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 , 인터내셔널, 슘페터 국유본론 2008

2008/10/17 02:22

http://blog.naver.com/miavenus/70036063626

   

   

   

국제유태자본, 인터내셔널, 슘페터

   

샤를다르 :

그리고 인드라님이 인터내셔널 운동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 운동도 결국은 국제유태자본이 조종한 것인가요?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생각나서 여기로 왔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에 대해서 아시나요? 제가 슘페터의 이론에 동조해서 물어봅니다.

   

INDRA:

샤를다르님의 질문은 내게 늘 깜짝 놀라게 한다. 답변보다 질문을 더 높이 평가하는 나로서는 고맙게 여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국제유태자본이 인터내셔널 운동을 '결과적으로' 조종하였다고 보지는 않는다.

샤를다르님이 결과적으로 조종한 것이 아니냐라고 보는 연유는 아마 러시아혁명에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이 있지 않았느냐에서 출발할 것이다. 은밀한 지원이 있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도운 것하며, 여러 면에서 국제유태자본이 러시아 혁명세력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패배시키기 위해 일본에 자금을 제공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즉, 국제유태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짜르 체제를 붕괴시키고자 했다. 이에 어떤 논자는 중앙아시아 석유 및 자원이 원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해서, 적의 적은 친구이므로 국제유태자본이 러시아 혁명세력을 지원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문제는 혁명 이후다. 혁명 이후, 러시아 혁명세력은 자신들의 길을 가려고 하였던 만큼 국제유태자본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서, 내 입장은 국제유태자본이 레닌 이후 후계구도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점이다. 세계혁명론을 주장하는 트로츠키보다 일국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하도록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다. 레닌도 언급한 바, 혁명보다 혁명 이후가 더 힘들었던 것이 러시아 혁명세력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탈린 시대의 경제성장에 대한 의문을 조금 지니고 있다. 리벤트로프 외무장관 시절 내내 국제유태자본과 스탈린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소련에서는 어떤 면에서 외교가 가장 중시되는데, 그런 까닭에 외무장관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리벤트로프, 몰로토프, 그로미코, 세바르나제 정도다.

   

해서,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독소불가침회담에 있다. 만일 소련과 제 3 인터내셔널이 국제유태자본의 수중에 있었다면 독소불가침회담을 맺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현상적으로 국제유태자본과 이해를 함께 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 소련 체제 안전보장을 받으려는 외교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제 3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 해산 과정에서 보여준 스탈린의 태도다. 스탈린은 루즈벨트, 처칠의 초청을 받고도 카사블랑카 회담에 불참하였는데, 이는 아무리 반 히틀러 연합전선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 아무리 코민테른이 스탈린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나라 두목들과 함께 정상회담을 가진다는 것이 코민테른 회원국 앞에서 명목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서, 코민테른을 해산시키고 나서야 스탈린은 정상회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국제유태자본이 은밀한 공작으로 인터내셔널에 개입했건, 안 했건, 사실상 코민테른을 스탈린이 사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합동작전 구상을 위한 정상회담 참석 때문에 코민테른을 해산한 것은, 국제유태자본과 코민테른, 그리고 대다수 코민테른 회원과는 무관함을 입증한다.

   

다만 오해를 받을만한 소지가 있는 면이 없지는 않다. 제 2인터내셔널 운동 지도자들이 전쟁에 참여한 대목은 '결과적으로' 전쟁으로 한 몫을 보려는 국제유태자본의 이익과 함께 한다. 또한 빅터 로스차일드와 5인의 캠브리지 스파이 사건을 떠올린다면, 흥미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제 4인터내셔널이다. 트로츠키가 주도한 제 4 인터내셔널은 스페인 인민전선정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공화파 군대의 중핵을 이루던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점차 소련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공산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레온 트로츠키를 추종했다. 그러나 이들은 잡혀서 스탈린의 고문 등으로 몰락했다. 이처럼 트로츠키는 유럽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한 채 스탈린의 암살을 피해 결국 북미로 망명해야만 했다. 이로써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탈린의 관심은 유럽에서의 트로츠키 영향력을 죽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 당시 트로츠키가 만든 제 4인터내셔널 주요 세력은 사실상 미국 노동자운동 세력밖에 없었다.

   

이때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트로츠키의 미국 입국을 불허했다. 카르데나스가 트로츠키를 받아주었다. 그런데 전쟁을 앞두고 국제유태자본은 본토 안전을 위해 미국과 멕시코의 화해를 추진한다.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국제유태자본이 트로츠키를 암살했다고 나는 보고 있다. 물론 이는 비주류적 해석이다. 주류적 해석은 스탈린의 짓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국제유태자본의 짓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이 노동운동에 상당한 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은, 유태인인 새뮤얼 곰파스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노동총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노예민주당 등과 결탁하여 많은 이권을 따냈다. 또한 국제유태자본은 카터정권 때 브레진스키의 기획하에 폴란드 연대노조를 조종한 바 있다. 브레진스키는 이때 연대노조의 '연대'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주었다.

   

끝으로 요제프 슘페터는 케인즈보다 뛰어난 경제학자였다고 생각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공이 사회주의로 이어진다고 보는 체제 변환 입장이어서 좌우파 어느 쪽에서도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고, 특히 경기순환론 면에서 이상하게도 케인즈에게 밀렸는데, 이는 그만큼 국제유태자본이 요제프 슘페터를 경계하고, 케인즈를 막후에서 지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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