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의 중앙은행 음모론 비판 : 국제유태자본은 록펠러 4세를 중심으로 혁명할 때다 국유본론 2012

2012/10/18 07:20

http://blog.naver.com/miavenus/70149342030

   

   

인드라의 중앙은행 음모론 비판 : 국제유태자본은 록펠러 4세를 중심으로 혁명할 때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2/10/18

   

그간 인드라가 중앙은행 음모론에 대해 무식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헌데, 본 이야기가 아니라 곁다리로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하다 보니 이해가 어렵다는 분들을 위해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재미있는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1694년 잉글랜드은행장이 된 인물이 페터슨이란 스코틀랜드인입니다. 영국 중앙은행장이라니 엄청난 특권 자리가 아닙니까. 헌데, 페터슨이란 인물이 얼마 안 되어서 갑자기 그만둡니다. 하고, 몇 년 뒤에 페터슨은 파나마로 가서 다리엔이란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엄청 고생해서 처자식도 잃을 정도로 식민지 사업이 실패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무슨 일인지 페터슨 은행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대체 페터슨은 귀족적인 일자리와 안정적인 수입을 외면하고 먼 파나마까지 가서 고생을 사서 했을까요^^?

   

일반적 설명은 페터슨이 잉글랜드은행보다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에 의하면, 잉글랜드은행장 일자리가 파나마 다리엔 식민지 총독 일자리보다 수입 면에서 못하다는 겁니다.

   

반면 인드라 설명은 간단합니다. 고대 수메르서부터 은행장과 성직자가 밀접한 관련이듯이 근대 이후 은행장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입니다. 이자놀이를 한다는 종교적 비판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신앙심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해서, 록펠러에게 융자해준 은행가가 주말 주일학교 교장이라는 것이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례였던 것입니다.

   

해서, 페터슨이 잉글랜드은행장을 맡았다면, 그 직위를 감당할 신앙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고, 그 신앙심을 감당할만한 종교가 당대에는 이자놀이에 대해 관용적인 칼뱅 교리에 입각한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있었는데요. 페터슨이 일반적인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이었다면, 과연 잉글랜드 은행장을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반면, 독실한 청교도인이면서 프리메이슨이라면 다르지요.

   

해서, 인드라는 페터슨을 윌리엄 3세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이주해온 유대자본의 얼굴마담이었고, 프리메이슨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유본 간첩 유대인 체게바라가 국유본 지시를 받아 볼리비아로 떠났듯이,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페터슨은 국유본 지시를 받고 파나마로 떠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프리메이슨은 독실한 청교도들이 대부분이어서 선교하러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다만, 페터슨이 프리메이슨이다, 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으니 인드라 주장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여기까지 인드라 역시 음모론 떡밥을 뿌렸으니 중앙은행 음모론 비판을 본격적으로 해보지요.

   

최초 중앙은행을 영국 잉글랜드은행이라 합니다. 헌데, 1694년 잉글랜드은행이 중앙은행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최초 중앙은행은 교황과 계약을 맺은 메디치 가문 은행, 또는 그 이전인 롬바르디아 이태리 상인이라고 해야 옳겠지요. 다시 말해, 1694년 잉글랜드은행은 오늘날 말하는 중앙은행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면, 1694년 잉글랜드은행과 오늘날 잉글랜드은행 차이는 무엇일까요? 1694년 잉글랜드은행은 발권 독점이 아니었고, 오늘날 잉글랜드은행은 발권 독점입니다. 해서, 인드라는 이해하기 쉽게 1694년 잉글랜드은행 및 메디치가문 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1844년 필은행조례 이후 잉글랜드은행을 '중앙은행'으로 구분합니다.

   

메디치 가문 은행은 교황의 주거래은행이었을 뿐입니다. 그처럼 잉글랜드은행 역시 영국 왕실의 주거래은행이었던 것입니다.

   

하면, 발권이란 뭘까요?

   

      

   

http://rokiroki.tistory.com/1761

   

다른 글 대략 읽어보니 무식한 쪽발놈현경제학파 삘이 나서 나라를 망칠 넘인 것 같은데, 이 글만은 읽어줄만 했습니다.

   

인드라는 다른 식으로 설명합니다.

   

은행통장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 은행은 여러분에게 뭘 주나요? 은행통장을 줍니다^^! 헌데, 은행통장을 거래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작은 거래라면 현금 거래가 되는데, 규모가 크다면 상거래에서 일일이 은행에 들려 현금을 찾아서 거래하기에는 많은 불편이 따릅니다. 해서, 은행을 통하지 않고 상인과 상인이 직접 은행통장을 거래하는데, 이것이 수표인 거죠. 수표 기원은 서양에서 귀족들이 돈 필요할 때 지급 명령서였다고 합니다. 환락가에서 술 마시고 주거래은행 앞으로 지급명령서를 써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이 어음인 것입니다. 수표는 즉시 지불이지만, 어음은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기한을 정하는 것입니다. 가령 귀족이 술을 먹은 뒤 외상하면서 한 달 뒤에 갚겠다는 지급명령서입니다.

   

하면, 당대 국유본은 무려 백 년 이상 발권을 왜 독점하지 않았을까요?

   

   

첫째, 당대 국유본은 발권을 독점할만한 실력이 안 되었습니다

   

은행 기원은 메디치나 푸거에서 보듯 종교정치권력 채무 변제 때문이었습니다. 교황이나 추기경 정도가 되면 돈 씀씀이가 장난이 아닐 것입니다. 헌데, 전당포 수준 베니스 상인 샤일록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겠다고 나서도 이내 개털이 되었을 것입니다.

   

루터 면죄부 비판으로 유명한, 스페인왕에게 올인했던 푸거가 망한 것을 유념하면 될 것입니다.

   

국유본은 당대 신용을 모두 감당할만한 금과 은 등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일국 재정을 감당하는 것도 간당간당했습니다.

   

둘째, 당대 국유본은 윌리엄3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했지, 영국 귀족을 장악한 건 아니었습니다.

   

설사 당대 국유본이 발권 독점이 가능한 금과 은을 보유할 지라도 발권으로 이득이 발생하는데 귀족들이 그냥 두고 보고 있겠습니까. 오늘날 어음폐지가 대세임에도 삼성, 포스코 등 현금 보유 능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에서만 어음 폐지가 이루어지는 양상과 같습니다.

   

셋째, 로스차일드 가문 등장과 아편전쟁입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공황이 발생합니다만, 이전 공황과 달랐습니다. 이전 공황이 대부분 농업 공황이었다면, 19세기부터 일어난 공황은 이전보다 주기적이면서도 특히 금융공황을 수반한 복합공황이었습니다.

   

인드라는 이를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전쟁 이후 국유본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경제 전쟁이라고 간주합니다. 19세기 초반 국유본 권력은 베어링 가문이 쥐고 있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게는 유럽을 살만한 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로스차일드는 용병 장사로 유럽 최고부자였던 독일 헤센가문이 번 돈을 활용하는 유럽 재산관리인이었습니다.

   

헌데, 로스차일드 가문이 공황을 일으키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이 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 자본,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가능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말하지만, 원시적 축적, 쉽게 말하면, 사업할 때 필요한 초기 막대한 자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령 삼성 반도체사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십여 년 적자에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공황이 오면, 대출이 줄어드니 변두리격인 지방은행들이 망합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저축은행이지요. 공황이 오면, 판매가 줄어드니 자금력이 딸리는 중소기업들이 망합니다. 하면, 이들 저축은행들과 중소기업들은 어찌되나요? 거대은행과 거대기업에 흡수됩니다.

   

하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왜 주기적으로 공황을 일으켰나요? 국채를 헐값에 매입했다 제 값 받고 파는 이치입니다. 경제 권력을 보다 집중할 수 있습니다.

   

허나, 이는 필요조건이었지, 충분조건이 아니었습니다.

   

1840년대는 아편전쟁이 일어난 시대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본위제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영국은 금본위제를 18세기에 사실상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국이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확립한 때는 1819년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중국 무역 때문입니다.

   

아메리카에서 획득한 은이 유럽으로 들어와 유럽에서 가격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스페인 국왕이 전쟁하는데 쓰자 은이 유럽 전역으로 퍼집니다. 그 은을 영국이 빨대를 대어 쭉쭉 빨아들여서 대중국 무역에 쓴 것입니다. 헌데, 은이 다 떨어집니다. 해서, 영국이 금본위제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편전쟁 전에 왜 금본위제를 말하는지 눈치를 채었나요?

   

영국이 금본위제를 실시할 수 있었던 건 아편 기반 금본위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석유 기반 달러 기축통화제와 같은 것입니다.

   

헌데, 아편무역 기반이 무너지는 겁니다. 1820년대부터 청나라 황제가 개혁을 부르짖으며 아편은 없다고 나서니 큰일이 난 겁니다.

   

아편이 있고서야 산업혁명이 있는 겁니다. 맑스가 화폐론에서 상품론으로 결정적으로 전향한 이유가 인드라는 아편으로 보고 있기까지 합니다^^!

   

해서, 중앙은행 발권 독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상사태인 겁니다.

   

이전까지 지방은행이 발권하다 망해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발권 독점을 반대하는 자유은행주의자들 주장대로 에너지 불변의 법칙처럼 한쪽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쪽에서는 이익이 발생하므로 총합에서는 같기 때문입니다. 자유은행주의자들은 자본 흐름을 생태계로 이해하여 이 균형을 깨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처럼 큰 일이 생기듯 미증유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헌데, 1840년대는 달랐습니다.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자식들 사이에 재산 싸움이 있습니다. 누가 이기든, 재산이 보전될 것이라면 부모는 방관자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는 자유은행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발권은 자유인 겁니다. 허나, 자식들 중 누군가가 외부세력을 끌어들여서 이기고자 합니다. 헌데, 그 외부세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그간 모아둔 재산을 말아먹을 것 같습니다. 이때도 부모가 방관하나요? 자식들 재산 싸움에 개입해야지요. 다시 말해, 부모는 통화주의자가 되어 발권 독점을 해야 합니다.

   

해서, 1844년에 필은행조례가 만들어졌고, 수정을 거쳐 1884년 은행법이 등장합니다. 이 은행법은 이후 전 세계 모범이 되었습니다.

   

헌데, 필은행조례로 발권력을 잉글랜드은행이 독점한 이후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아니죠. 문제가 있으니까 수정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또한, 1884년 은행법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잘 설명했던 것입니다.

   

잉글랜드은행에는 국채와 금이 잔뜩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방은행이 지급준비금이 없어서 돈을 지불하지 못하듯 잉글랜드은행이 태환 정지를 하였는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금이 있습니다. 하면, 잉글랜드은행에는 어음이 들어와서 어음을 폐기시켜야 합니다. 어음이란 금 지급명령서이니 금이 줄어든 만큼 어음도 줄어들어야 합니다. 헌데, 공황 국면이면 잉글랜드은행에 어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사업에 실패하여 은행에 납부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부도나고, 이를 주관한 은행에서 손실 처리가 납니다. 이때, 은행은 중앙은행 지급보증으로 어음 발행한 것이니, 은행의 은행,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으로 들어와야 할 어음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발권 독점을 주도했던 통화주의자 설명이라면, 지급 보증한 신용만큼 보유한 채권과 금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부도난 사업자가 사재를 털어서 협력업체에게 주기로 한 돈 다 주고 노동자 월급을 다 주면 되는 겁니다.

   

헌데, 그러면 잉글랜드은행 위신이 뭐가 됩니까. 잉글랜드 체면이 뭐가 됩니까. 신용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글랜드은행 위신이 추락한다는 건 뱅크런인 겁니다. 이 사태를 막아야했던 것입니다.

   

헌데, 잉글랜드은행이 당장 파산 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인드라와 맑스의 차이입니다.

   

맑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무계획적, 즉 자연발생적으로 보아 자본주의 시스템이 종말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허나, 인드라는 수십 년 맑스 종말론을 숭배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맑스가 말한 자연발생적 무계획적 체제가 아니라 로스차일드 가문 등 국유본이 정교하게 만든 인위적 계획적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이어 록펠러 가문 역시 왜 주기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인가요?

   

첫째, 공황 국면에서 국유본은 오히려 정치경제 권력을 집중하고 자본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해서, 19세기 로스차일드 가문이 공황으로 영국 은행시스템을 뒤흔들 듯 20세기와 21세기 록펠러 가문은 공황으로 미국 은행시스템을 흔드는 것입니다.

   

둘째, 국유본 목표는 영국이라는 일국, 미국이라는 일국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위해서 국유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을 위해서 국유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국유본을 위해서 영국과 미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미국은 국유본 목표를 위해서 해체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해서, 국유본이 각종 서적이나 인터넷 음모론을 통해서 미국 망한다 따위 음모론을 유포시키는 것입니다.

   

셋째, 국유본 목표는 지구적 지배입니다. 지구적 지배를 위해서는 미국 연준마저도 지방은행, 저축은행, 새마을금고로 취급할 정도로 전진해야 합니다. IMF SDR로 과감하게 전진해야겠습니다.

   

상기한 발권 독점에서 인드라가 강조했듯, 보다 많은 지급준비금을 준비해야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각국 국가권력은 물론이요, 야당, 종교, 언론, 시민단체, 기업을 장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네이선 로스차일드와 같은 천재적 인물과 아편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이 필요합니다.

   

현존하는 국유본 권력은 현실에 안주해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모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국유본 귀족 중에 어느 누가 잉글랜드은행장 자리를 박차고 파나마 같은 오지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싶겠습니까.

   

허나, 국유본 힘은 죽을 고생을 하며 발전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현재 자리에 만족한다면 국유본 영향력은 급속히 축소될 것입니다.

   

국유본 영향력을 쌓아온 기간이 사십년이면, 그 영향력이 붕괴하는 데에는 1/10, 단 사 년이면 충분합니다.

   

오늘날 국유본 수장은 제이 록펠러, 록펠러 4세입니다. 허나, 확실한 황제이려면 록펠러 4세에게 곳간 열쇠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록펠러 재단 운영권입니다.

   

현 시점에서 골드만파 제이 록펠러에게 록펠러 재단 운영권을 주어도 되는 시점인지는 인드라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허나, 긴가민가할 때, 국유본은 제이 록펠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제이 록펠러에게 황제 자리를 양위하고 물러나야 합니다.

   

이미 올해부터 물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매년 발표되는 빌더버그 명단 유출이 올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이미 사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데이비드 록펠러 가신들이 권력 누수를 우려하여 진시황제의 죽음을 알리지 않던 진나라 내시들처럼 록펠러 4세 세력과 충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무엇이든.........................

   

인드라가 천운을 보건대, 데이비드 록펠러와 제이 록펠러의 충돌이든, 이조차 록펠러 가문이 권력 승계를 위한 짜고 고스톱이든, 록펠러 가문이 최소한 50년간 절대 권력을 누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데이비드 록펠러와 제이 록펠러 싸움으로 제 3자가 득을 볼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록펠러 4세 권력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인드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시대는 영웅을 부릅니다. 개인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시대가 아니면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영웅이 되지 못합니다.

   

향후 50년간 국유본과 록펠러 가문, 하고,국유본 하위 분파인 노비네파, 뉴라이트파, 골드만파는 현재 권력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향유할 것입니다.

   

노비네 - 로스차일드 빌더버그 네오콘부시 JP모건 이스라엘 노동당(마파이당)

뉴라이트 - 데이비드 록펠러 삼각위원회 뉴라이트 모건스탠리 이스라엘 리쿠르당

골드만 - 제이 록펠러 CGI 클린턴 골드만삭스 이스라엘 카디마당

   

이웃 분들이 인월리를 보다 많은 분들이 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책으로도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진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허나, 인드라 생각은 다릅니다.

   

인드라 블로그에는 국유본, 오바마, CIA, 중국과 이스라엘 등 각국 지도부, 청와대, 새누리당, 쪽발민주당, 진보당, 국정원, 언론, 시민단체, 기업, 종교단체 등 볼 사람들은 다 보고 있습니다. 쪽발정일 사망 직전에는 북한에서도 인드라 블로그에 접속했더군요. 쪽발정은도 보고 있습니다.

   

어떤 영국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기획을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권력에 있는 사람들이 안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고 생각했답니다. 헌데, 그 이야기를 들은 영국 외교관이 당신 견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해서, 당신 견해가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웃분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국유본은 박정희보다 더 섬세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가령 인드라가 국유본이라면 인드라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없애나요? 하책입니다. 상책은 무엇인가요? 인드라 옆에 사람을 붙입니다. 그 사람은 인드라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인드라가 자신의 견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아낌없이 조언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드라가 큰 뜻을 품고 세상에 나오도록, 정당을 설립하든가, 종교단체를 만들든가, 출판사나 언론사를 운영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왜 국유본은 이토록 인드라를 키울까요? 식객이죠. 식객 아나요? 중국 전국시대에 군자들은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다 여기면 식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평소에는 노자의 말처럼 쓸 데가 없는 것이 식객입니다. 허나, 위기상황일 때 식객이 한 건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족한 것입니다.

   

다만,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인드라는 국유본으로부터 아직 연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 년 전에는 인드라 블로그 검색을 아예 원천 차단하더니 병쉰 미네르바가 말 그대로 병신이 된 연후에 국유본이 인드라를 주목하여 포털에서 검색 상위에 인드라 글을 배치시키는 정도입니다. 물론 국유본이 인드라를 가끔 불편해하면 바이러스를 왕창 보내거나 특정 글을 차단시키거나 인드라 블로그에 혼란을 야기시키고는 합니다만, 대세는 아닙니다.

   

이미 운명적으로 인드라에게 올 사람들은 다 옵니다. 우연하게 인드라 블로그를 방문해도 인연이 아니면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친구나 친척 가족에게 말하고 추천해도 깨닫는 분들이 있고, 경멸하거나 무시할 분들이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최소한 78%는 이웃분 이야기에 피식 웃을 것입니다.

   

인드라가 천운을 보건대, 국유본 권력, 록펠러 권력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드라가 보건대, 빠르면 2050년대부터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2060년대, 2070년대에 이르면 국유본 권력, 록펠러 권력이 본격적으로 위협받을 것으로 봅니다.

   

국유본 권력, 록펠러 권력 이후에 어떤 권력이 올 것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국유본 권력, 록펠러 권력보다 더 강력한 권력이 오거나, 아니면 아예 지구가 망하든가 알 수 없습니다.

   

그 시대가 도래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월리를 인용하며 인드라를 찬양할 것이라 봅니다. 다만, 인드라 사후가 될 것입니다만.

   

그 시대가 오면 행동하는 것이 옳습니다. 허나, 지금 행동한다는 건, 국유본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일 뿐입니다.

   

가령 제이 록펠러는 사이버방위사령부를 만들었습니다. 인드라 같은 인터넷 전사가 인터넷에서 미국 비판하고, 로스차일드/록펠러 비판하고, 빌더버그/삼각위원회 비판하고, 국유본 비판하는데 그치지 아니 하고, 길거리에 나서서 '월가를 점령하라' 같은 시위를 조직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인드라는 정중하게 사절합니다.

   

단지, 인드라는 인드라 블로그를 통해 국유본 틈새를 노려 한반도 평화통일과 경제발전, 사회복지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하죠. 국유본이 한반도를 위해 윈윈해주면 국유본 칭찬도 하고 나름 홍보도 합니다. 허나, 국유본 하는 일이 한반도를 저해하면 히스테리 환자처럼 쥐랄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국유본은 게임이론으로 면밀히 검토해서 손익을 분명히 결정한 후 인드라와 잘 타협할 것으로 봅니다.

   

해서, 인드라 글쓰기는 분석적 글쓰기가 아니라 실천적 글쓰기입니다.

   

   

"1694년 W.페터슨의 제안에 따라 설립된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으로, 프랑스와의 전쟁비용 조달에 바쁜 윌리엄 3세의 재정난 해소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금 120만 파운드를 그대로 정부에 대출하는 대가로 그와 동액까지의 은행권 발행의 권한을 차지하였다. 당시에는 다른 사적 금융업자 중에도 은행권을 발행하는 데가 있었으므로 독점적인 발권은행(發券銀行)은 아니었으나, 주식제도에 의해 경영규모가 컸고 또 안정되어 있었던 점이라든가, 국왕의 재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해 18세기에 들어와 점차 중앙은행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해나갔다.

   

   

1833년 잉글랜드 은행권이 법화(法貨)로 지정되고 다른 발권은행은 점차 정리되었는데, 다만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는 독자적인 발권은행이 남아 있지만, 이들 은행권도 잉글랜드 은행권과 함께 유통되었다. 더욱이 1844년 잉글랜드 은행조례(필은행조례)에 의하여 새로운 발권은행의 설립이 금지되기에 이르러 잉글랜드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 ··· 00000151

   

   

   

   

"1844년 7월19일 영국 의회가 '은행허가법(Bank Charter Act)'을 통과시켰다. 골자는 지방은행권 발행 제한. 잉글랜드은행에 돈을 찍는 권한을 몰아줬다. 잉글랜드은행 조직도 발권부와 통상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은행부로 분리시켰다. 입법 제안자인 로버트 필 총리의 이름을 따 '필 은행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전세계로 퍼졌다. 

 

법의 도입 배경은 지방은행의 지폐 남발. 1716년 브리스톨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1821년 609개로 불어난 지방은행이 산업혁명의 자금줄 역할을 수행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공황에는 속수무책이라는 반성에서다. 자금수요가 줄어든 1809년부터 1830년까지 파산한 지방은행만 331개. 은행이 흔들리는 통에 공황이 더욱 깊어지자 이 법이 나왔다.

   

분명한 점은 법안의 수정과정을 거치며 중앙은행으로서 잉글랜드은행의 지위가 확립되고 1884년 은행법은 전세계 중앙은행의 모델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법 제정 162년이 지나도록 중앙은행의 발권독점을 대체할 금융 시스템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 ··· 3820.htm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친미친중 반일반북 쪽발정은 척살로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석현 아웃

쪽발재벌 타도 골룸빡 처단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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