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안박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인드라 VS ?

2013/02/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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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 VS 안박 : 인월리 국제유태자본론 중간 결산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2/22-4

   

"로스차일드는 아슈케나지이지만, 카자르인이 아니다.

   

안박 : 로스차일드가 영국에 갔을 때도 세파르딤계와 아쉬케나지가 따로 놀았고 로스차일드는 아쉬케나지계 시나고그에 다녔다고 알고 있어요, 따라서 로스차일드를 세파르딤계라고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보여집니다.

   

   

인드라 : 글 고맙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안박님이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인드라가 올린 글을 봅니다.

   

   

"카르타고 유태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세파르딤 유태인이다. 스페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둘, 아슈케나지 유태인이다. 독일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허나, 혈통적으로는 이들은 동일한 카르타고 유태인들이다."

   

   

다시 말해, 둘 다 혈통적으로는 카르타고 유태인인데, 단지 스페인과 독일에 살고, 그 지역 언어와 결합된 방언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헌데, 안박님이 인드라가 로스차일드를 세파르딤계라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왜일까요. 그런 주장은 인드라가 어느 댓글에 남긴 것을 안박님이 기억하고 말한 것입니다. 헌데, 그 맥락을 살펴보셔야 하는데, 거두절미하니 오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로스차일드는 아슈케나지 = 카자르인 = 가짜 유태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인드라 주장은 로스차일드는 아슈케나지이다. 예서, 아슈케나지란 독일에서 살고, 독일어 방언을 구사한다는 의미 정도이지, 혈통적으로 카자르인이다,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서, 로스차일드는 카자르인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아슈케나지나 세파르딤이나 모두 카르타고 유태인이기에 카르타고 유태인이고, 그 성향으로 볼 때 세파르딤이 보다 전형적이니 그런 구분이라면 세파르딤이 더 가깝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해서, 역사적으로 지금껏 국유본 주도 세력 핵심은 카자르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면, 안박님이 이런 주장을 하시게 된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를 잠시 고민해보았습니다.

   

   

   

혹 인월리에서 읽은 글이 힌트가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사진은 우리 말로 쉽게 기원전 722년부터 시작된 디아스포라를 말하는 것인데요.

아시리아의 공격으로 BCE 722년 (여기서 BCE란 BC과 같은 것인데, 종교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에  북쪽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남쪽 유다만 남게 되어 멸망한 이들이 이후 세계로 떠돌았다는 그림을 표시한 것입니다. 기원후 8세기가 아닙니다.

   

예서, 인드라가 주목한 것은, 유태인들이 남쪽 유다가 남았음에도 이토록 중동을 떠나 세계를 떠돌 족속인가에 회의를 품었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인드라가 주목한 루트는 남쪽 루트입니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은 어디로 피난했습니까. 남쪽입니다. 그처럼 남으로의 피난을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남쪽 유다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제 3의 망명지로 향했겠지요. 그들 중 하나는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카르타고로 갔고, 다른 하나는 아라비아, 예멘으로 해서 이디오피아로 갑니다. 여기서 인드라는 왜 알렉산드리아이고, 카르타고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북쪽 이주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지중해 지역의 획기적인 유태인 인구 증가 원인을 분석하다 보니 아무래도 포에니 전쟁 외에는 다른 요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허나, 여기에는 많은 실증적 자료들이 필요합니다. 인드라가 이 분야에만 전력을 기울인다 해도 십수년 이상 걸립니다. 더군다나 국유본이 암묵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거론을 원치 않는다면, 더 어려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해서, 이 문제는 둘로 나눠집니다. 하나, 이태리에서 독일로 올라간 이들은 가나안에서 터키를 거쳐 그리스, 이태리로 해서 올라온 이들이다. 해서, 카르타고 유태인보다는 순혈 유태인에 가깝다. 둘, 물론 그리스 노예들이 로마에서 환영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전자의 설명은 금융 지식을 지닌 그리스 노예들이 유태인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인드라 추정과 대립된다. 중동에서 많은 이들이 상인 본능을 지녔지만, 페니키아(카르타고)인들이 대표적이다. 수메르인도 상업에 적극적이었으나, 적어도 유태인이 아니다. 목동과 노예 생활 뿐이던 유태인들이 예수 시절에 급격히 상인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을 인드라는 주목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성경 기자들이 성경에 기록할 수밖에 없는 당대 역사적 격변을 암시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라 보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카르타고인들의 대규모 유대교로의 개종인 게다.

   

해서, 정리하면, 하나, 당대 여건상 카자르인의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진입을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동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반의 유태인 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셋, 이질적인 유태인 집단간의 교합이 보고된 사례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다만, 이를 전제하고, 안박님이 말한 시나고그 부분은 인드라가 접하지 않은 부분이니 안박님이 출처와 자신의 주장을 좀 더 많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점은 귀담아 듣겠습니다.  참고로 유태인들은 파벌이 굉장히 강합니다. 아도르노가 유태인이란 개인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개인과 가문 위주입니다. 해서, 유태인들은 저마다의 랍비를 두고서 예배를 본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박 :  세파르딤과 카자르 유태인은 제가 알고 있는 바도 그러하지만 아쉬케나지는 좀 애매합니다. 렘블란트 당시 네덜란드 세파르딤이 만명에 불과했어요. 다른 지역보다 많은 스페인 이주자들이 살던 곳이 네덜란드인데 그 정도였던 거죠. 카자르유태인들이 동유럽으로 퍼져 들어간 건 몽골 침입으로 추정한다던데 일리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에 로만틱 가도를 따라 이태리 유태인이 독일 지역으로 갔었을 거라고 하신 말도 생각나는데 물론 있었겠지만 아쉬케나지의 주류는 카자르였을 것같아요. 로스차일드가 네덜란드에서 교육받았다는 것이 그들이 세파르딤계엿을 것의 근거가 되기에는 좀 미약하지않나 싶어요. 또 스페인 이슬람의 세파르딤으로 재상이었던 인물이 카자르의 유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서로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교류는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쉬케나지엔 세파르딤이 섞여있었지만 메인은 카자르였을 것이다라고 생각됩니다.

   

인드라 : 안박님 말씀을 정리하면, 세파르딤이 쪽수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인 카자르가 메인이었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로스차일드는 아슈케나지일 뿐만 아니라 카자르 혈통이 많이 개입되었다. 이렇게 설명합니다.

   

허나, 단지 인구수만을 가지고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민족도 아니고, 유태인을 이야기하는데, 근거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 유태인이 어느 혈통이든 불문하고 다 합쳐서 오늘날 천칠백만 명 정도되는데, 이들이 삼억 미국을 주도하고 있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점에서 국유본론은 좀 더 엄밀하게 보자면, 현재 지배하고 있는 최상층은 유태인이 아니라 록펠러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메인이란 쪽수가 아니라 실제로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고, 그 만 명에 불과한,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네덜란드 유태인들이 영국혁명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영국 경제를 장악했고, 미국 초기 식민지 건설에서 뉴욕이란 명칭을 만들 만큼 큰 힘을 발휘하였으며, 루즈벨트 대통령 등 두 명의 대통령과 초기 연방준비은행 이사를 배출하였습니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빼고도 말할 수 있는 대목이 이 정도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습니다. 같은 유태인끼리 결혼하다 피가 섞이다 보면 카자르 혈통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겠느냐 이런 것이겠지요. 이것은 인드라가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안박님이 주장하는 바이므로 이런 점에 대해서 안박님이 보강해서 주장하시면 좋겠습니다. 출처도 같이 밝혀주시구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인드라 생각은 이렇습니다.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오늘날 서유럽이라 부르는 지역에서 유태인이 굉장히 탄압받던 시절입니다. 영국 등 각 지역에서 추방령이 떨어지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카자르인이 뭐 줏어먹을 것이 있다고 서유럽으로 기어들어오겠습니까. 지금과 달리 당대에는 일부 자유도시를 제외하고서는 이주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 때입니다. 네덜란드 유태인 수가 적다고 하셨는데, 다른 서유럽 유태인 수도 굉장히 적었습니다. 예외적인 지역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폴란드서부터 러시아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으로 대거 이민한 유태인들 거의 절대 다수가 폴란드 출신이거나 러시아 출신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2차대전 때 유태인이 육백만 명 학살당했다, 이런 루머 때문인데요. 인드라가 이 대목에서 현재까지 파악한 바는 많아야 육십만명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무죄로 여기거나 과소평가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보지만, 국유본이 자신의 목적에 의해 뻥튀기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것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해서, 이러한 생각으로 중세에는 유럽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그만큼 유태인도 많을 것이다, 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시아와 달리 유럽은 인구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하나, 지금과 달리 이전 유럽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십자군 전쟁 무렵 잠시 따뜻했던 때를 제외하고서 19세기 전반까지 사람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습니다. 둘, 페스트 등 각종 질병이 창궐하여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셋, 끊임없는 종교 영주 전쟁으로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이래서 역설적으로 유럽에서는 인권이 상대적으로 중시되었던 것입니다. 하도 죽어서 사람이 귀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로스차일드가 살던 프랑크푸르트 게토 인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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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대공국 인구 다 합쳐 삼십만명입니다. 오늘날 인구 면에서 제 2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프랑크푸르트시가 인구만 육십여만명인데, 대공국 인국에 비해 절반입니다. 허나, 그 내용을 봅시다. 프랑크푸르트 대공국은 프랑크푸르트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맑스 탄생지인 트리어를 포함해서 7개 지역을 통합한 것입니다. 존속기간이 나폴레옹 시대인 1810년부터 1813년입니다. 해서, 칠등분하면 약 사만명이지만, 아무래도 도시에는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므로 그렇지는 않겠지요. 해서, 넉넉잡고, 십만명으로 잡아도, 과연 십만명의 도시에서 기독교인의 적대자인 유태인을 1/10 이상으로 받아들였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손자병법에 보자면, 열 배 이상의 우위를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동양적인 내용이지만, 인간 행동 양식을 보편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면,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만 명 이하의 유태인 인구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서, 봅시다. 전후 유태인 인구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고 로스차일드가 살던 영국에서조차도 삼십오만명에 불과합니다. 당시 영국 인구는 사천칠백여만명. 유태인 인구는 영국 전체 인구의 1%가 안 됩니다. 영국도 이러니 다른 유럽 국가는 더 하겠지요? 그렇다면, 독일은? 육천육백여만명 중 유태인은 팔만 오천명. 0.01%에 육박하는군요. 이차대전 때 모두 학살되어서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허나, 서유럽 지역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각국에서 유태인 비율이 차지하는 것은 대체로 0.3~0.5% 사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영국처럼 유태인 중심도 아니면서 유럽 대륙에서처럼 박해를 받지 않은 아일랜드 지역을 고려했을 때 말입니다.

   

해서, 프랑크푸르트 공국이 삼십여만명이라면, 이 지역에서 살았던 유태인 수는 많게는 1%인 삼천여명에서 적게는 0.3%인 천여명 정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데, 유럽에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특정 동네를 천여 명의 동네로 만들었다면, 아파트도 아닌 만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게토 지역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은 12세기부터 유태인들이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들 초기 유태인들은 몽고 침략과 무관합니다^^!

   

해서, 인드라 추론은 설사 극히 일부의 카자르인이 18세기에 극히 일부 카자르가 서유럽의 종교전쟁 탓으로 다소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서유럽으로 잠입하더라도 이 시기 같은 유태교인이라 해서 쉽게 합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봅니다. 아직도 여러분이 잘 모르는데요. 이 시기 영주의 권한이 막강했을 뿐더러 종교적 엄단도 굉장했습니다. 이주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더러 종교적 이단자들은 엄하게 처벌당하는 시대였습니다. 무단이탈하면 십중팔구 사형을 당합니다. 이걸 감수하고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한다?

   

특히 이는 유태인 기질과 관련이 있는데, 이들은 개인주의와 가족주의를 매우 중시해서 같은 유태인이라고, 같은 유태교라고 화합하지 않습니다.

   

셋, 다음으로 언어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안박님 생각대로 독일에 카자르인이 많이 진출했다면, 그들이 메인이었다면, 이태리어에서 온 게토이니, 뱅크이니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대표적인 예로 체코 프라하를 들 수 있습니다. 이 프라하에는 5세기부터 유태인 정착촌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정착촌에 대해 게토라고 명칭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입니다. 정확히는 이태리에서 게토라고 한 이후라고 합니다. 인드라가 이 지역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인드라가 유럽에서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곳이기 때문에 잘 압니다. 만일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인드라가 첫번째로 태어난 곳은, 프라하요, 두번째는 바르셀로나이며, 세번째는 런던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참 마음에 드는 도시였습니다.

   

하면, 5세기에 아직 유대교로 개종하기 전인 카자르인이 오기에는 거리가 멉니다. 징기스칸 정벌로 한참 이후입니다. 다만, 어떤 유대인 가족 하나가 이 지역에 좀 살았나 봅니다. 유태인들은 이런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고, 다들 좀 역사적으로 뻥을 치는 편이잖아요. 대표적인 예가 한국 족보입니다. 대체적인 한국 족보는 징기스칸 침입 이후에 활성화됩니다. 오늘날 보수적으로 통용되는 한국 족보와 달리 그 초기에는 침략자 원나라 족보와는 다른 한국의 전통을 내세우기 위한 독립군 개념이 한국 족보였습니다. 그 덕에 어지간하면, 다들 통일신라 왕씨 성인, 김씨를 내세운 것입니다. 물론 이는 원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시대가 성립하니, 조선시대 세도가 위주로 족보가 재편되었을 것입니다. 즉, 가라 족보를 썼지만 조선왕조에 협력한 성씨는 보존하고, 가라 족보를 썼음에도 조선왕조에 대든 성씨는 삭제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유태인 사이에서도 일어났겠지요. 보편적인 현상이니까.  

   

하여간 중요한 건 명칭입니다. 이것이 유태인 스스로 게토나 방크라고 부르지 않았다 해서 문제삼을 수 있는데, 인드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즉, 당대 서양사회가 유태인 풍습에 대해 게토나 방크라고 불렀던 것은 그만큼 그 기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국유본론 연구회 카페에는 다양한 기원을 지닌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드라를 긍정하는 이들에 대해 적들은 인드라빠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당대 유태인 중에는 백번 양보해서 카자르인 혈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당대 서양 사회에나 서양 당국은 이들을 이태리에서 유래한 족속들로 보았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인드라는 최소한 카자르인이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을 순혈 유태인으로 보느냐, 카르타고 유태인으로 보느냐 두 가지인데요. 예서, 인드라는 순혈 유태인이 장사 기질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워 카르타고 유태인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안박 : 카르타고 유태인에 대하여도 좀 의견을 달리합니다. 이슬람 전성기에 바빌론이 그들 경제의 수도였고 그곳이 유태인의 본거지였으며 나름의 사법 종교적 독립을 누리며 자치를 누리고 있었죠. 이슬람이 스페인을 점령하자 기독교도들을 다스리는데 유태인이 많이 활용되었고 그곳의 800 년간 유태인들은 역사상 최대의 황금기를 누렸어요. 바빌론과 바그다드의 유태인들은 대거 스페인으로 이주하게됩니다. 이제 유태인들의 중심은 스페인이 된 거죠. 카르타고의 유태인이나 다른 산재했던 소수의 유태인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메인은 바빌론,바그다드 유태인이 스페인에 오면서 그들이 세파르딤의 주였어요. 물론 카르타고 유태인들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8~9 세기 당시 유태세계의 중심은 바빌론과 바그다드였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인드라 : 오늘날 유태인들은 특정 지역에 몰려 삽니다. 심지어 카자르인 본산이라는 러시아에서도 유태인들은 도시에 주로 삽니다. 이런 이유로 인드라는 복어 계획이다, 신복어계획이다 하는 따위의 유태인 만주이주설을 부정합니다. 한마디로 헛것이고, 친일매국수구민주당 놈들이나 생각하는 망상이고, 국유본 따까리 병신색희 일본왕 따위나 꿈꾸는 프로젝트인 겁니다.

   

중세의 중심이 중동이나 중국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반문합니다. 님의 말대로 바그다드가 중심이었다면, 그런 중심에 있던 유태인들 중 핵심그룹이 그들로 보았을 때, 변방인 스페인으로 왜 이동합니까. 이에 대해서 안박님의 설명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유태인 이주를 고려할 만큼의 원인을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안박님 설명이 맞다면, 그 누구가 본사인 바그다드에서 지사인 스페인으로 전보 발령을 자청하겠습니까.

   

인드라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나, 스페인의 유태인에 관한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 어차피 그리스로마 문명에 대항하는 성격의 유대교 신앙이었다면 8세기 이슬람 신앙이라면 일부 사람들은 저물어가는 유대교에서 떠오르는 회교도로 개종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슬람 지도자들이 다른 종교에 비해 유대교에 관용적이지 않았나 싶다. 둘, 일부는 설사 그렇더라도 이슬람교 창건 이전 약 육백여년을 유대교를 믿으며 살아왔다면 이 전통을 쉽사리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 포에니 전쟁 당시 본거지인 카르타고 이외에 가장 격렬하게 로마와 싸운 곳은 어디입니까. 스페인 지역입니다.

   

셋, 그럼에도 왜 국유본은 이 세파르딤 스페인 루트를 숨기려 하면서 대신 아슈케나지 카자르 루트를 오늘날 강조할까. 이는 국유본 현 권력이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다.

   

안박 : 또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아쉬케나지에요. 여기서 세파르딤은 소수이고 경제적 하류라고 합니다. 이들 세파르딤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스페인 출신 마라노가 아닌 거의 원주민 유태인을 세파르딤으로 분류하는 것 같아요. 로스차일드가 이스라엘 건국의 실질적 지도자였는데 그들의 많은 희생 끝에 이스라엘이 이루어졌고 아쉬케나지가 메인이되는 나라가 건설되었어요. 그런데 그를 세파르딤으로 분류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구요.

   

   

인드라 : 안박님이 이스라엘 정치에 무식(?)하시다 보니 상기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인드라 과거 글, 한단고기는 동아시아판 시온의정서이다, 라는 글을 정독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드라가 이번 기회가 확실하게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습니다.

   

님이 예서 말씀하시는 세파르딤은 정확히 말하면 세파르딤이 아닙니다.

   

   

미즈라히 유태인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이들을 보통 중동, 이스라엘,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들로 정의할 수 있으나, 인드라는 색다르게 규정한다. 유럽인종과의 혼혈을 멈춘 카르타고 유태인 종족을 미즈라히 유태인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 세파르딤 유태인들은 스페인 추방령 이후 크게 두 갈래로 향했다. 하나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했다. 반면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헌데, 그 고향이 예루살렘이었나. 로마도 멸망한 때에 왜 이들은 예루살렘보다는, 카르타고인들의 고향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각각으로 흩어졌을까.

   

   

오늘날 스페인 추방령 이후 바그다드로 돌아간 이들 중 크게 성공한 이들은 고작해야 로스차일드 도움을 받은 사순그룹 정도 뿐이다. 대다수 유태인 연구가들은 스페인 추방령으로 북아프리카나 중동으로 돌아간 다수는 기존 중동인들에 뒤섞여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이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세파라딤과 미즈라히를 나누는 배경 말이다. 왜 세파라딤은 성공하고, 미즈라히는 실패했는가. 이는 고대사에서 디아스포라로 남하하여 카르타고로 간 이들은 성공하고, 예멘으로, 끝내는 이디오피아로 간 자는 결과론적이지만 왜 실패했는가 이런 질문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인 본능도 중요하지만, 지정학적인 요인이 상당히 중요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같은 값이면, 지정학적 요인이 작동한다 할 수 있겠다. 같은 호남 출신이라도 해안 출신의 호남인들이 친일매국수구민주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우연이겠는가.

   

이제 정리하자.

   

따로 아슈케나지에 대해서는 정리하지 않겠다.

   

세파라딤만 정리하자.

   

   

세파라딤, 이들은 오늘날 누구인가. 혈통적으로는 유럽인과 혼혈하여 겉보기에는 유럽인과 다를 바 없는 족속이다. 반면 미즈라히는 자기 전통을 고수하다 보니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면, 상기한 그림대로이다.

   

만일 당대 예수 초상화를 그렸다면, 단연코 전자 얼굴의 예수일 것이다. 이것이 미즈라히이다.

   

허나, 피가 많이 섞이면 어떻게 되나? 후자 얼굴의 예수가 된다.

   

   

이런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빅터 로스차일드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파라딤 유태인들은 유태인 자료들에 근거하면, 약 백오십만에서 이백만명입니다. 그럼에도 인드라는 왜 이들 세파라딤 유태인들을 백만명 정도로만 보고 있습니까.

   

이는 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브라질, 터키 등 주요 7개국 인구 합계가 약 백만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라파딤 유태인들은 그 겉모양 때문에 아슈케나지 유태인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그 뿌리로는 미즈라히 유태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인가. 그들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부자가 겉보기에는 가난한 척구는 것과 같다.

   

물론 황제 록펠러의 정보는 자세하게 언급될 수 있다. 이는 동서고금 역사에서 확인된다. 반면 귀족들의 보고들은 드물다. 최근 리비아 사태 이전까지 리비아 각 부족에 대해 우리는 몰랐으며, 그 부족 귀족들 현황도 알기 힘들었다. 문제는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핵은 황제 록펠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이다.

   

가다피가 아직까지 리비아의 핵이듯, 국유본 세상에서 핵은 여전히 록펠러이다. 허나, 가다피가 무너진 뒤 우리는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때 과도기적으로 꼭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국유본이다. 누군가를 목 조르면서 언제까지 할 거야, 라고 묻는 그룹. 이것이 이 글 포인트이다."

로스차일드는 카자르인이 아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소식 / 길을걸으면생각난다

2011/02/28 01:57

http://blog.naver.com/miavenus/70103966544

    

   

   

빨간 부분은 인드라가 쓴 것이고, 검은 부분은 안박님이 쓴 글입니다. 안박님 글 중에 원장님이라는 분은 안박님이 아는 분인데, 인드라에게 그분 글을 소개한 것입니다. 안박님이 인드라 의견을 물어본 것이 이에 대해 인드라가 답변을 드린 것입니다.

   

"인드라가 칭찬에 헤픈 듯하나 의외로 인색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해서, 우리 안박사님의 말씀에 인드라가 매우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안박사님은 한국 사회가 길러낸 소중한 인재이다. 헌데, 이러한 인재들 특징이란 각자 고유한 세계관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세계관이 있는 자라야만 겸손할 수 있다. 왜? 마음의 부자들이란 가급적 자신의 마음의 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마음의 부가 오래도록 보존, 발전된다는 것을 체감하기에. 이 세계도 물질의 세계와 닮아 있어서 선수들은 선수들끼리 알아 본다. 선수들끼리는 허튼 수작을 부리면 안 된다. 진실되게 소통해야 한다.

   

우리 안박사님이 인드라에게 지도를 부탁한다는 겸양의 도를 실천하시니 인드라가 무척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수틀리면 안박사님이 인드라는 사기꾼이다, 라고 선언할 수도 있을 터... 해서, 진지하게 하나하나 문맥을 검토해야 했다. 인드라가 일을 하는 가게에서는 글을 쓰기에도 쉽지 않지만,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생겨 하지 못해 퇴근한 뒤에야 정독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안박사님께서 인드라 답글을 읽고 어찌 판단하실까 두려운 마음이 있으나 두려운 마음을 떨쳐내고 과감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부디 인드라의 오만을 꾸중하시라.

--- Original Message ---

From : "안박"<dds9590@naver.com>

To :@shinhan.com

Date : 2010/10/18 월요일 오후 4:21:08

Subject :

   

   

<<원장님 쓰신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느낀점이지만 원장님은 정말 해박하시고 박학하십니다.(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금융시장 관련하여, 두가지 가능성(미국의 이민규제개혁법안, 북한 변수)과 그에 따른 영향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사실 두 사안에 대해 그 동안 원장님만큼 밀도 있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각각의 내용들로 보면 다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두 가능성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일리 있는 견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금융시장이 어느 하나의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보다는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움직이기에, 말씀하신 가능성도 금융시장의 움직임의 주요 요소가 되겠지만 과연 이것이 어느 정도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예단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원장님 의견에 다소 첨언하면, 이민규제개혁법안이 주택에 대한 유효수요의 양성화를 통하여 주택가격 하락을 막고 현재의 상태를 개선시키는데 도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는 부동산 시장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맞지만, 기본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1980년 폴 볼커의 스태그플레이션 치유 이후 진행되어온 레버리지의 확대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적당한 통화완화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금융의 본질인 경제에의 적절한 윤활유를 공급해 준다고 보지만, 금융위기 전 금융시장 상황은 Shadow Banking System 등 너무 많은 레버리지에 위기의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금융위기 이전 및 현재도 주류경제학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앙은행이 Inflation Targeting 정책을 실시하고 단기금리의 조절을 통하여 장기금리로 파급되어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Inflation Targeting정책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케인즈의 화폐환상이론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2~3% 상승할 때 노동자는 급여가 안정적으로 증가한다고 느끼고 화폐의 구매력도 일정하게 보장되며 기업도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제품가격에 반영시키면서 적정한 이익(명목이익)의 증가를 시현할 수 있어 모든 경제주체가 상호이익이 되는 선순환 시스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지나친 레버리지의 증가는 부채의 증가속도보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속도를 빠르게 하여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었고, 그 상승속도에 한계가 왔을 때 부채의 상승속도도 한계를 맞게 되어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채의 증가에 따른 자산가격의 상승이 다시 재현되기는 힘들다고 생각되며, 이 때문에 이민규제개혁법안이 미국이 다시 강달러 추세로 복귀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보입니다.(물론 일부 영향은 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신흥시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국제경제질서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신흥시장의 내수에 기대를 걸고 국제투기자본이 통화강세를 유도하거나 주식강세를 유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거 같습니다. 따라서 달러강세로 전환될 가능성은 이러한 신흥시장의 내수, 즉 구매력이 기대대로 성장을 해 줄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러한 측면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제대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 다시 달러화강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번째 북한문제에 대한 첨언입니다.(이게 더 예측하기 어렵고 우리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더 클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미국의 주요 세력 중 군산복합체의 위세는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 정권이 무기산업과 관련하여 존속될 이유도 명백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는 그러한 이유 외에도 경제적인 요소가 상당히 작용한다고 봅니다. 우선, 막대한 통일비용을 들 수 있습니다. 서방 선진국이었던 독일이 공산권 선진국이었던 동독을 흡수통일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하물며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북한의 열악한 경제현실을 볼 때 통일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정권이 붕괴되었을 경우 그 자리에 누가 대신하게 될 것인가도 자칫하면 중국과 미국 초강대국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경제상황 상 우리나라는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중국은 또 미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정치 경제적 역학관계에 따라 예측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여하튼 북한의 권력관계와 관련한 원장님 글 매우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 있으시면 한 수 지도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요, 고맙습니다.>>

   

 -> INDRA: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 히스패닉계의 강력한 지지 속에 탄생한 정권입니다. 미국 흑인의 인구 비율은 12 % 내외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바마가 이들 히스패닉 라티노(라틴 계통)들에게 한 약속 중에 이민규제개혁법안' 이라는 것이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에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이 있으므로 오바마는 이 법안이 통과 될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떨어진 주택에 대한 수요가 일시에 늘어나면서 서브프라임으로 야기된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 경제가 건실하게 되어 달러 강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약과 같아서 중단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구조적인 개선책으로 선택되어지기엔 미봉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허나, 우리는 미봉책이니 안좋다, 좋다 논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므로 진행되는 상황에 이익 창출 가능성만을 따지면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제조업 능력이 경쟁국에 비하여 떨어지기 시작하면 화폐 가치 또한 떨어지게 됩니다. 로마의 경우 이러한 국가 경쟁력의 하락을 시민권소유자 확대 정책으로 극복하려고 하였고 실질적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제국의 수명을 연장하였으니 효과를 보았다고 해야겠지요. 미국의 이민개혁법안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출처] 인드라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작성자 안박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 히스패닉계의 강력한 지지 속에 탄생했다고 보기에는 팩트적 측면에서 제기될 문제가 있습니다. 오바마는 한국으로 치면 DJP 연합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바마는 흑인을 대변하고,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과 히스패닉을 대변했던 것입니다. 안박님의 발언을 한국적으로 풀어쓰면 이렇게 됩니다. 김대중은 충청도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탄생한 정권이다. 그렇지는 않지요? 물론 김대중은 국유본이 임명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지지세로만 보자면, 호남이 주축이고, 충청이 조연이었습니다. 헌데, 조연을 주연인양 말한다면 어폐가 있겠지요^^!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제조업 능력이 경쟁국에 비하여 떨어지기 시작하면 화폐 가치 또한 떨어지게 됩니다. 로마의 경우 이러한 국가 경쟁력의 하락을 시민권소유자 확대 정책으로 극복하려고 하였고 실질적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제국의 수명을 연장하였으니 효과를 보았다고 해야겠지요. 미국의 이민개혁법안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안박님은 정리의 달인입니다. 넣을 때는 넣고, 뺄 것은 과감하게 빼서 핵심만 간추리는군요. 잘 정리하셨습니다. 안박님이 인월리를 참고하여 이 글을 작성했다 여겨서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이 국가 경쟁력 하락을 시민권 소유자 확대 정책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왜이겠습니까. 이는 로마 시민권 소유자 확대 정책 이전에 로마제국 황제가 비로마출신이 될 때부터이겠습니다. 제국이 제국이기 위해서는 제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제국이 제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으므로 이 모순은 갈수록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순은 케사르 때에 이르러서야 폭발했다고 인드라는 조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케사르 이전까지의 껴안기는 성공적이었던 반면 케사르 이후의 껴안기는 실패였으니까요. 하면, 이 분수령을 이룬 계기는 무엇일까요?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왜 역사적인 차이가 있을까요? 인드라는 이를 당대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케사르가 케사르일 수 있었던 것은 소수임에도 다수로부터 인정받는 특권 계급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부정된다면, 사태는 두 방향으로 흐릅니다. 하나는 소수이지만 다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망할 계급 정권이거나 아니면 무능한 다수가 일시적으로 권력을 점유하는 정권입니다. 안박님이 제시하신 로마 처방은 인월리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으로 봅니다. 인월리가 제시하는 방향은 명백합니다. 소수이지만 다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망할 계급 정권이 정권을 연장할 속셈으로 무능한 다수가 일시적으로 권력을 점유하는 정권을 만들었기에 로마제국은 멸망이 불가피했다. 다시 말해, 엘리트가 엘리트다워야 하는데 엘리트답지 않으면 대중추수주의, 혹은 포퓰리즘에 연연하게 됩니다. 이는 제국의 멸망을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해서, 근원적인 대책은 실속있는 엘리트들로 권력을 재편하는 것이 해법입니다만, 역사를 보자면, 이런 일은 즉시 일어나지 않았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기존 권력이 오래도록 갖은 방법을 쓰면서 다 실패한 뒤에야 권력교체가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해서, 결론적으로 보자면, 안박님 말씀대로 현 오바마의 이민개혁법안이 미봉책임이 분명하면서도 다른 한편 일시적으로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강호의 고수분께서는 일찌기 2010 년도 3/4 분기에 이민 규제개혁법안이 표면을 나올 것이라 예측하였습니다. 전가의 보도와 같은 이민규제개혁법안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러의 약세화를 이용한 투기세력들이 이익을 챙길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 등 이머징 국가의 증시에 투기하면 떨어진 달러의 환율만큼 이익을 얻을 수있고 증시 상승 이익도 취할 수 있습니다. 달러화의 약세는 금값을 폭등시켰고 투기 세력들은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달러화의 약세를 환율 전쟁"이라는 화두로 전세계를 헷갈리게 하려는 어떤 세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바마의 중간 평가가 11 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바마는 패하여야 오바마가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바마가 중간 선거에서 패하여 정치적 입장이 곤란해져야 이민규제개혁법안을 시행할 명분이 선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야 여론이 오바마에게 이민규제개혁법안을 시행하도록 압박을 가하게 된다는 것이고 오바마 또한 그러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판의 흐름을 꽤차고 있는 투기 자본 세력들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민규제개혁법안이 표면상으로 올라와 시행이 약속되는 순간이 바로 전세계 경제 흐름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금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경제 행위 지침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인드라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작성자 안박

   

인드라는 안박님이 제시한 강호의 고수가 딱 좋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언론에서 화제의 인물, 인드라 이런 식으로 조명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인드라는 그간 경험상 이는 인드라 죽이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드라는 현 상황 정도가 인드라에게 딱 좋다고 여깁니다.

   

"오바마의 중간 평가가 11 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바마는 패하여야 오바마가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바마가 중간 선거에서 패하여 정치적 입장이 곤란해져야 이민규제개혁법안을 시행할 명분이 선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야 여론이 오바마에게 이민규제개혁법안을 시행하도록 압박을 가하게 된다는 것이고 오바마 또한 그러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주 잘 정리하셨습니다. 너무 잘 정리하셨기에 금선물 투자자들이 안박님 글에 놀라 안박님 글을 인간지표화해서 다른 패턴을 일시적으로 펼칠 수 있을 지경입니다. 아무나 인간지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등장한 논리 중 가장 이성적인 논리가 인간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면, 근거는 무엇입니까. 클린턴 정권 중간평가 선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 클린턴이 접한 과제와 오바마의 과제는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이를 전제하고, 안박님처럼 지금 금을 투자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시기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150달러선에 이를 때 200달러까지 간다고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전망은 국유본 마음입니다. 국유본이 안박님 글을 읽고 금에 좀 더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어찌되었든 제이 록펠러는 남한을 밀어주고 있으며 남한의 역량을 키워 북한을 존속시키려는 세력을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이 록펠러는 이명박을 이뻐하고 있으며 이명박은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역사의 인물이 되려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 리튬 자원, 카다피 사건등 이명박 지원 사격 또한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만일 북한에서 김정은이 실각했다면 데이비드 록펠러가 이긴 것이되고 남한은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긴 이야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처] 인드라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작성자 안박

인드라가 볼 때, 김정은은 네오콘 부시 계열이 아니라 뉴라이트, 혹은 CGI 클린턴 계열입니다. 김정일은 뉴라이트입니다. 해서, 김정은 실각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승리가 아니라 네오콘 부시의 승리가 됩니다.

   

"지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는 부동산 시장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맞지만, 기본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1980년 폴 볼커의 스태그플레이션 치유 이후 진행되어온 레버리지의 확대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적당한 통화완화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금융의 본질인 경제에의 적절한 윤활유를 공급해 준다고 보지만, 금융위기 전 금융시장 상황은 Shadow Banking System 등 너무 많은 레버리지에 위기의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금융위기 이전 및 현재도 주류경제학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앙은행이 Inflation Targeting 정책을 실시하고 단기금리의 조절을 통하여 장기금리로 파급되어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Inflation Targeting정책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케인즈의 화폐환상이론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3% 상승할 때 노동자는 급여가 안정적으로 증가한다고 느끼고 화폐의 구매력도 일정하게 보장되며 기업도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제품가격에 반영시키면서 적정한 이익(명목이익)의 증가를 시현할 수 있어 모든 경제주체가 상호이익이 되는 선순환 시스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지나친 레버리지의 증가는 부채의 증가속도보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속도를 빠르게 하여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었고, 그 상승속도에 한계가 왔을 때 부채의 상승속도도 한계를 맞게 되어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채의 증가에 따른 자산가격의 상승이 다시 재현되기는 힘들다고 생각되며, 이 때문에 이민규제개혁법안이 미국이 다시 강달러 추세로 복귀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보입니다.(물론 일부 영향은 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출처] 인드라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작성자 안박

   

이 설명이 정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레버리지입니다. 이는 다른 유식한 표현으로 이윤율입니다. 규제는 이윤율을 하락시킵니다. 시장은 이러한 규제에 반발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갈등을 잘 조절한다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불행인 것입니다. 허나, 이는 나이브한 규정이구요.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국제유태자본이 위기를 크게 키운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해서, 근원적으로 위기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사모펀드, 헤지펀드는 물론 일체의 펀드행위를 중지시켜야 하겠지요. 레버리지가 원인이라면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금시장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 무엇보다도 환율시장을 폐쇄시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환율시장이지요. 레버리지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시장이니까요. 허나, 고작 각국 일부에서, 가령 브라질 정도에서 토빈세 운운인 것입니다. 

   

하여, 사태는 몇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하나, 레버리지 탓을 하는 경우는 대체로 근원적인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만, 자본 시스템이 이제까지 고수익을 전제로 해왔던 만큼 자본 시스템을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러한 비판은 공허한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 케인즈 탓을 하는 경우는 페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 시스템 자체를 건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합니다. 대신 케인즈 탓을 한다는 것은 자본 시스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여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면, 케인즈 대신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신자유주의였습니다. 케인즈의 방식이 실패해서 나온 것이 폴 볼커 방식이었고, 워싱턴 컨퍼런스였고, 신자유주의였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케인즈의 재정정책을 비판한 방식입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특히 영국에서 재정 감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해서, 일각에서는 유럽에서만큼은 케인즈 말빨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면, 이러한 비판은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까요?

   

이것 역시 근원적으로는 자본 시스템을 거스르지 않는 비판입니다. 왜? 지구의 어느 한쪽에서 양적완화를 한다면, 지구의 다른 편에서는 양적완화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지난 금융위기 때를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한없이 달러를 찍어내고 있음에도 한국과 동유럽, 기타 여러 나라에서는 오히려 달러가 없어서 환율이 크게 뛰었습니다. 다시 말해, 현 세계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 특정 국가가 그만큼 희생함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현 달러 체제가 무너지니까요. 간단하게 말합니다. 인드라가 가짜 돈을 마구 찍어냅니다. 이 가짜 돈이 문제가 되려면 이 가짜 돈으로 인해 경제가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허나, 경제가 문제없이 돌아간다면? 그렇습니다. 어느 부문에서 이 가짜 돈을 무한정 흡수하면 전체 시스템은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셋,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분은 상징성에 둔감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민개혁법안 통과란 정치적 결정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움직인다, 이런 것에 근원적으로는 인드라도 비판적입니다. 경제가 정치를 움직입니다. 허나, 과도기적 국면에서는 정치가 경제를 움직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레버리지가 어떠하든, 경기 순환 사이클이 있습니다. 해서, 경기 순환 사이클이 존재하는 한, 경기는 회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2. 근래 노벨경제학상 경향을 살펴보면, 인간의 심리, 혹은 주관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상기한 경기 순환 사이클에 인간 심리가 반영된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이민개혁법안이 그 아무리 폄하해서 미봉책이라 하더라도 다른 미봉책보다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령 한국인은 외환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처방에 대해 무지한 상황에서 외환 보유고가 무조건 많기만 하면 되는 것인줄 알고 금모으기에 나섰던 것입니다. 국유본이 이제껏 어떻게 장사를 했나요?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뒤 제대로 된 정보로 큰 부를 획득했습니다. 

   

"말씀하신 미국의 주요 세력 중 군산복합체의 위세는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 정권이 무기산업과 관련하여 존속될 이유도 명백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는 그러한 이유 외에도 경제적인 요소가 상당히 작용한다고 봅니다. 우선, 막대한 통일비용을 들 수 있습니다. 서방 선진국이었던 독일이 공산권 선진국이었던 동독을 흡수통일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하물며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북한의 열악한 경제현실을 볼 때 통일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정권이 붕괴되었을 경우 그 자리에 누가 대신하게 될 것인가도 자칫하면 중국과 미국 초강대국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경제상황 상 우리나라는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중국은 또 미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정치 경제적 역학관계에 따라 예측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출처] 인드라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작성자 안박

   

이런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 안박님도 아실 겁니다.  해서, 이와 관련한 사안은 인월리를 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인월리는 해석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인월리는 실천입니다

안박님 질의에 대한 인드라 답변 국유본론 2010

2010/10/22 02:48

http://blog.naver.com/miavenus/7009596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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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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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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