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새드릿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국유본론 2013

2013/06/02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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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 VS 새드릿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6/02

   

   

새드릿 :

   

이런 텍스트를 남기는 행위가 무슨 의미일지 모를 수가 있다. 하필, 왜 sns에 이런 똥글을 남기는가 싶을 수도 있다. 이해 못할 견해는 아니다. 적어도 나는, 매일 수 백, 수 천 개의 속보 기사를 분석하고, 그 너머의 행간을 읽으려 한다. 내가 취급하는 범위는 거의 전체 국내외의 이슈들이다. 최소한, 이념은 나를 붙잡을 수 없다. 더불어서, 글쓰기의 방식을 전략적으로 바꾸고 있다.

   

전술과 전략의 차이가 무엇일까? 나의 전략을 공개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전술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은 시즌 2이다. 소수겠지만, 내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이 느끼시는 이전의 글쓰기는 전부 교정하여 블로그로 옮겼는데, 그 글쓰기는 일종에 '분노의 글쓰기'였다.

   

다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단타로 나갈지 장타로 나갈지 이다. 지금 방식은 단타이다. 현실의 문제들과 겸하여 앞으로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에 대해 고민이 있다. 적어도 내가 언급하는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우습게 똥글이라고 여기며 스칠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정보가 많다ㅎ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결코 독자적인 생각은 아니다. 은사님이 계시다.

   

내적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쌓였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다. 진심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눈물 날것 같다. 마음 편하게 그림 그리고 싶다. 최소한에, 교수 아들이란 넘이 하는 얘기다. 올해 안에 정말 그림을 그리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시나리오를 하나 작성해왔다. 진정성을 가지고 나를 후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에 대한 실천 여부가 내게 중요했는데, 동업하는 형에게 요즘의 근황을 얘기 못하고 있다. 현재, 시나리오 대본은 나와있고, 각색의 과정이지만, 이것에 대한 욕심을 포기할 생각이다.

   

내 나이 27에 경로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얘기다. 늘 열려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그 순간에 '욱' 할지라도, 나는 자세를 낮춰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소한 행복이다. 차원을 높이고 싶다. 당위와 필연을 동시적으로 느낀다.

   

   

미술시장에 대한 전격적인 분석을 공개하고 싶지만, 최대한 실력을 쌓고 다듬어 보려 한다. 우리의 은사님들, 스승님들을 뛰어 넘고, 미술의 가치를 살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닥의 판을 키우고 싶다. 국제적인 한류의 흐름에 국내 미술 또한 흐름을 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더 상위에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2006, 2007의 버블로 그치는 수준이 아닌 지속적인 경제모델을 미술계에 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재론으로는 될 수가 없다.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각 분야마다 특급 스페셜리스트들이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최근에 알게 된 단어인데, 경험 삼아 한번 써먹어 본다ㅎ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종교. 더 세분화해서, 쉽게 알기 쉬운 예로 영화 산업이라 던지, it산업 등등. 각 분야의 피라미드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발언력이나, 실천력에서 무게감이 남다른 자들이 등장한다. 게임으로 치면 중간 보스다.

   

예를 들어서, 최근 한은 총재인 김중수 총재의 발언은 상당히 무게감이 있다. 불과 어저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여부에 대한 경제계의 관심이 쏠렸을 때, 버냉키의 발언에 주목했듯이 김중수 총재 또한 세계적인 클래스로 거듭나고 있다. 김중수 총재는, 미국의 경기가 회복수준으로 돌아서고, 양적완화가 그에 맞게 축소된다면, 강달러의 양상으로 세계의 자금을 끌어드릴 때 국내 은행들 또한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다만, 그것이 우리만의 해당사항이 아니기에, 협력적 조치가 가능하리라 예상을 했는데, 그런식의 발언들이 경제에 불을 지피기도 하고 소화기의 기능도 하는 셈이다. 어떤 업종이든 간에 결국은 피라미드 체제이다. 그것이 종래의 신자유주의 체제였다면, post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의 모델은 비유하자면 다단계적 피라미드 체계이다. 즉 중간중간 마다 역할 모델을 부여 받은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우리가 '복지'하면 세뇌적으로 떠오르는 북유럽의 이미지가 그러한 것이다. 이쯤 되면 망국적인 한경오프엠에 대한 문책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데에는, 세계의 다단계적 피라미드 체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증대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한류'나 일부 과학기술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영역) 에서 한국의 활약이 돋보인다. 국가적 '모델'이란 일종에 이미지인데, 그 다단계의 위치에서 어떤 역할이 부여되는 지가 핵심이다. 최근 각국에 대한 세계인의 긍정성 부정성을 조사한 자료가 bbc에서 공개했는데, 특히나 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한국에대한 긍정성이 높게 나타난다. 그들 나라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북유럽의 '복지'를 얘기하듯, 놀라운 성장과 민주화의 모델로 한국을 여긴다는 것이다. 역으로, 독일은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제적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영국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 여론조사의 맥락에서 그들의(유럽의) 위기의식의 차원에서 한국을 의식하고 있음이 반증된 셈이다. 스페셜리스트에서 국가의 '모델' 이미지까지 돌아서 왔다.

   

지금 과연 나는, 이 욕망과 물질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일까, 투쟁하려고 하는 것일까? 늘 이 경계에서 부유한다. 정보를 알게 될수록, 그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쉽지가 않다. 성공을 원한다면 최고의 후원을 얻는 게 상책이다. 후원이란 바로 유통이다. 투자이다. 그리고 유행이다. 지금의 세상이 그렇다. 나는 후원을 바라는 동시에,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 구조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면, 웃긴 얘기지만 진짜 독립투사가 됐을지도 모른다ㅎㅎㅎ 늘 세계에는, 현재 기준으로 나와 같은 불량품들이 있고, 천재들도 생각보다 많다. 즉, 대화를 원하고 후원을 원한다면, 동경해 마지않는 그 놈의 스페셜리스트들과 비슷한 차원에서의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한 결과로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 기여 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설령 윤회의 일부, 신의 기획의 일부일지라도 말이다.

   

아마 먼 훗날, 이 글은 젊은 날의 패기나 동경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나, 젊은 것은 젊은 값을 해야 한다. 그게 선대나 후대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예의라고 본다. 나의 경우에는.

   

보통은 미술계의 주체가, 교육, 공공, 자본의 계열이었는데. 최근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분이 특정 인물들에게 할당돼 있음을 부정 할 순 없다. 그것이 현재의 미술 유통의 유행을 표상한다. 특히나 스타 비평가들 혹은 평론가들의 등장은, 여러모로 자본과 결탁하기 쉬운 요소라고 보여진다. 비평이란 무엇인가? 비평의 근원이란 무엇인가? 20세기의 산물이다. 하여간 버그 운운하는 것 부터가 구 시대의 산물이다. 창작을 질투하는 비평의 시셈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창작 그 자체의 학문적 견해는 어째서 확립되지 못할까? 어째서 경험적인 이론으로 남아야 할 것인가? 마치 교육계의 부채인양? 역사란, 비평의 시대가 있었는가가 중요하지, 비평의 계층이 주도적 실천적으로 권력을 잡는 과정에 반발하는 핵심은 아닌 셈이다. 이를테면 슈퍼스타K같은 거다. 심사위원 가수들을 뺨치는 천재적인 지원자들이 널려있다. 다만, 그들과 심사위원의 차이란 '유통'이다. 미술의 흐름이 종속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흐르는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특히 표현 방식에 대한 침해는 상상 외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식으로 글 써라 저런 식으로 글써라! 내가 보기에는 이런 저런 작품이 좋아 보인다 등등!!!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그러한 권위와 보증을 선사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당장에 싸이 같은 스페셜리스트가 등장하면 껌뻑 넘어갈 병신 같은 시장 구조인 주제에, 하여간 허세는 알아줘야 한다.

   

투자의 문제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한류의 가치와 싸이의 가치가 어찌 형성 되었는가? 강남스타일의 이슈를 분석하면 그 경로가 드러나는데, 프랑스의 언론이 제법 역할을 했고, 그것을 발판 삼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권위와 보증, 투자의 문제이다. 다 죽어가던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도 투자 받아, 현재 선진국으로 떵떵거린다. 결론은, 이슈의 명분이자 총체적 이익의 문제인 셈이다.

   

첨단의 영역에서는 당대의 시대정신이 비교적 빠르게 적용 되는 편이다. It 계열이나 '전, 차' 계열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미술계는 보아 하면 늘 이슈화에 늦는 편이다. 아니 도대체 글쓰기에 대한 방식의 지침을 알려주는 비평가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병신같은 세상을 기준으로는 많겠지만ㅎ)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국민대에 특강 온 모 강사가 대놓고 '여러분은 을입니다!'라고 외치던 그 현장을. 학생들은 그게 당대의 진실로 여기고 필기한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그 누가 이의를 제기 하겠는가?  

   

그 비평가 긴장해라. 조만간, 내가 탈탈 털어 버릴 테니.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라. 돈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둬라. 현재의 키워드는 '융합'이라는 거다. 자신의 지식을 근거 삼아 작품을 좃 꼴리는데로 비평하는 당신들에게 언젠가 최후가 다가 올 것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감성과 이성의 변증법적인 융합이다. 논리도 부족하고, 열혈 의지만으로도 부족하다. 아주 영리하면서도, 시나리오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이 받들어 모시고 충성을 마지않는 클라이언트는 늘 변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시대정신이다.

   

진정 비평가들이 시대정신을 읽는다면, 창작하는 작가들의 고통을 십분지, 이해하려 노력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 그들이 그러지 않다고 함은? 정신을 못 차린 게다. 혹은 전략적으로 창작을 해보는 척, 이해하는 평론가들은 명분으로서 살아 남겠지.

   

당신들은, 늘 긴장해야 한다. 나 같은 족속들, 특히나 전략적으로 유통과 파생에 영향을 끼치려 하는 자들이 노리고 있음을 느낄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 인정한다. 선동하지 마라! 적어도 현재의 당신들 보다 국제적 경제적 분석 역량은 뛰어나니깐. 

   

맥락을 눈치 챈 사람들은, 내가 유태인과 쪽빨이를 구분 지은 것이 전략적인 것임을 알 것이다. 어차피 등골 빼먹는 건 똑같을 텐데 무슨 차이람? '위선'에 계급화를 시도하는 거다. 개념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쪽발이'란 개념화 이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유태인이 돈을 모으는 방식과 쪽발스런 방식의 차이는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권력의 척도를 가늠하는 지표는 '사후처리'이다. 서미갤러리처럼 이야기가 계속 세어 나오는 것은 국내적으로 파워가 강할지라도, 유태인에 비해 권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보통 대부분이 삼성은 잘 알고, 조금 안다 하는 자들은 유전자 변형으로 유명한 '문산토'라는 회사 정도는 알고 있지만, '카길'이라는 회사는 모른다. 4대 곡물 메이저 기업 중 하나이다. 어째서 국내 곡물시장의 자급률이 한심한 수준인지에 대해서, 어떤 기업들이 실천적으로 엮여있는지 보통은 모른다. 왜냐, 정보에 접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슈를 총체적이자 선별적으로 점령하기 때문이다. 2011년 기사를 인용하자면, 그 해 초에 농수산물유통공사(aT)가 시작한 해외곡물조달사업이 그 해 말, 예견됐던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농수산물 유통공사가 40%출자하고, 삼성물산(20%), 한진(20%), STX(20%) 등 3개 민간참여사와 합작투자형식으로 aT그레인컴퍼니 세우고 국제 곡물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수출용 엘리베이터 확보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해서 메이저 기업들의 틈새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목표치의 곡물들을 확보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이 2012년 말까지 그렇게 이어졌다. 2012년에 stx가 일부 메이저와의 합작으로 미국 현지 곡물 터미널 확보로 잠깐 떠들석 했지만, 최근 4월 기사에서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래도 국내의 이 정도의 상황이 이전의 참담함 보다는 나아진 편인 거다. 선방하고 있는 거다. 참고로 카길은 2011년 말에 국내에 상륙했는데, 그 이전부터 압도적으로 사료와 대두 부분 국내 공급량 1위였다. 유통의 진수인 셈이다.

   

전 세계의 곡물 메이저가 대략 80%를 차지한다면, 나머지의 떡고물에서 일본의 곡물기업이 활동을 한다. 일본은 그래도 나름의 곡물 공급라인이 있다. 일본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그에 힘입어 1970년 도약을 할 때, 곡물기업 육성에 나섰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신화다ㅎㅎ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 중에, 먹는 것, 에너지 이런 중요한 핵심이 바로 '곡물', '석유'같은 것들이겠다. 원자재, 에너지, 귀금속. 대표적으로 세계의 수요와 공급을 좌지우지 하는 수단들이다. 이것들의 가격 형성이란 종래에 공급과 수요의 방식이 아닌, 예측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 오늘의 표상이다. 그 예측이란 바로 금융의 뿌리이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나, 합리적 기대가설의 바탕, 혹은 정치적인 분쟁, 자연 재해등을 이유로 삼을지라도, 금융의 선물옵션과 투기자본의 예측이라는 꼬리에 몸통이 좌지우지 되는 형세다. 예측이 가격을 통제하고, 다시금 가격이 예측을 낳는다. '가격'은 그 자체로 신화이고 권위이다. 이 핵심적이고 국제적인 이권들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마치, 유명 영화의 감독이름은 알지만, 핵심 유통 배급사의 사장과 이사들을 모르는 이치와 같다. 이 유통과 파생의 원리에,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종교의 복잡다단한 참여 양상 이해하는 것이 종합적 인식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마 여기까지 얘기를 들으면 허망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당장 내일 출근할 적에 차에 기름 넣을 5만원 어치의 리터가 중요하지, 그것이 국제적으로 가격이 어찌 형성되는지 알게 뭐람? 저마다의 차원이 있는데 이 차원을 넘나들면서 이해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바로 관심이다. 그리고 국제적인 기조와 흐름에 대해, 현직 정치인들이나 경제계 인사들은 진정 국가와 국민의 복지를 위한다면, 더욱 예민하게 관찰하고 이슈 투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진정성이다. 최근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이러한 투쟁들의 종합적인 결과이다. 북한과 일본을 희생으로 삼아 통일에 이르고, 동북아시아 이권이 재편되는 과도기의 양상인 셈이다. 해외의 리포트들은 대략적으로 2020~25년 통일을 예상했었지만, 지금 흐름으로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글거리다'라는 말이 있다. 문득 이 단어를 보게 되어 그 의미를 곰곰이 음미해봤다. 일종에 부끄러움이랄까? 어느 순간부터, 이 단어를 유행어처럼 많이 사용하게 된 것 같다. 간혹 이 단어를 이렇게 사용하기도 한다. 진지하거나 젠체하거나 혹은 지나친 낭만적 감상에 빠졌을 때, 유머러스하게 비난조로 '야 오글거린다 그만해 제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오글거림'이란 것을 내면화 하게 됐고, 또 그 단어의 위력에 나름의 권위와 보증이 붙었을까? 순수한 부끄러움의 형태는 아름답다. 수줍은 봉선화 꽃잎이 떠오른다. 손톱을 물들이는 간지러운 인고의 시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오글거린다 라는 의미에서는 알 수 없는 자기 비난의 느낌이 드는 편이다. 일종에 자기검열이다. 이런 거다.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아 오글거려! 내가 한 것을 취소해야 겠다…'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자기 사유를 담은 텍스트를 올리는 행위가 오글거리는 것인가? 작품에도 종류가 있다. 흔히 페인팅이나 조각들도 의미가 있겠지만, 자기만의 사유를 진작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어 보려 한다거나, 혹은 직관적으로 어느 순간 슈퍼맨이 된 듯 휘리릭 써진다거나. 그러한 사유의 텍스트들도 하나의 작품이다. 흔히 우리가 개똥철학이라 비웃는 그것들이 사실은 생각보다 소중한 자신의 논리들인 셈이다. 그러한 사유에 도달하기 까지 각자 자신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애인과 이별하게 되어 가슴이 메이는 상처의 트라우마에서 어떤 생의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혹은 나같이 진지하다 못해, 그 정도가 변태적으로 보일듯한(자학개그다ㅎ) 글들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오글거림'이라는 단어로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사유의 텍스트가 그대를 괴롭히고 공격하는가? 그저 맞지 않으면 스쳐 지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유의 힘은 한 개인 뿐만이 아닌 집단을 넘어서 공명음을 일으키기에, 아주 강력하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이라는 매체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가 다 한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저급하지만 자극적인 콘텐츠를 메가톤급으로 다루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물론 이 인터넷이라는 용도를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하게 여길 것도 없겠지만, 그토록 마음 편한 공간이라면, 자신의 사유를 담은 한 문장을 담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즉 페이스북이라는 용도는 '사유'에 대한 공명의 차원에서, 그리고 인류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혁명적이기도 하고, 그 에너지를 억누르기도 한다. 그 경계에서 서로가 부유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공명하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부족한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 조금 더 애쓰고, 자신을 가끔은 부끄럽게 여기며, 때로는 자랑도 하고픈 그런 종합적인 결과물들에 대해 조금 더 넉넉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당신은 오글거리는가? 전혀 오글거리지 않다. 내가 감히 보증한다.  

   

친구가 절 위해 편지를 써줬네요. 감동적이어서 공유합니다. 국유본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게 감동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인드라를 얼마만큼 압니까? 새드릿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알고요? 오래된 이성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이 당신들에게 그토록 쥐약인 건가요? 그럼 노력을 하세요! 관심, 진정성, 실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보아야 한다. 위험한 상상을 한다. 또한 순간 상상이 진실로 판명난다. 무서운 사실을 순간 정부와 거대 자본,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단체가 나를 추격한다. 도망친다. 자동차들이 전복되고 뒤로 총알이 나를 향해 빗발친다. 와중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위해 함께 해줄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물론 일로 많은 동료들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다행이 나는 나의 진실을 공론화 있는 여자를 만난다. 거대한 음모의 중심에 증인은 나와 함께 도주를 한다 단위로 나와 여자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민을 한다방송국에 사실을 유포해야 하는가?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에는 sns 훨씬 효과적일까? 결국 모든 채널들이 음모는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결국 음모는 아닐까? 아니 나도 음모는 아닐까? 나는 매트릭스의 네오였나? 네오도 음모이지 않았나? 나는 매트릭스를 보고 있는 영화 관람객이 아닐까?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였나? 친구의 적은 음모였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없는 모순들이 더욱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나는 죽음을 단행한다그런데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죽어야지? 델마와 루이스처럼 죽을까? 레옹처럼 죽는 것도 멋있을 텐데, 아니면 라스푸틴처럼 귀족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제이슨 요원처럼 남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제이슨 요원보다는 제임스 본드가 멋진데, ! 젠장 돈이 없다. 내가 돈이 없다는 사실일 음모다. 베니스의 멋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를 나눈다. 곤돌라는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르고 석양은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비춘다. , 젠장 동양인이었다. 그림이 나온다. 프랑스 출실 배우 에바 그린 보다 나는 키도 한참 작다. 작은 동양인이라는 것이 음모였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가 없었다. 다시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컴퓨터가 음모였다. 앞에 서니 나는 왕이구나!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대면할 있고, 어디든지 목소리를 있었다. 애인보다 아름다운 수많은 여인들의 사진을 있고, 심지어는 그들의 나체도 있다니! 지상 최고의 미남으로 둔갑할 있고, 심지어 나는 지상 최고의 인기남도 있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을 있고, 절경이란 절경은 모두 있다. 이야! 나는 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왕을 포기한다.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나는 네모난 컴퓨터 창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포털 싸이트들이 심상치 않다. 싸이트들의 레이아웃이 심상치 않다. 속보들이 불안하게만 보인다. 해외 토픽들의 동향이 나를 흥분하게 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저장하기를 반복한다. 없어진 자료들이 나의 의구심을 계속 자극한다. 근데 이상한 것은 나의 수상하기 그지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요원이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이정도 사실을 알고 있는 나라면 국가 안보에 거대한 위협이 아닐까?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악성 코드들, 나의 정보 다운로드에 핵폭탄 같은 렉을 선사하는 악성코드들이 국정원에서 보내는 방해 공작이라는 사실을 어렴 인지한다. 그들과 더욱 경쟁하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더더욱 이상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누군가에게 총을 맞아야 엄청난 사실을 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악성코드와 바이러스 외에는 아무도 나를 제제하지 않는다. 지금쯤이면 나는 어디론가 붙잡혀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 젠장 이게 음모였다. 나처럼 어두운 세상에 촛불이 되고자 했던, 뜻있는 사람을 컴퓨터에만 붙들려 놓으려 했던 것이 세상의 흉계였다. 모든 것을 의심해라. 내가 컴퓨터에 아무리 떠들고 외쳐도 나는 제제당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의 얘기에 귀담아 듣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진실에 의해 위협 받지 않는다. 세계 거대 조직은 나를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내가 컴퓨터에 떠들고 외칠수록 나는 외면당하고 고립되고 마는 것이다. 암살자가 나를 죽이러 오기 전에 나는 사회에서 벌써 외면을 받고 끝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라.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어디 있던가? 말처럼 모든 것을 부적하고 변명하는 말이 어디에 있던가? 발악할수록 나는 더욱 지쳐가는 체제이다. 친구들은 이미 나의 발악에 지쳐 멀리멀리 떠났다. 그것도 모르고 발악하고 있는 내가 바보이다. 나에게 친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야 말로 의심을 해보자. 이것이 진짜 음모이다. 나는 진실을 얘기하고자 뿐인데 나를 적대시 하는 세력은 생기지도 않고 도리어 나의 친구들까지도 멀어져만 갈까? 내가 10cm 전진하면 주변사람들은 1m 뒤로 물러서는 걸까? 이래서 적이 있어야 아군도 있다. 근데 나는 알고 보니 없었다. 나는 회귀한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처음으로 나우누리에 접속하던 시절을 생각한다. 중학교 다음 카페에 미쳐있던 나를 떠올린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누군가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를 들어가 보던 나를 떠올린다. 이것이 인터넷의 진심이었다. 인터넷의 순정은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함에 있었다. 매일매일 외로운 나의 이야기를 매신져 프로그램으로 친구와 주고받고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고, 쓸데없는 낭만을 논하던 장소, 이것이 월드 와이드 웹이었다. 인터넷은 살벌한 전쟁터라는 것이 음모다. 그곳에 진실은 많아도 아무도 진실을 갈구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진실을 논하기 위해 개설된 장소가 아니다. 나의 말을 인정할 없다면 그냥 처음 인터넷에 몰두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붓을 잡고, 해라를 잡고, 현실로 돌아온다. 나의 진실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텍스트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행하던 일이 진실이다. 내가 만든 작품들이 나의 진실이고, 내가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나의 진심이다. 작품 활동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작품 활동'을 통해서는 너무나도 경이로운 만남들이 이루어진다. 작품 활동 중에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활동 중에 나는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없을 것이다. 의심이 간다면 작업을 하자. 오늘도 다짐한다. 동이 튼다. 먹먹했던 세상에 빛이 들어온다.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이 나를 반긴다. 이상 빗발치는 총알과 자동차 추격전은 없다. 누구보다도 따듯한 마음을 다시 마음속에 품는다. 아침공기, 오늘의 일상, 점심 식사 고민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제임스 본드를 꿈꾼다. 그리고 카지노를 들어간다. 쪽박을 찬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는다…

   

도박장에서 승리하는 가장 간단한 원리는 무엇일까? 바로 카지노 회사와 개인의 관계일 것이다. 바로 쩐의 양이다. 보이는 것이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는 레버리지, 종잣돈의 규모가 많은 쪽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왜냐하면, 인간의 특징이란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데에 있다.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 상상이 가능하다. 실수를 한다. 그 아무리 천재적인 인간이라도 100%의 자기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왠지 이번 한 번이면, 만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저 멀리 날라가 버린 돈, 지나간 과거의 망령이 바짓가랑이를 질질 부여 잡는다. 떨쳐낼 수가 없다. 인간이 감성에 휘둘리지 않는 조건이라면, 넉넉하게 준비가 돼있다면 이성의 기능이 강화된다. 설령 천재적인 개인에게 몇 푼 잃어줘도, 자본대 자본의 대결에 돌입하는 양이 많은 자가 승리한다. 친구나 가족들과 재미 삼아 화투치거나 포카 게임을 하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참고로 나는 호구 중에 호구다.)

   

보통의 평범한 개인은 양적인 대결을 펼칠 수가 없다. 그래서 '질'을 강조한다. 그것이 능력이고 천재성이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 50%의 선까지 올라서야 한다. 50%선에 올라서면, 자신처럼 뛰어나게 곳곳에서 '질'을 추구해온 자들이 결집한다. 그들과의 경쟁이 한 판 거하게 벌어진다. 그 중에 살아남는 자가 '양'의 대결에 초대받게 된다. 이 원리를 뒤집어 생각하여, 미술에 있어서도 작품의 '양'을 중요시 하는 전략이 있다. 시장의 최전선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양과 질을 잘 조절하며 갖춰야 할 텐데, 작품에서도 양의 전략은 유효하다. 흔히 다른 작가들 소문이 돌면 이런 시샘의 얘기하지 않는가? '아! 그 작가 작품 양이 장난이 아니야 어떻게 그래? 비인간적이야ㅋㅋ' 비슷한 원리인 셈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양적 투자를 통해 가격을 조절하기도 하다. 한 명의 작가를 스타로 만드는 데에는 어려운 것이 없다. 실력 있고, 작품이 많은 젊은 작가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자본가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작가에게 눈부신 권위와 보증을 선사하는 것이다. 추천장인 셈이다. 그 권위와 보증을 가지고 있으면 명예와 이익의 기회가 찾아 온다. 보디가드가 가로막아 들어갈 수 없었던 클럽에도 들어갈 수 있다. 물질주의의 단 맛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이 자본가에게 작가가 실수로 밉보였다! 해서 자본가가 열이 받아, 혹은 전략적으로 그를 용도 폐기하는 식으로 팽하려면,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전부 내놓아 버림 끝이다. 그 젊은 작가는 그 동안 뛰어버린 자신의 몸값을 만회 할 수 없게 된다. 바로 그것이 가격의 권능이고 자본의 두려움이다. 그래서 가격은 그 자체로 '신화'라고 언급을 한 것이었다. 자 이쯤 되면, 약자들인 개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역사란 그런 것이다. 다함께 힘을 모으자! 입법을 제안한다. 권리장전을 세운다. 명분을 얻는다. 혁명의 봉기를 꾸민다. 전복하려고 한다. 여기까지가 보통 알려진 역사인 셈이다. 그것이 성공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보자.

   

이쯤 얘기를 하니 싸이가 떠오른다. 싸이는 자본의 전폭적인 양적 투자를 받았다. 싸이 자신이 전략적으로 원했다기 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흔히 말해 간택된 것이다. 싸이에 대한 투자는 정말 감동의 수준을 넘는 것이다. 프랑스 언론이 추천장을 써주고, 각국의 유트브가 진동하고, 그 보증서를 들고 미국에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고, 사랑해주고, 세계인은 그를 동경하기 시작한다. 싸이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 정체 모를 질주의 게임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들어선 것이다. 그는 최근 젠틀맨을 공개하며 이런 인터뷰를 언급했다. '강남스타일의 비정상적인 인기가 자신을 망쳤다고.'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의 젠틀맨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 즉 자신의 안티팬이 생기는 현재의 상황이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천재일우로, 칸에서는 가짜 싸이가 등장했다. 싸이는 전세계인의 앞에서 관용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2012년 말에 싸이는 한 번 구설수에 휘말린다. 그가 한 때 '반미 가요'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미국 언론은 그런 정보를 모르고 있었을까? 싸이는 즉각적이고 전격적인 사과의 표명을 한다. 그리고 그는 오바마의 행사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1위라는 것이, 첨단이라는 것이, 첨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일지는 보통 우리는 상상을 못한다. 마라토너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현재 코스에서 1위임을 느끼는 순간 그 앞에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의 투쟁은 공포 그 자체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컨트롤 해서 평소 열심히 연습한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2위 일 때가 행복하다. 박명수도 행복하다. 싸이가 아무래도 공덕을 많이 쌓은 모양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아주 잘 조절해 나가고 있다. 빌보드의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그 명예의 타이틀을 얻지 않는 것이 자기 명줄을 늘리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양적으로 무제한적인 투자란 존재할까? 존재한다. 미국 연준에 찍어내는 달러가 그런 것이다. 그 양식을 경제계에서 '양적완화'라고 부른다.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 낸다. 삼천포로 잠시 빠지자면, '양적완화'라는 단어도 웃긴 것이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경제계의 수많은 공식적이고 어려운 단어들은 아주 양가적인 것이다. 진입장벽이다. 다시 돌아와서, 미국의 연준이 가지고 있는, 이 기축통화 달러를 무제한 적으로 찍어내는 마법의 모자는 아마 이 물질계에서, 지상 최고의 권능일 것이다. 이쯤 되면, 일부 언론들과 저명한 경제학자가 등장한다. 미국의 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을 한다. 특히나 망국적인 프레시안 같은 언론은 미국 붕괴의 전조라며, 미국의 지방도시에는 아스팔트 유지할 돈도 업어서 철거한다는 식으로 선동적인 기사를 내보낸다. 연준이 현재 지속적으로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고 달러를 푸는데, 바로 이 양적완화는 비유하자면 인체의 혈액 같은 것이다. 이것이 전세계에 퍼져서 경기부양을 일으키려고 한다. 요즘 오바마에게 주어진 특명이란 미국의 산업자본의 부흥이다. 경제 회생이다. 빌클린턴의 대선 멘트가 생각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바야흐로 미국의 초저금리 시대이다. 일종에 어마어마한 대출이다. 그런데 보통의 개인은 이 대출금을 만져볼 수가 없다. 사업이 성공하려면, 어느 순간부터 양적 대결을 펼쳐야 하고, 소위 말해서 '때려 박아야'하는데, 그 기회는 선별적으로 주어진다. 요즘 국제적인 투자은행들의 수입이 반에 반 토막이 났다고 한다. 바로 2008년 리먼사태에 이은 금융 규제에 의한 결과들이다. 대신 조건부로 수면아래에서는 헤지펀드, 사모펀드, 국부펀드가 활약을 한다. 그러한 주체가 바로 미국의 양적완화라는 권능의 대출금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았으니, 혹자는 환율 시장에서 재미를 보려 한다. 특정 통화를 전략적으로 매수하여 케리트레이드를 시작한다.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 비상등이 켜진다. 중앙은행 총재가 등장하여 현 상황에 대한 논리적 결과를 설명하고, 자신의 발언력으로 불장난의 소화기를 자처한다. 정부에서도 나름에 정책들로 그러한 환공격에 대한 방어를 취해보지만, 역사적으로 조지 소로스에 무릎을 꿇은 영국과 일본의 예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특히나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를 쌓아 두고 있음은 그런 측면의 대비가 강하다. 특히나 삼성의 경우는 현금화를 항상 대비하여, 적대적 M&A를 상시적으로 대비한다. 그게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 이권의 현장에 언론도 달려들고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이 달려든다. 한 몫 잡아 보자구나!

   

정치적인 양적 투자란 무엇일까? 언론이 여기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즉 언급의 노출을 투자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양적으로 늘린다. 정치 경제계의 예민한 사람들은 그 동향을 분석한다. 요새 인권문제가 한창 나오고 있다. 바로 규제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일종에 명분 싸움인 것이다. 인권을 지렛대 삼아 정치적인 제제를 시도한다. 물론 현실의 위선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세계의 흐름이 그런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다행이라고 본다. 덕분에 그 수혜를 대한민국이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생각 나는 대로 쓰다 보니 너무나 멀리멀리 돌아간다. 이쯤에서 줄이고, 더욱 구체적인 사례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보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행복하게 살자 우리. 걱정의 마음 잘 받았다.

   

핵심은 허망함이 아닌 희망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작품을 통해서 찾고 싶고, 또는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저마다 고민을 품고 고민한다. 요즘은 너무 힘들 다고 하다가도, 나의 어두운 방구석 자락에 가끔은 햇빛이 들기도 한다. 성현들의 말씀에 인생사 새옹지마란다. 일희일비란다. 우리는 늘 캔디를 꿈꾼다. 난 아이언맨 보다 캔디가 강하다고 본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무한 긍정성! 그것 또한 인생에 대한 양적 투자이다. 아주 무서운 캐릭터다. 연결 지어보면 익숙한 연예인 노홍철의 매력도 그런 계열이다.

   

삶이 허망하고 부정하기 그지 없다면, 정말 현세의 삶이란 죄를 지어 다시 돌아온 업보의 연환일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 않은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하늘아래 땅 위에 자신을 낮추고, 이런저런 소소함에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족한 마음이 든다.

   

다만 개인의 일신도 좋겠지만, 공동체적 가치를 향유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윤택하지 않느냐는 견해를 피력하고 싶은 거다. 그 범위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다. 나의 가정, 혹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 혹은 나의 연인, 혹은 우리 동네, 누군가는 탈북자의 인권, 누군가는 이슬람의 권익, 누군가는 국가의 번영! 파시즘이라는 망령의 지뢰를 피해가면서, 차원의 대화를 하며, 한 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 진정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가열찬 쪽발 타도 투쟁. 한국민으로서의 애정과 동북아시아에 대한 관심, 인류애적 실천의 변증법적인 타오름에 대해, 이 불길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한다. 그대들과 상생하는 공명을 꿈꾸며, 이 불길을 그대들에게 선사한다. 착각은 금물이다. 

   

쪽발왕이 그토록 신화화 됐고, 일본의 아성이라면, 인월리에서 갈고 닦은 해체의 정신으로 나도 모르게 관심이 쏠린다. 그 틈새, 무너뜨리고 싶다. 그리고 100년 넘게 국유본의 보호아래 단단하게 구축해온 성곽일수록 그 무너짐은 눈부시다. 세계인이 동북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철저하고 전격적이며 인정사정 봐줄 것 없는 해체의 현장이 그대들의 이익을 증대 시킬 것이다. 시원하게 무너뜨려보자!

   

아베 총리 암살? 하여간 기획의 폼이 허접하기 그지없다. 그대들의 역사에 대사관 테러 같은 정도는 흔한 것이 아니었는가? 쪽발왕을 저격하려는 독립군의 정신을 그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대들 기획 허접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자존심의 아성에 상처가 새겨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화려하게! 활활 타오르도록! 가열찬 쪽발 타도 투쟁.

   

공황의 전조는 버블이다. 계곡이 깊을수록 산이 높다 하지 않는가? 그대들이 근 백 년의 역사 동안 착실하게 쌓아온 일본이라는 바벨탑인 만큼 해체의 에너지는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신명 나게 놀아보자. 바로 '신명' 

   

인드라 :

   

   

   

 http://www.youtube.com/watch?v=9acpLf5SJhI&feature=player_embedded

   

   

   

 http://www.youtube.com/watch?v=xI8PYkWqlGI&feature=player_embedded

   

   

   

눈치를 채었겠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나비 효과처럼, 미세한 차이다.

   

언뜻 보아서는 알 수 없다. 허나, 우리는 안다. 이 차이가 미래를 얼마나 흔들 것인지를. 하여, 이 위험한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포기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등을 돌리는 한,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없다? 아니다.

   

전략이란 이런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다. 여러분은 설명한다. 제 부족한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하고 운을 뗀다. 허나, 부족하고 개인적인 소견이라면 말하지 마라. 겸손이란 평생 잔소리꾼 엄마 아빠에 대해서만 하라.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겸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겸손이 늘 미덕이라고 여기는가. 씨족스러운 짓거리일 뿐. 

   

겸손함이란 발전을 가로막는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데미안이 알에서 깨어나듯, 진정한 겸손함이란 실력의 향상이다. 찌질이가 당신에 대해 욕을 한다. 참을 수 있는가.  폼을 잡기 위해 참는다면 헛것일 뿐. 헛짓거리는 스트레스만 유발한다. 당신이 찌질이를 압도한다면 당신은 찌질이에 대해 참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참는 것으로 보일 뿐. 당신이 겸손하다면 찌질이에게 진정한 존엄을 보여줄 것이다. 그 존엄 앞에 당신이 찌질이라고 여긴 상대가 여전히 피식거린다면 당신은 아직 많이 부족할 따름인 거다.

   

객관? 내가 세계가 되는 것이다. 왜 당신은 처음부터 세계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가. 교육 때문일 게다. 당신은 초중고대학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니 어떤가. 당신의 부모도, 교사도, 친구도 다 찌질인 게다. 모든 것들에 대한 권위가 사라진다. 허나, 그것이 사실 노예 교육이라는 걸 눈치채기에는 당신이 지나치게 순수한 셈이다.

   

유대인들은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성경을 공부하니 신이 유대인을 유읾 민족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뻥이라 여기고 과학으로 반론을 펼치고자 하는데 물리학하면 등장하는 뉴튼,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가 죄다 유대인 조상이다. 물리학도 믿을 수 없어하고 심리 상담을 하는데 프로이트도 유대인이란다. 암만 그래도 세상이 좆같아, 하고 데모도 해보는데, 맑스,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체게바라가 유대인이란다. 에이, 씨족, 돈이나 벌자하고 하니 로스차일드가 유대인이란다. 이도 저도 싫어 문화예술 쪽에 심취할까 싶었는데, 건축/문화예술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보면 유대인 아니면 게이란다. 예능/방송/언론사를 장악한 이들이 유대인들이니까.

   

그에 반해 그대의 아버지, 어머니, 가족, 스승, 친구, 지인들은 뭐하는가. 다들 유대인에 비해 찌질이들일 뿐이다. 그러하니 그대는 지금까지 '내가 최고'라는 교만한 생각으로 살아온 것이다.

   

반면 유대인들은 자신이 부족한 면을 조기에 발견하고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조상들이 자타가 인정할 만큼 뛰어나니까. 비유하면, 그대는 인문계 고교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이유는 대학가기 위해서. 왜 대학 가나? 좋은 직장 취직하기 위해서다. 

   

반면, 유대인들은? 유대인들 보통 학교가 모두 영재 학교인 게다. 과학고이고, 자사고이고, 외국어고이고, 자율학교인 게다. 이들 학교들은 죄다 유대 학교 짝퉁인 게다. 핵심을 놓친.

   

당신은 평판에 민감하다. 반면, 유대인은 평판에 자유롭다. 그 차이가 십년 뒤에는 엄청난 차이로 돌변한다. 그대가 고작 오타쿠, 혹은 매니아로 만족할 동안, 유대인들은 특정 산업계를 선도하는 리더가 된다. 같은 재능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대는 악보도 볼 줄 모른다고? 그렇다. 유대인이 마련한 학습법을 애초에 배우지 않았으니 모른다. 허나, 우리는 악보를 볼 줄 모르더라도 노래를 느낄 수 있다. 노래를 느끼고, 그 노래를 자유롭게 편곡할 수도 있다.

   

그대 전술이란 그대 전략을 드러내는 것이라 했던가. 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대 주관이란 그대 객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혁명이요, 하면 혁명일 것이요, 나는 통일이요, 하면 통일일 것이요, 나는 부자요, 하면 부자일 것이요, 나는 인간이요, 하면 인간일 것이다.

   

   

   

비평. 비판과 평가. 언제부터 비판이요, 평가였나. 탈무드다. 주석을 달고 각주를 표시한다. 철학의 시작이다. 잊지말지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할까, 아니면  한결 같은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다, 공간이 아니다. 때가 되면 쓸모가 없는 것과 늘 쓸모가 있는 것. 옥석을 구분한다는 것, 보석과 보석이 아닌 것, 그 진정한 구분이 비평이다.

   

해서, 비평은 근본적으로 수메르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금과 은을 그리도 싸고도는 이유가 수메르 경제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우리가 하고 많은 금속 중에 하필이면 금과 은을 화폐 기준으로 삼았는가. 수메르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수메르에서 금과 은을 화폐 수단으로 삼은 이유는 종교적이었다. 하고, 훗날 세속화되었다. 그럼에도 본질을 알 지 못하는 자들은 금과 은이 단지 시간이 흘러도 속성에 변함이 없기에 화폐 수단으로 중시하는 줄 안다. 기능을 본질로 교묘하게 바꾸는 설명법인 게다. 인간은 왜 잠을 자야만 하나, 라는 질문에 인간은 하루 8시간 잠을 자야 피곤하지 않다, 라는 기능적 답변 따위로 물타기하는 것이다. 해서, 여전히 인간이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란 밝혀지지 않았다.

   

해서, 비평 행위에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 비평 행위란 의회에서 하는 손꿉 장난이 아니다. 비평은 신성 모독이다. 그 아무리 의회 손꿉 장난이 스펙타클해도 전쟁이 아니다. 비평은 전쟁이다.  

   

죽느냐, 죽이느냐. 하면, 비평은 승자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다. 비판은 승자 그 자체다. 비평의 결과로 획득한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 다시 말해, 비평으로 생성한 획득물이 비평을 대체할 수 없다.

   

왜 강조하나? 탈무드란 비평의 결과물일 뿐. 해서, 유대 랍비는 정답이 없음을 강조한 것일 게다.

   

예서, 인드라는 유대인 데리다에 주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비유, 은유이다. 금처럼, 은처럼 빛나는 것은 금과 은이 아니다. 빛나는 것이다.

   

빛나는 것은 금일 수도 은일 수도 있지만, 다이아몬드일 수도 있고, 석유일 수도 있으며, 대체 에너지일 수도 있고, 생명 에너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인드라?

   

인드라가 경험적으로 말한다. 국유본이 주목하는 이들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이다. 인드라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등장했듯.

   

인드라에게 수많은 사례들이 보고되었는데, 공통점인 것 하나는, 오프라인 번개에 참석했다고 해서 신상이 달라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다. 반면, 인드라 블로그 등 온라인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이들, 혹은 인드라에게 자주 메일이나 덧글을 다는 이들 신상에는 곧잘 변화가 왔다.

   

인드라와 오프라인에서 아무리 엮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번 참석한 분들이 여러 번 참가하는 것이다. 오히려 무슨 문제가 있기를 바라기까지하는 눈치인 게다.

   

반대로 온라인은 별 게다. 예서, 국유본 관심사는 여러분 개별자가 아니다. 인드라 블로그 등에서 인월리를 읽은 독자라면, 이웃이라면 어떤 반응, 리액션이 있는가를 조사하는 정도가 우선적이다. 빅데이터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월리에 대체 어떤 흥미와 관심으로 접근할까 하는 것이다. 왜인가. 국유본이 인월리를 읽는 이유와 여러분이 인월리를 보는 까닭이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해서, 새드릿 글은 예외적이다. 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이 중의미있다. 인드라도 흥미롭다. 자극적이다. 세상의 덧없음을 잠시 '연기'시킨다.

   

   

그래. 하고픈 말이 많았다. 쓰고 싶었다. 분노의 글쓰기? 적어도 이십년간 한국 글쓰기 중에 인드라 만큼 분노의 글쓰기를 실천한 자가 있을까. 인드라가 자부한다. 모노스피드님은 시스템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인드라는 인드라 정신, 더 추천한다면 인드라 실천이라고 규정하겠다.

   

맑스학과 맑스주의 차이쯤 될까. 성경학과 성격적 삶의 차이라고나 할까. 인간학과 인간주의, 경제학과 경영학이라 할  수도 있겠다. 결국, 진리란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처럼 객관일 뿐이다.

   

더 나아가 저작권이란 게 그렇다. 지킬만한, 인류의 유산일만한 것들이 저작권이다. 허접한 것들의 저작권이란 시급하게 무너져야 한다. 없애야 한다.

   

우리의 작품보다 탈무드가 우월하다면 멸절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탈무드보다 낫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혁명이다.

   

그 하위 기준으로서의 쪽발이란. 양적 완화이다. 국유본이 자신이 지닌 달러만 가지고서는 세계 시장에 대응할 수가 없으니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것이 양적 완화이다. 그처럼 쪽발이란 국유본이 자기 자신만으로 세계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일정 권역을 쪽발에게 맡기는 것이다.

   

헌데, 국유본을 보지 못하고 쪽발만 보니 쪽발이란 허상을 실체로 받아들여 한반도에서 끊이지 않는 아귀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국유본을 바라본다.

   

그 아무리 동아시아와 한반도 이해가 복잡하더라도 그 복잡한 까닭은 국유본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국유본만 이해하면 해법이 간단하여 허탈하기까지 하다.

   

기쁘다. 허탈하다. 살고 있구나.......

   

   

추신 : 잠깐, 세상이 눈앞에 환하게 펼쳐진다? 단계라는 게 있다. 초등 6학년, 중딩 3년, 고딩 3년, 대 4년, 군대 병장급, 회사 대리급, 자영업 5년차 정도가 되면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단지 다음 단계를 앞두고 당신을 유혹하는 것이다. 예서, 멈추라고, 예까지 해도 당신은 충분했다고. 당신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안다. 말만 새출발이 아니다. 자신도 모를 정도로 핵심만 남겨 두고 제로 포인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데. 설마 내가 믿던 것이 핵심이 아니라면 새출발을 하더라도 내가 전보다 좋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인드라 지인, 오른팔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디.

   

신이 국유본에 대항하여 인드라에게 또 다른 미션을 내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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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국유본이 사실을 장악한 세상에서

인드라는 언제나 진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남영덕은 "나는 의열단이오.

나는 한일합병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 의열단에 가입한 후 조선을 위하여 생명을 바쳤소이다

. 나는 조선민족에게 각성을 주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살았은즉

나의  형벌에 대하여는 사형도 좋소이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1923년 8월 13일 의열단 공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서민 등골 빼먹는,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한국의 야스쿠니, 쪽발놈현 무덤은 한반도에 저주를 내리는 대못이다

 쪽발놈현 무덤 철거하고,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하자

빠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인드라 블로그 운영 안내 

http://blog.naver.com/mia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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