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3 : 일루미나티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2/02/2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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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3 : 일루미나티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2/02/29

 

지난 인월리를 읽으니 일루미나티 배경에 치중하다 보니 산만하게 서술한 듯싶다.

 

해서, 이번에 짤막하게 요약본만 제시한다.

 

일루미나티 관련 글들을 최소한 몇 개 정도 읽었다고 보고 구구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반론, 비판 환영한다.

 

 

 

 

1. 일루미나티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유태인이 아니다.

 

2.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예수회 시스템을 응용해서 조직을 키우려 했을 뿐, 예수회와 관계가 없다.

 

3.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1774년 프리메이슨에 가입했으나, 이내 프리메이슨에 실망하여 1776년 일루미나티를 만든다.

 

4. 일루미나티는 교황파 대 국왕파로 갈리는 유럽 대륙 정세 속에서 러시아 황제,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조차도 프리메이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몽 군주였기에 은근한 묵인 속에서 급속히 세를 확대하여 회원 수 삼사 천 명에 이르렀다.

 

5. 귀족 크니게의 활약으로 일루미나티는 불과 수 년만에 영국을 제외한  프리메이슨 - 일루미나티 유럽 통합 체제를 만들어낸다. 허나, 크니게의 지분 요구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거절하는 바람에 크니게는 당국에 몽땅 분다. 때마침 독일에서 파리로 가던 배달원이 벼락 맞아 뒈지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조직이 와해되었다.

 

6.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고타 영주의 보호 속에 고타로 망명하여 이후 고타에서 쭉 살다 1830년 뒈진다. 다른 회원들은 프랑스와 러시아 등 유럽 각지로 흩어진다.

 

7. 프랑스에서는 1730년대부터 스코틀랜드에서 프리메이슨이 수입된 뒤, 수많은 프리메이슨 로지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1773년에 위대한 동방(Grand Orient, 대동사, 大東社)이 등장한다. 기존 프리메이슨 파가 비정치적이었던 반면, 위대한 동방파는 정치적이어서 프랑스 프리메이슨은 둘로 분열한다. 이때, 위대한 동방파와 일루미나티가 결합한다.

 

8. 프랑스 혁명을 움직였던 쟈코뱅파는 일루미나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미라보가 초기 역할을 맡았다. 허나, 이후 쟈코뱅파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한다. 프리메이슨끼리, 일루미나티끼리 서로 죽이고, 죽였다. 이 과정에서 로베스피에르가 권력을 장악한다.

 

9. 로베르피에르가 집권했던 1795년까지 바이스하우프트는 적극적인 집필 활동을 하였으며, 바이스하우프트의 서신은 프랑스 쟈코뱅파들 사이에서 회람되었다.

 

10. 프랑스 왕 처형은 일루미나티 역사와 논리와는 무관하다. 프랑스 왕 처형은 위그노파 역사와 논리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 왕 처형으로 유럽 민심이 흉흉해지고, 프랑스 혁명 배후에 프리메이슨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일루미나티 정권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프리메이슨이었던 평등공 오를레앙을 처형한다. 평등공 오를레앙은 프리메이슨이었지만, 위대한 동방파나 일루미나티가 아니었다. 희생양으로 죽은 셈이다.

 

11.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일루미나티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에서 박애 대신 형제애로 바꾸어야 한다. 형제애란 중세 길드를 뿌리로 둔 조합 이기주의이다.

 

12. 로베스피에르 독재에 위협을 느낀 시예에스(Sieyes)가 주동하여 반란을 일으켜서 로베스피에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총재 체제로 전환한다. 이때, 시예에스도 일루미나티였지만, 이 시기에 이르르면 시예에스는 프랑스 권력투쟁 과정에서 일루미나티 이념을 버리고 현실주의자가 된다.

 

13. 시예에스가 주도하던 총재 정부 시절에는 이념과 현실이 따로 움직이는 따로국밥 시절이었다. 이 시기 프랑스 혁명파들은 더 이상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서신을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를 못 느꼈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절망하여 절필을 선언한다.

 

14. 총재 정부 시기, 시예에스 등 프랑스 혁명파들은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의 일루미나티를 버리는 반면, 일루미나티 선동 방식, 조직 방식 등 실무에 필요한 기술적인 것만을 받아들였다. 이는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의 작품이 아니라 일루미나티를 유럽 최고의 조직으로 만들었지만,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의 견제로 일루미나티에서 축출당하자 이에 반발하여 당국에 고발한 마당발, 크니게의 작품이다.

 

15. 시예에스보다 더욱 뛰어난 인물이 출현하였다. 역시 쟈코뱅이었던 나폴레옹과 푸셰이다. 한국으로 치면, 나폴레옹과 푸셰는 박정희와 김종필이다.

 

16. 나폴레옹은 시예에스를 숙청하는 대신 돈을 쥐어주고 권력에서 축출한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일루미나티 조직 수장으로 자신의 인척을 임명한다. 이는 마치 유럽 각국 왕을 자신의 친인척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다. 이정희 같은 애를 민주노동당 당수시켜주면 민주노동당이 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17. 프랑스 혁명 당시 누구보다 일루미나티적인 이념과 실무에 충실했던 푸셰는 누구보다 일루미나티 방식을 잘 알았기에 프랑스 일루미나티와 전 유럽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을 밑바닥부터 와해시켰다.

 

18. 나폴레옹 집권 기간과 왕정 복고 기간인 1800년대부터 1820년대 기간 동안 전 유럽에서는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자취를 감추었다. 누군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쟈코뱅? 하면 바보 아냐 하는 분위기였다.

 

19.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자신의 삶을 통렬하게 후회하면서 교회에서 참회하고 회개하다가 1830년에 뒈졌다.

 

20. 국유본은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죽자마자 1830년 프랑스 혁명을 재차 일으킨다. 이번 주동자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아니라 로스차일드였다. 로스차일드는 이념보다는 철저한 장사 잇속으로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21. 그간 유태인이 공직에 나설 수 없었기에 정치, 사회, 외교 부분을 프리메이슨이 맡아왔었다. 허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유럽 경제 권력을 장악한 로스차일드는 프리메이슨 대신 유태인을 키우기 시작했다. 유태인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고, 유태인이 각 부문에서 사업을 장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22. 로스차일드 기획하에 미국에서 반프리메이슨 운동이 일어나 미국에서 프리메이슨 세력이 궤멸 직전까지 내몰렸다.

 

23. 로스차일드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프리메이슨을 탄압했지만, 아시아 중국 공략에는 프리메이슨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아 아시아 중국 공략에서 만큼은 프리메이슨과의 연합을 취했다.

 

24. 나폴레옹 3세도 프리메이슨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로스차일드, 국유본이 나폴레옹 3세를 황제로 만들었다. 나폴레옹 3세는 국유본이 이제는 영국왕 대신 자신을 지지한다고 착각하다가 국유본 로스차일드가 지원하는 비스마르크에게 당해 생을 마감한다.

 

25. 1848년, 1871년 파리콤뮨에서 보듯 국유본의 지원이 없다면, 혁명은 비참하게 끝난다. 맑스가 1871년 파리콤뮨에서 보여주었던 이중성은 바로 이런 점을 간파했었던 셈이다.

 

26. 맑스는 일루미나티가 아니다. 국유본 로스차일드가 맑스에게 판을 깔아주었다. 출판업자들은 맑스 글에 매혹당했다기 보다는 맑스 집안 배경에 눈독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맑스 가문은 오늘날 네덜란드 필립스와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 국유본 로스차일드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를 대체하는 조직을 필요로 했다. 왜? 당대 로스차일드와 경쟁하던 세력이 누구인가. 베어링 가문인데, 베어링 가문은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인맥이 있었기에 이 인맥을 파괴시켜야 했다. 

 

맑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맑스 친인척의 권유를 물리치고 독자성을 지켰다. 물론, 어느 정도 로스차일드 국유본과 타협한 대목들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로스차일드 국유본의 개는 아니었다.

27. 1850년대 영국에서 로스차일드가 정치에 입문하고 1880년대 로스차일드가 영국 작위를 받을 때까지는 과도기였다. 이 시기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는 후원 세력이었던 영국 귀족이나 베어링 가문이 힘을 잃어가자 멸종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반면, 유태인 조직은 로스차일드 후원하에 각 지역에서 전유럽적으로, 전세계적인 규모로 뭉치기 시작했다.

 

 

 

28. 이중, 삼중의 기획 속에서 만든 시온의정서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교리들을 연구한 작품인데, 이만한 작품을 만들 조직은 유럽 당대에 오직 페이비언 협회외에는 없다.

 

국유본이 시온의정서를 만든 이유는 일타삼피이다.

 

하나, 페이비언 협회와 300인 위원회는 정치적 기획력을 통해 로스차일드 자금력을 견제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는 로스차일드가 300인 위원회 최상층인 라운드테이블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면서 오히려 페이비언 협회 정치적 기획력을 흡수하여 더 강력한 권력으로 진화하였다.

 

둘, 로스차일드는 300인 위원회가 시온의정서를 고의로 유럽 각국으로 누출시키면 유럽 각국에서 반유태인 정서가 일어난다는 기획에 대항하여 권력의 일부를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전시켰다. 공황을 이용하여 로스차일드는 미국에서 로스차일드 대리인인 모건 권력을 창출하였고, 모건 권력을 통하여 미국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그 핵심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루즈벨트 정권이다.

 

셋, 로스차일드는 물론 뉴욕은행가인 록펠러까지 위기가 기회임을 간파했다. 위기의 해결책은 전쟁이다. 시온의정서를 이용하여 각국에 반유태인 정서를 파급시킨다. 동시에 독일 히틀러, 일본 쪽발왕, 이태리 뭇솔리니를 지원한다. 마치 오늘날 국유본이 남몰래 북한 핵개발 자금과 기술을 다 대주는 것과 같다.

 

29. 19세기 초반에 다 죽었던 일루미나티를 20세기에 부활시킨 것은 웹스터 여사이다. 일루미나티 역사적 기록은 존 로비슨이면 족하다. 허나, 웹스터 여사는 국유본이 배경인지 황당한 저술로 일루미나티가 20세기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30. 일루미나티 음모론은 이차대전이 끝난 뒤에 사라졌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31. 일루미나티 음모론이 재부각한 것은, 부시 정권 때부터이다. 정확히 말하면, 911 때문이다.

 

32. 911과 일루미나티가 만나는 지점이 1995년에 나온 일루미나티 카드와 1999년에 등장한 각종 일루미나티 카드 게임 증보판 때문이다.

 

33. 일루미나티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에 나온 조직과 흡사하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일루미나티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면 일루미나티는 실재하게 되는 셈이다. 국유본은 여러분이 일루미나티 조직을 만들기를 염원하고 있다.

 

34. 국유본은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싶어한다. 일루미나티 음모론이 확산할수록 국유본은 슬쩍 뒤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루미나티 음모론이 확산하여 알 카에다 같은 조직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헌데, 알 카에다도 국유본 산하 조직이다. 무엇보다 국유본은 국유본에 저항하는 자들마저도 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틈만 나면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킨다.

 

35. 일루미나티 자체는 허구다. 허나, 국유본이 원하면, 언제든지 일루미나티는 실체로 둔갑할 수 있다.

 

36. 일루미나티 카드는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에 훈련을 받은 젊은 세대들을 위한 실험이다.

 

 

예까지.

 

일루미나티 카드와 런던 올림픽, 일본 침몰에 관해서는 이후 인월리에서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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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37. 러시아혁명과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는 관련이 없다.

 

38. 1973년 데이비드 록펠러가 국유본 권력을 장악한 시기 데이비드 록펠러가 후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프리메이슨 동방파 재건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동방파가 국유본의 지시를 받아 해방신학,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이론적 지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39. 외계인 파충류 일루미나티 음모론은 국유본이 유포한 음모론이다. 그 자체 허구다. 국유본 권력에 대한 물타기인 동시에 외계인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자신들 배후에 있음을 알려 국유본 권력의 권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40. 국유본은 헐리웃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전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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