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한일 해저터널 국유본론 2010

2010/09/27 03:16

http://blog.naver.com/miavenus/70094520963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 ··· aaa6iixk

   

청년실업 :

인드라님. 질문 있습니다. 인드라님께서는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계영배 :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말이 공식적으로 나오기는 처음인데요. 아시아에서 유럽연합을 만들기 위한 시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편으로는 막대한 건설비용을 통해 각국의 재정을 파탄내서 다른 걸 하려는 의미가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일 해저터널 안에 뭔가 숨어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094521021

   

    

   

국제유태자본과 한일 해저터널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0/09/28

   

INDRA:

글 고맙습니다.

   

   

   

   

인드라 블로그에서 해저터널로 검색하면 인드라가 그간 숱하게 해저터널에 대해 언급했음을 알 수 있다. 인드라는 시종일관 한일 해저터널을 반대해왔다. 뿐만 아니라 한중 해저터널, 전남-제주 해저터널도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드라는 해저터널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예의주시하는 편이다. 해서, 올해 인드라가 난생 처음으로 통영에 가서 통영에 있는 조선 최초의 해저터널을 견문하고 올 정도이다.

   

한일 해저터널과 같은 사업은 결코 이명박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하나, 야곱의 사다리와 한일 해저터널

   

[야곱의 사다리는 야한 영화가 아니었으나 나에게 묘한 흥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제이콥이라는 주인공이 베트남전 참전 당시 자신도 모르게 군 당국에 의해 복용되었던 환각제로 - 환각제의 이름이 사다리 LADDER였다. - 인해 종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환각의 고통에 시달리며, 그 고통의 뿌리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결국에는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플래쉬 댄스', '나인 하프 위크', '은밀한 유혹' 등 감각적인 영화를 만든 아드리안 라인 감독다운 작품이었다. 약을 먹은 병사들이 제 정신이 아닌 채 마구 총질을 해대는 끔찍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한 명을 강간하면 재미없다, 수십 명을 강간해야만 흥미롭다. 내 고통과 슬픔을 보상할 수 있다면.사랑을 해도 지독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에 매달린다면 악마가 영혼을 삼킬 것이며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그 악마가 바로 고통을 해방하고 평화를 주는 천사가 되리라는 대사는 너무나 불쾌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죽어라?

   

그때 인기척이 났다. 그가 왔다. 나는 그제야 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처럼 툭 튀어나온 주걱턱, 팀 로빈스 같은 훤칠한 이마, 그리고 직선으로 내리꽂는 코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해병대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눈매만은 누런 담배 연기 같았다. 준수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약간 흐릿한 눈으로 나를 힐끗 보더니 냉장고에서 술을 꺼냈다. 찬장에서 먹다 남은 이상한 안주를 꺼냈다.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섞어 만든 멸치 사라다였다. 그는 나에게도 한 병을 주더니 병째로 마시고 말을 꺼냈다.

   

"Pontifex maximus의 뜻을 안 것을 축하하오."

   

이 무슨 기분 나쁜 말인가? 마치 나를 잘 안다는 그의 말투가 충분히 내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게다가 반말조라니 보기에도 한참 밑인 듯한 이십대 중반인데. 나도 홧김에 술병을 비웠다. 그는 술이 좀 더 들어가니 내가 따질 겨를이 없이 마구 말을 내뱉었다. 대개 혼잣말이었다. 에펠탑의 설계자 구스타프 에펠은 본래 꿈이 화학자였는데 인연이 그를 위대한 기술자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다리 길이를 전장 길이로 따지지만 실제로는 교각, 혹은 주탑 사이의 길이, 즉 경간이 건설업계의 관례이다. 산업 혁명은 철과 콘크리트의 신소재로부터 이루어졌는데 특히 철의 발전이야 말로 우리가 눈여겨봐야 된다. 다리의 역사는 곧 근대화의 척도이다. 내가 듣건 말건 떠들었다. 그는 또 테크노 파워이니 라멘교의 구조이니 아치교의 원리 등을 떠들었다. 각 다리의 세세한 구조를 찬미하기도 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에서 매해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오? 사람들이 신문에서 한강 다리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기사를 읽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죄악이오. 아시겠오. 왜 하필 그들이 다리 위에 올라가 떠나간 애인을 부르짖다가 강물로 뛰어드는 것인지 모른다면 이 현실은 정말 엿 같은 세상이란 말이오."

   

나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그의 뒤편 사진을 감상했다. 금문교였다.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목숨을 걸고 날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오. 에펠탑이 이를 증명하오. 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시키며 현실과 꿈을 연결시키며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며 마침내 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것이오. 에펠탑은 세워 놓은 다리 다름 아니오. 아무리 공장의 굴뚝이라는 형태의 공업기술을 파리 속에 끌어들인 졸작, 추악한 철덩이라 중상모략을 받아도 미지의 것과 연결시키려는 인간의 위대한 투쟁이었오. 하지만 긴 다리의 꿈은 좌절되었소. 경제성 때문이오. 근대의 신화를 이끌어 왔던 장대교(長大橋)의 좌절은 곧 근대의 좌절이며 자본주의의 좌절이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오. 한 번도 날지 못했오. 사람들이 추락한 시체만을 볼뿐인 교훈만 남기고 근대는 몰락하고 있소."]

인드라의 소설 '연결'

http://blog.naver.com/miavenus/60002757268

   

"창22: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야곱이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 걸친 사다리를 통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불로장생을 꿈꾼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는 선도, 인도에서는 요가, 유럽과 중동에서는 카발라가 발달해왔다. 예서, 도란 뭐냐. 길이다. 요가란 뭐냐. 산책이다. 카발라란 뭐냐. 생명의 나무다. 해서, 뭐냐. 불로장생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를 찾고자 한다는 게다.

   

이렇듯 인간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오직 꿈만 꾸었을 뿐이다. 허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꿈을 현실로 바꾸기 시작했다. 종전의 인간은 몽환과 사색을 통해 신을 만나려 했지만, 근대인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신을 만나려 했다.

   

   

   

   

둘, 국제유태자본이 길을 구원의 통로에서 제국주의의 도구로 탈바꿈시켰다

   

조선의 길은 구불구불하다. 침략자의 진군 속도를 최대한 늦추어야 안전하게 피난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근래 개발한 올레 길처럼 친환경적이다. 반면 로마제국의 길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그 즉시 로마 정예병이 출동할 수 있게 한 제국을 유지시키는 기초였다. 해서, 근대화 과정에서 로마 정치가 오늘날 대의제 정치의 본보기가 되었듯이 길 역시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영국을 숙주로 삼은 태동기의 국제유태자본은 18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 해상권을 장악했다.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 허나, 육군은 아니었다. 당대 국제유태자본이 육군을 꺼리게 된 것은 하나, 영국이 섬나라라는 지형적 특징으로 인한 역사적 배경도 한몫했고, 둘, 왕권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육군을 키우게 되면 중앙집권적 체제가 불가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제유태자본의 권력을 제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 무엇보다 육군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럽 대륙에서 아시아로 나아가는 길은 해상 통로로 충분했다. 자칫 육상 통로를 강화시킨다면 종래 베네치아 전성시대처럼 지정학적으로 영국이 주변국가로 또 다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헌데, 이런 사정이 송두리 채 바뀌게 된다. 하나, 로스차일드가 국제유태자본의 주인이 되었다. 로스차일드는 전쟁을 통한 돈벌이만이 가장 크게 남는 장사라는 점을 부의 축적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둘,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a6%9d ··· 5b4%2580

   

   

   

셋, 제국주의의 상징, 철도사업

   

종래 국제유태자본이 바닷길을 선호한 것은 기존의 길이 아랍 상인과 베네치아 상인에게 막혀 있기 때문이 주된 요인이나, 그 외에 해로가 육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도 있다. 다시 말해, 해로에도 해적이 있다 하나, 육로의 산적을 만날 확률보다는 낮았다. 헌데, 이러한 위험 부담을 낮추면서 대량 수송이 가능하다면? 대박인 게다.

   

로스차일드는 소극적인 관점에서 육지에서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에 육군을 고려했던 측면도 있지만, 적극적인 관점에서 철도사업이 미래의 돈줄임을 파악했던 것이다. 여기에 해군력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태양이 지지 않는 영국'의 한계가 있었다. 해서, 유럽 각국의 제국주의를 고무시켰고, 일본을 키워 현지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제유태자본과 냉전의 기원

http://blog.naver.com/miavenus?redirec ··· 32100543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직후 농업 공황이 발생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은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허나, 이것은 낭만을 동반해야 한다. 마침 터진 것이 오스만투르크에 시달리는 그리스 사태였다. 이는 제 2의 십자군 전쟁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럽인의 공분을 자아냈다. 물론 이런 공분이란 국유본이 떡밥을 던진 결과이긴 하지만. 비록 당장에는 영국 해군력이 그리스를 오스만투르크에서 떼어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육로로 군사와 물자를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면 하는 로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런 것이 훗날 1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했던 독일의 3B정책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이 세 가지 계기를 모두 활용한 것이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힘. 그것이 로스차일드의 힘. 국제유태자본의 힘인 게다.

   

   

   

넷, 왜 일제는 한일 해저터널을 구상했는가

   

인드라는 줄곧 강조해왔다. 일본의 근대화와 선진화는 99% 국유본 덕분이다, 라는 점을 말이다. 나머지 1%는 일본 야동 덕분이라고 본다. 이것은 순수하게 일본인의 능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야동은 근래의 산물이 아니냐고 순진하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또한 일본의 만주 점령과 이후 태평양 전쟁도 배후에는 국유본이 있다고 했다. 단적으로 국유본이 로열 더치 쉘을 통해 일본에게 비행기 등에 쓰일 연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전쟁을 꿈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가 한일 해저터널을 구상한 것은 1930년대다. 이 시기는 어떤 시대인가. 만주국 시대이다. 만주국 성립으로 이전과 달리 일본과 비 일본 비중이 크게 바뀌었다. 하면, 이 시기 일본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당연 유럽의 예를 참고했다. 여기에 국유본이 떡밥을 적절하게 던졌는지는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일이다. 결국 신사참배 강요, 한국어 말살 정책, 동원 체제를 통해 종전보다 더 일본과 대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려고 했던 것이다.

   

해서, 한일 해저터널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로스차일드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유태자본의 세계관을 내면화시켰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다섯, 전후 일본 정부는 왜 한일 해저터널에 소극적인가

   

전후 일본 정부는 왜 이 문제를 민간 종교단체에 맡기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바로 중국보다 일본이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영토 문제에 민관군이 함께 움직인다. 효율적이기는 하다. 허나, 이는 역풍에 매우 취약하다. 다시 말해, 김정일 정권이 모종의 조치를 취할 때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총력전을 펼치기에 단기적으로 효과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오히려 약점이 된다. 왜? 특정 사건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가 없는 한, 태평양전쟁의 전범 책임이 있는 정권이다. 해서, 공식적으로는 손 놓는 모양새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적극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실리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근래에까지 독도 문제에서 관철되어왔다.

   

결론은 자명하다. 일본 정부는 결코 이 문제에 소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 허나, 이 문제를 상대가 더 말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면, 이것이 일본 정부의 뜻인가. 아니다. 국제유태자본의 의지이다. 국제유태자본은 전후 자민당 정권만 아니라 오늘날 부패민주당 정권도 창출했다. 국제유태자본이 눈짓만 하면 내일이라도 일본 정권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여섯, 왜 전두환은 박정희와 달리 한일 해저터널에 적극적이었나

   

한국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권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빅터 로스차일드 박정희 정권이 아닌 데이비드 록펠러 뉴라이트 전두환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지난 시기 로스차일드와는 다른 세계관으로 정책을 설계했다.

   

첫째,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의 길이란 SF요, 과학이다. 반면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의 길이란 환타지요, 종교이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의 길이란 로마제국의 길을 떠올리지만,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의 길이란 홍해 바닷길을 내었던 모세의 길이다. (여기에 참고로 제이 록펠러 시대는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와 또 다르다. 서울의 청계고가도로, 육교가 철거되는 것이 단지 효율성 때문일까^^! 청계천, 물길을 강조하는 것이 우연일까? 아니다. )

   

둘째,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의 세계는 영국을 중심으로 유라시아와 미국이 양 날개였다. 허나,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의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양 날개였다. 이를 위해서는 영국과 일본이 섬나라라는 종전의 인식에서 탈피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의 일본 역할이 중요했다. 해서, 일본인이 마치 영종도 주민처럼, 거제도 주민처럼, 완도 주민처럼 이제 나도 육지인이라는 생각을 일상에서 해야 했다. 오늘날 한류는 이러한 섬나라 근성을 바꾸게 하는 국제유태자본의 속 깊은 프로젝트인 게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이제 일본은 탈 아시아 유럽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이 되어야 한다.

   

셋째, 해저터널 사업은 철도 사업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로 인해 동북아시아 물동량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연합 구상에 한발 다가서는 것이다. 돈도 벌고, 정치적 이득도 발생한다.

   

   

   

   

   

   

   

   

   

일곱, 문선명, 창가학회, 김대중 한일 해저터널 커넥션의 배후는 국제유태자본이다

   

한일해저터널에 적극적인 일본 민간종교단체란 창가학회이다. 정치적으로는 공명당이다. 현재까지 인드라 분석으로는 창가학회가 문선명 통일교의 자금줄로 보인다. 예서, 중요한 것은 문선명이 1980년대 김대중의 정치자금 중 일부를 제공했을 것이란 점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 돈은 문선명 돈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국유본 자금이다. 이 자금이 국유본 - 창가학회 - 통일교 - 문선명 - 김대중으로 이어졌을 것이란 것이 인드라의 현재까지 분석이다. 이는 문선명과 김대중, 창가학회 이케다가 모두 네오콘 부시파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면, 이 셋의 공통점은? 그렇다. 모두 한일해저터널에 찬동하는 입장인 게다.

   

   

   

   

여덟, 이명박 정부의 공식 문건화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통일세처럼 보면 된다. 지금 당장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유본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FTA처럼 하나하나씩 주변부부터 야금야금 먹어치울 것이다.

   

해저터널의 핵심은 한일 해저터널이다. 한중 해저터널은 한일 해저터널의 떡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오늘날에는 비중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통일 이후에도 중국 동남부와의 직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뉴라이트 시진핑이 이 문제에 적극적이다. 허나, 한일 해저터널이나 한중 해저터널만으로 대국민 설득이 쉽지 않다.

   

방법은? 그렇다. 전남-제주를 잇는 해저터널이다. 이것은 마치 한국이 아세안 연합과 맺는 FTA와 흡사하다. 혹은 칠레 등 남미와 FTA를 맺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다른 곳과 달리 전남 - 제주를 잇는 해저터널에는 이해당사자들의 반대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보인다. 물동량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일단 만만한 곳을 진행시킨 뒤에 가장 반대가 극심한 부분을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부산~거제 연결도로(일명 거가대교) 중 사장교 구간 상판이 26일 모두 연결됐다. 대우건설이 짓고 있는 8.2의 부산~거제 연결도로는 중죽도저도를 잇는 2주탑 사장교와 저도거제도 간 3주탑 사장교, 이를 연결하는 2개의 침매(해저)터널로 이뤄진다. 침매터널 구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 3.7로 지난 21일 모두 연결됐다. 이 다리는 12월 개통한다. [대우건설 제공]"

http://pic.joins.com/article/photo/art ··· D4199288

   

이는 최근 완공한 거가대교가 예가 될 것이다. 일단 거가대교의 해저터널은 큰 성공을 볼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전남 지역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 전남 - 제주간 해저터널 여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홉, 인드라의 해저터널 반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파리런던 영불 해저터널에서 보듯 이로 인해 칼레 도버 지역 상권이 완전 망했다. 이전까지 이들 지역은 영국과 유럽을 잇는 최단 통로 중 하나였다. 허나, 영불 해저터널 이후 이들 지역 경제는 침몰했다. 인드라가 직접 칼레에서 도버로 배를 타고 가면서 확인한 사실이다. 누가 칼레나 도버에 머물겠는가. 파리에서 런던, 런던에서 파리까지 직통으로 갈 따름이다. 한중 해저터널과 제주 해저터널이 만들어진다 하자. 일부는 도중에 전남에도 들릴 것이다. 허나, 대다수는 전남을 통과할 것이다. 인드라의 지론은 간단하다. 살림살이를 생각하는 개발이 필요한 게다. 해서, 거가대교 완공으로 손가락 빨게 된 거제도와 진해 사이를 운항하던 회사들이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인드라가 볼 때, 합리적인 요구이다.

   

둘째, 한일 해저터널은 뒤로 늦출수록 좋다. 안전문제도 안전문제이거니와 장거리인 만큼 건설하는 데에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해서, 초기 책정한 예산보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 인드라가 보기에, 국유본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다. 한국이 어떤 국가인가. 얼리어답터 국가. 한일 해저터널로 온갖 문제점을 다 검토한 뒤 나중에 보다 저비용 고효율로 얼마든지 해저터널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다른 나라에서 다 만든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건설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해저터널에서 경험을 축적하기를 바란다. 하면, 또 말할 것이다. 우선 자신의 나라에서 뭔가 만들어내어야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인드라는 묻는다. 동남아, 중동 건설할 때, 한국에서 뭔가 하고, 그 나라에서 만들었나? 국유본이 만들어주었다. 부딪치면 국유본이 남미 자원 외교처럼 도와줄 것이다. 현재까지 정보를 보면, 한일 해저터널이 2050년도에나 시행할 사안으로 나오는 것같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셋째,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에서 제이 록펠러 시대로 이행중이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생존해 있는 만큼 아직은 온전한 제이 록펠러 시대는 아니다. 허나, 불완전한 제이 록펠러 시대라 할지라도 미래적 징후가 읽혀진다. 다시 말해, 데이비드 록펠러와는 또 다른 제이 록펠러적 세계관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빅터 로스차일드적인 해양도 아니요, 데이비드 록펠러적인 대륙도 아닌, 해양과 대륙이 조화된 반도적인 지정학적 세계관이 제이 록펠러 세계관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문학으로 치면, 무협과 환타지가 혼재하고, SF와 환타지가 혼합되는 비빕밥 세계관이라고나 할까. 이는 '퓨전'이다.

   

제이 록펠러는 빅터 로스차일드와 데이비드 록펠러의 장점만을 취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의 운명인 게다. 이러한 시대에서 데이비드 록펠러적이며, 뉴라이트적인 한일 해저터널은 데이비드 록펠러 사후 골치 아픈 계륵이 될 수 있음이다.

   

   

   

열, 한일 해저터널 사업은 국가 부채를 늘릴 것인가

   

틀림없다. 허나, 이것만 가지고서 반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유본은 앞으로 더더욱 돈을 풀 것이다. 디플레이션보다는 인플레이션이 나으니까. 하면, 이때 푼 돈을 받아주어야 한다. 문제는 일각에서 국가 부채 부문을 보지 못하니 민간 부채 부문만을 보고 달러의 종말을 예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푼 돈은 두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나가 민간 부문. 다른 하나가 국가 부문이다. 특히 후자를 중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의 빚이 늘어나야 국유본 활동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국유본은 머리가 좋다. 오늘날 망국적인 의약분업을 강제하여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한국 의료시스템을 망치더니 그것도 모자라 여러 가지를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진보진영을 통과시켜 교묘하게 망하게 하고 있다.

   

그처럼 오늘날에는 쓰지 않아도 될 분야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무상급식과 같은 것으로 쓸 데 없는 돈 낭비를 하고 있는 동시에 정작 써야 할 예산에는 인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국유본의 치밀한 안배인 것이다.

   

정리하면, 국가의 부채와 개인의 부채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는 금기반 달러에서 석유기반 달러로 이동했던 달러체제가 이제는 석유기반 달러에서 채권기반 달러체제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IMF에서 특별인출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대안이라는 것이 사실은 국유본의 치밀한 각본 하에 등장한 새로운 '달러'인 게다. 국유본이 친일 조중동이나 친일매국수구부패찌라시 한경오프엠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제는 그 '대안'을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IMF 해법처럼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하나, 한일 해저터널, 희망은 있는가

   

있다. 부정을 긍정으로 변환시키는 길. 그 길을 말한다. 첫째, 이명박이 한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를 멈추자. 그와 같은 무뇌아적인 행태는 국유본에게 이로울 따름이다.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된다. 다음 아고라 같은 데는 가급적 출입하지 말자. 둘째,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이라는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넘어서자. 그와 같은 구도는 국유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든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음 공부를 하자. 혼탁한 시기에는 지식 공부도 중요하지만, 마음 공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이 고요하면 세상이 보인다.

   

인드라는 원칙적으로 한일 해저터널 반대한다. 허나, 현실은 이명박이 한다니까 반대하는 그 수준이 될 것이다. 하고, 김대중, 노무현은 절대 그런 친일매국노 짓을 할 리가 없어, 라는 빠돌이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이것은 국유본이 원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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