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박노자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국유본론 중간결산

2013/02/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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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태자본과 박노자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2/17-2

 

"고선지:

박 노 자 : 박 + 러시아(露)의 아들(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부교수. 1973년생 어린 넘의 시키가.. 지 자신이 뭐 트로츠키적 사회주의자라고 떠벌리며 호들갑 떠는데... 이 넘이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스포츠 등등 다방면에 칼럼을 써 오는데, 그 중 고대사에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올바른 정론을 이룩하신 신채호 ,정인보 선생의 업적을 폄하하고 현대 소장파 고대사 연구가들에게 민족감정을 고대사에 연결하지 말고 세계 보편성에 맞게 연구하라는 건방진 말을 하는데.. 이 점 인드라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울화통 터집니다 그려. 내가 역사 쪽에 어두운 것은 사실이나 그 자슥 말이 너무 깝치는 소리를 하니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인드라님이 엄중한 경고성 이론은 펼치셔 그 넘 오슬로 대학에서 못 나오게끔 만드시길 부탁합니다. 아무리 봐도 그 넘 유자본 물 먹고 한국에 급파. 민족단결을 은근히 와해시키려는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려. 사실 인드라님 글 읽고 저도 유자본 냄새 맡는 한국을 지키는 파수꾼 개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이 글 올려봅니다. 으드득..

 

INDRA:

글 고맙습니다. 박노자는 유태인인가. 아버지가 유태인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박노자가 유태인이려면, 어머니가 유태인이거나, 유대교인이어야 한다. 해서, 박노자를 무턱대고 유태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를 전제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려면 박노자의 10대와 20대 초반 기록이 있어야 한다. 록펠러의 딸랑이이자 개인별장 부동산 구입 전문가이며 미국 군산복합체 대학 교수로 교수된 이력이 의심스러운 촘스키도 10대 시절 세계 유태인 그룹과 밀접한 관련을 지녔던 것이다. 해서, 박노자 역시 국제 유태인 네트워크와 연관된 것이 없는지 박노자가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유태인들이 전 세계 유태인 현황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박노자처럼 학문적 자질이 없는 이들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하여 먹고살 대책을 마련하게 해주는 것은 부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박노자에 대한 비판은 지금까지 세 경향에서 주로 등장했다. 하나는 우파 민족주의에서 제기된 비판이다. 불법체류자 문제가 주된 이슈다. 다른 하나는 근래 뉴라이트에서 박노자를 비판한 바 있다. 근대성이 주된 이슈이다. 마지막으로 좌파 민족주의에서 제기된 비판이다. 예서, 님은 세 번째 입장으로 추론이 된다. 허나, 이런 비판 중에는 인종주의적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에는 인드라가 극히 비판적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노자를 비판한다면 인드라는 그 누구보다 박노자를 옹호할 것이다. 이는 이명박을 인종주의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친일매국세력이 파시즘적으로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하면, 인드라의 박노자 비판 지점은 어떠한가. 초기에는 세 가지 경향 그 어디에고 포함되지 않고, 인드라는 박노자의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지금껏 박노자를 비판해왔다. 인드라는 초기에 박노자에 호의적인 편이었다. 허나, 로스차일드-중앙일보에 칼럼을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비판적이게 되었다. 물론 로스차일드-중앙일보에 칼럼을 실을 수 있다. 다만, 지난 시기 벨기에에서 학위를 받은 정운영이 친일매국 한겨레에서 로스차일드-중앙일보로 이적했을 때 비판을 받았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미묘한 문제다.

 

인드라가 흥미를 느꼈던 지점은 예외적인 현상들이다. 가령 누군가가 같은 행위를 했을 때는 비판을 받는데, 박노자이면 예외가 되는 현상 말이다. 다시 말해, 박노자가 로스차일드-중앙일보에 글을 기고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한다는 것은 위로부터의 낙하산 행위이지, 아래로부터의 민심을 얻어 칼럼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국유본 언론인 뉴욕타임즈나 엘에이타임즈에 한국인이 글을 기고한다면, 국유본 스파이라는 혐의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인드라 주장이다. 예까지는 일상적이다. 헌데, 비판이 없었다. 로스차일드-중앙일보야 그렇다해도 평소 삼성에 비판적이거나 조중동에 비판적인 이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침묵이었다. 해서, 박노자 인기가 급속도로 오르며 책만 많이 팔렸다. 마치 친일매국 네이버에 친일매국 내일신문과 친일 뉴데일리가 포함되자 사이트 방문자수가 폭등한 것과 같다. 게다가 친일 뉴데일리는 근 몇 년간 수위를 차지하던 친일매국 오마이를 누른 것이다. 수많은 친일매국 언론 사이에 단지 친일 뉴데일리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사정이 이런 게다. 그처럼 중앙일보 논조들 가운데 박노자가 튀니 당연 박노자 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후 인드라는 박노자의 티벳 비판을 주목했다. 그의 가야사 연구 논조로 본다면, 티벳에 긍정적일 법도 한데, 비판적이다. 로스차일드-중앙에서 글을 기고한 것이 박노자에 대한 호의를 거둔 것이었으나 그럴 법도 하다는 중립적인 데에 머물렀다면, 박노자의 티벳 비판은 박노자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후 인드라가 국유본론을 정립해나가는 시기에 그가 오슬로 한국학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빙긋 웃을 수 있게 되었던 게다. 국유본은 이차대전에서 보듯 한편으로는 히틀러와 일본 일왕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스탈린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곧잘 쓴다. 이는 일국 내에서도 적용된다. 가령 일본에서는 한편으로 CIA 등에서 일본 집권층을 지원하는 동시에 전쟁저항자협회와 같은 국유본 단체를 만들어서 견제하게 한다. 해서, 인드라가 국유본론을 정립하면서 의혹 리스트에 올린 이들이 세 명이다. 박노자, 풀러첸, 안드레이 렌코프가 그들이다. 인드라는 물론 이들이 국유본 간첩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풀러첸과 안드레이 렌코프가 우익 내에서 활동하는 국유본 끄나풀이라면 박노자는 좌익 내에서 암약하는 국유본 끄나풀이 아닐까 하고 예의 지켜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향한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허나, 근래 인드라가 국유본론을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좌파 국제주의 관점보다 진전된 입장에서 박노자를 비판하고 있다.

 

하나, 박노자 이전에 미하일박 선생이 있다.

 

박노자라는 이름은 고려인이었던 그의 스승, 미하일 박의 조언으로 러시아의 한자 표기인 로서아의 "노"와 아들 이라는 뜻의 "자"를 차용해 "노자"라고 지은 것이다. 하면, 박노자의 박씨 성에 영향을 주었던 미하일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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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1937년 9월 21일에서 11월 15일까지 강제이주가 시행되었다. 이보다 일 년 이른 해인 1936년 미하일박은 연해주 출신으로 드물게 모스크바 국립대에 입학한다. 하면, 그는 민족의 배신자였던가? 아니다. 외세에 저항했던 박정희였다.

 

"1918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현(縣)에서 고려인 2세로 태어난 미하일 박은 1930년대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시베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1938년 아버지(니콜라이 박)가 간첩 혐의로 소련 당국에 의해 처형되고, 형도 체포되어 복역하는 등 가슴 아픈 고려인의 이주사(史)를 한 몸에 간직한 살아 있는 역사였다... 1947년 모스크바 철학·문학·역사대학(MIFLI)에서 김옥균(金玉均) 등 급진개화파를 비판한 논문 〈19세기 후반 조선정치사 개요〉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49년 모스크바대 교수로 부임한 미하일 박은 학문 활동에도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겼다. 그는 1959년 《삼국사기》〈신라본기〉의 러시아어 번역 발간을 시작으로 《삼국사기》 번역에 착수하여 2002년 84세 고령에 전체를 완역했다. 그는 고대사회를 '노예 소유제'로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고 한국 고대사회를 국가 관료제 중심의 귀족적 성격을 가진 '초기 봉건사회'로 규정했다. 또 "북한의 연구는 '지시'와 '교시'에 얼마나 맞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됐다"며 "북한 사학의 주요 특징은 교조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03년에는 러시아 동료 교수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고구려가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는 것은 세계사의 엄연한 정설"이라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manushya?Redirect=Log&logNo=130046344783

스탈린 치하에서 가족이 수난을 당했음에도 미하일박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소련의 북한 통치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교수로까지 부임한 배경에는 무엇인가 별로 알고 싶은 않은 '은밀한' 과거가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국유본이 남한에서는 이승만에게 권력을 주는 대신 특공대 출신의 유일한이 이승만을 감시했듯,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신 소련파로 김일성을 감시했다. 해서, 1950년대 북한 역사학계의 입장이란 소련파의 입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동도서기론. 이때 북한 역사학계의 중심인물은 유학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영남 퇴계문도였다. 하여, 이들은 조선 후기 유학자, 특히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을 중시했다. 조선시대 야당은 각종 사화의 중심에 서있던 퇴계와 남명으로 대표되는 영남학파였다.

 

예서, 미하일박이 김옥균에 비판적인 관점을 지녔다는 것은 당대 동학운동 등에 유념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이승만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론을 비판하는 셈이다. 실제로도 북한은 박정희 정권 출범 전까지 동학운동에 무게를 두었다. 반면 남한은 박정희 정권 출범 전까지 동학운동에 대해 과소평가했다. 허나, 박정희 정권 이후에는 사태가 달라진다. 남한에서는 동학운동 중시로 바뀌었다. 동학을 되살리고, 동학 관련 민족종교들을 챙겼다. 아버지가 동학도였던 박정희 때문이다. 반면 평양 정권은 동학운동을 인정하면 정통성을 박정희에게 빼앗긴다고 여겨 동학운동 대신 구한말 구국운동으로 중심을 이동시켰다. 아울러 남로당 성향의 사회주의 퇴계문도를 역사학계에서 제거했다. 물론 평양정권은 남로당파는 물론 소련파, 연안파, 국내파 모두를 숙청했다. 이러한 남북한 움직임은 국유본의 전략이 배경이다. 국유본은 김일성과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를 대통령과 주석으로 임명했다. 헌데, 당대 세계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국유본은 한반도에서 권력 중심을 김일성에서 박정희로 가져간 것이다.

 

당대 좌파 국제주의와 좌파 민족주의 간극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좌파 국제주의 = 좌파 민족주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보다 레닌의 민족주의가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에게 더 호응을 얻던 시기였다. 호치민이 대표적이다. 이때 호치민을 비판하던 유일한 세력은 고작 IS였을 뿐이다. 이유는 호치민의 트로츠키주의자 탄압이 이유이다. 허나, 실은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해도 모두 호치민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트로츠키 분파 중 유일하게 IS만이 호치민을 비판했다. IS 입장에서 소련은 미국과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국가였고, 호치민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실질적인 비판 배경이었다. 반면 다른 트로츠키 분파는 소련이 미국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당과 국가가 타락했지만, 그래도 미국보다는 낫다는 입장이었다.

 

사정이 이러하였기에, 당대 주체사상 이론은 좌파 국제주의=좌파 민족주의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버림을 받은 데다가 중국 모택동주의자들에게까지 괄시를 받았으니 김일성 정권으로서는 1960년대란 위기의 연속이었다. 반면 빅터 로스차일드의 뒷받침에 힘입어 진정한 반공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은 역설적이게도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취하며 이념적으로도 좌파 민족주의 색채를 강화시켰다. 대표적인 예로 악질 친일파 김지태 재산을 환수시키는 등의 친일파 처단이다. 이로 인해 악질 친일매국노 윤보선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1970년대 박정희는 소련과의 비밀협정을 체결하려고까지 했다. 하여, 미하일박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 정권에 대해 긍정적인 반면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을 게다. 또한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좌파 국제주의 = 좌파 민족주의 노선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서 보듯, 미하일박 선생은 시대적인 제약이 있었지만,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힘쓴 것을 알 수 있다. 미하일박 선생의 훌륭한 점은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좌파국제주의=좌파 민족주의라는 도식은 소련 붕괴로 인해 무너졌다. 좌파 국제주의는 소련 중심주의와 동의어는 아니었는지 비판이 필요하며, 좌파 민족주의는 소련의 위성국가 통치를 정당화시킨 논리가 아니었는가 하는 비판이 요구된다. 여기까지가 오늘날의 좌파 국제주의 입장에서의 관점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예서 더 나아간다. 세계체제로서의 냉전체제를 구축시킨 것도 국유본이요, 그 냉전체제를 해체시킨 것도 국유본이다. 해서, 국유본론 비판은 좌파국제주의 비판을 비판하는 데에 있으며, 좌파민족주의 비판을 비판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냉전체제를 해체시킨 것이 국유본이기에, 그 해체논리 역시 국유본이 제공하였을 터. 소련체제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흐름에서 교묘하게 침투한 국유본 논리를 변별해내자는 것이다. 아울러 국유본론은 박정희는 물론 이승만과 김일성 체제를 긍정적 이해로 접근한다. 분명 그들 모두 국유본이 대통령과 주석으로 임명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과 주석은 예외없이 국유본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하여, 국유본론은 이들이 국유본에 저항한 지점을 중심으로 해서 사소한 것일지라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해서, 국유본론은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닉슨과 모택동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도 조심스레 진행중이다. 동시에 국유본이 당대 그들의 전략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높인다면 이를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해서, 국유본론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지도자들을 높이 세우고, 국유본이 근래 과대평가하는 데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각을 대립시키는 변혁적 깽판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게다. 인드라는 미하일박에도 긍정적이며, 김일성, 박정희에도 긍정적이다.

 

둘, 박노자의 가야사 연구는 중국 제국주의를 위한 연구인가?

 

박노자가 스승인 미하일박을 평가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미하일 박 선생님의 學恩을 다 이야기하자면 아예 책을 따로 써야 하기에 여기에다가 가장 중요한 요점만 아주 간추려서 적어놓읍시다. 첫째, 미하일 박 선생님께서 고대사회를 무조건 "노예소유제"로 보려는 스탈린주의의 주박을 풀어 한국 고대 사회를 "초기 봉건 사회"라고 규정하시고, "국가 관료제 중심의 귀족적 사회"라고 상세히 정의해놓으셨습니다. 소련의 "동아시아적 국가봉건제론"의 원조는 실로 미하일 박 선생님이신데, 이 이론은 관료제 중심으로 발전돼온, 그리고 18세기 이전까지 시장/상품통화경제 영역을 별로 만들어내지 못한 한국 사회의 핵심적 특질을 가장 잘 설명해준 것입니다. 둘째, 1950년대 초반부터 <삼국사기> 신라본기 러역을 시작하시어 1990년대 초반까지 연표까지 혼자서 번역하신 게 미하일 박 선생님이셨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제자들과 함께 <잡지>, <열전>까지 다 해놓으셨는데, 세계 최초의 <삼국사기> 외국어 완역이 완성됐습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0293

인드라 입장에서는 미하일박 선생의 동아시아적 국가관료제 체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흥미롭고,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인드라가 여전히 지닌 관점은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중앙집권적 국가 관료제를 이룩한 국가는 중국 진나라 진시황제 시기이다. 진나라에 이르러 법가 이념에 기반하여 종래 제후 봉건영주에게 맡기기보다 중앙에서 관료를 파견해서 지방 귀족세력 권력을 통제했다. 하고, 한반도에서 국가 관료제가 정착된 것은 고려 광종 이후이다. 헌데, 미하일박 선생께서는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국가 관료제로 보고 있다. 이는 혁명적인 게다. 왜? 인드라의 관점은 고려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반면 미하일박 선생의 입장은 통일신라서부터 정통성을 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하일박 선생은 좌파 민족주의 노선을 올곧게 드러내고 있다. 반면 박노자는 박사논문이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이듯 미하일박 스승과 거리를 두고 있다.

 

언뜻 이해하기로는, 미하일박이 신라와 가야를 소련과 한반도에서 소련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박노자는 가야사를 중심으로 하여 소련과 한반도에서 한반도 중심적인 관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미하일박은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반면 박노자는 한반도에 대해 비판적이니 이 모순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인드라는 이 모순이 미하일박과 박노자의 한국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스탈린은 무슨 목적으로 미하일박을 교수로 임명하였는가. 국유본은 무슨 목적으로 박노자를 한국으로 파견시켰으며, 오슬로에 교수 자리를 마련해주었는가. 한국인을 위해서? 착각은 자유다. 당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한반도인을 희생시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무엇인가. 한반도를 배제하면 된다. 신라와 가야와 비견되는 정치적 현실은 소련과 한반도가 아니다. 소련과 중국이다. 해서, 미하일박은 중국 동북공정에 비판적인 반면, 박노자는 새로운 소련으로 받아들인 중국에 긍정적인 게다. 님이 박노자에 대해서 분개하는 것은 왜일까. 신채호, 정인보 업적을 폄하하고, 현대 소장파 고대사 연구가들에게 민족감정을 고대사에 연결하지 말고, 세계 보편성에 맞게 연구하라는 건방진 말이라 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하면, 박노자의 좌파 민족주의 비판인 게다. 왜 박노자는 좌파 민족주의에 비판적일까. 아무 때나 비판적일까. 그렇지 않다. 잘 보시라. 님이 분개할만한 글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Q: 고구려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당신은) 신라의 불완전한 삼국통일에 대해선 관대하다.

A: 당시 신라의 선택은 당나라 이외엔 있을 수가 없었다. 약자로서 어디에 붙느냐의 계산이 남았을 뿐인데 당나라가 중국을 평정하는 걸 보고 고구려의 멸망을 점쳤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고구려를 없앨 수 없으니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대동강 이남은 우리 땅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결국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강자와의 연합을 택한 것인데,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라면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신라엔 고구려도 외세였다. 언어와 문화가 달랐는데 후대적인 민족 개념을 들이대는 건 난센스다. 당시엔 동족 인식이 거의 없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인터뷰에서"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67721&sc=naver&kind=menu_code&keys=4

http://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예서, 박노자는 좌파 민족주의 사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가령 신라-당 연합 비판은 잘못된 비판이라는 게다. 또한 만주 고토회복은 꿈 깨라고 말한다. 오늘날 조선인, 한인은 한 번도 만주를 영토로 지배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언뜻 들으면 합리적인 발언 같다. 특히 진보적이라 스스로 여기면서 주사파적 견해에는 비판적인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듯한 설명을 해댄다. 이에 대한 인드라 입장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박노자는 친중국적이면 환영하는 입장이다. 반면 반중국적이면 비판적이다. 다시 말해, 좌파민족주의가 반미하면 중국에 이롭다 여기니 이때는 좌파 민족주의 지지한다. 반면 좌파민족주의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비판적이고, 만주 고토 회복을 내세우고, 북한 체제에 긍정적이면 비판적이게 된다. 왜? 중국 국익에 훼손되므로.

 

http://blog.daum.net/mooncourt/8470371

이해가 되시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보자. 인드라는 박노자의 신라-당 연합 비판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 상식과는 다르지만, '전쟁은 국가의 기강'이라는 한 아나키스트의 풍자적 발언이 어떤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긴 하지. 근현대 대국들도 그렇지만, 고대사에서는 국가란 바로 전쟁 조직부터 의미했지. 신라도, 다른 어떤 고대국가도 다 전장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라들이야.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가의 수취, 행정 체계도 단련됐지만 일면 피착취계급인 평민에게 이익이 전혀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 전공戰功이 있으면 고대국가에서 평민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출세가 가능했거든. 이 출세를 시켜주면서 전쟁을 하는 국가가 민심도 달래고 군민君民 일치의 허상도 과시했지. 어쨌든 평민 남성에게는 전쟁이란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으니 전쟁을 좀 바랐을 수도 있었지. 참, 내 말을 기억하게. 지금 개판이 된 러시아도 전쟁을 대단히 필요로 하는 때야. 머지않아 다수의 국민이 환영할 어떤 전쟁이 올 것 같아."

http://www.cyworld.com/soonsoodream/3079317

허나, 박노자가 왜 신라 변호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박노자가 신라 변호를 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신라가 당과 협력을 했기 때문이다. 박노자가 당나라 중심이기에 신라를 변호하는 것이지, 신라 중심이어서 신라-당 연합에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보면 신라인이면서 김유신을 하대하고 당나라에 충성하는 재수 없는 새끼가 나온다. 박노자가 딱 그놈인 게다. 재.수.없.는.X.X^^! 해서, 간단히 정리한다. 중국이 월드컵 4강을 갔다면 박노자는 월드컵과 축구의 긍정적인 면을 기술할 자이다. 허나, 한국이 4강가고, 중국은 참패를 했다. 해서, 박노자의 정신병적 패턴을 이해해야 하는 게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하여, 박노자의 정치적 의도를 냉철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박노자는 티벳과 달라이라마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인드라도 티벳과 달라이라마에 대해 비판적인 지점이 분명 있다. 달라이라마는 CI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허나, 이런 문제가 중국 당국의 티벳 인민 탄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박노자는 소련과 중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중국 편을 들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또 다시 전쟁을 벌인다면 중국 편을 들 것이다. 중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여도 중국 편을 들 것으로 보인다. 해서, 중국과 남한이 전쟁을 하면 중국 편을 들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여,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XXX. 박노자는 이름을 잘 못 지었다. 박중자라고 해야 했다^^!

 

셋, 박노자의 박정희 죽이기는 반면교사가 될 것

 

인드라는 미하일박 선생의 관점을 평가한다. 가령 신라 골품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라 골품제는 비판의 대상이다. 허나, 인드라는 신라 골품제를 삼국통일을 가능하게 한 제도였다고 본다. 가령 화랑이 이끌던 신라는 전투력에서는 백제의 계백에게 뒤졌으나 애국심은 출중했다고 전해진다. 마치 로마 신라 대 카르타고 백제를 연상하게 한다. 이는 중국 제도와 이질적인 유목 민족의 독특한 혈연주의에 기초한 국가 관료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에 잘 나와 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신라가 앞선 문명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초기 신라는 수준높은 백제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허나, 백제보다 배고프고, 절실하였고, 백성이 왕족 상층에 충성심이 높았던 데에 있다. 이는 일본 열도로 간 왜도 신라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초기에는 백제 문화를 도입하던 열도 왜는 어느 순간 백제를 압도하였고, 그 결과 왜가 아닌 일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통일신라에 대한 정통성을 고려하면서도 인드라가 고려 광종을 중시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고려사 광종 경신 11년 기사를 보면 개경(開京)을 황도(皇都)로, 서경(西京)을 서도(西都)로 각각 고쳤다. 650년 신라 진덕왕이 법흥왕 때부터 써 오던 독자 연호의 사용을 중지하고 중국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룬 직후 당나라와의 처절한 투쟁 끝에 한반도를 지켜내었다. 혹자는 만주를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한반도라도 지켜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통일신라가 있어 고려가 있었다. 다만, 당나라와의 전쟁을 고려한다면 미하일박 선생 견해를 존중하겠으나, 그 아무리 시대적 한계가 있더라도 독자 연호 중지를 생각하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인드라는 당대 동아시아 역학관계를 고려한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중국에 강력한 당 왕조가 있었다. 그만큼 통일신라는 어려웠다. 반면 고려시대에는 중국이 혼란스러워 고려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 해서, 고려는 중국 제도를 모방하여 고구려의 뒤를 잇는 천하관을 제시했던 게다. 허나, 이는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내부 일로 바깥 일을 신경쓰지 않은 탓에 고려나 일본이 폼 잡은 데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한반도가 중국에 인접하다 보니 한반도가 열도에 비해 좀 더 중국에 신경을 쓴 차이일 뿐, 오십보 백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면서 고려인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같은 민족의 역사로 인식했다는 게다. 해서, 김부식의 역사서가 삼국사기인 게다. 만일 박노자 인식대로라면 신라와 백제만이 포함된 이국사기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해서, 만주 고토회복이라는 역사 이해는 엉뚱하지 않다. 엉뚱한 것은 오히려 박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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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전남대 김재호는 박노자가 위정척사파 입장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비판하고 있다고 했다. 허나, 인드라는 뉴라이트적인 박노자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뉴라이트와 박노자는 박정희 죽이기에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언뜻 보면 박정희를 칭찬하는 듯하지만, 실은 박정희를 누구보다 죽이고 있다. 경제성장만 평가한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제외하고서라도 평가할 것이 너무나 많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뉴라이트 가치와 배치되어서 뉴라이트가 박정희에 비판적인 게다. 뉴라이트와 박노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하나, 평양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다. 둘, 박정희 죽이기이다.

 

"원래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사민주의적 성향의 "마파이"당이 집권해왔는데 (http://en.wikipedia.org/wiki/Mapai) 그 정책으로 초기의 이스라엘은 대표적 국가 자본주의적 경향의 복지 사회로 틀이 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말 이후의 신자유주의로 전환돼 지금으로서 전체 인구의 약 24%가 빈민이 된 것입니다 "

 

중동전쟁의 주역인 마파이당에 대한 박노자의 평가를 보시라~! 인권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그 좋은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도 군대에 가는데, 세계 최고로 인권이 나쁜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으니 참으로 인권후진국가임이 틀림이 없다. 또한 1970년대 이스라엘 인권이 얼마나 좋았길래 PLO 아라파트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테러했을까. 또한 수십 년간 장기집권 독재를 했다. 무엇보다 박노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스라엘 마파이당이 세계 최초로 박정희 정권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한마디를 해야 정상이 아니겠나^^! 박노자가 그 자신 견해가 객관적이다,라고 주장하려면 이스라엘 마파이당을 한국 공화당 이상으로 비판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박정희 정권을 마파이당 이상으로 호평해야 하는 것이다. 허나, 그 반대라는 것은 박노자의 주장이 편향적임을 의미하고, 그 편향에 대해 우리는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면, 박정희는 누구인가. 대체로 박정희를 긍정하는 이들은 박정희 집권 초반에 북한은 물론 방글라데시보다 못한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오늘날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만든 정치지도자임을 내세운다. 물론 이런 점도 없지 않다. 허나, 인드라는 그간 평가되지 않은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외세에 맞선 동학운동을 하다 처형당할 뻔했던 구한말 무관 출신 아버지를 두고 있으며, 일제 때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죽은 형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그 자신도 일제 간섭에 교사직을 벗어던졌으며, 해방 후에는 남로당원이기도 했다. 또한 집권 후에는 민족의 재산을 강탈한 친일매국노 김지태 재산을 환수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데에 노력을 경주했다. 후세가 박정희 선생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서, 인드라는 박노자 비판을 아직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 없다.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박노자가 좀 더 실수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좀 더 결정적인 실수 말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박노자가 좀 더 강력하게 박정희 죽이기를 해주었으면 싶다. 근래 워낙 친일매국세력이 꼴통무뇌아짓거리를 많이 해서 박노자가 힘 좀 써야 한다. 해서, 더더욱 박정희 죽이기에 나서야 한다.

 

인드라는 박노자가 박정희 죽이기를 힘쓸수록 오히려 박정희가 부활한다고 보고 있다. 친일매국세력 집권 내용이 좋았다면 박정희는 한국인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갔을 것이다. 허나, 친일매국세력이 권력을 잡아 한 짓이 워낙 형편이 없었기에 한국인은 박정희를 점차 떠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국유본의 지시도 있었겠지만, 친일매국세력도 자신의 무능을 모면하고자 능동적으로 박정희 죽이기에 나선 탓에 오히려 박정희는 더더욱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살아있는 친일매국세력들이 모두 합쳐도 죽은 박정희 하나를 못 당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박정희 세력이라고는 정치권에 거의 없다. 박근혜 달랑 하나 있으나, 박근혜 외에는 한나라당에도, 친일매국부패민주당에도, 그 어디에도 박정희주의자들은 만나볼 수 없다. 게다가 박근혜 역시도 오늘날 박근혜가 있게 된 것이 국유본 덕분이고, 차기 대통령이 되려면 국유본 지시를 거역할 수 없다. 결국 정치권에 박정희주의자는 없다. 그럼에도 박정희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 이유는 하나다. 그 모든 박정희 죽이기 시도가 오히려 민심의 반발을 낳고 있다는 게다. 민심은 천심이다.

 

넷, 박노자는 국유본의 전략 변경으로 용도 폐기될 것

 

하면, 박노자의 중국 짝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는 국유본론 입장에서 로스차일드적이다. 오늘날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면 중국에 손 벌리는 이유를 잘 생각하면 된다. 아레바 일부 지분을 중국 국부펀드가 인수하는 것도 검토하면 된다. 로스차일드은행 지분을 중국이 인수하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IMF가 패스하면 중국이 슛을 때리는 현 세계 구도 역학 관계를 파악해도 된다. 해서, 박노자의 중국 짝사랑의 실체는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로스차일드적인 중국 현 지도부에 있다. 해서, 현 상황에서는 박노자의 논의가 얼추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사태는 바뀐다.

 

차기 중국 지도자로 부상하는 이가 누구인가.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누구인가. 현 후진타오가 로스차일드계라면, 시진핑은 록펠러계다. 시진핑이 최근 한국에 방문해서 덕담을 했다. 한나라당은 중국과 최초로 교류를 시작한 정당이라고 한 게다. 근래 이명박 정부가 최측근 류우익을 중국 대사로 보내고, 중국 정부를 재평가하는 것을 우연으로 볼 것인가? 아니다. 근래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굉장히 긴밀하다. 함께 동아시아의 미래를 논의할 정도로 격상되었다.

 

박노자는 한미동맹파처럼 외눈박이이다. 이미 세계는 한반도를 제외하고 냉전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반도도 조만간 냉전 해체가 가시화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남한이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더 높은 수준으로 교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남한 기업가들은 중국 공산당 관료들과 수시로 투자 상담을 하고 있다. 2009년 하반기 선진국 경제가 어려움에도 한국 경제가 그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내수 진작 정책 덕분이었다. 이제 냉전에 휘둘릴 때는 지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어야 한다. 한반도는 내일이라도 당장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한민족이 합심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은 물론이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전 대륙으로 이념에 상관없이 전 방위 외교를 펼쳐야 한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아직 시진핑이 집권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2006년 이후의 부시 정권처럼 중국이 이명박 정부에 굉장히 친화적이다. 이미 중국은 정권 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서, 박노자는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가) 박노자가 그간 친중국적 입장을 유지해왔기에 한중 친선이 더욱 강화된다면 이명박 정부를 당나라-신라 관계처럼 칭찬해야 한다. 이것이 박노자가 그나마 학자적 양심을 유지하는 길이다. 허나, 이는 그나마 그간 박노자를 호평해온 친일매국부패세력에게 찍히는 결과가 올 것이다.

 

(나) 박노자가 본색을 드러내어 친중국 입장을 벗어던지고 로스차일드적인 입장을 드러내어 한중 친선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는 박노자의 학자적 양심을 해치는 자멸의 길이 될 것이다. 당장이야 친일매국부패세력에게 도움을 받겠지만.

 

만일 박노자가 국유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면, 그 역할은 일본에서의 전쟁저항자협회

와 같은 것일 게다. 국유본은 한편으로 일본 집권당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일본 집권당이 국유본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예방, 견제하기 위한 역할 말이다. 헌데, 이러한 역할은 시기마다 안성맞춤이 있는 게다. 박노자는 노무현 정권에 지나치게 특화된 인물이었기에 노무현 정권에 대한 옹호와 비판에는 다른 이들보다 효율적이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옹호와 비판에는 비효율적이다. 한마디로 이슈가 되지 않는다. 이는 박노자 뿐만 아니라 '아웃사이더' 멤버들 전체에 해당되는 것일 게다.

 

해서, 현재 박노자가 '가'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좌로, 좌로^^! 해서, 박노자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용도폐기가 되고 있다. 국유본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임명했을 때 이데올로그로 가야사 전공 박노자가 잠시 필요했는지 모른다. 허나, 이제 쓸모가 없다. 일회용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유본이 지금껏 권력을 유지한 것은 이용가치가 없는 대상에 대해서 냉정했기 때문이다. 인드라는 박노자에게 권고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미하일박 선생과 박정희 선생에게 진심어린 참회를 하는 것이다. 해서, 참된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

2010년 경제전망: 삼성, 대우건설, 금호사태의 비밀과 박정희 죽이기국유본론 2010 2010/01/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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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쪽발왕과 쪽발왕계, 쪽발아베, 쪽발노다, 이 병쉰들이 10초안에 똥 못 싸면 때려죽이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쪽발민주당 해체

인민의 적,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아웃

골룸빡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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