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 페타(PETA) 누드시위, 카라(KARA) 국유본론 2009
2009/04/13 03:51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462593
국제유태자본, 페타(PETA) 누드시위, 카라(KARA)
나마스테:
-동물보호와 채식주의운동이 국제유태자본과 관련 있는가?-
INDRA:
나마스테님의 극찬에 가까운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인드라가 채식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육식만큼은 안 먹고 십여 년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또한 동물에 대한 애틋한 과거도 있는 만큼 채식운동이 잘 진행되기를 바라며, 동물사랑운동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또한 페타나 카라를 제외한 모든 한국의 동물보호협회, 채식주의운동모임이 원하는 일이 다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무엇보다 나마스테님이 앞으로 하시는 일이 그 무엇이든 다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해서, 인드라의 지난 글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247844 에서 밝혔던 인드라의 오늘날 일부 동물보호운동에 대한 의혹 가설에 대해 나마스테님의 정성스러운 말씀이 매우 고마운 데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분량이 될 듯하여 독립적인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아마도 마음으로 나마스테님을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산 모피 가격은 수십만 원대에서 시작하고 국산제품도 100만 원 정도면 고급이라 인드라님 아시는 것처럼 중산층 정도의 여성들이 전혀 엄두를 못 낼 가격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마스테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인드라 역시 잠시 알아보니 제품이 고가용과 중저가용으로 분리되어 보다 대중화했다는 나마스테님의 말씀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모피를 반대하는 단체와 모피를 생산하는 업체 간에 직접적인 이해를 통한 유착 또는 공존관계란 아직 드러난 바가 없으며, 오히려 업체 측이 늘 운동 측을 힘들어한다는 구도라고 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이 또한 나마스테님의 말씀이 옳다. 자금 거래라든가 하는 것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 측이 힘들어 하는 면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물보호 운동 단체인 페타(PETA)는 사실 채식운동에 더 열심인 단체이고, 모피 반대 캠페인은 어쩌면 후원금을 모으는 이벤트의 성격이 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모피 반대가 1년에 한두 번 나오는 이벤트라면, 전 세계를 돌며 벌이는 누드 채식 캠페인은 거의 매달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역시 이 문제에 전문가이신 나마스테님 견해가 대체로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벤트는 이벤트다. 비록 1년에 한두 번 한다고 하더라도 월드컵처럼 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에서 앞 다투어 소개하는 만큼, 그 효과로 페타가 알려진 만큼 최소한 일상적 활동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본다. 속으로 그녀가 채식주의에 더 관심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페타 창립자이자 대표인 잉그리드 뉴커크의 홈페이지 사진으로 나타나는 객관적인 상황은 그녀의 주된 관심사가 동물 사랑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채식주의자는 총인구중 2%도 되지 않는 데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제대로 커밍아웃 하기도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랜 군사 문화적, 전체주의적, 획일적인 집단과 조직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아직 채식은 지나치게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 정도로 비치고 있는 듯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인드라가 조직 생활에서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에서 군사 문화 운운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인드라도 1980년대까지는 나마스테님과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해외로 배낭여행도 다니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이 열리게 되었다. 나마스테님이 좀 더 이 대목에서는 인류학적인 접근법을 고려하면 어떨까 싶다. 인드라의 생각으로는 군사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본다. 인간의 문화 중 특히 식습관은 다른 것과 달리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최소한 백 년 이상이 걸리는데, 다만 경제 성장으로 인한 압축 성장으로 인해 이 효과가 한 세대, 즉 삼십여년 정도 걸릴 수는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유가의 유로화 결제 선언에 대한 응징, 석유자원 루트 확보와 더불어 중동 전역을 흐르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점령 기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면 식량과 물 등 기초 자원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와 기후 변화 무기는 장차 가장 무서운 무기로 활용될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나마스테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유가의 유로화 결제 선언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국제유태자본의 의도는 단지 전쟁 그 자체였을 뿐이다. 그래야 세계 산업이 돌아가니까. 부시와 공화당은 단지 악역을 맡았을 뿐이고, 실질적 기획자는 제이 록펠러다. 제이 록펠러는 클린턴과 오바마를 임명했다.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다.
1. 과연 국제유태자본과 한국 동물보호와 채식주의 운동은 관련이 없는가?
나마스테님은 "제가 아는 한 아직 한국에서 국제유태자본과 결부된 동물보호운동 움직임이 있다고는 판단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인드라 역시 대부분의 채식주의 운동과 동물보호운동에는 국제유태자본과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다. 한국에는 페타(PETA) 대신 카라(KARA)가 있다. 그런데 이 카라가 문제다.
"카라(KARA)는 독특하게도 잡지나 전철 광고 등 미디어를 통한 동물보호 캠페인에 열심인데, 다만 명예이사진에 박원순 같은 이에다 여러 문화계 유명인사까지 다 들어가 있어 좀 우스운 느낌을 주기는 합니다. 아마도 저명인사가 많아야 회원모집에 나을 거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계산에서 짜여진 인선이라 보여 문화계 인사 친목계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마스테"
가령 나마스테님도 우려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카라이다. 그런데 그 카라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kosher' 즉, '유태인 율법에 맞는 제품'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면, 고기는 이렇게 산 채로 죽인 동물에서 얻어야 할 뿐 아니라 정맥, 림프절, 커다란 신경뭉치들과 같은 세포조직들도 제거해선 안 된다. 소의 엉덩이와 뒷다리 부위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찾기는 힘들다. 결과적으로 산 채로 도살하는 동물의 머리와 어깻죽지 부분만이 일반적으로 '유태인 율법에 맞는' 고기로 팔린다. 나머지 부분은 예식적 방법으로 도살된 동물이라는 어떠한 표식도 없이 일반 슈퍼마켓 선반 위에서 팔린다. 미국인이 먹는 상당한 많은 양의 쇠고기가 '이런 식'으로 도살된 것이다."
인도적인 도축의 허구
http://www.withanimal.net/tt-cgi/tt/site/ttboard.cgi?act=read&db=faq&page=2&idx=17
이상하지 않은가. 왜 하필 유태인 율법에 따른 도축이어야만 할까? 또한 유태인 율법에 따른 도축이라는 논의가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유포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씨라는 어용연대가 이 땅에 와서 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다시 강조하지만, '연대'란 용어는 브레진스키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하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이전에 자주 사용했던 용어는 대개 전국연합, 한국총학생회연합, 경제정의실천연합, 환경운동연합,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 연합이거나 사회주의노동자연맹 등 연맹이거나 위원회였다. 그런데 어용연대 이후 한국에서는 연대라는 이름이 주류가 되어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까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국제유태자본과 연계가 깊은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박씨가 동물보호운동에 이사진이 되어 조직을 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유태인 율법에 맞는 제품'이라니... 이 문제를 하찮게 볼 수도 있다. 논의를 하다 보니 우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마지막으로, 1880년대에는 도축업자(shochet)36)를 둘러싼 갈등도 나타났다. 원래 유대인들의 일상생활은 대부분 율법과 성서적 근거의 지배를 받는다. 정통 유대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정결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주로 구약에 나오는 위생 및 식생활에 관한 사항들이 이 법의 주요 내용을 이루며, 도축행위(shechita)는 전통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원래 유대인들에게 도축은 종교적 행위로서 가축 도살에 관한 여러 상세한 규정과 관행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것은 도살할 수 있는 가축을 정하고 도살하는 방법과 먹을 수 있는 동물의 부위, 그리고 제식에 올릴 부위가 정결한지 여부를 조사하는 방식까지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근대적인 도축장에서는 사전 검사, 도살, 그 후의 과정 등으로 나누어 작업이 전문화되어 있지만, 전통적인 유대인 사회에서는 도축업자가 이 모든 작업을 주관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다년간의 수련이 끝나면 율법학자로부터 면허증(kabbalah)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 면허증을 발급한 율법학자의 권위와 명성을 근거로 도축업자를 신뢰하였다.37) 19세기 초 런던의 3대 시나고그 지도자들은 도살에서 소매업까지 전 과정을 감독하는 도축위원회(Board of Shechita)를 구성하여 육류의 도살 및 판매에 관한 상세한 지침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동유럽 유대인 이민들은 이미 최고율법학자의 권위를 무시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축위원회의 지침과는 달리 그들 독자적인 관행을 내세우며 별도의 도축업자들을 지정하였고, 새로 초빙된 율법학자가 그 면허장을 발급하였다. "
http://www.newyorker.pe.kr/tt/index.php?page=3
예서 보듯, 도축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제유태자본 내부의 알력 관계를 시사하는 문제이다. 당대 영국에서는 약 이천 명의 세파르딤 유태인과 이만 명 가량의 아슈케나짐 유태인이 있었다. 이때 세파르딤 유태인들은 콘베르소 유태인이라고 하여 일반적인 세파르딤 유태인들과는 달랐다. 즉, 이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에서도 항상 최상층을 유지했던 금융가 그룹이었다. 즉, 그들은 유태인 외부에서 항상 유태인 질시를 일으키는 그룹이었던 것이다. 당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추방당한 25만 명 가량의 상당수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으로 갔다. 그들은 아슈케나짐 유태인과 다를 바가 없이 하층이었다. 그러나 콘베르소 유태인들은 달랐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한줌도 안 되는 금융자본 그룹이요, 최상층이었다. 저들은 영국 경제는 물론 정치마저 장악했던 19세기에도 약 100 가문 이천 명에 불과했다. 반면 아슈케나짐 인구는 삼 만에서 삼만 오천 명 정도였다. 이때 영국 인구는? 19세기 중엽이면 영국 인구 이천 백만 명을 넘어선다. 이천 명이 이천만 명을 지배한다? 영국 인구의 0.01%이다. 그런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를 지배했다는 당대 영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인드라는 이들을 페니키아, 카르타고, 오늘날의 UAE, 사우디 이븐 사우드 왕가 등에서 기원을 찾는다. 이런 점에서 인드라는 아도르노와 유사한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유태자본 : 카르타고 유태인, 모세와 에즈라
http://blog.naver.com/miavenus/70036192009
국제유태자본 : 카르타고적 유태인과 스포츠
http://blog.naver.com/miavenus/70036148053
아무튼 이들 국제유태자본 내부에서는 도축을 빙자한 출신, 가문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이 있었다는 점이다. 해서, 결코 도축과 관련한 논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 목표는 채식이 아니다. 권력이다. 종교 권력이며, 유대교의 특성상 현세 권력 장악이 목표인 것이다.
"나치 독일에서의 신 정권이 최초로 입법화한 법률의 하나는 동물의 권리에 관한 법률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기,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자 그룹이 인간 이외의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지위에 떨어지는 것인가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룹의 일원으로 1970년에 종 차별이라고 하는 말을 만들어낸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더가 있었습니다... 라이더는 로즐린드 & 스탠리 고드로비치와 존 해리스가 편집한 1972년 출판된 중요한 책 'Animals, Men and Morals: An Inquiry into the Maltreatment of Non-humans'의 기고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의 인간가치 센터의 생명 윤리학 교수인 피터 싱어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이 책을 비평했고, 공리주의를 토대로 하여 기본적인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그 연장으로서 싱어에 의해 1975년 'Animal Liberation'이 쓰여졌습니다. 이 책은 종종 동물의 권리 운동에서 바이블로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http://ask.nate.com/qna/view.html?n=8864924
해서, 리차드 라이더(Richard Ryder) 종 차별(speciesism)이라는 개념도 왜 하필 옥스퍼드에서 등장하였는가, 그리고 왜 1970년대에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것이다. 당장 드러나는 현상만으로 사태를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2. 페타(PETA)는 동물을 보호하는 단체인가, 동물을 학살하는 단체인가
<잉그리드 각하께선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인간들은 세상에 없는 게 낫고 자기 자신은 이미 불임수술을 했다며 "인간 아기를 갖는 건 순종 개를 갖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사치품일 뿐이에요." ... 그럼 여기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물애호가 단체의 창립자님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저는 가끔 아침 일찍 남들보다 먼저 우리 보호소에 가서 동물들을 안락사 시키기도 해요. 다른 직원들의 손에서 학대당하고 죽임당할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싫기 때문이죠. 제 손으로 수천 마리는 죽였을 거에요. 하루에 수십 마리를 죽인적도 있는걸요." "저희는 동물들에게 새로운 집을 찾아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이 원하는 동물들은 그들에게 입양시키기도 하지요.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동물들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이는 일입니다." ...뭐 씨발아? 가끔은 사람들이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는 동물들을 밴에 태워서 동물 보호소까지 데려가지도 않고 그냥 차 안에서 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 한다는군요. 동물 주인들은 좋은데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출처:본격 PETA 까는 포스팅 (1)
http://delacroix.egloos.com/tag/PETA/page/1
인드라는 상기한 포스팅을 한 분의 시각보다는 매우 온건하다. 그리고 이 분의 견해를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타에 모금을 할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이 분의 글쓰기를 읽고 나서 페타에 기부해도 늦지 않다는 점이다.
페타(PETA)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잉그리드 뉴커크는 1970년에는 지금은 이혼한 남편과 함께 주식중개인을 꿈꾸며 취업 공부하던 이에 지나지 않았다.
"In 1970, however, when she and her husband were living in Maryland and she was studying to become a stockbroker, a neighbor abandoned some kittens and Ingrid decided to take them to an animal shelter."
그러다가 이웃이 새끼 고양이를 버린다고 하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동물 보호소에 데려가기로 했는데, 이를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 1980년에 페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단 전후사정은 무시하고, 수많은 동물보호운동 조직이 있는데, 잉그리드 뉴커크가 빠른 시일 내에 페타를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만든 능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페타 주요 국제 지부들인 게다. 미국,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인도? 그리고 홈페이지에는 없는 홍콩^^! 마치 국제유태자본의 궤적을 따라가는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인드라만의 착각일까.
무엇보다 페타가 테러지향적인 동물보호운동을 지원했다는 데에 있다. 이는 순수한 듯 보여도 인드라가 보기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지원하는 전형적인 스타일로 의혹이 든다는 점이다. 마치 국제유태자본이 첩자로 심어놓은 중동 근본주의 단체 중 하나인 이슬람형제단과 같은... 평화지향적인 동물 사랑을 악마적인 동물 집착으로 변모하게 하는 이러한 특징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해서, 나마스테님의 좋은 말씀에도 불구하고, 인드라는 동물실험에 대한 저들의 집착이 순수한 동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보기에는 의혹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해서, 인드라는 이것만으로도 결코 페타가 순수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의혹들이 너무 많아 페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차 안에서 안락사를 시켰다는데 동물의 의사를 묻고 안락사를 시키는가. 이는 한 마디로 아동을 납치하여 차안에서 살해하는 것과 진배가 없는 것이다. 페타 측이 이미 실토한 만큼 이것만으로도 인드라는 페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페타의 누드 시위는 모피 판매에 오히려 보탬이 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물 보호론자들의 지속적인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모피 판매가 올해 급증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26일 보도했다. 영국에서의 올해 모피 판매는 지난 2년에 비해 30% 늘어난 5억 파운드에 달했다. 매년 4000만 파운드 어치 모피가 영국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세계 모피시장 규모는 1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모피협회는 "지난 2년 동안 모피 판매가 늘어, 모피업계가 45% 성장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세계적인 모델들이 모피사용을 반대하며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벗고 다기겠다"는 표어를 들고 시위를 한 이후 일부 디자이너들과 의류회사, 소비자들은 모피구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속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모피사장은 계속 성장한 셈이다."
모피제품 반대에도 판매 지속적 증가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306612&tid=3&sid=E
초기에만 잠시 효과가 있었을 뿐, 이후에는 모피반대 누드 시위를 멈춘 것도 아닌데 오히려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모피반대 누드시위가 정당성이 있다고 양보하더라도 효과 면에서는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인드라의 이마골로기론이 타당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마스테님이 모피업체 측이 중저가를 보급하고, 중국 등 새로운 시장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등에서 모피 판매가 늘어났다. 물론 경기를 타니 작년과 올해는 모피 판매가 주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드라 예상으로는 중저가에서 침체가 있을 뿐, 고가에서는 오히려 더 판매가 늘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이것은 마케팅 전술의 일환일 뿐이다. 명품은 명품대로 판매하면서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보급형을 파는 것 역시 판매책의 방법이다. 일단 가격 때문에 보급형을 사는 이들은 틀림없이 가까운 시일 내에 명품을 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서, 보급형이란 일종의 샘플이요, 삐끼인 셈이다.
예서, 모피 반대 누드 시위가 실패하는 세부 요인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다. 채식주의 광고에 나서려고 모델들이, 무명 모델이 줄을 서 있다고들 한다. 소정의 사례금이 지급되지만, 소액을 보고서 누드 광고에 나서는 것이 아님을 모델 지망생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다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모델들의 전향이다. 무명인 시절에, 혹은 덜 유명한 시절에 채식주의 광고에 등장하여 이목을 끈 뒤 곧바로 변절(?)하여 모피 패션쇼에 등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세계적인 톱모델인 나오미 캠벨이다. 그녀는 1997년 동물보호협회(PETA)를 돕기 위해 모피반대 포스터 캠페인에 참가했다가 몇 개월 뒤 밀라노 패션무대에서 모피코트를 입고 출연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모델 의도의 순수성, 광고 의도의 순수성, 단체 의도의 순수성 등이 모두 증발할 수밖에 없다. 해서, 누드 반대 시위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모피 판매가 급신장할 것으로 인드라는 예측한다. 인드라가 모피업체 관계자라면 페타 대표 잉그리그 뉴커크에게 익명으로 활동비 명목으로 거액을 지급하고 싶을 것이다.
http://cafe.naver.com/dslrbibl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27
4. 국제유태자본과 모피업체와의 협력 관계
그런데 나오미 켐벨, 그녀가 출연했던 모피패션쇼 브랜드가 명품 모피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FENDI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FENDI 제품을 사면서 LVMH그룹을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FENDI 제품만이 간직한 디자인과 역사, 그리고 그 가치를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LVMH그룹을 위해 돈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FENDI 제품을 사는 자신을 위해 투자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브랜드의 가치를 설명한다. 2005년 기준으로 매출은 180억불, 영업이익은 36억불이라는 실적을 달성한 LVMH그룹은 프랑스 공대 출신의 부동산 사업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 의해 명품그룹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아르노 회장은 1984년도에 이르러 당시 경영난에 처한 '크리스찬 디올' 인수를 시작으로, 1987년 '루이비통', 이듬 해에 '지방시', 1993년에 '겐조', 1999년에 '태그호이어', 2001년 '팬디' 등 60여개 브랜드를 인수했다................
1900년대에 세계 패션시장을 휩쓴 패션 브랜드들은 대개 가족주의 정서를 담은 브랜드였다. 특정 디자이너의 후손들이 선친의 브랜드를 이어받아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해서 세계 시장에 내놓았다. 반면, 이러한 유럽의 당시 풍조에 반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 브랜드는 '샤넬'이었다. 유태인 사업가를 초빙해서 가족주의적 브랜드 경영이 아닌, 시장중심주의적 브랜드로 확장을 꾀했다. 다른 브랜드들은 샤넬의 전략을 손가락질 하며 폄하할뿐 아무도 따라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오뜨꾸튀르(맞춤복)을 지향했던 반면, 샤넬을 화장품과 향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샤넬의 도전과 성공에 뒤이어 현재의 다른 유럽 브랜드들조차 향수와 화장품 사업에 도전하고, 베네통의 경우 레스토랑 사업도 겸하는 실정이다. " http://blog.daum.net/kongnamulstyle/12804189
오늘날 세계적인 여성 명품을 장악한 이가 누구인가 묻는다면, 베르나르 아르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특급 사업가이며, 프랑스 대통령인 사르코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며, 향후 프랑스 언론을 장악할 영순위 언론사 사주이기도 하다. LVMH이면 뭐지? 하겠지만 루이뷔통하면 아하~할 것이다.
"패션데일리뉴스(FDN) : 언제부터 프랑스와 세계 패션업계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보는가.
마리아 루이자 푸마이유 : 미국 출신 디자이너 톰 포드가 이탈리아 패션 그룹 「구치」에서 일하면서부터라고 본다. 지금부터 10~15년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자크 피카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금융 자본이 패션업계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한 지난 8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패션은 그때부터 하나의 산업을 뛰어 넘어선 거대하고 복합적인 글로벌 비즈니스가 됐다.
푸마이유: 동의한다. 패션은 이제 단일 회사의 범주를 넘어선 거대한 마케팅 체제에 의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http://www.fashionbiz.co.kr/PE/main.asp?cate=2&idx=109256
그렇다. 지난 80년대 이후로 세계 패션시장도 이제 가족 전문경영을 탈피하고, 샤넬의 경우처럼 유능한 유태인계 전문경영인 시대, 투자은행 시대로 접어들었다.
"Boo.com의 투자에는 이탈리아의 베네통(Benetton), 미국의 투자 은행 J P 모건(J. P. Morgan), 골드만 삭스(Goldman Sashs), 세계 최대 패션 기업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그리고 몇몇 중동의 거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이 Boo.com에 투자한 총 금액은 1억 3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유럽 내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자 중에선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부닷컴의 실패
http://www.linxus.co.kr/blog/view_post.asp?blogid=fastidio&post_seq_no=4089
"세계 최고의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낙후된 조선소 자리에 세계적 명사와 백만장자 들을 위한 초호화 요트 정박장을 건설하고 있다. 캐나다의 광산 갑부 피터 문크의 아이디어로, 2억 파운드(4천여억원)가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에는 프랑스의 거부 베르나르 아르노, 러시아의 억만장자 올레그 데리파스카도 돈을 댔다.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셈이다."
몬테네그로 '제2의 모나코'로 각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247908
그들에게도 실패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절이란 없다.
모피상 애스터 [John Jacob Astor, 1763.7.17~1848.3.29]
http://100.naver.com/100.nhn?docid=108358
"몰리 브라운의 소개로 잭은 존 제이콥 애스터-매들린 애스터 부부와 인사를 나눈다. 타이타닉 호 승선 당시 매들린 애스터는 로즈와 거의 비슷한 나이였으며,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임신을 한 상태였다. 존 제이콥 애스터는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2등 항해사 라이톨러를 설득하여 매들린과 함께 구명보트에 타려 했으나 항해사는 '여자와 아이들 먼저'라는 규칙을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는 구명보트 승선을 깨끗이 포기하고 매들린에게 장갑을 건내준 뒤 배에 남아 최후를 맞이했다. 타이타닉 호의 참사 후 살아남은 매들린은 넉 달 후, 아들(존 제이콥 애스터 5세)을 낳게 된다."
http://blog.dreamwiz.com/heavycat/5663799
"미국의 모피왕 존 제이콥 애스터의 현손(玄孫)이다. 1922~66년 런던의 〈타임스 The Times〉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영국 언론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다. "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5a0265a&ref=2#ID2
모피업은 예로부터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해서, 오늘날 NAFA와 같은 북미모피협회는 사업의 출발을 자랑스럽게 영국 왕실에서 찾기도 한다. 하여,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모자람이 없다. 세계 최고 부자로 언제나 록펠러와 함께 인용되는 만큼 자선사업 등에도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아울러 언론사 하나, 그것도 유력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 고객으로는 24세에서 44세에 이르는 여성들이 가장 모피를 많이 구입하고 있으며, 미국 여성의 20%는 모피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점차 일반화가 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구매이유 중 '따뜻함'이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나고 있으며 밍크 모피가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
http://cafe.naver.com/usedmin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1
페타의 모피 반대 시위를 하면 할수록 세계 여성들의 모피 구매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페타 동물보호소로 보낸 동물들은 동물보호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살해당할 확률이 매우 크다. 페타가 테러 동물보호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만큼 의약품 가격과 모피 값은 원유가처럼 치솟을 확률이 매우 크다. 마치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 원유가 고가가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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