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진실 : 국제유태자본과 지구 온난화 4 국유본론 2009

2009/10/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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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진실 : 국제유태자본과 지구 온난화 4

- 온난화를 둘러싼 국유본 황제들의 아마겟돈 전쟁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10/09

   

디젤엔진과 가솔린엔진 중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엔진은?

   

디젤엔진과 가솔린엔진 중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엔진이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상당수 분들은 디젤엔진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가솔린엔진이다. 디젤엔진이 가솔린엔진에 비해 7~8배 수준으로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 해서, 유럽 등지에서 친환경차라고 오히려 대접을 받는 것이 디젤엔진이다. 하면, 이제 혼란을 느낄 게다. 하면, 왜 디젤엔진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매기는가.

   

환경개선비용부담금법은 디젤엔진 제조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다량의 배출가스가 발생하던 1991년 제정됐다. 이후 기술 발달로 대기오염 물질을 훨씬 적게 배출하는데도 경유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환경개선비용부담금을 내야 하는 게다.

   

노무현 정권 때는 경유는 물론 천연가스에 대한 세금을 많이 매겨 서민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서민을 위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노무현에게 투표했던 이들까지 등을 돌리게 했다. 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경유차 문제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전임 대통령처럼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는 실패한 대통령이 노무현이다. 하여, 노무현 선생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가 대통령 재임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해서, 한국 역대 대통령 모두 다 합칠 지라도 박정희 선생보다 못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온난화를 둘러싼 국유본 황제들의 아마겟돈 전쟁

   

국유본이 왜 지구 온난화론을 꺼내든 것일까.

   

하나, 지구온난화론은 나사의 첼린저호 폭발사건 때문이다?

   

장 폴 크루아제의 '사막에도 펭귄이? 허풍도 심하시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론이 등장한 배경이 미국 나사의 첼린저호 폭발사건이라는 게다. 과연 그러한가. 일리가 있다. 1986년 1월 28일 일어난 유인 우주왕복선 첼린저호의 출발 직후의 공중폭발 사고로 나사는 우주개발계획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이 축구와 해군을 상징으로 내세운다면 미국은 야구와 공군을 내세울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은 미소냉전체제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미국이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해서, 헐리웃 공상과학 영화가 연이어 만들어지고, 어린이들이 대부분 우주비행사를 꿈꾸면서 자라나고, 나사가 어느덧 미국인의 자존심과 동의어가 된 게다. 이런 나사가 첼린저호 폭발로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국유본에 있어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주개발이란 명분하에 '별들의 전쟁'과 같은 군사부문 예산을 엄청나게 타낼 수 있었는데, 왕복우주선이 실패함에 따라 그 돈을 지상으로 돌려 사회복지에나 쓰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해서, 나사가 대안을 찾은 것이 지구온난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나사가 지구 기상관측을 위해 엄청난 수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해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공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하고, 이들 인공위성들이 과연 대기나 해류만 관측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허나, 인드라 생각으로는 국유본이 우연적인 특정 사건에 휘둘려서 가는 집단이 아니라는 게다. 오히려 국유본은 20세기 거의 모든 전쟁과 혁명, 쿠테타 배후에는 국유본이 있었다라고 할 만큼 우발적으로 보이는 특정 사건을 만드는 집단이다.

   

   

둘, 지구온난화론은 보수파와 대처 총리를 위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었다?

   

"1984~5년의 탄광노조 파업을 영국 언론은 '스카길의 스트라이크'라고 이름 붙였다. 스카길의 아버지도 鑛夫(광부)였고 영국 공산당원이었다. 스카길도 7년간 청년공산동맹원으로 일하다가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는 스탈린을 옹호했고, 바웬사가 주도한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비판했다. 스카길은 소련으로부터도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파업이 영국과 폴란드에서 일어났다. 자유를 앞세운 폴란드의 파업은 공산세계를 붕괴시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철밥통을 지키려던 영국 탄광노조의 파업은 自滅(자멸)함으로써 대처의 신보수주의적 개혁을 가능하게 했다. 두 상반된 노조운동이 全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사회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에선 협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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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한국인은 영국 탄광노조 사태를 잘 모른다. 그만큼 한국은 이천 년대 이전까지 세계의 변방이었다. 허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사이에서는 영국 탄광노조 사태가 핵심 이슈였다. 다만 이들 선진국 시민들도 잘 모르는 일이 있다. 영국 탄광노조 사태는 전임 국유본 황제인 빅터 로스차일드와 후임 국유본 황제인 데이비드 록펠러간의 최후의 대리전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스카길 이력만 봐도 빅터 로스차일드계임을 알 수 있다. 헌데, 스카길이 바웬사의 폴란드 연대노조를 비판한다. 바웬사 폴란드 연대노조는 폴란드 출신의 브레진스키가 '연대'라는 이름을 작명해줄 정도로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함께 브레진스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브레진스키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만든 삼각위원회를 주도하던 인물이자 카터정권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카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카터 민주당으로는 미국 정치를 끌고 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1980년대 데이비드 록펠러는 민주당원 일부를 공화당으로 파견근무를 시킨다. 이들이 뉴라이트이다. 해서, 만든 정권이 레이건정권이다. 영국에는 대처 정권을 만들어낸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1973년에 영국이 더 이상 세계를 주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차대전 직후에 세계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상식적으로 알던 것과 많이 다른 게다. 허나, 1970년대말에 이르러 빅터 로스차일드계인 박정희가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암살당하고, 국유본 공작에 따라 호메이니가 집권하고, 넬슨 록펠러가 암살당하는 등 사태가 혼미상태로 치닫는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판단 미스인가.

   

한마디로 전두환이나 김대중처럼 후임자에게 평화적인 정권 인계를 하고 지분이나 챙기면서 편안하게 살려고 했던 것이 빅터 로스차일드인 게다. 허나, 후임자인 노태우나 노무현처럼 데이비드 록펠러는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어쩌면 데이비드 록펠러는 그러고 싶지 않고, 아랫사람들의 짓일 수 있겠다. 권력은 나눌 수 없는 법. 자세한 정황이야 알 도리가 없으나 전임 황제와 후임 황제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 사건이 바로 빅터 로스차일드에 대한 소련 스파이 폭로 사건이다.

   

사건은 국유본의 박정희 암살 등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1979년으로 돌아간다. 앤서니 블런트(Anthony Frederick Blunt)는 대학시절부터 빅터 로스차일드와 내연의 관계로 짐작되는 동성애 취향인 미술사가였다. 헌데, 앤서니 블런트가 소련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해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인척관계이기도 하여 작위를 받았던 앤서니 블런트는 작위를 취소당하는 등 자살을 결심할 정도였다.

   

하면, 왜 이들은 격렬한 투쟁을 벌였는가. 영국 정치는 대처 총리 이전까지 빅터 로스차일드의 원맨쇼 정치였다. 즉, 빅터 로스차일드가 영국 보수당과 영국 노동당을 동시에 장악했던 것이다. 헌데, 이 틀을 깬 이가 있으니 대처였다. 그녀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영국 정치에게,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자객이었던 게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대처를 내세워 귀족 대 서민 구도를 통해 귀족 중심이던 영국 보수당에 혁명을 일으킨다. 영국에서는 대처, 미국에서는 레이건인 게다.

   

이때 데이비드 록펠러의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총리 경합할 때, 빅터 로스차일드계인 마이클 풋(Michael Foot) 영국 노동당 지도자를 KGB스파이라고 공세를 펼친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마이클 풋은 KGB 스파이가 아니다. 마이클 풋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스파이였고, KGB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정보기관이었다.

   

   

폭로전은 이어졌다. 앤서니 블런트 소련스파이 사건. 빅터 로스차일드는 데이비드 록펠러 칼끝이 자신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프랑스 미테랑 정권을 움직여서 1981년에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을 폐쇄시키는 조치를 내리게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아직 죽지 않았다. 데이비드 록펠러의 압박에 로스차일드의 자존심, 빅터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미테랑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미테랑 정권은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항복을 한다. 이처럼 아직 여력이 남은 빅터 로스차일드는 1983년 연인이었던 앤서니 블런트를 저 세상으로 보낸 뒤 최후의 결사항전을 결심한다.

   

그것이 바로 영국 탄광노조의 총파업이었던 게다. 스카길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얼굴마담이었을 뿐이다. 대처와 스카길 대결은 실상 데이비드 록펠러와 빅터 로스차일드 간의 전쟁이었던 게다. 하면, 왜 탄광이었던가. 빅터 로스차일드의 목표는 록펠러 가문의 예민한 부분. 1913년에 일어난 '러드로의 학살'을 건들이기 위함인 게다. 이 영향 때문인지 제이 록펠러가 역점을 둔 사업 중 하나가 탄광촌 개발이다. 한국에서는 한국판 라스베가스인 강원랜드가 있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는 아프카니스탄과 런던에서 동시에 처절하게 패배한다. 이때 빅터 로스차일드 진영을 궤멸시킨 전략가는 박정희 암살에도 관여했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브레진스키의 지략은 제갈공명 수준이었던 게다. 빅터 로스차일드 역시 소련 스파이라는 폭로가 등장한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소련 스파이가 아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소련을 지배한 황제였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항복 선언을 하였다. 빅터 로스차일드에 대한 소련 스파이 혐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탄광 노조 파업이 종료가 된다. 이때, 대처 총리는 지구 온난화를 근거로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하는 뜻에서 탄광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린다.

   

   

셋, 뒤끝이 있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마지막 작품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모스크바 기준 시간)에 소련(현재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이 사건은 흥미롭게도 1986년 1월 28일에 발생한 첼린저호 폭발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미국 우주항공국인 나사는 노예민주당과 관련이 깊다. 국유본의 기획 하에 케네디가 197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또한 무사하게 귀환시키겠다, 라는 아폴로 계획을 내걸었고,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노예민주당 정권 때에 달 착륙이 된다. 나사는 지금도 가장 큰 업적으로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을 내세운다. 해서, 국유본이 최근 급조한 일본 부패민주당 정권은 근래 나사를 본 따 일본판 나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게다. 나로호를 비롯해서 이것이 모두 다 국유본의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제이 록펠러가 1977년부터 맡아왔던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 자리를 1985년을 끝으로 내놓았다는 게다. 하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 현직 상원의원 출신이 근래 대통령이 된 것은 케네디이다. 그 이후로는 없다.

   

1986년의 미국은 레이건 정권 시대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미국 달러 약세가 진행되어 미국인 자존심에 상처를 내게 했던 국유본은 레이건 정권을 통해 별들의 전쟁, 혹은 스타워즈 계획을 구체화하려고 했다. 헌데, 첼린저호 폭발사고로 한순간 붕 뜨게 된 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노예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미국인의 꿈이자 가치가 달 착륙처럼 지켜지지만, 공화당 정권이면 첼린저호 폭발사고처럼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자작극? 이후 나사는 미국 노예민주당과 한목소리를 내며 지구온난화론에 올인?

   

이때 여전히 빅터 로스차일드 영역이던 소련에서 체르노빌 사건이 어이없이 터진다. 이 사건의 영향력은 무엇인가. 당대 유럽을 호령하던 대처 총리를 바보로 만든 사건이다. 왜? 대처 총리가 지구온난화를 꺼내면서 탄광을 폐쇄하는 대신 원자력을 대안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예서, 탄광이란 영국에서 큰 상징이 되겠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하듯 탄광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채굴된 석탄이란 산업혁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탄광을 폐쇄하고 원자력으로 대치한다? 그런데 체르노빌 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럽 각국은 원자력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다. 하고, 이 움직임은 한반도에도 전해져서 주사파가 반핵을 내세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운동권의 반핵은 국유본의 지시를 받은 일부 운동권 상층이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운동권에서 핵은 전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근래 북한 핵처럼 박정희의 핵무장이 학생들 사이에서도 오히려 칭송되는 분위기였다. 국유본의 박정희 암살은 박정희의 핵무장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체르노빌 사건은 좌파에서 중대한 변화를 만들어내었다. 체르노빌 사태가 소련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원자력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구좌파와 신좌파로 분별이 되었던 게다. 이런 점에서 주사파는 북한 핵 사태 이전까지 신좌파였지만, 그 이후로는 구좌파가 된 게다. 이를 계기로 생태사회주의, 생태주의, 신사회운동, 아나키즘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국 탄광노조 총파업이 참패로 귀결됨에 따라 빅터 로스차일드는 보수우파는 물론 구좌파 세력 상당 부분을 잃었다. 상당수가 이때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말을 갈아탔다. 당연하지 않은가. 권력은 늘 현재형이기에. 하고, 이들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 중에 등장한 것이 과거 구좌파이자 소련파이며, 빅터 로스차일계였던 네오콘인 게다. 이들 네오콘은 본래 데이비드 록펠러계가 아니었다. 빅터 로스차일드계에서 데이비드 록펠러계로 변신한 이들인 게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모든 것을 거의 다 잃었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는 전후 미소냉전 체제를 만든 자이다. 이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일으켜서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의 뒤끝 있는 조치로 공산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프랑스 미테랑 사회당 정권이 크게 흔들렸다. 또한 대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진보좌파에서 독일 녹색당에서 보듯 마이너에 불과했고, 세력을 거의 잃어가던 환경주의자들이 주류로 올라서는 계기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까닭에 툭하면 나오는 음모론 중 하나가 제이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 손을 잡고 데이비드 록펠러를 견제한다는 그림이다.

   

   

   

넷, 지구온난화론은 석유자원 고갈론을 대신하여 석유기반 달러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지구온난화 이슈를 처음 다룬 것은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였다. 국유본 기구인 로마클럽은 맬더스 이론 등을 응용하여 인구 감소 계획과 탈산업화 프로그램을 만든 곳으로 존 콜먼 등이 곧잘 지적하는 조직이다. 1985년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범임을 선포했다. 1988년 G7 런던회의에서 지구온난화가 공식화되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까지 1988년 대비 20% 삭감하자고 의결했다. G5, 또는 G7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UN 체제를 대체할 목적으로 구성한 데이비드 록펠러의 세계체제이다. 1988년 11월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합작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를 조직했다. 하고, 88년 8월 미국의 상원의원의 한 위원회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센 박사의 발언을 계기로 지구온난화론이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나사는 벨연구소, MIT, 스탠포드와 함께 국유본의 최첨단 과학기술센터이자 군산복합체의 심장부이다. 예서 만들어진 기술들이 국유본의 기획에 따라 세계 각국과 기업들에 배분된다. 시온의정서에도 언급되듯 국유본은 과학기술을 매우 중시하기에 과학기술 정보 통제에 관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격하다. 언론에 가끔 기술 유출 운운하는 것은 대부분 국유본이 공개적으로 기술을 이전하지 못할 때에 사용하는 변형 조치라고 보면 된다. 가령 중국의 군사력도 국유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1970년대 칠레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최초로 실험되고 있었다. 마치 국유본의 지시로 크메르루즈군이 대량학살을 하듯이 남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좌파, 우파로 달랐지만, 지시한 자는 같은 세력이었다.

   

국유본은 빅터 로스차일드 체제인 금 기반 달러체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 체제인 석유 기반 달러체제로 이행했다. 그 과정에서 중동전쟁이 발생하였고, 원유 가격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원유 가격을 아무런 이유 없이 올릴 수는 없는 게다. 등장한 것이 맬더스 이론인 게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석유자원 고갈론이 등장한다. 허나, 지금도 여전히 석유는 펑펑 나오고 있다. 이것만 가지고 부족한 국유본이 꺼낸 또 다른 카드가 자원민족주의인 게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근본주의였다. 브레진스키 고백에도 등장하지만, 아랍 근본주의자들을 만들어낸 것은 국유본이다. 빈 라덴과 부시 가문이 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한반도에서도 빅터 로스차일드계인 김일성과 박정희 대신 데이비드 록펠러계인 김정일과 전두환이라는 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하는 게다. 1980년대 새롭게 구성된 주체사상은 근본주의로 재해석이 된 게다. 하고, 1985년에 김정일이 대권을 승계한 게다. 이런 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국유본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다. 김정일이 국유본 명령을 어기면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일 사형이 집행된다.

   

정리한다. 지구온난화론으로 원유는 보다 비쌀 수 있었다. 환경론자들이 우군인 게다. 환경론자들 다수는 원유가 지금보다 더 비싸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장은 국유본에서 개발한 논리이니 그럴 듯하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체에너지 개발비용만큼 원유가 비싸야 한다는 게다. 허나, 오를 대로 오른 원유 가격을 더 올린다는 것은 국유본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과제이다. 해서, 나온 것이 탄소세인 게다. 원유가격을 그대로 둔 채 세금을 때려 박는 게다. 명분은 지구 살리기^^! 해서, 오늘날 대다수 시민은 환경운동가들이 이산화탄소 운운하면 석유회사로부터 돈 처먹고 환경운동을 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

   

* 사는 게 팍팍해졌다. 최근 계좌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후원한 돈도 다 썼다. 주변에 자꾸 아픈 사람들이 연이어 발생하는지, 잘 쓰던 기기들이 연달아 고장이 나는지... 목돈이 뭉턱뭉턱 나갔다. 헌데, 누군가 인드라 계좌를 본 것처럼 계좌가 마이너스가 나던 날, 주장도 생계를 꾸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중하면서도 비꼬는 글을 보내왔다. 참으로 눈물 나는 날들이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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