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미트라 1 (수메르에서 페르시아까지)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2/04/09 07:35
http://blog.naver.com/miavenus/70135616065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79 : 인드라 VS 미트라 1 (수메르에서 페르시아까지)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2/04/09
0. 수메르 이전에는 문명이 있었는가.
1. 신화는 수메르로부터 시작하였다.
2. 수메르 대홍수 신화의 엔릴(새, 봉)과 엔키(뱀, 용)이라는 신들의 대립 구조가 세계의 선악 신화들을 탄생시켰다.
3. 노아 대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4. 새, 봉 계열은 사자, 독수리, 늑대, 매, 까마귀로 하늘과 태양의 신으로 변형하고, 뱀과 용 계열은 황소로 대지와 물의 신으로 변형한다.
5. 길가메쉬는 하늘의 황소를 죽인다.
6. 이슈타르는 죽은 황소를 부활시키며 황소를 그리워한다.
7. 대홍수 이후 바빌론에서는 대홍수 책임을 물어 엔릴의 인기가 추락하고, 달의 신, 난나르가 최고신으로 등극한다.
8. B.C 3000년대 대홍수 이후 이집트 왕조가 성립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9. 호루스는 대기와 불의 신이지, 태양신이 아니다.
10. 이집트 제 5왕조 우세르카프 때부터 태양신 라가 최고신이 되었다.
11. 엔릴 일족은 바빌론을 떠나 이집트에 당도하여 태양신 일족으로 거듭난다.
12. 이집트에서 아크나톤 유일신 사상이 전 세계 최초로 성립한다.
13. 기원전 13세기 무렵 모세는 람세스 2세 때 아크나톤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하고 이집트를 탈출한다.
14. 가나안에 정착한 사울, 다윗, 솔로몬 시대는 태양신과 달신의 융합 시대였다.
0. 수메르 이전에는 문명이 있었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나 현재까지 99.99% 허망하다.
0.01%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1. 신화는 수메르로부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동남쪽에 있었다고 하는 바빌로니아신화에 등장하는 낙원의 옛 지명. 틸문(Tilmun)이라고도 한다. BC 2520년경 라가시의 왕 우르난셰의 옛 수메르어 각문(刻文)에서부터 BC 710년경 사르곤 2세의 아시리아어 각문에 이르기까지 약 1800년간에 걸쳐 수메르아카드어 각문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 이곳은 페르시아만과 인더스강 지방 사이를 왕복하는 배의 중계지점(급수지)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우르난셰의 기록에는 목재의 공급지로 되어 있다. 딜문의 위치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1946년 P.B. 콘월의 연구와 1953년 덴마크의 G. 비비의 조사 등으로 역사상의 딜문은 페르시아만 서쪽 연안에 있는 바레인섬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딜문이라는 지명은 수메르어의 신화적 원전(原典)에도 나타나 있어 옛날에는 신화적 지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우스드라(ziusdra;생명을 본 사람)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홍수신화>를 기록한 단편으로,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했을 때 지우스드라만이 구조되어 신들의 도움으로 딜문 땅에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대홍수신화는 아카드어로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 제11권의 에피소드 및 《아트라 하시스 이야기》의 대홍수 이야기의 원형으로서 이들이 뒤에 《구약성서》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로 발전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수메르의 대홍수신화에 기록된 딜문은 2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사는 낙원, 즉 <에덴동산>의 원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낙원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수메르인의 세계는 심연에서부터 형성되었고 하늘과 땅은 신의 힘으로 단단한 돔(dome)에 의해 분리됐다. 창세기 두번째 장은 에덴 낙원을 소개한다. 수메르의 딜문과 비슷한 장소인 그곳은 "엔키와 닌후르사드"의 신화에서 묘사되었다. 딜문은 순결하고 찬란하며 성스런 땅이다. 엔키에 의해 축복받아 달콤한 물이 넘쳐흘렀다. 엔키는 그곳을 풍성한 개펄과 야자나무로 채웠다. 그는 닌후르사그를 임신시켜 대지에 여덟 가지 새로운 식물을 자라게 했다. "동쪽에 자리잡은" 에덴에는 물이 "붇거나(riese)" 범람하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과 더불어 4대강을 형성했다.
그곳은 또한 푸르게 우거져 나무들에는 열매가 가득했다. "주님은 땅의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 콧구멍으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으니, 비로소 인간이 생명체가 되었더라." 엔키와 닌마는 비슷한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했다. 심연(abyss)의 여왕이자 엔키의 어머니인 남무는 엔키에게 "아브주를 덮고 있는 진흙의 '심장(heart)'을 다듬고" "그것으로 모양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거기서부터 유사한 점은 끝이 나서 두 신은 형태가 잘못된 인간을 여럿 창조하곤 논쟁을 시작한다.
엔키와 닌후르사그로 되돌아와서, 우리는 이브 탄생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엔키는 닌후르사그의 자식들인 식물을 먹어버렸기 때문에 그녀에게 저주를 받아 먹어치운 각 식물에 대해 하나당 하나씩의 상처를 입었다. 엔릴과 여우는 엔키 대신에 그 저주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엔키와 다시 결합하여 새로운 자식들 여덟을 낳았고, 그들이 각각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의 갈비뼈를 치료한 자식을 닌티라고 불렀는데 달(months)의 여왕이고, 갈비뼈의 부인, 또는 생명을 주는 여인이란 의미이다. 이런 연상은 이브에게로 이어진다. "
http://blog.yahoo.com/_TMN2C4CZ5UA73VMPUPOXRKIZPA/articles/128938
소돔산
"성서 고고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위치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현 바위 소금으로 된 소돔 산 근처에 위치한 소돔 시가 고대 소돔시였다. 그러나 다른 이론에 따르면 사해 바다 동족 해안에 위치한 밥 에드-드라와 누메이라가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라는 설이있다."
http://blog.naver.com/paul3377/115559188
롯의 아내 소금기둥?
"성경에서 신의 분노로 유황 불 속에 멸망한 것으로 나와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존재했으며 두 도시의 멸망은 신의 노여움보다는 자연 재난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BBC 방송이 18일 보도했다. BBC 방송에 따르면,은퇴한 영국의 지질학자 그레이엄 해리스 박사는 소돔과 고모라가 사해 연안에 건설됐던 것으로 믿어지며 따라서 당시 사해에서 나는 자연산아스팔트를 거래했을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르질(質)의 이 물질은 당시 배의 방수용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돌과 돌 사이에 발라 건물 등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사해 인근의 땅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지구의 2개 판(板)구조사이에 위치해 매우 불안정했다.즉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지역은 지진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었다는 것. 지질학과 고고학적인 증거로 미루어 볼때 커다란 지진이, 성경에서 말한 멸망이일어났다고 했던, 4500년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해리스 박사는 당시 사해 연안 하부에는 가연성 메탄 가스층이 존재했으며 지진이 이 가스에 불을 붙였고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땅은 사람이나 짐승이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유사(流砂)로 변하면서 대규모 사태가 두 도시를 휩쓸었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설명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실험을 통해 뒷받침됐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잔해가 사해의 소금끼 먹은 물밑에서 발견돼 이런 가설을 증명하지 않는 한 결정적인 증거가 아직도 더 필요한 상태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093390
책소개
저자는 신화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히브리 경전보다 빨리 수메르에서 신화가 만들어졌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히브리 경전은 르의 신화가 전승된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수메르에서 최초의 신화와 문명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여러 자료와 주장을 이 책에 실었다.
저자소개
김산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신화와 인류학을 공부하고 주로 수메르 신화에 관련된 책들을 주로 저술하는 작가이다. 저자는 20년동안 수메르의 신화, 역사, 문명과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고, 수메르어, 악카드어와 같은 고대어를 해독하며 인류의 '최초'를 찾아 나서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으로 구성된 점토서판 원문 모두를 음역한 작품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2005년)를 발표하여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2006년)를 집필하여 2007년 문화관광부 교양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2년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를 발표했으며 여전히 지리산에서 수메르 신화 시리즈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919
2. 수메르 대홍수 신화의 엔릴(새, 봉)과 엔키(뱀, 용)이라는 신들의 대립 구조가 세계의 선악 신화들을 탄생시켰다.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엔릴은 새(봉)였으며, 엔키는 뱀(용)이었다. 엔키가 장남이어서 처음에는 지구의 신이었는데 서자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엔릴이 지구의 신이 되었다. 이후 엔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만, 분한 마음에 틈만 나면 엔릴을 씹었다고 전해진다. 해서, 엔릴이 홍수를 일으켰을 때, 가장 반대한 이가 엔키였다.
예서, 영지주의가 말하는 이 세상을 만든 신이 불완전하다는 '불완전한 신' 개념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이는 불완전한 신보다 불완전한 신을 만든 상위의 최고신 개념으로 이어진다.
"바빌로니아 창세기 에누마 엘리쉬(원형 수메르 신화를 국조신 마르두크를 섬기는 바빌론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용한 것) 이전의 이 진짜배기 수메르 신화의 최대 매력은 바로 엔키라는 존재입니다. 창세신 아누의 서자이며 신 중 제2 서열인 이 엔키는 에아 또는 누딤무드라고도 불리는 자로서, 신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 미래를 아는 자, 금속을 지배하는 자이자 신들의 유전 공학자로서 생명의 창조 비법을 알고 있으며 기형체에게도 각자 살길을 터 주는 인간에게 자애로운 아버지입니다. 창세신 아누의 적통자로서 인간에게는 엄하고 가혹하며 신들의 수장이자 실세로서 권위적인 제 1서열의 하늘의 신 엔릴과는 성격적으로 상반된 존재입니다.
엔키는 서자이지만 장남이기에 원래는 자신이 최고위에 올라도 부족함 없다 생각하고 있지만, 아누의 의중은 엔릴에게 있으며 세도 밀리는 탓에 그냥 생각을 죽이고 있을 따름입니다.(여기서 야훼와 루시퍼(사탄)와의 대립각이 은근히 드러나네요). 단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서만은 곧잘 최고의 권력자 엔릴의 불같은 성격을 거스릅니다. 대놓고 항명하지는 않더라도 엔키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엔릴의 심기를 상하게 하기는 충분합니다. 허나 엔키는 겉으론 모른 체 잡아 떼거나 때로는 타고난 유창한 언변으로 자기 위치를 흐트리지 않고서도 좀은 단순한 성격인 엔릴의 기분까지 살살 달래주면서, 뒤로는 인간들이 좀이나마 낫게 살도록, 엔릴이 내리는 해를 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고 있습니다. 뭐 고생고생해서 만든 내 걸작품인데..하는 정도의 심산 아니었을까 싶지만 정말로 매력있습니다. ^^
이 수메르 전승에서는 하늘의 신 엔릴의 상징은 새이며 그의 소속신들 또한 대체로 동일하게 새라고 하는 하늘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땅과 물의 신(나중 엔릴이 땅까지 지배하면서 물의 영역으로 축소됩니다만)인 엔키와 그 소속신들의 공통적 상징은 바로 뱀으로 나타나는 존재들이지요. 이중 의술과 관계되는 신도 엔키 소속에 들어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고로 옛 시대에서 의술은 생명 창조와도 직결이 되기에 그러한즉 의술을 상징하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의 2두사 카두세우스나 생성과 소멸, 나아가서는 지식을 상징하는 꼬리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가 엔키 소속의 대표적 상징체입니다. 구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놋쇠뱀을 만들어 장대에 다니 그것을 본 사람들이 독에서 회복되더라는 사건도 모세 이전부터 전해왔을 엔키의 전승을 따른 대목입니다. (왜 하필이면 사탄의 상징인 뱀을 야훼의 종인 모세의 지팡이에 달아야 했는지 의아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인류 공통의 오랜 신화적 구도인 뱀과 새의 대립각이 바로 이 수메르 신화에서 최초로 등장합니다. (동양에도 용(뱀)과 봉(새)의 대립각이 있죠.) 특히 대체로 엔키의 영역이었던 이집트에서는 뱀 숭앙의 자취가 꽤나 많이 남아있는 편이고요. "
http://blog.daum.net/solpee/15075425
지우쑤드라는 BC 3000년경 수메르 '슈루파크'의 마지막 왕이자 제사장이었다.
"길가메쉬서사시(수메르 신화)에선 작은 신들이 큰 신들을 위한 노역에 지쳐 반란을 하고 이에 당황한 큰 신들이 작은 신들을 누그러 뜨리고자 신들의 원시 노동자인 인간을 창조한 것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작은 신들의 주동자를 참수하고 그 피를 찰흙과 섞어서 지혜의 신 엔키와 어머니신 아루루에 의해 인간을 만듭니다. 큰 신이며 권력자 신인 엔릴은 이런 원시 노동자인 인간들이 해마다 늘어 매우 수가 많아 지면서 신들에게 불평을 해대며 외쳐대는 소리에 세상이 시끄러워 졌다며 인간들을 청소할 계획을 세웁니다. 기근 등 여러 재해로 몇 번 시도했지만 인간을 끝내지 못하자 대홍수로 밀어버릴 것을 결정하고 모든 신들에게 인간에게 알리지 말라는 맹세를 하고 인간의 구세주며 창조자인 엔키에게도 강요하고 결국 하죠. 하지만 엔키는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겨 엔키의 사제였던 지우쑤드라를 갈대벽 반대편에 세우고 엔키는 갈대벽에게 중얼거린 모습으로 이 사실을 알려주고 방주를 만들게 하고. 결국 소수의 인간만 살아 남게 된 거죠. 하지만 대홍수로 수많은 인간이 죽어서 잠자리마냥 물위에 떠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큰신과 작은신들이 고통을 겪으며 매우 슬퍼하고 특히나 인간 탄생에 관여한 아루루 여신의 비통 또한 컸으며 수많은 신들이 엔릴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너무 잔인한 처사였다구요. 이를 안 엔릴은 엔키에게 따지고 엔키의 일로 일단락 됩니다. 그후 엔키는 인간이 또 늘어나면 세상이 시끄러워 질 것을 염려해 언어를 나누어 다시는 한마음이 되는 것을 막은 겁니다."
3. 노아 대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노아 대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인드라가 성서에서 흥미를 느끼는 대목은 신약이 아니라 구약이다. 또한 구약 중에서도 창세기이며, 노아의 대홍수 때까지다. 이후 아브라함이 어쩌느니 하는 것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인지 인드라는 유독 세 가지에 관심이 끌렸다. 하나는 당대의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이었다. 이는 슈메르 왕도 그렇고, 한단고기의 단군들도 굉장히 오래 산다. 현 인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 불가인 게다. 또 다른 하나는 거인족이다. 과연 거인족이 실재하였는가이다. 한 2미터 정도야 지금도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3미터는 물론 10미터 넘는 거인족이 있었다는 게다.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전 지구적인 홍수이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황당해서 웃고 넘어갔다. 하고, 이십대 이후에는 딴에는 문학, 문예 이론 좀 공부했다고 상징체계로 잠시 접근해봤다. 그러다가 20세기 말엽 하이텔에서 반문화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그때 회원간 진화론자와 창조과학론자끼리 날밤을 까며 토론을 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골수 진화론자여야 좌파 행세한다고 여겨 잘 모르고 폼 잡고 있었지만, 워낙 모르는 내용이 많아 진지하게 처음부터 공부하는 자세로 하다 보니 어언 십여년이 흘렀다. 고대사 사이트, 외계인 사이트, 음모론 사이트, 창조과학 사이트, 각종 사이비과학 비판 사이트들을 섭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열린 마음'이 되었다. 하면, 지금은 어떤 태도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 단지 지금 말하는 것은 잠정적인 것이다. 설사 인드라가 진리를 언급했다 할 지라도 그것은 진리가 잠시 인드라에게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전제하고, 홍수설화에 대해 말해 본다.
전 세계적으로 홍수설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 시기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지구를 뒤덮는 홍수여야 성서에서 말하는 대홍수라고 하였을 때 기록만 보면 기원전 2,000년~2,300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홍수가 기원전 2400년에서 기원전 4000년 사이쯤에 인류의 멸망을 가지고 올 대홍수설이 각 지역마다 거의 공통된 시기에 일어나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단군조선 = 치수 기록으로 남아있음 B.C 2200년
- 중국 = 치수 기록 단군과 동일
- 그리스 = 데우칼리온의 신화 B.C 2000~2300년으로 추정
- 노아의 홍수 = B.C 2000~2300년
- 이미르 홍수 = B.C 1800년대로 추정
- 묘족 뇌공 설화 = B.C 2000년 이전
- 인도 마누 신화 = B.C 2200년 이전
- 수메르 홍수 신화 = B.C 2300년경"
허나, 이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가 없다. 각 지역에서 지역적인 대홍수가 있었다고 추정이 되지만,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볼 여지는 희박한 편이다.
"두 교수는 20여년에 걸친 각종 문헌 연구와 현지 탐사를 통해 1만5000년 전 빙하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7500년 전에 이르러 지중해로부터 흑해 남서쪽 보스포루스해협 너머로 나이아가라폭포의 200배에 달하는 속도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흑강(江)'이 '흑해(海)'가 됐다고 주장했다."
http://www.mission1691.com/zbxe/b4/3497
이런 와중에 흑해 대홍수설은 재미있는 가설이다. 빙하기 시절 지중해는 호수였다가 빙하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대서양 바닷물이 지중해로 유입되었다. 다만, 보스포루스해협 강바닥이 높아서 흑해로까지 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범람하면서 대홍수를 이뤘다는 게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 이전에도 문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따지자면, 이 지역에서 농경의 흔적, 가축의 흔적 같은 것은 만 년 전까지 소급해야 하지 않나 싶다. 허나, 보다 뚜렷한 자취를 남긴 것은 하라프와 하수나 문명이다. 이들 문명이 주목을 받는 것은 흑해 홍수와의 관련 여부 때문이다. 이들 문명 흥망에 대홍수가 관여하지 않았는가 여부이다. 게다가 팔천년 전에 짧은 기간이지만 이백여 년간 한파와 가뭄이 이어졌다는 대목도 참고할 수 있겠다. 노아 대홍수 직전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이어졌다고 했다.
하라프문명과 하수나 문명이다.
http://blog.naver.com/koviet2?Redirect=Log&logNo=70069305908
이 문명은 우바이드 문명으로 이어진다.
http://ko.wikipedia.org/wiki/%EC%9A%B0%EB%B0%94%EC%9D%B4%EB%93%9C
허나, 성서론자들은 흑해홍수가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메소포타미아에 국한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구적인 사건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에는 40일간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는데, 흑해홍수는 단지 둑이 터져 홍수가 난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 지역에 홍수층이 있어야 한다.
헌데, 영국인 올리가 발견한 우바이드 홍수층은 대체로 기원전 사천년에서 삼천년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허나, 이 홍수층도 성서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성서론자에 의하면, 노아 대홍수 시기는 기원전 2304년 전이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는 언제 있었을까
http://blog.naver.com/larminaflow?Redirect=Log&logNo=110022741494
만일 올리 홍수층이 노아 홍수층이라면 어떠한가. 일단 이 시기도 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한파와 가뭄이 천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서, 노아 대홍수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이라고 본다면 다른 증거가 등장하기 전까지 현재 유력한 시기는 기원전 3천 년 전이라 잠정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구온난화는 축복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73766812
4. 새, 봉 계열은 사자, 독수리, 늑대, 매, 까마귀로 하늘과 태양의 신으로 변형하고, 뱀과 용 계열은 황소로 대지와 물의 신으로 변형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언급한 대홍수는 성서의 홍수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신들은 인간들의 소음에 화가 나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려 한다. 물의 신 엔키가 길가메시의 조상인 우트나피슈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생명들의 씨를 큰 배에 실으라고 말한다. 대홍수가 끝난 뒤 우트나피슈팀은 새를 날려 마른 땅이 있는지 알아본다. "
http://news.donga.com/3//20081122/8661241/1
"태양신화에는 독수리·매·까마귀·늑대·사자 등이 태양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21149
5. 길가메쉬는 하늘의 황소를 죽인다.
"길가메쉬는 젊은 시절,영웅적 가치인 명성을 추구했다. 절대 인간 길가메쉬는 우룩의 지도자로서 젊은이들을 실신할 정도로 군사 훈련시켰다. 더욱이 초야권을 행사하여 우룩의 모든 신부들은 첫날밤을 길가메쉬와 지내야만 했다. 당연히 우룩의 시민들은 불만을 갖게 되었고,신들에게 불평하며 어떤 조치를 취해 주기를 간청했다. 신들은 길가메쉬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월등한 에너지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그에게 걸맞은 비범한 잠재력과 포부를 가진 친구를 창조했다. 그리하여 반신반인인 길가메쉬의 다른 반쪽으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엔키두가 탄생한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와 함께 최고의 명성을 차지한다. 백향나무 숲을 지키는 산지기 신 후와와를 살해하고,우룩의 여신이며 전쟁과 사랑의 여신인 이시타르에게 모욕을 주며,하늘의 황소를 살해한다. 결국 신들은 자신들한테 도전하는 이들에게 죽음의 판결을 내리고 그 결과 엔키두가 죽게 된다. 자기의 반쪽인 엔키두가 죽게 되자 길가메쉬는 자신도 결국에는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 앞에선 그토록 일생 동안 매달리던 가치들이 허물어진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추구가 시작된다. 불멸을 이미 얻어 지하세계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우트나피시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온갖 고생 후에 우트나피시팀을 만난 길가메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트나피시팀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길가메쉬는 이 죽을 경험을 통해 불멸은 이미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길가메쉬는 성서의 노아처럼,우트나피시팀이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게 된 이유를 묻는다. 우트나피시팀은 다시는 신들이 인간에게 불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길가메쉬는 그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 우트나피시팀은 만일 길가메쉬가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불멸의 시작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너무도 피곤했던 길가메쉬는 7일 내내 잠을 잔다.
동정심을 느낀 우트나피시팀의 아내는 길가메쉬에게 선물을 주라고 요구하고,마침내 우트나피시팀은 영생을 보장하는 불로초의 존재를 알려 준다. 그들은 이 불로초가 페르시아 만(灣),바다 속 깊은 곳에 있다고 알려 준다. 길가메쉬는 다리에 돌을 묶고 바다의 가장 깊은 곳,'심연'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심연'에서 그는 드디어 불로초를 따온다. 소망을 이룬 것이다. 그는 불멸을 자신의 손에 거머쥐었다. 이제 그가 늙게 되더라도 언제고 다시 어린이로 되돌아가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길가메쉬는 마음을 끄는 연못을 발견하고는 그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고 부주의하게 불로초를 둑에 남겨 놓는다. 때마침 뱀이 이 풀을 발견해 집어삼키고는,뱀 껍질을 대신 남겨 놓는다.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731401
6. 이슈타르는 죽은 황소를 부활시키며 황소를 그리워한다.
"후와와 레이드를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온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이랬든 저랬든 그 무시무시한 악마, 삼목산의 산지기 후와와를 무찌른 기념으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왕관도 새로 마련해 썼습니다.
어찌나 위엄이 넘치는지 하늘에 계신 금성, 사랑의 여신 인안나(아루루 , 이슈타르라고도)의 눈에 들정도 였습니다. 아루루는 지상으로 내려와 길가메시에게 "오빠 쫌만 놀다가"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지만, 우리의 영웅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분개한 이슈타르는 길가메시에게 애원합니다.
"저의 사랑이 되어 당신의 아름다운 몸을 만질수 있께 해주세요.
당신은 저의 훌륭한 남편이 되고, 저는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저가 당신을 위해 라피스 라줄리lapis-lazuli로 만든 금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마차의 바퀴는 금으로, 호박으로 만든 뿔로 장식한 마차를!
당신은 폭풍의 신들과 나란히 서계실겁니다.
삼목 향으로 가득한 우리 집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하지만 길가메시는 이슈타르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여지껏 문란했던 그녀의 연애 경력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말하며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너는 너에게 모든걸 바친 남편 양치기, 두무지(탐무즈 혹은 탐무즈드)를 저승으로 보내 저승신들과 나란히 제삿밥을 먹게하고 날아다니는 새가 곡식보다 너의 목걸이를 쪼게하고, 사자가 먹이를 잡지아니하고, 말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 소를 치는 목동을 욕정에 몸부리치는 늑대로 만들고, 정원의 나무를 보살피는 정원사에게서 너의 음부나 보살피게 만들려다 거절당하자 개구리로 만들어 버리는 이 욕정으로 달아오른 창녀야 썩 꺼져라."
이슈타르는 세상 어떤 여자도 따라올수 없을만큼 파렴치한 그녀의 연애 경력을 열거한 길가메시에게 분통이 나, 반론도 하지않고 하늘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어여뿐 얼굴에 닭똥만한 눈물을 흘리며 하늘의 신 아누(안의 바빌로니아식 이름)에게 간청했습니다.
"하늘의 황소를 만들어 그를 짓밟게 해주세요.
황소가 길가메시를 삼키고 그가 사는곳을 어지럽게 해주세요.
만일 황소가 그리 하지않으면 저는 저승 문을 부시고 우두머리를 만들어, 저승에 빈 자리가 부족해 죽음이 산 자들을 삼키게 하겠습니다. 죽은 자들이 산 자보다 많게 만들겠습니다."
아누는 인안나에게 묻습니다.
"하늘의 황소를 만들면 우르크에는 7년동안이나 기근이 들것이다. 식량이 그만큼 비축되었느뇨?"
그리고 하늘의 황소를 만들어 우르크로 보냅니다. 하늘 황소는 우르크의 사람 200명을 죽이고 우르크 사람을 200명 죽이고 우르크 인을 200명 죽였습니다. 이 성나고 포악하기 그지없는 황소를 엔키두가 올가미로 옭아메고, 길가메시는 황소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황소를 갈라 방금전까지 빨딱빨딱 뛰던 심장을 정의롭고 정의로운 위대한 태양신 우투에게 바쳤습니다. 황소가 죽은것을 안 이슈타르는 곡녀哭女로 위장한후 우르크로 내려와 길가메시를 저주했습니다. 자신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우르크의 위대한 지배자인 길가메시를 모욕하는 저 입싼 창녀에게 엔키두는 소의 넓적다리를 냅다 집어던졌습니다. 소의 넓적다리가 찰싹하고 그녀의 얼굴을 때리자 이슈타르의 여사제들은 비탄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황소의 뿔을 전리품 삼아 가져갔습니다.
이때 하늘에서는 위대하신 신들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랬든 저랬든 하늘의 황소를 함부로 잡은 놈을 어떻게 벌줄까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몇 차례 말이 오간 후, 하찮은 인간이 감히 여신을 모욕했으니 그놈을 족치자!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엔키두는 원인도 모른 채 아프게 됬고 사자 머리에 독수리 날개와 몸을 가진 새인 천둥새가 엔키두를 덮쳤습니다. 그렇게 엔키두는 가장 사랑하며 친하고 위대한 길가메시 곁을 떠나 저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 엔키두를 멀리 떠나보내고, 강물 위에서 떠내려가는 시체들을 보며 죽음을 두려워 하게된 길가메시는 그 옛날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대현자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다는 머나먼 동쪽 딜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http://lafcadiohearn.egloos.com/1284755
"탐무즈
Tammuz
아카드어로는 Dumuzi.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풍요의 신.
봄이 되면 자연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다. 탐무즈라는 이름은 초기 수메르의 Damu-zid('흠 없는 젊은이')에 근거한 아카드어 Tammuzi에서 유래한 것 같다. 후에 표준 수메르어 형태인 Damu-zid는 아카드어에서 Damuzi가 되었다. 탐무즈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은 BC 2600경~2334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탐무즈에 대한 제의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듯하다. 이 제의는 BC 3000년이나 BC 2000년 이전에 수메르의 대부분의 주요도시에서 증명되었지만, 탐무즈를 도시 신으로 예배하던 바드티비라(지금의 마디나)같이 목초지역(edin) 주변에 있는 도시들이 중심역할을 했다. 가장 일반적인 통칭이 시파드('목자')라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탐무즈는 본래 목초지의 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엔키는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그의 어머니인 여신 두투르는 암양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그의 이름 두무지드와 별명인 아마가('모유') 및 우루루('목초를 늘려주는 사람')는 실제로 목동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사막에서 풀을 자라게 하는 것, 건강한 양을 낳게 하는 것, 동물의 암컷들이 젖을 많이 내게 하는 것 등이 있다. BC 2000~1000년에 탐무즈 제의가 아시리아로 전파되었을 때 그 성격이 유목신에서 농경신으로 변화된 듯하다. 문헌에 따르면, 아시리아와 하란의 시바인 사이에서 탐무즈는 근본적으로 곡식을 찧을 때 죽어가는 곡식 안에 있는 힘으로 보았다.
탐무즈 제의는 연중 2가지 축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여신 이난나와 탐무즈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이며, 다른 하나는 지하세계의 악마의 손에 그가 죽은 것을 애도하는 축제이다. 우르의 제3왕조 통치기간(BC 2112경~2004경) 동안 움마 시(지금의 텔 요카)에서 움마의 탐무즈 축제의 달인 2~3월에 탐무즈의 결혼이 극적으로 거행되었다. 문헌을 보면 이신-라르사 시대(BC 2004경~1792경)의 결혼 의식에서 왕은 실제로 탐무즈 신과 동일시되었고, 이난나 여신의 화신인 여사제와 결혼함으로써 절정에 다다랐다. 이는 마술적으로 한 해의 모든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비옥하게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탐무즈의 죽음을 표현하는 3~4월의 축제 역시 극적으로 상연된 듯하다. 이때에는 많은 애가(哀歌)가 살해당한 신의 거처를 향해 사막으로 나가는 행렬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BC 7세기에 아시리아에서는 이 의식이 6~7월에 행해졌다. 그 지역의 주요도시에서는 탐무즈 신을 누워 있는 상태로 두기 위해 침상을 설치했고, 그의 몸은 야채와 꿀 및 여러 음식물로써 상징되었다.
탐무즈와 관련된 문헌 중에 〈두무지의 꿈 Dumuzi's Dream〉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이 신화는 어떻게 탐무즈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꿈을 꾸었고, 그가 도피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전하고 있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가 수메르 신화의 후반부에 기록된 〈이난나의 강림 The Descent of Inanna〉에 있는데, 이 신화에 따르면 이난나(아카드어로 이슈타르)는 탐무즈를 자신의 대리로 지하세계에 보낸다. 그의 여동생인 게슈티난나는 결국 그를 발견하고 이난나는 탐무즈와 그의 여동생이 지하세계를 번갈아 오가면서 1년의 반은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각각 보내도록 명령하는 것으로 이 신화는 끝난다. 탐무즈의 구애와 결혼은 여흥을 위해 사용된 듯한 연가와 일화풍의 시작(詩作)에서 일반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본래의 여러 제의 문서는 관찰자가 가까이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의의 단계를 따르고 있고, 많은 애가가 실제 의식에서 불렸을 것이다.
결국 원래는 독립적이었던 다양한 풍요의 신들이 탐무즈와 동일시되었다. 북부의 농경적인 형태에서 그는 곡식과 동일시되었고 봄에 채소에 생명을 주는 역할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매우 초기이지만 우루크의 탐무즈와 대추야자나무 번식력의 위대한 원천인 아마우슘갈라나와의 융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에 탐무즈는 봄에 나무와 식물에서 나오는 수액(樹液)의 힘을 표현하는 풍요의 신 ' 다무'와 융합되었다. 아직까지 탐무즈와 그밖의 다른 신, 즉 채소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지하수(아브주)에 있는 힘으로 나타나는 여신 두무지 아브주 같은 신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22t2069a&ref=4#ID4
"수메르인은 매해 봄마다 수태 준비를 마친 대지에 씨를 뿌린 뒤 탐무즈의 부활제를 올렸다. 그들은 탐무즈를 성장의 신으로서, 대지의 여신이 탐하는 남성적인 힘의 상징으로서 숭배했다. 이러한 풍년제 기간에는 모든 아내가 자신의 남편뿐 아니라, 좋아하는 다른 남자와도 잘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 인정받고는 자유롭게 사랑의 상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나 남편 이외의 연인의 정액은 밖으로 흐르게 하여 스스로 임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의 의무를 저버리기 때문이다.[2]"
http://ko.wikipedia.org/wiki/%ED%83%90%EB%AC%B4%EC%A6%88
7. 대홍수 이후 바빌론에서는 대홍수 책임을 물어 엔릴의 인기가 추락하고, 달의 신, 난나르가 최고신으로 등극한다.
"노아(Noah)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성경 구약성서의 창세기의 홍수이야기(창세기 6:5-17)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구약 창세기 4장과 5장에 따르면, 노아는 아담과 이브의 첫째 아들인 카인의 후손이 아니라 셋째 아들인 셋의 후손이다. 성경의 창세기 5장에 따르면, 노아의 아들은 셈 · 함 · 야벳의 3명이다.
실존여부는 불명확하나 기원전 2800년 경 무렵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변 지역에 일어났던 대 홍수기에 살던 한 실존인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앗시리아, 그리스 지역에도 홍수가 범람하여 소수의 생존자가 있었다는 신화들도 존재한다. 노아의 모델이 된 인물은 이때 이스라엘 혹은 아랍 지역에서 홍수를 피해 살아남은 한 인물이 신화화된것으로 추정된다."
http://ko.wikipedia.org/wiki/%EB%85%B8%EC%95%84
"신들의 왕 엔릴(Enlil)과 닌릴(Ninlil, 수드(sud)라고도 불림)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수엔(Suen) 또는 아카드어로 신(Sin)이라 불렸다. 난나는 수메르어로 '빛나는 자'라는 뜻이다. 태양신 우르를 낳은 '위대한 부인' 닌갈(Ningal)이 그의 아내다. 난나 숭배의 중심 도시는 수메르의 최대 곡창지대이자 가장 강성한 도시국가 였던 우르였다. 특히 우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던 기원전 2600년부터 2400년 사이에는 최고신으로 간주되어 '신들의 아버지' 또는 '신들의 우두머리'로 불리기도 했다. 우르가 멸망한 뒤에도 북쪽의 하란(Harran)을 중심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날개 달린 황소를 탄 모습으로 표현되며, 황소와 삼각대, 초승달이 신의 상징물이다. 수메르의 신들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신'에 속한다 ."
[출처] 난나 [Nanna ] | 네이버 백과사전
8. B.C 3000년대 대홍수 이후 이집트 왕조가 성립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집트 왕조 |
J. H. Breasted의 연대기 |
Ian Shaw의 연대 |
1 & 2왕조 |
3400 – 2980 |
c.3000 – 2686 |
3 왕조 |
2980 – 2900 |
2686 – 2613 |
4 왕조 |
2900 – 2750 |
2613 – 2494 |
5 왕조 |
2750 – 2625 |
2494 – 2345 |
6 왕조 |
2623 – 2475 |
2345 – 2181 |
7 & 8 왕조 |
2475 – 2445 |
2181 – 2160 |
9 & 10 왕조 |
2445 – 2160 |
2160 – 2025 |
11 왕조 |
2160 – 2000 |
2125 – 1985 |
12 왕조 |
2000 – 1788 |
1985 – 1773 |
13~ 17 왕조 |
1780 – 1580 |
1773 – 1550 |
18 왕조 |
1580 – 1350 |
1550 – 1295 |
19 왕조 |
1350 – 1205 |
1295 – 1186 |
20 왕조 |
1200 – 1090 |
1186 – 1069 |
21 왕조 |
1090 – 945 |
1069 – 945 |
22 왕조 |
945 – 745 |
945 – 715 |
23 왕조 |
745 – 718 |
818 – 715 |
24 왕조 |
718 – 712 |
727 – 715 |
25 왕조 |
712 – 663 |
747 – 656 |
26 왕조 |
663 – 525 |
664 – 525 |
9. 호루스는 대기와 불의 신이지, 태양신이 아니다.
호루스의 눈 |
"호루스는 이집트의 신들 중에서 다양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보통 매의 머리를 한 남성으로 표현되나, 호루미오스라고 불릴때에는 사자의 외관을 취하며, 하르마키스라고 불릴때에는 스핑크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후대에는 유아신(幼児神)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살해한 세트의 위협을 피하며, 토트의 도움을 빌려 호루스를 몰래 출산한다. 그리하여 어머니인 이시스의 무릎 위에 놓인 아기(하포크라테스)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로마 시대에는 병사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성 게오르기우스의 원형이 되기도 한다.
호루스는 대기와 불을 상징하며, 그 색은 일반적으로 흑, 적, 백을 의미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D%98%B8%EB%A3%A8%EC%8A%A4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아내이자 최고의 여성신인 이시스(Isis)의 아들이며,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남편이다. 이시스가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주문의 힘으로 잉태해 태어났다. 유년시대에는 '유아(幼兒) 호루스'라 하여 땋은 머리 외에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갓난아기 모습 또는 이시스의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빠는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
원래는 매우 허약하였으나, 이시스의 마법으로 각종 위험이나 병을 물리칠 수 있었고, 성장해서는 오시리스로부터 병법을 전수받아 결국 아버지의 동생이자 원수인 세트를 죽이고 통일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이후 곳곳에 신전을 세우고, 통일 이집트를 평화적으로 다스리면서 이집트 왕들의 화신으로서 영원히 이집트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이집트의 모든 국왕들은 누구나 '살아 있는 호루스'로 불렸다.
오시리스·이시스와 함께 이집트에서 최고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왕자 또는 신의 아들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저승에서 오시리스 앞으로 사자(死者)들을 이끌어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감독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태양·하늘의 화신(化身)으로서, 매[鷹]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에는 20여 명이나 되는 호루스신이 존재했는데, 일종의 태양신으로서 그리스신화의 태양신인 아폴론과 동일시되었다. 대개 매나 매의 머리 모습을 한 신으로 표현되는데, 신들마다 약간씩 성격이 다르다. 이 가운데서도 호루스라 하면 일반적으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을 가리킨다.
이 호루스를 수호신으로 하는 노모스(nomos:州)만도 이드푸·히에라콘폴리스를 비롯하여 7개나 되었다고 한다. 노모스는 상·하 이집트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고, 여러 신들의 속성을 흡수하여 이집트신화에서 가장 복잡한 성격을 지닌 신으로 불린다. "
[출처] 호루스 [Horus ] | 네이버 백과사전
10. 이집트 제 5왕조 우세르카프 때부터 태양신 라가 최고신이 되었다.
"우세르카프(Userkaf )는 고대 이집트 제5왕조의 첫 파라오이다. 그는 투린 왕 명단 (Turin King List)과 마네토(Manetho)에 의하면 BC 2494년부터 BC 2487년까지 7년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정신은 강력하다'를 뜻한다. 우세르카프는 쿠푸(Khufu)의 단명한 후계자인 제데프레(Djedefre)의 손자이다. 어머니는 여왕 네페르헤테프(Neferhetepes)이며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켄트카우스1세(Khentkaus I)와 결혼함으로서 쿠푸 후손의 두 줄기가 다시 한번 합쳐졌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켄트카우스1세는 우세르카프(Userkaf)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있고 우세르카프의 부인은 여왕 네페르헤테페스로서 사후레(Sahure)의 어머니가 된다는 학설이 있어 혼동이 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제5왕국의 처음부터 세 번째까지의 통치자들은 모두 한 형제들로서 라제데트(Raddjedet)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제5왕조의 왕들은 기자에 피라미드를 건설한 제4왕조 전임자들의 전통을 거부하고 묘지를 남쪽으로 옮겼다. 우세르카프는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 단지의 담장 북동쪽 모퉁이 바로 너머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이다. 독특한 것은 그 무덤 신전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피라미드의 동쪽 면이 아니라 남쪽 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세르카프는 태양 숭배를 중시했기 때문에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남쪽에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전 벽에 새겨진 부조 중 새를 묘사한 부분이 매우 정교하다다. 신전의 뜰에서는 네메스 머리 장식을 쓰고 있는 우세르카프의 분홍색 화강암 두상이 발견되었는데 실제보다 훨씬 큰 크기의 이 당당한 두상은 스핑크스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이집트 고 왕국 시대의 두상 가운데 가장 크다.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머리는 제5왕국의 통치자들이 건축한 아부 구로브(Abu Ghurob)에 있는 5개 태양 신전중 첫 번 째 신전에서 발견된 것이다. 45 센티미터 높이에 회색 돌로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은 하 이집트(Lower Egypt)의 데슈레트(Deshret,붉은 왕관)를 쓴 군주임을 나타내는 아주 희귀한 조각중의 하나라고 평가되고 있다. "
[출처] 우세르카프 [Userkaf ] | 네이버 백과사전
"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의 아들 우세르카프가 세운 제5왕조에서는 태양신 숭배가 절정에 이른다. 오시리스 신을 대신하여 태양신 라가 최고신이 되었고, 군주들은 태양신의 아들임을 자처했으며, 태양신을 위한 신전이 건축되었다."
11. 엔릴 일족은 바빌론을 떠나 이집트에 당도하여 태양신 일족으로 거듭난다.
"힉소스 민족과 히브리족
우리는 성서를 통해 이집트가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가 되어왔음을 알고 있다.아브라함이나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 기근이 들자 물이 풍성한 이집트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고,신약시대 예수의 가족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도피하기도 했다.하지만 노예로 팔려갔다가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요셉이야말로 이집트의 성서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중세 이후 이집트를 여행했던 유럽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요셉의 곡식창고'라고 불렀으며,지금도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으로부터 흘러나와 저지대인 파이윰 오아시스의 호수로 흐르는 하천을 아랍어로 `바흐르 유셉',즉 `요셉 하천'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했다기보다는 무력으로 이집트를 점령했다는 사실은 신약시대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한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당시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매우 번성했다.그 도시의 아피온이라는 한 이집트인이 `유대인들에 대항함'이라는 글을 통해 출애굽 당시 유대인들이 문둥병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집트로부터 쫓겨났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서는 금으로 만든 당나귀를 만들어놓고 숭배했다고 주장했다.그러한 치욕적인 비난에 대항해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문'을 발표했다.그는 그 글에서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한때 이집트를 통치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유대인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는 편 모두가 인용했던 마네토라는 인물은 기원전 3세기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으로서 이집트의 역사를 그리스시대까지 모두 30왕조로 나누어 저술한 이집트 최초의 역사가였다.비록 그의 역사책 원본이 남아있지 않고 요세푸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인용됐을 뿐이지만,힉소스라 불리는 이방민족이 다름아닌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의 저술은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에 의하면,힉소스 민족은 북쪽에서 쳐들어와 많은 도시들을 불사르고 신전을 파괴했으며 이집트민족을 학살했다.그들은 처음에는 멤피스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다가 아바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했고,나중에 이집트에서 쫓겨날 때는 그들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유다 지방에 예루살렘이란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1824년 영국의 윌킨슨(G.Wilkinson)은 이집트 중부지방의 한 유적지인 베니 하산에 들러 절벽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들을 조사했다.모두 39개나 되는 무덤의 주인들은 대부분 중왕국시대인 11왕조와 12왕조시대의 지방 영주와 귀족들이었다.그 중에서 `크눔호텝'이라 불리는 한 영주의 무덤 벽에는 농사짓는 모습과 사냥하는 장면,다양한 동작으로 두 사람이 레슬링을 하는 모습 등 당시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이 매우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었다.
그는 벽화 중에서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턱수염이 있고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주목했다.그들의 우두머리는 산양 한 마리를 붙들고 있었으며,그의 이름은 힉소스 `아비샤'로 기록돼 있었다.또 그림의 위쪽에는 `37명의 힉소스들이 눈 화장품을 팔기 위해 이집트에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윌킨슨은 그들을 통해 아브라함을 비롯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족장들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그 무덤은 기원전 1900년경 건설된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연대상으로도 가능한 추론이었다.비록 이름은 다르게 나타났지만,이집트의 한 무덤벽화에서 히브리 족장들을 연상시키는 가나안 출신 유목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히브리 족장들 중의 하나인 야곱은 `스캐럽'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도장에서 그 이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고대 이집트인들의 최고신은 태양신 `라'였다.이른 아침에 짐승의 똥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굴리고 가는 말똥구리를 그들은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겨 풍뎅이 형상의 부적을 만들었으며,도장에 새겨서 반지에 끼고 다녔다.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수집돼 베를린의 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된 한 스캐럽에는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파라오를 의미하는 타원형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1969년 이스라엘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근처 쉬크모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스캐럽에도 상형문자로 분명하게 `야쿱~헤르'가 표기되어 있었으며,베를린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함께 출토된 토기들을 통해 그 무덤의 주인공인 야곱이 기원전 1750년 경의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또다른 스캐럽에는 이집트 15왕조의 파라오임을 증명하는 표시와 함께 야곱의 이름이 새겨져있다.그는 힉소스 왕조의 2대 왕으로서 기원전 1600년 경의 통치자였다.그 조그만 도장들을 통해 야곱은 당시 가나안의 왕족들에겐 흔한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 전 1900년 경의 화려한 채색 옷을 입은 아비샤를 비롯한 37명의 힉소스들과 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발견된 기원전 1750년 경 한 도시의 왕이었던 야곱,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서 군림했던 기원전 1600년경의 파라오 야곱 등은 모두 창세기의 족장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들이다.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라 불렸던 히브리 족장들은 파라오로서 1백여년간 이집트를 식민통치했다.따라서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제12왕조 초기부터 번영하는 이집트는 외국인들, 주로 아시아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으며, 통상 외교의 확대로 이집트에 외래 문화와 사상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제12왕조 말부터 점차 국가의 통제권이 약화되고, 나라가 분열되면서 여러 대 전부터 이집트 땅에 들어와 정착한 아시아 쪽 외국인들이 제16왕조와 제17왕조 시기에는 이집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힉소스(이민족 통치자들)라고 부른다.
"힉소스(Hyksos)는 '이민족 통치자'를 가리키는 고대 이집트어 '헤까 카세웨트(heqa khasewet)'에서 유래한 말로써, 나일강 동부의 델타(Delta) 유역을 점령한 민족이다. 힉소스 민족은 B.C. 17세기에 들어서 세력을 확장했으며, 고대 이집트 중왕조의 제 15, 16대 왕조 때 108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B.C. 1648-1540 추정).
힉소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관련 문헌이 거의 없어 불분명한 점이 많다. 힉소스 민족의 기원은 셈족(Semites), 히브리인,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하던 후르리인(Hurrian), 인도-아리안계(Indo-Aryans)의 아시아인 등으로 다양하게 추정된다. 따라서 힉소스 민족의 등장은 B.C. 2000년 경부터 중동 전역에서 일어난 동지중해 연안으로의 대규모 민족 이동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힉소스라는 명칭은 이집트 지방으로 이주해온 이민족들을 가리키던 고대 이집트어 '헤까 크세웨트(heqa khsewet: 외국인 통치자, 외국 땅의 왕자들)'를 역사가 마네토(Manetho)가 '목자의 우두머리들'이라는 뜻의 힉소스로 오역하며 붙여졌다. A.D. 1세기에 활동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힉소스'의 어원이 '양치기 왕'의 의미를 지니므로 힉소스인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대민족의 원류라고 주장했으나, 후에 마네토의 오역이 밝혀지면서, 이 학설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조의 제 13대 왕조 때부터 이집트로 유입된 셈족과 아시아 민족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들은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서서히 이집트 사회의 통치구조를 잠식해나갔다. 관료, 군인 등으로 활동하며 세력을 키운 이민족들은 왕조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나일강 하류를 점진적으로 정복했다. 아바리스(Avaris) 요새를 점령한 힉소스는 나일강 상류를 향해 영역을 넓혀갔다. 파라샤, 텔 엘-샤하바, 부바스티스, 인샤스 등에 요새를 구축한 힉소스는 마침내 시나이(Sinai) 반도에서부터 나일강 동부의 델타(Delta) 유역을 장악했다. 힉소스의 빠른 세력 확장에는 뛰어난 철기제조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이들은 조립식 활, 개량된 전투용 도끼 등 철제 무기를 비롯한 각종 도구를 도입했으며, 말을 이용한 전차를 활용하여 기동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요새 축조술 뿐만 아니라, 투석기 등을 전술에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군사적으로 우세했다.
고대 이집트 중왕조의 제 15 왕조 때에 이르러 힉소스 출신 최초의 군주 살리티스(Salitis)가 등장했다. 살리티스 이후 제 16대 왕조에 이르기까지 108년간 6명의 힉소스왕이 이집트를 통치했다(B.C. 1648-1540 추정). 이들은 이집트 식 칭호와 복식 및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이집트의 신을 비롯한 문화를 존중했으므로 토착민의 저항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힉소스의 직접 통치가 행해진 기간은 제 15대 왕조(B.C. 1674-1567 추정)이며, 나머지 기간은 제 16대 왕조로서, 제 15대 왕조의 봉신들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힉소스의 주 근거지는 델타지역으로, 반독립상태에 있던 상이집트에는 힉소스의 영향력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힉소스의 이집트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이집트의 중심지인 테베(Thebes)는 자연히 반(反)힉소스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B.C. 16세기 이후 상이집트의 세켄엔레 타오 2세(Seqenenre Tao II)가 파라오가 되면서 운동이 거세졌다. 당시 힉소스 군주 아포피(Apopi)가 반힉소스 운동을 경고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세켄엔레는 이에 따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켰다. 세켄엔레는 전투 중 사망했으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그의 미라 상태는 당시의 전투가 매우 극렬했음을 추측하게 해준다.
세켄엔레의 사망으로 상이집트는 위기에 처했으나 그의 장남 카모세스(Kamoses)가 왕위를이어 해방전쟁에 돌입했다. 카모세스는 힉소스의 전차군단을 급습하고 무기와 재화를 탈취했으며, 경작지를 황폐화시켰으나 아바리스 요새를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카모세스의 뒤를 이어 상이집트의 왕위에 오른 아흐모스(Ahmose) 때에 이르러 힉소스의 이집트 지배가 끝나게 된다. 아흐모스는 재위 15년부터 22년까지 지속적인 공격을 계속했으며, B.C. 1539년에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 요새를 함락시켰으며, 이로서 108년에 걸친 힉소스의 이집트 지배가 끝나게 되었다.
힉소스 지배기에 이집트는 완전한 청동기 시대에 들어가 동부 지중해 지역의 청동기 문화 발달에 큰 열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힉소스가 보유했던 고도의 축성술과, 상이집트와의 사이에 일어난 해방전쟁 말기에 서아시아에서 도입된 각종 신형 무기들은 후일 이집트가 군사강국이 되는 데게 일조했다.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힉소스는 수직 베틀을 이용한 방적 및 직조술, 주금, 오보에, 탬버린 등의 새로운 악기 등을 발명했다. 또한 아시아로부터 등이 굽은 황소를 들여와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올리브와 석류를 재배하는 등 이집트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출처] 힉소스 [Hyksos ] | 네이버 백과사전
"히타이트 신화에는 히위족(族)의 신화 및 히위 신화의 매개(媒介)에 의해서 수용(受容)된 것으로 보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이 뚜렷하다. 히타이트 고(古)왕국의 공식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신(神)은 폭풍우의 신과 태양의 여신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히위족의 신 테슈브 및 그의 아내 대여신(大女神) 헤바트와 동일시되었다. 가장 중요한 신화는, 폭풍우의 신이 아버지 쿠마르비를 무찔러, 쿠마르비가 천신(天神) 아누의 손에서 빼앗은 신계(神界)의 주권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또한 이렇게 해서 얻은 왕위를 쿠마르비가 왕위를 되찾기 위해 만든 괴물 울리쿰미의 공격으로부터 지킨 이야기이다.
이것은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티폰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리스의 '천상의 왕권신화(王權神話)'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풍요의 신 텔리피누의 갑작스런 실종에 의해서 세계가 불모(不毛)와 기근에 허덕이는데, 최후에 노여신(老女神) 한나한나가 탐색을 위해 파견한 한 마리의 꿀벌이 목장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텔리피누를 발견하여, 그 팔다리를 쏘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폭풍우의 신과 악룡(惡龍) 일루양카의 투쟁을 주제로 한 신화는 구약성서의 레비아단(《시편》 74:14), 그리스 신화의 티폰과 유사한 면이 있다. 히타이트 신화에서는 폭풍우의 신이 악룡에게 많은 술을 마시게 한 후 죽여 퇴치함으로써 신년 축제(푸룰리)를 벌였다. "
[출처] 히타이트신화 [─神話, Hittite myth ] | 네이버 백과사전
12. 이집트에서 아크나톤 유일신 사상이 전 세계 최초로 성립한다.
"이크나톤·아멘호테프 4세라고도 한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이며 왕비는 네페르티티이다. 당시 이집트는 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펼쳤으며, 나일 계곡에는 많은 외국인이 생활하고 있었다.
왕은 모든 민족에게 공통의 세계종교를 이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노모스[州]에도 속하지 않는, 태양을 상징으로 한 유일신(唯一神) 아톤을 신봉하였다. 그러나 수도 테베는 주신(主神) 아몬의 사제(司祭)들이 권력과 막대한 부(富)를 누리고 있었으므로 왕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즉, 치세 6년째에 자신의 이름을 '아톤에게 이로운 자'라는 의미인 아크나톤으로 개명하고 테베를 버린 다음, 새 수도를 텔 엘 아마르나로 옮기고, 아케트 아톤(아톤의 지평선이라는 뜻)이라 이름붙였다.
전국의 신전·기념비·무덤에서 아몬의 이름을 지웠다. 왕은 명상에 빠지고 아톤 찬가의 제작과 예술활동에 전념하였으나 왕의 이상은 이해받지 못하였다. 그가 죽은 후, 아몬 신앙은 부활하였으며, 수도는 다시 테베로 옮겨졌다. 그러나 자연과 진실을 중시하는 아톤의 가르침은 사실적이고 명쾌한 성격의 아마르나 예술을 탄생시켰다."
[출처] 아크나톤 [Akhnaton ] | 네이버 백과사전
13. 기원전 13세기 무렵 모세는 람세스 2세 때 아크나톤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하고 이집트를 탈출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그 내용이 모세와 관련되는 바가 많아 '모세 오경(五經)'이라고 일컫는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출애굽기》 《민수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레위기》 《신명기》의 율법(律法)은 '모세의 율법'이라 일컬어진다.
최근의 고고학적·금석문학적(金石文學的) 연구 결과 성서에 기술된 이집트 입국, 이집트 탈출, 야훼 종교의 채용, 가나안 정복 등은 그 대체적인 줄거리가 역사적 사실에 아주 가까운 것으로 인정되어, 이 역사적 사실의 중심인물로서의 모세의 실재성이 매우 높아졌다. 상당수의 학자들이 모세라는 인물을 람세스 2세 시대인 기원전 13세기경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이자 민족 영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가 활동한 정확한 시기나 그와 관련된 일들을 완전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구약성서에 다르면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파라오의 박해를 받았다. 이스라엘 레위족 집안에서 태어난 모세는, 이스라엘의 사내 아이는 태어나는 즉시 모두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을 피하여 나일강에 버려졌는데, 다행히 파라오의 딸에게 구출되어 왕궁에서 양육되었다. 그는 40세 때 동포가 몹시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유목민 미디안족(族)의 사제(司祭) 이드로(르의엘)의 딸 시뽀라를 아내로 맞아 게르솜과 엘리에젤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다.
80세 되던 해 호렙 산에서 신(神) 야훼에게서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음성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와, 형 아론의 협조를 얻어 파라오와 싸워 이겨서 히브리 민족의 해방을 이룩하였다. 이어 시나이산(山)에서 야훼한테서 십계명(十誡命)을 받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契約)의 중개자가 되었다(출애 20:1∼17, 신명 5:6∼21, 출애 34:14∼33).
그후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에돔·모압의 광야에서 40년에 걸친 유랑생활을 계속하지만, 가나안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모세는 야훼의 명에 의하여 요르단강을 건너기 전 예리고 맞은 편 모압 땅의 느보산(山)에서 향년 120세에 죽었다(신명 33 ·34장).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출처] 모세 [Mose(s) ] | 네이버 백과사전
"아톤 18계명
빛의 신이자 창조의 신이신 아톤신이 내려주신 평등의 율법은 이러 하니라.
제1계명. 너희는 다른신들을 질투의 신이자 창조주인 내앞에 있게하지 말라.
(모세 1계명) 너희는 내앞에 다른신을 모시지 말라(출 20:3)
제2계명.너를 위하여 우상이나 다른 신들을 섬기기위하여 어떠한 상도 만들지 말라.
(모세 2계명)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20:4)
제3계명.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주 아톤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신으로 사랑하고 신을 너자신으로 사랑하라.
제4계명. 너의 주 아톤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또한 그 이름을 걸고 거짓되이 맹세하지 말라.
(모세3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말라.(출20:7)
(모세9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하지말라(출 20:16)
제5계명.너의 주 아톤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모세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20:8)
제6계명.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라.
(모세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제7계명. 살인하지말라.
(모세 6계명) 살인하지말라(출20:13)
제8계명.간음하지말라.
(모세 7계명) 간음하지말라(출20:14)
제9계명.물질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도둑질 하지말라.
(모세8계명) 도둑질 하지말라.(출20:15)
제10계명. 네 이웃에속한 일체의 모든것을 탐내지 말라.
(모세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20:17)
제11계명. 너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지말라.
제12계명.남을 판단하려들지말라.
제13계명.뿌린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기억하라.
제14계명.신에게 행하는 모든봉사를 거룩하게 여기라.
제15계명.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신의 지혜를 본받으라.
제16계명.남에게 대접받고자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제17계명.악행은 쉽게 드러남을 알라.
제18계명.너희는 신이 창조한 어떤 인간도 노예로 부려서는 안된다."
http://blog.yahoo.com/COCOLAND/articles/55524
http://blog.daum.net/conjugiallove/16150098
14. 가나안에 정착한 사울, 다윗, 솔로몬 시대는 태양신과 달신의 융합 시대였다.
"바알 과 아스다롯
또 고대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궤(Ark of God)와 함께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의 정기를 표시하는 성기(性器)를 각각 만들어 신봉을 하였다.
이 이야기는 다윗 왕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사무엘상 7장 4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엘 의 큰 아들 바알 (Baal)들과 엘 의 처 아스다롯 (Ashtoreth)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긴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바알 은 남근상(男根像)을 대표하며 아스다롯 은 여근(女根)의 형상을 표한다.
이를 뒤집어서 설명하면 모든 유대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는데 이 즈음부터 유독 이스라엘 부족만이 이를 빼고 야훼만 섬겼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알 신봉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 특히 가나안 지역에서 히브리 사람들이 갖고 있던 믿음이었는데, 이는 어머니 하나님 또는 어머니 신(神) 아셔라 또는 아스타테 (Astarte)의 남편 엘 엘리온 (El Elyon)이 아니고 달리 좋아하던 남성 동반자 주검의 신 얌 (Yamm)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이는 힌두교의 야마 (Yama)에서 온 신(神)으로, 그 어원은 산스크리트(Sanskrit) 말로 제물로 바친다는 뜻의 Bala' 또는 Bali'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남근(男根)이라는 것은 여성을 위해 희생물로 바친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옛날 왕(王)들은 영생을 갖지 못한 남신(男神)으로 결국 하나님 어머니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존체1(存體-being)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알 이란 어휘는 옛날 페니키아(Peoenician)사람들을 통하여 유태민족은 물론 스페인이나 켈트 민족에게도 전파되어 그 곳에서는 Bel, Bial , 또는 Beltain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호세아 2장 2-8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어머니를 질책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어머니가 바알 을 섬기고 사용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을 일컫는 아셔라 (Ashera)라는 말은 그 의미가 페르시아 말로 움푹 들어간 곳이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이 출생하는 근원이라 하여 여신의 성기를 상징하며 상(像)을 만들어 모계사회(母系社會) 시절의 히브리 민족이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신의 움푹 들어간 곳(grove 또는 pit), 즉 성기 요니 (Yoni)를 아트라 카디사 (Athra Qaddisa)라 불렀다.
이 말은 직역을 하면 성스러운 창녀의 구멍 이란 뜻이며, 후일에 가나안 사람들은 콰니야투 엘리마 (Qaniyatu Elima)라 불러 하나님(Gods, 남신)들을 탄생시키는 여자 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또 에짚트에서도 여신 이시스 (Isis) 시절 이전에 율법을 만드는 어머니 라는 뜻으로 아쉐쉬 (Ashesh)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이 말의 뜻 자체는 솟아낸다 또는 지원을 한다 라는 뜻으로 유방의 기능을 뜻했다.
그래서 그녀의 요니 (Yoni, 여자의 성기)를 섬기는 사당을 테베스(Thebes)에서는 아셔, 아슈렐,
아슈렐트 (Asher, Ashrel, Ashrelt) 등으로 불렀고, 남신들을 낳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 라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셔라는 히브리 사람들의 신인 엘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샤헤르(Shaher)와 샬렘(Shalem) 쌍둥이를 낳게 된다. 여기서 아셔라 는 암소이고 엘 은 황소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성스러운 결혼의 축제로 어머니의 젖 국물에 어린 염소를 넣어 탕을 만들어 삶아 먹었으며,
이것을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동지에 팥죽 끓여 먹듯 염소 새끼를 우유로 탕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 풍습을 유대인 승려들이 금지시킨 내용이 출애굽기 23장 19절에 소개된다. 히브리 사람들이 야훼 라는 홀로 존재하는 남신을 섬기고 남성우월주의인 부계사회를 조성하면서 여신의 존재를 제거시켰던 것이고, 그래서 열왕기상 14장 23절에서 아셔라 상을 만들어 놓은 일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이 노발대발했다는 말이 나오며, 역대하 24장 7절에는 바알 을 섬기는 여자 승려의 자식들이 야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성물을 훔쳐다 바알 상을 만드는데 사용했다는 소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엘 엘리온 이란 신은 이사야 14장 13절에 나오는 북극집회, 또는 북극산에 있는 신들의 회의장에서 회의를 주관하는 여호와의 전임자인 주신(主神)의 이름이었고, 회의장에서 다른 신들 (Master Craftsmen)과 상의하여 군주(Lordship)의 직위를 주는 권리도 가진 신이었다.
註 1 : 존체(存體)라는 어휘는 영어의 being'을 뜻하는 적절한 한국어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저자 자의로 지은 말이니,
이 책에서는 being'의 우리말로 약속하고 읽어 주기 바란다.
being 이라는 것은 창조주와 같은 절대신(絶對神), Supreme Being'이나 divine being' 또는 인간 human being' 등을 말하는 의식(意識)을 갖고 존재(存在)하는 유형 또는 무형의 체(體)를 말한다.
이것은 영(靈)을 소유한 존체 라 할 수 있는 entity'와 비슷하여 저자는 entity'를 혼체(魂體) 또는 영체(靈體)라 표기하기로 했다. 혹 독자 중 더욱 적절한 우리 말 어휘가 있으면 저자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희망이며, 이 책에서 서로의 약속으로 이 말뜻을 이해해 줌에 감사하는 바이다. "
[출처] 반기독교 안티예수 - http://antiyesu.net/bbs/board.php?bo_table=tb11&wr_id=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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