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김종화 1 : 심심할 때 읽으면 남는 게 있다;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결산 인드라 VS ?
2013/01/20 03:42
http://blog.naver.com/miavenus/70156707596
인드라 VS 김종화 1 : 심심할 때 읽으면 남는 게 있다;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결산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1/20
"심심해서 까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I love you so much...
심심한데 뭐 재미난 것 없을까?
왜 없어!
소설 박근혜 대통령 까페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과는 다릅니다. 박근혜를 사랑하든, 말든,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http://cafe.naver.com/indra2005.cafe
ㅋㅋㅋ~~~~~~
김종화 : 인드라, 실망이다, 나이 마흔에 뭐하는 짓이냐.
인드라 :원래 내가 이런 놈이다.
김종화 : 하여간 너란 녀석은...
인드라 : 메롱~"
심심해서 박근혜 대통령 까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광풍무록(狂風舞錄)
2005/03/19 07:22
http://blog.naver.com/miavenus/60011052532
"김종화 : 인드라 선생님. 다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인드라 : 자중자애하며 지냈습니다.
김종화 : 선생께서는 혹 알고 계신지 모르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선생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경로로 연락을 하였건만 오늘에서야 나타나셨는지요.
인드라 :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간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깁니다만, 저는 가끔 신을 만나고는 합니다. 저는 그 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저는 유물론자로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만, 누군가가 자꾸 제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어떤 정보기관의 짓인가 생각할 때도 있었고, 또 제가 미쳤는가 생각이 들었었고(이와 관련된 영화도 있지요?) 그랬지요. 그런데 참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만 한 것은 그 누구도 탐지할 수 없는 것이잖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혹은 차를 운전하고 가다 문득 광고판을 보면, 혹은 누군가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어떤 상징들을 제시한다는 것이죠. 이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언어란 답답하군요. 하여간 이런 일들이 오래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요. 저는 그래서 이에 저항했습니다. 무시하였지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면화시켰습니다. 해서, 저는 친구들로부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지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누군가 자꾸 나보고 말을 하라고 합니다. 저는 저항했는데 참을 수 없을 만큼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자중자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누군가가 자꾸 저를 이리로 내몹니다. 저는 도망가고 싶지요. 저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누군가가...
김종화 : 누군가라구요? 혼란스럽군요. 시국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엉뚱하게도 선생의 존재론적 고행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인드라 : 뭐라고? 나더러 소설을 쓰라는 거야? 아니면 시국에 대한 산문을 쓰라는 거야. 도대체 뭘 요구하는 거야. 뭘 해야 이 고통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야. 씨발.
김종화 : 괜찮으세요?
인드라 : 으씨......씨.......끝났습니다. 괜찮아요. 이제 되었습니다.
김종화 : 네? 뭐가 되었다는 건가요?
인드라 : 인터뷰 계속해도 됩니다. 포스가 그렇게 가라고 하네요.
김종화 : 포스요? 설마 제다이의 포스를 말하는 건 아니겠죠?
인드라 : 맞아요. 제다이의 포스 맞습니다.
김종화 : 음. 고민이군요. 인터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인드라 : 해야 하는 겁니다. 일단 내가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는 거죠.
김종화 : 그런 말이 어디 있나요? 권위적으로 보입니다만...
인드라 : 저는 님의 자유주의적인 발언을 귀담아 듣긴 하지만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김종화 : 아무튼 좋습니다. 일단 해보지요. 현 시국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인드라 : 현 시국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당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해보세요.
김종화 : 노무현이 개헌 화두를 꺼냈습니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검증하자고 하네요. 최장집이 민노당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입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투쟁을 한다고 나섰습니다. 그간 인드라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연관일까요?
인드라 : 영화 신시티던가요? 대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상식과 배치되는 행동을 할 때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비꼬는 투로 말했지요. 자, 냉정하게 봅시다. 상식을 강조하는 권력이 과연 상식적이던가요? 미국 부시정권이 상식적입니까? 김정일은? 노무현은? 차베스는? 당신이 상식을 따라야 한다면 권력이 없다는 것이죠. 만일 누군가가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놈은 바보 천치이거나 아니면?
김종화 : 아니면?
인드라 : 비범한 자일 것이다. 자! 영화 홍보 멘트를 기억합시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김종화 : 그렇군요. 그것이 말씀하시는 것과 어떤 상관이...
인드라 :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비난합니다. 조중동만 비난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국민 열중 여덟, 아홉은 비난합니다. 그래도 공무원 노조가 파업할 때 보다는 조금 덜 비난하겠지만... 이런 판국에 누군가가 나서서 나만이라도 현대자동차 노조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종화 :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인드라 : 북한 인민이 궁핍한 시기에 인육을 먹었다고 하고, 북한은 미제의 압박에 맞서 핵개발을 감행하여 중국조차도 비판을 할 정도였고, 민노당 관계자들이 방북했을 때, 주사파계열이라 평가받는 문성현 현 당대표가 유감이라는 말을 해서 북측 인사들을 불편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핵개발을 옹호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종화 : 하시려고 하는 말씀이?
인드라 : 노무현이 개헌을 꺼냈습니다. 모두가 반대해도 노무현만은 원칙을 지킨다면서 개헌을 꺼냈습니다. 다수가 상황을 들어 시기상 불가라고 말합니다. 한나라당에서는 개헌을 찬성해도 시기는 좋지 않다는 식으로 하면 말려들 수 있으니 박근혜식으로 참 나쁜 대통령 이런 식으로 무시하라고 홍보 전략을 짭니다. 노무현은 이에 대해 모두가 김영삼 따라갈 때 노무현은 다른 길을 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될 때 이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럴 때 노무현을 옹호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종화 : 도대체 하시는 말씀이?
인드라 : 노무현정권 이후 대한민국 최대 빽으로 등장한 고려대에서 교수질을 하는 최장집도 적절한 타이밍에 나섭니다. 민노당 당원과 지지자 상당수가 개헌에 긍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최장집 말 한마디에 녹아 호헌을 외쳤습니다. 겉으로 내놓은 이유야 당의 생존 대책이 보장되지 않은 개헌논의는 무용하다는 이빨에 뻑이 갔다는 것인데... 이게 평상시 뻑이 가지 않았으면 뻑이 가겠습니까? 최장집이 왜 이런 지랄을 할까요?
김종화 : 질문을 하면 또 다른 말만 하시네요.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인드라 : 평범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박근혜에게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기다리지, 왜 이번에 이명박 검증하겠다고 나섰는가 한다는 것입니다. 역풍이 우려되지 않느냐 이런 말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압도적으로 이명박이 우세인데 초조함의 발로가 아니냐 이런 견해가 있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래서 박근혜가 검증을 운운한 것일까요? 아니면 정반대인가요?
김종화 : 아, 뭔가 실마리가...
인드라 : 그렇습니다. 원칙이죠. 원칙적이라는 건 사실 따지고 보면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인 것이지요. 원칙과 상식이 일치가 되면 굳이 원칙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칙을 운운한다면 뭔가 보통 사람들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겠지요. 전향한 386이 농담을 하더군요. 원희룡과 같은 자들이 부채의식 때문에 그렇듯 행동한다구요. 그런 심리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과거에 주사파적 의식과 조직에 몸담았던 것이라 봅니다. 비과학적인 태도가 남아 있으니 전향을 해도 여전히 한심한 거죠. 원칙적으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겁니다.
저는 말합니다. 현대자동차노조, 최장집, 노무현, 박근혜 등은 잘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신들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비상식적입니다. 그들은 게임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려고 최대한 노력중인 것입니다.
일단 제 글을 잘 보는 이들이 좌파이니 말하지요.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해 탐탁치 않은 것은 그대들이나 나나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대목에서 현대자동차 노조를 옹호할 수 있다면, 그런 기막힌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면, 그런 이유로 우리가 좌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좌파 놈이 그런 걸 개발하면 열을 받지요. 하늘 아래 권력은 나누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 순식간에 그 말하지 않은 좌파들은 단순히 침묵했다는 것만으로도 사이비가 되니까! 해서, 우리는 더욱 열심히 보다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을 옹호하는 글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이런 노력을 하는 것입니까? 좌파니까요. 이런 노력을 통해서 역사가 바뀌니까요.)
주사파들도 똑같고, 노무현 아해들도 같고, 고려대 최장집도 그렇고, 박근혜도 그런 겁니다. 해서 저는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들을 비판하기 전에 주사파들의 원칙이 무엇인지, 노무현, 최장집, 박근혜의 원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인드라 선생님. 님이 강조하려는 건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라, 이런 것인가요?
인드라 : 의도란 결과입니다. 보통은 원인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의도란 사회적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상상만으로 있는 것은 의도가 아닙니다. 어떤 이가 어떤 것을 생각했건, 그 생각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수용하였는가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박헌영의 의도가 좌파행위이였는지, 미제 스파이짓이었는지하는 그것 말입니다.
김종화 : 결과라면 대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인드라 : 과거 정권을 쥔 이들은 선대의 역사를 부정하기 위해서 그 전의 역사를 부활시키고는 했습니다. 가령 최근의 포드 미국대통령이 말한 대통령 평가도 그런 맥락이라고 보아야겠지요. 포드 입장에서는 레이건을 폄하할 이유가 충분했겠지요. 다만 포드가 무슨 썰을 풀든, 다음 정권은 민주당에서 잡을 것으로 보이며, 8년 뒤에는 공화당 후보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습니다. 대선이겠지요. 이 모든 건 대선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세력이나 일단 대표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명분을 틀어쥐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들 나서는 겁니다. 꼴값을 떠는 것이죠.
김종화 : 국민은 꼴값을 떠는 걸 좋아하지만은 않습니다.
인드라 :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장은 국민이 싫어하는 듯하지만, 국민은 양과 같거든요. 탄핵 때 봐요. 또 지금도 그렇구요. 다들 자신은 개성적이라고 믿습니다. 또 민주적이라 여겨요. 착한 놈이라고 여겨요. 하지만 다 구역질나는 것이죠. 당신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일을 왜 다른 이에게 인식되도록 노력합니까? 단지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왕따를 당하기 싫어서, 출세하려고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출세요? 과장, 부장까지는 그렇게 출세 가능해요. 하지만 서울시장 되는 것하고 대통령되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듯 다른 겁니다.
김종화 : 선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당히 엘리뜨주의적인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간혹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인드라 : 인정합니다. 아니, 오히려 반문하고 싶습니다. 엘리뜨주의라고 말하는 이들은 왜들 그렇게 엘리뜨주의적입니까? 노무현이 그렇게 엘리뜨주의에 반대해놓고 왜 자기가 나온 고등학교 안 그래도 명문이었는데 잘 나가는 명문 만들려고 노심초사합니까? 엘리뜨주의 비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초점이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마치 부동산 대책처럼 말이지요. 대책이요? 간단하지요. 토지를 국유화하면 되는 겁니다. 아니라면 토지에 대해서만은 세금을 과중하게 무는 거죠. 그리고 건물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세금도 걷지 못하고, 압박을 받으니 못하지요. 확인할 수 없겠지만, 각종 개발로 이권이 많이 발생하고, 이런 걸로 정치자금도 챙기고, 지지세를 확보해야 하니 어려운 일이죠. 해서, 만만한 중산층만 조지는 거죠. 그래놓고 어차피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중산층이 하층으로 전락하는 일이 많다.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발뺌 가능하구요. 그러니 노무현만 문제 삼으면 안 되지요. 그래도 그중에서 노무현이 제일 노력한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헛짓이라는 거죠. 홍준표든, 누구든 다 거짓말쟁이라는 겁니다. 그처럼 엘리뜨주의 문제도 간단한 겁니다. 교육도 국유화시키면 되요. 아니라면 사교육만이라도 과중하게 세금을 매기면 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겁니다. 이권이 많이 있어요. 교육 마피아라고 들어봤지요? 최근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은밀하게 사교육시장에 나섰더군요. 어제 오늘일이 아니죠. 제가 아는 어떤 고교 교사도 저녁에는 과외를 한다더군요. 돈 많이 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교조와 관련이 없다고 여기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역발상을 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더더욱 사교육 시장에 애착이 있다고 여겨야 문제가 풀리는 겁니다.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갈등 속에서 이익을 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거지요. 애네들 맨날 주장하는 게 뭡니까? 공교육 정상화죠? 내가 말해볼까요? 지금 누가 가장 공교육 정상화를 반대할까요? 저는 전교조와 그와 비슷한 무리인 교총, 교육부, 그리고 교육부 마피아라고 봅니다. 필자의 주장은 간단해요. 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정책 개발의 핵심이다! 그들을 굶겨 죽여라. 그래야만 해법이 보인다.
김종화 : 선생. 선생의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선생은 그간 숱한 문제에 대해 숱한 해법들을 제시해왔습니다. 물론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곤란해하셨지만, 상당한 문제에서는 십년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선생을 만난 건 당장의 문제에 연연해서는 아닙니다.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까요?
인드라 :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노무현은 노무현 측근의 의견과 달리 더더욱 자신의 길을 갈 듯합니다. 국민에 대해 포기를 했다고 하네요. 진작 포기했어야 하는데 잘 되었다고 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정권 말기에는 대통령 비판을 삼가잖습니까? 다른 이들이 침묵할 때에는 김영삼, 김대중 다 퇴진하라고 했지만, 말년에야 오히려 옹호하기도 했잖습니까. 저는 노무현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원칙상 다른 무식한 애들과 같이 행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물 다 빼먹고 내차는 짓거리야 상식적인 길 따위나 가는 애들의 노예적 행보이지, 제 행보는 아니겠지요. 조금 이해하는 치들은 노무현이 이제 역사적인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서 안달이니 이해해주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요. 제가 손학규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와는 달리 조금은 달리 말하고 싶네요. 김정일과 전태일과 전두환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노무현을 이해해보세요. 노무현이 신으로 보일 정도까지 이해한 다음에 그를 조용히 놔두세요. 그러면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두려움이지요. 두려움이 당신을 어둠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노무현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지 마세요. 그 어떤 정권이든 준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노무현이 전두환 만큼 치밀한 사람인가요? 전두환만큼 후계자에 대해 치밀한 대비책을 마련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런 전두환도 당했습니다. 그러니 노무현에 대한 두려움은 잊으세요. 그는 가는 날까지 훌륭한 대통령 일을 하고 감방을 가면 됩니다. 불행히도 제가 봐도 노무현은 퇴임 후 감방을 갈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어 호사도 많이 누렸으니 감옥도 가야겠지요.
그리고 민노당이니 좌파 이야기는 이 대목에 하지 않으렵니다. 왜냐구요? 천기누설이잖아요. 제 진로와도 연관이 있으니까. 아는 사람들한테는 나중에 오프에서 살짝 말할 수는 있겠지요. 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군요. 최장집이라는 양아치 생명력이란 게어차피 정치권력 탓에 발생한 것이니까 이 정권 끝나면 자동 소멸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장집이 뭔 논문 하나 제대로 쓴 게 있나요? 한국 정치학자들 중에 읽을만한 책을 쓴 사람이 있나요? 다 개소리죠, 뭐. 정권 잡으니까 잠시 뜬 것에 불과하니 잊으면 됩니다. 그냥 이렇게 보면 되요. 그래도 그중에는 강준만이 제일 난 놈이었다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최장집은 정말 양아치입니다. 잊으세요. 고려대 빽도 멀지 않았어요. 이 정권 끝나면 자동 소멸되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갑니다.
김종화 : 선생. 선생의 좌충우돌 혼돈스런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은...
인드라 : 전 말하고 싶지 않거든요. 지금도 같은 심정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말하라고 하는 것인지... 하여간 제 바램 중 하나는 말이지요. 박정희와 김일성, 김대중, 전두환 이 모두를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는 좌파적 대한민국 역사를 기술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게 없거든요.
아, 그리고 제가 희미하게 요즘 느끼는 게 이 누군가가 유대적 신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교가 구약만 인정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교회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하여간 이 유대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난 유대인도 아닌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유대신은 이슬람신과 달리 보다 편협한 민족신에 불과한데... 하여간 잘 모르겠어요. "
대담 : 김종화 대 인드라 광풍무록(狂風舞錄)
2007/01/16 06:11
http://blog.naver.com/miavenus/70013131642
"김종화 :
인드라 선생. 이내 다시 뵈려했는데 일이 있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참 어렵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루하루를 보낼 때마다 저의 어리석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당해야 할 것이고, 겸허해야 할 것이고, 인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인드라 :
힘내세요. 죽는 그날까지 배워도 부족함이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지요. 이런 삶에 과학이란 무엇일까를 늘 생각한답니다.
김종화 :
고맙습니다. 인드라 선생답습니다. 과학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가는군요. 고견 듣겠습니다.
인드라 :
과학이란 오만한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겸허한 자들을 위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종화 :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요?
인드라 :
과학은 그 기원으로 따지면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과학을 구성한 것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부터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근대 이전 과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생존 무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근대 이후 서양에서 만든 과학이란 꼭 필요한 생존 무기인 것입니다.
김종화 :
네? 그럼 근대 이전 인간이 꼭 필요했던 생존 무기는 무엇입니까.
인드라 :
종교였습니다. 인간은 죽음 직전까지 가면 모두들 하나같이 예수, 알라, 부처, 신 등을 부르짖으며 죽어갔습니다. 무신론자라도 엄마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엄마신이죠.
김종화 :
무슨 말씀인지 알 듯 말 듯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대비시킨다?
인드라 :
아니요. 과학과 종교를 대비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대비시키기보다 과학과 종교 구분 너머를 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김종화 :
너머요? 무슨 말씀인지?
인드라 :
서양에서 근대 과학 발달사를 보면, 늘 당대 일등 종교와 충돌했습니다. 과학이란 당대 종교를 비웃고, 몰락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과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처럼 과학이 이토록 대우받을 수 있었을까요?
김종화 :
아, 그런 맥락이라면. 설마 오늘날 과학을?
인드라 :
그렇습니다. 1970년대 이후 과학이란 그 이전 시기 과학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과학은 종교와의 투쟁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미국이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는 과학이었습니다. 반면, 1973년 국유본 권력 교체 이후에는 과학이란 마치 미국과도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미 = 반과학입니다. 1973년 이전까지 과학자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지자였습니다. 허나, 1973년 이후에 과학자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김종화 :
1973년을 강조하는군요. 1973년은 국유본론 이론대로라면 국유본 권력이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바뀐 시기입니다.
인드라 :
그렇습니다. 1973년 이전까지 과학은 미신과 별개 영역이었습니다. 과학은 세상 모든 종교를 미신으로 볼 만큼 선긋기를 했습니다. 헌데, 1973년 이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과학이란 그저 판타지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김종화 :
맙소사! 왜 이를 모르겠습니까. 흥미롭습니다. 계속해보세요.
인드라:
가진 자들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신앙이 가진 자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반면 과학이란 못 가진 자들 신앙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가진 자들 신앙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못 가진 자들 신앙 중 가장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과학은 말했습니다. 모든 종교란 하늘 위에 있다. 하지만 인간을 보라. 하늘에 있는가. 모두 땅 위에 있다. 오직 과학만이 땅 위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반면, 미신들은 구름 위 하늘만을 떠들고 있다.
김종화 :
그렇군요. 역시 재미있습니다. 그래서요. 지금도 과학은 그런 역할을 맡고 있지 않나요? 철학이나 문학에서는 모더니티로 풀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티에 대해 아직 모더니티는 끝나지 않았다는 식입니다. 예상한 바 있지만, 역시 이런 움직임도 그 배후는 국유본이군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1973년 국유본 권력교체 이후에 나타난 것입니다. 한마디로 끝난 것입니다.
오늘날 대중적으로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부터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그 징후, 특히 국유본 내부에서 징후는 일찍 시작하였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87007
일명 부지깽이 사건입니다. 국유본 인물인 바람둥이 양성애자 버트런트 러셀 세습 백작과 온리 동성애자 비트겐슈타인은 동성애 관계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재벌 아들, 비트겐슈타인 추천으로 히틀러가 국유본이 구상하는 제 2차 대전 파트너가 되었다는 가설이 나올 만큼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은 비트겐슈타인 항문을 매우 사랑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런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이 왜 갈라섰을까요? 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처럼 역시 오스트리아 유태인인 칼 포퍼를 불러 논쟁을 유도했을까요?
김종화 :
그렇다면? 식은 땀이 흐릅니다.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을 질투 유발시키려 희롱한 것이군요. 연애 달인, 러셀이 새 연인 칼 포퍼를 옛 애인, 비트겐슈타인에게 소개하는 이벤트가 부지깽이 사건 핵심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정말 흥미롭습니다. 국유본론 끝이 어디일까요. ㅎㅎㅎ. 대체 왜 이들 철학자 세 명이 만나 시덥잖은 쌈박질을 했나 싶었는데, 국유본론이 단칼에 의문을 해소시키는군요. 요점은 항문이군요.
인드라 :
항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을 떠났습니다. 부지깽이 사건은 러셀이 비트겐슈타인 마음을 잡기 위한 최후 이벤트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단호히 국유본 권력자, 러셀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 분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드라 입장은 단호한 편입니다. 러셀 연인일 때 비트겐슈타인과 러셀과 이별 후의 비트겐슈타인이 실질적인 구분점이라고 말입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그들이 왜 헤어진 것일까요? 비록 러셀이 개차반 바람둥이이긴 합니다만. 가령 버트런트 러셀은 '4월은 잔인한 달'로 유명한 시인, 토머스 엘리어트와 인연이 있습니다. 어느 날,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은 마치 봉건시대 영주처럼 초야권을 부활시켰습니다. 토머스 엘리어트 연인과 밀월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에 아무런 힘이 없던 토머스 엘리어트는 고맙다고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에다가 국유본 인물이었으니까요. 시인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토머스 엘리어트가 그나마 시인이랍시고 그의 시가 인용되는 것도 다 국유본 덕분이고, 버트런트 러셀 덕분입니다. 일각에서는 토머스 엘리어트도 버트런트 러셀의 창녀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더군요.
인드라 :
완벽히 드러난 것은 아니나, 상당수 진실을 내포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것이지요. 그들이 국유본 중심부에서 놀았기에, 그들 사적 연애는 세계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조선왕조 왕족과 귀족들이 버트런트 러셀처럼 놀았다면 망국의 징조이지만, 버트런트 러셀이 영국에서 놀았던 이유만으로 이는 근대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김종화 :
그렇군요. 선생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반문도 할 수 있을 듯하군요. 누군가 당대 조선 왕족과 귀족은 버트런트 러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 다 개망나니 인생이었지만, 버트런트 러셀은 천재적이었다고.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인드라 :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그런 예가 윤치호라고 있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A4%EC%B9%98%ED%98%B8
인드라가 보기에, 버트런트 러셀과 윤치호 차이는 없습니다. 있다면, 러셀은 뻗어가는 영국 귀족 자제로 태어났고, 윤치호는 망해가는 조선 귀족 자제로 태어났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국유본론으로 말한다면, 만일 국유본이 영국이 아닌 조선을 중심으로 택했다면, 오늘날 인류는 버트런트 러셀이 어떤 종자인지 모를 것입니다. 반면 세계인들은 윤치호 천재성을 찬미하고 있겠지요.
아무튼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시다. 왜 이들은 헤어졌을까요?
김종화 :
원자력이군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원자폭탄. 그것은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과학은 딩대 지식인들이 숭상하는 유일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그 유일 종교가 저지른 것이 무엇입니까. 원자폭탄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에 떨어졌지요. 이에 대해 일본인을 동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원자폭탄을 받을 만큼 국유본에게 특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일본인들은 한반도 전체가 수십 년간 국유본에게 받아야했던 고통을 단지 몇 년간 일부 지역에서만 받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세계 지식인들은 이런 한반도인 고통에 무감각하지요. 온통 히로시마에만 열중합니다. 왜 이럴까요? 세계 지식인들이 모두 미친 놈들이기에. 아닙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국유본에게 세뇌를 당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국유본이 만든 허상에 놀아났던 것입니다. 과학이 진실하게 보였던 것은 과학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국유본이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 지식인들은 과학이란 허상에 탐닉했던 것입니다.
이미 이 시기부터 국유본 내부에서 과학은 기존 종교처럼 의심 대상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징후가 바로 버트런트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이별이었던 것입니다.
바람둥이이자 국유본 기획에 따라 영국 노동당원이었던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은 상당 기간 빅터 로스차일드와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버트런트 러셀 세습백작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빅터 로스차일드에 반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버트런트 러셀이 영국 노동당증을 찢은 것이 그가 인류애적인 인물이어서?
아닙니다.
국유본 귀족, 버트런트 러셀은 너무 빠른 신세계 질서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007 실제 주인공, 빅터 로스차일드는 신세계 질서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추진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진행이 빠르다 보니, 프랑스 혁명 때와 같은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버트런트 러셀이 어제는 혁명군 일원인 당통이었는데, 오늘은 버트런트 러셀이 단두대로 가는군요.
김종화 :
아, 이 말씀은?
이 글 원제목이 비정규직 해법을 우주론에서 찾는다였던가요?
평행이론을 기대했는데,
흡사 평행이론의 사회과학 버전을 읽은 느낌입니다.
인드라 :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는 한,
투쟁하십시오.
세상은 죽었을 지라도
혁명은 살아 있습니다. "
세상이 죽었을지라도 혁명은 살아있다 국유본론 2011
2011/05/08 06:18
http://blog.naver.com/miavenus/70108490984
"김종화 :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요즘 새로운 형태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하시는 것 같습니다. 보수우파에서 칭송하는 박정희를 중도좌파라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 진보좌파라고 평가받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 대해서는 친일매국세력이라고 단죄하시는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 이런 말씀하시니까, 머리가 아픕니다. 선생님이 말하니까 이 문제가 무슨 초끈이론처럼 11차원 어쩌구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3차원적 공간과 시간이라는 1차원을 합한 4차원적인 생각이 고작인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인가 싶으면, 또 다른 데서는 역대 대통령들과 주석들을 모두 존경한다고 하니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진심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늘 그랬어요. 어느 때는 김대중을 찬양하다가 반대로 김대중을 매우 비판하고, 박정희를 비난하다가 찬양하고, 김일성, 김정일도 마찬가지죠. 노무현, 이명박도 그래요. 대선 때는 누구보다 이명박을 비난하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명박 칭찬만 하죠. 조중동이나 한나라당도 이명박을 비판하는 요즘 세상인데 말이죠. 막말로 요즘 세상에 선생님만 이명박 칭찬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글쓰기를 보면 말이죠. 단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만들어요. 오탈자까지 말입니다. 이런 것이 선생님이 주창하시는 해체 이론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전술이라고 해도 솔직하게 말한다면 당혹감이 먼저 듭니다. 제가 무슨 갓 입학한 운동권 대학생도 아니고 말이죠. 선생님은 참 이상한 성격이십니다. 좋으면 좋은 것이잖아요. 나쁜 건 나쁜 것이구요. 전 단순한 것이 좋습니다. 뭔가 복잡한 것에는 속임수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선생님은 좋은 걸 좋다고 말씀하는 법이 없어요. 그걸 선생님은 변증법이라고 하십니다. 하여간 모오든 신비주의를 거부하는 듯싶습니다. 무엇인가 사람 속을 다 끄집어내어서 홀딱 벗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모든 존재를 다 똥통에 빠뜨려야 하는 거죠. 인간을, 사회를 한계상황까지 몰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이 성악설 신봉자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미안합니다. 전 성선설 신봉자이거든요.
선생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좋아요? 싫어요? 무식하게 질문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분법이 좋아요. 저는 동물적인 본성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가 판을 벌이는 꾀춤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건 아마도 저에게 가장 합당한 인류 생존방식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이런 저를 극복할 수 없다면, 선생님은 역사에서 숱하게 보았던 헛똑똑이들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어디 진실로 움직이나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았던 이들이 오히려 현명하지 않나요? 오래 살고,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이 생물학적 강자잖아요. 선생님은 과연 이런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인드라 :
인드라는 요즘 탈무드 같은 책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칸 성범죄 사건이 있습니다. 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돈, 여자, 유대인이 문제다. 나, 여자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죠? 인드라 생각은 이래요. 돈, 여자, 유대인을 모두 좋아한 것이 칸의 죄라고 봅니다. 무슨 말이냐. 좋아하면 헤지를 해야죠. 여자를 좋아하더라도 지나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여자를 좋아하더라도 만일 칸이 불륜 정도라면, 밀회 정도라면 어떤 측면에서 칸은 음모론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케네디, 클린턴처럼 말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 성적인 문제가 없었던 대통령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드물었지요. 그럼에도 역대 미국 대통령들 다수가 성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헤지를 했다는 것이죠.
반면 칸은 뭡니까. 프랑스 녹색당? 인드라가 녹색당에 매우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녹색당은 독일 녹색당이고, 다른 전 세계 녹색당은 망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런 인드라 생각에 확신을 주게 하는 주장이더군요. 아마 프랑스 녹색당 지도부도 강남좌파일 겁니다. 저런 새끼들이 한 자리 해먹으려고 녹색 운운하는 것이 오히려 환경운동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 확신이 드는군요.
교훈은 뚜렷합니다. 정치란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현실적입니다. 리얼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것은 당대 정치투쟁 핵심인 것입니다. 딱 까놓고 말해, 백주에 사람 하나 갑자기 망치로 죽이면 분명히 살인자입니다. 눈에는 눈. 즉시 응징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본성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이 아닌 조직 문제가 되면 전혀 다르게 변환한다는 것입니다. 뇌물 비리를 저질러도, 도둑질을 해도, 강도짓을 해도, 살인을 해도 조직을 위해서, 당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칭송받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할 때, 선생이 질문한 것은 개인 대 개인 질문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개인을 빙자한 질문이라면, 이는 조직 대 조직 문제입니다.
어렵게 설명했습니다. 칸이 죽건, 말건 선생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관여해서 선생에게 이익이 발생한다면 어찌하실 것입니까. 이것이 초점입니다. 효과입니다.
효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이는 효과와 보이지 않는 효과. 이 두 가지가 동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통, 거래, 계약 등등 모두 동일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답합니다. 선생, 이 인터뷰란 이전처럼 공개할 것이지 않습니까. 뭔가 도전적인 질문이 과연 제대로 답변을 만들 수 있을까요? 선생 지론이라면 안면몰수 칭찬모드여야 선생이 원하는 답변이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상대의 진실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면, 선생은 비로소 제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라면 이해할 줄 알았다.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예외적이므로 오히려 예외적인 방식이야말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나요?
김종화 :
맞습니다. 아닌가요?
인드라 :
무엇이든지 반대하고, 반발하고, 반항하는 것. 아닙니다.
김종화 :
왜 아니지요?
인드라 :
그건 선생이 가능한 것(보이는 것)과 바라는 것(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헛똑똑이를 말합니다. 이때 헛똑똑이가 뭡니까. 가능한 것과 바라는 것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오래 전 칸 성범죄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라지만 가능하지 않기에 침묵했던 것입니다. 반면 지금은 가능한 수준이 바라는 데까지 왔으니 예전 성범죄를 거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선생이 지금 저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가능한 수준이 바라는 수준에 근접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아무리 가능한 것이 바라는 것에, 혹은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접근한들 결국 바라는 소원을 성취할 수 없고, 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나요?
인드라 :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제가 선생과 이야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종화 :
이해가 안 가는군요. 쉽게, 가급적 어렵지 않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같은 천민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인드라 :
어렵지 않습니다. 우주를 생각합시다. 무한하지요. 반대로 원자, 아원자 세계를 생각합시다. 역시 무한합니다. 원인과 결과. 그 원인은 끝이 없고, 그 결과도 끝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지할 수 있는 정도만으로 원인과 결과를 말합니다.
가능한 것과 바라는 것? 존재론적 화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대체 가능한 것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요. 바라는 것 끝은 어디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수축과 이완 활동일 뿐입니다. 파동이지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인식론적 화두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축과 이완입니다.
차원으로 설명할까요. 3차원 입체를 압축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차원이 됩니다. 이차원을 압축하면? 더 낮은 차원이 되지요. 반대로 이완시키면? 보다 높은 차원이 되겠지요.
김종화 :
그렇다면 차원은 뭔가요?
인드라 :
선생은 기생충입니다. 이 우주는 인간입니다. 이해하나요?
김종화 :
뭔 말씀이신지?
인드라 :
차원이란 주체입니다.
김종화 :
네?
인드라 :
돌아갑시다. 개체 대 개체에서는 비윤리적인 사건이 집단 대 집단에서는 윤리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요?
김종화 :
네. 그렇습니다.
인드라 :
또한 우주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원인과 결과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규정지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군요. 방금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차원=주체와 무슨 관계가? 아!
인드라 :
이제 아셨군요. 당신 눈앞에 펼쳐진 세계입니다.
김종화 :
내가 기생충으로 태어나 보는 세계와 인간으로 태어나 보는 세계가 다르다? 그것이 차원이다! 와우~ 정말 쌈박하군요.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하지만, 선생님.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혹 국정원보다 더 고위급인 CIA나 일루미나티에서 고도로 훈련받은 요원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같은 천재적인 발상이란 고독한 자들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유로움에서만 가능하다 여깁니다. 결국 제 머리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양쪽 가능성이 모두 팽팽하게 맞서서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저를 형편없다고 제발 나무라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잘 모르고, 혼란스럽게 때문입니다.
인드라 :
하하하. 선생. 그건 좋은 징조입니다. 선생은 지금 막 각성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즐거운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선생은 각성을 한 선생과 저를 동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는 차원이 달랐으나 이제는 같은 차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에는 자신이 주체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동등한 주체라는 인식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종화 :
헉. 찔립니다. 그래요. 이제 선생님만 아는 비밀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등한 주체인데, 선생님만 무엇인가 특별 대우하게 되는 것이 낯섭니다. 예전에는 저도 그랬지만, 이젠 아니잖아요. 은근히 선생님과 저와 동등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그들을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봐. 인드라 선생님은 말이지. 평등을 원해. 당신처럼 인드라빠를 원하지 않아. 난 인드라빠가 아니거든?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인드라빠를 놀리면 기분이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을 만난 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가학적인 취미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동시에 나만의 인드라 선생님이 존재합니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인드라 선생님을 마구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과 직접 대면해서는 한없이 선생님에게 빠져듭니다. 우리는 동등한 주체인데, 사랑일까요?
인드라 :
냉정하게 말해, 사랑이 아닙니다. 이렇게 싸늘하게 말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져나간다는 것 알고서 말씀드립니다. 차원이란 한 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게 존재합니다. 수축과 이완이 무한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주체 - 객체 관계가 일방적인 관계라면 문제는 예전에 해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부부관계, 애인관계가 바로 이런 예입니다. 누가 주체인가. 이것이 바로 차원 문제인 것입니다. 어떤 차원에서는 남편 혹은 남친이 주체입니다. 반면 어떤 차원에서는 부인 혹은 여친이 주체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김종화 :
아. 뭔가 머리가 수 초간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늘 여행자라고 자신을 말씀하십니다. 저는 선생이 아직 자리를 못 잡은 낭인으로 생각해서 야심을 드러내지 않은 잠룡으로 보았는데요. 차원이 다르네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쓰임새가 다릅니다. 이완과 수축. 반복합니다. 입학식과 졸업식 반복합니다. 하지만, 늘 입학식이 같을까요. 초등학교 입학식과 회사 취업은 같을까요.
당신은 예서 깨달아야 합니다.
선생, 국유본이 왜 인드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아시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유본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과거 일본을 중시할 때와 같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요. 국유본이 비빔밥을 상찬하고, 2NE1을 띄우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그리고 박지성을 영웅시해도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국유본이 당면한 과제가 이것입니다.
과연 한반도는 전 세계에 보편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존재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인드라는 몇 가지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하나, 기초 역학 문제. 세계 최초의 볍씨, 소로리. 세계 최초의 배.
둘, 삼국통일은 동아시아 통합 시금석이다
셋, 킹 세종 한글
넷, 비빔밥과 퓨전
김종화 :
좋군요. 선생님 설명을 듣노라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뭔가 1%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인드라 :
다섯, 인드라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고정자본이라면, 인드라는 가변자본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것은 보이는 것이고, 인드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은 가능한 것이나, 인드라는 바라는 것입니다.
김종화 :
숨이 막히는군요. 선생님. 제가 역시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신 것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생전에 가장 잘 한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선생에게 감히 충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인드라 :
굉장히 어려운 부탁일 듯싶군요. 거절하면 큰일 날 듯한.
김종화 :
그래요. 선생은 늘 혁명을 말씀하십니다. 그걸 철회해주세요. 왜 늘 혁명이지요. 무엇이든 혁명이지요. 제발 그건 자제해주세요. 진짜 혁명을 원합니다. 정말 세상이 뒤바뀌길 원해요. 제가 선생님의 국유본론을 귀담아듣는 이유 전부입니다. 제발, 제발! 진짜 혁명일 때만 혁명이다, 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렇다면, 그때 저는 선생님과 분명 함께 할 것입니다. 가짜 혁명에는 질렸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정동영? 문재인? 김문수? 오바마?
선생님. 앞으로는 혁명이란 말씀을 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딱 한번만 혁명이라고 해주세요. 그때는 정말. 그래요.
인드라 :
................................ "
혁명이란 무엇인가 국유본론 2011
2011/05/20 04:32
http://blog.naver.com/miavenus/70109373956
인드라 : 당신은 야구에 대한 혐오가 있는가?
김종화 : 아니다. 나는 야구를 혐오하지 않는다.
인드라 : 당신은 축구팬이다. 축구팬이기 때문에 야구를 혐오한다고들 이해하는 것 같은데...
김종화 :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당신은 흑인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을 혐오한다고들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알겠지만, 나는 과거에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다.
인드라 :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야구 비판이 많은가?
김종화 : 나는 과거에 야구를 좋아했다. 그때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치 백인이나 남
성이라는 이유로 별 문제가 없듯이. 그러나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마치 내가 아랍인이거나 유태인인양 혐오부터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심지어 볼링도 좋아하는데 볼링
좋아한다고 뭐라고 하는 이도 없다. 유독 축구에 대한 견제만이 심할 따름이다.
인드라 : 그렇다면 왜 그러한 현상이 생겼다고 보는가?
김종화 : 아마도 박통 문제가 있을 것이다.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로 축구도 그런 범주에 포함
시킨 것 같다. 또한 일부 사이비 좌파도 김일성 비판, 민족해방파 비판의 일환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사석에서 언젠가 이런 말도 몇 번 들었다. 민족해방파는 축구, 좌파
는 야구 뭐 이런 것 말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
렇다면 이렇게 보면 된다. 반공영화가 문제가 있다고 영화 자체를 혐오할 수 있을까?
문제는 반공이지, 영화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혐오한다면 이것이 말이 될
까? 또한 민족해방파/좌파 - 축구/야구 이런 도식은 너무나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
다. 자의적 구분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야구 역시도 대중적인 스포츠이며, 노동자들
도 많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인드라 : 그렇다면 결국은 정치적이라는 것인가?
김종화 : 그렇다. 정치적이다. 나는 지금 잘못된 문화혁명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를 파시즘적으로 본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바이
올린이 문화혁명 과정에서 수난을 당한다. 중국 음악이 최고이며, 서양 음악은 반
동적이라는 이유로 서양 음악의 상징인 바이올린이 수난을 당한다. 그러나 바이올
린이 무슨 죄인가? 지금 핵심 문제는 축구에 대한 혐오 그 자체다. 마치 축구를 대
하는 것이 박통을 대하고 김일성을 대하듯이 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이들이 파시스트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는 것이다. 즉 자본과 권
력이다.
인드라 : 축구 비판이 자본과 권력 비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가?
김종화 : 현재의 자칭 일부 좌파의 축구 비판이 자본과 권력 비판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해악스럽다고 본다. 하여 내가 말한 것이 있다. 만일 여기가 유럽이라면 나는 축구
비판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비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
기는 한국이다. 그리하여 나는 야구 비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만일 미국에 있다면
야구 비판을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시가 여러 메이저 스포츠 가운데 야구의 활
용을 가장 많이 하였으며, 근래에는 케리도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해 야구를 운운하고
있다. 그런데 클린턴 때에는 사커맘이라고 하여 의도적으로 히스패닉과 도시 여성들
축구 붐을 일으켰다. 아울러 브라질 노동자당 룰라도 축구광으로 적절하게 축구를
노동자당 집권에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인드라 : 만일 그렇다면 좌파가 집권을 위해서 룰라처럼 축구가 아닌 야구로 승부를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쿠바에서는 여전히 야구를 좋아하지 않던가?
김종화 : 그런 점을 오해할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전술이다. 우리는 나쁘지만,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야구보다는 점차 축구가 인기
를 끌고 있다. 쿠바와 브라질의 경우는 이렇게 보아야 한다. 쿠바인은 야구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카스트로는 대미정책의 일환으로, 동시에 중남미 좌파 헤
게모니 정치를 위해 야구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본다. 반면 최근 브라질의 경우에
는 대미정책의 일환으로, 동시에 중남미 좌파 헤게모니 정치를 위해 축구에 관심을 기
울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브라질 축구가 세계 1위이기 때문이다. 종주국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야구는 일부 국가에서만 인기이며, 전세계 대부분 사람들은 야구를 모른
다. 반면 축구는 안다. 좌파는 연대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밖에 없다면, 보다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폭넓은 연대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국에서도 축구가 더 활용도가 많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간 중국과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이 한국 축구를 확실히 제
압하지 못했다. 그간 일본에서는 야구를 통하여 마치 미일동맹 체제에서의 아시아
맹주국임을 자처해온 지점이 있다. 야구는 그 상징적 효과로 충분히 작용하였다. 이
는 적어도 냉전적 상황에서는 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냉전의 시대는 갔다. 따
라서 야구의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근래 유엔안전보장이사국
으로의 진입 움직임처럼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본 공산당의 지적처럼 일본도 여전히 미국 식민지라는 그러한 딜레머에
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활용수단으로 택한 것이 축구라고 본다. 일본
이 어떤 수단을 택하건, 전세계 대다수 인민은 야구를 마치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신
자유주의의 상징처럼 미국 패권주의의 상징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반공영화처럼 편협한 것이기는 하다. 축구에 대한 혐오처럼 말이다. 이
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은 이라크전 참여처럼 평화를 내
세우되 자위대 해외 파견과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겉으로
는 축구를 내세우며 평화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이라크전쟁에 많은 전비를 대는 양식처
럼 여전히 일본 보수파는 야구를 보존시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핵심 동맹은 일본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말이다.
중국은 이에 대하여 브라질 룰라처럼 축구를 활용할 것이다. 그들은 영국 프로리그 방
송을 해준다. 그들은 남한에서처럼 단순히 국가대항전을 이벤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
다. 시스템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중국 역시도 야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
국에서의 야구란 형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남한은 현재 별다른 전략이 없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전략이 아예 없고,
오로지 임기응변이다. 그저 질투심에 불과하다. 북한이 월드컵 8강 가자 그제서야 박
통컵을 하듯이 대체로 한국의 법률 제정처럼 일본 예를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 근대체계가 독일체계에서 많이 가져갔듯 한국에서 유럽식이다, 뭐다 하지만,
대개는 일본식에서 약간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그처럼 월드컵도 일본이 한다니까 따
라서 한 것이다. 하여 전략도 없다. 다만 흉내낼 것이라고 보는데 아마도 일본적인
방식을 할 것으로 본다. 겉으로는 축구를 내세우지만, 보수파는 야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방식 말이다.
하여, 나는 축구를 비판할 것이라 오히려 야구를 비판해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 스포츠 일반을 비판하되, 저들이 정치적으로 스포츠를 이용하는 한, 그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비국가모델론자가 아니지만 비국가모델론자 입장에서도 이 입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는 나는 한국과 이라크간의 친선 축구경기를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야구 비판이다.
요즘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을 주창하는 서울대 총장이 야구광임을 자처하면서
야구장에서 서울대, 고대, 연대 총장이 모여 무슨 이벤트를 하는 것을 소홀하게 여
기면 곤란할 것이다. 서울대 야구부의 존재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인드라 : 야구 비판이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야구 비판이란 우회로
를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영화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또한 축구공을 만드는 어린이들의 노동학대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종화 : 바로 이런 점이 암기하는 이들의 문제다. 대개 그러한 주장의 원천지가 어디이겠는가?
유럽일 것이다. 유럽에서의 그러한 비판은 의미가 있다. 그것이 한국으로 오면, 일본
으로 오면 어떻게 되는가. 야구공 비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야구공은 누가 만드는가?
유럽에서의 축구 비판은 이렇다. 유럽 보수파들이, 그리고 사민주의자들이 축구를 통
해서 대미관계에서의 독자성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떠
한가?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최희섭이나 박찬호를 통해서 그러한 경향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즉 박찬호 발차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툭하면 미국
프로야구계에서의 인종 문제이니 뭐니를 내세우는 기사거리가 그런 예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바로 이러한 점을 비판하는 것이 좌파의 자세라고 본다. 그러나 어디 이런
비판이 있던가. 내가 가장 웃기는 것이 박찬호, 최희섭 응원하면서 태극기 휘날리는 것
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적 징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박지성이나 이영
표가 아인트호벤에서 뛰는데 그들 응원하는데 태극기 동원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요한 건 전략적 사고의 결여에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의 국가적 전략은 친중전략이냐, 친미전략이냐로 양분된다.
어느 것이 주된 것이냐가 이 논란의 중심이다. 보통 친중전략을 좌파적 전략
으로 보는 듯하고, 일부 자칭 좌파에서도 (가령 박노자 같은 경우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듯싶은데 이에 대해 다른 좌파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랍시고 이상한 견제를 하는 듯싶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통일좌파정당은 지지율이 같이
오르고, 같이 하락했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지지가
하락하여 정권을 내놓았을 때, 통일좌파정당이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떨어졌다.
현재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친중국
노선을 취한다고 할 지라도 축구 비판 이런 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비판은 열린우리당 내의 이헌재류에게,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아니지
만 서울대 총장에게 비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열린우리당의 임기응변적 친중국노선이 현재 고구려사 문제제기에 허
약한 지점을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 대안을 제시하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층
을 견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고작 한나라당 이재오나 김문수 머리에서 나올 듯한 사고방식으로 행
동하는 이들이 어찌 좌파라고 할 수 있나? 그들이 좌파인가? 임기응변적으로
정권 잡아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김영삼밖에 더 되는가?
인드라 : 다시 축구로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정리 겸하여 왜 이러한 문제가 나오는지를 말해 달라.
김종화 : 지금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문제다. 이에 대하여 좌파가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좌파는 노무현정권 전면 비판할 역량이 되지 못한다. 지난 총선
전에는 사이비 좌파들이 정신을 차려주었다면 실날 같지만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
나 그들이 배반하였다. 지금도 사이비 좌파들이 더욱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제
와서 노무현정권 퇴진하라고 하니 말이 되는가? 지금은 열린우리당은 커녕 한나라
왕도 비판할 역량이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한마디로 지금 사이비 좌파 진영
은 우왕좌왕하면서 노무현보다도 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헤매고 있다.
축구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에서 매번 벌어지는 상황이다. 전략적으로 지금 축구가
지배적이라면 나 역시 나를 아는 축구팬들이 알 듯 축구 비판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여 지금 비록 축구계를 옹호하는 듯하다는 점에서 내 주장 역시
저항적이지만 이데올로기인 점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
들, 가령 축구 없어지면 비인기종목이 활성화될 것처럼 말하는 것 등은 잘못된 주장
이라는 점이다. 하키나 탁구, 핸드볼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이번에 올림픽에 나온 팀
가 공통점이 무엇인가. 축구가 인기가 있으며, 프로축구리그가 있는 나라들이
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축구와 야구를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축구를 모른다고 생
각한다. 나는 한때 야구광이었고, 야구 선수 줄줄 외는 정도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
자면, 축구가 더 어렵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야구가 선형적이라면, 축구는 비선
형적이며, 야구가 정적이라면, 축구는 동적이며, 야구가 순간이라면, 축구는 흐름이
다라고 말이다. 야구는 매순간 감독의 지시를 받으며, 주루 코치 지시도 받는다. 그
러나 축구는 적어도 경기 중에는 감독의 지시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감독은 고작
교체선수를 통하여 역량을 발휘하거나 하프타임 때 지시하는 정도다. 그만큼 축구는
선수들 역량에 달려 있다. 선수들이 흐름 때마다 자리 바꿈을 해야 한다. 축구는 머
리가 나빠도 할 수 있다는 편견은 이미 히딩크 때에 바뀌었다. 머리가 무척 좋아야
한다. 축구를 단순하고, 원시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이천수와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 복음악마(福音樂磨)
2004/08/28 14:03
http://blog.naver.com/miavenus/6000533456
"김: 비교적 쉬운 이야기부터 하지요. 최근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1/4 정도만이 일본에 호감을 지닌 반면 일본인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 호감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인이 좀 더 일본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지난 구십년대부터 한일연합국가론을 주장하고 계신 인드라씨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인드라 : 억지로 좋아해야 한다 해서 좋아지겠습니까?(웃음) 오랜 관습일수록 차분하게 대해야겠지요. 저는 이를 당연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삼만 달러 이상의 국민소득 국가인 복지사회 국가인 반면 한국은 아직 일만오천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국민소득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두 배 정도의 격차죠.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계급의 문제입니다. 계급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다면 부정확하지만 계층이라고 해두지요. 즉 일본의 중산층이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일본 호감도를 높이려면 한국인의 생활이 지금보다 두 배 정도 향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좌우파적 정체성이 뚜렷한 이들이 한일 우호에 지대한 관심을 지닐 것으로 봅니다. 반면 극우파들은 한일 우호에 대해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우파는 약 20% 정도라고 할 수 있고, 좌파가 1% 정도라고 본다면 비교를 한다면 오히려 한국인의 일본 호감도가 일본인의 그것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비교를 하면 아무런 기준 조정없이 비교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세계 대학 비교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혹은 각국 축구실력 비교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의 대학과 한국 축구는 여건에 비해 정말 엄청나게 잘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곧바로 하버드 대학과 비교하고, 프랑스 축구와 비교하니 문제인 셈이죠. 로봇 제작을 예로 들까요? 기계공학도이기는 하지만 기계공학에 문외한에 가까운 제가 메카트로닉스 분야를 말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는 하지만 졸업하고서 이 분야 공부를 잠시 하면서 연구소에 취업 원서도 내본 사람이기는 합니다. 지금이야 다 까먹었지만... 아무튼 일본에서는 로봇 분야를 오래 전부터 대대적인 지원으로 연구해왔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로봇은 커녕 십여년 전만 해도 대학 연구실에 실험할 엔진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따라서 격차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의 로봇은 계단도 오르내리는 등 고차원적 행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의 휴보는 그 수준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요. 당장 비교하면 마징가 제트와 깡통로봇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국의 연구 기간과 지원 규모를 비교하자면 한국 연구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제작 비용에 비해 껌값 수준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는 한국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통 이런 특징을 역동성으로 부르는데요. 압축성장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 한류는 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김 : 근래 곳곳에서 한류를 위기로 진단하는 논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들은 몇 년 전에도 있어왔지만 여전히 한류가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잘 나가는 스타에게 언젠가 내리막길이 있으니 준비해야 한다는 정도의 덕담 수준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인드라 : 저 역시 최근까지는 그러한 관점이 분명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향수와 아시아인의 동경 대상으로서의 한류로서 한류가 주목받는 것이겠지요. 어떤 이들은 한국 문화의 고유함에 아시아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네팔에 가거나 인도에 가거나 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시골에 가서 옛 정취에 흠뻑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인이나 미국인이, 그리고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느끼는 것은 한국의 산과 강이요, 오래된 사찰 등입니다.
그런데 굳이 네팔이나 인도가 아니라 한국이냐라고 한다면 이런 것이지요. 청담동의 한옥 초가 불고기집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들 중 마니아들은 정말로 한국의 시골 한옥 초가를 찾아서 원조의 맛을 느끼겠지만, 찾아가기가 여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지요. 가령 앙코르와트 사원을 관광하러 가는데 많이 불편하고 최근 사고도 나는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반면 청담동의 한옥 초가 불고기집이란 무엇이냐. 현대적 감각으로 잘 복원된 것이라는 거죠. 다빈치 코드로 주목받는 샤르트르 성당이라고나 할까. 아, 이렇게 설명하면 좋을 듯합니다. 야인시대라고 있었죠? 그런데 야인시대의 배경에 나오는 그런 풍경들이 우리는 지금 없잖아요. 드라마 세트에서나 구경할 따름이죠. 박제화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서구인과 일본인이 볼 때 한국이란 나라 자체가 드라마 세트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살아 있는 드라마 세트라는 것이지요. 반면 한국인은 중국이나 북한에 가서 그와 같은 살아 있는 세트를 보면서 진한 향수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적 감각의 정체라는 것이지요. EBS에서 명동백작에 이어 지금도 마로니에는, 이라는 드라마를 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것이지요.
반면 아시아인들은 어떠한가. 프랜즈나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잖습니까. 이 드라마가 왜 인기이겠습니까. 대체로 이러한 드라마들은 미국 도시 중산층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일상생활을 다루는 것이죠. 과거에는 여피족이라고 했던 이들 말입니다. 이런 거죠. 예전에 대중은 청년문화다, 대학문화다 해서 대학생들을 동경했습니다. 그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중시했지요. 지금은 아니죠. 시민계급의 성장에 따라 요즘은 오히려 대학생들이 시민계급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기에 벅찰 정도가 되었죠. 과거 대학문화의 선도성이 퇴조하고 강남문화가 선도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당연한 수순입니다. 아시아인이 한국 드라마를 주목하면서 보는 것이 그런 것이라는 거죠. 여기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왜 서구와 일본이 아닌 한국이냐일 것입니다. 그것은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구와 일본이 인기였습니다. 정확히는 서구였지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이 있고서는 일본이 인기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같은 식민지 국가 경험이 있어서라는 등의 헛소리를 해댑니다만, 대만이나 동남아시아에 일본 문화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관련이 있다 해도 미미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경제성장에 따라 보다 문화 수요층이 확대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관광과 비슷해요. 서구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깃발관광이 있습니다. 배낭여행이 일반화된다 해서 깃발여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죠. 또한 오지탐험여행이 있다 해서 배낭여행이 퇴조하는 건 아니죠. 다만 층층으로 겹쳐지는 것이죠. 이와 같은 모델을 적용하면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서구와 일본 문화가 최상층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지탐험대라고나 할까요. 일본 문화는 지금까지는 배낭여행 정도였습니다만, 그네들의 생활수준이 더욱 고양됨에 따라 아시아인에게는 오지탐험 비슷하게 여겨지게 된 셈이지요. 그 다음으로 한류가 있는 것입니다. 배낭여행인 셈이죠. 이전까지 한국이란 깃발관광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경제성장함에 따라 배낭여행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지요.
김 : 재미있는 설명이로군요. 그렇다면 의문이 드는 것이 홍콩 영화가 과거에는 있었잖습니까. 님 모델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나요? 요즘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습니까?
인드라 : 이소룡 세대가 있겠지요. 근래 태국영화 옹박이 떴잖아요. 깃발여행 수준이죠. 그처럼 서구에서는 이국적 산물로서 이소룡을 본 것이지요. 서부극이 적당한데 전통적인 서부극이 있잖습니까. 악당 인디언과 정의의 보안관이 싸우는 것따위 말입니다. 한국도 사실 이 점에서 그간 씨받이다 해서 서구에서 상도 받고 그랬잖아요. 이런 서부극이란 당시 만든 미국에서도 대중적이면서 오십년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물론 김두환류 영화가 있겠구요. 여기서 좀 더 나아간 것이 느와르라는 거죠. 전통적 서부극에서 이탈리아식 서부극의 등장이죠. 전통적인 선과 악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보다 장르에 충실한 특성을 지닌 영화라는 점이죠. 성룡과 주윤발 세대가 이들이겠지요. 이게 배낭여행 수준이거든요. 아시겠지만, 홍콩은 여러 지표에서 보듯 싱가포르 등과 더불어 국제적인 도시입니다. 지금이야 중국의 홍콩 편입으로 상당히 퇴조하였다고 볼 수 있겠지요. (참고삼아 이야기한다면 과거 엠비씨 드라마는 최강이었습니다. 드라마 왕국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식 느와르를 주도한 것은 분명 엠비씨 드라마였습니다. 그런 엠비씨 드라마였는데 요즘 퇴조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일시적이냐 하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죠. 엠비씨 경영진과 드라마 제작국이 전략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나는 최근의 엠비씨 드라마의 퇴조를 중국의 홍콩 편입과정과 유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분명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해방은 역사적이고 필연적인 일이지만은 동시에 홍콩이 홍콩보다 수준이 뒤떨어진 베이징 정권에게 편입된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중국 베이징 정권의 이상적 모델은 싱가포르 이광요 정권인데 오히려 이광요 정권이 베이징 정권 밑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암흑이죠, 뭐. 지금 중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 꼴이라는 겁니다.)
다시 성룡과 주윤발로 돌아가면 성룡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처럼 밝고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기도 한 영화라면 주윤발 영화는 쉬리처럼 진지한 영화다라는 거죠. 여기서 아무래도 평론가라는 이들은 사회성을 중시하다 보니 코믹한 영화에 대해서는 평가를 잘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황당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취권처럼 말이지요. 나는 취권과 성룡이 있었기에 주윤발이 나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장르적으로 액션-코믹-멜로-스릴러순으로 인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주의할 것이 주윤발 영화의 매력은 액션이나 코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멜로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룡이 멜로에 약하지요. 하지만 그간의 액션에 식상한 이들에게 액션과 코믹을 섞어서 인기를 끈 것이지요. 여기에 주윤발 영화들은 멜로까지 섞은 것이지요. 여기서 더 나아간 이가 왕가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왕가위는 보다 멜로에 중점을 둡니다. 중경삼림이나 동사서독을 보세요. 핵심은 무협이 아니라 멜로입니다.
여기서 논쟁이 되는데요. 어떤 이들은 동사서독을 보면서 중국적인 것, 무협적인 것 등을 본질로 보는데 내가 비판적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좌파들은 알 겁니다. 아무리 농경사회가 지배적이더라도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사회에서 핵심은 다수가 농민이더라도 농민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처럼 홍콩영화의 진행과정에서도 시초가 아무리 이소룡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그렇게 볼 때 후퇴하는 것입니다. 민족문화 운운하는 이들의 잘못이 이것인데요. 이래서 지금 중국영화가 퇴조인 것입니다. 문화는 결국은 퓨전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민족문화라는 것도 결국 이전까지의 퓨전에 불과한 것이구요.
김 : 점점 윤곽이 잡혀가는군요. 요즘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유독 멜로물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까?
인드라 :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지요. 홍콩영화가 민족문화라는 식으로 오히려 반동화될 때 한국영화의 등장은 서구인과 아시아인에게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홍콩영화와 한국영화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홍콩영화를 발전 계승한 것이 현재의 한국영화라는 것입니다.
김 : 아주 독특한 시각이시군요. 다른 이들은 홍콩영화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한국식 민족문화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사실은 비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인드라 선생께서는 협소한 민족문화의 틀을 넘어서 연속성을 이야기하고 있군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주목한 바가 바로 주성치인 것입니다. 주성치, 요즘 뜨지요. 하지만 저는 지난 소림족구에서 그가 생명을 다 했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끝났습니다. 분명하게 제가 말씀드리지만, 저는 주성치 마니아였습니다. 세상에는 주성치를 싫어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이들 두 부류가 있다고 여기는 이들 말이지요. 한국에서 홍콩 느와르가 지배할 때 주성치는 그저 비디오 하나짜리에 불과하였습니다. 홍콩 느와르가 비디오 서너개짜리 이상이라면 말이지요. 주성치는 홍콩에서 느와르 다음 세대의 주자였기에 늘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등에서 통하기에는 아직 한국 여건이 후졌습니다. 주성치는 희극지왕이나 식신에서 전성기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때 비로소 소위 평론가놈들도 인정하는 눈치더군요. 저는 이를 역설적으로 봅니다. 이제 주성치가 끝나가는구나. 그럼에도 혹시하고 소림족구를 기다렸지요. 하지만 소림족구는 저의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쿵푸허슬은 저의 예상대로이구요. 소림족구는 한마디로 막 임종에 임한 환자가 최후의 순간 빛을 발하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지금까지 그가 성공했던 모든 공식을 짜깁기한 것이지요. 그러니 대중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주성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들도 소림족구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한 바 있지요. 하지만 주성치가 그후 토로하는 내용을 보세요.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서 왜 내가 이런 걸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통탄하는 모습, 전환을 모색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마땅한 게 없는 그런 것을 말입니다. 주성치도 이제 홍콩을 버리고 상하이로 갑니다. 아시겠지만 중국 베이지정권의 배후도시는 상하이입니다. 권좌에 있는 놈들이 그쪽 출신이거든요. 상하이는 1920~30년대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물론 지금 상하이가 매우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 서울보다도 앞서간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압축성장으로 인하여 바로 옆에서는 한국의 오십년대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쿵푸허슬은 바로 이러한 상하이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수준이란 바로 과거 이소룡시절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성치가 이소룡을 강조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오늘날 홍콩의 문제요, 엠비씨 드라마의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왕가위보다 한발 앞선 이였습니다. 왕가위가 멜로물에 전념하였지만 진지할수록 장르에 집착하기 마련이고 식상해진다는 것이죠. 마카로니 웨스턴이 범람할 때 진지한 마카로니 웨스턴(나는 대부류가 이런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저는 높이 평가하지요.)이 주목을 받는 것인데 이런 것이 또 범람하면 또 대중은 식상한다는 것이지요. 희극적인 것은 이 점에서 유념해야 할 장르입니다. 마치 소프트 포르노처럼 웃긴다는 대중성만 갖추면 어떤 실험도, 어떤 파격도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황당해도 코믹이니까 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장르와의 차별성입니다. 주성치는 그간의 영화를 통해 느와르 장르나 멜로 장르의 진지한 형식들을 패러디하면서 조롱합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그간 느와르나 멜로에 식상한 대중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반 위에서 주성치는 과감하게 자신만의 스릴러적인 양상으로 나아갑니다. 엽기적인 것 말이지요. 오물, 똥 따위의 혐오스러운 것을 자신의 영화 속에 배치합니다.
김 : 멜로 다음이 스릴러란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들리는군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지독한 사랑에는 스릴러가 있습니다. 공포스럽잖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이지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볼까요. 그 영화에서 아버지가 딸과 원조교제한 남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수를 하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김기덕은 딸을 둔 남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모욕을 가합니다. 뺨을 때리는데 적당히 때리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라고 관객이 판단하는 그것을 정확히 한 뼘 정도 더 나아갑니다. 이런 건 다른 감독들에게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다른 감독들은 그저 폼나는 장면이나 신경을 쓴다고나 할까요? 폼잡는 거죠. 거친 면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창작력 빈곤을 세련됨으로 위장한다고 할까요? 박찬욱이 대표적이죠. 삼류 저질 감독이다 부를 수 있어요. 오로지 흥행만 생각하는 주제에 작가주의 운운이라니 얼마나 역겹습니까? 반면 김기덕은 더 나아가죠. 더 나아가서 그 남자의 부인이 욕을 하게 만들고 그 남자가 떨어져 죽게 만들고 그 남자의 뇌수가 파편화되어 흐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화장실에서 남자를 폭행하는 장면도 봅시다. 다른 감독들은 처음에 아예 죽이던가 혹은 적당히 다치는 정도로 만듭니다. 그러나 김기덕은 더 나아가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겁니다. 돌을 들고서 말이죠. 공포스럽죠. 베를린 심사위원들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으로 놀란 것입니다. 박찬욱 따위야 그간 영화사에서 늘 보던 아류에 불과하다면, 그저 언론플레이나 조금 할 줄 아는 찌질이라면 김기덕은 그야말로 진국인 셈인 거죠. 영화를 아는 이라고나 할까요? 그들은 이런 데서 김기덕의 비타협성을 읽은 것입니다.
아무튼 주성치는 끝났지만 자신의 말로는 지금 영화가 실패하더라도 기반을 삼을 수 있었다는 식의 변명을 합니다. 주성치는 매트릭스를 유념하는 듯합니다. 사실 주성치 영화에서 SF적인 요소도 많이 있었거든요. 당연한 수순이죠. 다만 나는 과거의 주성치 팬으로 미약한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매트릭스 수준이란 가히 여러분 골치를 아프게 하는 프랑스 철학이 등장하거든요. 포스트주의다, 해체주의다, 뭐다 등등 말입니다. 근래 공각기동대 등의 재패니메이션에서도 나오잖아요. 지금 주성치 여건에서 이게 가능할까요? 매트릭스 아류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헐리웃이 침체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죠. 헐리웃에서 주성치에 대한 기대를 하는 이유는 물론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뭔가 다른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지요. 하지만 이는 정말로 힘든 오지탐험입니다. 우주탐험이라고나 할까요? 차라리 이 점에서는 장예모 감독 쪽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반동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지의 제왕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려고 하잖아요. 참신한 시도없이 기술적 완성을 기한다는 점에서 장예모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한국에서 보자면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거죠. 혹은 토지이구요. 뻔한 내러티브에 기술적 완성도를 가한 방식이 불멸의 이순신과 토지 아닙니까. 물론 대중은 그보다 해신을 더 좋아하지만, 나름대로 그것들도 대중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별 게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김 : 재패니메이션 이야기까지 나왔군요. 그렇다면 다시 한류로 돌아가지요.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전망이랄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인드라 : 현재 한국 영화는 침체되어 있는 반면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는 김기덕, 류승완 감독 정도가 기대되지만 영화계 전반적으로 어려운 국면이기에 조심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한국 드라마는 겨울연가 붐에 힘입어 영화계로 몰렸던 자본이 드라마로 몰리는 양상이 있는 듯합니다.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제작사가 김종학이지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을 만들고 요즘 해신과 슬픈 연가 만들고 있지요. 현 시점에서 보자면, 김종학은 주윤발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과 비교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 끝에 해신을 만든 것을 보면 아직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종학과 송지나는 배창호나 이명세, 그리고 허진호에게서 보여지는 멜로적 감수성, 혹은 그간 드라마에서 히트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멜로적 감수성이 부족한 편입니다. 왕가위는 동사서독이나 중경삼림에서 이런 점을 부단하게 치고 나가서 마침내 화양연화를 만들었거든요. 제 표현으로 철이 든 거죠. 멜로적 감수성이 뭔가를 그가 느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신을 봐도 김종학 사단은 여전히 이런 점에서 쑥맥이라는 겁니다. 해신에서 만일 여배우가 수애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여겨 보면 끔찍합니다. 지금 수애라는 여배우가 외모도 되고, 연기력도 되었고, 최수종 고정팬들이 있길래 망정이지, 캐스팅 미스가 있었다면 슬픈 연가처럼 우습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과 비교되는 이가 송병준입니다. 대중음악과 영화음악을 다루던 이가 갑자기 드라마 제작을 나선 것을 보면 감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송병준이 그간 만든 걸 보면 확실히 김종학과 다릅니다. 무엇보다 최근 그가 손을 댄 아일랜드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보면 그가 아주 탁월한 감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아시아 대중의 수준과 한국, 일본 대중 수준을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이 아니냐 여길 정도입니다. 나는 송병준이 왕가위적 탐색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일랜드를 보면 중경삼림과 만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송병준이 앞으로 방송사에 의존하지 않고 외주제작사로서 중국과 합작하는 새로운 방식을 쓴다는 점에서 주목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시도에서 재패니메이션이 탄생하는 계기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김기덕이 현재 사용하는 방식처럼 창조적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앞으로 택할 시나리오들도 보아하니 대개 만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감각적입니다. 나는 드라마에서 김종학보다 송병준에게 더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내가 투자자라면 송병준에게 더 투자를 하겠습니다. 다만 송병준의 문제인 것은 블록버스터 제작이 불가피하고 제작에 필요한 자본을 마련하는데 중국과 일본과의 합작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민족적인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동시에 부담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헐리웃에서만 현재 가능한 대규모 제작비 부담이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조차 현재 재패니메이션이 자본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유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송병준 사단은 흥행과 더불어서 작품적인 면에서 미야자끼 하야오와 같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점에서 나는 송병준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이는 왕가위에 대해 회의적이듯이 그렇습니다. 다만 한국 드라마는 김수현이라는 천재적인 작가 출현 이후 나름대로 전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송병준에 대해 회의적일 수는 있어도, 송병준과 같은 기획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기반마저 회의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영화계에 대해서는 현재 할 말이 없습니다. 허진호의 외출에 기대를 해보지만, 현재까지 나온 정보로 보면 기대치를 계속 낮추고 있습니다. 류승완이 비록 아라한에서 쓴 맛을 본 듯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는 정두홍이라는 무술감독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 한국감독들은 겁을 내고 정두홍이라는 뛰어난 무술인에게 주연을 맡기지 않는가. 대사 처리 등이야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국적 액션, 리얼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두홍을 중심으로 한 영화 한 편 실패를 각오하고 만들 생각이 없나 여겨 봅니다. 이명세의 무사에 대해서는 이명세가 신중한 감독이어서 안심은 되지만 그 기간이 오래된 만큼 우려가 되는 점도 있습니다. 지나친 신중함이 혹 화를 부르지 않을 것인지 우려가 됩니다. 비록 내가 홍상수에 비판적이지만 홍상수에게도 여전하게 나아갈 것을 주문합니다. 무엇보다 김기덕이 잘 해내어야 합니다. 그가 한국 영화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세계 문화계는 현재 침체상태입니다.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지 않을 때 영화나 음악들은 그저 기존의 히트한 것을 반복할 따름인 것입니다. 대중이 지겨워 무관심해질 때까지 말이지요. 요즘 헐리웃 영화들이 재미없다고 합니다. 기껏해야 반지의 제왕을 따라한 알렉산더류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대세는 아닌 것이 분명하잖아요. 헐리웃이 과거처럼 무언가를 내와야 하는 것입니다. 스타워즈나 매트릭스처럼 말입니다. 분명 당시에는 황당하고 모험적이어서 영화사 하나가 통째로 날라갈 시도들 말입니다. 망할 것을 각오하고 만드는 영화들 말이지요. 챨리 채플린 영화도 그러하였습니다. 문제는 망할 걸 각오하고 만들었는데 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부시 정권이 들어섰으니 헐리웃과 미국 애니메이션계가 앞으로도 불황일 것입니다. 부시가 이 방면에 관심이 없거든요. 야구는 좀 인기가 있겠네요. 그러니 이쪽은 신경을 당분간 끌 수밖에 없다면, 유럽은 어떠한가? 그간 유럽 영화의 장점이란 그간의 유럽 철학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식인적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 유럽 영화가 침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철학입니다. 유럽 문화계가 자끄 데리다 해체 이후로 나온 것이 없어요. 다들 허접하죠. 이게 문제인 거죠. 유럽 철학에서 새로운 어떤 흐름이 형성되지 않는 한, 유럽 영화도 당분간 별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죠.
그렇다면 일본인데 일본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지요. 일본 문화가 기여한 바는 포르노와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 정도일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비주얼락 정도일까요? 그러나 비주얼락을 일본이 뭔가 해냈다고 나는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건 서구에서 이미 다 한 것이니까요. 일본 포르노와 서구 포르노의 차이란 서부극과 마카로니 웨스턴과 비교할 수 있겠지요. 마피아 대신 조폭이 나와서 하는 포르노. 그런데 웃기는 점은 한국 포르노는 그간 액션 분야에서도 그러하듯이 리얼함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왜 있잖아요? 홍콩 무협물을 보면서 한국 액션계가 늘 하는 말. 우리는 실질을 추구한다. 실제 싸움판에서 일어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것 있잖습니까? 그렇듯이 포르노도 그렇다는 겁니다. 애니메이션은 미야자끼 하야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선 저는 미야자끼 하야오를 높이 평가합니다. 적어도 그가 과거 사회주의자로서 제레미 리프킨의 우려대로 기술의 진보로 인하여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일자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3D가 발전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일자리를 박탈하면서 나아가는 것에는 비판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반지의 제왕류로 나아가는 것에는 비판적입니다. 분명 기술의 진보가 일자리를 박탈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계 테러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보여주는 문명에 대한 소박한 기대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포기할 때 미야자끼 하야오 경향은 언제든 극우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독일 녹색당에서도 극우파가 있잖습니까. 나는 이런 점에서 미야자끼가 극우파로 변신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였고 아직은 그런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좌파의 기본 철학이란 기술의 진보를 인간화하는 것이지, 기술 진보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미야자키보다 공각기동대를 만든 감독에게 더 기대를 하지만 유럽철학이 지지부진하니 그도 지지부진합니다. 유럽영화처럼 말이지요. 동시에 나는 이런 점을 고려합니다. 세일러문과 같은 만화 말입니다. 로봇류, 세일러문류 같은 것 말입니다. 나는 이것이 주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비주류로서 이들의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장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류, 세일러문류처럼 새로운 장르 개척 말입니다.
김 : 한류를 말하다가 세계 문화계 전반을 말하게 된 셈이군요. 저는 인드라 선생의 견해에 대해서 수긍할 점도,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가령 미야자끼와 기술 진보 면에서는 이견도 있습니다. 즉 우리의 기술 수준이란 충분한 것이 아닐까. 아니, 오히려 과잉된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의 기술로도 충분히 인류를 먹여살리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점이지요. 하지만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논의를 진행시키지는 않겠습니다. 인터뷰가 길어졌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라도...
인드라 : 혁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변화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좌파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가 없이 어떠한 기대도 가짜일 뿐입니다. 현재 세계 문화계가 침체국면인 것은 세계의 정치와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동시에 세계 문화계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유명 작가들은 기존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역량이 있는 뛰어난 신인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과도기적으로 놓여진 한국 문화, 혹은 한류가 있는 것입니다. 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별하는 따위란 이제 무의미합니다. 소위 말하는 고급문화란 결국 박제된 문화일 뿐입니다. 판소리 등의 문화란 당시 대중문화였던 것입니다. 클래식처럼 말이지요. 나는 그 방안 중 하나로 민족문화적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민속문화적 개념을 고려해야 합니다. 민족문화적 개념이란 민족국가적 틀에서만 고려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국가적 틀을 고집하는 한, 극우적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민속문화적 틀을 도입하면 지방문화, 소수자 문화를 존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국의 민속문화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대중문화가들도 잘 압니다. 그들은 민족문화가 아닌 민속문화로 접근하면서 아시아인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붉은 악마를 제외하고서는 여전히 아시아 문화에 무식합니다. 소위 평론가들부터 다 무식합니다. 소위 일부 자칭 좌파들도 민족 개념 위에 좌파 개념을 놓고 있으니 자신이 극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고유성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인의 민속문화적 자질을 인정합니다. 가령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지요. 프랑스에서는 인기가 없던 무명의 작가를 발굴한 건 바로 한국인입니다. 한국 대중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여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프랑스로 역수출된 것이지요. 프랑스에서도 이런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아니면 일본이었습니다. 유럽은 이런 점에서 한국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지점에서 김기덕을 발굴한 것입니다. 한국인이 몰랐던 김기덕을 말이지요. 유럽의 역사를 보십시오. 르네상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중세유럽에서 간과되어왔던 과학적, 철학적 전통을 중동문화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이슬람 문명이 그리스 철학을 보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승 발전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국의 발명품을 유럽으로 가져가서 발전시켰듯이 말입니다. 늙은 유럽은 지금 새로운 계기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계사적 의미에서 한국인에게 놓여진 지위를 깨닫고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공기나 물처럼 주변에 단지 흔하다고 간과한 것들을 잃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한국의 산과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야 알게 됩니다. 그처럼 세계는 우리에게 흔한 어떤 것을 발견하여 세계의 진보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서 발견한 것은 프랑스인의 기발한 아이디어만 아닐 것입니다. 프랑스만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프랑스적이면서 세계적이니까 그를 주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단지 베르나르나 김기덕이 프랑스 옷이나 한국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옷에도 주목해야겠지만 더욱 중요한 건 어떤 옷을 입든 옷걸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향남호를 아십니까.
브리트니가 입고 다녀서 화제가 된 호남향우회 디자인 말이지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왕가위,주성치,하야오,송병준,류승완,김기덕,정두홍 극한영화(極限映畵)
2005/01/22 16:24
http://blog.naver.com/miavenus/60009495466
"김종화(이하 김) : 또 다시 신임 교육부 장관이 논란거리입니다. 이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인드라 : 김진표 신임 교육부 장관은 물러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자신의 소신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고 '교육 마피아'들한테 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터 이렇다면 결국 보나마나입니다. 몸통은 놔 둔 채 눈에 당장 보이는 잔 가지 몇 개 치면서 여론 눈치를 보며 자족하기에는 한국 교육의 현실이 참담하기 때문입니다.
김 : 방금 교육 마피아라고 하였습니다. 혹 교총이나 전교조를 지칭하는 것인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그들은 교육자라고 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도 아니죠. 단지 목욕탕협회 따위처럼 로비집단일 따름입니다. 요즘 여기 저기에서 의사 학위 장사, 기아차 채용 장사 등등이 수사 대상인데요.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지요. 들리는 소문이 사실인 경우가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청정지대란 없다.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찾지 않지요. 왜냐? 이것이 바로 정치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종교에서 성 문제가 영원한 종교 수요 창고이듯 관행이란 이름의 돈 문제란 영원한 정치 수요 창고입니다. 요즘은 이런 말 잘 안 씁니다만, 표적 수사란 말을 잘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김 : 제가 알기로는 인드라 선생께서는 음모론적 시각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표적 수사 운운에서 드러나는 인드라 선생의 표현에서 음모론적 시각을 읽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인드라 :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최근 경찰 관계 인사 청문회를 떠올리면 됩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지난 이기준과 현재 김진표에 대한 각 언론의 반응을 유념하면 됩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읽고 있지 않다면 이 사태는 조금도 풀 수 없습니다.
김 : 그렇군요. 새삼 듣고 보니 그런 듯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이기준 때에는 꼭 집어서 이기준더러 물러나라, 마라 하지는 않았다면 이번에는 보다 강경한 논조로 물러나라,라고 하는 이유도 그러한 연유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김진표가 물러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김진표만을 문제를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우세력들의 표적이 지난 이기준 사태에는 이기준이 손가락이었고 달이 아니었기에 제가 엄한 '희생양'인 이기준에 대해서 침묵하였지만은, 이번에는 조금은 다르기 때문에 김진표에 대해서 물러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보다 교육 문제와 교육부 장관에 관해 보다 집중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 : 그렇다면 인드라 선생이 김진표 신임 교육부 장관더러 물러나라고 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그가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기 때문입니까.
인드라 :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그가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리라 기대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김 : 무슨 말씀이신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십시오.
인드라 : 무엇보다 삼불 정책이 핵심입니다. 고교 등급제, 본고사 부활,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대가 삼불 정책이 아니겠습니까. 이 삼불 정책에서 핵심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여입학제이며, 다른 두 가지는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김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인드라 : 교육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정치사부터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하냐. 자, 보세요. 초중고대학에서는 사립과 공립학교 모두 있습니다. 여기서 초등학교 사립, 공립 중 어느 쪽이 보다 학교 교육 내용이 충실한가요? 또한 중고등학교에서는요. 마지막으로 대학에서는요.
김 : 제가 알기로는 초등학교만 제외하고, 그리고 서울 강남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민족사관고와 같은 특수한 학교를 제외하고서는, 중고대학에서는 공립이 우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 모두가 저와 같은 의견일 것입니다.
인드라 : 그렇습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역사적으로 과거 419 학생운동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학생들만 부각이 되는데요. 사실은 고교생들이 보다 큰 문제였습니다. 고교생들이 나와서 시위를 하고 대학생들더러 뭐하고 있느냐 힐난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온 것들이 바로 대학생 놈들이었다 이 말입니다. 문제는 바로 고교생이었다 이 말입니다.
김 : 네? 그런가요.
인드라 :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일제하 학생운동을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그 주역들은 바로 고교생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의 대학생이 된다는 건 지금으로 보자면,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하버드 대학을 가는 것과 비슷했다 이 말입니다. 경성제대,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 대학 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학생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관립보다는 일제의 직접 감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민족계와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이 보다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따라서 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경기고던가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곳 동문회의 글에서 경기고 동문을 회고하면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지만, 반면 시대에 저항하기 보다는 순응하기만 했었다는 식으로 안타깝다는 논조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현재와 비교한다면, 그 숫자나 체감 수준에서 차라리 오늘날의 대학원 수준이었던 사립학교 출신들이 지난 일제하 선배들의 저항운동 전통을 이어받아서 해방 이후와 419때까지 줄곧 투쟁해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 사그라졌는지 아십니까? 바로 박정희 시대 때부터인 것입니다. 이때부터 중고등 사립과 공립의 지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박정희는 공립고를 강화시키는 대신 주요 사립고교들을 죽이기 시작했지요. 박정희 정권은 사립고교의 저항적인 선생들과 학생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은 중고교 교사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으며, 사실 과외교사 비슷하게 여기잖습니까? 단지 자리만 공교육에 있을 따름이구요. 그리고 또 일부 현직교사들이 몰래 과외도 한다고 저는 알고 있어요. 쉬쉬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한마디로 선생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냥 교사입니다. 학원강사처럼 학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장사치다 이 말입니다. 노동자도 아니구요. 그러나 과거에는 아니었습니다. 교수자리도 없거니와, 대학 나와서 일자리도 많지 않았을 때입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대학을 나온 이들임에도 일자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과거의 전통에 따라 고교에 들어가서 선생을 하는 것을 명예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선생이나 기자나 박봉이기는 마찬가지였고, 교육자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명예심으로 인하여 사립고 선생들은 전인교육을 강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이후로 일제가 노렸던 실업교육 취지 본질에 오히려 부합하는 양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는 데모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자신이 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잘 안다는 이야기지요. 결국 오늘날 보자면, 박정희가 만들어낸 제도를 요즘 박정희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결사 보위하는 셈이란 거죠. 뺑뺑이 평준화도 그렇습니다. 중고입시를 막기 위해, 특정 학교로 인재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평준화를 시행한 것인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물론 유치원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된 것이죠? 결국 대학 서열제도는 구조적으로 전혀 바뀔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중고교만 바뀐다고 바뀌나요? 오히려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교육의 세습화를 막을 방안은 자유주의를 전면 거부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좌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자유주의를 전면 시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것들은 오히려 미래에 더 크나큰 해악을 끼칠 것입니다.
김 : 그렇군요. 박정희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인드라 선생께서는 그간 다른 진보인사와 달리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색다르게 하던데요. 이번에는 인드라 선생이 싫어하는 '상식'적 수준에서 말하는 듯합니다. 아닌가요?
인드라 :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경제가 압축 성장했고, 다른 것들도 시차를 두면서 동반하여 역동적으로 변화한 만큼 한국 역사도 역동적으로, 즉 변증법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박정희 문제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으로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인혁당 사건 등을 이유로 아직 역사적 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반체제적인 좌파의 몫일 따름입니다. 박찬욱 따위 삼류 저질 감독의 과격정치 자영업자주의, 상업주의적 기획과는 차별을 두어야지요. 다시 말하자면, 과거 박정희 시대 이래로 툭하면 조선시대 사림들의 당쟁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권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윤리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 시대에 필요한 인물은 공자가 아니라 관중이다. 학자보다는 재상이 절실하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에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주화가 되었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초기에는 완전히 뒤집혀진 논리가 우세했던 셈이지요. 그러한 산물이 바로 김일성 우상화였던 것입니다.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란 이것 다름 아니지요. 즉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 살아도 민족 의식이 있는 김일성이 낫다 이런 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김일성이 낫다라는 인식이 사회주의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 낫다고 하면 어때? 하는 자유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것을 경계하는 편이죠. 그럼에도 만약이란 픽션적인 상상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과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김일성이면 어때?하는 상상이란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되었으니 품격이 있게 살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공자가 등장한 셈이죠. 이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힘과 명분이 만났을 때 비로소 권력이 성립하기 때문이죠. 물론 선행하는 것은 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수정주의 사관인 것입니다. 아울러 전환시대의 논리다, 해방시대의 논리다, 이런 게 나온 것이 서구에서 68세대에게서 나온 신좌파적 자유주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게 왜 나왔겠습니까. 서구 대학생들이, 베이비붐 세대들이 2차대전 이후 이십여 년이 흐르면서 먹고 살만하니까 나온 것입니다. 당시 서구는 황금시대였거든요. 한국에서 보자면 구십년대와 비슷하다 이 말입니다. 거품의 시대였죠. 하여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면 어때? 하는 자유주의적 사고는 동시에 그렇다면 박정희이면 어때? 하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또한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 원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김일성이면 어때? 하는 사고는 동시에 조선시대 당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차원에서 보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낳았고, 나아가 조선체제가 정치적으로는 완벽한 체제라는 식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가 조선 지배층의 무능론과 근대화의 외부 주입론에 대항한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조선체제는 정치적으로 완벽하였고, 외부의 간섭이 없었다면 자생적으로 근대화가 가능했었는데 오히려 일제의 침략으로 무산되었다는 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죠.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금 국사, 국어를 가르치는 이들의 대다수 생각이며,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는 이들의 사고방식이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맨 끝물에 나오는 게 바로 송두율의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거죠. 정리가 됩니까? 그렇다면 역으로도 나올 수 있는 거죠? 박정희이면 어때?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정리되면 맨 끝물에 나오는 것이 바로 최근 교과서를 비판하며 등장한 남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란 것입니다. 또 다른 수정주의라는 것이지요. 둘 다 자유주의적 사관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언론에서는 이 둘을 들어서 좌우적 해석을 내리는데요. 좌우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통 좌파 입장에서는 웃기는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이런 걸 '상식' 운운하면서 여전히 냉전시대를 살고 있으니 웃긴 노릇이 아닙니까. 자신들의 꼴통 속에서나 있는 것을 강요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면서 오히려 정통 좌파더러 낡았다느니, 이념의 과잉이라느니 하지만 보세요. 오히려 제가 주장하듯이 요즘 그들이 이념의 결핍을 느끼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잖습니까. 제가 말한 것이 무조건 맞다는 건 아닙니다.
김 :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왕이면 보수, 자유, 진보, 좌파와 연관해서 말이죠. 또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극우도 말씀하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인드라 : 간단해요. 극우란 상기한 자유주의의 기본 바탕을 망각하고, 정치적으로만 체계화하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기본 바탕이 뭐냐? 뭐긴 뭐겠어요. 자본이고, 자본주의죠. 즉 자본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겠죠. 보통은 경제논리라고들 하지요.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고를 낳게 된 것이 경제적 요인의 변동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경제적 요인의 변동을 무시하거나 혹은 거꾸로 정치가 경제를 결정짓는다고 착각하는 데서 극우가 발생한다 이 말입니다. 물론 정치적 요인이 경제적 요인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상호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해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 설사 정치가 경제를 규정하는 듯이 보여도 착시일 따름인 거죠. 그렇다면 좌파는 뭐냐. 자본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변증법적으로 시대를 통찰하여 미래의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죠.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어요. 경제논리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철학이 현실을, 그리고 남성이 여성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원합니다. 남성이 힘이 세고, 부드럽고, 자상하길 말입니다. 그러하듯이 경제는 좌파가 힘이 세고, 부드럽고, 자상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파는 여전히 경제를 잘 모르고 있고, 철학이 현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무능하다 보니 여성 혐오증에 빠져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반면에 여성은 좌파와 철학에 대해 골치 아프다고 합니다. 좌파와 철학이 이빨을 풀면 짜증부터 냅니다. 경제는 좌파와 철학이 뭐라고 하면 짜증부터 냅니다. 안타깝습니다.
김 : 음. 제 이야기를 하는 듯싶군요. 지나치게 기계론적인 것이 아닙니까. 이에 대해 좌파에서는 엥겔스적이다, 하여 비판적으로 보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신좌파 알튀세르, 캘리니코스가 명성을 획득한 것이 아닌지요. 선생께서는 스탈린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신데 혹 스탈린주의를 내면에 감춘 것이 아닙니까?
인드라 : 잘 지적했습니다. 알튀세르나 캘리니코스, 스탈린은 모두 자유주의적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문헌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어요. 그건 팔십년대 이야기구요. 그때 그 반성만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문헌 가지고서 서로 논쟁할 때 결론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맑스나 레닌의 어떤 구절을 자기 유리한 대로 아무런 역사적 맥락이 없이 끌어다 썼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알튀세르나 캘리니코스나 스탈린이 왜 문제가 됩니까. 간단합니다. 스탈린은 이차대전 전의 스탈린이 아니라 이차대전 후의 68시대의 스탈린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좌파에서 보자면, 스탈린이 박정희인 셈이죠. 알튀세르나 캘리니코스는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 격하운동과 미소평화공존전략이 없었다면 시중에 나온 책 따위를 한 줄도 못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좌파라는 자유주의 사상이란 스탈린이 아닌 트로츠키, 모택동, 호지명, 체게바라, 김일성 등을 찾아내려 했던 것입니다. 왜 이러하겠습니까. 먹고 살만했지요. 공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여, 만들어낸 것이 자본을 읽자, 최종 심급 따위라는 거죠. 말로는 과학, 그랬습니다만, 사실은 변증법을 대체할 철학을 원했던 것이죠. 그 철학이란 자유주의 철학인데, MIT 촘스키 자유주의와는 달라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유럽적 자유주의, 즉 사민주의인 셈입니다.
이게 뭐냐. 비유를 재미나게 들겠습니다. 농구 선수가 있다고 합시다. 어려서 뉴욕 할렘가에서 구차하게 살다가 농구로 대스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대스타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 이 농구 스타가 스타가 되기 전까지 주위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기가수 비처럼 말이죠. 아, 나는 정말 죽도록 고생했어요,라고 말입니다. 요즘 연예인들 나오면 라면 먹은 이야기 꼭 하잖아요. ㅎㅎㅎ. 하지만 엄청난 부를 소유해서는 도무지 말발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골프 좀 치려 하면 주위 눈치 살펴야죠, 신경을 쓸 일이 너무 많아져요. 게다가 서서히 안티팬도 증가합니다. 자식, 출세하더니... 어쩝니까. 잔머리를 굴려야죠. 여전히 나는 노동자다,라고 구라쳐야 되잖아요. 지어낸 이야기냐구요? 아니죠. 실제 있는 이야기입니다. 농구 스타 말입니다. 김정일 이야기냐구요? ㅎㅎㅎ. 김정일이 남한 영화와 남한 노래를 듣는 것은 혁명 투쟁의 일환일 것입니다. ㅋㅋㅋ.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어요. 여전히 흑인 다수는 못 살거든요. 그 농구스타만 잘 사는 겁니다. 이것을 변명해야 하잖아요. 이 농구스타께서는 말입니다. 그게 사민주의다, 이 말입니다. 유럽적 자유주의다, 이 말이구요. 그럼 MIT 촘스키 자유주의는 뭐냐. MIT에서는 철저한 시장원리를 견지하지요. 이번에 포항공대 총장이 잘 말했잖아요. 촘스키는 미국 군산복합체 심장부라고 할 MIT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MIT가 만든 미국 미사일이 유럽이 만든 유럽 미사일보다 성능이 좋아. 아직은 유럽 농구보다 미국 농구가 더 잘 해. 고로 유럽 철학보다 미국 철학이 더 우월해. 유럽 자유주의보다 미국 자유주의가 우월해. 내가 더 잘 난 놈이야. 하지만 유럽의 영수 데리다나 미국의 영수 촘스키나 해결하지 못한 게 있지요. 화씨 911 만든 놈과 비슷하다는 거죠. 미국민 다수는 못 살아요. 해서 데리다나 촘스키(촘스키가 데리다를 가장 씹은 건 그런 이유죠. 별 게 아닙니다. 둘 다 유태계인데 촘스키보다 데리다가 조금 더 똑똑하거든요. 그게 샘이 난 거죠, 뭐. 사실 데리다 생존시에는 촘스키가 기가 죽었거든요. 데리다가 죽고난 이후에야 요즘 신나게 놀고 있잖아요. 부시 물러나라고 말이죠. 저는 촘스키를 살리에르로 보아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거죠, 뭐. 캘리니코스요? 아, 데리다 질투해서 영국 분석철학 운운한 거죠. 워낙 프랑스 철학이 지배적이다 보니까. 하지만 분석철학 하느니 촘스키가 낫고, 촘스키보다는 데리다가 나아요. 프랑스에서도 데리다가 씹혔다구요. 그건 프랑스 철학계의 권력투쟁인 셈이죠. 한 백년 지나면 데리다가 맑스 비슷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고, 나머지들은 잊혀지거나 데리다를 위한 들러리 혹은 안주거리 되겠습니다. 하지만 데리다는 겸손하게도 자신을 미래의 칸트 정도로 만족을 하는 듯싶더군요. 칸트 이후로 헤겔이 나왔고, 맑스가 나온 게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 자신의 작업이 미래의 헤겔과 맑스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제시했다는 생각인 거죠.)가 뭐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저렇게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게 사민주의죠, 뭐. 자유주의구요. 그래도 데리다나 촘스키는 둘 다 극우적인 것을 경계한 셈이죠. 늘 미사일을 염두하고 산다 이 말입니다. 과학이나 경제에 적대적이지 않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고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라고 나아가면 스탈린이 되고, 김정일이 된다 이 말입니다. 정리하면, 자본에 대한 내재적 관점을 내면적으로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사민주의, 자유주의의 장점인데 이를 망각하고 정치에 대한, 혹은 민족국가에 대한 내재적 관점을 견지하면 극우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어요. 그런데 자본에 대한 내재적 관점이 뭡니까. 총자본에 대한 내재적 관점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개별자본으로 분화되어 있고, 이것이 특수하게 민족국가 틀에서 민족자본이란 식으로 현상하잖아요? 그리고 이들 개별자본, 민족자본끼리는 서로 경쟁을 하잖습니까. 그러면 승패가 나잖아요. 지는 쪽이 극우로 간다 이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정리해 봅시다. 남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 혹은 식민지 수탈론이냐, 식민지 근대화론이냐. 이 모두 수정주의적 사관이요, 자유주의적 사관인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은 극우로 판명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스코어는 뒤집기는 백프로 불가능한 상황. 수탈론 사관이 극우사관인 것입니다. 주체주의 사관 말이죠. 경제학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지요. 한국에서는 현재 개혁경제학파라고 하는 케인즈주의 학파 말입니다. 이게 점차 극우적으로 가고 있다 이 말입니다. 왜냐? 신자유주의 학파가 이겼거든요. 그렇다면 보수주의는 뭐냐. 오스트리아 귀족 외교관이 나폴레옹에 대항한 이념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수구적이다, 낡은 것이다라고만 여기는데 중요한 건 이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작에 없어질 이념이겠죠. 나폴레옹의 타락 과정을 보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개탄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위대한 작가가 포르노를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시대를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부르주아지 시대를 비판하면서 입헌군주정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꿈이 보수주의라는 것이지요. 내일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자 할 때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과거 공동체를 꿈꾸는 것. 그것이 보수주의죠. 나아가 생시몽과 같은 이가 등장하는 것이죠. 귀족적 명예감으로 부르주아지 다음 시대를 내다보는 것 말입니다. 마침내 맑스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오지 않는... 이게 좌파죠. 이런 좌파와 달리 미국 공화당 부시가 기독 원리주의 관점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다 이 말입니다. 빈 라덴도 이슬람 원리주의 관점이죠. 중요한 지점이 있어요. 대부분의 종교 원리는 자본의 내재적 접근, 즉 경제논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거든요. 아는 이는 알겠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란 이슬람식 사민주의, 즉 이슬람적 자유주의이거든요. 지나치게 경제 논리를 무시하면 이란식 신정정치가 되는 것이요, 경제 논리를 수용하면 바트당 후세인이나 혹은 가다피가 되는 것인데 가다피가 생각을 잘 한 거죠. 일단 이념도 좋지만, 리비아 인민이 같이 살아야죠. 안 그래요? 지금 이라크 수니파처럼 총선 거부한다고 같은 이라크인한테 총질하고, 이라크인 돕는다는 자원봉사자 납치해서 죽이고 하면 곤란하잖아요. 그게 극우란 거죠. 그래서 극우는 나쁜 겁니다. 포용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이야기죠. 김정일이면 어때? 주체사상이면 어때? 하는 식의 자유주의 논쟁은 이미 지난 겁니다. 이건 현 사회당 지도부가 어려서 그래요. 원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몰라서 그런 거니까 말입니다. 잘 이야기하면 되요. 그래도 어리기 때문에, 해먹을 게 없기 때문에 청렴하잖아요. 오히려 알 건 알면서 타락한 채 오로지 당권투쟁으로 주체사상 싫어 운운하는 것이 더 문제죠. 물론 주체파들이 습관이 남아 있긴 해요. 겉으로는 스스로 파산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틀은 그대로 가져가죠. 아니, 스스로도 모르는 이도 있어요. 어디서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이거죠. 하지만 그건 소위 피디분파도 마찬가지죠. 파산했다고 하면서도 습관은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왜냐? 그게 인맥정치에 도움이 되니까. 그 이름 팔아야 영향력을 행사하면 이권이 나오니까 그런 거잖아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죠. 명품 좌파 그러면 웃어요. 짝퉁이 명품이랑 정말 구별이 안 가요, 이런 식으로 이태원 등지에서 일본 사람 등에게 팔죠. 일본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명품을 샀다고 무척 좋아하지요. 게다가 할인도 되죠. 하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죠. 할인을 감안해서 올린 가격이거든요.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하죠. 진작에 아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죠. 아는 사람이니까 특별 가격에 드립니다. 대신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마세요, 제발.
김 : 현란하지만, 재미있군요. 그것이 인드라 선생의 장점인 듯합니다. 의문이 드는 것이 그렇다면 김정일 어때? 박정희 어때? 하는 논쟁이 지났다고 한다면, 이제 무슨 논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인드라 : 당연히 신자유주의 논쟁이죠. 이 논쟁 전에 단막극처럼 할 것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은 들긴 하지만 나올 것이 바로 전두환 문제죠. 민청학련 세대에게는 박정희가 사탄이었지만, 386에게는 전두환이 사탄이잖아요. 사실 내가 그랬어요. 당한 것도 많구요. 교도관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야이, 빨갱이야, 너는 물론 네 가족까지 다 끝났어. 인생 종쳤다고 생각해. 휴... 뭐, 이런 이야기 군대를 가서도 듣고, 하여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리해야 됩니다. 누구보다 386들이 먼저 정리해야 되요. 하지만 이것도 선수를 놓쳤어요. 김대중처럼 노무현이 전두환을 용서한 겁니다. 우리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감정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냉정해야 합니다. 이제 시간이 흘렀어요. 전두환 시대도 냉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김 : 선생께서는 그간 특이한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령 지난 김영삼 정권 때부터 초기 집권 일년차까지는 침묵하거나 혹은 예술, 스포츠 등에 전념하다가 이년차부터는 정치적으로 퇴진하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다가 레임덕이 시작되면 오히려 옹호하다가 선거 기간 때에는 다음 정권이 누가 될 것이다,라면서 다음 정권에 관해 한 편으로 비판을 가하는 양상이었습니다. 우연이겠지만 지금까지 선생의 예측이 놀랍게도 백프로 다 맞았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대전제를 두고서 여러 흥미로운 게임을 전개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도대체 선생의 진심은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고는 합니다. 가령 선생의 안티팬들은 이런 게임 전술로 인하여 선생이 이회창 당선을 예측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박근혜 당선을 예측하였는데 어떠한가요?
인드라 : 괜히 안티팬입니까. 적당한 질투심은 오히려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스토커 수준만 아니면 되구요.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빨리 가져가다 보니 다른 이들이 변했다, 아니다를 말한다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정권 퇴진 운동할 때였던 듯해요. 중요한 건 현 시점이겠죠. 노무현 정권은 탄핵을 받아 사실상 재집권한 셈이죠. 해서 일년 정도 유예한 셈인 거죠. 꼭 일년이라기 보다는 따져 보면 올 신년처럼 그렇다는 거죠. 정확히 일년은 아닙니다. 올해는 사실상 노무현정권 집권 이년차입니다. 아직은 레임덕이 시작할 때가 아니지요. 분명한 건 내년이면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내년에는 노무현 지지세력도 노무현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큽니다. 모든 세력이 전부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겠죠. 억울하게 여길 것 없어요. 생리죠, 뭐. 힘이 있는 곳에 몰리기 마련이니까요. 언론도 그래요. 나폴레옹의 파리 입성 과정을 보도한 언론이 대표적인 거죠. 해서 지나치게 언론 탓을 하는 건 우스운 겁니다. 그게 언론의 본질인 거죠. 저는 아마 내년이면 노무현 정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퇴진운동하면서도 잘 하고 있는 건 잘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김대중 정권 때도 퇴진운동 전개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이 정략적이다, 뭐다 할 때도 잘 했다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정략적이다, 운운, 노벨상 받으려는 수작이다, 운운에 대해서 비판했죠. 그리고 남들이 다 하는 비판 중에 안 하는 것도 있어요. 가령 인사 비판이죠. 호남 출신 일색이다, 뭐 이런 비판 말입니다. 난 그래요. 호남정권이 서서 호남 인사 백프로로 하면 뭐 어떠냐?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 중요한 건 그런 호남인이 백프로를 하건, 말건 잘 하고 있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냐 이런 것이란 거죠. 그런데 다들 관심이 있는 건 호남인사 몇 프로다, 서울대 출신이 뭐다, 고대 출신 어쩌구 이런 거라는 거죠. 이런 거 다 없어져야 해요. 그래놓고서는 서열폐지다 운운하면 우습잖아요? 코드 인사 운운하는데 웃기는 소리라는 것이죠. 만일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좌파 인사로 백프로를 해야죠. 그래놓고 일을 못하면 심판을 받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아, 물론 원칙이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은 좀 더 복잡하지요. 그래서 제가 가끔 학교 이야기하고, 지역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항적 의미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박근혜가 당선된다고 저는 봅니다. 다만 자연과학의 미시영역이나 사회과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대상간의 상호작용이 있잖습니까. 대표적인 것이 증권시장이죠. 어떤 호재가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 말입니다. 비밀리에 호재가 소문으로 돌 때까지만 주가가 상승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요. 해서 심리학이 중요해지긴 합니다만. 심리학만으로 사태를 바꿀 수는 없지요. 오히려 이런 점을 경계해서 지나치게 사태를 조급하게 바꾸려 하면 역작용만 일어납니다. 즉 당장에는 유리할 수 있어도 오히려 내년에는 더욱 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를 그저 '썰'로만 받아들이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 네 예측이 잘 맞기를 바란다. 이 정도면 그만인 게죠. 게다가 지금까지 운이 좋아 우연하게 점쟁이처럼 맞았다 해서 앞으로도 맞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저도 그렇게 보는 겁니다. 과학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는 하지요. 확률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구요. 일기예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전 몇 퍼센트식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정말 정확한 것인양 여겨진다 이 말입니다. 가령 제가 이러저러해서 박근혜 당선이 51% 정도 낙관적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좀 웃기다는 거죠. 오히려 제가 관심을 가지는 건 제가 박근혜 당선 예측을 한 이후의 사태 전개인 것입니다. 각각의 세력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말이지요. 그 패턴을 연구하죠. 그래서 참고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계속 수정한다는 거죠. 그렇지만 상황이 불리하다 해서 처음에 말했던 걸 바꾸지 않아요. 다만 지난 대선 때처럼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제가 전술적으로 개입을 좀 하기 마련이죠. 뭐,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다만 적절한 장소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슬쩍 상대를 혼란하게 만들어놓지요. 즉 변수를 최소화시킨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래요. 내가 하는 행위는 아주 사소하고 무시할만한 것입니다. 초기 조건에서는 말입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내 글쓰기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 만큼만 만들면 상대들이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힘이 있는 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인다 이 말입니다. 그 과정이야 저도 모르죠. 어떻게 압니까. 즉 경로는 몰라도 돌아서 가든, 지름길을 가든 종점이 있다는 거죠. 그들은 놀라운 열정으로 그걸 해냅니다. 대단하더군요.
김 : 이야기하다 보니 엄청나게 다른 길로 온 듯도 싶습니다. 교육 문제 이야기하다가 예까지 왔습니다. 저야 괜찮지만, 독자들이 혼란스러울 듯합니다. 읽다 보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지는, 산란하는 그런 양상이 곧잘 전개되는 듯하거든요. 선생의 글이나 말씀이 다 그렇다는 겁니다. 이 점에서 전통적인 글쓰기나 말하기는 아닌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그렇다면 중고교에서의 사립고를 원상회복시키자는 것인가요? 가령 초등학교처럼 공립에 대한 사립의 우세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인드라 : 아니요. 그건 제 본래 생각이 아닙니다. 다만 자유주의 정책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기여입학금 제한부터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죠. 원칙적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은 일종의 완충 역할인 셈이죠. 선입견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이런 선입견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드는 거죠. 없애는 게 아닙니다. 가령 한대수가 박정희를 존경해? 이런 죽일 새끼. 이런 작용을 완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이럴 때는 길게 말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요즘 세습 문제를 거론하는데요. 교육제도로 이 문제 못 풉니다. 시장경제 원리 충실하게 하면 어차피 세습화가 필연적입니다. 그런 것을 막자고 공정거래위이니 출자총액제한이니 평준화이니 하는데요. 효과가 있을 때나 막는 것이지, 효과도 없고, 역효과만 날 때는 오히려 적극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지난 구한말 때처럼 개방을 막자고 했지만 효과가 없다고 판단이 되면, 즉 대세일 때는 오히려 보다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쌀개방 문제가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하면 미래가 암담합니다. 지금 일부 농민단체 하는 것이 오히려 농민을 죽이고 노동자를 죽이는 것이죠. 그리고 대공장 노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문제, 특히 후자가 중요한데 하물며 이에 비해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교육 문제를 교육 마피아들에게 끌려 다녀서야 어디 말이 됩니까. 학원 강사들만 기뻐할 것입니다. 또 다른 과외 시장을 만들어주었다고 말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껏 그러하였듯 일부 학원 강사들만 이익을 보겠죠. 다시 말해, 반쪼가리 교육 개혁, 혹은 개편이란 이제껏 그러하였듯 보다 영세한 학원 집단을 떨구어내는, 지속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이죠. 공황을 예방하는 차원이라고나 할까요. 다만 시간을 지연시켜서 더 고통스럽고,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일 따름이죠.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사립학교 제한의 취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노조 전임자 문제처럼 말이죠. 다 사문화된 겁니다. 이름 뿐인 평준화인 셈입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잖아요?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서울대와 지방국립대는 재정적 지원을 더 달라고 합니다. 해주면 됩니다. 대신 사립대의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면 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사립대 가게 해주면 됩니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그러하잖아요. 국민 정서 운운합니다만, 이거 거짓입니다. 운동부에 돈을 대주어서 끼워팔기로 가는 관행 많잖아요. 이런 부패만 양산시킨다 이 말입니다. 기여입학제 반대 핵심이 뭡니까. 간단합니다. 서울대 우위를 지키겠다 이거죠. 관료들이 서울대요, 학원강사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서울대입니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서도 서울대 출신이라고 속이고 강사짓하구요. 이 엄청난 시장을 왜 외면하겠어요. 일부 서울대 출신의 고도의 장난인 거죠. 이거 절대로 그놈들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갖가지 이유로 반대할 것입니다. 민노당의 서울대 폐지론이요? 이거 말장난입니다. 알고 보면 서울대 강화론입니다. 신경을 쓸 것 없어요. 무위 같은 작자가 취직원서에 학력 기재하지 말자라는 식의 말장난입니다. 이런 게 전형적인 서울대 출신 중 사악한 새끼들의 특징이지요. 어차피 어떤 출신이건 다 사악합니다. 일부만 그렇지 않을 뿐이죠. 기업가 정신, 혹은 혁신 정신이라는 것이 어차피 이런 소수에 강한 경쟁력으로 버티는 것일 따름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서울대 출신의 소수가 나머지 서울대 출신 대다수를 먹여 살리고 있다. 즉 대다수 기생충 서울대 출신들을 소수의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사회에서 먹여 살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하여 그런 인재들은 내 제안을 긍정할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라고 여길 것입니다. 보다 진취적인 제안이다,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기생충들이야 어디 그러하겠습니까. 큰일난다고 여기는 거죠.
사립고도 민족사관고와 같은 학교를 많이 만들면 되는 겁니다. 장학금으로 전액 지원되든, 아니면 기여입학제로 하든 말입니다. 대신 사립학교에는 일체의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 고사되는 사립고가 있겠지요. 따라서 대개의 예처럼 유예기간을 한시적으로 두어서 차츰차츰 재정지원을 끊으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국공립학교 지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 지역할당도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뭐냐. 그 군 지역에서도 결국은 돈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재정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지요. 가령 면 출신보다는 읍 출신이 더 잘 한다 이 말입니다. 하여 상대적으로 오히려 도시 서민들 자제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강남 출신들 부러워서 밑으로 끌어내리려는데 오히려 강북 출신들이 더 피해를 입는다는 거지요. 아파트값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일가구 삼주택인 사람들이 집을 팔면 어디를 먼저 팔겠어요. 사는 집이 아닌 집이란 대개 강남권이 아닌 집이겠죠. 물론 지금이야 당국의 조치 때문에 이상현상을 겪지만 말이죠. 이 문제는 설사 나중에 한나라당이 잡든, 다른 당이 잡든, 누가 되든 재조정될 것입니다.
국민정서란 조작된 것입니다. 주변에 대고 물어보세요. 교수나 교사들 빼고는 그런 소리하는 이들 주변에 없어요. 결국 철밥통 이야기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맑스가 우려한 싸구려 평등주의의 예로 극우적이다 이 말입니다. 다같이 망하자, 다름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이게 매우 어렵습니다. 교육부 마피아. 박정희 정권이 생산하고, 전두환이 확대재생산한 교육부 마피아들. 어려워요.
김 : 이번 김진표 교육부장관에 대해 교총과 전교조 모두 반대하는 것을 철밥통 지키기라는 점 이해합니다. 동시에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만.
인드라 : 차이가 당연히 있지요. 교총에는 경쟁력이 없는 사립학교장들이 많습니다. 전교조에서 타켓을 삼는 이들이란 거죠. 이들 경쟁력이 없는 사립학교장들, 특히 지방 사립학교장들은 불안합니다. 지금도 매우 어렵거든요. 그러나 이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핵심은 바로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들이 진정한 타켓이지요. 더 핵심적인 타켓은 바로 연세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재정이 괜찮거든요. 반면 고려대는 재정이 어렵습니다. 등록금도 주변의 이해와 달리 고려대가 좀 더 비쌉니다. 재정이 어려우니까요. 고려대가 저런데 하물며 다른 대학은 어떠하겠습니까. 요즘 고려대가 필사적으로 민족고대라는 낡은 슬로건에서 벗어나 글로벌이다 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런 이유죠. 마찬가지로 동아일보도 재정이 무척 어렵고. 지금 각 대학 서열이 학과간 서열보다 우선인 것이 문제인데요. 이건 바로 법의 힘이요, 법을 쥔 각 대학 졸업생들의 힘이란 거죠. 한국에 어느 대학 출신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습니까. 이거 무너지면 학과 순위가 엄청나게 변화됩니다. 미국처럼 어느 대학은 어느 학과가 더 낫다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고려대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고려대 법대 이외에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려대 정경대가 지금 부각되는데 이건 고려대 법대의 힘에 의존한 것이죠. 자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여입학제를 풀면 연세대가 서울대를 누를 수 있겠는가. 없어요. 저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다만 현상유지할 따름입니다. 다만 지금대로 가면 모두가 망하죠. 서울대든, 뭐든 한국 대학 전체가 망해요. 그래서 민족사관고 출신들이 아예 해외로 가고, 서울대 대학원이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 있는 자제들 모실려고 각 대학들이 애를 쓰고. 서울대도 예외가 아니라고 봐요. 그러니 더욱 폼을 잡으려고 채플 반대 시위한 학생 서울 법대에 합격시키는 것 아니겠어요. 연세대 의식해서이겠죠. 물론 저는 이 친구가 시위할 때 지지했어요. 이는 제 블로그에 보면 나옵니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정운찬이 구사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정 염려하는 건 연세대 출신이냐 하면 아니라고 봐요. 나는 성대라고 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성대 출신들이 한국사회를 지배할 것입니다. 왜냐? 삼성이 있거든요. 하여, 연세대는 욕을 먹는 대신 좋은 일은 성대나 삼성이 취할 것입니다. 냉정해집시다. 서울대라고 다 서울대 아닙니다. 서울대 법대가 중요하지요. 그리고 앞으로 로스쿨 제도가 들어섭니다. 게임 끝입니다. 서로 치열하게 쟁투를 하겠지만, 결국은 서울대, 연고대, 그리고 서울 몇 개 사립대와 지방국립대 이외에는 아예 법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게 로스쿨 제도라는 겁니다. 미국과는 다르게 갈 것입니다. 법이란 게 시장 개방이 힘들거든요. 의료시장은 개방되겠죠. 지금 전국 각대학 의과대학이 모두 커트라인이 높잖아요? 의과대학생들은 전국 의과대로 알고 있죠. 왜 이렇게 되었나요? 의사들이 법률가들에 비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공대와 인문계가 망가지고, 다음으로는 이런 식으로 해서 의대가 망가지고, 최종적으로 살아 남는 건 법대와 경영대이겠죠. 경영대 출신이야 얼마든지 요즘 참여연대식으로 해서 압박을 가해서 여기저기 사외이사 자리나 주면 되고, 그걸 경력으로 삼아 투기자본 변호나 하면 되는 거죠. 결국 핵심은 서울 법대인 것입니다. 여기에 각종 기생충들이 피라밋처럼 붙어 있는 것이 정체란 거죠. 미국에서 보면 왕조 교육이다,라고 할만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사회 생활하면 알게 되니 한국이 싫어지고, 다들 자제 교육을 해외로 보내는 것입니다. 법대 출신이고, 변호사 생활하는 이조차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자식이 꼭 자신과 같은 길을 간다고 보장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시 말해 서울 법대 출신도 불안하다는 거죠. 더 자리는 치열해지고, 그만큼 더 무슨 헌법을 수호하는 변호사 모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등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게 다 뭡니까. 자리가 좁기 때문에 좁은 데로 들어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죠. 지역주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건 그저 교육 마피아가 만들어낸 허구적 산물일 따름인 것입니다. 진보라구요? 머리가 좋은 놈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기를 쓰고 더 진보 찾는다는 거죠.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근혜가 당선된다고 여긴다 이 말입니까. 교육부 마피아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냐구요? 그리고 박근혜가 설사 이를 노무현처럼 인지한다 해서 달라질 것이라고 보느냐구요? 아니요. 그렇게 안 봅니다. 박근혜가 뭘 하리라 보지 않습니다. 이명박도, 정동영도 그 누구도, 설사 권영길이 나선다 해도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파열구를 내겠지요. 노무현이 되었잖습니까. 이거 예상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왜 자칭 좌우파가 모두 노무현에 불안을 느낀 줄 아세요? 좌우파가 아니죠. 현재의 구도는 좌우파 구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이념지형이 아닙니다. 간단해요. 노무현을 예상하지 못한 거죠. 그것이 불안했던 것입니다. 다만 당선되면서 세력들이 노무현을 끊임없이 길들여왔던 것이죠. 지금 노무현이 하는 행위는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입니다. 이 발악이 끝나면 노무현은 순한 양이 될 것이며, 한국 지배층의 입맛에 따라 난도질을 당해도 힘을 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지배층은 노무현 대신 다음 파트너를 열심히 탐색할 것입니다.
김 : 선생께서는 처음에 노동문제에 비해 교육문제를 사소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보자면 오히려 매우 핵심적인 것인양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간신히 정리하면 이렇군요. 김진표의 자유주의적 교육 개혁, 혹은 교육 구조조정이 다른 구조조정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될 확률이 많다는 이야기이군요. 아닌가요?
인드라 :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노동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종전의 노조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는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삼성에 노조를 세운다는 건 이전 방식과 다를뿐더러 새로운 철학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하면 노동자보다 소액주주운동이 더 효과적인 것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노동자도 노조의 틀에 안주하여 기업의 혁신을 창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해물로 작용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입니다. 종전의 케인즈 논리가 망가지죠. 기아차 사태는 바로 케인즈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승리인 것입니다. 여기에 좌파는 고작 주식시장에 대한 접근 금지만을 내세웁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나는 이런 것이 소극적 대응이라는 것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겉으로야 국민 연금 가입자들을 걱정하는 것이지만, 아마 속으로는 자신들도 자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국민연금제도를 중단하라,라는 이야기가 더 자신들에게 스스로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케인즈주의자들은 이런 말 할 수가 없죠. 감세 정책에 반대하고, 연금제도를 보존하는 것을 좌파 정책으로 굳건하게 믿고 있죠. 그들은 자신을 좌파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신자유주의에 패배하여 종전의 보수주의적 지위에서 자유주의로, 나아가 극우적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지난 삼십년대의 뉴딜정책 제안할 때야 진보적인 정책이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현재 상태는 이렇다고 봐요. 신자유주의에 패배하여 불안감을 느낀 대다수의 케인즈주의자들은 극우화로 치닫는 반면 그들 중 극소수만이 무언가 과거 케인즈주의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거죠. 하지만 현실화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부족한 소견인 것입니다.
지금 국민들이요?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는 국가 법 효력의 중요한 요건이거든요. 안 내겠다고 버티면 국가가 강제로 세금 징수를 하잖아요. 점점 더 세금을 더 이상 낼 수 없는 이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다들 사회 안전망, 안전망 운운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건 하나도 없지요? 그래요. 그게 바로 오늘날의 국가인 셈입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일반화가 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금 거부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국민연금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향후 십 년 이내에 연금을 타는 이들은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땡을 잡은 것입니다. 그분들에 한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광고를 전적으로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로또 당첨되신 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법개정이 필연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자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십 년 바깥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의 위험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현재 각국은 준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파시스트는 아닙니다. 하지만 파시스트화로 치닫는 준비를 하고 있지요. 이러한 전쟁에서 살아 남는 국가들만이 마치 공황에서 살아 남듯 보다 결속된 자본과 군사력과 법의 힘으로 무장할 것이며, 나머지는 국가 빚에서 개인 채무로 바뀌듯 전비 부담으로 인하여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중국의 경제성장과 인도의 경제성장이 전쟁을 지연시킬 것입니다. 하여, 미국과 유럽은, 부시 정권에 대하여 이라크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세계체제를 유지시키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려 하는 부시의 방법론에만 문제를 삼을 뿐인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부시 아버지처럼 좀 더 세련되게 왜 전술을 구사하지 못했느냐에 대한 질책인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의 입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이러한 세계 상황에서 괜한 돌을 맞아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세상은 약한 것들이 먼저 다칩니다. 지진해일이 나도 노약자들이 많은 희생을 치루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순박하게 노는데 가장 나이 어린 아이를 괴물이라고 하면서 놀립니다. 인간에게는 잔인한 구석이 있습니다.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너무나 천사처럼 웃습니다. 세상이 다 환해져요. 하여 윤리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된 것이지요. 어디까지가 정당방위인지, 어디까지가 살인인지 말입니다. 어른에 의해, 지배계급에 의한 규정된 것이지요. 규정의 최종 근거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글처럼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들 합니다만, 누구도 아직 그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글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만 생각하자.
김 : 오늘 할 일만 생각하자구요. 좋습니다. 대담을 이쯤으로 하지요. 끝으로 그렇다면 오늘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인드라 :
김진표, 물러나라.
자유주의를 전면 거부하자는 좌파의 제안을 거부할 바에야 차라리 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도 못할 바에야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것해서 미래의 더 큰 해악으로 드러나기 전에 물러나라.
김진표, 물러나라.
자유주의 정책 전면적으로 펼치지 못할 바에야 물러가라. 교육부 마피아들한테 초장부터 굴복할 바에야 물러나라.
김진표, 물러나라.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국민에게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야 하는데 초장부터 김새게 나올 바에야 물러나라.
김진표, 물러나라.
평준화가 더 이상 효과가 없고 역효과만 있어서 발생한 강남 교육 특수를 강남만 때려잡으면 된다고 여기는 그런 한심한 발상을 할 바에야 물러나라.
김진표, 물러나라.
3불 정책 폐지하지 못할 바에야 물러나라.
김진표, 물러나라.
서민 위한다는 놈들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서민 핑계를 대고 기득권만 챙기는 교육부 마피아 살찌우는, 서민만 더욱 고통스럽게 빠지는 교육 개악할 바에야 물러나라.
국민이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단다. 국민이 제대로 알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국민도 뭔가 희망이 있는 거 아니냐. 국민더러 상인 정신을 배우자고 해라. 국민더러 어릴 때부터 재테크가 무엇인지 경제 공부하라고 해라. 국민더러 경제 서적 어릴 때부터 읽으라고 하자. 그래야 국민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느냐. 농경사회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냐. 이왕 대세라면 하루바삐 먼저 맞아서 이전처럼 압축적으로 살 놈 살고 죽을 놈 죽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죽을 놈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니냐. 서울대 폐지 바라지 않는다. 제대로 된 교육부 장관이 나와서 교육부 마피아들 개의치 말고 3불 정책 폐지하라. 국민의 위에, 학부모 위에 올라타서 철밥통을 지키고 있는 교총과 전교조들을 교육 마피아들을 작살내라."
김진표 교육부장관 물러가라 광풍무록(狂風舞錄)
2005/01/29 09:59
http://blog.naver.com/miavenus/60009690367
"김종화(이하 김) : 오늘도 선생을 모시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보통 명절을 앞두고 각 정치권에서는 분주한 명절맞이 정치 캠페인을 해왔습니다만, 올해에는 뜸한 것이 아닐까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천만 대이동이라 하지 않습니까. 고향에 가서 친지들과 함께 하며 정담을 나누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움직이는 반상회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각 정당이 뜸한 것은 살림살이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치권이 조심스러운 것이지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이 많으면 40%대를 기록하지 않습니까.
김 : 선생께서는 무당파에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구성된 것일까요? 또한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인드라 : 동티모르 선거를 예로 들겠습니다. 상당히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지요.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일한 사회에서 초기에는 투표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진행될수록 한 사회 내에서 이해관계들이 얽히면서 점차 투표율이 낮아지게 됩니다. 집단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근거한다면, 무당파들은 보다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나 봅니다. 간단한 사례를 지적합시다. 이주노동자를 봅시다. 우선 사회와 정치권이 관심을 지니고, 언론에서 신경을 좀 쓰겠지요. 그런데 이주노동자 문제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볼 때, 여러 다양한 문제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죠.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권과 언론이란 자신들을 이용하는 대상으로만 여긴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일단은 그들을 긍정적으로 봅니다만, 갈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이 정치세력, 저 정치세력으로 옮겨볼 수 있지만, 대동소이함을 알게 됩니다. 정치권에 관심을 끊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고 자연스럽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정치권이 자신들 이해관계에 필요하면 오지 말래도 올 것이니까 말이죠. 관심을 가져주는 것까지야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런 거죠.
김 :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무당파들이라는 일반적 이름 속에서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이들로 구성된 것처럼 볼 수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인드라 : 그렇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생활 조건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역순으로 말씀드리죠. 제가 한국에서 아나키즘이다, 뭐다 하는 흐름을 대중적으로 느낀 것은 구십년대 초부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87년 이후부터라는 것이죠. 그 이전이야 학술적으로 흐름이 있었지만은, 대중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87년 이후를 볼 때, 정권이 바뀐 후에 이러한 층들이 다소 활발해졌다가 이후 다시 침체되는 양상을 거듭했다고 저는 봅니다. 노태우서부터 노무현까지 말이지요. 이런 점에서는 시기 별로 그들끼리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봅니다.
동시에 개인 일반보다는 구체적인 개인을 요구하는 특징을 지닌 아나키즘 흐름에서 볼 때, 일단 형성된 흐름 속에서 다시 철저히 독자화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하여 갈수록 흐름이 하나로 통일되기보다는 끝없이 분산되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김 : 요즘 사회운동 일각에서 보자면, 소위 386들 입장에서 보자면, 정파 구성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과 연관을 지을 수 있습니까?
인드라 : 물론입니다. 우선 저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봅니다. 대중적인 의미에서 한국 아나키 전후 1세대는 87년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라고 봅니다. 왜냐. 이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에서 소위 좌파가 역사적 좌파로 스스로 간주하며 태동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나키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각기 달라겠지만, 주사파에 밀렸기 때문입니다. 사회운동에서 주류의 지위에서 둘 다 이탈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동구 붕괴도 한 몫을 했다고 보며, 김일성 사후에서 북한 대기근 시기에 또한 상당한 이탈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구십년대 이후에 형성된 운동권은 좌파와 민족해방파라는 단순 도식을 넘어서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로 인해 구체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실천주의적 양식이 부상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당 세력일 것입니다. 뚜렷한 이념적 지향이 없이 특정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세력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아나키즘과 좌파와 주사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모두들 하나같이 국가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북한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이전 전대협, 반미청년회나 이전 좌파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과거 좌파였던 이들이 또 다시 이탈하는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우리는 보통 386이나 사회운동계에서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으로 가는 이들만을 봅니다. 그 반대로 가는 이들을 잘 보지 못하지요.
축구로 봅시다. 축구하는 이들 중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좀 더 나아가 K리그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극히 소수입니다. 나머지들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식이 일단 물적 기반이 되는 셈이지요. 해서 두 가지 양상이 발생하더군요.
먼저 수동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같이 열심히 각 정권 출범을 위해 뛰었는데 혜택을 받은 것은 극소수고, 나머지는 몸을 바쳐 일했건만 돌아오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인생이 허무하겠지요? 또 지역 출신이, 업계 출신이 나선다 해서 많이 도와준 것은 없지만, 내심 기대가 컸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막상 되고 보니 예전과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죠.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능동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들보다 더욱 극소수이겠지만, 자신이 세운 목표가 실현되니 이제 자신만의 관심사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전자는 기층민중에서 주로 발견되는 현상이라면, 후자는 신자유주의에서도 이십 프로 안에 든다는, 제가 우파라고 부르는 층에서 주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심리적 중산층과 극우파층을 각각 형성시키지요.
상대적으로 다소 형편이 낫다고 할 수 있는 심리적 중산층은 경제적 지표로 보면 중산층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는 중산층이라 스스로를 간주하는 이들입니다. 중산층적 허위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여 요즘 뭐가 뜬다 하면 따라가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끝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바라게 됩니다. 연예계에서 신인을 끝없이 발굴하듯 말이지요. 이렇게 되면 정치인이라는 것이 일회용 휴지가 됩니다. 일단 국회에 들어가면 걸레가 되니까요. 나는 이러한 심리적 중산층을 6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동층은 40%라고 봅니다. 노무현 탄핵 당시에 열린우리당 지지율과 최저 하락치를 비교하면 약 20% 정도가 왔다갔다 합니다. 한나라당도 약 10%대에서 왔다갔다 하구요. 민노당 등 나머지 세력을 비교하면 또 한 10% 약간 못됩니다. 이 당 저 당으로 옮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지지를 하든가, 아니면 모두 안 지지하든가 하겠지만, 이를 총합하면 대체로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40%를 제외한 20% 정도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층으로 봅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고학력이고 지식인적이어서 냉소적이거나, 혹은 사는 것이 너무 바빠서인 것입니다. 아침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장사를 하거나, 혹은 샐러리맨인 경우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12시 땡을 하면 들어오는 이들이 실무진들 사이에 많습니다. 집을 오직 자는 데만 쓰는 이들 말이지요.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아울러 주목할 점은 점차 투표율이 하락하는 원인은 주로 심리학적 중산층 중에서 그간 부동층으로 분류할 수 있었던 젊은 층에서 점차 정치 무관심층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지난 선거 통계들을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른들이 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극우파층은 차상위 극빈층에 분포한다고 봅니다. 하던 자영업이 갑자기 파산했다거나 일자리에서 쫓겨나서 막노동판으로 간신히 하루벌이를 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상대적으로 보다 어려운 형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독재자를 지지합니다. 누구 하나 나타나서 확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지요. 전쟁이라도 나라,라고 여깁니다. 월북도 고려하겠지요? 김일성 장군 만세도 할 것입니다. 인권이고 나발이고 먹고나 살게 해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장은 배고픈 것을 면하고 있어도 내일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온갖 사회 모순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일 남자라면 지독한 마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극우파층을 1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주소지 불명이라든가 하는 이들, 가령 노숙자라든가, 하여간 갖가지 이유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하여간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선거와는 무관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최하층을 구성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들을 10%라고 봅니다. 해서 중산층 20%, 심리적 중산층 60%(이 중 40%가 부동층, 20%가 정치 무관심층), 차상위 극빈층 10%, 극빈층 10% 정도로 봅니다.
후자는 시장자유주의와 급진자유주의로 분화된다고 봅니다. 둘 다 우파층이라 할 수 있는 20% 내부에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대개 오피니언 리더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인맥에 따라서 거의 대부분 당파를 결정하며, 정치에도 적극적인 편입니다. 대부분 생활이 안정되어 있으며, 고소득자이며,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 일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 공무원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지표는 출신 지역, 학교, 인맥, 마지막으로 극소수이지만 이념적 지향일 것입니다. 흔히 보수, 중도, 진보 이런 식으로 이념을 분류하잖아요. 다 이들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일 따름인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층민중하고는 상관이 없다 이 말입니다. 저는 이들 층도 전체 층과 분포가 비슷할 것이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기층민중을 대리하는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거든요. 따라서 중도라고 간주하는 이념적 지향이 절반 조금 못 미친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실제로 정치적 중핵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이런 층과 상관없이 각 정치세력에서 비슷한 분포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다 비슷하다고 저는 봅니다. 다만 지지율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냐, 하는 조직화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이들이 각각 1%라고 봅니다. 약 5% 이내가 실제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왼쪽으로 갈수록 목소리만 큰 것처럼 보입니다. 당연하지요. 중핵은 비슷한데 지지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나키는 급진자유주의에서 태동하는 것입니다. 더욱 더 급진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나키즘에서 다만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로 이들을 보자면, 개인주의다라고 볼 수 있는데 말이죠. 개인과 개인 일반은 다르죠. 개인주의라는 건 없다는 쪽으로 저는 보는 편이거든요. 자유주의다라고 본다 이거지요. 개인은 있죠. 하지만 이런 나를 집단적으로 뭔가 엮는다면, 그것이 또한 아나키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지요. 연대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지, 조직화해서는 곤란하다고 보거든요. 해서, 저의 부족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보는 것이죠. 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바보들, 혹은 천치들이란 영화에서 보면, 모두들 파시즘, 전체주의에 저항한다고 바보 흉내를 내거든요. 진짜 바보가 되자 이런 것이죠. 그런데 아는 사람들 앞에서 진짜 바보하기로 했는데 다들 실패하고 만다는 거죠.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서는 말이지요. 이런 진짜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대부분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척하고 있다고 감히 보는 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나키스트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죠. 모든 층이 그렇다고 봅니다. 실제로 혁명적인 이들, 실제로 보수적인 이들, 실제로 아나키스트인 이들은 어느 층에서 극극소수라고 봅니다. 어느 조직이건, 열 명 중에 한 명, 혹은 백 명 중에 한 명 정도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조직의 원리에 따라 왕따 당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피가 흐르기 마련이라 너무 순수하게 보여도 자신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적당히 더러워야 같이 해먹기가 편한 것이죠. 말 안 해도 알 것입니다.
김 : 오늘날 인터넷 혁명으로 말미암아 인터넷 언론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극찬에서부터 혹평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선생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는지요.
인드라 : 구조조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과거에도 용어는 달랐지만 꾸준히 있어왔는데 외환위기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구조조정에서 생각해 볼 점은 중간층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즉 그간 상층과 하층의 연락책을 맡았던 이들이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인터넷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가령 과거에는 정제된 언어로 방송이나 신문에 나왔지요. 사석에서 파워 엘리뜨들이 하던 이야기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좋게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합니까. 파워 엘리뜨들 이야기가 여과없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왜냐? 점차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해서 사적인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가 곧바로 인터넷에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환영하는 편이죠. 좌파적으로 표현하면, 보다 계급적 적대가 분명하게 노출이 되니까 말입니다. 다만 여기서 계급적 적대라고 했을 때, 좌파에게 지지세력이 있느냐 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각한 일이죠. 여기서 좌파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우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왜냐? 다들 자신이 없다고 할 수 있거든요. 이념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을 세워야 하긴 하는데 세우자마자 이념과 철학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 속출한다는 것이지요. 조직화를 위해서는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하기도 하는데 다들 조직에서 말은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고 하지만 크고 작다는 그 가치 평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젊은 층들이 보다 예민한 편이고, 잘 알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순진한 편입니다. 어릴수록 보다 계산이 빠르고, 정치적입니다. 젊은이들이 연예이야기에만 빠져 있다고 하죠? 이들이 얼마나 정치적인데요. 팬클럽을 통해서 이미 사회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 건 다 알고, 언론플레이도 대단합니다. 붉은악마도 그래요. 1세대는 그야말로 육칠십년대 사회운동하던 이들처럼 주체들이 반상업주의에 철저하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2세대는 달르죠. 1세대야 그것만으로도 명예심이 충족되었지만, 2세대는 뭔가요? 명예욕이라는 건 획득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몸을 바쳐 했는데 실리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충돌이 생기는 거죠. 더 나아가 지지층이 확장되니까 각자가 모두 세력화가 되어 춘추전국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초기에는 그랬어요. "우리가 운동권이냐?" 즉, 운동권을 은연중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불쌍하게 보기도 하고, 왜 실리가 없는 일을 하느냐, 라고 반문한 것이죠. 결국 다음 세대에서는 이 모두가 다 부정이 되었다 이 말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흐름이 있었지만, 언제나 잠시 뿐이었고, 그 역시도 또 하나의 실리로 나타나기에 지리멸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 되니까 각 사회세력들이 개입하더라 이 말인 것입니다. 시민단체도 개입하고 말이죠.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이러한 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김 : 대담이 길어졌습니다.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느 쪽으로 갈까요. 끝으로 한 말씀을 해주신다면?
인드라 : 노무현 정권 직후 저는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벨기에 모델처럼 되지 않겠나 제시한 바 있습니다. 벨기에는 언어에 따라 같은 이념지향의 당이 다릅니다. 북부와 남부의 언어가 다른데 지역 풍토가 마치 한국의 동서 지역구분처럼 되어 있는 편입니다. 하여 같은 이념지향이라도 우선순위를 다르게 두는 역사를 보인 바 있습니다. 브라질 같은 경우는 땅덩어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정치세력이 현재의 민노당처럼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나는 한국이 브라질과 같지 않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벨기에 모델에 점차 다가가고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끼여 있는 동시에 네덜란드에도 영향을 받는 국가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오랜 산업화 역사를 지닌 국가 말이지요. 해서 저는 정당이 4개 이상 정도로 분화되지 않겠느냐라고 본 것입니다. 우선 서쪽에서 보수와 진보, 동쪽에서 보수와 진보로 말이지요. 노회찬이 추미애더러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내가 노회찬에게 묻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죠.
나는 노무현 정권 이후에 정치세력이 재편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노무현 정권 이후에는 민주당이 강화될 것으로 봅니다. 동시에 현재 영남 중심적이고, 상대적으로 호남을 소외시키는 양상인 민노당 구조가 바뀔 것으로 봅니다. 어쩌면 당이 깨지면서도 열린우리당 반미청년회세력에 민노당 당권파 일부가 결합하면서 영남지역당이 되는 양상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나는 민노당 내 자율과 연대 회원도 아니고, 민노당원도 아니지만, 향후 자율과 연대라는 조직이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 민노당 당권을 장악할 것이다, 라고 봅니다. 공동체 자유주의나 사민주의나 요즘 보면 자유주의나 사민주의 구분이 거의 유명무실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지표로 삼는 이들이 부동층이고, 무당파층이고, 젊은층인데 이들이 점차로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 이념들은 결국 이러한 방향에 항복하고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물론 사민주의, 자유주의, 공동체 자유주의, 아나키즘 등등이 당장 뭔가를 해낼 것이라고 여기지 않거든요. 다만 각 세력들의 형식적 구분 정도를 주겠지요. 다만 그런 형식적 지표만 보고서 지지하거나 당원이 된 이들은 내부적으로 실망이 클 것입니다. 각 당마다 말입니다.
각 당은 결국 지역 정치를 기반으로 하기에 국민정치를 할 수밖에 없으며, 지지율 확보를 위해 부동층 흡수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면, 또한 대부분 공통의 과제를 두고 있으며, 단지 누가 더 적임자인가의 문제일 따름이라고 봅니다. 나는 한나라당서부터 사회당까지 그렇게 큰 차이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분권화를 적극 지지하는 것입니다. 해서 나는 중임제보다는 결선제를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결선제 대통령 선거를 지난 십 년 전부터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저는 현 시대가 헤겔과 맑스의 시대가 아니라고 봅니다. 주관주의적인 시각이 대세인 시대라고 봅니다. 이런 시대에서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지역 정치가 우세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이의 부상에 따라 다시금 정당정치가 재편하는 양상이 계속되지 않겠나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시에 위험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분권화이며, 지방화라고 봅니다. 보다 지방자치기구에 권한을 위임해야 할 것입니다. 더 많이 부여할수록 좋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좁은 땅덩어리에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더욱 분열을 촉진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 통일도 하지 않았는데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바로 그런 이유로 더욱 분권화와 지방화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위험사회이며, 불확실한 사회입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순전히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다른 이들이 헤겔과 맑스를 시대의 낡은 관념이라고 매도하더라도, 누군가는 열심히 연구해서 헤겔과 맑스를 뛰어넘는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당장 현 사회에 쓸모가 없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보듯, 시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다시금 객관주의적인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역사가 움직여왔다고 저는 보는 편입니다. 다만, 오늘날 헤겔과 맑스를 연구한다 해서 그들이 주관주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시대의 제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냄비현상에 대해 저는 이를 바람직하게 보고, 역동적으로 봅니다. 어느 한 쪽으로 몰아주는 승자독식주의가 나름대로 한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제를 선호해왔던 동시에 지난 87년 때부터 균형 감각을 갖추어왔다는 것입니다. 즉 승자독식주의의 다른 한 편으로는 절대적 권한을 휘두를 수 없도록 움직여왔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국회 과반수임에도 국가보안법 철폐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표결로 처리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내부로만, 내부로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가급적 해외로 나가라, 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가능하다면, 해외로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주민들을 정착시키고, 비자를 내주고, 귀화시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마치 중앙아시아 국가들처럼 온갖 혼혈로 뒤범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일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
노무현 정권 이후 2 광풍무록(狂風舞錄)
2005/02/07 04:22
http://blog.naver.com/miavenus/60009945533
"김종화(이하 김) : 또 다시 인드라 선생을 호명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많은 이들이 김정일 정권의 북핵 보유 선언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해서 인드라 선생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군요. 선생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인드라 : 저도 자주 보니 슬슬 지겨워지는군요. 제가 나선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람이 겸손할 때가 있고, 다소 건방지더라도 치고 나갈 때가 있는 법인데 다들 겸손해 하니 제가 폼 좀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 선생께서는 그간 팩트를 강조하는 이들과 달리 팩트를 가급적 무시하라,라는 엉뚱한 소리를 해왔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인드라 : 굳이 범주다, 변증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요. 팩트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현재의 시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 봅니다. 저는 현재가 팩트나 상식이 중요하지 않은 때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현 시대는 불확실성이 보다 증가하는 시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잘 고려해야 합니다. 김정일 정권의 북핵 보유 선언 역시도 이러한 시대에 조응된 산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김 : 선생께서는 지난 글들에서 남북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에서 남 체제의 우위성이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서 남 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 태도를 보수주의, 북 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 태도를 수구 반동, 총자본에 대한 내재적 접근 태도를 자유주의로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다. 동시에 북 체제를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정치체제 시스템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생의 견해에서 북핵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인드라 : 사상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서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선일 것입니다. 냉전시대는 갔습니다. 따라서 냉전 시대적 진영 논리는 갔습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는 이들이 남북 지배층에 굳건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세계에 대해 자신들의 시대착오적인 시대 인식이 보편적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들이 지배층이고, 또한 세계가 한반도에 주목을 하고 있다면 이들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가 균열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냉전 시대 이후를 로마 제국 시대에 비유합니다. 저는 이러한 구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비판적입니다. 서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대체로 보면, 로마 제국의 흥망을 밑바탕에 깔고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논의하는 듯싶더군요. 이런 연유로 유목민을 강조하기도 하지요. 또한 근래 부쩍 모세나 신약의 시대가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해서 가만 보면, 팩트를 강조하는 이들도 가만 보면 이런 신화적 이야기들을 밑바탕에 깔고서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보는 편입니다. 김정일 정권의 선군론이니, 핵무장강국론이니, IT강국론이니 혹은 알고 보면 한국 민족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하나다,라는 등등.
저는 이전에 세계가 현재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정체에 빠져 있으며, 반동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국가들이 준 전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미국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세계인은 모두 하나같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마치 히브리 노예처럼, 또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중동인처럼, 아니면 중앙 아시아의 정복자를 기다리는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환경 문제가 부채질을 합니다. 기후의 이상난동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성이 점차 현실에서 축출되어가고 있으며, 신앙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북핵 사태는 이러한 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북한의 지배층은 과거의 냉전 논리/진영 논리로 더 이상 설명이 불가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지요. 김정일 정권의 핵보유 선언에 중국과 러시아가 당황하지 않습니까.
종전의 냉전/진영 논리로 보면, 김정일 정권이 러시아는 그렇다 치고 중국이라는 동맹국을 당황스럽게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 문제를 냉전/진영 논리로 대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동시에 김정일 정권의 핵보유 선언으로 자주 어쩌구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가 무엇입니까. 용어 혼란이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보는데요. 여기서의 자주는 민족 자주입니다. 국가사회주의가 더 이상 대안이 되지를 못하는 상황에서 아나키즘이 부상하면서 나타난 자주 관리와는 별개의 자주란 말이지요. 다시 말해 김정일 정권을 맑스레닌주의로 보아서도 안 되며, 아나키즘적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주체사상이라는 신앙이 자리잡은 김정일 국가는 김정일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쪽에는 박정희 민족과 김대중 민족이 있구요. 이 사이에 김영삼/노무현과 김종필/이인제로 이어지는 약소 부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 민족과 부족들은 보다 진취적인 태도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하기보다는 단지 유지하기 위하여 과거의 논리들을 차용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죠. 당장 운동권만을 예로 들면 답이 나옵니다. 민족해방파다, 피디파다 하는데 현실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보다는 사람 이름을 거론하면서 인맥을 거론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지 않습니까. 이것 외에 현재 민노당 파벌을 설명하는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들 이런 도식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이는 민노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당도 그렇구요. 노동자의 힘도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언론에서는 개혁파다, 강경파다, 온건파다, 무슨 무슨 묶음으로 설명하려고 하는데요. 아니다, 이거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지도자에게 줄을 서고 있느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주장을 다 보세요. 다른 것 없어요. 보수건, 진보건, 중도건, 주사파건, 친미파건, 친일파건, 친북파건 하여간 세불리기에 도움만 되면 다 받아들입니다. 전부 다 말이죠. 하여, 이런 점을 과거의 냉전/진영 논리로 대응한다거나, 아직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라는 등, 마지막 냉전지대 등등은 사기라는 것이죠. 다만, 사기라는 점에서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왜냐? 고구려다, 백제다, 신라다 하고 나오잖아요. 대중에게 얼마나 잘 먹힙니까. 해서 나는 이런 점에서 북한 김정일 정권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가장 먼저 멸망할 시스템이겠지요.
나는 이전에 이라크 사태에 관해 후세인이 바트당적 스탈린주의 정책이 실패한 연후에 대미항전의 효과적 수단으로 그간 억압해왔던 이라크 부족들의 자율성을 강화시킨 것을 높이 평가한 바 있습니다. 해서, 이라크를 지키는 것은 후세인의 공화국 정예부대가 아니라 이라크 부족들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점은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중동 정세를 잘 모르는 이들은 후세인 독재를 무턱대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독재를 비난하더라도 알고서 하면 더욱 좋겠지요. 이라크는 요즘 언론에서 드러나는 바대로 수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종교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여, 이러한 이라크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강압적 수단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서구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시가 이러한 점에서 일본식 방안을 제시합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부시 측이 나름대로 일본과 이라크의 유사성을 본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차대전 당시의 일본과 현재의 이라크를 비교 가능 하느냐고 말할 수 있느냐며 당시 일본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굉장한 수준이었는데 어찌 이라크와 비교가 가능하냐고 일리 있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역시 그러한 비판에 동의합니다. 그런 전제에도 불구하고, 천년의 이라크와 천년의 일본을 보자면, 유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봅시다. 일본의 경제력이나 기술력이라는 지점을 부르주아 학자들처럼 사회와 떨어진 무엇으로 여겨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인도의 관료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자본주의자들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회주의자들이 사실은 굉장한 자본주의자들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수천 년 내려온 관습 등에 대해서 냉담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 바로 사회주의자들이 아닙니까. 또한 자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과 동구권, 그리고 인도 등이 보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동이라고 못할 것은 없지요? 중동인의 상술이야 세계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바트당이 뭡니까. 아랍 민족 사회주의를 추구해온 이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근대 자본주의에서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혹은 국가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국가 관료의 힘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부시측이 이라크를 당시의 일본과 비교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시측의 이라크 일본화가 실패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분명 이라크와 일본은 유사하지만, 당시의 미국과 오늘날의 미국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미국은 떠오르는 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는 해인 것입니다. 해서 실패할 것이다,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정일 정권의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그런 이유로 이라크와 달리 만일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이라크와 같은 상황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너무 효율적인 중앙 집중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자면, 부시 측이 오히려 적용해야 할 국가는 이라크가 아니라 북한인 것입니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태평양 전쟁 시에 죽음을 맹세했던 일본인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을 해방군으로 여기면서 좋아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북한인들이 겉 모습과 달리 속으로 미국을 해방군으로 여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인 다수처럼 김정일을 중심으로 가미가제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권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정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공책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핵이 운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강조합니다. 미국 당국은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에 대한 비방책이 효과가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당국은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일본의 천황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북한 인민의 존경심이 여전할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시측이 진정 이라크에 대해 일본적 모델을 고려하였다면, 후세인을 지금처럼 전범 재판에 넘기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후세인을 천황처럼 존중하는 방식이되, 후세인을 인간화하고, 후세인을 형식적인 명예직으로 만드는 동시에 후세인이 지탱하던 권력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면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측은 단지 이라크 해방만을 고려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일본의 군정기에는 개혁이 가속화되었으나 한반도 전쟁 등으로 오히려 기존 군벌세력을 강화시켰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민당 정권이 미국 CIA 지원이 없이 어떻게 오랫동안 일당 독재를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여, 세계 전략적인 관점, 미국 국익적 관점에서 상징적 조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동구에서 동상을 무너뜨리듯 말입니다. 서구에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경우 권력을 잃으면 인민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동구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참고하길 바랍니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구에서는 서구인들끼리 권력을 교체한 것에 불과하기에 그처럼 인민에 의해 무참히 살해될 수 있지만, 아시아인의 경우에는 아시아인끼리 교체한 것이 아니라 서구인이 교체한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점입니다. 강조하면, 만일 아시아인끼리 한다면, 가령 역대 중국에서처럼, 혹은 한국이나 일본에서처럼 같은 민족끼리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면, 그 과정이 설령 명분이 있더라도 서구에서처럼 분명히 인민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구인이라면 당연히 반발감이 드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시 측이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단지 석유 때문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저물어 가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팍스 아메리카나의 지속을 위해서, 아직 미국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지른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이 다른 길이 있습니까. 없기 때문에 미국 민주당도 한편으로 비판을 하면서 전쟁을 수용한 것입니다. 하여, 마찬가지로 보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북한 김정일 정권이 왜 이런 강경책을 쓰느냐고 말합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잘 알 것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죠. 멈추지 않는 기관차였다는 것입니다. 망하기 전까지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들 모두는 극우적인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극우파들인 것입니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 민주당도, 민주노동당도 결국은 극우파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지금 버팀목을 하는 것은 한국 대기업들 때문인 것입니다. 일본에서 극우적 경향을 가장 경계하는 이들이 일본 전경련이듯이, 한국에서 극우적 경향을 가장 경계하는 이들은 한국 대기업들인 것입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극소수 좌파와 노동자계급이 가장 경계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층은 극우파와 우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사정도 이렇습니다.
김 : 선생께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가령 김정일과 박근혜, 김대중은 민족이지만, 김영삼, 노무현, 김종필, 이인제는 부족이다라는 점. 부시 측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석유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점, 한국과 일본의 극소수 좌파와 노동자계급이 힘을 잃었다는 점 등등. 매우 흥미롭기는 하지만, 종래의 주장들과 너무 현격히 차이가 나서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과격하게 비판한다면, 소설로서는 적격이지만, 과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엉터리가 아닐까요?
인드라 :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신앙의 시대입니다. 이성의 시대가 아닌 신앙의 시대에서는 과학조차 과학이 아닌 신앙의 하나로 전락합니다. 신앙의 시대에서는 성경이니 코란이니 주체사상이니 단군 사상이니 천황 사상이니 하는 것이 주목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소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화를 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신화. 즉, 맑스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떠올렸듯이 말입니다. 그리스 철학이 나오기 위해선 그리스 신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소설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상징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는 다시 그리스 원전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 원전을 연구하는 친구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매우 진지한 친구였죠. 흥미롭게도 그는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런 노력을 하겠습니까. 그리스 철학을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이전으로 철학을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오래된 기원으로 말입니다.
나는 강조합니다. 이 로마제국론을 근본부터 회의해야 합니다. 과연 서구 주류가, 그리고 한국에서 진행되는 이와 같은 로마제국론과 해법이 오늘날 상황을 말해주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로마제국론은 지난 계몽의 시대에 작용했던 파라다임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자, 쉽게 봅시다. 백가쟁명 시대에 공자가 등장했다가 쑥 들어갑니다. 그런 후에 진한제국 시대가 전개되었지요. 그러다가 북방민족의 위세로 송나라 시대라는 한족 중심적 관점에서 위기의 시대가 닥치자 부각되는 것이 바로 공자였지요. 성리학이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후대의 주자학이란 낡은 것이긴 했어도 당대의 주자는 아웃사이더였고, 이단이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에 가차없는 비판을 전개하지 않았습니까. 명시대로 접어들며 꽃피우는 듯하였지만 청 시대로 가면서 다시 침몰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즘 다시 공자가 주목받는다 이 말입니다. 문화혁명 시대에 개차반 취급받던 공자가 말이죠. 저는 이를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희극적인 상황이다, 이런 것이란 거죠. 한 번은 비극적으로, 다음에는 희극적으로. 맑스도 지금 이런 신세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지금 맑스 운운은 참으로 희극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자본론과 기타 많은 맑스 저작을 소중히 합니다. 오류가 있다 해도 말이지요. 분명 한 번은 다시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지난날과 같은 방식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저는 과감하게 그람시도 이제는 잊어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구십년대 소위 좌파 소정파들을 보자면, 다들 그람시에 주목했었다라고 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이 결국은 로마제국론에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본다는 것이죠. 마키아벨리도 그렇고 말입니다.
김 : 선생의 견해는 매우 과격합니다. 로마제국론을 근본적으로 회의하자,라고 말씀하시는 연유가 유럽 중심주의, 혹은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렸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것도 아니군요. 진한 제국론도 근본적으로 회의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리스 철학과 공자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인드라 : 그렇습니다. 그 이전으로 가야 합니다. 왜 그러하겠습니까. 인류의 문명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보다 근본적인 한계에 닥쳤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역사적 관점을 보다 이전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과 진한제국 이전에는 인류의 역사가 없었던가요? 해서 주목받는 것이 그리스시대와 춘추전국시대가 아니겠습니까. 로마제국이 오늘날 서구인이라는 동질성을 낳았고, 진한제국이 오늘날 중국인이라는 동질성을 형성했다면, 그리스시대와 춘추전국시대가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제국 건설의 동인을 고찰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연 로마제국과 진한제국의 시대냐 이 말입니다. 떠오르는 신 제국 입장에서 보자면, 로마제국과 진한제국의 형성 동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저물어가는 제국을 목도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무엇이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낳았으며, 무엇이 춘추전국시대를 낳았는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 도시 국가 이전의 중동과 중국대륙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이전 제국들이 저물어가면서 잉태된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동서양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공자/맹자가 나왔다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의 시대에서 어떤 것들을 취하고, 어떤 것들을 버렸습니다. 헤겔처럼, 주자처럼 그들도 그랬던 것입니다.
김 : 그렇다면 지금 플라톤과 공자처럼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요?
인드라 : 바로 그 지점과 관련해서 데리다나 아도르노, 화이트헤드 등이 신경을 쓰는 대목입니다. 또한 이 지점에서 남한에서 화이트헤드의 제자라는 김용옥이 등장하는 것이죠. 재구성 말입니다. 재구성. 김용옥이 그간 성경을 비롯한 종교 경전들을 재구성하려고 하잖습니까. 어떻게요. 김용옥은 동학사상을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동학이 뭡니까? 이전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재구성하려고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김용옥의 책들을 읽으면서 이런 시도를 공자나 플라톤의 작업처럼 간주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헤겔과 주자처럼, 아니 주자처럼 말입니다. 주석을 가하지요. 그런 그에게 대학교수직은 하찮게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이단이어야 하는데 대학교수직 맡고서 폼이 날 수가 없는 거죠. 하여간 운동권에서는 기회주의자, 학문하는 인간들 치고 괴상한 인간이라고 취급을 받는 김용옥을 이야기해서 제 이야기에 격이 떨어졌습니다만, 나는 그들보다는 김용옥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좌파라면 김용옥 결코 안 무시합니다. 짜가들이나 김용옥을 무시하죠. 왜냐? 비록 김용옥이 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비판적일지언정 관심사는 같다고 할 수 있거든요. 뭔가 로마제국론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내오고 싶다 이 말입니다. 유목론이요? 이거 웃기는 것입니다. 유목론으로 밥벌이하는 애들은 모두 숟가락 놓아야 합니다. 김용옥보다 격이 무척 떨어지는, 삼류 저질 지식분자들인 것이죠.
문제는 김용옥이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김용옥이말로 남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현재까지 철학적으로 가장 잘 수행하는 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다음 정권이 박근혜가 되든, 고건이 되든, 이해찬이 되든 또한 옹호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극우라도 사이비들인데 김용옥 이 인간은 정말 제대로 된 극우입니다. 지금 목사인 양반이 있는데 공부 많이 한 사람입니다. 서양 철학에도 빠삭하고 좌파 철학에도 안목이 있는데 화이트헤드 공부하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만난 한국인들 중에서 정말 극우다운 극우였습니다. 존경할만한 분이죠. 지금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락은 안 됩니다. 다만 십 년 전에 제가 그랬어요. 형은 정말 극우다. 그랬더니 다른 이들과 달리 웃더군요. 맞다, 극우다. 사실 극우다, 그러면 지식인들에게 얼마나 욕입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같이 공부하지 않을래? 세미나 하자 그러더군요. 그나마 있는 좌파들조차 극소수를 제외하고서는 더 이상 세미나를 안 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말이죠. 그 목사 형은 그래요. 기독신앙이 가장 반역적인 신앙이라고 여깁니다. 예수건, 누구건 하여간 평등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해서 가장 유연하면서도 가장 원칙적입니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왜 김용옥과 그 목사형에게 이끌리지 않을까. 그 목사 형이 내게도 영성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다른 몇몇 이도 내게 영성이 있다고 말했음에도 왜 나는 그 목사 형과 김용옥에 뻑가지 않았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극우인데 다만 다른 유형의 극우를 꿈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극우를 넘어선 무언가를 내가 찾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만일 극우를 넘어선 무언가를 내가 찾지 못한다면, 아마 나는 그들과 다른 극우를 꿈꾸게 되거나, 아니면 그조차도 힘들어지면, 그 목사형에 이끌려 무교회 공동체주의에 포섭될 것입니다.
김 : 너무 추상적으로 나아간 듯합니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다가 이렇게 나아갔습니다. 마치 지난 시절 행정수도 이전 불가라는 헌재 판결이 났을 때 김용옥의 글을 보는 듯합니다. 헌재의 부당함을 말하는 것에는 대중적으로 수긍하는 점도 있었으나 그 다음의 김용옥의 철학적 글에 대해서는 다들 다소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까. 선생의 말씀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나 해봅시다. 우선 북의 핵보유에 대해 반대한다는 일각의 좌파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인드라 :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종래의 좌파가 아니라 자유주의 좌파, 혹은 급진 자유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되요. 폭력은 안 되는 거죠^^, 끝. 그렇다면 그들의 사상적 기반이란 무엇이냐. 그들은 사이비 극우는 아닙니다. 우파죠.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이들일 뿐인 것입니다. 나는 사이비 극우들보다는 이들 우파에 대해 더 높이 평가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이렇지요. 사태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본다 이것입니다. 모든 걸 조각을 내어 보면 답이 있겠지요. 문제는 이들이 소위 모순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이 자들은 이미 변증법을 내던졌어요. 소위 분석철학이다, 뭐다 해서 이걸로 하는데요. 한심한 노릇인 거죠. 저는 한마디로 사기라고 봅니다. 다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람시이니 유목론이니 하던 이들이 한계에 다다르면 가게 되는 종착역이 분석철학이다, 이런 거죠. 다시 말해, 그람시이니 유목론을 할 때에는 그래도 민중운동이다, 하잖습니까. 하지만 이런 이들 중에 나이를 먹거나, 혹은 중간에 잔머리를 굴려 보니 길이 아니다 여긴 이들이 가게 되는 것이 분석 철학이다, 이런 거죠.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출세나 하자, 이런 것이죠. 그래서 이중에는 그나마 괜찮은 부류가 아나키 부류들이라 할 수 있겠죠. 나머지 좌파연하는 이들은 내가 보기에 사기라고 봅니다. 나는 이들 견해를 굳이 이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여깁니다. 이들에게 내가 추천하고 싶은 언론이 있다면, 중앙일보인 것입니다. 중앙일보하면 어쩐지 폼이 안 나니까 경향신문 운운하는데요. 박노자나 정운영을 보면 됩니다. 이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이들이 박노자나 정운영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내가 그간 둘을 씹어대었던 거죠, 하하. 진중권에 비해서는 박노자나 정운영 까기가 더 어렵기는 합니다만. 내 생각에는 그래요. 경향신문은 허위다. 이런 층은 현실에 없다. 반한겨레 성향의 소위 진보층을 대변한다 뭐 이런 것 같은데 굿데이 신문처럼 나는 봐요. 후발 주자들의 선정주의라고 봐요. 답은 이래요. 중앙일보로 통일해라. 중앙일간지 신문시장이 하루바삐 시장원리에 의해서 경쟁력이 없는 신문들은 모두 도태가 되길 바래요^^, 나는. 왜냐? 노동신문이 저런 판인데 다른 것들이 대접을 받고 있으니 한심한 일인 거죠. 나는 언젠가는 동아일보와 한겨레도 통합될 것으로 봅니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 중앙 일간지는 조중동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봐요. 나머지는 낭비라고 봅니다.
김 : 그렇다면 북핵 문제에 대해 진보좌파가 아무런 영향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견해와 또한 지금 문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이며, 총파업이 중심이다,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인드라 : 우선 전자에 대해서는 패배주의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런 패배주의가 축적이 되다 보면 유목론을 하다가 결국은 그놈의 영향력 운운 때문에 분석철학으로 가게 되고, 시민운동으로 가게 되고 그런 셈인 것이죠. 왜 영향력이 없습니까? 있지요. 다만 그들이 영향력이 없다고 운운하는 것은 이렇게 보시면 되요. 그러니까 다른 것 운운하지 말고, 우리 규모를 키우자는 것이죠. 당권을 잡지 못했다면,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시간강사라면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뭐 하여간 이렇다는 거죠. 지금도 물론 있어요. 다만 그 제도권 안에서는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이겠죠. 해서, 더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라는 거죠. 그렇게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후자는 무엇인가. 저는 일단 이 견해를 긍정적으로 보거든요. 다만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지금 핵심은 총파업인데 이런 중심 과제가 북핵 사태 등으로 희석화되고 있다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것인데요. 지난 월드컵 때부터 쭉 해온 이야기인데 이게 무슨 맥락으로 나오는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말이죠. 이런 건 레닌이나 모택동이 지금 부활해서 보아도 비판을 받을 내용이라는 거죠. 사태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서 옆에서 징징대는 것으로만 보인다 이 말입니다. 가령 국가보안법 문제도 그래요. 그 문제가 주사파가 쿠테타용으로 제기한 것일지라도 당당하게 대책을 내놓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완전 폐지요? 나는 이것도 전술이라고 봐요. 마치 보수세력 일부가 호주제 반대를 하면서 한총련이 주장하기에 반대한다 이런 것이란 거죠. 나는 보수세력 일부가 왜 그래야 하는지 압니다. 한나라당 박근혜나 심지어 최근 주사파 논쟁을 주도한 주성영 전직 검사조차도 호주제를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이 호주제에 반대하나? 아까 말했죠. 조금이라도 지지세력을 넓히기 위함이죠. 핵심은 호주제가 아니라 지지세 확보인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실제로 이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지지세 확보라는 거죠. 진정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간단해요. 국제 엠네스티 기준으로 그들이 인정하는 수준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쪽수 확보를 위해서 이런다는 거죠. 비판을 하려면 이런 걸 비판해야 하죠. 또 작년에 왜 하필이면 연내 폐지에 목을 매달았는지에 대해서 비판해야 한다는 거죠. 염불보다 잿밥에 그들이 실제로 관심이 있었다 이 말인 것입니다. 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노투의 단상점거 같은 선각자적인 투쟁이 이런 관점으로 인하여 쪽수 이기주의에 빠진 주장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말인 것입니다. 전노투 단상점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전노투의 투쟁과 북핵 사태를 연결짓는 혜안을 내놓는 것이 더욱 중요한데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거다,라는 식으로 나오니 외면을 받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결국 논리적으로 분석철학을 이상하게 우려먹는 애들에게 지는 것이 되고, 결국 단상점거는 폭력이다,라는 식으로 간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지금 당장은 선명성을 위해서도 단상점거는 정당하다,라는 식으로 여기는 것처럼 오해를 받는다 이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되면 좌파의 객관성이 의심을 받게 되어 결국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김 : 그렇다면 선생은 전노투의 단상점거와 북핵사태를 연관을 짓는 복안이 있다는 것인지요.
인드라 : 그야말로 기계론적인 유물론에 빠지면, 다시 말해 변증법이 실종된 유물론으로 가게 되면 둘간의 연관성은 그저 먹을 걸 달라는 정도로 가게 되는 거죠. 우는 아이 젖 주기라는 거죠. 사실 이런 점은 필요해요. 제가 전부터 강조했던 것인데 유럽 사민주의가 그냥 나왔습니까. 혁명적 사태에 놀란 타협물이 유럽 사민주의죠. 남한의 자칭 사민주의자들 중에 일부가 한심한 것이 혁명적 투쟁 없이 사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환상이죠. 천치들인 거죠. 이들이 소위 꼴좌파이니 강경좌파이니 비난하는 것을 보면 한심해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피플타임즈 논객들이 제가 보기에는 짜가 사민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보누리 사민주의자들은 짜가들이 많아요. 하는 짓은 주사파나 마찬가지이면서 주사파만 죽어라고 비판하니 한심한 거죠. 정말 한심해요. 이런 애들 보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은 물론 김대중정권, 노무현정권 퇴진하라 비판하다가도 옹호하고 싶기까지 하다니까요. 자제 좀 해주세요. 아니면 정직하게 한나라당에 가거나 이 무슨 지랄입니까. 나는 한나라당 간다고 비난하지 않아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민노당, 사회당 나는 다 똑같다고 봅니다. 다만 자기 수준이라는 게 있다 보니까 민노당이나 사회당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아무나 받아들이지는 않거든요. 그게 문제죠. 자리가 너무 좁아요.
좀 더 변증법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반전 반핵 저도 찬성하죠. 주한민국 철수 저도 찬성해요. 문제는 이런 원칙을 어떻게 현실에서 풍부하게 유연하게 대처하느냐인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정말 철학이 나오는 것이죠. 왜냐하면 세계를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러한 저의 철학은 아직 가동이 되지 않고 있는 편입니다. 그저 윤곽 정도, 아니, 윤곽도 대단하다면, 윤곽을 그리다가도 끝없이 수정하는 그런 것이란 거죠. 사태는 명확합니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승리인 것입니다. 미국은 마치 태평양 전쟁 때의 진주만 폭격을 당한 것처럼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수행중이라는 거죠. 북한 김정일 정권 양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기에는 미국이 딸린다고 보았나요? 당장은 김정일 정권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처럼 미국 애들 결심하면 무서워요. 당장은 김정일 정권의 승리입니다만, 오히려 그것이 김정일 정권을 무덤으로 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좌파의 입장에서는 북핵 보유 선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겠습니까? 좌파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바랍니다. 좌파는 변화를 바라지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하여, 좌파는 김정일 정권의 북핵 보유 선언에 대해서 비판적일지언정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김정일 정권이 보다 분명한 죽음의 길로 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민노당 성명이요? 히틀러의 유럽 침략이나 일제의 진주만 공격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은 미제의 탓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말했네요^^. 민노당이 사이비 극우정당이라는 것을 잘 입증한 것이죠. 당권파들이 사이비 극우들이거든요. 삼류 저질들이죠. 참여연대처럼 엄중하게 북핵을 비판해서도 곤란합니다. 이 무슨 참여연대의 사기극입니까. 이래놓고 삼성전자에 대해서 또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이겠지요. 계급전사의 글은 다소 의미가 있습니다. 핵이 김정일정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이죠. 문제는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정일정권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계급전사는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답은 뻔합니다. 자, 김정일 정권이여! 그대들이 진정한 민중의 벗이라면, 남한의 진정한 혁명세력인 노동자계급의 단상점거를 신뢰하고, 우리의 지도를 받아라. 한민전은 즉각 해체하고, 북핵 사태도 전노투의 지도를 받아라. 전노투의 지시를 받아라,라고 해야죠.
그런데 문제는 전노투 실력이 이렇게 되느냐 한다는 점이겠지요? 이게 문제인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 아, 동원력의 문제냐구요? 아니죠. 철학의 문제죠. 동원력은 그 다음인 것입니다. 전노투의 철학이 무엇입니까? 대중을 감동시키게 할 전노투의 철학이 무엇입니까? 전노투가 당입니까? 그냥 일시적인 소좌파 연대체일 뿐인 거죠. 그래도 좌파들이 다 알다시피 그런 연대체가 궁극적으로 당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철학이 나와야죠. 부족한 것일지라도 감동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게 없죠. 번역물이거나 아니면 당면 정세에 대한 단편적인 전술 지침 정도일 뿐인 거죠. 연속성이 결여된 것 말입니다. 이러니 문제인 것입니다.
김 : 인드라 선생.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렇듯 방관을 하고 있습니까? 옆에서 훈수만 두고 있습니까.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걸 몰라서 안 합니까? 말은 쉽습니다. 신중하게 언행을 하세요. 당신이야 하릴없이 인터넷에서 손가락이나 끄덕이면 그만이지만, 조직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인드라 : 하하. 좋은 지적입니다. 바로 그런 거죠. 일리가 있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도 제가 보기에는 팔십년대, 혹은 구십년대 초반 정서인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시작은 어디에서 출발하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손가락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거대담론에 대해서 요즘 다들 비판적입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구요.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거대담론을 더 말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치 팔십년대에 미시담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나는 오늘날 거대담론을 주장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 오늘날 미시담론이 거대담론이 되었고, 거대담론이 미시담론이 되었기 때문이죠. 이런 것이 이것저것 마구 섞어서 혼동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릅니다. 저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글을 써서 감방에 가든, 조직화하다가 감방에 가든, 파업하다가 감방에 가든 이 모든 것은 동질의 것이다. 둘째, 감방에 꼭 가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감방에 가지 않더라도 감방에 가는 사람들 이상으로 글을 쓰거나 투쟁을 한다면 동질의 것이다. 셋째, 당신이 만일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지지하고, 평등세상을 원한다면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해도 당신은 그들과 동질의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변증법적으로 만나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김 : 선생. 선생 같은 사람을 만나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하는 일은 좆도 없으면서 어찌 그리도 자신감이 있게 세상을 사나. 그러면서도 혹 저런 모습이 맑스나 공자의 모습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아무 것이나 해보세요. 사실 저 같은 소시민은 선생의 말을 들으면 허탈해집니다. 왜 나는 선생처럼 살지 못하나하고 말이죠.
인드라 : 부러워하세요. 부러워할 것이면 드러내놓고 부러워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옵니다. 만일 열심히 부러워하였음에도 사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인드라, 저 인간도 분명 다른 분야에서는 쑥맥일 것이다. 아시겠어요? 인간은 모두 능력을 동등하게 부여받고 태어났으나 환경은 몇 가지만을 특화시킬 뿐인 거죠. 인드라가 지금 이 꼴인 것은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파인 거죠, 달리 좌파입니까. 불량품인 거죠. 나는 좌파가 되는 것에 백퍼센트 환경적 요인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선천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태어나길 불량품으로 저는 여깁니다. 그러하니 잘 안 되면, 님의 장점이나 잘 살리면 되는 것입니다. "
변혁적 관점에서 북핵 사태를 본다 광풍무록(狂風舞錄)
2005/02/16 11:18
http://blog.naver.com/miavenus/60010175168
"김종화 : 인드라의 블로그에는 안티 삼성 사이트와 삼성경제연구소 사이트가 동시에 링크되어 있다. 또한 인드라는 삼성경제연구소 온라인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인드라는 그간 줄곧 '1% 좌파론'을 주장해온 바 있다.
6월 1일 열린 삼성사장단 회의(일명 수요회)에서 삼성 독주론/삼성 경계론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삼성을 좋아하고 1%의 소수가 '안티' 삼성일지라도 우리를 싫어하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드라 : 1% 좌파론은 지난 사회당 대선 토론 과정(통일좌파론, 계급좌파론, 독립좌파론)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이러한 생각은 지난 1987년 6공화국 체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어서 십여년간 지속되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 진영에서 제기된 '좌파의 좌파론'과도 맥락이 닿아 있지만, 일부 좌파 진영의 신좌파적 종속이론류와는 다르기에 1% 좌파론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는 민노당 내에서의 주사파 타격 및 좌파 역량 강화론, 혹은 전선론과 다른 사회당과 같은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정치적 실천을 제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화 :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페이퍼 사회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그만큼 현실 역량이 미비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과 총선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민노당은 사회주의 정당은 물론 급진적 성격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물론 온건한 성격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아닐 정도로 극우화되어간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에 민노당 내의 평등연대가 최근 해산을 결의한 바 있을 정도이다. 좌파 정당이 아니라 극우 보수정당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비록 민노당 내의 전진그룹이 운동권 정당의 고수를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드라의 1% 좌파론은 그간 시대적으로 공감을 얻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견해가 우세했다고 본다. 하여 관념 좌파라는 비판이 제기되고는 했다. 그런 와중에 삼성 회장단 회의에서 1% 안티 삼성 세력이 운운되는 양상이 매우 흥미롭다고 여기지 않는가? 1% 좌파론과 삼성 비판론이 어떻게 만나는가? 또한 다른 삼성 비판론과 1% 좌파론적 입장에서의 삼성 비판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드라 : 두 가지 지점을 말할 수 있다. 최근 각광받는 브라질 모델과 비교해 보면 이렇다. 브라질과 한국과의 공통점은 양국의 좌파가 모두 독자적 좌파 이론이 없다는 점과, 정치적 노동운동으로서의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좌파운동에 대한 탄압이 보다 극심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좌파운동에 대한 관용이 이전보다 많은 듯싶지만 실제적으로는 오히려 정반대다. 마치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독일 사민당 관료들의 학살처럼 좌파에 대한 학살이 은밀하게 진행중이다. 멀리는 지난 시기 이재오가 사노맹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좌파에게 불순세력이라며 비난했던 것에서부터 가까이는 최근 좌파에서 파시스트로까지 지칭되기도 하는 이수호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더 사정을 잘 알던 놈들이 배신하면 더 무섭듯이 현 노무현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빌붙어서 온갖 작태를 연출하는 수구반동세력들의 치밀한 각개격파로 인하여 그 어느 때보다 좌파의 현주소는 참혹하기만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일부에서는 드러내놓고 좌파를 탄압했던 군사정권이 그립기까지 할 지경이라고 말할 정도에 이르렀다.
차이는 한국이 삼성을 비롯한 4~5개 기업집단을 보유한 세계 6위권 국가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듯 독점자본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이로 인해 독점 강화/종속 심화라는 신좌파적 종속이론류가 파산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민노당의 주류는 브라질 노동자당을 상당 부분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적으로 레닌 대신 룰라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과거 레닌, 모택동처럼 그 시대와 장소의 특수한 정세에 기반한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룰라의 경우에는 좌파 변혁적 이론의 부재 속에서 탄생한 정권이다. 좌파 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단적으로 이런 도전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제 3세계에 속하는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 한국은 사안별로 때로는 3세계 국가와 G7(중국을 포함한다면 G8)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마치 청소년과 흡사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이도 아닌, 몸뚱이는 이미 무역대국인데 정치체제는 미성숙하다고 평가받는 그런 '낀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 좌파론적 입장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도 15세 이상과 15세 미만이 있다면 한국은 15세 이상의 청소년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세 이상이면 법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니지만, 좌파에서는 성인으로 대접한다. 그처럼 한국도 선진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기존의 선진국에 비해서는 뒤처진 후발 선진국 국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후발 선진국 국가는 사회복지제도의 미비와 함께 동시에 사회복지제도의 근본적인 붕괴 조짐이 함께 읽혀지는 국가이다. 특히 후자의 측면에서 1% 좌파론이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간 신좌파적 종속이론 좌파와 극우파시스트라고 평가받는 주사파들은 사회복지제도의 붕괴라는 현실을 간과해온 측면이 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51% 좌파론'에 동조하면서 사회를 조금씩 개선해서 나아가는 방향으로 사회 세력을 결집하려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지난 탄핵 사태 때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하고, 노동자 탄압을 해도, 특별히 '계몽'된 시민들과 함께 노무현 정권을 비판적 지지하는 결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1% 좌파론 입장에서는 바로 그런 이들이 수구반동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1% 좌파가 그들이 말하는 수구보수세력과 결탁한다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럽 통합 헌법 부결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럽 통합 헌법 부결에는 극우파와 좌파가 동조하고 있다. 물론 수적으로는 극우파가 압도적이어서 주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좌파가 참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부르주아적 유럽 통합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1% 좌파론 입장에서는 이미 민중이 노무현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빌붙어 기생하는 수구반동세력을 거부하고 있을 때, 이러한 민중의 편에 서지 않는 저들을 수구반동세력으로 규정한다. 다만 문제는 유럽과 같이 실천적인 면에서는 극우파들이 우세한 듯싶다. 한국에서 마찬가지다. 유럽의 극우파나 한국의 극우파는 인종주의적인 해석으로 좌파적 실천대안들을 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이런 점이 좌파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1% 좌파론'도 그간 삼성을 비판해왔다. 세습 경영이라든가, 중소기업 착취 문제라든가, 무노조 경영 등등 면에서 말이다. 영향력이 상당한 어용관변단체 참여연대가 이런 일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보수언론에서도 자사의 이익에 따라 삼성을 견제, 견인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삼성 자본과 마주치는 순간 말잔치로 끝나게 되고 만다. '민노당 모의원실'의 참고 자료처럼 무슨 학교 한국 인맥지도 같은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람 좀 더 많이 뽑아주세요, 출세시켜 주세요, 행사 지원금 좀 많이 주세요, 광고 많이 주세요, 사외이사 시켜 주세요와 같은 '아부운동'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민중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하여, 오히려 민중은 그간 냉정하게 '51% 좌파론'의 수구 반동적 삼성 비판론을 오히려 더 비판해온 것이다. 이런 점이 결국은 고대 사태의 수구 반동성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태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학교 바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때면 온갖 탄압이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진다. 51% 좌파론자들이 광주에서 경찰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아무런 제지없이 군 철조망을 뜯고 있을 때, 5월의 울산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찰과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얻어터지고 있었다. 51% 좌파론자들의 대표주자인 수구반동 파시스트세력인 한총련이 서울 도심에서 최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시위를 벌여도 제지를 받지 않았으나, 노동자들이 서울 도심에서 평화적으로 삼보일배를 할 때에는 강제 연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1% 좌파론이 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이다. 51% 좌파론자들이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노동자를 죽이는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1% 좌파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1% 좌파론 역시 여전히 무능하다. 1% 좌파론 역시 변혁적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선진공업국의 좌파와 사정이 같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세계는 삼성은 물론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분석대로 향후 십여년의 세계가 향후 백년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분석처럼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향후 예측을 장기적으로 하는 이들이 없다. 모두들 그저 눈앞의 사태에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 정치권, 기업, 좌파 모두가 이렇다.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너무나 빨리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여, 1% 좌파론도 흡사 반도체 이론처럼 갈수록 다시 쓰고, 다시 써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좌파에게 치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좌파는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해왔는데 좌파 이론과 좌파 자체가 임기응변적인 세계를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하여, 이런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1% 좌파론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렇게 보는 것이다.
김종화 : 많은 면에 공감이 간다. 다만 이런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 좌파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진부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열 걸음보다 한 걸음을 딛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좌파에서는 그간 이런 점에 근거하여 좌익 맹동주의, 좌익 기회주의로 비판해온 예도 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인드라 : 특수한 시기와 장소를 일체 무시하고서 오로지 소수만을 고집한다면 좌익 맹동주의, 좌익 기회주의라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사민주의가 전쟁을 지지하고, 히틀러의 나찌즘을 막아내지 못할 때, 레닌은 고독하게 헤겔을 연구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떠한가? 우리는 이제까지 성공한 혁명만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실패한 혁명을 연구할 때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파리 콤뮨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와 같은 콤뮨 연구는 신좌파들의 공통 과제이기도 했다. 가령 중국 공산당도 한때 파리콤뮨 봉기일을 팔대 국경일에 하나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이다. 그들은 경제적인 면을 도외시했다. 인간의 정신으로, 정치적 생명체라는 독특한 그들만의 종교적 논리로 국가 전복이라는 정치투쟁이나 혹은 문화혁명이라는 미명으로 미시적 일상투쟁에 매달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종착지는 '경제 살리기'였다. 1% 좌파가 좌익 맹동주의, 좌익 기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면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신좌파적인 박정희 비판은 오히려 민중에게 박정희를 더욱 영웅시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이 박정희를 깔수록 오히려 박정희는 더더욱 민중의 지도자로 등장할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흔히 '까'와 '빠'로 구분하는 것이 있다. 까는 누군가를 왕따시킨다는 것이며, 빠는 누군가를 신처럼 모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51% 좌파가 박정희를 깔수록 오히려 박정희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보라. 마치 김대중을 깔수록 김대중의 인기가 치솟는 것과 같다. 조선일보를 깔수록 조선일보 인기가 높아지는 것처럼, 삼성을 깔수록 삼성 인기가 높아지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연관이 있다. 하여, 나는 '까'를 보다 교묘한 아부하기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미디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여, 나는 이를 이데올로기와 이미지를 합성한 이마골로기로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이마골로기에 따르면, 토대가 없이 '까'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다는 점이다.
1% 좌파는 보다 토대에 대한 깊은 분석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종래의 암기해왔던 구좌파적, 신좌파적 논리에 대해 철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는 점은 그간의 51% 좌파론자들은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으로 철면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이 이 지경이 되었으면, 반성도 할 법한데 오히려 반성이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에게는 반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축구국가대표선수들이 그렇다. 아무리 정신력을 운운해도 이미 스타가 된 이들에게 정신력이란 아무런 동기 부여가 될 수없다. 고작해야 애국심인데 이런 약발은 점차 약화될 것이다. 그러하듯이 51% 좌파가 최근 강조하는 것이 애국심이다. 수구반동 최장집이 애국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배부른 돼지에게 강요하는 애국심. 이것이 현재 수구반동화로 치닫는 51% 좌파의 현주소다.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창작과 비평의 백낙청이 박정희 논쟁을 시작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백낙청의 그간 행보 때문에 기회주의적 처신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 좌파는 백낙청의 기회주의적 처신 속에서 세상의 흐름을 간파해야 하는 것이다. 기회주의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며,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이 있는 것이다.
김종화 : 최근 노무현 정권의 정책브레인 실세 중 하나인 이정우가 조선시대 사림/훈구파를 논하며 노무현 정권의 정당성, 아마추어성을 옹호한 바 있다. 인드라는 그간 조선시대 사림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가령 인드라는 조선시대는 연산군시대로 끝났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사림파 정치는 조선 발전을 더디게 하거나 오히려 후퇴시켰으며, 조선 민중을 더욱 좌절에 빠지게 했다고 강조해왔다. 퇴계 이황에 대해서 특히 비판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드라의 주장은 여러 지점에서 현 지배권력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드라 : 변혁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본다. 나는 근래의 동구 사회주의권의 실패와 현재 세계자본주의체제가 현실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양상을 보면서 중세와 근대, 현대라는 시대 구분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할 필요성을 문득 느꼈다. 물론 김용옥 같은 이는 일본의 일부 역사가들처럼 근세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재편하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비판적이다. 다만 맑시즘을 부정하는 김용옥이 저런 평가를 하는 것은 김용옥조차도 인정하는 세계사적 변환인 프랑스 혁명에 대한 평가가 내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들을 깊게 고민해 보고 싶은 것이다. 조동일 선생이 잠시 이런 작업을 하였고, 이에 대해 요즘 자율-아우토미아운동에 전력을 기울이는 조정환이 비판한 바 있기도 하지만, 하여간 나는 이런 작업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본다. 중세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지 않는가 본다. 움베르토 에코야말로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데 포스트모던을 비판하는 이들도 움베르토 에코에 대해서는 칭찬하기 바쁘고, 인용하기 바쁘다. 이만큼 한국에서의 포스트모던 비판은 반쪼가리가 아닌가 싶으며, 전술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이미 포스트모던은 51% 좌파에게 지배적이다. 그들은 다만 전술적으로 긍정한다고 말을 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 신좌파는 물론 구좌파에서도 포스트모던은 지배적이게 되었다. 나는 포스트모던을 넘어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로마제국의 흥망과 그리스시대의 부활이라는 근대적 명제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1% 좌파는 근대를 실패한 근대로 본다.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을 실패로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여 보다 오래된 뿌리로 돌아가는 성찰이 요구된다. 이러한 한줄기로서 그간 신좌파는 마치 아프리카 단일 인류 기원설에 맞서 다발적 동시 인류 기원설처럼 다양성을 내세우는 듯싶다. 역사마저도 본디 '우연'적일 뿐이며,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칸트식 주관적 세계시민주의만을 추종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칸트식 노력도 결국 칸트가 가설이라고 하면서도 세계시민주의를 구체적으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신좌파의 다양성과 상대성 주장도 기존의 '중심'세력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서 나온 것이지, '중심' 자체를 부정한 것일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문제는 '중심'을 새로 세우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좌파와 구좌파를 극복하는 1% 좌파의 과제일 것이다.
김종화 : 오랜 시간 내주어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드라 : 오늘날의 시대는 흡사 질풍노도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를 자연주의가 뒤덮었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괴물이니, 흡혈귀, 악마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본다. 하여, 나는 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소설가 모파상의 단편 '괴물들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코르셋으로 몸매 조절에 열심인 귀부인과 생계를 위해 기형아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던 시골 하녀의 삶을 대비시킨 뛰어난 수작이다. 오늘날 51% 좌파는 주사파를 비롯한 각종 다양한 괴물들을 양산해냈다. 어쩌면 파시즘이나 나찌즘도 51% 좌파의 산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생명의 귀중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 산 노동은 무엇이며, 살아 있는 권력은 무엇인가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좌파의 목소리는 관제 방송과 관제 신문과 관제 인터넷 언론에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참여연대와 같은 관변 시민단체나 어용 노동단체 관료들에게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듯 영향력이 있는 데서는 1% 좌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들의 파산을 선고하는 선지자 예레미아를 떠올린다. 예레미아의 전 생애가 비극적이었고, 그가 살았던 시대도 비극적이었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었다. 그는 신명기에 바탕을 둔 요시야왕의 개혁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으나 마음의 회개가 없는 제도적 개혁이 무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민중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시키기 위하여 내적 인간의 개조없이는 불가능함을 예레미야가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혁명적 홀론 - 야누스를 펴냈던 아서 케슬러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에 인류의 종 자체의 종말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 중 하나였다. 그는 유태계였고, 이후 안타깝게 자살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마디의 말이 있다면, 설사 우리의 이성이 모두 파괴될 지라도 자살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우리의 이성을 끝간 데까지 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이성의 회복을 말하기 보다 설사 모두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길이 이성적으로 요청된다면, 설사 그 길이 이성의 종말을 야기할 지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인드라의 1% 좌파론 맹성사회(猛省社會)
2005/06/03 04:32
http://blog.naver.com/miavenus/6001351225
"김종화 : 선생께서는 최근 파시스트의 우상, 박주영이라는 논쟁적인 글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간 선생을 지켜본 이로서 말씀드린다면, 선생은 솔직하게 이런 논쟁에 대한 반응들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인드라 :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이를 5단계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질투입니다. A가 B를 비판하거나 비난을 하면 우선 나오는 정서적 반응이란 A더러 B에게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가장 즉자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결국 히틀러의 맑스에 대한 비판이 이를 시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애정입니다. 애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해서, 너, 사실 그 사람 좋아하지?라고 말하는 방식이 이런 방식입니다. 사랑의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 증오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살펴보아야 할 재미있는 양상은 아인쉬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인쉬타인의 장점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독일인은 그가 독일계였음을 강조하고, 프랑스인은 그가 유태계임을 강조합니다. 반면 아인쉬타인의 단점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독일인은 그가 유태계임을 강조하고, 프랑스인은 그가 독일계라는 점을 강조하곤 합니다. 최근 스타워즈 시리즈가 등장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오이디푸스 신화와 결합되어 1968년의 신좌파적 논리가 개입되었다고 봅니다. 안티 오이디푸스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요.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저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점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 분석에서처럼 의식의 억압적 요인으로 인하여 무의식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런 것이겠지요. 해서, 이런 영화들이 많이 제작된 바 있습니다. 포르노로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것이죠. 종교적 억압에 대해서 포르노로 대항하듯이 말입니다. 히틀러는 사실 포르노와 사회주의와 유태계를 사랑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대의 현실 탓에 포르노와 사회주의와 유태계를 억압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닮았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적과 싸우다보니 적과 닮아 있더라,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단계의 고민을 함축한다고 봅니다. 즉, 적과 닮았다는 비판은 적으로 설정한 대상이 소유한 폭력을 비판 주체도 '덜 하지만' 소유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적보다는 완전치 못하지만 결여된 채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이 단계는 '되기'를 통하여 보다 완벽하게 '적'이 되자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가령 민노당을 비판해온 사회당이 보다 완벽하게 민노당이 되려고 노력한다든가, 열우당을 비판해온 민노당이 보다 완벽하게 열우당이 되려고 한다든가, 한나라당을 비판해온 열우당이 보다 완벽하게 한나라당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겠지요. 해서, 이런 식의 비판을 하는 이들은 곧잘 그러니 당신이 더 파시즘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비판에서 히틀러는 뭇솔리니 장군을 흠모하는 병사로 나오거든요. 박정희 장군을 존경하는 노무현 병장과 같은 비유가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비판은 그간 운동권에서 가장 많이 받은 비판입니다. 김용옥을 비판할 때는 김용옥 닮았다고 하고 비판하고, 김대중을 비판할 때는 김대중 닮았다고 비판하고, 이문열을 비판할 때는 이문열 닮았다고 하고, 김일성 비판할 때는 김일성 닮았다고 합니다. 노무현 닮았다는 이야기는 없더군요(웃음) 최근에는 진중권 닮았다는 이야기(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진중권의 넷 데뷔가 저보다 늦거든요. 그가 나를 닮은 것이겠죠.)도 나오는군요. 물론 비판과 동시에 애정 표현도 나오곤 합니다. 동시적이지요. 닮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이들도 생기더군요.
이런 점에서 루저의 비판은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이 비판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미지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파시즘에 대한 핵심적 규정일까요? 만일 인드라가 파시즘의 핵심 규정으로 보는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루저가 이미지 조작을 내세운다면 루저의 비판은 그저 신문보고 일회적으로 배설하는 양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루저의 비판 같은 것이 파시즘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단계로는 독특하다,라는 반응입니다. 상기한 지점에서 A가 B를 비판하는 것은 A가 B를 닮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닮았다는 주장은 스타 닮은 꼴 찾기처럼 A를 B의 결여된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여, A가 B를 비판하는 것은 B이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이에 대해 데리다의 아르토론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기술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근래 모 영화평론가가 감독과 스타와의 갈등을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데리다는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의 갈등을 말합니다. 작가가 있고, 각색자가 있을 것이며, 이를 연출한 연출자가 있고, 배우가 있습니다. 아르토는 재현되지 않는 극을 꿈꾸었고, 발리극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만, 불가능한 꿈이라 여겨 절망했습니다. 데리다는 아르토에 연민의 정으로 강조합니다. 배우가 매순간 연극을 할 때 그것은 원본과 다른 결여된 복사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창조물임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A가 B를 비판하는 것이 B를 닮았거나 B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은 B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A를 소유하기 위해 내세운 가짜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B는 완전체이기 보다는 결여된 존재인데 A를 통하여 완전한 존재인 것처럼 현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나 홍상수를 보면, 배우와 많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술을 먹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서 만드는데 결국은 보면, 이전의 스탠리 큐브릭이나 홍상수적 닮은꼴 영화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특수하다는 것과 독특하다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특수하다는 것은 전체를 전제한 하위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여, 특수는 전체의 단면을 제시하지만, 전체는 아니거든요. 이런 점을 부각시키면, 스탠리 큐브릭이나 홍상수의 영화세계는 처음부터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결여되었는데 당대의 관계에 의해서 스탠리 큐브릭과 홍상수의 영화세계가 완성되어 전제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영화와는 많은 부분 배우와 스태프와 관객이 동일하더라도 동일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이고, 바로 이러한 동일하지 않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믿어졌던 스탠리 큐브릭과 홍상수의 영화세계가 또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여, 계속 그들의 영화에 계속 참여했거나 보아왔던 이들은 다음 영화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볼 가능성이 크고, 반면 새로 참여한 이들은 다음 영화가 이전의 영화가 그다지 다르지 않고 닮았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독특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경계에 선 이들입니다. 즉, 감독 자신이라는 이야기죠. 감독의 영화세계를 완전체로 믿고 참여한 이들과 구분되는 것은 감독 자신이 완전체가 아님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완전체이기를 지향하기 위해 이전의 자아를 부정하고, 또 다른 자아로 변신하고자 함인데 이것 역시도 최근의 영화를 완전체라고 보려는 이들과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도 완전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정한 마지막 단계는 미지의 단계입니다. 모르겠다라는 반응입니다. 신화의 재탄생이냐 할 수 있겠는데 신화적 영역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은유법이기에 논리적 인과관계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러한 점을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화성인을 처음 만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과 닮았다고 여겨야 인간의 두뇌는 오캄의 면도날처럼 단순화되어 표현하기 쉬운데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화할 수 없다면 인간은 표현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전의 기억들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 말입니다. 4번째 단계에서는 그나마 이전의 기억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현상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르면, 감독이나 작가, 그리고 활동가들은 절망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것으로도 새로운 현상에 대처할 수 없을 때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붓을 놓거나, 감독 일을 그만두거나, 활동을 중지합니다. 판단이 중지되는 것이죠.
다만 이런 단계에서 말하는 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과감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주석을 과감하게 다는 이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주석을 단 것이지, 알기 때문에 주석을 단 것이 아니지요. 세상은 아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이들에 의해서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반응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재미와 함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이들을 간혹 만나는 즐거움으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종화 :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잘 모르겠군요.(웃음)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선생이 설사 그러한 의도로 글쓰기를 할 지라도 다분히 도식적이어서 거부감을 준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가령 정신력과 관련된 한국 축구 견해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만. 선생의 그간 글쓰기에 따르면, 토대 없는 비판은 '교묘한 아부운동'으로 규정한 바가 있습니다. 이에 따른다면, 선생의 박주영 비판은 '교묘한 아부운동'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있습니까. 선생이 박주영 비판을 한다고 해서 선생의 신상에 달라지는 점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감방에 갔습니까? 아니잖습니까?
인드라 : 도식적이라는 이야기는 규정적이라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입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매사에 규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까다로운 취향의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매사 따지는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충 넘어가는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이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따지길 좋아하는 이들은 프랑스인과 유태계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프랑스인과 유태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를 전제하고, 저 역시 따지는 것을 당하면 반드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겠지요.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은 상대방 연기자를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축구도 그렇습니다. 축구를 잘 한다는 건 패싱을 예로 들면 동료가 얼마나 편안하게 패싱을 받게 해주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점에서 히딩크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는 대다수의 축구팬이 스트라이커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이영표, 김남일, 송종국 등의 인기는 종전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이전에 파괴하는 건축공학적 해체공법과 다른 기계공학적인 해체공법을 말한 바 있습니다. 요즘 나온 책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동조현상을 주제로 다룬 책이 있더군요. 저는 연기나 패싱을 그렇게 보는 편입니다. 축구팬들이 흔히 경기내용이 좋다고 말할 때는 경기 스코어가 3:2 등이거나 역전한다든가에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마도 패스게임을 잘 했느냐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닌가 봅니다. 패스가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후방에서 전방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축구에 매혹된 이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양팀의 패싱게임과 패싱의 원활한 흐름이 끊어지는 약한 고리를 간파하고, 그쪽으로 역량을 투입하는 것. 이런 식이 전투적인 표현이라면 축구를 음식 맛보기 같은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범근이 국가대표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등장한 신세대 스타들은 고종수, 이동국 등이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어떠하였습니까. 박종환 축구로 대표되는 정신력 축구를 비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스타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애국심이 밥 먹여 주냐는 개인주의 찬양과 개성의 강조, 마지막으로 전통을 비판하고 전통에 익숙한 선배들을 비판적으로 보기였던 것입니다. 정신력을 강조하지 않는 첫 세대는 바로 고종수, 이동국 세대입니다. 그런데 차범근이 98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졌습니다. 그러자 나온 비판이 차범근 사생활이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이었습니다. 한겨레까지 나섰습니다. 언제는 축구대통령으로까지 등장했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차범근이 고대 출신임에도 그다지 고대 출신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봅니다. 비판적인 지점도 없지 않으나 비교적 선수 선발에 공정성을 기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정무 역시도 이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차범근보다는 선수들에게 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서 오히려 쿠엘류처럼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은 것입니다.
이후 등장한 것이 히딩크 축구입니다. 많은 이들이 히딩크 축구의 전술을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전술도 전술이지만, 투쟁심을 부활시킨 것이 히딩크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히딩크는 정신적인 면에서 그간의 애국심 대신 투쟁심으로 대체시켰습니다. 애국을 위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기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환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간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점들을 새롭게 재평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가령 그간 한국 축구는 스피드다,라고 여겨왔고, 개인기가 부족하다 등등의 평가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를 뒤집습니다. 한국 축구는 느리다, 개인기는 그만하면 괜찮다, 오히려 양발 사용이 가능해서 좋다 등등 말입니다. 이는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태를 그간 흑백논리로만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축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축구가 지향하는 바라는 점을 명백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히딩크는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수비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언론에 뜨기 위해서는 골을 넣어야 했습니다. 수비수가 뜨기 위해서는 도쿄 대첩 이민성 이런 식이라는 거죠. 사실 홍명보도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만, 가끔씩 터뜨리는 골로 인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히딩크 시대에는 스트라이커보다 수비진과 미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김남일, 이을룡, 송종국, 이영표에 대한 관심.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제 본 감독입니다. 수비수와 미들에 대한 관심사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언론은 수비수와 미들에 대한 부진을 가끔 지적하지만, 웬만한 언론에서 그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없습니다. 거론조차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격수를 누가 하느냐에만 초점이 있습니다. 다시 스트라이커로 돌아갔습니다. 골 결정력 부족을 운운합니다. 히딩크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공격진이라고, 수비진 완성이 우선이었다는 점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박주영이 뜨는 것입니다. 조직력이 와해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전의 패싱 게임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비판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감독 위주로만 축구를 보는가. 선수 개별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배우 하나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가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도식적으로 사태를 보지 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러한 비판의 백미는 시장주의일 것입니다. 나는 개인주의와 시장주의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맡겨라라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시장이 박주영을 원하니 박주영의 국가대표팀을 만들어라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정도의 축구관을 지니고서 접근을 한다면야 저 역시 긍정적으로 일단 봅니다. 그처럼 저는 고건과 박근혜를 정치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 역시 도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스타일의 축구를 요구하면 될 일입니다. 가령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이 그런 예이겠죠. 그러나 나는 내 축구관에 따라서 레알 마드리드 팀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팀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팀워크가 잘 발휘되는 바르셀로나팀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차이는 서로에게 오히려 유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김대환 노동부장관이나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이나 김유선이나 과거 민노당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이의 열린우리당행이나 이런 점 말입니다. 소신대로 다른 당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운동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김금수나 송모씨 경우는 무슨 소신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그런 자들이라 여긴다면 모르되! 파시즘에 대한 비판이 이념적인 데서 멈추지 않고 현실로 나아가는 대목은 바로 이런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수적인 가치도 아니요, 진보적 가치도 아니라면 파시즘적 가치라고 보아야 할 영역으로 남지 않겠나 싶은 것입니다. 그처럼 박주영이 자신을 브라질 유학 보내준 포항을 배신하고 다른 팀으로 간 것은 비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팀으로 간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다른 팀으로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다만 가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김대환처럼 속시원하게 노동자 탄압을 공론화하는 모습이 차라리 나은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김대환을 '선한 노동자의 대표'로 만든다면 그건 파시즘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나아가 제가 도식적이라 한다면 관련 글을 추천한 오창엽에 대해서 보다 혹독하게 비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시즘적인 글을 추천한 오창엽이 어찌 좌파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목에서는 연좌제적 개념을 도입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오창엽식으로 바라본 세계이죠. 오창엽과 내가 통하는 면이 많은 반면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하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 다른 면만을 두고서 오창엽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교묘한 아부운동'에 대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나는 지난 시기 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정몽준을 반대하는 진영에 오히려 비판한 바 있습니다. 승리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준비가 부족했다고 보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러한 데에 기초하였다면, 저 역시 아부운동이라고 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축구게시판 일부에서는 내게 정몽준파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축구감독의 취임시 일여년간은 지지 의사를 표명해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권 초기 때마다 노빠냐, 김대중빠냐, 이런 식의 비판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정권교체기에 김대중신도, 노빠, 박사모 이런 비판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음 시기에 정몽준이 자신의 입으로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다음 시기가 시기적으로 적절하다고 봅니다. 일부 축구인들은 축구인들만의 축구협회를 말합니다만, 나는 축구인들이 축구팬들도 축구인으로서 함께 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토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4강 제도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4강을 가야 대학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엘리트 축구를 지탱시켜온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돈 많은 이들이 축구 잘 하는 선수에 묻어서 명문대에 가고, 축구 잘 하는 선수는 그 덕에 중고교 때 돈 걱정하지 않고 축구에 전념하고, 중고교대학은 그 덕에 축구단 운영비 마련하고. 다시 말하자면, 이는 암묵적인 기부금 입학제도라는 점입니다. 나는 이런 점에서 하루바삐 기부금 입학제도를 양성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야 반자본주의적 교육 대안을 고려하지만, 토대 없는 비판이라는 대목에서 내 생각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주영 비판으로 감방에 가느냐 여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과거에 보자면, 김대중 정권에서도 경찰이 찾아온 바가 있었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그렇듯 노골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만 이 정권이 끝나면 평가할 대목이니 유보하도록 하죠.(인터넷에서 협박당하는 것이야 축에도 낄 수 없는 것이죠.) 사정이 이렇지만, 냉정하게 볼 때, 박주영 비판으로 감방가지 않습니다. 해서, 이 대목에서는, 교묘한 아부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이런 말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게 무조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문제라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반대할 저항권이 헌법적으로 보장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화 : 선생의 설명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은 생각해 볼 수 있군요. 축구 이야기를 하는데 정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엉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한, 선생은 사회당원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런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인드라 : 축구 이야기를 하는데 조국 이야기가 나오고 통일 이야기 나오고 계급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도 처음에 이런 태도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97년에 유럽에서 만난 불가리아 축구기자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영화와 정치를 동시에 사고하듯 축구와 정치를 동시적으로 사고합니다. 사실 그 이전에 저는 축구하면 개인적 경험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월드컵 한다고 하는 것도 관심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에 가서 개안했다고나 할까요? 종래의 내 태도가 탈레반적 축구 싫어, 축구 금지와 같은 파시즘적 태도였다면, 그 이후는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전의 구좌파와 같은 지나친 흑백논리에 비판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다만 헤게모니적 의미에서의 신좌파적 축구론에만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요.
제 소견은 이렇습니다. 소수의 사회당에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나 많은 다양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한 묶음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굳이 분류를 한다면, 세 묶음 정도로 볼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하나는 통일좌파로 지칭되는 이들인데 현 지도부이겠지요. 사회당 간부학교 출신들이 주축이라고 말하는 듯싶네요. 다른 하나는 독립좌파로 지칭되는 이들인데 현재 당에 거의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과거 대학에서 공동체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주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들과는 다른 개별적 층입니다. 제가 이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급좌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른 정파에 있다가 왔거나 하는 등 각자 개별적인 이유로 사회당에 온 층입니다. 내가 사회당원이라는 이유로 사회당의 견해를 대표한다고 여기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사회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그저 당비나 내는 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금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당장 떠나고 싶지만, 대안이 없어 머물고 있듯이 사회당을 떠나고 싶지만 역시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워도 사회당인 사회당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종화 : 정말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다른 점 다 떠나서 역대 정권 비판과 인물 비판에 이어 최근 고대 비판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런 점이 선생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만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은 오히려 박근혜가 호남을 껴안는 데서 교훈을 얻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선생이 연대 출신이라는 점과 연대 출신 몇 인사에 대한 호평 때문에 더욱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점만 자제한다면, 선생께서는 예전처럼 인터넷을 넘어선 활발한 사회활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인드라 : 오늘 질문 중에 가장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를 정치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이런 지점은 전에 통일/계급/독립 좌파 논쟁 때는 물론 지난 탄핵사태에 대한 것에서도 오창엽과 주고받은 사안이지만, 오창엽은 정치인이자 언론인이고, 나는 작가입니다. 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 차이는 실존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작가라도 정치적인 줄서기를 염두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저도 한다는 것이죠. 내가 착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내가 그간 살아온 삶대로 가는 것이란 거죠. 내가 성격이 좀 독한 편입니다. 해서, 내가 연대 출신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고대 출신 칭찬하는 식으로 정치적 발언을 해서 얻을 이익이 있다면 깨끗하게 포기한다 이 말이지요. 나는 이렇게 봅니다. 이렇게 글을 썼는데도 공감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나와 사업을 함께 하자고 한다면 좋은 일이 아니냐 이런 것입니다.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그런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니까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 자신을 굳이 숨길 필요가 무엇이 있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사업한다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그 게시판 운영자나 혹은 주류들에게 하소연하는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운영자나 주류들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내가 중시하는 건 개별자죠. 우연히 보건, 열을 받아서 보건, 국정원의 지시에 의해서 보건, 기사거리 때문에 보건, 작품 흥행 때문에 보건, 하여간 그 어떤 것이건, 원래 그들이 목적했던 바와 상관없이 엉뚱하게 내 글에 매혹되는 점이 있다면 나는 그런 점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나조차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연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가령 유지군과 블랙타이거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 오창엽도 만날 수 있었지요. 그 외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내가 생각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뭐랄까, 맥락이랄까요, 맥락이라는 지점에서 통하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운동권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여간 나와는 다른 의견인데도, 심지어 적대적인 의견임에도 그 글을 읽으면 좋고, 그 사람도 좋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같은 의견인데도, 심지어 동지의 의견임에도 싫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새로운 생성에 주목할 따름입니다.
내가 무슨 연대 출신으로 이익을 얻었느냐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익이다,라는 소극적 기득권에도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대 출신인데 연대 비판한다, 뭐 이런 것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대라는 건 내 인생의 5~6년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연대 나왔냐? 나왔다 그런 거죠. 그렇다고 해서 비판 못할 것은 또 뭐 있습니까. 사실 이 점에서 고아 출신 친구가 재미나게 잘 비판해서 유념하거나 제 아내가 비판해서 유념하는 편이긴 한데 그 정도죠. 논점은 이렇게 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념적 지표가 있는데 이것이 설령 구닥다리라 하더라도, 혹은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지표가 내게는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그 외의 지표들은 뭐랄까 그런 기준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봅니다.
게시판 글쓰기. 어떤 이들은 단지 즐긴다, 취미다 그럽니다. 혹은 취미가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구요. 혹은 심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양하지요.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단 한마디의 말이 있다면, 자신의 게시판 글쓰기를 그 어떤 하나로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관계를 지닌 이들이 알아서 다들 저마다 규정을 내리기 때문이지요. 그렇듯 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보다 새로운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즐거운 인드라 선생과의 대담 복음악마(福音樂磨)
2005/06/08 04:22
http://blog.naver.com/miavenus/60013685980
"김종화 : 반갑습니다. 선생은 한동안 영화평론에는 손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다시 영화에 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듯한데... 무슨 이유라도...
인드라 : 개봉영화에 침묵해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뭐랄까. 제 영화비평에 충격을 먹은 이들이 있어서라고나 해야 할까요? 해서, 뭐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다 본 연후에야 그 영화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기 시작한 것이죠. 쉽게 말하면, 전위 놀음에 염증이 난 것이죠. 하여간 잠시 한국영화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십년대말 무렵이었죠. 그후로 한국영화는 지속적으로 타락해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아울러 침체도 불가피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종화 : 한국통인 토니 레인즈도 선생과 유사한 이야기를 최근에 한 바 있습니다만, 선생은 그보다 이르게 예전에 이미 말씀하신 바 있지요. 정세적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홍콩영화의 흥망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인드라 : 그렇습니다. 구십년대 중반에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근래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잠시 좋았던 것이죠. 말하자면, 민주화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제성장의 결과로 민주화가 된 것처럼 한류도 그렇다는 것이죠. 그런 만큼 세계 경제 동향에 따라 현재 한국의 1987년 이후의 소위 민주화 체제도 근본적인 변화가 또 다시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민주화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야 이루어졌듯이 또 다른 체제로의 전환 역시도 모든 시도들이 수포로 돌아갈 때야 비로소 등장할 것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봅니다. 오늘날 한국 영화의 타락을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 것인가가 저의 관점입니다.
김종화 : 선생께서는 근래 유난히 토대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이해되는데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사회면을 보면 숱한 가족들의 자살,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생활은 점차 하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김종화 :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영화 황철민 감독의 <프락치>입니다만, 어떻습니까? 이 영화?
인드라 : 중산층이 보기에 딱 좋은,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보기에는 다소 반동적인 영화라고 봅니다.
김종화 : 뜻밖이군요. 혹시 노빠 국정넷포터 임순혜씨가 오마이뉴스 등에 이 영화를 홍보해서인가요?
인드라 :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다만, 임순혜씨의 활약을 뒤늦게 보면서 든 생각은 역시 영화는 정치성이 최우선이구나,라는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이 영화는 노빠 영화라는 말씀인가요?
인드라 : 언뜻 보기에는 노빠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2년에 가서야 영진공에서 제작비를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니 그 제작 환경에서 노빠스런 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노빠스런 영화의 이면을 봅니다. 황철민 감독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는 황철민 감독의 시선을 이 영화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김종화 :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에서 그렇다는 것이죠? 궁금하군요.
인드라 : 이 영화는 다큐를 가장한 픽션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였지만, 허구적인 면이 가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다큐가 아니라 극영화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큐가 아닌 장면에서 이 영화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다큐적인 면은 이렇습니다. 하나는 영화감독 지망생(실제 영화도 만들었다는군요.)인 프락치가 여관방에서 연극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관방에서 나와 보다 더 안전한 가옥으로 이동중인 차안에서 프락치가 정보기관원에게 질문도 하는 장면인데요. 이런 것이 백흥용씨의 실제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있었다는군요. 다른 장면도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가령 프락치의 여자 친구 장면이 뜬금없이 나오는데 이 장면도 실제 비디오테이프에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이 장면도 다큐적이다,라고 일단 저는 보는 편입니다. 하여, 우리는 이런 장면들 외에서 감독의 진실과 만나야 한다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김종화 : 이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이라면 선생이 다큐적이라고 지목한 부분 때문에 보러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드라 : 그건 네덜란드에서나 통할 이야기고, 여기는 한국이지요. 우리가 만일 네덜란드산 영화 프락치를 본다면 한국 관객 역시 다큐적이라고 지목한 부분을 보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관객들은 어느 정도 의식화한 박수부대들이 본다고 해야죠. 감독은 마치 팔십년대에서 이천년대로 점프한 듯이 철지난 대중화론을 들고서 이 영화에 대해 말하던데요. 편견없이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어쩌구 하는데 나는 이런 점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보다 편견을 강화할 때인데 저런 식의 영화 대중화론을 지니고 있으니까 감독이 헐리웃 정통영화를 찍고 싶다는데 제작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내가 투자자라면 황철민 같은 감독에게 블록버스터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한국 관객들은 무엇을 보러간 것입니까?
인드라 : 자신의 이야기를 보러간 것이겠지요. 팔십년대 이후 줄곧 타락한 자신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들은 황철민에게서 혹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간 것이라 저는 보는 것입니다. 가령 타워팰리스에서 살고, 자신과 아내는 미국 유학을 갔다와서 교수가 되고, 자식은 카츄사로 입대시킨 후 미국 유학을 보낸 강정구(가명)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반미를 외치지만, 내면에서는 고뇌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 육사를 나온 박정희적 고민이랄까요? 자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반미주의자인가? 아니면 친미주의자인가? 민족주의자인가? 민족반역자인가? 이에 대해 규정을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애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애매한 데서 분명한 선을 긋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이며, 선동인 것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발표한 친일분자 명단식 규정으로는 강정구란 사람은 우파요, 친미주의자이며, 민족반역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위가 그렇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황철민이라는 감독을 봅시다. 다른 이들이 감빵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때 독일 유학 갔다왔지요. 교수되었지요. 이 영화로 언론을 탔지요. 따라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분자 관점에서 보자면, 황철민 역시 민족반역자, 외세의존자, 우파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황철민이란 감독은 보다 솔직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헐리웃 정통 영화를 찍겠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종화 : 물론 황철민 감독이 이 영화에서 설정한 여관방이라든가, 혹은 감독 자신의 주장에서 종속 이론, 혹은 주변부 자본주의론에 근거한 듯한 영화론을 펼치는 것을 봅니다만, 단지 그러한 것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만.
인드라 : 그렇습니다.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은 프락치에게서가 아니라 프락치를 대하고 있는 형사와 정보관계자, 그리고 고아 출신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 고아원 출신 형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야말로 황철민 감독의 극영화적 감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김종화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인드라 : 이천년대에 들어서서 종래의 부정적 의미인 프락치란 의미는 현실성을 상실했습니다. 백과사전적 프락치(fraktsiya)의 의미는 "넓게는 밀정, 첩자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이에 의하여 정당은 당의 방침을 대중단체 내에 침투시키고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대중단체의 결정과 당의 방침이 상충될 경우 당원 프락치는 대중단체의 결정을 지키도록 지도된다."이지요. 대신 프락치는 오히려 긍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최근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듯한 문건에 따르면, 서프라이즈 같은 인터넷 신문을 보다 많이 조직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운동권에서도 이런 시도들을 프락션을 건다고 했습니다. 주사파에 비해 운동권의 소수파인 좌파들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서 많이 시도한 것이지요. 이제는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요. 하여, 나는 그들 논조에 동의하지 않으나, 프락치의 긍정적 의미 변화에 대해서는 나 역시 긍정하는 편입니다. 하여, 이제는 종래의 프락치란 말은 쓸 필요가 없지 않나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현실도 사라졌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우리 말 검정새치'를 추천할만하다고 봅니다. '검정새치'란 같은 편인 체하면서 남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 즉 우리가 흔히 쓰는 '프락치'라는 말과 같다고 합니다. 사실은 새치이면서도 검은 머리카락 속에 숨어서 또는 검은 머리카락인 척 하면서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을 날카롭게 꼬집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 봅시다. 지난 대선 당시 민노당 내 일부 주사파들은 노무현을 지지했지요. 같은 당 후보인 권영길 대신 노무현을 지지하자고 나선 것입니다. 또 지난 탄핵 당시에는 당 본래 방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탄핵불가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와 같은 자들이 검정새치라는 것이지요. 또 노동자 대표를 자임하고 나선 사람이 대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려고 할 때 도망친 것도 마찬가지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검정 새치다, 이 말입니다. 부친 친일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열린우리당 대권주자, 유모의원, 김모의원, 신모의원은 또 어떻습니까? 해방전후 김대중 전대통령의 행적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또한 의인이라 칭송받던 김대업, 제 2 향군운동 주도한다는 전직 장성, 각종 시민단체 우두머리들의 출세와 부패 비리.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된 전교조 등등.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프락치와 검정새치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백흥용씨가 아니라 백흥용씨를 바라보는 형사, 정보관계자, 형인 것입니다. 그것은 곧 감독이며, 그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인 것입니다. 다큐적인 면은 과거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극영화적인 면은 바로 오늘의 이야기인 셈이죠. 백흥용씨의 프락치건은 팔십년대에 일어난 일인 반면, 그를 대하는 이들은 이천년대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것입니다.
김종화 : 저도 그 영화를 보았는데 말입니다. 물고문 장면과 성폭행 장면이 있었습니다. 박종철과 권인숙을 떠올리게 만들던데요. 어떻습니까?
인드라 : 스타 만들어주겠다며 소녀를 꼬신 연예기획사 대표의 명함에는 조선일보 기자, 한나라당 지구당 부위원장 등이 있었습니다. 나쁜 놈이죠. 그런데 더 나쁜 놈은 공권력을 통해 영장없이 시민을 패고, 성폭행한 놈이 더 나쁜 것이 아닌가요? 그 놈이 누굽니까? 바로 감독이며, 그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 자신이지요. 오늘날 이 정권을 탄생시킨 놈들 말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 지라도 그가 인간을 죽이는 짓거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공권력을 쥔 자들은 인간을 보다 많이 죽여야만 정권이 유지되고, 영웅이 되지요. 인류 역사의 끔찍한 참상 대부분은 공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황철민 감독은 나름대로 이면에 고민을 토로한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 영화를 2002년에서야 만들게 되었는가 하는 자괴감이 다소 담겨 있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황철민 감독이 주사파에 다소 비판적인 것과 이런 장면들을 연계시키면 나름대로 이해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주사파들이 다 출세한 마당에 좌파 명함으로는 출세하기 힘들고, 주사파 빽으로 영화를 만들자니 여러모로 힘들겠지요. 다소간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세요. 이런 장면에서는 프락치였던 백흥용과 감독 황철민간의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만큼은 백흥용이 운동권 가요를 부르지 않습니까? 해서, 나는 이렇게 해석이 되더군요. 나는 좌파인데, 주사파가 아닌데, 어쩌다가 주사파 정권 밑에서 영화를 만들고, 주사파 언론 밑에서 영화 홍보를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여전히 노동자들은 박종철, 권인숙처럼 탄압당하고,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기 고백을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김종화 : 매우 흥미로운 견해이로군요. 그렇다면 청계천 대목도 그렇게 보아도 될까요? 청계천하면 이명박 아닙니까?
인드라 : 황철민 감독으로서는 인터뷰 기사에 고대 동창회 신문인 동아일보를 언급하듯이 백흥용씨가 북한에서 탈출하였다는 대목을 말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은 청계천에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이명박이 좌파라는 말씀인가요?
인드라 : 이재오가 좌파면, 이명박도 좌파겠지요. 이재오가 좌파가 아니라면 이명박도 좌파가 아니구요.
김종화 : 이 영화의 모태가 된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남매간첩단사건이고, 이 사건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하던 김영삼 정권 시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이명박은 김영삼계로 분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를 지지하는 인사들이 대부분 김영삼 정권 때 정치입문한 자들이 아닌가요?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이명박을 까는 영화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인드라 : 다큐식으로 보면 그래요.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이 강조한 것처럼 극영화인 것입니다. 백흥용씨의 경우처럼 상황이 역전된 것이죠. 한때는 북한으로 가겠다고 했다가 이제는 북한에서 탈출한 백흥용씨의 현황처럼 말입니다. 이재오씨도 이 대목에서 예술성을 운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재오씨가 있던 서울민중운동연합 산하에서 잠시 있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이재오씨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문제는 정치라고 말이지요. 그런 사람이 예술성 운운하는 것은 냉정하게 따져야 하는 것이죠. 그 사람에게 예술이란 정치이거든요. 쪽수이구요. 대중 동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볼 때 이재오씨가 우려한 것은 이 영화를 실제로 볼 이들이 아니라 이 영화에 관한 언론 홍보가 우려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대다수 언론 홍보 기사들은 노빠 언론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바로 이 점을 우려한 것이겠지요. 연극이나 영화를 많이 본 이들은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라고 보는데, 이 영화는 노빠영화를 가장한 반노빠영화라는 것입니다. 즉, 검정새치라는 것이지요.
김종화 : 그렇다면 이 영화가 좌파 영화라는 말씀인가요?
인드라 : 아니죠. 노빠를 깐다고 해서 좌파 영화라고 하는 것은 좌파에 대한 모독이겠지요. 노빠를 비판하고, 노무현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인간적 과제이지요. 이런 당연한 일은 좌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즉, 이 문제는 누가 더 노무현 정권 이후의 대안이 되느냐 문제 이전에 해야 할 퇴진 문제인 것이지요. 이 문제는 모두가 공감을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정권에서 비서실장이나 하면서 출세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 빼고는 말입니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인 거지요. 그래서 노무현정권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가 안 될 바에야 다른 놈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견제심리가 내면에 다들 있는 것이고, 노무현정권은 노태우정권 탄생 때처럼 이러한 견제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연정론이구요.
김종화 :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인드라 : 이 영화는 한때 좌파였는지 모르나 이제 교수가 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이들을 위한 중산층 영화인 것입니다. 군사정권 때의 정보관계자들은 당당합니다. 반면 민주화정권 때의 정보관계자들은 이 영화의 정보관계자들처럼 소신이 없어 보입니다. 하는 말도 모순투성이지요. 차라리 군사정권 때의 정보관계자들 논리가 말이 되지요. 물론 그 논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형사도 보시죠. 프락치에게 너는 영웅이 아니며,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해댑니다. 마치 말로는 모든 걸 다 가능할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노무현정권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노무현정권 등의 역대 민주화정권에서 훈장도 받기도 하고, 선생님으로 불리는 노동운동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자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 영화는 그들을 위한 영화인 셈입니다.
김종화 : 선생의 논조는 늘 과격합니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합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드실 수 있을른지요.
인드라 : 일제 시대에 출세한 자들 중 일급은 일제 시대에 있었던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조선의 현실, 즉 부정적인 면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강조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조선왕조의 부패와 무능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선왕조에 비판적이었던 좌파 일각에서 식민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족혼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민족주의랑 좌파와는 거리가 상당히 있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이들은 대부분 과거에 살고, 과거에 연연하고 있습니다.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눈으로 봐도 오늘날 현실은 매우 끔찍하니까 말입니다. 사이비 교수 최장집마저도 교수 자리에 집착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둔 땅이 광복육십년주년기념사업회 위원장인 수구반동 강만길처럼 많은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끔찍하니까 어떻게든 자리를 보존하려고 저 지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종화 : 아아.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되는군요. 정말 그런 시각으로 영화를 보자면, 이 프락치란 영화는 노빠 영화를 가장한, 주사파 영화를 가장한, 반노빠 영화이고, 반주사파영화이지만, 동시에 과거에 좌파였지만, 지금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타락해가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중산층의 영화로 볼 수 있겠군요. 그런데 왜 이런 영화에 관객이 몰리지 않을까요?
인드라 : 너무나 리얼한 것은 흥행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 이야기인데, 굳이 영화로 봐서 무엇하나요? 당장 길거리에 나가 보면, 노숙자들이 보이고, 연일 언론에서는 자살 사건이 끊이지를 않고, 생활은 나아지기는커녕 일제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런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 뭐하러 영화까지 보아야 하나요? 영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화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정치적일 뿐인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다면 묻습니다. 선생께서는 이런 현실을 잘 아실 터인데 왜 그 영화를 본 것입니까?
인드라 : 영화 프락치에서 프락치와 프락치를 감시하는 형사가 권태스러워서, 심심해서 연극을 하게 됩니다. 그처럼 나는 영화관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프락치가 죄와 벌 연극에 너무나 진지하게 빠져드는 바람에 현실과 가상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듯이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이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하면서 진지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작은 심심하기 때문에 한 것인데 갈수록 진지해지는 것이죠. 마치 나의 통신 활동처럼 말입니다.
김종화 : 인생이 그런 걸까요? 가령 저는 결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겼고, 딸을 원했는데 아들만 둘입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반대로 절실하게 결혼을 원하는데 하지 못하는 등 그렇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왕 인터뷰를 한다면 인드라 선생 같은 비주류보다는 박지성과 같은 축구천재랑 인터뷰하고 싶은데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는지 좀 그렇군요.
인드라 : 이하동문이올시다.
김종화 : 하하하. 우리는 통한 겁니까?
인드라 : 어떤 사람은 인터뷰를 응하는 조건으로 많은 돈을 챙기기도 한다는데,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김종화라는 1인 미디어 기자 주제에 무슨 권위가 있겠소. 돈도 없고, 권위도 없는 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을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오.
김종화 : 그렇습니까? 우리는 심심해져서 이런 일을 하다가 결국 진지해지는 것이군요. 인드라 선생님. 우리는 언제 정말 진지하게 예술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인드라 : 댁, 혹은 나 둘 중에 하나가 대통령이 되거나 해야 진지하게 예술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때가 되면 나 역시 휴가지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한가하게 취미로 예술을 말하며 감동을 먹을지 모르지요.
김종화 : 그렇습니다. 선생. 우리, 예술은 연봉 일억이 될 때까지 미뤄둡시다.
인드라 : 기자 선생.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료. 그것이야말로 좌파가 꿈꾸는 영화 세계가 아니겠소.
대담 정리 : 김종화 기자
출처 : 일인미디어 시대를 선도해가는 인터넷 언론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황철민의 프락치:노빠영화인가, 반노빠영화인가 극한영화(極限映畵)
2005/09/02 05:01
http://blog.naver.com/miavenus/60016842053
"김종화 :
인월리 선생. 이회창은 보수우파 정치인이고, 자유선진당은 보수우파당입니다. 보수우파 정당이어서 야당 연대 운운할 때도 야당들이 배제하는 정당입니다. 헌데, 이번에 한 - EU FTA 비준에 밀실야합이라고 반대하고 나섰군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03&aid=0003836737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짧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인월리 :
보수우파다, 진보좌파다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떤 이는 백인 대 유색인종으로 볼 것이며, 어떤 이는 남성 대 여성으로 보며, 또 어떤 이는 종교로 분간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자산 상태로 구분할 것입니다. 이런 구분 왜 할까요.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떼로 살았습니다. 떼로 살다 보니 역할 분담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여,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해왔던 역할 분담, 혹은 분업에서 형성되고 고착된 인간 본성을 거의 고스란히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일본인들이 후쿠시마 출신 사람들을 은근히 왕따를 시킨다고 합니다. 은근 왕따가 더 무서운 건 겪어본 사람들이 더 잘 알 겁니다. 왜 인간은 같은 인간을 왕따를 시킬까요?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아닙니다. 생존이죠. 일부 일본인이 겉보기에 예의바르고 착하게 보이는 이유는 전적으로 생존 때문입니다. 해서, 한국에서도 한 세대 정도만 김일성 정권처럼 행한다면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될 것입니다. 하고, 그 정당성을 위해 이전 역사를 조작하겠지요. 강조하지만, 오늘날 일본인이 알고 있는 자신들 선조 예는 불과 백 년 전 역사에 불과합니다. 그 과정을 세뇌시키니까 마치 일본인이 본래부터 그런 것인양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헌데, 왜 다들 이 문제를 침묵하지요. 그렇습니다. 전체 그림을 국유본이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월리는 말합니다. 인간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인류애를 표현한다고 말입니다.
하나, 영웅이요, 메시아입니다. 독특한 지혜와 특출난 능력으로 수만, 수백만을 구원합니다. 고대와 중세에 이르는 세상입니다.
둘, 1970년대 이전 시대의 부르주아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본주의 시대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 때문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뭡니까. 주고받는 것 아닙니까. 계약이죠. 계약, 혹은 거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양자가 계약 시점에서는 서로 만족해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말이지요. 헌데, 오늘날 부르주아, 아니 이 부르주아들을 주도하는 국유본은 '기브 앤 테이크' 세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가 이랬습니다.
셋, 데이비드 록펠러 시대부터는 달라집니다. 인월리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차연이다. 차이와 지연이다. 영웅적으로 차이화하고, 비겁한 대중을 활용하여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세상은 왕따를 시키는 주류와 왕따에서 벗어나려는 비주류의 투쟁으로 바뀝니다. 개별 인간들을 봅시다. 잘 난 인간은 전체 인간 중 1% 이내입니다. 대다수 95% 인간들은 못 났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이념은 무엇입니까. 줄을 잘 선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줄입니다. 라인입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도자만 생각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무뇌아 븅쉰 노빠 심리 상태를 연구해 봅시다. 이명박이 친일매국노 김지태 장학생이다, 라고 주장해봅시다. 이러면, 무뇌아 븅쉰 노빠들 반응은 어떠합니까. 이명박 비판이니까 닥치고 지지입니다.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이 친일파라는 이야기잖아? 라는 것이 무뇌아 븅쉰 노빠 사고 수준입니다. 헌데, 알고 보니 노무현이 친일매국노 김지태 장학생이다, 라고 뒤늦게 수정한다고 합시다. 달라집니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나, 인류사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어차피 무뇌아 븅쉰 노빠로 사는 것이 이성적인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생존입니다. 오늘 동장이라도, 잘 하면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사외이사 자리를 딸 수 있는데, 오늘 너의 항문을 시험하겠다고 하면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뇌아 븅쉰 노빠 심리 상태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95%는 힘을 중시합니다. 오늘 여론이 이명박이면 이명박인 겁니다. 내일 여론이 손학규이면 손학규인 겁니다. 하고, 자신들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누구를 죽여! 죽여! 할 것인가. 국유본이 방송 무대감독처럼 주문하면 대중이 알아서 우~하고 와~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이명박을 죽여라! 와~ 손학규 만세다! 와~ 인월리는 한반도 통일과 평화,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 투쟁중이다! 우~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입니다. 내일은 자신이 그 왕따일지 모르는 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봅시다.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왜 한국과 유럽 FTA 비준을 반대하는 것입니까. 생존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왕따가 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왕따가 되지 않으려 한다는 데에는 이해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겉보기에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같은 보수우파에게 왕따를 당하는 모양새인데, 왜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왕따를 자청하고 있을까요?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이 무슨 이익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습니다. 세상은 현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껍데기뿐인 보수우파 구도보다는 국유본 구도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국유본은 세 가지 분파가 있습니다. 빌더버그 네오콘부시파, 삼각위원회 뉴라이트파, CGI 클린턴파. 이중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빌더버그 네오콘부시파인 것입니다. 해서, 이번 한국과 유럽 FTA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근래 자유선진당은 론스타 문제에 대해 적극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소스, 어디서 나왔습니까. 네오콘부시파에서 준 겁니다. 최근 재보선 결과를 두고 이회창은 보수 단결을 주장했습니다. 이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대선 때 이회창은 박근혜 지킴이를 자청한 바 있습니다. 네오콘부시파 대동단결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네오콘부시파 근거지로는 천주교와 불교가 있습니다. 김대중, 이회창, 노무현, 정동영, 박근혜 모두 천주교와 깊은 관계입니다. 반면 이명박, 손학규는 개신교입니다. 이 차이를 잘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기 이명박이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행위가 무엇입니까. 천주교를 방문하여 추기경과 만난 것입니다.
한국은 다종교 국가입니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국유본입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국유본은 좌우파 구분보다 종교 구분을 더 우선시합니다. 이를 잘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왜 인월리에게 정동영 종교 특보가 찾아왔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보좌파? 이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허구적이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망상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좌파란 진짜배기 악랄한 친일매국세력 과거를 은폐시켜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우파란 순혈 애국지사들을 왕따를 시키는 시스템입니다.
여러분은 늘 한탄합니다. 왜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우파가 없는가. 그건 국유본 때문입니다. 국유본이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은 분노합니다. 왜 한국에는 제대로 된 진보좌파가 없는가. 그건 국유본 탓입니다. 국유본이 원하지 않습니다. 해서, 한국에서, 한반도에서 좌우파 논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김종화 :
인월리 선생. 선생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늘 새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선생이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나는 양파 껍질처럼 한없이 벗겨지는 족속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당신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아십니까. 님은 다른 지식인들과 다릅니다. 다른 지식인들은, 전문가들은 사실 여부만 확인해줄 뿐입니다. 반면, 님은 그 사실이 사실이기 위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인식론적 혁명을 일으킵니다. 말하자면, 천안함과 천암함 차이입니다.
그뿐입니까. 님은 더 나아가 존재론적 전환을 요구합니다. 감당하기 힘듭니다. 가령 나는 그저 주식으로 조금 손해보다 본전을 만회하기 위해 인월리 글을 읽었을 뿐입니다. 이런 내게 인월리 이야기는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또한 나는 애인이, 친구가, 지인이 힘들었습니다. 고달프고 외로울 때, 아무도 당신 같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해서, 인월리 글을 읽는데,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왜 내가 경제신문을 매일 읽어야 하고, 맑스나 데리다 철학도 연구해야 하고, 당신 글들을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것입니까. 무엇보다 나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내가 무저갱에서 혼신을 다해 빠져나오려 할 때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 역시 무저갱에서 허우적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경계선에서 나처럼 부단히 애쓰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해서, 동료애를 느끼고 함께 가고자 했습니다. 헌데, 당신은 또 다른 무저갱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희망이 점점 작아집니다. 이 무저갱을 빠져나가려는 내 희망이란 정녕 헛된 것입니까. 말해주십시오.
인월리 :
인월리는 이제까지 나름대로 진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리 살 것 같습니다. 해서, 많은 분들이, 진실에 목마른 분들이 과분한 관심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해서, 이를 목자의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비판적인 분들도 있겠습니다. 인월리가 자신에게 발생하는 기적을 떠넘기고자 발명한 것이 신이라고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합니다. 무신론자인 인월리 입장에서, 누구보다 자기 정당화에 뛰어난 인월리 관점에서, 근래 인월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이해하기는 그 누구보다 인월리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해서, 책임 전가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월리에게 발생한 일을 모두 신에게 떠넘기니까 마음이 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인월리는 그로 인해 여전히 평범한 인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 간파한 분들은 인월리 신관이란 것이 결국 도구론적인 신관, 인월리 이해타산에 따라 만든 신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인월리도 공감하는 바 큽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인월리도 그리 알았습니다. 허나, 점차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보세요. 인월리가 글을 쓴다 해서 국유본이 이리 긴박하게 반응하겠습니까. 정말로 이 정도로 위협적이라면 국유본이 인월리를 제거하거나 원천봉쇄하겠지요. 아니라면, 인월리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유본도 감히 건들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월리 자신도 모르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가끔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만,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인월리는 수십 년간 무신론자로 살아왔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무신론자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인월리 삶이 최근 수년간 국유본론에 집중하면서 무신론자 입장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특정 종교에 입문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월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은, 세상은 물질적으로만 파악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인월리를 신비주의로 타락했다라고 비판해도 좋습니다. 감당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니까요. 모르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인월리도 지금 인월리를 잘 모르겠습니다. 근래 몇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술만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김종화:
선생 말을 들을수록 더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만일에, 만일에 말입니다. 선생께서 정녕 우주와 세상과 통한다면, 지금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월리:
인월리는 모릅니다. 다만 믿습니다. 꿈에서 본 세상이 있습니다.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세상이 가능한가 그런 회의를 꿈에서 품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세계에서는 만들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런 의문이 가끔 듭니다. 인류 역사에서 현자로 살다 간 분들 말입니다. 그분들이 혹 인월리처럼 꿈에서 정말 멋진 신세계를 본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세상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살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하면, 왜 실패로 돌아갔을까요. 그 꿈이 말이지요. 정말 행복하고, 완벽한 세상이다, 라는 것만을 느끼게 해줄 뿐이기 때문이지요. 헌데, 구체적이지 않아요. 그것이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현자들 문제가 아닐까. 희미한 추억만을 근거로 여백까지 완성하려니 실패이지 않았는가. 해서, 인월리는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요. 이것이 신의 시험이라면, 즉, 인월리에게 단지 어설픈 윤곽만을 제시한 것이라면, 그것이 신의 뜻이기도 하다면, 인월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선지자들이 많이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설픈 것을 말하느니 은둔할까. 아니면 신의 뜻을 헤아려 설파해야 하나.
현재 인월리 입장은 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구요. 어설픈 것을 말하느니 은둔하자는 입장이 강해요. 허나, 인월리 욕망이 아니라 어떤 힘을 느껴서 나름 말하는 장이 인드라 블로그입니다. 인월리가 요즘 강하게 느끼고 있어요. 다시는 카페 활동 같은 것 하지 말라는 힘을 느낍니다. 인월리가 나름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는 면이 있는데요. 이런 걸 잘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 세상의 너머를 늘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사춘기 첫째 아들과 늘 말다툼하는 것을 보면 인월리도 보통 아빠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사춘기 첫째 아들도 하늘을 보고 싶다 하고, 인월리도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왜 둘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일까요.
요즘 드는 생각은 미래 인류가 타임머신을 발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월리는 UFO를 거의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국유본이 기획한 세계정부를 위한 떡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허나, 아주 희박한 확률로 UFO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만, 먼 외계에서 왔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미래 인류입니다.
인월리 생각은 이래요. 미래 인류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역사란 과거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미래가 만드는 것이란 거죠.
해서, 오늘도 이상한 체험을 했어요. 인월리야 그것이 인월리 주문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인월리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는 것을 간혹 느낍니다.
믿거나 말거나.
김종화:
인월리 선생. 정말 터무니없군요.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는 원칙에 따라 애써 선생 말을 경청하였는데, 결론이 타임머신입니까. 참 편리한 사고방식이군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정말 이것이 전부인가요. 전부라면, 실망스럽군요.
인월리:
사실 저도 실망스럽습니다만, 사실 이렇습니다. 물론 반전할 카드야 있습니다. 김종화님처럼 이성적인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팩트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다시 말해, 김종화님과 같은 이성적인 분들 특징이 이렇잖아요. 인월리가 주장하는 사상, 체계, 시스템, 이념 등 전체론적인 데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이 있는 것은, 그간 인월리가 주장한 수많은 것중 몇 가지가 현상에 부합하는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해서, 그것만 얻는다든가, 혹은 그런 효과를 내는 비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해서, 님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인월리에 긍정적입니다. 어차피 인월리를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인월리 단점보다 장점을 중시할 것입니다. 그래야 더 이익이니까.
헌데, 지금처럼 인월리가 믿어라 노선으로 가면 누구보다 황당한 것이 김종화님같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면, 알면서도 왜 이럴까요.
인월리 답변은 이렇습니다.
모릅니다."
역사란 미래 인류가 만드는 소설이다 국유본론 2011
2011/05/04 05:11
http://blog.naver.com/miavenus/70108222729
"김종화 :
인드라 선생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인월리 선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배움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한 편으로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이러다 나조차도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인드라: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고 싶습니다. 일단 이 그림을 생각해보세요. 같은 크기이지만, 주변 영향으로 크기가 달라 보입니다. 착시현상을 통해 인간 경험이 주관적이고,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와 같은 착시 현상이 김종화 선생과 인월리 선생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인월리 선생에 끌리는 대목이 주로 물질적 욕망 부분에 있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인월리 선생 글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보다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적은 비율이더라도 인월리 선생 글 중 신비적인 면에 일부 호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선생이 이러다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전혀 신비적인 면에 끌리지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요. 가령 선생이 신비주의에 걱정이 크다 하지만, 만일 선생 주변이 신비적인 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로 이루어졌다고 합시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 정신세계에서 신비적인 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하든, 그들은 선생을 신비주의자로 치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인월리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종화 선생과 소통하는 만큼 과학적인 면이 있습니다. 만일 인월리 선생 주변에 기존 과학을 모두 도외시하는 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월리 선생은 그 집단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인간 경험은 주관적입니다. 객관적인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숱한 경험들 중에 그간 관습적으로 적당히 맞아 사용함에 불편함이 없는 주관적 경험들을 주관적 경험들과 분리시켜 특별 예우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특별 예우를 받는 주관적 경험들이 어느 때부터 맞지 않는다면, 특별 예우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선생은 인월리 선생에게 배움거리가 있다면 인월리 선생에게 배웁니다.
김종화 :
선생 말씀을 듣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인드라 선생은 기가 강한 분이니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 저는 귀가 얇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하면 그런 듯싶고, 저 사람이 저 말하면 또한 그런 듯싶습니다.
선생 말씀대로 제가 인월리 선생에게 배움을 계속하다보면, 인드라 선생과 달리 저는 그 특별 예우를 언제 그만둘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같이 수준이 낮은 사람이 그런 구분을 할 수 있다면, 제가 오늘날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제 수준을 너무 높이 보시는 것이 아닙니까?
인드라:
하하하. 재미있는 말씀이십니다. 선생이 자세를 낮추고 경청하는 태도로 볼 때, 다른 이들보다는 수준이 높으십니다. 그건 그렇고, 선생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보세요. 저는 그때마다 참 경이로운 경험을 합니다. 그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입학식을 하는 이들은 어디서나 젊습니다. 반면 유치원생도 졸업식을 하면 어딘가 어른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20대까지는 졸업식을 하는 기분으로 살자. 그리고 30대부터는 입학식을 하는 기분으로 살자.
우리는 계속 늙어가나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젊어지는 과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늙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그 과정이란 우리가 편의상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입학식과 졸업식처럼 말입니다. 입학식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반면, 졸업식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입학식과 졸업식이 무한하게 교차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선생이 인월리 선생에게 감화를 받아 신비주의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대다수가 평생 신이 있나, 없나를 번뇌합니다. 아주 극소수 사람들만 확률적으로 자신 신념을 의심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무신론자인가. 유신론자인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보수냐. 진보냐. 남자이면서 내가 여성성이 강한 것이 아닐까. 여성이면서 남성성을 고민하는 이들 등등.
이에 대해 저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차원적으로 보지 말고, 차원을 높여 삼차원적으로 보자고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수준입니다. 높이입니다. 혹은 깊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무신론인 사람과 무신론 - 유신론 - 무신론인 사람이 토론하면 후자가 더 힘을 발휘할 공산이 큽니다. 유신론인 사람과 유신론 - 무신론 - 유신론인 사람이 토론하면 후자에게 더 신뢰가 가는 편입니다. 이는 기회주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평생 한 길을 가는 분들을 변호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길을 꿋꿋하게 가는 분들은, 이미 마음 속으로 다양한 길을 걸어가셨기에 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고 보니, 삼차원이 아니라 사차원인 셈인가요? 하하하.
제가 드리고픈 말씀은 이렇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면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 생각나시죠? 혹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처럼 시간의 장벽에 막혀 죽지 않는 삶을 산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마음으로도 불륜을 저질러도 불륜이다, 라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 말씀에 반대합니다. 마음으로 무엇이든 상상하자고 제안합니다. 마음으로 불륜도 저질러보고, 살인자가 되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하고, 왕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하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처럼 인드라망을 구축한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김종화 :
부족한 제가 보기에, 인월리 선생이 노자라면, 인드라 선생은 아인슈타인 같습니다. 늘 기발한 말씀으로 우리를 안심하게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립니다. 인월리 선생이 왜 뜬금없이 타임머신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인드라 :
인월리 선생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미루어 짐작하는 바는 있습니다. 이는 수의 기원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화 :
수의 기원이라구요? 방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학생들 숙제 질문이 많네요. 대체로 쐐기문자에서 보듯 원시시대 때 사냥한 동물들을 표기하면서 숫자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잘 기술한 것 같습니다.
인드라 :
잘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현상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김종화 :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인드라 :
선생이 말씀하시듯 인터넷에서 말하는 수의 기원이라는 것은 경험적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늘날 과학은 두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험과학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론과학입니다. 그런데 이론과학을 근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수가 아닙니다. 수는 고대서부터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오늘날 스위스 비밀금고를 여는 암호와 같습니다. 혹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회의와도 같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말합시다. 아이들에게 하나, 둘, 셋 하게 하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가감승제 연산법칙을 이야기하면, 아이들 반응이 어떠합니까. 모르죠. 뭔 말인가 멀뚱멀뚱합니다. 가감승제 연산법칙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학습해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에게 가감승제 연산법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영원히 수에 대해 무지할 것입니다.
이처럼 숫자 발명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에 매우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오늘날 잠정적인 가설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숫자를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는 한반도가 숫자 기원일 수도 있습니다. 왜인가요. 숫자 발명은 농경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제 소견이기 때문입니다. 농경문화에서 왜 숫자가 필요한가요? 엄밀히 말해, 수 개념이 왜 필요한가요. 농사란 수렵, 채집을 훨씬 뛰어넘어 계획적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측을 해야 했습니다. 야생동물을 수렵하고, 야생식물을 채집하는 데에도 계획이 필요했겠지만, 이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가 된 것은 농경시대를 거치면서부터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과 인도에서 숫자 개념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 소로리에서 세계 최초 벼농사 흔적이 나왔던 만큼 세계 최초 숫자 개념은 한반도에서 발생했다고 추론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흔적들이 서양으로 이어져 동양문화를 흡수한 피타고라스 학파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김종화 :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숫자가 굉장히 특권적인 것 같은데요. 맞나요?
인드라 :
네. 그렇습니다. 특별 예우 맞습니다. 아무나 명곡을 만들 수 있다면, 왜 우리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찬미할까요? 아무나 이론을 만들 수 있다면, 왜 우리가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를 찬양할까요? 수학, 음악, 철학 사이에는 연관이 있습니다. 심지어 평등사회를 선전만 했던 스탈린 정권 치하에서도 과학자들은 우대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천재들이니까요.
근래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칭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드라가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교육법만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유태인 엄마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 엄마 교육입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개 같은 민주화 정권 이후로 이런 풍토가 사라졌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모두 지옥에서 최소한 백만 년을 고생할 넘들이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기꾼들이니까요. 이들은 늘 한국 학부모 탓을 합니다. 정확히는 한국 엄마 탓을 하죠. 왜인가요? 국유본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강남좌파 교육감들을 직선제로 해서, 강남좌파 교육감들이 저리 행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한국 엄마들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유태인 엄마들이 사니까요. 강남좌파 교육감들은 총살감입니다. 한반도인 정신세계에 대못을 박는 존재들입니다. 이완용만도 못한 놈들입니다. 인드라가 볼 때, 국유본이 한국인 천재성을 어느 정도 견제하려는 수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우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학자에 대한 특권 예우는 세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세습되나요? 세습되지 않습니다. 당대에서만 인정받을 뿐입니다.
보세요. 과학자들이 자신이 과학자 생활을 오래 하니까 과학자 생활을 세습시켜달라고 귀족 공기업, 재벌기업 노동자처럼 말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종화 :
하하하. 인드라 선생과 인월리 선생 공통점을 방금 발견했습니다. 선생들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히 큽니다. 그것이 선생들 매력입니다.
다만, 전 별 관심이 없네요. 과학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면야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과학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똑똑한 머리로 물리학과를 가고, 기계공학과를 가서 인생 조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보다 나쁜 머리로 변호사가 되고, 친일파가 되고, 악질친일파 재산반환소송 같은 것 승소해서 국유본 눈길을 끌어 나쁜 머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국회의원도 하고, '참 나쁜' 대통령이 되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이야기라고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서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왜 이 세상은 글러먹었습니까.
옛날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물리학 강의실에 들어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교수는 시간강사였습니다. 그 시간강사는 우주를 설명했습니다. 우주가 당구알과 같다고 말입니다. 그때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아무도 그 당구알을 큐대로 최초로 때린 존재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물리학 교육만 이 따위인 것일까 싶어 약 한 달 동안 삼수할 생각을 하기도 하다 포기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 교육도 같다는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대학교육에 아무런 미련을 지니지 않게 되고, 시위에 적극적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국유본에 이용당한 것이라 여깁니다만.
인드라 :
정말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 시간강사가 뉴튼 세계관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하다 보니 무리를 한 것이군요. 선생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교육은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학교란 공장입니다. 공장에서는 규격품을 양산해야 합니다. 선생처럼 아주 특이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선생과 같은 이들은 혼자 알아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ㅎㅎㅎ.
선생 반발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 관찰자에 대한 비중을 중시하는 양자역학 물리학 관점 대신 뉴튼 물리학 세계관만을 소개한 점입니다. 둘, 유기체적 세계관입니다. 가이아 지구에서 보듯 생물/무생물로 구분하는 근대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셋, 과학 기초는 물리학이죠. 이 물리학 토대에서 우리 일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 그 시간강사가 우주를 조금 더 멋지게 말할 수 있었다면, 한반도가 이미 통일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김종화 :
방금 뜻밖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 반발을 해석하는 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첫째, 둘째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는 제 짧은 머리로 이해가 어렵네요.
인드라 :
네. 가감승제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 대목에서 고민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것까지 이해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신과 자연'이란 책을 쓴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한 맑스 비판이 있습니다. 맑스 주장 중 핵심 주장이 있습니다. 끈을 잡아당기면 약한 부위부터 끈이 끊어진다. 여기서 누가 그 주체가 되는가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면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정색을 하며 그것이야말로 맑스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읽고, 또 읽은 결과, 그레고리 베이트슨 말이 옳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똑같은 혁명이라도 그것이 영국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한국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풍토라는 게 있습니다. 사상이란 그 풍토와 같이 수출하는 것입니다.
그간 고민해왔던 것이 그레고리 베이트슨 말과 함께 눈 녹듯이 녹으면서 든 생각은,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맑스의 합일점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맑스가 그리 말한 배경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말한 배경이 다르기에 나온 것입니다. 맑스는 자신이 획득한 지식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당대 분위기란 쓸모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 인드라가 처한 현실과도 같습니다. 돈이 되어야죠.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맑스가 그리 말했지만,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맑스를 기원으로 사회주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입니다. 만일 역사가 프르동이나 바쿠닌으로 시작하는 사회주의였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렇습니다. 누가 원조냐 하는 것이 인류사에서 중요합니다. 왜 당대에 맑스는 이를 부정했던 것이고,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왜 긍정한 것일까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맑스 시대에는 아직 세계 주인이 국유본인지 불확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레고리 베이트슨 시대에는 세계 주인이 있었습니다. 국유본입니다.
김종화 :
머리가 복잡해지려고 하네요. 이쯤해서 원론적인 질문 좀 몇 가지 드립니다. 왜 현대물리학자들은 그리도 차원에 집착하나요?
인드라 :
비유하면, 차원이란 산이기 때문입니다. 산 고도가 낮으면 산 전체 지형을 파악하는데 방해물들이 많게 됩니다. 그래서 산 정상으로 오를수록 세상 모양새가 한눈으로 보이지요. 이를 사차원적으로 설명합니다. 길을 가던 어느 날 불쑥 도로에 이상한 물체가 출현했다 사라집니다. 일차원적 인간은 이차원적 현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차원적 인간은 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물리학자들은 보다 높은 차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난제이던 숙제들을 풀 수 있으니까.
김종화 :
초끈 이론이라는 게 왜 등장했나요?
인드라 :
그간 물질론은 세상을 잘게 나누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되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현대 물리학에서는 다양한 입자들이 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입자들이있다는 것은 그 배후에 더 공통된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끈이론인 것입니다.
입자론에서 막히면 파동론으로 가고, 파동론에서 막히면 다시 입자론으로 회귀하는 것이 그간 역사였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말합니다. 인드라도 술에 취했어요. 다음에는 평행우주론 강의를 해볼까 합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27
http://bj3597.blog.me/110013236830?Redirect=Log
http://bj3597.blog.me/110013236916?Redirect=Log
http://blog.daum.net/goeomnk/7428469
인천소방:
고의적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과대선전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관측해야만 비로소 결정이 된다는 말은 숨겨진 차원이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이와 지연의 물리학 버전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영웅은 운명(결정)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관측되는 과정이다) "아이언맨~ 영웅이 바로 우리 옆사람이거나 나도 한번 어떻게 될 수도 있겠구나 순진하게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은 낚인 겁니다. 경우의 수라고 하는 수많은 곁가지들은 줄서기 라인이군요.
국유본 :
"안녕하세요. 인드라님. 저는 25살 대한건아입니다. 덧붙여, 저는 망가졌으며, 망가진 채로 실존하는 특성 없는 아이입니다. 인드라님의 글을 보는 시간은 매우 즐겁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흥미위주의 즐거움이라기보다, 철학 의학 심리학 [인간 탐구], 역사 종교 경제[사회 탐구] 호기심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쪽지 드리게 된 계기는 파천황기>가위눌림, LDS, 아이도저, 신비체험 http://blog.naver.com/miavenus/70044279450 의 글을 읽고 난 후입니다. 저 또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이것을 탐구 하다가 묻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다시 탐구 하고자 생각이 들었어요. 신비체험의 조건은 이러하였습니다.
1. 한 가지 문제로 온종일 생각할 때
2.몸이 아주 피곤하고 외부의 강압적인 힘이 작용할 때.
저는 유아기부터 저를 몰아붙이는 경향을 있었습니다. 자신 주의의 모든 사건에서 "나는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이상의 괴리감을 일치하려 부단히 노력 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활동 중에도 나를 탐구하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탐구 현상을 객관적인 정보를 배제하고 제 주관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계속 탐구하며 최근까지 저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했습니다. 그러므로 1번의 조건과 부합됩니다.
저는 울산 자동차공장 컨베어 벨트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공장에서의 일은 단순 기계적인 노동입니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어떤 활동을 하던지 생각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기계적인 노동이었으므로 종일 문제를 탐구하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야간 8시부터 2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다시 2시간 일하고 1시간 내지는 30분 쉬고(식사) 다시 두 시간 일하고.. 반복했어요. 더군다나 저의 역할은 쌓인 제품을 대차에 실어서 지정된 장소에 입고하는 다소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의 조건과 부합됩니다.
저는 밤 00:30분부터 1:00까지 선잠을 자곤 했어요. 그때 가위를 눌리곤 했는데 10분 잠이 들고 가위눌리고 깨고 10분자고 가위눌려서 깨기를 반복했어요. 30분만 자야 된다는 압박과 나를 탐구하는(탓하는) 의식이 자면서도 이어졌으니까요. 제 경우는 연기로 감싸여져 있는 악마같이 보이는 상반신이 누워있는 제위로 위치하여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신기한 것은요.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자다 깨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가위 눌린 후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겁니다. 저는 이 현상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생산 노동과 함께 이 현상이 사라져 묻어 두었습니다만 인드라님의 글을 읽고 다시 탐구하려고 합니다.
인드라님. 앎이란 정말 유익한 것일까요? 저는 인드라님의 글을 읽고 많은 부분의 고뇌가 해소 되었습니다. 물론 인드라님의 글을 읽을 환경과 객관적 팩트를 읽을 단계까지 저 스스로 구축했지만. 객관적인 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착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착각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팩트에 근거 한다 하여도 팩트를 초월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희미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겨누던 창을 사회에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파멸로 이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인드라님께 이런 막연한 불안감을 두서없이 쓰게 되었어요."
"뇌파는 알파, 베타, 세타, 델타파가 있다. 평상시에는 베타파가 나오며, 명상을 하면 알파파가 나온다. 그리고 비몽사몽 선잠을 잘 때는 세타파, 깊은 잠을 잘 때는 델타파가 나온다. 우리가 꿈을 꾸는 때는 세타파가 나올 때다.
인간은 잠을 자지 않고서도 세타파가 나오게 하는 방안을 연구한 것이 술, 담배, 커피, 마약 , 약물 등이 아닌가 싶다. 세타파가 나오면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증진되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며, 길 찾기, 호기심, 집중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나는 청소년 시절, 대부분 선잠을 잤으며, 똑같은 꿈만 많이 꾸었다. 또한 가위눌리기를 많이 당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위눌리기를 즐기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가위눌림을 당해보기도 했다. 가족들은 안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도사짓거리하면서 방안에서 꼼짝 않고 도 닦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습관을 강화하다 보면 일순간 우습게도 약간의 투시력이랄까 그런 것이 발생하는 듯도 싶다. 마치 내 자신이 엄청나게 작아지거나 혹은 커지는 느낌이랄까.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맹목을 피해야 한다는 게다. 방법론적으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믿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만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도구가 아니라 목표로 보이는 순간 무협에서 말하는 소위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다. 극히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신기하게도 대학에 와서 중지되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당시 나는 수에 관해 재미있었다. 나는 수학을 잘 한다고 착각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어는 성문영어, 수학은 정석이었다. 나는 정석 참고서 한 문제 풀면서 그날 하루를 보내기를 즐겨했다. 잘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아했다. 해서, 인문계열이 아닌 자연계열에 간 것이다. 민도 이 점에서 나를 닮았다. 기본 이해만 갖추면 수학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다만 구구단을 못 외우는 단점이 있다. 이조차 나를 닮았다. 해서, 수를 가지고 이리 저리 장난을 쳐보고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이것이 오래 전에 피타고라스라는 이가 고민한 대목이었던 게다. 지금부터 이천오백여년 전에는 공자, 노자, 부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피타고라스 등 기라성 같은 이들이 동시적으로 출현하였다. 나는 과연 이것이 우연인가 생각해 본다. 혹시 어떤 사건이나 자료가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이 아닐까. 이를 각 지역 특색에 맞게 나름대로 성찰을 도출한 결과가 아닐까.
하여간 이 짓거리 좀 하게 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다음 단계가 현대물리학이니 아인슈타인이니 하는 것과 SF 탐닉인 게다. 여기서 청년 시기까지 이어지면 뉴에이지로 빠지게 마련인데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학에 오자마자 운동권 탓에 관심이 사회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기본적인 삶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이 물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이치이겠다. 이제야, 올해 들어서야 나는 운동권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감방에 갔을 때 일차로 감지하였고, 유럽여행 맑스 기념관에서 이차로 감지하였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글쓰기와 같은 것인가. 나를 버릴수록 세상을 얻는다.
http://www.cowhiterose.net/bookinside/bookinside_list.htm
무지개요정 통통에도 보면 생명의 나무가 등장한다는 점 참고하길 바란다. 문성호는 뉴에이지적 이론을 섭렵하여 책을 내었는데 절판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사이트에서 전문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카발라 생명의 나무에서 아누와 초끈 이론까지.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정리가 쉽게 된 편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뉴에이지적이라 하여 독실한 기독인을 자처하면서 움찔하는 분이 있을 게다. 걱정하지 마라. 누구보다 뉴에이지에 관심 많은 이들이 목사나 신학생임을. 프랑스혁명의 숨은 주역 조제프 푸쉐나 스탈린이 어디 출신일까. 게다가 니체는 목사의 아들이지 않던가. 내 취향을 말한다. 변두리에 취향이 있다. 운동권 날라리, 성당 날라리, 개신교 날라리, 이슬람 날라리를 좋아한다. 그처럼 뉴에이지 날라리도 좋아한다. 흠뻑 빠진 뉴에이지스트는 곤란인 게다.
카자르사전에 따르면, 하자르 왕국에는 왕이 둘 있다 했다. 카간과 베이. 예서 카간을 뽑는 것이 흥미롭다. 베이가 카간이 될 재목을 뽑아서 '끈'으로 목을 죈다는 것이다. 숨이 막힐 쯤에, 즉 비몽사몽 할 때쯤에 묻는다는 것이다. 왕 노릇을 언제까지 할래? 얼마라고 말한다면, 그때까지 왕을 시킨다는 게다. 만일 그 이전에 죽으면 다행이지만, 말한 것 이상으로 카간이 살면 살해한다는 게다.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윤회를 거듭하였고, 그때마다 베이 역할을 한 칼맨이 나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늘 칼맨에게 죽임을 당했다. 난 칼맨의 얼굴마담이었던 게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00397279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죽기 일보 직전에 가서 하는 말은 상대에게 진실하게 보인다. 마치 꿈처럼. 또한 창조성이 가장 빛을 발할 때다. 하자르 왕국의 왕 추대 의식은 인간 의식을 무섭도록 파고들어 만든 제도로 보인다. 또한 아무나 뽑는 양식은 오늘날 티벳에서 달라이라마 뽑는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임에도 현 시점에서 이 일화가 전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포다. 당신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순응한다면 제한된 자유와 권능을 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따끔한 훈계가 필요하다. 죽음과도 같은 순간을 맛보아라. 주가폭락! 그러나 그대를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그대를 보다 길들이기 위함 다름 아니다. 약점이 너무나 많은 그대를 사랑한다. 원칙에 딱 부합한다.
카자르 왕국에서는 두 강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강이며, 다른 하나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26502660
"
비정규직 해법, 우주론에서 찾는다 국유본론 2011
2011/05/05 10:28
http://blog.naver.com/miavenus/70108301551
"김종화 :
최근 스티븐 호킹이 천국은 없다, 라고 해서 화제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드라 :
1988년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출간했습니다. '시간의 역사'에서 스티븐 호킹은 그간의 우주론을 설명한 뒤 자신의 이론을 덧붙입니다. 빅뱅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빅뱅 이론이란 그저 몇 가지 관측 사실을 잘 설명해주는 가설이었습니다. 허나, '시간의 역사' 이후로 대대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교황 승인까지 받습니다. '빅뱅 이론'은 순식간에 '우주 신학'의 교리로 둔갑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신체 조건과 이를 극복하는 스티븐 호킹 개인에 대한 과학 외적인 사생활이 큰 작용을 하였습니다.
김종화 :
우주신학이요~! 그렇다면 스티븐 호킹은 우주신학자로군요. 새로운 개신교 종파의 탄생인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대중은 스티븐 호킹이 신과 천국에 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우주 신학자로 보게 되었습니다. 해서, 대중은 스티븐 호킹을 칼뱅이나 맑스 반열로 올려놓은 것입니다.
김종화 :
네? 칼뱅과 맑스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대중이 알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몇 가지 정도입니다. 신은 존재하는지, 천국이 있는지, 종말은 언제 오는지 등등.
김종화 :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 역시 선생님에게 비슷한 심정이어서 은근히 찔리는군요. 하하하 (어색한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인드라 :
별다른 진화론적 쓰임새가 없는 웃음이 왜 인간에게 필요한지를 선생이 이 순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스티븐 호킹만을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스티븐 호킹 역시 국유본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 중 한그루 나무일뿐입니다. 숲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열성적으로 전 세계 강연을 하던 1980년대 후반 국제 정세는 어떠하였는가.
데이비드 록펠러와 빅터 로스차일드간의 아마겟돈 전쟁 끝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항복하고 몰락하던 시기입니다.
"미국 우주항공국인 나사는 노예민주당과 관련이 깊다. 국유본의 기획 하에 케네디가 197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또한 무사하게 귀환시키겠다, 라는 아폴로 계획을 내걸었고,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노예민주당 정권 때에 달 착륙이 된다. 나사는 지금도 가장 큰 업적으로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을 내세운다. 해서, 국유본이 최근 급조한 일본 부패민주당 정권은 근래 나사를 본 따 일본판 나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게다. 나로호를 비롯해서 이것이 모두 다 국유본의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제이 록펠러가 1977년부터 맡아왔던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 자리를 1985년을 끝으로 내놓았다는 게다. 하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 현직 상원의원 출신이 근래 대통령이 된 것은 케네디이다. 그 이후로는 없다.
1986년의 미국은 레이건 정권 시대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미국 달러 약세가 진행되어 미국인 자존심에 상처를 내게 했던 국유본은 레이건 정권을 통해 별들의 전쟁, 혹은 스타워즈 계획을 구체화하려고 했다. 헌데, 첼린저호 폭발사고로 한순간 붕 뜨게 된 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노예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미국인의 꿈이자 가치가 달 착륙처럼 지켜지지만, 공화당 정권이면 첼린저호 폭발사고처럼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자작극? 이후 나사는 미국 노예민주당과 한목소리를 내며 지구온난화론에 올인?"
http://blog.naver.com/miavenus/70071270845
1980년대 후반 우주선 폭발, 체르노빌 사태 등 비극적인 사태가 연이어 일어나자 과학 자체에 대한 비판이 점증하였습니다. 허나, 이것은 그 배후인 국유본을 이해해야 비로소 사태의 시작과 끝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진화론을 중시하였습니다. 또한 빅터 로스차일드 그 자신이 과학자였을 만큼 과학을 신세계 질서의 중요한 근거로 보았습니다. 과학을 중시하고, 정보국에서 일하며, 살인면허가 있는, 영화 007 주인공 제임스 본드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차대전 이후에는 추리소설도 하드보일드류로 나아갑니다. 이전 합리적인 과학과는 달리 뭔가 부조리하게 행동하는 과학인 셈입니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몰락합니다. 과학이 몰락합니다. 급격한 신세계질서로의 이행을 주장하던 과학자 그룹이 몰락합니다. 1990년대초 우주론 역시 큰 위기를 맞습니다. 간단히 말해, 물주였던 빅터 로스차일드가 몰락하니 대통일장 우주론자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 시기 우주론자들은 저마다 이론을 하나씩 가질 만큼 백가쟁명 시대였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물주가 없을 때 발생하는 흔한 현상입니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잖아요. 리더십이 부재할 때, 꼭 나오는 게 뭡니까. 민주화로 포장한 집단지도체제죠. 사실은 무능의 다른 표현입니다.
결국 스티븐 호킹은 설거지 국면에 등장한 인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과학에서 신학으로 넘어가는, SF에서 환타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인물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를 임명해서 카톨릭을 장악했습니다. 해서, 교황 승인 따위야 전화 한 통화면 그만이었습니다. 국유본은 이 시기 과학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스티븐 호킹을 통해 연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해서,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역사'에서 시간 흐름에 관한 자신의 오류도 시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책 포인트였다고 저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김종화 :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스티븐 호킹이 재등장한다는 것은 혹 우주왕복선 프로젝트 축하메시지라는 것인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미 우주왕복선 인데버(Endeavor)호가 빅터 로스차일드 계열 중도좌파 박정희가 지도하는 한국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5월 16일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마크 켈리 사령관과 5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이번 발사에는 마크 켈리 사령관의 부인인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5000여 명의 관람객과 함께 발사장면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기퍼즈 의원이 누구입니까. 유태인으로 지난 시기 테러를 당하기도 한 차기 미국 대통령감이 아닙니까?
한줌도 안 되는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박정희 한국혁명을 쿠테타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지도했던 쿠바혁명도 쿠바쿠테타여야 하겠습니다. 알다시피 지금 쿠바는 록펠러 가문이 임명한 정몽준 영주가 지도하는 한국 식민지가 아니겠습니까. 해서, 한국인이 이제는 국제적인 시각을 갖출 때입니다. 허나,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계속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의 우민화정책을 극복할 때, 온전한 한반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최초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던 전두환 정권 때 했던 재판을 재심해야 할 것입니다. 친일매국노 김지태 재산 반환 소송을 원점으로 돌려야 합니다. 친일매국노 김지태 장학생이었고, 친일매국노 김지태를 김구 선생보다 존경하고, 친일매국노 김지태 재산 반환 소송을 담당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니까 친일파 넘들이 지속적으로 토지 반환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 친일매국노 김지태도 돌려받았는데 왜 우리들은 안 되냐고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걸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고 싶다면, 친일매국노 김지태 소송을 원점으로 돌려야 합니다. 허나, 현 집권세력이나 야당은 의지가 없습니다.
김종화 :
우주론을 이야기하는데 현실로 돌아오는군요. 재미있습니다만, 이번 인터뷰에서만큼은 현실보다 우주를 더 말하고 싶습니다. 대체 우리 우주는 어디 있나요? 환상인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해, 과학은 이론과학과 실험과학으로 나눕니다. 문제는 오늘날 이론과학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는 가설을 내놓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합니다. 오늘날 왜 초끈 이론이 각광을 받습니까. 초끈 이론을 입증하는데 필요한 실험적 조건이 최소한 백 년 이내에는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그렇지요. 이론물리학자들이 망신을 당하지 않고 백 년 동안은 먹고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끈 이론의 매력인 것입니다.
김종화 :
지나치게 노골적이십니다. 그것이 선생님 글쓰기의 치명적인 매력이기는 합니다. 일단 과학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과학이잖아요. 근대 정신 정수가 과학이지 않겠습니까. 이제 과학은 죽은 것인가요?
인드라 :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실험으로 입증한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과학이 한 일은 백번 칭찬해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근대 과학과 근대 과학자들은 전 세계 성직자가 한 일보다 수백 배 이상 인류를 위해 일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현재입니다. 과거에는 마약산업 등으로 수익 문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수익률이 박하다 보니 근대 과학도 변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의 국유본 권력 교체가 시대적 소명이 아니었나 보는 것입니다. 과학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낳게 한 동인이었다고 봅니다.
김종화 :
그런가요. 그렇다면, 선생님 지론에 따르면 지금은 제이 록펠러 황제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SF와 환타지가 함께 하는 퓨전 시대라고 합니다. 선생님 표현으로는 비빔밥 시대라고 하지요.
제이 록펠러는 과학에 관심이 있나요? 아니면, 데이비드 록펠러처럼 신화에 여전히 탐닉합니까?
인드라 :
제이 록펠러 목표는 킹 세종 목표와 흡사합니다. 이성계는 빅터 로스차일드, 이방원 데이비드 록펠러, 킹 세종은 제이 록펠러인 것입니다. 킹 세종은 다른 조루 왕들과 달리 수많은 여성들을 만족시킬 줄 아는 굉장히 정력적인 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방원이 구축한 왕권을 잘 활용한 왕이었습니다. 신하의 나라, 조선에서 몇 안 될 만큼 신하들을 잘 다루었던 킹 세종입니다.
오늘날 제이 록펠러는 킹 세종과 같은 업적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 인드라 생각입니다. 무엇입니까. 한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문자가 무엇입니까. 한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문자, 일본 문자나 이두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한 것이 한글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모두 인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글 보급이 과연 한국 정부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국유본 힘입니다. 국유본은 이전까지 에스페란토어를 지원했는데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발견한 것이 한글입니다. 한글은 정말 쉽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활용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는 킹 세종이 15세기에 알파벳 편리성을 알아서 한글을 발명했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래야 페니키아 카르타고 유태인들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일까요^^!
하여간 이런 맥락에서 근래 대마도는 한국 땅이란 것을 예사롭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킹 세종 프로젝트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볼 때, 대마도는 일본 땅입니다. 인드라가 왜구에 대해 말하면서 신라 해적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신라 해적이 대마도에 관심을 지닐 때가 있었습니다. 은과 진주 때문입니다. 이때, 대마도주가 통일신라에 조공했다면 모르겠지만, 대마도주가 일본에 조공합니다. 허나, 고려시대에는 신라 해적이 사라집니다. 이는 고려 왕건이 동북아 상권을 주도하는 해상세력이었기에 신라 해적이 소멸하는 겁니다. 해서, 고려 전반기는 그야말로 황금기였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당나라에 이어 송나라와 교역했던 것입니다. 해서, 고려제국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허나, 고려 후반에는 몽골이 침략하면서 사태는 급변했던 것입니다. 해상세력에는 약했던 몽골로 인해 해상세력 주력이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일본 해적, 왜구가 급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 초까지 일본 해적, 왜구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를 킹 세종이 다스린 것입니다. 그것이 대마도 정벌입니다. 이는 마치 독립국이었으며 조선과 명에 충성을 했던 오키나와를 근대 일본이 정복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땅 소유에 대한 인드라 식 명쾌한 해법은 무엇입니까. 등기부등본입니다. 현재 누가 등기부등본 소유자로 기재되어 있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누가 그 땅 소유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한국 대통령이 똑똑하고, 일본 쪽발이 왕과 총리가 무능하면, 대마도는 한국 땅이고, 독도도 한국 땅입니다. 그 반대라면 대마도도 일본 땅이고, 독도도 일본 땅입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독도는 일본 땅이었습니다.
헌데, 더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실질적인 땅 소유자는 국제유태자본이라는 것입니다. 독도든, 대마도든 국제유태자본 땅입니다. 필요하니까 지금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는 것이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왜? 대마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 국유본 땅이기 때문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 말씀은 듣고 보면 허무할 정도로 쉽습니다. 이것이 국유본 권력을 해체하는 길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가 보다 국유본 권력으로 포섭되는 길일까요? 두렵습니다. 나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요?
인드라 :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우주신학자라는 데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저는 당신 인생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동시에 오늘날 시대가 인드라를 향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인드라가 스티븐 호킹이나 칼뱅, 혹은 맑스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수여도 그 소수 중 한 명이 제이 록펠러라면?
인드라가 이 대목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주론은 증시에서 보자면 5일선, 또는 엘리어트 파동과 같다고 봅니다. 5일선이나 엘리어트 파동이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허나, 오늘날 상당수가 '믿는다면', 보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 정도에서 인간 두뇌를 한정한다면, 그것이 진리인 것이 오늘날 상황입니다.
오늘날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박정희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쿠테타라는 것이 진리인 한, 그것은 진리입니다. 국유본 세상에서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세상이 변화한다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으며,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처럼 우주론 역시도 마찬가지 운명인 것입니다.
지금 초끈 이론이 제시하는 것,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가지 초끈 이론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국유본 이해를 위해서.
김종화 :
선생님, 무식한 질문을 끝으로 하겠습니다. 천국은 있나요?
인드라 :
천국은 있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대로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지옥 불덩이에서 고생할 것입니다. 반면, 누군가 의지대로 김대중과 노무현은 천국에서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 의지가 크다면 당신이 바라는 대로의 세상에서 평생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허나, 당신 의지가 약하다면 당신이 바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PS : 근래 광주항쟁에 북한군 개입 논란이 있습니다. 분단체제 시점에서 이 논의는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 승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허나, 통일을 하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초점은 무엇입니까. 국유본론입니다. 다시 말해, 국유본론은 광주항쟁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군을 파견시켰다, 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당장에는 이것이 부정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왜입니까. 사망자 명단에 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북한군 개입이 있었다면 당장 발표할 터인데, 왜 안 했냐 하는 근거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바로 이 대목에서 국유본론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것이 전두환 개인 의지가 아니라 국유본 의지라는 것이 국유본론입니다.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권인 전두환 정권 탄생을 위해서는 광주항쟁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이 국유본론입니다. 국유본론은 광주항쟁을 국유본 연출, 전두환, 김대중 주연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 김정일 개입에 관해서는 현 시점에서는 논의 불가능하고, 통일 이후에 다루어질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
비정규직 해법, 우주론에서 찾는다 2 국유본론 2011
2011/05/17 07:26
http://blog.naver.com/miavenus/70109153565
"김종화 :
선생님. 선생님께 폐가 되는 것 아닌지 조심스러운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오늘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봤으면 싶습니다. 우주가 어떻고, 원자가 뭐건, 사실 95% 인민들이야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당장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면 경제이론도 관심이 없는데 말이지요. 어차피 우리가 무엇을 말하건, 대다수는 관심이 없잖습니까.
선생님과의 인터뷰에 지속 관심이 있는 이들이야 국유본과 각국 정보국, 청와대,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한국 정당들, 조중동과 한경오프엠 언론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종교계와 학계, 마지막으로 선생님 블로그 이웃이나 국유본론 연구회 카페 회원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들을 다 합쳐봐야 전 세계 1%도 안 될 것입니다. 영향력은 그 반대로 99% 이상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하던 인터뷰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기분 전환하는 의미에서 5% 정도로 외연을 넓혀 잠깐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인드라 :
사실 폐가 조금 되긴 해요~! 하지만, 이것도 헤지입니다. 쉬운 길을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연구를 중시하지만, 교육도 중요합니다. 혼자 열 걸음을 걸어가는 것과 다 같이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을 동시에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때그때마다 배합, 배치에 있습니다. 언제 무엇을 우선하느냐. 또한 우선해도 그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령 인드라는 스스로에게 다양한 헤지, 혹은 페널티를 가하고 있어요. 가령 이순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책을 출판하지 않을 것이다 등등이 예죠. 이는 인드라 연구에 당장에는 폐를 끼칩니다. 하지만 인드라 글쓰기에는 길게 보면 좋습니다. 마치 지금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과 같거든요. 지금 당장 모래주머니를 떼면 더 신나게 걸을 수 있겠지만, 하늘을 걷고자 한다면 지금보다 더 모래주머니를 차야겠지요.
결론은 선생 의견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김종화 :
다행입니다. 밤새 고민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부족한 제 의견을 받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인드라 :
별 말씀을요. 그럼 말씀하시지요. 근래 선생 이목을 집중시킨 일이 무엇인가요.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09447737
김종화 :
네. 우선 스트로스 칸 성범죄 사건입니다. 저는 '샴페인 좌파' 스트로스 칸 뉴스를 접하고 선생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왜인지 아세요? 선생님께서는 오월 초순부터 '강남좌파'를 비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작이야 선생님 이웃 분이 학교 비정규직 문제 제기에 선생님이 대응한 것이긴 합니다. 선생님은 의제 설정에 탁월한 면이 있잖아요. 중요한 건 선생님이 학교 비정규직과 경기도 교육감을 엮어 강남좌파 문제로 이슈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황당하다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렇듯 동시성으로 일어나는 것이 한두 번이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세상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한두 번이야 우연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난다면.
게다가 선생님이 최근 블로그에 올리신 글 말입니다.
유가 전망 : 골드만삭스 VS 인월리 2차 대전
http://blog.naver.com/miavenus/70108859856
이 글이 5월 13일 새벽에 올라왔습니다. 선생님은 이 글에서 비록 스트로스 칸을 말하지 않았지만, '석유 좌파' 카다피를 숙청하면 유가가 폭락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5월 13일자 오후에 제이 록펠러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08970129
제이 록펠러가 "당신들은 고유가 탓에 겪는 소비자들의 고통을 너무도 모른다."며 석유 메이저를 비판하는 기사였습니다. 여기에 작은사치님이 한 말씀하십니다.
"인드라님을 지지한다는 기사로 들리네요^^."
작은사치님 말씀에 공감하는 이는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 진실을 알려주세요.
국유본에게 뭔가 정보를 획득한 것입니까. 미리 알았기에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라면, 선생님을 천재이거나 신의 대리자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제발,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사실 선생님이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해서 한국 진보좌파를 비판할 때마다 한편으로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섭습니다. 세상이 정말 어떻게 되려나,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니지, 하면서도 그것조차 국유본 의도라니 정말로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씀하시죠. 그것이 국유본 프로그램이라고 말입니다.
국유본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노뽕의 눈물'이라는 흑마술 계열 프로그램을 시전중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더라도 조중동문스와 한경오프엠이 '국유본 합창'으로 '노뽕의 눈물' 마법을 걸면 대다수 한국인은 세뇌당한다고 말입니다. 이미 세뇌당해 있어서 '노뽕의 눈물' 마법 시동어만 걸면 걸린다고 말입니다.
저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정부는 믿지 않습니다. 언론은 믿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언론도 국유본이 장악했다고 하네요. 언론이 미국 쇠고기 먹지 말래서 먹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천안함 사태가 북한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해서 믿었습니다. 언론이 이명박을 비판하라고 해서 믿었습니다. 언론이 김대중을 지지해서 김대중 찍었고, 언론이 노무현 지지해서 노무현 찍었고, 언론이 이명박 지지해서 이명박 찍었습니다. 차기에는 좀 헤깔립니다. 언론이 박근혜 지지해서 박근혜 찍으려고 하는데, 전과 달리 뭔가 복잡합니다.
선생님은 이 모든 사태를 깔끔하게 정리하실 것 같은데요.
인드라:
우연의 일치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물론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주 일어나기는 했습니다. 가령 오늘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볼까요? 인드라가 오늘은 '국가 경쟁력'을 소재로 한 글쓰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해서, 관련 자료도 모아두고 저장했어요. 만일 여기까지라면, 국유본이 해킹 실력이 상당하니 이런 자료들을 미리 보고 검토해서 대응책을 마련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대응 시간이 엄청 빠른 겁니다. 제이 록펠러가 인드라가 말한 것을 실시간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도 보고가 들어가고 대응책을 지시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잖아요. 이상한 거죠. 더 이상한 건 말이죠. 오늘 퇴근하면서 카오디오로 음악방송을 들을 때였습니다. 어지간하면 고정 주파수로 듣는 편인데요. 갑자기 해당 라디오 방송이 듣기가 싫더군요. 그래서 다른 채널로 돌렸는데, 그때 경쟁력 뉴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스위스 IMD 조사 방식을 비판하는 핵심 대목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인드라가 저녁에 몰려오는 손님들이 굉장히 많아서 이 뉴스를 놓쳤거든요.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생각이 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비슷하지요. 또 어떤 이들은 '데쓰노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인드라에게 '데쓰노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그보다 인드라는 '매드니스'라는 영화를 떠올립니다. 인드라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입니다. 평행우주론이 생각나나요?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강한 사람 뜻대로 세상이 움직인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여간 그런 이유로 인드라는 오늘 국가 경쟁력을 소재로 한 글쓰기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미있는 상황이지요.
하하하.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드라는 맹세하건대, 국유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인드라를 매개로 해서 국유본과 연락 좀 하고 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꿈 깨시길 바랍니다. 못 믿겠습니까. 만일 인드라 말이 거짓이라면, 인드라가 일 년 후에 천억 대 부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면, 가능성은 둘이죠. 하나는 인드라 발상이 천재적이어서 국유본이 인드라 의견을 적극 참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실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청와대와 친일매국수구반동민주당에서 보고 있다는 여러 증거가 있으니까요. 또한 언론사에서도 인드라 글을 보고 있다는 것은 최태원 관련 사건에서 나타났습니다. 국유본도?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랜 기간 인드라 글을 모두 인쇄해서 읽어보시는 작은사치님 같은 분이라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응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드라는 신의 대리자, 신의 예언자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드라가 노코멘트를 하고 싶습니다. 안 맞는 대목도 많은데, 맞은 부분만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이비 교주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런 이유로 인드라는 맞지 않은 대목을 좀 더 주목하라고 몇 번씩이나 당부를 드린 바도 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드라도 모릅니다. 다만, 국유본 적극대응론과 신의 대리자론 사이에서 진실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한 것이 인드라 입장입니다.
김종화 :
그렇군요. 믿건, 안 믿건, 선생님은 저와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국유본을 정면 조준하면서 말씀하시는군요. 선생 맹세를 거짓으로 만들려면 국유본이 선생님을 일 년 이내에 천 억대 자산가로 만들어야겠군요. 아니라면 선생 맹세가 지켜지구요. 선생님이 신의 예언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재적인 전략가는 분명하네요.
선생님. 칸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 국유본론 관점에서 칸은 어떤 사람인가요. 특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생님만 말씀하시는 국유본 분파 이론 관점에서 말입니다. 칸은 네오콘부시파입니까. 뉴라이트파입니까. CGI클린턴파입니까.
인드라 :
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칸은 웅변을 잘 하는 유태인입니다. 또한 칸은 프랑스 엘리트들이 거치는 엘리트 코스를 거쳤습니다. 선생도 알다시피 세계 주요 국가는 특정 학맥이 해당 국가를 지배합니다. 가령 미국은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우리 표현으로 연고대처럼 옥스브리지라고 할 만큼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 정관계는 물론 BBC를 비롯한 언론, 사회, 노동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케임브리지 출신입니다. 여기에 런던 정경대가 국유본 학맥에 합세하는 형국입니다. 일본 역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동경대를 중심으로 게이오대와 와세다대가 우청룡좌백호로 떠받치는 꼴은 영락없이 한국 스카이 대학입니다. 사실 이것이 영국 교육시스템을 일본이 베끼고, 그런 일본을 한국이 모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국유본 지시를 따른 것입니다. 북한도 뭐 다른가요? 김일성대학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물론 여기에 이의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는 68혁명 영향으로 대학을 모두 평준화시켰다 개드립. 미국 주립대학들 만만치 않다는 개드립. 일본 역시도 지방 국립대가 굉장하다는 개드립. 인드라가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스웨덴부터 북한까지 중심은 있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얼마나 언론플레이를 잘 하느냐 여부로 다르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한국도 잘 보면, 스카이가 다 해먹는 것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다 78 : 22 경향입니다.
다만, 선진국일수록 세련된 언론플레이를 구사해서 이 차이가 차별로 드러나지 않도록 포장할 뿐이지, 본질은 같습니다. 왜? 국유본이 지도하니까.
칸으로 돌아갑니다. 프랑스 사회당은 PCF, 녹색당, 좌익급진당, MDC 등 원내의 다른 좌파 정당들과 연대하여 "다양한 좌파 세력" (Gauche plurielle)을 구성하여 1997년의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죠스팽 내각이 출범합니다. 참고로 죠스팽은 트로츠키주의자로 출발했다가 샴페인 좌파로 변신한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자크 데리다의 연인, 실비안느 아가상스키와를 가로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도르노는 순진했다. 내면을 그대로 노출하였으니 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을 것인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기타 등등의 이 모든 문제를 노동자계급 중심적으로, 역사적 유물론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철학적으로 이를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데리다가 등장한 셈이다. 데리다는 페미니즘, 자주이론,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자양을 듬뿍 선사한다. 마치 들뢰즈처럼 역사적 유물론을 전면 거부한 것처럼, 니체주의자인 것처럼 등장한 데리다. 그러나 사르트르처럼, 알튀세르처럼, 데리다 역시 교묘한 배신을 때리기 시작한다. 갈수록 자신은 맑스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맑스주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헤겔에 대해서도 갈수록 찬사를 늘어놓기 마련이니 어찌된 일인가? 아도르노는 순진해서 논파가 가능하지만, 데리다는 교묘하기 그지 없어서 논파하기 어렵다. 그것이 데리다의 전술이었다. 모든 것에 대해 난해하기.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은 아는 체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다. 그 효과는 굉장하기에 프랑스인처럼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남한 지식분자 애새끼들 입마저도 다물게 한 것이다. 대신 들뢰즈이니, 라깡이니, 최근에는 지젝이니 하는 입맛이 맞는 애들이나 운운하면서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
http://blog.naver.com/miavenus/60006552110
이 시기 프랑스는 이중권력 시대였습니다. 대통령은 자크 시라크, 총리는 죠스팽이었습니다. 인드라가 그간 관찰한 바, 국유본은 선진국 정치 실험 우선순위를 프랑스로 두고 있습니다. 선진국 유럽에서는 프랑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한국, 남미에서는 브라질. 마지막으로 최빈국에서 정치 실험은 북한,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에서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재보선 선거와 같은 것인니다. 국유본은 재보선 선거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선동선전 결과가 제대로 나타나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가령 한국 최근 재보선 선거는 국유본 산하 알파독과 같은 기관이 개입했다고 인드라가 확신합니다. 해서, 그들 의도대로 백 프로가 아닌 백삼십 프로 초과달성했다고 봅니다. 왜? 인드라라는 변수 때문입니다. 인드라가 그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안전빵을 추구한 덕분에 '분당우파'라는 용어를 낳게 만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칸이 1997년 프랑스 사회당 죠스팽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칸은 무슨 짓을 했습니까.
두 가지 업적(?) 혹은 만행이 있습니다.
하나는 칸이 유럽단일통화인 유로화 채택 협상에 관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칸이 국유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이 FTA하는 것보다 노무현이 FTA하는 것이 모양새가 있지 않는가요? 바로 여기에 노무현 쓰임새가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 유독 시위가 격렬했던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데요. 친일매국수구찌라시 한경오프엠에서 보도를 축소, 은폐 보도한 사례가 굉장히 많아요. 여러분 중에는 노무현 정권 때 시민들이 분신 많이 한 뉴스 처음 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인가요. 보도 통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명박 때는 어때요. 인드라가 볼 때 뉴스 노출도가 80% 정도 됩니다. 조중동도 안 좋은 소식을 가급적 많이 노출시켜요. 반이명박 노선이 국유본 노선이니까요. 사람들을 모두 반이명박에 초점을 맞춘 뒤에 해먹으려고 하니까 말이죠. 반면 노무현 정권 당시 노출율이 인드라가 볼 때 50% 정도 혹은 그 이하였습니다. 굉장히 물타기가 많았어요. 특히 네이버, 다음이 극악했지요. 국유본 알바 풀어서 댓글 장악하고, 뭐, 이건 지금도 네이버, 다음이 마찬가지인데요. 인드라가 볼 때는 말이지요. 이것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관리하는 것 아닙니다. 국유본이 관리해요. 뉴스 댓글에 홍어 운운하는 애들이나 이명박 욕하는 애들 인드라가 볼 때 대부분 국유본 알바, CIA 알바로 봅니다. 국유본 지시로 한다고 봐요. 네이버, 다음 뉴스 순위도 다 이 친구들이 조작한다고 보고 있어요. 하여간 중요한 건 이래요. 뭔가 자기 일을 보도해주면 억울하지가 않습니다. 극한투쟁을 덜 하기 마련입니다. 반면 투쟁하는데, 언론에서 일제히 쌩까면 굉장히 서운해지죠. 게다가 같은 동지라고 믿었던, 한걸레 따위 친일매국수구찌라시 한경오프엠 국유본 언론이 겉으로는 삼성 비판, 속으로는 삼성 돈 먹고 뒤통수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 은근히 많아요. 이게 애네들이 국유본에게 지시받는 것인지 하여간 이런 것 한번 당하면요. 꼭지가 돌죠. 해서,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노무현 정권 때 특히 자살한 이들이 많았던 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거죠. 그게 인간적으로 매우 큰 상실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드라가 정권교체 운운하는 넘들을 모조리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자구요. 지금이 이명박 정부이니까 FTA 반대하면 븅신색희 이외수처럼 스타하는 분위기이죠. 반면 지금이 노무현 정권이라고 생각해봐요. FTA 반대하면,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찌라시 한경오프엠은 진보좌파도 이제는 극좌와 결별할 때 운운하는 사설과 칼럼을 필두로 해서 아예 뉴스에서 제외시킬 가능성이 커요. 물론 이처럼 노골적으로는 안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지네들이 조중동인양 찬반양론을 모두 소개한 뒤 자유투표 운운하거나 조용히 퇴장전술을 운운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민주당이 쓰는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물론 친일 조중동은 연일 좌파 변신은 무죄! 좌파가 변신하니 한국 국가 경쟁력도 쑥쑥! 친북좌파와 결별하면 정권교체 가능 이따위 뉴스를 톱뉴스로 내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명박 정부. 친일 조중동도 닥치고 이명박을 비판합니다. 대신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민주당을 키웁니다. 조선일보 기념식에 누가 참석했나요? 한나라당 관계자만 참석했나요?
다른 하나. 사회당 내부의 반대를 극복하고 프랑스텔레콤 등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주도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샴페인 좌파 특징. 강남 좌파의 실상. 민영화.
니미럴. 오늘날 한국 주류 노동계에 인드라는 비판하겠습니다. 인드라가 주되게 비판하는 삼대 주류 노동계는 누구입니까.
하나는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찌라시 언론노조입니다. 이놈들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제일 필요없는 색희들이 이 개색희들입니다. 정신상태가 썩었습니다. 맨날 룸쌀롱에서 처마시는 건지, 개색희들. 특히 삼성 광고 처먹는 한경오프엠 개씨발색희 기자색희들아. 인드라가 아무리 영혼이 타락했어도 니넘들보다는 백만 배나 인간성이 깨끗하다, 이 좆같은 넘들아, 라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인드라 비판이 가슴이 아프다면 당장 폐간해, 개씨발색희들아, 라고 인드라는 평범한 시민들이라면 할 수 있는 상식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넘들은 혁명이 일어난다면, 혁명교화소에서 중노동으로 최소한 한 십 년 썩어야 인간이 될 넘들이야. 니넘들이 양심이 있다면 인드라 이 말에 찔려야 한다. 아니라면, 당신은 구제불능이야, 라고 인드라는 당신들에게 매우 사무적인 어투로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뇌아 븅신 전교조입니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은행노조를 들겠습니다. 인드라가 분명히 말합니다. 강만수 메가뱅크론 그 근원적 의미를 알기에 찬성하지 않아. 김승유가 철부지 삐에로라는 것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승유보다 더 철없는 넘들이 너넘 은행노조 놈들이야. 관치금융? 이따위 표현이 말하는 바가 뭔지는 너놈들도 잘 알겠지?
아, 쒸발, 더 말하기 귀찮습니다. 노조가 국유화 반대하고 민영화 운운할 때 다 속사정이 있겠지요. 금융노조 위원장님들, 이러면 좀 처먹나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딱 두 가지만 봐도 칸이란 넘이 어떤 넘인지 알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프랑스 사회당 이야기를 잠깐 합니다.
사회당 미테랑 정권은 어떤 정권입니까. 네오콘부시 정권인가. 아닙니다. 뉴라이트 정권이었습니다. 미테랑 정권이 네오콘부시 정권이었다면, 로스차일드 은행을 폐쇄시킬 구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테랑은 로스차일드 은행을 폐쇄시켰던 것입니다. 빅터 로스차일드와 데이비드 록펠러간의 아마겟돈 전쟁 중에 일어난 변두리 지역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하면, 미테랑 정권과 죠스팽 내각 차이는 무엇입니까. 김대중과 노무현 차이입니다. 초기 뉴라이트는 아무래도 네오콘부시파와 대립각을 세우다 보니 보다 진보좌파 쪽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이었지요. 하지만 죠스팽에 이르러서는 노무현처럼 노골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죠스팽 내각에서 칸이 한 일은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측으로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에어 프랑스와 프랑스 텔레콤 등을 부분 민영화한 것입니다. 이명박이 아니라 노무현이 하니까 뽀대가 나나요? 왈칵 눈물이 쏟아지나요? '노뽕의 눈물'이라는 흑마술 마법이 작동되나요? 노무현이 그 아무리 악랄한 짓을 하더라도 노무현이 여전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인다는 흑마술 '노뽕의 눈물' 말입니다.
칸은 이밖에도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주35시간 근무제가 프랑스 경제 부활에 암초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칸이 IMF 총재가 되었습니다.
이전 독일 출신 IMF 총재가 네오콘부시파라는 것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05235670
또한 세계은행과 IMF 구조는 빅터 로스차일드 때 만든 시스템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고 인드라가 강조한 바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69444733
정리하면, 스트로스 칸은 노무칸이었던 셈입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모두 국유본 충견이었듯, 미테랑, 죠스팽, 스트로스 칸 모두 국유본 충견이었습니다. 다만, 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국유본 당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보다 더 우측으로 이동한 포지션, 노무현. 그것이 국유본에게 임명받아 그가 대통령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인 것입니다.
그처럼 스트로스 칸이 IMF 총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스트로스 칸 성범죄 사건이 터지자 친일 조중동 태도가 어떠했을까요? 무작정 미국 입장을 두둔하던가요? 아니지요. 일단 중앙일보가 가장 호의적이더군요. 스트로스 칸을 청 마지막 황제 부이를 대하듯 평등 세상을 경험하다는 식입니다.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맹렬히 미국 태도를 비판합니다. 왜일까요?
여기서 기존 친미사대주의 신문 조중동이라는 주술이 깨지고 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국유본 분파 게임입니다. 네오콘부시 조선일보, 뉴라이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렇다면, 이들이 왜 다른 양상을 보여줄까요?
네오콘부시 조선일보 입장은 명확합니다. 이명박 비판, 강남좌파 비판은 좋지만,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민주당은 종북좌파와 거리를 두고, 한나라당은 박정희 비판 열심히 해야~! 이런 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친일 조선일보 기념식에 참석한 친일매국수구반동좀비민주당 지지를 보다 확고히 합니다.
중앙일보는 뉴라이트입니다. 뉴욕타임즈처럼 CGI클린턴 계열이 아니어서 노골적이지 않지만, 호의적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즘 삼성 로스차일드 압박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같은 뉴라이트라도 조심해서 나쁠 것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동아일보입니다. 동아일보는 뉴라이트입니다. 허나, 그건 사상적 지향이고, 핏줄로는 네오콘부시파죠. 요즘 포스코건설이 탄압을 받는다구요. 어허! 핏줄을 못 살게 굴면 이명박도 제 명에 못 살 걸?
한국 대부분 정치인은 뉴라이트입니다. 소수가 네오콘부시이구요. 아주 극소수만이 CGI클린턴인데, 명함 내밀 수준이 못 됩니다.
김종화 :
잠깐만요. 선생님. 지금 선생님이 언론계나 노동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백프로 사실입니까. 아니면 전략적인 것입니까.
인드라 :
물론 전략적인 것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나 이런 반응을 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대는 언론계나 노동계가 아니라 국유본입니다. 어차피 언론계나 노동계는 국유본이 한마디하면 미국 공화당 후보들처럼 깨갱할 족속들이니까요.
김종화 :
이쯤해서 정리해봅니다. 선생님 말씀을 정리하면, 카스트로 칸은 유태인이자 뉴라이트였다. 뉴라이트였지만, 유럽 쪽 이익을 중시해서 그간 한국 경제지표를 노무현 정권 때부터 의도적으로 나쁘게 말해왔다.
그러던 카스트로 칸을 국유본이 제거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사회복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유익한 일이다.
맞나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한국이 몸 사릴 때입니다. IMF 총재 자리에 탐닉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IMF 총재 자리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시기입니다. 인드라가 지금 상황을 지켜보면, 국유본은 어떤 정답을 마련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가능한 이들을 먼저 선보이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누가 호응을 받는 것인지 실험한 후에야 확정하는 것 같습니다.
이때 국유본이 정말 한국인에게 자리를 줄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럴지라도 발표 전까지 망상으로 생각하고 자신들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종화 :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른 질문들도 많았는데, 아쉽습니다.
인드라 :
미안합니다. 소주 두 병 위력이 지금 나타나네요. 더 이상 인터뷰는 불가능합니다.
김종화 :
선생님. 이런 점은 선생님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국유본론을 주장하시면서 국유본을 직시하여 세상에 잘 대처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만큼 선생님 말씀을 깊이 공감하면서 세상 주역으로 나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숫자 만큼 선생님 이야기가 합리적일수록 더욱 부정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좀비 세력이 강화할 것이란 것입니다. 선생님도 무뇌아 븅쉰 노빠란 표현을 잘 쓰시듯 제가 그런 표현에 동의하든 안 하든 좀비는 두뇌가 없습니다. 이명박 좀비이든, 김대중 좀비이든, 노무현 좀비이든, 박근혜 좀비이든, 좀비 특성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물론 선생님이 이런 걸 다 감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근래 노무현 비판을 재개하시는 것이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키 노무현 키우려는 의도인가요. 선생님이 이러시면 국유본이, 조중동이 좀 더 새키 노무현을 키우겠지요? 그렇더라도 몸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구요."
삼페인좌파 칸 몰락은 강남좌파 몰락의 전조인가? 국유본론 2011
2011/05/21 06:02
http://blog.naver.com/miavenus/70109452143
"김종화 :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근래 선생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은둔 아닌 은둔, 침묵 아닌 침묵을 지키고 있으신데요. 어떠신가요.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
인드라 :
네. 그렇습니다. 어제 휴대폰을 분실했습니다.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어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김종화 :
고맙습니다. 선생님. 곧바로 질문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은 '소프트 파워', 조지프 나이를 일개 학자로 볼 것이 아니라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C)와 같은 국유본 조직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중요한 학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주일미국대사로 조지프 나이가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격렬하게 반대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런 후에 우연인지 오바마 정부는 주일미국대사로 조지프 나이 대신 오바마 측근을 임명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정부가 한숨을 내쉰 반면 선생님은 쌍수로 환영한 바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간 외교 분야, 특히 동북아 외교에 집중하면서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려 애를 써왔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국무부 분석과 주한미국대사 분석, 마지막으로 한국 주재 CIA 분석을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를 역대 최고위급 인사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간 이 문제에 대해 선생님처럼 열정을 지니고서 주한미국 대사 격을 줄기차게 논한 분은 이제껏 없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주한미국대사로 중국과 일본과 어깨를 당당히 겨루는 중량급 인사를 보내줄 것을 국유본에게 요구해왔습니다. 최선은 국유본 이너써클에서 행세할 수 있는 인물이라 했습니다. 차선은 중국통이나 일본통이 아닌, 다시 말해, 한반도 비전문가가 아닌 한반도를 한국인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한국통을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근래 언론이 감히 이 문제에 대해 미국에 대드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일보입니다. 올초에 한국 언론에서 이미 이 문제를 거론한 바 있으니까요.
"로크 장관은 현역 장관에서 주중대사로 직행하는 이례적인 케이스다. 그는 중국계로 미국 내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워 온 중진 정치인이다. 중국계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주지사(워싱턴주)가 됐고, 첫 중국계 상무장관이다. 그의 부인이 중국에서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쑨원(孫文)의 증손녀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전에도 미국은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언제라도 백악관과 협의할 수 있도록 비중 있는 인물을 베이징에 보내왔다. 전화 한 통화로 백악관과 연결되는 거물들이 많았다. 2000년대 7년간 최장수 주중대사를 지낸 클라크 랜트 주니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예일대 동창생이었다. 유타주 주지사를 지낸 존 헌츠먼 현 주중대사는 2012년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일본으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하워드 베이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역대 주일대사 명단에 올라 있다. 미국과 일본의 여야 고위 관계자들과 언제라도 중요 현안을 협의할 수 있는 거물들이었다. 존 루스 현 주일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박빙의 경선을 치를 때부터 거액의 정치헌금을 모금했다. 밖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긴밀하게 대화하는 사이다. 한국에는 언제쯤 이 정도의 중량급 인사가 미국대사로 부임할 수 있을까. 마침 백악관은 차기 주중대사를 내정한 데 이어 오는 8월 교체되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대사의 후임을 인선 중이다. 올 초까지 조 도노번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차기 주한대사로 유력하게 거론되다가 최근 다시 원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한·미동맹 미래 비전'을 통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높이기로 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중국과 일본에는 중량급 인사를 보내고, 한국에는 고참 외교관을 보내는 미국 외교의 낡은 도식(圖式)을 깰 때가 됐다. 그동안 역대 주한 미국대사에는 대부분 국무부의 능력 있는 외교관들이 부임했지만, 백악관과 '핫 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15/2011031502777.html
그간 언론 보도를 보면 이렇습니다. 당초 주한대사에는 조 도노반 국무부 동아태 수석 차관보가 유력했다가 3월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바뀐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계인 게리 로크 상무장관을 주중대사로 지명한 뒤 중국과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한국계인 김 특사를 지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면의 진실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이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드라 :
좋은 질문입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오늘날 이명박 정부 외교 성과는 이명박의 '가상' 적들로부터도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외교력이 워낙 엄청나기에 최전선에서 반MB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친일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 외교 뉴스를 가급적 취급하지 않습니다. 안 좋은 일만 거론합니다. 반면 놈정일이 대통령이라도 되는 듯 자해공갈단, 놈정일이 화장실에 똥 싼 뉴스라면 아무리 세상에 뉴스가 넘쳐도 놈정일 뉴스를 일면톱으로 보도하는 것이 요즘 친일 조중동 현주소입니다. 땡놈 뉴스가 아닐 수 없네요. 이런 걸 국유본론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전 이념 구도로는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해서, 나온 것이 이명박은 놈정일보다 좌파적이라는 뉴스더군요.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524000346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친일 조중동이 반MB투쟁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 친일 조중동,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 모두 국유본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국유본 지시에 따라 이명박 정부를 공격해야 합니다. 다양하고, 끈질기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면 이명박 정부가 허약해질 것이고, 그만큼 이명박 정부가 국유본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내 언론만이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 언론들도 평양언론 등을 제외한 몇몇 나라만 제외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일본 언론은 다소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 언론은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보다는 수준이 높지만, 친일 조중동에 비해서는 수준이 낮지 않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예외는 일본경제신문입니다. 일본경제신문은 친일 조중동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둘,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 언론이 워낙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 광우병이다, 천암함이다, 뭐다 했는데, 그것이 다 거짓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언론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읽는 이들도 없고, 내보내는 뉴스도 모조리 땡놈뉴스이고, 거짓투성이인데, 이런 찌라시를 누가 돈 내고 보겠습니까. 이걸 보완하고자 포털에서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을 좀 키우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포털에서 뉴스 많이 읽기 이런 것 조작 쉽다고 합니다. 다음, 네이버 아이디 대량 생성해서 자동으로 찍어주면 되거든요. 직접하면 곤란하니 국유본이 민간업자에게 자금 지원해서 해주면 얼마든지 보도 통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뉴스 통제하고, 블로그 통제하고, 카페 통제하는 것입니다. 하고, 사이트 열 개 당 한 명 정도로 알바 풀면 무한 통제 가능합니다. 한 넘이 이 아이디로는 전라도 홍어랑께, 이러고, 다른 아이디로는 쥐박이 알바냐 이런 식인 거죠.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말이죠. 정치 뉴스도 아닌 데다 이런 댓글을 다는 넘들입니다. 이넘들은 역레발 알바입니다. 나쁜 뉴스가 스무배 빨리 전파한다는 것을 착안해서 범죄 사건만 일어나면 전라도/경상도 따지는 넘들입니다. 범죄자가 경상도/전라도 출신이다를 알바가 떠들면 네티즌들이 동조하나요? 정반대죠. 아직도 이런 지역감정에 파묻힌 넘들이 있느냐 이러죠. 이걸 노리는 것입니다. 참 쉽죠잉~
결론은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삼성 돈이나 처먹으면서 겉으로는 삼성 비판하는 이 븅신색희 언론을 없애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정부 비판 없어지나요? 정반대입니다. 보다 시민들은 양질의 대정부 비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친일 조중동 중에 하나는 반드시 누구보다 가장 격렬하게 대정부 비판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언론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언론입니다. 르 피가로나 르 몽드나 둘 다 뉴라이트 국유본 언론인데요. 르 피가로는 사르코지 지지하고, 르 몽드는 죽어라고 사르코지 비난하면서 사회당 지지합니다. 리베라시옹은 로스차일드 소유이구요. 감 잡았나요^^!
생각해보세요. 한국 재벌들이 찌라시에게 돈 뜯기는 비용을 모두 한국 빈곤층에 투자한다면 그것이 복지가 아니겠어요? 맨날 룸살롱에서 술이나 처먹는 기자색희넘들에게 돈들이 쏠린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기자 씹색희들을 노숙자로 만들어야 한반도인 모두가 정말 잘 살 수 있다는 길로 갈 수 있는 것을 인드라가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주변에서 기자 씹색희들을 만나면 꼭 말하세요.
야, 너, 기자 씹색희지? 이렇게 꼭 말하세요.
학생들도 기억하세요. 친구 부모가 기자 씹색희면, 꼭 말하세요.
니네 부모가 개씨발, 기자 색희냐. 재수없는 새뀌구나. 오늘부로 넌 존나게 맞아야쓰것다. 난 독립군 집안이거든. 너네 기자 개씨발 색희들을 보면 죄다 쪽발이 매국노들 같거든?
이런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국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대사 인선에서 대체로 중국과 일본에는 정치적 인사를 보내고, 한국에는 고참 외교관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역대 최고위급 주한미국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를 제외하고서는 격이 낮은 대사를 보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시절부터, 아니, 인드라가 알렉산더 버시바우를 극찬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인드라가 평가할 때, 최선은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을 지낸 짐 리치(Jim Leach·68) 전 의원입니다. 리치는 1977~2006년 30년 동안 하원에서 활약하며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지난 대선 때 오바마를 지지해 2009년 8월부터 국립인문학기금(NEH) 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량급 인사가 주한미국대사로 온다면, 한중일 중 최고위급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국지를 떠올립시다. 노장 황충 무게를 잊지 말자구요. 이런 인물 인선이야말로 외교의 꽃인 것입니다.
외교란 자기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자신과 반대편인 인물을 내세울 때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짐 리치는 최선입니다. 공화당이면서 오바마를 지지한다? 이는 그가 뉴라이트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만, 현 시점으로는 짐 리치보다는 성 김이 더 유력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간단합니다. 반MB투쟁이라는 국유본 요구에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워낙 부실하니까 친일 조중동이 나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정이 이렇다고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을 탄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오히려 그들을 키워주는 것이니 인드라부터 반대합니다. 인드라 입장은 간단합니다. 언론시장 만큼은 시장에 맡겨주세요~! 다른 분야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인드라가 비판적인데, 유일하게 인드라가 시장주의를 찬성하는 부문이 언론시장입니다. 시장에 맡기면,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은 길어야 6개월입니다. 그 이후로 대부분 폐간합니다. 허나, 국유본이 이를 허락하지 않지요. 삼성 등을 압박해서 자금 지원을 하고 있지요. 국유본은 이 대목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조금 더 인드라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국유본은 삼성 등을 압박해서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에 자금 지원하는 정책을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셋, 국유본 분파 중 CGI 클린턴 한국사랑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국무부내 한국 문제 등을 담당하는 핵심부서에 한국인 3명이 부차관보로 맹활약중인 것으로 밝혀져 앞으로 주한미국대사에 재미동포가 임명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현재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아래 부차관보는 조셉 도노반 수석부차관보를 비롯해 모두 5명이며 김성 6자회담 미국특사를 비롯해 특사 3명 등 모두 9명이 핵심요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중 한국인은 조셉 윤 부차관보, 제니퍼 박 스타우트 부차관보, 김성 6자회담 미국특사등 모두 3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셉 윤 부차관보는 1985년 국무부에 입부한 25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으로 주한미국대사관 공사를 지냈으며 지난 8월 10일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에 임명돼 동아태지역 정무관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셉 윤 부차관보는 웨일즈대학과 런던 스쿨오브 이코노믹스를 졸업했으며 국무부 입부전 경제연구소에서 경제학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난 2000년 즈음과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참사관과 공사를 역임하는 등 국무부 내 한국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홍콩 등에서도 근무한 정통 외무관료입니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조셉 바이든 현 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상원의원 4명의 보좌관으로 11년간 활동한 뒤 지난 9월 7일 동아태 부차관보에 임명돼 풀브라이트장학기금, 문화교류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제임스 메디슨대학을 졸업한뒤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상원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한 조셉 바이든 현 부통령을 보좌하며 근거리에서 미국의 외교활동을 지켜봐 왔습니다. 김성 6자회담 미국특사는 국무부 한국과장을 역임하면서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로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미국의 6자회담 실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김성 특사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졸업하고 로욜라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런던스쿨오브 이코노믹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무부 입부전 로스앤젤레스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김성 특사는 주한미국대사관 정무담당 참사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도쿄, 콸라룸푸르, 홍콩등지에서 근무했으며 중국과를 거쳐 지난 2006년 8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미국무부 한국과장으로 재직했습니다. 2008년 11월 미상원 국토안보위원회가 작성한 미국 대통령이 임명가능한 정무직 리스트[PLUM BOOK 2008]에 따르면 동아태차관보 직책만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인준을 거쳐 임명되는 자리로 기록돼 있어 한국인 3명이 맡고 있는 부차관보또는 특사 직책이 국무부 최고위직 범주에 들어가는 자리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동아태차관보 밑에서 수석 부차관보로 근무하다 주한대사로 지명된 것을 감안하면 부차관보로 맹활약중인 3명의 한국인이 수년 내로 주한미국대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부차관보직책을 맡고 있지만 수석부차관보로 승진, 직무를 훌륭히 수행한다면 전례로 볼때 주한미국대사로 발탁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재미동포가 주한미국대사에 임명돼 한미 양국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02458.htm
저는 안치용 블로그를 높이 평가하는 편입니다. 동시에 안치용이라는 사람이 국유본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간 정보를 분석했을 때, CGI클린턴에 가장 부합하는 분이더군요. 놈현도 비판하고, 맹박이도 비판하고 말이죠. 쥐박이 비판할 때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노빠가 안치용을 찬양하다가 놈현, 쪽발때중 비판하니까 게거품을 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좀비가 달리 좀비입니까. 무뇌아죠.
조 도노반 내정을 취소하고, 보다 한국통인 인물로 고려한다는 것은 안치용이 2010년에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CGI 클린턴 시나리오는 무엇입니까. 그렇지요. 그냥 중량급 인사나 한국통으로 주한미국대사를 발표하면 상대는 이런 노심초사한 것을 못 느낄 것입니다. 인드라처럼 예민한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지요. 그걸 노린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친일 조중동이나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이 애초에 국유본에 대들 생각이 있는 족속들이 아닙니다. 뿌리부터 썩은 집단입니다. 다만, 그런 집단이 '격'을 운운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을 주한미대사에 임명하길 원했고,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김 특사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유본 시나리오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다고 해서 속았다, 이런 쌈마이 같은 반응을 내보이는 것은 국유본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그보다는 이런 식으로 한국인을 대해주는 것만이라도 고맙다는 것이 인드라의 솔직한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이런 것도 아니고 대놓고 무시했으니까요.
정리합시다. 한국인이 보다 수준이 높으면 그만큼 국유본이 수준 높게 대응합니다. 수준 높은 게 뭐 다른 게 있냐고 하지만, 다릅니다. 수준 대신 차원이라고 할까요? 그러면 좀 폼이 나나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수준이든, 차원이든, 당신을 노숙자 취급하지 않고, 겉으로나마 브이아이피로 대접하면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일단 그 정도가 우리 수준이라면 그 정도 수준에서 만족합시다. 다만, 실제로 브이아이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김종화 :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사태가 더 명확해지는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간 성김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각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99절 이전에 테러국 지정 해제라는 선물을 받고자 협상용으로 몽니를 부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왜 국제유태자본은 할 듯 말 듯해서 북한 당국을 몸살을 나게 할까. 나는 이것이 국제유태자본의 대한반도 정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임명된 성김 북핵 대사는 누구인가. 그의 아버지는 박정희 정권 때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이는 내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태자본의 짓이다. 당시 박정희는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체제보장을 받고자 소련과의 수교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북한과도 대화를 했다. 이로 인해 박정희에 대한 인기가 상당했다. 허락 없이 멋대로 외교를 한 박정희를 용서할 수 없는 국제유태자본이 김대중 납치사건을 꾸며 박정희 인기를 몰락시켰으며, 이때부터 김대중이 국제유태자본의 충실한 충견이 되었다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이때 나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사실상 포섭되어 활동한 자가 성김 아버지가 아닌가 보는 것이다. "
국제유태자본과 국가보안법, 그리고 사노련
http://blog.naver.com/miavenus/70034449037
성김이 어떤 사람인지 그간 언론에 나온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성김 아버지가 누구며, 무엇을 한 사람인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는 했습니다. 도대체 선생님께서는 이런 고급 정보를 어디서 획득하고 있는 것인가요?
인드라 :
간단합니다. 세상 인터넷은 인드라에게 속했습니다. 인터넷에 있다면 동시에 인드라 두뇌에도 있습니다.
김종화 :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동시에 허세일 듯도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 비율이 어떨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인드라 :
당연히 8 : 2입니다. 8은 자신감에, 2는 회의감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런 질문이 나오겠지요. 비록 소수이나 2를 놓친다면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안티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겠습니다. 깨달았거든요. 국유본이 알아서 안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더군요. 인드라가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종화 :
너무 지나친 자신감이 아닌가요?
인드라 :
아닙니다. 2에 대해서도 인드라가 준비해야 하지요.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지는 모르잖아요. 그런 까닭에 인드라가 이것저것 다 당해봤던 것입니다. 이제는 상당한 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따로 안티 인드라 프로그램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벽 대응한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각각에 대응하는 방식을 준비중이라는 것입니다. 노력해야겠지요.
김종화 :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갑니다. 근래 한국 국회의원들이 쿠릴열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지역에 갔습니다.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524000886
요즘 한국과 러시아가 사이가 좋은 듯합니다. 김영삼도 러시아에 간다고 하고요. 하지만, 근래 나온 뉴스가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01&aid=0005068729
이렇듯 러시아와 놈정일이 좋은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뱌체슬라프 콘드라쇼프 러시아군 합동참모부 장교는 이날 미사일방어망 관련 회의에서 "북한과 이란은 현재 미국과 다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영토에 도달하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콘드라쇼프는 "북한과 이란은 전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려면 아직 멀었고 특히 핵탄두 탑재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두 나라의 현존 능력을 판단하건대 탄도미사일은 기술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콘드라쇼프는 "러시아군 합동참모부는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을 탐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콘드라쇼프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으로 이웃국들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며 "북한과 여타 국가의 미사일 과학기술은 대부분 정치적 위신의 문제와 관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자국의 미사일 과학기술 발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03&aid=0003866224
하지만, 이런 태도는 놈정일을 엿을 먹이는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어떤 국유본 음모가 있나요?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인드라 :
이 문제는 러시아 현 체제를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러시아는 푸틴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푸틴 꿈이 무엇입니까. 러시아의 데이비드 록펠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메드베네프라는 인물을 내세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푸틴 = 데이비드 록펠러, 메드베네프 = 제이 록펠러입니다. 허나, 이는 다른 가능성도 내포합니다. 푸틴은 데이비드 록펠러이자 제이 록펠러입니다. 반면, 메드베네프는 부시이자 클린턴이자 오바마인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겠지요.
푸틴 꿈은 로스차일드나 록펠러처럼 영구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국유본이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적당한 수준에서 푸틴 자율권을 허용하는 것이 국유본 방침인 것입니다. 이는 국유본도 원하는 방식입니다.
이 시스템은 박정희 정권 때 국유본이 구축했던 시스템입니다. 즉, 박정희에 대항하는 허세 야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메드베데프 야당은 친서방 세력을 자임합니다. 외사과 정보에 따르면, 박정희는 김대중을 후계자로 삼아서 이철승보다 김대중을 키웠습니다. 푸틴 - 메드베데프 구도입니다. 인드라 관점은 김대중을 키운 건 박정희가 아니라 국유본이라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푸틴처럼 인기가 높자 박정희 인기를 끌어내리기 위해 김대중을 활용한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최근 러시아는 북극해 사업과 관련해서 BP와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BP는 AAR을 달래기 위해 AAR의 TNK-BP 지분 50%를 매입하는 방안까지 제의했으나 AAR은 거부했다. BP측이 TNK-BP의 기업가치를 500억 달러로 평가한 가운데 250억 달러를 제의했으나 AAR측은 700억 달러라고 주장하면서 350억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네프트측 관계자는 BP는 매입가격을 320억 달러까지 올렸지만 AAR은 이마저도 거부했다고 전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51800511945313
겉보기에는 액수가 문제이지만, 내용을 검토하면 무엇이 보입니까. 인맥입니다.
"콜린 맥클린 SVM어셋매니지먼트 대표는 "BP의 러시아 계획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면서 "지금까지 BP는 러시아 정·재계 고위급과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제는 정말 그러한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뭔 말입니까. 딱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BP가 기존 루트 대신 왜 새 루트를 제안하고, 푸틴은 왜 이를 거부했겠습니까. 인맥입니다. BP가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태로 물 먹었습니다. 예서, 물 먹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 먹더라도 일본 기업처럼 후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모릅니다. 그것이 BP 경영진을 새롭게 해서, 다시 말해, 조직을 재구성해서 푸틴에 접근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거부하는 푸틴인 것입니다.
푸틴 입장에서는 BP가 끝났다고 보는 셈입니다. 그런 BP와 사업하다가는 푸틴 자신도 국유본 눈 바깥에 날 것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푸틴 입장이기에 IMF 차기 총재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라는 정책을 표명합니다. 한마디로 내치에서는 양보가 없으나, 외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양보하겠다는 태도입니다.
그런 러시아가 왜 놈정일과 만난 직후에 북한 미사일 문제를 거론한 것입니까. 러시아 단독 입장입니까. 아니죠. 국유본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후에 푸틴과 놈정일이 협의한 것입니다.
결론은? 그래요. 이제 미사일 문제는 덮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지닌다면, 북한 미사일 전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허나, 이는 22% 영역이죠. 게다가 자기 이해가 있으니 이중 1% 정도만이 현실을 직시할 따름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제 남북정상회담 같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놈정일이 떡고물이 생깁니다. 국유본은? 그렇지요. FTA입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게 확실한 이권을 제시해야 하는데요. 국유본 입장은 이걸 아주 값싸게 이명박 정부에게 줄려고 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금 친일 조중동과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 한경오프엠을 동원해서 이명박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드라는 이를 눈치를 채고 한반도 통일과 평화,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서 이런 야합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국유본은 최고가로 이명박 정부에게 이권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반도 통일입니다. 이는 단지 이명박 정부에게만 해당하는 이권이 아닙니다. 국유본은 심사숙고하길 바랍니다. 인드라가 한반도인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한반도인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국유본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해서, 이슈를 해킹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동의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도장 찍어준다면, 인드라가 나서서 해킹 문제를 적극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이도 저도 아닌, 핵 미사일 대신 해킹 삼만 전사 운운하면, 까놓고 말해, 아이큐가 0에 수렴하는 무뇌아 븅쉰 아골아 좀비 애들도 의심할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국 국회의원이 쿠릴 열도를 방문하고, 러시아가 평양 핵미사일 문제에 언뜻 보면 객관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회담, 육자회담, 북미회담의 걸림돌인 북핵 문제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가가 무엇이냐, 무엇을 얻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만은, 인드라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세력이 조용할수록 이명박 정부는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인드라는 그 이익을 최대화시켜 이명박 정부를 초월하는 이익으로 조정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입니다.
김종화 :
놀랍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중국 포위 전략 일환이다 정도로 보았는데요. 이렇듯 세세하게 연결할 수 있다니 놀랍군요. 중국 포위 전략은 없나요?
인드라 :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무정부상태 국제사회에서 최대한 국익을 취하는 관점이 오늘날 외교 전략 기본 전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과연 오늘날 국제사회가 무정부 상태이냐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하고, 한국만 예를 듭니다. 한국 외교 전략은 과거 냉전 구도에서 탈출한지 오래입니다. 과거 냉전 구도는 친미와 친중이 양립 불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요? 지금은 양립 가능합니다.
그처럼 중국도 그렇고, 러시아도, 일본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큰 줄기을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헛갈리지 않습니다. 다음은 잔 갈래로 이어지는 것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국유본이 78 : 22를 중시하므로 소수파라 해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김종화 :
그렇군요. 그렇다면, 러시아는, 아니, 푸틴은 근래 왜 한국에 많은 관심이 있는 건가요?
시베리아 개발 때문입니다. 푸틴은 중국을 내적으로 굉장히 경계합니다. 인구가 굉장히 많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넓은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가 적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날 연해주에 있던 중국 보따리 장수들을 모조리 추방했습니다. 왜 이러하겠습니까. 러시아가 극동에 도달한 것은 로스차일드 덕분에 발생한 삼국 간섭 이후 근대 일입니다. 일단 중국인이 활개치면 나중에 어찌될 지는 러시아로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러시아에 비해 경제 선진국이므로 러시아는 시베리아 개발로 일본 영토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만만합니다^^! 더군다나 국유본에서 대한민국과 사업하는 외에 대안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국유본은 푸틴에게 말합니다. 대한민국과 사업해라, 그럼 딴지를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유본은 왜 대한민국을 밀고 있나요? 러시아 사정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 국유본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존재인가요? 전혀요. 숨은 이권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국유본입니다. 이제까지 이런 덕분에 국유본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푸틴은 자신이 생존하는 기간만을 생각하는 반면, 국유본은 푸틴 이후를 보기 때문입니다. 단기 투자와 장기 투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유본 입장은 확고합니다. 장기 투자 이익을 위해서 단기 이익을 상대에게 아낌없이 주라는 것입니다.
김종화 :
역시 선생님과 대화하면 재미있습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중국 입장을 듣고 싶군요. 친일 조중동에서는 중국이 남북한을 데리고 논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는데요. 물론 선생님은 이와 다른 견해이겠지요?
인드라 :
그렇습니다.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하나, FTA입니다. 한중일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북한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FTA입니다. 북한이란 한미 FTA를 위한 떡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물론 중국 관계자도 분파를 떠나서 대부분 FTA에 긍정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럼에도 왜 한국과 중국 언론이 놈정일을 이야기하나. 간단합니다. 국유본 때문입니다. 놈정일이 움직여주어야 한중일 FTA를 통해 각국 인민들이 냉전 구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중일 핵심인물들은 모두 일본에서 회의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놈정일이 평양에서 손가락빨고 왕따중이면 어떻게 됩니까. 국유본이 이를 우려해서 중국 상하이방에게 긴급 메시지를 날린 겁니다. 자해공갈단, 놈정일아, 중국에 왔다가거라? 싫어? 싫으면 기차? 가 아니고 싫으면 네 모가지 당장 날라간다고 국유본이 그러더라. 그러자 놈정일이 예정에도 없는데, 냉큼 중국으로 달려온 것이 이 사건 진상인 것입니다. 별 것 없지요?
둘, FTA 그림자 효과를 가늠하는 수치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더라도 FTA 문제를 뒤덮을 수 있느냐를 국유본이 신중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여론조사가 필요합니다. 재보선과 같은 것입니다. 현재 국유본이 데이터를 뽑고 있습니다. 인드라가 보기에, 알파독과 같은 국유본 기업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셋,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수행하는 외교적 성과가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친일 조중동은 깡그리 무시합니다. 대신 놈정일만 뇌까리는 것입니다.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하나, 눈물의 노뽕 흑마술 스킬, 둘, 놈정일이는 평양 졸부 스킬 (마카오에서 최소한 백만 달러를 한 시간 이내에 다 날린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스킬^^!), 셋, 노뽕햇볕정일 615 스킬 (아무 생각없이 맥아더 동상에 박치기를 한 시간 동안 백 번 이상 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스킬~! 하고 나면 무뇌아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인드라는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상하이방이 중국을 장악하면 한반도에 이득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실리를 따지는 세력이 등장하면, 한반도에도 그만큼 이익이었습니다. 실리를 따지면, 한반도를 직접 공략하느니 협력하는 것이 서로 윈윈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북방세력이 집권하면 명분에 집착하므로 한반도 침략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상하이방 세력, 차기 시진핑 세력은 한국에 복덩어리이다, 라고 인드라는 보고 있습니다. 한반도인이라면 한반도 통일과 평화,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 시진핑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시진핑이라면 한국과 중국을 위해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것으로 인드라는 전망합니다.
김종화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제는 유럽으로 가보기로 하지요.
인드라 :
미안합니다만, 지금 인드라가 마신 술이 다 되었네요. 인터뷰하기에는 곤란합니다.
김종화 :
하하하. 그런가요. 아쉽지만, 이쯤에서 끝내야겠군요. 선생님, 다른 데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귀한 말씀 정말 고맙다는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왜 다른 분들한테 멘토, 구루, 랍비 소리를 듣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다른 한편,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에게 당부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술 좀 작작 마시세요.
인드라 :
늘 반성하고 있습니다. 술 그만 마셔야 하는데 하면서 마셔대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한없이 나약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김종화 :
신이 있다면 공평한 듯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천형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인드라 :
난 저항하고 싶지만, 길을 모릅니다. 다른 분들은 인드라에게 대안을 묻고 해답을 얻어갑니다만, 그 길은 인드라가 다른 이들이 놀 때 힘들게 노가다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인드라 신비의 전부가 아닐까요?
김종화 :
겸손하시네요.
인드라 :
사실인데요."
한반도는 놈정일 자해공갈단을 극복할 수 있는가 국유본론 2011
2011/05/25 04:26
http://blog.naver.com/miavenus/70109738345
"김종화 :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이야기도 좋지만, 잠시 주식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인드라 :
좋습니다.
김종화 :
선생님은 최근 코스피가 2035까지 밀리자 매수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선생님이 보통 주식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주가가 크게 조정을 받을 때쯤에 꼭 한마디를 하시면 주가가 대반등을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죠.
인드라가 주식하지 않는 이유
http://blog.naver.com/miavenus/70103505337
선생님은 '인드라가 주식하지 않는 이유'라는 글에서 간접적으로 세력과의 조우에 관해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같은 이조차 선생님을 보면 영화 '작전' 주인공을 연상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선생님 실력을 인정한 세력이 선생을 세력으로 끌어들여 선생님이 본의 아니게 세력의 끄나풀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쯤 의심할 정도입니다. 저도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진실은 무엇입니까.
인드라 :
별 것 없습니다. 평범함에 진리가 있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평범함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무협소설 '독보강호'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독보강호' 주인공은 당대에 보기 드문 매우 순수한 청년입니다. 헌데, 순수함이 드문 시대에서 순수하니 희소가치가 발생한 것입니다. 청년의 언행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알고 보면, 매우 간단명료한데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는 무엇입니까. 때중과 놈현 때문에 순수성이 파괴당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순박했습니다. 허나, 때중과 놈현 시대 이후로는 모든 것이 복잡해졌습니다. 마치 임진왜란 직전과 같다고나 할까요? 같은 것을 분명히 보는 데도 패거리에 따라 달리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퇴계와 율곡이 활약하던 시절까지만 해도 아름다울뿐더러 다음 세상을 기대하게 할 수 있기까지 했습니다.
헌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왜 망하게 되었습니까? 이순신 때문이죠.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했던 거죠. 하지만, 과거의 이순신도 혁명에 실패했고, 근대의 이순신도 혁명에 실패했습니다. 사노맹도 망했고, 인드라도 망했습니다. 1987년은 정말 혁명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유본의 노련한 작업이 있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이 작전을 잘 수행해서 1987년은 혁명이 아닌 직선제 개헌을 했던 것입니다.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장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넘들이 꼴에 왕 노릇을 하겠다고 하니 외환위기도 겪으며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어차피 망한 세상입니다만, 가냘픈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한반도 통일입니다. 향후 5년 이내에 통일을 한다면 한반도는 간신히 회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5년 이내에 쪽발이매국수구반동좀비민주당놈들 때문에 통일을 하지 못한다면 깨끗이 단념하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습니다. 향후 5년 이내에 통일을 할 수 없다면, 한나라당 정권이든, 쪽발이매국수구반동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누가 정권을 잡든, 후일을 기약하면서 멀리 이국으로 망명이나 이민을 가는 것을 권고합니다. 아니라면, 정치와 속세에 인연을 끊고 죽는 그날까지 마음 수양이나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이런 대목입니다. 주식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역사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황당한데,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없습니다. 평범함을 이야기하다 이순신으로 비약하고 이순신에서 통일이 나옵니다. 나원참~!
인드라 :
이런 걸 똥폼이라고 하지요. 똥폼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인드라가 경제 전망하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인드라 강점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다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이렇지 않잖아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국악을 배우고 싶어서 국악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국악을 하는 분이 의외로 국악 대중화에 매우 반감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희소가치에 있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신에 대한 가치가 1/N으로 줄어드니까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입니다.
인드라는 이것이 국악을 하는 분들 일반적 생각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인만의 특징이라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단면이라 여깁니다. 오늘 어느 블로그에 갔다가 댓글을 읽었습니다.
죽을 때가 다가온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가진 재산을 모두 현금화해서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식들이 쓸모없는 부모를 무시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그 노인들은 재산이 있습니다. 반면 재산이 전혀 없이, 오히려 빚만 있거나, 의료비 등으로 짐만 될 뿐인 노인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들이 가족들에게 눈총을 받는 것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상상할 것도 없지만, 한국 거의 모든 집안에서는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절박한 가족사가 있기 마련이니까.
러시안 룰렛처럼 돌아가는 세상. 확률적으로 차례로 돌아오는 죽음의 제의에 병들고 늙은 노인이 할 수 있는 최후 저항은 무엇입니까.
- 살려줘. 난 가진 게 돈밖에 없어. 제발 살려줘.
김종화 :
선생님 말씀은 끝이 없군요. 역시나이십니다. 선생님. 이제 이 이야기가 단지 주식 이야기가 아니라 주식을 통한 인류사적인 이야기라고 알겠습니다. 선생님 떡밥은 늘 신선하긴 하군요. 그럼 이제 본론 시작하나요^^?
인드라 :
하나,
재고순환지수입니다. 주식에서는 이를 120일선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5일선에서 20일선을 생명선, 60일선을 수급선, 120일선을 경기선이라고 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120일선=경기선이라고만 암기할 따름입니다. 왜 120일선이 경기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따져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게 무슨 비밀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저 120일선은 경기선이다, 딱 이렇게 말하고 갑니다. 문제죠. 오히려 다 이야기해서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20일선은 옵션, 60일선은 선물, 120일선은 현물입니다. 쉽게 말하지요. 아무리 무거운 주식도 6개월간 변동이 없다면 문제가 있는 주식입니다. 예서, 의문이 들 것입니다. 왜 120일선이 현물일까. 선물이 왜 발생했나요. 그 기원을 보면, 농산물 시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카고 상품시장 개설 이후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우스 재배가 많으니까요. 허나, 하우스 재배가 용이하지 않던 시절에 여름에 먹을 과일을 겨울에 먹고,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야채를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면? 이는 동서간 이동이 아니라 남북 이동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이나 봄여름가을겨울이 뚜렷할 뿐입니다. 대체로 기후란 엘니뇨와 라니냐처럼 봄가을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이런 걸 다 공개해야 인드라도 발전하고, 이를 깨달은 여러분도 발전해서, 우리 모두 더 발전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소스를 다 공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득권에 연연할 때 수구반동 좀비가 되는 것입니다. 놈현과 새끼 놈현들처럼.
이야기는 쉬워요. 경기순환입니다. 재고순환지수이죠. 과거에는 재고순환기간이 길었지만, 근래에는 24개월 정도로 압축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해서, 7개월간 경기 수축기와 17개월 동안 경기 확장기가 반복하는 것이 재고순환변동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24개월을 6개월로 사등분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인 셈이죠? 그처럼 재고순환변동도 대략 6개월마다 흐름이 달라집니다.
인드라가 올 일사분기까지가 경기 수축기라면 현 시점은 경기 확장기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해서, 주식이 경기를 6개월 선반영한다고 한다 했을 때, 현 시점은 120일선을 건들 시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도 터치했다면^^?
둘,
혹시 기억하실 분도 있는지 모릅니다. 인드라가 원/달러 환율에 대해서 1100원부터 1500원까지 국유본과 심각한(?) 게임을 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1100원은 지난 금융 위기 시절 국유본의 지지대였습니다. 1100원선만 터치하면 다시 원화는 높이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은? 그렇지요. 1100원대는 저항대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가는 지난 글들에서 설명을 드린 바가 있으니 생략합니다.
하여간, 세력이 역외환 시장에서 살포시 1100원선을 뚫습니다.
셋,
마지막으로 가격 이론입니다.
이것도 별 것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할인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길가다가 수박장수 만납니다. 수박 반값 5,000원. 혹은 부도났습니다. 창고 정리.
5% 세일, 10% 세일, 30% 세일, 40% 세일, 반값 세일, 70% 세일.....
이런 할인가가 아무렇게나 정해졌을까요? 바로 여러분 심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5일선이니 120일선이니 하는 것도 결국 인간 심리를 활용한 것이듯 가격 이론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역시 또 인드라가 행동심리학을 운운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5% 세일이면 움직이나요? 혹은 70% 세일이면 움직이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인간은 천차만별이니까요. 다만, 이런 인간 군상을 묶으면 예측이 가능하답니다.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하지요. 양극단은 각각 5% 범위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합니다. 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30~40% 세일에서 움직입니다.
그런 면에서 명품 옷값 실제 가격은 30~40% 세일한 가격일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그걸 감안해서 더 뻥튀기한 것이 명품 옷값이니까.
아무튼 왜 가격 이론을 이야기했느냐. 싼 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파는 것이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때 비싼 값이란 전고점인 것입니다. 예서, 생각합시다. 과연 전고점에 사는 미친놈들이 개미일까요? 아니면 선수일까요? 선수입니다. 개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마인드를 달리 하세요. 선수는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뿐더러 그 자신 선수를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팝니다.
정리합니다. 전고점보다 10% 이내에서 움직이는 할인가.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인간 심리란 무엇입니까. 할인을 해도 10% 이내에서 안심합니다. 반면 30%~40% 할인하면 어떻습니까. 제 값 주고 샀다고 여기게 됩니다. 가치 하락인 셈입니다.
이런 마당에 전고점 대비 10% 바깥 탈출은 웃기는 시나리오입니다. 하면, 코스피로 과연 그럴까요? 코스피 52주 최고 고점은 2,231.47입니다. 10%는? 223입니다. 10% 빠지면? 2008입니다.
허나, 국유본이 누구입니까. 78 : 22이잖아요. 이는 174 : 49이죠.
22%는 너놈, 드세요, 하는 것입니다. 해서, 지수는 2057이 나옵니다. 딱 여기까지인데 말이죠. 세력은 이를 은근히 벗어납니다.
공통점은 무엇이죠? 그간 말해온 이론치 결과들을 하나같이 무너뜨릴 때 저들의 공세가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장참가자들을 인지부조화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주가를 움직여도 시장참가자들은 쪽발이 놈현을 부르짖는 최면 상태로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김종화 :
지금 말하는 것은 정말 노트 필기를 해야겠네요. 엘리어트 파동도 피보나치 수열을 이용한 것이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도 유태인 상술인 78 : 22이지만, 그 근원 역시 피보나치 수열이네요. 그런데 선생님 특이한 점은 늘 현실이 이론을 배반한다는 것인데요? 설명을 좀?
인드라 :
간단합니다. 자연 이치라는 것. 그것은 인간 의지가 결합한 것입니다. 인간 의지와 결합했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자연 이치라는 것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 고귀한 말씀을 감히 정리하겠습니다.
재고순환지수, 환율, 가격. 이 삼 대 요소로 인해 선생님이 최근 주가지수를 짚었다는 것입니다. 의문이 남습니다. 선생이 공개할 만큼 매우 쉬운데요. 그럼에도 다들 주식선물투자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드라 :
간단합니다. 당신은 돈이 없고, 시간이 없고,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깡통을 차는 것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 선생님을 대하면 응용보다 기초를 든든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쯤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드라 :
한마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잔 머리로 흥한 자, 잔 머리로 망합니다.
반MB로 흥한 자, 반MB로 망합니다.
놈현으로 흥한 자, 놈현으로 망합니다.
놈현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쪽발이매국노 짓거리로 대한민국을 망치면서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천인공로할 짓거리다.
허나, 이런 놈현 정신을 뇌까리는 색희들에 대해서 분노하지 말고,
차가운 이성으로 본질을 되돌아보자는 것이 인드라 생각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 선생님 예측 범위 내인가요? 김정일이 육자회담을 제안했네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드라 :
무시해야 합니다. 무시할수록 김정일은 설사 환자처럼 등장할 것입니다.
김종화 :
선생님. 선생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지금 한가하게 유럽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라고 여겨 경제 이야기를 빌미삼아 동아시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닌가요?
인드라 :
선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릅니다. 지금 동아시아 문제가 세계사요, 세계사가 동아시아 문제입니다. "
놈현으로 흥한 자, 놈현으로 망한다 국유본론 2011
2011/05/2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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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소는 인드라 집주소가 아니라 은행 주소입니다~!)
국내 후원
국민은행 524902 - 96 - 101910 김종화
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허세욱과 박정희의 이름으로
쪽발민주당 해체
인민의 적,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아웃
골룸빡 처단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
쪽발삼구 쪽발석현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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