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3.0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3 05:17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947062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3.0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3

   

둘, 유태적인 요인, 유태인 스페인 추방이다.

   

 http://yellow.pe.kr/110077766694

   

상기한 링크 하나면 그간 인드라가 주장해온 바를 잘 요약한 것으로 본다. 예서, 스페인 유태인이 어디에서 왔는가 질문할 수 있다. 인드라는 그간 이들이 카르타고/페니키아 유태인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본국인 페니키아가 무너지자, 카르타고로 본거지를 이동했다. 이때, 카르타고인이 카르타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스페인에도 있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전쟁 지역이 로마와 카르타고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만큼 당대 유럽에서 로마와 카르타고 스페인지역이 중동의 가나안 지역처럼 살기 좋은 지역이었음을 의미한다.

   

"11-1. 디아스포라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아스포라부터 알아야 한다. 디아스포라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 전치사 dia와 동사 '뿌리다'라는 의미의 spero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강제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했다. 가령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식민지 영토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스포츠 제전으로 오늘날 영연방국가들이 럭비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때의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인 의미였다.

   

헌데, 그간 고대 그리스인들이 정복지로 삼았던 소아시아와 지중해 동안에는 누가 있었는가.

   

"고고학상으로는 '가나안 시대'를 보통 기원전 2000-1200년으로 잡습니다.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니 "기원전 1200년 무렵"이 참 자주 등장하는데, 레반트 지역의 혼란으로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해안으로 밀려난 것이 이때이고,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이 이 무렵이고, 에게문명이 붕괴하면서 그리스가 암흑시대로 들어선 것이 이 무렵이고, 이집트에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왕조가 제20 왕조 (1185-1069년)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기원전 1200년 이후로는 '가나안'에 대한 언급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성서를 제외하고)."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075724482

   

예서, 인드라는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유태인이 아니라 페니키아인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가나안에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페니카아인들이 정착해서 살았다. 이들은 기원전 2600년 정도에 예루살렘에까지 들어가 정착하고 지중해 동부 해안지대에 주로 도시를 건설하여 무역을 주업으로 생계를 잇기 시작했다. 기원전 1400년 경 페니키아인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키던 민족은 히타이트 족이었고 그 후 1200년 경에는 역사적 기록으론 남아 있지 않은 미상의 민족이 쳐들어와 페니키아인들이 살던 해안지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0년 정도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가나안 땅 남부에 살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페니키아인들도 가나안 북부 해안지대에서 타이어(또는 티레), 사이돈(또는 시돈) 등 해상교역도시를 발달시켰다. 당대 이 두 민족은 별다른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비교적 평화적 공존을 했다. 페니키아의 왕 히람은 동시대 인물인 이스라엘의 다윗왕과 솔로몬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구약성경에 나온다. 허나, 앗시리아 왕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기원 722년에 멸망시킨다. 또 페니키아의 중심도시 시돈도 678년에 함락시킨다. 

   

이때 목축업에 종사하던 히브리인들로서는 먼 지역으로의 이주가 용이하지 않았을 게다. 게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포기하는 것도 모세교에 합당한 것이 아니었을 게다. 반면 페니키아인은 어떠한가. 종교적으로 아무 제약이 없다. 또한 이전부터 항해술을 터득하는 등 원거리 상업활동에 능숙했던 페니키아인들로서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을 게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에서 볼 수 있는 튀니지 대목이다. 여기가 바로 페니키아 식민지인 카르타고이며, 이후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 한니발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026

   

인드라는 디아스포라라는 그리스어 기원에 유념한다. 지중해 역사에서 최초로 지중해 식민지를 건설한 족속은 페니키아인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카르타고이다. 이후 지중해는 헬라인, 혹은 그리스인들이 장악한다. 헬라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이 행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했을 게다. 해서, 가나안인더러 페니키아인이라 부르듯 페니키아식 식민지 건설 방식을 디아스포라로 불렀을 것으로 인드라는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수 이후 디아스포라가'이산 유대인''이산의 땅'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왜인가. 페니키아인이 카르타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은 능동적인 의미도 있으나, 남하하는 이민족을 피하는 피동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식민지를 개척하던 이들은 대부분 일제시대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처럼 본토에서 귀족에게 핍박받던 빈농이었다. 그들은 결코 자발적으로 해외 이주를 한 것이 아니라 본토에서 살기 힘들어서 불가피하게 이주한 것이다. 그리스 빈농들은 조선 후기 만주로 간 한국인처럼 황무지를 개척하여 옥토로 바꾸었던 게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셋, 자본적인 요인, 대항해시대와 가격 혁명이다.

   

이전에 인월리에서 언급한 내용을 정리해보자.

   

   

   

"리디노미네이션이란 무엇인가

"화폐 개혁(currency reform, redenomination, 통화 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절하는 일을 말한다. "

http://ko.wikipedia.org/wiki/%EB%A6%AC%EB%94%94%EB%85%B8%EB%AF%B8%EB%84%A4%EC%9D%B4%EC%85%98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가령 오늘날 대부분 화폐 거래가 세금내는 일이 아니면 백원 이하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해서, 잘 쓰지도 않고, 비싸보이기만 하니 백원을 새돈 일원으로 정하면 어떨까, 잘 거래되지 않는 백원 이하는 환이라는 명칭으로 세금 낼 때나 쓰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리디노미네이션이다.  

   

해서, 별 것 없잖아 여길 수 있다. 평양정권처럼 일정 액수 이상을 새돈으로 교환해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등가 거래이니 문제가 없는 것같다. 사실 일반 시민에게는 별 게 아닐 수 있다. 원래 지닌 것이 없는 이들이기에^^!

   

문제는 가진 이들이 되겠다. 게다가 음성 자금이어서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현찰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좌불안석된다. 한꺼번에 많은 자금을 들고 은행에 돈 바꾸러 가면 출처를 의심받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화교들이 돈 많이 벌었다며? 현금왕이라며? 나라 경제 살리려는데 자금이 부족하다. 이 음성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서 돈 좀 써야겠다. 이런 의도로 한국에도 과거에 화폐 개혁이 있었다. 허나, 결과는?  

   

실패였다. 왜 실패했나. 하나, 어차피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예외없이 음성자금, 지하자금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양지로 끌어올리려 해도 안 되는 돈들이 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된다. 전두환 비자금, 김대중 비자금을 찾을 수 있을까^^!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많이 지니고 있는 만큼 실력자여서 여러 곳에 보험을 많이 들어놔서 어떤 묘안을 짜내도 미리 정보를 알아서 대처하기에 찾을 수가 없다. 둘, 시민들 불안을 야기시킨다. 인간 심리란 묘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허나,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게다. 그간 돈이 돈 같지가 않네, 이럴 바에는 백원을 일원으로 하는 게 낫겠네, 외국 나가 환전하는데 태국 등 못 사는 나라 돈이랑 바꾸는데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하네, 뭐네 하던 이들이 막상 돈을 바꾼다면 어떤 반응일까.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사람 마음이다. 요상하게도 옛날돈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새돈이 낯설다. 무엇보다 경제의 중심을 이루던 화폐가 바뀌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새로운 가격에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장에 가서 천원어치 줘요, 하던 것을 어느날 10원어치요, 하는 것이 쉽겠는가. 실수도 많을 것이다. 거스름돈을 주다가 옛날 생각하는 바람에 백원을 준다는 것을 만원(새돈 백원)을 내줄 수 있는 게다. 인간 기억력이란 어찌 보면 잘 정리된 도서관 같은 것이다. 헌데, 중심적인 개념이 바뀌면 기억력이라는 도서관 장서들이 모두 꺼내 재정리를 해야 하는 게다. 셋, 시장이 혼란해진다. 인간 심리가 뒤늦게 반응하고 오랜 시간을 겪어야 적응하므로 적응 기간 동안에서는 시장 가격이 요동을 칠 수 있다. 넷, 화폐 변화로 인한 부대 비용이 증가한다. 과자봉지만 보더라도 백원이라고 적힌 것을 1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은행 전산시스템도 재조정해야 한다. 이외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기타, 우수리 돈을 떼먹어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것도 있는데, 이는 좀 웃긴 사례다. 어차피 지금도 우수리 돈을 떼어내게 되어 있으므로 이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한 듯싶다. 별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리디노미네이션, 혹은 화폐개혁이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요인 때문에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율이 높다. 단지 은행에서 새돈으로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짐바브웨나 북한, 1960년대의 한국처럼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가 아니다. GDP 1조달러에 육박하며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다. 하여, 냉정하게 따져보면, 현행 화폐 문제가 크지만, 화폐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것이 최상이다. 가령 한국과 비슷한 나라가 이태리가 있는데, 이태리 돈 리라가 선진국 돈 치고는 문제가 좀 있지 않던가. 그래도 이태리가 리라 돈 바꾸나. 못 바꾼다.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헌데, 이런 리디노미네이션을, 화폐개혁을 2000년대 김대중정권 때 국유본 직속부대인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검토한 이유는 무엇인가 말이다. 한국은행장 이성태나 산업은행장 민유성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이 아무리 그래도 실제적으로는 국유본이 임명하는 것이다. 계급이 낮더라도 국유본 직속 비서이기 때문에 목에 힘이 들어간 자리다. 해서, 이것은 정권 차원이 아니다. 국유본 차원인 게다. 해서, 이를 국유본이 왜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려는 것인가. 그 노림수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정권 차원이 아님에도 정권 차원에서 몰지각하게 이해하는 정치 술수에는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국유본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면, 사정이 뻔히 이런 데도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국가들은 무엇인가.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인 게다. 초인플레이션이 나거나 정권을 존속하기 위해서 등등. 해서, 극약처방인 게다. 급한 불은 끄겠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된다. 하여, 인드라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변혁적 깽판주의로 국유본 의도를 수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3-2. 가격혁명이란 무엇인가

만일 원론적으로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더 궁금한 선수분들이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 왜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가 되는가. 둘, 향후 리디노미네이션이 벌어진다면 그 파급효과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셋, 리디노미네이션에 대비한 재테크는? 

   

여러분의 취지는 알겠다. 해서, 인드라는 여러분에게 주문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평론가적 태도를 지금부터 집어쳐라. 돈벌고 싶다면 평론가로는 절대 땡전 한푼 벌 수 없다. 하면, 평론가적 태도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긍정적 마인드되겠다. 

   

오늘날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초인플레를 1970년대가 아닌 1930년대로 몰아가는 연유가 무엇인가. 국유본의 의도인 셈이다. 하면, 1970년대를 운운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아니다. 그것은 인드라처럼 경제학자에게 맡겨야 할 진실이다. 반면, 돈 벌고자 한다면 1970년대도 잊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도 잊어야 한다. 하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500년대 가격혁명 시대이다. 이 시기를 유념해야 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201389

   

가격혁명이란 유럽의 세계이성주의자들이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 광산에서 비합리적으로 착한 인디오들을 착취하여 은을 대량 발굴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포도시 광산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년 엄청난 금은을 가져왔다. 이것이 가격혁명이다.

   

왜 혁명인가. 하나, 이전까지 유럽은 아시아를 상대로 무역적자였다. 한마디로 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목재, 대구, 양모 등이 고작이었다. 반면 아시아로부터 수입해야할 품목은 무궁무진했다. 해서, 이 당시 유럽은 매우 가난했다. 허나, 가격혁명이 일어나자 상황은 백팔십도로 바뀐다. 금은은 아시아에서도 화폐인 만큼 어디서든 대접받는다. 드디어 유럽은 팔 물건이 생겼던 게다. 무역적자에서 무역훅자로 바뀐 게다. 둘, 중세온난기가 끝난 후 유럽경제는 재차 침체할 무렵이었다. 이 시기 가격혁명이 일어났으니 유럽민 생활이 크게 안정되었다. 인구가 급증했다. 셋, 은의 대량 유입으로 기존 거부인 푸거가문이 망하고, 신흥 거부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넷, 늘 국고 재정이 바닥이 났던 유럽왕실에 실탄이 풍부하게 제공됨에 따라 용병에 의존한 상시적인 전쟁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잦은 전쟁으로 각국 왕실은 파산을 거듭했다. 다섯, 십자군 전쟁 이후로 껀수가 없어 배 쫄쫄 굶던 상인과 공인들이 살판이 났다. 앗싸리하게 만들고 허벌나게 팔아댈 수 있었다. 여섯, 당연한 일이지만, 은값이 폭락했다. 물가는 치솟았다.

   

인드라가 화폐개혁을 말하면서 왜 가격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오늘날 전세계로 마구 뿌려지는 달러를 생각해보자. 달러는 가격혁명 시대의 은처럼 무한정 찍어내는 듯이 보인다. 그 달러로 세계 자산을 사들인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으로 치닫는다. 인플레이션은 십여년마다 한번씩 위기를 겪으며 해소가 되고 각국 재정은 점차 파탄으로 내몰린다. 국가와 시민들이 모두 빚에 쪼들리게 되는 과정에서 국유본만 사업을 벌여 막대한 이익을 획득한다. 하여, 국유본은 빚의 노예가 된 국가와 시민과 노예계약서를 맺는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예까지 읽으면, 인드라가 달러 비관론자 편에 섰는가 오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3-3. 로의 불환지폐 체제에서 오늘날 세계체제를 읽다

   

John Law

http://100.naver.com/100.nhn?docid=55259

   

17세기말 18세기초 존 로가 활약한 시대는 가격혁명 덕분에 중상주의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다. 이들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경제에서는 화폐가 인체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해서 화폐를 활성화시키면 그만큼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었다. 가격혁명 탓에 유럽 경제가 살아났으니 이런 믿음의 유력한 근거를 이루었던 셈이다. 

   

간단히 용어 설명부터 하자. 중농주의자는 농업을 경제의 심장으로 이해한 이들이다. 중상주의자는 상업을 경제의 핵으로 이해한 이들이다. 아담 스미스 이래 고전경제학은 내수보다 무역을 중시했다. 말할 나위없이 유럽에는 자원빈국인 반면 아시아는 자원부국이었다. 해서, 유럽은 군사력이 뒷받침된 무역으로 아시아 자원을 강탈하였다. 바로 이 현상을 주목한 것이 고전경제학이다.

   

유대인이어서 이븐 할둔의 저서 등 이슬람 저서를 읽었으리라 추정되는 동시에 일본 근대화의 주역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 증기기관의 와트, 일루미나티 폭로의 존 로비슨처럼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던 아담 스미스는 석탄과 금은을 비교하면서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 전세계, 특히 중국에서도 (교환)가치가 있는 상품임을 역설했다. 허나, 아담 스미스는 귀금속만 중시하는 중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스미스는 <국부론>의 첫머리에서 부는 "그 사회의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라고 규정하였다. 국민들의 연간 노동은 원래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자원이며, 그 생필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러한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로 다른 국민들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이것은 우선 중상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중상주의에 의하면 국부의 크기는 그 나라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정부는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관세와 규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장려금제도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수출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그 나라의 소비자를 희생시키면서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만 막대한 이득을 안겨 주었다. 스미스는 국부를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으로 규정함으로써, 마치 금,은의 축적이 생산의 목적인 양 간주하는 중상주의 사상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아울러 그는 상공업은 이미 생산된 부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데 불과하고 오직 농업만이 부를 생산한다는 중농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스미스는 글래스고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매일 생산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는 해마다 생산되는 부의 크기가 그 사회에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와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의 일반적인 숙련도와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http://www.cyworld.com/caulei/2145485

   

당대 아담 스미스 생각을 이끌었던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유럽 가격혁명을 이끌었던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산이다. 이후 스페인은 매년 막대한 양의 은을 유럽에 가져왔다. 이로 인해 그간 유럽이 아시아에 대해 팔 것이라고는 목재나 가죽 따위밖에 없어서 늘 적자였는데 - 가령 영국은 당시 팔 것이라고는 양모와 대구밖에 없었다 -  이런 유럽의 지위를 단숨에 역전시키는 가격혁명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중동 아라비아 상인에게 아시아의 질좋은 상품을 구입하고 은을 지불할 수 있었다. 헌데,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당대 유럽의 지배자,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푸거가문을 몰락시킨다. 푸거 가문은 메디치, 로스차일드, 록펠러 가문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양으로 치면 당대를 호령하던 황제를 만든 중국 진제국의 여불위였다. 당대 푸거 가문이 유럽 최고의 부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동유럽에 근거를 둔 광산업에 올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남미 포토시에서의 은광산 발견 이후 은이 대거 유럽에 유입한 이후 귀금속 시세 하락에 푸거 가문이 견딜 여력이 없었던 게다. 그간 푸거 가문이 정경유착을 통해 카를 5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이 광산업에서 얻는 수입인데, 광산업 수입이 급감하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게다.

   

http://ko.wikipedia.org/wiki/%EC%95%BC%EC%BD%94%ED%94%84_%ED%91%B8%EA%B1%B0

   

두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는 프랑스를 여행했고, 경제표를 만든 중농주의자 케네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다. 케네는 푸가 가문적인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의사 출신답게 경제를 인체 혈액 순환 흐름처럼 이해하여 실질적인 부는 농산물에서 온다는 경제표를 만든다. 유통 과정이 아니라 생산 과정을 중시하라는 관점이어서 이후 아담 스미스 뿐만 아니라 맑스와 레온티에프에 영향을 끼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51249

   

아담 스미스 사상은 하나, 전통 유태 학습을 통한 이븐 할둔과 같은 선진적인 이슬람 사상, 둘, 유통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중시하는 케네의 사상, 셋, 내수보다 무역을 중심으로 중상주의의 사상을 종합한 것인 셈이다. 상공인이 부유한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부유한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 요점이다. 허나, 그 맥락을 짚어보면, 상공인이 부유한 나라를 전제로 하여 국민도 조금 신경을 써달라는 이상적 요구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한 시대가 당대 유럽이었다. 해서, 각국은 부국강병에 힘을 기울였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대 프랑스 정부는 유럽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결과 국고가 파산지경이었다. 이때 존 로가 등장해서 국고 안정을 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프랑스 정부는 존 로의 주장에 솔깃하여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때 존 로가 한 사업은 무엇인가. 존 로 소유의 사설 은행에서 국가 보증의 불환지폐를 마구 발행한다. 또한, 회사를 설립해 주식발행으로 버블을 만들어낸다. 배당금을 주기 위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한다. 해서, 일시적으로 프랑스 경제는 대호황을 맞이했다. 예서, 핵심은 무엇인가. 이 모든 신용의 근거를 이루는 것은 신대륙에서의 금 발견이었다. 허나, 그것은 단지 소문에 불과했다. 간혹 한국 증시에서도 등장했다. 무명의 회사가 아무런 이유없이 상한가 행진을 한다. 작전이 들어간 게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프리카에서 금광 발견했다는 뉴스가 뜬다. 그 다음부터 폭락이다.

   

정체불명의 미국 루이지애나 금을 빙자한 세계 최초의 불환 지폐 소동은 비극적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동인은 존 로의 경제정책이라고 말하는 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 소동의 교훈은 무엇인가. 화폐량을 늘리면 일시적으로 경제가 산다. 이를 잘 표현한 것이 근래 이코노미스트 기사이다. 기사는 존로의 정책과 오늘날 미국의 양적완화 (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비교한다. 

   

하나,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를 관리한 것은 연준이 은행의 악성자산을 사주려했던 대책과 흡사하다.

   

둘, 미시시피 회사가 은행을 인수한 것은 미국 정부가 페니메 Fennie Mae와 프레디맥 Freddie Mac을 국유화 한 것과 같다.

   

셋, 화폐를 실물과 바꿔달라는 예금주의 요청이 쏟아지자 금은을 소지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한 사실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실제 시도된 적이 있다.

   

예서, 이코노미스트는 흥미롭게도 존 로를 평가한다. 존 로가 자동차산업과 같은 사양업종에 대한 지원에 치중하기 보다는 보다 더 미래 지향적인 벤처투자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존 로의 시도는 좋았다는 게다. 긍정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다시 말해, 현 국유본 경제팀은 케인즈 이래로 화폐신을 신뢰하고 있다. 사실 케인즈야말로 현물과의 등가 거래를 제한한 불환지폐 옹호자가 아니었던가. 그 덕분에 국유본의 항문 총애를 받아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쓰레기가 아닌가^^!

   

인드라가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인 작년 초부터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결코 신자유주의 폐기가 아니라고. 전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후기 신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차이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말한 바 있다. 불법적이나 수익성이 큰 피라미드 회사에서 합법적이나 수익성이 그만큼 박해진 피라미드 회사로의 이행이라고 말이다. 예서, 전기 신자유주의, 후기 신자유주의는 인드라가 세계 최초로 규정한 개념이니 오해가 없도록 바란다.

   

하면, 국유본 경제팀과 존 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존 로는 실제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뻥만 내질렀다. 반면 국유본 경제팀은 다양한 수단을 지니고 있다. 가령 존 로에게 불환지폐를 현물로 바꾸어줄 것을 요구한 고객은 보다 안전자산으로의 투자를 고려했던 게다. 하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은 무엇인가. 그토록 불안정하다는 미국 국채가 실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화제가 되었던 CDS로만 따져도 미국 국채가 안정적이다^^! 반면 북미회담을 노리며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원자재 투자전문가 닥터둠 마크 파버가 투자한 북한 국채는~!

   

예까지가 평론가적인 평가인 셈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존 로든, 존 도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버블은 시기마다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1998년 러시아 롱텀펀드 사태가 예다. 해서, 예상보다 아시아에서 피해가 적었고,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타격이 심한 것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인 셈이다. 여기에는 작은 변수로 인드라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제는 상식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하면, 북한 화폐개혁에서 인드라가 강조한 대목이 무엇인가. 북한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외부에서 지속적인 물자가 유입되어야 한다 했다. 그처럼 오늘날 경제상황은 미국 달러에 지속적인 자원이 유입되고 있다. 지탱하는 힘은 국채 판매되겠다. 국채 판매되는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혹자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IT산업, 생명산업, 녹색산업을 일으킨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허나,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군사력이다. 미국은 전 세계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군사지출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상기한 IT산업, 녹색산업은 단지 명분일 뿐이다. 아편이 주인공이고, 영국 면직물이 보조역할이듯. 하면, 예서 보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

   

가격혁명 당시 국가는 전쟁 등으로 파산 위기에 늘 놓여 있었다. 반면 잉여물자를 바탕으로 공업과 상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민간 부문이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뭔 말이냐. 실질적인 충당을 중동이나 동아시아에서 획득하더라도 1990년대 IT혁명처럼 국유본은 명분이 필요한 게다. 예서, 국유본이 미국에 기대할 부문이 무엇이겠는가. 생명산업, 녹색산업이다. 예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는 게다. 또한 이 대목에서 국유본은 미국 이외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마련이다. 그 파트너가 반드시 종전과 같을 필요는 없다. 한국일 수도 있고, 인도일 수도 있고, 브라질일 수도 있다. 끝으로 국유본의 리디노미네이션 시도를 막을 수 없다면, 국유본에게 요구를 해야 한다. 한국에 삼십년 정도는 먹고살 신성장동력 산업을 달라고 말이다.

오키, 여기까지. 처음에도 말했거니와, 시기도 아니므로 다 말할 필요는 없겠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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