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과 프리메이슨 1 - 신비주의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2/1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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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theogeo/30026747608

   

   

루소가 프랑스 혁명에 미치는 영향력은 프랑스 혁명 인권선언에서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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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26: 프랑스혁명과 프리메이슨 1 - 신비주의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2/13

   

기독교 신비주의 - 에크하르트와 베르나르두스

   

이 글은 프랑스 혁명과 프리메이슨 관계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짚어보는 글이다. 이 글 목적은 프랑스 혁명과 프리메이슨에서 신비주의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바 있지만, 사건의 본질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요즘 인드라는 기발한 독서법으로 책읽기를 하고 있다. 가령 맑스의 프랑스 삼부작에서 맑스가 성경 구약을 인용하는 대목만 살펴보는 것 같은 것이다. 구약 어느 대목을 인용했나. 또 왜 이 대목에서 하필 구약 이야기를 예로 들었는가. 그 대목이 맑스 사상과 이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등등.

   

왜 이러한가 하면, 인드라가 수십년 무신론자로 살다가 근래 유신론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드라는 신을 믿는다. 헌데, 이 신에 대해 그 어떤 이성적인 설명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드라가 어느 순간 빛처럼 쏟아지는 신을 찰나지간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기에 인드라는 대체 왜 이런 일이 인드라에게 일어났는가 싶어서 숙고를 거듭했다.

   

그런 과정 중 하나로 기독교 신비주의를 고찰할 수 있었다.

   

http://kslim713.blog.me/40145274679

   

여기에는 스웨덴보리에 관심이 있으신 수반아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드라 삶에서 우연치 않은 여러 만남들 중에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매우 낯설지만, 알면 알수록 친숙한 느낌?

   

아무튼 인드라는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의 두 대표자인 시토파 베르나르두스와  도미니크파 에크하르트에 주목했던 것이다.

   

에크하르트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5746986

   

베르나르두스

http://blog.naver.com/rsg861/80134535211

   

둘의 공통점은 중세 최고 이론가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학파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하면, 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신학론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리스 철학을 수용한 이슬람 종교철학을 십자군 원정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http://blog.daum.net/crossenglish/891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종교철학에 대응한 신학 체계를 종합하였다. 허나, 이는 두 갈래 반발을 낳았다. 그 하나는 시토파 베르나르두스로 대표할 수 있는 기독교 신비주의, 라틴 신비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에크하르트로 대표할 수 있는 기독교 신비주의, 게르만 신비주의이다. 이때, 베르나르두스와 에크하르트를 묶을 수 있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기원은 디오니시우스이다. 

   

기독교 부정신학이란 디오니시우스에서 비롯한다.

   

"위(僞)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또는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the Areopagite)라고 알려진 이 신비신학자는 서기 500년경의 사람이다.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우스는 사도행전 17:34에 나오는 사람으로 바울과 논쟁을 벌였던 인물인데, 6세기에 이 사람의 이름으로 된 글과 편지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를 이렇게 부른다. 후에 신비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준 그의 글은 묘하게도 그의 사상을 계승한 토마스 아퀴나스와 에크하르트 같은 신학자들이 파문 등의 수난을 겪은 것과는 달리, 사도적(使徒的)이고 정통적인 것으로 인정받아 동방그리스도교와 서방그리스도교 양쪽에서 모두 거의 정경(正經) 취급을 받았다.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글은 『천상의 위계』(Celestial Hierarchy),『교회의 위계』(Ecclesiastical Hierarchy),『신의 이름들』(The Divine Names),『신비주의 신학』(Mystical Theology), 그리고 10편의『편지들』(Letters).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그의 저작들에 대한 수 없이 많은 번역들과 주석서들이 이어졌다. 위 디오니우스의 신학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는 탁월한 책이다.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렇다'라거나 '저렇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없고, 오직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이른 바 "부정신학"(The Negative Theology)의 기원이 되는 책이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 디오니시우스가 말하는 "부정"은 "긍정"의 반대말이 결코 아니다. 그의 "부정"은 "긍정과 부정의 부정"으로 "완전한 부정"이며, 따라서 궁극의 원인인 하나님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다"라는 말은 결코 불가지론이나 회의주의가 아니다. 이 "알 수 없다"야말로 완전한 긍정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의 상태를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여기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아니요 그렇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상태에서, 모든 앎이 활동을 멈춘 상태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분과 지극하게 합일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됨으로써 마음을 넘어서서 알게 된다."

   

놀랍게도 그가 본질을 표현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불경에서 진여(眞如)를 설명하는 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것은 영혼이나 마음이 아니요, 그것은 상상력이나 확신이나 말이나 이해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것은 말 자체도 이해력 자체도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고, 이해력으로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수(數)나 질서가 아니며, 거대함이나 작음도 아니고, 평등이나 불평등도 아니며, 유사함이나 다름도 아니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음도 아니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휴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권능을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권능도 아니고, 빛도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지도 않고, 생명도 아니다. 그것은 실체도 아니며, 영원이나 시간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므로 이해로 알 수 없다. 그것은 왕권도 아니다. 그것은 지혜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도 아니고 합일도 아니며, 신성(神性)도 아니고 선함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의 영(靈)도 아니다. 그것은 아들이나 아버지도 아니며, 우리에게나 다른 어떤 것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비존재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고 존재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며, 그것은 존재하는 것들을 그 자체로 알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한 이름도 앎도 없다.

   

어둠과 빛, 오류와 진리― 그것은 이들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그것은 주장과 부정을 넘어선다. 우리는 그것과 비슷한 것(what is next to it)을 주장하고 부정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해 주장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만유의 완전하고 유일한 원인이므로 모든 주장을 넘어서며, 한없이 단순하고 절대적인 본성으로 인해 모든 경계를 벗어나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모든 부정을 넘어선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0902&docId=287660&qb=65SU7Jik64uI7Iuc7Jqw7Iqk&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Xi2o35Y7bssstsjSRdssc--135021&sid=TuY-zPIW5k4AACukJTw

   

   

인드라는 어둠과 빛, 오류와 진리,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수메르 신화에서 찾는다.

   

하나, 수메르 신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격신들의 갈등과 투쟁에서 대홍수가 일어났다.

   

둘, 이후 인간들은 인격신들간의 갈등과 투쟁에서 승리한 인격신을 중심으로 대홍수 사건을 이해한다.

   

셋, 허나, 대홍수 사건을 가장 설득력이 있게 설명한 인격신조차 최종적으로 승리한 인격신이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말해, 인격신이 대홍수 사건 원인이지만, 대홍수 사건 본질은 미래 권력에 의해 우연적이다.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슬람 종교 철학에 대해 이치에 맞음을 말하면서도 그 이치 상위에 계시를 두어 '수동적'으로 방어하려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슬람 종교철학이 당대 철학에서 가장 뛰어남을 인정하면서 이를 서양화, 현지화시킨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 베르나르두스와 에크하르트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적극 비판을 했던 것이다. 

   

라틴 신비주의, 베르나르두스 신비주의 비판 방향은 감성이요, 노동이요, 생산이다. 지식은 결코 진리가 아니다.

   

부정 신학 바탕 위에서의 긍정 신학이다. 해서, 신과의 교제와 사랑이다. 베르나르두스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든지 당대 교황으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수도원장에 머물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신이 예수가 되는 길보다는 예수를 앞세우고 순종하여 모범하는 길을 간다는 점에서 소승불교, 남방불교, 본래 부처가 설파한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게르만 신비주의, 에르하트트 신비주의 비판 방향은 지식이었다. 부정 신학을 보다 완성하려는 바벨탑적 욕망이 에크하르트를 낳았다. 예수를 역사화하고, 예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고픈 욕망. 모든 인간을 현세에서 심판하는 독재적 지위에 오르려는 욕망. 하여, 에크라르트는 정당하게도 이단이 되었다. 헌데, 바로 그런 이유로 에크하르트는 후대 루터와 헤겔의 스승이 된 셈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대승불교, 북방불교, 부처 제자들에 의해 조작된 대승불교, 부처가 끔찍하게도 반대했던 길을 간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게르만 신비주의자들은 부처 본래의 길보다 이단화한 티벳 밀교를 더욱 숭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인드라의 전술적 해석이긴 하다^^!

   

프랑스 혁명은 놀랍게도 이 두 가지 길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였다.

   

하면, 오늘날 이 교훈은 어떠한가.

   

오늘날 한국은, 고려 시대 말 땡중 신돈과 같은 씹색희 법륜과 같은 땡중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록펠러 일가가 봉은사를 방문한 이후 법륜과 같은 씨팔색희들이 CIA나 그와 역할을 같이 하는 여러 국유본 재단 - 쪽발 놈현 재단도 배후에는 국유본일 것이다 - 지원하에 개난리를 치고 있다.

   

이들은 이것이 사회적 참여라는 미명하에 참가하는데, 과연 그것이 부처의 길일까? 아니면, 니넘들의 숨은 젖같은 욕망 때문일까?

   

개씨발색희들아, 더러운 짓거리 그만하라. 법륜! 니 애비가 정녕 쪽바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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