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천명도설 : 영혼은 노숙자도 춤추게 한다 국유본론 2011

2011/09/15 04:05

http://blog.naver.com/miavenus/70118666392

   

   

   

인드라 천명도설 : 영혼은 노숙자도 춤추게 한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09/15

   

김종화 :

   

지금은 오히려 지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노통의 행적을 보면서, 부정, 회의, 분노, 배신감, 그래도 그를 끝까지 믿고 싶었던 나 자신에 대한 합리화, 그리고는 그에 대한 경멸, 마지막으로 인간적 안쓰러움... 그러면서 이건 뭔가 구조적 차원이구나. 하면서 국유본론을 만났지요. 김대중 때야 알고 당하는 사기였고, 노통 때는 수준이 더 높아져서 인간적 배신감까지 들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그러면서 제 그릇이 커지고,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워져야겠다. 정치를 읽는 눈으로 경제를 읽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 연민은 역설적으로 더 커졌답니다. 정파에서 자유로워지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군요. 우리 세대에게 유럽은 구름 위의 세상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저렇게 돼 보나. 일본을 보면서 저렇게 죄를 많이 지은 애들이 왜 이렇게 잘 사나. 천도는 없는 것인가. 백만 단위의 아사가 벌어지는 북한과 같은 시공간을 누리는 것이 맞나? 진보좌파들이 북한 문제에서는 현상타파 자체를 싫어하는, "굶어죽던 뒈지던 우리를 귀찮게만 하지 말아다오, 조용히 하는 댓가로 개평은 주마"라고 하는 오만한 자세...  세상은 모순이고,  그 모순의 정점에 한반도가 있습니다. 모순의 극대화는 현상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지요. 그 시기 시기들을 현명하게 넘기는 데 인드라님도 일조하시길 빕니다.

   

인드라 :

   

고맙습니다. 이전에 변증법을 공부할 때는 모순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 은연중 긍정적이라 생각했다. 허나, 다른 한 편에서는 그만큼 화해의 힘도 커진다는 것을 알아갔다.

   

- 체념 끝에 피어나는 희망, 그 희망을 죽이고서야 우리는 살 것이다

   

모순을 극단화한다 해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역사와 지리, 철학을 좋아했던 인드라는 고교 일학년 때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획득한 결론은.

   

첫째, 한국 미래는 비관적이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래야 할 수 없는 시궁창에 빠져 있다. 이 시궁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궁창을 폭파시키는 것이다.

   

둘째, 인류 종말이었다. 현존하는 인류는 자정 능력을 잃었다. 썩었다. 현생 인류가 후세를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인류 멸종을 감행하는 것이다. 해서, 새로운 지구를 탄생시켜야 한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해야 한다. 인류 중 단 백 명이 남을 지라도.

   

셋째, 인드라 개인으로도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던 상태였다. 자살을 하려다가 미수에 그쳤으니까.

   

이것이 인드라가 대학 때 제출했던 세 가지 자아로서의 인드라였다. 민족적 자아, 민중적 자아, 마지막으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자아.

   

그것이 체념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

모순을 극대화시킨 결과였다.

   

가령 내가 아무 이성과 첫 섹스를 해서 쿨하게 살기.

   

세 가지 문제들은 청년 시기에 꼬이고 꼬였다. 뜨거운 가슴이 진리였던 시절이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불가능을 택했고,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서 악한 것을 택했고, 무엇보다 '나'와 '거울의 나' 사이에서 '거울의 나'를 택했다.

   

젊은 날에는 가슴이 움직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움직인다는 것을 절감한다. 차가운 머리가 진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가능을 택했고,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서 선한 것을 택했고, 무엇보다 '나'와 '거울의 나' 사이에서 '나'를 택했다.

   

문피아 천년대공 중에서

http://www.munpia.com/

   

판타지 공간이란 전적으로 상상에 근거한다. 허구다. 헌데, 무에서 유가 나오듯이 졀실히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 상기한 대목에는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지만, 듣기에 그럴 듯하다. 헌데, 이성과 과학이란 그럴 듯한 명제를 비판하면서 수용해왔다. 쉽게 말해, 버리고, 또 버리면서 그래도 남은 것을 취하는 것이다.

   

해서, 인드라만의 썰을 푸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드라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인드라가 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전 세계에서 처음 말하는 것인 편이다. 다른 누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약 백 년이 지난 후에 인드라 이야기는 모두 고전이 될 것이다. 인드라 원문을 번역해서 먹고 사는 족속이 분명 생길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 하자.

   

어려서는 키가 커야 하니까 다리가 아프다. 성장통이라고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중이병을 소설로 푸는 민. 이제 덩치나 키가 인드라랑 비슷하다. 팬티를 공유중이다^^! 

   

성인 나이 기준을 만 15세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인드라 철학이다. 만 15세가 넘으면 자랄 만큼 다 자란다. 조금 더 자라기는 하지만, 미미하다. 이제 짝을 만나야 하니까 가슴이 아프다. 사랑병이다. 가슴이 아픈 만큼 허전하다. 허전한 빈 가슴을 채워주어야 한다. 가슴끼리 비비던지 해서 자꾸 스킨쉽을 해주어야 사랑병을 해소할 수 있다.

   

헌데, 왜 이리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남녀가 다르다. 키가 커도 여자가 먼저 크다가 나중에 남자가 크는 것과 이치가 같다. 만 15세에서 만 30세까지는 남자 가슴은 배꼽 아래에서 가슴으로 올라오지 못한다. 해서, 이 시기 남자는 배꼽 아래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짐승인 게다^^! 반면, 만 15세에서 만 30세까지 여자는 정신적으로 크게 성숙한다. 해서, 먼저 가슴에 도달한다. 플라토닉 러브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허나, 만 30세부터 45세에 이르르면, 남자 역시 배꼽에서 가슴으로 이동한다. 섹스와 사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 역시 사랑과 섹스를 동시에 한다. 만 15세에서 만 30세까지는 사랑이 토끼처럼 먼저 뛰어가니 섹스 거북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섹스 거북이를 우습게 여길 수밖에 없다. 허나, 만 30세부터 45세에 도달하면, 사랑 토끼가 그대로 있고, 섹스 거북이가 따라잡는 셈이다.

   

만 45세부터 만 60세에는 기가 머리로 이동한다. 역시 여자가 빠르다. 여자 기가 머리로 이동하니 생각할 것이 많아진다. 바깥 나들이에 분주하다. 이 나이를 보면, 온통 여자다. 등산을 가서도 여자, 놀러가도 여자, 마실을 가도 여자, 학부모 행사도 여자, 일을 해도 여자다. 조증 걸린 사람처럼 맨날 혁명하겠다는 자세로 기획하고, 잠도 없다.

   

반면 이 시기 남자들은 기가 머리로 이동하지 못해 불안하다. 나이 50을 넘어선 대다수 남자들은 남성 호르몬이 쫙 빠져서 매일 집에만 있고 싶다. 머리를 키우지 못하고 가슴에서 기가 정체하니 정서 과잉으로 흐른다. 남자들이 사랑 타령 지겹게 하는 나이가 딱 이 나이다. 왜 사랑 타령을 하나? 남자 나이 50이면 볼장 다 본 나이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한 개도 없다. 황혼 이혼이란 게 있는데, 대부분 여성 쪽이 이혼하자고 한다. 여성이 경쟁력이 있다. 또 이 나이 남자들이 늘상 하는 이야기가 왕년 타령이다. 알고 보면, 90% 이상 거짓이다. 왕년은 없었다. 그런 왕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허나, 만 60세를 넘어서 75세로 가면, 상황이 바뀐다. 남자들도 기가 머리로 향한다. 남자들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남자는 정서 과잉에서 이성과 감성을 균형적으로 조절하는 시기로 접어든다. 헌데, 이 시기 남자 머리는 나날이 진보하는데, 여자 머리는 정체 그대로이다. 생각에 집중했던 여자는 이 시기 감성이라는 바다에 푹 빠진다. 아무리 똑똑한 여자라도 이 시기가 되면, 공연하게 지인들 트집을 잡는 것으로 하루 종일 보내기 일쑤이다.

   

만 75세에서 90세로 가는 상황은 기가 머리에서 천상, 즉 영혼으로 향하는 시기이다. 물론 여자가 빠르다. 여기부터는 임상 경험이 부족하다. 추론이다. 여자는 영혼에 집착하고, 남자는 육신에 집착할 것이다. 허나, 만 90세부터는 여남 평등이 이루어진다. 모두가 영혼을 생각할 것이다.

   

진정 세상 이치를 엿볼 수 있는 나이는 90 이후다.

   

가늘고 오래 살자.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하면, 인드라는 반드시 아흔 살까지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만, 도전하겠다. 왜? 인드라는 어린 넘이니까. 어린 생각으로 사니까.

   

인드라 현재 나이 만 45세를 넘겼다. 

   

다행스러운 일은 보통 남자와 달리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 다른 말로 같은 나이 여자처럼 기가 이미 머리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인드라는 환갑이 넘은 것도 아닌데, 기가 머리에서 이미 영혼으로 이동하는 중이란 것이다. 인드라가 국유본론 때문인지, 신을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여간, 인드라는 다른 보통 남자들보다 이상하지만 최소 15년이 빠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부르주아적 개념은 늘 개인으로 귀결된다. 가령 사회가 단 한 명에 불과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라는 명제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민중적 개념은 늘 집단으로 귀결된다. 그 어떤 훌륭한 기획이라도 사회 분업화를 가져온다면, 즉 특정 집단을 소외시하는 사회 차별을 명시한다면 올바른 기획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은 마치 빛의 이중성으로 설명되는 입자와 파동과 같다.

 

맑스-헤겔의 관계 : 수정주의적 해석

http://blog.naver.com/mdpsjk/20023242948

 

이때, 발견한 것이 맑스-헤겔의 수정주의적 해석이었다. 맑스에 따르면, 헤겔 사상은 부르주아의 정신적 화폐이다. 맑스주의자에 따르면, 맑스 사상은 노동자의 정신적 화폐이다. 그런데 수정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둘은 상호보완적이며, 수평적 관계이다. 만일 맑스-헤겔 사상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지시하는 것이거나 현실과 일치하는 맥락이 있어야 한다. 하여, 인드라는 당대 주류 부르주아적 이론과 주류 노동자계급 이론과의 상관 관계에 대하여 분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놀랄만한 결과를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8525860

   

사실 인드라는 만 30세 이전까지 이런 생각을 할래야 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넘들을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족속으로 여겼던 것이다. 허나, 만 30세를 넘어서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증법조차도 젊은 날에는 부정 변증법에 치중했는데, 나이를 먹으면 긍정 변증법에 치중한다고 할까. 해서, 역설적으로 젊은 날에는 긍정하고, 나이 먹으면 부정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다만, 결론을 유보하겠다. 인드라가 아흔 살까지 살아봐야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천착해서 인류에게 놀랄만한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화 :

   

국유본이 한국을 특별히 미워하기라도 하나요?

   

인드라 :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과 다른 정신 세계가 있습니다. 한국 만큼 종교, 철학이 기승을 부리는 나라가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나라와 민족은 이스라엘이 유일합니다. 이런 점을 잘 생각하셔야 한다.

   

   

김종화 :

   

현재 학계도 임용 문제 등 모순이 극에 달하면서, 실적을 위해서든, 자기 역량의 확인을 위해서든 젊은 학자들이 실현해내고 있는 연구들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왠만한 고전들은 잘 번역된 우리말로 읽을 것들 천지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어떤 방향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무언가 폭발할 분위기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매우 전략적이고, 매우 창조적인 에너지 집중이 필요할 때입니다. 유대인들처럼, 결국은 우리도 세계 전체로 나가서 교육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간단하고 만만하지 않습니다.

   

인드라 :

   

이는 근대 한국이 제 2 부흥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제 문제는 부흥이 아니다. 암흑기였던 쪽발돼중놈현 시기를 넘어서 이명박이 영정조처럼 부활했다 해서 근대 대한민국 미래가 밝은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혁명을 고려할 때인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가고자 한다면, 영정조 부활이 아닌 조선 혁명, 체제 혁명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정조 부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신하들의 나라가 긍정적으로 활약했던 시기란 15세기 퇴계 율곡 시대였다. 정당하게 왕권을 견제하던 시기였다. 허나, 16세기 이후 신하들의 나라란 왕권 견제라는 장치라는 본분을 잃고 신하 자신들 기득권을 탐하던 시기였다. 혁명해야 했다. 이순신이 권력을 잡아 조선 태종처럼 신하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신 조선 혁명 군주로 우뚝 서야 했다. 허나, 무능한 이순신이 죽으니까 조선도 죽었다. 

   

해서, 영정조 부활이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밖에 될 수 없었다.

   

혁명이란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제 삼십 년간 박정희를 씹어대었으니 이제 다시 박정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단, 옛날 박정희를 추억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퇴보밖에 없다.

   

신 박정희. 그 길이 길 없는 길이다.

   

앞으로 삼십년간 대한민국은, 통일 한국은 박정희 카리스마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카리스마가 나와야 삼십년이 흐른 후,

그 자산을 가지고서 향후 삼십 년간 어중이떠중이들이 나눠먹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2040년 이후를 내다볼 인재가 필요하다.

   

그넘이 철수 같은 찌질이나 머리털 빠진 골룸 색희처럼 븅쉰 색희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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