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2 :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0/28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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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2 : 가짜 유태인

쪽발 돼중, 쪽발 놈현을 찬양하는 한, 그대는 개색희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8

   

   

   

   

경제묵시록 (탐욕의 종말: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비밀)

   

   

번개에서 만난 이들을 분석하면, 경제 60%, 영성 20%, 음모론 15%, 정치 5%라고 했다. 해서, 두번째 백문백답은 영성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영성론에서 주된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가짜 유태인' 혹은 '아슈케나지'이다. 국제유태자본의 중추는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허나, 국제유태자본론은 이들 음모론과 다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을 국유본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유태자본론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 국제유태자본의 핵심세력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었다.

   

둘, 로스차일드 가문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셋,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하나, 국제유태자본의 핵심세력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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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론을 주장하는 근거가 몇 가지가 있다.

   

1. 성경 속에 유태인은 상인이 아니라 목동 양치기이다. 헌데, 오늘날 유태인은 중국인과 아랍인과 더불어 세계 3대 상인이다. 아니, 으뜸 상인이다.

   

2. 유태인이 딱히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동시에 증오하는 족속이 지중해 족속 중 딱 하나 있는데,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이다. 포에니 전쟁 때문이다.

   

3. 로마제국 당시 유태인 수가 열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는 출생과 같은 자연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이다. 이는 특정 민족이 대거 유대교로 개종했음을 의미한다.

   

4.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부촌이 유태인촌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유태인은 욥이 들어왔다가 모세가 나간 뒤에 없었다. 모세 시기는 기원전 15세기가 유력한 가설이다. 하면, 천 년 이상 이집트에는 유태인이 부재했는데, 언제부터 이집트에서 유태인이 부자가 되어 유태인 촌을 건설하고 살았다는 말인가? 허나,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5. 로마제국 당시 이집트에서 그리스인과 유태인 상인끼리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이 유태인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6.  제정일치사회에서 로마에 패한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은 지중해 신에 대해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이란 고원에서 날아온 싱싱한 종교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혹은 짜라투스투라교, 니체가 말한 그 신, 빛과 어둠의 신이요, 내세가 있다고 한 전투적인 신. 중국에서는 마니교, 마교로 알려진 신. 주원장이 마니교를 이용해서 명나라를 만들어서 나라 이름이 명이라는 그 신. 인도 불교에 영향을 주어 대승불교를 낳게 한 그 신.

   

7. 현 유대교는 기원후 팔레스타인 인민 사이에서 널리 믿은 바리새인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때, 이 바리새인 기원이란? 조로아스터교.

   

일곱가지만 들겠다. ㅎㅎㅎ

   

둘, 로스차일드 가문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록펠러 가문 신앙은 침례교이다. 이 점에서 루즈벨트는 네덜란드 개혁교파이지 않았냐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인드라가 지금까지 분석한 바로는, 루즈벨트 가문이 네덜란드 개혁교파인 것은, 당시 종교 탄압을 피하기 위한 계책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겉으로는 가톨릭이나 기독교인데, 속으로는 유대교인 게다. 해서, 루즈벨트 가문은 유태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 가문이 아니다. 일부 핏줄로 유태인이 섞일 수 있으나, 유태인 규정으로 보면, 어머니가 유태인이거나, 유대교를 믿거나 해야 하기에 유태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슈케나지라고 말한다. 인드라는 달리 생각한다. 로스차일드 가문 시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인상이란 땅달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했다 했다. 맑스 역시 땅달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하다. 맑스 자신이 사석에서는 무어인으로 말할 만큼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에 애착을 가졌다. 반면 동유럽 유태인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다. 유태인 프로이트는 존경하는 인물로 크롬웰과 한니발을 든다. 크롬웰은 혁명이 성공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유태인 입국 허가였다. 그런 크롬웰을 이해할 수 있지만, 왜 한니발인가. 프로이트는 한니발 장군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굴욕감을 극복하려 했다. 하필 왜 한니발일까^^!

   

셋,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 개혁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 정경의 시대적 변화

BC450년… 모세5경

BC150년… 70인역(구약46권)

AD 90년… ① 팔레스티나 지방 유대인 정경 : 히브리어 성경39권

                ② 희랍 문화권 지방 유대인 정경 : 희랍어 번역본 46권(70인역)

   

신약(AD)에 들어와서

382년…   70인역(46권)+신약성경(27권) = 73권으로 약 1700년간,

1517년…  가톨릭교회 : 제 1경전(히브리어39권)+제2경전(희랍어7권)

                                              +신약성경 27권 = 73권

개신교회 : 제1경전만 인정(히브리어39권)+신약성경 27권 = 66권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나 제2경전을 외경 또는 위경이라 함)

   

   

예서, 왜 16세기 개신교회 종교개혁가들은 히브리어 39권만 경전으로 인정하였을까.

   

예수를 조롱하고 죽인 자들이 바로 히브리인인데, 어찌하여 개신교회 종교개혁가들은 히브리어 경전만 고수했을까.

   

형식적 논리야 이렇다.

   

가톨릭은 초대 교부들이 70인역을 사용하였기에 그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히브리어를 원본으로 희랍어를 번역으로 여겼기에 원본만을 취급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교회의 권위를 성서 해석의 권위에서 구했고,

개신교는 성서 해석을 교회 권력에서 개인에게 돌려주었기에 당연한 귀결인 듯싶다.

   

허나, 속사정은?

   

로마 가톨릭에 대항한 종교 개혁이 쉽지만 않았다. 당대 로마 가톨릭은 절대 권력이었다. 이때 종교 개혁에 힘을 실어준 세력이 있으니 유태인들이었다. 그들 자금으로 종교 개혁을 한 종교 개혁가들. 대표적으로 칼뱅이 있다. 이 시기, 종교 개혁가들은 많았다. 그중 칼뱅이 혜성처럼 떠오른 것은, 그가 다른 종교 개혁가들보다 더 철저해서라기 보다는 시대를 잘 읽었기 때문인 게다. 5% 이내라고 하지만, 이자로 번 소득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했기에 칼뱅이 개신교 중 으뜸 종파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이자놀이하던 유태인들 이해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종교개혁 시기 이후 약 사백년간은 개신교와 유대교는 동맹체였다. 보완적 관계였다. 공통의 적, 로마 가톨릭에 맞서 종교는 개신교, 경제는 유태인이었던 게다.

   

헌데, 오랜 적대 관계였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가톨릭이 전면적으로 화해하는 시기가 찾아오니 이 시기가 1960년대이다. 이 시기부터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고, 로마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것이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생애에 신질서 세계로 빨리 이행하고자 했고, 가톨릭은 히틀러와 쪽발이왕 지지로 인한 신자 수 급감을 만회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이 뼈아픈 빅터 로스차일드의 실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드라 조직론은 말한다.

   

   

18.

   

연대의 법칙 :

   

연대하게 되면 오래되고 좋은 친구를 반드시 잃게 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9480865

   

   

빅터 로스차일드가 가톨릭을 용인하자마자 발생한 사태란 무엇인가. 해방신학이다. 하면, 이 뿌리는 무엇인가. 제 2 경전이다. 특히 마카베 경전이다.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0&JangNo=2&JangSum=16&LastPage=

   

유다 마카베는 누구인가?

   

   

"마카베오서 [書, The Books of the Maccabees]

  

요약

구약성서의 제2경전에 속하는 경전. 가톨릭에서는 정경(正經)에 포함하지만, 유대교와 개신교에서는 외경(外經) 또는 위경(僞經)으로 본다.

 

   

본문

마카비·마카베아라고도 한다. 보통 다음의 4서(書)가 알려져 있는데, 가톨릭에서는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마카베오 1서와 2서를 정경(正經)으로 인정하고 구약성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⑴ 마카베오 1서:그리스어역(語譯)만이 전해진다. 시리아왕(王) 안티오코스 4세 즉위 (BC 175)로부터 시리아에서 독립을 이끌어낸 마카베오가(家) 시몬의 죽음(BC 135)까지 40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국 공동번역성서에는《마카베오기 상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망 후 마케도

니아 왕국이 분열하자,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는 친(親)그리스정책을 취함으로써 유대인들의 반감을 샀고, 이는 마카베오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주로 그 전쟁이야기가 소재로 되어 있다.

   

⑵ 마카베오 2서:키레네의 야손에 의한 5권의 역사서를 요약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씌어졌으며, BC 176BC 161년경의 유대의 역사이다. 1서에 비하여 종교적 색채가 강하며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장 이후의 후반부는 앞의 마카베오1서와 내용이 거의 중복된다. 저자·연대 미상이며, 한국 공동번역성서에는 《마카베오기 하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2권은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여 불가타역(譯) 성서에 포함하였으나, 유대교개신교에서는 여전히 외경 또는 위경으로 간주한다.

   

⑶ 마카베오 3서:프톨레마이오스 4세 때 이집트유대인 압박을 소재로 하여 소설체로 쓴 것인데, BC 217년 알렉산드리아가 썼다.

   

⑷ 마카베오 4서:다른 마카베오서와는 달리 철학적 색채가 강한 내용이다. 경건한

이성(理性)이 충동[情欲]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등 스토아학파의 영향이 짙다.

이상의 3·4서는 가톨릭에서도 정경에 포함하지 않는다."

[출처] 마카베오서 [書, The Books of the Maccabees ] | 네이버 백과사전

   

개신교 성경을 보면, 바빌론 유수를 겪어 혼란을 겪던 이스라엘 역사가 있더니만,

수백 년을 훌쩍 뛰어넘어 갑자기 예수 시대, 즉 신약 시대로 이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서, 과연 이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발생한다.

왜? 바리새인, 열심당 혹은 제롯당 기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 사이에 유다 마카베오가 있다. 마카베서는 요아립 가문의 사제이자 시메온의

 손자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쓴 역사서이다. 요아립 가문은 바빌론 유수 시기에 사제 가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요아립 가문은 조로아스터교 신봉자였던 셈이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60497386&qb=7Jyg64ukIOuniOy5tOyYpOuyoOyEn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qEuZF5Y7uossZIW6i8ssc--226929&sid=TqmCCfJxqU4AAAoLC@U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879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0906&docId=564653&qb=7Je07Ius64u5IOuwlOumrOyDi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qDmHU5Y7uhssblOhvwssc--086793&sid=Tqk6ilAfqU4AAGeVQFs

   

http://www.kosinusa.org/chboard/bbs/board.php?bo_table=10&wr_id=1061&page=9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0&JangNo=2&JangSum=16&LastPage=  

   

요야립 가문의 사제이자 시메온 의 손자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쓴 역사서이다.

   

* 정경의 시대적 변화

BC450년… 모세5경

BC150년… 70인역(구약46권)

AD 90년… ① 팔레스티나 지방 유대인 정경 : 히브리어 성경39권

           ② 희랍 문화권 지방 유대인 정경 : 희랍어 번역본 46권(70인역)

신약(AD)에 들어와서

382년…   70인역(46권)+신약성경(27권) = 73권으로 약 1700년간,

1517년…  가톨릭교회 : 제 1경전(히브리어39권)+제2경전(희랍어7권)

                                              +신약성경 27권 = 73권

          개신교회 : 제1경전만 인정(히브리어39권)+신약성경 27권 = 66권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나 제2경전을 외경 또는 위경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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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879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0906&docId=564653&qb=7Je07Ius64u5IOuwlOumrOyDi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qDmHU5Y7uhssblOhvwssc--086793&sid=Tqk6ilAfqU4AAGeVQ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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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인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국유본은

 희랍어 성경이 싫었다. 그 내용보다 그 형식이 문제였다.

허나, 로스차일드 가문과 로마 가톨릭이 1960년대 교회 일치 운동,

에큐매니컬 운동이 본격화하자 사태가 급변한다.

개신교 성경과 가톨릭 성경의 차이, 그 대목에서 해방신학이 싹트는

것이다.

   

이제까지 로마 가톨릭은 권력의 상징이요, 수구꼴통이었다.

실제로 한반도 침략을 용인하고 지지한 것이 로마 가톨릭이었다.

허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빅터 로스차일드 대에 이르러 급격한

신질서 세계로의 이행을 원하여 가톨릭과 손을 잡자 상황이 달라졌다.

마카베서가 읽히기 시작했다.

   

마카베서는 무엇인가.

   

급진적인 민족해방서이다.

   

바빌론 유수 이후 조로아스터교, 혹은 짜라투스투라교를 익힌 교도들이

 이스라엘에 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가차없는 인종 학살이었다.

   

마치 가나안에 입성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족을 말살하는 것과 같았다.

   

이민족과 혼인하거나 떡친 자들을 모두 죽여라!

   

인종주의였다. 순혈주의였다. 나찌의 모범이다.

   

환향녀, 화냥년이라 해서 조선도 돌아온 처자들을 멸시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것조차 성경과 유사해지려는 역사 해석이지,

알고 보면, 조선조차도 화냥년에 관대했다.

   

조선 말기까지 조선인들은 처녀성에 대해 양반층까지 포함해서 별다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 아무리 법으로 이야기해도 조선인들은 성에 관해서 관대했다.

   

이것이 바뀌고, 처녀성에 대해 민감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일제 시대 이후부터이다.

   

쪽발이도 사실 처녀성에 덜 민감했는데,

국유본 힘으로 정권을 잡으니 메이지유신 이후에 달라진 것이다.

   

참고로 쪽발이왕은 근본도 없는 색희다.

이걸 백제이니 신라이니 하고 연결하지 마라.

그것이 모두 국유본 기획이다.

   

요즘 하도 인드라가 쪽발이왕을 씹으니까 국유본이 대책을 내놓는데,

좆까지 마라.

   

쪽발이왕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 한일연방공화국이 온다.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동원해서 쪽발이왕을 옹호하지 마라.

   

아, 씨발, 쪽발 돼중, 쪽발 놈현.

   

   

   

인드라가 그간 분석한 바를 말씀드린다.

   

기원전 이스라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통 유태인들은 지중해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레위파요, 사독파다. 제사장파다.

   

이들은 그리스 종교, 로마 종교, 이집트 종교를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윤회, 내세를 믿지 않았다.

   

지중해 종교에는 윤회, 내세가 없었다.

   

반면, 이란 고원 종교에는 윤회, 내세, 영혼이 있었다.

   

   

레위파, 사독파에게는 윤회, 내세가 없다.

   

바리새파, 열심당, 예수에게는 윤회, 내세, 부활이 있다?

   

   

이 차이 중요하다.

   

바로 여기서 1980년대 한국에서 민족해방투쟁이 발생했고,

   

김일성빠가 탄생하고,

   

사노맹파가 나타났으니까.

   

   

인드라는 묻는다.

   

무뇌아 쪽발노빠 안티개독파에게 묻는다.

   

이스라엘이 단일 민족인가?

   

아니다.

   

당신은 세뇌되었을 뿐이다.

   

   

뉴라이트 기획이다.

   

알렉산더 대왕 때 유태인은 알렉산더 대왕에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 이후 그리스 왕조는 왜 유달리 유대인을 탄압하여

   

마카베 봉기를 이끌었을까?

   

설명이 없다.

   

이에 대한 인드라 주장은 한결 같다.

   

그리스와 악연을 맺을 족속은 페니키아/카르타고인 밖에 없다.

   

둘의 공통점은 해상 상업 민족이어서 경쟁 관계였다.

   

로마에 패한 페니키아/카르타고인들은 유대교, 정확히는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한 것이다.

   

해서, 이들은 이전까지 제사장 제의를 지킨 레위파나 사두개파와 달랐던 것이다.

   

그들이 바리새인이 된 것은, 모세나 다윗, 솔로몬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해서, 누구보다 강력한 그리스/로마 반대파가 된 것이다.

   

하여, 이 문제를 바리새인은 애국자, 사두개인/레위인은 친일파로 이해하는 한,

   

그대는 뉴라이트파 떡밥에 걸린 가엾은 족속에 불과한 것이다.

   

깨어라!

   

당신은 지금까지 국유본의 개색희로 인생을 헛살았다!!!

   

쪽발 돼중, 쪽발 놈현을 찬양하는 한, 그대는 개색희다.

니 애비는 쪽바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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