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본 채텀하우스는 여전히 세계 최고 권력인가, 아니면 변방으로 밀려났나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14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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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본 채텀하우스는 여전히 세계 최고 권력인가, 아니면 변방으로 밀려났나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12 : 세계의 싱크탱크 2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14 

   

9. 일본 ERINA는 뉴라이트파이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관련 정보는 일본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이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방(니가타현)에 있으면서도 민감한 국제정세를 다루는 브레인집단이라는 것이 연구소 아라이 히로후미 홍보실장의 설명이다. ERINA는 16억 동북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 경제권을 형성,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ERINA는 1980년대 말 중국과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화되자 동북아 교류시대를 대비해 설립이 추진됐다. 니가타현이 동북아 지역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동북아시아 장래를 연구하는 거점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 1993년 10월 출범했다. 특히 니가타현은 물론 니가타시와 아오모리·이와테·미야기·아키타·야마가타·후쿠시마·군마·나가노·도야마·이시가와현 등 지방자치단체와 니가타의 도쿄전력, 도호쿠전력, 도시바, 히다치,NEC, 호쿠에쓰은행 등 8개 민간기업들까지 공동 설립주체로 참여한 것이 이채롭다. .. ERINA가 개최하는 동북아시아 경제회의에는 매년 26명의 한국 경제·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지난 해의 경우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패널리스트로 참석했고, 2004년 회의 때는 남덕우 전 부총리가 참석했다. 초청 강연도 활발하다. 산자부 과장 시절인 1998년 동북아시아경제회의에 참석하거나 수차례 강연을 했던 주일 한국대사관 서석숭 상무관은 10월2일 '고이즈미 이후의 한·일 경제관계'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정부공직자나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ERINA에서 객원연구활동도 한다. ERINA의 한국 연구는 '한국경제시스템연구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나카지마 도모요시 연구주임이 이끌고 있는 연구회에는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등 20여명의 한국과 일본 교수들이 참여,2개월에 한 차례 정도 세미나를 개최한다. 연구결과는 책으로 출판돼 호평을 받기도 한다. 북한도 1996년 동북아시아경제회의에 과장급 인사 3명이, 98년 회의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등 2명이 참석하는 등 인적교류가 활발했다. 97년에는 정부 과장급 2명이 1개월간 초청돼 일본 8개 지역서 투자촉진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99년부터 북·일 관계가 냉각되면서 중단됐다. .. 활발하다. 한국의 교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3개 연구소와 제휴하고 있다. 러시아의 극동경제연구소 등과도 제휴 관계다. 중국도 동북지방 3곳의 사회과학원과 제휴하고, 대학과도 제휴했다. 후단대학 등과도 교류한다. 한국 등과 국제인적교류도 적지 않다. 북한의 경우 제휴는 아니지만 국제무역촉진위원회 등과 교류가 활발하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926014003

   

설립연도나 설립 방식, 연구 목적을 보면 뉴라이트로 보인다.  설립연도가 소련 붕괴 직후이다. 설립 방식이 지방 자치단체와 기업이 합작하여 만드는 것인데, 노비네파가 중앙집중형이라면 뉴라이트파나 골드만파는 분산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 연구 목적 사업은 에너지 관련 사업이다. 구체적으로는 소련,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 자원을 끌어오는 일이다. 헌데, 에너지 문제는 국책 사업일 정도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이차대전 때는 에너지 수급이 전쟁을 좌지우지했다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국책사업이라 할 수 있다.

   

니가타란 어떤 지역인가.

   

http://citrain64.blog.me/100102090237

   

예나 지금이나 군사 도시이다. 이차대전 때 연합군이 핵공격할 계획이 있던 군사 도시 중 하나였다. 예서, 군사 도시란 군사 시설 달랑 하나 있다고 군사 도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도시 자체가 요새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군기지가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니가타는 일본 육해공군 기지가 몰려 있다.

   

동해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일본은 니가타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미국 항공모함을 정박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해서, 통일 한국이 중심인 한일연방공화국 수립을 위한 내전이 벌어질 경우, 통일 한국군의 기습 공격지로 자주 거론하는 도시가 바로 니가타항이다. 해서, 니가타에 있는 핵시설을 타격하여 기선 제압하는  작전을 통해 니가타항을 무력화시켜야 일본 본토 진입 작전이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업은 노비네 미쓰이 계열과 뉴라이트 미쓰비시 계열 기업이 참여했다. 예서, 지역 은행이 참여했는데, 호쿠에쓰은행이다.

   

   

   

   

호쿠에쓰 은행이 아닌 호쿠에쓰 제지이지만, 적대적 인수합병 사건이 있었을 때, 호쿠에쓰 제지가 의존한 기업이 뉴라이트 미쯔비시상사였었다. 또한, 에너지 사업과 같은 중후장대한 사업은 현대 - 미쯔비시 - 록펠러 - 뉴라이트에게 어울리는 사업이다.

   

마지막으로 대북 교류가 중단한 시점이 99년부터인데, 이유야 어떠하든, 이 시기는 노비네파 시기이다. 뉴라이트 시기에 활발하게 교류하다 노비네파 시기에 교류가 끊겼다면 이 단체가 뉴라이트 성향임을 시사한다 할 것이다.

   

10. 영국 채텀하우스 혹은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노비네파이다.

   

 "런던 시내 버킹엄궁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세인트제임스 스퀘어 10번지.18세기초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입구에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라고 적혀있다. 국제문제와 관련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RIIA가 대외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채텀하우스는 건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RIIA는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짓기 위한 파리평화회의(1919년)의 영국측 대표단을 주축으로 해 1920년 영국국제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연구소는 1926년 특별 헌장에 따라 '왕립(Royal)'의 칭호를 받으면서 정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정부의 영향권을 벗어났다는 얘기는 국민의 세금을 가져다 쓰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공명정대하고 수준높은 연구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은 내부 규율로 정해 놓은 '채텀하우스 룰(Rule)'이다.1927년 정해진 이 규율의 골자는 '채텀하우스에서 진행되는 모든 토론 내용은 정보로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발언자, 참가자의 이름은 물론 소속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 공유와 투명성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재정적 자립 역시 독립성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채텀하우스는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된다. 세계적인 기업체들과 국제적 금융기관, 각국 대사관, 비정부기구 등이 주축을 이루는 260여개의 협력 회원들과 1500명에 이르는 개인회원들이 내는 연회비가 운영비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아시아 프로그램에는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와 관련한 토론그룹이 구성돼 있다. 한국 관련 토론그룹의 모임에서는 북핵과 관련한 한반도 긴장문제, 대미관계, 납치문제와 관련한 북·일관계 등이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오는 19일 열리는 정기 토론모임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 1기때 미국국제개발협력처 부관장을 지낸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 패트릭 크로닌 박사가 '한반도의 평화구제'에 대해 강연한다. 이어 25일에는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인 문정인 연세대교수가 한·미동맹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05995

   

채텀하우스, 혹은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세계 싱크탱크 중 톱 3 중 하나를 차지할 만큼 매우 중요한 싱크 탱크이다. 특히, 채텀하우스가 중요한 것은 국유본 권력이 여전히 로스차일드와 영국 여왕에게 있다는 존 콜먼 박사의 '300인 위원회' 주장 때문이다. 인드라는 이 문제에 대해, 국유본 백문백답 '300인 위원회'를 통해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드라가 현재까지 추정한 결론으로는 300인 위원회란 과거 세계를 움직이던 최고위급 조직이었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권력이 이동한 1973년부터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조직이다. 다시 말해, 현재 최고위급 조직이 아니다, 라는 것이 인드라 잠정적 추론이다. 허나, 그렇다고 이 조직이 오늘내일하는 조직이 아니다. 때로는 록펠러 가문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300인 위원회를 후원할 수 있기 까지 하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300인 위원회는 최고위급 조직이었다. 물론 긴급한 사안인 경우, 1891년 2월 5일 설립한 로스차일드 가문과 영국의 다른 은행가들이 모여 비밀 조직인 '원탁회의'를 중심으로 논의했다. 

   

"영국의 '원탁의 기사' 전설도 있지만, 1886년 아일랜드 자치문제로 자유당이 분열되자, 급진파 J. 체임벌린의 제창으로 이듬해 1월 개최한 원탁회의가 최초로 일컬어진다. 오늘날 '원탁'이란 용어는 회의의 협조주의적 정신을 표방한 의미로 사용되며, 실제로는 원형테이블이 아니라도 관계없다. 1930년대 3회에 걸쳐서 열린 인도 자치에 관한 영국-인도원탁회의, 1947년 제2차 세계대전파키스탄의 인도로부터 분리를 결정한 인도-파키스탄원탁회의, 1949년 인도네시아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이 논의된 네덜란드-인도네시아원탁회의 등이 유명하다. "

[출처] 원탁회의 [圓卓會議, round table conference ] | 네이버 백과사전

   

원탁회의를 중심으로 300인 위원회, 시온연합, 로즈위원회 등을 조직화하고, 채텀하우스와 미국 외교협회(CFR)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차대전 마무리와 새로운 이권을 위해 1919년 5월 파리 로스차일드가 원탁회의 구성원인 영국과 미국 주요 은행가와 정치인 등을 소집한다. 이때 만든 것이 채텀하우스와 CFR이다. 하면, 이들이 조직을 만든 주요 목적은 무엇인가. 신세계 질서로의 이행을 위해 볼세비키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뒤 바쿠 유전과 러시아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주 이슈였다.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하여 다른 백문백답에서 말할 것이다.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가 만들어진 이후 원탁회의나 300인 위원회는 주요 정책 이슈를 공개적인 조직인 채텀하우스를 통해 집행할 수 있었다.

   

허나, 채텀하우스가 아무래도 영국 중심이다 보니 신세계 질서와 영국 국익간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이 불가피했다. 가령 이차대전을 거치면서 비록 형식적이지만 외형적 권력을 미국과 소련에 넘기는 것은 영국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만큼 300인 위원회 국유본 귀족들 지분을 축소시킬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하여, 이 갈등을 풀기 위해 만든 것이 빌더버그였던 셈이다. 300인 위원회를 유지하면서도 빌더버그를 만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있는데, G5를 만드는 것과 같다. G5가 G20이 될 때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여전히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아는 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G5로 권력이 이동했음을 눈치챌 수 있지만, 99.99%는 모를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한 계기를 거치면서 채텀하우스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데이비드 록펠러가 집권하면서 최고 권력 지위를 삼각위원회에 넘겨주었다. 참고로 삼각위원회도 300명으로 구성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11. 콩코드 재단은 뉴라이트파이다.

   

"콩코드는 창립 9년 만에 '엘리제궁과 가장 가까운 싱크탱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프랑스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 재단의 초기 멤버 가운데 6명이 지난 2002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선에 공을 세운 뒤 입각했다. 도미니크 페르벤 법무부 장관, 르노 뒤트레유 공직·국가개혁부 장관, 에르베 게마르 농업·수산·전원부 장관 등이다. 여기에 시라크 대통령의 오랜 정치고문인 제롬 모노가 재단 창립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후원자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집권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재단의 주요 회원이다. 콩코드 재단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앙가주망(사회참여)'을 기치로 한 사회주의 지식인의 목소리가 강한 프랑스 사회에서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연혁이 오래된 국제관계연구소(IFRI)와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등이 대표적이다.IFRI는 외교·안보분야,CNRS는 기초학문 분야와 통계 분야에서 유명하다. 영미식 싱크탱크가 등장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 대표적인 단체가 1985년 중도 좌우파 연합을 기치로 내건 생시몽 재단과 범 우파 연합의 성격을 띠고 1997년 창설된 콩코드 재단이다. 이 재단들은 정·관·학계는 물론 기업·언론인 등이 함께 모여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이른바 '거버넌스(분야간 협력체제) 담론'에 바탕한 싱크탱크다. 최근 한국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파트너십'에 따른 두 싱크탱크의 등장과 활동은 프랑스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학문적 수준의 연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체의 현실 참여로 주목받았다. 총체적 시각으로 정책을 내놓고 이슈를 제기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특정 정파나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생시몽 재단의 경우는 미국 자본이 뒤에서 후원해 '세계화'를 미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이유로 좌파 진영의 질타를 받았다.'제3의 길'에 가까운 노선을 취했던 생시몽재단은 좌파 지식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 지난해 문을 닫았다.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1031014003

   

생시몽 재단은 쪽발 돼중 재단, 쪽발 놈현 재단처럼 진보좌파 진영에서 쪽발이 좀비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한 알박기라는 비판을 받아 폐쇄한 것 같다.

   

http://www.cyworld.com/shuuuuing/3202491

   

그 이후 나타난 것이 국제정치연구소인 듯싶다.

   

   

   

"지금까지는 계획만 있고 성과가 없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나는 선거에서 사르코지에 표를 던졌지만 그의 동시다발적 개혁을 프랑스 사회가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국은 동시다발적 개혁의 장단점이 무엇인가 또는 한국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던져보고 따져보면서 개혁정책을 치밀한 일정아래 우선 순위를 매겨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외신들이 사르코지의 친미정책을 빗대어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 이은 부시의 두 번째 푸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사르코지는 대미 관계를 실용적 차원에서 개선하려 할 뿐 절대 미국의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거나 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부시는 내가 보건대 역사상 가장 나쁜 미국 대통령인 것 같다. 그는 이미 끝났다. 그러니 한국의 이명박 당선인도 부시대통령에게 너무 투자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http://www.interview365.com/news/540

   

예서 보듯, 몽브리알은 뉴라이트 친여당 신문인 르 피가로와 뉴라이트 친야당 신문인 르 몽드에 동시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인 우파 성향의 안철수, 혹은 평화 재단인 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좀 더 보수우파에 힘을 실어주는 흐름이 필요한 듯싶다. 그것이 콩코드 재단인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평화재단보다 매우 미세하게 우로 슬쩍 이동한 박세일 재단인 셈이다.

   

프랑스는 주요 정당이 모두 뉴라이트이다. 반면, 노비네파는 로스차일드 가문 영향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여전히 위력적이나, 정치계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2.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는 노비네파이다.

   

"1960년 당시 통산산업성 산하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아시아경제연구소(일본 약칭:아지켄)는 150명의 연구원 가운데 여성이 50% 가까울 정도로 여성의 힘이 막강하다고 후지타 마사히사 소장이 소개했다.

   

아지켄은 관련국들과 인적교류도 활발하다. 연구소 개발스쿨에는 16개 개발도상국에서 1명씩이 초대돼 같은 수의 일본인 연구원과 함께 연수중이다. 개발스쿨 연수자는 150여명이다. 설립 이후 아지켄의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거쳐간 각국 연구자는 지난해까지 600명에 가까웠다.

   

아지켄은 특히 한국, 타이완, 중국, 타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미즈노 준코 신영역연구센터 장의 설명이다. 집중연구 분야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변했다.196070년대에는 인도와 중국,7080년대는 한국, 타이완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연구가 왕성했다.8090년대 들어 다시 중국 연구가 활발하다. 아프리카 연구도 90년대 이후 활발하다.

   

미즈노 센터장은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70년대는 매우 많았지만 80년대들어 이 지역에 대한 일본 전체의 관심이 약화되며 연구 인력도 함께 줄었다."고 소개했다.

   

아지켄은 몇 %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이 예산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 연구에 쓰여지기 때문에 정부개발원조(ODA) 원조액의 일부로 계상된다...

아시아경제연구소는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의 산업화시대의 주역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지금까지 66명의 한국 저명인사가 이곳서 연구활동을 했다.

   

1986년부터는 2년 정도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정부 관료들이 그 후 최고위 관료로 진출했다.

   

김광림 전 재경부 차관, 오종남 전 통계청장, 박재윤 전 재경부장관 등이 아지켄에서 연구했다.

   

1996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이 연구소의 초청 프로그램에 따라 연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에는 한국 정부와 기관 지원 등으로 바뀌었다.

   

특히 총리를 역임한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미즈노 준코 연구소 신영역연구센터장이 소개했다. 그래서 인적교류 초기에는 정영일 등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다수가 이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유명 학자들도 많이 거쳐갔다. 한국 민법의 대가 곽윤직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1971년 반년간 연구했고,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85년 2월부터 1년간,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79년말부터 5개월,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96년 8개월간 연구활동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고 미즈노 센터장은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60년대 당시 도쿄시내 이치가야에 있던 이 연구소를 방문한 뒤 "한국도 이 곳 같은 연구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09725

   

   

엔블록권 확대를 위한 제 3세계 연구소인 셈이다. 한때, 남미에까지 관심을 기울였지만, 데이비드 록펠러 뉴라이트파가 쪽발이더러 이제 남미에게 손 떼라, 라는 지시를 한 이후 남미 연구를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 지역 남미 몫은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명을 받아 한국이 열심히 일해서 따내야 할 것이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KPOP으로 만사 오케이라고 사고한다는 건 게으름의 표지 다름 아니다.

   

스페인어 연구소, 중남미 연구소를 국책사업으로 즉각 설립해야 한다. 향후 수십년 흐르면 미국 주요 언어 중 하나가 히스패닉 덕분에 스페인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스페인어는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와 함께 세계 5대 언어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쪽발이어보다 시급한 것이 스페인어 인재 확충이라는 생각이 인드라 생각이다. 어차피 쪽발이어는 쪽발돼중과 쪽발놈현이 쪽발어만 좆나 쉽게 내주는 수능 정책 때문이 아니더라도 야동, 로맨스 등 국유본 세뇌 과정 때문에 이미 국민 상당수가 쪽발어를 하고 있다. 더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스페인어는 정책적으로 수능시험만 봤다 하면 대다수가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하여간, 이 연구소는 앞으로 별 볼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 연구 방법론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흐름과 달리 과거 빅터 로스차일드가 지배하던 종속이론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13. 브루킹스 연구소는 골드만파이다.

   

"브루킹스의 역사는 1916년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정부연구소(Institute for Government Research)로부터 시작한다. 이 연구소의 탄생을 지원했던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사업가 로버트 브루킹스는 1922년과 1924년에 경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s)와 브루킹스대학원을 추가로 설립한 뒤 1927년 세 기관을 모두 합쳐 브루킹스연구소로 재탄생시켰다... 브루킹스는 연구소 내에 교육 정책, 아동과 가정, 동북아정책연구, 사회 및 경제 변동, 미국과 유럽, 중동정책을 연구하는 별도의 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보수적 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AEI)와 공동으로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 중이며, 어번연구소와는 세금 정책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국제경제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싱크탱크의 영향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구 결과가 가장 많이 언론에 인용된 연구소는 브루킹스였다.2000년과 2002년에 이뤄졌던 비슷한 조사에서도 브루킹스는 1위를 차지했었다. 브루킹스의 국내외적인 영향력은 다양한 부류의 거액 기부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50만달러(약 5억원) 이상 기부자 가운데는 뉴욕의 카네기 사와 영국의 국제개발부, 카타르 대사관, 미 상공회의소가 포함돼 있고 25만달러 이상 기부자에는 보스턴 칼리지와 포드 재단, 도쿄 클럽 재단,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부가 들어 있다. .. 브루킹스의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는 리처드 부시 선임연구원이다. 부시 연구원은 중국과 타이완 문제 전문가였으나 한반도까지 연구의 폭을 넓혔다. 부시 연구원은 스스로를 대북 강경론자라고 말하지만 보수적인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에 비해 중도적이고 온건한 정책 제안들을 제시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부시 연구원은 미 국가정보위원회에서 아시아 정책을 분석·조정하는 업무를 담당했으며,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부시 연구원은 브루킹스 동북아정책연구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등에서 선발된 정부 관리나 연구원, 언론인 등이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박형중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방문연구원으로 파견돼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한국 외교 정책 방향을 연구 중이다. 박 연구위원 직전에 파견됐던 임원혁 한국개발원(KDI) 연구원은 워싱턴에서 열린 각종 한반도 토론회에서 '외롭게' 대북 포용정책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브루킹스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도 안보분야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다. 프린스턴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오핸런 연구원은 군사전략과 군사기술, 군축 분야 등에 일가견을 갖고 있어 이라크전 등 주요한 안보 현안이 터질 때마다 미국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오핸런 연구원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행정부로 옮겨 대외정책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오핸런 연구원의 현재 연구 과제 가운데는 이라크와 북한 정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의회에서 그의 정책 보고서가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잭 프리처드 전 대북협상 특사는 최근까지 브루킹스에서 한반도 현안을 다루다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루킹스는 지난 5월에는 세종연구소와 함께 '서울-워싱턴 포럼'을 출범시켰다. 두 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매년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한반도 관련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1114014004

   

브루킹스는 그 시초는 빅터 로스차일드, 노비네파로부터 시작하지만, 근래 흐름은 뉴라이트 중에서도 좌파적인, 혹은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골드만파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http://cn.moneta.co.kr/Service/paxnet/ShellView.asp?ArticleID=2008111019415104301

   

오바마가 집권하자 나온 전망만 봐도 알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은 지고, 브루킹스는 뜬다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아니더라도 브루킹스는 오바마 집권 기간 동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인드라 주목을 끌었던 것이 오바마 당선 직후 브루킹스연구소가 뉴욕대와 스탠퍼드대와 공동으로 낸 보고서, 변화된 세계를 위한 새 시대의 행동 계획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G8에서 G16으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G16에 한국이 빠진 것이었다. G16 구상은 기존 G8에 중국,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이집트 OR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지역강대국(영토나 인구, 자원이 많은 나라) 중심이었다.

   

사실 오바마 집권 기간 동안 이렇게 갈 뻔했다. 쪽발 돼중과 쪽발 놈현 무리들은 매국노답게 환호했지만, 인드라는 냉철하게 대처했다.

   

국유본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G16에 포함되지 않아도 좋다. 단, 금융안정화포럼에만 포함을 시켜 달라. 이렇게 요구했다.

   

이에 국유본 답변은, 인드라 요구를 백 프로 들어주었을까, 거부했을까. 둘 다 아니었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이 G20 형태로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차기 의장국이 되었다. 이것은 인드라가 요구한 사항이 아니다. 다른 한편, 국유본은 대한민국을 금융안정화포럼에 포함시켰는데, 참여 국가 수를 왕창 늘였다는 것이다. 인드라 요구는 참여 국가 수를 그대로 둔 채, 대한민국을 포함시켜달라는 것인데.

   

인드라는 국유본의 제안을 수용했다.

   

아무튼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인월리를 가장 열심히 읽는 싱크 탱크는 브루킹스 연구소일 것이다.

   

14. 중국 국제문제연구소는 노비네파이다.

   

"정부 설립후 처음으로 설립된 '국가급' 국제문제 연구소로 24일로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이 설립을 제안했다... "중국 외교정책이 싱크탱크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

   

   

마전강 소장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중국 외교 정책 수립과정에서 국제문제연구소의 영향력을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동안 중국의 다른 종합적 성격의 싱크탱크들이 국가 주요 지도자들에게 몇편의 보고서를 내는지를 소개하며 국가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설명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외교의 속성을 표현한 발언이면서도, 외교관 출신으로서의 조심성과 겸손함에서 비롯된 듯 보였다. 마 소장은 전 영국대사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1398

   

마 소장도 전 영국대사이고, 2011년 빌더버그 회의에 파견한 인물이 전직 주영대사였다. 헌데, 마 소장 이야기는 싱크탱크답지 않은 자학적인 말을 한다.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인 게다.

   

허나, 여기가 끝일까. 그렇지 않다. 주은래가 만든 싱크 탱크이다. 해서, 향후 중국이 노비네파, 뉴라이트파, 골드만파로 바뀔 때, 가장 먼저 골드만파로 바뀔 공산이 큰 것이 국제문제연구소이다.

   

15. 유럽정책센터는 허접해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

   

"먼저 유럽의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자문위원회의 '휴먼 네트워크'가 강점이다.EU집행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하이웰 세리 존스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피터 프라제 국립벨기에은행 이사, 마리아 조앙오 로드리게스 리스본대 교수 등 정치·기업·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해 EPC의 주제를 풍부하게 하고 힘을 더해준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2295

   

이런 이유로 국유본이 유럽 위기를 만든 것이다. 허접한 걸 제대로 만들어보라고 말이다. 굳이 말하면, 변방 노비네파인데, 없는 것이 낫다. 현재로서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다.

   

16. 미국 전략문제연구소는 뉴라이트이다.

   

"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립적인'연구소다.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가 편을 갈라 싸우는 워싱턴에서 이념적,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싱크탱크는 매우 드물다. 국제경제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싱크탱크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17개 주요 싱크탱크 가운데 중립적이고 비당파적인 연구소는 CSIS와 국제경제연구소(IIE)뿐인 것으로 평가됐다. SIS는 냉전이 절정기로 치닫던 1962년 데이비드 애브셔와 알레이 버크에 의해 설립됐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애브셔는 나토 대사를 지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버크는 6년간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로 당파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 현재 CSIS 이사회 의장은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이 맡고 있다. 이사회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월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지프 나이 국방부 차관보 등 국제안보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쟁쟁한 인물이 포진해 있다.CSIS의 현 소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존 햄리 박사다. CSIS는 지난 40여년 동안 성장하면서 에너지와 바이오테크놀로지, 노령화, 에이즈, 국제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의 범위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중점을 두는 연구 분야는 국방 및 안보 정책, 국제 안보, 지역 안보 등이다.CSIS는 지역 연구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중동, 남아시아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일본, 러시아, 터키는 별도 프로그램에서 다룬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맡고 있는 일본 연구 프로그램 '재팬 체어'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 소속돼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많다. 다른 싱크탱크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만을 전담하는 연구원은 없고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나 아시아, 국제안보 전문가들이 한반도 관련 연구를 병행한다.

   

북한이 핵 실험을 실시한 직후인 지난 10월11일 CSIS가 발빠르게 주최한 북한 관련 언론 브리핑에는 마이클 그린 선임고문, 커트 캠벨 부소장, 데렉 미첼 선임연구원, 존 울프스탈 선임연구원 등이 연구소를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로 나섰다.

   

그린 선임고문은 지난해 말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서 한국 문제를 다뤘다. 한반도 관련 정책을 직접 다뤘기 때문에 미 언론이 북한 핵 문제 등과 관련해 그린 고문의 코멘트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또 최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주제발표자나 토론자로 자주 참석한다. 그린 고문은 도쿄대에서 수학했고, 일본에서 기자와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일본 의회에서도 5년 동안 전문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일본통이다. 그린 고문은 박사학위를 받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학을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도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로 분류되는 캠벨 부소장도 한국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국장을 지낸 캠벨 부소장은 국제테러, 비확산, 미사일 방어 등을 다루면서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난 2월 한·미경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미 관계를 "파문 때문에 공개적인 이혼을 원치않는 왕과 왕비"라고 비유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첼 선임연구원도 난징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한 중국통이다. 미첼 연구원은 CSIS의 국제안보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모든 아시아 관련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연구 가운데는 '미 의회의 한국에 대한 태도'라는 주제가 포함돼 있다. 미첼 연구원은 지난 2004년 '전략과 감정: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시각'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연세대와 공동으로 발간한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변화가 한·미동맹에 미친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미첼 연구원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특별 보좌관을 지냈고,1998년에는 국방부 동아시아정책보고서의 주요 저자로 참가했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전문가이다. 미국의 핵 비확산정책과 옛 소련의 핵 정책 등을 토대로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를 연구한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에너지부에서 5년간 근무했으며, 그 당시 북한 영변의 핵 시설을 시찰한 경험이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 차관보도 CSIS의 선임고문을 맡고 있으나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당시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였던 로버트 아인혼 선임고문도 한국과 북한 문제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4017

   

그린 연구원은 뉴라이트 중앙일보에 칼럼을 내고 있다. 주의깊은 사람이라면 빠짐없이 읽어야 할 칼럼이다.

   

헨리 키신저와 브레진스키. 이 두 명만 언급해도 이 연구소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연구소 위상을 단번에 알려주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간 한국 대통령과 북한 주석들이 국유본에게 마름 격으로 봉사해왔지만, 이렇듯 비록 형식적이지만, 동등한 자리에서 파트너쉽을 보여주었던 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명박이 처음이다. 어떤 이들은 그만큼 이명박이 그들에게 굴종한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인드라 시각은 다르다. 이명박보다 더 노예로 행세했던 대통령들은 많았다. 가령 쪽발 놈현이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반미면 어떠냐 했지만, 속으로는 가장 썩은 자가 뉴라이트 쪽발 놈현이었다. 헌데, 근래 뉴라이트 라이스조차 전기에서 이명박과 쪽발 돼중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쪽발 놈현에 대해서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가. 쪽발 놈현! 그는 이장감도 못 되는 아해였을 뿐이다. 나라에 폐만 끼치고 갔다.

   

인드라는 이명박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본다. 차기 대통령은 더더욱 더 이런 모습을 더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당당한 척하고, 국외에 가면 병쉰 삽질 그 자체인 뉴라이트 쪽발 놈현과 같은 대통령은 다시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 세계 3대 심크탱크를 들라면, 채텀하우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라고 보는 것이 인드라 입장이다.

   

17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는 노비네파이다.

   

"도쿄만에서 가까운 스미다강 하구 강변에 자리잡은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IEE)'는 일본 에너지산업의 정책제언이나 국제협력을 책임진 '아시아 최고 에너지분야 싱크탱크'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6년 도쿄시내 미나토구에 설립된 뒤 도쿄도 주오구 가치도키의 현 사무실로는 6년전 옮겨 왔다. 재단법인으로, 기업이나 단체들이 낸 회비와 연구용역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미국 베이커연구소 및 MIT에너지환경연구소, 중국 에너지연구소 및 칭화대학,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및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던디대학에너지법정책센터 등과 교류한다. 이밖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사무국, 인도의 타타에너지연구소, 베트남 에너지연구소,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광물자원성, 이란 국제에너지연구소,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너지시스템연구소 및 러시아 아카데미연료에너지콤플렉스국제연구소 등 20여개 연구소와 교류 중이다. 특히 IEA와는 4년전부터 매년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국제네트워크를 통해 일본의 종합적인 에너지 전략을 마련한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현재의 'SK'가 유공 시절이던 1987년 일본의 석유산업과 에너지산업을 연구하겠다며 법인회원으로 가입한 뒤 20년간 2년에 1명씩,10명의 연구원을 차례로 파견했다. 도이치 전무이사는 "SK에서 온 연구원들은 일본어로 논문을 쓰거나 연구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등 에너지 문제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가다듬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는 유호정씨가 산업연구단 석유부문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석유품질관리원 등이 연구원을 파견, 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은 석유제품의 규격이나 환경규제에 대한 노하우를 교환하고, 바이오에탄올 등 바이오연료에 대한 공동연구도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도 연구원 2명을 34차례 파견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도이치 전무는 "한국의 석유, 전기, 가스, 연구소 등 에너지 관련 기관이나 회사들과 매우 관계가 깊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이 연구소에 채용된 한국인도 있다. 지난 4월 교토대에서 환경경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이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도쿄대에서 환경문제로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 1명이 연구원으로 수년전 채용됐다가 지금은 서울 소재 D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과도 교류가 활발하다. 십수년전부터 상층부는 물론 실무진까지 포함한 상호 공동연구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이 연구소측의 소개다. 유호정 연구원에 따르면 이 곳에 연구원으로 파견되면 초기에는 전담 일본 연구원이 배치돼, 매일매일 에너지관련 일본어 공부를 시키고 복습까지 확인해준다. 첨단에너지 연구를 위한, 세미나·연구회 참석 등도 빈번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4844

   

SK도 노비네파.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도 노비네파. 교류는 당연한 일이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가 ERINA와 달리 도쿄 인근에 있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노비네파인 게다. 게다가 협력 단체 명단만 봐도 노비네파이다.

   

노비네파라고 해서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BP, 로열더치쉘 등이 모두 노비네파이다. 다른 노비네파 전망이 어둡다지만, 에너지 문제와 관련이 있는 이 연구소는 노비네파라고 해도 생명력이 길 것이라는 것이 인드라 진단이다.

   

18. 일본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는 노비네파에서 뉴라이트파로 변신 노력중이다.

   

"163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민간연구기관으로 회원단체들의 회비와 연구용역, 기부금 등으로 운영된다. 모체인 최대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구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무로이 히데타로 아시아연구부 주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지난달 일본정부의 경제정책 사령탑인 정부세제조사회장에 고사이 유타카 특별연구고문이 내정되면서 이 연구센터는 관심을 끌었다. 연구센터의 일본내 영향력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고사이 회장은 1987년부터 16년간 연구센터의 이사장과 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고이즈미 정권 5년반 동안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을 진두지휘한 다케나카 헤이조 전 총무상이 지난해 12월 특별고문이 된 것도 화제다. 향후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이 밖에도 일본 최대의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회장 등이 연구센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8956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노비네파이다. 허나, 빅터 로스차일드가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패배한1980년대 후반 이후 이 연구센터는 뉴라이트파로 변신하려고 노력중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이즈미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은 노비네파 자민당 내의 뉴라이트파였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자신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기 보다 추세에 순응하는 조직이므로 크게 주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조직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전경련을 싱크탱크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싱크탱크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식으로의 변환이라고 하는데, 결과는 일본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미식이란 어젠다 능력이 필요한데, 일본이나 한국이 어젠다 능력이 있느냐?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없는데, 한국이 있을 턱이 없다.

   

예외적이라면, 인드라는 어젠다 능력이 있다~!

   

19. 워싱턴 한국연구소들은 뉴라이트파이다.

   

"한·미연구원은 지난해 10월 SAIS 내에 설립됐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 SAIS 교수가 원장을 맡았다. 연구원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원한 4억원으로 출범했으며, 내년부터 3,4년간은 우리 정부가 매년 40만50만 달러를 출연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뒷받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구원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미래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젊은층과의 네트워크이다. 한반도에 관심있는 미국 젊은이들의 모임인 '세종 소사이어티'와의 연대가 대표적이다. 세종 소사이어티는 SAIS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던 애틀랜타 출신 스태퍼드 워드가 만든 연구 모임이다. 워드는 현재 국무부에서 들어가 외교관으로서 인도네시아에 근무하고 있지만 대표 역할을 계속 맡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9853

   

   

여러분은 앞으로 '소사이어티'를 '빌더버그' 만큼이나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다. 재선할 수 있었다. 소사이어티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삼각위원회 강화를 위해 빌더버그에 대항한 아시아환태평양 그룹이다. 빌더버그가 대서양 그룹이라면, 소사이어티는 태평양 그룹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허접하게 데모질하면서 조직 이름을 무슨 무슨 소사이어티라고 하고 있다면, 데이비드 록펠러 시다바리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이도운특파원|한·미경제연구소(KEI)는 20여년 동안 워싱턴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기관이다.1982년 설립된 KEI는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KEI의 역할은 한국의 발전과 한·미관계의 현황을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한국의 경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한국의 정부 관리들에게 미국 외교 및 경제 정책의 변화와 흐름을 전해주는 것이다.

   

KEI는 한국 정부 등 국내 기관이나 단체가 미국에서 개최하는 대부분의 공식 행사를 지원한다. 또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의 미국내 동반 '투어'도 주관한다. 국제교류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내 각 대학의 한국 연구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KEI의 소장은 미 국무부 대북협상특사를 지낸 찰스 프리처드 전 대사가 맡고 있다. 프리처드 소장은 민주당 출신인 빌 클린턴 정부와 공화당 출신인 조지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모두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KEI로 오기 전까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아시아 문제를 연구하기도 했다.

   

또 미 재무부의 국제금융정책국장 등을 역임한 제임스 리스터 부소장을 비롯해 KEI에는 6명의 상근 직원이 일하고 있다.

   

직원 가운데 선임인 플로렌스 로-리(한국명 이명화) 재정 및 출판 담당자는 KEI의 월간 뉴스레터인 '코리아 인사이트'에 한국과 북한의 경제와 사회 이슈를 분석하는 글을 쓴다.KEI는 한국의 경제와 관련해 연례적으로 보고서를 출판하며, 특별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보고서를 작성한다.

   

제임스 앨비스 홍보 담당자는 '코리아 클럽'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코리아 클럽은 한반도에 관심을 가진 워싱턴 지역 인사들의 모임으로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행사를 개최한다. 오공단 미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제임스 켈먼 미 국무부 국제안보 및 비확산국 부과장이 앨비스 연구원과 함께 코리아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의 강연 초청자 가운데는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테러금융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 찰스 카트먼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 등이 포함됐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학대학원(SAIS) 소속이어서 학술적인 측면도 강한데.

   

-올해부터 SAIS와 한·미연구원 공동으로 한반도 학위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오는 9월 한국을 전공한 전담 교수를 임용할 계획이다. 이제부터 SAIS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학생들도 중국 연구자나 일본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19853

   

성 김, 빅터 차, 존스홉킨스를 기억하라. 이재오, 존스홉킨스에서 공부하고 왔다. 스탠퍼드 다음으로 존스홉킨스이다. 뉴라이트이다.

   

20. 베를린폴리스는 골드만파이다.

   

"현재 활동 중인 독일 싱크탱크는 140개 안팎.2000년 수도를 베를린으로 정한 뒤 외교·안보 정책 등을 연구하는 주요 싱크탱크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주요 특징은 운영 형태가 국가 혹은 정당과의 연계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국가지원을 받는 싱크탱크만 10여곳이 되는데 주로 경제와 외교·안보 연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140명의 상근 연구원을 갖춘 '학문과 정치재단'으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대부분의 정당이 느슨한 관계로 싱크 탱크와 연계돼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민당-프리드리히 에르베트재단, 녹색당-하인리히 뵐 재단, 기민당-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기사당-한스 자이델재단, 자민당-프리드리히 노이만 재단, 좌익당-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등의 결합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싱크탱크는 주요 재원을 연방 의회로부터 지원받으면서 연계된 정당의 정책·정강을 개발하고 있다.

   

자칫 정부나 정당에 매이게 되는 관계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초당적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공평한 정책 개발에 비중을 둬 왔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최근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민간 혹은 민·관 혼합 성격의 싱크탱크가 많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중립지대의 공간이 넓어졌다. 알프레드 하우젠 협회와 베를린폴리스가 대표적이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20722

독일재단에 대해서는 인드라가 인월리를 통해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중도좌파 박정희와 독일 재단, 그리고 독일 대통령

http://blog.naver.com/miavenus/70105235670

   

뭔가 기존 방식과 다르게, 그리고 거버넌스적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골드만파 방식이다. 다만, 뉴라이트를 배제하지는 않겠다. 허나, 노비네파는 아니다.

   

다만, 인드라가 베를린폴리스를 골드만파로 추정하는 건, 형식을 깨고 나왔기 때문이다. 뉴라이트파는 기존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면서 약간 자유스럽게 포장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골드만파는 과감한 형식 파괴를 통해 급진적인 접근을 하는 경향이 있다. 베를린폴리스가 예다.

   

독일은 재단 사업이 매우 잘 되어 있다. 독일과 비교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영국과 미국밖에 없다. 그만큼 독일 재단은 위력적이다.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도 모든 정당, 사회단체에 영향을 갖출 만큼 국제적이다.

   

다만, 이 시스템은 빅터 로스차일드 시절에 만든 시스템. 데이비드 록펠러는 그저 그 시스템 안에 자신을 변호할 재단 하나 만드는 것에 만족했다면, 제이 록펠러는 이 시스템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시도 중 하나가 베를린폴리스 같은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등장한 해적당을 인드라는 골드만파 작품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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