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말년병장 : 뉴에이지와 켄 윌버 인드라 VS ?

2013/03/31 19:32

http://blog.naver.com/miavenus/70164512362

   

   

   

인드라 VS 말년병장 : 뉴에이지와 켄 윌버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3/31-40

   

"말년병장:

저는 켄 윌버(미국의 통합 이론가)의 사상을 고결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켄 윌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서도 매우 궁금합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는데 바로 '켄 윌버와 국제 유태자본이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입니다. 군 복무 도중 힘들 때마다 저에게 위안이 된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켄 윌버가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그의 아내가 암에 걸려 이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살아가야 할지, 또는 이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등 등 '자서전'식의 책입니다.

   

켄 윌버는 [인간의 의식은 진화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의식의 스펙트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쓴 책들을 그의 아내에게 읽어주고 알려주며 그녀는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켄 윌버의 사상에 대한 저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또한 다양한 책을 읽어 봤습니다.

   

그는 또한 세상을 네 가지로 나누어 구별합니다. '나','그것','우리',그것들'입니다. 이것은 '자아 및 의식', '뇌 및 유기체', '문화 및 세계관', '사회 시스템 및 환경'입니다. 한 국가의 사회 시스템은 그 국가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예를 들어 국가 시스템이 자본주의적이고 또한 주변 환경은 사계절이 확연히 구분지어지는 나라라면 그 국가의 문화는 농민적이고 자유적인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국가 문화가 만들어지면 그 국민들의 개인의식은 문화에 맞추어 성장합니다. 예를 들어 개방적이고 성취적인 의식으로 확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로써 개인 의식은 그 사람의 육체 즉 '뇌'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네 가지 면을 보게 되는데 우리가 비전을 갖추어 갈려면 이 네 가지가 잘 조화된 사회 및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로써 저는 인드라님의 사회구조 시스템을 파악한다는 능력이 매우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기서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또한 켄 윌버의 관점을 빌려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켄 윌버와 국제유태자본이 혹시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인드라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장래희망으로 [정신과의사]를 꿈꾸고 있기도 합니다. 정신과의사의 연구가 앞으로 인간들에게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켄 윌버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뉴 에이지적이다'라고들 말합니다. 또한 켄 윌버의 저서 몇 몇 번역자는 '증산도 신도'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저는 증산도 신도가 아니고 무교 입니다.^^] 켄 윌버 자신은 '뉴 에이지'를 매우 비판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한 전혀 다른 사상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인드라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ㅠ.ㅠ (간절합니다.) '뉴에이지와 켄 윌버가 정말 동일한지??'말입니다.

   

INDRA:

글 감사드린다. 군인이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와 향락에 빠져 있기보다 독서와 사색으로 휴가 기간을 보낸다는 점에서는 인드라와 닮은 점이 있어 반갑다. 님을 통해 처음 접했나 싶었는데, 애써 기억을 해보니 언젠가 어떤 분이 인드라에게 켄 윌버의 '육안, 심안, 영안'을 운운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재미있는 사람이네, 정도로 넘어갔는데, 님에 의해 고결한 영혼으로 간주되니,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인드라는 책읽기가 취미였다. 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책은 인드라에게 위안을 주었다. 중학교에 이르러서는 더스틴 호프만에게 끌렸다. 고교 때에는 우디 앨런이 힘이 되어주었다. 재수할 때는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라는 밴드가 도움이 되었다. 군에서는 마광수 선생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고 감명을 받아 탈영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해서, 인드라는 남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니게 보이더라도 그 자신에게만은 매우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짜약과 같은 게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이에게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보다 가짜 약을 주고 진짜 약임을 믿게 하고 완치될 수 있다고 하는 게다. 이러한 경우, 몇몇 사례에서는 가짜 약임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호전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이를 기적이라고 하자.

   

인드라는 기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다, 라는 격언이 있듯 처음부터 요행을 바라는 이에게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윤리적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기적은 그저 예정조화설처럼 우연적이다.

   

그처럼 개별적 인간에게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신과 같은 효과를 주어 개별적 인간이 행복할 수 있었다면 딱 거기에서 머무르면 되는 게다. 아름답고, 부러운 일이다. 헌데, 그 사랑이 만인의 사랑으로 일반화, 보편화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게다.

   

다시 말해, 군 시절 말년병장님에게 켄 윌버가 큰 위안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게다. 아무 문제가 없다. 허나, 말년병장님이 자신에게 효험이 있었다 하여 다른 이에게 켄 윌버를 말하는 순간 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게다.

   

인드라는 근래 신을 만났다고 한 바 있다. 하고, 그 신은 인간 세계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드라가 만난 신은 인간의 과학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왜?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을 만날 수는 없기에. 해서, 인드라에게 신이란 인플레이션과 같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의 총합이 신이요, 인플레이션이다. 하여, 그 신은 인간이 진정으로 겸손할 때 찾아온다. 찾아와 다만 말한다.

"인드라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허나,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그럴수록 열심히 이성적인 사색을 통해 과학을 보다 깊이 추구하고, 힘을 내길."

   

인드라가 겸손해지니 증오가 사라진다. 화를 내고 싶어도 반나절이면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 함은 그가 신적인 지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허나, 그가 신이 아님을 알기에, 같은 측은한 인간에 불과함을 알기에 그를 미워할 수 없다. 가령 제이 록펠러는 신이 아니다. 인간에 불과하다.

   

해서, 뉴에이지다, 뭐다 지상의 인간들이 경계를 무수히 설정해도 상관하지 않아야 한다. 지상의 종교인들은 화를 낼지라도 하늘의 신은 기뻐할 일인 게다. 인간이 정한 일이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해서, 존중하되, 그에 연연할 이유는 없는 게다.

   

경험적으로도 인드라는 과거 통합과학연구회 활동, 반문화 잡지 편집장, UFO 연구회 회원 등 이 분야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전제하고, 켄 윌버에 관해 알아보았다.

   

"Ken Wilber was born on January 31, 1949 in Oklahoma City, Oklahoma. In 1967, he enrolled as a pre-med student at Duke University,[7] and almost immediately experienced a disillusionment with what science had to offer. He became inspired, like many thousands of others of that generation, by Eastern literature, particularly the Tao Te Ching, which catalyzed his interest in Buddhism. He left Duke, enrolled in the University of Nebraska at Omaha, and completed a bachelor's degree with a double major in chemistry and biology."

http://en.wikipedia.org/wiki/Ken_Wilber

   

켄 윌버는 1949년생으로 196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다. 이는 반문화 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해서, 자연과학도였던 켄 윌버가 동양사상에 이끌린 것은 '사회적'이다. 이에 대해 인드라는 http://blog.naver.com/miavenus/70044081186 (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3/19)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와 유태인에 관해서 왜 글이 없겠는가? 있다^^!

   

세계의 수행자 - 냐나틸로카(Nyanatiloka, 1899~1957) 스님

http://blog.daum.net/fourdeva/6263105

   

불교와 유태인

http://kr.blog.yahoo.com/jungkujang/1004296

   

유태인님이 궁금한 대목은 국제유태자본과 불교일 것이다. 님의 관심사는 어디에서 출발하였을까?

   

미국사회 신종교 트렌드 'JuBu'가 뜬다

http://blog.naver.com/jabidj?Redirect=Log&logNo=140024967755

   

마크 펜, 킨니 잴리슨은 자신들의 저서, 마이크로트렌드에서 기존 종교보다는 신흥 종교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뜬금없이 근래 몇몇 인터넷사이트에서 수행 운운하던 흐름이 우연적인 현상일까? 어떤 여론 조작에 의해 인간은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날 신비주의, 혹은 뉴에이지 현상을 고대에서부터 찾기 보다는 근대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독교 문명은 유럽에 토대하였으며, 유럽주의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다. 해서, 유럽적인 갖가지 토템 신화가 기독교 문명에 녹아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문명이 좁은 유럽에서 넓은 미국으로 이주하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유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미 유럽화한 기독교와는 다른 기독교, 혹은 종교가 요구되었던 게다. 이는 최초의 유럽 이주민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박해받던 생각밖에 없으므로 교리만 다를 뿐, 종래의 유럽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반면 미국 이주 2세대서부터는 토착민적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신론과 유니테리언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두 가지 현상을 낳았다. 하나는 미국에서 푸리에적인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 공동체, 혹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 공동체를 낳았고, 다른 하나는 에머슨처럼 초절주의 사회사상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목표가 유럽주의와 아메리카와의 적극적인 결합이었던 만큼 사회사상은 엉뚱하게 인도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막히면 조상들 행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조상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가 인도로 가는 지중해 경로가 막히는 바람에 발생한 새 항로를 찾기 위한 시도였다. 해서, 2세대 역시 유럽주의적 종교관에서 막히자 아메리카를 새로운 인도로 간주하여 상상 속의 인도를 불러냈던 것이다."http://blog.naver.com/miavenus/70036902818

   

초절주의의 모든 것?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3&eid=95O+tSTpcyYReAk4Owzdse6VaqdHYPVO&qb=64+F7J28IOq0gOuFkOuhoCDstIjsoIjso7zsnZg=&enc=utf8&pid=fk%2Bqtsoi5Thssbi6Mv8sss--332252&sid=Sb9FgHFFv0kAABmnJDo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8&eid=RlJMIWYdieNaKwS12JUJeusNy0eMwP4Y&qb=7LSI7KCI7KO87J2YIOy5uO2KuA==&enc=utf8&pid=fk/EXsoi5TosstGSRDhsss--384724&sid=Sb-FL-K6v0kAACFvEIk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른 대륙이다. 19세기 이전, 아니,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에서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여행을 가는 일이 대중화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페니키아에 살던 사람이 카르타고를 가고, 카르타고에서 스페인으로 가고,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큰 바다를 건너는 일이다. 단지 가는 것만이 아니라 정착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정착 2세대에게는 마치 재일교포 2세들처럼 이정표가 필요했던 것이다. 참고로 맑스가 미국 트리뷴지에 칼럼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워즈워스 등이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하면서 영국 낭만주의에 고무된 독일 관념론에 영향을 받은 초절주의 덕분이다^^!

   

예서, 낭만주의(romaticism)란 무엇인가. romaticism 어희의 유래는 중세, 루스티카 지방의 방언을 칭하는 단어인 "Roman"에서 파생하였다. 반대어는 라틴어라고 할 수 있다. 짝퉁이 감히 원조보다 낫다, 를 선언하는 것이다^^! 근거가 뭐냐. 뽕짝은 일본에서 유래하지만, 뽕짝을 블루스 음악처럼 승화시키는 것은 한국 뽕짝만이 가능하다^^! 이런 주장이 낭만주의인 게다~! 한국에서라면 조선시대에는 중국보다 조선이 낫다라는 식이 될 것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보다 조선이 낫다이며, 전후에는 미국보다 한국이 낫다가 되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운동권 시대 이후로는 이 관계가 역전이 된다. 잠시 남한보다 북한이 낫다가 되었다가 유목 열풍이 불면서 몽골이 북한보다 좋다가 되었다. 이후 남방 수행문화가 번져 동남아가 한국보다 낫다, 하는 분위기가 막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를 현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다. 따라서 미국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19세기 미국인들은 유럽은 유럽이고, 미국은 미국이다, 유럽보다 미국이 낫다, 유럽보다 미국이 좋다는 말을 좋아했다. 예서, 미국적인 종교관, 미국적인 정치관, 미국적인 경제관이 등장한다. 가령 박정희 모델, 김일성 모델, 일본 경제모델의 원조를 미국 민족주의 경제학파에서 찾을 수도 있다. 가령 헨리 커리와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헨리 커리의 주장을 보면, 세계의 공장, 영국에 맞서 어떻게 하면 경쟁력이 취약한 미국의 산업을 보호,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절절하게 있다.

http://blog.naver.com/saranmul?Redirect=Log&logNo=20061900812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이르자 초절주의가 실용주의에 밀려 퇴색한다. 국제유태자본이 그간의 세계시장 정책 대신 세계경제 정책을 표방하면서부터다. 세계체제를 유지하기에는 영국군대만으로 허약했으므로 국제유태자본은 영국 독점이 아닌 각국의 제국주의 침탈을 허용했던 것이다. 해서, 그간 국제유태자본에 대항하는 식민지 백성으로만 생각하고, 늘 영국에 대해 반감을 지녔던 미국인들조차도 이제는 타국을 침략하는 가해자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마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 문화의 문화 침탈 운운하던 한국 문화계가 한류가 발생하자 안면몰수하고 한류 국제화에 열심인 이유와 같다^^! 이때, 초절주의는 소수파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어디인가? 당근, 초절주의의 신비적 측면의 강화, 내면세계의 침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신지학이다.

   

하여, 신지학은 수반아님이 잠시 언급한 바 있는, 크리슈나무르티와 라즈쉬니 등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때, 신지학의 한계를 뚜렷하게 인지한 크리슈나무르티는 과감하게 교단 해체 선언을 한다. 크리슈나무르티 - 유명한 별의 교단 해체 선언 전문

   

이러한 귀결이 의미하는 바는, 신비주의의 영원한 떡밥으로써 결코 객관화할 수 없는, 개별적 영혼의 각성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해서, 결론은? 남방불교, 소승불교이다. 서구인은 니체에도 지쳤다. 짜라투스투라적인 대승불교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승과 소승이 나눠진 배경이 무엇인가. 돈인 게다. 카톨릭도 마음에 들지 아니 하며, 그렇다고 고리대금업을 인정한 개신교도 못마땅한 이들에게 구원이란 돈에 엄격했던 소승불교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방 상좌부 불교의 수행체계

   

한국 불교 경쟁력 없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0017101

   

예서, 스리랑카에서 미얀마, 미얀마에서 쿠테타로 인해 태국으로 국제 남방불교 중심이 옮겨지는 현상에 대해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현 태국 국왕이 성불로 추앙받지만, 사실은 마약장사 따위나 하는 국제유태자본의 현지 바지사장에 불과하며, 이번 태국 정치 격변은 국제유태자본이 동남아 화교자본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34698721

   

다른 한 편 독일에서는 1948년 독일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질풍노도의 시대가 지나가고, 독일 농민의 한을 담아 고대 인도 문명에 다다른 비관주의가 대세가 되어갔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로스차일드가 용병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할 동안에 독일의 전 영토는 전쟁터가 되었으며, 독일 농민의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란츠크네이크 용병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갔던 것이다. 페스트 직후 때와 다를 바 없이 현실이 매우 고통스러웠던 독일인에게는 만주 벌판을 내달리던 광개토대왕, 혹은 단군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이며, 단군 시대로 돌아갈 윤회사상을 절대적으로 희망했던 것이다. 그만큼 국제유태자본의 폭압은 아리안족 만큼이나 혹은 유태인 재벌 2세 출신이자 사도회 멤버이자 아돌프 히틀러와 동기동창인 비트겐쉬타인의 철학처럼 이성적이었다.

   

"독일의 19세기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철학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계의 종교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불교라고 나는 생각한다... 쇼펜하우어가 독일 불교뿐 아니라 유럽 불교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의 저서를 통해서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 접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경전 번역가 노이만(Karl Eugen Neumann), 판사이며 고불교회를 창립한 그림(Georg Grimm), 독일 최초의 비구승인 나냐틸로카(Nyanatiloka)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불교 - 상

   

이러한 흐름은 양차대전 결과로 끊겨졌다가 다시 이어진 것이 1960년대 반문화, 히피문화 덕분이다. 그런데 존 콜먼의 300인 위원회에 따르면, 반문화란 국제유태자본이 다목적으로 기획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을 마약에 취해 중국 노동자 콜리처럼 무력하게 할뿐이다. 여기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요 구성원이자 고대 중동 이교도 문화이자 페니키아 종교로 보이는 바알교 제의음악에 정통한 유대인 철학자, 아도르노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존 콜먼 주장에 따르면, 비틀즈 음악의 실제 작곡자는 국제유태자본의 지시를 받던 아도르노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문화는 마치 페스트처럼 한동안 지구상에 머물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국제유태자본이 반문화와 히피문화, 혹은 뉴에이지 문화에서 획득하고자 했던 목표는 무엇인가. 개개인이 파편화되어 집단을 거부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는 두 가지로 축약이 된다. 하나는 애국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열정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계급의식을 약화시켜 노조 조직율이나 좌파 정당 가입률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은 젊은이들에게 국가나 노조, 좌파 정당 대신 마약을 선물했던 셈이다.

   

이러한 작업 중 하나가 종교통합운동이다. 종교통합운동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기존 종교를 접수하는 것이다. wcc,가톨릭,종교연합,지구헌장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다른 하나는 신흥종교를 이용하여 여러 용도로 써먹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창가학회의 이케다나 통일교 문선명이 오늘날 가장 효과적인 국제유태자본의 신흥종교지부라고 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31978452

   

그렇다면 오늘날 국제유태자본은 불교에 어떤 관심이 있는가. 하나는 달라이라마를 통한 티벳 불교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다. 이에 관해서는 인드라가 여러 글에서 밝혔으므로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 다른 하나는 파룬궁이다. 현재 국제유태자본은 중국 공산당을 대체할 주요한 정신적 자산으로 파룬궁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파룬궁 광고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점에서 특히 대기원시보 웹진을 지켜볼 이유가 있다. 아울러 그들의 노이즈 마케팅에 일일이 대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3409>

   

인드라는 누군가의 이론과 사상을 검토하기 전에 그의 살아온 이력을 검토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해서, 켄 윌버는 켄 윌버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당대 사회문화에 의해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고, 그 자아에 의해 뇌가 작동하여 켄 윌버의 통찰력을 획득한 게다. 이때 이 사회문화에 관해 인드라는 국유본이 조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서, 인드라와 켄 윌버를 연결시키면 국유본의 기획이 켄 윌버의 영성에도 관여했다는 결론이 도출이 된다.

   

하면, 그의 이론과 사상은 어떠한가.

   

http://cowhiterose.net/bookinside/astral_plane/astral_contents.htm

   

http://blog.daum.net/hosada777/7026176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review&no=1690

   

http://blog.naver.com/mcrane?Redirect=Log&logNo=110039534262

   

켄 윌버에 관한 글들을 접하고 나니 떠오르는 책이 네 권이 있었다.

   

하나는 아서 케슬러의 "야누스 - 혁명적 홀론이론(범양사)"이다. 홀론, 홀라키 이런 용어는 유대인 아서 케슬러의 발명품이다. 해서, 이 문제에 관해, 켄 윌버가 아서 케슬러의 주장을 새롭게 수정을 가했나 보기에는 어려웠다. 인드라가 책을 직접 읽고 나면 다른 견해가 나올 지 모르지만...

   

둘, 유태인 신학자요,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이다. 마르틴 부버는 나, 너, 그것으로 개념화했다. 켄 윌버의 네 가지 차원이라는 것이 마르틴 부버의 사상을 응용한 것이지 않나 싶다.

   

셋,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정신과 자연'이다. 그레고리 베이트슨하면 유명한 것이 '이중구속이론'이다. 대중에게는 파블로프의 무조건반사 이론,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이 있다. 허나, 인드라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이는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다. 무인도에 갈 때 책 한 권 가져간다면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책을 가져갈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의 의견 중에 흥미로웠던 것은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를 혼동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맑시즘에 대한 비판으로서 쓸모가 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넷, 존 호건의 "과학의 종말"이다. 켄 윌버가 토머스 쿤을 변호한 것은 이해가 간다. 허나, 그를 위해 포스트구조주의를 비판한 것은 자승자박이다. 가령 데리다만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서양 형이상학이나 철학을 파괴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더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자크 데리다는 유럽중심주의자다. 빅터 로스차일드적이다. 그런 그가 언뜻 유럽중심주의를 해체하고, 빅터 로스차일드를 해체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고육지책인 게다. 해서, 인드라를 이를 건축공학적 해체 개념이 아닌 기계공학 중 일부인 파괴공학적 해체 개념을 제시한 게다. 즉, 기계에도 수명이 있는 만큼 그 수명을 온전히 누리게 하자는 게 해체인 게다. 이를 국유본론적으로 말한다면, 빅터 로스차일드가 비록 데이비드 록펠러에 의해 권력투쟁에 패했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라는 반문인 게다. 온전히 죽을 때까지는 존중하자는 것이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인 게다. 그러고 보니, 자크 데리다가 빅터 로스차일드랑 놀아난 흔적도 엿보인다~!

해서, 이 네 가지 책들을 통해 본 켄 윌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흥미로운 친구이지만, 크게 끌리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그의 심리치료기법은 결국 세타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인드라가 현재 경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드라는 여러분들에게 세타파 활성화를 강조하고, 긍정의 힘을 주장하며, 이를 통해 주인공 의식을 지니자고 말씀을 드리고 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끝으로 켄 윌버의 과학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보자.

   

"켄 윌버의 분류법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은데, 그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과학은 종교를 부인한다: 종교는 그저 과거의 유물로서 미신에 불과하고 신은 경험적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성의 지배적인 분위기로서, 대부분의 근대 과학자들이 취하는 입장이고 경험론자와 실증주의자의 입장이다. 콩트, 프로이트, 마르크스, 러셀의 관점이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스피븐 핑커(Steven Pinker)의 관점이기도 하다.

   

2) 종교는 과학을 부인한다: 과학은 타락한 세계의 산물로서 어떠한 진리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로서,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진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든가, 신이 6일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든가, 성서가 문자 그대로 진리라든가 하는, 기본적인 과학적 사실에 배치되는 믿음을 고수한다. 전근대 세계에서는 과학이 종교에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도 과학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근대성이 종교를 전면 부인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런 태도가 생겨났다.

   

3) 평화 공존론: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존재 영역을 다루므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강한 판본(strong version)과 약한 판본이 있다. 강한 판본은 일종의 인식론적 다원주의(epistemological pluralism)로서, 실재(reality)는 물질, 신체, 마음, 혼(魂 soul), 영(靈 spirit)과 같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학은 물질과 신체처럼 낮은 영역을 다루는 반면 종교는 혼과 영처럼 높은 영역을 다룬다는 관점이다. 과학과 종교는 똑같은 '큰 그림'의 일부로서 각자의 진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 종교의 표준적인 입장이며, 플로티노스, 칸트, 셸링, 화이트헤드,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이언 바버 등도 여기에 속한다.

   

약한 판본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NOMA'라고 명명한 것으로서, 과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통약 불가능한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므로 '큰 그림'으로 통합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굴드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는 각기 다른 전문 영역을 다루므로 갈등도 일치도 있을 수 없다. 자연은 사실의 영역으로서 과학에 의해 드러나며 인간은 가치와 의미의 영역으로서 종교에 의해 드러나므로 자연과 인간은 "겹치지 않는"(비중첩) 두 영역이다. 이런 태도는 어떤 식으로든 영(신)을 믿으면서도 이 믿음을 과학과 조화시킬 수 없는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4) 과학 자체가 영(靈)의 실존에 대한 논변을 제공한다: 과학적 사실과 발견이 직접 영적 실재를 제시하고 있으며 과학은 신을 드러내는 것을 직접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빅뱅은 창조자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고 진화는 외적 설계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신과학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저자들의 관점이다. 프리초프 카프라(Frijoff Kapra)나 폴 데이비스(Paul Davies)와 같은 전일론(全一論 holism) 패러다임의 주창자들이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5) 과학 자체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한 가지 해석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예술이나 시와 똑같은 타당성을 가질 뿐이다. 과학은 사실에 관한 진리가 아니라 해석의 패러다임을 제공할 뿐이므로 인식론적으로 시나 종교, 신화 등과 대등한 위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으로서, 보통 대학 강단의 엘리트들과 문화 엘리트들이 옹호하는 입장이다.

   

윌버에 의하면 이 모든 입장들은 과학과 종교의 통합에 성공하지 못한 것들이다. 처음의 두 입장은 물론 통합과 관련이 없다. 나머지 세 입장은 과학과 종교 양쪽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이 중에서 네 번째 입장을 지지하는 논변을 윌버는 "그럴싸함 논변" (plausibility arguments)이라 부른다.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영(신)의 실존에 대해 그럴싸한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변들은 상당히 흥미롭고 대중에게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윌버 자신도 그로부터 많은 시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윌버는 '그럴싸함 논변'이 일종의 범주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관조의 눈'(靈眼)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을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려 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이미 신의 존재에 관한 증명을 다루면서 순수 이성(합리적 이성)의 한계를 논증한 바 있듯이, 영적 현상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대다수 정통 과학자들은 그런 논변을 가벼운 흥미거리 정도로 치부해버리며, 반대로 영적 세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논리로써 초월 세계를 파악하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으로 본다.

다섯 번째 입장은 과학 자체의 근본 바탕을 잠식하려 하고 있다. 과학은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며 전일론적 세계관을 담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과학과 종교가 통합될 수 있다고 본다. 윌버는 "해석은 우주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도 진리의 계기가 담겨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극단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오직 해석만을 인정하고 진리의 객관적 요소를 부정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점을 윌버는 비판하고 있다.

   

이제 세 번째 관점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영성을 수긍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입장이다. 그 중에서 약한 판본인 굴드의 관점은 사실의 영역인 자연과 가치와 의미의 영역인 인간 사이를 가르는 엄격한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다. 전통적 이론가들이 선호하는 강한 판본 역시 '겹치지 않는' 영역이 둘에서 여러 개로 늘었을 뿐 굴드식의 이원론을 벗어나진 못했다. 문제는 근대의 지배적 세계관인 과학적 유물론은 이성과 경험은 인정하나 영성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상위의 수준(관조의 눈)을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통합의 필요성 자체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높은 영역과 낮은 영역의 관계는 무엇이며, 과학은 오로지 물질과 신체 같은 낮은 영역에만 국한되고 혼과 영과 같은 높은 영역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출처] 켄 윌버의 철학에서 과학과 종교의 통합 (대한최면연구회) |작성자 몽환

http://cafe.naver.com/hypnosis114.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351

   

켄 윌버에 대한 소소한 비판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헤켈의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라는 도식에 힘입은 켄 윌버의 영성 도식은 결코 낯설은 도표가 아닌, 뉴에이지에서 흔히 보는 설정이다. 차원이 다른 차원에 겹치거나, 포개었다는 것도 신지학에서 유래한 해석인 게다.

   

결론적으로 켄 윌버가 서양인인데 동양인보다 더 동양적인 사고를 해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가령 서양인이 뜬금없이 구운몽을 말하고, 장화홍련전을 소상하게 이야기한다면, 듣는 사람이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더 나아가 일연의 삼국유사야말로 지구상에서 최고의 역사서다, 라고 주장한다면^^! 자, 이런 것에 지나치게 혹하면 안 된다. 인드라 수법인 게다. 인드라가 유럽에 배낭여행 갔을 때 현지인의 질문에 가는 곳곳마다 말한 바 있다. "내가 가본 곳 중에 이곳이 최고입니다. 지상낙원입니다." 해서, 인드라는 켄 윌버와 현각 스님과의 차이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립서비스에 현혹을 당하는 그대는 착한 사람.

   

세상은 힘이 있는 자가 믿는 대로 보인다. 그 힘을 지닌 자가 국유본이다. 국유본은 신적인 능력을 보일 뿐, 신이 아니다. 언젠가는 망한다. 다만, 켄 윌버와 같은 이에 의해서 망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국유본은 일찌감치 망했을 게다."

국제유태자본과 켄 윌버 국유본론 2009

2009/07/02 03:47

http://blog.naver.com/miavenus/7005177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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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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