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13 : 걸그룹, 포르노는 국유본의 현대판 인신공양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18 03:12

http://blog.naver.com/miavenus/70124342928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13 : 걸그룹, 포르노는 국유본의 현대판 인신공양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18

   

   

페니키아인은 수메르인이다, 라는 인드라 주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첫째, 페니키아인이 가나안인이라고 할 때는, 연변 조선족 등 중국 소수민족더러 중국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중국 땅에 산다는 의미에서라면, 연변 조선족도 중국인이다. 허나, 연변 조선족이 한국인이듯 족속이 중국인이라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그처럼 페니키아인이 가나안인이라고 하는 것은 블레셋인도 가나안인, 유태인도 가나안인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가나안 땅에 산다는 의미에서이다. 허나, 본디 그곳에서 산 가나안인이라는 족속의 의미에서라면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인이 아닌 것이다.

   

구약에서는 가나안인을 함족의 후예인 리비아인이나 이집트인, 이디오피아인의 일부로 보고 있다. 또한, 구약에서 함의 자손, 가나안에 대한 저주가 있는데, 페니키아인은 블레셋인처럼 가나안인에 대한 저주에서 벗어난 족속이다. 해서, 구약 말대로라면,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인이 아니다. 블레셋인이 본디 가나안인이 아니라 에게해와 크레타 섬에서 온 유럽계 이주민인데 이주해와서 불과 150년만에 가나안 문화와 융합한 족속이다. 그처럼 페니키아인도 아브라함과 동시대, 혹은 그 이전에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가나안 문화와 융합한 이주민이다. 최소한 함족이 아니다.

   

무엇보다 수메르인 이후 상인적 기질을 발휘한 중동 족속은 페니키아인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다른 중동 족속은 양을 치거나 무력을 키웠을 뿐이다. 반면, 수메르인과 페니키아인은 군사력을 키워 제국으로의 국가 건설을 하기보다는 군사력을 최소화하여 상업활동에 필요한 도시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게다가 수메르인 기원에 대해서는 페르시아만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데, 수메르 문명은 이라크 남부 페르시아만에 근접해 있다.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부터 홍수가 휩쓸 때까지 다섯 도시에서 8명의 왕이 통치한다. 홍수 후에 또 다시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왕권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후, 에리두(Eridu)에 왕권이 있었다. 에리두에 아룰림(Alulim) 왕은 3600×8년 다스렸다. 아랄갈(Alagal)이 3,600×10년 다스렸다. 두 왕이 3,600×10+3,600×8년을 다스렸다. 에리두가 무너지자 왕권은 바드티비라(Bad-Tibira)로 옮겨갔다. 바드티비라에 엔멘루안나(Enmenluanna)가 3,600×10+3,600×2년 다스렸다. 엔멘갈안나(Enmengalanna)가 3,600×8년 다스렸다. 양치기 두무지(Dumuzi)는 3,600×10년 다스렸다. 세 왕이 3,600×30년 다스렸다. 바드티비라가 무너지자 왕권은 라라크(Larak)로 옮겨갔다. 라라크에 엔시파지안나(Ensipazianna)가 3,600×8년 다스렸다. 한 왕이 3,600×8년 다스렸다. 라라크가 무너지자 왕권은 씨파르(Sippar)로 옮겨 갔다. 씨파르에 엔멘두르안(Enmenduranna)가 왕이었고 3,600×5+(600×2)×2+600년 다스렸다. 한 왕이 3,600×5+(600×2)×2+600년 다스렸다. 씨파르가 무너지자 왕권은 슈르파크(Shuruppak)로 옮겨갔다. 슈르파크에 우부르투투(Uburtutu)가 왕이었고 3,600×5+600년 다스렸다. 한 왕이 3,600×5+600년 다스렸다. 다섯 도시에 여덟 왕이 3,600×60+3,600×7년을 다스렸다. 홍수가 휩쓸고 간 후, 홍수가 휩쓸고 간 다음에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 키쉬(Kish)에 왕권이 있었다."

http://www.astrovil.co.kr/bbs/zboard.php?id=in_situ&no=30

   

   

   

또한, 수메르인은 다신론이지만, 도시 별로 유일신적인 최고신을 모셨는데, 수메르 도시 중에는 여신을 모신 지역이 있다. 이중 이난나 신을 모신 도시가 있는데, 페니키아인이 유별나게 여신을 최고신이나 다름없이 숭상했다는 점에서 아브라함과는 다른 경로에서 온 수메르 이주민이라고 보는 것이다.

   

해서, 인드라 추정은 다음과 같다. 수메르인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혼혈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때, 직계는 수메르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 활동을 하였을 것이나, 방계나 기존 원주민들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내륙에서 수메르 문명을 받아들이되, 양치기 생활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들은 연변을 떠나 베이징, 상하이, 광동으로 이동한 뒤 백 년이 흘러 중국인으로 정체성이 변모한 연변 조선족처럼 가나안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째, 페니키아어는 셈어파 가나안어에 속하는데, 히브리어, 모압어, 암몬어와 유사하다. 하면, 히브리어를 통해 페니키아어 생성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아브라함이 기원전 21~20세기에 우르와 하란을 통해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생성하기 시작한 언어이다. 해서, 이 언어는 초기에 수메르어와 서쪽 셈어인 아카드어였다가 가나안 지역 언어와 융합했다. 이때, 원주민 가나안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가나안 원주민은 함족이었던 이집트인이 쓰던 에굽어와 유사한 언어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예서, 히브리인이 이집트에서 400여년간 생활하였기에 보다 에굽어가 보다 많이 반영하였을 것이다.

   

페니키아어 역시 수메르어와 아카드어가 기존 가나안어(이집트 에굽어)와 융합해서 탄생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 이집트와 히브리를 거쳐 페니키아에 이르러 모양을 갖추고 그리스에서 폭발력을 드러낸 알파벳의 성립과정을 따라가며 그 도상에 존재했던 문명의 진화를 살피고 있다.  책에서 '알파벳'은 '소수의 문자기호로 수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 체계'로 정의된다. 알파벳 문자의 속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언어는 영어임에 틀림없지만, 이 정의에 따르면 상형문자, 한자, 한글도 알파벳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특히 한글은 '알파벳의 꿈'으로 간주될 만큼 대표적 알파벳으로 분류된다. 사가인 저자의 관심은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알파벳의 연원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수메르)일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들이 이 문자를 사용한 것은 '경제활동'의 기록 때문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이 성경과 고대서양신화에 영향을 준 '비경제활동'의 이야기의 기록도 존재하지만, 대개는 상거래 장부의 기록이었다. 장부'에 주목하는 것은 '리버스'의 원리 때문이다. 리버스는 'for you'를 '4 you'로 표기하는 것처럼 뜻은 다르나 발음은 같은 기호를 사용하는 표기방식. 이집트로 전해지면서 이는 자음집단과 발음상의 보어, 한정사 등을 나타내는 700개의 기호로 이뤄진 상형문자로 발전한다. 설형.상형문자의 알파벳 개념을 알파벳 글자로 발전시킨 공로는 시나이 반도와 지금의 이스라엘 일대를 떠돌던 아시아 유목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들이 남긴 비문이 990년 시나이 반도 와디 엘홀이라는 곳에서 발견됐다. 거기서 a,b,r,n,m,p,w,t와 셈문자 네개의 원형이 드러난다. 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등 항구도시들을 포괄하는 페니키아의 우가리트는 당대의 국제도시로 일곱개 문자와 네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전파돼가던 알파벳의 개념이 이곳에서 받아들여졌고, 우가리트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문자를 만들었다. 이는 무역.식민활동을 타고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463432

   

욥이 이집트 생활을 하기 오래 전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와 배를 타고 상거래를 했다는 기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서, 인드라 추정은 페니키아 알파벳이 수메르어에서 기원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이집트, 히브리를 통해서 페니키아로 간 것이 아니라 수메르, 이집트, 페니키아를 통해 히브리로 갔다고 보는 것이다. 히브리 -> 페니키아가 아니라 페니키아 -> 히브리이다.

   

이유는 존 맨처럼 언어의 쓰임새 때문이다. 발굴한 수메르어 점토판을 보면, 종교적 내용과 상거래 장부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는 당시 문자를 쓰는 이들이 소수 사제와 상인들이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오늘날도 한국인만 문맹률이 0%에 가깝지, 여전히 전 세계에서 문맹인들이 많다. 굳이 문자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면, 대다수가 양치기 목동인 히브리인이 굳이 자신의 문자를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할 수 있다. 실제로 모압인이 쓴 모압어를 보면, 페니키아어 방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는 중앙아시아 북방민족들이 문자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과 유사한 것이다. 반면, 페니키아인은 상인이기 때문에 문자 발명이 절실했다. 당시 중동 언어는 종교어로는 수메르어, 외교어로는 아카드어를 사용했는데, 상인들이 기존 수메르 문자를 활용할 때, 종교적인 면을 과감하게 탈색하여 상업활동에 이용하기 좋게 기호를 간략히 표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국제유태자본'을 줄여서 국유본으로 하는 것과 같다.

   

인드라는 페니키아어가 수메르 언어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기존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페니키아인이 수메르 후손이기 때문에 문자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은 왜 아카드어에서 페니키아어가 영향을 받기보다, 수메르어에서 영향을 받았는가이다. 기존 언어 연구는 성경 연구 때문에 히브리어를 중심으로 하기에 아브라함 이주 궤적을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 이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데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왜 페니키아어가 아카드어와 이집트어를 합성하지 않고, 보다 오랜 언어인 수메르어와 이집트어를 합성시켰는가이다.

   

종교적인 분석가들은, 수메르 신화가 당시 중동 신화의 본산이었기에 종교 해석의 차이라고 볼 것이다. 즉, 아카드어로 한 수메르 신화는 서부 셈족의 종교로 변신하였기에, 서부 셈족에서 독립하고자 아카드어가 아닌 수메르어 원본을 중심으로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여기에 이집트에서 발생한 아톤 유일신 사상을 접목시키기 위해 우가리트 문자, 즉 페니키아 문자를 발명하였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메르어는 역사상 가장 먼저 문자로 표기된 언어이다. BC 3,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지방에서 사용된 이 언어는 설형문자로 표기되었다. 수메르어의 역사는 4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원시 수메르어, 고대 수메르어, 신수메르어, 후기 수메르어 시대이다. 원시 수메르어는 BC 3,100~2,500년경에 쓰였으며 대표적인 문헌은 교과서 및 상업이나 행정문서들이다. 그러나 원시 수메르어는 아직도 거의 해독되지 못한 상태이다. 고대 수메르어는 BC 2,500~2,300년에 지속되었고, 주로 수메르인의 도시인 라가시의 초기 통치자들이 남긴 기록이 대부분이다. 이 기록은 상업?법률?행정과 관련된 문서, 신에게 바친 비문, 편지, 주문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형태의 수메르어를 더 잘 해석하고 있다. 신수메르어가 쓰이던 시기에 셈족인 아카드인들이 바빌로니아를 통치했으며, 그 결과 수메르어 대신 아카드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BC 2,000년경 사막에서 온 셈족이 수메르인의 3번째 왕조인 우르 왕조를 멸망시켜 셈족의 왕조인 이신 왕조, 라르사 왕조, 바빌론 왕조를 세우게 되자 신수메르어는 소멸되었다. 이 왕조들이 번성한 시기를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라고 부른다. BC 2,000년경부터 수메르인들은 정치적 주체성을 잃어버렸고, 수메르어는 구어로는 차츰 쓰이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아카드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문어는 설형문자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수메르어를 후기 수메르어라고 한다. 이 시대의 초기에 수메르 문어는 왕의 비문뿐만 아니라 법률 및 행정 문서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문헌들은 대개 수메르어와 바빌로니아어의 2가지 언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수메르어로 된 문헌은 매우 풍부하여, 신화, 서사시, 송가, 애가, 의례전서, 주문, 격언집 등과 처세훈을 모아 놓은 지혜 문집을 망라하고 있는데, 이 문헌들은 대부분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수메르어의 낱말들을 그리스 문자로 옮겨 쓴 것을 보여주는 설형문자 서판이 만들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할 무렵, 수메르어에 대한 지식은 설형문자에 대한 지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이 언어가 다시 발견된 것은 19세기초에 설형문자로 씌어진 문헌이 해독된 뒤였다. 수메르어의 방언은 수메르어의 공식 방언인 '에메기르'와, 송가나 주문에 흔히 쓰인 '에메살'을 비롯한 몇몇 방언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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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페니키아 족속은 뼈속까지 상인이었다. 국가나 종교 활동조차 상업 활동의 연장선에서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해서, 인드라 추론은 이렇다. 페니키아 상인들이 상업적 이용을 위해 문자를 발명하면서 이 문자의 정당성을 위해, 즉 사제와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 수메르 신화의 재해석을 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는 것이다. 한글 창제 과정이 비록 상업적 목적이 아니었지만 세종도 한글을 만든 뒤 한글 정당성을 위해 여러 작업을 한 바 있다.

   

헌데, 이것이 왜 페니키아인이 수메르인의 후손인가이다. 수메르 신화에 나타난 신들을 보면, 굉장히 인간적이고, 이해타산적이다. 가령 구약에서는 대홍수 발생 원인이 인간의 도덕적 타락으로 보는 반면, 수메르 신화에서는 신들의 이해 다툼이 원인이다.

   

이런 기질은 수메르인과 페니키아인이 놀랍도록 닮았다. 그들은 침략을 당하는 순간에도 어떻게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인가를 먼저 따졌을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다른 가나안이나 히브리인과는 전혀 다른 민족 특성인 것이다. 이는 수메르인과 페니키아인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라고까지 할 정도이다.

   

하여간, 이 대목에서 말하는데, 한국이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자랑질 좀 하지 마라. 국유본이 얼마나 질투심이 강한 족속들인지 아직도 모르느냐. 역사가 오랜 지역만 골라서 전쟁터로 삼는 것 봐라. 한국넘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이런 국유본 성격을 모르고, 국유본에게 놀아나서 세계 최고 문명이네, 어쩌네 캐병쉰질을 하는데, 한번에 훅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 역사가 어떤가?

   

미국, 호주, 캐나다 삼백년? 영국과 북유럽, 서유럽 (스페인, 로마, 그리스 제외) 천 년? ㅋㅋㅋ

   

   

   

셋, 인신공양 문제이다. 전 세계에는 인신공양 이야기가 많다. 서양은 물론 동양에도 중국과 일본에 많다. 한국은 단군 홍익인간 덕분인지 덜 하지만, 없었던 것이 아니다. 목적은 제사보다는 대규모 토목 공사나 상업적 목적이었다. 주춧돌에 아이를 넣어 건물의 안정성을 보장받거나 배의 안전 귀환을 위해 심청이처럼 인당수에 퐁당시키는 것이다. 특히 쪽발이는 일제 시대 때에 건물을 짓다가 승강기를 일부로 고장내게 하는 방식으로 해서 한국인 여러 명을 죽여 사업 발전을 꾀했다. 또한, 처녀 피를 봐야 사업이 잘 된다고 동남아 십대 여자 아이를 사서 강간하는 예가 심심찮게 있었다는 것이다.

   

하면, 이러한 사례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동시다발적이니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일까. 예서, 인드라는 최초의 문명, 수메르에 혐의를 지니는 것이다. 특히, 아메리카 고대 문명인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영향을 준 족속이 페니키아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드라는 최초 인신공양 예식이 수메르에서부터 있었으리라 본다.

   

이는 구약 아브라함에서 근거를 찾는데, 수메르인 아브라함더러 신이 자식을 인신공양하라 한다. 이때, 아브라함이 아들을 인신공양하려다가 동물을 공양한다. 이런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당시 인신공양은 신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였다. 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바쳐야만 그만큼 신들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허나, 이러한 인신공양은 다른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이르르면 본래 의미를 잃고 형식으로만 남아 노예로 대체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처럼 인신공양에서 동물공양으로 바뀌었을 터인데. 문제는 이런 풍습을 오래도록 간직한 족속들이 있기 마련인데, 인드라 추정으로는 배타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보면, 배를 타는 사람들이 이상한 미신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만큼 바다에서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풍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니 신들의 분노를 달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성전 건축일 것이다. 헌데, 성전 건축과 배 만드는 기술을 타고난 기술자들이 있었으니 페니키아인들이다. 혹, 솔로몬 성전을 설계한 석공도 페니키아인, 수메르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들 기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아닐까?

   

제카리아 시친의 급진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수메르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규모 토목 공사와 상업 활동이 있었다. 이러한 수메르인 활동에서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다고 본다. 이것이 페니키아로 이어져서 아메리카와 아랍, 유럽, 아시아로 퍼져나간 것이라 본다. 동양에서는 불교 영향력이 크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도 불교 문화의 전래와 함께 비로소 대형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았는가. 하고, 그 이후, 등신불, 분신. 이런 것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그 이전 제도인 순장과는 다른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결국 수메르인의 인신공양을 변형시킨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인드라가 제석천이 되듯. 관세음보살도 남자였다. 헌데, 보살이란 본디 부처만 보살이었다. 헌데, 이것이 조로아스터 영향을 받은 대승불교 탓에 누구나 부처처럼 보살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퍼져 너도 나도 보살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여자 무당한테 보살님, 이러잖은가^^! 힌두교에도 여신이 있으니, 불교에도 여신이 필요한 지 만든 것이 관세음보살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인드라 주장을 정리하면, 세계 인신공양 유래는 수메르로부터 시작했다. 수메르에서 시작해서 페니키아 - 카르타고로 이어지면서 유럽, 인도, 아시아, 아메리카로 퍼져나가 최근까지도 섬 종족들 중심으로 여전히 인신공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요한 건 국유본이 인신공양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 한국 여성들을 중심으로 연이어 살해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국유본이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희생양을 만드는 것으로 본다. 예전에 국유본이 일본을 매우 키울 때 일본 여성들을 상대로 감금 강간 살해 등 별 해괴스런 변태적인 사건들이 일본에서 많이 발생했었다. 하고, 포르노도 그렇다. 여러분이 포르노를 우습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포르노 사업 역시 마약 사업과 함께 국유본이 중시하는 사업이다. 마약도 아무나 만들 수 없듯이 포르노도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포르노 만드는 국가는 규약이 있고, 마약처럼 국유본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해서, 보면 선진국 위주로 포르노가 만들어진다. 포르노는 마약, 스포츠,뉴스 미디어처럼 국유본의 대중 통제조작 수단의 하나이다. 한국이 포르노를 통제하는 것은 국유본의 지시 때문이다.

   

포르노는 처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고대 의식을 해석한 국유본의 신들을 향한 예식인 셈이다. 해서, 국유본이 한국을 정말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국유본은 차츰 한국도 포르노 국가로 만들 것이다. 단, 요즘 추세를 보면, 포르노 대신 걸그룹을 내세우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은 현 수준에서 포르노 문화가 유지할 것으로 보고, 대신 걸그룹이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본다. 기업 광고에 여자 모델이 나오는 것 역시 여자 모델로 판매 수익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 모델로 처녀, 아이, 동물이 선호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과거 공양의 제사물이었다.

   

여러분은 이게 무슨 괴상망칙한 주장이냐 하겠다. 허나, 잘 생각해보시라. 장사하는 분들이 아침에 첫 손님으로 여자를 받으면 재수없다고 한다. 이런 미신들, 어디서 왔겠나? 유교에서 왔다고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유교 나라 조선도 임진왜란 전까지 처녀 그런 것 잘 안 따졌다. 허나,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 시기 소빙하기가 찾아와 매우 생활이 어려워지자, 전 세계가 다 그러하듯, 윤리적인 면이 강화하였을 뿐이다. 그런 때조차도 그것은 양반 사회나 그랬지, 평민 사회에서는 별 규제없었다. 문란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처녀 운운하는 신화는 최근의 일이고, 구체적으로 국유본이 지시해서 쪽발이가 한국을 침략한 이후에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다. 하고, 이런 신화는 쪽발이가 국유본에게 배운 것이다,라고 본다.

   

예서,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팍스넷 선물옵션토론게시판을 가보라. 그곳은 외인과 기관, 부띠끄가 95% 이상 장악한 곳이다. 헌데, 사용자들을 보면, 안구 정화다, 뭐 이런 핑계로 끊임없이 여성 포르노 사진을 올린다. 하고, 프로필도 남성임에도 대부분 포르노 사진이거나 아니면 동물 사진을 선호한다. 왜일까? 잘 생각해야 한다. 사업 성공을 위한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 더 국유본이 활용한 것이 테러 사건을 이용한 정치이다. 가령 국유본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유럽 유태인을 고립시켜서 학살당하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로 인해, 국유본을 대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게 만들었다. 그 아무리 국유본론이 이성적일 지라도 국제유태자본? 하면 파시즘부터 떠올리게 어릴 때부터 세뇌 교육을 단단히 받은 것이다. 교육도 모자라서 일 년마다 한 편씩 유태인 관련 영화가 나온다.

   

이는 각국 정치를 장악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곤 한다. 가령, 북유럽에서 총기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 총선에서 압승했다. 이런 일은 특히 한국에서 흔해 빠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으로 오랜 기간 여당이 집권했다. 광주항쟁으로 쪽발민주당이 집권했다. 박근혜 피습으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쪽발 놈현 탄핵 사건으로 쪽발열우당이 압승했다. 쪽발 놈현 자살 사건으로 쪽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이는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모든 기획이 국유본이 배후에서 조작한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정치는 국유본이 통제하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희생자는 여자일수록, 아이일수록, 귀여울수록 좋다.

   

최대한 동정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자.

   

인드라는 국유본이 수메르인 혈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국유본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역사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기울인 족속이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작업 중 하나가 페이비언 협회이다.

   

다음 백문백답에는 페이비언협회, 뒤를 이어 300인 위원회를 말할 것이다.

   

추신 : 표절녀 이효리를 선거판에 내보낸다든가, 뽕녀 황수정을 북한 간첩으로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기획은 배후에 국유본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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