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 : 1973년의 세계사 국유본론 2009

2009/04/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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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 : 1973년의 세계사

   

1973년은 세계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이 일어난 해이다.

   

록펠러가 삼각위원회를 창설하며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삼각위원회는 국제 석유업계의 이익을 국제적으로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즉각 세계 총자본의 이익을 수호하는 국제유태자본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유럽 중심 빅터 로스차일드의 빌더버그를 주변부로 밀어내었다. 9월에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의회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연설의 요지는 영국이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영광을 이제 기대할 수 없는 보통 국가가 되었다면서 1985년에는 영국의 GNP가 독일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다음날 영국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로스차일드 시대 마감을 공식적으로 알린 셈이었다. 드골로 인해 차질을 빚었던 유로공동체가 국제유태자본이 드골을 제거하게 되면서 순항을 하게 되자 1월 1일에 덴마크, 아일랜드가 유로 공동체에 가입했다.

   

8월 8일에는 남북회담으로 인기가 높아진 로스차일드계 박정희가 소련과의 비밀 협정에도 나서는 등 비동맹 외교를 강화하자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로 권력교체를 이룬 국제유태자본이 박정희 정권을 교체시키자니 친일파 김대중은 아직 무능하고, 김영삼은 민족주의에 경도될 우려가 많은 등 남한에 마땅한 대안이 없자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키기 보다는 박정희에게 경고를 줄 목적으로 CIA에게 지시하여 김대중 납치사건을 꾸몄으며, 이에 8월 28일 북측은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박정희 지지율은 수직 하락했다.

   

9월 11일에는 록펠러의 지시를 받은 헨리 키신저가 CIA 작전으로 피노체트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서 세계 최초로 평화적으로 사회주의 정권 교체를 이룩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켰고, 록펠러 주도하에 유태계 밀턴 프리드만의 연출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실험했다. 9월 28일에는 아르헨티나의 유태자본에게 권력을 빼앗겼던 후안 페론이 18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이는 국제유태자본이 후안 페론 정권을 무너뜨리고 관심을 다른 데에 돌리기 위해 유대인 혁명가 체게바라의 쿠바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칠레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데에 대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국제유태자본의 고육지책이었다. 쿠바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체이스맨해튼은행 해외영업부에서 일을 시작할 때 맡은 담당 지역이다. 이런 인연으로 록펠러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등과 친교를 맺고 있다.

   

10월 6일에는 국제유태자본이 배후에서 작동시킨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고, 이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가를 3달러에서 12달러로 올리는 세계사적인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명분으로 작동했다. 이로서 금 대신 원유가 달러체제를 지지하게 되었고, 이는 석유업계를 장악했던 록펠러가 세계의 실질적인 주인임을 알리는 선포식이었다.

   

10월 10일에는 그리스계 2세로 소수민족으로는 최초로 부통령에 오른 스피로 애그뉴 미국 부통령이 탈세 혐의로 사임했다. 평소 록펠러에 비판적이었던 닉슨 제거를 위한 사전포석이다. 닉슨이 사임하면 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기 때문에 록펠러 사람을 부통령으로 앉혀야 했다. 닉슨은 이듬해 국제유태자본의 음모로 사임한다. 10월 16일에는 헨리 키신저와 레둑토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나, 레둑토가 국제유태자본이 주는 더러운 상은 받기 싫다며 거부하여 키신저만 받았다.

   

1973년 노벨경제학상은 레온티에프의 역설로 유명한 레온티에프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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