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과 김두관, 인드라, 이재오 국유본론 2011
2011/04/05 03:42
http://blog.naver.com/miavenus/70106288894
국제유태자본과 김두관, 인드라, 이재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04/05
<-평소 운동권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무슨 소리인가.
"국민은 민주화 운동세력에 대해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등 보상해 줄 만큼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 운동권은 과거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말고 이제는 민주화의 성과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출범 취지는 민주화운동을 기념·계승·발전시키라는 것이었는데 기념은 하지만 계승은 자의적으로 해왔고, 발전은 거의 없다. 민주주의는 중요한 가치다. 한나라당 민주주의 따로 있고 민주당·운동권 민주주의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운동했으니까 내 민주주의만 옳다고 하면 안 된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기득권화해서 남들은 틀렸고 자기만 잘났다고 하니까 국민이 보기 싫어한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내부에선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없다.">
"민주화운동? 그거 별거 아니다, 잘난 척하면 안 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성헌 이사장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212
옳은 말씀이시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잘 난 척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은 지금까지 한줌도 안 되는 극소수 운동권 출신들에게 도를 넘는 과도한 대우를 해주셨다. 왜 한줌도 안 되나.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게 운동권이다. 지금도 이런 극소수 운동권이 한나라당과 친일매국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정치권에서 핵심으로 활약할 뿐만 아니라 기업 부문을 제외한 한국 사회 거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된 건 국유본이 전폭적으로 운동권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등 조중동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도 국유본의 지시이다.
이를 전제하고, 왜 이 시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인월리는 이재오가 국회의원에 낙마하고 다시 당선되는 스토리 이면에는 국유본이 있다고 본다. 그처럼 김두관이 경남 도지사에 당선되고, 김태호가 총리로 물 먹다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것이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유본의 각별한 기획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해서, 오늘은 김두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인월리가 사석에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회당 탈당하면서 이제 정치에 정말 마음을 비웠다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차기 대통령, 차차기 대통령 이야기가 나올 때, 인월리가 꼭 거론하는 이가 있으니 김두관이다. 또한, 지난 고현정 주연의 여자대통령 드라마 때도 배경이 남해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구십년대에 이런 식으로 노무현을 주목해보라고 한 바가 있다. 하면, 왜 김두관인가.
김두관 프로필을 보자.
http://blog.naver.com/minboodk?Redirect=Log&logNo=40038196630
이 프로필에 대한 인월리 식 검증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노무현을 검증하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노무현 측근 비리 문제를 거론하다가 노빠들로부터 고소하겠다느니 협박을 받았는데, 결국 그 문제는 사실로 드러나 측근이 구속된 바 있다. 지금은 그 측근이 중부지방 어디에서 도지사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그 색희이지만 ㅎㅎㅎ. 하여간, 비판도 관심이 아니겠는가. 관심이 없으면 비판도 없다.
1959년생 김두관은 인월리가 대학에 입학했던 1985년 민통련 간사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내 지역 지부인 서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회부 간사였다고 한다. 김두관은 이 시기 동아대 편입생으로 군복무 만기제대를 마치고 휴학중이었다. 이런 김두관이 왜 집에 내려가거나 부산에 있지 않고, 서울에 있었을까. 김두관의 말로는 자신은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운동권이 아니었다고 한다. 허나, 군대에서 겪은 경험과 친동생이 운동권이어서 운동 이야기를 해서 군 제대를 하면서 운동권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납득이 간다. 군 제대하는 분들은 다들 알겠지만, 진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니까. 예서, 당대 운동권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왜 서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었을까. 물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본부는 서울에 있기는 했다.
이에 대해서 인월리는 남해 변방 김두관의 중앙으로의 강한 열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김두관의 정치적 야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려웠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대 출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허나, 다른 통로가 있다. 운동권이다. 운동권을 통해 출세한다.
김두관은 민통련이 주최하는 민족학교 1기 졸업생이 된다. 헌데, 1985년에 민족학교 1기 졸업생이 거의 유일한 운동권 경력(?)인데, 곧바로 사회부 간사가 된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정을 알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인월리가 서울민중연합 민족문화학교 1기 졸업생이거든?
간단히 말하자면, 민통련이 민족학교를 만든 건, 활동가들을 키워내기 위함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총알받이들을 구하는 것이고, 그 총알받이들 중에서 김두관처럼 능력이 되면 큰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통련이나 민족학교가 김두관을 키운 것이 아니다. 민통련이나 민족학교는 그저 서울대, 연고대처럼 운동권 이력서를 김두관에게 부여했을 뿐이다. 김두관은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런 이력서가 필요했을 뿐이다.
인월리가 강조하는데, 운동권 세계란 보통의 정치판보다 더 야바위판이란 건만 알아두시면 되겠다. 간단히 말하면, 운동권에서 삼 년만 생활하면, 세상에서 그 어떤 더러운 꼴을 보더라도 다 용서가 된다. 운동판보다 더 끔찍한 것은 인월리 인생 속에서 본 적이 없다. 참고로 이야기를 잠시 듣자니, 종교판이나 피라미드 영업 쪽이 운동판 못지 않게 혼탁하다고는 들었다. 해서, 인월리는 종교나 피라미드 영업에 있다가 탈출한 사람들의 내공을 높이 보는 편이다. 사연을 들어보면, 공통 분모가 참 많다^^!
하여간, 중요한 건 무엇인가. 운동권 조직은 크게 둘로 분류가 된다. 명망가와 조직 실세. 이 명망가와 조직 실세의 변증법적 과정이 지난 운동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칭 민통련이라고 한다. 제5공화국 시절인 1985년 3월에 25개 재야 민주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발족한 단체다. 1983년 9월에 출범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필두로 1984년 6월에 출범한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 1984년 10월에 출범한 민주통일국민회의가 모체가 되었다. '민주화운동과 민족통일운동은 하나'라는 기본인식 위에서 노동자·농민·청년·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 운동단체들이 총망라되어 결성했다. 그후 해산명령, 사무실 폐쇄 등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결집된 힘으로 꾸준히 활동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비판적 지지론'과 '후보단일화론'으로 입장이 나뉘어 내부 분열이 일기도 했다.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결성되면서 민통련은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본부는 서울에 있었다."
[출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民主統一民衆運動聯合 ] | 네이버 백과사전
민주통일운동
http://www.kdemocracy.or.kr/friend/history-80-8.asp
실제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명망가란 문익환이니 백기완이니 한다. 허나, 이 당시 실세는 김근태와 장기표다. 예서, 일부가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이때, 지역색이 있었다고 말이다. 대학생 때 혁명적 지하운동서클 활동을 했던 인월리가 장담한다. 이 시기 운동권에서는 지역 색 전혀 없었다.
이런 지역 색 운운하는 넘들은, 문제가 있는 넘들이다. 종교 활동을 하건, 운동권을 하건, 뭘 하건,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넘들이다. 이 색희들은 도대체 지역 색으로 나라를 말아먹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니 이런 색희들이 목사를 하건, 신부를 하건, 모두 일찍 뒈져야 한다는 게 인월리 생각이다.
이를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누구인가. 장기표다. 장기표가 이 시기 옥중에 있었는데, 이때 대선을 맞이해서 장기표가 김대중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후보를 양보하라고 말이다. 이에 김대중이 거부하자 장기표가 그렇다면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조직적 실세인 장기표가 결정하자 민통련이 김대중 비판적 지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헌데, 장기표가 누구인가. 호남 출신인가. 아니다. 영남 출신이다. 결론적으로 지역 색은 결과론인 것이다. 국유본이 운동권을 분열시키기 위해 김대중/김영삼 대결로 몰아가니 그에 따라 운동권도 분리된 것이고, 지역주의가 발생한 것이다. 인월리가 단적으로 말하는데, 1987년 이전까지 운동권은 물론이요, 일반 시민들도 지역주의 없었다. 지역주의는 1988년 이후 국유본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국유본이 얼마나 이런 작업을 잘 하는지. 19세기만 하더라도 영국과 독일은 사이 좋은 나라였다. 프랑스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사이가 좋았다. 더 나아가 영국 왕이 독일계 왕이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랬던 양국이 20세기 접어들면서 두 차례 세계대전을 한다. 국유본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외는 아니다. 국유본은 얼마든지 한국과 일본 사이를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친밀하게 만들 수 있는 반면 동시에 한국과 일본을 언제라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국유본이다. 국제관계도 그러한데, 하물며 국내관계란 누워서 떡먹기인 게다. 세종시로 수도권과 충청을 이간질시키고, 신공항 문제로 경북과 경남을 이간질시키고, 전남과 전북을 이간질시키고, LH공사로 호남과 영남을 이간질시킨다. 잘 생각해보라. 그대들은 그저 국유본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건 이명박 탓하면서 씩씩거리고 있는 무뇌아들을 바라보는 국유본의 눈빛은 흐뭇할 것이다.
물론 왜 김대중이 이 시기 사자필승론을 펼쳤을까는 인월리가 후일 국제유태자본론과 한국 운동권을 말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아직은 정리가 완전히 되지 않아서 드문드문 이야기할 따름이다. 하여간 당시에도 국유본은 김대중, 김영삼은 물론 운동권도 관리했다.
이야기가 샜다. 김두관으로 돌아가자. 김두관이 민족학교 1기 출신으로 곧바로 서울 민통련 사회부 간사를 맡는다.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왜? 당시 운동권이란 언제 구속될 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야망이 있거나, 정말로 순수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가능한 것이다. 김두관은 순수한 이는 아니다. 정말 순수하다면, 경남도지사 이전에, 아니 남해군수 이전에 정치와 연을 끊었을 것이다.
김두관은 정치적 야망이 있었다. 해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런 이들은 민족학교를 졸업하고도 드물다. 몇 되지 않는다.
간사란 뭐냐. 사실상 무보수에 상근직인 게다. 간사랑 정말 피곤한 자리이다. 해서, 아무나 안 한다. 아무나 안 하기에 김두관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말만 주임이니 대리이니 하는데 알고 보면 임금은 평사원과 거의 차이가 없이 그대로이면서 더 부려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운동권 조직에서 간사란 것도 허울 좋은 직책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이재오와 김두관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인월리는 추정한다. 왜? 이재오 말빨이 정말 굉장하다. 인터넷 폐인 색희들이 이재오 함부로 비판하는데, 이 병쉰색희들이야 노무현 찬양에 쩔은 무뇌아들이니까 무시해도 되고, 알만한 사람들은 이재오 무시하지 않는다. 현 운동권 판에서도 이재오는 급수가 굉장히 높은 양반이다. 뭐, 뒤늦게 국유본이 이재오를 인정해서 키워주고 있지만. 아무튼 아무리 운동권이 까이는 세상이지만, 정치판에서 이재오 만큼 살라고 하면 다들 한수 접을 것이다. 노무현이건, 유시민이건, 권영길이건, 노회찬이건, 김근태이건 말이다. 한마디로 국유본이 노무현이랑 이명박이 상품성이 된다고 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지, 알고 보면 노무현이나 이명박보다 이재오가 더 운동판에서는 인정받는 걸 알아야 한다.
아무튼 김두관은 '형님' 이재오에게 홀딱 반했을 것이다. 이재오는 '두관이' 김두관이 나름 물건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여기에는 학연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이재오와 김두관은 국민대학교와 인연이 있다. 손석희만 국민대학교가 아니다^^!
김두관이 1986년 4월 26일에 충북도민 결의대회 주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이 된다. 이것은 사실일까. 아니다, 라고 인월리가 자신한다. 이건 김두관도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부끄럽다는 식으로 잘 말하는데, 이런 점은 김두관의 장점이다. 뭐냐. 김두관이 말이 좋아 간사이지, 한마디로 전쟁나면 최전방에 서는직업군인 중 가장 바닥인 하사가 되었다는 게다.
어디든 가야했던 게다. 어차피 민통련에서 민족학교 만든 건 동원력 때문이다. 여기서 동원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도 운동권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삼는 기준이다. 동원력이란 뭐냐. 무슨 무슨 집회하면 쪽수를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느냐인 게다. 쪽수를 많이 동원하면, 그만큼 조직이 우대받고, 우대받는 조직의 실세는 무슨 무슨 장례식이다, 무슨 무슨 공대위다, 무슨 무슨 투쟁본부다, 이런 것 하면 맨앞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게 명망이다. 운동권은 명망에 죽고 산다.
김두관, 정치적 야망을 위해 충북까지 간 게다. 별 야심이 없었다면, 순수한 마음이었다면, 충북까지도 가지 않았을 거다. 같은 수도권인 인천은 모르되,충북까지 갔다는 건, 김두관이 얼마나 정치적 야심이 컸는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하고, 거기서 집회하다가 연행된다.
집회한 인원이 기껏해야 백여명 남짓할 게다. 헌데, 거기서 충북 지역 사람도 아닌 사람이 검거되었다. 하면, 경찰 입장에서는 뭐라고 생각하겠나. 외지인인 데다가 무슨 조직에 있는 것이다. 배후 조종 주동자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어쩌면 경찰 입장은 미래를 본 현명한 처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때 충북 경찰이 김두관을 단순 가담범으로 여겨 훈방했다면, 김두관 이력에 먹칠을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ㅎㅎㅎ.
이렇게 해서 또 한 인생이 가는구나. 젊은 날, 한 번 객기를 부리다가 쓴 맛을 보고 오늘날까지 회한에 차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한둘이겠는가. 그때 그 개색희, 이재오 말만 안들었더라면. 김대중 십색희, 노무현 개자식 말만 무시했더라도 나는 오늘날 이런 젖같은 인생 살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이렇게 여기는 이들이 한둘이겠는가.
허나, 모두가 좌절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김두관이었다. 김두관은 감빵에서 나온 뒤 동아대를 졸업하고 남해로 돌아와 농민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김두관은 남해 농민회 사무국 국장을 맡는다. 서울 민통련에서 활약하다가 감빵살이를 했으니 지역에서만큼은 명성을 쌓은 셈이다. 이런 것이 명성인 게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건, 서울 민통련 간사를 했다가 아니다. 감빵살이를 했느냐 여부이다. 이 시기 운동권에서는 조폭과 비슷했다. 조폭도 감빵을 다녀왔으냐, 별을 달았느냐 여부로 상대를 파악하듯이 운동권에서도 아무리 논리가 쌈빡해도, 머리가 좋아도 다 소용없었다. 감빵 다녀왔니? 이것이면 족했다. 그러면 다 된다. 참고로 인월리도 감빵을 다녀왔다. 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에서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감옥에 다녀와라. 이명박 대통령도, 이재오 특임장관도, 오늘날 한나라당 뉴라이트 핵심이나 민주당 뉴라이트 핵심 모두 감빵 이력은 필수이다.
이 시기 때에 김두관은 허파에 바람이 잔뜩 불었던 시기로 보인다. 해서, 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연이어 민중의 당 남해, 하동 지구당 위원장을 맡는다. 하면, 민중의 당 남해, 하동 지구당 위원장을 아무나 시켜주나. 절대 아니다. 여러분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당선도 안 되는데, 어차피 국유본의 따가리들이기는 하지만, 진보좌파에서 이런 직책에 목숨을 거느냐고 말이다.
간단하다. 이력 때문이다. 이런 이력이 있으면, 잘 되면 진보좌파 당에서 출세할 수 있는 것이고, 여차하면 선배들따라 한나라당이나 친일매국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이라도 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력이 중요한 게다.
예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때, 민중의 당이 비록 망한 당이었지만, 김두관은 과연 누구 연줄로 지구당 위원장이 되었을까.
이재오 형님?
옥케이~!
민중의 당이란 뭐냐. 민중의 당, 총재는 정태윤이다. 정태윤? 오늘날 이명박 특임장관의 직계라고 할 만한 인물로서 오늘날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다. 민중의 당은 참패하여 후일 한겨레당, 민중의 당 등이 합당하여 민중당이 되는데,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이재오인 게다.
바로 이런 정태윤의 민중의 당 후보로 김두관이 13대 총선에 출마하여 4명 중 3위를 한다.
여기서 김두관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선거 한번이라도 치뤄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간 한나라당, 친일매국 민주당을 우습게 여겼던 이들이 직접 겪어보면 얼마나 자신이 그간 피상적으로 정치를 알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정말 피튀긴다. 선거 때만큼은 국민을 향해 늘 구십도 절을 하면서 섬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선거란 선거기간 때만 하는 것이 선거가 아니다. 선거기간이 아닐 때에 하는 것이 핵심적 선거운동이다. 그것이 조직표가 되는 것이다.
김두관은 그간 피상적으로만 느꼈던 이념 구도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았을 것이다. 해서, 동네 이장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도는 매우 참신했다. 얼마나 참신했는가 하면, 노무현도 김두관 이력을 너무나 부러워해서 퇴임 말년에 이장인양 굴었는데, 이건 명백히 말하자면, 노무현이 김두관을 표절한 것이다.
"한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책에다 이렇게 써놨습니다. '남자에게는 가정용, 뺑뺑이용, 오솔길용으로 여자 서넛은 있어야 한다.' 또 같은 책에서 '여자는 조져야 돼. 밥상 들어달라면 엎어 버려야돼. 이불을 개달라면 물 젖은 발로 밟아버리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쓴 <여보, 나 좀 도와줘>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책방에서 팔고 있습니다. 노 후보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정 파괴를 선동하는 건지, 여성을 비하하는 건지…. 저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인품이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노무현은 김두관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 그 부모된 자가 여전히 미스터리이고, 노무현의 삶 전반기는 개색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로 의혹이 많은데, 너무 의혹이 많이 발생하는 바램에 국유본이 죽인 것이 아닐까 싶다. 노무현 하나 죽은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노무현으로 인해 국유본의 한나라당/친일매국민주당 양당체제 프로그램이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친일매국민주당이 사는 게 노무현 때문이지, 달리 이유가 있겠나. 노무현이 지금 살아 있어봐라. 인천에서 시장 해먹는 넘이 지금 시장을 해먹을 수 있겠냐. 지금도 노무현 욕이나 하면서 베트남 같은 데 놀러다니고 있겠지.
하여간, 김두관이 이장 선택은 잘 한 것 같다. 하고, 지금도 김두관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이장 김두관으로 하는 것을 보면,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고, 김두관의 정치 인생에서 주요한 결정을 하는데, 남해 신문이다. 이장질을 딱 일 년만 한 것을 보면, 좀 수상하기는 하다. 그래도 한 몇 년간해야 진심이 돋보이는데, 딱 일 년만 하다니. 하고, 신문 사장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자. 언제 또 김두관 2편을 쓸 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재까지 만일 국유본이 김두관을 차차기 대통령으로 키우기 위해 이재오에게 지시하여 김두관을 경남도지사로 만들었다면, 언제부터 김두관은 국유본에게 포섭된 것일까. 남해신문 때가 아닐까 싶다.
이 시기 CGI 클린턴 계열은 대한민국에서 참신한 정치인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예서, CGI 클린턴 특징이 무엇인가. 클린턴은 아칸소주 주지사였다. 미국에서 아칸소주란 뭐냐. 벽지다. 클린턴이 이런 시골을 엄청나게 키운 공로로 대통령까지 해먹은 것이다. 하면, 궁금할 것이다. 클린턴은 어떻게 아칸소주를 키운 셈이죠?
국유본이다. 국유본이 자본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도와주니 아칸소주가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균형개발론? 다 젖까라, 그래. 븅쉰색희들, 현실없는 이론이 밥먹여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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