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과 알파오메가론 : 역사에서 찾아보는 알파오메가론 국유본론 2013
2013/08/1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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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론과 알파오메가론 : 역사에서 찾아보는 알파오메가론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8/19
이번 인월리는 국제유태자본의 세계지배전략인 알파오메가론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 역시 알파오메가론의 이데올로기적, 이마골로기적 의미입니다. 쉬운 말로 알파오메가론을 역사적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파오메가론이란 국유본이 근대 이후 세계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불규칙적이며 전술적으로 활용하던 몇 가지 사례들을 인드라가 종합하여 알파오메가론으로 지칭하는 것입니다. 해서, 실체적으로는 국유본이 이름만 다를 뿐 알파오메가론과 유사한 세계지배전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지금은 아니지만 인월리를 계기로 알파오메가론을 정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1. 산헤립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기원전 721년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군사적으로 늘 위협이 되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에게 오히려 더 강한 아시리아의 위험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더 큰 부담이 되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의 유다 왕은 아하스였다. 반(反)아시리아 연합 세력에 가담하지 않았던 유다는 즉각적인 재난을 피할 수는 있었으나, 아하스 왕은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막대한 금 · 은과 함께 사절단을 보내어 보호를 요청하였다(열왕기하 16:1~16). 이러한 상황에서 유다의 경제 상태는 몹시 피폐하였다. 대부분의 영토는 주변의 에돔에게 빼앗겼으며, 아시리아에게 바칠 조공 때문에 성전 금고는 바닥이 났다(열왕기하 16:8, 17)"
이사야; 아하스와 히스기야; 산헤립 수메르,UFO,X화일 / 기억하고 싶은 글
작성자: 인드라(mia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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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부터 남유다 멸망이 불가피합니다. 그만큼 앗시리아는 강국이었습니다. 현명한 이사야가 이집트, 바빌론 등과 반앗시리아 동맹 맺어서 앗시리아 심기를 건들이기보다는 겉보기로는 앗시리아에 충성하는 척하며 고립주의를 취하자고 했지만, 멸망을 지연시키는 효과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바빌론 유수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서, 인드라가 주목하는 바는 '과도한 조공'입니다. 앗시리아가 유다를 욕심내지 않았다면 '과도한 조공'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서, 과도한 조공이란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속국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조공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도 강국일 때는 이웃 소국들에게 조공을 받기도 했습니다. 강국이 확장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굳이 소국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서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적당한 조공으로 외부로부터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완충지로 활용할 것입니다.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을 그리 여겼습니다.
앗시리아가 '과도한 조공'을 요구했다면 정복할 생각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앗시리아는 레반트 지역을 장악한 뒤 이집트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레반트 지역은 북으로 터키, 서로는 지중해, 동으로 이라크, 남으로 이집트로 이어지는 교역 요충지이자 오아시스입니다. 요즘 여행간 이들이 그러는데 이스라엘 기후가 정말 살기 좋다고 합니다.
강국이 소국에게 과도한 조공을 요구할 때 왕으로서는 참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수용하자니 공물로 인해 백성 수탈이 일어나니 왕권 약화가 눈에 보입니다. 거절하자니 당장 수도 함락당할 처지입니다.
신하들은 보나마나 둘로 갈라집니다. 실리를 추구하는 주화파는 과도하지만 조공에 응해 후일을 기약하자고 합니다. 명분을 중시하는 주전파는 망할지언정 싸우다 죽자고 합니다.
아하스왕이 과도한 조공을 응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자 왕자인 히스기야는 명분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인드라 조직론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헌데, 성서 기자가 아버지 아하스에 대해 히스기야를 돋보이려고 했을 뿐, 히스기야가 출중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바빌론왕이 사절을 보내 선물을 보내자 자기 보물을 다 보여주었다고 하지요. 이건 통상적인 일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절이 선물을 보내니 답례로 왕의 창고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취하라,하는 의례적인 절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지적대로 바빌론왕 사절에게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지만, 앗시리아와 바빌론 사이 균형외교를 취하고자 하는 정책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면, 히스기야는 현명한 왕일까요? 아닙니다. 외교란 게, 균형외교란 것이 앗시리아에게 한 것을 바빌론에게도 똑같이 대한다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쉰색희란 반증인 것입니다.
외교적으로 앗시리아를 우선하되, 이집트와 바빌론과 거리를 두면서 이사야식 고립주의를 취하면서 내부적으로 종교적으로 인민을 단속하였다면 앗시리아로서도 반란으로 규정하고 침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노린 것은 앗시리아의 정복 구실을 주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허나, 히스기야는 병쉰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앗시리아로부터 침략을 받습니다. 성서에서는 하나님 힘으로 물리쳤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와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는 시온 성(城)을 포위하였다. 유대교의 경전에는 산헤립이 시온 성을 포위하자 야훼의 도움으로 산헤립과 아시리아 군사를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시리아 센나케리브의 기록에는 히스기야가 금과 은을 조공으로 바쳐 철수하였다고 기록하며 조공으로 요구한 금 30달란트와 은 300달란트가 부족하자 시온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혀진 금까지 벗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나, 앗시리아 기록과 히스기야를 뒤이은 므낫세 치세 등으로 추정하자면, 앗시리아가 포위하자 이사야 같은 뛰어난 선지자가 직접 앗시리아와 교섭하여 과도한 조공을 대가로 철군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성서 기자가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 있는 걸 다소간 뻥튀기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아무튼 유다 멸망을 막았으니까요.
므낫세가 다시 할아버지 정책으로 돌아선 건 히스기야처럼 해도 소용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므낫세는 지나치게 조심하는 바람에 이사야 주장도 위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외세 힘이 큰 만큼 그럴수록 민심을 얻기 위해 정신적인 안정이 중요하므로 이사야를 크게 써야했는데 오히려 죽였다니 므낫세는 히스기야보다 더 한심한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므낫세 치세가 12살에 왕위에 올라 55년간 꽤 오래 유지되었습니다만, 남유다 왕권 권위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서, 산헤립 관점에서 알파오메가론을 살펴봅니다. 산헤립 관점에서 알파팀은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유다왕국을 유지, 존속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산헤립 관점에서 오메가팀은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유다 왕국을 약화,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조공은 알파요, 과도함은 오메가입니다.
2. 중국 조공시스템, 사츠마, 류쿠
강국이 주변국을 정복할 때 대체로 세 가지 방식을 씁니다.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거나, 로마제국이 카르타고 멸망시킬 때처럼 풀 한 포기 남겨두지 않고 없애거나, 왕권을 유지시키는 조건으로 조공을 요구합니다.
헌데, 조공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무조건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대 중국과 맞싸웠던 베트남이나 고구려, 통일신라가 전투에 승리하고서도 조공을 청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신라가 당나라에 굴복했다고 보지만, 역사왜곡이지요. 통일신라는 왜나라 속주였던 백제를 해방시켰고(왕자를 내내 인질로 보냈던 백제가 왜 식민지가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당이 백제 지역을 삼키고자하니 나당전쟁 승리를 통해 벽제지역을 지켜내었던 것입니다. 해서, 삼한지역에서 통일신라 초기를 제외하고 별다른 반란없이 한민족으로 통일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발해지역을 통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것이 통일신라 국력이었으니까요. 하고, 이후 고려, 조선이 고구려 지역까지 점차 확장한 건 바람직한 일인 것입니다.
고대, 중세에는 안타깝지만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한반도 근처에 하필이면 중국과 같은 세계 대국이 있었습니다. 이런 대국 옆에서 이천년간 이상 존립했다는 것 자체가 높이 평가할 일입니다.
자고로 조상 욕하는 넘치고 제대로 된 넘 없는 것입니다. 조상이 평가받는 건 어디까지나 후손들 하기 나름이니까요. 아무리 찌질한 조상이더라도 후손이 세계 패권을 잡으면 세계인이 다 우러러 볼 것입니다.
유대인이 그렇잖아요. 성서 기록에 나온 유대 역사 보세요. 얼마나 찌질합니까. 국가가 멸망했잖아요. 그런데도 오늘날 어때요? 유대인 조상들 높이 평가받고 있잖아요. 전 세계에서 유대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근래 인터넷에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특히 오마이나 프레시안 같은 쪽발찌라시에서 쥬신이니 뭐니 하면서 떠도는 것 모두 일본 극우세력 주장을 교묘하게 백제다 쥬신이다로 포장한 극우쪽발론입니다. 인드라가 괜히 쪽발놈현빠를 빠시스트라고 부르는 줄 아십니까.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뒤로 쪽발아베, 쪽발도요타, 쪽발교류재단, 쪽발석현, 국정원 등이 없는가 자금출처 조사 좀 해야 합니다 구독률 1%도 안 되고 광고도 별로 없는데 뭔 돈으로 찌라시 돌리나요? 세계적인 언론들도 스마트폰 열풍으로 불황타서 어려운 판에? 국유본 중 쪽발분파가 쪽발을 위해 만든 것인데요. 1980년대부터 뉴라이트가 재야사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유포시킨 것입니다. 특히 대륙백제론 따위는 국유본이 유포시킨 역사왜곡물입니다. 쪽발놈현 무뇌아들이 툭하면 김부식 삼국사기 폄하하는데, 김부식 삼국사기 정사가 없다면, 중국 사서와 일본 사서 조작에 맞서 무엇을 주장할 것인데요? 삼국유사? 그건 정사가 아닙니다. 이쯤해두고요. 하여간 박노자 같은 한국사 폄하 유태인 색희도 문제가 크지만, 무조건 카스피해부터 일본열도까지 다 쥬신의 땅 이러면서 미친 쥐랄떠는 대체역사넘들도 파시스트인 것입니다. 좆잡고 반성하시구요. 어차피 한국이 한번은 제국주의해봐야 홍역 치루듯 넘어갈 사안이니 대리만족도 적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역사 공부하려면 쪽발책장사하는 유모씨발색희처럼 엉터리로 하지 마세요. 이 색희 쪽발놈현정권 때부터 구린내나던 씨족색희인데 인드라가 그넘 만나면 침을 뱉고 싶네요. 지하에 계신 독립투사들이 그넘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벌을 내릴 것입니다. 역사로 장난치는 색희는 삼대가 쪽박차고 고통스럽게 살 것입니다. 하여간 쪽발민주당을 해체시켜 호남민중을 해방시켜야 진정한 광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까지 호남 인민을 가증스런 쪽바리들의 떡밥으로 남겨둘 것입니까, 국유본? 호남 인민도 해방하고, 북한 인민도 쪽발정은 쪽바리들로부터 해방시켜 인민들에게 밥과 자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 중심 조공시스템은 왜도 들어오고자 노력했습니다. 중국이 쪽발이라고 껴주지 않으니까, 일부 품목 교역을 제한하니까 왜란 일으키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조공시스템을 잘 알았기에 사츠마번은 류쿠(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겉으로 여전히 류쿠를 독립왕국처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정책은 류쿠인들을 지옥으로 떠밀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류쿠왕국은 중국 조공시스템 안에 있어서 중국에도 조공을 바칩니다. 헌데, 이것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당시 조선이 중국에 조공을 보내면 더 많은 하사품을 받곤 했으니까요. 문제는 류쿠가 사츠마번에게 조공을 해야 했는데, 과도한 조공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사츠마번은 한편으로 류쿠를 통해 중국 조공시스템 안에서 중국/서양과 무역을 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 류쿠인들이 절벽으로 가서 자살할 정도로 과도하게 하여 독립 의지를 약화시켰던 것입니다.
하여간 사츠마번 쪽바리 색희들, 사쿠라지마 화산재, 핵 방사능으로 처발라도 그 죄를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역사적으로 짜증나는 색희들입니다^^!
3. 알폰소 6세, 엘시드, 레콩키스타,파리아스, 유대인, 포르투갈 개국
이제 좌표가 스페인으로 갑니다.
무슬림이 스페인을 정복할 때 이슬람, 칼, 조공을 내세웁니다. 스페인에 이슬람제국을 만들었습니다. 허나, 수백 년 흐른 뒤 이슬람제국도 몰락하고 맙니다.
라흐만 3세를 끝으로 스페인 이슬람제국이 사실상 막을 내립니다. 직후 고구려 연개소문 같은 장수가 멸망을 지연시켜보지만, 오히려 왕권 정통성을 상실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1009년 베르베르족 용병들과 슬라브계 노예용병들이 황도였던 코르도바를 순식간에 장악합니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한순간에 당시 수도였던 코르도바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도살당한 겁니다. 하여, 1031년까지 이슬람제국 명줄이 이어지긴 했는데, 이름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에스파니아의 역사(10) - 알 안달루스 | 대항해시대 Art & History 카프카 / 기억하고 싶은 글
작성자: 인드라(mia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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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권력이 실종되니 지방권력이 득세합니다. 그것이 타이파 왕국시대입니다. 중국으로 치면 5호16국시대라고 할까요? 한국으로 치면 후삼국시대입니다. 가령 바다호즈를 장악한 자는 슬라브계 노예용병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1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노르망디 같은 곳에서는 백인 노예들이 거래되었는데요. 주로 슬라브계였습니다. 해서, 노예 명칭이 slave인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하여간 이들을 노예용병으로 키웠는데, 왕국이 불안하니 서로마제국 게르만족 용병처럼 뒤엎어버린 것입니다.
헌데, 인드라가 주목하는 것은 이 시기 유대인 흐름입니다. 유대인들은 라흐만 3세에 이르러 해방세상을 만난 듯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탈무드 학교가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입니다. 유대인은 외교관으로 크게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제국, 무어왕국에서 부족함없이 살던 유대인이 어느 순간 이슬람제국에 등을 돌립니다. 왜일까요?
베르베르족을 비롯한 북아프리카 이슬람인 때문입니다. 보통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과 극인데요.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수니파와 시아파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 주요한 것 같습니다.
수니파는 아랍인 중심인 편입니다. 해서, 같은 무슬림이더라도 내부적인 차별이 존재합니다. 반면 비무슬림에게는 관용적입니다. 개종을 굳이 강요하기 보다는 똘레랑스인 겁니다. 라흐만 3세 입장이지요.
반면 이란인이 중심인 시아파는 물론 베르베르족 등인 북아프리카 이슬람인은 '무슬림은 형제요,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비무슬림에게는 비타협적인 것입니다. 해서, 유대인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아바스 왕조입니다. 해서, 12세기지만 마이몬, 마이모니데스라는 코르도바 출신 유대인이 이집트로 망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스페인 유대인을 탄압한 건 카톨릭뿐만 아니라 이슬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베르베르족, 하고, 이후에 스페인 정복에 나선 북아프리카계 이슬람왕국인 알모라비데 왕국은 개종 아니면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해서, 이슬람제국에 동화되었던 스페인 유대인들이 스페인 북부 기독교왕국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때, 이들을 가장 잘 활용한 왕이 있으니 알폰소 6세입니다.
[본문스크랩] 엘 시드와 11세기 스페인 카프카 / 기억하고 싶은 글
작성자: 인드라(miavenus)
이 시기 스페인에서는 아직 봉건제가 정착되지 않은 시기입니다. 해서, 왕 밑으로 영주가 있기도 했지만 영주를 대신한 족장들이 각 마을 대표로 족장회의를 통해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교권과 전쟁 개시권 정도만 왕에게 위임하구요.
국제유태자본과 바스크 : 산초 3세, 앙리 4세, 카를로스파, 체게바라, 피카소, 빌바오, BBVA, 몬드라곤, 칠레 국유본론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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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바스크왕국입니다.
하고, 유목민 관습으로 장자세습법보다는 형제들에게 균등분할했습니다. 이를 동서양 시각차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아닙니다.
여러분,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조선 초기에도 여성에게도 상속권이 있었다는 것 아세요? 있었습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그건 고려, 조선 초기까지 통일신라 전통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여성, 남성 문제가 아닙니다. 피, 혈연 때문입니다. 유목민들은 황금씨족 공동체 사상이 있습니다. 황금씨족끼리는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황금씨족 대 비황금씨족인 겁니다. 해서, 신라 골품제가 나온 것입니다.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골품제였다면 믿어지십니까. 골품제가 있었기에 화랑제도도 있는 것입니다. 과장되게 말해서, 고구려, 백제 귀족들이 나라가 망하건 말건, 내 귀족가문이나 챙기자 할 동안에 통일신라 귀족들은 왕국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후 몽골 공주가 고려에서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고려왕이 몽골 황금씨족 사위라고 해서 변방권력이 고려왕 싫다, 당대 몽골 중앙권력에서 놀겠다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헌데, 이런 걸 모르면서 동서양 차이를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동양은 중국밖에 없고, 서양은 그리스,로마밖에 없는 줄 아는 것입니다. 동양에는 인도도 있고, 한국도 있고, 몽골도 있고, 만주도 있습니다.
해서, 황금씨족이니까 남성 후보가 없으니 여성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왕이 그냥 나옵니까. 그렇지 않지요. 고구려나 백제에 여왕이 나옵니까. 안 나오죠.
또 다른 유목민 특징인 재산 균등분할제입니다.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싸우든 말든 능력껏 가져라, 라는 것입니다. 해서, 몽골이 세계를 지배한 뒤에 몇 개 쪼개진 거죠. 스페인과 독일에서 수많은 공국으로 쪼개지고 영지전하는 이유인 거죠. 이후 봉건제가 정착되면서 왕국 군사력 누수를 염려하여 장자상속제를 정착시키는 거죠.
또한, 로마카톨릭교회 영향도 별로였던 시기입니다.
알폰소 6세는 영웅 서사시의 주역 엘시드에 비해 인기없는 인물입니다. 헌데, 스페인 레콩키스타 역사에서 극과 극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폰소 6세가 욕을 먹는 이유는 황권을 장악하기 위해 형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헌데, 당시 균등분할권으로 인해 형제끼리 제국 황권을 놓고 한바탕하는 건 관례였습니다. 강한 자가 통일시킨 뒤 다시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해서, 알폰소 6세 역시 장남이 주도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셋째를 몰아냅니다. 헌데, 누이가 반란을 일으켜서 장남이 누이를 포위하였는데, 갑자기 장남이 죽습니다. 이 과정이 불확실하고, 알폰소 6세와 누이가 근친XX 관계여서 누이를 사주하여 죽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알폰소 6세는 교회에서 자신은 절대 형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요?
인드라는 홍콩영화 '흑사회 2'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에서 나온 과정대로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장남은 겉으로 인자한 척하나 잔인 냉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동생보다 잔인 냉혹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알폰소 6세는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알폰소 6세가 직접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고백하였으니까요. 허나, 알폰소 6세가 죽인 것도 맞습니다.
엘시드는 장남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였는데요. 이후 이 일을 빌미삼아 자신만의 길을 갑니다. 기사들이 엘시드에게 환호하는 것은 명분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기사 출신이 자유기사가 되어 모험을 하면서 왕도 되는 환타지적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헌데, 인드라가 엘시드보다 알폰소 6세를 주목하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과도한 조공'입니다.
파리아스라고 하는데요. 1030년대 이후 스페인 북부 카톨릭왕국들이 타이파왕국들을 점차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타이파왕국 왕들이 노예용병 출신들이었기에 무력이 있었지만 왕국을 통치한 경험이 없었기에 관리에 무능하였습니다.
또한, 스페인 중부 타이파왕국들 고민이 있었습니다. 인드라가 해외배낭여행 때 스페인을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풍경이 북아프리카에 온 줄 알았답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는군요. 해서, 지도로 보면 커다란 땅이지만, 알래스카나 그린랜드, 시베리아 같은 땅이어서 그렇습니다. 해서, 몇몇 도시 중심인데요. 성들이 공격하기는 참 좋은데, 방어하기는 극악이라고 하네요. 인드라가 잘은 몰라도 몽골군도 중국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준비한 것으로 아는데요. 그처럼 이 지역에서도 공성전을 주로 하기 보다는 성문 열고 나가서 평야에서 전투하지 않았겠나 싶어요. 손자병법에 따르면, 공성전을 하려면 수비군 열 배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헌데, 스페인 정복할 때보면 카톨릭 군대나 이슬람 군대나 숫자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저 몇 천 명이 속도전으로 수도를 함락하는 방식으로 싸운 것 같습니다. 해서, 스페인 중부 성들이 점령하기는 쉽지만 방어하기에는 용이하지 않으니 차라리 점령하지 않는 것이 군사력을 유지 관리하는 방법인 겁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이 파리아스였던 것입니다. 알폰소 6세 이전에는 과중한 조공이지 않고 조공이었는데, 알폰소 6세부터 과도하게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알폰소 6세를 보좌하던 유대인 전략 때문입니다. 알파오메가입니다.
알파는 '조공', 오메가는 '과도한'인 것입니다.
유대인은 세금징수원으로 일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세금징수원은 커다란 이권이어서 로마제국 때 유대인이 할 수 없었지만 이슬람 왕국에서는 가능했습니다. 해서, 평민인 유대인이 로마제국 상인처럼 큰 부를 얻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금징수원이 말하자면 국가예산 같은 것도 같이 짜면서 사업할 수 있었으니까요. 세금으로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 황궁을 짓는다 하면 세금징수원이 먼저 자기 돈으로 내어서 사업을 한 뒤 후일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수수료 등 수익이 챙기니 부자가 될 수밖에요. 뭐니뭐니해도 부자되는 비결은 중간에서 수수료 떼먹는 게 아닙니까.
하여간 누구보다 세금에 관해서 잘 아는 유대인인 만큼 구약 산헤립도 잘 아니 알폰소 6세에게 쥐어짜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도한 조공은 자칫 식민지 왕과 인민 사이를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사야 같은 현자가 있다면 말입니다. 허나, 이사야 같은 현자를 매장시키고, 식민지 왕과 인민 사이를 알파오메가팀으로 나눠 민심을 교란시킨다면 단결보다는 내분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더불어 과도한 조공은 일타삼피이니 식민지 왕권을 약화시키고, 식민지 인민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만만하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덤비지만, 격차가 크면 인민이란 강한 놈 쪽에 붙기 마련입니다. 세번째 이득은 군사력 유지입니다. 지속적으로 레콩키스타하려면 잘 훈련된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헌데, 군사라는 건 돈 먹는 하마죠. 이 돈 먹는 걸 채우려면 내부에서 세금을 더 거두거나 혹은 생산성을 높이는 제도혁신 기술개발하거나 외부에서 세금을 충당해야 합니다.
헌데, 이 시기는 정복전쟁으로 세금 충당하던 시대입니다.
옴미아드 왕조가 쇠락하고 아바스 왕조가 뜬 이유 중에는 세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옴미아드 왕조는 정복전쟁에서 나온 돈으로 국가 재정을 운영하였는데요. 이때 큰 문제는 나폴레옹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해야만 프랑스 재정이 유지되는 것처럼 반대로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하면 프랑스 재정이 파탄날 수밖에 없는데요. 옴미아드 왕조도 딱 그 꼴이었습니다.
또한 인두세와 토지세를 받았는데,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받지 않으니 점차 개종하는 인구가 늘어 세금내는 층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만회하고자 중앙권력이 지방총독들에게 강제로 과도한 세금을 할당하니 지방총독들이 죽을 맛이고, 지방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요.
그처럼 타이파왕국들이 연이은 알폰소 6세의 세금 독촉으로 권력에 위기가 오니 군대없이도 왕국을 내부에서 망가뜨렸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알폰소 6세에서 이미 레콩키스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폰소 6세는 딸을 정략결혼시켜가면서까지 죽어가면서까지 레콩키스타 외치다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알폰소 6세가 유대인을 얼마나 챙겼냐면, 알폰소 부인이 십자군전쟁을 주도할 만큼 당대 로마카톨릭교회를 꽉 잡고 있던 부르고뉴 교회 지역 귀족출신이어서 로마카톨릭교회와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시기였음에도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유대인 중용을 멈춰라, 가까이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간섭해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폰소 6세는 딸만 있었는데요. 해서, 이 시기 딸들이 모두 승계권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사위들 중에는 포르투갈 왕국을 개국하는 이도 있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알폰소 6세가 있음으로 인해 포르투갈 왕국이 탄생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고, 아론소 6세의 친유대인 정책은 이후 포르투갈 왕국 탄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후일 포르투갈에 유대인 인구 비율이 당대 세계 최대인 20%에 육박하는 것도, 포르투갈이 대서양 탐험에 앞장서게 되는 배경도 지정학적인 이유가 크지만, 유대인 이유도 크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유대인이 포르투갈에 집중한 것도 지정학적인 이유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참고할 글 :
국제유태자본론 :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서양사 초간단 정리 1 : 롬바르디아 상인에서 메디치 가문까지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49705549
국제유태자본론 : 서양사 초간단 정리 2 ; 카르타고 유태인 상인에서 베네치아 상인까지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49878387
라흐만 1세 동맹 외교와 유태인 인맥 : 국제유태자본이 세계 이성적 존재이다,라는 명분을 주고, 한반도 통일이라는 실리를 요구하자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0374821
스페인 정벌 이슬람 총사령관 무사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태인 출신이다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0211916
국제유태자본론 : 15세기 포르투갈은 20세기 이스라엘이었다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0010242
국제유태자본과 알폰소 6세, 네이버, 브리태니커 사전 : 쪽발 차명계좌 수구꼴통 잔당 쪽발지태놈현파에겐 미래가 없다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2029060
스페인 역사에서 오늘날 한반도 시대정신인 통일시대를 읽는다 국유본론 20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059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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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마음으로 슬프고 아플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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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상처를 낼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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