 기관은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시 (STASSI) 였다. 로마 클럽은 고도로 조직화된 자신만의 정치. 경제기관을 가지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에게 300인 위원회의 주요 인물인 폴 볼거 (Paul Volker)를 유임시키도록 종용했던 것은 로마 클럽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후보에 나섰을 때 당선되자마자 볼커를 면직시키겠다고 공약했으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인 볼커는 자리를 지켰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 중요한 역할을 한 뒤 로마 클럽은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케네디 (Kennedy) 대통령에게 팔려고 했다. 타비스톡 인간 관계연구소의 과학자들 몇 명은 대통령을 만나 그 내용를 설명했으나 케네디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했다.

다음해 케네디가 암살되자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는 워싱턴에 돌아와 미국 우주항공국 (NASA)과 회담했다. 그 회담이 성공하자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는 NASA와 계약을 맺고 다가올 우주 프로그램이 미국 여론에 미칠 영향을 평가했다.

계약이 체결된 뒤 이 사업을 하청받은 곳은 스탠퍼드 연구소 (SRI)와 랜드사 (Rand Corportaiton) 였다. 타비스톡, 스텐퍼드, 랜드가 만들었던 자료의 대부분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봉인되어 있다.

내가 정보를 얻으려고 접근했던 상원 감시위원회와 소위원회에서 들은 말은 "그런 말을 한마디로 들어본 적이 없다" 였고, 내가 구하려던 정보를 어디서나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300인 위원회의 힘과 위세는 이처럼 막강하다."

 

한국 인터넷에 유포되는 상당수 음모론들은 국유본이 필요에 의해서 유포하였고 출처가 해외에서 번역한 글입니다. 또한, 번역한 사람이나 옮기는 사람이나 관련 지식이 부족합니다. 가령 존 콜먼 경우에는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어서 정보원답게 진실과 거짓을 적절하게 섞어서 출판했지만, 어지간한 이들은 이를 눈치챌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진도를 나갑니다..

 

모간소, 혹은 모겐소부터 살펴봅니다. 모겐소는 유태인으로 루즈벨트 정권에서 일한 친소 반독 강경파였습니다. 모겐소 계획은 독일을 재건하는 마샬 계획과 달리 독일 제조업을 완전 파괴하고 낙농업 국가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해서, 모겐소 계획은 독일 제조업에 상당한 지분이 있는 국유본 귀족들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대신 마샬 계획이 진행되었습니다.

 

페체이는 모겐소 그룹 일원입니다. 모겐소 그룹은 국유본 귀족 그룹에서 초강경파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유본 수뇌부더러 빨리 신세계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강경파인 것입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도 강경파였는데, 빅터 로스차일드보다 더 강경하니 초강경파였던 셈입니다. 이런 노선이니 페체이도 친소 반독 초강경파 노선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겐소 그룹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접근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빅터 로스차일드 위상이 1960년대부터 흔들린 데 기인합니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설계한 UN, 빌더버그, 브래튼우즈 체제가 1950년대말 1960년대초 크게 흔들립니다. 경제사에서는 '달러 위기' 사태라 부르는 사건입니다.

 

"1960 년대 들어 미국의 국제수지 악화를 배경으로 달러화의 신인도가 급격히 저하되어 달러화의 불안정이 고조되었던 상황을 말한다. 1958 년 이후 준비통화국인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악화된 반면 일본 등 각국의 국제수지는 흑자로 돌아서 달러보유고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각국은 미국에 금태환을 요구하였으나 미국이 이에 원활히 대응하지 못하자 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금가격이 폭등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커다란 하락압력에 직면하였다.  결국 미국은 1971 년 닉슨선언으로 달러의 금태환보증을 포기하게 되었고 달러가치 안정에 기초한 고정환율제도는 점차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515&docId=48950&mobile&categoryId=1163

 

빅터 로스차일드의 세계경제체제였던 제한적 금본위제인 브래튼우즈체제 핵심은 미국-유럽-일본 교역 구조였습니다. 헌데, 교역이 일방적이라면 교역 구조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쌍방적이어야 교역이 성립하죠. 일방적이면 어떻게 됩니까. 이는 2차 대전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당시 유럽과 일본은 물자 부족에 허덕였고, 미국은 유럽과 일본에 물자를 대량 수출했습니다. 헌데도 유럽과 일본 경제는 더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해서, 빅터 로스차일드는 마샬플랜과 한국전쟁을 통해 독일과 일본 경제를 살린 것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일본 경제가 산 것은 99% 빅터 로스차일드 결정 덕분인 것입니다. 1%는 독일인의 유대인에 대한 겸손과 쪽발의 야동인 것입니다.

 
해서, 독일과 일본 제조업 재건은 일타 삼피였던 것입니다.

 

하나, 세계경제체제를 미국, 유럽,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국유본이 독일과 일본에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이차대전 중 연합폭격 대상에서 배제된 독일 제조업 공장은 말할 것없고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같은 것이 국유본 소유였습니다. 일본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전후 해체되었다가 다시 결집된 일본 재벌도 명의만 일본 소유이지, 실제는 국유본 소유입니다. 오늘날 삼성, 현대기아, 포스코 등이 국유본 소유이듯이 말입니다. 명의만 이건희 소유인 것입니다.

 

둘, 제조업을 독일과 일본에 집중시키되, 독일과 일본 외교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중요한데, 전후체제에서 독일과 일본은 패전국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국에서 배제됩니다. 그만큼 외교력을 제한받지요. 이런 제한 조치를 두고서 국유본은 독일과 일본을 키운 것입니다. 국유본이 만일 영국과 프랑스를 키운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만큼 영국과 프랑스 지도부는 국유본 수뇌부에 위협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마지막 대통령, 드골이 위협적이 되어서 국유본 수뇌부 기획에 대항하여 프랑스를 키우려다가 68혁명으로 축출당한 겁니다.

 

국유본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독일과 일본 경제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서, 빅터 로스차일드가 나찌장교 전력 의혹이 있는 네덜란드 왕자와 빌더버그를 만든 만큼 독일 자동차회사들을 보면 히틀러 나찌즘과 많이 연결됩니다^!^

셋, 브래튼우즈체제가 성립하려면 미국 제조업이 정체상태에 빠져야 합니다. 미국이 제조업도 강하면 독일과 일본은 미국에 팔 물건이 없게 됩니다. 해서, 국유본은 핵심 기술을 독일과 일본에 이전시킵니다. 반면, 국유본은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독점이다 뭐다 해서 별별 트집을 다 잡아서 해체시키거나 망하게 합니다.

 

대신, 미국은 농산물과 헐리웃 문화상품만 팔게 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해외에서 수입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브래든우즈체제였고, 이것이 최초로 깨진 것이 1960년대초 달러 위기 사태였던 것입니다.

 

예서, 데이비드 록펠러가 나선 것입니다. 하면, 왜 빅터 로스차일드는 나서지 못했을까요? 이차대전 직후 빅터 로스차일드는 겉으로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산을 이차대전 전비로 다 쏟아부었다는 해명이었습니다.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그랬다면 빅터 로스차일드가 전후 빌더버그 체제나 유엔체제, 경제기구인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을 만들지 못했겠지요. 또한, 이스라엘 모사드, 영국 MI5, 소련 KGB, 미국 CIA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장파산한 상황에서 배후에서 세계정복을 노리는 모습. 그것은 007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으로 곧잘 묘사되지요. 그것이 빅터 로스차일드였던 셈입니다. 1960년대부터 빅터 로스차일드와 국유본 귀족간 갈등이 이처럼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한편으로 신세계로 빨리 가자는 모겐소파나 시온주의파 등 초강경파를 다독이면서 다른 한편 국유본 귀족들더러 이권을 양보하라고 계속 호통쳤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시기부터 빅터 로스차일드는 소련 스파이라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소련이 빅터 로스차일드 스파이였습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소련과 소련 공산당도 지배했으니까요. 이에 대해 국유본 귀족은 이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세계로 갈 수 없다. 가더라도 천천히 가자는 입장이었고, 이러한 국유본 귀족 입장을 대표한 것이 데이비드 록펠러였던 것입니다.

 

하면,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마클럽을 후원한 것은 빅터 로스차일드에 대한 반역 움직임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파산을 선언한 상태였기에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후원을 할 수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비록 1960년대에 우라늄 광산 건설로 부활했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이 조치 역시 파산상태가 십년이 넘게 오래 가니까 정말 파산했나 하는 이들이 많이 생기고 그만큼 국유본 권력이 흔들리니까 취한 조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 시기는 빅터 로스차일드 권력이 강력했던 시기였습니다. 다만, 196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빅터 로스차일드 핵심 권력기반 중 하나인 정보부 권력을 잃게 됩니다. MI5에서 물러나고 소련 KGB에 있던 케임브리지 파이브링 친구도 잃고 미국 CIA는 점차 영국 MI5에서 자립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처럼 빅터 로스차일드 권력이 위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권력 공백 상태가 나타나고, 여기에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 CFR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와중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취한 조치는 소련과 유럽 국유본 귀족들 조심스런 회유였던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빅터 로스차일드를 충성을 서약하고 대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입니다.  

 

친소반독 초강경파 모겐소 그룹은 빅터 로스차일드가 전후 처리에서 자신들이 소외받자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불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초강경파를 데이비드 록펠러가 후원한다? 딱 그 정도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데이비드 록펠러는 거의 백년간 병신 신세였던 프랑스 대동방파 프리메이슨도 후원하여 1973년에 부활시킵니다. 1973년은 국유본 권력교체 해입니다.

 

이처럼 데이비드 록펠러는 차분하게 빅터 로스차일드를 최측근으로 보좌하다가 1973년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빅터 로스차일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입니다.

 

하면, 로마클럽이 한 일은 무엇인가요? 아이디어를 제공했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초강경파를 최소한 중립으로 만들기 위해 후원해주었을 뿐입니다.

 

탈산업화 프로그램이란 것도 로마 클럽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겐소 계획에 이미 있던 것이고, 그 대상도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파시즘 국가가 대상이었습니다.

 

헌데, 이를 미국에 적용한다? 미국을 낙농업 국가로 만든다?

 

이건 모겐소 계획이 아니라 빅터 로스차일드 계획이고, 그 이론적 배경도 맬더스에서 이어지는 경제학 계보가 있고, 데이비드 록펠러는 오히려 이에 대해 미국 산업을 일으킬 생각이었으나, 권력투쟁이 우선이었기에, 대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령 요즘 네팔에 가서 병쉰짓하는 뉴라이트 카터는 미국 제조업을 일으키고 싶어하였지만, 국유본이 허락하지 않았지요.)

 

탈산업화 프로그램, 달 나라에도 갈 수 있는 미국이 왜 귀족 자동차, 서민 자동차 하나 제대로 못 만들까요?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이 만들면 세계 경제가 무너지므로 핵심 기술을 주어서 나찌 후예나 군국주의 일급전범더러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해서, 자동차 생산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르노를 아무 국가에서나 만들 수 없게 비밀 규약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종교계에서는 기독교든, 이슬람이건, 증산도든, 원불교, 통일교, 불교, 신흥종교이든 음모론에는 다들 빠삭하게 아는 편인데, 이들 종교계 결정적인 문제는 경제 문제에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경제 문제에 무식하니까 이론적으로 좀 아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경제 공부 좀 하세요. 숲만 보지 말고 나무도 보세요. 아울러 해외에서 나온 음모론 신봉하지 마세요. 그거 대부분 국유본이 유포한 음모론입니다. 맹신하면 병쉰됩니다. 한국에는 아고라 같은 데에 병쉰들이 많지요. 호구들 낚으려는 아주 나쁜 쪽발지태놈현빠 같은 넘들 많은 데가 아고라이니 안 가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습니다.

 

반대로 경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지요. 큰 그림 자체를 백안시하지요. 드러나더라도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고 하고 분석적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큰 고기를 다 놓치니 공치는 것입니다.

 

탈산업화 프로그램과 미국 자동차 산업, 그리고 리콜 사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분량이 많이 길어지는군요. 다음에 해야겠습니다.

 

제조업의 양적완화, 리콜 :

쪽발타도해방투쟁과 한반도 통일로 동아시아 시장을 키우는 것이

미국 자동차 산업 근본 해결책이다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4/05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농업 도시로 변모중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모겐소 계획’을 세워 전범국가 독일을 16세기식 농업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제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웠던 독일의 막강한 산업 기반을 완전히 파괴해 놓아야 전쟁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기본 논리였다.

이 같은 모겐소 계획은 구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돼 독일을 다시 산업국가로 일으켜야 할 전략적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서류상의 계획으로 끝났다. 아마도 냉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벤츠와 BMW는 물론 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각종 독일산 공산품을 구경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독일은 아마도 오늘날 불가리아나 알바니아와 비슷한 유럽의 낙후된 가난한 농업국가로 머물렀을 수도 있다. 최고의 산업국가, 산업 중심 도시가 농업 지역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였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이 같은 농업도시로의 회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공업의 상징 디트로이트가 빠르게 농업도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쇠퇴하면서 도시 자체가 쇠락하는 이유도 있지만 첨단 농업 시설을 유치해 도시에 새 삶을 불어넣으려는 한 재력가의 도시 재생 플랜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최신호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중심 도시였던 미국 디트로이트가 금융 위기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침체 와중에 대규모 농업 도시로 변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천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의 재력가를 중심으로 디트로이트 시내에 대규모 첨단 농장지대를 조성하는 투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디트로이트의 부유층 펀드 매니저인 존 한츠(48)가 황폐한 땅으로 변해가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2010년 봄 이후 3000만 달러를 투자, 농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것. 한츠는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 등에 20여 개 사무소와 500여 명의 임직원을 두고 13억 달러의 자산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스타 금융 서비스 기업인이었다.

금융 위기와 도시 황폐화가 1차 원인

한츠는 거주지인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도시 외곽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폐허가 돼 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디트로이트를 농업 도시로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얻었다. 1억 달러의 자산가이기도 한 한츠는 디트로이트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다. 한때 인구 200만의 미국 내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는 지금 빈 땅이 즐비하고 인구는 90만 명으로 줄었다. 조만간 인구는 70만 명가량으로 더욱 감소될 전망이다. 탈산업화 시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디트로이트는 비어 있는 오피스 건물과 폐가가 늘어서 있고 곳곳에 빈 황무지를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http://magazine.hankyung.com/main.php?module=news&mode=sub_view&mkey=1&vol_no=736&art_no=3&sec_cd=1658

 

이렇듯 미국 자동차산업이 그간 어떠하였길래 쇠퇴하게 된 것일까요?

 

 

미국 자동차산업 쇠퇴는 고의적 진부화가 원인

http://tyruty.tistory.com/16

 

이에 대해 강준만은 고의적 진부화가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다시 말해, 미국 자동차 전문경영인들의 경영정책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인드라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http://blog.naver.com/mehta72/60059614073

 

강성노조와의 협약 때문이라는 데에 인드라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곰파스가 누구인가. 유태계로서 아버지가 담배수입상이었다. 당시 노동기사단의 회원 자격은 법률가나 금융가가 아닌 모든 이들이 회원 자격이 있었다. 노동자만이 회원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해서, 곰파스처럼 13세에 아버지 일을 이어 연초사업에 뛰어든 이도 노동기사단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곰파스는 노동기사단을 탈퇴하여 독자적 노동조직을 만드는데 이것이 악명을 떨친, 백인 반공 노동단체 AFL이다.


당대 미국 파업운동은 어떠했나. 요즘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 대통령은 경찰이 아니라 군부대 동원을 명령하였고, 군대와 노동자부대의 격렬한 대결로 끝이 나곤 했다. 1893년에 풀먼 철도 파업이 일어났을 때는 대통령이 군대를 보냈다. 그때와 지금은? 지금이 장난에 불과할 지경이다. 가상체험하려면 당대를 그린 영화를 참고하라.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건은 헤이마켓 사건이다. 무정부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라 여기는 8시간 노동시간 쟁취로 유명한 헤이마켓 사건으로 인해 노동기사단이 몰락하고, 보다 온건한 AFL이 노동계를 장악하였으니까.


이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금융자본은 의도적인 공황을 일으켜서 현존하는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권을 내세우려 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처음이 아니며, 상용하는 수법이었다. "

국제유태자본과 매키니, 그리고 오바마 국유본론 2008
2008/07/24 04:3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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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본은 유태인 하부조직을 통해 얼마든지 당대 미국 노조를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 통제에 따르는 미국 노조를 보호하고 키우는 대신, 자신들에 반대하는 미국 노조들을 쇠퇴시켰습니다.

 

'호파' 같은 영화들을 보면, 국유본이 얼마나 미국 노조를 통제하기 용이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이나 항공노조나 노조같지 않은 노조, 언론기자 씨발색희들, 전교조 같은 좆같은 색희들이 돈만 처먹는 철밥통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1970년대 이후 미국 노동자들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답니다. 이제 노동자도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닌 겁니다. 쪽발지태놈현빠에 빌뭍어서 다른 노동자 착취하는, 더 이상 노동자로 불리기 힘든 귀족 기득권층이 따로 있는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진숙과 같은 노동정치자영업자 쉬발년을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은 물론 조중동문스 국유본 언론과 정치권에서 엄청나게 키우지 않습니까? 그와중에도 여타 다른 노동자들은 국유본 언론 외면 속에서 신음하고 죽어가지요. 여러분, 허세욱 모르시죠? 처음 들어보죠? 또 노동자신문이 폐간되는 등 암울했던 쪽발놈현정권 치하에서 뉴또라이 노회찬 병쉰색희가 노동현실 외면하고 금뱃지에 도취했을 때 죽어가던 노동자들 모르시죠? 이런 것이 국유본 세상입니다. 

 

물론 지금 쪽발민주당이 지지하는 척합니다. 허나, 쪽발돼중 때 전철연이 어떤 대접받았나요? 병신취급받았지요. 헌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정부 때 살판났지요? 바로 이런 겁니다. 이것이 국유본 세상인 겁니다. 이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서민은 쪽발돼중 때나 쪽발놈현 때가 죽을 판이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가 살판이라는 걸 말입니다. 이 역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쪽발나라도 비슷하잖아요. 쪽발노다 병쉰색희 부패민주당 시절에는 없던 것이 쪽발아베 쒸발색희 시절에는 각종 복지정책 등이 등장하고 노동자 임금도 올리잖아요? 이런 역설을 잘 보셔야 합니다. 해서, 인드라가 쪽발 부패민주당이 영구집권하기를 바랬던 것 아니겠습니까. 쪽발나라 망하라고. 반면, 쪽발에서는 쪽발돼중, 쪽발놈현이 영구집권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이 망하니까.

 

허나, 전문경영인에 의한 단기 성과 의주의 경영이라는 대목에서는 동의합니다.

 

왜 그럴까요?

 

스탈린과 히틀러가 우상처럼 숭배했던 프리메이슨, 헨리 포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헨리 포드는 반유대주의자인 동시에 프리메이슨이었습니다. 해서, 당대 국유본 권력인 로스차일드 입장에서는 마땅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당대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대인 조직을 강화시키는 대신 프리메이슨 조직에 비판적이었던 데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배후에서 조종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당대 국유본 권력 로스차일드 가문 최대 화두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자본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드라가 강조했습니다. 국유본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정치도, 종교도 아닌 또 다른 자본이라고 말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상인 신경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가인 것입니다.

 

해서, 국유본은 세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하나,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만들어서 미국이란 나라 자체를 금융으로 통제한 것입니다. 자신들 뜻대로 가지 않으면 미국을 파산시킬 수 있는 힘을 보유한 것입니다.

 

둘,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과 같은 금융제도를 만들어서 미국 금융자본을 통제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들 수 있는 금융자본을 사다리 걷어차기로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셋, 독점 방지, 주주자본주의를 만들어서 역시 사다리 걷어차기 일환으로 미국 산업자본을 통제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유럽 유대인재벌들은 대부분 비밀 가족경영을 수백년에 걸쳐서 합니다. 주식 상장도 안 하는 편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기업을 인수한 국유본 기업이 상장 폐지하는 사례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혹독하리 만큼 공개 전문인경영을 강제합니다. 온갖 법률을 들이대어 기업을 해체시켜버립니다. 다시 말해, 기업할 의욕을 꺾어버립니다.

 

예서, 로스차일드 국유본은 록펠러에 대해서는 이미 엄청 큰 재벌인데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만들 때 협조대상이었기 때문에 죽일 수는 없고 겁만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차일드는 결국 록펠러에게 먹히고 말지요.

 

헨리 포드를 보면, 당대 국유본과 반대로 행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유본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미국 개입을 시키려는데 미국 참전을 반대합니다. 이외에도 노동자를 가족처럼 여기면서 당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으로 고임금 복지정책을 펴면서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당대 미국 노조에 유태인이 암약하여 미국 노조를 좌지우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헨리 포드는 그 자신이 직접 대통령으로 나설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한 국유본 입장은 어떨까요?

 

국제유태자본 하수인이었던 루즈벨트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포드사를 국유화해야 한다.

 

포드사는 유능했던 아들도 잃고 헨리 포드도 사망하면서 주인없는 기업이 되고맙니다.

 

하면, 그 이후로 포드사는 누가 경영했을까요?

 

인드라는 맥나마라를 듭니다.

 

로버트 맥나마라.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맥나마라였습니다. 그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삼킨 업적을 평가받아 케네디 당시 국방장관이 되어 이후 베트남전쟁을 오랜 기간 진두지휘하고, 사임한 뒤에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습니다.

 

후일 국방부장관이 되고,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맥나마라이니 만큼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맥나마라 이후 포드사가 망했다는 건 국유본이 포드사가 망하기를 바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인드라가 이전 글에서 강조했듯이 달나라에도 가는 기술력이 미국에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쇠퇴했습니다.

 

왜이겠습니까.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입니다.

 

국유본이 미국에서는 농수축산업, 문화산업, IT산업, 군수산업을 제외한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기업가 정신을 탄압했던 것입니다. 해서, 미국인이 애플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는 전문 경영인이기 보다 오너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참고로 군수산업이야 전세계 51%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해야만 하는 사정 때문에 이해하지만, IT산업은 왜 예외였을까요?

 

그것은 IT산업 역시 군수산업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구글은 전세계에서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전세계 인터넷과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실시간 검색순위가 보입니까. 그걸 다 구글이 조작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 실력으로는 절대 못합니다. 어렵지 않은 간단한 기술로 여러분 쪽지나 메일, 비밀글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구글입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 역할이 인정되지 않습니까.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세상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24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가 왔습니다.

 

고의적인 진부화, 소형차 개발 미흡 등의 문제. 이런 문제는 정말 간단하지 않습니까.

 

고의적인 진부화가 문제라고 합니다. 허나, 기계공학도인 인드라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이미 당대 자동차 엔진 기술은 충분하게 앞섰기 때문에 굳이 기술개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헨리 포드 정신대로 서민이 사기에 저렴한 차를 만들면 되었던 것입니다. 국민차 말입니다.

 

하고, 미국에서는 대신 규제를 하나 풀었지요. 튜닝을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본만 제공하고, 돈 있고,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개조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1970년대입니다. 이 시기는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연료 효율이 좋은 차가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미국 자동차회사가 1970년대 이전까지 고의적인 진부화 경영정책을 내세워서 안일하게 장사를 했다손 치더라도 고유가 시대에서 얼마든지 시설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단기적 마인드에 집착하여 장기적 마인드를 등한시하여서 시설투자를 하지 않았다구요?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입니다. 시설투자와 연구개발에 적극적일 정도로 의욕적인 CEO가 나타나면 김종훈을 짤라내듯이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제거하면 되니까요. 대신 병쉰같은 넘을 마치 영웅인 듯 내세워서 모피아 병쉰색희들처럼 단기적 마인드에

치중하게 만들면 됩니다.

 

기술력이라구요? 세상의 핵심기술은 나사(NASA)를 비롯한 미국 군수산업에 있습니다. 국유본이 이곳 기술 중에 B급 중에서 쓸만한 것을 그때그때마다 유럽, 일본으로 기술이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러시아나 중국으로 말입니다. 근래에는 한국, 북한으로도 기술 이전합니다.

 

국유본이 결심했다면, 미국 자동차회사는 설사 독일이나 일본보다 뒤늦더라도 1970년대 대대적인 시설투자을 했다면 오늘날 독일 자동차 회사나 일본 자동차 회사는 파산했을 것입니다.

 

허나, 당대 닉슨, 포드, 카터 때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이 늘 불만이었던 것이죠. 쌍둥이 적자라는데 무역적자 해소하려면 미국 제조업이 살아야 하고, 미국 제조업이라면 대표적인 업종이 미국 자동차 산업인데, 미국 자동차 산업만 살리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는 것인데, 국유본이 허락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면, 그대가 오바마라면 국유본에게 어떤 방안을 요구할까요?

 

국유본은 절대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흥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허나, 오바마는 미국 제조업이 살고, 미국 경제가 살아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방법은?

 

그래요. 양적완화와 같은 것입니다. 미국 달러는 갈수록 부실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건강하게 만드는 건 국유본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면 방법은?

 

그래요. 같이 부실화하는 방안인 것입니다.

 

엔 고환율정책처럼. 각국 주요 자동차회사도 리콜 사태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면, 일시적으로 미국 자동차가 잘 팔릴 수가 있어요. 최근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소형차 시장에서도 소폭 증가했다고 합니다.

 

독일차 리콜, 쪽발차 리콜, 한국차 리콜인 것입니다.

 

제조업의 양적완화 정책이 리콜 정책인 것입니다.

 

하나, 미국 양적완화를 위해 유럽, 일본 양적완화를 해야 합니다.

 

둘, 미국 실물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양적완화로 다른 나라 실물경제가 살아나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일본 자동차 생산은 미국 생산 부문을 제외하고 위축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니 미국 경제에 보탬이 되고, 리콜되니 본사인 독일, 일본, 한국 경제를 약화시킵니다.

 

셋, 리콜사태로 미국 소비자들이 미국 자동차를 삽니다. 미국 자동차는 아무런 기술개발, 디자인 개선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해서, 인드라가 이런 점을 현대기아차 정몽구가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리미리 알아서 소규모로 잦은 리콜을 하라고 정몽구에게 주문한 바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명하게 처신하라고 말입니다.

 

왜? 왜? 왜?

 

제이 록펠러가 사이버방위사령관이자 교통문제 전담 의원이기 때문입니다.

 

리콜하면 제이 록펠러인 것을 잊지 마세요.

 

인드라는 현대기아차 리콜사태에 관해 제이 록펠러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인드라가 제이 록펠러였다고 해도 같은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현대 정몽구는 좀 더 철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최근 현대 노조가 생산을 미루는 태업을 하는 듯한데 이것 역시 제이 록펠러 지시사항이라고 인드라는 보고 있습니다. 한국 생산을 줄이고 흑자 규모를 축소시켜야 하니까요.

 

 

다 이해합니다.

 

대신 평양 주세요.

2013년, 통일하기 좋은 해입니다.

 

어차피 상기한 조치는 한계가 있습니다.

리콜이 불가피한 이유는 세계 생산물을 미국시장에서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를 맬더스적으로 풀 것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적 계보로 풀어봅시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교역이 세상을 새누리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중국 내수를 미국 시장만큼 더 확장해야 하겠습니다.

한반도 통일이 빨리 와야겠습니다.

만주를 포함한 동아시아 시장을 미국시장처럼 만든다면

미국 자동차 산업을 더 이상 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헨리 포드가 어떤 사람인지 잠깐 살펴볼까요?

 

 

""1903.8 포드의 첫 차 'A형'출시,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가다

“우리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가족 또는 개인이 운전이든 정비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자동차입니다. 현대 기술을 총동원하여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고의 성능과 재질을 가진 차를 만들겠습니다. 그 가격은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쌉니다.”

 

1908년,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면서 내세운 광고였다. 그리고 포드는 앞으로 포드 사에서는 오직 T형 하나만을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으로 포드라는 상표를 붙인 자동차는 모두 똑같은 모양, 똑같은 성능을 갖게 될 것이다. 단 색깔만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검은색이기만 한다면!

 

 

"포드가 망하려고 작정했군!"

포드의 이런 대담한 결정을 듣고 가장 소리 높여 환호한 사람들은 미국의 일반 대중이 아니라, 경쟁업체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망하려고 작정했군!” 그들이 보기에 포드는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바라보고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다. 우선 자동차란 사치품이며, 소수의 부유층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다. 부유층은 단조로움을 제일 싫어하며, 개인적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옵션이 전혀 없이 색깔부터 성능까지 오직 한 모델로 승부한다고? 그리고 싼 가격에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내놓는다는 목표는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 같은 시간, 한때 포드의 동업자로 함께 포드 자동차 회사를 창립했던 알렉스 맬컴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옛 친구이자 동료는 끝장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이미 3년 전에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고집하는 포드와 충돌한 끝에 자신의 주식을 팔아 치우고 포드 사를 떠났으니 말이다.

 

일반 대중을 위한 자동차 'T형' 앞에 선 헨리 포드

 

맬컴슨은 1903년을, 포드와 의기투합해서 처음 회사를 세우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때는 모든 게 엉성했지. 하지만 두려울 게 없었는데….” ‘빨리 달리는 차’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오직 속력에만 중점을 두고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주대회에 내보내 당당히 1등! 그 여세를 몰아 마침내 회사를 창립! 목공소 건물에 세를 들고, 제작 기계도 살 수 없어서 하청을 주는 형편이었지만 의욕만은 어떤 회사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해 7월, 그 덥던 여름날, 마침내 포드의 첫 차인 ‘A형’을 내놓았지. 850달러짜리 소형차였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첫 해에 2천 대 가까이 팔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헨리 그 녀석이 고집을 피워서…. “기술자로서는 최고인데, 하지만 경영자로서는 틀렸어….” 포드 자동차의 ‘초대 회장’이었던 맬컴슨은 옛 동료의 몰락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그 안타까움은 당혹감과 괴로움으로 변한다. 포드의 T형이 사상 최초로 연간 1만 대 판매를 돌파했던 것이다. 그 기세는 날로 더했다. 1911년에는 3만 대, 1913년에는 10만 대를 넘어섰으며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T형이 생산되었다. 얼마 후에는 지구상의 자동차 100대 중 68대가 포드의 T형으로 채워졌다.

 

 

'마이 카'시대를 열다

“망할 작정을 했던” 포드는 어떻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자동차는 어차피 소수를 위한 사치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반 대중에서 고객을 찾은 그의 선택이 바야흐로 대중사회로 접어들고 있던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포드는 입버릇처럼 “5퍼센트가 아니라 95퍼센트를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동차라면 복잡해서는 안 되며, 기술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운전과 정비를 척척 할 수 있어야 하고(당시의 자동차는 아주 단순한 정비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유지비도 적게 들고, 비포장도로든 어디든 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싼 값으로 차를 내놓기란 쉽지 않았다. 비싼 차라면 95퍼센트의 대중이 지갑을 열 리가 없다.

 

포드는 이 문제를 ‘생산 공정 단순화’와 ‘합리화’로 해결했다. 오직 T형만을 생산하기로 함으로써 생산 공정은 표준화되었다. 여기에 테일러가 수립했던 ‘과학적 관리기법’을 도입, “노동자가 단 한 순간도 업무에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게 하고”, “작업장의 단 한 뼘도 불필요한 공간이 없도록” 모든 것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조립 라인의 노동자들(1913년)

 

1911년부터는 컨베이어 벨트까지 도입했다. 그때까지는 백화점 진열장 등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되던 컨베이어 벨트를 처음으로 공장에 설치한 포드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벨트의 부품에 노동자들이 일렬로 서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라인 생산 시스템을 창출해냈다. 이로써 작업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져, 1908년에는 노동자 한 사람이 연간 자동차 3대를 생산하는 꼴이었으나 1914년에는 19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08년에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자동차가 만들어졌는데, 1914년에는 24초당 1대가 되었다. 그만큼 가격도 싸져서, 1908년에 900달러이던 T형이 1914년에는 400달러가 되었다. 생산 비용이 줄어든 만큼 종업원의 임금도 후해졌다. 포드 사의 노동자들은 일당 5달러를 받았는데, 동종업계에 비해 두 배에 이르는 고임금이었다. 헨리 포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돈을 벌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포드의 T형 덕분에 미국은, 그리고 곧 이어 세계는 ‘마이 카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노동자도 차를 타고 다닐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말이건, 마차건, 자동차건 ‘자가용 탈것’은 언제나 소수 귀족-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오랜 역사를 마감하는 ‘혁명’이었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했고, 일주일 동안 고된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멀리 여행을 떠나는 풍경이 점차 일상화되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의 생활은 자동차가 없으면 안 되며, 출근, 통학에서 쇼핑, 레저, 뭐든지 자동차 도로를 중심으로 생활의 틀이 짜여 있다. 이런 생활방식이야말로 포드가 “망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포드의 생산 방식과 경영 철학은 T형 자동차처럼 세계로 퍼져나갔고, 컨베이어 벨트에 의한 라인 생산, 과학적 관리기법, 소수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소품종 대량생산은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았다. 학자들은 이것을 ‘포디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포디즘의 그림자도 컸다. 이제는 세계 최대의 부자 대열에 낀 포드는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특별히 고임금을 주고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도 노동쟁의가 벌어지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파업을 벌이다가 경찰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외치는 노동자들의 말에 포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맞는 말이야.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 기계에 비하면 훨씬 못한 존재라고. 그런데도 그들을 고용하고 비싼 임금을 주고 있어.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지?”

 

 

기계를 사랑한 고독한 소년

헨리 포드는 1863년 7월 30일,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있는 디어번에서 태어났다. 디어번은 당시 개발이 전혀 안 된 시골 마을이었고, 주민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했다. 헨리의 아버지 윌리엄 포드는 아일랜드 이민자로, 농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미국으로 온 처지였으니, 아무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미국이야말로 그에게는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남인 헨리는 도무지 농사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대신 공학이니 발명이니 하는 데 흥미가 있었고, 어쩌다가 기계류를 보면 눈을 반짝이곤 했다. 포드네 집 일대에는 자명종 시계가 하나도 없었다. 어린 헨리가 보기만 하면 순식간에 분해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이가 조금 들고부터는 분해했다가 다시 완벽하게 조립해 냈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헨리 포드에게는 인간보다 기계가 친근했고, 그가 존중할 수 있는 인간은 토머스 에디슨 같은 발명가나 패러데이 같은 과학자뿐이었다.

 

젊은 시절의 헨리 포드(왼쪽),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왼쪽에 있는 이가 헨리(1929년)

 

 

청소년이 된 헨리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기계 따위는 제발 집어치고 농사일을 착실하게 배우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심해지자 결국 가출을 해서 디트로이트로 간다. 거기서 작은 공장에 취직했는데, 얼마 안 되어 쫓겨났다.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공장의 업무 과정을 단순하게 고침으로써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고 필요 인력을 줄일 수 있는 기획안을 대뜸 내놓았기 때문이다. 헨리는 노동자들이 노동력 수요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싫어하는 것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에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노동자도 더 많은 임금을 받을 테니 모두가 좋아지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한 그의 불신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헨리는 에디슨 일루미네이팅 사에서 일하며 점차 능력을 인정받고, 수석 기사가 되었다. 34세 때는 그가 고안해낸 엔진을 본 토머스 에디슨의 격려도 받았다. 자신이 평생 존경해온 인물의 인정을 받은 그는 뛸 뜻이 기뻤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침내 자신만의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되돌아 본 회한의 세월

1922년, 그는 이제 창당한 지 얼마 안 되는 유럽의 조그마한 정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독일의 잔챙이 정당에서 그가 이익을 볼 전망은 없었고, 여전히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그가 절실히 원하는 이익도 없었다. 그런데도 막대한 기부를 한 것은 그 정당이 그의 평생 신념과 일치하는 노선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반(反) 노동조합, 반 사회주의, 그리고 반 유대주의. 정당의 이름은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 바로 히틀러의 나치당이었다. 16년 뒤, 포드는 당의 초창기에 아낌없이 베푼 재정적 기여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제는 집권당이 된 나치당에게서 대십자 훈장을 받는다.

 

대공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서구 자본주의와 서구문명이 위기에 빠졌던 이 시기에 그 찬란한 꽃을 상징했던 포드 역시 위기로 빠져들었다. 포드의 완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포드 사에도 노동조합을 수립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과격해졌고, 집단 파업이 잇달았다. 마침내 포드는 1941년이 되어서야 “이대로라면 회사는 망하고, 당신은 맞아 죽을 것이다. 고집을 계속 피운다면 당신과 갈라서겠다”는 아내 클라라의 최후통첩에 못 이겨 노조 설립을 승인했다.

 

세 살부터 77살까지 헨리 포드의 초상

 

아들인 에셀과의 불화도 골칫거리였다. 에셀 포드는 그의 유일한 자식이었는데, 1930년대에 포드 사 대표 자리를 물려준 상태였다. 포드는 아버지처럼 뛰어난 기술자였고 경영자였지만 경영철학은 아버지와 많이 달랐다. 특히 T형 단일 품종의 생산을 고집하는 아버지에게 에셀은 경쟁사인 GM처럼 차의 성능보다 디자인을 강조하고, 다양한 모델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맞섰다. 결국 아버지가 져서 새로운 'A형‘을 비롯한 여러 모델이 나오게 되지만, 에셀이 암에 걸려 1943년에 사망함으로써 아버지의 가슴에는 빼낼 수 없는 못이 박혔다. 당시 81세였고 뇌졸중 증세가 있던 헨리는 아들을 대신해서 다시 회장직에 취임했다. 나이로나 건강으로나 도저히 제대로 일을 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의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이자 후계자를 잃은 마음의 고통을 평생 몸 바쳐서 이룩한 또 하나의 아들을, 사랑하는 ’기계‘를 돌봄으로써 달래려 했던 걸까? 아무튼 회사 상황은 그가 경영을 놓지 않는 동안에 계속 나빠져만 갔다. 그가 나치 협력자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포드가 만들어 놓은 비인간적인 노동 시스템을 질타하는 지식인들도 끝이 없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포드 사를 국유화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런 고난과 실망과 회한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헨리 포드는 1945년에 다시 은퇴했고, 1947년 4월 7일에 뇌출혈 발작을 일으켜 영영 눈을 감았다.

 

포드는 자동차도 컨베이어 벨트도 과학적 관리기법도 처음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경영의 기적을,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다. 20세기 초,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개인용 탈것을 만인의 것으로 대중화시킨 그의 혁명은 20세기 말, 컴퓨터가 대중화되는 혁명에만 비교 가능한 규모와 의의를 갖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말의 혁명은 포디즘의 혁명을 폐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를 접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가 가졌던 여러 가지 신념, 노동조합과 복지국가에 대한 불신과 오로지 효율성만을 따지는 경영철학, 그리고 나치즘이나 반유대주의 성향 등도 오늘날에는 대부분 낡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는 포드가 만든 틀에 얹혀서 돌아간다. ‘기계’ 부분은 포드의 것이고, ‘디자인’은 포드 이후의 것이랄까. 미국의 유머작가이며 배우였던 윌 로저스는 포드를 두고 1920년대에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괴로움을 주었는지 알려면 백 년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2009년, 아직 백 년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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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는 백설공주 문고판처럼 헨리 포드에 대한 동화적인 이야기를 할 따름이다.

 

 

 

"스탈린·히틀러도 우러러본 ‘복지 자본주의’원조

새 시대를 연 거목들 <8> 헨리 포드

김환영<whanyung@joongang.co.kr> | 제262호 | 20120318 입력 <iframe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김환영"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iframe>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 출신이건 하버드대 졸업생이건 내겐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지 사람의 과거를 채용하는 게 아니다.”

한때 소련의 공장에는 레닌의 초상화와 더불어 헨리 포드(1863~1947)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스탈린은 포드가 자동차 분야에서 이룩한 대량생산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됐고 대량생산이 연합군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포드는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소련의 아이콘이었다.

소련은 모범에 도달하지 못했다. ‘노동자 천국’이어야 할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동차는 공장의 당간부들이나 타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은 자동차를 굴릴 만한 임금을 받았다.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 소련·동구권은 붕괴했다.

1500만 대가 생산된 포드 모델 T 자동차.

헨리 포드는 자동차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다. 헨리가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1918년에 도입한 어셈블리라인(assembly line, 부품을 컨베이어에서 조립하는 공정)은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을 12.5시간에서 93분으로 단축했다.

포춘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인물
어셈블리라인으로 가능해진 대량생산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Modern Times)’에서 보듯 현대를 상징한다. 포드가 개막한 자동차 시대는 소비가 미덕인 시대, 중산층의 시대와 함께 등장했다.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은 2000년 포드를 ‘세기의 인물(Man of the Century)’로 선정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는 역사를 기원전·기원후가 아니라 포드 이전(Before Ford), 포드 이후(After Ford)로 나눈다.

포드는 비교적 넉넉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포드는 가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 포드는 어려서부터 기계를 다루는 손재주가 있었다. 온 마을의 망가진 시계를 수리했다. 고등학교는 문턱에도 가지 않고 15세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평생 읽기·쓰기가 수월하지 못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포드는 16세에 가출했다. 디트로이트의 기계제작소에서 도제로 일하며 내연기관 제조를 배웠다.

1891년에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회사에 기술자로 취직했다. 시간만 나면 자동차 개발에 골몰했다. 회사는 자동차 연구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그에게 관리총책임자 자리를 제의했다. 그럴 수 없었다. 포드는 1899년 회사를 그만두고 자동차 개발에 매진했다. 실패가 거듭됐다.

포드는 1903년 포드자동차를 창립했다. 당시 미국에는 이미 88개의 자동차 회사가 있었지만 포드는 성공의 기회를 붙들었다. 1908년 모델 T 자동차를 출시했다. 1927년까지 1500만 대가 팔린 대히트였다. 1913년부터 10년간 포드자동차의 생산량은 매년 두 배로 뛰었다. 1920년대 초반에는 미국 자동차의 반이 모델 T였다. 포드는 1910년에서 1927년까지 모델 T만 생산했는데 1913년부터는 색상을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페인트가 빨리 마르기 때문이다. 포드자동차는 1932년 세계 자동차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포드의 경영 철학은 ‘포드주의(Fordism)’라고 불린다. 최고 품질의 제품을 최대한 싸게 만들어 최대한 많이 팔고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최대한 많이 주는 게 포드주의다. 포드의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은 성공했다. 자동차는 더 이상 부자들의 사치품이 아니었다. 일반 서민들의 필수품이 됐다.

포드는 ‘복지 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4년 포드는 노동자 최저임금을 두 배나 인상했다. 일당 5달러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20달러다. 동시에 근무 시간은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했다. 1926년에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이 여가가 많고 쓸 돈이 많아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게 포드의 지론이었다.

대공황(1929~39) 때인 1932년에는 어쩔 수 없이 임금을 깎았다. 형편이 나아지자 1935년 고임금 정책으로 복귀했다. 포드는 저축이 아니라 지출이 경제를 살린다고 봤다. 그는 “성공한 사람치고 저축하는 사람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포드자동차를 구매해 차이를 절약하세요(Buy a Ford and Save the Difference)”라는 광고 카피를 가져오자 ‘절약’을 지우고 ‘지출(Spend)’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포드는 시대를 앞서간 고용 정책을 실천했다. 장애인, 상이군인의 채용을 위해 쿼터를 뒀다. 그는 또한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흑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흑인들은 남부를 떠나 북부로 이주해 포드자동차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아내의 <ec37>가출<ec38> 통첩에 노조 설립 승인
포드는 오점도 남겼다. 그는 노조 설립을 저지했다. 포드자동차에는 ‘포드 서비스부(Ford Service Department)’라는 부서가 있었는데 하는 일은 노조 설립 저지였다. 서비스부의 인력은 800명의 전직 깡패들로 채워졌다. 1932년에는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 해고된 노동자들과 경찰이 충돌해 5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포드는 노조를 인정하느니 회사 문을 아예 닫을 궁리를 했다. ‘내부’의 반발이 있었다. 아내 클라라는 회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했다. 아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최후통첩을 들이대자 포드는 결국 1941년 노조를 승인했다. 일단 노조를 승인하면서 맺은 협약은 다른 회사들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했다.

포드는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다. “참 종교는 오직 개신교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 그는 노동자들도 기독교 가치에 맞춰 살기를 바랐다. 그는 술·담배·도박뿐만 아니라 껌 씹는 것까지 싫어했다. 고임금 정책을 썼지만 대신 노동자들의 가정 생활, 특히 음주 습관까지 감시했다. 그는 고무 확보를 위해 아마존에 포드랜디아(Fordlandia)라는 농장을 설립했는데 현지 노동자들의 기숙사 위생검사를 실시하고 성병 감염 여부를 조사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실천하지 못했다. 아들 에드셀 포드(1893~1943)는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위장암 때문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아들에겐 아버지 못지않은 능력이 있었다. 에드셀이 개발한 1941년형 링컨콘티넨털은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 중 하나로 기록된다. (링컨콘티넨털은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타고 있던 차다.) 사장직을 물려주고 난 다음에도 포드는 아들을 믿지 않고 달달 볶았다.

포드는 어려서부터 반유대주의를 신봉했다. 반유대주의는 당시 미국에 만연된 풍조였다. 쿼터로 유대인들의 하버드대 입학을 제한하던 시절이었다. 포드는 1919~27년 ‘디어본인디펜던트(Dearborn Independent)’라는 주간지를 발행했다. 이 주간지에는 ‘국제 유대인:세계 최고의 문제(The International Jew:The World’s Foremost Problem)’와 같은 반유대주의 기사를 실었다. 디어본인디펜던트는 러시아 비밀경찰이 19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시온 장로 의정서(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에 나오는 주장을 미국 사회에 유포했다. 포드는 유대인들이 세계 지배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긴다고 믿었다.

포드는 히틀러의 우상이었다. 히틀러는 미국을 미워했지만 포드는 사랑했다. 포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에 나오는 유일한 미국인이다. 히틀러는 포드가 발간한 반유대주의 기사의 선집을 애독했다. 히틀러의 꿈은 포드가 미국에서 이룩한 것을 독일에서 재현하는 것이었다. 폴크스바겐은 모델 T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포드는 1922년 나치스당에 7만 달러(오늘날 가치로 90만 달러)를 후원했다.

들끓는 여론 때문에 포드는 디어본인디펜던트를 1927년 폐간하고 사과하는 한편 기사 내용을 몰랐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른 사람이 썼지만 기사는 포드가 저자로 돼 있었다. 포드는 죽을 때까지 반유대주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나치스 독일은 포드에게 1938년 메달을 수여했다. 유대 단체들이 되돌려주라고 요구했으나 묵살했다.

사망 당시 1881억 달러 재산 남겨
포드에겐 사회공학자(social engineer)의 면모가 있었다. 그는 전쟁에 반대했으며 세계연방의 설립을 꿈꿨다. 돈키호테 기질도 있었다. 1915년에는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막겠다며 ‘평화의 배(Peace Ship)’를 유럽으로 출항시켰다. 웃음거리가 됐다. 1918년에는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000표 차로 낙선했다. 1920년대에는 대통령 출마를 두고 고민했다.

포드는 자동차 산업의 천재였으나 역사나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는 1919년 시카고 트리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가 무식쟁이라는 기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미국혁명이 1812년에 일어났다”는 둥 그가 실제로 ‘무식’하다는 게 드러났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포드는 사망 당시 1881억 달러(2008년 가치)의 재산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소탈한 삶을 살았다. 모델 T의 100만 대 돌파 기념식에서 연설을 부탁하자 그는 “여러분, 뭐든지 100만이라는 것은 아주 많은 겁니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포드는 프리메이슨 단원이었으며 정부(情婦)를 두었다. 아내 클라라의 묵인 아래 30년 동안 내연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부자나 사회 명사들이 아니라 농부·기술자·발명가 같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말년에는 18~19세기 물품 수집에 열중했다. 그는 20세기의 심벌이지만 그에게 마음의 고향은 도시화되기 이전의 농촌사회 미국이었던 것이다.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5312

 

헨리 포드는 살아 생전 시오니즘과의 투쟁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헨리 포드는 시온의정서를 비판하여 미국에 시온의정서 열풍을 불러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헌데, 헨리 포드 그 자신이 프리메이슨이다.

 

 

 

 마자세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천지인

 하늘 天

 땅 地

 사람 人

 서양철학

 존재론 : 

공기처럼 자유롭게

 인식론 :

물처럼 유연하게

 실천론 :

바위처럼 든든하게

 육하원칙 인간형

 When 시간

 Where 장소

 What 사물

 육하원칙 인간형

 why 이유

 How 방법

 Who 사람

 2014 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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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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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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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후원

국민은행 524902 - 96 - 101910 김종화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by 인드라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길을 간다고 생각했었다 

 

뒤돌아보니  

우연히 누구를 만났고 

낯설은 무엇이 있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니 반갑고 

낯설게 대하니 좋았다 

 

내가 사랑한 것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길이었을까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바리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친미친중 반일반북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우리에게 힘과 마법을 주세요
- 인드라 창작 뮤지컬 마법천자문 주제가

어둔 길을 걷는 이들이여
저 밝은 빛을 보아요


그림자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이여

스며드는 희망의 빛을 보아요

증오하는 마음으로 슬프고 아플 때마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괴롭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상처를 낼 때마다
우리를 갈라서게 할 때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나는 바람처럼

젖을수록 더욱 맑아지는 물처럼

당신은 우리의 자랑이며

당신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땅을 뒤흔드는 힘

놀랍고 신기한 마법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힘과 마법을 주세요

 

 

 

 

 

 

 

 

 

쪽발돼중(도요타 다이쥬)은 새벽에 몰래 가서 쪽발왕 조문하다 들킨 것

손광호 기자가 김대중을 우연히 포착하여 찍어서 단독 특종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김대중이 새벽에 몰래 가서 조문하다 들킨 것이라서 당시 독립운동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정도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헌데, 국유본이 김대중이 쓸모가 있는 것인지 묻어가기로 해서 조용하게 끝난 사안이다^^! 당 차원에서 김대중을 보낸다? 평민당인데? 평민당 보스가 김대중인데, 김대중이 김대중을 보냈다? 아니면 평민당 주인이 국유본이거나 일본 일왕이어서 김대중을 보낸 것이거나! 참고로 인드라는 김대중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국유본은 친일파 대신 인월리를 지지하라!

오늘 경찰이 두번이나 다녀갔다. 보통 경찰이 아니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전두환 정권 때 인드라는 데모하다 감옥에 갔다. 군대에서는 보안사에서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아 큰일날 뻔했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노동해방을 부르짖는 문건 때문에 요시찰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김대중 정권 때는 수시로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다. 노무현 정권은 인드라에게 고소한다 어쩐다 식으로 간접적인 협박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찰을 보냈다. 허나, 이런 국유본 경고에 인드라가 두려워했다면 어디 인드라일까?

 

한국에서 출세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이 친일파 뿌리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같이 운동권을 하더라도 누구는 국회의원이 되고, 누구는 안 된다? 그건 무능하기 때문이거나,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친일파 출신이 아니거나, 친일파 출신 똥구녕을 빨아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분 중에 혹 능력이 있다면, 한국사회에서 즉각 친일파 세력이 달라붙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친일파 세력 배후에는 국유본이 있다. 그 친일파 세력은 늘 자신을 진보나 좌파로 포장한다. 혹은 독립군, 민족주의 세력으로 포장한다. 허나, 그들 뿌리를 캐면, 99% 친일매국노들이다.

 

여러분 중에는 의아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남쪽에서 행세한다는 넘들이 왜 북한에만 가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구는지를 말이다. 일각에서는 그만큼 김일성이 항일운동 정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아니다. 정말 아니다. 김일성이야말로 원조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한에서 무슨 행적을 보였는데? 이승만 내각을 문제삼아 항일운동가 이승만을 친일파로 매도했는데? 이승만이 반민특위 활동을 금지한 것이 마치 이승만 의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아니다. 국유본 지시이다. 동시에 김일성 내각에서는 친일파가 없는 것처럼 알고 있는데, 역시 오해이다. 심지어 김일성이 중용한 인척도 친일파였으며, 김일성이 존경하는 김일성 아버지도 일제와 마약거래를 한 혐의가 있다. 그 때문에 만주 공산주의자가 김일성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세 가지 친일파가 있다.

 

하나, 가짜 친일파

박정희처럼 국유본과 친일파 공작으로 친일파 누명을 쓰고 쌩고생을 하는 이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친일파가 아니다. 오히려 친일파들이 가장 증오하는 이가 박정희이다.

 

박정희 아버지는 무관 출신으로 김구와 같다. 구한말 동학에 가담하여 혁명운동을 하나 실패하자 산골에 은거한다. 해서, 박정희 형제들은 한편으로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기면서도 핏줄 탓인지 혁명운동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가 가장 따르던 박상희는 남로당 핵심당원으로 대구폭동 주역이었다. 해서, 죽음을 당했다. 박정희 자신도 여수반란 사건 주동자 중 하나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만 확인해도 된다. 박정희가 교사로 있다가 일본인 교장 휭포에 격분하여 때려치고 만주로 간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당시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힘이 진리임을 여러 애국지사들 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힘을 길러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는 나폴레옹 길을 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 박정희는 가짜 친일파이다. 진짜 친일파에 의해 모함을 받는 자다.

 

둘, 부역 친일파  

이들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 뿌리가 박정희처럼 친일파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역 친일파가 된다. 왜? 한반도 지배권은 국유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유본은 남북에서 독립군들을 제거하고 친일파를 은밀히 앞세웠기 때문이다.

 

해서, 이들이 살려면 부역 친일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일을 이야기하고, 독립군을 말해도, 국유본 뜻을 따르지 않으면, 김구처럼 파시스트가 되고마는 것이다. 허나, 한반도에서 파시스트가 누가 있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인들만큼 타인종, 타민족에 개방적인 족속들이 없다.

 

셋, 정통 친일파

보통 조중동을 정통 친일파로 보는데, 김대중과 노무현도 정통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을 해먹을 수 없다. 여러분은 오해를 한다. 조중동의 숨은 실력이 드러낸 것에 있다고? 아니다. 잘 생각해보라. 조선일보를 읽다 보면 이상한 대목이 있다. 정치 사회면에서는 누구보다 반공, 보수, 우파적인데, 문화면, 종교면에만 가면 좌파 찬양, 진보 찬미에 나서는 조선일보를 만난다. 이것이 단지 상업성 때문일까. 아니다. 조선일보와 창작과비평사 등으로 연계하는 한국사회 친일파 인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는 숨은 친일파들이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진보인 척, 좌파인 척, 인민의 대변자인 척한다. 사회 곳곳에 있다. 그들이 왜 친일조중동은 물론 친일매국수구찌라시 한경오프엠에서 환영받는가. 국유본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저 실험체라고 여기면 된다. 어느날 갑자기 동해 지도가 발견된다. 또 어느날은 일본해 지도가 발견된다. 이런 것 당신은 모른다. 수백년 전에 무슨 일이 한반도에서, 동북아에서 일어났는지 여러분은 모른다. 그저 세뇌된 이야기만을 접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강조한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 99%는 친일파에게 담보잡힌 넘들이다. 이력이 투명할수록 의심해야 한다. 똥구멍이 제 자리에 박혀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길을 걷는데 똥구멍 쪽이 엉거주춤하면 의심해야 한다. 이런 넘들이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처럼 나라를 망친다.

 

그들은 인민의 적이다.

 

여러분은 공개한 남북한 역사를 지나치게 신뢰할 필요도 없고, 인드라 이야기를 무작정 신봉할 이유도 없다. 인드라 문제제기가 지나치다 여기면 지금부터 공부해보시라.

 

인드라가 강조한다. 지금 강남좌파들과 길거리좌파들과는 종자가 다른 사람들이다. 강남좌파는 한나라당 정두언이나 열린우리당 노무현처럼 그 뿌리를 캐면 친일파다. 강남좌파란 강남우파와 혈연관계이며, 친일파의 후손일 뿐이다. 반면 길거리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야말로 부화뇌동인 게다, 인드라처럼- 

 

그간 국유본이 한반도에서 친일파를 지원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국유본 만큼은 이런 인드라 이야기가 한치 거짓이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허나, 이제 친일파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다. 이제 인드라가 나서겠다. 국유본은 여전히 친일파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것같다. 인식을 바꾸게 해줄 것이다. 

 

인드라는 국유본에게 제안한다.

국유본은 친일파 대신 인드라를 지지하라.

더 나은 시나리오를 제공하겠다." 

 

 

 

 

동학혁명 한글날 그린벨트 산별노조 의료사회주의 교육평준화 새마을운동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서민 등골 빼먹는 협찬인생, 일인 복마전, 롯데 사돈, 쪽바리에게 후원받는 유일정치인 골룸빡 처단

한국의 야스쿠니, 쪽발놈현 무덤은 한반도에 저주를 내리는 대못이다

쪽발놈현 무덤 철거하고,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하자

빠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4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쪽발타도해방투쟁으로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놈현 정권이 다른 부문에서도 대한민국을 철저하게 짓밟았지만 경제 부문에서 특히 죄악상이 심합니다. 쪽발놈현정권이 경제부문에서 저지른 죄악들이 굉장히 많지만, 정리하면 다섯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 경유세 인상 등 간접세 인상으로 서민 등골 빼먹기,

 

둘, 그린벨트 해제로 골프장 난개발과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비리로 저축은행 대규모 부실사태와 지방 미분양 아파트 폭증,

 

셋, 거래세 인하를 막고 기존 보유세를 놔두고 종부세를 만들어 수도권 집값을 폭등시키는 등 한국 부동산 대혼란을 가져온 것,

 

넷, 골목상권을 지켜야할 타이밍에 쪽발석현과 니나노하면서 재벌들의 골목 상권 침투를 방치한 것,

 

다섯,1997년 외환위기 교훈이 단기차입금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단기차입금 증가함에도 방관하여 제 2의 외환위기를 초래할 뻔했다는 것. 

 

FTA나 비정규직 문제, 농촌문제, 중소기업 문제, 경기부양 문제 등을 뺐습니다. 딱히 쪽발놈현 정권만 문제가 아니니까요. 허나, 상기한 문제들은 쪽발놈현 정권의 패악질입니다. 예서, 가장 큰 패악은 외환위기 방관입니다.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무인도에서의 처세술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인드라 블로그 운영 안내    

http://blog.naver.com/miavenus/7015322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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