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역사에서 오늘날 한반도 시대정신인 통일시대를 읽는다 국유본론 2012
2012/11/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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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역사에서 오늘날 한반도 시대정신인 통일시대를 읽는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2/11/04
14. 11세기 세계사
중국에서는 10세기에 당이 멸망하고 북송시대를 열어갑니다. 당대 세계 중심은 중국이었습니다. 허나, 역사을 보면 중심이 변경이 되고, 변경이 중심이 됩니다.
인도는 오늘날 파키스탄을 낳는 동인이 되는 북방 이슬람 침입이 있었으나 11세기까지 역사서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변란 없이 경제생활이 풍족한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
한반도에서는 936년에 창건한 고려가 조선 세종과 비교할 정도인 문종에 이르러 북방 민족 침입이 있으나 물리치고 평화로운 시기를 보냅니다. 문종 장인이 인천 이씨인데 당대 세도가인천 이씨는 김수로 자제 중 일부가 허씨가 되었는데요. 허씨 일부가 인천으로 이주해서 호족으로 있었는데당나라에서 공을 세워 인천 이씨가 됩니다. 그러다가 인천 이씨가 통일신라 때 인천에서 호족으로 있다왕건을 돕는 창업 공신가문이 되는 것입니다.
헌데, 인천이씨 세력화와 같은 현상이 당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후삼국시대에 총독, 총사령관으로 있던 견훤이 독립하잖습니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하나, 중세온난기 시기여도 늘 온화하였던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급격히 낮아졌다 다시 더 높이 올라가는 모양새였습니다. 10세기 중국과 한반도에 가뭄과 한파가 겹친 모양입니다. 이 시기 동북아 국가들이 모두 교체된 것입니다. 발해가 망하고, 당이 망하고, 통일신라가 망한 배경입니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작황에 이상이 오니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왕조가 교체되는 것입니다.
둘, 어느 고대국가든 전성기를 맞이한 뒤 급격히 위축되었다가 멸망에 이릅니다. 이유는 정복할 힘이 남아도는데, 관리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리란 사람입니다. 정복한 땅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려면 로마군단처럼 변경에 군대를 배치해야 합니다. 헌데, 사람이 없습니다. 관리할 힘을 증강시키려면 농업 생산성을 높여 인구를 증가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넓디 넓은 땅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해서, 이민족을 계속 로마시민으로 충원시켜서 농사도 짓게 하고, 군대가 헝그리 정신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농민을 군인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오랫동안 훈련시켜야 합니다. 군비가 많이 듭니다. 그보다는 황야에서 배고프게 지낸 유목민이 즉시 전력입니다. 싸게 먹힙니다. 농민에게 군 면제 대신 돈을 받아 용병을 삽니다.
헌데, 전성기에 최적화한 변경부대는 고스란히 반란 씨앗이 됩니다. 지방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지방 권력을 수시로 교체하려는 중앙 권력과 권력을 대를 이어 지속시키고자 하는 지방권력간 대결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규모가 작은 국가일수록 지방 권력에 대한 중앙 권력 장악이 손쉬운 반면, 규모가 큰 제국일수록 지방 권력에 대한 통제가 어렵습니다.
셋, 중앙 권력이 아무 때나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상기한 두 가지 조건이 중첩되면서 가뭄이나 홍수로 식량 수급이 악화되어 민심이 흉흉해지면 중앙 정부에서는 보다 많은 세금을 지방 정부에 요구할 것이고, 지방 정부는 지방 정부대로 두 가지 양상으로 나아갑니다. 가난한 지방 정부는 지원이 없는 중앙 정부보다는 군사력으로 부자 지방 정부와 연합할 궁리를 하고, 부자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지방 정부들 군사력을 포섭할 자금으로 씁니다. 또는 더 강력해진 지방 정부에 대항해 중앙 정부에서 군사력 강한 지방 정부를 포섭하기도 합니다. 해서, 새롭게 결합한 데서 새로운 왕조가 탄생합니다.
15.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 왕국들이 흥하고 이슬람 왕국들이 망하는 이유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아바스 왕조는 북아프리카에서 발흥하여 이집트를 장악한 파티마 왕조로 인해 급격히 멸망 길로 접어듭니다. 이집트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이어 중동 정세에 중요한 곡창 지대입니다. 로마제국도 이집트 사막화로 인해 멸망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여, 파티마 왕조에 불안한 아바스 왕조는 1055년에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셀주크투르크에게 지원 요청을 합니다.
헌데, 지원요청을 받은 이들이 대가 없이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아바스 왕조가 일만 시키고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하자 셀주크투르크가 이집트를 장악하면서 아바스 왕조를 접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셀주크투르크는 곧 이집트를 장악하고 비잔틴을 압박합니다.
북아프리카를 잃은 비잔틴 제국은 급격히 쇠약해져갔습니다. 그 결과가 1054년 동서 교회가 최종 분열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서유럽이 인구 증가에서 보듯 비약적인 성장을 한 반면 비잔틴 제국은 지는 해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셀주크투르크가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해서, 아바스 왕조처럼 불안을 느낀 비잔틴 제국 역시 서로마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해서, 요청을 받아들인 서로마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을 선포합니다.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교황은 우르바누스 2세입니다. 카놋사 굴욕 사건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교황이었는데, 프랑스 출신으로 클뤼니 수도원 수도사 출신입니다.
클리뉘 수도원은(909~910년)에아키텐 공 기욤 1세가 부르고뉴 클뤼니 장원 내에 건설한 수도원입니다. 중세, 특히 십자군 전쟁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도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이후 프랑스 혁명까지 연결할 수 있는 시토 수도원을 낳게 한 동인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면, 왜 이 시기 클리뉘 수도원이 흥하는 것일까요?
하나, 기후 변화로 서유럽이 온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 후반 이집트를 비롯한 지중해 지역 사막화와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가 6세기부터 서서히 인구가 증가합니다.
둘, 기후가 온화해지니 농사를 지을 땅이 늘어났습니다. 정착하는 게르만족이 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셋, 베네피키움(은대지제)
"베네피키움은 은혜(恩惠)나 특전(特典)·사물(賜物) 등의 의미로, 고대 로마에서는 3세기이후 황제가 국경지대를 방비한 게르만인에게 내려준 토지를 베네피키아(beneficia)라고 불렀다. 카롤링거왕조 프랑크에 있어서의 베네피키움은 본래 국왕을 비롯하여 교회·수도원·호족(豪族) 등이 충성과 봉사, 정치적·군사적 결속을 기대하고 토지를 제3자에게 은혜로서 증여하는 토지제도와 토지 자체를 의미하였으며, 메로빙거왕조말기인 7세기에 생겨나서, 8세기에 크게 증가하였다.
6세기까지 메로빙거왕조의 국왕이나 고(古)게르만 시대의 우두머리들이 전사(戰士)나 종자(從者)에게 증여한 것은 주로 동산(動産 :가축·무기·전리품 등)이었고, 그것도전공(戰功)·충성 등에 대한 보상적인 성격의 것이었으므로 베네피키움과는 다르다. 베네피키움이 출현한 7,8세기는 북(北)갈리아(라인강·루아르강 사이 지대)를 중심으로 영주직영지, 농민보유지로 이루어진 고전장원이 형성된 시기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 ··· 00000246
메롱링거 왕조가 중북부 땅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었습니다. 허나, 기후가 온화해지자 중북부 유럽 땅도 농사가 가능한 땅이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카를 대제 등장으로 왕조가 바뀌니 카를 대제로서는 동산보다 부동산을 바라는 신하들 충성을 대가로 땅들을 하사했던 것입니다.
하면, 이 제도는 어디서 왔을까요? 공후백자남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듯 중국 봉건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인드라는 봅니다. 이미 중국은 춘추전국 시절부터 봉건제였으니까요. 전달자는 이슬람 상인 혹은 유태인이 아니었을까요^^?
봉건제 장점이 무엇입니까. 땅을 승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봉건제 정착 단계에서는 승계하지 않고 당대에 한했다지만, 이내 승계할 수 있도록 변화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왕국 안정 때문입니다. 고대 왕국이나 제국은 총독이 관리만 하니 땅 욕심이 있던 총독이 불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허나, 봉건제에서는 땅 먹고 조용히 있어라, 하니 왕국 전체 땅에 욕심내지 않고 받은 땅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클뤼니 수도원이 흥한 이유는 서유럽에서 부가 갑작스레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그만큼 근검절약 절제를 강조한 것입니다. 만일 서유럽에서 먹을 것이 없다면 청빈 운동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헌데, 클뤼니 수도원에서 청빈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부가 수도원으로 집중하였습니다.
록펠러 재단 원조는 클뤼니 수도원인 셈입니다.
16. 아랍의 이슬람인가, 이슬람의 아랍인가; 아랍과 개종; 숙명론과 자유의지론
"알 만수르
무슬림 스페인의 실권으로 코르도바 칼리프국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1002년 8월 8일, 무슬림 스페인의 비공식적 지도자 아부 아미르 알-만수르(적군인 기독교인들은 '알만소르'라 부름)가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의 기독교 연합군과 벌인 칼라타냐소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는 그가 스페인 북부의 기독교 왕국과 벌인 50여 차례의 전투 중 최후의 전투였다. 한 연대기 작가는 알-만수르가 "악마에게 붙들려 지옥에 묻혔다"고 썼다.
알-만수르의 본명은 무함마드 이븐 아부 아미르로, 미천한 출신을 극복하고 권력을 쥐게 되었는데, 그는 서기(書記)였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나이어린 칼리프 히샴 2세(976~1009년 재위)의 어머니와 연인 사이였던 듯하다. 978년에는 총리를 퇴위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칼리프국에 대한 지배력을 점차 굳혀 갔으며, 981년 '알-만수르 비 알라'(신이 승리하게 한 자)라는 칭호를 얻으며 최고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994년에는 '알-말리크 알-카림'(숭고한 왕)이라는 칭호를 얻어, 칼리프는 명목상의 국가 수장으로 전락했다.
기독교도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 알-만수르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베르베르족 용병 수천 명을 고용했다. 이는 칼리프국 내에서 인종 갈등이 악화된다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알-만수르가 기독교 스페인을 수세로 몰아넣긴 했지만, 그가 칼리프의 권력을 침해한 결과 칼리프에 대한 존경심은 크게 손상되었다. 그의 죽음이 남긴 권력의 공백은 결국 칼리프국의 멸망을 불러오게 되었다.
"알-만수르 같은 이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히스토리아 실렌세』, 역사에 관한 문집, 11세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 ··· d%3D1943
라흐만 3세가 죽은 뒤 허접한 왕들이 연달아 집권하였습니다. 게다가 당대 11세기 정세 파악에 민감한 유태인들은 이 시기부터 이슬람 왕국보다는 기독교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리함을 파악했으니 안달루시아 왕국 앞날은 불투명했던 것입니다.
망해가는 안달루시아 왕국에는 스페인판 연개소문, 알 만수르가 있었습니다. 그는 허약한 왕을 코르도바 왕궁에 유폐시키고 섭정을 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아들이 대를 이어 집권하였습니다. 허나, 무력만으로는 왕국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아랍과 개종.
우마이야 왕조가 스페인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랍의 이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선민의식입니다. 이는 오늘날 수니파가 아랍에서 이슬람 다수파가 되는 동인입니다. 유대교가 유태인 종교이듯 이슬람교는 아랍인 종교인 것입니다.
선민의식 장점이 무엇입니까. 확산보다 결집입니다. 이는 인도 힌두교처럼 계급 차별이 시스템을 유지시킵니다. 역사적으로 승리한 종교와 종족과 함께 하면 생존할 수 있다는 인류 78% 감성을 자극합니다. 자유의지론보다 숙명론을 요구하니 78% 인류 마음이 평온합니다. 왜냐하면 자신 운명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건 78% 인류로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큰 일은 지도자가 알아서 하고, 자신은 일상에 몰두하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우마이야 왕조가 무력이 없었더라도 명분이 있어 왕권을 지속시킬 수 있었습니다.
헌데, 알 만수르가 피로 이어지는 명분을 무너뜨렸고, 뒤를 이은 라흐만 3세 후손이 라흐만 3세 후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만들었으니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는 이슬람의 아랍인 것입니다. 이슬람 중에 아랍이 있을 뿐, 모든 이슬람은 신 앞에 같다는 겁니다. 장점은 숙명론보다 자유의지론입니다. 우마이야 왕조와 달리 아바스, 파티마 왕조, 이후 이슬람 왕조들 특징은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칼리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 21%에게 자극적인 내용이 틀림없습니다. 단지 아랍인만 칼리프인 것이 아니라 무슬림이기만 하면 누구나 능력에 따라 칼리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해서, 참 좋을 듯싶은데,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합니다.
21%가 78%에 대해 너희는 능력이 없으니 지배당해도 싸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78%에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우울해서 자살하는 이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민주화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살률이 폭증한 것입니다.
같은 무슬림이니 차별이 없습니다. 허나, 현실은 차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쉽게 갑니다. 핏줄. 능력이 있든, 없든 핏줄로 가니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아예 기대할 수조차 없게 만듭니다. 대신 우마이야 왕조나 인도 힌두교는 관용 정책을 폅니다. 기대하지 말되,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라,라고 말입니다.
반면, 아바스 왕조는 아랍 피 차별이 없다고 했으니 다른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허나, 다른 기준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으니 논란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란인은 이란인 기준일 것이고, 베르베르인은 베르베르인 기준이며, 아랍인은 아랍인 기준일 것입니다. 한국인 중에 이슬람인이 있다면 당연히 한국인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해서, 아바스 왕조나 베르베르족에게는 관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슬람 무슬림 내부 경쟁에도 신경써야 하는 판에 바깥은 생각할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더 잔인합니다. 인류 78%에게 자살을 강요합니다.
스페인 이슬람 왕조에 대해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쓴 역사 비평에서 흔히 보이는 이야기 중 하나가 베르베르족이 우마이야 왕조보다 광신적이다,라고 합니다. 광신적인 것 맞습니다. 허나, 왜 그들이 광신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반도에 파시스트가 있다면 가장 근접한 인물이 쪽발놈현이라는 건 역사가들 상식입니다. 그러니 쪽발놈현빠들이 광신적인 것입니다. 다만, 돌맞을까 우려되어 다들 속으로만 말하고 쉬쉬하는 형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파시스트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단지 경상도 사람이란 이유로, 단지 전라도 사람이란 이유로, 단지 충청도 사람이란 이유로 오늘도 쪽발놈현빠들이 인터넷에서 비난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인드라 생각에 쪽발놈현 병쉰빠들만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한국 행복지수가 100% 정도 높아지리라 확신합니다. 이 점에서 쪽바리 문화를 확산시키는 쪽발놈현 우상화를 국유본이 중단시켜줄 것을 인드라는 국유본에게 정중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허나, 비난은 쉬워도 대안을 생각해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 쪽발놈현과 쪽발지태와 같은 파시스트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자유 경쟁에 지나치게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해서, 그와 같은 지나친 경쟁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해서, 인드라는 국민투표로 독립운동가 가문을 선정하여 임기제 순번제로 한반도 황제를 맡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쓰잘 데 없이 정치에 몰두하지 않고 사람사는 데에, 경제하는 데에, 철학하는 데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http://book.naver.com/bookdb/text_view ··· 5a5%25b4
17. 스페인 역사에서 오늘날 시대정신인 통일시대를 읽는다
인터넷에서 스페인 역사를 다루는 이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격한 종교 대립만을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 있었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한 편입니다.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 때 이베리아 족속들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스페인 족속들이 유태인이나 영국인, 한국인 만큼 꼴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드라 독특한 생각인데요. 보수와 진보란 동전 양면이라고 봅니다. 이는 특히 영국에 갔을 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더 혁명적입니다. 혁명적인 사람들이 보수적입니다. 다시 말해, 보수든, 진보든, 그 무엇이든 1% 이내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그 1% 사람들 사고방식은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종교가 무엇이든,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정치가 무엇이든, 부자이건, 가난뱅이이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혁명할까요? 누구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에, 즉 자기 것을 죽어라고 놓치지 않기 때문에 그 자기 것이라는 것을 극한에 이르르면 태극 원리라도 되는 듯 근원으로 돌아가 혁명적이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그것이 21%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이 혁명은 가령 핏줄을 유지시키되, 경쟁하게 하는 것입니다.
게르만족 등 유목민 특징은 약탈 경제에 있습니다. 다른 부족을 약탈해서 재물을 획득하여 공동분배해버리는 것입니다. 부란 집중할수록 더 큰 부가 옵니다. 그럼에도 유목민이 공동분배한 것은 형제끼리 경쟁해서 적자생존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존 능력이 높아져서 종족 씨를 더 많이 뿌릴 수 있다는 인류 오래된 기억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훌륭한 씨라고 생각이 들면, 그 씨가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유태인이든, 씨받이를 해서라도 강한 아이를 생산하겠다는 것입니다.
해서, 스페인 기독교 왕 중 뛰어난 왕들은 형제들에게 땅을 균등 분할하였습니다. 카를대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당장 보면, 전력 손실인 듯싶어도 길게 보면 이익인 것입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분단 상황이었는데, 이것이 반드시 손실이 아닙니다. 그간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지나친 통일 유지는 내부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이런 까닭에 인드라가 고려말 무신정권을 한국사에서 매우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해서, 인드라는 나름대로 지금까지 분단 상황이 한반도에 필요했다고 봅니다.
허나, 앞으로는 통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분단체제가 시대적으로 한계상황인 것입니다. 해서, 이제는 통일로 한반도 잠재 역량을 발휘할 때입니다. 반대로 중국과 일본은 분리할 때인 것입니다.
통일시대가 단숨에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그재그로 급속하게 통일되었다가 분란을 겪는 등 진통을 겪으면서 통일시대로 전진하리라 봅니다.
이처럼 분단과 통일을 제 때에 반복한다면 인류 잠재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연방공화국
한일연방공화국
한월연방공화국
한몽연방공화국
아시아연방공화국
하고, 또 다시 분단, 분열, 분리.
해서, 오늘날 한반도 시대 정신도 통일인 것입니다. 쪽발정은 정권을 흡수 통일할 적임자를 잘 뽑아야 할 터인데, 국유본이 역대 대통령과 주석을 모두 알아서 임몀하였으니 한국인은 크게 신경쓰지 말고,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며 돈 많이 버시길 바랍니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친미친중 반일반북 쪽발정은 척살로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석현 아웃
쪽발재벌 타도 골룸빡 처단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