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인은 왜 국유본론에 부정적인가?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2/03/14 01:34
http://blog.naver.com/miavenus/70133665873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60 : 당신의 지인은 왜 국유본론에 부정적인가?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2/03/14
세상은 요지경 :
제 주위에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술자리에서 국유본 얘기하면 4차원 소릴 듣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참 답답합니다.
인드라 :
번개를 하면 꼭 한 분 이상 말씀하시는 단골 질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질문을 주시는 레파토리이다.
해서, 그때마다 답변드리고, 번개 때도 말한다.
인월리에서도 쓴 바 있다.
허나,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다시 정리하기로 하자.
왜 사람들은 국제유태자본론을 말하면 대부분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미쳤다고 생각할까.
침묵의 나선이론/다원적 무지론
http://blog.naver.com/poverina?Redirect=Log&logNo=40007024396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소수설보다는 다수설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왜일까. 인간은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원시 시대 오랜 기간에 걸쳐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인간의 나약한 신체 조건 때문에 부족과 떨어져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이었다. 또한, 부족내 갈등이나 부족간 전쟁 등은 대부분 다수파가 승리하니 소수파가 된다는 것 역시 죽음이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서 소수파가 되면 죽는다는 기억이 인간 두뇌에 각인되었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다원적 무지론이다. 다원적 무지론에 의하면, 자신이 설사 소수설을 믿고 있더라도 대다수가 다수설을 따르면 겉으로 다수설이 옳다고 말한다.
EBS 실험
국제유태자본론은 다수설이 아니다.
하면, 인간 다수가 생존 때문에 다수설을 따르더라도 소수는 소수설을 따르거나 내놓고 따르지 않더라도 소수설을 지지할 수 있잖은가.
인식적 한계가 있다.
제3자이론
http://blog.naver.com/naughtymong/40060115223
제 3자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게 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하나,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병 속의 파리' 신세일 뿐이다. 해서, 병 속의 파리 둘이 있다 하자. 하나는 신의 존재 증명을 하려는 신학자 파리이다. 다른 하나는 신의 부재를 증명하려는 철학자 파리이다. 허나, 둘 다 파리일 따름이고, 병 바깥으로 나온 파리가 아닌 한, 둘은 하나마나한 논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둘, 인간은 개인차가 있다.
예를 들면, 78%와 21%와 0.9%와 0.09%와 0.01%는 다르다. 해서, 인간은 자신보다 상위 인간을 만나면 신적인 취급을 하기 마련이요, 자신보다 하위 인간을 만나면 인간 이하 취급을 하기 마련이다.
예서, 신과 '신적인 것'과의 차이가 발생한다. 신과 달리 '신적인 것'은 머리가 좋거나 힘 센 인간일 수도 있고, 백두산 호랑이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
슈퍼스타 K에서 락통령으로 뜬 동영상이다.
포부와 달리 실력이 미치지 못해 웃음을 선사한다.
역시 슈퍼스타 K에서 힙통령으로 뜬 동영상이다.
마찬가지로 신념에 비해 실력이 아쉽다.
여기까지가 우리네 생각이다.
선생도 이렇게 살아왔다.
헌데, 힙통령과 합통령을 리믹스한 동영상이 나왔다.
과연 당신은 이러한 힙합통령을 예상할 수 있었던가.
이때, 대다수 78% 인간은 자신보다 상위의 인식을 할 수가 없기에 단지 신의 작용으로 이해하면 끝이다. 또한, 21% 인간은 78%보다 상위의 인식이 가능하지만, 역시 철학의 작용으로 이해하면 끝이다. 마지막으로 0.9% 인간은 보다 상위의 인식, 즉 수학적/과학적 인식이 가능하여 신과 공생하나 신을 문제삼지 않는다.
문제는 세상에 수학적/과학적 인식이 가능한 인류가 넉넉잡고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셋, 같은 인간도 나이를 먹는다.
300인 위원회 버트란트 러셀 세습백작이 동성애 파트너였던 유태인 비트겐슈타인과 불화한 후 새로 사귄 애인이며, 유태인 조지 소로스의 스승인, 유태인 칼 포퍼는 "젊어서 맑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나이 들어서도 맑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집·차 다 팔고 전용기로 전 세계 돌며 사회변혁 꿈꾼다
'억만장자 노숙자' 베르그루엔 국내 첫 인터뷰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0478
인간은 짝을 찾는 시기인 청소년기부터 30대까지는 호르몬 영향 탓에 부정적 인식을 한다고 한다. 왜일까. 인드라는 짝짓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한다면 굳이 다른 짝을 찾을 이유가 있겠는가. 없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해도 짝을 찾지 못한다. 자신이 없기에. 결국 자존심이 지나치거나 아예 없을 때, 짝을 찾기 어렵다. 적당하게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을 때, 짝을 적극적으로 찾기 마련이다.
반면, 인간은 짝짓기가 종료가 되는 사십대 이후부터는 호르몬 영향 탓에 긍정적 인식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원시 시대 인간 평균 생존 수명은 30세 정도였다. 허나, 인간이 역사 시대에 접어들면서 평균 수명이 점차 늘어 오늘날 환갑을 넘어 칠팔십을 넘보게 된 것이다.
하여, 인간의 역사는 급속도로 변모하였으나, 인류의 삶이 급속한 진화에 맞추지 못해 불균형이 발생했다. 수 만 년간의 기억을 고작 수 천 년의 기억으로 대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게다.
바로 이 대목. 누구보다 생물학에 조예가 깊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청년층을 집중 공략하는 방법을 구사했던 것이다. 삼십대까지는 누구 말을 들을 여지가 있으나 사십대부터는 호르몬 작용도 그렇거니와 사회적으로도 회사에서 부장급이니 사실상 누구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일, 유태란 말만 들어도 여러분 의식 내부에서는 국유본이 오랜 기간 심어놓은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국유본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헐리우드 대작 유태인 영화를 만들어 보급시킨다. 유태인을 비판하면 아주 나쁜 족속인 게다.
이, 대부분의 교과서와 언론은 히틀러 = 극우 = 나쁜 것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흔히 수구꼴통 언론이라 부르는 조선일보조차도 이 공식에 충실하다. 이 공식에 충실하면, 쪽발 일성, 쪽발 돼중, 쪽발 놈현, 쪽발 지태, 쪽발 원숭은 우리 편, 심산, 조만식, 안중근, 김구 선생은 극우 꼴통 나쁜 편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삼, 미 국무부는 매년 전세계 반유태 움직임에 대해 백서를 내면서까지 감시한다. 근래에 미국무부 백서는 이원복 만화에 등장하는 반유태 묘사를 문제삼은 바 있다.
소수파에 대해서도 안전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소수파 인식을 지니더라도 자체적인 검열을 하도록 구조화한다. 이러면, 21% 소수파는 국유본에 순종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인간 감성을 이용해서 호감을 사도록 노력한다. 그 다음에는 인지부조화를 유도한다. 그후 진영 논리를 구사한다. 이 삼단계에 걸려들면 피라미드 조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쪽발 놈현이는 쪽발이지만, 김구 선생보다 낫다? 하는 이상한 논리에 치중하게 만든다. 허나, 논리 구조가 형편이 없다 보니 골이 아파 온다. 해서, 등장하는 것이 수면용 논리이다.
쪽발 놈현이 그립습니다.
누군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자빠져서 자면 진리가 되는 신기한 논리인 게다.
헌데, 이 마법을 푸는 주문이 있다.
- 노빠? 니 애비가 쪽발이냐? 쪽발이도 아닌데 왜 노빠야?
인간이 생존을 우선시하는 것은 존재론이다.
인간이 보고 싶어하는 대로 보는 것은 인식론이다.
남은 것은 실천론이다.
하나, 소극적 무관심이다.
한국 주요 직위 이만 오천개 이상을 임명할 수 있다는 대통령 선거조차도 투표하지 않는 층이 50%에 육박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누가 되든 상관이 없는 층이다. 누가 되든 상관이 없는 층은 둘이다. 국유본처럼 부와 권력을 쥔 이들이거나, 반대로 누가 되도 권력의 사각지대로 남은 이들이다. 누가 되도 권력의 사각지대로 남은 이들은 누구인가. 말 그대로 어떤 넘이 정권을 잡든, 힘든 인민이다.
혁명이 발생하면, 이들 인민은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첫째,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재산은 물론 쪽발 돼중, 쪽발 놈현 재산을 몰수한 뒤, 관계자들을 모두 인민재판에 회부해서 그 죄를 물어 삼족을 멸할 것이다.
둘째, 쪽발 엠비씨 간부, 쪽발 판사, 변호사, 시민단체 운동가를 비롯하여 부화뇌동에 적극 이바지한 자들을 색출하여, 그 죄에 따라 죄를 묻고, 모두 인민재판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구족을 멸한다.
셋째, 쪽발 정보 단체(국정원, 기무사 등)를 일망타진할 것이다. 단, 적극적으로 투항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보호할 것이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구술하지 않을 것이다. 그간 인드라와 접촉한 이들에 대해서는 선처할 것이다.
둘, 능동적 무관심이다.
국유본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바로 그러하기에 겉으로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 쪽발 통합진보당에서 출마하는 간부급들은 알 것이다. 쪽발 민주통합당에 묻어가는 것이 최선임을. 허나, 쪽발 통합진보당 당원/지지자 생각은 이와 다르다. 새누리당과 쪽발 민주통합당이 아닌 제 3의 가치에 방점을 두었기에 당원/지지자가 된 것이니까.
바로 이 대목이 쪽발 통합진보당 간부급과 평당원/지지자들의 간극인 게다. 전자는 세상 이치를 대략 눈치까고 있다. 어차피 버린 몸, 이렇게라도 출세하자는 생각이다. 반면, 평당원/지지자들은 순진하게 국유본의 의도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셋, 적극적 관심이다.
국유본론이 진실이기에 오히려 국유본론을 활용하여 국유본에 가까이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국유본론에 접근하면, 그만큼 국유본 권력에 도달할 수 있다.
1% 이내 인간의 사유법이다.
아무나 이런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어느 정도 자격이 된다 여기는 이들이 나서는 방식이다.
인드라는 지금까지 존재론, 인식론, 실천론 차원에서 왜 국유본론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면 4차원 취급받는가를 고찰했다.
하면, 이에 대한 대응책은 없을까.
불완전하지만, 있다.
하나, 존재론적 의문을 표하는 데에 대하여
간단히 말해, 국유본만 빼고 이야기하면 된다. 예를 들자. 세상이 말이야. 우연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신이든, 악마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외계인이든, 누구든 말이야. 이 세상을 누군가 쥐고 마구 흔드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는 그건 그래, 라고 말할 가능성이 크다. 허나, 그게 바로 '국유본'이야! 하면, 지지율은 90% 이상에서 1%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반면, 그간 인월리에서 말한 현상을 국유본만 빼고 말할 수 있다면, 상당수 지인들이 그건 그래 하면서 님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어디서 그런 고급 정보를 얻어왔냐고 말이다.
이것이 1%의 의문일 것이다.
둘, 인식론적 의문을 표하는 데에 대하여
이 문제도 역시 간단하다. 인식론적 의문을 표한 이들은 존재론적 의문을 표한 이들보다 한층 소수설에 자유로운 이들이란 점을 착안하면 된다.
인식론적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논리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좋아. 니 말이 옳다 치자. 헌데,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야, 왜 세계는 네 말에 조용하지? 설마 이 세상 69 억이 너 하나보다 못하다는 건 아니겠지?
이에 대해 당신은 무엇이라 답변할까.
상식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사의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출처] 패러다임 [paradigm ] | 네이버 백과사전
허나, 상식적인 설명에도 납득하지 않는 층이 있을 것이다.
정통 보수이거나 급진 진보인 이들의 공통 사항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묻는 게다. 공간과 시대를 초월해서 묻고 있다.
이것이 0.1%의 질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묻는 수밖에 없는데,
이러자면, 님이 그것을 경험해야 하는 난관이 있다.
다만, 이 대목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층으로 갈수록 국유본론을 반신반의하지만,
오히려 상류층으로 갈수록 국유본론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설을 이해하겠는가?
셋, 실천론적인 의문을 표하는 데 대하여
쉽게 가자.
만능 국유본 권능이라면 인드라 죽이면 쉽게 끝날 문제인데, 왜 인드라를 내버려두나.
국제유태자본론은 정설에도 비판적이고 음모론에도 비판적이다.
웹은 쿨한가
http://readmefile.net/blog/archives/000102.html
국제유태자본이 인터넷에서 음모론이 판을 쳐도 막을 생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국유본이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음모론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에 온갖 음모론을 방목하는 것이 오히려 국유본에게 유리한 게다.
해서, 하책은 직접적인 통제다.
국유본이 모든 음모론을 통제한다면, 그만큼 국유본 권력이 위태롭다고 보아야 한다. 하면, 쪽발 정은 정권은 지금 모든 음모론을 통제하는 데도 권력을 유지시키는 비결은 무엇인가. 국유본이 쪽발 정은 후견인이기 때문이다. 해서, 국유본이 지금 당장 전략을 수정하면, 쪽발 정은 정권은 48시간 이내에 붕괴한다. 즉, 한민족의 공공의 적이자 쪽발 개색희인 정은 씹색희는 인민의 돌팔매질에 의해 처형당한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사회복지와 경제발전을 위하여
허세욱과 박정희의 이름으로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 정은 총살로 2012년을 통일 원년으로!
진달래 혁명 만세!!!
중책은 국제유태자본론을 음모론 중에 음모론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유본론이 다른 음모론에 비해 낫다고 평가한 이상 국유본이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즉각 인드라 주변으로 국유본 인물들이 파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드라의 모든 것을 조사할 것.
인드라 약점을 파악할 것.
국유본론을 세밀히 조사할 것.
국유본론의 약점을 분석할 것.
하책과 중책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책은 단지 인드라라는 개인을 억압하는 것 다름 아니다. 허나, 인드라라는 개인을 억압함에 따라 오히려 인드라 사상과 이념이 세상에 알려진다. 초창기라면 인드라 개인을 억압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나, 대한민국 사정이 초창기를 넘어서고 있다. 하여, 중책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책이란 인드라라는 개인을 억압하기 보다 오히려 활약하게 하는 것이다. 대신, 조건을 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약점을! 한편으로 저항적 이미지를 통해 저항 세력을 조율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치명적 약점을 통해 결정적인 데서는 저항 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대부분의 반응은 실망스러울 것이다. 국제유태자본론? 아하! 유태인의 세계정복론 말이지? 시온의정서? 아니면 예수회 음모? 프리메이슨? 그것 다 조작이야. 너, 히틀러 추종자냐? 이런 식의 반응을 얻기 쉬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래, 여기까지,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지? 라는 질문인 게다. 네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 해도 국유본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기에.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그것은 교환할 수 있는가.
인드라는 말한다.
책 내지 않겠다. 언론에 출현하지 않겠다. 정치하지 않겠다.
이런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해서, 상책이다.
상책이란 무엇인가.
그나마 근거를 요구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편견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다만, 근거로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것이 전문성이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제외하고서는 모르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 아는 분야에 한정되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등장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옳게 보여도 일반화할 수 없지, 일반화의 오류를 고려해야 하지."
인드라는 이 단계에 도달한 바 있다.
전문화에 도달한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난 인간이다, 외에 다른 표현이 없다.
짐승이 아니다, 라고 번역하지 말길 바란다.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신적인 이들에 대해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유본이다.
헌데, 님은 이를 참으로 쉽게 이해한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님은 목숨이 달린 일을 쉽게 가나?
아니라면, 다시 인월리를 읽기 바란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을 쉽게 가면 섭섭한 면이 없을 수 없다^^!
해서, 조급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서 님이 국유본을 이야기하는데, 상대가 실천론적으로 오면, 쉽사리 답변할 수 있겠는가. 인드라가 현재 하기 힘든 답변을 말이다. 바로 여기서 승부가 갈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잔인한 패배를 맛보아야 한다.
허나, 거기서 역설적으로 국유본론의 가능성이 잉태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패배한다,
허나, 내일은 이길 수 있다.
조건을 넘는다는 것.
훗!
아무나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국유본이 동종 상대로 여겨 승부욕을 느끼게 한다는 것.
당신이 이 지경이라고?
꿈깨라!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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