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말뚝 인드라 VS ?
2013/03/06 20:10
http://blog.naver.com/miavenus/70161532016
인드라 VS 말뚝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3/06-2
"말뚝:
공대 중에서도 저는 계과 출신이라 항상 문에 약하다는 생각이.... 매체에서 외국의 대안학교든지 일반학교 교육과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면 자연 학원강사들 총살되는 건데 세력들 그런 쇼를 보여주시면 되는데.... 세력들 교육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학원 보내려고 맞벌이 하는데 아이들 오히려 부모와 유대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모는 아이들 위해 일하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멀어지고 가족의 근본이 흔들리는 이 모순된 교육체계. 외국에서는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 10명 가르치기도 버거워 합니다.
이게 이해가 잘 안됐는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모두를 일정수준까지 끌어올리려는 기본적 소양이 있어서 항상 녹초가 된다고 합니다. 누나 가족이 출장으로 인해서 조카들이 유학갔는데 학원 안 가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한국에 다시 와도 학원 다시 안 가겠다고 약속을 받아놔서 무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조카는 성적이 보통인데 그곳 선생들 옥스포드 보내려고 합니다. 누나는 우리 애 한국에서는 성적 땜에 항상 열등감이 있었다고... 선생은 그런 한국이 매우 궁금하다고
INDRA:
글 고맙습니다. 인드라 역시 기계과 전공이다. 말뚝님이 기계과 전공이라는 것은 뜻밖의 말씀이다. 님의 말씀은 미국 이민세대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이기도 하다. 인드라는 서구 교육체계에 그다지 환상이 없지만, 님의 소중한 말씀 새겨듣는다. 인드라의 주장은 서구를 따라하자가 아니라 서구보다 앞선 혁명적인 패턴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정 고맙다."
교육혁명, 실업해소, 내수시장 회복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 국유본론 2009
2009/08/12 04:49
http://blog.naver.com/miavenus/70066970221
"말뚝 :
길을 걷지 않았을 때에 생각나는 것을 말할 때가 되었나요?
인드라:
하나, 중국 외교문서의 공개 : 한국사를 국제사로 파악하자
최근 중국 외교문서가 공개가 되었다. 지난 시기 49년에서 60년 사이 문건들이 해제되었고, 이번에는 61~65년 사이 문건들이라고 한다. 과거 해제된 문건에는 독도 문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문건도 있었다.
1950년 中외교부 "독도·쓰시마 한국에 귀속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44773
허나,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中 "한국전 외교문서 공개 못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21535
한국전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인드라와 같은 이들이 얼마나 국유본과 전략적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다.
또한 모택동 암살 음모도 있었다고 했다. 국유본이 중국 공산당에는 호의적이어서 중국혁명을 배후 조종했으면서도 모택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국내파 모택동보다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을 선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유본은 전통적으로 국내파보다는 해외파를 선호하고, 국내파라도 호메이니처럼 잠시라도 해외 망명생활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유본 교육을 받아 국유본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과거사에 대한 인드라 입장은 어떠한가. 이 시기 국유본의 실권은 빅터 로스차일드가 쥐고 있었으며, 그의 지휘로 이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기획되고, 실행이 되었다. 또한 냉전체제와 중국혁명의 배후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있다. 해서, 중국 외교문서 발표는 국유본론을 각론에서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시기는 과학기술의 미발달로 국유본의 각국 정부에 대한 통제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해서, 오늘날처럼 직접적이기 보다는 간접적이었고, 정치권력에 대한 자율권을 대폭 허용하는 대신 경제 권력을 장악하는 수법을 취했다. 이것을 신식민주의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다만,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국가인 경우는 일본처럼 정치권력의 자율권을 상당 부분 포기하게 만들었다.
"북, 5·16 예견 지지 성명 준비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0152309591&code=910303
북한, 5·16 쿠데타 '지지성명' 준비했었다... 중국 외교문서
http://www.ytn.co.kr/_ln/0104_200910160457177135
김일성, 두 번의 오판…결국 불량국가 불씨됐다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10/16/200910160369.asp
평양정권이 박정희 세력을 처음에는 진보세력으로 파악했다. 이것이 틀린 판단인가. 아니다. 박정희 아버지는 동학도였고, 박정희의 형은 남로당원으로 대구 폭동 과정에서 죽었다. 박정희가 가장 믿고 따르던 이가 박정희의 형, 박상희였다. 인드라 입장에서 볼 때, 박정희가 일본 육사에 간 것도 박상희의 허락을 받았던 것으로 보기까지 한다.
"엄민영은 일제고문 합격자로 군수를 한 친일파인데 해방 후 남로당 당원이 되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 직후엔 당시 북에서 남파된 역사학자 전석담 밑에서 서울지역 대학책의 중요 요직을 담당 활동하다가, 미군이 진격해 들어오자, 먼저 처자를 평양에 보내고 그 후에 월북하다가 동두천근처에서 미군포로가 되어 거제도에 수용되었다가 그 후 석방된 자입니다. 그는 박정희가 집권할 때에 내무장관과 주일 한국대사를 했고 박정희의 정치고문이었습니다. 그의 규슈제대 출신과 인연이 되어 박정희 주변에서 활약한 이는 공화당 의장 백남억입니다. 백남억은 대구대학 교수로서 공화당에 가담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원래 그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원이었다가 해방 후에 부산 철도국 운수과장으로서 총파업을 지도 선동한 주모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미군정의 수배인물로 돼 도망쳐서 잠적했다가 후에 대구대학교수가 된 인물입니다. (정영진, '폭풍의 세월 - 대구10-1사건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 이데올로기'(한길사,1990년 ,297쪽 참조). 그가 박정희의 공화당 간부가 되었습니다. 김형욱의 '회고록'을 보면, 김성곤 공화당 재무위원은 남조선 노동당 경북도당 재무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박정희처럼 내무부 정보파일에 기록된 그의 남로당 참여기록을 말소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 김일성은 사태를 오판하여 황태성을 박정희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인물은 유원식입니다. 516 직후 진시황으로까지 불린 8기생 유원식 대령은 당대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한국의 트로츠키였습니다. 유원식의 아버지는 유림으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였지만, 그는 박정희처럼 만주군관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에도 다니는 등 이론적인 면에서도 많은 공부를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해서, 오늘날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가령 이승만 때 이미 기획했다, 장면 때에 있던 것을 박정희 정권이 베낀 것이다 등등이 많은데, 이런 주장은 무능했던 민주당 정권을 옹호하고, 박정희를 무조건 까대기 위한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보입니다. 그보다는 유원식 작품이다, 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박정희에게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작성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관해 유원식은 "나는 완전 고용의 꿈을 꾸었다. 경제성장을 하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그해 10월 한국을 방문한 스칼라피노 박사와의 대담에서 스칼라피노가 후진국이 경제성장을 하려면 불균형성장이 불가피하다고 한 데에 대하여 뜻밖에도 균형발전론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해서, 당시 "한국의 군사정부에 사회주의 경제학자가 있더라"라고 스칼라피노 박사가 미 정부에 보고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정희, 나폴레옹, 국제유태자본
http://blog.naver.com/miavenus/70030439320
예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대 권력은 미국 워싱턴이나 뉴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국 런던에 있었다는 점이다. 유엔을 만든 것도, 마셜플랜을 결정한 것도, 브래튼우즈체제를 만든 것도, 미국 CIA에 힘을 실어준 것도 모두 빅터 로스차일드가 행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여, 빅터 로스차일드는 박정희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이스라엘 정부가 박정희 정권을 승인하였다. 당대 이스라엘 정권은 마파이당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마파이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중도좌파 정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반공이 국시인 나라에서 유원식은 대체 뭘 믿고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꿈꾸었는가. 답은 간단명료하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평양정권을 지원하다가 서울정권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대 빅터 로스차일드는 케임브리지 5인방을 통해 한편으로는 KGB와 연결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와 연계가 되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영화 007처럼 영국 정보부가 있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영국 정보부에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예서, 중요한 것은 소련에서의 스탈린 실각이다. 이후 중국과 북한에서 동일한 일이 발생해야 했다. 허나, 중국은 성공하여 모택동이 대약진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난 반면, 김일성은 즉각 박헌영을 숙청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모두를 친미, 친일파라는 이상한 명목으로 모두 끝장을 내었다.
인드라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조봉암이 부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유본의 통제 하에 있던 평양은 김일성 주체사상 노선으로 인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해서, 상기한 해석에 인드라는 입장을 달리한다. 박정희 정권 출범으로 인해 김일성 정권이 군사 부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현상적인 분석이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스탈린 실각에서 비롯된 영향이 북한에까지 파급되기를 바랐던 국유본의 의도가 김일성의 신속한 행동으로 좌절되었다는 점이다.
하여, 국유본이 내세운 최초의 대안은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은 전향한 좌파였다. 해서, 국유본은 조봉암에게 영어 과외교습을 하라고 권할 정도로 대안을 삼았었다. 조봉암은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 알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허나, 국유본 방침이 바뀐다. 마치 해방 직후 여운형에게 권력을 줄 듯 하던 태도와 흡사하다. 아무래도 조봉암 개인이 설사 항일운동가 이승만과 달리 한일수교에 적극적이더라도 지지자들이 용인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해서, 국유본은 급격히 CIA를 통한 이승만 하야공작을 실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친일파인 민주당을 옹립하는 태도를 취했다. 허나, 이때 친일파 윤보선, 장면 등이 너무나 무능했던 것이 국유본의 실망을 가져다 준 것으로 보인다.
국유본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 국유본의 최우선 방침은 브래튼우즈 체제 하에서의 달러 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동북아에서의 일본 방위비 부담이 필요하였다. 이 결과로 국유본은 세계전략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지위를 고려하여 미일안보조약을 한국전쟁 중인 1951년 9월 8일 체결하고, 1960년 6월 20일에 신조약을 개정하고, 최종판인 한일국교가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의 한국계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사토 에이사쿠와 남조선노동당 출신의 박정희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 배후는 빅터 로스차일드이다.
다른 하나는 평양 정권에 대한 견제였다. 1950년대 국유본은 허가이 등의 소련파를 통해서 평양정권을 통제할 수 있었다. 허나, 소련파 숙청으로 말미암아 국유본은 평양정권을 통제할 수단을 잃었다. 이에 대한 국유본의 조치는 단호했다.
경제 지원 중단!!!
이전까지 평양 정권은 국유본의 지원으로 재건사업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해서, 1970년 이전까지 북한은 남한보다 잘 살았다. 허나, 이것은 김일성의 몫이기는 하지만, 그 배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치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과 같다. 이는 박정희가 잘 해서이지만, 그 배후에는 국유본, 빅터 로스차일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웃 중국 모택동 정권과도 비교할 수 있는 일이다. 모택동은 시종일관 소련 정권 등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소련 정권은 외면했다. 해서, 시작한 것이 대약진운동이다. 자본 없이 농민의 힘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재앙이었다. 국유본의 지원이 없다면 말짱 꽝이라는 것을 모택동이 몸소 보여주었던 게다.
김일성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허나, 중요한 것은 권력이었다. 김일성은 스탈린 실각 전까지 동도서기 관점을 철저히 유지하여 유럽중심주의, 맑스레닌주의 노선에 충실했다. 허나, 그 이후로는 주체사상을 내세우게 된다. 그런 김일성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남조선에서의 혁명이었다. 그것이 516의 염원이었다. 김일성의 판단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다. 국유본이 중동에서는 낫세르를 지원했고, 중남미에서는 카스트로가 쿠바를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허나, 기대는 좌절되었다. 해서, 김일성은 중소 군사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게다. 마치 1970년대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소련과의 비밀협정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게다.
예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김일성이 박정희 정권 때문에 경제 중심 노선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는 게다. 생각해 보라. 박정희 정권이 무엇인데, 남한보다 앞선 경제력을 지녔던 북한이 무엇이 아쉬워서 경제성장 계획을 늦추겠느냐 이 말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외부 지원이 끊긴 게다. 국유본, 빅터 로스차일드가 김일성더러 마치 김영삼에게 하듯 너, 지원 끊으면 끝장난다, 외환위기가 온다고 경고하는 것과 같다. 물론 김일성보다 김영삼이 통제가 쉬웠다.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청와대에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도청 장치가 일상화되었다. 해서, 김일성은 어쩔 수 없이 군사 부문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던 게다. 원인은 박정희 정권 출범이 아니라 국유본인 게다.
정리하자. 박정희가 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가. 한일수교의 최적임자였다. 이 점에서 친일파 중의 친일파로서 친일민주당이 최적임자이기는 했다. 허나, 친일민주당은 두 번째 문제인 평양 정권과의 정립에서 문제가 되었던 게다. 친일파 장면이나 윤보선이 김일성과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았던 게다. 항일운동가 집안 김정일과 친일파 김대중의 만남에서 기대할 것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인 게다.
이 점에서 조봉암은 김일성과 맞대응할 인물이었다. 허나, 그는 결정적인 데서 탈락한 게다. 한일수교라는 것. 이것은 당대 국유본의 최우선 방침이었다.
해서, 낙점한 것이 박정희인 게다.
친일이면서 좌파인 박정희.
국유본, 빅터 로스차일드는 이승만 하야 공작, 419, 516을 통해서 일타 삼피로 실험했던 셈이다.
하나, 419혁명을 통해 이후 68혁명과 드골퇴진이라는 밑그림을 만들었다. 마치 칠레에서 신자유주의를 실험하고, 전 세계에 유포시킨 것과 같다. 근대사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 68혁명은 419혁명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배후는 빅터 로스차일드이다.
둘, 이승만은 항일운동가이자 국부였다. 이승만에게는 친일민주당 뿐만 아니라 유일한처럼 세련된 국유본 스파이가 견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유일한은 평양정권에서 소련파 역할을 했던 셈이다. 허나, 시대가 변화한다. 하여, 이승만 권력을 무너뜨려야 했다. 국부를 퇴장시키는 유일한 방식은 부패다. 해서, 자유당 시대에 대한 새로운 역사 읽기가 필요하다. 조폭? 루즈벨트나 트루먼이나 당대 조폭 없이 정권을 획득하기 어려웠다. 인드라가 강조한다. 조선 선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나라 당대 정치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셋, 박정희를 동양의 나폴레옹으로 만들 구상을 마친 셈이다. 이로 인해 김일성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견된 혁명, 허나, 그 혁명이 자신의 목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택할 수 있는 패턴은 단순하다. 다만, 64년 이전까지는 김일성이 수동적이었다면, 본격적으로 군사 부문에 예산을 투입했던 65년 이후로는 국유본의 메시지를 받아서인지 탄력적으로 된다.
둘, 박근혜의 차기 대통령은 따논 당상인가?
인드라는 뉴욕타임즈를 정기구독하고 있으며, 포브스 코리아도 읽고 있다. 이외에도 국유본 언론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편이다. 포브스 코리아 2009년 10월호에서 민감한 부분이 포착이 되었다.
경기도지사이자 과거 주사파와 구별되는 운동권 좌파 출신의 김문수, 이명박 지지 정치사이트인 엔파람이 차기 대통령으로 사실상 공식 지지한 김문수가 표지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연인가. 아니다. 포브스는 영향력이 있는 백대 여성 순위를 선정했다. 헌데, 여기에 박근혜가 빠졌다.
예서, 탑 100 순위를 잠시 살핀다. 1위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이다. 3위가 인드라 누이이다. 5위가 테마섹 호칭이다. 7위가 듀퐁 CEO 앤절라 브랠리이다. 눈치 채었는가. 모두 국유본 인물이다. 문제는 백위권 내에 차라리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면 별 문제가 아닌데, 한 명이 포함되었다는 게다. 그녀는 누구인가.
현정은이다. 79위이다.
박근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박근혜에 대한 민심은 바닥이다. 오직 믿을 것은 국유본이다. 선덕여왕 인기에나 바라보고 있을 처지가 박근혜인 셈이다. 허나, 이처럼 국제기관에서 박근혜를 무시한다면 이는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섣불리 박근혜가 뻥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허나,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이는 박근혜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즉, 수틀리게 굴면 언제든지 현재의 지지도를 하락시킬 수 있음을 국유본이 협박한 셈이다. 그 결과로 박근혜가 근래 세종시 문제를 언급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가 아니다. 또한 이를 원동력으로 한 재보선도 아니다.
핵심은 국유본의 한반도 전략이며, 이는 끊임없이 수정한다는 점이다.
예서, 인드라의 혁명론이 발생한다. 인드라는 키신저와 브레진스키와 국가전략연구소와 현재 전투중이다.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다소 상식을 거침없이 넘어선다면, 역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인드라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셋, Paul Johnson은 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고 했나?
폴 존슨은 영국 역사학자이다. 하고, 포브스 포커스를 담당하는 칼럼니스트이다. 그의 지론은 미사여구가 없어서 좋다. 숨김없는 유럽 로스차일드적인 태도를 내보인다는 점에서 인드라가 유념해서 읽고 있다. 이에 비해 정기구독하고 있는 뉴욕 타임즈가 얼마나 읽을거리가 없는가. 폐간됨이 마땅하다.
그는 '불황탈출, 산책이 답이다'라는 이슈를 제시한다. 헌데, 그는 이 글에서 별 쓰잘 데 없는 이야기들을 과거 사례에서 잔뜩 인용한 뒤 결론 부분에서 말한다.
<왜 걸으면 생각이 떠오르고 명확해지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더 많이 걸어야 한다. 대표 이사들 특히 대기업 대표들은 많이 걸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위대한 트루먼 대통령처럼 날마다 장시간 산책해야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재임명된 벤 버냉키도 가능한 한 차를 타지 말고 걸어야 한다. 시인 소로의 또 다른 말을 기억하자. "발걸음을 떼는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흐른다">
여러분은 이제 국유본론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국유본론이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그렇다. 후자일수록 인드라는 도전 의식이 발생한다.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러분과 인드라. 인드라가 소심했다.
준비하시라, 인드라와 혁명을!
약속을 지키겠다.
추신 : 제이 록펠러가 한글을 공부한다면 제주도 방언으로 공부하는 것이 인류사의 지대한 발전을 이루리라 확신한다."
21세기 혁명 : 박정희의 516, 재평가되어야 하는가? 국유본론 2009
2009/10/25 03:51
http://blog.naver.com/miavenus/70072285031
"말뚝:
북한의 화폐개혁은 경제회생? 위글 북한에 대한 압축으로 이해됩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이 북한 핵개발이라는 설정이 가능한 일입니까? 평화협정이나 조약의 결과 미국이 지불해야할 돈이 더 많이 늘어나는 현실적 관계에 화폐개혁이 있을법도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북한이나 이란에 핵이 있다라는 가정하에서 보면 위험한 도박을 하는건 미국이며 과연 이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런지는 두고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키신저나 고어등이 10월에 북경에 나타나고 그때 김양건이도 거기에 있었고 이런 늙이들의 연장선에 보즈워스가 평양에 가고 ...... 이때 이상득은 인도네시아에 있었는데 비밀리에 김양건을 만나서 정상회담 어쩌고 구라를 치고... 오늘 보즈워스가 오면 뭔말이 있겠죠~~!
INDRA:
글 고맙습니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뻥카와 구라판이라는 건 불문가지이다. 다만,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중동 문제와 함께 해법이 쉽지 않은 난제로 외교가에서 정평이 난 것이다. 1. 미국이 지불하는 법은 없다. 지불해도 일본이 지불할 것이다. 국유본이 의외로 짠돌이들이다^^! 경수로 때를 참고하시길~! 2. 사실 소련과의 핵대결도 아닌 마당에 과장된 면이 많다. 미소 핵대결이 국유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싶다. 그렇다 해도 핵 억제력은 소련 붕괴에서 보듯 실상은 별 의미가 없다. 3. 미국이 도박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정확히는 국유본이다. 언제나 시비를 거는 것은 국유본이다. 평양정권은 돌멩이에 처맞은 개구리처럼 정신이 없을 따름이다. 4. 이상득이 비밀리에 김양건을 만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허나, 이상득이 만나봐야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국유본 손바닥이다. 따로 놀면 박철언처럼 엄하게 문책당한다. 5. 보즈워스에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데, 인드라 입장은 보즈워스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보즈워스는 인드라 분류법에 의하면 영향력이 그저그런 인물이다. 국유본에서 핵심멤버라고 볼 수가 없다.
말뚝:
보즈워스가 어제 와서 이러저런 구라를 치고 919성명 운운하며 과거로 돌아가가자 완벽한 이행해주겠다고 떠들어대고 있는데 버스는 지나갔는데 손 흔드는 그런 경우로 보여집니다. 북한은 시간 다 됐다고 하는듯 합니다. 보즈워스는 북한의 리근국장보다 쳐지는 인물로 봅니다. 북한이 그를 영접하는 것이나 모로보나 별 신경쓰지 않는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쑈입니다. 실재적으로 뭔가 준비되고 있어 보입니다. 뭔가가 날아오르기 전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포착되어집니다.
INDRA:
일단 이 문제에 대한 반응이 하나 왔다. 보스워즈가 이번 방문을 협상이 아니라 탐색이라 했다. 클린턴이 받쳐주는 모양새인데, 결과적으로 별 소득이 없다 할 수 있다. 인드라는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이제 한반도 이슈로는 써먹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야 한다.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이제 통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한단고기는 동아시아판 시온의정서이다 국유본론 2009
2009/12/16 15:02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말뚝:
MB가 박정희의 무용담을 넘어서려면 경제분야에서 두각을 세우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당연 경제인이니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개나발이겠지만요. 박정희를 넘어서려면 단 한 가지뿐이 없습니다. 그것은 민족주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MB라면 잘 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불도저식으로 민족을 내세워 민족적인 것을 함양하는 그런 류의 것들이 내년부터는 서서히 나타나리라 봅니다. MB는 할 수 있다.~! 국운융성이라고 외친 바로 앞에 한민족국운융성이라고 하면 됩니다. 빨간딱지 붙어있었던 박정희가 반공을 외쳤듯이 빨간책 끼고 있는 다소 반민족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MB는 그 누구보다 더 민족을 외쳐대리라 기대합니다. 이게 박통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입니다. 인드라님~! 연말 잘 보내시구요. 명년에도 하던 일 온전히 그대로 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INDRA:
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더 나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박정희는 1963년 10월 3일 개천절을 기해 기념탑 개막식이 개최되었을 때 박정희는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이때 박정희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혁명은 단 두 번밖에 없다. 하나는 동학혁명이요, 다른 하나는 516혁명이다." 라고 말한다. 하여, 이후 선거에서 친일매국노 윤보선이 박정희더러 빨갱이라 했고, 박정희는 구악(친일매국민주당) 대 민중세력의 대결이라고 한 바 있다. 박정희를 의식한 김일성은 평양정권의 정통성을 위해 종래 근대사에서 동학혁명을 중시하다가 위정척사파의 구국운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처럼 박정희는 동학과 동학과 관계된 민족종교에 깊은 애착을 가졌다.
말뚝님이 이 코드를 잘 알고 계시다. 그것이다. 많은 분들이 말뚝님이 말하는 그 속뜻을 잘 이해하신다면 좋으련만. 이것이 보수도 발전하고, 진보도 발전하는 길이다. 선순환이다. 지난 신자유주의 시대는 악순환이었던 것이다. 보수는 보수대로 맛 가고, 진보도 진보대로 맛 가는 시대였던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진보도 강한 상대를 맞이해야 더 진보한다."
2010년 경제전망: 삼성, 대우건설, 금호사태의 비밀과 박정희 죽이기 국유본론 2010 2010/01/09 23:00
http://blog.naver.com/miavenus/70077737564
"말뚝:
언어와 문자 그리고 기호학... 이 영역을 넘어서는(탈피. 기호학이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것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납니다. 예를 들자면 언어를 넘어선다는 것은 니덜 예수 믿냐 안 믿냐 하는 것과 같이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 천국을 YES라고 하고 지옥을 NO라고 상정하자면 이는 흑백논리이고 매트릭스의 비트입니다. 자 여기서 인드라(인도의 천신이기도 하지만)님의 트레이드인 <마음을 열고 자세를.....> 여기서 마음을 열고를 YES라고 하고 닫음을 NO라고 상정하자면 이것은 지하철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 하고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말이 됩니다. 자 여기서 주지하는 것은 내가 그럼 마음이 닫혔었나 하는 게 되고 이것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를 띠고 이제부터 마음을 열어야 되겠다는 긍정적 답변인 그래 마음을 열어야 되겠다. 즉 예수천국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참과 거짓이라는 필요조건 혹은 충분조건 또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해도 답은 참이 아니면 거짓이 됩니다. 이 뻔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현재의 사상적 한계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적인 인식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유에 있어서 언어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 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을 大道라고 환치시켜서 보아도 불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기독교적인가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즉 대도무문은 불교가 도교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인데 즉 마음을 열고와 같은 선상에서 보더라도 대도에 문이 있었나?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원래 문은 없었는데 문이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교묘한 언어적 장난이지요. 셈족에게 흐르는 시대정신(언어 사유)이 고스란히 불교에 녹아든 것이 바로 원죄와 비견되는 미혹(무명)이고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해탈이고 이것은 구원과 같은 것인데 이것이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 하는 소소한 차이가 가르침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과연 문이 있었나? 하는 것을 생각해보야 할것 같은지요? 있다면 그것을 열어 두라고 하는 것. 전략적이라는 것으로 그 이면적 가치를 높이 사고자 합니다. 마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과거는 관리를 마름이라고 했고 이것이 중고 이래로 조선시대에는 마당쇠의 우두머리를 마름이라고 합니다.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납니다. 생각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기도 할 것인데 그것을 통제하고 하는 것을 생각을 관리하고 연산하는 직책을 편의상 마름이라고 한다면 마음(마름)은 바로 그러한 것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과연 여기에 문이 있었나? 하는 것은 마치 대도무문이라고 지껄이는 찌질한 놈과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은 아니고 한번 잠시 사유를 해봄도 좋을듯해서 그럽니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특히 기호학 특히 언어학을 한다면 그의 저서 <칠조어론>을 일독함을 권합니다. 이걸 다 읽으면 그것으로라도 독종에 속합니다. 거기에 실어증이 나오는데 어떤 이가 다섯(5)이란 말을 잃어버렸다면 우주가 그만큼 작아졌다고 보면 됩니다. 언어가 사유하는 것만큼의 우주가 존재하니까요~! <---- 박상륭씨 왈
INDRA:
글 고맙습니다.
"어제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용하던 지하철에 갑자기 누군가 소리쳐서 쳐다보니 웬 아주머니가 예수 믿으라며 일장 설교를 하고 계셨다. 설교만 하면 다행인데 돌아다니면서 예수 믿어? 안 믿어? 안 믿으면 불행해져. 믿어야 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나오면 기분이 좋지 않다. 예전 같으면 좀 조용하세요, 라고 한마디 할 터인데 무엇일까. 마음공부를 해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렇게 하면 진부한 상황인 것 같았다. 해서, 그 아주머니가 내게 와서 반말 찍찍하면서 예수 믿냐? 뭐 이러면 어떻게 답변할까 여기니 갑자기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네. 그럼요. 아줌마 덕분에 믿게 되었어요. 이러면 아주머니 반응이 어떨까. 이러니까 속으로 웃게 되면서 주변을 살피니 모두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재미있는 것은 아주머니 반응이다. 눈길을 피하고 심각하게 있는 청년 앞에서는 일장 연설을 하는데 반해 인드라처럼 빙글빙글 웃으면서 눈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세상이 즐겁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말뚝님은 비트의 논리를 흑백논리로 정의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비트의 논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구성하건, 이 세계는 볼품없을 따름이다. 그처럼 사랑이란 단백질간의 화학작용에 불과할 수 있다. 하면, 카오스적인 기법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은 뭐란 말인가. 아름답지 않은가^^! 허나, 이를 환상으로 일축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라고 말이다.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허나, 일부이다. 말뚝님은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에 관해 원리적인 설명을 한다. 마음을 연다. 여기에는 문을 전제한다. 해서, 이 문의 분별에서 이미 원칙적인 면이 훼손되었다라고 여긴다. 다만, 말뚝님은 이를 전략적으로 높이 사는 것이다. 원칙이 아니라 전략이다. 예서, 반문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전략이어야 하나. 왜 원칙적일 수는 없는가.
이것이 문자 논리이다. 왜? 문자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다. 재구성되는 것이다, 목표이다. 문자 논리가 평등을 말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 인간이 애초에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 논리는 무를 전제한다. 허나, 이 무는 오직 유에 대한 부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헌데, 인드라의 문은 유이다. 인드라가 문을 전제하니 이미 근본적이지 않다. 이런 논리인 게다. 해서, 박상륭 언어론을 제시하는 것이겠다. 인드라가 30대 초반에 앓던 것이 박상륭이었으니까. 하면, 인드라가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문자의 합리성이란 문자의 의미체계가 현실을 초월하여 고유하게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특별한 위치로 승격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대의 목적론과 기원론 만큼이나 이상한 사고방식은 없다.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은폐하면서 공정한 듯 의미들에 대해 중요성의 서열을 매기는 단순한 방식이다. 나의 방식은 그 서열을 매기는 그대 손등에 도끼를 찍는 것이다. 그대가 여전히 글쓰기 내의 문자와 문자의 합리성을 분리시키지 않고 글쓰기와 광장적 실천만을 분리하여 대중과 나를 주체체제나 유신체제의 세뇌인간 보듯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는 광장적 실천이 분리된 글쓰기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글쓰기 분리에는 초월한 듯 예의 장중한 수사학으로 소박한 품성을 말할 뿐이다. : 기만적 글쓰기를 위한 서론 중에서 ; 김종화, 해체: 통일에서 포르노까지"
엄밀하게 말하면, 극복하지 못했다. 아니, 극복한다는 말조차 의미가 없다. 이전 인월리에서 언급했다. 존재란 '있다'이다. 지독한 유물론자였던 인드라가 삼십대 초반에는 '없다'였다. 해서, 존재론적 고민이란 모두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해서, 말뚝님과 같은 논리 전개를 했었다. 인식론적으로 말이다. 왜? 존재론적 고민은 모두 허위였으니까. 허위였기에 그 공허한 마음을 실존이다, 뭐다 하는 썰로 보충해볼까, 이런 수작이었던 게다. 허나, 인드라가 국유본론을 정립하면서 깨달았다. 존재한다. 있다. 인드라 글을 유념해보시길. 여러분들의 인식론적인 혼란에 신경을 쓰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무수한 해석의 하나로 넘길 뿐이다. 인드라는 깨달았다. 존재한다. 있다. 허나, 그것은 무엇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유물론이나 유신론을 입증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을 뿐이다. 그 별 것 없는 미묘한 차이가 많은 것을 불러낸다. 이전에도 인드라 글쓰기는 현학적이었고, 난해했고,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전보다도 비교적 정리가 된 면이 있겠다. 허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헌데, 왜 전과 달리 근래 국유본과 네티즌은 인드라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일까?
범주가 달라졌다. 세계를 보는 기준이 바뀌어서 그렇다. 인식론적 변화가 아니라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자명하고 명료했던 구분들이 존재론적 변화로 인해 과연 그 구분들이 여전히 참될까 하는 애매함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여, 당분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이전처럼 명료한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허나, 이전의 세계는 이미 가상의 세계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실재감을 느낄 수 없다. 해서, 진정한 세계를 보고 싶은데, 그것은 얼핏 윤곽만 보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럴 때 인드라가 가끔 등장하여 인간 네비게이터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여, 인드라더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게다. 빨리 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다. 허나, 인드라는 천하태평하게 있으니 간혹 밉기도 한 게다."
아이티 지진 음모론: 차베스(박정희)가 죽고, 룰라(이명박)가 뜬다 국유본론 2010
2010/01/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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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아웃
악의 복마전, 골룸빡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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