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소로스 : 유로본드, 빌더버그, 스페인 국유본론 2011

2011/09/14 02:10

http://blog.naver.com/miavenus/70118565583

   

   

   

2011년 빌더버그 추가 참석자 명단

   

Anders Rasmussen – current Secretary General of NATO

Angela Merkel – German Chancellor

Jose Luis Zapatero – Spanish Prim Minister

Bill Gates – Former Microsoft CEO, Head of the Gates Foundation

Robert Gates – Serving US Secretary of Defense

   

   

인드라 VS 소로스 : 유로본드, 빌더버그, 스페인

국제유태자본과 유로 본드 도입, 유럽 재정 위기 해법은? 5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09/14

   

소로스 :

   

"이른바 유로 위기는 흔히 통화의 위기로 간주되곤 하지만 이는 국채 위기이자 나아가 은행 위기다. 이 같은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혼란이 빚어지고 있으며 이 혼란은 정치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유럽은 경제, 금융 위기에만 당면한 것이 아니고 그 결과 정치적 위기에도 직면해 있다. 많은 회원국이 서로 상이한 대응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는 회원국들의 진정한 이익보다는 그들이 위기를 보는 시각을 반영한 것이어서 심각한 정치적 갈등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http://www.fnnews.com/view?ra=Sent1801m_View&corp=fnnews&arcid=110412181104&cDateYear=2011&cDateMonth=04&cDateDay=12

   

   

   

   

인드라 :

   

정치의 위기, 국가의 위기라는 소로스 말을 음미하기 위해서 인드라는 2011년 빌더버그에 참여(?)한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Jose Luis Zapatero ) 스페인 총리를 소환한다.

   

"2004년 3월 14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여당인 국민당(PPE)을 물리치고 사회노동당이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총선의 승리로 같은 해 4월 18일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사회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책보다는 총선 3일 전에 발생한 마드리드 동시다발테러사건의 영향이 크다. 테러로 인해 마드리드에서는 190여 명이 사망하고, 1,80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 테러 사건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동조한 집권당 때문이라고 생각한 국민들이 집권당 대신 야당을 선택한 것이다."

[출처]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Zapatero, Jése Luis Rodríguez ] | 네이버 백과사전 

   

   

인드라는 당시 2004년 스페인 총선을 주목했었다. 비슷한 시기 쪽발 놈현 탄핵 총선 무렵이니까. 이 시기부터 인드라가 국유본 세상에 본격적인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 냄새가 지나치게 났다. 허나, 인드라 역시 국유본에게 많이 세뇌를 당한 터라 의심하면서도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초월적인 세력이 있어서 한나라당과 쪽발 민주당을 꼭두각시로 조종한다? 남한과 북한을 배후 조종한다? 에이, 말이 안 되잖아?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던가?

   

진보좌파 정당이라는 사회노동당. 신자유주의 정당이다. 좌파 신자유주의 정당이라고도 한다. 허나, 좌파와 신자유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면 모르되, 양립할 수 없다면 어느 한 쪽이 허상이다. 좌파가 허상?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허상?

   

총선 이후 결과를 보면 안다. 좌파와 신자유주의 둘 모두에게 물음표를 했는데, 결과는 좌파가 허상이었다. 호세 사파테로는 스페인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펼치기 위해 국유본이 파견한 국유본 간첩이었던 것이다. 해서, 별명도 조용한 사회주의자.

   

진보 좌파라고 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예가 운동권 생활 이십 여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인드라는 기억한다. 그보다는 늘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몸빵 대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론과 실제가 정말 다르다. 이때, 상부의 상부는 어디일까, 하고 상상하는데, 대부분은 소련 공산당이나 평양 정권일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허나, 소련 공산당과 평양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있다면?

   

"사회노동당은 1970년대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국민당 체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부활하였다. 1972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당의 지도자들을 대신하여 당권을 장악한 일파는 젊은 펠리프 곤살레스(Felipe Gonzalez)를 당 사무총장으로 선출하였다. 이어 1977년 다른 여러 정당과 함께 합법화되었으며 그해 치러진 총선거에서 30%를 득표하였다. 곤살레스 등 실용주의적이었던 당 지도자들은 1979년 공산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함으로써 다수의 중산층 및 중도적인 유권자들을 끌어들였고, 한편으로는 노동자 총연맹도 부활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공산주의자들과 경쟁을 벌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사회주의정당은 1982년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카리스마가 있고 인기가 높았던 곤살레스가 총리가 되었으며 1986년의 선거에서도 다시 권력을 유지하였다. 1982년 총선에서 승리할 즈음 이 사회주의정당은 중도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정당으로 변모하여 대규모 국유화 같은 정책은 포기했지만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정부의 계획 수립과 간섭을 옹호하였다. 민주주의를 강력히 지지하면서 이혼 등과 같은 사회 문제에 관계된 법령을 자유화하려고 하였다. 스페인의 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지지했으며, 처음에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반대했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차츰 그것을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출처] 스페인사회노동당 [社會勞動黨 ] | 네이버 백과사전 

   

당이 강령을 포기할 때를 보면 밑으로부터 의견 수렴이 아니라 대부분은 위로부터의 지시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해방정국에서 좌익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바꾼 것이 예다. 밑에서는 반탁이었는데, 왜 찬탁이었을까를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에서 지시했으니까. 또한 김일성과 박헌영 중 누가 정권을 잡는가 하는 문제도 조선 인민이 단 1%라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문헌에 따르면, 스탈린 면담 후 스탈린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헌데, 이것이 소련 공산당 지시가 아니라 빅터 로스차일드 지시라면? 국유본 지시라면? 천지 개벽하는 이야기인 게다.

   

1990년대 국유본은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을 집중 육성시켜 남미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수행하는 정경유착이 필수였다. 해서, 진보좌파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는데, 신자유주의 폐해가 심하니까 스페인 시민이 보수우파 정당을 지지했던 것이다. 해서, 보수우파 정당이 집권하였는데, 보수우파 정당이 들어서자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하여, 국유본이 911 테러처럼 국유본 소속 테러단체 알 카에다에게 지시해서 마드리드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총선 직전이어서 이 결과 호세 사파테로가 이끄는 사회노동당이 극적으로 승리하였다. 사건 터지기 전까지는 열세가 분명했는데 말이다.

   

한번이면 우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2008년 3월 7일. 총선 하루를 남기고 다시 사건이 터졌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서 총선을 앞두고 전직 시의원이 총격을 받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여당과 야당이 선거운동을 중단하였다. 하고, 3월 9일 스페인 총선에서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의 사회노동당이 승리, 재집권에 성공한다. 만일 바스크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사회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했을까?

   

   

http://www.bok.or.kr/

   

어라? 알고 보니 호세 사파테로가 스페인 쪽발 놈현이었네^^? 븅신 색희를 총리나 대통령으로 뽑으면 나라가 고생이다.

   

오늘날 스페인은 이태리와 더불어 위기 상황이다.

   

"중국이 우리를 믿는다고 했다. 그러자 시장도 우리를 믿었다." 호세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시장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국가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다음으로 스페인을 지목하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14일 중국 하이난섬에서 열리고 있는 브릭스 정상회의 직후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중국이 93억유로를 스페인 저축은행 대출채권(카하ㆍCajas)에 투자한다고 해도 여전히 스페인은 500억유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투자 유치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날 중국 국부펀드는 스페인 카하에 93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매일경제와 신화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아사히신문 등 4개 매체만 초청해 이뤄졌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한 이후 구체적으로 얼마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중국이 앞으로 스페인 채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는 사실을 후 주석이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이어 "중국 국부펀드(CIC)의 스페인 채권 투자는 시작이기 때문에 구체적 액수를 말할 단계는 아니며 투자 형태 역시 직접투자, 컨소시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은 수출 중심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며 한국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지난해 스페인의 대중국 수출은 35% 증가했다"며 "올해 1월에는 75%나 증가했다. 스페인은 앞으로 여기에 다이너미즘, 이노베이션을 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수출 증가에 이어 한국에도 스페인의 인프라스트럭처, 대체에너지, 이동통신 등의 산업에 대한 수출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핵발전소 수는 점진적으로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반응은 주의해야 하지만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며 "원자력은 없어서는 안될 에너지의 원천이지만 장기적으로 스페인은 다른 에너지원의 경제성이 향상된다면 원자력 비중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스 정상회담장을 찾은 스페인의 호세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특히 아시아에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후진타오 주석은 EU가 중국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다"며 "전 세계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떠오르는 아시아는 스페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브릭스 정상회담이 IMF의 구조개혁 등 G20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전 세계의 지배구조 축 중에서 `브릭스`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특히 스페인과 브릭스 국가 간 경제협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브릭스 국가 간 경제 협력 강화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지금 유럽에서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위험에 빠져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한다. 시장은 이미 스페인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가 스페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는 "중국이 스페인 국채를 계속 투자하겠다고 하자 시장은 그에 따라 스페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미국이 전 세계의 금융위기를 뒤에서 통제해 오던 슈퍼파워였다면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사파테로 총리는 과거 1년간 이어졌던 스페인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 1년간 스페인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연금 제도 개혁, 퇴직 정년 단축, 금융시장 개혁 등을 추진해 왔다"며 "싱가포르와 중국이 스페인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진타오 주석이 스페인의 이동통신, 금융, 제생에너지 산업에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사파테로 총리는 나아가 "올해부터는 스페인 기업들의 수출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에만 집중된 스페인의 수출을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특히 중국 시장을 주목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전 세계에서 사용인구가 성장하는 2개 언어가 바로 중국어와 스페인어"라며 중국 시장 전망이 밝다고 예측했다. 그는 또 "중국인의 스페인에 대한 관광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후진타오 주석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는 매년 5500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는데 그중 중국인들은 10만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은 여전히 강력한 경제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시아가 갖고 있는 역동성"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스페인 국채 투자를 강화해 최대 채권국가로 변신한다면 스페인의 정치적 입장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경제적 관계를 증진시켜 나간다는 의미"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238885

   

행색이 진보좌파 총리인데, 한국과 유럽 FTA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수출을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만 한다. ㅎㅎㅎ. 호구 색희.

   

하면, 호구 색희, 무늬만 진보좌파, 호세 사파테로는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한 이후 뭘 하고 지내는가?

   

"스페인 의회가 헌법을 수정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합의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 여당인 사회노동당과 야당인 국민당은 예산적자 상한선을 결정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앞서 독일과 프랑스가 주장한 예산적자 상한선 마련 움직임에 동참키로 한 것이다. 호세 사파테로 총리와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당수 모두 공공차입과 정부지출에 상한선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수정을 지지했다. 여당과 야당이 헌법수정에 합의를 한 것은 자국의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지난 2001년 정권을 잡고 있던 국민당은 예산적자 상한선을 의무화하는 예산안정법을 승인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사회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해당 법안은 유효했지만 상한선은 완화됐다. 사파테로 총리는 이른 시일 안에 헌법수정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이 강화되면 스페인의 국채매입이 늘어나고 자국 은행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게 된다며 "(상한 마련) 이행시기를 늦추는 것은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예산적자는 지난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1%를 기록했다. 스페인은 올해 이 비율을 6%까지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10824103011&cDateYear=2011&cDateMonth=08&cDateDay=24 

   

호세 사파테로 본색이 드디어 드러나고 있는 게다. 호세 사파테로는 한국 최초 신자유주의 대통령인 전두환처럼 행세한다.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던진 헌법 개정이란 스페인 시민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해서, 스페인 시민이 들고 일어났다. 마드리드 태양의 문에서 연일 시위중이다.

   

   

"노동계가 반대해도 스톱, 재계가 반대해도 스톱… 되는 일은 없다

스페인 최대 실수는 '늦었다'는 것, 정부는 계속 "괜찮다"고만 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앙광장인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태양의 문). 광장 한가운데 파란색 천막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여행용 텐트 예닐곱 개가 세워져 있었다. 밑에선 20~30대로 보이는 남녀 10여명이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스페인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해 5월 15일 이곳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2만명 참가)에 참가했던 대학생과 실업자들이다. 시위는 끝났지만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유럽 6위, 세계 12위인 스페인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0.8%(전년 대비)였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국가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스페인보다 낮은 나라는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5.5%), 포르투갈(-0.6%), 아일랜드(0.1%) 뿐이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1.3%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30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45%에 달한다. 2008년 호세 사파테로(Zapatero) 총리(사회노동당)가 개혁에 착수했지만,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아예 실행을 못 하거나, 실행한 경우에도 실기(失機)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스페인 국가 신용등급을 'Aa1'에서 'Aa2'로 강등했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불확실의 리더십

집값 거품 꺼지며 빚 늘고… 이민 행렬은 실업률 압박…

2011년 물러터진 스페인 1980년 "대처"가 필요해

   

확신의 리더십

조국 비판을 죄로 알던 英 "우린 심각한 위기다"

미국 기자들 앞에서 개혁 부르짖은 대처…

걱정하는 이에겐 말했다

"의심은 배반자다 얻을 수 있는 것도 두려움에 잃게 만드니까"

   

리더십의 한계 

鐵의 여인, 말년엔 외톨이…

'영국病' 고친 영국은 강력한 리더십 원치 않아

권력은 사용하는 대신 '남용'하는 순간 끝난다

   

지금 스페인에서는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게 설득할 리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으로서 처음 국회의장을 지냈고 지난달 마드리드 주지사가 된 에스페라사 아기레(Aguirre)는 취임사에서 "마거릿 대처(Thatcher) 전 영국 총리 같은 리더가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2일 마드리드에 만난 스페인 IE 경영대학원 후안 카를로스 파스토르(Pastor) 교수(글로벌 리더십센터 소장)도 스페인 위기의 해법으로 "리더십 재건(再建)"을 꼽으며 대처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대처처럼 국민에게 위기상황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핵심 정책 의제에 집중하며, 이해집단의 반발을 예상해 세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우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페인 사회의 가장 큰 도적은 은행과 은행가이다. 그들의 부정(不正)이 우리를 경제위기로 몰아 넣었다. 그들 중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지난달 21일 스페인 마드리드의'푸에르타 델솔'광장에 붙어 있던 한 팻말에 적힌 말이다. 스페인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5월 15 일부터 이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가운데 흰 팻말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라는 의미로'경제 민주주의!(Democraciaeconomica!)'라고 적혔다. 오른쪽 사진은 후안 카를로스 파스토르 교수.

파스토르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카이스트(KAIST) '이그제큐티브(Executive) MBA' 학생들을 상대로 특별 강의도 했다. 주로 기업의 중간 간부들이다. 주제는 '대처의 리더십'. 파스토로 교수 입에서 "대처"라는 이름이 나오자 한국 학생들이 잠시 웅성거렸다. "대처? 이미 20년도 전에 물러난 옛날 사람 아닌가."

   

―왜 지금 대처인가?

   

"대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총리직에 올랐다. 이후 11년(1979~1990년) 동안 재정 긴축,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영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자기 신념과 원칙을 정책을 통해 구현하는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물론 욕도 먹었다. 그러나 할 일은 하는 정치인이었다. 지금 스페인도 위기다. 남부 유럽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놓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대처가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과 현재 남부 유럽 국가들의 위기 성격은 다르지 않나?

   

"똑같지는 않다. 대처가 총리가 되기 전 영국은 1차 오일 쇼크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경상수지 적자, 재정 적자가 겹치면서 1976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36억달러를 지원받았다.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촉발됐지만 근본적으로 각국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누적된 결과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가 140%에 이른다.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과 달리 유럽에서 경제 규모 5~6위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마저 무너지게 놔둬선 안 된다. 관건은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정치 리더십이 있느냐다."

   

   

마거릿 대처 前영국 총리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리더

   

―현재 스페인 경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건설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고용의 12%를 차지했다. 1998년 이후 집값이 150% 올랐다. 그러다 거품이 꺼지면서 가계 부채가 10년 사이 3배 증가했다. 결국 기반이 약한 성장이었고 지금은 그 기반이 무너졌다."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 정부는 뭘 했나?

   

"스페인 정부는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저했다.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사파테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늦었다(late)'이다. 지난해 눈덩이처럼 쌓인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방 정부를 설득해 지출을 줄여야 했다. 17개 주(州)가 쓰는 돈이 공공부문 지출 전체의 37%나 차지한다. 그러나 올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정 감축을 꺼려하는 주정부를 설득하는 데 사파테로의 리더십은 한계가 있었다."

   

파스토르 교수는 노조와 정년 연장을 합의할 때 보여준 스페인 정부 태도도 비판했다. 지난 1월 정부와 노조는 2013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현재 65세인 정년을 67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고령화로 연금 지출 부담이 늘어나자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합의안은 이미 1년 전 도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파테로 총리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 압박을 느끼고 정년 연장안 합의를 뒤로 미뤘다. 올 초 합의안엔 38.5년을 근무한 경우 종전대로 65세에 연금 100%를 받고 퇴직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계 요구가 그대로 담겼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도입하고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명 '아기 수표(baby check)'정책이 대표적이다. 낮은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출산보조금 명목으로 2500유로를 준 것이다. 그러나 재정위기가 심각해지자 이 제도를 올해 폐지했다. '아기 수표'는 사파테로 총리가 자기 복지정책의 간판으로 내세운 공약이다. 위기를 알고도 숨긴 건지는 모르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계속 '위기가 아니다'고만 했다. 한마디로 불확실(uncertain)의 리더십이다."

   

리더의 확실성

   

―대처 리더십의 특징은?

   

"대처는 혼란의 시기에 확실성을 역설한 리더였다. 대처는 빠른 의사 결정과 강한 추진력이 무기였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다. 국민에게 위기 상황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정책 의제를 집중하며, 이해집단의 반발을 예상해 세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웠다."

   

―위기를 인식시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대처는 총리에 오르기 전인 1975년 보수당 당수로 미국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영국은 현재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것에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우둔한 일입니다. 우리 영국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더 극심한 물가 상승, 생산력 저하, 실업자 증가라는 악재에 직면해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국민의 정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결부된 것입니다.' 외국에서 조국을 비판하지 않는 영국의 전통에서 파격이었다. 영국 언론은 연일 대처의 메시지를 전했다. 위기에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1979년 총리에 오른 뒤에도 영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이 된 노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책 의제를 세우고 여기에 집중했다. 대처는 개혁을 완화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의심은 배반자다. 해보려는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도 잃게 만든다'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편지에 써서 보내기도 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세웠다는 것은?

   

"대표적인 예가 1984년 탄광 20개를 폐쇄했을 때다. 대처가 영국 석탄공사의 탄광 가운데 적자가 누적된 곳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아서 스카길(Scargill)이 이끄는 탄광노조는 파업에 돌입, 1년간 투쟁을 벌인다. 대처는 긴 싸움이 될 것을 예상하고 꼼꼼히 준비했다. 우선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는 기업가 출신 이언 맥그리거(MacGregor)를 석탄공사 총재에 임명하고, 파업이 장기화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석탄을 비축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석탄 공급이 차질을 빚었을 때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처는 화력발전소를 가동할 분량의 석탄을 비축하는 한편 여론을 상대로 수익성 없는 탄광을 세금으로 보조하는 것이 낭비라는 점을 역설했다. 1년간의 파업으로 노조와 경찰 양측에서 사상자가 나왔지만 대처의 '여론전'에 생산성이 높은 탄광 노동자들이 이탈하면서 석탄노조는 1985년 파업을 접고 직장에 복귀했다."

   

준비된 리더십

   

물론 이런 리더가 단번에 나오지는 않는다.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의 리더십을 '준비된 확신의 리더십'이라고 정리했다. "대처의 리더십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권력의 원천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 했고, 그것을 거칠고 강력하게 사용했다."

   

―대처가 가진 권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대처의 개인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 차원의 원천으로는 기억력·노력·전문성·인간적 매력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처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잡화상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훗날 지역 정치인으로 성공했는데 어린 딸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놀지도 못하게 해서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아버지를 따라 대학 공개 강의에 가서 수업을 듣고 의무적으로 질문을 해야 했다. 친구들은 재미없게 공부만 하는 대처를 '잘 난 체하는 아이(priggish)'나 '책벌레(bookish)'라며 놀렸다."

   

―그런 환경이 어떻게 그의 리더십에 영향을 주었다는 건가?

   

"대처는 항상 '다수를 따르지 말고 너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대처도 이런 환경에 거부감이 없었고 적응하려 노력했다. 나중에 확고한 신념에 따라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줬다."

   

대처는 재수 끝에 옥스퍼드 소머빌 칼리지에 입학한다. 전공은 화학인데 포부가 크고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옥스퍼드대 보수주의대학생연합회(OUCA) 회장을 맡게 된다. 보수당 인사들을 초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옥스퍼드 졸업장과 OUCA 회장. 이러한 타이틀은 대처가 인맥을 쌓고 정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대처는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48년 OUCA 회장 자격으로 영국 보수당의 연례 회의에 초대된다. 화학도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는 자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명확하게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대처는 어릴 때 아버지 권유로 웅변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이때 기른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그의 권력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이런 표현이다. 총리 시절 당 회의에서 '원한다면 돌아가라. 그 여자는 돌아가지 않겠다(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고 연설한 적이 있다. 자유주의 기조의 경제 개혁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말인데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강인한 메시지로 전달한 것이다. 총리가 되기 전 야당 의원 시절에 대변인을 맡는 기회도 그 덕분에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가진 한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처는 총리 시절 후반부로 갈수록 외톨이가 됐다. 유럽 통합문제 등을 놓고 같은 당 사람들과도 이견을 보이다 결국 물러났다. 원인은 리더십의 '맥락(context)'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은 대처 덕분에서 '영국병'에서 벗어났지만, 부가 쌓이면서 강력한 리더십이 더 이상 영국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맥락에 따라 권력을 사용(use)하지 않고 남용(abuse)하는 리더십은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1/2011070101197.html 

   

   

문제는 시위대 주도 세력 역시 현재 이스라엘과 한국에서 연일 시위하는 애색희들처럼 국유본 끄나풀이라는 것이다. 국유본의 정교한 알파 오메가 작전인 게다.

   

    

   

게다가 국유본이 머리가 좋다는 건, 그냥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게다. 여야가 같이 합의한 것이 국유본 알파 작전이라면, 시위를 일으키는 것이 국유본 오메가 작전인 것이다. 물론 시위에 참여한 다수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시위 주도자들이다. 이 색희들이야말로 정말 악질 중 악질이다. 쪽발찌라시 엠빙쉰 피디수첩 개색희들과 같다. 하면, 왜 국유본이 시위를 일으키나? 세 가지 이유이다. 하나는 지지부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안을 질질 끌어 모순이 극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기서 국유본 먹잇감들을 발견할 수 있기에. 둘, 어차피 반대 세력이 있다. 이 반대 세력마저도 장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반대하는 자들을 축출하고, 국유본에 충성할 놈들로 지도부를 꾸린다. 로스차일드나 록펠러 과거 행동 패턴을 봐도 알 수 있다. 셋, 시위대마저 장악하여 국유본이 이 시위대를 이후 정부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다만, 명심할 것은, 이런 대규모 시위를 해도, 국유본은 외신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왜? 정권이 무늬만 진보좌파 정권이어서~! 이는 지난 쪽발 놈현 정권 때 확인하지 않았나? 쪽발 놈현 정권 때 수도 없이 노동자들이, 농민들이 죽어갔다. 보도한 예가 매우 드물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때는 그냥 자살한 것도 꼬박 꼬박 보도해서 열사로 만든다~! 이번 이명박 정부 때 국유본 찌라시 언론 특징이 군대 열사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서, 이제는 눈치를 채어야 한다.

   

진보보수, 우파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유본과 분파 끄나풀이다.

   

이제 낡은 냉전 이념을 벗어던져야 한다.

   

한나라당과 베트남 공산당이 상호협력 MOU를 체결하고, 한나라당과 남미 진보좌파 정당이 자원 외교하는 세상이다.

   

반미(?)주의자, 카다피는 김정일과 차베스와 친했지만, 그 이상으로 이태리 보수우파 총리 베를루스코니와 친했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정당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웠겠는가. 

- 카다피와 베를루스코니는 민주주의로 개종하라!

   

"이탈리아 석유기업 에니(ENI)는 리비아에서 최대 석유생산업체가 됐고, 원유소비의 23%를 리비아에서 안정적으로 들여왔다. 또 리비아 국부펀드와 카다피 일가는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지분(7.2%)을 보유하는 등 이탈리아에 유입된 자금도 상당하다. 외교적 우호관계를 너머 개인적 친분도 보통 이상이다. 지난해 양국의 정상회담 때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카다피의 손에 입을 맞췄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섹스파티도 카다피로부터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108/h2011082620441222450.htm

   

   

카다피가 한 행적이 이것 뿐인가. 독일 메르켈 정권과 프랑스 사르코지 정권 등 보수우파 정권과 인맥 자금 구축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그저 외교 정책 일환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골드만삭스가 리비아 펀드를 담당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서, 인드라는 분명하게 말한다. 카다피는 새발의 피다. 평양 정권이 붕괴하면 여러분 앞에 경천동지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아마 골수 주사파 색희들이 세상을 비관해서 연달아 자살할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명색이 공산당인데, 보수우파 베를루스코니 이태리 국채 매입을 적극 검토중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더 나아가 중요한 건, 빌더버그인 게다.

   

지금까지 빌더버그나 삼각위원회에서는 진보 좌파 인사들을 가급적 배제시켰다. 이유는? 김정일에게 국유본 노벨평화상을 주면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 대신에 반기문처럼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같은 다른 조직을 통해서 이들을 통제하는 수법을 쓴 것이다. 이것이 서로 윈윈하는 구조인 셈이다. 가령 김정일이 삼각위원회에 참석하면 모양새가 얼마나 웃기겠는가^!^ 허나, 토니 블레어나 호세 사파테로처럼 명색이 진보좌파인 정치인이 빌더버그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유본이 이들 집권을 강력하게 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쪽발민주당 정치인 넘들이 그 애비가 어떤 십색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이 쪽발민주당 개잡넘 색희들 정체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을 괴롭히던 탐관오리, 일본 강점 시기에는 친일파,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 투사로 위장하여 나라를 말아먹는 이 색희들을 혼쭐을 내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과 경제 발전이 요원한 것이다. 이 개색희들은 일본 강점 때를 그리워하는 색희들이어서 대한민국에 적대적이다.

   

어이, 머리털 빠진 골룸? 니 애비도 쪽발이냐? 아니라면, 국유본 빽 믿고 왜 이리 설쳐대냐? 대한민국이 그리 만만해?

   

"

조기숙, 알고 보니 조선시대 탐관오리 ´자손´?

월간조선 "조 전 수석, 조병갑 직계 증손녀로 밝혀져"

백성들에 수세징수, 온갖 폭정자행, 동학농민운동 도화선

김승섭 (2006.10.18 13:54:35)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조선 말기 백성들에게 금품을 강제징수하고 온갖 폭정을 자행했던 전북 고부군수 조병갑의 직계 증손녀로 밝혀졌다고 월간조선 11월호가 보도했다.

   

조 홍보수석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월간조선은 조 전 수석의 부친 조중완씨의 호적등본을 입수해 "조중완씨의 아버지는 조병갑의 둘째 아들인 조강희씨"라고 보도했다. 호적등본의 조강희씨 항목 옆에는 '부(父) 조병갑, 모(母) 이병양'이라고 써 있었다.

   

월간조선은 그러나 조병갑이 속해 있는 양주 조씨 족보에는 조병갑의 두 아들과 딸 한 명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아랫대 후손들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또 창원전문대 송종복 교수인터뷰에서 "제가 조기숙 교수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조 교수에게 '당신 증조할아버지(조병갑)가 역사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분만은 아니다'고 말했더니 '아이고 그래요. 저희 증조부가 그랬군요'라며 정말 좋아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조병갑에 대해 1893년(고종 30) 고부군수로서 만석보를 증축할 때 군민에게 임금도 주지 않고, 수세(물세)를 징수 착복했으며, 무고한 사람에게 죄목을 씌워 재산을 착취하는 한편, 태인군수를 지낸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고 금품을 강제 징수하는 등 온갖 폭정을 자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에 격노한 군민들은 군수의 폭정에 항의했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학정을 가중함으로써 이듬해 동학농민운동을 유발한 직접 원인이 되었다고 전했다.

   

백과사전은 조병갑이 이후 전봉준의 습격을 받았으나 도피, 뒤에 파면되어 유배되었다고 소개했다.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46967

   

   

하여,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헛 것일 뿐인 이념나부랭이 짓거리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이제는 실체를 파악하여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길을 걸어가자

길을 걸어가자

길없는 길을 걸어서

세상을 개벽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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