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 우주론에서 찾는다 국유본론 2011

2011/05/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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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해법, 우주론에서 찾는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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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

인드라 선생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인월리 선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배움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한 편으로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이러다 나조차도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인드라: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고 싶습니다. 일단 이 그림을 생각해보세요. 같은 크기이지만, 주변 영향으로 크기가 달라 보입니다. 착시현상을 통해 인간 경험이 주관적이고,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와 같은 착시 현상이 김종화 선생과 인월리 선생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인월리 선생에 끌리는 대목이 주로 물질적 욕망 부분에 있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인월리 선생 글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보다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적은 비율이더라도 인월리 선생 글 중 신비적인 면에 일부 호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선생이 이러다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전혀 신비적인 면에 끌리지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요. 가령 선생이 신비주의에 걱정이 크다 하지만, 만일 선생 주변이 신비적인 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로 이루어졌다고 합시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 정신세계에서 신비적인 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하든, 그들은 선생을 신비주의자로 치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인월리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종화 선생과 소통하는 만큼 과학적인 면이 있습니다. 만일 인월리 선생 주변에 기존 과학을 모두 도외시하는 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월리 선생은 그 집단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인간 경험은 주관적입니다. 객관적인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숱한 경험들 중에 그간 관습적으로 적당히 맞아 사용함에 불편함이 없는 주관적 경험들을 주관적 경험들과 분리시켜 특별 예우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특별 예우를 받는 주관적 경험들이 어느 때부터 맞지 않는다면, 특별 예우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선생은 인월리 선생에게 배움거리가 있다면 인월리 선생에게 배웁니다.

   

김종화 :

선생 말씀을 듣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인드라 선생은 기가 강한 분이니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 저는 귀가 얇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하면 그런 듯싶고, 저 사람이 저 말하면 또한 그런 듯싶습니다.

   

선생 말씀대로 제가 인월리 선생에게 배움을 계속하다보면, 인드라 선생과 달리 저는 그 특별 예우를 언제 그만둘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같이 수준이 낮은 사람이 그런 구분을 할 수 있다면, 제가 오늘날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제 수준을 너무 높이 보시는 것이 아닙니까?

   

인드라:

하하하. 재미있는 말씀이십니다. 선생이 자세를 낮추고 경청하는 태도로 볼 때, 다른 이들보다는 수준이 높으십니다. 그건 그렇고, 선생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보세요. 저는 그때마다 참 경이로운 경험을 합니다. 그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입학식을 하는 이들은 어디서나 젊습니다. 반면 유치원생도 졸업식을 하면 어딘가 어른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20대까지는 졸업식을 하는 기분으로 살자. 그리고 30대부터는 입학식을 하는 기분으로 살자.

   

우리는 계속 늙어가나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젊어지는 과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늙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그 과정이란 우리가 편의상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입학식과 졸업식처럼 말입니다. 입학식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반면, 졸업식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입학식과 졸업식이 무한하게 교차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선생이 인월리 선생에게 감화를 받아 신비주의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대다수가 평생 신이 있나, 없나를 번뇌합니다. 아주 극소수 사람들만 확률적으로 자신 신념을 의심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무신론자인가. 유신론자인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보수냐. 진보냐. 남자이면서 내가 여성성이 강한 것이 아닐까. 여성이면서 남성성을 고민하는 이들 등등.

   

이에 대해 저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차원적으로 보지 말고, 차원을 높여 삼차원적으로 보자고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수준입니다. 높이입니다. 혹은 깊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무신론인 사람과 무신론 - 유신론 - 무신론인 사람이 토론하면 후자가 더 힘을 발휘할 공산이 큽니다. 유신론인 사람과 유신론 - 무신론 - 유신론인 사람이 토론하면 후자에게 더 신뢰가 가는 편입니다. 이는 기회주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평생 한 길을 가는 분들을 변호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길을 꿋꿋하게 가는 분들은, 이미 마음 속으로 다양한 길을 걸어가셨기에 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고 보니, 삼차원이 아니라 사차원인 셈인가요? 하하하.

   

제가 드리고픈 말씀은 이렇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면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 생각나시죠? 혹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처럼 시간의 장벽에 막혀 죽지 않는 삶을 산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마음으로도 불륜을 저질러도 불륜이다, 라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 말씀에 반대합니다. 마음으로 무엇이든 상상하자고 제안합니다. 마음으로 불륜도 저질러보고, 살인자가 되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하고, 왕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하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처럼 인드라망을 구축한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김종화 :

부족한 제가 보기에, 인월리 선생이 노자라면, 인드라 선생은 아인슈타인 같습니다. 늘 기발한 말씀으로 우리를 안심하게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립니다. 인월리 선생이 왜 뜬금없이 타임머신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인드라 :

인월리 선생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미루어 짐작하는 바는 있습니다. 이는 수의 기원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화 :

수의 기원이라구요? 방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학생들 숙제 질문이 많네요. 대체로 쐐기문자에서 보듯 원시시대 때 사냥한 동물들을 표기하면서 숫자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잘 기술한 것 같습니다.

   

인드라 :

잘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현상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김종화 :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인드라 :

선생이 말씀하시듯 인터넷에서 말하는 수의 기원이라는 것은 경험적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늘날 과학은 두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험과학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론과학입니다. 그런데 이론과학을 근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수가 아닙니다. 수는 고대서부터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오늘날 스위스 비밀금고를 여는 암호와 같습니다. 혹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회의와도 같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말합시다. 아이들에게 하나, 둘, 셋 하게 하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가감승제 연산법칙을 이야기하면, 아이들 반응이 어떠합니까. 모르죠. 뭔 말인가 멀뚱멀뚱합니다. 가감승제 연산법칙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학습해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에게 가감승제 연산법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영원히 수에 대해 무지할 것입니다.

   

이처럼 숫자 발명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에 매우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오늘날 잠정적인 가설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숫자를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는 한반도가 숫자 기원일 수도 있습니다. 왜인가요. 숫자 발명은 농경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제 소견이기 때문입니다. 농경문화에서 왜 숫자가 필요한가요? 엄밀히 말해, 수 개념이 왜 필요한가요. 농사란 수렵, 채집을 훨씬 뛰어넘어 계획적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측을 해야 했습니다. 야생동물을 수렵하고, 야생식물을 채집하는 데에도 계획이 필요했겠지만, 이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가 된 것은 농경시대를 거치면서부터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과 인도에서 숫자 개념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 소로리에서 세계 최초 벼농사 흔적이 나왔던 만큼 세계 최초 숫자 개념은 한반도에서 발생했다고 추론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흔적들이 서양으로 이어져 동양문화를 흡수한 피타고라스 학파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김종화 :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숫자가 굉장히 특권적인 것 같은데요. 맞나요?

   

인드라 :

네. 그렇습니다. 특별 예우 맞습니다. 아무나 명곡을 만들 수 있다면, 왜 우리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찬미할까요? 아무나 이론을 만들 수 있다면, 왜 우리가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를 찬양할까요? 수학, 음악, 철학 사이에는 연관이 있습니다. 심지어 평등사회를 선전만 했던 스탈린 정권 치하에서도 과학자들은 우대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천재들이니까요.

   

근래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칭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드라가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교육법만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유태인 엄마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 엄마 교육입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개 같은 민주화 정권 이후로 이런 풍토가 사라졌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모두 지옥에서 최소한 백만 년을 고생할 넘들이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기꾼들이니까요. 이들은 늘 한국 학부모 탓을 합니다. 정확히는 한국 엄마 탓을 하죠. 왜인가요? 국유본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강남좌파 교육감들을 직선제로 해서, 강남좌파 교육감들이 저리 행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한국 엄마들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유태인 엄마들이 사니까요. 강남좌파 교육감들은 총살감입니다. 한반도인 정신세계에 대못을 박는 존재들입니다. 이완용만도 못한 놈들입니다. 인드라가 볼 때, 국유본이 한국인 천재성을 어느 정도 견제하려는 수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우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학자에 대한 특권 예우는 세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세습되나요? 세습되지 않습니다. 당대에서만 인정받을 뿐입니다.

   

보세요. 과학자들이 자신이 과학자 생활을 오래 하니까 과학자 생활을 세습시켜달라고 귀족 공기업, 재벌기업 노동자처럼 말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종화 :

하하하. 인드라 선생과 인월리 선생 공통점을 방금 발견했습니다. 선생들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히 큽니다. 그것이 선생들 매력입니다.

   

다만, 전 별 관심이 없네요. 과학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면야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과학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똑똑한 머리로 물리학과를 가고, 기계공학과를 가서 인생 조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보다 나쁜 머리로 변호사가 되고, 친일파가 되고, 악질친일파 재산반환소송 같은 것 승소해서 국유본 눈길을 끌어 나쁜 머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국회의원도 하고, '참 나쁜' 대통령이 되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이야기라고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서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왜 이 세상은 글러먹었습니까.

   

옛날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물리학 강의실에 들어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교수는 시간강사였습니다. 그 시간강사는 우주를 설명했습니다. 우주가 당구알과 같다고 말입니다. 그때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아무도 그 당구알을 큐대로 최초로 때린 존재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물리학 교육만 이 따위인 것일까 싶어 약 한 달 동안 삼수할 생각을 하기도 하다 포기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 교육도 같다는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대학교육에 아무런 미련을 지니지 않게 되고, 시위에 적극적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국유본에 이용당한 것이라 여깁니다만.

   

인드라 :

정말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 시간강사가 뉴튼 세계관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하다 보니 무리를 한 것이군요. 선생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교육은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학교란 공장입니다. 공장에서는 규격품을 양산해야 합니다. 선생처럼 아주 특이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선생과 같은 이들은 혼자 알아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ㅎㅎㅎ.

   

선생 반발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 관찰자에 대한 비중을 중시하는 양자역학 물리학 관점 대신 뉴튼 물리학 세계관만을 소개한 점입니다. 둘, 유기체적 세계관입니다. 가이아 지구에서 보듯 생물/무생물로 구분하는 근대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셋, 과학 기초는 물리학이죠. 이 물리학 토대에서 우리 일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 그 시간강사가 우주를 조금 더 멋지게 말할 수 있었다면, 한반도가 이미 통일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김종화 :

방금 뜻밖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 반발을 해석하는 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첫째, 둘째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는 제 짧은 머리로 이해가 어렵네요.

   

인드라 :

네. 가감승제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 대목에서 고민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것까지 이해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신과 자연'이란 책을 쓴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한 맑스 비판이 있습니다. 맑스 주장 중 핵심 주장이 있습니다. 끈을 잡아당기면 약한 부위부터 끈이 끊어진다. 여기서 누가 그 주체가 되는가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면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정색을 하며 그것이야말로 맑스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읽고, 또 읽은 결과, 그레고리 베이트슨 말이 옳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똑같은 혁명이라도 그것이 영국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한국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풍토라는 게 있습니다. 사상이란 그 풍토와 같이 수출하는 것입니다.

   

그간 고민해왔던 것이 그레고리 베이트슨 말과 함께 눈 녹듯이 녹으면서 든 생각은,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맑스의 합일점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맑스가 그리 말한 배경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말한 배경이 다르기에 나온 것입니다. 맑스는 자신이 획득한 지식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당대 분위기란 쓸모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 인드라가 처한 현실과도 같습니다. 돈이 되어야죠.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맑스가 그리 말했지만,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맑스를 기원으로 사회주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입니다. 만일 역사가 프르동이나 바쿠닌으로 시작하는 사회주의였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렇습니다. 누가 원조냐 하는 것이 인류사에서 중요합니다. 왜 당대에 맑스는 이를 부정했던 것이고,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왜 긍정한 것일까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맑스 시대에는 아직 세계 주인이 국유본인지 불확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레고리 베이트슨 시대에는 세계 주인이 있었습니다. 국유본입니다.

   

김종화 :

머리가 복잡해지려고 하네요. 이쯤해서 원론적인 질문 좀 몇 가지 드립니다. 왜 현대물리학자들은 그리도 차원에 집착하나요?

   

인드라 :

비유하면, 차원이란 산이기 때문입니다. 산 고도가 낮으면 산 전체 지형을 파악하는데 방해물들이 많게 됩니다. 그래서 산 정상으로 오를수록 세상 모양새가 한눈으로 보이지요. 이를 사차원적으로 설명합니다. 길을 가던 어느 날 불쑥 도로에 이상한 물체가 출현했다 사라집니다. 일차원적 인간은 이차원적 현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차원적 인간은 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물리학자들은 보다 높은 차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난제이던 숙제들을 풀 수 있으니까.

   

김종화 :

초끈 이론이라는 게 왜 등장했나요?

   

인드라 :

그간 물질론은 세상을 잘게 나누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되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현대 물리학에서는 다양한 입자들이 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입자들이있다는 것은 그 배후에 더 공통된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끈이론인 것입니다.

   

입자론에서 막히면 파동론으로 가고, 파동론에서 막히면 다시 입자론으로 회귀하는 것이 그간 역사였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말합니다. 인드라도 술에 취했어요. 다음에는 평행우주론 강의를 해볼까 합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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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소방:

고의적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과대선전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관측해야만 비로소 결정이 된다는 말은 숨겨진 차원이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이와 지연의 물리학 버전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영웅은 운명(결정)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관측되는 과정이다) "아이언맨~ 영웅이 바로 우리 옆사람이거나 나도 한번 어떻게 될 수도 있겠구나 순진하게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은 낚인 겁니다. 경우의 수라고 하는 수많은 곁가지들은 줄서기 라인이군요.

   

국유본 :

"안녕하세요. 인드라님. 저는 25살 대한건아입니다. 덧붙여, 저는 망가졌으며, 망가진 채로 실존하는 특성 없는 아이입니다. 인드라님의 글을 보는 시간은 매우 즐겁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흥미위주의 즐거움이라기보다, 철학 의학 심리학 [인간 탐구], 역사 종교 경제[사회 탐구] 호기심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쪽지 드리게 된 계기는 파천황기>가위눌림, LDS, 아이도저, 신비체험 http://blog.naver.com/miavenus/70044279450 의 글을 읽고 난 후입니다. 저 또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이것을 탐구 하다가 묻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다시 탐구 하고자 생각이 들었어요. 신비체험의 조건은 이러하였습니다.

   

1. 한 가지 문제로 온종일 생각할 때

   

2.몸이 아주 피곤하고 외부의 강압적인 힘이 작용할 때.

   

저는 유아기부터 저를 몰아붙이는 경향을 있었습니다. 자신 주의의 모든 사건에서 "나는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이상의 괴리감을 일치하려 부단히 노력 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활동 중에도 나를 탐구하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탐구 현상을 객관적인 정보를 배제하고 제 주관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계속 탐구하며 최근까지 저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했습니다. 그러므로 1번의 조건과 부합됩니다.

   

저는 울산 자동차공장 컨베어 벨트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공장에서의 일은 단순 기계적인 노동입니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어떤 활동을 하던지 생각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기계적인 노동이었으므로 종일 문제를 탐구하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야간 8시부터 2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다시 2시간 일하고 1시간 내지는 30분 쉬고(식사) 다시 두 시간 일하고.. 반복했어요. 더군다나 저의 역할은 쌓인 제품을 대차에 실어서 지정된 장소에 입고하는 다소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의 조건과 부합됩니다.

   

저는 밤 00:30분부터 1:00까지 선잠을 자곤 했어요. 그때 가위를 눌리곤 했는데 10분 잠이 들고 가위눌리고 깨고 10분자고 가위눌려서 깨기를 반복했어요. 30분만 자야 된다는 압박과 나를 탐구하는(탓하는) 의식이 자면서도 이어졌으니까요. 제 경우는 연기로 감싸여져 있는 악마같이 보이는 상반신이 누워있는 제위로 위치하여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신기한 것은요.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자다 깨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가위 눌린 후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겁니다. 저는 이 현상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생산 노동과 함께 이 현상이 사라져 묻어 두었습니다만 인드라님의 글을 읽고 다시 탐구하려고 합니다.

   

인드라님. 앎이란 정말 유익한 것일까요? 저는 인드라님의 글을 읽고 많은 부분의 고뇌가 해소 되었습니다. 물론 인드라님의 글을 읽을 환경과 객관적 팩트를 읽을 단계까지 저 스스로 구축했지만. 객관적인 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착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착각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팩트에 근거 한다 하여도 팩트를 초월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희미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겨누던 창을 사회에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파멸로 이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인드라님께 이런 막연한 불안감을 두서없이 쓰게 되었어요."

   

   

"뇌파는 알파, 베타, 세타, 델타파가 있다. 평상시에는 베타파가 나오며, 명상을 하면 알파파가 나온다. 그리고 비몽사몽 선잠을 잘 때는 세타파, 깊은 잠을 잘 때는 델타파가 나온다. 우리가 꿈을 꾸는 때는 세타파가 나올 때다.

   

인간은 잠을 자지 않고서도 세타파가 나오게 하는 방안을 연구한 것이 술, 담배, 커피, 마약 , 약물 등이 아닌가 싶다. 세타파가 나오면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증진되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며, 길 찾기, 호기심, 집중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나는 청소년 시절, 대부분 선잠을 잤으며, 똑같은 꿈만 많이 꾸었다. 또한 가위눌리기를 많이 당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위눌리기를 즐기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가위눌림을 당해보기도 했다. 가족들은 안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도사짓거리하면서 방안에서 꼼짝 않고 도 닦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습관을 강화하다 보면 일순간 우습게도 약간의 투시력이랄까 그런 것이 발생하는 듯도 싶다. 마치 내 자신이 엄청나게 작아지거나 혹은 커지는 느낌이랄까.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맹목을 피해야 한다는 게다. 방법론적으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믿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만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도구가 아니라 목표로 보이는 순간 무협에서 말하는 소위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다. 극히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신기하게도 대학에 와서 중지되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당시 나는 수에 관해 재미있었다. 나는 수학을 잘 한다고 착각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어는 성문영어, 수학은 정석이었다. 나는 정석 참고서 한 문제 풀면서 그날 하루를 보내기를 즐겨했다. 잘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아했다. 해서, 인문계열이 아닌 자연계열에 간 것이다. 민도 이 점에서 나를 닮았다. 기본 이해만 갖추면 수학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다만 구구단을 못 외우는 단점이 있다. 이조차 나를 닮았다. 해서, 수를 가지고 이리 저리 장난을 쳐보고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이것이 오래 전에 피타고라스라는 이가 고민한 대목이었던 게다. 지금부터 이천오백여년 전에는 공자, 노자, 부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피타고라스 등 기라성 같은 이들이 동시적으로 출현하였다. 나는 과연 이것이 우연인가 생각해 본다. 혹시 어떤 사건이나 자료가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이 아닐까. 이를 각 지역 특색에 맞게 나름대로 성찰을 도출한 결과가 아닐까.

   

하여간 이 짓거리 좀 하게 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다음 단계가 현대물리학이니 아인슈타인이니 하는 것과 SF 탐닉인 게다. 여기서 청년 시기까지 이어지면 뉴에이지로 빠지게 마련인데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학에 오자마자 운동권 탓에 관심이 사회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기본적인 삶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이 물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이치이겠다. 이제야, 올해 들어서야 나는 운동권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감방에 갔을 때 일차로 감지하였고, 유럽여행 맑스 기념관에서 이차로 감지하였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글쓰기와 같은 것인가. 나를 버릴수록 세상을 얻는다.

http://www.cowhiterose.net/bookinside/bookinside_list.htm

   

무지개요정 통통에도 보면 생명의 나무가 등장한다는 점 참고하길 바란다. 문성호는 뉴에이지적 이론을 섭렵하여 책을 내었는데 절판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사이트에서 전문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카발라 생명의 나무에서 아누와 초끈 이론까지.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정리가 쉽게 된 편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뉴에이지적이라 하여 독실한 기독인을 자처하면서 움찔하는 분이 있을 게다. 걱정하지 마라. 누구보다 뉴에이지에 관심 많은 이들이 목사나 신학생임을. 프랑스혁명의 숨은 주역 조제프 푸쉐나 스탈린이 어디 출신일까. 게다가 니체는 목사의 아들이지 않던가. 내 취향을 말한다. 변두리에 취향이 있다. 운동권 날라리, 성당 날라리, 개신교 날라리, 이슬람 날라리를 좋아한다. 그처럼 뉴에이지 날라리도 좋아한다. 흠뻑 빠진 뉴에이지스트는 곤란인 게다.

   

카자르사전에 따르면, 하자르 왕국에는 왕이 둘 있다 했다. 카간과 베이. 예서 카간을 뽑는 것이 흥미롭다. 베이가 카간이 될 재목을 뽑아서 '끈'으로 목을 죈다는 것이다. 숨이 막힐 쯤에, 즉 비몽사몽 할 때쯤에 묻는다는 것이다. 왕 노릇을 언제까지 할래? 얼마라고 말한다면, 그때까지 왕을 시킨다는 게다. 만일 그 이전에 죽으면 다행이지만, 말한 것 이상으로 카간이 살면 살해한다는 게다.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윤회를 거듭하였고, 그때마다 베이 역할을 한 칼맨이 나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늘 칼맨에게 죽임을 당했다. 난 칼맨의 얼굴마담이었던 게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00397279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죽기 일보 직전에 가서 하는 말은 상대에게 진실하게 보인다. 마치 꿈처럼. 또한 창조성이 가장 빛을 발할 때다. 하자르 왕국의 왕 추대 의식은 인간 의식을 무섭도록 파고들어 만든 제도로 보인다. 또한 아무나 뽑는 양식은 오늘날 티벳에서 달라이라마 뽑는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임에도 현 시점에서 이 일화가 전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포다. 당신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순응한다면 제한된 자유와 권능을 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따끔한 훈계가 필요하다. 죽음과도 같은 순간을 맛보아라. 주가폭락! 그러나 그대를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그대를 보다 길들이기 위함 다름 아니다. 약점이 너무나 많은 그대를 사랑한다. 원칙에 딱 부합한다.

   

카자르 왕국에서는 두 강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강이며, 다른 하나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26502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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