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느릅나무(혁명의길)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인드라 VS ?
2013/02/22 04:17
http://blog.naver.com/miavenus/70160070178
가끔 직접 딴 과일을 선물로 보내시곤 하는데
술 드시면 전화주셔서 선생님 가시는 길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다만
반복 말씀하셔서 그때마다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인드라, 책임이 무겁습니다.
인드라 VS 느릅나무(혁명의길)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2/22-3
"혁명의길:
최종학력 : 국민학교 졸업 현재직업 : 건축현장 형틀 목수 노동자 (노가다 ) 상기 위 내용이 사실임 을 밝힘니다. 나의 개인 소개는 두번째 입니다. 한번은 89년 사노맹 조직에 가입 하면서 당시, 암호처리 하여 문서로 보낸바 있어 과거와 현재를 반추 해 봅니다. 지금은 온라인 상에 보내 드리는 것이 변한 것이네요. 89년 당시에는 노가다 직업은 아니였고, 농민회 조직 창설 멤버 이며 논산 농민회 3기 회장을 역임 한바 있습니다. 인드라님...! 재가입 감사 합니다. 되도록 과거에 있었던 일 들을 "쪽지"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건강 하시구... 근데?.. 인드라님 글 읽으면, 왜? 그렇게 저 눈가에 눈물이 핑 도나 모르겠어요. 왠지 가슴이 미어지고... 가슴이 아려요. 인드라님, 카페 개설 하시구 더욱 답답하구 하기에 아마두 술을 드시지 않나 저는 가름 해봅니다... 인드라님 글 본지가 근 3년 가까이 됩니다... 참!.. 저는 무던한 놈이예요. 질문 한번 드리지 못 하구... 저 홀랑~~, 벗어 버리고 시작할 께요. 그때까지라도 건강 챙기세요.. 눈가에 눈물 돌면서 항상 인드라님 글을 읽고 있습니다.오늘 하루도 모쪼록.........
"INDRA:
글 감사드린다. 인드라는 팔십년대 정파 중 사노맹에 가장 끌린 사람이다. 허나, 사노맹에 있었고, 그 일로 국가보안법으로 형무소 생활한 사람이 인드라의 사노맹 사랑 애정고백에 냉정하게 답했다. 사노맹 조직원이 아니면 운동을 했다고 할 수 없지. 그 말에 정말 절망을 느꼈다. 그래도 전두환 정권 시절에 열심히 해서 인드라도 감방을 다녀왔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다. 마치 아무리 착한 선행을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다 꽝이며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극히 일부 목사 설명인 듯싶어서 우울했던 적이 있다. 허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인드라는 말하고 싶다. 동지들. 열심히 살자. 그 말 외에는 인드라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살아 있는 날까지 열심히 살자. 어려워도, 어려움에도 주위의 오해가 있어 욕을 먹을 지라도, 가슴이 먹먹해서 하늘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도 열심히 살자. 그 자체로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님이 있어 인드라가 살 맛이 난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심부름센터 소장에서 전직 사노맹 목수 노동자까지 국유본론 2009
2009/06/24 01:52
http://blog.naver.com/miavenus/70051249632
"느릅나무:
편안한 휴가? 보내세요. 건강한 몸으로 카페에서 뵙길...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NDRA:
휴가기간이지만 흥미 있는 글들에는 예외적으로 글쓰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론 비판을 언제나 환영한다.
맑스가 자본을 출간한 후 실망한 것은 비판 때문이 아니라 무반응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도 같다고나 할까. 지금도 유사한 형편이지만, 당대에도 '자본'을 이해할 이들은 그 엄청난 정치가와 정치지망생,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들과 한때 프리메이슨이었다가 탈퇴한 바 있는 바쿠닌과 같은 아나키스트들 중에서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해서, 침묵이야말로 맑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공세였던 게다. 비판이라도 한마디를 하면 소크라테스의 네 꼬라지를 알라는 반박에 찍소리도 못할 것을 운명적으로 직감했기에.
인드라가 맑스의 권위를 내세워서 인드라=맑스로 등치시키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무반응보다 반응이 낫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쓴 것일 뿐이다. 오히려 맑스에 비한다면 인드라가 여전히 수십 배, 수백 배 만만해 보인다는 점에서 비판을 삼갈 이유는 없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함이다. 인드라가 맑스보다 현재까지 우위에 있는 것은, 노이즈 마케팅에 더 재능이 있다는 것 등 사소한 몇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기에^^!
비록 오늘날 이론과 과학이 여전히 신뢰할만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종교계도 아니고 과학계 내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과학은 문화와 종교와 함께 좌우 날개를 이루어 인류의 미래로 나아갈 인간의 필수 구성 부분이다. 문화와 종교가 헌신과 희생으로써 끊임없이 그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면, 이론과 과학은 무자비한 비판 속에서만 그 자신의 존재 의미가 있다.
몇 가지 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에도 언급을 한 바, 카페에서는 인드라가 여러 가지 비판을 경청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보인다. 이를 전제하고, 신입회원들이 곧잘 오해하는 바가 있어서 이 기회에 한번쯤 말하고 갈 대목들이 있어서 언급하고자 함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국제유태자본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혔듯 논픽션이자 픽션이며, 과학이자 소설이며, 이론이자 음모론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음모론 진영에서는 국제유태자본론을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의 일원인 인드라가 1% 저항군을 세뇌시키기 위해 제도권에서 파견한 간첩 논리라고 비판한다. 인드라는 이를 수긍할 것이다. 그 반대로 이론 진영에서는 국제유태자본론을 여타 음모론처럼 사태를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대중을 혹세무민시켜 진짜 진보를 가로막는 기득권 논리라고 비판한다. 인드라는 이 역시 긍정할 것이다.
친일민주당은 정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 번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영국 노동당의 제 3의 길이 초기에는 단순한 선거 전술에 지나지 않았으나, 집권 이후 노동당 정책 노선이 되었듯, 국유본론을 위한 노이즈마케팅으로써 채택되었다가 일정 시기에 국한한 정책 노선이 되어 표현에서 개념으로 잠시 격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평직원 수준에 불과하나 이사급 대우라고나 할까^^! 가령 국제금융자본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이라는 국유본 이름 짓기부터 잘 검토해보시라. 허나, 정세가 변모했다. 인드라가 6월 중순경 글을 통해 가급적 김대중 비판을 자제할 것이다, 라고 한 데서부터 찾아보면 된다. 인드라가 노무현 선생 구속 초읽기에 들어간 4월초부터 더 이상 노무현 선생 비판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을 유념하기 바란다. 해서, 근래 인드라가 친일민주당이라는 표현이자 임시조치용 개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민주당이라고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초기 국면이 아니라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인드라가 친일민주당을 쓰는 기간 동안에는 여전히 민주당이 존속할 가능성이 컸으나, 지금은 그들이 민주당이 존속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기 시작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드라는 김영삼 정권보다 김대중 정권으로 역사가 후퇴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바가 없다. 그처럼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권력교체가 되어 역사가 후퇴했다는 데에 동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부로 권력이 이동이 되어 역사가 후퇴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의 과정은 모두 역사의 진보로 받아들이며, 김일성에서 김정일, 또한 김정일에서 차기로 누군가가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역사의 갈 길이라고 보는 편이다. 이처럼 긍정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각 정권에 대한 비판은 낭만주의와는 그 길이 온전히 다르다. 낭만주의란 헤겔좌파처럼 기존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그간의 제도권 이론도, 기존의 음모론도 모두 긍정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관을 사띠현정님은 헤겔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해주셔서 감사를 드리고 있다. 감사드린다.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인드라도 사실 몰랐다. 맑스가 왜 '자본'과 같은 저작을 집필할 때에야,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천착할 때에야 헤겔을 떠올렸는가를 근래에 들어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인드라는 국제유태노동론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론을 논하는 것일까^^!
영화화된 바 있는 '철도원'의 저자 아사다 지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 중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를 발견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어디 소설가뿐일까.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인드라는 이를 보다 일반적, 구조적 접근을 시도해본다. 근대 소설가나 애니메이터 감독들이란 대체로 근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보헤미안인 경우가 일색이다. 이들은 가령 인드라처럼 밑바닥 계층에서 올라온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일루미나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크니게 남작이 대표적이다. 그는 몰락한 귀족이었다. 해서, 당대 떠오르는 조직인 일루미나티를 등에 업고, 용의 승천을 시도했던 인물인 게다.
국제유태자본과 일루미나티 http://cafe.naver.com/ijcapital/2849
자산적 권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일같이 초호화급 호텔에서 생활하던 이는 여인숙 생활로 떨어지면 대부분 견디지 못한다는 게다. 해서, 그들의 혁명성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근래 민주당 관료들의 모습이다. 자신은 본디 귀족인데, 잡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싫다는 게다. 해서, 이들은 지난 십년간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민중의 수호자라도 된 것처럼 유세를 떨 것이 틀림이 없다. 하면, 이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면 그만인가?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를 긍정하고 있다.
당대에 몰락한 귀족의 입장에서 당대 권력에 가장 맞서는 논리는 이전의 정권을 신화화하는 게다. 또한 현 권력은 자신의 권력 정당성을 위해 전전 정권을 역시 신화화한다. 헌데, 둘 다 어정쩡한 게다. 전자는 오늘날 이명박 정부를 비판함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정권이란 비판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데에 곤혹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후자는 지난 십년 정권을 비판함에 있어서 좌빨 정권이란 비판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박정희가 좌익인 데다가 신자유주의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 인물인 데다가 이명박 자신도 데모 주동꾼이었다는 딜레마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정치적인 면에서 대중의 정치적 무력감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이끌고 있다. 더 나아가 국유본을 비롯한 한국 각 세력 등이 모두 인드라에게 현재 시나리오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세력들에게 인드라의 답변은 무엇이냐.
- 흐미, 인드라가 꽁짜주의자여. 허나, 인드라으 꽁짜 세상이 올 때까정 느그들에게 세금을 받아야쓰겄다. 맨입으로 허벌나게 먹으면 니넘들 똥창을 벌창으로 만든당께. 알긋나. 인드라가 초과달성을 해불면 인드라두 김우중 꼴이시.
여킬레우스님이 심오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성과 광기를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성이 우리에게 존재하기를 빌며 또한 국제유태자본론이 여러 가지 음모론과 여러가지 사실, 또 다른 의견들을 해석의 대상으로 하는 메타음모론이 된다면 우리 모두가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메타음모론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훌륭한 글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울러 인드라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유태자본의 존재는 영원히 증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체를 회피하고자 했던 구조의 노력은 1950년대 이후 빅터 로스차일드가 표면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완전히 망한 것처럼 보이게 했던 데에 대한 1960년대 이후 이론적 성과물이 아닐까^^! 해서, 포스트구조주의의 역할은 구조주의에서의 은폐된 주체를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짧게 전후 사회사상사를 정리하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만든 냉전체제에서의 서유럽인의 자기 위안이라면(남한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이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을 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레비스트로스나 알튀세르 식의 프랑스 철학, 이태리에서의 후기 그람시주의, 독일에서의 아도르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구조주의는 잠수하던 빅터 로스차일드라는 주체를 다시 수면 위로 호명할 수밖에 없을 만큼 위기의 산물이 아닐까. 현실적으로는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학술적으로는 은폐할 수 있는 최적의 발명품이 '구조' 혹은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근대 세계에서 시스템이란 뉴튼적 그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최초의 충격으로 전후 체제를 만든 이후 그 시스템에는 빅터 로스차일드라는 신이 관여해서는 아니 된다는? 허나, 1970년대에 이르러 세계 권력은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바뀐다. 하여, 누군가는 빅터 로스차일드 세계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재빨리 데이비드 록펠러로 말을 갈아탔을 것이다. 그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세계는 아닐까^^!
앎과 깨달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실천이다.
- 혁명은 깨닫는 만큼 진행된다. 해서, 혁명은 당신보다 늘 앞서고 있다."
혁명은 깨닫는 만큼 진행된다. 해서, 혁명은 당신보다 늘 앞서고 있다. 국유본론 2009
2009/07/27 04:09
http://blog.naver.com/miavenus/7006068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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