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배후는 국제유태자본이다 국유본론 중간결산

2013/02/17 15:31

http://blog.naver.com/miavenus/70159532794

북핵 배후는 국제유태자본이다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2/17-4

 

"칼과피:

이번 글과는 관계없지만, 전 글에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과 발사체를 이라크로부터 사다트 정권 때 도입되었다고 하셨는데, 그 근거 자료는 있습니까? 인터넷을 뒤져봐도 구소련으로부터 미사일과 기술을 가져왔다고만 나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71402391&code=930401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225010307270260021

 

INDRA:

글 감사드린다. http://blog.naver.com/zkfrhkvl/64980896 이제 님이 어용언론, 혹은 찌라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축하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로열더치쉘(Royal Dutch/Shell Group of Companies)을 기억해야 한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4&eid=7+Fp3XUMq4WNJD0s7BFGlsclFvRJ7nkV&qb=66Gc7Je0642U7LmY7ImY&enc=utf8&pid=fOBNfloi5TVsschkUu4sss--431297&sid=SdjbKHPH2EkAAHryIvE

로열더치쉘하면 빌더버그의 두 주역인 국제유태자본의 황제였던 빅터 로스차일드와 나치(Nazi) 비밀경찰(SS) 출신의 네덜란드 베른하르트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마커스 새뮤엘을 떠올려야 한다.

 

"He served as chairman of the Agricultural Research Council from 1948 to 1958 and as worldwide head of research at Royal Dutch/Shell from 1963 to 1970."

http://en.wikipedia.org/wiki/Victor_Rothschild,_3rd_Baron_Rothschild

"새뮤얼은 만족하지 않고 석유로 눈을 돌렸다.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던 노벨 형제, 금융재벌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았으나 문제는 가격. 스탠더드 오일과 가격경쟁력으로 맞서기 위해 유조선을 현대화하고 중국과 일본ㆍ싱가포르에 정제시설과 저장 기지를 만들었다."

유태인 마커스 새뮤엘의 일본 쉘 성공기?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711/e2007110417350863820.htm

예서, 빅터 로스차일드, 킴 필비, 킴 필비의 아버지인 존 필비 이 3인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이차대전 이후 중동 정세의 3할 이상에 대해 이해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들의 정점은 수에즈전쟁이다. 나머지 3할은 록펠러와 브레진스키의 몫이 될 것이며, 나머지 4할이 중동 실권자의 몫이 될 것이다.

 

중동 실권자에 대해서는 사우디의 이븐 사우드와 함께 이집트의 박정희인 나세르를 이해하는 것이 첩경이다.

 

http://blog.naver.com/n1steward?Redirect=Log&logNo=60061294112

나세르는 나세르주의까지 나올 정도로 세계 비동맹 진영에서 유고 티토,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인도 네루와 함께 4대 천왕으로 존경받던 인물이다. 나세르는 수에즈 국유화로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아랍의 이익을 수호하는 지도자로 떠오른다. 그러다가 1970년 미국이 제안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잠정적으로 승인한 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후 나세르의 동지인 사다트가 대통령이 된다. 예까지 상식적인 설명이다.

 

이제 국제유태자본론 고유의 설명으로 들어간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오직 인드라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나세르는 국제유태자본의 중동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대 정세에서 국제유태자본은 중동에서 김일성 플러스 박정희를 만들어내어야 했다. 그것이 나세르라는 것이 인드라 주장이다. 왜 이런 의문을 품었는가. 수에즈전쟁 때문이다. 이 전쟁은 전투에서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전쟁에서는 오히려 이집트가 승리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빅터 로스차일드를 이해하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빅터 로스차일드는 왜 나세르라는 인물을 요구하며, 수에즈까지 내놓을 구상을 했던가. 이는 이란 정세 때문이다. 1941년 집권한 팔레비는 아버지를 따라 근대화와 민족주의 노선을 병행하였으나, 국제유태자본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온건파였다. 반면 모사데그는 국제유태자본과의 일전을 결심할 정도의 급진파였고, 이는 석유 국유화로 나아간다. 이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팔레비를 1953년에 로마로 망명시킨 뒤, 3일 뒤 장군 자헤디(18901964)의 쿠데타로 모사데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마치 국제유태자본의 정보원이자 이란의 전두환인 호메이니를 내세워 이란의 박정희, 팔레비를 축출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중동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국제유태자본에게는 이 민심을 약화시킬 대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세르요, 수에즈전쟁이다. 이러한 국제유태자본의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육지책을 이해해야 한다.

 

해서, 이후 나세르는 줄곧 반제, 반미, 반영 노선 이미지로 주가를 높여왔지만, 1970년에 이르러 더 이상 나세르의 쓰임새가 사라졌다. 왜냐하면 국제유태자본 입장에서 볼 때, 나세르에게 한 번 더 업적을 주기도, 그렇다고 그간의 이력을 모두 까먹을 정도로 나세르를 급변신을 시킬 수도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갑자기 반미, 반영, 반이스라엘, 반제 투사가 친미, 친이스라엘이 된다면 얼마나 골 때리겠는가. 국제유태자본론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이해하겠지만, 대다수 인민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해서, 나세르는 심장마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까지 국제유태자본이 기다려준 것은 1960년에 시작한 아스완댐 공사가 1970년에 끝났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10월 26일 ,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후 국제유태자본에게 암살당했는데, 10월 26일이 팔레비 생일이라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이명박이든 필요하면 추켜세우다가 가치가 다 하면 휴지통에 버린다.

 

나세르에 이어 대통령이 된 사다트는 서방과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72년에는 이집트에 충분한 군사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집트에 들어와 있던 소련 기술자들과 군사고문단을 추방하기도 했다. 이것이 사다트의 의지가 아닌 국제유태자본의 의지라고 파악한다면 님은 이제 국제유태자본론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은 현명하다. 사다트에게도 업적이 필요했다. 1973년 10월 6일, 시리아와 연합한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했다. 물론 전투는 수에즈 전쟁처럼 이스라엘의 승리이지만,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으로 나세르 시대에 잃었던 영토를 되찾은 사람으로 이집트 국내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국제유태자본은 마음껏 사다트를 이용했다. 1976년 이집트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도 군사협정을 맺었다. 친미 정권인 사다트가 어쩐 일로 북한과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었을까^^! 이는 당대 국제유태자본의 세계 전략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브레진스키의 모든 저작을 다 읽어보아야 하는데, 그중 추천하는 도서가 있다면, '거대한 체스판'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김일성 정권이 스커드 미사일과 발사대를 이집트로부터 구매하는 것이다. 이 계약을 국제유태자본이 몰랐을까^^! 오히려 방조했던 게다. 필요했으니까. 박정희가 말썽이니까. 아무튼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의 한반도가 세계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국제유태자본론을 전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경제 발전과 인민의 복지가 목표이다.

 

"데이빗 록펠러가 구상한 삼각위원회는 처음에는 항구적인 성격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약 3년 정도의 한시적 조직이었습니다. 데이빗 록펠러가 삼각위원회를 태동시킨 이유는 원유를 헐값에 사서 폭리를 취하는 록펠러가의 석유 회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산유국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결사체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출범하자마자, 그 영향력 때문에, 개별 자본가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초월하는 이상적 총자본가로서 기능을 요구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레진스키는 말합니다. "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미국이 극동 지역에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 "중국이 말 그대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리라고 보는 진단은 많은 함정이 있다. 가장 명백한 것은 그러한 진단이 기계적 통계에 의존해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이해 관계 또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지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고대 중국의 전략가 순자라면 다음과 같이 정식화시켰을 중심 목표의 추구를 촉진할 것이다. 위축된 미국이 지역적 지배국가인 중국을 동맹국으로 필요로 하게 될 정도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강력해진 중국을 자신의 동반자로 필요로 하게 될 정도로 미국의 지역적 힘을 희석화시키는 것." "동북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추축국인 한국 또한 미중 분쟁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의 미래는 미일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이 분단되어 있고, 불안정한 북한과 점점 더 부유해지는 남한 사이에 전쟁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한 미군은 반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재통일 역시 심각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 와중에 진정한 한일 화해는 어떠한 형태의 한국 통일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더욱 안정적인 지역 구도의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둘째 치고, 브레진스키는 극동 아시아의 지정학적 지위를 중시하면서, 주요 파트너로 중국과 일본을 듭니다. 한국은 그 하위의 전술 단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지정학적인 추축국(The Axis Powers)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추축국이란 것이 뭡니까. 지난 세계대전에서 연합군과 대립했던 독일, 이태리, 일본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부시의 '악의 축'과 유사한(?) 개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브레진스키, 음모론, 한일연방공화국

http://blog.naver.com/miavenus/70030467527

사다트는 국제유태자본의 지시를 받아 1977년 11월 19일 아랍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평화 계획을 제안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78년에는 이스라엘 수상 메나햄 베긴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79년 3월 26일에는 아랍권 및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집트에는 소련 대신 미국의 군사 지원이 제공되었고, 오늘날 이집트 육군은 M1A1 전차를 비롯한 미국제 무기를 상당히 많이 수입한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사다트는 국제유태자본의 말단조직인 이슬람형제단에게 죽음을 당해야 했나. 팔레비를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사다트는 팔레비가 축출되면서 팔레비와 강한 연대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때가 되면 팔레비와 같은 꼴을 당하는구나, 여겼기 때문이다. 망명을 받아준다. 중동사회에서는 거세게 반사다트 움직임이 있었다. 사실은 국제유태자본이 조성한 여론이었을 뿐이다. 호메이니 인기는 이란 혁명 이후가 아니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국제유태자본이 호메이니를 위해 안배한 작품에 불과하다. 사다트가 나름 저항했지만, 결국 나세르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바라크 현 이집트 대통령이 오늘날까지 친미노선을 견지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바라크가 원자력 정책을 발표하자 부시는 이란 정권에 대한 것과는 달리 쌍수를 들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중동을 넘어서서 북한이다. 북한이 언제부터 군비 증강을 하기 시작했는가. 1964년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예산에 군비를 편성할 여유도 없었다. 다시 말해, 국제유태자본이 김일성 정권의 군사력 증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64년 이후에 평양 정권이 군사력 강화에 나선다. 1964년은 중요한 해인데, 이 해에 록펠러가 소련으로 간다. 이때 소련은 록펠러와 같은 이를 특명대사로 하는 등 록펠러를 통한 핫라인을 개설해준다면 대환영이라는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직후 후르시초프는 그가 공언한 소련 농업 경제 성공 대신 실패라는 책임 등을 떠안고 소련 정권에서 제거되었다. 흡사 카터가 북한을 다녀가자 김일성이 제거되는 것과 유사하다. 참고로 1922년 미소 교역위원회의 주된 구성원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이었다. 이 은행을 통해 소련의 정유 및 원자재 거래가 이루어졌고, 소련 산업의 상당 부분의 국제 거래는 거의 독점화된 창구를 통해 성사되었다.

 

왜 김일성 정권은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과 발사대를 소련이 아닌 이집트, 그것도 친미정권 사다트에게서 얻어야 했을까. 이 질문을 시작하는 데서 국제유태자본론에 눈을 떠야 한다.

 

오늘날 평양 정권이 반기문 사무총장 일행의 방북마저도 거절하는 마당에서 CIA요원과 스탠포드 교수 일행에 대해서는 방북을 허용하는 것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서해교전이나 오늘날의 인공위성 발사가 국제유태자본의 지시를 받은 뽀그리 정권의 앵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은 MD, PSI, 우주방위구상 등의 군사력 증강이다. 그냥 군사력 증강하면 명분이 서지 않는다. 뽀그리가 나서주어야 한다. 미국, 일본, 한국 언론은 평양 정권을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일본, 한국 군사력을 키우자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은 신이 난다. 전 세계 무기 교역국으로서 일본, 한국만한 곳이 어디 있던가. 남은 것은 이제 뽀그리에게 주어야할 개평인 게다. 뽀찌인 게다.

 

다만, 이제 한반도에서의 군사 게임은 이것이 끝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이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이들은 인민 먹여 살릴 궁리를 하지 않고 무기나 만드나 하면서 김정일에 대한 배신감이 앞선다. 친일파 김대중을 반대했던 이들은 줘봐야 미사일이나 만든다고 비판적이다. 이제 유일한 효과는 오직 친일민주당을 존속시킬 가능성을 조금 높였다는 것뿐이다. 민주노동당이 뽀그리 때문에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민주노동당을 덮어놓고 친북좌파라고 비난할 듯싶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주사파라고 평가받는 지도부도 방북해서 유감을 표명할 정도였다. 시민들은 이를 잘 모른다. 초록이 동색으로만 여길 뿐이다. 물론 이는 국제유태자본과 뽀그리 정권이 노리는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은 국제유태자본대로 마지막으로 친일민주당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고, 뽀그리 정권은 한반도 차원에서 자신보다 정통성이 있는 정권이 출범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이야 친일파 정권이므로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보자면, 하루, 혹은 이틀이면 평양 김정일 침소에 태극기가 휘날릴 수 있다. 5일이면 연합군이 북한 전역을 장악 가능하다. 북한 재래식 무기는 대부분 폐품이다.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으로 간신히 만든 인공위성일 뿐이다. 해서, 역설적으로 북한 인공위성은 한반도 통일로 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왜? 김정일 업적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김정일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시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뇌졸중은 심장마비처럼 중증이다. 5년 이내에 대부분 사망한다고 한다. 뇌졸중 관련 미국 안보 보고서를 중시해야 하는 대목은 물론 국제유태자본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4/09 국유본론 2009

2009/04/08 23:14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247844

"칼과피:

글 잘 읽었습니다.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사다트 정권이 친미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전개보다는 사다트 정권이 북한에 스커드 미사일 기술을 준 증거나 자료가 있냐는 것입니다.

 

 

INDRA:

글 감사드린다.

 

"통일부와 국방백서 등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1970년대 중반 중국의 미사일 개발계획에 참여한 시점부터 시작됐다. 1976~81년엔 이집트에서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 및 발사대를 도입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660&yy=2009

통일부 사이트(http://www.mnd.go.kr/)에 가서 국방백서를 열람하면 【부록 6】북한의 미사일 개발 경과 및 제원 항목에 "1976.~1981. 소련제 SCUD-B 미사일 및 발사대를 이집트로부터 도입 역설계/개발"이라고 나온다. 국방백서에 북한의 미사일 개발 경과 및 제원 항목이 등장한 것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국방백서부터이며, 이후 격년제로 발간되는 국방백서에 수정 없이 매번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이 정보 소스를 획득한 것은 어디일까.

 

"북한이 탄도미사일개발에서 큰 전환기로 된 것은 1976년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미사일을 입수한 때부터였다. 이것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이 군사고문단과 조종사들을 파견해준데 대한 답례로 보내준 것이었다. 그후 1979년부터 1980년 사이에 북한은 이집트와의 미사일개발협력에 합의하고 1981년에는 정식 협정을 맺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1983년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기술협정내용을 경신하였다." (小都元저 "세계의 미사일, 탄도, 순항미사일" 171-173페이지 참조)

http://blog.daum.net/leebywan/15126713

현재까지 파악하기로는 재일교포 2세이자 북한군사무기전문가인 김명철 소장이 小都元(오즈 하지메)의 저서를 근거로 국내에 소개한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小都元 저서로 두 권이 검색되는데, 이를 통해 볼 때 오즈 하지메의 '세계의 미사일, 탄도, 순항미사일'이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313604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313780

 

김명철의 정치 성향은 '민족주의적 친북'으로 월간 말에도 소개된 바 있다.

 

군사평론가 김명철 서면인터뷰_남-북-미 관계 전망]민족주의적 '친북' 군사평론가 김명철의 동북아 정세 분석 http://ref.daum.net/item/92230

해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민간에는 민족주의적 친북 입장인 김명철의 소개로 북한 미사일 개발 과정이 알려졌고, 정부 측에는 김대중 정권 때에 국방부가 이 자료에 대한 검증을 한 뒤 국방백서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라고 정리가 된다.

 

이보다 더 전문적인 정보가 궁금하다면 국방부나 김명철, 혹은 오즈 하지메에게 직접 문의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아울러 인드라는 일반인이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몇 가지 당대 정세 문제를 국제유태자본론으로 설명한 것이다. 하여, 인드라는 북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유태자본론과 전문정보를 결합하면 정확한 정보가 되리라 확신한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4/19 국유본론 20092009/04/19 17:31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799023

"<Financial Times> 2000년 2월 24일자가 유엔 통계를 빌려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세계 마약 시장 규모는 대략 4000-5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003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국제 돈세탁 규모가 5천 9백억 달러에서 1조 5000억 달러(전 세계 GDP의 2~5%)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불법 돈세탁의 대분이 마약거래와 연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은 자신의 수입원을 위하여 마약 불법 거래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미 중앙정보국은 마약 거래와 연관된 주요한 조직범죄집단과 복잡하고도 은폐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즉, 조직범죄집단과 정보 당국, 비즈니스가 결합하여 마약 생산, 거래, 운송, 판매 루트를 둘러싼 전략적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상업적 목적의 아편 대량 생산이 시작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 중앙정보국의 활동과 관련이 깊다... 1979년 구소련을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미국은 구 소련군에 맞선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을 지원할 비용마련에 부심한다. 미 중앙정보국은 이를 위해 당시 중남미에서 콘트라 반군을 조직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마약 재배 및 거래를 통해 그 비용을 충당하려고 계획한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아편 생산은 지난 1979년보다 무려 15배가 증가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세계 아편의 93%를 공급한다. 이러한 "더러운 돈"은 국제적인 상업은행들과 익명의 미 중앙정보국 소속 회사들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법 마약 자금을 돈세탁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BCCI 은행(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이다. 1980년대에 미 중앙정보국과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은 비밀 작전을 위해 BCCI를 자주 이용했다... 공교롭게도 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인 카르자이의 동생 아흐메드 왈리가 바로 칸다하르를 지배하는 통치자이며 아프가니스탄의 '마약왕'이다. "

http://blog.naver.com/estherkoo?Redirect=Log&logNo=130080699137

4. BCCI 은행 실질 소유주는 국유본이다

 

 

"BCCI entered the African markets in 1979, and Asia in the early 1980s."

http://en.wikipedia.org/wiki/Bank_of_Credit_and_Commerce_International

BCCI 은행

http://picketline.egloos.com/4224234

BCCI는 1972년에 파키스탄 사업가인 아가 하산 아베디가 만들었다. 이후 BCCI는 런던에 본점을 두고 전 세계 73개국에 400개의 지점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무슬림 은행이자 영국계 은행으로 성장했다가 1992년에 파산하는 불행을 맛본다. 참고로 인월리는 본점 기준으로 은행을 구분한다. 가령 HSBC는 이런 이유로 영국계 은행이다. 예서. BCCI는 명목상 바지사장으로 파키스탄 사업가나 중동 아랍인을 내세운다. 허나, 석유업계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들은 모두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출신으로 보이는 영란은행 초대은행장처럼 명의만 빌려준 속빈 강정들이다.

 

 

헌데, BCCI가 큰 타격을 받는다. 제이 록펠러 측의 공격이다. 오늘날 국유본의 일본 도요타 자동차 공세처럼 BCCI에 대한 공격은 치밀하게 진행되어 끝장을 내었던 게다. 심지어 뉴욕 금융 역사상 가장 큰 은행 사기의 주모자로 법정에 소환된 BCCI의 회장이 카터 미국 전대통령과 개인용 제트기를 함께 타고 다닐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 폭로될 정도였다. 오늘날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이 연결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실인 게다.

 

 

예서, 쉽게 가자. 그 아무리 국유본론에 부정적인 이들이더라도 국제 금융 부문은 특정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헌데, 그들에게 예외라는 것이 있을까? 없다. 빈 라덴이 CIA도 놀랄만한 금융의 귀재라는 것은 한마디로 뻥이다. 빈 라덴 이력을 보면 체게바라처럼 금융 기법에 무지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빈 라덴은 금융의 귀재가 되었고, 체게바라는 쿠바 공업장관이 된 게다. 따지고 보면, 영란은행을 민영화시킨 영국 노동당 총리 브라운이 재무장관이 된 것도 웃긴 일이다. 대학 때 데모밖에 한 게 없는 스코틀랜드 운동권 출신 주제에 말이다^^!

 

 

 

5. BCCI는 파키스탄 핵무기 영웅 칸 박사를 지원했다

 

 

"19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오랜 침묵을 깨고 각각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핵무기 보유국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는 핵확산 금지를 위한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국의 노력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이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과정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과학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Homi Bhaba, 파키스탄의 A. Q. Kahn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보호 하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상당 부분 경감되었기 때문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파키스탄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가했듯이 소련의 침공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그 동안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서 행사해 오던 각종 압력들을 사실상 철회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레이건 행정부는 1983년과 1984년 중국이 파키스탄에 저출력 우라늄 장비를 제공했다는 CIA의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키스탄이 핵확산 금지조약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결국, 1980년대 사이 핵무기를 둘러싼 양국 간의 관계는 파키스탄이 핵실험 실시를 자제하는 한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개발 노력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즉 핵문제는 양국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합의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동안 파키스탄의 핵개발 노력은 큰 진전을 이루게 된다."

http://www.koreapeace.or.kr/modules/forum/forum_view.html?fl_no=379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북한에 핵기술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핵 프로그램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파키스탄이 최소 6년 동안 북한에 핵심 기기와 도면, 기술적 조언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친일매국수구 한겨레와 같은 국유본 핵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사다. 북한과 이란 등이 오늘날 핵 보유 국가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 라는 의문에 대해 근래 가장 설득력이 있는 답변이란 칸 박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면, 칸 박사는 누구인가. 칸 박사는 유럽 유학파로서 유럽 유학 당시 원심분리기 도면 등을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몰래 훔쳐서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핵 관련 비밀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한다. 이후 평소 핵무장에 관심이 많고, 친미 군부 정권 밑에서 컸으면서도 국유본이 부여한 역할에 따라 '반미면 어때?' 하던 알리 부토 정권에 의해 발탁되어 핵무기 제조에 나선다는 게다.

 

예서, 다른 것 필요없다. 이 비밀연구소가 유지되려면? 돈이 필요할 게다. 누가 돈을 대주었나? BCCI다. BCCI가 압둘 카디르 칸 Abdul Qadeer Khan 박사가 운영하는 비밀 과학 연구소에 약 1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지원했다.

 

 

해서, 일부 평양정권 옹호자들은 칸박사가 북한에 핵무기를 전수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파키스탄에게 핵무기 기술을 가르쳐주었다는 자다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해댄다. 파키스탄 핵실험도 사실상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게다^^!

 

 

인월리 입장은 이렇다. 오늘날 북한 미사일 체계는 친미국가 이집트에서 들여온 것이며, 핵무기 시스템 역시 친미국가 파키스탄에서 도입한 것이다. 하여, 북핵의 배후는 국유본이다.

북핵 배후는 국유본이다국유본론 2010

2010/02/1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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