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진실 : 국제유태자본과 지구온난화 5 국유본론 2009

2009/10/19 23:59

http://blog.naver.com/miavenus/70071955822

   

   

   

   

불쌍한 진실 : 국제유태자본과 지구온난화 5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10/20

   

   

오늘날 이산화탄소 줄이기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다

   

종교는 무엇이며, 역사는 무엇이며, 과학은 무엇일까. 생존이다.

   

인간의 지식이란 이산화탄소와 같다. 과거의 살아 있는 인간 활동으로 형성된 것이 지식이다. 헌데, 이 지식이 마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해서, 지식이 겉보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듯싶다. 그런 이유로 진시황은 지식을 없애기 위해 분서갱유를 하기도 했다.(일설에는 항우의 분서갱유가 와전된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 제이 록펠러가 이산화탄소를 없애려고 하는 시도와 흡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지식이나 이산화탄소가 문제가 아니다. 이전의 인간 활동이 원인이며, 구체적으로는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대응인 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 혹은 과거의 성공 사례를 배운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집단 차원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오늘날 세계를 지난 이백 년간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이 영원한 진리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영원한 진리일까. 가령 지난 이백년간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이 많다고 한다. 머리가 가장 똑똑한 족속이라고 한다. 허나, 이것은 고작 이백년간의 평가일 뿐이다. 유대인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시간은 실은 찰나에 불과하다. 한때 몽골리안이 세계를 제패했다고 하여 몽골인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종교가 앞선다, 역사가 앞선다, 과학이 앞선다, 라는 것은 한마디로 의미가 없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교는 로마시대에 무너졌었다. 그 유대교를 끝장낸 로마제국 역시 붕괴되었다. 또한 당대 과학기술혁명이 일어났던 중국 송나라는 원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종교가, 역사가, 과학이 전하는 바는 오히려 신이 인간의 전성기를, 선민의식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 다름 아니었다.

   

   

대멸종(Mass Extinctions)

http://kin.naver.com/knowhow/entry.php?d1id=10&dir_id=10&docid=490522&qb=7Y6Y66aE6riwIOuMgOupuOyihQ==&enc=utf8&pid=fWVEadoi5TwssZQYweCsss--298373&sid=StsH-XTZ2koAAAhIm7s

   

인간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대멸종과 같은 사건이다. 집단 전체에 주는 불가항력의 공포. 인간에게서 신의 관념을 탄생시킨 원인은 다름 아닌 '공포'인 게다. 드라마 '주몽'과 '선덕여왕'은 개기일식 현상으로 이 공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고대인의 천문학 연구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생존 때문이다. 더 나은 생활개선을 위한 것은 냉정하게 말해 부수적인 것일 뿐, 핵심은 재앙에 대한 예측과 방어였다.

   

   

   

행동주의 경제학의 가장 큰 전제는 인간이 역사시대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해서,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병동 집단이자 국유본의 쓰레기 하치장 격인 아고라처럼 주가가 바닥일 때 주식을 사야 함에도 주가를 팔아라, 라는 양아치적 협박에 겁을 집어먹고 덜컥 주식을 팔아대는 이유는 극소수의 국유본 스파이 활동이 결정적이지만, 국유본 스파이 활약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인간의 조건에 있기도 한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에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혹은 과거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 허나, 어설프다. 왜냐하면, 과거의 사건과 오늘날의 사건이 일치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인간은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에 더 민감하다. 나쁜 뉴스가 약 스무 배가량 전파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이는 종교적이든, 역사적이든, 과학적이든 그 어떤 것이든 인간은 퇴보에 민감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알기 쉽게 말한다면 이렇다. 생명이 어느 정도 연장 가능한 약이 개발이 되었다. 이 뉴스 전파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보나마나 이 약값이 굉장히 비쌀 것이며, 이 약을 혜택 받을 층이 극소수이다. 반면 빠른 뉴스는 무엇인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흑사병처럼 돌고 있다.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또 어떠할까.

   

   

   

누군가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정치운동에 돌입한다. 허나, 이는 SBS 프로그램처럼 허경영을 이내 난도질을 할 도리 외에는 없다. 허경영이 근래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물론 신기루이다. 다만, 그가 기존 정치세력이나 대중매체에 의해 노무현보다 더 예수처럼 공격을 당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허나, 이조차 국유본의 은밀한 기획이 아닌가 의심할 이유는 충분하다.

   

해서, 누군가 신심의 기도를 거듭하여 기적이 일어났다는 뉴스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허나, 이교도가 전쟁을 일으켜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떠할까. 예언 역시도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에 민감한 법이다. 가령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이 뜬 이유를 생각하면 된다. 인간이 좋은 꿈을 꾸었을 때보다 불길한 꿈을 꾸었을 때 꿈에 의존적인 이유와 같다.

   

인간이 집단을 생각하는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절망적인 상태에 내몰릴 때 하나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절망적 상태가 해소될 때까지 절망적 상태에서 선택받았다고 여길 때이다.

   

   

인간은 지난 17세기의 소빙하기 기억에 근거하여 수백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식이 인간의 두뇌에서 각인되었던 셈이다. 허나, 이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비록 전쟁이 이 기억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선진국 지역에서는 오래된 기억에 불과하다. 일본만 해도 전쟁의 기억은 65년 전의 일일 뿐이며,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는 고령층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에 그칠 따름이다. 한국 역시 57년 전의 기억일 따름이다.

   

   

위기에 대한 안이한 생각들에 대한 비판은 최근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멸망론이다.

   

   

시대의 끝에서

http://end2012.mireene.com/6.htm

   

이에 대한 인드라의 비판은 매우 혹독한 편이다. 허나, 일일이 반론을 달지 않겠다. 국제유태자본과 지구온난화 글을 읽다 보면 느끼게 될 것이기에. 다만, 한마디만 한다면, 예고된 재앙은 더이상 재앙이 아니다.

   

   

태초에 파업이 있었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친구이자 가이아의 저자인 러브룩은 말한다. 지구는 항상성을 갖추고 있다. 지구 역사상 숱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온도 변화는 의외로 그다지 크지 않았다. 95% 생물 멸종이 있었던 대격변이 수차례 이어왔으면서도 오늘날 지구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다루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세균덩어리를 없애듯 지구상의 생물을...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

http://kr.blog.yahoo.com/yydeokk196/MYBLOG/dist_frame.html?d=http%3A%2F%2Fkr.blog.yahoo.com%2Fyydeokk196%2F11543%3Fm%3Dc%26amp%3Bno%3D11543&s=n

   

상기한 글은 현재까지의 지구 탄생을 설명하는 정설이 되겠다. 허나, 정설에도 문제가 있다. 주류이론인 강착이론과 소수이론인 충돌이론이 어느 이론의 절대 승리를 약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설이 진리인 것은 아니다. 가령 현재 지구 나이를 46억 년 전으로 추정하는 것이 정설이다. 지구에 떨어진 가장 오래된 운석을 측정하니 나이가 46억 년이기 때문이다. 만일 46억 년보다 더 오래된 암석이나 운석이 측정이 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인드라는 제카리아 시친의 지구 탄생 설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제카리아 시친의 지구연대기에 따르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처럼 강착이론과 충돌이론을 모두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친의 주장은 이렇다. 태양계 생성 직후 약 6억년 후에 니비루 행성이 불청객처럼 태양계를 찾아와 태양계 질서를 어지럽힌다. 하나, 원래 지구 위치는 소행성대였다. 허나, 지구가 니비루 위성과 충돌하여 반쪽이 된다. 해서, 반쪽은 소행성대를 이루고, 나머지 반쪽은 튕겨나가 오늘날의 지구 궤도를 돌게 된다. 이때 달이 지구의 위성이 된다. 둘, 니비루 행성이 태양에게 잡혀서 뜨내기 행성에서 3600년 공전주기를 갖고 태양을 타원형으로 돌게 되는 행성이 된다.

   

인드라가 이 가설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평소 궁금하던 지구 지각에 대한 궁금증과 대륙지각과 해륙지각의 차이 등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닉스 저널

http://blog.daum.net/petercskim/7858203

   

http://blog.daum.net/petercskim/7858206

   

인드라가 제카리아 시친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에서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이 있다면, 아눈아키들의 파업 사건이다. 아눈아키는 니비루 행성의 하급 신들이었다. 니비루 행성 외계인이 지구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금 때문이다. 해서, 아프리카 금 광산에서 금을 캐려 한 것인데, 아눈아키들이 힘들다고 파업을 한 게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니비루 신들은 아눈아키를 대신한 인간을 발명하게 된다. 마치 오늘날 인간이 로봇을 발명하려는 이치와 같다.

   

   

왜 인드라가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되었는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핵심 요점을 들라면, 가치에 대한 재평가이다. 칼 폴라니는 고전경제학파가 전제한 가치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라고 한다. 헌데, 인드라는 칼 폴라니에 비판적인 입장에 선다. 과연 칼 폴라니는 국유본을 극복한 인물인가. 아니면 국유본의 새로운 개인가? 왜? 마치 자본론을 집필하던 맑스와 같다고나 할까. 모두가 고전경제학파를 죽은 개로 취급할 때야말로 고전경제학파를 새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해서, 근래 인드라가 여러 번 아담 스미스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눈치를 챌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가치는 자연스럽지 않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듯 금은과 같은 귀금속만이 세계 공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면, 왜 인류는 금은을 그리도 끔찍하게 여겼던 것일까. 여기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 헌데, 제카리아 시친에 의하면 인간이 금을 그리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등장한다. 마치 영화 '디스트릭 9'에서 등장하는 특수 연료와도 같다고나 할까.

   

인드라는 제카리아 시친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다. 다만, 이를 전제하고서 지구 탄생론과 인간 복제설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는 인드라가 신지학회에 비판적이면서도 그들의 초끈 이론과 연계한 궁극 물질 이론에 관심이 있는 것과 같다.

   

   

소로리 볍씨가 문명의 시작이다?

   

1960년대까지 고고학적 발견은 1920년대 김해 패총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전부였기 때문에 한반도 쌀은 기원 전후에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재배되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여주 흔암리, 평양 남경, 부여 송국리, 논산 마전리, 하남 미사리, 서산 휴암리, 안면도 고남리, 승주 대곡리, 합천 봉계리, 거창 대야리, 울주 검단리 등 전국적인 규모로 탄화미와 흔적이 출토되어 일본 유입설이 부정되고, 반대로 일본쌀이 한반도에서 전래한 것이 정설이 되었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충북 청원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었다. 토탄층(12,500년~14,800년 전)에서 볍씨(japonica형과 indica형)가 발굴되고, 그 이전의 층에서도 유사벼가 발굴된 것이다. 볍씨 등의 연대 측정 결과 1만3000~1만5000년 전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이는 이전까지 세계 최고로 평가받던 중국 볍씨보다 삼천 년이 앞서는 것이다. 야생 벼와 재배 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벼 '소로리 볍씨'는 미국, 필리핀 등지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보고됐다. 세계 최고의 볍씨는 한국에서 발굴된 소로리 볍씨이며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인정받아왔던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보다 약 3천년이 앞선다고 영국 BBC방송국이 방송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가 이것뿐일까. 한국인의 '지고는 못살아'는 이 분야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1. 배 만들기(조선) 세계 최초 - 8천 년 전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출토)

2. 고래잡이 세계 최초 - 8천 년 전 (경남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3. 쌀농사 세계 최초 - 1만 5천 년 전 (충북 청원군 출토)

4. 신석기 세계 최초 - 2만 년 전 (전남 장흥군 출토)

5. 토기 세계 최초 - 1만 수 천 년 전 (제주도 고산리 출토)

6. 고인돌 세계 최초 - 8천 년 전 (전남 화순군)

7. 빗살무늬토기 세계 최초 - 8천 년 전 (강원도 양양군 출토)

   

근래의 발견들은 그간의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오늘날 일부 학적 경향은 영국 산업혁명도 창조적인 작업으로 보기 보다는 중국 송대 문명을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게 만든다. 이를 적용한다면, 중국 문명은 한반도 문명을 복사한 것일까?

   

   

http://www.coo2.net/bbs/zboard.php?id=qna&no=6309

   

이 분야에서 솔본은 여러 가지 비판 지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상기한 예에서 보듯 역사란 얼마든지 재해석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인드라는 황해문화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허나, 솔본과는 다른 입장이다. 유전자형 조사를 통해서 보듯 알겠지만, 이 시대 주역들은 유목민적 성향들이었고, 이들은 특정 지역에 연연하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이를 강조하는가. 수메르 문명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3800년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고, 인드라가 수메르 문명을 만나자마자 직관한 것이 있다. 아, 이후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혹은 독일인이 자신들이야말로 수메르인의 원조라고 주장하겠구나. 그래서일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메르 문명 이전의 역사 만들기에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게다. 이것이 과연 각국 지도부의 의지인지, 아니면 근본주의를 전파하려는 국유본의 음모인지는 현재 추론에 그칠 따름이지만, 인드라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늘날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허나, C.J.톰센이 청동기시대를 1836년에 제창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반대하는 학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반대 이유는, 이집트처럼 문화의 정도가 높으면서도 원료, 특히 주석이 없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에는 들지 못했지만 철기시대 사회보다 문명화된 사회를 살았던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처럼 그간의 연구를 존중하되, 절대적으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예외적인 사례를 중시해야 한다. 그 예외적인 것이 곧 우리 시대의 한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는 역사에 있어서는 최초의 사건에 있을 것이라 여긴다. 영원한 미스터리인 최초의 사건은 대체 어디서부터인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21세기는 인드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반아님의 역사관이다^^! 그처럼 역사란 객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재야고고학자 후지모리 신이치의 사기극

   

국유본 권력이 데비이드 록펠러로 이행한 이후에 발생한 세계사적인 일이란 각국이 자신들이 인류의 원조임을 주장하려는 근본주의 경향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설사 원조가 아니더라도 가급적 원조와 유사하게 보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나라는 100만년70만 년 전 정도에서 구석기시대를 구성하려 한다. 가령 중국은 250만 년 전, 한반도는 100만 년 전이다. 허나, 여기에는 자국 중심주의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단양 금굴 동물화석과 청원군 두루봉 유적에 대해 10만년~70만 년 전으로 오차 범위가 넓은 의견이 제시되었음에도 역사교과서에는 가장 오래된 70만 년 전으로 수록하고 있다. 물론 이조차도 재야사학계 입장에서 보자면 불만일 수밖에 없겠다. 왜 더 뻥튀기를 하지 못하느냐 힐난인 게다. 인드라가 대형서점에 가서 보니 역사서 한 쪽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보다 북한이 이보다 더 극심한 편이며, 일본은 더 하다. 이 분야에서 일본이 서양보다 더 천인공로할 짓을 저질렀다. 일본의 재야고고학자 후지무리 신이치는 자신이 파묻은 가짜 유물을 진짜인 듯 파내는 방식으로 일본 구석기 연대를 70만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문제는 이것이 후지모리 신이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하면 빗살무늬 토기이다. 헌데, 일본 일각에서는 죠몬 토기의 변형을 빗살무늬 토기로 보는 게다. 관동대지진 때의 재일교포 학살을 연상케하는 야만스런 지적 학살이 아닐 수 없다.

   

인드라는 자국 중심적 역사관에 비판적이다. 인드라는 그 대안으로 동북아시아 역사로 본다. 이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연구 대상 중 하나가 동북아시아 기후이다. 가령 한반도에서 세계 최고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그처럼 중국 장강에서 만 육천년 전의 개뼈가 발견되었다. 이는 중국이 최초의 가축을 기른 지역임을 의미한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만 년에서 만천 년 전 무렵에는 빙하기였다. 빙하기가 최대일 때인 만 팔천 년에서 이만년 사이에서는 한반도 북부까지 빙하가 닥쳤다고 추정되고, 이때 해수면이 가장 최저여서 일본과도 연결이 되었다. 허나,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였다. 이미 이후 세계는 빙하기 중에도 짧은 간빙기 시대였고, 해수면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하여 기원전 16000년 무렵에 한반도와 일본은 이내 분리가 되었다. 이런 원인으로 한반도 볍씨가 이른 시기에 일본으로 전래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예서, 빙하기라고 지구 모든 땅이 빙하로 뒤덮인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중국 중부는 상대적으로 온난한 기후를 보여주었다. 빙하기 시대는 강수량이 적기에 가뭄이 극성을 부리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중국 북부와 북서부에 형성된 사막은 빙하기 최대인 시기에는 당시 만주를 포함한 중국 중북부 지역 전역으로 사막화가 진행된 것이 아닐까 볼 수 있다. 이 영향으로 이 지역에 살던 새아시아인들은 남하하였을 것이며, 이전에 살던 옛아시아인들과 결합이 되었을 것이다.

   

당대 기후 분포를 보면, 문명이 발생하기 적당한 곳은 빙하, 사막, 밀림이 아닌 초원과 아열대성 지역이다. 특히 사막 인근 초원지대인 게다. 사막의 오아시스인 게다. 인근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사막화를 피해 물이 있는 인근 지역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하고,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황해는 이 당시 육지였다.

   

동시에 인드라는 중심이 없는 실증주의 역사관에도 비판적이다. 이제껏 역사의 진실은 실증주의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날 제시하여야 하는 것은 이들을 포용할 관점이지, 이들 모두를 배제하는 관점이 아닌 것이다. 해서, 인류는 황해 문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인류가 황해에서 설사 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인종적인 우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정학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입증은 간단하다. 그토록 인종적인 우월함이 있었다면 어째서 수메르 문명이 그리 쉽사리 무너졌는가되겠다. 그처럼 특정한 문명, 특히 고대 문명은 기후 변화를 비롯한 지정학적 요인이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설사 황해 문화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지정학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지, 한반도인이 원래 잘 났다, 해서 국유본이 주시한다 따위는 아니라는 게다.

   

둘째, 성서와 제키리아 시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외계인의 지도 없이도 일정한 문명 발달을 해왔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즉, 배를 만들 수 있었고, 농경생활을 하였으며, 가축을 길렀고, 일정한 사회조직을 꾸려서 생활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모두 대홍수 이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대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대체로 영거 드라이아스기 이후에 일어난 일로 보고 있다.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는 기원 전 10,800년에서 9,500년까지 1,300년간 (오차 범위 전후 70년)에 발생한 소빙하기를 말한다. 이 시기를 마지막 빙하기로 부른다. 이 시기 이후 해수면 상승은 보다 급격히 이루어졌다.

   

http://en.wikipedia.org/wiki/Younger_Dry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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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가 근래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다. 잠시 요양이라도 할 생각이 간절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쓰려고만 하면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생긴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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