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이 동아시아 근대사를 말한다 : 애로호 사건, 2차 아편전쟁, 파머스톤 외교, 영일동맹, 삿초동맹, 존왕양이, 해리 파크스 국유본론 2013

2013/11/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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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론이 동아시아 근대사를 말한다 :

애로호 사건, 2차 아편전쟁, 파머스톤 외교, 영일동맹, 삿초동맹, 존왕양이, 해리 파크스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11/07

   

* 티스토리에서 인드라블로그에 대해 스팸블로그라며 탄압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근래 글들이 다음 네티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듯합니다. 유입경로로 봐도 티스토리에서 인드라 블로그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해당 운영자들이 잘 해결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글을 옮길 때에는 교정이 필요하니 24시간 이후에 옮겨주시길 바랍니다.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었습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중국 침략을 지원했습니다. 영국이 하던 일을 점차 일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고, 영국은 경제적인 실리만 취했던 것입니다. 해서, 일본은 러일전쟁 청일전쟁 등 전쟁에 계속 승리하는데 국가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물론 그 부채는 대부분 영국 귀족들과 로스차일드에게 빚진 것입니다.

   

헌데, 일본 막부는 임진왜란 이후 대륙 정세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하여, 국유본은 페리 제독 등을 내세워 일본 막부를 위협했던 것입니다. 허나, 일본 막부는 당시 무능하였지만 일본 막부를 능가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각 번주들이 저마다 야망을 가지고 있는 바람에 묘하게도 균형적이었습니다.

   

해서, 만일 누군가 일본 막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하고, 어떤 세력을 지원해야 하나? 일본 막부를 붕괴시킨 다음에는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사는 해리 파크스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해리 파크스가 빠진 근대 동아시아 역사란 치킨없는 후라이트 치킨인 것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Harry_Smith_Parkes

   

해리 파크스는 붉은 머리칼의 고아였습니다. 붉은 머리칼은 켈트족에서 근원하는 것으로 켈트족이 많이 사는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고아는 아니었고 대장간집 막내아들이었는데 부모가 1832년, 1833년 각각 죽습니다. 해리 파크스는 두 누나와 함께 하나뿐인 해군장교로 퇴임한 삼촌이 입양해서 삼촌집에서 살았지만 삼촌마저도 1837년에 죽고맙니다. 오갈 데 없는 해리 파크스였습니다. 이때, 해리 두 누나가 중국학자 귀츨라프와 결혼한 사촌누나 초청을 받아 1838년에 중국에 갑니다. 하고, 해리 역시 중국으로 1841년에 옵니다.

   

당시 영국 내각은 l84l년 광동 회담 정지와 침략전쟁 확대를 결정하고, 엘리엇을 해직시킨 후 헨리 포팅거(Henry Pottinger)를 주청 전권사신 겸 상무감독으로 파견합니다. 이것이 뭔 말이냐면 주청 전권사신이란 청국 정부에 대해 영국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는 것이며, 상무감독이란 대중국무역 최고책임자라는 것입니다. 헨리 포팅거는 젊은 해리 파크스를 보더니 친아들처럼 귀여워했다고 합니다.

   

이때, 후일 홍콩 초대총독이 되는 헨리 포팅거를 수행하며 번역 일을 했던 이가 존 로버트 모리슨인데, 해리 파크스는 1841년 13세 나이로 존 로버트 모리슨 사무실에서 사환이자 통역견습생을 하며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합니다.

   

당시는 외교 공부하기는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일차 아편전쟁을 끝내고 난징조약을 맺었는데 청국은 역사상 최초로 패배를 시인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로도 세계 중심이었던 중국을 지배한 국가는 패배를 선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시 동아시아를 움직이는 오늘날 유엔체제이자 G8체제인 조공체제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눌렀지만, 아편전쟁은 영국 내부에서조차 정당한가 논란에 시달려야했습니다. 이 문제를 중국 현지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했으니 고단수의 외교가 등장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해리 파크스는 어학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2년만인 1843년 홍콩 중국어 영사시험에 합격하여 통역관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1847년에는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1854년, 해리 파크스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아모이 항구도시의 영사로 임명됩니다.

   

어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당대 독보적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주요 관리 중에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서, 홍콩 통상책임자로 와있던 파머스톤경 눈에 뜨입니다.

   

1849년 해리 파크스는 아모이 영사 통역관으로 임명받았습니다. 이때, 해리 파크스는 휴가를 내고 영국으로 돌아갔는데요. 후일 총리가 되고 당시 외무부 차관이던 파머스톤경이 환대를 합니다. 둘은 국제정세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때 둘은 막역한 사이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둘 다 켈트족이어서 친근감이 든 것일까요?

   

아일랜드출신 귀족 파머스톤 경은 어떤 인물인가. 맑스가 외교문제에서 인용하기도 하여 인드라처럼 책 좀 읽은 좌파라면 기억이 나는 인물인데 파머스톤 외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파머스톤 외교를 간단 정리하면 자신은 보수주의자인데 외교로는 국익을 위해서 자유주의 정책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보수와 자유를 가름하는 규정이란, 보수가 경제적 실익에도 불구하고 애국의 길을 가는 토리당의 것이라면, 자유란 경제적 실익을 위해서 국가의 체면을 잠시 잃어도 상관없다는 실리의 길을 가는 휘그당의 것입니다. 정치면 토리, 경제면 휘그인 것입니다. 파머스톤은 토리당에서 나중에 휘그당으로 옮깁니다. 이런 데서 보듯 이념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생존 앞에서 이념이고 나발이고 없는 것입니다 ㅎㅎㅎ

   

파머스톤은 평상시에는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령 국익을 위해 보수주의자임에도 유럽대륙에서 일어나는 자유주의적 움직임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럽대륙의 자유주의적 운동은 영국체제 정당성을 높여준다며 은근 좋아했습니다. 물론 정작 자유주의적 운동 지원에는 생색을 내면서 언론플레이만 했습니다. 이것이 맑스 눈쌀을 찌푸리게 해서 '빌어먹을 파머스톤'하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헌데, 파머스톤이 평소에는 언론플레이라도 하는데 2차 아편전쟁 사건 발단이 되는 애로호 사건 같은 데서는 단호하게 영국 이익을 주장했습니다.

   

애로호 사건. 애로호는 선장을 제외하고는 전원 중국인이 승선한 배입니다. 소유자는 중국인이지만 선장은 영국인이었습니다. 소금 밀수선이었습니다. 당시 청 관리는 포청천 관료스타일 염명침이어서 불법을 배격했습니다. 해서, 1856년 광둥에서 청 관헌이 중국인 선원 열 두 명을 해적 용의, 결국 밀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와 연대하여 광둥성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베이징마저 함락하고 베이징조약을 맺습니다. 이것이 2차 아편전쟁입니다. 이때 세포이항쟁이 발생해서 부대가 인도로 되돌아가서 출동에 차질을 빚기도 하는데요. 이로 인해 오히려 결과적으로 영국만의 전쟁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연합 전쟁이 됩니다. 아무래도 로스차일드와 사순가문의 일타삼피 전략 같습니다. 이 시기 로스차일드와 나폴레옹 3세 사이가 좋았습니다. 로스차일드가 권력을 마련해준 나폴레옹 3세는 이제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왕실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한다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헌데, 영국 독자적으로 했다면 국내외적 비난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이 시기에 중국에서 프랑스 선교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영프연합군이 형성됩니다. 해서, 합친 군대 숫자가 고작 5700명!

   

영프연합군은 염명침 총독을 사로잡아 인도로 보내 죽입니다. 영국은 중국 전체 무역항 개방과 공사를 베이징에 주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거 영화로도 나온 것 같은데...

   

해리 파크스는 파머스톤과 찰떡궁합이 되어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산적한 현안을 모두 풀어냅니다. 이 공로는 적지 않아서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 조상인 존 러셀이 해리 파크스를 극찬하게 만듭니다. 로스차일드 세습남작보다 끗발이 높은 게 세습백작입니다. 물론 버트런트 러셀 백작은 빅터 로스차일드처럼 케임브리지 사도회 회원이고 300인 위원회 회원이자 영국 노동당원이었습니다. 노벨상 받구요. 남의 애인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바람둥이이자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를 애인으로 둔 동성애자였습니다.

   

해리 파크스는 2차 아편전쟁을 성공리에 마무리함으로써 영국에서나 국유본에서나 동아시아 전문가로 평가받습니다.

   

허나, 해리 파크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중국이란 북경을 점령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중국 역사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해리 파크스의 다음 표적지는 일본이 됩니다. 일본어 괜히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으로 갑니다. 허나, 해리 파크스가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닙니다. 도중에 일본 암살자에게 암살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수시로 총칼로 암살하곤 해서 이 풍토가 전후 야쿠자 다툼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마피아 원조는 미국이고, 야쿠자는 미국 마피아를 따라한 것이고, 한국 주먹질은 일본을 모방한 것인데, 미국은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1960년대에 쇠락합니다. 1940년대 50년대 한국에서 유독 암살이 유행한 건 일본풍이 있었던 것입니다.

   

해리 파크스는 1865년 영국 주일대사로 임명받지만 곧바로 에도로 가지 않고 토머스 글로버가 있는 나가사키에서 몇 개월간 머무르며 정황을 파악합니다.

   

당시 일본 정세를 존왕양이, 혹은 근왕양이로 말합니다. 허나, 이것은 후대 역사조작이라고 보는 것이 인드라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당대 대다수 일본인은 일왕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극소수 알고 있는 자가 있더라도 없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왕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대 주요한 관심사는 양이였습니다. 즉,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자는 것이었습니다.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 공포에 막부가 무력하다는 평판이 일본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일본 막부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있으니 조슈번과 사쯔마번이었습니다.

    

   

    

조슈번은 오늘날 야마구치현으로 불리던 지역이고, 사쯔마번은 오늘날 가고시마현에 미야자키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근처에 독도로 유명한 시네마현이 있군요.

   

딱 지역을 보면, 한반도와 아주 관련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쯔마번은 류쿠왕국(오키나와)를 정복했고, 명성황후를 죽인 낭인들이 사는 등 조선침략 선봉이고, 조선도공 심수관 동네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 라스트사무라이 무대이기도 합니다. 중권이 마누라도 이곳 출신이란 소문을 얼핏 들었는데 그렇다면 좀 수상한가요^^?

   

두 지역은 각각 다른 번에 비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했던 번이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막부체제보다는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이 있는 번입니다.

   

역사를 검토한 해리 파크스는 두 번을 연합시켜서 대륙 침략에 관심이 없는 막부체제를 무너뜨린 뒤 이들로 하여금 조선 침략과 중국 침략을 감행하게 하자는 기획을 짠 것입니다.

   

허나, 두 번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서로 잘 났다고 다투는 관계였습니다. 이에 국유본은 사카모토 료마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삿초동맹이라는 군사동맹으로 극적인 타결을 봅니다. 배후에는 물론 해리 파크스와 토머스 글로버가 있었습니다.

   

삿초동맹은 막부체제를 무너뜨립니다. 이후 해리 파크스는 새로운 막부를 만들지 않고 일왕을 새롭게 탄생시킵니다. 이것이 해리 파크스의 신의 한수였던 것입니다.

   

막부를 무너뜨리면서 여론이 극히 좋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한 것이기에 명분이 없었습니다. 이에 다른 번주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막고자 나온 대안이 존왕론, 근왕론인 것입니다. 처음에 다른 번주들이 어이없어했습니다. 허나, 해리 파크스가 밀고 나오고 해리 파크스에게 암살 위협을 가해도 까닥없으니 별 수가 있겠습니까.

   

근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일왕이 근대 이후 갑자기 등장합니다. 오늘날 일왕이란 믿을 수 없습니다. 해리 파크스가 임의로 내세운 엉뚱한 자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일왕이란 족보가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전국시대 때 이미 똥탄 개족보인데...

   

해리 파크스는 메이지유신이 성공하자 일왕을 천 명의 영국 수병을 동원하여 호위하여 세를 과시합니다. 단순히 삿초동맹이 일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양이도 일왕을 지지하니 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서, 메이지유신은 해리 파크스 기획, 토머스 글로버 연출, 사카모토 료마와 삿초동맹 주연 한 편의 쇼였던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은 99% 해리 파크스를 위시한 국유본 작품입니다. 1% 정도가 고단한 글로버를 위해 밤에 애를 쓴 나비부인 역할 정도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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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BY 인드라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길을 간다고 생각했었다

뒤돌아보니

우연히 누구를 만났고

낯설은 무엇이 있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니 반갑고

낯설게 대하니 좋았다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내가 사랑한 것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길이었을까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친미친중 반일반북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최고의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기름 새는 엔진 리콜 쪽발차를 쪽발왕궁으로 보내 폭발시키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우리에게 힘과 마법을 주세요

- 인드라 창작 뮤지컬 마법천자문 주제가

어둔 길을 걷는 이들이여

저 밝은 빛을 보아요

   

그림자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이여

스며드는 희망의 빛을 보아요

증오하는 마음으로 슬프고 아플 때마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괴롭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상처를 낼 때마다

우리를 갈라서게 할 때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나는 바람처럼

젖을수록 더욱 맑아지는 물처럼

당신은 우리의 자랑이며

당신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땅을 뒤흔드는 힘

놀랍고 신기한 마법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힘과 마법을 주세요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엠비씨) 아웃

서민 등골 빼먹는, 일인 복마전, 골룸빡 처단

한국의 야스쿠니, 쪽발놈현 무덤은 한반도에 저주를 내리는 대못이다

쪽발놈현 무덤 철거하고,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하자

빠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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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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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무인도에서의 처세술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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