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 VS 기린아/이효리 :인류의 기원과 기후사, 그네 대통령 인드라 VS ?
2013/03/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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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 VS 기린아/이효리 :인류의 기원과 기후사, 그네 대통령
국제유태자본론 : 인드라 월드리포트 13/03/07-6
"기린아:
인드라님 잘 읽었습니다. 인드라님 글은 제겐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프린트를 해서 읽어요(회원 여러분들도 눈의 건강을 위해서 프린트해서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이렇게 방대한 양의 글을 일주일 만에 올리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내용에 있어서는 범인이 도달하기 어려운 천재의 수준이라 할 말을 잃게 되요. 인드라님을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을 넓혀가게 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꾸준히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유태자본의 모든 회원들도 건강하시고 모두가 다함께 끝까지 연구하는 사람이 됩시다. 저는 이 카페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랍니다.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 이 카페가 없어지는 날이 오면 뭔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게 되는 기분일 것 같네요.
INDRA:
글 감사드린다. 근래 이웃 분들이 인드라를 '천재'나 '천재적인' 인물로 고맙게 평가해주시고 있다. 이때 여러분들의 평가에는 인드라의 다른 면은 평범하지만, 인드라의'독특함'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듯싶다. 인드라는 이 독특함을 선천과 후천의 조화라고 한 바 있다. 자신이 태어난 바의 기질과 이 기질과 반대되는 기질과의 종합이다. 인드라는 자기 자신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다른 기질들을 얼마나 조화롭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만나야 박수를 칠 수 있다. 그처럼 우뇌와 좌뇌도 만난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해서, 님은 스파이더맨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쉼 없이 접속하라."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3/30 국유본론 2009
2009/03/29 22:22
http://blog.naver.com/miavenus/70044684550
"기린아:
이러다가 그 커튼 뒤의 한국인의 윗대가리가 이건희였다는 전설이...흠... 아무튼 재밌네요.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모음이 발달한 언어를 쓰는 민족이 유목민의 기질을 간직한 민족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자손들이 유목을 하지 않더라도 뇌가 언어의 모음영향을 받아서 유목기질을 나타낸다고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언어는 엄마, 아빠 이렇게 모음을 엄,아처럼 바꿔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데 서양은 마더, 파더처럼 모음은 그대로 두고 마,파 처럼 자음을 바꿔서 언어를 만들죠. 그런데 뇌에서 모음을 인식하는 부분은 우뇌이고 자음을 인식하는 부분은 좌뇌인데... 유목인이 직감적인 느낌과 방향을 활용해 짐승을 사냥할 때 우뇌를 많이 쓰고 그래서 자연히 모음발달 언어를 쓰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조상이 유목민이었던 한국인의 모음발달 언어는 계속해서 후손들에게 우뇌지향적인 유목인의 기질을 나타내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일본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이 즉흥적인 면이 있죠. 인드라님은 그것은 후천적인 기질일 뿐이다. 유태의 전략상 그렇게 된 것이다 하겠지만요 ^^ 쿡
인드라 :
기린아님, 모음/자음과 관련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여 매우 감사드린다. 인드라가 기린아님이 생각하는 만큼 결벽적 후천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선천/후천 5:5로 보는 편이다. 물론 이십대 초반 시절 소설 '왈덴투' 등의 행동주의 심리학에 심취하였을 때는 인간은 투입된 만큼 산출이 되는 자동기계로 여긴 적이 있었다. 허나, 뼈저린 연애 실험의 실패로 선천/후천을 동등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심증이 확증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를 전제하고, 한국인/일본인 분류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 그보다는 혈액형 성격 유형으로 한일 혈액형별 구분이 오히려 더 과학적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후천적인 것과는 다르다. '즉흥적'이다, 에서 즉흥적이란 것은 손가락이 다섯 개다, 여섯 개다, 여자다, 남자다와는 구별이 되는 문화적인 개념이다. 가령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섹스에 밝힘증이 있다, 라는 것과 유사한 개념인 게다. 해서, 더 구체적인 분류에 의한 실험과 가설을 요구할 뿐이지, 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5/22 국유본론 2009
2009/05/22 16:09
http://blog.naver.com/miavenus/70047548918
"기린아:
겉보기에는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듯싶지만, 내용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네// 역시 인드라님이십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시민들처럼 겉으로는 좌파적이되 속으로는 보수적인 걸 원하는 뱡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인간은 속물적인 근성에서 못 벗어나니 말이죠 진보든 보수든 그 사이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드라님이 말씀하신 위선을 떨지 말아야 된다는 거죠 위선을 떨어서 번 콩고물이 다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니 문제이겠고 더 나쁜 건 기존 세대들이 해왔던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닌 정치쇼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는 거겠죠 민주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경험이 없어서인지 처세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좀 세련되었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세련되어질런지... 돈맛(정권)을 보게 되면 달라지겠지만요ㅋ 더 나아가 국유본을 가지고 놀 만한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는데...인드라님이면 가능하시겠지만...아직은 없는 것 같군요...물론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나오지 못하는 구조라는 걸 압니다 만약 그런 인물이 나와 정권을 잡고 국유본을 가지고 놀 수 있다면 지금 전세계가 국유본발밑에서 허덕일 이유가 없으니깐요ㅋ 그래도 인간인지라 그런 희망을 꿈꾸는 걸 멈추는 못하네요 ㅎㅎ 제가 몇달전부터 작전주에 몸담고 있는데 연말에 수익이 날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인드라님에게도 한 턱 내겠습니다 ^^ 그리고 인드라님의 교육론에는 항상 동의합니다 인드라님의 교육에 관한 개혁은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창의적입니다 교육에 관한 부분만이라도 인드라님의 계획대로 된다면 우리 밑의 세대들은 살맛나는 세상을 살텐데요ㅋ 북한과의 통일 후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INDRA:
휴가기간이지만 흥미 있는 글들에는 예외적으로 글쓰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론 비판을 언제나 환영한다.
맑스가 자본을 출간한 후 실망한 것은 비판 때문이 아니라 무반응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도 같다고나 할까. 지금도 유사한 형편이지만, 당대에도 '자본'을 이해할 이들은 그 엄청난 정치가와 정치지망생,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들과 한때 프리메이슨이었다가 탈퇴한 바 있는 바쿠닌과 같은 아나키스트들 중에서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해서, 침묵이야말로 맑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공세였던 게다. 비판이라도 한마디를 하면 소크라테스의 네 꼬라지를 알라는 반박에 찍소리도 못할 것을 운명적으로 직감했기에.
인드라가 맑스의 권위를 내세워서 인드라=맑스로 등치시키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무반응보다 반응이 낫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쓴 것일 뿐이다. 오히려 맑스에 비한다면 인드라가 여전히 수십 배, 수백 배 만만해 보인다는 점에서 비판을 삼갈 이유는 없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함이다. 인드라가 맑스보다 현재까지 우위에 있는 것은, 노이즈 마케팅에 더 재능이 있다는 것 등 사소한 몇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기에^^!
비록 오늘날 이론과 과학이 여전히 신뢰할만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종교계도 아니고 과학계 내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과학은 문화와 종교와 함께 좌우 날개를 이루어 인류의 미래로 나아갈 인간의 필수 구성 부분이다. 문화와 종교가 헌신과 희생으로써 끊임없이 그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면, 이론과 과학은 무자비한 비판 속에서만 그 자신의 존재 의미가 있다.
몇 가지 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에도 언급을 한 바, 카페에서는 인드라가 여러 가지 비판을 경청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보인다. 이를 전제하고, 신입회원들이 곧잘 오해하는 바가 있어서 이 기회에 한번쯤 말하고 갈 대목들이 있어서 언급하고자 함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국제유태자본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혔듯 논픽션이자 픽션이며, 과학이자 소설이며, 이론이자 음모론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음모론 진영에서는 국제유태자본론을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의 일원인 인드라가 1% 저항군을 세뇌시키기 위해 제도권에서 파견한 간첩 논리라고 비판한다. 인드라는 이를 수긍할 것이다. 그 반대로 이론 진영에서는 국제유태자본론을 여타 음모론처럼 사태를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대중을 혹세무민시켜 진짜 진보를 가로막는 기득권 논리라고 비판한다. 인드라는 이 역시 긍정할 것이다.
친일민주당은 정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 번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영국 노동당의 제 3의 길이 초기에는 단순한 선거 전술에 지나지 않았으나, 집권 이후 노동당 정책 노선이 되었듯, 국유본론을 위한 노이즈마케팅으로써 채택되었다가 일정 시기에 국한한 정책 노선이 되어 표현에서 개념으로 잠시 격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평직원 수준에 불과하나 이사급 대우라고나 할까^^! 가령 국제금융자본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이라는 국유본 이름 짓기부터 잘 검토해보시라. 허나, 정세가 변모했다. 인드라가 6월 중순경 글을 통해 가급적 김대중 비판을 자제할 것이다, 라고 한 데서부터 찾아보면 된다. 인드라가 노무현 선생 구속 초읽기에 들어간 4월초부터 더 이상 노무현 선생 비판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을 유념하기 바란다. 해서, 근래 인드라가 친일민주당이라는 표현이자 임시조치용 개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민주당이라고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초기 국면이 아니라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인드라가 친일민주당을 쓰는 기간 동안에는 여전히 민주당이 존속할 가능성이 컸으나, 지금은 그들이 민주당이 존속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기 시작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드라는 김영삼 정권보다 김대중 정권으로 역사가 후퇴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바가 없다. 그처럼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권력교체가 되어 역사가 후퇴했다는 데에 동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부로 권력이 이동이 되어 역사가 후퇴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의 과정은 모두 역사의 진보로 받아들이며, 김일성에서 김정일, 또한 김정일에서 차기로 누군가가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역사의 갈 길이라고 보는 편이다. 이처럼 긍정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각 정권에 대한 비판은 낭만주의와는 그 길이 온전히 다르다. 낭만주의란 헤겔좌파처럼 기존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그간의 제도권 이론도, 기존의 음모론도 모두 긍정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관을 사띠현정님은 헤겔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해주셔서 감사를 드리고 있다. 감사드린다.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인드라도 사실 몰랐다. 맑스가 왜 '자본'과 같은 저작을 집필할 때에야,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천착할 때에야 헤겔을 떠올렸는가를 근래에 들어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인드라는 국제유태노동론이 아니라 국제유태자본론을 논하는 것일까^^!
영화화된 바 있는 '철도원'의 저자 아사다 지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 중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를 발견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어디 소설가뿐일까.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인드라는 이를 보다 일반적, 구조적 접근을 시도해본다. 근대 소설가나 애니메이터 감독들이란 대체로 근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보헤미안인 경우가 일색이다. 이들은 가령 인드라처럼 밑바닥 계층에서 올라온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일루미나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크니게 남작이 대표적이다. 그는 몰락한 귀족이었다. 해서, 당대 떠오르는 조직인 일루미나티를 등에 업고, 용의 승천을 시도했던 인물인 게다.
국제유태자본과 일루미나티 http://cafe.naver.com/ijcapital/2849
자산적 권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일같이 초호화급 호텔에서 생활하던 이는 여인숙 생활로 떨어지면 대부분 견디지 못한다는 게다. 해서, 그들의 혁명성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근래 민주당 관료들의 모습이다. 자신은 본디 귀족인데, 잡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싫다는 게다. 해서, 이들은 지난 십년간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민중의 수호자라도 된 것처럼 유세를 떨 것이 틀림이 없다. 하면, 이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면 그만인가?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를 긍정하고 있다.
당대에 몰락한 귀족의 입장에서 당대 권력에 가장 맞서는 논리는 이전의 정권을 신화화하는 게다. 또한 현 권력은 자신의 권력 정당성을 위해 전전 정권을 역시 신화화한다. 헌데, 둘 다 어정쩡한 게다. 전자는 오늘날 이명박 정부를 비판함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정권이란 비판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데에 곤혹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후자는 지난 십년 정권을 비판함에 있어서 좌빨 정권이란 비판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박정희가 좌익인 데다가 신자유주의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 인물인 데다가 이명박 자신도 데모 주동꾼이었다는 딜레마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은 정치적인 면에서 대중의 정치적 무력감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이끌고 있다. 더 나아가 국유본을 비롯한 한국 각 세력 등이 모두 인드라에게 현재 시나리오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세력들에게 인드라의 답변은 무엇이냐.
- 흐미, 인드라가 꽁짜주의자여. 허나, 인드라으 꽁짜 세상이 올 때까정 느그들에게 세금을 받아야쓰겄다. 맨입으로 허벌나게 먹으면 니넘들 똥창을 벌창으로 만든당께. 알긋나. 인드라가 초과달성을 해불면 인드라두 김우중 꼴이시.
여킬레우스님이 심오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성과 광기를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성이 우리에게 존재하기를 빌며 또한 국제유태자본론이 여러 가지 음모론과 여러가지 사실, 또 다른 의견들을 해석의 대상으로 하는 메타음모론이 된다면 우리 모두가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메타음모론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훌륭한 글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울러 인드라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유태자본의 존재는 영원히 증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체를 회피하고자 했던 구조의 노력은 1950년대 이후 빅터 로스차일드가 표면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완전히 망한 것처럼 보이게 했던 데에 대한 1960년대 이후 이론적 성과물이 아닐까^^! 해서, 포스트구조주의의 역할은 구조주의에서의 은폐된 주체를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짧게 전후 사회사상사를 정리하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만든 냉전체제에서의 서유럽인의 자기 위안이라면(남한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이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을 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레비스트로스나 알튀세르 식의 프랑스 철학, 이태리에서의 후기 그람시주의, 독일에서의 아도르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구조주의는 잠수하던 빅터 로스차일드라는 주체를 다시 수면 위로 호명할 수밖에 없을 만큼 위기의 산물이 아닐까. 현실적으로는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학술적으로는 은폐할 수 있는 최적의 발명품이 '구조' 혹은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근대 세계에서 시스템이란 뉴튼적 그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빅터 로스차일드가 최초의 충격으로 전후 체제를 만든 이후 그 시스템에는 빅터 로스차일드라는 신이 관여해서는 아니 된다는? 허나, 1970년대에 이르러 세계 권력은 빅터 로스차일드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로 바뀐다. 하여, 누군가는 빅터 로스차일드 세계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재빨리 데이비드 록펠러로 말을 갈아탔을 것이다. 그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세계는 아닐까^^!
앎과 깨달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실천이다.
- 혁명은 깨닫는 만큼 진행된다. 해서, 혁명은 당신보다 늘 앞서고 있다."
혁명은 깨닫는 만큼 진행된다. 해서, 혁명은 당신보다 늘 앞서고 있다. 국유본론 2009
2009/07/27 04:09
http://blog.naver.com/miavenus/70060683419
"기린아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0271806055&code=970201
인드라 월드 리포트가 생각나죠? 흠흠. 미 항공우주국(NASA)의 개빈 슈미트는 "2010년은 가장 뜨거운 해 기록을 깰지 모른다"면서 "반온난화론이 다시는 언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이 기사가 인월리를 반박하기 위해 핏대를 무척 세우고 있다고 여겨지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낭 =_=;;;)
나사가 인월리에 반응한다?
INDRA:
글 고맙습니다. 인월리는 국내외 거의 모든 주요 세력이 참고하고 있으며, 국유본이 눈여겨보는 세계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저널이다^^! (ㅍㅍㅍ~! ) 세상은 변화한다. 용기를 지녀야 한다. 해서, 여러분이 인월리 글에 고개만 끄덕여도 세상은 나비효과처럼 변화한다. ㅋ
기사를 보니 오히려 인드라 입장을 강화시키는 주장으로 보인다. 각종 기후 데이터를 보면 마치 주가 차트를 보는 듯하다. 소빙하기라고 불리던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있었다. 또한 로마 온난기와 중세 온난기라 각각 부르는 시대에도 상대적으로 추운 시기가 있었다. 그처럼 온도 측정이 이루어진 20세기, 특히 1980년대 이후를 보면 지속적으로 오르기 보다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올라간다는 점이다.
인드라는 애써 인위적인 요인이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이 시리즈 처음에 이미 밝힌 바 있다. 또한 인위적인 요인에서도 이산화탄소 외에 다른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인위적인 요인 외의 자연적인 요인들 역할이 상당함을 시사했다.
만일 인위적인 요인이 자연적인 요인을 압도한다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만큼 온도는 지속적으로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드라가 주장한 바는 1995년부터 지난 2005년까지 더웠다는 데에 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2005년부터 남북극 빙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지 않는가를 제기한 게다. 하고, 향후 십여 년간은 온도가 오히려 내려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 게다.
이에 대해 현재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흑점 이론이다. 흑점 이론이란 보통 11년 주기를 의미하는데, 80년 주기설도 있다. 11년마다 나타나는 흑점이 최고로 많이 나타나는 상승 꼭지점을 연결하면 80여년마다 패턴이 있다는 게다. 어떤 시기에는 유난히 흑점 활동이 저조한 시기가 있다는 게다.
1750년 이후 여섯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헌데, 무흑점이 길게 이어진 시대에는 지구 기후가 춥고, 가물다는 게다. 소빙하기 시기가 그렇다는 게다. 현재는 흑점이 덜 나타나는 시기이다. 2013년 5월 정도가 11년 주기상 흑점이 가장 많이 나타날 때이다. 초점은 이때의 흑점 수가 다른 때의 흑점 전성기 때와 달리 매우 낮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한국에 태풍이 오지 않았다. 많은 비가 와야 하는데 비도 적게 왔다. 지구온난화를 강조하는 이론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유난히 온난화가 진행되는 곳 중 하나다. 헌데, 지구 온난화 이론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한국에 가뭄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태풍과 비를 선사한다. 헌데, 올해 태풍이 없고, 비도 적게 왔다?~~!
지구 온난화에 인위적인 요인이 있지만 아직까지 자연적인 요인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여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울러 기후 분야가 복잡다단한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음을 강조하고픈 것이다.
제노그래픽 프로젝트는 인류 구원 프로젝트인가 인류 멸망 프로젝트인가
카터를 직접 뽑을 만큼 데이비드 록펠러의 초기 정치적 포지션은 노예민주당이었다. 대신 형 넬슨 록펠러가 공화당 포지션이었다. 양 록펠러는 공화당/노예민주당을 각각 맡아 로스차일드처럼 미국 정치를 조율하였다. 헌데, 넬슨 록펠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데이비드 록펠러는 공화당으로 옮긴다. 레이건과 레이건 민주당원을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공화당에 파견하여 공화당 주류를 만든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데이비드 록펠러 스스로도 마치 정몽준의 스승인양 공화당적인 행보를 하여 카터뿐만 아니라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을 만들어낸다. 예서, 노예민주당을 관리할 인물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오늘날 국유본 황제, 제이 록펠러였다. 하여, 제이 록펠러가 1985년 웨스트버니지아 주지사에서 웨스트버지니아 미국 노예민주당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는 주지사보다 상원의원이 당 장악이 보다 용이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후 1986년에 챌린저호 우주선 폭발 사고와 체르노빌 원전 사건 일어났다.
이제 우주공학 대신 생명공학^^? 1987년 미국 유전학자들이 아프리카 기원설, 혹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설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다. 하고, 이들은 순식간에 인류학계에서 주류가 된다.
1986년 미국 에너지부가 세계 처음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시작한다. 이후 1988년 9월 미국 에너지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해서, 2000년 6월 26일 미국 빌 클린턴 노예민주당 대통령은 마치 케네디의 아폴로 프로젝트를 선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와 민간연구기업인 셀레라제노믹스 회사의 크레이그 벤터와 나란히 서서 역사적인 인간 게놈 해독이 거의 완성되었음을 발표하였다. 2001년 2월 일차적인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고, 2003년에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http://blog.naver.com/minjaya?Redirect=Log&logNo=60002231494
예서, 인류의 기원 학설들을 살펴보자.
인류의 기원에 관한 학설을 대별하면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로 나뉜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까지만 해도 주류 가설은 다지역 기원설이었다. 하면, 다지역 기원설이란 무엇인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인 호모 에렉투스가 이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출현한 이후 180만 년 전에 세계로 퍼졌다. 이후 각 지역에 토착화된 호모 에렉투스가 각 지형에 걸맞게 각자 진화해왔다. 가령 유럽은 네안데르탈인, 아시아는 베이징원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원인이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이므로 아무래도 유럽중심적인 마인드가 있다 보니 이중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우위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 부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성과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40만 년에서 이십만 년 사이에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로 보이는 과도기 혹은 융합 단계가 있었다. 이후 이십만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만 생각하면 조지 오웰의 1984년 체제가 절로 떠올리게 되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수설이었다가 제이 록펠러 등장과 함께 오늘날 주류 가설이 된 아프리카 기원설은 무엇인가. 다 지역 기원설이 유전자 정보도 이용하지만, 주로 화석에 의존한다면, 아프리카 기원설은 유전자 중심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인간 유전자 샘플들로 인류의 조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는 유전자 다양성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보다 오래된 족속일수록 다양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에 이들 유전자간의 관계를 찾아가면 기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가문에서 직계와 방계가 넘쳐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언어도 오래된 지역에서 보다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될까.
유전자 분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한 모계 전승 분석이다. 획득한 유전자 정보에 따르면, 인류는 약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이브라고 명명된 유전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다. 다른 하나는 Y염색체를 통한 부계 전승 분석이다. 이 둘을 종합하면, 인류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 즉 아프리카를 탈출한 것은 60,000년 전 무렵이다.
예서, 아프리카 기원설의 주된 특징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6만여년 전에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 35,000년 전 호모 에렉투스를 절멸시켰다는 게다. 반면 다 지역 기원설은 양 종족 사이에 어떠한 식으로든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3만 년 전까지 생존했다면 호모 사피엔스 시기와 오랜 기간 겹치므로 이들 간의 융합 내지 변종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게다. 허나, 유전자 분석으로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가 오십만 년 전에 분기되었다는 게다. 해서, 이천 년대 접어들면서 아프리카 기원설은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보면, 오늘날 록펠러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먼 미래가 아니라 굉장히 가까운 과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은 국유본처럼 해양인이 주류였고, 미국을 건너갈 정도로 모험적이었다^^! 인류 조상을 알고 보니 세계화론자였던 게다~~!
허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 한반도인과 중국인은 독자적인 기원이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 대신 다지역 기원설을 주로 주장하는 측은 중국과 북한이다. 근래에는 지역 기원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호모 에렉투스도 기원했다는 자생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창장(長江)유역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 204만 년 전 인류라는 분석이 제기돼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측정 연대가 세계 학계에서 공인될 경우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원숭이 인간이 고대 인류로 진화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발견이 된다. 1985년 발견된 화석을 22년째 연구해 온 중국과학원 고척추 동물 및 고인류연구소는 "이 화석은 창장 강 유역에 200만 년 전부터 원숭이 인간이 살고 있었음을 입증한다"며 "중국의 인류 조상은 아프리카의 원숭이 인간이 아니라 중국 자체의 원숭이 인간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또 "중국 고대 인류 화석의 86%가 창장 강 유역에서 발견된 것"이라며 "이는 중국 인류 조상이 창장 강에서 발원해 점차 중국 북부인 란톈과 베이징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창장 강 싼샤 지역에 고고학자를 대거 투입해 5개 이상의 선사시대 인류 유적을 찾아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32791221
"북한이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발생해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명쾌하다. 70~100만 년 전 검은모루 유적을 남긴 원인이 력포사람과 덕천사람을 거쳐 승리산사람으로 발전하였고 조선 옛유형 사람을 거쳐 현대 한국인으로서의 특징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혈청학적 특징도 제시한다. 사람들의 혈액형과 유전자형들은 인종을 식별하고 각 민족들의 친연관계나 차이들을 확증해주는 중요한 지표로 인정된다. 그런데 북한의 장우진은 한민족의 경우 적혈구혈액형들인 레주스식 혈액형에서 나타나는 항원들의 양성인자 중 D항원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D항원의 양성인자는 아시아 인종에서는 99~99.5퍼센트, 유럽인종에서는 85%, 아프리카 인종에서는 91% 정도인데 한민족은 D항원의 양성자가 99.71%에 달한다. 특히 유전자 조성에 있어서도 한민족과 중국인들은 흑룡강 성의 중국인을 포함하여 완전히 다르다. 이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북한의 주장은 한국인은 우리 조국강토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본토기원의 주민집단으로 파악하면서 구석기시대부터 외부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어 순수하게 혈통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locku?Redirect=Log&logNo=20030607541
헬리코박터균을 통해 본 인류 이동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crXY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주장은 아프리카 기원설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중국과 북한의 주장은 물론 남한의 소로리인의 소로리볍씨 등 상당수가 영국 BBC방송을 통해 공인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헬리코박터균 분석을 통해 본 인류 이동 경로로 보자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아시아, 그것도 한반도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는 게다^^!
"슬기슬기사람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사람 뼈는 보다 많이 출토되었다. 남한의 청원 두루봉 흥수굴에서는 완전한 개체분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라 흥수아이로 이름 붙여진 이 주인공은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래턱뼈가 출토되어 복원한 승리산사람이 있으며, 두개골의 일부와 아래턱뼈가 발견된 만달 사람이 있다. 결국 역포사람과 덕천사람, 상시슬기사람은 우리 나라의 네안데르탈인이며, 흥수아이와 승리산사람, 만달사람은 우리 나라의 크로마뇽인이라고 할 수 있다."
http://php.chol.com/%7Enoza/khistory/01.htm
아프리카 기원설이 주류인 남한에서도 '흥수아이'가 등장했다^^!
둘, 현생 인류가 모두 이브의 자손은 아니다
"1995년과 2001년에는 멍고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가 아프리카의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멍고인은 형태와 문화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지니지만 아프리카의 유전적 계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멍고인의 존재는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비판하고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
http://cheonggye.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857261&contentno=857261
호주가 영연방 국가에서 보듯 빅터 로스차일드 영역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 쇠고기 파동으로 호주 쇠고기가 수입 고기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음을 상기할 때,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호주산 쇠고기가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안심할 수 있는 근거는 또 뭔가^^!
셋, 열처리 기술자 아프리카인?
"약 7만 2천년 전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에 살았던 고대 인류가 세심하게 화로를 조절해 돌 연장과 무기를 연마하고 모양을 다듬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견돼 인류의 열처리 기술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몇 만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연장 가공에 처음으로 불을 사용한 것은 약 2만 5천년 전 유럽에서였던 것으로 많은 학자가 믿어 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812332
농경의 시작은 청동기 시대부터라는 도식이 무너졌다. 이처럼 인류학 역시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에는 돈이 든다. 이 돈은 자본이 대고, 자본은 이 프로젝트 결과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를 현행 권력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본의 증식을 보장받는다. 쉽게 말해 국유본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게다. 이 기사는 언뜻 보면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기사로 보인다. 왜? 과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그간 믿어져온 것들에 대해 과신하지 말라는 숨은 메시지를 읽는다면? 다시 말해, 남한이나 북한에서 네안데르탈인처럼 장례 풍습을 드러낸 것 이상으로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십만 년 전에 그간 알려진 열처리 방식보다 더 뛰어난 고고학적 유물을 발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간 발굴된 것만 따져도 가능성은 충분히 로또 당첨보다 높다^^! 무엇보다 앞으로 아프리카 뉴스가 꽤 많이 등장할 것이다. 아이젠하워 때 스웨덴이. 클린턴 때 아일랜드가 부각되듯이...
넷, 해양인 이미지에 대한 과도한 덧칠은 페니키아 유태인설에 대한 강한 긍정?
아프리카 기원설이 근래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진취적인 해양인 모습을 고대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해서, 근래에는 흥미롭게도 그간의 아프리카 탈출 경로였던 시나이 반도로의 경로를 부정하고, 홍해를 직접 건너가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 중 근래 가장 유명한 이는 스펜서 웰스 Spencer Wells이다.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의 현지 조사책임자이자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다. 1994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스탠포드대학 유전학자 루카 카발리-스포르차 지도하에 연구했다. 이곳에서 그의 연구는 Y염색체를 이용해 인류의 지구 거주 시기 및 과정을 추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후 웰스는 옥스퍼드대학 웰컴트러스트 인간 유전학센터(Wellcome Trust Center for Human Generics)의 연구팀을 지휘했다. 2003년 PBS/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인류의 여행The Journey of Man: A Genetic Odyssey)(2002)을 발표했으며, 같은 제목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책이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로 번역되어 나왔다. 읽어보면, 본문보다 부록 격으로 수록된 각 유전자형 설명이 더 유익함을 이내 눈치를 챌 수 있다. 해서, 문제가 있는 그의 주장 역시 미디어적으로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 지를 그의 저서와 뉴스, 인터넷 글로 비교할 수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3029837
스펜서 웰스와의 인터뷰
http://www.bongwoo.org/zeroboard/view.php?id=pds&no=187
스펜서 웰스가 중앙아시아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일단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언급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하면, 아프리카를 떠난 족속이 중앙아시아에서 머물러 살다 일부는 유럽으로 가고, 다른 일부는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로 건너가는 인종의 분기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곳에서는 얼굴 형태는 유럽인인데, DNA로는 아시아인이거나, 그 반대로 얼굴형태는 아시아인인데 DNA로는 유럽인인 빈도가 높게 등장하고는 한다. 인드라는 예서, 조금 더 나아간다. 스펜서 웰스의 연구는 중앙아시아를 발칸화시키고, 박정희를 암살했던 브레진스키의 전략과 조응되기 때문이다. 헌데, 스펜서 웰스가 한국에 와서 황우석과의 관련에서 늘 뉴스의 주인공이었던 서정선을 만난다? 이것이 우연일까. 크레이그 벤터와 서정선 관계를 생각한다면^^!
http://kr.blog.yahoo.com/blog4usa/4.html
더 나아간다. 인드라가 사실 가장 흥미가 있었던 것은 제노그래픽 프로젝트가 페니키아인에 대한 추적을 한다는 것이다. 스펜서 웰스의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를 보면, 아슈케나지 유전자 분석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아슈케나지와 대별되는 세파라딤 유태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대신 레반트 지역의 페니키아인 동향을 살핀다는 데에 큰 관심을 보인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이 말이다. 왜 유대인 프로이드는 페니키아인이자 카르타고인이며, 오늘날 유태인의 조상인 한니발을 높이 평가했던 것일까^^! 왜 그들의 로마사 읽기는 늘 로마를 불편하게만 여기는 것일까?
http://blog.naver.com/vemplus?Redirect=Log&logNo=70001308031
다섯, 고대 인류는 정말 바다를 건너갔는가?
헌데, 오늘날보다 폭이 적다고 가정해도 16~18킬로 정도가 된다. 6만 년 전의 인간이 배를 만들어 건넌다고 해도 그 배란 그저 통나무 하나에 기대어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해서, 이러한 사건이 드물지만 가끔 일어난다고 볼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집단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허나, 백번 양보하여 이를 인정한다고 하겠다. 또한 말레이 반도에서 뉴기니를 거쳐 호주를 가는 경로도 이해가 된다. 당시에는 육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는 게다.
허나, 아라비아 반도에서 인도로, 호주에서 필리핀, 일본, 북아메리카로 건너가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처럼 완전히 판타지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 인드라 소견이다.
그보다는 태평양 섬으로의 인류 이주 역사처럼 굉장히 최근의 사례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싶다. 모두가 일만 년 이내의 사건들이다. 하면, 왜 이전까지 인류는 일만 년 이전에는 이들 섬과 아메리카 대륙에 가지 못했을까. 아라비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호주로, 호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직행할 정도의 항해력을 갖추었다면 이보다 오랜 시기에 이미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다를 건너갈 정도라면,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결론은 자명하다. 항해력이 없었다. 고로 아라비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호주로, 호주, 필리핀에서 뱃길로 일본으로 갔다는 것은 모두 허구다. 배가 발견된 예도 없다. 단, 일만 년 이내에는 가능한 사건일 수는 있다. 한국에서 이 시기 세계 최초의 배가 발견되었다.
여섯, Y염색체로 고인류 이동 파악이 가능한가?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수렵을 했다손치더라도 대부분은 채집이 중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컸기에 모계중심사회라고 알려져 있다. 모계중심사회에서는 부계의 핏줄을 확인하기 힘들었기에 Y염색체의 지속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서, 5만년 정도 후에 Y염색체의 공통 조상이 드러난다면, 이는 이 시기부터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이행했다는 표지로 간주할 수 있다.
Y염색체로 보는 유전자 분석으로만 일단 보자. 몽골 족속 중에 칭기스칸 족속인 브리야트 족속이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칭기스칸 족속이 황금씨족으로 군림하였기에 가능하다. 또한 근대 청나라 시절을 거치면서 중국 전역에 퍼진 만주족 씨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수메르 문명의 멸망 과정이다. 아카드 야만족에게 멸망당한 수메르 문명의 실태는 어떠했나. 수메르 귀족 여성들은 야만족에게 능욕을 당하면서 생존했다. 반면 수메르 귀족 남성들은 노예화하거나 죽었다.
이 시기 노예화는 종이 끊김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는 이후에도 되풀이되었다. 최근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통해서 조선과 중국, 동남아에 무수한 정자를 퍼뜨렸다. 여성의 씨는 제한되어 있으나, 남성의 씨는 무한하다고 할 만큼 짧은 시간에 퍼뜨릴 수 있다. Y염색체 분석으로 인류 경로를 참고할 수는 있되, 중요 지표로는 역사시대를 고려한다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일곱, 미톤콘드리아 DNA는 믿을만한가?
http://blog.naver.com/ohryan77?Redirect=Log&logNo=60065177010
미토콘드리아 DNA로 본 분석은 믿을만할 것인가. 미토콘드리아로 통해 본 유전자 분석과 Y염색체로 본 유전자 분석, 즉 아담과 이브의 차이가 십만 년 차이가 나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해서, 그만큼 Y 염색체 분석보다 여러모로 안정적일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허나, 여기에도 오류를 고려해야 한다. 해서, 이 오류를 감안해서 유전자 분석이 자칫 근대의 사건을 고대의 사건으로 만드는 데서 착오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간단한 계산만으로 한 명의 여성을 납치하게 되면 100년간 그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여성이 대략 50명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이 여성이 500년 전에 납치되었다면 그 후손의 수는 얼마나 될까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바빌론 유수나 최근 일제의 한인 강제이주나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를 생각해도 집단 강제 이주는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진 사안이다. 해서, 제한된 샘플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인류 이동 경로는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고대 인류의 이동과정을 잠시라도 생각해보자. 이동과정 중에 여성이 아이를 임신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그녀가 집단 내에서 매우 고귀한 신분이 아니면 안 된다. 해서, 그 신분은 모계사회이든, 부계사회이든 오늘날까지 살아남는다면 지배층 유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모계로 전승되는 이 사건은 이 모계 집단이 상대적으로 다른 모계 집단보다 상층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모계로의 전승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간 유전풀이 수메르에 도달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로 몽골 공녀로 고려시대에 수많은 여성이 몽골로 간 것을 생각할 수도 있는 게다. 당대 고려 여성은 기황후를 보더라도 몽골 여성과 동등하게 평가되었다. 당시에 몽골 지배층은 고려인에 대하여 같은 뿌리이되, 방계라는 인식을 했던 듯싶다. 해서, 몽골로 간 수많은 고려 여성은 대부분 몽골 지배층의 첩실이 되었던 게다. 단지 하층 노예였다면 씨를 뿌릴 수 없었겠지만, 상층 첩실이 되었기에 그만큼 모계 전승이 강화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왜구 집단을 고려해야 한다. 왜구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이 왜구무리 덕분에 한때 백제사 다루던 이들이 인도네시아 식민지 경영 담로제 운운할 정도다. 이들 왜구 무리가 한반도를 떠난 것은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 덕분으로 보인다. 허나, 그 이후로도 왜구는 끊임없이 한반도 삼남 해안지대를 약탈해왔다. 해서, 여전히 한반도 삼남 해안 지대에는 이들 왜구 무리 후손이 상존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산물로 보인다. 이들은 오늘날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 개념이 없는 동아시아 해적집단이다. 이들은 중국 남부, 필리핀 등 동남아, 대만, 한국 남부, 일본 등지에서 강간과 약탈을 일삼았다. 그만큼 이들 지역에 자신의 씨를 뿌렸을 것이며, 그만큼 여성들을 납치해서 이 곳 저 곳에 팔아치웠을 것이다. 해서, 도쿄 여자를 필리핀에 팔아먹기도 하고, 조선 남부해안 여성을 대만에 팔아먹기도 했을 것이다.
헌데, 이들이 아무리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문명인 곳에서 온 여성은 해당 지역에서 지배층의 전유물이 되었을 공산이 크다. 가령 사우디 왕가 첩실로 백인 여성이 우대받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이나 일본 성산업에서 러시아 백인 여성이 인기가 있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해서, 오사카나 나가사키, 도쿄에서 팔려온 여성일수록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귀족들은 더 높은 값에 사서 떡을 쳤을 공산이 크다.
분자시계 개념은 받아들일 수 있다.
http://blog.naver.com/song19742003?Redirect=Log&logNo=20064313312
허나, 화석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분자시계만의 고려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란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에서 샘플도 문제지만, 현 거주지만으로 인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화석인 경우 연대측정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 해서, 해당 지역에 인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 한, 차라리 죠몬 토기 사기사건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다.
여덟, 유라시아 대륙 이동이 동서 이동이 아니라 남북 이동?
호모에렉투스는 분명 아열대 체질이다. 헌데, 네안데르탈인이니 북경원인도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이 살던 지역이 한때 아열대지역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발해 지역이나 북한 지역에서 아열대 및 열대 동식물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류 이동에는 세 가지 동인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 기존 장소가 기후 변화로 더 이상 살기가 힘들어졌거나 둘, 이상적인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였거나, 셋, 기존 장소를 다른 집단에게 빼앗기거나이다. 이중 대부분 요인은 첫 번째 기후 변화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탈출한 이유도 사막화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지 않겠는가.
한국과 같은 위도인 나라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터키 등 의외로 따뜻한 나라들이다. 해서, 18,000년~12,000년 전 한반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굉장히 좋은 기후일 가능성이 크다. 헌데,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 화석들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반도 지역은 빙하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십만 년 동안 수시로 아열대 지역화가 되어 고인류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열도에는 인류가 가서 살기에는 바다를 건너가야 하기에 잠시 육지와 연결이 되었던 20,000년에서 18,000년 사이의 빙하기시기에 이주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이주했다고 하더라도 상기한 시기처럼 빙하기 정점 시기여서 해수면이 매우 낮아 육지와 연결이 되었을 때로 추정해야 하므로 그 이전에 이주했다면 밀란코비치 주기를 고려하면 십오만 년 전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기원설 도표에도 보듯 해안선을 따라 동남부로 향했던 남방루트가 갑자기 북방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는 기후 변화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언제 일어났는가. 구석기 시대에도 자주 일어났지만, 아프리카 기원설은 5만년 이내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북상 시기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000년에서 18,000년 사이가 되겠다.
하면,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북방으로 왜 올라갔겠는가? 모험심? 개뿔. 그보다는 기후변화로 살 던 곳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아홉, 인류 멸절설이 신뢰할만한가?
설사 아프리카 기원설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들 아프리카인이 호모 에렉투스를 멸절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위적인 요인이라면 상대적으로 문명인이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시대에서 보면, 수메르인이 아카드인에게 멸망당한 것은 아카드인이 문명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였기에 아카드인이 수메르인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처럼 아프리카인이 전 세계 호모 에렉투스를 멸종시켰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야만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유 불문하고 호모 에렉투스 여자를 만나면 강간하고, 호모 에렉투스 남자를 만나면 죽였을 게다. 반면 호모 에렉투스 남자는 아프리카 호모 사피엔스를 만나면 오, 새로운 친구로군, 하며 속으로 재미있는 친구잖아, 라고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백인을 대했을 것이다. 그 야만스러움에는 이주자 특유의 병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비열한 족속들이 지배해온 역사이기에. 카인의 후예이기에.
해서, 멸절설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일까? 인류가 7만 년 전 기후변화로 멸종 직전에 처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7만 년 전쯤 인류는 극심한 가뭄으로 2000명 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류는 꾸준히 늘어가다 13만5000~9만 년 전 아프리카에 가뭄이 닥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이 무렵 인류는 두 무리로 나뉘어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뭄이 심해지면서 더욱 작은 그룹으로 분산돼 독립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가뭄이 끝나갈 시점에 다시 합쳐졌다는 것이다. 현 아프리카인은 이들 두 그룹이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초기 인류의 주류는 아프리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결국 이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이 노아방주설로 불리는 이유도, 성서의 아담/이브 관계를 역전시키는 까닭도 이것이다.
열, 아프리카기원설은 20세기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인가?
아프리카 기원설은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며 세계화를 주창할 때 주류 가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인류이동 경로를 보면, 제국주의 침략 경로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영국의 아시아/아메리카 침탈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알라스카 점령을 말해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호소력이 없다. 해서, 그 정점은 국유본이 임명한 버럭 오바마인 셈이다.
한단고기, 천부경 모두 시온의정서처럼 20세기 초반에 별안간 등장한 위서이다. 허나, 그 위서가 그만큼 정교하다면 그 의도를 살피는 것이 정당하지 않겠는가. 인드라 입장은 한단고기, 천부경을 진본으로 보는 입장도 아니고, 위서이기에 무조건 무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닌 게다. 한단고기, 천부경은 국제유태자본의 기획 작품으로 간주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스톤헨지 등 거석문화가 있는 만큼, 또한 종교적 이유로 중동에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작업을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듯 이미 1883년에 한국 고인돌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본국으로 넘기는 등 이 방면에서 치밀한 연구를 해왔다. 인드라는 한단고기나 천부경이 일본인이나 친일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수상스럽다. 해서, 인드라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주장해왔다. 한단고기, 천부경은 국제유태자본의 세계정부로 나아가기 위한 기획 작품이다.
하면, 오늘날 국유본은 왜 아프리카 기원설을 내놓고 있는 것인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대로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 함일까? 아니면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일까.
인류가 신종플루, 의료민영화, 교육파괴, 문화 붕괴, 노조멸절 등의 이유로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공공연한 협박이 아닐까? 또한 국유본의 수족들에게 선민의식을 부추기는 의도가 아닐까? 너희가 다 죽어도 이미 우리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이미 노아의 방주에 예약되어 있다는...
정리한다. 흡사 빅터 로스차일드의 마지막 반격 작전을 연상시키듯 거의 정설인양 여겨지던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면 반박하는 고고학적 발굴과 주장들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등장하고 있다. 마치 현 국제정치경제 상황과 잘 어울리는 구도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류 이론화하고, 이에 대해 주로 영국이 한편으로 옹호하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는 시비를 거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중국과 북한에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면 반박하고 나서고, 가끔 영연방국가에서 흥미로운 화석이 출토되고...
가장 끔찍한 상상은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 모두 그 배후에 국유본이 있고, 국유본이 이들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상상을 하는가.
세 가지 우려 때문이다.
하나, 근본주의에 대한 우려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에서 국유본의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지만, 오늘날의 다지역 기원설에서는 과도하리 만큼 근본주의적인 이념을 목격하게 되고는 한다. 이러한 구도는 오늘날 한국 고대사 논쟁에서 안티환빠 대 환빠로 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보자면, 이는 초록불 대 솔본으로 볼 수 있다. 인드라는 초록불에게 주문한다. 서구 입론에 지나치게 맹목적이지 않은가. 그대가 환호하는 박노자나 아프리카 기원설을 이유립의 한빠에 대하듯 비판할 안목은 없는가. 솔본에게 주문한다. 그대의 이론을 굳이 수메르와 결부시키려는 이유는 초록불과 겉은 다르나 속은 같기 때문이 아닌가. 초록불이나 솔본 모두 누군가를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만족하는가? 오늘날 한국 여야 정치인들은, 아니 전 세계 정치인들이 오바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데, 그대들도 비슷한 신세가 아닌가?
이 구도는 언제부터 비롯되었는가. 록펠러가 만든 한국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권인 전두환 정권 때부터이다. 근본주의는 국유본의 좋은 먹잇감이다. 해서, 유적 발굴에는 큰 돈이 드는데, 혹 부시의 후원 하에 국유본이 북한에 다국적 담배공장을 운영했었는데, 이익금 중 일부를 자금화하고 지원해서 유적 개발에 나서도록 고무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쓸 데 없는 걱정까지 뜬다. 이라크 전쟁 등 중동전쟁에서 수도 없이 써먹은 것이 근본주의였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비판적으로 보되,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는 길없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둘, 중국과 남북한, 특히 요서 지역에서 화석이나 유물이 발견되는 것은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전쟁에 대한 우려를 깊게 한다. 국유본은 만주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되, 그 전쟁을 지속시킬 수 있는 명분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서 이라크, 인도만큼이나 만주 역시 그들에게 흥미로운 지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자면 한껏 상대를 치켜세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해서, 포브스지 등에서 마치 이라크 전쟁 전에 후세인을 평가하듯 김정일을 높이 쳐주는 것을 역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런 명단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낫다. 해서, 이 지역에서 근래 집중적인 화석의 발견은 한편으로 반갑지만, 다른 한편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셋, 아프리카 기원설은 인류의 대멸종서부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유전자 분석에 대한 과도한 맹신도 우려되지만, 그보다 더 큰 우려는 인류의 기원을 기후변화로 인류 2,000명까지 축소되었다가 불과 7만 년만에 60억 명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이는 인구 축소 계획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큰 명분을 가져다 줄 우려가 깊은 것이다.
소로인은 세계 최초로 벼농사를 지었는가?
고구려, 백제의 멸망, 발해의 멸망에는 기후변화가 간접 영향력을 끼친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추위와 기근으로 인해 기층민의 굶주리게 되고, 이를 빌미로 권력 교체, 국가 흥망이 일어날 가능성이 고대국가일수록 높다. 물론 발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멸망한 통일신라 역시도 마찬가지가 되겠다. 810, 860, 910년 큰 가뭄이 동아시아에 있었다면, 이로 인해 민란이 극심해졌을 것이며, 한반도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그 이전인 고조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봄직하다. 대체로 만주 지역과 화북 지역은 겨울이 춥고 여름은 더운 냉대대륙성기후이고,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밭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다. 반면 한반도는 런던이나 파리, 로마 등의 연강수량이 600∼700mm인데 비해 960 정도 된다. 해서, 우리의 상식은 한반도와 만주는 늘 냉대대륙성 기후이거나 온대성 기후로만 알고 있다. 헌데, 놀랍게도 이 지역에서 아열대, 혹은 기후에서만 서식하는 원숭이 등의 뼈가 발견된다.
평양 상원의 흑우리 상원강 기슭 우물봉 남쪽 절벽에 위치한 검은모루 동굴 유적에서는 60만년~4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쥐, 토끼류를 비롯해 아열대, 열대지방에 사는 원숭이, 코끼리, 끜쌍코뿔소, 물소 등의 동물상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 한반도가 열대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이후로도 한반도와 만주가 아열대 기후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시기가 있었다.
예서, 인드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18,000 년 전부터 10,000 전 사이의 한반도 기후이다. 왜인가.
소로리 볍씨 때문이다. 소로리 볍씨가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것이 공인을 받았다. 허나, 이는 기존 학설로는 설명이 어려워서 이래저래 비판을 받고 있다. 복잡한 이야기 대신 간단하게 인드라가 말하겠다.
벼란 것이 아열대성 기후에서 재배되는 것인데, 13,000 년 전에서 15,000년 전이면 여전히 빙하기 끝 무렵 시기이고, 한반도는 아한대 기후인데 벼 재배가 가능하겠느냐는 게다.
이에 대해 소로리 볍씨를 옹호하는 측은 아한대성 기후에도 벼가 자란다는 것을 내세워 타협책을 취한다. 즉, 야생 볍씨는 동남아시아, 중국에서 왔지만, 한반도에서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 단계인 순화벼로 인공적 흔적을 남겼다는 게다. 순화벼는 야생 상태의 벼를 식량 등의 목적으로 낟알도입 부분 인공적으로 자른 것을 말한다. 해서,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을 터인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인 게다. 과연 그럴까?
초점은 소로리 볍씨가 아한대에서 견딘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시 한반도 기후가 어떠했느냐가 초점인 게다. 만일 당대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성이었다면?
하나,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솔본 글에서 등장한 위스콘신 고지리학 기후이다. 18,000 년 전과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직후의 8,000년 전 동아시아 기후 분포이다. 이 분포 그래프만 봐도 잘 모르겠다? 이 시기의 해수면 상승을 참고하길 바란다. 18,000 년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빙하기였던 영거 드라이어스기에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지구적이기보다 국지적인 현상이었음을 의미한다.
18,000년 전 한반도는 초원지대와 수목지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인근에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농경의 출발은 무엇인가. 빙하가 극성을 부려 적도에서 상승한 물이 대부분 극지 빙하를 이루자 중위도권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든다. 이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어 인류가 사막 인근 지대로 몰리는 동시에 채집 식물의 품귀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당대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둘, 근래 지구 온난화 현상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에 비해 유난히 온도가 올라간다는 뉴스를 접했을 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당대에도 지구 평균 온도보다 더 많이 올라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게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을 때다.
셋, 18,000년~12,000년 전 사이에서 고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고들 한다. 그 이전에도 물론 넘어갔다. 예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왜 그들은 아메키라 대륙으로 넘어갈 생각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에. 먹을 게 많다? 추운데? 아니다. 당대 시베리아가 빙하권이 아니었다. 날씨가 온화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건, 인도네시아이건 살기가 좋았던 게다. 헌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접어들자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지역 등이 모두 인간이 살기 어려운 사막이나 밀림 지역이 되고만 것이 아닐까. 해서, 이들은 해수면이 급격히 높아지는 18,000 때부터 적도 지역에서 중국남부로, 한반도로 이주한 것이 아닐까. 이들이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곰족의 기원이 아닐까. 오늘날의 공통 조상은 이브이다. 하고, 59,000 년 전 아담의 아웃오브아프리카가 시작된 게다. 가뭄으로 추정되는 기후 변화로 사하라 이남에서 시나이반도, 혹은 홍해 루트로 이동을 했다.
셋, 하면, 왜 이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는가. 마지막 빙하기인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끝난 직후 한반도는 온통 밀림지대가 되어버렸다. 숲에서 초원으로 뛰쳐나온 인류가 살기에는 적합한 지역이 아니었던 게다.
예서, 솔본의 경우 한반도에 살던 이들이 기후변화로 인하여 초원 루트를 타고 수메르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두상만을 조각한 조각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학자들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금지된 신의 문명'의 저자 앤드류 콜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 이 괴상한 형상의 작은 입상들을 보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유토피아로 떠 올렸던 나의 자르모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 얇은 입술에 뾰족한 턱, 가늘고 긴 얼굴에 높은 광대뼈.. 째진 타원형의 눈을 한 대머리.." 자르모인들은 왜 이런 사람 같지 않은 얼굴을 만든 것일까?" 앤드류콜린스가 그의 책에 게재한 자르모의 작은 두상 조각상의 그림들은 그러나 제 눈에는 별거 아니었습니다. 바로 편두를 한 몽골리안 얼굴이었으니까요.."
http://blog.daum.net/coreehistory/10507611
하면, 팔천년 전에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배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일부는 배를 타고 떠났다는 말인가. 어디로?
헌데, 당대 중국에서 보면, 흑인 유골이 등장한다. 아직 황인종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도 황석리 유적지 등을 보면 서양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당시에도 여전히 오늘날 인종처럼 확연한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늘날 각 인종간 혼혈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골고루 지녔던 것이 당대 인류였던 게다.
해서, 수메르인의 얼굴이 설사 몽골리안 얼굴일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게다. 그 시대에 한반도에서는 정반대로 영국인과 유전자 배열이 흡사한 유골이 발견되었다면 말이다. 유전자 배열로는 서양인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http://blog.naver.com/liskangel?Redirect=Log&logNo=14003186248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8&aid=0000010546&
정리한다. 인드라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소로시대 소로인이다. 수메르인이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이라크인이겠느냐. 좀 똑독하게 굴자. 사대주의도 아니고, 국수주의도 아닌 길을 가야 한다. 길없는 길을 가야 한다. 이십여년 전부터 꿈꾸던 길. 허나, 아직도 머나먼 길. 허나, 국유본이 파놓은 함정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야만 하는 길.
해서, 소로인이다. 인드라는 한단고기이니, 천부경이니 이런 것 모두를 위서로 본다. 다만, 위서라 해서 무시하지 않는다. 위서로 판단하되, 내용은 시온의정서처럼 파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시온의정서만 생각하면 된다. 러시아 황제가 유태인을 잡고자 시온의정서와 같은 엄청난 떡밥을 던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인 게다. 마찬가지인 게다. 단지 친일을 위해서, 대동아공영권을 위해서 한단고기와 천부경이 필요했겠느냐는 게다. 이는 일본 일왕을 넘어서는 기획인 게다. 이런 기획을 할 이는 전세계에 국유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인드라가 추정하는 바는, 국유본이 일본 왕실 도서관 자료 등 한중일러시아 자료들을 모두 섭렵했다. 해서, 현재 중국에서는 동북공정, 한반도에서는 만주회복, 일본에서는 역사왜곡을 시켜서 지역 불안을 야기시키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 인드라 시각이다.
소로인이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벼를 재배했든, 최초의 농사를 지었든 다른 지역에서 시도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은 당대 환경조건이 절대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조건은 일반적이다. 인근에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인구가 몰렸고, 그만큼 채집 식물 양이 줄어들어 진화 압력이 가중되어 어떤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짙었다는 점이다.
소로인은 농경화에 성공했다. 허나, 지속적일 수는 없었다. 기후는 더욱 따뜻해졌고, 그런 이유로 한편으로 채집하며 잔류하는 부류와 다른 한편으로 농경지가 축소됨에 따라 이동을 하는 부류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고, 이동을 하는 부류는 5세기 훈족 이동처럼 최적의 장소를 찾아 이동했고, 그것이 이라크 초생달 지역일 수 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무엇인가. 농사는 더 이상 어려워졌다. 사시사철 얻어져야 당대 농사가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면, 여름 한 때만 가능하다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없다. 이때 한반도 황해평원이 황해로 변모했고, 이에 따라 소로인은 해안으로 접근하여 조개 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갔을 게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인드라는 키조개, 가리비, 굴, 꽃게 등을 구워서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하여, 한반도에서는 영거 드라이어스기 이후로 한반도에서 한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가 기원전 이천 년대부터 고고학적 유물이 등장하는 것은 지구적으로 당대 온난화 뒤에 한랭화가 잠시 불어 닥친 까닭에 가뭄이 든 것도 무관하지 않겠다. 이는 수메르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 오래 전과 마찬가지로 곤드와나 초대륙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진 야생볍씨를 재배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던 게다.
노아 대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인드라가 성서에서 흥미를 느끼는 대목은 신약이 아니라 구약이다. 또한 구약 중에서도 창세기이며, 노아의 대홍수 때까지다. 이후 아브라함이 어쩌느니 하는 것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인지 인드라는 유독 세 가지에 관심이 끌렸다. 하나는 당대의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이었다. 이는 슈메르 왕도 그렇고, 한단고기의 단군들도 굉장히 오래 산다. 현 인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 불가인 게다. 또 다른 하나는 거인족이다. 과연 거인족이 실재하였는가이다. 한 2미터 정도야 지금도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3미터는 물론 10미터 넘는 거인족이 있었다는 게다.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전 지구적인 홍수이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황당해서 웃고 넘어갔다. 하고, 이십대 이후에는 딴에는 문학, 문예 이론 좀 공부했다고 상징체계로 잠시 접근해왔다. 그러다가 20세기 말엽 하이텔에서 반문화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그때 회원간 진화론자와 창조과학론자끼리 날밤을 까며 토론을 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골수 진화론자여야 좌파 행세한다고 여겨 잘 모르고 폼 잡고 있었지만, 워낙 모르는 내용이 많아 진지하게 처음부터 공부하는 자세로 하다 보니 어언 십여년이 흘렀다. 고대사 사이트, 외계인 사이트, 음모론 사이트, 창조과학 사이트, 각종 사이비과학 비판 사이트들을 섭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열린 마음'이 되었다. 하면, 지금은 어떤 태도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 단지 지금 말하는 것은 잠정적인 것이다. 설사 인드라가 진리를 언급했다 할 지라도 그것은 진리가 잠시 인드라에게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전제하고, 홍수설화에 대해 말해 본다.
전 세계적으로 홍수설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 시기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지구를 뒤덮는 홍수여야 성서에서 말하는 대홍수라고 하였을 때 기록만 보면 기원전 2,000년~2,300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홍수가 기원전 2400년에서 기원전 4000년 사이쯤에 인류의 멸망을 가지고 올 대홍수설이 각 지역마다 거의 공통된 시기에 일어나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단군조선 = 치수 기록으로 남아있음 B.C 2200년
- 중국 = 치수 기록 단군과 동일
- 그리스 = 데우칼리온의 신화 B.C 2000~2300년으로 추정
- 노아의 홍수 = B.C 2000~2300년
- 이미르 홍수 = B.C 1800년대로 추정
- 묘족 뇌공 설화 = B.C 2000년 이전
- 인도 마누 신화 = B.C 2200년 이전
- 수메르 홍수 신화 = B.C 2300년경"
http://kin.naver.com/knowhow/entry.php?d1id=5&dir_id=5&docid=522522&qb=7ZmN7IiY7ISk7ZmUIOyLnOq4sA==&enc=utf8§ion=kin&rank=1&sort=0&spq=0&pid=fX3SRB331ylssbnXfPNssv--026161&sid=Su3SNXOi7UoAAFzqH0Y
허나, 이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가 없다. 각 지역에서 지역적인 대홍수가 있었다고 추정이 되지만,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볼 여지는 희박한 편이다.
"두 교수는 20여년에 걸친 각종 문헌 연구와 현지 탐사를 통해 1만5000년 전 빙하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7500년 전에 이르러 지중해로부터 흑해 남서쪽 보스포루스해협 너머로 나이아가라폭포의 200배에 달하는 속도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흑강(江)'이 '흑해(海)'가 됐다고 주장했다."
http://www.mission1691.com/zbxe/b4/3497
이런 와중에 흑해 대홍수설은 재미있는 가설이다. 빙하기 시절 지중해는 호수였다가 빙하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대서양 바닷물이 지중해로 유입되었다. 다만, 보스포루스해협 강바닥이 높아서 흑해로까지 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범람하면서 대홍수를 이뤘다는 게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 이전에도 문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따지자면, 이 지역에서 농경의 흔적, 가축의 흔적 같은 것은 만 년 전까지 소급해야 하지 않나 싶다. 허나, 보다 뚜렷한 자취를 남긴 것은 하라프와 하수나 문명이다. 이들 문명이 주목을 받는 것은 흑해 홍수와의 관련 여부 때문이다. 이들 문명 흥망에 대홍수가 관여하지 않았는가 여부이다. 게다가 팔천년 전에 짧은 기간이지만 이백여 년간 한파와 가뭄이 이어졌다는 대목도 참고할 수 있겠다. 노아 대홍수 직전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이어졌다고 했다.
하라프문명과 하수나 문명이다.
http://blog.naver.com/koviet2?Redirect=Log&logNo=70069305908
이 문명은 우바이드 문명으로 이어진다.
http://ko.wikipedia.org/wiki/%EC%9A%B0%EB%B0%94%EC%9D%B4%EB%93%9C
허나, 성서론자들은 흑해홍수가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메소포타미아에 국한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구적인 사건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에는 40일간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는데, 흑해홍수는 단지 둑이 터져 홍수가 난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 지역에 홍수층이 있어야 한다.
헌데, 영국인 올리가 발견한 우바이드 홍수층은 대체로 기원전 사천년에서 삼천년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허나, 이 홍수층도 성서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성서론자에 의하면, 노아 대홍수 시기는 기원전 2304년 전이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는 언제 있었을까
http://blog.naver.com/larminaflow?Redirect=Log&logNo=110022741494
만일 올리 홍수층이 노아 홍수층이라면 어떠한가. 일단 이 시기도 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한파와 가뭄이 천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서, 노아 대홍수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이라고 본다면 다른 증거가 등장하기 전까지 현재 유력한 시기는 기원전 3천 년 전이라 잠정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앙코르와트 문명은 왜 몰락하였는가?
동남아 지역은 약 만 년 전에 이미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역사시대를 밟다가 앙코르와트 왕조(9세기~1432)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찬란한 번영기를 구가한다. 앙코르와트 왕조는 당시 동남아 역사나 앙코르와트 궁전에 나타난 초기 힌두교 색채로 볼 때,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인이거나 토착민과 결합한 인도 혼혈인이었다. 전성기는 12세기이고, 이 시기 앙코르와트 궁전이 지어진다. 도시 인구 규모가 약 백만 명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규모는 당시 세계 최대 수준이다. 하여,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반한 한국인 22만 명이 매년 찾는다고 한다. 대형서점에 가면 앙코르와트 관련 서적들이 꽤 발견된다. 하면, 의문이 남는 게다. 이토록 잘 만든 앙코르와트 궁전이 왜 수백 년간 밀림 속에서 버림받아야 했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가 멸망한다고 해서 그 도읍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해서, 여러 가설들이 나왔다.
첫째, 타이 지역의 아유타야족과의 전쟁설이다. 허나, 아유타야족이 앙코르와트를 수도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물론 전쟁사에서 도시를 완전히 쑥밭으로 만든 사례가 간혹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당대 세계 최대 규모의 대도시라는 점에서 이를 포기한 것은 전쟁설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둘째, 환경 파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리하게 인근 산간을 개간한 탓이라는 게다. 이스트 섬 모아이의 기원과 이스트 섬 역사에 관한 가설을 제공하는 영화 '라파 누이'를 떠올릴 수 있겠다. 제래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란 저서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허나, 환경 파괴라는 개념은 근대화, 산업화를 전제한 개념이다. 화전민 농사도 아닌 마당에 중세시대에 환경 운운하는 것은 나 바보요, 하는 것 다름 아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에서는 더더욱 인간사회는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는 더더욱 연관되어 있다. 해서, 부분적으로 보면 파괴적인 현상일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균형적인 사례가 수도 없다. 환원론적 시각도 경계해야 하지만, 요소론적 시각도 요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해서, 기존의 가설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강한 유력한 가설이 근래 등장했다. 가뭄 탓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나이테연구소 브렌단 버클리 박사 연구팀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측백나무 36그루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1415~1439년 극심한 가뭄이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공교롭게 왕조가 몰락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연구팀은 1417년 가뭄이 가장 극심했으며 18세기 중반 동남아시아에 또 한 차례 가뭄이 들어 30년 이상 지속됐다는 점도 밝혀냈다. 이들 시기는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태국과 베트남 왕조가 쇠퇴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두 가지로 귀결된다. 하나는 아무리 관계수로를 잘 만들었을지라도 상상 이상의 가뭄이 찾아온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뭄에 대한 대책에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것. 두 가지 가능성에서 전자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되고 극심한 가뭄은 도시 기능을 마비시켰을 것이며, 도시인들은 뿔뿔이 흩어졌을 게다. 해서, 아유타야군 역시 앙코르와트를 정복하고도 그대로 물러났을 게다. 만일 후자라면 아유타야군이 앙코르와트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후 앙코르와트는 계속되는 가뭄의 지속과 가뭄으로 망한 저주받은 도시라는 것과 이전 왕조의 수도였다는 세 가지 이유로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게다. 해서, 비무장지대처럼 사람들이 살지 않아 차츰 밀림지역이 되었고, 수백 년이 흐르자 극소수 지역민에게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문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십자군전쟁이 일어난 진짜 배경은?
동로마제국 황제가 당대 셀주크투르크에게 대패했다. 직후 황제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보호 요청을 카톨릭 교회에 호소하자 카톨릭 교회가 기독교적 대의라는 명분하에 십자군전쟁이 결행된 것이다. 허나,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정치경제적인 배경이 있었다.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인구가 늘었다. 교황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동로마까지 장악하여 명실상부하게 기독교 세계의 수장이 되려는 당대 교회의 야심이 있었다. 장자상속권 탓에 미지의 영토를 장악하려는 유럽 봉건귀족과 기사들의 토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중세유럽은 세 가지 공동체가 공존했다. 하나, 종교적 공동체다. 교황과 수도승의 세상이다. 둘, 정치적 공동체다. 왕과 영주, 기사들의 세상이다. 셋, 경제적 공동체다. 교황과 왕, 지영영주는 장원을 통해 농노를 지배했다. 이 세 가지에서 공통적인 피지배층은 농노이며, 권력층은 교회권력과 정치권력, 그리고 지방영주 권력으로 분리되어 중세유럽은 이 세 권력이 서로 대립, 갈등하는 시대였다. 해서, 상기한 설명은 이들 각각의 권력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다.
이것이 대체적인 십자군 전쟁 배경에 대한 정설 요약이다. 허나, 과연 그럴까.
첫째, 경제적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설명은 농업 생산력이 월등하게 높아져서 인구가 증가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허나, 여기에는 의문이 있는 게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농업 생산력이 늘어난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간명한 답변은 기후 변화이다. 유럽에서는 9세기~13세기까지 온화한 날씨가 계속돼 평균기온이 3~4도 정도 올라가 농경을 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났다. 사람들의 영양상태도 좋아졌다. 키도 근대와 달리 현대의 인간처럼 키가 커졌다고 한다. 또한, 약탈경제에 의존하던 바이킹이 유목생활을 버리고 정착한 것도 농사짓는 것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해서, 이 시기 바이킹이 아메리카 대륙까지 찾아가고, 그린란드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게다. 물론 영국도 정복하고 말이다^^!
둘째, 정치적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다. 대체로 10세기에 이르면, 프랑크 왕국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로 분열된다. 이뿐인가. 아니다. 덴마크, 폴란드 등 유럽 각 지역에서 태양 흑점처럼 독립왕국이 출현한다. 왜인가. 먹고 살만 하기 때문이다. 기후가 온화하니, 경작지가 늘고, 농업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면, 오늘날 정당도 하나면 될 것을 두 개, 세 개로 늘이는 것처럼 국가가 출현할 수밖에 없겠다. 이 부분은 오늘날 쉽게 이해되는 항목이라 더 이상 언급을 생략한다.
셋째, 종교적 공동체에 관한 논리다. 십자군전쟁 때문에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실추했다고 설명을 한다. 아니다. 교회와 교황의 권위는 십자군전쟁 이전부터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미 추락하는 교황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 십자군전쟁인 셈이다. 왜인가.
정리하자. 500년에서 700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큰 기후 재앙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660년 유럽이 유난히 추웠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서는 당연 종교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성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혹한의 추위를 견뎌낼 재간이 있겠는가. 해서, 이때는 숙명적 사고가 보탬이 된다. 인간이 견디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시련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한시적으로 숙명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이를 남방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외부의 어떠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혼돈의 세기, 21세기에 들어와서 서구와 한국에서 남방불교 열풍이 부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게다.
반면 10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조가 되던 시기이다. 신은 인간 편이었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신이 용서하는 시기였다. 해서, 감히 십자군전쟁이라는 것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게다. 교회와 교황은 다급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누가 신을 떠올리겠는가. 신이란 우상숭배하는 이교도에게는 불벼락을 내리지만, 신을 경배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이득을 주지 않는다, 교황만 빼고. 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생활 여건으로 배부른 상황에서 권력을 지속시키자니 무리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왝더독 효과인 셈이다. 외부의 이슬람에게로 적대를 하였던 게다.
향후 세계는 지난 세기와 달리 기후 온난한 시대에 접어들 확률이 크다. 이런 시대라면 그간의 종교, 정치, 경제가 작동하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과 달리 실제적으로 세계는 보다 풍족한 세계로 이행중이다. 헌데, 국유본이 밀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풍족한 세계를 억누르고 있다. 해서, 이런 시기는 새로운 혁명을 부른다.
생산력이 증가하면 생산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유본은 생산체제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으니까. 해서, 오늘날 한국에서도 스탠 원숭이 무리가 날뛰는 게다. 허나, 세계 주역이 된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스탠 날뛰는 원숭이 무리를 척결하면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변곡점을 만들 수 있다. 인생에 기회가 삼세번이 온다고 했다. 지금이 그 기회다. 스탠 원숭이 무리를 무찔러야 한다.
기후결정론은 아니다. 허나, 기후는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
과학계에서는 한편으로 자신들 분야에 관심이 생긴다는 데에 긍정적이나, 정치적인 이득이나 영화 흥행을 위해 어떤 현상을 침소봉대하는 데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프레드 싱거의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장 폴 크루아제의 '사막에 펭귄이? 허풍도 심하시네'와 같은 책이 등장할 정도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와 같은 기후사학 연구는 한국 사학계에 은밀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영국 아서왕의 카멜롯성을 어느 날 갑자기 독일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5일 '고대왕국 고구려를 둘러싼 말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구려 역사 소유권을 놓고 중국과 남북한 사이에 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했다.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00626731
과연 고조선 문명이란 존재하는가 여부가 인드라 관심사이다. 이를 기후사적으로 필요조건을 고려한다.
류제헌의 '중국 역사 지리'에 의하면, 5,000여 년 동안의 중국 기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4개의 온난기와 4개의 한랭기로 나눌 수 있다.
제 1차 온난기 : B.C. 3000년 ~ B.C. 1000년
제 1차 한랭기 : B.C. 1000년 ~ B.C. 770년
제 2차 온난기 : B.C. 770년 ~ 기원 초
제 2차 한랭기 : 기원 초~ A.D. 600년
제 3차 온난기 : A.D. 600년 ~ 1000년
제 3차 한랭기 : 1000년 ~ 1200년
제 4차 온난기 : 1200년 ~ 1300년
제 4차 한랭기 : 1300년 ~ 1800년
제 2차 한랭기는 삼국시대이다. 제 3차 온난기는 수, 당, 북송 시대이다. 제 3차 한랭기는 북송부터 남송시대이다. 제 4차 온난기는 남송부터 원 시대이다. 4차 한랭기는 명, 청 시대이다.
해서, 다음과 같은 주장까지 등장한다.
"서주(西周)의 패망, 전한 왕조를 대신한 왕망의 신(新) 왕조 개창, 후한말 황건적 봉기, 위ㆍ촉ㆍ오 삼국의 분립, 진대(晉代) 5호(五胡)의 난, 송대 거란과 여진의 변방 침략, 원에 의한 금과 송의 멸망, 원조의 패망, 명대 백련교도의 난, 명말 장헌충ㆍ이자성의 난, 명의 전복, 청말 태평천국의 난 등이 모두 기후 변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36795&
만일 중국의 사정이 동일하게 만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면, 어떤 결론을 추론할 수 있는가.
중국에서 큰 강이라 하면 장강, 황하, 흑룡강, 요하, 주강, 화이허강이다. 예서, 이전에 말한 대로 인류가 흩어져서 채집,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가 모여서 본격적인 농경문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건조화 기후가 필요하고, 이는 역설적으로 사막을 전제해야 한다고 했다. 황하에서 문명이 발생했다. 하면, 요하 주변도 문명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요하문명, 홍산문화이다. 주변에 고비사막이 있었으므로. 해서, 당대 북중국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에 사막화가 진행되자 사막을 떠난 보다 많은 무리들이 황하 근처로 가서 황하 문명을 건설했다. 또한, 사막을 떠난 이들 중 일부 무리가 요하 인근으로 가서 고조선 문명을 탄생시켰다. 어느 문명이 선행하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중국에서 큰 강과 큰 사막이 인근에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인드라가 황해문명에 주목하는 것은 황해 주변이 지중해나 카스피해와 같은 역할을 지리적으로 했을 것이라는 추론 때문이다. 같은 바다라도 동해보다는 서해가 따뜻하다. 한류의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에서 문명이 발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인드라가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명에 주목하여 황해문명에 주목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기후적으로 보자면, 만주에는 황하문명과 다른 또 다른 문명이 탄생할 필요충분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만주 요하 지역과 같은 천혜의 기후 풍토를 지닌 지역이 흔치 않다. 게다가 고고학적 유물이 출토된다면 말할 나위가 없다.
http://blog.naver.com/casahoo?Redirect=Log&logNo=20001559243
인드라는 기후결정론에 비판적이다. 한, 송, 명, 청에서 보듯 중국에서 장수한 국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이들은 당대 수준 높은 고등 종교를 받아들여 제국의 이념으로 삼았다. 해서, 고대 도시국가들이나 북방 유목민 국가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오래도록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뭄 등의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역할을 해낸 셈이다. 일반적으로 가혹한 운명이 인간에게 닥치면 인간은 숙명적이게 된다. 모진 시련기에서 숙명적인 태도가 오히려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지난날 한국 여성들이 모진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동인이 실은 숙명적인 태도 덕분이다. 그렇다고 하여 숙명론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마다 숙명론과 자유의지론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이치가 된다는 것일 뿐이다. 지난 20세기에는 여성은 숙명론 대신 자유의지론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것이 보다 삶을 풍족하게 한다고 여겼기에. 허나, 21세기 신자유주의 세상에 접어들면서 다시 숙명론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서구나 한국이나 이제 전업주부는 상류층을 의미하게 되었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위대한 시기인 게다. 인간의 행복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풍요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행복지수 발표하면 최빈국인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행복도가 높게 나오는 반면, 유럽이나 미국, 한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같은 데서 오히려 낮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는 고등 종교나 사상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지구'에서 등장하는 코끼리떼의 오아시스 찾기에서 볼 수 있는 인류의 여정처럼 황무지가 된 고향을 떠나 온갖 생고생을 한 끝에 새로운 땅에서 정착하여 성공한다는 세계 공통의 영원한 오딧세이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면 고등종교나 사상으로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종족의 흥망성쇠에는 기후변동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후가 쌀쌀해지거나 건조해지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종족이 로마나 중국으로 약탈전쟁을 하기 마련이다. 다만, 기후 변화로 축소된 한정된 자원 탓에 종족 내부에서 서로 다툼이 있어 세력이 크게 위축이 되고, 굶주림 탓에 사기가 매우 저하된다. 병사들의 일시적인 추위와 굶주림 등은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 허나, 이는 왜구나 산적 무리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잘 조직된 정예병 앞에서는 오합지졸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후가 온난해질 때이다. 중세온난기로 접어들어 기후가 유난히 온난해지면 초원도 푸르고, 말도 살찌고, 인구도 증가한다. 잉여물자가 있으니 부족간 전쟁할 일이 드물다. 또한 주변국과도 화친조약을 맺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군사대국이 되는 게다. 중세온난기로 날씨가 매우 더워지자, 바이킹이 그린란드나 영국,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한다. 칭기스칸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여 배와 말로 근거리 이동을 넘어서서 원거리 이동을 감행하여 세력 확장에 나선다. 하면, 왜 칭기스칸은 백전백승이었는데 유럽을 왜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는가. 기후 탓이다. 다시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중세온난기가 끝나갔기 때문이다. 바이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날씨가 추워지자 그린란드와 같은 데서 철수하고, 영국, 중부유럽, 중앙아시아, 중국 등 상대적으로 따뜻한 나라에 정착한 것이다. 해서, 그 이후로 다시 강성할 수가 없었던 게다. 1800년까지 소빙하기였기에.
허나, 상기한 설명은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청나라의 등장으로 다르게 기술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상황을 보자. 17세기. 한반도에서는 임진왜란 직후이다. 이 시기부터 백년간 동아시아에 굉장한 추위가 엄습했다.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 모두 마찬가지인 게다. 세계 공통적인 기후변화가 닥치더라도 지역별로는 얼마든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앙코르와트 제국이 무너질 때 마침 아유타야가 기회를 잡고 있었듯이 누르하치가 준비를 한 것이다. 중국과 한반도, 일본이 모두 추위와 기근으로 몸살을 앓던 때인데 만주라고 다를 것인가. 이때 흥미로운 것은 새로이 강국으로 등장하는 민족들은 거의 예외가 없이 과거에는 강국의 역사가 없는 민족이란 점이다. 왜 이때 몽골로 후퇴했던 몽골이 재차 중국으로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결국 이는 자연과 일정 거리가 있는 인간 역사의 문제인 게다. 한번 세계제국을 건설한 민족이 무너지면 다시 세계제국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상에 오른 연예인이 한번 추락하면 다시 정상에 오르기가 굉장히 힘든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엄청난 역사적 성공은 민족에게 각인된다. 허나, 전성기에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지만, 멸망한 이후에는 오히려 병폐가 된다. 새로운 도전 과제 앞에서 늘 옛날에 성공했던 방식만을 고려할 것이다. 칭기스칸의 부흥이라고 해봐야 칭기스칸 가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개천에서 용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기에 민족이 인내하고, 합심하자면 민족 구성원에게 엄청난 자기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과연 옛 영광에 도취된 자들이 이런 대의에 동참할 수 있을까. 없다. 한번 지배계급 맛에 들린 자는 절대로 공동체주의자가 될 수 없다. 영화 '용의 부활'의 조조처럼 자신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기에.
이 대목에서 정리하면, 근대 이후 유태인이 이름을 떨친 것은 간단하다. 그들의 경전과 달리 유태역사에서 유태인들이 구질구질했기 때문이다. 어찌도 이리 한심한가 싶을 정도로 살았기에 오늘날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게다. 누구보다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온 계층, 누구보다 가장 업신여기며
살아왔던 민족에게서 미래가 열린다. 허나, 그들이 태생적으로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셋째, 농업생산력의 발전이다. 이에 대해 인드라가 내재적발전론자로 전향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니다. 인드라는 철저한 외부 주입론자이다. 내재적발전론은 자칫 파시즘론으로 빠질 수 있는 환타지일 뿐이다. 물론 식민지근대화론 역시도 유사하다. 20대에 내재적발전론자였던 이가 나이가 먹으면 식민지근대화론자가 된다는 차이일 뿐이다. 국유본론의 경제사적 관점에서는 내재적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유럽중심주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전제하고, 조선의 농업생산력을 보자. 조선 기록에 따르면, 농지 1결에 쌀 300두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1 정보당 5톤이 생산되는데 같은 수준인 게다. 1결은 1정보이고, 삼천 평이고, 300두는 5톤 정도 되기 때문이다. 해서, 과거나 오늘날이나 농업생산력이 높은 수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농지 차이인 게다. 농지라고 다 같은 농지가 아니다. 해서, 차액지대란 개념이 나오기도 했다. 영국 인클로저 운동이 아무 데서나 했겠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했다. 귀금속 함량이 높은 화폐는 장롱에 넣어두고, 함량 미달의 화폐만 거래하는 것이다. 높은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는 옥토를 아무리 돈이 된다 해서 목장으로 바꿀 일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 수확량이 작은 농지를 목장으로 바꾸었겠다.
이는 오늘날 출생률과 영아사망률을 참고하면 가장 쉽다. 산모가 건강하면 아이를 쑥쑥 낳는다. 하고, 그 아이는 대부분 건강하게 자란다. 그처럼 논밭 토질이 비옥하면 농작물 작황이 매우 좋다. 허나, 산모가 허약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더라도 백일 안, 혹은 돌이 채 지나지 않아 사망할 확률이 높다. 헌데, 현대의학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과거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혹은 돌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아이들을 살려내는 게다. 생명을 구한다는 점에서 고귀한 일이 분명하다. 다만, 모든 일에는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처럼 농업생산력의 발전이란 다른 말로 토지 등급에 관계없이 평균 수확량을 높이는 게다. 이는 토지 등급이 낮은 데서 수확량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화학비료 등을 써서 생산하게 만드는 게다.
그처럼 인간은 기후 변화에 맞서 근대로 향할수록 같은 땅에서 더 많은 수확량이 나오도록 갖은 아이디어를 다 짜내야 했던 게다.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할 터. 하지만 당장의 소빙하기, 가뭄, 기근에 대응할 수밖에 없던 게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경제활동이란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가 자급자족 농업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대응력에서 인간이 진화하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요, 영국이다. 17세기~18세기는 소빙하기 시절이다. 과장되게 말해 북유럽 무역이 모두 멈출 정도였고, 폴란드 운하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이런 시기에 유럽에서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태리가 아닌 네덜란드와 영국이 강한 힘을 발휘한 것은 이전의 강대국들과 차이를 보인다 할 수 있다. 바이킹이 활약하던 시기처럼 각 제국들은 모두들 나름대로 기후 덕을 보았던 게다. 반면 네덜란드와 영국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돌렸던 셈이다. 물론 영국이 유럽의 승자가 되었던 배경은 국유본의 중심지라는 것이 일 순위다. 또한 영국이 대륙이 아니라 섬이어서 치열했던 유럽 전쟁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순위다. 아무리 넓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아르마다와 같은 무적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자국 육지에서 보병 전쟁 한 번하면 프랑스건, 이태리이건, 스페인이건, 독일이건 기진맥진한 것이 자명했기에.
헌데, 그 진화가 당장의 병에는 특효약이지만, 약이란 것이 다른 한 편 엉뚱한 데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라는 게다. 역사는 점차 기후, 다른 말로 지리적인 여건에서 벗어나는 듯싶다. 인드라 역시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들은 날씨에 일희일비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지구온난화에 난리부르스가 아닌가. 이것을 보면, 인간이 그간 자신의 성취에 오만했던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힘이 100이라면 인간의 힘이 그간 자연의 힘과 견주기 위해 용을 쓴 결과 100처럼 보여 이제 맞먹는다고 어깨에 힘 좀 모양새다. 허나, 게임으로 치면 자신의 생명력을 내주는 대신 버프를 시킨 꼴이라고나 할까. 시간이 흐르니 버프 효과는 효과대로 없어지고, 생명력을 내준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눈앞의 욕망에만 몰두하다 보니 긴 안목을 등한시한 결과인 게다.
하여, 인드라는 이 세 가지 이유를 근거로 환경결정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경결정주의는 또 다른 인간의 오만이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해서, 인간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친환경적인 대안을 찾아볼 때인 게다. 오늘날 환경결정론자들은 인간 멸절 계획에 내면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보야 한다.
지구온난화는 축복이다
인드라가 군복무를 강원도에서 했기에 강원 산골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름인 듯싶으면 겨울이고, 겨울인 듯싶으면 여름인 것이 군 생활이다. 특히 힘들었던 것이 졸병 시절 겨울에 맞이하는 야간경계근무이다. 취침 개시시간이거나 기상시간이면 그나마 나은데 한참 자고 있을 시간에 근무를 나간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때가 가장 추운 시간인데 거기다가 가장 보기 싫은 고참과 근무하면서 얼차려를 받는다면 탈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뿐이랴. 군에 가기 전에 눈이 내리면 늘 낭만적인 생각만 했다. 허나, 군에 가서는 눈이 내리면 괜히 싫어졌던 때가 있었다. 해서, 기온이 좀 더 오른다면 한결 군 생활하기 편할 것이라는 게 인드라 생각이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근래 12도에서 14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기상청에 의하면, 백 년간 한국 연평균 기온이 1.7도 올랐고, 서울은 3도가 올랐다고 한다. 하면, 이때 한국 연평균 기온을 결정짓는 것은 여름 평균 기온일까. 겨울 평균 기온일까. 겨울 평균 기온이다. 한국과 같은 위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나. 일본, 중국,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투르크메니스탄, 시리아, 터키, 아르메니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미국 등이 있다. 몇 나라만 떠올려도 굉장히 더운 나라이고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살기 좋은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헌데, 한국의 평균기온은 유럽 지중해 국가들의 평균기온보다 낮다. 왜인가. 겨울 평균 기온 때문이다. 여름에는 한국의 평균기온이 유럽 지중해 국가보다 오히려 더 높다. 허나, 겨울에는 비교할 바 없이 춥다.
하면, 왜 추운가. 첫째는 시베리아 한랭기단 때문이다. 북서계절풍이 대륙에서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둘째는 위도가 같더라도 고도가 높으면 서늘하다. 알프스 산맥이나 히말라야 산맥에 만년설이 있는 이유와 같다. 여름에도 강원도 태백 등 지역이 서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지리적 여건이다. 산맥이 북서계절풍을 막아준다면 겨울에도 온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강릉과 같은 영동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남부유럽과 태평양에 면한 일본 지역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게다. 또한 산맥이 없어도 해안지대라면 겨울에도 온화하다. 바다에 면한 지역은 여름에는 덜 덥고, 겨울에는 덜 춥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강우량도 많은 양을 기록하여 습윤 지역에 속하는 등 기후적으로 축복받은 지역이다. 지구상에 한국과 같은 날씨가 있는 지역이 매우 드물다. 하고,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들은 한국과 같은 기후대에 속하고 있다. 가령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했던 프랑스군이 동남아시아에 비한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기후인가 했다고 한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루어진 유럽의 아메리카 침략에서 많은 이들이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대목이 있다. 왜 처음 아메리카에 도착한 유럽인들이 북미보다 중남미에 열을 올렸는가 하는 대목이다. 답은 간단하다. 기후 때문이다. 당대는 소빙하기였다. 해서, 북유럽에 극한의 한파가 몰아닥치고, 폴란드 운하가 꽁꽁 얼던 시기이다. 지금이야 알래스카나 시베리아가 중요하지만, 당대에는 혹한이 불어 닥쳐서 거의 쓸모가 없던 땅이었던 게다. 상상이 안 되는가. 하면, 영화 '지구'를 DVD로 빌려다가 보시라. 인간이 사는 지역은 매우 매우 제한되어 있다.
해서, 지구온난화가 되어 한반도 전체가 따뜻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유본 언론은 부정적인 것만을 말한다. 해서, 인드라는 모든 사태를 직시하고자 한다면 긍정적인 이해를 지녀야 한다는 소신이 있기도 하여 긍정적 마인드로 말해보고자 하는 게다. 사태를 늘 직시하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복이 온다.
하나, 한반도 온난화가 진행되면 식량 걱정을 덜게 된다.
한반도 온난화가 진행되면 가뭄이 드는 줄 아는 분들이 있다. 근래 강원도 가뭄을 들어 이것이 모두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게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온난화가 진행되면 지역적으로 건조지역이 더 건조해지고, 습윤 지역이 더 축축해진다. 더 많이 비가 내린다는 게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백 년간 강우량이 19% 증가했다고 한다. 상식으로 접근하자. 비가 많이 내리면 비록 여름, 가을에 태풍 피해가 있다고 하나 오곡백화가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인드라가 어린 시절에는 한강이 겨울에 얼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보기가 힘드니 확실히 겨울이 따뜻해진 듯싶다. 그만큼 겨울 날씨가 온화해졌다. 일단 북한이 늘 쌀 걱정이 있다. 김일성이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사회주의라고 할 만큼 농업생산이 평양정권의 주요 관심사다. 헌데, 농업생산력이라는 것이 그간 경제사를 보자면, 소빙하기의 영향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같거나 보다 악화된 기후 속에서 보다 많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해내기 위한 것이 농업생산력이었던 게다. 헌데, 기후가 온난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남아처럼 심지어 이모작 이상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남북한의 쌀 생산량이 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일제 때에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3대 갑부가 있었다. 호남 친일동아 김성수, 충청 김갑순, 영남 경주 최부자가 그들이다. 이중 영남은 평야지대가 드물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김해평야가 있지만, 고려시대까지 상당 지역이 바다였다는 이야기다. 해서, 안동과 대구 분지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있었고, 다른 하나가 동해안에서 비교적 큰 경주 안강평야가 있었던 게다. 해서, 신라의 수도가 경주였고, 조선 영남 유림 중심이 안동이라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 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낙동간 동안에는 퇴계가 있다면, 서안에는 남명이 있다 했다. 하면, 남명이 있던 근거지 역시 지리적인 여건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진주와 산청이 행정구역을 합친다고 할 만큼 두 지역은 같은 생활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넓게 보자면, 진주, 산청, 하동, 남해가 한 생활권이다. 예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탄생한 게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의 배경을 하동 평사리로 택한 것은 상상의 산물이다. 영남에는 대토지가 없는 까닭에 대토지가 많은 호남에 가장 인접한 영남지역인 하동을 무대로 소설 토지의 최부자 집 터전으로 삼았다는 게다.
둘, 동남아관광을 가지 않아도 아열대 기후를 즐기며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국유본 자본이 한국에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의 대형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는 등 전국 곳곳에 투자한다고 하여 처음에는 의아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테마마크는 아열대 지역에서만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연중무휴로 장사해야 한다. 해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삼성의 에버랜드인 게다. 허나, 한반도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만일 지금보다 서울이 3도 정도만 더 높다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랴. 안면도와 안면도보다 위도가 낮은 제주도,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 같은 데는 세계적인 휴양지가 될 수도 있다.
관광은 두 가지다. 볼거리와 휴양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을 가는 이유는 볼거리 때문인데, 소수 배낭마니아를 제외한다면 이는 그 지역이 상당 부분 선진국이어서 그렇다. 하고, 다른 하나는 휴양이다.
이것은 단지 즐거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내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 서비스 산업 중 여전히 취약한 분야 중 하나가 관광 부문이다. 근래 지자체 직선제로 정착이 되면서 이전보다 한층 관광 부문에 주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인드라 생각이다.
IMF 때 내몰린 퇴직 노동자들을 팬션 사업에 몰두하게 한 것은 성공적이지만, 늘 그렇듯이 사후대책이 미흡하다. 이것이 늘 한국인 사업방식이다. 처음만 굉장하다. 초기에만 역점을 둔다. 허나, 단골에 대한 예우가 없다. 십 년, 백 년을 하는 마인드가 없다. 자자손손 대를 물려가며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미흡하다. 일단 되든, 안 되든 공수표를 남발한 뒤 나중에 남들도 다 그렇지 않느냐 핑계만 대면 될 뿐이다. 참 안타깝다.
근래 버냉키 한마디에 쫄아서 연일 국유본 언론이 한국 내수 대책을 운운한다. 물론 짜고 고스톱치기이다. 버냉키 의도나 국유본 언론의 의도를 인드라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타켓 대상은 교육, 의료, 부동산, 금융이다. 무역의존도가 90%라고 협박한다. 허나, 이에 대해 인드라는 박정희 선생처럼 단호하다. 매국노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국유본과 투쟁해서 얻을 것을 얻겠다. 하여, 이 문제의 전제는 통일이 되어야 가능한 게다. 그 이전까지 한국은 싱가포르나 네덜란드 운명인 게다. 이것이 국유본이 한국에 지정한 세계수직분업체계의 몫이다. 국유본이 괜히 한국 축구 감독으로 히딩크를 모시라고 정몽준에게 지시했겠는가. 해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국유본을 자극해야 한다. 국유본이 세계 전략을 구상할 때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여길 수 있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자, 허접한 자들이여. 당장 대형서점에 가보라. 읽을 만한 한국 책들이 얼마나 되는가. 그저 번역물에 그치는 수준들이다. 보다 기민하게 대응하라. 국내에 몰두하지 마라. 이제는 세계다. 세계와 맞상대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꼬리를 내려라. 일본에 가서 국내용 반일입니다요, 라고 하는 색희들은 지금부터 입 닥쳐라. 지하에 계신 김구선생이 지금 너네 개색희들 때문에 토하고 계시다는 전언이다.
한국이 내수를 진작하는 방법? 일단 예서 고전적인 수출드라이브 정책 비판은 무시하자. 인드라 운동권이었기에 이런 것 너무나 잘 안다. 허나, 이 부문 인드라가 더 말하지 않겠다. 장하준 이야기나 조금 들어보면 될 게다. 인드라보다 약발이 약하기는 하지만^^!
인드라는 쉽게 간다. 하나,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일 억 명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내수가 위축이 심화되는 것은 젊은 층 인구가 줄기 때문이다. 25세 이하의 이민을 최소한의 규약으로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개혁과 교육혁명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둘, 국유본과의 전략 게임 승리로 공작기계 자급자족화를 이루어내어야 한다. 어차피 지금 국유본이 일본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시스템인데, 이것을 한국으로 돌리지 못하면 대일무역적자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내수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 서비스업 타령을 하지 마라. 정작 문제는 제조업이다. 오늘날 한국 제조업 현주소를 냉정히 되돌아보라. 문제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이를 전제하고, 내수비중이 높은 일본의 예를 검토하자. "일본은 미국보다 실질소득이 3배이상 높습니다. 일본은 병원비의 90%를 정부가 부담합니다. 미국은 반대로 90%가 개인 몫이죠. 즉 일본은 미국에 비해 복지수준이 높습니다. 일본은 예산의 40%정도가 복지비로 지출하는 반면 미국은 1년 예산의30%가 군사비로 지출됩니다. 그리고 세율도 일본은 개인소득세가 15%안팎인데 비하여 미국은 최소 35%이서 많게는 55%까지 냅니다. 결국 실질소득은 일본이 미국보다 높은 겁니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개인이 막대한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안정을 추구해서 미국과 달리 주식에 많이 투자를 안 합니다. 2001년 미국버블증시하락으로 미국의 개인투자가들은 무려 8조 달러의 손해를 보았지요. 그러나 일본의 부동산붕괴당시 일본의 개인은 건전했습니다.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던 기업과 은행이 피해를 입었지 개인은 현금자산 10만 달러(평균가구의 자산)게다가 부동산, 주식등을 합하면 최소 2배는 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개인자산은 적자를 면치 못합니다. 일본의 힘은 바로 개인에게있지요. 미국보다도 최소 3배 이상되는 막대한 실질소득입니다. 일본CEO의 평균임금은 종업원의 10배입니다. 그 액수가 70만 달러인 반면 미국은 1000배입니다. 3천만 달러죠. 미국은 일본보다도 국민소득이 낮고 빈부격차가 큽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3&docid=346085&qb=7J2867O4IOuCtOyImOu5hOykkQ==&enc=utf8§ion=kin&rank=4&sort=0&spq=0&pid=fY8agdoi5TwssZumRBwsss--426260&sid=Sv8E3fLF-koAABORMJc
간단히 말하자. 전두환 정권 때부터 노무현 정권, 하고, 이명박 정권까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실패했다. 이것은 로스차일드-박정희가 옳다. 박정희대로만 하면 경제도, 수출도, 내수도 산다. 정운영이 중앙일보 주필로 변신했다지만, 그 내면을 살펴야 한다. 유럽에 가서 공부하면 정운영처럼 해야 하는데, 오늘날 유럽에서 공부했다 온 놈들은 놀고 온 것인지, 아니면 학위도 따지 못 하고서 딴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셋, 보다 따뜻해지고, 보다 비가 많이 내리면 사람 성정이 부드러워진다.
일반적으로 알프스 산간과 인근평야 지역이나 만주 하얼빈과 연변 지역 등 산간지대와 평야지대 사람들을 비교하면, 산간지대 사람들 성정이 산을 닮아 나쁘게 보면, 상대적으로 거칠고, 무뚝뚝한 편이다. 좋게 보면, 사내답다고 한다. 해서, 일본인에 대해 한국인 평가가 대체로 남자답고, 거칠고, 무뚝뚝하다고 한다. 이는 이 산간지역이 평야지대보다 물자가 귀하고, 활동이 제약되다 보니 살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헌데, 기후가 아열대화하면 사는 것이 한층 여유로워지고, 평온해질 것이다. 해서, 보다 진보적으로 변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성향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얼리어답터적인 속성도 변화할 여지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인이 얼리어답터적인 속성을 지니는 이유를 대체로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에서 찾고는 한다. 허나, 대부분의 이념이란 인간 심성 깊숙한 데까지 이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일 있다면 지리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한국에서는 자동차를 개발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게다. 차라리 시베리아처럼 내내 춥던가, 아니면 동남아처럼 내내 더우면 그에 맞추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쉽다는 게다. 허나, 한국 기후는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훨씬 더 춥다. 해서, 제품 생산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고, 제품이 고장 나기가 쉽고, 수명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인이 보다 더 제품 고르는 데에 예민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만큼 새것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게다.
정리하면, 한반도 온난화가 진행되면, 빨리빨리 증상에서 만만디 증상도 아닌 균형적인 정서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은 게다. 해서, 인드라 예상은 종래의 빨리빨리 속성을 보존하면서도 만만디로 인해 정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보는 게다.
넷, 문화예술 분야가 획기적인 발전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온난화가 이루어지면 문화예술 분야가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송대의 문화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이 넘쳐나니 문화예술 부문이 강화되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혹 유럽여행을 간다면 북유럽 문화관이나 미술관을 가봐라. 뭉크 외에는 볼 게 없다. 그래서인지 별 것도 아닌 것 하나 가지고 온갖 요란을 떠는 것이 그 동네 사정이다. 반면 로마에서는 막말로 지나가다가 돌멩이 하나만 건들지라도 혹 이것이 유물이 아닐까 생각될 지경이다. 예서, 초점은 북유럽이다. 그나마 북유럽이 잘 사는 건 날씨가 따뜻해서이다. 194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북유럽은 매우 가난했다. 고대나 중세 초기만 하더라도 북유럽인은 야만인으로서 로마인의 금발 노예가 북유럽인의 숙명이었다.
다섯, 한반도 온난화 결과로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지리도 못 살던 유럽인이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배경이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세 온난기로 살만해졌기 때문이다. 기후가 온난해져서 농사가 잘 되고, 인구도 증가했던 데에 기인한다.
물론 이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지리적, 기후적 요인이 매우 축소된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근대 문명은 가혹한 소빙하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몫이다. 하여, 오늘날 기후적 요인을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여시키는 것은 사태를 왜곡시킨다. 사실 지구온난화론에 대한 근본 비판 대목이기도 하다.
이를 전제하고, 여전히 기후적인 요인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따뜻한 기운을 받으면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이 만개하는 만큼 인간도 활동적이게 된다. 물론 너무 더우면 곤란하지만, 강수량이 적당한 아열대 기후 정도면 굉장히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정리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문명을 발달시키는 동시에 쇠퇴시킨다. 북방 유목민은 오늘날에 보자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편이다. 이런 점에서 천혜의 자연조건은 오히려 진취적인 면을 훼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든 할둔에 의하면, 문명이란 자연적 요건을 충족시키면 쇠퇴하기 마련이기에. 해서, 좋은 기후와 나쁜 기후가 인간 발전에 결정적이지 않다. 기후가 좋든, 나쁘든, 온난화가 되든, 한랭화가 되든, 핵심은 기후에 대한 인간의 대응에 달려 있다.
공부를 할 때, 어떤 분야이든 역사적 관점을 고려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가령 인클로저(enclosure; 과거에는 '엔클러우저'로 표기)로 농지가 목장으로 변경되는 역사적 사건을 배운다. 이때 왜 이 사건이 역사적이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지니는 것이 역사학도의 바람직한 태도인 게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토지가 변경된 것은 실제로 영국 땅의 2%에 지나지 않은 중부 영국에 국한한 사건에 불과하다. 헌데, 이 사건이 중시되는 것은 당대 영국이 유럽과의 무역에서, 대부분 오늘날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인 플랑드르 지역과의 무역에서 90%를 차지하던 수출품이 양모였기 때문이다. 예서, 확인할 수 있는 인드라의 역사적 관점은 무엇인가. 역사란 후세하기 나름인 게다. 후손이 잘 나서 오늘날 세계를 주도한다면, 역사는 달라진다. 만일 인드라가 세상을 건설한다면 역사가들의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해서, 인드라는 늘 혁명적인 관점에서 인드라 글쓰기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인드라는 혁명적이다.
인드라, 길 없는 길을 걷는다
길 없는 길을 걷는다. 인적도 없고, 불빛도 없다. 어떤 이는 아이큐 테스트에서 동아시아인이 선두권을 차지하는 이유를 비타민 A와 연관이 크다고 주장한다. 서양인이 거의 먹지 않는, 육류보다 상대적으로 생선류를 많이 섭취하는 탓에 DHA 함량이 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허나, 14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이브 족속들이 남방루트를 통해 여행을 했는데, 이 남방루트란 해안지대를 경유하는 경로이다. 해서, 동아시아 족속들만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이들 남방루트 족속들이 모두 똑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인드라 생각은 조금 더 나아간다. 인간과 친연성이 있는 족속들이 누구인가. 두더쥐, 박쥐같은 것들이다. 이들 족속 공통점이 뭐냐. 밤눈이 밝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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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쥐만 보자. 서양의 박쥐 이미지는 드라큘라 이미지이다. 이것이 고스란히 동양인인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되었다. 허나, 동양인의 박쥐 이미지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눈이 밝다, 밤눈이 밝다 하여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박쥐 똥은 야맹사라 하여 야맹증에 효험이 있어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드라가 인드라 졸저 '해체'에서도 특별히 박쥐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박쥐의 우화가 그것이다. 박쥐와 박쥐 우화 이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이미지는 인간이 박쥐에 덧칠한 이미지일 뿐이다. 비슷한 예로 용이 있다. 서양인에게 용이란 불길한 것이지만, 동양인에게는 길조인 것과 같은 게다. 이런 이유로도 박*욱이 얼마나 삼류저질쓰레기 감독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 이상한 게 있다. 인드라가 해운대 윤*규 감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윤*규 감독, 각본 영화 '해운대'를 보고 난 후 조금 이상해서 그의 작품 모두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마치 삼류저질쓰레기 감독 박*욱이 만든 JSA공동경비구역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드라가 초창기 박*욱 스타일을 아는데, 이 감독에게서 JSA공동경비구역 같은 작품이 도저히 나올 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을 했던 게다. 그처럼 윤*규에게서도 도저히 '해운대'와 같은 작품이 나올 수가... 그때 갑자기 대선이 떠올랐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의 공통점은? 선본의 홍보력이 엄청났다는 점이다. 매우 세련되었다. 흡사 미국 초특급 광고회사에서 의뢰받은 듯한... 이런 예는 또 있다. 바로 붉은악마의 2002년 월드컵 카드섹션이 그것이다. 이 역시 국유본 카페 회원이 말씀해주셨듯 원 소스는 미국 일급 광고회사의 작품이라고 한다. 혹시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삼류저질쓰레기 감독이 공동경비구역을 정말 만든 것일까. 윤*규 감독이 해운대를 만든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시다바리에 불과했던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마 아닐 것이라고 여기지만, 진실은 늘 저 너머에 있는 법. 아무리 봐도 박*욱은 실력이 쥐뿔도 없는 삼류저질쓰레기 감독이 틀림없기에 드는 의문인 게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하여간 빙하기 때를 떠올려 보라. 동굴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을 생각해보라. 그들 최초의 토템은 혹 두더쥐나 박쥐가 아니었을까? 두더지처럼 땅을 잘 파거나 박쥐처럼 밤눈이 밝기를 기대하면서. 낮은 짧고, 밤은 길다. 생존에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겠는가. 밤이 더욱 위험하므로 밤에 보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어야 했을 게다. 빙하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현생 인류가 단련되어왔다면, 만일 동아시아인이 상대적으로 머리가 좋은 유전자가 있다면 이는 빙하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해서, 동인을 찾는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시베리아 기후 덕분이 아닐까 싶다. 시베리아 추위로 인해 오늘날 북방계 몽골리안 얼굴형이 등장한 만큼 밤눈을 밝게 했다. 인간에게는 생존이 중요하다. 해서, 낮보다 밤에 대처를 더 잘 해야 했다. 밤눈이 밝아야 한다.
오늘날 유태인들이 세계를 장악한 이유가 무엇인가. 선사시대에는 기후와 같은 자연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인간 사회가 자연이 주는 위협에 상당하는 압력을 유태인에게 가했기 때문일 게다. 하여, 지옥 훈련을 받은 유태인들이 살아남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비유하자면, 과거의 인간과 오늘날의 인간이다. 386 세대까지만 해도 베이비붐 세대였다. 해서, 이 세대까지만 해도 생존 경쟁이 치열했다. 3억의 정자를 뚫고 태어난 것만 해도 대단한데, 태어나자마자 백일, 돌도 못 지내고 죽는 이들이 이 시대까지만 해도 제법 있었다. 또한 자라나는 과정에서도 지금처럼 외아들, 외동딸이 아니라 보통 서너 명 혹은 그 이상의 형제들과 커야 했기에, 여기다가 사회 조건 역시 험난한 것이 다반사였기에 나름 독종일 수 있었던 게다. 한마디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었고, 어디에서든 적응이 가능할 정도로 태어날 때부터 혹독한 조건을 달고 세상에 나왔던 게다. 허나, 그 이후로는 과연 어떠할까. 배부른 돼지들이 된 것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국제유태자본이다. 권력이란 잠시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그들은 수백년간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새벽녘에 길을 걷는다. 16~17세기까지 대다수 영국인들이 귀신, 유령, 늑대인간, 마녀, 정령 따위들을 믿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 시골 사람들일수록 20세기까지 믿을 것이라 확신한다.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심리가 요동을 친다. 모든 것이 환상이야, 라고 느끼는 그 순간,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생성되었겠다.
길 없는 길에서 인드라가 묻는다. 길 없는 길이란 무엇인가. 암흑의 길이다. 그 길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밤눈이 밝아야 한다는 게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빛이라도 찾아낼 수 있고, 아무리 작은 양의 빛들일지라도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다. 후대의 인간은 이를 '희망'이라고 불렀다. 살아남아야 한다."
지구온난화는 축복이다 국유본론 2009
2009/11/15 05:01
http://blog.naver.com/miavenus/70073766812
"기린아:
결국 국유본의 의도는 탄소 버블로 향하는군요...세계 각국에서 금융거래세를 검토중이라니 인드라님 월드 리포트의 영향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인드라님의 변혁적 깽판주의가 파생거래세를 교육예산으로 돌려 교육혁명을 이룰거라고 믿습니다...그리하여 세종대왕님에 버금가는 인물로 한국현대사에 남게 될 거라 믿습니다...그런 날이 올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고 지지하겠습니다...메리 크리스마스~!!
INDRA:
글 고맙습니다. ㅋㅋㅋ. 긍정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잘 안 된다고 해도 본전. 어차피 무에서 시작한 것이니 두려울 것이 없다. 갈 데까지 가보아야 한다. 단, 명예욕에는 경계한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국유본이 UAE 원전수주로 룰라처럼 이명박을 키우는 이유 국유본론 2009
2009/12/30 02:19
http://blog.naver.com/miavenus/70076917438
"기린아:
인드라님 전에도 사진 올리셨는데 첨 보는 분이 많으시군요...-_-;;;(처음에 뵜을 때 제가 생각했던 모습이랑 비슷해서 놀랐음요) 전 인드라님이 사진을 전면에 게재하신 건 국유본에 보다 더 강하게 나가겠다는 의지로 읽었습니다... 박근혜를 여자 김대중으로 만드는 거라니 정치에 개뿔도 모르는 제가 봐도 느낌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레알 국유본은 까야 제 맛입니다!!!
INDRA:
글 고맙습니다. 상상한 이미지와 비슷했나보다~! 앗, 예리하다. 현상적인 건 올해 술 계속 먹는다, 그만큼 더 글을 열심히 쓰겠다 이런 것이긴 하다. 헌데, 그 속으로는 나름대로 다짐을 한 것이 있는데, 그걸 읽으셨다. 다만, 더 강하게 나간다고 해서, 발언수위를 높인다든가 하는 진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짓은 오래가지 않는다. 단지 인드라가 작년 초보다 올해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이런 것이다. ㅋㅋㅋ. 레알 국유본은 까야 제 맛입니다!!! 핫, 이런 표현, 인드라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아이티 지진 음모론: 차베스(박정희)가 죽고, 룰라(이명박)가 뜬다 국유본론 2010
2010/01/29 20:42
http://blog.naver.com/miavenus/70079324465
"이효리:
인드라님 안녕하세요.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가 될 것 같아여... 이번 이효리 타이틀 곡이 '그네'에여. 작년에는 선덕여왕이고 올해는 그네네여. 이효리 목소리는 늙어서 된장처럼 구수한 맛이 있는데 노래연습은 안하고 살아서 매끄럽지 못하고 억지로 구색을 맞추는 느낌이 드네여. 대체로 노래는 좋아여. 다른 자극적인 노래도 많았을 건데 하필 그네를 타이틀로 선정한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네여. 이효리 그네가 얼마나 히트칠지 유심히 살펴봐야겠어여. 언제나 수고하십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__)
INDRA:
글 고맙습니다.
그네
http://www.youtube.com/watch?v=sh2SBgrhJvQ
치티치티뱅뱅
http://www.youtube.com/watch?v=GdH46T3Lv68
이효리의 신곡 그네는 선공개곡이다. 타이틀곡은 아니라고 한다. 타이틀곡은 치티치티뱅뱅이라고 한다. 치티치티뱅뱅이든, 그네이든, 혹은 최근 소녀시대의 데빌런처럼 국제적인 수준이다. 비가 마이클 잭슨이면, 소녀시대가 빅토리아 베컴을 배출한 영국 스파이스 걸스라면, 이효리는 미국 브리트니 스피어스이다. 표절 논란 등은 비나 소녀시대처럼 기획사의 세련된 노이즈마케팅으로 보면 된다.
이를 전제하고, 님의 의견을 듣고, '그네' 곡을 잘 들어보았다. 가사에서 님이 박근혜를 떠올렸다면 님의 뛰어난 감수성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거기까지 연결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이것이 국유본의 치밀함이다. 인간의 잠재의식에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직접적이지 않다. 해서, 더욱 오래간다. 가사가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 인드라가 소개한 '본능경제학'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복당녀 박근혜 지지율이 최근 19%에서 16%로 하락했다고 친일 문화일보가 전한다. 이에 대한 인월리 입장은 무엇인가. 국유본은 복당녀 박근혜를 버렸는가. 아니다. 현 시점은 국유본이 복당녀 박근혜 지지율 바닥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이는 인월리의 과학적인 여론 분석법을 존중하는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이다. 17%란 지난 노무현 탄핵 당시 최저였던 한나라당 지지율을 의미한다. 해서, 국유본 언론이 이를 살짝 깬 복당녀 박근혜 지지율을 제시하는 것은 현재 복당녀 박근혜 지지도가 바닥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면, 현재 복당녀 박근혜 실제 지지율은 어떠한가. 여타 다른 대통령 후보들보다는 높지만, 두 자리는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차기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복당녀 박근혜이기 위해서는 복당녀 박근혜는 보다 더 국유본에게 충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니라면,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처럼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 해서, 복당녀 박근혜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복당녀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일은 없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80498836
친일 조선일보 사진에는 정동영, 문국현, 추미애, 박근혜, 오세훈 등이 보이지 않는다. 국유본이 향후 유용하게 써먹기 위함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반면 정몽준, 정세균, 노회찬, 이회창 등은 차기 대통령감으로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몽준은 윌터 로스차일드나 제이 록펠러처럼 현 위치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는 한물 간 자들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친일 조선일보 기념식에 참석했으나, 일반에게 사진이 공개되지 않은 이들이다.
정리하면, 국유본은 아직 박근혜를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박근혜를 지금 보금자리에 모셔두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다. 차기 대통령으로 0순위인 게다. 힐러리 클린턴, 미쉘 오바마, 케슬린 스티븐슨, 김연아, 소녀시대, 문근영, 이영애, 고현정, 이효리로 이어지는 라인을 따라가야 한다. 단지 선덕여왕 수준이 아니다."
국제유태자본과 핵정상회의, 천암함, 폴란드 참사, 이효리의 그네 국유본론 2010
2010/04/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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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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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소는 인드라 집주소가 아니라 은행 주소입니다~!)
국내 후원
국민은행 524902 - 96 - 101910 김종화
무인도에서의 친절한 가이드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인드라는 정치를 하지 않겠으며,
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언론에 기고하지도 인터뷰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교단체를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유본론을 소명으로 여기고
지금처럼 살다
행복하게 가겠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마.자.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 발전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쪽발이에게 죽음을 쪽발왕에게 천벌을
쪽발왕 폭살하려 한 이봉창 열사 정신 이어받아
불타는 쪽발산 불량배터리를 쪽발왕 아가리에 쑤셔넣자
쪽발왕이 10초 안에 똥 못 싸면 왜놈이 중국인 노동자 다루듯 때려죽이자
쪽발왕 천한 피를 1그램이라도 보유한 왜놈들에 한해 후쿠시마산 세슘물고기를 평생 먹이자
쪽발노다랑 쪽발차 캠리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시험시키자
쪽발아베 항문에 불법도용 유니클로 양말 수만큼 쑤셔넣자
쪽발놈현에 온몸으로 항거한 허세욱 열사와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쪽발민주당 해체
쪽발의 나팔수 네이버 주가 오백원
인민의 적,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아웃
악의 복마전, 골룸빡 처단
단군이래 최악의 매국노, 쪽발지태놈현 재산 몰수
파시스트 집단, 쪽발놈현빠에게 죽음을
쪽발삼구 쪽발석현 비리엘쥐 재벌해체
쪽발정은 척살로 2013년을 통일 원년으로
친미친중 반일반북 조국통일 쟁취하자
쪽발타도해방투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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