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본은 북한을 동아시아의 이스라엘로 여긴다 국유본론 2009

2009/08/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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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 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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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본은 북한을 동아시아의 이스라엘로 여긴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 리포트 09/08/06

   

etizen1:

좋은 글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북한의 금융 사업에 대해서도 한수 배우고 싶으며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dprk.com을 참조하여 주십시오.

   

INDRA:

1. 오늘날 인월리는 뉴욕 타임즈보다 권위 있는 저널이다.

   

근래 수많은 메일과 쪽지, 덧글이 인드라에게 쇄도하고 있다. 국제 경제 문제, 북한 문제, 쌍용차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지난 인월리 2기 식으로 쓸 수 있지만, 지금은 총론이 아닌 각론에 무게를 둘 시기이므로 특정 주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기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경제 문제를 주말에 다룰 것이다.

   

휴가철이다. 무더위가 한창이다. 모든 것이 짜증스러울 법도 하건만, 일부 국유본 카페 회원이 인드라에게 보내온 마음 씀씀이는 일반적인 사회 심리를 뛰어넘는다.

   

"오늘 평택사태가 텔레비전에 실시간으로 나오더군요. 노조원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특수기동대와 또한 기동대원을 정신없이 때리는 노조원 등... 서로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니 참 참담합니다. 그 자리에 있을 그 가족들과 저와 같은 주부입장에서 보면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그 쌍용차 내부의 문제 이런 것은 모르겠습니다. 제 눈엔 오로지 폭력만이 보입니다. MB정부 들어 여기저기 군화발 소리가 너무도 많이 들립니다. 저같이 그런 테두리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야 안전할 지 몰라도 그런 테두리에 갇혀 오로지 소리 지르며 온몸으로 표현해도 씨도 안 먹히는 그런 입장이 된다면 어쩔까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듭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행이 너무도 안쓰럽습니다. 이런 내용을 게시판에 올리면 어떤 반응이 올지도 두렵습니다. 왜냐면 더 이상 상처받는 말을 듣기도 읽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인드라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부 바뀐 후론 끊임없는 폭력시위가 계속 일어나다 보니.. 폭력에 대한 내성을 키우라는 건지, 아님 극단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몰고 가려고 그러는지.. 전 국민을 미치게 만드는 게 그들의 일정목표일까요?? 이런 폭력에서 우리가 그나마라도 가져야 할 희망의 끈이 무엇인지? 어떤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계속 보장받아야 할까요? 세련된 말론 구조조정이겠죠... 하지만 남이 굶어죽어 내 쌀밥이 기름진다면 그 무슨 사람 사는 세상이겠습니까?? 오늘 게시판을 들다봐도 아무도 평택시위에 대해 글이 없기에 소심해서 올리지도 못하고 울적한 맘에 인드라님께 편지를 써봅니다.. 혹시나 평택에 있는 노조원 중에 한 사람이 이 카페 회원으로 있어 누군가의 글을 읽고 삶의 희망을 놓치 않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월리(인드라월드리포트)는 국유본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오바마 백악관도 인월리를 분석하고 있다. 하고, 근래 동북아 주요국가 관계자들도 파악 중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한나라당, 민주당, 박근혜,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한국 주요 정치세력이 모두 참고하고 있다. 심지어 평양 정권도 인드라 글 의도를 파악하며 고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요 언론사 기자, 인터넷 기자들이야 물론 보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도 읽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 및 증시 관계자들도 참고하고... 잘 관찰해보길. 인드라가 인월리를 쓴 다음날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하면 된다. 요즘은 인드라 덧글도 검토 대상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국유본은 인드라 쪽지, 메일 등을 어떤 식으로 읽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서, 인드라에게 쪽지를 준 분들이 가끔 사회 현안이나 주변의 일이 '우연의 일치'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놀랍게 생각할 수 있다. 인드라는 말한다. 인드라가 관련 글을 쓰면 48시간 이내에 반응이 나타난다.

   

인드라가 한국 힙합선, 한국 여자 보컬 소개 등으로 팔월을 조용히 넘기고 싶었다. 허나, 국유본이 이러저러한 경로로 재촉하는 듯싶다. 인드라, 어서 빨리 다른 프로그램을 보이거라! 라고 말이다.

   

"만일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면 국제유태자본은 인드라를 테러해서 죽일 게다. 사인은 자살. 헌데, 그간 국제유태자본이 인드라를 살려둔 것은 돌고래적인 답을 준비했기 때문인 게다. 현재 국제유태자본은 인드라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고 있고, 인드라는 답변해야 하는 게다. 이전과 정말 다른 답변 말이다. 그 답변... 정말 어렵다. 천상에서 질문을 구해야 하는데... 신의 음성이 인드라에게 들리기를... 지금까지 인드라가 명성을 획득한 것은 인드라 때문이 아니라 신이 인드라에게 맡긴 미션인데... 인드라, 그 미션이 난해하다. 대체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 http://blog.naver.com/miavenus/70048608970 )

   

"- 하이닉스와 같은 백배 장사해보려고 덤빈 사람들이니 동정의 여지는 없지요. 어차피 작전주에 목매단 이들은 되면 대박이요, 아니면 꽝인 걸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 요즘 저의 화두는 "깨어 있으라!!" 입니다. ..

   

- ㅋㅋㅋ. 답변이 묘하네요. 사비트르님은 내심 작전주에 관심이 있는 듯한 멘트를!~~! 혹하지 마시옵소서.

   

- 아닙니다..인드라님.. 주식매매할 때나.. 살아가면서도 방심하거나.. 느슨하지 않게, 항상 머리가 깨어 있자...^^ 시장가로 위아래 눌러대는 종목들은 재미없습니다. ㅋ

   

- 쌍용차 상한가 갔네요^^! ㅋㅋㅋ 세력들이 이제는 인드라 덧글도 체크하나~"

   

해서, 급한 불은 껐다. 어제까지만 해도 치킨게임인 듯하던 쌍용차 사태가 이처럼 극적으로 무마되는 동인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의 상상력을 총동원해보라. 답이 안 나온다면, 국유본론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길. 해서, 해석이 아니라 실천이다. 하고, 약속드린다. 이후 쌍용차에 대해서는 진지하고도 세세하게 다룰 일이 있을 게다.

   

국유본론은 거의 모든 사회과학 영역에 대해서 이론과 음모론 사이에서 양자를 극복한다고 할 수 있는 게다. 해서, 국유본론은 한국전쟁 원인을 기존의 정통주의나 수정주의 입장을 극복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정통주의가 정설이라면 수정주의는 오늘날 음모론에 가깝다. 그처럼 북한 정권에 대한 규정 역시도 마찬가지다.

   

빌 클린턴의 북한 방문으로 인해 국유본론에 대한 비판이 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이남원님과 칼과피님이 예다.

   

이남원님은 국유본론이 상당히 타당한 면이 있지만, 국유본론의 북한 정권 규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유본과 맞짱을 뜨는 것이 평양 정권이 아니냐는 게다. 이런 평양 정권을 칭찬하지 못할지언정 국유본의 꼭두각시라고 하는 것은 국유본에 대한 인드라의 과대평가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60년 남북 대치가 과연 허상에 불과한 것이냐 진지하게 반문하고 있다. 한편, 칼과피님은 인드라의 한반도 통일론에 회의적이다. 인드라는 2015년 이내에 김정일이 죽고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이 된다고 했다. 허나, 인드라 주장에 따르면, 이는 모두 국유본의 치밀한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후 도래할 대공황 국면에서 통일 한국이 대공황은 물론 독일도 극복하지 못한 통일 후유증이라는 이중고로 국유본에 모든 것을 몽땅 주는 시나리오라는 게다. 헌데, 인드라가 마치 국유본 대변가가 되어 이를 나서서 하고 있으니 의심스럽다는 게다. 혹 통일 뒤에 북한 문서에 인드라가 간첩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극언도 서슴치 않는다.

   

인드라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하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므네모슈네님과 실리콘슴가님 글도 마찬가지인 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국유본은 변증법에 굉장히 강한 면모다. 지난 수백 년간 국유본의 행동패턴은 변증법과 놀라울 만큼 일치하고 있다. 해서, 그들은 사실이 적당히 섞인 떡밥을 양편에 던져주는 게다, 허경영처럼. 대표적인 사건이 미국 남북전쟁이다. 가령 하나는 미주통일신문에, 다른 하나는 미국이나 일본 통일연구소를 통해. 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가. 일단 무조건반사 식의 현상이 일어난다. 기사 자체보다 반북 미주통일신문이니까, 친북 통일연구소 자료이니까 하는 편 가르기에 보다 열중하게 된다. 해서, 국유본 카페 회원들은 이를 뛰어넘는 인식을 지녀야 하는 게다. 국유본을 극복하고 싶은가. 하면, 국유본 심리를 먼저 공부하라. 어떻게? 인드라 글쓰기를 공부하면 된다.

   

2. 국유본은 북한을 동아시아의 이스라엘로 여기고 있다

   

인드라는 앞으로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를 입증할 것이나, 그간 밝힌 사례를 정리하면서 맛만 보여드리겠다.

   

이차대전 이후, 특히 1973년 이후 북한은 국유본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인드라의 <1973년의 세계사>를 주목하셔야 한다. 중동에는 이스라엘이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북한이 있는 게다. 이스라엘의 존재로 인해 중동 국가는 군사력 증강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급등한 오일달러를 모두 국유본 계좌에 예치하고, 달러로만 결제했던 게다. 그처럼 북한의 존재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중국, 남한, 일본에서 미군기지로 상징되는 미국의 역할을 존립시킬 수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국유본의 이익이 되었던 게다. 특히 19세기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세계의 부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전했던 것을 고려할 때, 국유본에게 있어서 북한의 역할은 매우 사활적인 이해인 게다. (근래 중앙일보에 이원복 선생의 중국 이야기가 나온다. 인드라가 강조했듯, 반드시 필독해야 한다. 국유본이 역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중동 이야기, 특히 이집트를 중심으로 잠시 정리해본다.

   

나세르는 국제유태자본의 중동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대 정세에서 국제유태자본은 중동에서 김일성 플러스 박정희를 만들어내어야 했다. 수에즈전쟁 때문이다. 이 전쟁은 전투에서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전쟁에서는 오히려 이집트가 승리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빅터 로스차일드를 이해하면 답이 나온다. 이란 정세 때문이다. 1941년 집권한 팔레비는 아버지를 따라 근대화와 민족주의 노선을 병행하였으나, 국제유태자본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온건파였다. 반면 모사데그는 국제유태자본과의 일전을 결심할 정도의 급진파였고, 이는 석유 국유화로 나아간다. 이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해서, 국제유태자본은 팔레비를 1953년에 로마로 망명시킨 뒤, 3일 뒤 장군 자헤디(18901964)의 쿠데타로 모사데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마치 국제유태자본의 정보원이자 이란의 전두환인 호메이니를 내세워 이란의 박정희, 팔레비를 축출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중동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국제유태자본에게는 이 민심을 약화시킬 대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세르요, 수에즈전쟁이다. 해서, 이후 나세르는 줄곧 반제, 반미, 반영 노선 이미지로 주가를 높여왔지만, 1970년에 이르러 더 이상 나세르의 쓰임새가 사라졌다. 왜냐하면 국제유태자본 입장에서 볼 때, 나세르에게 한 번 더 업적을 주기도, 그렇다고 그간의 이력을 모두 까먹을 정도로 나세르를 급변신을 시킬 수도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갑자기 반미, 반영, 반이스라엘, 반제 투사가 친미, 친이스라엘이 된다면 얼마나 골 때리겠는가. 국제유태자본론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이해하겠지만, 대다수 인민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해서, 나세르는 심장마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까지 국제유태자본이 기다려준 것은 1960년에 시작한 아스완댐 공사가 1970년에 끝났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10월 26일 ,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후 국제유태자본에게 암살당했는데, 10월 26일이 팔레비 생일이라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이명박이든 필요하면 추켜세우다가 가치가 다 하면 휴지통에 버린다.

   

나세르에 이어 대통령이 된 사다트는 서방과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72년에는 이집트에 충분한 군사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집트에 들어와 있던 소련 기술자들과 군사고문단을 추방하기도 했다. 국제유태자본은 현명하다. 사다트에게도 업적이 필요했다. 1973년 10월 6일, 시리아와 연합한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했다. 물론 전투는 수에즈 전쟁처럼 이스라엘의 승리이지만,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사다트는 국제유태자본의 지원으로 나세르 시대에 잃었던 영토를 되찾은 사람으로 이집트 국내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국제유태자본은 마음껏 사다트를 이용했다. 1976년 이집트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도 군사협정을 맺었다. 친미 정권인 사다트가 어쩐 일로 북한과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었을까^^! 사다트는 국제유태자본의 지시를 받아 1977년 11월 19일 아랍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평화 계획을 제안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78년에는 이스라엘 수상 메나햄 베긴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79년 3월 26일에는 아랍권 및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집트에는 소련 대신 미국의 군사 지원이 제공되었고, 오늘날 이집트 육군은 M1A1 전차를 비롯한 미국제 무기를 상당히 많이 수입한 국가가 되었다. 하면, 왜 사다트는 국제유태자본의 말단조직인 이슬람형제단에게 죽음을 당해야 했나. 팔레비를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사다트는 팔레비가 축출되면서 팔레비와 강한 연대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국제유태자본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때가 되면 팔레비와 같은 꼴을 당하는구나, 여겼기 때문이다.

   

망명을 받아준다. 중동사회에서는 거세게 반사다트 움직임이 있었다. 사실은 국제유태자본이 조성한 여론이었을 뿐이다. 호메이니 인기는 이란 혁명 이후가 아니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국제유태자본이 호메이니를 위해 안배한 작품에 불과하다. 사다트가 나름 저항했지만, 결국 나세르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고, 무바라크 현 이집트 대통령이 오늘날까지 친미노선을 견지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바라크가 원자력 정책을 발표하자 부시는 이란 정권에 대한 것과는 달리 쌍수를 들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중동을 넘어서서 북한이다. 북한이 언제부터 군비 증강을 하기 시작했는가. 1964년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예산에 군비를 편성할 여유도 없었다. 다시 말해, 국제유태자본이 김일성 정권의 군사력 증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64년 이후에 평양 정권이 군사력 강화에 나선다. 1964년은 중요한 해인데, 이 해에 록펠러가 소련으로 간다. 이때 소련은 록펠러와 같은 이를 특명대사로 하는 등 록펠러를 통한 핫라인을 개설해준다면 대환영이라는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직후 후르시초프는 그가 공언한 소련 농업 경제 성공 대신 실패라는 책임 등을 떠안고 소련 정권에서 제거되었다. 흡사 카터가 북한을 다녀가자 김일성이 제거되는 것과 유사하다. 참고로 1922년 미소 교역위원회의 주된 구성원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이었다. 이 은행을 통해 소련의 정유 및 원자재 거래가 이루어졌고, 소련 산업의 상당 부분의 국제 거래는 거의 독점화된 창구를 통해 성사되었다.

   

왜 김일성 정권은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과 발사대를 소련이 아닌 이집트, 그것도 친미정권 사다트에게서 얻어야 했을까. 이 질문을 시작하는 데서 국제유태자본론에 눈을 떠야 한다.

   

이제까지는 북한이 잘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북한, 한국은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군사대국이 되었다. 허나, 문제가 있다. 북한 군사력 내막을 살펴보면, 뽕빨님이 지적한 대로 폐품 수준이다. 이는 인드라처럼 군에서 보급병이 되거나 기업에서 자재과 같은 데서 일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문제다. 수십 년 된 물자는 장부에는 잡히나, 실제로는 고물일 뿐이다. 국유본은 이를 잘 안다. 해서, 수십 년 전부터 준비한 게다. 북의 핵무장을!!!

   

통일부 사이트(http://www.mnd.go.kr/)에 가서 국방백서를 열람하면 【부록 6】북한의 미사일 개발 경과 및 제원 항목에 "1976.~1981. 소련제 SCUD-B 미사일 및 발사대를 이집트로부터 도입 역설계/개발"이라고 나온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이 정보 소스를 획득한 것은 어디일까.

   

현재까지 인드라가 파악하기로는 재일교포 2세이자 북한 군사무기 전문가인 김명철이 小都元(오즈 하지메)의 저서를 근거로 국내에 소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탄도미사일개발에서 큰 전환기로 된 것은 1976년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입수한 때부터였다. 1979년부터 1980년 사이에 북한은 이집트와의 미사일개발 협력에 합의하고 1981년에는 정식 협정을 맺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1983년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기술협정 내용을 경신하였다

   

정리하자. 국유본이 미국 기업 이름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이름을 날린다면 반감이 클 게다. 그보다는 한국이 적당한 게다. 그처럼 북한에 무기를 수출할 나라로는 이집트가 적당한 게다. 왜 미국 메이저가 직접 북한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은가. 하면, 너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무협으로 비유를 하자. 어떤 동네에 산적이 있다. 이 산적은 통행세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해서는 이 산적이 강적이지만, 오직 특정 표국에 대해서만은 통행세를 물지 않을 만큼 저자세다. 하면, 이 동네 상인들이 장사하려면 특정 표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헌데, 내막을 알고 보니, 특정 표국과 산적은 한 통속이었던 게다^^! 특정 표국은 산적이 다른 모든 표국의 표사보다 우월한 무공을 유지하기 위해 무공비급과 자금을 제공했던 게다.

   

3. 김정일은 국유본의 꼭두각시이자 반미투사이다

   

공짜는 없다. 평양 정권이 무기 수입을 하는 만큼 대가가 필요했을 게다. 그 대가는 어디서 오는가. 광공업이다. 하고, 별다른 공업품을 제공할 수 없는 북한 입장에서 돈 되는 것은 광업이었던 게다. 금괴 수출인 게다.

   

델타 아시아 그룹(Delta Asia Financial Group)은 지난 1935년 Au Wing Ngok이 설립한 마카오 항상금고 (恒生銀號; Hang Sang Finance Company)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Au Wing Ngok의 아들, 스탠리 오(區宗傑: Stanley Au)가 홍콩에 개설한 `델타 아시아 신용대출' 과 합병을 통해 93년 델타 아시아 금융그룹으로 정식 발족했다. 스탠리 오는 금 거래에 강점을 보였다고 했다. BDA(Banco Delta Asia)는 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참고로 BDA는 BDA 사태가 있던 2005년 무렵만 해도 마카오에서 여섯 번째 은행이며, 마카오에 8개 지점, 400여명의 직원을 둔 여섯 번째 규모의 은행이었지만, 지금은 8개 지점 150여명 직원을 둔 열 번째 기업으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BDA는 1973년 상업은행으로 인가 받은 후 상업은행으로 인가를 받은 후 북한의 은행 및 무역회사들과 거래를 해왔다. BDA는 이때부터 북한의 외환결제 창구 역할을 했다. 헌데, 1973년은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해이다. 인드라는 1973년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국유본의 실질적인 권력교체가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예서, 잠시 BDA 사건에 대해 정리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언스트 앤 영' 보고서를 언급했다.

   

- "BDA와 거래를 하는 많은 북한 개인과 회사들이 위조지폐와 위조담배, 마약 등을 거래하는 단위들과 관계가 있었다."

   

- "광범위한 위조지폐 우려 보도에도 불구하고, BDA는 위험 부담이 높은 북한 관련 대규모 현찰 예금주에게 할인 혜택을 주며 은행을 계속 이용하도록 격려했고, 다른 은행이 거래를 거절한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 고객의 예금을 계속 받았다."

   

- "거래 원주의 신분과 위치를 감추거나 제3자를 통해서 자금 이체를 하는 행위"

   

-  "합법적 목적이 없어 보이는" 은행에 있는 구좌와 자금을 이체하는 행위

   

-  "현금 거래의 출처와 목적에 대한 믿을만한 설명 없이 대량의 현금을 이전하는 행위." 예들 들어 2002년 북한에 관련된 단위는 미화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를 예금했다.

   

-  같은 은행 내의 구좌들 사이에 큰 액수의 자금이 오고가는 행위들

- "은행은 이러한 고객들이 예금한 대규모 현찰의 출처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인드라는 BDA 사태에서 북한이 달러위조 사태를 벌였다고 보지 않는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국유본 전술에 따른 게다.

   

1994년 북한의 예치자금 16만 달러 중 $100짜리 100장의 위조지폐 (1만 달러)를 발견한 BDA는 마카오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이후 미국 재무부 산하 Secret Service의 조사를 받았다. 미국 정부는 북한과 계속 거래할 것을 요구했다. BDA는 북한 계좌의 거래 정보를 미국 측에 계속 제공했다. ;McClatchy Newspapers 2007-5-16

   

예까지 읽는다면 재미가 없다.

국유본론의 독특함은 지금부터이다.

동시에 BDA를 통해 북한 정권의 국유본 의존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게다.

   

바로 HSBC 때문이다. BDA가 다급하니까 BDA 회장 스탠리 오가 HSBC를 끌어들인다. 스탠리 오에 따르면, 위조화폐 여부를 HSBC를 통해 검수해왔다는 게다. 또한 BDA에서 돈세탁한 자금이 주로 HSBC로 자금 이체가 되었다는 게다. 예서, HSBC는 중국계도, 미국계도 아닌 영국계다. 로스차일드계라고 할 수 있다^^! 위기가 진행되면, 사건은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다른 은행들이 주저할 때, BDA가 위험을 감수하고 평양정권과 거래할 수 있었던 것은, 보다 큰 단위의 보증이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게다. 김일성-김정일 정권도 아무나 하고 거래할 수 없는 게다. 이 두 세력에게 동시에 신임을 획득한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국유본 이외에 과연 누가 있을까?

   

핵심은 1973년이다. BDA가 졸지에 상업은행으로 인가받고 시작한 사업이 대북사업인 게다.

   

하면, 왜 하필 국유본은 BDA를 노렸다는 말인가. 일타 삼피로 보인다.

   

하나, 국유본의 라스베가스 보호 때문이다.

   

미 정부의 BDA 관련 발표가 차기 마카오 행정장관을 노리다가 지난해 12월 뇌물수수 혐의로 전격 체포된 아오만롱(歐文龍) 운수 공무사 사장(司長.건설교통부 장관격)의 재판을 앞두고 나왔다. 아오 사장은 사건은 지난 2002년 마카오 당국이 스탠리 호의 마카오 도박 산업 독점을 깨고 40년 만에 자율화 조치를 취해 마카오를 음습한 카지노, 폭력조직의 대명사인 삼합회, 매춘의 도시에서 세계 최고의 도박시장으로 도약시켰다. 해서, 이런 노력 덕분에 실제 마카오가 미국 도박시장의 대명사인 라스베이거스를 수익 면에서 앞지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BDA에 대한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 지정은 아오 사건과 마찬가지로 마카오의 명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여기에, 마카오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그의 전 부인과 자녀 2명과 함께 2004년부터 거주하는 것도 키포인트가 되겠다.

   

인드라는 강조했다. 모나코, 산마리노와 같은 소국가들의 존재 이유는 오직 국유본의 돈세탁에 있다고 말이다. 허나, 여기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게다.

   

이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빈 라덴이 영웅이 된 것이 무장투쟁 때문이 아니라 금융거래의 귀재이기 때문이라는 게 국유본 설명이다. 그처럼 김정일이 국유본을 벗어나서 자유자재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인양 보인다면 착시인 게다.

   

둘, 국유본이 2010년까지 북의 핵무장을 촉진시키기 위함이다.

   

평양 정권으로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 한정된 자금을 쓸 데가 많았다. 해서, 제한된 자본으로 핵무장 대신 인민의 생활 개선에 힘을 썼다면,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더 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 게다.

   

허나, 국유본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국유본은 현상적으로는 6자회담을 깨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평양정권이 6자회담을 거부하도록 부추긴 셈이고, 성공했다. 국유본이 허용한 평양정권의 주요한 금융 루트를 차단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평양 정권은 불가피하게 핵무장에 나서게 되는 게다. 주지하다시피 핵무장을 하려면 돈이 엄청 든다. 헌데, 돈은 돈대로 들면서 쓸모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뽕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북이 핵무장을 한다 뭐한다 하면 한국과 일본에서 MD 장사를 할 수 있다.

   

셋,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한반도 프로세스, 동북아 프로세스이다

   

국유본이 단기적으로 바라는 것은 중국에 대한 포위와 분열이다. 허나, 장기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에서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 또한 국유본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이 형성될 때까지 중국을 분열시킬 것이지만, 때가 되면 국가연합을 통해 지금보다 더 웅대한 중국이 건설될 수도 있는 게다. 분열을 통한 확대인 게다. 청은 한족이 아니었다. 그런 청이 중국 역사에서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만큼 제국을 확장시켰다. 그처럼 국유본은 그간 일본을 활용하다가 근래 한류를 보듯 한국을 이용하는 게다. 청은 신라요, 곧 한국이다. 괜히 재야사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유본이 후원하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선생처럼, 박정희 선생처럼, 노무현 선생처럼 반미투사이자 국유본의 꼭두각시인 게다.

   

결론적으로  BDA 사태의 결말로 마카오 정부로 경영권이 넘어간 BDA 은행이 매각되지 않고 대주주인 델타 파이낸셜 그룹으로 반환되었다. 이해가 되는가^^!

   

4. 부시와 김정일은 남몰래 뽀뽀한 한민족의 원쑤인가

   

당대 미국을 주도하던 버지니아 주 주된 생산품 중 하나가 담배였고, 이후 쿠바혁명을 낳게 한 동인이라고 인드라가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노동자의 적으로 악명 높은 유태인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 역시 여느 유태인처럼 담배사업에 종사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통칭 벅 듀크(buck Duke)로 불린 제임스 듀크는 19세기 말에 록펠러가 석유 트러스트를 형성하는 수법을 보고는 담배업계도 트러스트를 결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884년 뉴욕에 경쟁 업자인 4대 담배 제조업자를 모으더니 "경쟁을 그만두고 가격을 끌어올려 왕창 벌자"며 담합하였고, 1890년에는 5개 사를 합병해 아메리칸 타바코(American Tobacco)를 설립하였다. 듀크는 이후 사장에 취임하자 담배왕은 독점과 인수를 한층 강화해 해외로 진출, 영국의 임페리얼 타바코(Imperial Tobacco)와 합병해 브리티시아메리칸 타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를 설립하였다. 전 자산의 2/3를 아메리칸 타바코가 보유하고 스스로 회장을 맡아 세계에 군림하였다. 헌데, 셔먼 반트러스트 법(Sherman Anti-Trust Law) 위반으로 1911년 트러스트가 해체되자,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와 마찬가지로 14개 사로 분리되고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가 영국 자본으로 바뀌어도 듀크는 여전히 모든 새 회사의 대주주 자리를 지켰다. 듀크 가는 듀크 대학을 설립하는 등 당대 국유본과의 폭넓은 관계를 형성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예서, BAT(British America Tobacco)를 검토하자. 어떤 회사인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BAT는 전 세계 66개국에 생산 공장과 180여 개국에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다. 세계 담배시장의 15.4%를 점하고 있으며, 모리스 필립사 다음 세계 2번째로 규모가 큰 담배회사다. 종업원 수는 총 9만여 명에 달하며, 연간매출액은 지난 99년 300억 달러에 달했고, 주 생산품은 Kent, Kool, Dunhill, Finesse 등이다. 한국BAT의 경우 전국 10개 대도시에 17개 지사를 두고 370여명이 종사, 연 1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 88년 담배시장 개방에 따라 남한에도 진출, 국내 외국산 담배점유율을 상당 부분 점유하고 있다.

   

정리하자. BAT가 현재 차지하는 위상은 날로 축소되고 있다. 국유본 내부는 평온한 것이 아니라 늘 시끄럽다 할 수 있겠다. 가령 클린턴 측이 BAT 등에 비판적이라면 부시는 오히려 BAT에 우호적인 면이 있다. 이런 BAT가 대북투자를 한다? BDA에도 자금이 있다? 중요한 것은 BAT가 남한에 담배공장을 세우는 김대중 정권 시기에 북한에도 부시정권 시절 담배공장을 세웠다는 게다. 하고, BDA 문제로 정리가 되었다. 이 대목 유념해야 한다. 쿠바 담배산업에 지대한 공이 있는 이는 유태인 사업가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겠는가. 부시는 국유본에게 전 세계적인 악당으로 이미지가 되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특히 한반도에서 평화의 전도사였다는 것을 말이다. 부시는 틈나는 대로 이란이 북한과 같은 태도이기를 바랐다는 게다. 무슨 말인가. 평양 정권이 국유본 입맛대로 열심히 움직인 게다.

   

통일은 불가피하게 찾아온다. 국유본 전략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해서, 국유본은 한반도에서 마지막 장사를 하고픈 게다. 이대로 통일이 되면 국유본이 획득할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도기다. 과도기 시절에 국유본 전략에 흥미가 있을 수 있으나, 자신의 포지션에서 좀 더 양보하여 세상을 널리 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참고링크:

http://100.naver.com/100.nhn?docid=828698

http://en.wikipedia.org/wiki/Banco_Delta_Asia

http://ejbiz.net/bbs/bbs/board.php?bo_table=sub03b&wr_id=16&page=2

http://blog.daum.net/skillofjoy/11751180

http://en.wikipedia.org/wiki/James_Buchanan_Duke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5-10/2005-10-17-voa7.cfm?moddate=2005-10-17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7-09/2007-09-21-voa5.cfm?moddate=2007-09-21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247844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592091

http://blog.naver.com/miavenus/7004579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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