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의 위선(僞善) : 위인(爲人)과 위신(爲神) 국유본론 2008

2008/10/13 21:16

http://blog.naver.com/miavenus/70035936132

   

   

   

국제유태자본의 위선(僞善) : 위인(爲人)과 위신(爲神)

   

dodje :

자동인형 기계 비유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연상시킵니다. 주인은 노예에의 의존을 통하여 결국 노예의 노예가 되지요. 국제유태도 그런 점에서는 그들 자신의 존재의 증명을 위하여는 이방인들의 존재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INDRA:

dodje님의 박학다식함은 늘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말씀하시는 대로 벤야민의 자동인형론은 헤겔의 주인-노예론과 유사하다. 동시에 이들간 차이도 짚어볼 수 있다. 헤겔은 근대의 화해를 모색했다면, 벤야민은 근대의 비극을 '역사의 천사'처럼 보고 있다. 또한 벤야민은 아도르노와도 다른데, 그 미묘한 차이란, 토대와의 매개, 혹은 국제유태자본과의 협력 없는 직접 행동은 낭만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본다. 이 점에서 자끄 데리다가 아도르노상을 받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발터 벤야민과 자끄 데리다의 관계가 더 가깝다고 보는 편이다. 이런 말하면, 어떨 지 모르나 발터 벤야민과 자끄 데리다가 시오니즘적이라면, 아도로는 안티-시오니즘적이다.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특징을 적절히 요약한다. 벤야민은 시민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재구성하는 대신 현혹 속에 있는 것, 자연적인 것, 혼돈에 찬 것으로서의 시민사회를 현미경 밑에 비춘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에게서 총체성을 지지해주는 것인 보편적 매개의 관념은 그의 미시론적이고 단상(斷想)Fragment적인 방법에는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는 관찰된 현실의 가장 작은 세포가 나머지 전체 세계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는 기본명제를 꿋꿋이 견지한다. 그에게 있어 현상들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사회 전체로부터 그것들을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물질적 경향이나 사회투쟁에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체계가 되어버린 자본주의에 대한 관찰이 스스로 체계를 닮아감으로써 초래될 지 모르는 소외와 대상화로부터 빠져나오려 한다... 벤야민이 볼 때 현대에서 예술가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충격체험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나에 달려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가 갖는 자기유지의 본능은 외부로부터 오는 파괴적인 에너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극을 수용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방어하려 한다. 본래적인 경험이 게으름과 권태의 산물이라면 바쁜 현대인은 온갖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방어기제도 발달해 있다. 충격과 센세이션만이 그 방어기제를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자신의 신경증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데 누구보다 성공한 사람이었다. 충격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기소외는 주관적인 반응형식 속에 객관적인 외부세계가 침잠하도록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객관성의 기관으로 만드는 생산성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_김유동

http://blog.empas.com/huisik/read.html?a=5761090

   

아도르노는 자크 데리다, 발터 벤야민과 함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유대 사상가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존 콜먼의 300인 위원회에 '아도르노'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틀즈의 곡들을 만든 사람이 아도르노라는 충격적인 주장인 게다.

   

dodje :

1등이 1등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음은 "기러기 효과"로 설명 가능합니다. 대장 기러기는 다른 기러기들을 이끌고 공기를 찢으며 바람을 가르고 날아갑니다. 다른 기러기들은 人 모양의 편대비행을 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반면, 대장 기러기는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체력의 차원이 다르지 않은 한 언제까지고 계속 선두 비행하기는 어렵지요.

   

콜룸부스는 많은 노력과 연구 끝에 달걀을 세웠지만, 한 번이라도 구경한 사람에게 그걸 모방하기란 쉬운 일입니다. 따라서 경마에서의 추입마처럼 에너지를 절약한 채 기회를 노리던 2등이 막판에 역전함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술혁신이란 흔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므로 역전해서 1등으로 나서는 순간, 금방 역풍을 만나 "그게 아니었구나!"하고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Japan as No.1"이 허구인 한 까닭이지요.

   

국제유태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일지라도, 그들의 정체와 수법을 만일 정밀하게 파악한다면 역전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installed base, 즉 기왕의 행적이라는 원죄(原罪)의 부담이 있으니까요. 드라고님 표현으로는 "위선(僞善)"이 되겠고, 달리 표현하자면 "위신(僞神)"이겠지요. 그들의 조심성은 지나칠 정도라고 보여지기도 하는데, 그들 자신이 진신(眞神)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음의 한 방증이라고 봅니다. 언제 노예가 불행한 의식(das ungluekliche Bewustsein)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INDRA:

"그들에게는 installed base, 즉 기왕의 행적이라는 원죄(原罪)의 부담이 있으니까요. 인드라님 표현으로는 "위선(僞善)"이 되겠고, 달리 표현하자면 "위신(僞神)"이겠지요."

   

흥미로운 개념이다. installed base와 원죄를 등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installed base란 기반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때 기반이란 대체로 기반[基盤] - 기초가 되는 바탕. 또는 사물의 토대 - 이다. 그런데 dodje님은 installed base을 기반[羈絆] - 굴레를 씌운다는 뜻으로, 자유를 구속하거나 억압함을 이르는 말 -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예에서 보듯 dodje님의 글에서 주관적 의지보다는 객관적 조건에 주목하고, 주체의 반성을 요구하는 맥락을 곧잘 읽을 수 있다.

   

해서, 위선(僞善)"과 "위신(僞神)"을 생각해 본다.

   

내가 국제유태자본의 약점이 '위선(僞善)'에 있다고 할 때의 위선은 두 가지 용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서의 위선이다. 내심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임을 내세우는 위선이다. 이 경우, 위신(僞神)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극적인 개념으로서의 위선이다. 고대 로마에서 원로원 의원은 고리대금업 등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일을 노예에게 맡겼다. 로마시대의 노예는 등급이 있었는데, 이때의 노예는 어린 시절에 데려와서 원로원 의원 자식과 함께 고등교육을 맡는 등 사실상의 양자로 입적한, 최고 등급의 노예다. 이 노예는 주인을 대리하여 금융과 무역 지배인으로 활약했다. 이 경우, 위신(僞神)과 대비하여 위인(僞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신은 신이 아님에도 신인양 행세하는 것이며, 위인은 짐승 짓을 하면서도 인간인양 행세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자본을 축적할 때는 위인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축재를 했다. 그리고 부를 축적한 후에는 마치 신처럼 자선활동가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 셈이다.

   

여기서 인드라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대목이란, 데이비드 록펠러의 위인 짓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드라의 '위선' 개념의 타켓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정승같이 쓴 사업 정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dodje님의 문제의식은 정확한 편이다. 다만, 위인 역시 배제한 것이 아니기에 위신보다 여전히 위선이 타당한 개념이라고 본다.

"언제 노예가 불행한 의식(das ungluekliche Bewustsein)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로마시대 금융 지배인 노예의 입장에서 보자. 그가 노예이면서도 무산자 로마 시민보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은 로마법에 따라 로마 원로원 의원이 고리대금업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 지배인 노예가 무산자 로마 시민보다 우위인 조건이 위인인 것이다. 따라서 금융 지배인 노예는 위인의 조건을 없앨 수도 없고, 없앨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융 지배인 노예가 능력이 있다면 더 큰 판을 벌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인만이 가능하며,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불행한 의식'은 위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에서 발생한다. 또한 '불행한 의식'은 주인과의 대결에서 서로의 사사로운 이익, 즉 '위인'을 감추고 누가 더 '위신'인가를 묻는 여론플레이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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