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8 : 유태인 상술 78 대 22의 비밀 1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6 03:5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3228677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8 : 유태인 상술 78 대 22의 비밀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6

   

인드라는 소마 (맥주 78 대 소주 22를 혼합시킨 소맥)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1. 파레토 법칙

   

   

일부 국유본 언론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국유본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다. 뉴라이트파와 골드만파는 신자유주의에 적극적인 반면 노비네파는 신자유주의에 소극적이다.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확장할수록 아시아 지분이 늘어나는 만큼 유럽 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헌데, 이것이 파레토 최적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두에 고안된 개념으로서 이는 생산의 효율과 교환의 효율 두 가지에 대하여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전자에 대해서는 어느 한 재화(財貨)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재화의 생산을 감소시켜야 하는 상태(다른 재화의 감소 없이 어느 재화의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태는 아직도 원료 ·재료에 여유가 있다는 증거로 최적배분의 상태로 볼 수는 없음)에 있을 것, 또 후자에 대해서는 어느 소비자의 효용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소비자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 있어야 한다. 파레토 최적의 상태란 이상의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고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파레토 최적의 개념은 다른 어느 누구의 상태도 불리하게 하는 일 없이 한 개인의 상태를 유리하게 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는 비교적 약한, 그러기에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쉬운 가치판단을 기초에 둔다. 또 자원배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선호에 의해서 정해져야 한다는 소비자주권 내지는 개인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파레토 최적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관하여 그 중핵을 이루는 중요한 분석개념으로서, 이러한 면의 이론분석에 극히 유용하다. 파레토 최적은 완전 경쟁시장에서 달성되어, 각 개인은 최대의 만족을 얻고, 기업은 이윤최대화가 달성되는 등, 중요한 법칙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자원배분에만 관여하고 소득분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또 파레토 최적 상태는 무수히 존재하여 우열의 결정이 안 된다는 등의 한계가 있다." 

[출처] 파레토최적 [Pareto optimum ] | 네이버 백과사전

   

쉽게 생각하면, 이전까지 유럽이 잘 살기 위해 아시아의 희생없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아시아가 잘 살기 위해서는 유럽의 희생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파레토 최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헌데, 파레토 최적과 함께 회자되는 이론이 있으니 파레토 법칙이다. 인드라가 78 대 22를 발견한 건, 국유본 언론이 언젠가부터 신자유주의 사회를 2080 사회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왜 2080일까. 근거를 찾아 보니 '파레토 법칙'이었다. 

   

"파레토 법칙(Pareto 法則) 또는 80 대 20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만큼 쇼핑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2 대 8 법칙라고도 한다. 많은 분야에 이 용어를 사용하지만, 부적절하게 사용하거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용어를 경영학에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조셉 M. 주란이다.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왔다.

[편집] 예

  • 수신되는 이메일의 20%만 필요하고 나머지 80%는 스팸메일이다.
  • 통화한 사람 중 20%와의 통화시간이 총 통화시간의 80%를 차지한다.
  •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
  • 전체 주가상승률의 80%는 상승기간의 20%의 기간에서 발생한다.
  •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 성과의 80%는 근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 이뤄진다.
  • 두뇌의 20%가 문제의 80%를 푼다.
  • 운동선수 중 20%가 전체 상금 80%를 싹쓸이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B%A0%88%ED%86%A0_%EB%B2%95%EC%B9%99

       

    파레토가 발견한 과정은 인터넷에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어느 날, 파레토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관찰하던 중에 모든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열심히 일하지 않는 개미가 하나 둘씩 눈에 띄었고, 더욱 자세히 보았더니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개미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비율이 약 20:80 정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파레토는 그 개미들을 잡아서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우선 일을 열심히 하는 개미(20%)만 따로 모아서 일을 시켰다. 처음에는 그 20%의 개미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다가,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 20%의 개미 중에서도 일을 하지 않는 개미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결과 그 20%의 개미들 중에서도 20:80의 비율에 맞춰 일하는 개미와 노는 개미가 나뉘어 졌다. 이것은 게으른 80%의 개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0%의 개미들은 처음에는 막 놀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개미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역시 20:80의 비율대로 일하는 개미가 생겨났다. 파레토는 자연에서 무슨 법칙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벌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하였으며 그때도 역시 20:80의 비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파레토는 이 20:80 이라는 비율이 비단 자연세상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구를 하게 되었고 결국 파레토 법칙을 만들게 되는데, 즉 구성원의 20%가 전체 업무의 80%를 처리하고 있었으며 상위 20%의 사람들이 전체 80%의 사람들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상품 중 20%가 전체의 80% 매출을 올리고 있는 등 여러 분야에 파레토 법칙의 적용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허나,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파리 출생. 토리노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실업계에 투신하였다가, 경제학 연구를 시작하여 1892년 M.E.L.발라의 뒤를 이어 스위스 로잔대학 교수가 되었다. 발라의 후계자이며, 로잔학파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그는 《경제학 제요 Manuale d'economia politica》(1906) 등의 저작을 통하여 발라의 한계효용가치론을 버리고, 계측(計測)이 가능한 무차별곡선에 의한 선택의 이론을 전개, 발라가 수립한 일반균형이론을 재구성하였다. 그는 또 파레토최적(모든 사람이 타인의 불만을 사는 일 없이는 자기만족을 더 이상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의 사고방식을 도입, 신(新)후생경제학에의 길을 열었으며, 또 소득분포에 대해서는 통계조사에 입각하여 '파레토의 법칙'이라 하는 소득분포의 불평등도(不平等度)를 나타내는 경험적인 경제법칙을 도출하였다. 사회학 분야에도 강한 관심을 가져, 로잔대학 은퇴 후에는 제네바에서 사회학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면서 《일반사회학개론 Trattato di socio-logia generale》(2권, 1916) 등을 펴냈다. 그의 사회학은 인간행동을 합리적인 행동으로서 파악했을 뿐 아니라, 불합리한 행동면도 중시한 점에서, 이탈리아 파시즘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출처] 빌프레도 파레토 [Vilfredo Pareto ] | 네이버 백과사전

       

    파레토가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의 유형을 연구하던 중 파레토 법칙이란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예서,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을 누가 가지고 있었나?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하면, 파레토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유태인이 엄청난 부를 소유하게 된 이유를 궁금해하였을 터이고, 그 연유를 찾아보니 78 : 22이라는 유태인 상술을 만난 것이 아닐까? 헌데, 78 : 22이라면 노골적이니 사사오입해서 8 : 2로 한 것이 아닐까가 인드라 추정이다. 하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은근히 비판한다는 연구 배경을 숨기기 위해 개미 이야기로 위장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파레토에 대해 파시즘적 원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프로필에 써놓았다. 이것이 바로 국유본의 힘인 게다. 자신들에게 조금만 불리한 주장이라도 나올라치면 파시즘적 색깔을 입혀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2. 78 대 22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인 비율로 이뤄져 있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이 '78대 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질소 60에 산소 40인 공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 속에서 인간은 도저히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또 인체의 수분이 60이 되면 인간은 죽고 만다. 그러니 '78대 22의 법칙'은 결코 '75대 25'나 '60대 40'으로는 되지 않는 절대의 법칙이다. 이 법칙 위에 유대인의 상술은 성립되어 있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 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많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어다가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문을 닫는다. 이를 유대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사람'78에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22의 비율이 성립된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를 생각지 말고 나도 하면 78의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http://blog.naver.com/j2557865/120014541950

       

    78 대 22를 접한 이들이 다양하게 이 법칙을 적용했다. 인간은 78% 유전과 22% 후천적 환경으로 성향이 나타난다든가, 인간 행동과 판단은 78% 본능과 22% 이성으로 결정한다든가 증시 격언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것은 78 : 22 법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든가, 회사 조직은 78% 영업과 22% 관리 부문으로 나눠야 조직 원리상 최적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원리보다는 응용에 많은 관심이 있다. 이때 인드라 관심은 응용에 있지 않았다. 원리에 관심이 있었다. 기초를 알면, 보다 많은 분야에 응용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해서, 이 원리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고민을 했다.

       

    "78의 78%는 78*78/100=60.84이다. A²/100=B일 때, A=10*B이다. 피보나치 수열의 0.6180339에서  61.80339를 B에 대입하면 A값으로 무엇이 나오나? 78.6151...이 나온다~!"

     http://cafe.naver.com/ijcapital/11407

       

    엇~! 피보나치 수열이네~!

       

    3. 피보나치 수열

       

       

       

    "이를테면, 제3항은 제1항과 제2항의 합, 제4항은 제2항과 제3항의 합이 되는 것과 같이, 인접한 두 수의 합이 그 다음 수가 되는 수열이다. 즉, 0, 1, 1, 2, 3, 5, 8, 13, 21, 34, 55,… 인 수열이며, 보통 a1=a2=1, an+an+1=an+2 (n=1,2,3…) 로 나타낸다. 이것은 L.피보나치가 1202년 《산술(算術)의 서(書)》에서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이렇게 단순한 수열이 중요해진 것은 이 수열이 자연계의 일반법칙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피보나치 수열의 인접한  두수의 비(뒷수와 앞수의 비)를 분수의 형태로 하여 수열을 만들면,

       

          

       

    또는

       

          

       

    와 같이 되는데, 이 두 수열은 각각

       

    (5-1)/2=0.6180339…와

    (5+1)/2=1.6180339…

       

    에 수렴한다. 이것은 황금분할의 비로 잘 알려진 수로, 자연계에서 많은 생물의 구조가 이를 따르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예를 들어, 솔방울을 살펴보면 비늘 같은 조각이 오른쪽나선과 왼쪽나선을 이루며 교차하고 있는데, 그 나선의 수는 각각 8개와 5개로 되어 있다. 5와 8은 피보나치수열에서 서로 이웃하는 항이다. 이 밖에도 식물 중에는 꽃잎의 배열이 13:8 또는 34:21 등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앵무조개의 달팽이 모양 껍데기의 구조도 황금분할의 비를 잘 보여 준다. 이러한 황금분할의 비는 예로부터 자연계의 가장 안정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학·음악·미술 등의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술작품들이 철저히 황금분할을 이용한 것이라든지, 음악에서 고전파소나타 형식이 황금분할의 비를 나타내고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특히 B.바르토크의 《현악기와 타악기 및 첼리스트를 위한 음악》은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새로운 주제의 도입, 악기의 배치, 음색 변경 등의 시점을 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피보나치수열 [Fibonacci sequence ] | 네이버 백과사전

       

    설명이 어려운 듯싶다. 그림으로 보면 한결 이해가 빠를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피보나치 수열을 이해하기 가장 빠른 방법은 토끼 설명이다.

       

     http://blog.naver.com/devotion20/80120887670

       

       

    토끼 설명에서 보듯 피보나치 수열은 생명 현상과 관련이 깊다 할 수 있다. 토끼 사례를 인간 종족 번식 사례를 압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면, 근대 이전까지의 대가족 제도와 조혼을 생각하면, 피보나치 수열을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십대 후반이면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십대 후반이면 짝을 만나 아이를 낳는다. 헌데, 사십대에도 여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이를 은행 이자 복리 개념으로 생각해보자. 남녀는 원금이다. 이 원금은 원금대로 이자, 즉 아이를 낳는다. 헌데, 그 아이가 때가 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이것은 이자가 이자를 낳는 것이다. 이것이 복리 개념인 게다.

       

    이 시기 피보나치가 하릴없이 피보나치 수열을 번역하였겠는가. 다 쓸모가 있어서이겠다. 인도와 아랍의 선진 기법을 도입해서 이자 계산하려고 했던 게다. ㅋㅋㅋ

       

    그래서일까. 월터 로스차일드 2대 남작은 비록 공식적인 활동은 생물학 연구이고, 비공식 활동은 국유본 비밀 조직 유지였지만, 영국 의회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생물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대는 열정적인 가슴으로 피보나치 수열이 만든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시라~!

       

       

       

    http://a308501.blog.me/10103156466

       

    그동안 국유본은 차가운 머리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된다???

       

    한국은 복권 수익으로 유럽, 미국, 일본처럼 강남 한복판 한국전력 자리에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어야 국운이 융성하는데, 복권 돈으로 허접한 민속박물관 따위나 양산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다 쪽발 돼중/놈현 탓인 게다. 그넘들의 쪽발 컴플레스를 왜 한국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니 애비가 쪽발이인 게 왜 한국인 탓이냐. 이 씨발넘들아.

       

    하면, 피보나치는 어떻게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발명이 아니다~!

       

       

    "피사 출생.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도 불린다. 아라비아에서 발달한 수학을 섭렵하여 이를 정리 ·소개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여러 나라의 수학을 부흥시킨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 북안(北岸) 부지항(港)의 피사의 상무관장(商務館長)으로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수판(數板)에 의한 계산법을 배우고 또한 이슬람교 학교에서 인도 기수법(記數法)을 익혔다고 한다. 그 후 이집트 ·시리아·그리스 ·시칠리아 등지를 여행하여 갖가지 계산법을 습득한 다음 피사로 돌아와, 1202년 《주판서(珠板書)》를 저술하였다. 15장으로 된 이 책은 아라비아의 산술 및 대수(代數) 지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의 수학서의 결정판으로서 그 후 수세기동안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수학원전(數學原典) 구실을 하였다. 기하학에 대한 저서 《기하학의 실용》(1220)에서는 유클리드를 소개하고 몇 가지 정리를 증명하기도 하였다."

    [출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Leonardo Fibonacci ] | 네이버 백과사전

       

    13세기면 이태리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여 떼돈을 벌 때이다. 이런 때에 피보나치는 이슬람 학교로 유학가서 인도 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책을 낸 셈이다. 다시 말해, 피보나치가 원조가 아니라 단지 유럽 말로 번역한 것이다 ㅋㅋㅋ

       

    해서, 피보나치 업적은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를 번역한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4. 아라비아 숫자

     "

       

    아라비아 숫자 체계는 수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전 중 하나로 간주된다. 대다수의 역사가들은 아라비아 숫자 체계가 인도에서 처음 형성되었으며[4], 이슬람 세계에 전파되었다가 그 후에 북아프리카(Maghreb)와 스페인(al-Andalus)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데 동의한다. 인도에서 0을 사용한 최초의 기록은 대략 400년경까지 추적할 수 있다. 아리아바타(Aryabhata)의 숫자 코드는 기호 0 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바스카라 1세(Bhaskara I)[5]까지는 이미 9개의 기호를 사용한 십진법이 널리 쓰이고 있었으며, 0 의 개념(당시에는 점으로 표시되었다)이 알려져 있었다.[6] 하지만 불교 철학의 수냐타(shunyata)[7] 개념이 힘을 얻어가던 1세기의 어떤 시점에서 0 기호가 발명되었을 수도 있다.

       

       

    1세기의 힌두 숫자

       

    이 숫자 체계는 670년 경까지는 중동에 도달하였다.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일하던 알 콰리즈미(Al-Khwarizmi)를 비롯한 무슬림 수학자들은 바빌로니아 숫자 체계에 익숙해 있었는데, 이 체계에서는 0 이 다른 숫자들 뒤에 쓰일 수는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는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한 단계 더 일반적인 체계로 나아가는 게 그다지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10세기에 아랍 수학자들은 Abu'l-Hasan al-Uqlidisi이 952년에서 953년 사이에 쓴 논문에 기록되었듯이 분수를 포함하도록 십진법을 확장하였다.

       

    알제리베자이아(Bejaia)[8]에서 공부한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1202년에 출판된 그의 책 Liber Abaci|en을 통해 유럽에서의 아라비아 숫자 체계 사용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이 체계는 인쇄술이 발명되기까지는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9] 최근에 이르기까지 무슬림 세계에서는 오로지 수학자들만이 아라비아 숫자 체계를 사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슬림 과학자들은 바빌로니아 숫자 체계를 사용했으며, 상인들은 그리스 숫자 체계 내지 히브리 숫자 체계와 비슷한 숫자 체계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피보나치 이전까지는 아라비아 숫자 체계가 인구 다수에 의해 사용되지 않았다."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B%9D%BC%EB%B9%84%EC%95%84_%EC%88%AB%EC%9E%90

       

    아라비아 숫자는 아랍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인도인이 만들었다. 헌데,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것은 피보나치를 비롯한 유럽인의 착각 때문이다. 아라비아 상인이 중국에서 종이를 가져오듯, 인도에서 인도 숫자 체계를 가져와 사용한 것이다. 이를 본 피보나치와 유럽인은 자신이 배우는 숫차 체계를 아라비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아 아라비아 숫자라고 한 것이다.

       

    인도인은 오늘날에도 IT산업에서 발군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가 똑똑하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잔머리가 고도로 발달한 족속이란다. 못 사는 나라라고 인도인이 순박하겠거니 하고 인도에서 인도인 상대하다가는 빤쓰까지 다 저당을 잡힌다는 소문이 있다. 중국 상인도 못 당하는 게 인도 상인이란다. 길거리에서 동냥질하는 아이들도 기본적으로 19단 정도는 줄줄 외운다고 한다. 해서, 수학하면 인도이다.

       

       

    인드라에게는 인도인의 피가 흐르나? 그래서 인드라냐 ㅋㅋㅋ.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인드라가 고교 때 혼자 놀면서 저런 것 실험하면서 놀았는데~! 보통 정석 수학 공부했는데, 인드라는 하루에 한 문제를 가지고서 이런 저런 것 장난치는 게 낙이라면 낙이었다. 인드라가 과목 중에 제일 쉬웠던 과목이 수학이었다. ㅠㅠㅠ

       

    이야기가 샜다~!

       

    하면, 인도인이 숫자 체계에 밝은 이유는 왜일까. 그 역사를 살펴볼 수밖에 없겠다. 해서, 초간단 고대 인도 역사를 말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123092343

       

    인도가 왜 중요한지는 상기한 링크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다만, 인드라가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에는 비판적이니 인월리와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이겠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73766812

       

    인도는 드라비다인이 오랜 기간 다른 종족들을 제압, 흡수, 혼혈하여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이란 고원에 있던 아리안족이 기원전 이천 년 무렵에 인도로 침입했다. 초기 아리안족은 유목부족 특성을 지녔다. 이 시기에는 카스트 제도가 없었다. 사제, 전사, 농민 구분도 단지 직업적 분류였지, 계급적 분류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신들이 평등을 유지하였는데, 가장 인기가 있던 신은 전쟁의 신, 싸움꾼 인드라였다.  

       

    헌데, 인드라라는 신을 놓고 보면, 아리안족은 중동 후르리인과 연관이 있다 할 것이다.

       

       

    "미탄니(Mitanni)는 오늘날의 쿠르디스탄 지역을 지배하였던 고대 부족이다. 미탄니 제국은 후르리인이 세운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후르리인은 고대 소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동양과 서양의 경계의 지역에 기원전 2500년경부터 살았다. 그들은 아마도 코카서스에 기원이 있었으며, 명확하지는 않지만 북쪽에서부터 진입하였다. 그들의 알려진 고향의 중심은 카부르 강 계곡의 수바르투이다. 카부르강은 남동 터키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시리아로 흐른다. 그곳에서 그것은 유프라테스 강으로 합류한다. 강은 아에이지, 다라, 지르지브, 자그자그, 라드 와 제르간 강의 지류와 함께 한해의 대부분 흐르지 않는 계절적인 강이다. 하부르 강이라는 다른 하나의 강이 터키 시르나크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의 자코를 거쳐 터키, 이라크, 시리아의 삼중점 근처에서 티그리스 강으로 합류한다. 후르리인은 후에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전역에 걸쳐있는 작은 왕국의 지배자로 스스로 일어났다. 후르리인이 세운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탄니 제국이었다. 후르리인은 히타이트 역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미탄니는 쿠르드 언어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미탄니의 약간의 이름 또는 용어는 인도-아리안 초대국을 나타내며 인도아리아인 엘리트는 인도아리아인의 팽창의 과정에 스스로를 후르족에 편승시켰다. "

    http://ko.wikipedia.org/wiki/%EB%AF%B8%ED%83%84%EB%8B%88

       

    아리안족은 인도 서쪽에서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sorgio&artSeqNo=1528627

       

    "면적은 인도 5,362, 파키스탄 20만 5344, 인구는 인도 2573만 2900명, 파키스탄 8643만 2500명(2004)이다. 원래 펀자브는 인더스강의 5개 지류(젤룸·체나브·라비·베아스·수틀레지)가 흐르는 지방(5강 지방)이라는 뜻이며 넓은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고온·건조하고 연평균강수량은 500mm 이하이지만 관개용수를 이용하여 예로부터 비옥한 농경지대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고대부터 개발되어 선사문화(先史文化)의 유적도 많고 북서부에서 침입해온 아리아인(人)들의 발전기지가 되었다.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그 영향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이민족(異民族)의 침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뒤섞여 사는 지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크교도의 본거지가 되었고, 언어도 힌디어(語)와 펀자브어의 두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할 때,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으로 펀자브 지방이 분할된 것은 이상과 같은 종교·언어상의 복잡성 때문이며 두 나라의 국경은 수틀레지강이다. 그러나 인도령이 된 펀자브주에서는 그 뒤에도 동요가 수습되지 않았으며, 1966년에는 힌디어와 펀자브어 사용지역(후자에는 시크교도가 많다)이 분리되어 하리아나·펀자브 2개 주가 되었다." 

    [출처] 펀자브 [Punjab ] | 네이버 백과사전

       

    이유는 동쪽이 훨씬 살기가 좋아서이다. 펀잡 지역은 한국으로 치면 한강 유역을 차지한 세력이 한반도 주역이 되듯 인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해서, 기원전 천 년 경에 마침내 아리안족은 펀잡주까지 정복 지역을 확장한다. 하면, 이 시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피정복민인 드라비다족을 노예층으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피정복인 신세였던 드라비다족이 불가촉천민으로까지 천대당한 것은 혼혈 때문이다. 수백 년에 걸쳐 아리안족이 정복사업을 펼치다 보니 드라비다족 여성을 강간하여 숱하게 혼혈이 발생했다. 헌데, 아리안족은 소수이고, 드라비다족은 다수였다. 더 나아가 토지 분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몽골 황금씨족처럼 유목 문화라는 종족 정체성을 강화시켜야만 정착문화적 인도에서 아리안 유목 문화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지배 계급이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던 아리안족은 순혈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드라비다족은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며 용맹하게 아리안족과 맞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허나, 이때 남긴 드라비다족 인류 유산이 있었으니 윤회였다. 지금 죽을 지라도 다시 태어날 때는 자살 폭탄 테러로 복받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윤회 이론이었다. 윤화설은 드라비다족이 만든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아리안족 발명품이 아니다. 다만, 아리안족은 드라비다족 발명품인 윤회설까지 흡수해서 브라만교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드라비다족에서는 윤회설이 혁명적이었지만, 아리안족 브라만교에서는 윤회설이란 오히려 현실을 정당화시켰다. 윤회설이 전생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오늘날 아리안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논리로 둔갑한 것이다.

       

    둘,  이 시기 가장 큰 화두는 물질적으로 정복한 드라비다족을 정신적으로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되겠다. 해서, 사제의 역할이 중요했다. 하여, 사제를 최상위층으로 하는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인드라라는 신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브라만, 비슈누, 시바 신 등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셋, 동쪽으로의 이동 과정이 마무리가 되자 아리안 부족들로 나눠졌던 아리안족은 왕국,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허나, 정복 시대가 끝나자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의 예에서 보듯 아리안 제국이 왕국들로 분열하여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혹은 오호십육국 시대처럼 이권 다툼이 치열해졌다.

       

    '무사(武士)' 또는 '영토의 지배자'라 번역되며 군사 및 정치에 종사하는 왕 등의 지배층을 말한다. 최상급 신분인 브라만(사제)과 함께 인도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다. 또한 제1 계급인 브라만, 제3 계급인 바이샤(서민)와 함께 종교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드비자(dvija:再生族)를 형성한다.

       

    카스트 제도는 피부 빛깔의 차이를 일컫는 바르나 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인종인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침입한 이후 자신들을 피정복민이자 유색인종인 드라비다족과 구별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였다. 그러나 이후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정착하면서 점차 혼혈이 생기고 사회적·경제적으로 신분이 나뉘고 발전하면서 오늘날과 같이 직업을 주로 한 신분제도로 변모하였다.

       

    한편 종족 간의 전쟁이 자주 일어나자 군사를 맡은 크샤트리아 계급의 세력이 점점 커졌고, 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우면 그 대가로 크샤트리아 신분에 오를 수 있었다. 현재는 귀족집단인 라지푸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위의 카스트 집단이 이 신분에 포함된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전파할 때 전도활동을 지지한 것은 마가다국을 다스리던 크샤트리아층이었다.

    [출처] 크샤트리아 [Kshatriya ]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시기 인도는 넘치는 잉여 농산물을 토대로 상업 자본가와 금융 자본가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 자본가와 금융 자본가 후원 덕에 본디 전사 출신인 크샤트리아 왕족들은 권력을 독점하는 사제 계급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마치 로마 가톨릭 교황파 권력에 대항하는 영국 국교도 국왕파 구도와 흡사했다.

       

    "수드는 인도 펀잡 지역에서 성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으며, 적들에게 용감한 자, 또는 승리자를 의미한다. 또한 진보를 가능케 하는 자를 뜻하기도 한다. 아울러 수드는 대부이자를 의미한다. 해서, Soods는 대금업자로 알려져 있다. Soods는 오래되고, 영광스럽고, 고귀한 품격을 갖춘 유래를 지니고 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34623969

       

    하면, 당대에서 상업 자본가와 금융 자본가 역할을 하던 이들은 누구일까. 세속화한 일부 사제 계급과 전사 계급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사제계급을 공동의 적으로 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마치 로마 가톨릭에 대항한 개신교와 자본의 결합처럼 말이다.

       

    그 종교 중 가장 영향력이 있던 종교가 불교였다. 해서, 석가모니는 왕족 출신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왕권 강화~! 고대 한국에서 불교가 국교가 된 것도 왕권 강화가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최초로 혁명적이었던 불교는 왜 인도에서 쇠퇴했는가. 이유는 지나치게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http://lljy3414.blog.me/70029278899

       

    허나, 인드라가 볼 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관혼상제 때문이다. 인간은 생로병사한다. 인간이 힘들어하는 이런 때에 종교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허나, 불교가 이런 관례를 헛것이다, 무시하니 불교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쇠퇴하던 불교에서 따온 인도 수학이 어떻게 0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空)은 순야타(산스크리트어: शून्यता, Śūnyatā, 비어 있음 · 공허(空虛))를 번역한 것으로,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주장하는 공 사상(空思想)은 불교를 일관하는 기본 교의 또는 사상이다. 공 사상은 대승불교(大乘佛敎)가 흥기하게 되자 특히 《반야경(般若經)》 계통의 근본사상으로 강조되었다. 원래, 공 사상은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서 상좌부(上座部)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중심으로 주장된 법유(法有)의 입장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일체의 존재를 상의상대(相依相待: 서로 의존함)라는 연기(緣起)의 입장에서 파악하며, 일체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배격한 무애자재(無礙自在)의 세계를 전개하려고 한 것이다. 《반야경(般若經)》과 용수의 《중론(中論)》 등에 나오는 공 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된 인도 불교의 종파가 중관파이다. 중국 · 한국 · 일본 불교의 삼론종은 《중론》·《십이문론》·《백론》의 삼론을 연구 · 강술하는 종파로 인도 불교중관파에 해당한다.[1] 공 사상은 인도 대승불교의 이대조류인 중관파유가유식파 모두의 근저가 되는 사상이다. 유가유식파에서도 공 사상이 중시된 것은 유가유식파법상종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成唯識論)》의 서두에서 논의 저술 목적 중의 하나로, 이공(二空: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된 견해나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이공(二空)의 교의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이 해탈(열반)과 보리(반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2] 또한, 중국 · 한국 · 일본 · 티베트 등의 대승불교는 모두 인도대승불교를 바탕으로 하므로, 공 사상은 대승불교 전체의 기초적인 또는 근본적인 교의라고 할 수 있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EA%B3%B5%EC%82%AC%EC%83%81

       

     *** 졸립고,취해서 여기까지 쓴다. 한 방에 다 쓰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2부작이 되었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7 : 알파 오메가 전략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5 04:33

http://blog.naver.com/miavenus/70123142056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7 : 알파 오메가 전략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5

   

쑹훙빙 화폐전쟁을 읽으면서 인드라가 비판적인 대목이 몇 있다. 가장 큰 비판은 자료를 좀 더 보강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쑹훙빙이 인터넷에 있는 인월리를 읽고 영감을 받아 화폐전쟁을 집필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인월리가 내놓은 이슈를 그때 그때마다 써먹었다는  것이다.  ㅎㅎㅎ. 이를 전제하고, 국유본 출판사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쑹훙빙 화폐전쟁을 78 : 22로 읽을 필요가 있다.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뒤섞은 국유본이 만든 책이다. 책 팔아먹으려면 78의 진실을 섞어야 하니 그 78만 가려내는 작업을 하면 효과적인 책읽기일 것이다. 이러한 독서를 한다면, 쑹훙빙 화폐전쟁도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전제하고, 쑹훙빙 화폐전쟁을 비판하면, 한국 금모으기 칭찬한 것, 미쓰이를 과대포장하는 것, 스티글리츠를 안쓰럽게 옹호하는 것 등인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금본위제 운운과 달러의 종말 운운이다. 이런 것이 바로 22%이며, 이 때문에 국유본이 쑹훙빙을 동원하여 음모론을 설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헌데, 음모론 중에 흔히 등장하는 것이 수에즈 운하 사건이다. 쑹훙빙도 예외가 아니다.

   

http://blog.naver.com/taelinj/30104442521

   

예서, 다른 음모론과 국제유태자본론 차이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음모론은 사태에 직면한 이야기만을 한다. 가령 한국 외환위기 음모론도 보면, 외환위기 직전 일만 다룬다. 마치 자궁 움직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리티 포르노 쇼와 같다고나 할까. 눈앞에 돌아가는 것만 보여주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세세한 것을 따진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에 불과한 것이다. 그처럼 대다수 음모론 맹점은 큰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손쉽게 주류 이론의 논박에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면, 왜 큰 그림이 중요한가. 이는 앞으로 국유본이 어떤 일을 벌일 때 그 과정을 손바닥에 놓고 보듯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인월리를 많이 읽은 분들은, 요즘 뉴스를 보면, 왜 이리 국유본이 유치한 짓을 하는지, 세상 사람들이 어쩌면 이리도 어리석은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하면서, 지인들에게 말하는데, 지인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답답하다. ㅎㅎㅎ. 이건 인월리를 읽으면서 세상보는 법을 길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하루 아침에 될 것이면, 국유본이 왜 국유본이겠는가. 알아도 당할 수밖에 만든 것이 국유본 시스템인 게다. 그걸 알아야 한다.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왜 수에즈는 결국 로스차일드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일까. 국유본은 처음부터 수에즈에 개입할 수 없었다. 수에즈 이권은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 자본과 프랑스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유본이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는 수법을 잠깐 소개하자. 수에즈 운하는 공사가 계속 지체되었는데 이유는 뻔했다. 국유본의 사주를 받아 국유본 언론이 운하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한다 어쩐다 하고 비판을 해대었다. 공사가 지지부진하니 이를 통해서 수에즈 운하에 투자한 프랑스 자본을 크게 취약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유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임을 잘 간파해야 한다. 또한 영국에서는 수에즈에 관심을 지니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영국이 잘 나가는 이유는 대서양 무역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수에즈에 관심을 기울인다 함은 대서양 루트 대신 이전의 인도양 루트로 되돌아가니 세계 패권이 영국에서 다시 이태리, 혹은 프랑스로 되돌아가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다. 헌데, 이는 국유본이 기획적으로 인도에서 사건을 일으키면서 해소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도에서 국유본 기획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수에즈가 부각이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현지 통치 세력을 장악하는 일이다. 이는 사이드 파샤 때에 이루어졌다. 하면, 왜 사이드 파샤는 수에즈 운하를 찬성하였을까. 여기에는 크림전쟁을 비롯한 이해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국유본이 사태를 국지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 문제를 해결하고, 외교 문제를 해소하고, 정치 문제를 완결한 뒤에야 디즈데일리와 로스차일드가 만났던 것이다. 헌데, 대체적인 음모론은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다. 그저 특정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고, 이를 역사적인 흐름으로 펼치지 못하는 것이 그간 음모론의 결정적인 약점인 것이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104189031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국유본이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 공사를 방해했을 뿐더러 수에즈 운하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한다는 뉴스를 국유본 언론을 통해 선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목이 지나친 인드라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아니다. 아편전쟁을 일으켰던 국유본 하수인, 영국 보수당 팔머스틴의 외교만 봐도 알 수 있다. 팔머스틴은 보수당수이면서 유럽 국가와의 외교에서는 같은 보수당파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자유당파나 혁명파를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정책을 펼쳤다. 왜일까. 영국의 이익, 국유본의 이익을 위해서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인 게다.

   

바로 이것이 인드라가 발견한 알파 오메가 전략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장 한미 FTA만 봐도 알 수 있다. 국유본 입장, 오바마 입장에서 극한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한미 FTA가 체결하여도 한국 의회가 만장일치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의회 표결로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날치기쇼, 해머쇼, 공중부양쇼, 격투기쇼를 통해 체결해야 이익인 게다. 이 장면을 CNN이나 폭스 TV로 미국 안방에 생중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인 90% 이상은 FTA가 뭔지 모른다. 한국인 90% 이상이 FTA가 뭐가 뭔지 모르듯이. 그저 진영 논리로 FTA가 좋다, 나쁘다만 주절거리는 좀비가 대다수 한국인이다. 쪽발 놈현이 하면 FTA는 좋고, 이명박이 하면 FTA는 나쁘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세뇌시킨 것이 국유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좀비 미국인들 90% 이상은 한국이 저리 반대하는 것을 보니, 오바마가 모처럼 일을 잘 했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성탄절을 전후로 하여 사건을 터뜨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티브이를 볼 때, 이 장면을 하루 종일 보여준다면, 오바마 재선 득표율에 보탬이 될 것이다. 성탄절부터 다음 대선까지는 기간이 오래 걸리니 어쩌면 내년 대선 직전에 FTA 타결하라고 국유본이 쪽발 민주당에게 지시를 내릴 지 모른다. 아무튼 이런 짓거리하라고 국유본이 쪽발민주당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길거리에서 어용관변 진보좌파 아해들을 동원해서 FTA 반대하라고 쇼를 지시하는 것이다. 인드라가 분명히 말하지만, 위에서 지시받지 않으면 어용관변 진보좌파 아해들 절대 데모 안 한다. 국유본 지시가 떨어져야 한다. 인드라가 수십년 진보좌파 생활한 깨달음이니 쉽게 토달지 말자~! 이를 잘 알아야 한다. 이런 데모 하나 하는데, 돈 많이 든다. 이런 돈 어디서 나오나. 자금 흐름만 조사하면 다 나온다~!

   

인드라는 처음에 이 전략을 '골드스타인 프로젝트'로 명칭했다.

   

"때로는 과거의 사례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로마제국시대 금융 노예를 예로 든 것이다. 이 금융 노예들은 어린이들 중 총명한 재질을 보이는 이들을 뽑아 주인 자제와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한다. 오늘날로 치면 해외 입양아, 혹은 조기 유학생인 게다. 차이가 있다면, 조기 유학생은 집안 돈을 들여 노예를 택하는 것일 게다. 중국의 내시처럼 경제적 안락함을 보장하니까.

   

그런데 이런 노예가 주인이 예상한 길과 다른 길을 택한다면? 과연 그 길은 주인이 바라지 않는 길인가? 아니면 내심 바란 길인가? 주인을 오래하고 싶다면 노예의 다른 길을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만일 다른 길을 택한 노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노예에게서 받은 학습효과 만큼 그 노예의 주인은 다른 주인보다 오래도록 주인 행세를 할 것이다.

   

프로그램이 버전업이 되는 것은 불량품 때문이다.  이는 범죄자로 인해 법이 보다 발전한다는 맑스의 조크와 유사하다. 만일 범죄자가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법이 개정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국제유태자본이 단지 이름뿐인 '해방공간'이란 놀이터를 빌려주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불량품에 의지하여 자신의 프로그램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작업 중 하나인 게다. 국제유태자본이 지금까지 그 어느 세력보다 능력이 뛰어나므로 불량품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이를 조지 오웰의 골드스타인을 따서 '골드스타인 프로그램'으로 부르고자 한다.

   

국제유태자본은 대중이 이름뿐인 '해방공간'에 대해 적당히 의심하고, 적당히 즐기는 것을 바랄 것이다. 영화를 보듯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만일 전혀 의심하지 않거나, 전면 부정한다면 더 이상 놀이동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는 영화를 만나면,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영화보기를 멈추는 일을 겪는다. 해서, 영화는 적당히 자기 이야기를 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고는 한다.

   

만일 이 공간이 이름뿐인 '해방공간'이라고 해도 해방공간이라 명명되는 한, '골드스타인 프로그램'에 따라 예상치를 벗어난 과대, 과소로 나타나는 불량품이 있을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불량품은 되먹임을 거치면서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보다 정교해질수록, 동시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불량품이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마침내 완성을 위해 시스템이 불량품을 제거하고 완성되는 순간, '노예화 프로그램'은 너무나 완벽해서 때가 되면 익룡처럼 변화에 무력해질 것이다. 당장 불필요하게 보였던 불량품은 당대 특정 계급의 관점일 뿐, 그들이 인간 사회와 자연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량품 역시 인간 사회와 자연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불량품이 제거된다면, 시스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035990382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해서, 이 쥐가 월북할 수 있는 길을 내준다. 다만, 그냥 보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 쥐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또한, 그 쥐가 월북한 곳에는 이미 고양이에게 세뇌된 뽀그리 쥐가 다스리는 쥐 세상인 게다. 그 쥐 세상에서 쥐를 자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인드라는 알파 오메가 전략을 초기에는 심리전 전술 차원으로서의 노예화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허나, 수에즈 사태, 남북전쟁, 보어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역사적 사례들을 연구하면서 이 문제가 단지 노예화 프로그램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며, 노예화 프로그램은 큰 그림을 응용한 세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고, 그 명칭에 영향을 준 것은 한 편의 영화였다.

   

영화 '오퍼레이션 엔드 게임'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7149

    

이 영화는 대부분이 액션이지만, 액션을 제거하고, 설정만 보면 된다. 미국의 숨겨져 있는 정보기관이 있는데, 이 정보기관은 두 부서로 나눠져 있다. 알파와 오메가. 알파는 중동에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오메가는 알파 일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알파 팀이 중동에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허나, 왜 오메가 팀이 알파 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것일까.

   

국유본이 중동에서 목적하는 바는 전쟁 승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전쟁처럼, 베트남 전쟁처럼 중동에서 오래 오래 전쟁하는 것이다. 전쟁을 오래 끌기 위해서는 때로 적군에 작전 정보를 넘겨야 하고, 국내에서는 반전 단체를 남모르게 후원해야 하고, 국유본 언론에 지시하여 연일 폭로를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알파 오메가 전략인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다. 허나, 때로 픽션이란 나무만 보던 이들에게 살짝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사태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서, 인드라는 힌트를 얻어 '알파 오메가 전략'이라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 문자와 마지막 문자로, 전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말이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이며 나중임을 뜻한다. 즉 창조자이며 완성자임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자신(요한계시록 1:8, 21:6) 또는 그리스도("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요한계시 22:13)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요한계시록》 1장 8절과 17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요한계시록》 21장 6~7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알파와 오메가 [Alpha and Omega ] | 네이버 백과사전

   

 하면, 왜 알파 오메가인가.

   

국유본이 구약을 집중 연구한 뒤 야훼처럼 세상을 지배하기로 작정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구약을 보면, 인간을 노예화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단, 야훼 신 입장에서.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295

   

인간이 멍청하기는 하다. 조금만 배가 불러도 신을 잊고 다 자기가 잘 한 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삼 일에 한 번씩 두들겨 패야 인간이 정신을 차린다고 말해야 하나? 다른 방안은 없다고 본 것일까?

   

구약을 보면, 유태인이 불쌍할 지경이다. 어떻게 신을 만나도 야훼 신 같은 신을 만나 맨날 시험을 당해서 고생만 하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악마와 내기를 해서 믿는 자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압권이다. 왜 믿는 인간을 괴롭히나. 그 믿는 인간 마음을 모른 데서야 어디 신인가. 그 인간을 시험하기 보다 악마를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않나? 왜 신은 악마를 놔두고 인간만 괴롭히는 것인데?

   

이것이 보통 인간의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난 이제 기독교 안 믿을 거야, 야훼는 너무해, 엉엉!!! 이러고 만다.

   

허나, 국유본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야훼가 되자!!!

   

해서, 국유본은 구약을 깊이 연구하여 인간 경영법, 조직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알파 오메가 전략인 것이다.

   

하면, 알파 오메가 전략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나,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이들과 관계를 맺어라. 신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당대 로스차일드 가문 활동을 지켜본 이가 보고하길, 로스차일드 가문이 손길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했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 주요 권력인 교황과 왕을 모두 장악하기 위해 아들은 교황 후보로, 딸을 왕비로 만들고자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 역시 정경유착없이 부를 축

적할 수 없다 보았다. 허나, 이전 부호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당장은 모든 이들과 관계를 맺기 어렵다. 하면, 방안은? 현재 권력을 장악한 권력뿐만 아니라 앞으로 권력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 권력도 후원했던 것이다. 허나, 누가 차기 권력자일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구약에서 힌트를 얻는다. 예언자다. 예언자를 포섭하라. 예언자는 언로를 원한다. 하면, 국유본은 언론사를 만들고, 이 언론사를 통해 예언자를 지배한다.

   

둘,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이들과 평생 관계를 맺어라. 신은 평생 사람과 함께 한다.

   

교육의 중요성이다. 교육을 장악하면, 예언자를 장악할 수 있다. 첫번째 과정은 예언자를 돈으로 매수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언론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예언자가 발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면, 방안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서, 국유본의 하위 기관 전교조를 통해서 학생들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하면, 왜 전교조인가. 젊은 날, 인간 두뇌는 감정적이고, 부정적이다. 소심하고, 자기 학대 성향이 있고, 세상에 비관적이다. 이를 이용한 방식이다.

   

인간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인류애를 실현한다. 1% 이내의 인간은 영웅적 행위로 인류애를 드러낸다. 22% 이내의 인간은 '기브 앤 테이크' 규칙에 입각하여 받는 것 만큼 준다는 행위로 인류애를 보여주려 한다. 마지막으로 100% 이내의 인간은 배신자 색출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인류애를 실현한다.

   

하여, 국유본은 국유본 하위 기관 전교조를 통한 세뇌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전교조가 여러분 학생 편이라고? 그들은 국유본 편일 뿐이다. 전교조가 국유본을 배신하는 순간, 전교조는 48시간 이내로 즉각 해체하고, 다른 조직이 대체할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 세상 인간들이 하소연하는 것들이 그 아무리 비논리적일지라도 편을 들어주어라. 단, 그 편이란 100% 이내, 78% 이내, 1% 이내 각각 달리해야 한다.

   

셋, 불가능한 꿈을 약속하고, 가급적 들어주지 마라. 인간이 보기에 신이란 예측 불가다.

   

부자로 만들어주겠다.

   

미인으로 만들어주겠다.

   

천재로 만들어주겠다.

   

불로장생하게 만들어주겠다.

   

약속을 남발한다. 단,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깨알같은 글씨로 조건문을 단다. 결과는, 늘 인간의 무지함, 게으름, 사소한 실수로 그 약속이 영원히 이루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약속이 이루어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

   

독재권이 있었다. 로마시대에 비상대권이라 하여 위기상황 때 한시적으로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주는 것이다. 허나, 로마시대에 독재권이 발동한 때는 거의 없었다. 또한, 그 기한도 6개월 등 매우 짧았다. 헌데, 이를 본따서 주장한 것이 파리 콤뮨을 통한 노동자 독재이다. 허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가톨릭 교회에서 보듯 영구적인 독재였다.

   

세상에서 공산주의가 오지 않기를 가장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 뽀그리 놈정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세상이 오면, 뽀그리 놈정일 권력을 즉각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룻밤에 백만불씩 뿌려대고, 기쁨조와 환락을 즐기는 기쁨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만다.

   

데이비드 록펠러와 국유본 귀족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빌더버그 회의에서

신질서 세계로의 이행을 주장했다. 허나, 그의 속마음은 신질서 세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인드라는 확신한다. 그래야 데이비드 록펠러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약속하되,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자크 데리다의 '차연' 개념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신조어로 그의 독자적인 비평작업인 해체비평의 관건이 되는 비평 용어이다. 자크 데리다에 따르면, 'differance(디페랑스)'는 프랑스어 'difference(차이)'의 어미 '-ence'를 '-ance'로 바꾸어서 만든 것으로, 그의 해체적 반인식론(anti-epistemology)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련어들을 지칭하기 위한 독특한 조어이다. 이 관련어에는 '다르다(differ)'라는 의미와 '연기하다 ·지연시키다(defer)'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 'differer(디페레)'가 포함되어 있다. 즉 'differance(디페랑스)'는 동음어인 'differer(디페레)'가 결합되어 만들어졌음을 알리기 위해 어미 '-ence'를 '-ance'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차연은 차이(변별성)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연기 또는 지연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자크 데리다에게 있어서 단어도 아니고 개념도 아닌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차이 ·지연)를 모두 작동시키며, 어떤 순간에도 어느 한쪽만의 의미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즉 'difference'의 'e'에서 'differance'의 'a'로의 미묘한 이동은,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자크 데리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차연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사전에서 단어의 정의를 찾는 원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떤 단어는 그것이 아닌 다른 단어에 의해, 즉 단어들간의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데,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등 이런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차연이라는 용어 자체도 자크 데리다의 용법에서는 불안정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용어를 확정된 개념으로 고정시켜 사용한다면 이 용어가 지닌 효력과 불확정성에 대한 강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출처] 차연 [差延 ] | 네이버 백과사전

   

어쩌면, 인드라가 칼 맑스, 자크 데리다에 심취한 까닭에 국제유태자본을 발견하여 국제유태자본론을 정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인드라는 평생 이런 일을 기다려왔다. 내 인생을 몽땅 어딘가에 쏟아붓는 것을 말이다. 젊은 날, 그런 이들 볼 때마다 부러웠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는데, 인드라가 국제유태자본론을 정립하면서 찾은 것이다. 아, 신이 인드라더러 국제유태자본론을 정립하라고 길을 여신 것이로구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게다.

   

정리하자. 이 방식은, 직장서부터 국가, 세계까지 써먹을 수 있는 악마의 계책인 것이다. 허나, 바로 이러하기에, 국유본은 이 방식으로 돈을 벌고, 권력을 취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뭔가 확실히 돈벌이가 될 것을 알았다면, 이것이 확산되기를 바라겠는가?

    

해서, 알파 오메가 방식이다.

   

용산, 강남(한전), 평창, 새만금, 가덕도, 송도, 세종시...

   

특정 지역이 개발된다는 소식은 특급 호재이다. 해서, 한나라당에서 쪽발민주당까지 발을 담그고 정보 탐색을 하던 아해들이 한 방에 부자가 되는 정보라 여겨 친지 돈, 사채 돈까지 끌여들여 특정 지역 땅을 지분 쪼개기까지 하며 산다. 대개 이들 정당 지역당들은 건설업자, 부동산업자 판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이권이 있고, 이권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

   

헌데, 사태가 제대로 되는 적이 있던가? 절대로 없다.

   

국유본은 결코 당신과 이익을 공유할 생각이 없다. 물론 국유본이 아직 시장을 장악하기 전이라면, 여러분에게 간이라도 빼줄 듯한 포지션을 취한다. 국유본이 한국 주식시장을 지배하기 전까지 딱 이랬다. 허나, 국유본이 한국 주식시장을 접수한 다음에는 태도를 백팔십도로 달리한다.

   

해서, 국유본이 수에즈 운하 사업권을 따내듯, 국유본은 기다릴 것이다. 여러분들이 알박기한 것을 모두 토해낼 때까지. 그런 이유로 국유본이 용산 참사를 이명박과 쪽발 진보좌파들을 동원해서 일으킨 것이다. 용산 참사 뿐일까.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여러분들은 신용 미수를 저질렀다 헐값에 내놓을 것이다. 국유본은 이를 조용히 사들인다.

   

국유본이 돈을 버는 건 액면 5,000원 짜리를 만원, 이만원에 가는 데에 있지 않다. 그래봐야 두세배 장사이다. 국유본이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액면 5,000원 짜리를 투매를 일으켜서 100원대까지 만들어서 매입한 뒤, 천 원, 이천 원 정도에 파는 것이다. 78%만 먹는 것이다.

   

알면서 당한다. 정보를 알아도 여윳돈이 없어서 신용 미수를 저지르기에. 결국 정보를 독점하고, 자본을 지배하는 자가 게임의 승자가 된다. 국유본은 이처럼 백프로 승률 게임에 참가하는 셈이다.

   

국유본은 성경을 통해 국유본 귀족에게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기독교와 이슬람인과 유사종교는 교인에게 유태인의 똑똑한 노예가 되는 것을 가르쳐서,

나머지 인류를 지배한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6 : 국유본 종교는 뉴에이지인가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4 04:03

http://blog.naver.com/miavenus/70123043781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6 : 국유본 종교는 뉴에이지인가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4

   

로스차일드 가문 종교는 유대교이고, 록펠러 가문 종교는 침례교이다.

   

하면, 유대교란 어떤 종교인가. 인드라는 유대교를 크게 세 개의 종파로 보고 있다.  그 분류를 인드라 식으로 한다.

   

첫째, 시오니즘파이다. 이들은 민족주의로 무장한 마카베나 열심당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목표는 지상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하고, 유대교 권위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기여분 만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모세 시대에는 레위파, 솔로몬 시대에는 사독파, 바빌론 유수 시대에는 바리새파, 하스모니아 시대에는 마카비파. 하면, 현대 이스라엘 시대에는 당연 로스차일드파^^! 해서, 노비네파 중 유태인들 종교를 보면, 시오니즘파 유대교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로스차일드 가문 중에는 빅터 로스차일드만 시오니즘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빅터 로스차일드도 바리새파였을 것인데, 이차대전 이후부터 시오니즘파가 된 듯싶다. 그래서인지 빅터 로스차일드가 누구보다 강렬하게 신세계 질서(NWO)로 가고자 했다고 보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인드라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국유본 귀족들에게 왕따를 당해 권력에서 축출당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둘째, 바리새파이다. 바리새파 유래는 조로아스터교에 있다. 인드라는 이들 뿌리를 카르타고/페니키아인에게 두고 있다. 인드라는 카르타고/페니키아인이 로마에게 멸망당하고, 마케도니아인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바리새파로 개종한 자들로 보고 있다. 이들은 로마제국과 투쟁하는 마카베를 지지했으나, 마카베 가문이 세운 하스모니아 왕조에는 가담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이들 목표는 천년 왕국이 아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와 마케도니아에 대한 역사적 복수가 있지만, 정치적인 목표란 어디까지나 세계 경제 권력 장악의 하위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국유본 귀족 유태인들은 바리새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말로만 신세계 질서(NWO)를 내세우나, 내심은 그 누구보다도 신세계 질서가 오지 않기를 바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현 세계 질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이들에게 유리한 데다 종교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낫다고 보고 있기에. 

   

아울러 특기할 것은, 세계 종교 일치 운동 같은 것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면 바리새파이다. 뉴라이트 요한 바오로 2세가 빌더버그에 참석했었다.

   

셋째, 카발라파이다. 카발라파는 조하르에 바탕을 둔다.

   

"1280년대에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2세기의 시메온 벤 요하이의 저작으로 알았으나, 뒤에 13세기의 모세스 데 레온 작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신(新)플라톤파의 출발론에 근거한,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내용을 계시하는 신지학(神智學)에 관한 책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불가지(不可知)의 존재로 취급되어 있다. 또한 하느님은, 우선 원인간(原人間:아담 카드몬)을 통해 자기를 계시하고, 그 원인간은 이성(理性)·사랑 등 열 가지 세피로트(數)로 되어 있는데, 이 세피로트로부터 먼저 순수 형상계(形相界)가 태어나고, 다음에 천계(天界)가, 마지막으로 물적 행위의 세계가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출처] 조하르 [Zohar ] | 네이버 백과사전

   

카발라파 특징은 기독교는 물론 더 이상 유대교로 간주할 수 없을 정도로 유대교와 거리를 두며, 시오니즘파나 바리새파가 믿는 야훼를 인격신으로 보아 불완전한 신으로 간주하고, 아인소프 신을 최고의 신으로 본다. 아인소프 신은 힌두교의 브라흐만과 유사한 신으로서 만유재신론  - 독일의 철학자인 크라우제(K. Ch. F. Krause, 1781~1832)의 용어. 범신론과 같이 신과 세계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만물이 신(神) 속에 내재한다고 하는 입장. 스피노자, 말브랑슈의 사상도 여기에 속한다. - 이라 할 수 있다.

   

   

미드 X 파일 남자 주인공 폭스 멀더를 드라마에서 보면, 여타 신흥 종교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우주적 에너지와 같은 데서는 반응하는데, 이는 이 드라마를 만든 제작자가 카발라파이거나 최소한 작가가 카발라파임을 시사한다 할 것이다. 참고로 폭스 멀더를 연기한 데이빗 듀코브니도 유태인이다. 가수 마돈나도 유태인이 아니지만, 카발라에 심취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밥 딜런도 유태인이다.

   

특히 카발라파는 20세기에 들어서서 인도 힌두교와 티벳 불교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신지학과 뉴에이지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부분 뉴에이지는 카발라파가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골드만파들이 카발라파 성향이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시오니즘파가 고전적 성향이라면, 바리새파가 모던한 성향이고, 카발라파는 포스트모던 성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회중교회 침례교란 어떤 종교인가.

   

유태인은 시나고그라는 회당에서 예배와 토론을 한다.  만일 시나고그가 없다면 유태인은 어떻게 할까. 일부 유태인은 침례교를 간다 한다. 유태인이  침례교가 가장 유대교와 유사하다, 구약을 잘 설명한다는 속설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침례교는 어떤 종교인가. 칼뱅의 예정설을 믿는다는 점에서 예수장로교와 같다. 차이가 있다면, 교회 바깥 입장에서 보면, 침례교회의 일반적 신학 원리는 없다고 할 만큼 중구난방이라 평가한다. 허나, 정작 침례교 내부에서는 해석하는 데에는 매우 자유롭지만, 보다 보수적인 해석을 취한다고들 한다. 가령 그들이 자유주의적이라고 칭할 때의 자유주의란 다른 교회에서 보수주의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침례교가 각 교회를 수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교회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유대교와 흡사하다.

   

록펠러 가문 종교가 침례교인 이유는 록펠러 1세 어머니가 독실한 스코틀랜드 침례교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카터, 클린턴이 모두 침례교이다. 처음에는 노예민주당이 본디 남부에 근거해서 남부 침례교인이 많았다는데, 데이비드 록펠러가 공화당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공화당에도 침례교도가 많아져서 대통령 예비후보로도 나온다고 한다.

   

해서, 인드라가 정리하기로는, 국유본 귀족들이 딱히 특정 종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자신들을 은연중 그리스 올림푸스의 신이나 힌두교의 무수한 신 중 하나인 인격신으로 보는 것같다. 그런 이유로 존 콜먼이 올림푸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이런 점에서 국유본 귀족들 사이에서는 뉴에이지적 흐름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면, 뉴에이지는 무엇인가.

   

   

   

길가는 자의 빛

http://www.cowhiterose.net/bookinside/bookinside_list.htm

   

   

인드라가 볼 때, 뉴에이지하면 신지학회부터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신지학회라고도 한다. 신비주의 종교철학인 신지학(神智學)은 고대부터 있어 왔는데, 근대에 들어 신지학이 융성해진 것은 러시아 귀족 출신 여성인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에 의해서였다. 블라바츠키는 1875년에 미국에서 헨리 스틸 올콧(Henry Steel Olcott) 대령과 함께 신지학 교리에 바탕을 두고 모든 종교의 융합과 통일을 목표로, 신지학회를 창설했다.

   

인종·성·피부색의 구별없이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형성하며, 종교·철학·과학에 대한 비교 연구를 권장하고, 설명되지 않은 자연법칙과 인간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이 학회는 스스로를 완성하여 인류의 영적인 진화를 지도하는 위대한 스승들(Great Masters)의 존재를 강조했다.

   

1878년 이 학회는 인도의 마드라스 교외에 있는 아디아르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했으며, 19세기 말에는 인도의 여러 지방과 유럽에까지 이 학회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한편 블라바츠키와 올콧이 떠난 뒤 쇠잔했던 미국의 신지학회는 윌리엄 Q. 저지(William Q. Judge)에 의해서 다시 활성화했으며, 그는 미국지부를 신지학 국제운동의 가장 활발한 단체로 만들었다.

   

1896년 창설자 블라바츠키가 죽자, 올콧과 저지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신지학은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896년에 저지가 죽은 뒤, 미국 신지학회는 캐서린 팅리(Katherine Tingley)에게 이어졌으며 1951년에 미국본부를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로 옮겼다.

   

인도의 신지학회는 1889년에 영국의 여성운동가인 애니 베전트(Annie Besant)가 입회하면서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맞았으며, 1907년에 국제운동을 지휘하던 올콧이 죽은 뒤, 지도자의 자리는 베전트에게 물려졌다. 그녀는 고대 인도의 문화와 전통을 재인식시키고 고전교육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바라나시에 학교(바라나시 힌두 대학의 전신)를 설립했다.

   

1911년 베전트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았던 청년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를 인류를 지도할 '위대한 스승'으로 선포함으로써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스로 그 주장을 철회했으며, 20세기 전반을 미국과 유럽에 머물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가 신지학에 바탕을 둔 글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인간을 해탈시켜 신에게 향하게 하는 길을 추구하며, 힌두교를 비롯하여 불교·자이나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전통을 받아들인 이 학회는 20세기 초반 이후 쇠퇴 기미를 보여오다가, 최근 밀교(密敎)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본부는 인도의 아디아르에 있다. "

[출처] 신지학협회 [神智學協會, Theosophical Society ] | 네이버 백과사전

   

헌데, 한국에서 뉴에이지 이론을 가장 잘 정리한 곳이 이곳, 길가는 자의 빛이 아닌가 싶다. 우주와 생명나무, 물질의 궁극 원자 아누, 아스트럴계 이 세 권만 읽으면, 뉴에이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듯싶다.

   

   

   

   

http://blog.daum.net/discern/49

   

   

뉴에이지를 비판하는 사이트로는 evergreen의 분별 블로그를 추천한다. 인터넷에서는 무수한 뉴에이지 비판 사이트가 있다. 허나, 대부분 허접하다. 출처도 불분명한 데다 내용도 부실하다. 반면 에버그린은 오늘날 뉴에이지 흐름을 번역을 통해 잘 포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없지 않다.

   

하나, 예장 합동 교회를 섬기는 평범한 신도라고 한 까닭에 기독교적 입장에서 뉴에이지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블로그의 장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기독교도가 아닌 이들이 읽는다면, 기독교적 뉴에이지 비판이 오히려 뉴에이지에 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둘, 에버그린의 블로그 장점은 다른 종교에 대한 비판을 가급적 삼가한다는 것이다. 가령 덧글에서도 증산도 비판 같은 걸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독교 내부에 대해서는, 그것도 국내 기독교 보수파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라 볼 수 있다. 가령 조용기와 같은 큰 교회 목사라든가 뉴라이트 김진홍 비판이 예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역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국내 기독교 자유파, 진보파도 비판 대상일 터인데, 언급을 잘 하지 않는다.

   

인드라가 보기에 에버그린 태도를 두 가지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신앙에 기초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는 인드라가 정치 비판에서 쪽발 돼중과 쪽발 놈현을 중점적으로 비판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가까이 있는 자들부터 비판하는 것이 순리인 게다. 신약에서도 보면, 성향이 유사한 바리새인과 예수가 논쟁을 많이 했다. 반면, 예수는 레위파나 사독파와는 논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사독파도 예수가 메시아다, 라고 하는 데에서만 비판적이었지, 예수 교리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이유는 자신들과 많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단이란 닮은 꼴이어야 하는데, 바리새파와 예수 사이는 서로 이단이다, 이런 논쟁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예수와 사독파 사이에서는 이미 기독교와 이슬람교처럼 갈라섰다고 할 수 있기에 별다른 논쟁을 불필요하였던 셈이다. 그처럼 에버그린 역시 기독교 자유파 진보파나 기독교 다른 종파나 증산도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신자로 위장해서 오히려 기독교를 엿먹이려는 국유본 간첩일 가능성이다.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보다 스무배 빨리 전파한다. 이를 노리고, 국유본이 뉴에이지를 오히려 파급시킬 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교회 보수파 젊은층을 대상으로 역전도에 나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심은 뉴에이지 전파인데, 겉으로만 비판하는 격인 게다.

   

가령, 에버그린은 뉴라이트 뉴에이지 국유본 간첩 가능성이 큰 도올을 적극 비판해야 하지만, 침묵하는 것이 이상하다. 인드라가 보기에 다른 이들도 문제이지만, 도올만큼 또라이가 없기 때문이다. 국유본 언론에 나와서 헛소리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영향력이 큰가.

   

다만, 강조할 것은, 국유본은 현재 뉴에이지이건, 기독교이건,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장합동 교회는 예외일까 회의적이다.

   

아무튼, 인드라로서는 현재로서는 그 어떤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에버그린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개인주의적 영성 추구로서의 뉴에이지 운동

http://blog.naver.com/artnouveau19/140119286035

   

마지막으로 뉴에이지 운동 현황을  쓴 글이다. 이 글은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을 학문적으로 거리를 둔 채로 역사적으로 개괄한 글이라는 점에서 평가할만한 글이다.

   

정리하면, 인드라는 국유본 인물들이 죄다 뉴에이지라고 보지 않는다. 허나, 상당수는 뉴에이지이거나 뉴에이지에 호감을 가질  것으로 본다. 또한 국유본을 공통적으로 묶는 종교가 없다고 본다.

   

다만, 오늘날 국유본으로부터 나오는 종교 관련 음모론은 상당수가 유니테리언 교파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유본의 종교 부문 담당 조직이 유니테리언이 아닐까 보고 있는 것이다.

   

유니테리언은 유대교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학구적 종교집단으로 부상한 바 있다. 그대가 알든, 모르든 세계사의 변환은 종종 신흥 종교의 발전 여부를 고려하기도 한다. 뉴욕 시티대학(City University)의 연구자 코시민(Barry A. Kosmin)과 라크맨( Seymour P. Lachman)의 조사에 따르면 유니테리언의 49.5%가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며(상대적으로 유대교인은 46.7%, 천주교인 20%, 몰몬교도 19.2%, 침례교도 10.4%가 대학을 졸업) 불균형적이지만 전세계의 수준 높은 학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 5개 주의 주지사가 공공연하게 유니테리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종교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드라는 역대 미국 대통령을 모두 국유본이 임명했다고 본다. 그런 미국 대통령 종교는 제각각이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3.0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3 05:17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947062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3.0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3

   

둘, 유태적인 요인, 유태인 스페인 추방이다.

   

 http://yellow.pe.kr/110077766694

   

상기한 링크 하나면 그간 인드라가 주장해온 바를 잘 요약한 것으로 본다. 예서, 스페인 유태인이 어디에서 왔는가 질문할 수 있다. 인드라는 그간 이들이 카르타고/페니키아 유태인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본국인 페니키아가 무너지자, 카르타고로 본거지를 이동했다. 이때, 카르타고인이 카르타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스페인에도 있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전쟁 지역이 로마와 카르타고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만큼 당대 유럽에서 로마와 카르타고 스페인지역이 중동의 가나안 지역처럼 살기 좋은 지역이었음을 의미한다.

   

"11-1. 디아스포라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아스포라부터 알아야 한다. 디아스포라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 전치사 dia와 동사 '뿌리다'라는 의미의 spero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강제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했다. 가령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식민지 영토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스포츠 제전으로 오늘날 영연방국가들이 럭비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때의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인 의미였다.

   

헌데, 그간 고대 그리스인들이 정복지로 삼았던 소아시아와 지중해 동안에는 누가 있었는가.

   

"고고학상으로는 '가나안 시대'를 보통 기원전 2000-1200년으로 잡습니다.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니 "기원전 1200년 무렵"이 참 자주 등장하는데, 레반트 지역의 혼란으로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해안으로 밀려난 것이 이때이고,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이 이 무렵이고, 에게문명이 붕괴하면서 그리스가 암흑시대로 들어선 것이 이 무렵이고, 이집트에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왕조가 제20 왕조 (1185-1069년)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기원전 1200년 이후로는 '가나안'에 대한 언급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성서를 제외하고)."

http://blog.naver.com/miavenus/memo/70075724482

   

예서, 인드라는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유태인이 아니라 페니키아인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가나안에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페니카아인들이 정착해서 살았다. 이들은 기원전 2600년 정도에 예루살렘에까지 들어가 정착하고 지중해 동부 해안지대에 주로 도시를 건설하여 무역을 주업으로 생계를 잇기 시작했다. 기원전 1400년 경 페니키아인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키던 민족은 히타이트 족이었고 그 후 1200년 경에는 역사적 기록으론 남아 있지 않은 미상의 민족이 쳐들어와 페니키아인들이 살던 해안지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0년 정도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가나안 땅 남부에 살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페니키아인들도 가나안 북부 해안지대에서 타이어(또는 티레), 사이돈(또는 시돈) 등 해상교역도시를 발달시켰다. 당대 이 두 민족은 별다른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비교적 평화적 공존을 했다. 페니키아의 왕 히람은 동시대 인물인 이스라엘의 다윗왕과 솔로몬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구약성경에 나온다. 허나, 앗시리아 왕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기원 722년에 멸망시킨다. 또 페니키아의 중심도시 시돈도 678년에 함락시킨다. 

   

이때 목축업에 종사하던 히브리인들로서는 먼 지역으로의 이주가 용이하지 않았을 게다. 게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포기하는 것도 모세교에 합당한 것이 아니었을 게다. 반면 페니키아인은 어떠한가. 종교적으로 아무 제약이 없다. 또한 이전부터 항해술을 터득하는 등 원거리 상업활동에 능숙했던 페니키아인들로서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을 게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에서 볼 수 있는 튀니지 대목이다. 여기가 바로 페니키아 식민지인 카르타고이며, 이후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 한니발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026

   

인드라는 디아스포라라는 그리스어 기원에 유념한다. 지중해 역사에서 최초로 지중해 식민지를 건설한 족속은 페니키아인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카르타고이다. 이후 지중해는 헬라인, 혹은 그리스인들이 장악한다. 헬라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이 행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했을 게다. 해서, 가나안인더러 페니키아인이라 부르듯 페니키아식 식민지 건설 방식을 디아스포라로 불렀을 것으로 인드라는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수 이후 디아스포라가'이산 유대인''이산의 땅'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왜인가. 페니키아인이 카르타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은 능동적인 의미도 있으나, 남하하는 이민족을 피하는 피동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식민지를 개척하던 이들은 대부분 일제시대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처럼 본토에서 귀족에게 핍박받던 빈농이었다. 그들은 결코 자발적으로 해외 이주를 한 것이 아니라 본토에서 살기 힘들어서 불가피하게 이주한 것이다. 그리스 빈농들은 조선 후기 만주로 간 한국인처럼 황무지를 개척하여 옥토로 바꾸었던 게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셋, 자본적인 요인, 대항해시대와 가격 혁명이다.

   

이전에 인월리에서 언급한 내용을 정리해보자.

   

   

   

"리디노미네이션이란 무엇인가

"화폐 개혁(currency reform, redenomination, 통화 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절하는 일을 말한다. "

http://ko.wikipedia.org/wiki/%EB%A6%AC%EB%94%94%EB%85%B8%EB%AF%B8%EB%84%A4%EC%9D%B4%EC%85%98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가령 오늘날 대부분 화폐 거래가 세금내는 일이 아니면 백원 이하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해서, 잘 쓰지도 않고, 비싸보이기만 하니 백원을 새돈 일원으로 정하면 어떨까, 잘 거래되지 않는 백원 이하는 환이라는 명칭으로 세금 낼 때나 쓰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리디노미네이션이다.  

   

해서, 별 것 없잖아 여길 수 있다. 평양정권처럼 일정 액수 이상을 새돈으로 교환해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등가 거래이니 문제가 없는 것같다. 사실 일반 시민에게는 별 게 아닐 수 있다. 원래 지닌 것이 없는 이들이기에^^!

   

문제는 가진 이들이 되겠다. 게다가 음성 자금이어서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현찰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좌불안석된다. 한꺼번에 많은 자금을 들고 은행에 돈 바꾸러 가면 출처를 의심받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화교들이 돈 많이 벌었다며? 현금왕이라며? 나라 경제 살리려는데 자금이 부족하다. 이 음성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서 돈 좀 써야겠다. 이런 의도로 한국에도 과거에 화폐 개혁이 있었다. 허나, 결과는?  

   

실패였다. 왜 실패했나. 하나, 어차피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예외없이 음성자금, 지하자금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양지로 끌어올리려 해도 안 되는 돈들이 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된다. 전두환 비자금, 김대중 비자금을 찾을 수 있을까^^!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많이 지니고 있는 만큼 실력자여서 여러 곳에 보험을 많이 들어놔서 어떤 묘안을 짜내도 미리 정보를 알아서 대처하기에 찾을 수가 없다. 둘, 시민들 불안을 야기시킨다. 인간 심리란 묘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허나,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게다. 그간 돈이 돈 같지가 않네, 이럴 바에는 백원을 일원으로 하는 게 낫겠네, 외국 나가 환전하는데 태국 등 못 사는 나라 돈이랑 바꾸는데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하네, 뭐네 하던 이들이 막상 돈을 바꾼다면 어떤 반응일까.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사람 마음이다. 요상하게도 옛날돈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새돈이 낯설다. 무엇보다 경제의 중심을 이루던 화폐가 바뀌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새로운 가격에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장에 가서 천원어치 줘요, 하던 것을 어느날 10원어치요, 하는 것이 쉽겠는가. 실수도 많을 것이다. 거스름돈을 주다가 옛날 생각하는 바람에 백원을 준다는 것을 만원(새돈 백원)을 내줄 수 있는 게다. 인간 기억력이란 어찌 보면 잘 정리된 도서관 같은 것이다. 헌데, 중심적인 개념이 바뀌면 기억력이라는 도서관 장서들이 모두 꺼내 재정리를 해야 하는 게다. 셋, 시장이 혼란해진다. 인간 심리가 뒤늦게 반응하고 오랜 시간을 겪어야 적응하므로 적응 기간 동안에서는 시장 가격이 요동을 칠 수 있다. 넷, 화폐 변화로 인한 부대 비용이 증가한다. 과자봉지만 보더라도 백원이라고 적힌 것을 1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은행 전산시스템도 재조정해야 한다. 이외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기타, 우수리 돈을 떼먹어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것도 있는데, 이는 좀 웃긴 사례다. 어차피 지금도 우수리 돈을 떼어내게 되어 있으므로 이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한 듯싶다. 별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리디노미네이션, 혹은 화폐개혁이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요인 때문에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율이 높다. 단지 은행에서 새돈으로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짐바브웨나 북한, 1960년대의 한국처럼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가 아니다. GDP 1조달러에 육박하며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다. 하여, 냉정하게 따져보면, 현행 화폐 문제가 크지만, 화폐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것이 최상이다. 가령 한국과 비슷한 나라가 이태리가 있는데, 이태리 돈 리라가 선진국 돈 치고는 문제가 좀 있지 않던가. 그래도 이태리가 리라 돈 바꾸나. 못 바꾼다.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헌데, 이런 리디노미네이션을, 화폐개혁을 2000년대 김대중정권 때 국유본 직속부대인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검토한 이유는 무엇인가 말이다. 한국은행장 이성태나 산업은행장 민유성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이 아무리 그래도 실제적으로는 국유본이 임명하는 것이다. 계급이 낮더라도 국유본 직속 비서이기 때문에 목에 힘이 들어간 자리다. 해서, 이것은 정권 차원이 아니다. 국유본 차원인 게다. 해서, 이를 국유본이 왜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려는 것인가. 그 노림수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정권 차원이 아님에도 정권 차원에서 몰지각하게 이해하는 정치 술수에는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국유본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면, 사정이 뻔히 이런 데도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국가들은 무엇인가.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인 게다. 초인플레이션이 나거나 정권을 존속하기 위해서 등등. 해서, 극약처방인 게다. 급한 불은 끄겠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된다. 하여, 인드라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변혁적 깽판주의로 국유본 의도를 수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3-2. 가격혁명이란 무엇인가

만일 원론적으로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더 궁금한 선수분들이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 왜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가 되는가. 둘, 향후 리디노미네이션이 벌어진다면 그 파급효과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셋, 리디노미네이션에 대비한 재테크는? 

   

여러분의 취지는 알겠다. 해서, 인드라는 여러분에게 주문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평론가적 태도를 지금부터 집어쳐라. 돈벌고 싶다면 평론가로는 절대 땡전 한푼 벌 수 없다. 하면, 평론가적 태도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긍정적 마인드되겠다. 

   

오늘날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초인플레를 1970년대가 아닌 1930년대로 몰아가는 연유가 무엇인가. 국유본의 의도인 셈이다. 하면, 1970년대를 운운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아니다. 그것은 인드라처럼 경제학자에게 맡겨야 할 진실이다. 반면, 돈 벌고자 한다면 1970년대도 잊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도 잊어야 한다. 하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500년대 가격혁명 시대이다. 이 시기를 유념해야 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201389

   

가격혁명이란 유럽의 세계이성주의자들이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 광산에서 비합리적으로 착한 인디오들을 착취하여 은을 대량 발굴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포도시 광산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년 엄청난 금은을 가져왔다. 이것이 가격혁명이다.

   

왜 혁명인가. 하나, 이전까지 유럽은 아시아를 상대로 무역적자였다. 한마디로 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목재, 대구, 양모 등이 고작이었다. 반면 아시아로부터 수입해야할 품목은 무궁무진했다. 해서, 이 당시 유럽은 매우 가난했다. 허나, 가격혁명이 일어나자 상황은 백팔십도로 바뀐다. 금은은 아시아에서도 화폐인 만큼 어디서든 대접받는다. 드디어 유럽은 팔 물건이 생겼던 게다. 무역적자에서 무역훅자로 바뀐 게다. 둘, 중세온난기가 끝난 후 유럽경제는 재차 침체할 무렵이었다. 이 시기 가격혁명이 일어났으니 유럽민 생활이 크게 안정되었다. 인구가 급증했다. 셋, 은의 대량 유입으로 기존 거부인 푸거가문이 망하고, 신흥 거부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넷, 늘 국고 재정이 바닥이 났던 유럽왕실에 실탄이 풍부하게 제공됨에 따라 용병에 의존한 상시적인 전쟁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잦은 전쟁으로 각국 왕실은 파산을 거듭했다. 다섯, 십자군 전쟁 이후로 껀수가 없어 배 쫄쫄 굶던 상인과 공인들이 살판이 났다. 앗싸리하게 만들고 허벌나게 팔아댈 수 있었다. 여섯, 당연한 일이지만, 은값이 폭락했다. 물가는 치솟았다.

   

인드라가 화폐개혁을 말하면서 왜 가격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오늘날 전세계로 마구 뿌려지는 달러를 생각해보자. 달러는 가격혁명 시대의 은처럼 무한정 찍어내는 듯이 보인다. 그 달러로 세계 자산을 사들인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으로 치닫는다. 인플레이션은 십여년마다 한번씩 위기를 겪으며 해소가 되고 각국 재정은 점차 파탄으로 내몰린다. 국가와 시민들이 모두 빚에 쪼들리게 되는 과정에서 국유본만 사업을 벌여 막대한 이익을 획득한다. 하여, 국유본은 빚의 노예가 된 국가와 시민과 노예계약서를 맺는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예까지 읽으면, 인드라가 달러 비관론자 편에 섰는가 오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3-3. 로의 불환지폐 체제에서 오늘날 세계체제를 읽다

   

John Law

http://100.naver.com/100.nhn?docid=55259

   

17세기말 18세기초 존 로가 활약한 시대는 가격혁명 덕분에 중상주의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다. 이들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경제에서는 화폐가 인체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해서 화폐를 활성화시키면 그만큼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었다. 가격혁명 탓에 유럽 경제가 살아났으니 이런 믿음의 유력한 근거를 이루었던 셈이다. 

   

간단히 용어 설명부터 하자. 중농주의자는 농업을 경제의 심장으로 이해한 이들이다. 중상주의자는 상업을 경제의 핵으로 이해한 이들이다. 아담 스미스 이래 고전경제학은 내수보다 무역을 중시했다. 말할 나위없이 유럽에는 자원빈국인 반면 아시아는 자원부국이었다. 해서, 유럽은 군사력이 뒷받침된 무역으로 아시아 자원을 강탈하였다. 바로 이 현상을 주목한 것이 고전경제학이다.

   

유대인이어서 이븐 할둔의 저서 등 이슬람 저서를 읽었으리라 추정되는 동시에 일본 근대화의 주역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 증기기관의 와트, 일루미나티 폭로의 존 로비슨처럼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던 아담 스미스는 석탄과 금은을 비교하면서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 전세계, 특히 중국에서도 (교환)가치가 있는 상품임을 역설했다. 허나, 아담 스미스는 귀금속만 중시하는 중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스미스는 <국부론>의 첫머리에서 부는 "그 사회의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라고 규정하였다. 국민들의 연간 노동은 원래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자원이며, 그 생필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러한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로 다른 국민들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이것은 우선 중상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중상주의에 의하면 국부의 크기는 그 나라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정부는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관세와 규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장려금제도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수출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그 나라의 소비자를 희생시키면서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만 막대한 이득을 안겨 주었다. 스미스는 국부를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으로 규정함으로써, 마치 금,은의 축적이 생산의 목적인 양 간주하는 중상주의 사상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아울러 그는 상공업은 이미 생산된 부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데 불과하고 오직 농업만이 부를 생산한다는 중농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스미스는 글래스고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매일 생산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는 해마다 생산되는 부의 크기가 그 사회에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와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의 일반적인 숙련도와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http://www.cyworld.com/caulei/2145485

   

당대 아담 스미스 생각을 이끌었던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유럽 가격혁명을 이끌었던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산이다. 이후 스페인은 매년 막대한 양의 은을 유럽에 가져왔다. 이로 인해 그간 유럽이 아시아에 대해 팔 것이라고는 목재나 가죽 따위밖에 없어서 늘 적자였는데 - 가령 영국은 당시 팔 것이라고는 양모와 대구밖에 없었다 -  이런 유럽의 지위를 단숨에 역전시키는 가격혁명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중동 아라비아 상인에게 아시아의 질좋은 상품을 구입하고 은을 지불할 수 있었다. 헌데,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당대 유럽의 지배자,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푸거가문을 몰락시킨다. 푸거 가문은 메디치, 로스차일드, 록펠러 가문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양으로 치면 당대를 호령하던 황제를 만든 중국 진제국의 여불위였다. 당대 푸거 가문이 유럽 최고의 부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동유럽에 근거를 둔 광산업에 올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남미 포토시에서의 은광산 발견 이후 은이 대거 유럽에 유입한 이후 귀금속 시세 하락에 푸거 가문이 견딜 여력이 없었던 게다. 그간 푸거 가문이 정경유착을 통해 카를 5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이 광산업에서 얻는 수입인데, 광산업 수입이 급감하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게다.

   

http://ko.wikipedia.org/wiki/%EC%95%BC%EC%BD%94%ED%94%84_%ED%91%B8%EA%B1%B0

   

두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는 프랑스를 여행했고, 경제표를 만든 중농주의자 케네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다. 케네는 푸가 가문적인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의사 출신답게 경제를 인체 혈액 순환 흐름처럼 이해하여 실질적인 부는 농산물에서 온다는 경제표를 만든다. 유통 과정이 아니라 생산 과정을 중시하라는 관점이어서 이후 아담 스미스 뿐만 아니라 맑스와 레온티에프에 영향을 끼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51249

   

아담 스미스 사상은 하나, 전통 유태 학습을 통한 이븐 할둔과 같은 선진적인 이슬람 사상, 둘, 유통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중시하는 케네의 사상, 셋, 내수보다 무역을 중심으로 중상주의의 사상을 종합한 것인 셈이다. 상공인이 부유한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부유한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 요점이다. 허나, 그 맥락을 짚어보면, 상공인이 부유한 나라를 전제로 하여 국민도 조금 신경을 써달라는 이상적 요구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한 시대가 당대 유럽이었다. 해서, 각국은 부국강병에 힘을 기울였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대 프랑스 정부는 유럽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결과 국고가 파산지경이었다. 이때 존 로가 등장해서 국고 안정을 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프랑스 정부는 존 로의 주장에 솔깃하여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때 존 로가 한 사업은 무엇인가. 존 로 소유의 사설 은행에서 국가 보증의 불환지폐를 마구 발행한다. 또한, 회사를 설립해 주식발행으로 버블을 만들어낸다. 배당금을 주기 위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한다. 해서, 일시적으로 프랑스 경제는 대호황을 맞이했다. 예서, 핵심은 무엇인가. 이 모든 신용의 근거를 이루는 것은 신대륙에서의 금 발견이었다. 허나, 그것은 단지 소문에 불과했다. 간혹 한국 증시에서도 등장했다. 무명의 회사가 아무런 이유없이 상한가 행진을 한다. 작전이 들어간 게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프리카에서 금광 발견했다는 뉴스가 뜬다. 그 다음부터 폭락이다.

   

정체불명의 미국 루이지애나 금을 빙자한 세계 최초의 불환 지폐 소동은 비극적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동인은 존 로의 경제정책이라고 말하는 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 소동의 교훈은 무엇인가. 화폐량을 늘리면 일시적으로 경제가 산다. 이를 잘 표현한 것이 근래 이코노미스트 기사이다. 기사는 존로의 정책과 오늘날 미국의 양적완화 (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비교한다. 

   

하나,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를 관리한 것은 연준이 은행의 악성자산을 사주려했던 대책과 흡사하다.

   

둘, 미시시피 회사가 은행을 인수한 것은 미국 정부가 페니메 Fennie Mae와 프레디맥 Freddie Mac을 국유화 한 것과 같다.

   

셋, 화폐를 실물과 바꿔달라는 예금주의 요청이 쏟아지자 금은을 소지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한 사실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실제 시도된 적이 있다.

   

예서, 이코노미스트는 흥미롭게도 존 로를 평가한다. 존 로가 자동차산업과 같은 사양업종에 대한 지원에 치중하기 보다는 보다 더 미래 지향적인 벤처투자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존 로의 시도는 좋았다는 게다. 긍정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다시 말해, 현 국유본 경제팀은 케인즈 이래로 화폐신을 신뢰하고 있다. 사실 케인즈야말로 현물과의 등가 거래를 제한한 불환지폐 옹호자가 아니었던가. 그 덕분에 국유본의 항문 총애를 받아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쓰레기가 아닌가^^!

   

인드라가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인 작년 초부터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결코 신자유주의 폐기가 아니라고. 전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후기 신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차이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말한 바 있다. 불법적이나 수익성이 큰 피라미드 회사에서 합법적이나 수익성이 그만큼 박해진 피라미드 회사로의 이행이라고 말이다. 예서, 전기 신자유주의, 후기 신자유주의는 인드라가 세계 최초로 규정한 개념이니 오해가 없도록 바란다.

   

하면, 국유본 경제팀과 존 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존 로는 실제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뻥만 내질렀다. 반면 국유본 경제팀은 다양한 수단을 지니고 있다. 가령 존 로에게 불환지폐를 현물로 바꾸어줄 것을 요구한 고객은 보다 안전자산으로의 투자를 고려했던 게다. 하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은 무엇인가. 그토록 불안정하다는 미국 국채가 실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화제가 되었던 CDS로만 따져도 미국 국채가 안정적이다^^! 반면 북미회담을 노리며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원자재 투자전문가 닥터둠 마크 파버가 투자한 북한 국채는~!

   

예까지가 평론가적인 평가인 셈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존 로든, 존 도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버블은 시기마다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1998년 러시아 롱텀펀드 사태가 예다. 해서, 예상보다 아시아에서 피해가 적었고,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타격이 심한 것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인 셈이다. 여기에는 작은 변수로 인드라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제는 상식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하면, 북한 화폐개혁에서 인드라가 강조한 대목이 무엇인가. 북한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외부에서 지속적인 물자가 유입되어야 한다 했다. 그처럼 오늘날 경제상황은 미국 달러에 지속적인 자원이 유입되고 있다. 지탱하는 힘은 국채 판매되겠다. 국채 판매되는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혹자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IT산업, 생명산업, 녹색산업을 일으킨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허나, 인드라 생각은 다르다. 군사력이다. 미국은 전 세계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군사지출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상기한 IT산업, 녹색산업은 단지 명분일 뿐이다. 아편이 주인공이고, 영국 면직물이 보조역할이듯. 하면, 예서 보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

   

가격혁명 당시 국가는 전쟁 등으로 파산 위기에 늘 놓여 있었다. 반면 잉여물자를 바탕으로 공업과 상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민간 부문이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뭔 말이냐. 실질적인 충당을 중동이나 동아시아에서 획득하더라도 1990년대 IT혁명처럼 국유본은 명분이 필요한 게다. 예서, 국유본이 미국에 기대할 부문이 무엇이겠는가. 생명산업, 녹색산업이다. 예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는 게다. 또한 이 대목에서 국유본은 미국 이외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마련이다. 그 파트너가 반드시 종전과 같을 필요는 없다. 한국일 수도 있고, 인도일 수도 있고, 브라질일 수도 있다. 끝으로 국유본의 리디노미네이션 시도를 막을 수 없다면, 국유본에게 요구를 해야 한다. 한국에 삼십년 정도는 먹고살 신성장동력 산업을 달라고 말이다.

오키, 여기까지. 처음에도 말했거니와, 시기도 아니므로 다 말할 필요는 없겠다. "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2.0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3 04:30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946118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2.0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3

   

지난 글 화폐경제를 받아들이는 이는 매우 소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다만, 워낙 인드라 내공이 높아 뭔가 있겠지, 괜히 여기서 아는 척했다가 인드라 노림수에 걸려 인드라 카운터 펀치 한 방에 훅 간다 싶어서 침묵할 따름일 것이다.

   

여러분은 화폐경제란 화폐가 많이 유통하는 경제체제라고 하니 반문이 들 것이다.

   

http://coinblog.co.kr/257

   

http://coinblog.co.kr/258

   

당장 인드라더러 말하고 싶을 것이다. 당송시대에 있던 비전을 아느냐고 말이다. 또는 청나라의 표호를 아느냐고 말이다.

   

비전 [飛錢]

   

요약

당(唐) ·송(宋)나라의 송금 어음 제도.

   

본문

편전(便錢) ·편환(便換)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중기 이후 상품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운반하기 불편한 동전 대신에 보급되었다. 관청 이외에 민간의 거상(巨商)도 발행하

였는데, 당나라 현종 때는 정부가 이를 독점하였고 세금 ·차[茶]의 전매수입 등 재

정의 중앙집중에도 큰몫을 하였다. 송나라의 교자(交子) ·회자(會子) 등의 지폐는

이러한 어음에서 발달한 것이다. 

[출처] 비전 [飛錢 ] | 네이버 백과사전

   

인드라, 알고 보니 뉴라이트파 아니냐 의심할 이들 나타날 것이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47917

   

인드라는 한국의 앵거스 매디슨이다,라고 하면서 유럽 우월주의를 넘어서

인종주의가 아니냐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드라는 왜 중국과 조선에서는 상인들끼리만 거래했다는 식으로만 말하는가?

   

이에 대한 인드라 답변은 무엇인가.

   

의도적이었다. 논쟁을 일으켜서 앵거스 매디슨이 노리는 함정을 파헤치고자 했다.

앵거스 매디슨 방식 자체를 통해 오늘날 자본주의가 기괴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상기한 동서양 화폐 역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동양은 금과 은과 함께 쌀, 비단, 소금 등 다양한 화폐를 사용했다.

반면, 서양은 일찌기 금본위로 나아갔던 것이다.

   

하면, 여기서 왜 서양은 일찌기 금본위로 나갔던 것일까?

   

"BC 1830년경에 이 지역에 강력한 제국이 등장하는데 '바빌론'을 중심으로 한 바벨로니아 제국이었다. 바빌로니아는 상업과 천문학(점성술)이 발달하였고 관개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농산물이 넘쳐났다. 이렇게 발달된 상업을 위해 바빌론에서 처음으로 국가가 인정한 제대로 된 화폐가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금'과 '은'이었다. 바빌로니아는 주신(主神)인 '마르둑'(태양신)과 달의 여신'이난나'를 섬겼는데, 금은 태양신을 상징하며 은은 달의 여신을 상징하는 금속이었다. 즉 금과 은은 인간의 삶의 풍요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두 신인 마르둑과 이난나에게 바쳐진 것으로 그 신들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었고 그 신들의 정신을 반영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에서 금과 은은 신의 금속으로서 현물의 가치를 재는 가치 척도가 되었다. 이로써 금과 은은 세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즉 팔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금과 은을 가진 자는 힘과 권력을 거머 쥐었다. 그리고 이 힘은 그들 신들의 축복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신성한 금속으로 여겨졌던 금과 은은 함부로 일반인들이 유통하거나 다룰 수 없었다. 사제들이나 귀족에 의해 다루어졌고 주로 신전에 보관되었다. 금은이 보관된 신전은 곧 은행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금은을 직접 가지고 있기 보다 보관이 쉬운 신전에 보관하고 대신 사제들은 '보관증서'(정확히 말하면 종이가 아니라 점토판)를 써주었다. 이 보관증서는 금은을 대신해서 화폐처럼 시중에 유통되었다.

   

뿐만 아니라, 은행가의 역할을 한 사제들은 금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농민들에게도 이 보관증서를 써주었다. 즉 최초의 대출을 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사제들은 농민들에게 '이자'를 받기 시작했다. 이자의 시작이었다. 복리로 받았던 이자의 원리는 요즘 우리가 말하는 '피보나치 수열'의 원리였다. 피보나치 수열이란 토끼 한 쌍의 번식 원리를 말하지만, 당시에는 대출한 금액을 염소로 환산하여 염소가 새끼를 낳아 번식하는 만큼 이자를 받았다고 한다. 경제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화폐에 '기회비용'을 적용한 것이다.

   

요즘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자의 개념은 사실상 화폐에 생명 번식과 풍요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역할, 즉 교환의 매개로 그쳤어야 할 화폐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이다. 화폐가 화폐를 낳는 산업, 즉 금융업이 시작된 것이다. 화폐의 소유가 더 많은 화폐의 소유를 가져오는 '돈 놓고 돈 먹기'의 삶의 방식이 인간 정신과 사회 안에 광범위하게 침투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던 탐욕의 본성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자를 금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자는 우상의 정신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http://cafe.naver.com/fivevirgins.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3&

   

예서, 바빌론 화폐 시스템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서양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13&docId=189841&qb=7Y6Y64uI7YKk7JWEIO2ZlO2Pk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rbis35Y7vdssZTogt4ssc--061650&sid=TrF9OfJasU4AAGb6HVA 

   

"달란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달란트는 헬라어 '탈란톤'(talanton)의 번역[1]으로, 고대 서아시아 그리스(헬라)에서는 질량 화폐의 단위로 쓰였다. 고대의 바빌로니아수메르에서는 1 달란트는 60 미나(마네)이고, 1미나는 60 세겔인 체계를 사용하였다. 고대 로마에서는 1 달란트는 100 파운드였는데, 1 파운드는 1 미나보다 작다. 화폐의 단위로 사용될 때의 달란트는 1 달란트(은달란트를 쓰기도 함)의 가치를 말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 달란트는 20kg에서 40kg정도이며, 보통은 33kg정도라고 말한다. 2005년의 금의 국제 가격은 1 그램당 약 $15로서, 이 가격을 적용하면 1 달란트 (33kg 적용)는 약 $500,000 (약 4.7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환산된다. 달란트는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서 25장 14절에서 30절에도 나오는데, 성서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마태오교회가 부유한 유대기독교(Jewish Christian)[2] 공동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면 달란트는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황제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3만달란트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3]"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어딘가 자본주의 설명이 부실해 보인다.

   

"현재 서유럽과 미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체제'라는 경제체제 아래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체제가 발생한 것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이 경제체제는 16세기 무렵부터 점차로 봉건제도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18세기 중엽부터 영국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점차 발달하여 산업혁명에 의해서 확립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와 독일과 미국 등으로 파급되었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처음에 사회주의자가 쓰기 시작하여 점차 보급된 용어인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명확한 정의(定義)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란 말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윤획득(利潤獲得)을 위한 상품생산이라는 정도의 뜻으로도, 단순히 화폐경제(貨幣經濟)와 동의어로도 쓰이며(이 경우 부분적으로는 고대와 중세에도 자본주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대하여 사유재산제(私有財産制)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경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K.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등으로 보았다. W.좀바르트는 자본주의체제란 '서로 다른 두 인구군(人口群), 즉 지배권을 가지며 동시에 경제주체인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가 시장에서 결합되어 함께 활동하는, 그리고 영리주의(營利主義)와 경제적 합리주의(經濟的合理主義)에 의해서 지배되는 하나의 유통경제적 조직(流通經濟的組織)이다'라고 정의하였다.

   

M.베버는 근대자본주의는 '직업으로서 합법적 이윤을 조직적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라고 정의하였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란 상품생산에 의해서 이윤을 획득하려고 하는 정신적 태도를 말하며, 자본주의체제 또는 자본주의경제란, 이와 같은 태도하에서 상품생산이 이루어지는 유통경제조직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①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② 모든 재화에 가격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 ③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것, ④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것, ⑤ 생산은 전체로서 볼 때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자본주의 [資本主義, capitalism ] | 네이버 백과사전

   

뭔가 이상하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사유재산제가 바탕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또한, 모든 재화에 가격이 있다는 것,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 생산을 한다는 것,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것,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 모든 특징들이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는 과연 없었나? 이러한 특징들은 화폐 경제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사항이 아닌가.

   

이런 의문에 누군가는 산업혁명을 말한다. 허나, 동양에 없는 증기기관을 만들어낸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러한 과학 기술 개발이 동양에는 없었을까. 있었다.

   

인드라는 사실 이런 문제에 의심을 품고 대학 때 세미나할 때마다 선배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선배들은 식은 땀을 흘렸던 것 같다. 세미나할 때 가장 미운 놈이 배운 대로 안 하고, 이상한 질문을 하는 넘이고, 그 선두에 인드라가 있었던 셈이다~!

   

하면, 왜 동서양은 이런 차이가 있던 것일까.

   

서양은 공생공존이 없었다.  반면, 동양은 공생공존이었다.

   

 http://blog.naver.com/arthousing/110018025152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1/02 03:38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850647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 : 자본주의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1/02 

   

자본주의는 언제 시작하였으며, 성립 배경이 무엇인가? 

   

이론 진영은 대체로 http://blog.naver.com/shiroyume?Redirect=Log&logNo=150122529579 와 같다. 반면, 음모론은 딱히 이론적인 근거없이 닥치고 유태인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라는 식이거나 침묵한다.

   

이에 대한 국제유태자본론 입장은 무엇인가.

   

국제유태자본론은 음모론 진영에서 이론 진영 논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 국제적인 요인, 전쟁과 기후이다.

둘, 유태적인 요인, 유태인 스페인 추방이다.  

셋, 자본적인 요인, 대항해시대와 가격 혁명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발생한 인위적이고, 특수한 제도라고 본다. 전 세계로 보급할 만큼 인류에게 유익한 제도가 아닌 게다. 

   

   

   

십자군전쟁이 일어난 진짜 배경은?

   

동로마제국 황제가 당대 셀주크투르크에게 대패했다. 직후 황제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보호 요청을 카톨릭 교회에 호소하자 카톨릭 교회가 기독교적 대의라는 명분하에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허나,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정치경제적인 배경이 있었다.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인구가 늘었다. 교황 권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동로마까지 장악하여 명실상부하게 기독교 세계의 수장이 되려는 당대 교회의 야심이 있었다. 장자상속권 탓에 미지의 영토를 장악하려는 유럽 봉건귀족과 기사들의 토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중세유럽은 세 가지 공동체가 공존했다. 하나, 종교적 공동체다. 교황과 수도승의 세상이다. 둘, 정치적 공동체다. 왕과 영주, 기사들의 세상이다. 셋, 경제적 공동체다. 교황과 왕, 영주는 장원을 통해 농노를 지배했다. 이 세 가지에서 공통적인 피지배층은 농노이며, 권력층은 교회 권력과 국가 권력, 그리고 지방귀족 권력으로 분리되어 중세유럽은 이 세 권력이 서로 대립, 갈등하는 시대였다. 해서, 상기한 설명은 이들 각각의 권력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다.

   

이것이 대체적인 십자군 전쟁 배경에 대한 정설 요약이다. 허나, 과연 이것 뿐일까.

   

첫째, 경제적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설명은 농업 생산력이 월등하게 높아져서 인구가 증가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허나, 여기에는 의문이 있는 게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농업 생산력이 늘어난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간명한 답변은 기후 변화이다. 유럽에서는 9세기~13세기까지 온화한 날씨가 계속돼 평균기온이 3~4도 정도 올라가 농경을 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났다. 사람들의 영양상태도 좋아졌다. 키도 커졌다고 한다.

   

둘째, 정치적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다. 기후 온난화 이전만 하더라도 중북부 유럽에는 사람이 살기에는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알래스카 같은 땅이었다고나 할까. 허나, 10세기에 이르면, 프랑크 왕국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로 분열된다. 이뿐인가. 아니다. 덴마크, 폴란드 등 유럽 각 지역에서 독립왕국이 연달아 출현한다. 왜인가. 먹고 살만 하기 때문이다. 기후가 온화하니, 경작지가 늘고, 농업 생산성이 높아진다. 

   

셋째, 종교적 공동체에 관한 논리다. 십자군전쟁 때문에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실추했다고 설명을 한다. 아니다. 교회와 교황의 권위는 십자군전쟁 이전부터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미 추락하는 교황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 십자군전쟁인 셈이다. 왜인가. 500년에서 700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큰 기후 재앙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660년 유럽이 유난히 추웠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서는 당연 종교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성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혹한의 추위를 견뎌낼 재간이 있겠는가. 해서, 이때는 숙명적 사고가 보탬이 된다. 인간이 견디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시련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한시적으로 숙명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외부의 어떠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10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조가 되던 시기이다. 구약에서 보라. 신의 선민이라는 유태인이 조금만 먹고 살만하면 신을 잊는 것을 말이다. 해서, 교회와 교황은 다급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누가 신을 떠올리겠는가. 중세 온난화로 인해 인민 생활 여건이 나아지자 카톨릭 교회가 권력을 지속시키자니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십자군 전쟁이 화폐 경제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 경제적 변동이다. 유럽에서 자급자족 경제가 급속도로 무너지면서 화폐 경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원정대는 과거 로마제국 요새들을 부대 집결지로 하였는데, 이 집결지가 지역 거점이 되면서 도시로 성장하여 오늘날 프랑스, 독일 주요 대도시가 되었다. 원정대가 로마제국 요새들을 부대 집결지로 한 것은, 이 지역이 로마 때부터 있던 길 덕분에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교통 덕분에 한국의 장날처럼 상인들이 요새에서 장사를 하였는데, 이 시기는 자급자족 시대여서 대부분 좁은 지역에서 상인끼리 화폐를 사용한 것이다. 허나, 십자군으로 인해 상인들이 십자군 루트를 통해 동방을 상대로 원거리 무역이 가능하였기에 화폐 사용이 전유럽으로 확산하였다. 

   

무엇보다 이득을 본 것은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아 등과 같은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들이었다. 특히 제 4차 십자군 원정 이후 이탈리아 상인은 동지중해와 흑해의 교역권을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베네치아와 제네바 등의 도시가 급속히 발달하였다. 이 시기, 중동을 잘 아는 카르타고/페니키아 유태인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히브리어 뿐만 아니라 아랍어에도 능통하므로.

   

헌데, 십자군 원정으로 인하여 상인 뿐만 아니라 왕족과 귀족과 기사들도 재산을 처분하여 원정 자금을 만들어야 했고,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휴대하기 편하게 보유해야 했기에 화폐를 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영주 직영지들이 축소, 소멸하였고, 농노들이 부역 대신 생산물이나 화폐를 지대로 바치는 새로운 형태의 장원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화폐 거래가 자주 이루어지니 화폐 경제가 급속도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나 고려에서도 화폐가 쓰이기는 했다. 허나, 한시적이었기에 대부분 상인들끼리만 사용했고, 이에 따라 화폐 경제가 자급자족 경제를 대체할 수 없었다.

   

2. 정치적 변동이다. 십자군 전쟁은 왕권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당대 왕국들은 중앙집권적 왕국이 아니라 귀족 중 강한 귀족이 대표를 맡는 왕국이어서 전국적으로 조세를 할 수 없었고, 직할지에서만 세금을 거두었다. 허나, 십자군 전쟁을 이유로 일부 왕국을 시작으로 조세를 하기 시작하면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반면, 귀족들이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것은, 보다 큰 공을 세워 왕을 해먹거나, 영지를 늘릴 목적이었다. 헌데, 결과는 귀족들이 대부분 죽고 극소수만 살아남아 귀족 권력이 크게 약화하였다. 

   

3. 종교적 변동이다. 십자군 전쟁은 신의 의지보다 인간의 의지를 강화시켰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귀족들 다수는 죽었다. 소수만 살아남았다. 헌데, 과연 이들 신앙심이 강화하였을까. 정반대이다. 십자군 전쟁이 대승이었다면 모르되, 패배했다. 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제의 축복 대신 자신의 전쟁 경험을 더 신뢰했을 것이다. 

   

유럽에는 다시 페스트와 함께 혹한이 찾아왔다

   

13세기까지 유럽은 중세 온난기라 하여 기후가 온화하였다. 허나,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해서, 15세기말서부터 17세기말 시기는 유럽 소빙하기라고 할 만큼 혹한이 유럽에 밀어닥쳤다. 이 시기 굶어죽는 이들이 속출하였고,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이도 50만 명에 이를 만큼 극한의 시대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432682

   

게다가 페스트가 창궐했다. 페스트로 인해 전 유럽 인구의 1/3, 혹은 1/2인 삼천여만 명이 죽었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272264&qb=7Y6Y7Iqk7Yq4IOycoOufveyduOq1r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rt5p35Y7vlssZClRzZssc--107009&sid=TrAwiHIJsE4AAGp9Eik 

   

해서, 사태는 어떻게 변모하는가.

   

가. 화폐 경제의 저항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자리잡은 화폐 경제는 다시 자급자족 경제로 되돌아가느냐, 화폐 경제를 유지하느냐 갈림길에 놓였다. 이러한 화폐 경제에 부정적인 요인은 페스트였다. 특히 당대나 오늘날 분석을 통해서 보면, 동방 무역을 통해 페스트가 들어왔기에 공격 대상은 유태 상인일 수밖에 없었다. 이득을 가장 많이 취했으므로.

   

허나, 백년 전쟁이 페스트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재개한다. 이는 화폐 경제가 페스트와 혹한에도 불구하고, 화폐 경제의 역동성을 확인하는 결과물이다.

   

혹한과 페스트로 인하여 유럽 도시들 상당수가 타격을 크게 입었지만, 살아남은 도시에서는 오히려 화폐 경제가 강화하였다.

   

나, 잔다르크에서 보듯 백년 전쟁으로 왕권은 더욱 강화한다. 혹한과 페스트를 통과한 유럽인들은 영지민에서 왕국민으로 나아간다. 인구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니까.

   

예서, 중요한 건, 유럽인이 극한에 처했을 때, 바깥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인이 잘 나서 아메리카 대륙 침략을 꾀한 것이 아니다. 한계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한국인이 한국전쟁을 겪었기에 오늘날 죽을 둥 살 둥 해서 경제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한국인에게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없었다면? 남미인이나 남태평양폴리네시안이나 동남아인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까?

   

다. 왕권은 교권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중동과의 교역으로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과 같은 귀족들이 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보듯 메디치 가문은 이후 교황파와 국왕파 싸움이라는 500년 음모론의 배후가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4 : 힐러리 클린턴과 한반도 통일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0/31 09:17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677927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4 : 힐러리 클린턴과 한반도 통일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31

   

아직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광주 숙소에 머물고 있다. 이제 서울로 갈 준비를 다 마쳤는데,  광주에 온 기념으로 번개 후기 대신 인월리 글 하나 올리고 가려고 한다. 어제 광주 모임은 좋은 분들을 만나 즐거운 자리였다. 엔화 대출, 한반도 통일 등 경제와 정치 전반에 걸쳐 이야기가 오갔다. 해서, 오늘은 번개 참가자 중 5%가 관심이 있는 정치 문제에 대해 쓰고자 한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인맥을 중시한다. 인맥을 이야기해야 말이 통한다.

   

골드만파 힐러리 클린턴의 사돈이자 첼시 클린턴의 시어머니는 마저리 마골리스 메즈빈스키이다. NBC방송 기자 출신으로  필라델피아 지역방송과 NBC 방송 등에서 24년간 몸담고 있으면서 다섯 차례나 에미상을 받았다. 1993~95년 필라델피아주 하원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예서, 마저리의 특기 사항은 한국과 관련한 문제이다. 마저리는 28살이었던 1970년 한국에 와 고아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한국 소녀 리혜(Lee Heh)를 입양했다. 당시 미혼이었던 마저리는 미국 역사상 미혼 여성이 외국 어린이를 입양한 최초의 인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리혜 입양 후에도 마저리는 한국과의 인연을 지속했다.  마저리는 리혜 외에도 미혼시절 베트남 소년을 한 명 더 입양했으며 에드워드 메즈빈스키를 만나 결혼하면서 총 11명의 자녀를 보살폈다. 메즈빈스키 부부는 첼시의 남편 마크를 비롯해 2명의 아들을 낳았다. 또 3명의 베트남 소년을 더 입양했으며 메즈빈스키가 이전 결혼생활에서 4명의 자녀를 둬 11명 자녀를 둔 것이다.

   

마저리가 입양 할 당시 리혜는 6살이었다. 1979년 15살이었던 이혜는 워싱턴국립가톨릭스쿨에 다니면서 수 백 명의 지원자들 중 미 의회 '사환'으로 뽑혀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TV출연을 비롯해 언론 매체 인터뷰를 통해 입양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고 아동잡지를 위해 유명인을 인터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 당시 '정치와 연예계' 중 어디에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연예계"를 선택하며 "나는 유명해지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현재는 뉴저지에서 변호사 남편 케네스 메이맨과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파 클린턴 가문은 침례교이고, 메즈빈스키 가문은 유대교이다. 첼시 클린턴과 마크 메즈빈스키는 스탠퍼드 대학 동기동창이다.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유대인 여성의 적극적인 한국 사랑은 우디 알렌의 순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골드만파 힐러리 클린턴의 한국 사랑으로 나타나서 매년 추석 성명이 등장하고, KPOP을 낳는 진앙지가 되었다는 것이 인드라 분석이다.

   

예서, 국유본의 한국 관심은 골드만파에 국한하지 않는다.

   

   

   

"며칠 전 맨해튼 센트럴파크옆 구겐하임박물관지하 음악강당에서 특이한 컨서트가 열렸다.

   

한국교포들과 뉴욕거주 유태인들이 만든 모임의 발대식 성격의 음악회였다.

   

조원일 뉴욕총영사와 이스라엘의 알론 핀카스 뉴욕총영사도 부부동반으로 참석해 모임의 격을 높여주었다.

   

모임이 정식 만들어진 것은 지난 4월.

   

미국내에선 둘다 소수민족인 만큼 서로 돕고 살자는 취지에서였다.

   

모임의 이름은 KAJA(Korean-American, Jewish American Forum)로 정해졌다.

   

우리말로 읽으면 "가자"가 되며 영어로는 "Let's Go"란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선지 이날 모임에선 "한국인과 유태인이 함께 가자(Let's go together)"란얘기가 많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70년대 초 이스라엘의 월드컵축구 본선 진출을 막았던 차범근 선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얘기를 꺼낸 핀카스 이스라엘 총영사는 "미국명문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은 대부분 한국인이거나 유태인"이라며 "두 나라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면 많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에서 유태인은 더 이상 소수민족이 아니다.

   

인구로는 아직 소수이나,실질적인 파워는 "미국을 움직일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면서도 노벨상 수상자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유태인의 저력이 한껏 발휘되는 곳이 미국이다.

   

월가의 금융계를 포함해 유통 패션 에너지 IT산업 등 대부분의 기간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도 막강한 자금력과 언론의 힘을 동원하는 이들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뉴욕에선 유태인 명절에 모든 학교가 쉴 정도로 이들은 실질적인 미국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태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미국 사회의 심장부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은미국에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유태인의 본거지인 뉴욕에서 어렵사리 만들어진 "KAJA"를 잘 살려 국익에 보탬이 되는 모임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0620846

   

출범 연도나 뉘앙스를 보면, 이 모임 성격은 노비네파일 가능성이 크다.

   

   

http://blog.naver.com/meister2010/150071891572

   

마지막으로 뉴라이트파의 한국 사랑은 한반도 넘버원 정몽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정몽준이 힘이 있다한들 쿠바 화폐에 현대중공업 이동식발전기가 들어갈 수 있을까? 쿠바인이 아무리 이동식 발전기에 감동했다 하더라도 도를 넘은 것이 사실이다. 허나, 바로 이런 일을 국유본론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노비네파가 중국더러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사업하라고 하는 것처럼 뉴라이트파는 한국더러 남미와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열심히 사업하라는 지시인 게다.

   

헌데, 국유본을 한국식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충분하지 않다. 국유본을 한국식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국유본을 국유본식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면, 국유본을 국유본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대로, 매뉴얼대로이다.

   

국유본은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기획을 매뉴얼화해서 그대로 실천하는 집단이다.

   

해서, 국유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편으로 사전제작제 미국 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고,  동시에 임기응변식 한국 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인 게다.

   

예서, 인드라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것이다.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2015년 이내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국유본에게도 이익이고,

   

한국에게도 이익인 길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하면, 국유본은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전략하에서 한반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중 구도에서 한반도가 어떠한 역할을 해낼 것인가에 따라 한반도 통일이 급속도로, 혹은 완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때, 한반도 역할이란 무엇인가.

   

과거 백오십년 전을 떠올리면 된다.

   

당시 국유본은 아편 전쟁으로 중국 공략에 공을 들이던 시기였다.

   

헌데, 국유본은 세계 해상을 장악했지만, 상대적으로 육군이 없었다. 이 부족한 육군을 늘 용병으로 채웠는데, 독일 용병, 프랑스 용병, 미국 용병이 있었다. 허나, 이들 용병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중국 인구가 좀 많고, 중국 땅이 좀 큰가? 해서, 대안이 일본 용병이었던 것이다.

   

하여, 국유본은 중국 공략을 위하여 일본을 키우기로 기획하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고, 허수아비 쪽발이왕 체제를 만들고, 일본 근대화 산업화를 시켰던 것이다. 또한, 국유본 배를 수입하게 해서 이 배로 한국을 침략하여 병합하도록 했고, 괴뢰국 만주국까지 만들게 한 것이 국유본이다. 이런 과정에서 눈여겨볼 인물이 해리 파크스와 글로버이다.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 사순 가문, HSBC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면, 오늘날 상황은 어떠한가.

   

백오십년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큰 차이는 있다.

   

과거와 달리 이미 중국은 국유본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다만, 지금 국유본은 지금 유럽을 재구조화하는 것처럼 다음 공황 국면에서는 중국을 재구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대 인식에서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한 어떠한 시나리오를 제출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이 기존 이론과 음모론과 국제유태자본론의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기존 이론은 한반도 통일에 중국이 반대할 것이네, 마네 하는 하나마나한 맹탕 소리따위만 되풀이하고 있다.

   

반면, 음모론은 그저 머나먼 과거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현재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인드라는 단언하겠다.

   

만일 국제유태자본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중국 재구조화와 관련하여 참신한 시나리오가 나온다면,

   

국제유태자본은 자신의 기획 대신 그 시나리오로 대체할 것이라고 말이다.

   

가령 48시간 이내에 뽀그리를 숙청하고, 급속한 한반도 통일을 이룰 것이다.

   

허나,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는다면, 국유본은 당분간 뽀그리가 쓸모가 있으므로 뽀그리를 방목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통일은 이제 당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2017~2018년 예상할 수 있는 대공황을 한반도 평화통일로 극복하자!

   

통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 빛고을 광주에서 인드라 아침에 일어나 약 한 시간 걸려서 쓰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3 : 히틀러 음모론과 방송3사 출구조사 음모론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0/29 07:57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514852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3 : 히틀러 음모론과 방송3사 출구조사 음모론

국제유태자본 인드라월드리포트 11/10/29

   

이번 편은 번개 참석자들 중 15%가 관심이 있는 음모론에 관하여 말씀드리기로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음모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모론이란 정설과 달리 검증이 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이다. 인드라도 그랬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기에 진실을 구하기 보다 문학적 흥미거리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규모가 작고, 사건 중심인 음모론에는 상당수 사람들은 이면의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인드라 역시 그랬다. 해서, 음모론을 싸잡아서 말하기 보다 분류를 한다면, 보다 음모론에 대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음모론을 주체와 규모 면에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미국 등 특정 국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생체 실험 등을 한다는 음모론

   

예를 들면, 19321972년까지 40년 동안 미국은 앨라바마주 터스키기 지역에서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 생체 실험을 하였다.

   

이와 같은 음모론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비판적 시민들이 보기에 정부 당국이란 노예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한나라당이건, 쪽발민주당이건, 소련 공산당이건, 북한 공산당이건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비밀스런 나쁜 짓을 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정몽헌 자살 이면에는 국정원이 개입했다, CIA가 개입했다, 하는 음모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암살 배후에는 CIA가 있다는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이런 종류의 음모론은 상당수 시민들도 공감한다. 굳이 자신들의 기존 세계관을 바꾸지 않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음모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모론의 특징은 음모 규모가 국지적이라는 것, 음모 대상이 소수 특정 대상에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  히틀러 음모론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음모론

   

   

   

히틀러의 1968년 사진 한 장 (역사상 가장 거대한 속임수의 재구성)

책소개

   

1억원 고료 스페인 '알폰소 10세 역사소설상' 수상작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와 신화의 허구를 과감히 파헤친 용감한 스릴러

   

   

   

"당신이 믿든 안 믿든 히틀러는 결코 1945년 베를린 벙커에서 죽지 않았다. 패전 후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막강한 그의 배후세력이 미국의 묵인 하에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 반세기의 퍼즐 같은 역사적 속임수와 미스터리를 들려주려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끝까지 나를 신뢰할 것. 여기까지 결심이 섰다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위험을 무릅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독자들에게 나의 존재를 밝힐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할지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만 나는 당신이 이 책을 통해 승자의 역사 속에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 아일러트 랑, 사라진 남극 원정대 '밀레니엄 리서치 2000' 생물학자

   

저자소개

훌리오 무리요

훌리오 무리요 예르다 MURILLO LLERDA, JULIO

   

1957년 바르셀로나 태생. 신문기자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2005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소재로 한 첫 장편 《카젭의 눈물LAS LAGRIMAS DE KARSEB》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천국의 문들LAS PUERTAS DEL PARAISO》(2006)과 고대 그리스 전쟁사를 다룬 《물과 흙EL AGUA Y LA TIERRA》(2007), 그리고 히틀러 미스터리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히틀러의 1968년 사진 한 장SHANGRI-LA》(2008) 등이 있으며, 이 작품으로 2008년 '알폰소 10세 역사소설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역사소설 작가로 떠올랐다.

   

옮긴이 정 창

   

경희대학교와 멕시코 과달라하라 주립대학교,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매체에 에스파냐 언어권의 문학, 인문, 예술 분야의 책을 소개하며, 출판기획과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궁둥이》《연애소설 읽는 노인》《뒤마클럽》《뻬드로 빠라모》《바다의 성당》《콩고의 판도라》 등이 있다.

   

1부 존재할 수 없는 사진 한 장

2부 운명의 만남

3부 남극 밑 십자가의 비밀

4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속임수

   

감사의 말

작가 인터뷰

   

출판사 서평

당신이 믿든 안 믿든 히틀러는 결코 1945년 베를린 벙커에서 죽지 않았다. 패전 후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막강한 그의 배후세력이 미국의 묵인 하에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 반세기의 퍼즐 같은 역사적 속임수와 미스터리를 들려주려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끝까지 나를 신뢰할 것. 여기까지 결심이 섰다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위험을 무릅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독자들에게 나의 존재를 밝힐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할지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만 나는 당신이 이 책을 통해 승자의 역사 속에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 아일러트 랑, 사라진 남극 원정대 '밀레니엄 리서치 2000' 생물학자

   

1억원 고료 스페인 '알폰소 10세 역사소설상' 수상작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와 신화의 허구를 과감히 파헤친 용감한 스릴러

   

1945년에 사망한 히틀러, 1968년의 사진 한 장에 모습을 드러내다

2006년 초겨울. 영국 《가디언》지 국제부장 사이먼 다든은 낯선 사람에게서 의문의 메일을 받는다.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겠습니까?'라는 제목의 메시지. 발신자는 하인츠 라이너다. 포털사이트의 의미 없는 광고일 거라고 생각한 사이먼은 메시지를 애써 외면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마우스를 클릭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크기의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존재가 불가능한 사진.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악몽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현실을 담은 사진이었다. 1968년 4월이라는 날짜가 선명이 박힌 흑백사진 위로, 희끗한 백발을 과시하며 생일 케이크를 마주한 독재자의 모습.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로의 독재자 히틀러가 사람들과 함께 일흔아홉 번째 생일을 자축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가 1945년에 죽지 않았단 말인가? 히틀러의 자살을 둘러싼 음모론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전 세계의 윤전기를 마비시킬 만한 희대의 특종에 흥분한 사이먼은, 사진 속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제보자 하인츠 라이너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조우한 그에게서 20세기 역사를 뒤흔들 만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가 아는 히틀러는 1971년까지 살아있었으며, 그들 세력은 패전 후 거대한 대륙에 새로운 비밀 도시를 건설하려 했다. 하인츠 라...(하략)

   

   

히틀러 음모론과 같은 경우는 규모가 국지적인 것이거나 일국적인 것이 아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 음모론이 진실이라면, 미국과 소련 정부 모두가 공모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서, 일반 시민들이 이런 종류의 음모론을 믿기가 어렵다. 허나, 비판적 시민 중 일부는 히틀러 음모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 비율이 5%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이런 종류의 음모론을 믿는 이들 사고방식은 보이는 대로의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음모론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 파충류 외계인 음모론 등이 있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예수회, 히틀러 음모론 등은 규모가 세계적이지만, 일상적이지는 않다. 또한 우리 세계에는 비밀 조직이 있는데, 어둠의 세력이라 결코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 별다른 증거없이 주장하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대부분이 허구인 것이다. 허나, 허구이기에 열광하는 점이 분명 있다. 더군다나 국제유태자본이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는 방법으로 이들 음모론을 적극 유포하는 것이다. 해서, 정작 국제유태자본을 파헤치는 음모론이 나오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어? 그래. 이걸로 이제 책 뽑아야지. 얼마나 팔릴 것 같아?

   

이런 것이 유일한 관심거리라고 할 수 있을까? 

   

셋, 전지구적이면서 우리 일상까지 지배하는 유태인 세계지배 음모론

   

허나, 상기한 음모론들이 굉장히 허술하다면, 의미있는 음모론들이 있다.

   

예로, 유태인 세계지배론이 있다. 세계는 현재 미국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백인 기독교 남성 세력이 아니라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음모론, 히틀러 음모론과 달리 검증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KBS와 같은 언론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다룰 정도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이 음모론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시온의정서가 있다. 위서로 판명이 났다. 허나, 위서임에도 불구하고, 백 년 전에 작성한 시온의정서 내용들이 대부분 현 세계에서 이루어졌거나 진행과정이라는 데서 시온의정서의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에 이르는 금융자본 지배론이 있다.  이 역시 검증이 가능하다. 시중에서 로스차일드, 록펠러 관련 서적을 읽고, 하나 하나 역사적 사실들과 비교하면 그들이 얼마나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빌더버그, 300인 위원회, 삼각위원회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검증이 어렵지만, 점차 검증이 가능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인물들에 대한 명단과 구체적인 사건이 나오고 있다. 프리메이슨 33도처럼 허무맹랑한 것들이 아니어서 기존 언론에서도 취급할 정도이다.

   

하면, 국제유태자본론은 무엇인가. 첫번째 음모론처럼 사건 위주의 음모론에 대해서는 진실을 찾아가는 입장이다. 두번째 음모론에 대해서는 음모론 자체가 국제유태자본의 음모라고 보고 적극 비판하는 입장이다. 즉, 두번째 음모론은 대부분 허구라는 것이다. 세번째 음모론에 대해서는 일리가 있다고 보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동시에 음모론이 종교, 경제, 정치 한 면만을 보기에 이를 종합하여 새롭게 구조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작업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하나, 인드라나 국유본론을 접하는 독자나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해 능통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면 정치, 종교면 종교, 경제면 경제를 잘 아는 인구도 전 세계 인류 중 1% 정도인데, 셋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전 세계 인류 중 0.1%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0.01%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드라의 국유본론도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한 편으로는 놀랍도록 잘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허술한 면도 많다는 점이다.

   

둘, 처음부터 아는 이들이 있겠는가. 국유본론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예서, 문제는 무엇인가. 국제유태자본론이란 다른 이론과 다르다. 삶을 바꾼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 많은 분들이 인드라에게 밀씀해주셨다. 십수년간 풀리지 않던 난제가 풀렸다.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다. 정말 새롭게 살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보면, 국제유태자본론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기존 이론을 고집한다든가, 살던 삶을 계속 살고 싶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 국제유태자본론이다. 왜냐하면, 그간 자신이 믿던 신념체계(인생관, 세계관)가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셋,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면이 있다. 그것은 국제유태자본론이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국제유태자본론이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지만, 과연 국제유태자본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인 문제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현실이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그 가짜인 삶을 사는 것처럼 가짜 삶을 택하는 이들이 현실에서는 훨씬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유태인 비판론을 극복하는 것이다. 인드라가 비판하는 대상은 국제유태자본이지, 유태인이 아니다. 유태인에 대한 인종주의 비판에 대해서는 인드라는 매우 비판적이다. 이런 유태인 비판 음모론은 오히려 국유본이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들 국제유태자본은 이차대전 때 히틀러를 키워서 유태인을 학살하였으니까. 또한, 전쟁 지속을 위해 국제유태자본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 지속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해주어서 아시아 인민들이 치욕 속에서 살게 만들었으니까.

   

진실을 알더라도 오히려 국제유태자본을 신처럼 모시고 그들이 만든 세상에 안주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국제유태자본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드라도 결국 국제유태자본의 하수인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지 않냐 할 것이다.

   

가령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과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한 길이면 국제유태자본과 얼마든지 타협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의 길이면 국제유태자본에게 투쟁한다고 말한다. 허나, 크게 보면, 결국 국제유태자본이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모양새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드라가 깊이 고민하고 있다. 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1. 인드라는 좌우파 개념을 버린 지 오래다. 근 이십여년간 진보좌파로 살아왔다. 허나, 이제 진보좌파도 아니다. 보수우파도 아니다. 진보좌파든, 보수우파든 모두 국유본의 매트릭스 안에 있는 역할 놀이일 따름이다. 최근까지 사회당 당원이었는데, 탈당했다. 앞으로는 무당파로 살 것이다.

   

2. 인드라는 무신론자였다가 국유본론을 정립하면서 특이한 체험을 통해 유신론자가 되었다. 허나, 인드라는 인드라가 믿는 신을 가족에게도 전도할 생각이 없다. 그 신이 기독교냐, 가톨릭이냐, 이슬람이냐, 유대냐, 외게인이냐 관심이 많은 듯한데, 인드라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대목은 후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다.

   

3. 인드라는 국제유태자본론으로 책을 낼 생각이 없다. 나이 육십이 넘고, 환갑이 되어서 이순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때 잠시 생각해보겠지만, 현재로서는 책 낼 생각이 없다.

   

대다수 음모론자의 숨은 고민은 돈이다. 겉으로는 민주이니 세계평화이니 하지만, 다 공염불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인드라는 솔직하게 말한다. 국제유태자본론 가치는 천억원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국유본이 364억과 세계 일주 십년을 보장해준다면, 국제유태자본론과 관련한 지재권을 모두 넘길 의향이 있다^^! 그 이하로는 결코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 왜냐하면, 인드라가 이 세상에 온 소명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에 돈 몇 푼에 놀아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인드라가 국제유태자본론을 정립하면서 마음 공부가 지식 공부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매일같이 마음 공부를 하고 있다.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한다.

   

이를 전제하고, 여러분에게 제안한다.

   

국유본도 사람이다. 사람인 한, 허점이 있다. 그 허점이 있기에 국유본이 지금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허점, 혹은 틈새를 활용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발전과 사회복지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가령 인드라는 다음과 같은 음모론을 전략적으로 급조한다.

   

이번 선거 때 방송사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오차 범위라는 것이 있어서 오차 범위 이내라면 문제가 없는데, 오차범위 바깥이라면? 허나, 오차범위 바깥이라도 승자와 패자가 바뀌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만일 승자와 패자가 바뀌었다면?

   

바로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방송사 3사 출구조사는 실제 출구조사를 한 결과가 아니라 이미 사전에 국유본이 알파독과 같은 선거조작 기관이 계획한 결과물이다!

   

바로 이런 음모론!

   

전 세계에서 인드라가 처음으로 제기하는 이 음모론은, 여론조사가 신빙성이 없다는 음모론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임을 전제하는 음모론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알파독과 같은 선거조작 기관이 의도적으로 10월 26일이라는 날짜에 재보선을 기획하고 특정 인물을 이미 선거 전에 당선자로 만들어서 선거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이 음모론의 특징은 알파독이 선거판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그 틈새가, 방송사 3사 출구조사와 실제 득표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만큼 득표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때로는!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후보가 낙선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여, 당선한 서울시장을 강하게 압박하여 사퇴시키고, 재보선을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켰다는 것이다.

   

어떠한가~!

   

이 가설은 언뜻 보면 첫번째 유형 음모론이기에 쉽게 검증이 가능할 듯도 싶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검증이 아닐 것이다. 인드라 생각으로는 이 가설은 몇 가지 문제들이 드러나도 앞으로 상당 기간 유효할 수 있다^^!

   

끝으로 히틀러 음모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히틀러 음모론에 대한 인드라 생각을 밝힌다.

   

인드라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로는, 이것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최초로 히틀러 음모론을 제기한 자는 1970년대 후반 쪽바리 삼류허접 작가에 의해서라고 알고 있다. 이 쪽바리가 남미에 가서 취재했는데, 히틀러가 살아 있고, 나찌 잔당이 남극에서 UFO 만들고 뭐 이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드라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하나, 아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의 그 쪽바리 허접작가에게 발각될 정도로 허술하다면, 그것이 과연 비밀조직으로서 그럴 듯한 비밀조직일까^^?

   

둘, 유태인 나치잔당 추적위원회가 있다. 유태인이 얼마나 집요한 지는 가끔 가다가 수십년간 암약한 나치 잔당을 밝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유태인도 밝히지 못한 특급 전범 히틀러를 삼류 쪽바리 허접 작가가 밝혀냈다고^^?

   

셋,  미국 당국 등이 숨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드라 생각은 정반대다. 오히려 국유본이 만든 음모론이라는 것이다. 왜? 당시 카터가 내건 공약 중 하나가 무엇이었냐면, 당선되면 UFO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한 것이다. 헌데, 당선되고서 딱히 UFO에 대해 한 것이 없다. 카터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만든 대통령이다. 데이비드 록펠러 - 삼각위원회 - 브레진스키 - 카터로 이어지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예서, 1960년 후반부터 국유본이 비틀즈 등을 동원시켜 만든 히피문화, 반문화 흐름 속에서 각종 음모론이 쏟아졌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음모론이 퍼져 있는 곳이 미국인데, 이런 미국도 아무 때나 음모론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시기가 있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필두로 해서 숱한 음모론이 쏟아졌고, 그 다음에는 달 착륙 이후로 UFO 외계인 음모론이 무수히 등장했다. 하고, 잠복했다가 911 이후 음모론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이때, 뉴라이트파 입장에서 히틀러 음모론 만큼 유리한 음모론이 어디 있을까.

   

히틀러 음모론 효과는, 첫째, 이차대전과 냉전시대 미소 양국은 물론 히틀러마저 관리했던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타격을 주는 음모론이다. 둘째, 히틀러 잔당 세력이 살아서 UFO를 만들고 있다. 이에 당시 미국 정부를 책임지는 카터 정부는 NASA 예산을 늘리는 등 우주항공 부문에 관한 관심을 무한정 쏟을 수 있다. 아폴론 계획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예산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라, 라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다. 셋째, 마지막으로 빅터 로스차일드가 만든 미소 냉전구도를 데이비드 록펠러가 의도한 근본주의/민족주의/지역주의 다극화 구도로 세계를 이행시키는데,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즉,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번 오슬로 테러 자작극처럼 한편으로 각국에 신나찌세력을 키우고, 다른 한편  이런 신나찌세력에 대항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세계정부를 만들어간다는 구상인 게다.

   

이러한 국유본 구상에 딱 부합하는 음모론이 히틀러 음모론인 것이다. 해서, 앞으로도 수도 없이 관련 히틀러 음모론이 나올 것이다. 과거 역사 기록을 독점하는 국유본이 이 음모론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78 : 22라는 거짓과 진실을 적당히 섞은 책들을 끝없이 출간할 것이다.

   

인드라는 히틀러 최후에 관해서는 영화 '몰락'이 묘사한 것이 현실에 가장 접근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영화 '몰락'은 요즘 인터넷에서 패러디를 많이 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패러디들은 국내용인 데다 패러디 수준이 낮아서 별 게 없다. 반면, 천암함 관련 패러디는 수준이 높고,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패러디 수준이 높아서 국유본이 만든 것이 아닐까 보고 있다. 헌데, 그 패러디를 유투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참고로 인드라가 한국 최초로 패러디에 주목해서 패러디를 구십년대부터 사용한 문화비평가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ㅋ

   

끝으로 인드라는 히틀러 음모론 중 유대인 비트겐슈타인과 관련한 음모론에는 흥미를 지니고 계속 추적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 음모론은 히틀러가 로스차일드 사생아라는 것이다. 하고, 학교 다닐 때 히틀러는 유태인 사생아로 불우하게 살았고, 반면 유대인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재벌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은 사도회 멤버 버트란트 러셀과 교류하게 되는데, 버트란트 러셀과 빅터 로스차일드, 비트겐슈타인은 같은 사도회 멤버라는 것이다. 해서, 국유본이 히틀러를 키워서 이차대전을 일으킬 궁리를 했다는 것이 또 다른 히틀러 음모론이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2 :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0/28 03:59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423464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2 : 가짜 유태인

쪽발 돼중, 쪽발 놈현을 찬양하는 한, 그대는 개색희다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8

   

   

   

   

경제묵시록 (탐욕의 종말: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비밀)

   

   

번개에서 만난 이들을 분석하면, 경제 60%, 영성 20%, 음모론 15%, 정치 5%라고 했다. 해서, 두번째 백문백답은 영성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영성론에서 주된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가짜 유태인' 혹은 '아슈케나지'이다. 국제유태자본의 중추는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허나, 국제유태자본론은 이들 음모론과 다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을 국유본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유태자본론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 국제유태자본의 핵심세력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었다.

   

둘, 로스차일드 가문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셋,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하나, 국제유태자본의 핵심세력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75921264

   

http://blog.naver.com/miavenus/70103966544

   

http://blog.naver.com/miavenus/70103761404

   

http://blog.naver.com/miavenus/70036192009

   

인드라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론을 주장하는 근거가 몇 가지가 있다.

   

1. 성경 속에 유태인은 상인이 아니라 목동 양치기이다. 헌데, 오늘날 유태인은 중국인과 아랍인과 더불어 세계 3대 상인이다. 아니, 으뜸 상인이다.

   

2. 유태인이 딱히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동시에 증오하는 족속이 지중해 족속 중 딱 하나 있는데,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이다. 포에니 전쟁 때문이다.

   

3. 로마제국 당시 유태인 수가 열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는 출생과 같은 자연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이다. 이는 특정 민족이 대거 유대교로 개종했음을 의미한다.

   

4.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부촌이 유태인촌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유태인은 욥이 들어왔다가 모세가 나간 뒤에 없었다. 모세 시기는 기원전 15세기가 유력한 가설이다. 하면, 천 년 이상 이집트에는 유태인이 부재했는데, 언제부터 이집트에서 유태인이 부자가 되어 유태인 촌을 건설하고 살았다는 말인가? 허나,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5. 로마제국 당시 이집트에서 그리스인과 유태인 상인끼리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이 유태인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6.  제정일치사회에서 로마에 패한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은 지중해 신에 대해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이란 고원에서 날아온 싱싱한 종교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혹은 짜라투스투라교, 니체가 말한 그 신, 빛과 어둠의 신이요, 내세가 있다고 한 전투적인 신. 중국에서는 마니교, 마교로 알려진 신. 주원장이 마니교를 이용해서 명나라를 만들어서 나라 이름이 명이라는 그 신. 인도 불교에 영향을 주어 대승불교를 낳게 한 그 신.

   

7. 현 유대교는 기원후 팔레스타인 인민 사이에서 널리 믿은 바리새인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때, 이 바리새인 기원이란? 조로아스터교.

   

일곱가지만 들겠다. ㅎㅎㅎ

   

둘, 로스차일드 가문은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태인이지만,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이 아니다. 록펠러 가문 신앙은 침례교이다. 이 점에서 루즈벨트는 네덜란드 개혁교파이지 않았냐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인드라가 지금까지 분석한 바로는, 루즈벨트 가문이 네덜란드 개혁교파인 것은, 당시 종교 탄압을 피하기 위한 계책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겉으로는 가톨릭이나 기독교인데, 속으로는 유대교인 게다. 해서, 루즈벨트 가문은 유태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록펠러 가문은 유태인 가문이 아니다. 일부 핏줄로 유태인이 섞일 수 있으나, 유태인 규정으로 보면, 어머니가 유태인이거나, 유대교를 믿거나 해야 하기에 유태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슈케나지라고 말한다. 인드라는 달리 생각한다. 로스차일드 가문 시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인상이란 땅달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했다 했다. 맑스 역시 땅달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하다. 맑스 자신이 사석에서는 무어인으로 말할 만큼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에 애착을 가졌다. 반면 동유럽 유태인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다. 유태인 프로이트는 존경하는 인물로 크롬웰과 한니발을 든다. 크롬웰은 혁명이 성공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유태인 입국 허가였다. 그런 크롬웰을 이해할 수 있지만, 왜 한니발인가. 프로이트는 한니발 장군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굴욕감을 극복하려 했다. 하필 왜 한니발일까^^!

   

셋, 가짜 유태인, 아슈케나지설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 개혁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 정경의 시대적 변화

BC450년… 모세5경

BC150년… 70인역(구약46권)

AD 90년… ① 팔레스티나 지방 유대인 정경 : 히브리어 성경39권

                ② 희랍 문화권 지방 유대인 정경 : 희랍어 번역본 46권(70인역)

   

신약(AD)에 들어와서

382년…   70인역(46권)+신약성경(27권) = 73권으로 약 1700년간,

1517년…  가톨릭교회 : 제 1경전(히브리어39권)+제2경전(희랍어7권)

                                              +신약성경 27권 = 73권

개신교회 : 제1경전만 인정(히브리어39권)+신약성경 27권 = 66권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나 제2경전을 외경 또는 위경이라 함)

   

   

예서, 왜 16세기 개신교회 종교개혁가들은 히브리어 39권만 경전으로 인정하였을까.

   

예수를 조롱하고 죽인 자들이 바로 히브리인인데, 어찌하여 개신교회 종교개혁가들은 히브리어 경전만 고수했을까.

   

형식적 논리야 이렇다.

   

가톨릭은 초대 교부들이 70인역을 사용하였기에 그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히브리어를 원본으로 희랍어를 번역으로 여겼기에 원본만을 취급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교회의 권위를 성서 해석의 권위에서 구했고,

개신교는 성서 해석을 교회 권력에서 개인에게 돌려주었기에 당연한 귀결인 듯싶다.

   

허나, 속사정은?

   

로마 가톨릭에 대항한 종교 개혁이 쉽지만 않았다. 당대 로마 가톨릭은 절대 권력이었다. 이때 종교 개혁에 힘을 실어준 세력이 있으니 유태인들이었다. 그들 자금으로 종교 개혁을 한 종교 개혁가들. 대표적으로 칼뱅이 있다. 이 시기, 종교 개혁가들은 많았다. 그중 칼뱅이 혜성처럼 떠오른 것은, 그가 다른 종교 개혁가들보다 더 철저해서라기 보다는 시대를 잘 읽었기 때문인 게다. 5% 이내라고 하지만, 이자로 번 소득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했기에 칼뱅이 개신교 중 으뜸 종파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이자놀이하던 유태인들 이해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종교개혁 시기 이후 약 사백년간은 개신교와 유대교는 동맹체였다. 보완적 관계였다. 공통의 적, 로마 가톨릭에 맞서 종교는 개신교, 경제는 유태인이었던 게다.

   

헌데, 오랜 적대 관계였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가톨릭이 전면적으로 화해하는 시기가 찾아오니 이 시기가 1960년대이다. 이 시기부터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고, 로마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것이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생애에 신질서 세계로 빨리 이행하고자 했고, 가톨릭은 히틀러와 쪽발이왕 지지로 인한 신자 수 급감을 만회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이 뼈아픈 빅터 로스차일드의 실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드라 조직론은 말한다.

   

   

18.

   

연대의 법칙 :

   

연대하게 되면 오래되고 좋은 친구를 반드시 잃게 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119480865

   

   

빅터 로스차일드가 가톨릭을 용인하자마자 발생한 사태란 무엇인가. 해방신학이다. 하면, 이 뿌리는 무엇인가. 제 2 경전이다. 특히 마카베 경전이다.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0&JangNo=2&JangSum=16&LastPage=

   

유다 마카베는 누구인가?

   

   

"마카베오서 [書, The Books of the Maccabees]

  

요약

구약성서의 제2경전에 속하는 경전. 가톨릭에서는 정경(正經)에 포함하지만, 유대교와 개신교에서는 외경(外經) 또는 위경(僞經)으로 본다.

 

   

본문

마카비·마카베아라고도 한다. 보통 다음의 4서(書)가 알려져 있는데, 가톨릭에서는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마카베오 1서와 2서를 정경(正經)으로 인정하고 구약성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⑴ 마카베오 1서:그리스어역(語譯)만이 전해진다. 시리아왕(王) 안티오코스 4세 즉위 (BC 175)로부터 시리아에서 독립을 이끌어낸 마카베오가(家) 시몬의 죽음(BC 135)까지 40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국 공동번역성서에는《마카베오기 상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망 후 마케도

니아 왕국이 분열하자,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는 친(親)그리스정책을 취함으로써 유대인들의 반감을 샀고, 이는 마카베오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주로 그 전쟁이야기가 소재로 되어 있다.

   

⑵ 마카베오 2서:키레네의 야손에 의한 5권의 역사서를 요약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씌어졌으며, BC 176BC 161년경의 유대의 역사이다. 1서에 비하여 종교적 색채가 강하며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장 이후의 후반부는 앞의 마카베오1서와 내용이 거의 중복된다. 저자·연대 미상이며, 한국 공동번역성서에는 《마카베오기 하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2권은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여 불가타역(譯) 성서에 포함하였으나, 유대교개신교에서는 여전히 외경 또는 위경으로 간주한다.

   

⑶ 마카베오 3서:프톨레마이오스 4세 때 이집트유대인 압박을 소재로 하여 소설체로 쓴 것인데, BC 217년 알렉산드리아가 썼다.

   

⑷ 마카베오 4서:다른 마카베오서와는 달리 철학적 색채가 강한 내용이다. 경건한

이성(理性)이 충동[情欲]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등 스토아학파의 영향이 짙다.

이상의 3·4서는 가톨릭에서도 정경에 포함하지 않는다."

[출처] 마카베오서 [書, The Books of the Maccabees ] | 네이버 백과사전

   

개신교 성경을 보면, 바빌론 유수를 겪어 혼란을 겪던 이스라엘 역사가 있더니만,

수백 년을 훌쩍 뛰어넘어 갑자기 예수 시대, 즉 신약 시대로 이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서, 과연 이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발생한다.

왜? 바리새인, 열심당 혹은 제롯당 기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 사이에 유다 마카베오가 있다. 마카베서는 요아립 가문의 사제이자 시메온의

 손자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쓴 역사서이다. 요아립 가문은 바빌론 유수 시기에 사제 가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요아립 가문은 조로아스터교 신봉자였던 셈이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60497386&qb=7Jyg64ukIOuniOy5tOyYpOuyoOyEn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qEuZF5Y7uossZIW6i8ssc--226929&sid=TqmCCfJxqU4AAAoLC@U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879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0906&docId=564653&qb=7Je07Ius64u5IOuwlOumrOyDi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qDmHU5Y7uhssblOhvwssc--086793&sid=Tqk6ilAfqU4AAGeVQFs

   

http://www.kosinusa.org/chboard/bbs/board.php?bo_table=10&wr_id=1061&page=9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0&JangNo=2&JangSum=16&LastPage=  

   

요야립 가문의 사제이자 시메온 의 손자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쓴 역사서이다.

   

* 정경의 시대적 변화

BC450년… 모세5경

BC150년… 70인역(구약46권)

AD 90년… ① 팔레스티나 지방 유대인 정경 : 히브리어 성경39권

           ② 희랍 문화권 지방 유대인 정경 : 희랍어 번역본 46권(70인역)

신약(AD)에 들어와서

382년…   70인역(46권)+신약성경(27권) = 73권으로 약 1700년간,

1517년…  가톨릭교회 : 제 1경전(히브리어39권)+제2경전(희랍어7권)

                                              +신약성경 27권 = 73권

          개신교회 : 제1경전만 인정(히브리어39권)+신약성경 27권 = 66권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나 제2경전을 외경 또는 위경이라 함)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60497386&qb=7Jyg64ukIOuniOy5tOyYpOuyoOyEn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qEuZF5Y7uossZIW6i8ssc--226929&sid=TqmCCfJxqU4AAAoLC@U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879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0906&docId=564653&qb=7Je07Ius64u5IOuwlOumrOyDi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qDmHU5Y7uhssblOhvwssc--086793&sid=Tqk6ilAfqU4AAGeVQFs  

   

http://www.kosinusa.org/chboard/bbs/board.php?bo_table=10&wr_id=1061&page=9

   

http://blog.naver.com/artnouveau19/140119286035  

   

   

페니키아/카르타고 유태인인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국유본은

 희랍어 성경이 싫었다. 그 내용보다 그 형식이 문제였다.

허나, 로스차일드 가문과 로마 가톨릭이 1960년대 교회 일치 운동,

에큐매니컬 운동이 본격화하자 사태가 급변한다.

개신교 성경과 가톨릭 성경의 차이, 그 대목에서 해방신학이 싹트는

것이다.

   

이제까지 로마 가톨릭은 권력의 상징이요, 수구꼴통이었다.

실제로 한반도 침략을 용인하고 지지한 것이 로마 가톨릭이었다.

허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빅터 로스차일드 대에 이르러 급격한

신질서 세계로의 이행을 원하여 가톨릭과 손을 잡자 상황이 달라졌다.

마카베서가 읽히기 시작했다.

   

마카베서는 무엇인가.

   

급진적인 민족해방서이다.

   

바빌론 유수 이후 조로아스터교, 혹은 짜라투스투라교를 익힌 교도들이

 이스라엘에 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가차없는 인종 학살이었다.

   

마치 가나안에 입성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족을 말살하는 것과 같았다.

   

이민족과 혼인하거나 떡친 자들을 모두 죽여라!

   

인종주의였다. 순혈주의였다. 나찌의 모범이다.

   

환향녀, 화냥년이라 해서 조선도 돌아온 처자들을 멸시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것조차 성경과 유사해지려는 역사 해석이지,

알고 보면, 조선조차도 화냥년에 관대했다.

   

조선 말기까지 조선인들은 처녀성에 대해 양반층까지 포함해서 별다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 아무리 법으로 이야기해도 조선인들은 성에 관해서 관대했다.

   

이것이 바뀌고, 처녀성에 대해 민감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일제 시대 이후부터이다.

   

쪽발이도 사실 처녀성에 덜 민감했는데,

국유본 힘으로 정권을 잡으니 메이지유신 이후에 달라진 것이다.

   

참고로 쪽발이왕은 근본도 없는 색희다.

이걸 백제이니 신라이니 하고 연결하지 마라.

그것이 모두 국유본 기획이다.

   

요즘 하도 인드라가 쪽발이왕을 씹으니까 국유본이 대책을 내놓는데,

좆까지 마라.

   

쪽발이왕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 한일연방공화국이 온다.

   

쪽발찌라시 한경오프엠 동원해서 쪽발이왕을 옹호하지 마라.

   

아, 씨발, 쪽발 돼중, 쪽발 놈현.

   

   

   

인드라가 그간 분석한 바를 말씀드린다.

   

기원전 이스라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통 유태인들은 지중해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레위파요, 사독파다. 제사장파다.

   

이들은 그리스 종교, 로마 종교, 이집트 종교를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윤회, 내세를 믿지 않았다.

   

지중해 종교에는 윤회, 내세가 없었다.

   

반면, 이란 고원 종교에는 윤회, 내세, 영혼이 있었다.

   

   

레위파, 사독파에게는 윤회, 내세가 없다.

   

바리새파, 열심당, 예수에게는 윤회, 내세, 부활이 있다?

   

   

이 차이 중요하다.

   

바로 여기서 1980년대 한국에서 민족해방투쟁이 발생했고,

   

김일성빠가 탄생하고,

   

사노맹파가 나타났으니까.

   

   

인드라는 묻는다.

   

무뇌아 쪽발노빠 안티개독파에게 묻는다.

   

이스라엘이 단일 민족인가?

   

아니다.

   

당신은 세뇌되었을 뿐이다.

   

   

뉴라이트 기획이다.

   

알렉산더 대왕 때 유태인은 알렉산더 대왕에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 이후 그리스 왕조는 왜 유달리 유대인을 탄압하여

   

마카베 봉기를 이끌었을까?

   

설명이 없다.

   

이에 대한 인드라 주장은 한결 같다.

   

그리스와 악연을 맺을 족속은 페니키아/카르타고인 밖에 없다.

   

둘의 공통점은 해상 상업 민족이어서 경쟁 관계였다.

   

로마에 패한 페니키아/카르타고인들은 유대교, 정확히는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한 것이다.

   

해서, 이들은 이전까지 제사장 제의를 지킨 레위파나 사두개파와 달랐던 것이다.

   

그들이 바리새인이 된 것은, 모세나 다윗, 솔로몬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해서, 누구보다 강력한 그리스/로마 반대파가 된 것이다.

   

하여, 이 문제를 바리새인은 애국자, 사두개인/레위인은 친일파로 이해하는 한,

   

그대는 뉴라이트파 떡밥에 걸린 가엾은 족속에 불과한 것이다.

   

깨어라!

   

당신은 지금까지 국유본의 개색희로 인생을 헛살았다!!!

   

쪽발 돼중, 쪽발 놈현을 찬양하는 한, 그대는 개색희다.

니 애비는 쪽바리일 것이다.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1 : 하이퍼 인플레이션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1/10/27 03:44

http://blog.naver.com/miavenus/70122336874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1 : 하이퍼 인플레이션

국제유태자본 인드라 월드리포트 11/10/27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그간 인월리에서 숱하게 말하였음에도 과거 인월리 글을 검색해서 찾아서 읽기 보다 질문부터 하시는 분들이 많다. 한국인들은 역시 빨리빨리이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해서, 자주 질문하는 사안들을 모아 백문백답 시리즈로 만들고자 한다. 백문백답이 다 채워지면, 이를 한 데 합쳐서 다른 어떤 글보다 이 글부터 읽으라고 권할 생각이다.

   

그 첫번째 질문으로 왜 하이퍼 인플레이션, 혹은 초인플레이션인가.

   

번개에서 가장 많이 질문을 받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궁금 사안이 경제 60%, 영성 20%, 음모론 15%, 정치 5%이다. 온라인과 달리 실제 번개에서 만나는 분들 다수는 경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때로는 80%에 육박하기도 한다. 그만큼 온라인 여론이란 건 믿을 것이 못 된다. 문국현이 온라인에서 50% 먹었는데, 실제로는 5% 먹었지 않던가. 박원순도 뉴라이트 네이버가 이토록 광고해주었고, 게시판들도 보면 죄다 박원순인데, 간신히 이겼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게시판에 글쓰는 이들은 전체 유저의 5% 정도 남짓하고,  그마저도 시사 글이나 덧글 쓰는 이들은 대개 국유본이 고용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한나라당이나 쪽발민주당을 지지한다 해서 그들이 그 당 알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유본에서 고용한 자, 즉 CIA나 국정원 사이버 요원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아이리스라고 생각하면 무방하다^^!

   

하여간! 본론으로 가자~!

   

초인플레이션

연율로 따져 몇 백%로 진행되는 아주 높은 인플레이션을 말한다. 초인 플레이션은 대개 높은 통화증가에 사람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가세 하여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의 예로는 1920년대 독일의 경제상황을 들 수 있는데, 그 당시 독일에서 빵을 사거나 편지 한통을 부치는 데 수천억 마르크가 들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http://ko.wikipedia.org/wiki/%EC%B4%88%EC%9D%B8%ED%94%8C%EB%A0%88%EC%9D%B4%EC%85%98 

   

   

왜 인드라가 이 문제를 백문백답 첫번째로 했는가 하면, 질문도 많이 주시지만, 그만큼 국제유태자본론과 다른 음모론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음모론들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초인플레이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대부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기정 사실화하고 특히 미국 달러가 휴지가 되어서 세계 경제가 이내 망한다고 말한다. 쑹훙빙의 '화폐전쟁'서부터 시작해서 '연쇄하는 대폭락'의 소에지마 다카히코도 그렇고, '시대정신' 동영상도 그렇고, 거의 모든 음모론자들이 달러 휴지론을 이야기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말한다.

   

허나, 이러한 음모론과 달리 독특한 음모론이 있으니 국제유태자본론이다.

   

국제유태자본론은 99.9%의 음모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하나, 달러는 휴지가 되지 않는다.

   

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오지 않는다.

   

셋,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음모론 배후에는 국제유태자본이 있다.

   

이 문제를 보다 깊이 들어가보기로 하자.

   

하나, 달러는 왜 휴지가 되지 않는가.

   

달러 휴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실 음모론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주류 학자들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된 근거는  미국의 재정 적자, 무역 적자, 즉 쌍둥이 적자를 든다. 재정 적자로 인한 이자 부담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나고, 무역 적자 역시 해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해서, 결국 미국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허나, 국제유태자본론은 다르다.

   

일부 주류 이론과 대다수 음모론과 달리 국제유태자본론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재정 적자 문제는 영구 부채로 해소할 수 있다.

   

영구 부채란 무엇이냐.

   

간단히 설명한다. 국유본이 인드라 제안을 수용하고, 364억원을 인드라에게 준다. 이때, 인드라는 364억 중 78%를 지인들에게 준다고 했다. 이때, 공짜로 주냐. 아니다. 이러면, 여러 가지 법적인 조항에 걸리고, 도덕적 해이도 발생한다. 이에 대한 인드라 방식은 무엇이냐.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다.

   

이때, 원금과 이자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인드라 방식이란?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 소정의 이자만 받는 방식이다. 이때, 이자는 시중 금리의 1/100이다. 만일 시중 금리가 연리 5%라면 1/100이니 0.05%이다.  은행에서 1억을 빌리고 시중금리 연리 5%를 적용하면 일 년에 오백만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만일 인드라한테 1억을 빌렸다면, 0.05%이면 일 년에 오만원만 내면 된다.

   

이것이 영구 부채인 게다.

   

하면, 이것은 이상적인 것이냐, 질문할 수 있다. 아니다. 영구 부채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중이다.  물론 이율은 상기한 것보다 훨씬 비싸고, 원금도 무한정 안 갚는 것이 아니라 기한도 정해져 있지만, 다른 부채보다 기한이나 조건이 좋기에 상대적으로 영구 부채라고 평가받는 것이 있다. 인드라는 이것이 영구 부채로 가기 위한 국유본의 실험물들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하면, 이것이 미국에 가능한가?

   

가능하다. 입증할 수 있나? 있다. 무엇? 미국 국채이다. 그 아무리 미국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미국 국채는 신용평가사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여러분은 이를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자도 거의 안 주는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를 왜 하나?

   

그건 여러분이 부자가 되어보지 못해서 하는 질문이다.

   

간단히 생각하자. 예금은 얼마까지 보장하나? 오천만원이다. 오천만원이 넘으면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한민국이니까 이런 제도가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다. 구소련 시절 고르바쵸프는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 적이 있다. 러시아 은행이 모두 망해서^^!

   

자, 문제의 포인트를 알겠는가. 부자들 관심사는 이자가 아니다. 있는 원금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는 것이다. 이걸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 미국 재정적자는 세계 경제체제로 인한 불가피한 시스템이다. 허나, 이는 미국과 중국이 공동 소비시장이 되면 해결할 수 있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금 기반 달러체제나 데이비드 록펠러의 석유 기반 달러 체제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전 세계 수출국의 소비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인드라가 좔좔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인월리 보면 설명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한다. 왜 미국인들이 하나같이 뚱땡이가 되었나를 말이다. 세계 인류를 위해서라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까^^!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 특수성을 언급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자연스런 시스템이 아님을 최초로 말한 이를 인드라는 맬더스라고 본다. 왜? 자본주의 시스템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 - 대량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허나, 과연 인류 역사에서 대량생산 - 대량소비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던가. 아니다. 대부분은 자급자족 체제였다. 그런 이유로 오랜 역사를 지닌 중동이나 중국, 인도에서 상업 활동이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를 쉽게 말하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포탄이 필요하고, 군복이 필요하고, 식량이 필요하고, 군함이 필요하다. 물량이 천 명, 만 명 정도가 아니라 십만 명, 백만 명 수준이다. 공장이 돌아간다. 고용을 확대하고, 시설을 확장한다. 헌데, 전쟁이 끝난다. 하면, 고용 인력을 전부 해고해야 하고, 시설을 놀려야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여러분은 생각할 것이다. 아니, 평화 시대라면, 전쟁 시대의 그 물자를 가난한 인민들에게 돌리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하면, 이윤은?  이때, 맬더스 표절자, 케인즈는 답한다. ( 케인즈는 빅터 로스차일드 인물이다. 같은 사도회 인물이다. ) 평시도 전쟁 때와 같다.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된다.  

   

예서, 케인즈는 말하지 않았으나, 단서 조항이 있다. 영어는 주어 서술어보다 조건문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전쟁이 일어나야 유효함.

   

허나, 전쟁이 모든 것을 책임지려면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어야 했다. 일차 대전, 이차 대전과 같은 규모이다. 허나, 그 이후로 삼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면?

   

그렇다. 한편으로는 국지적 전쟁을 일으켜서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삼차 대전이 아니라 국지적 규모 전쟁,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이므로 다른 부문에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담당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이다.

   

미국 소비시장이다.

   

허나, 현 수준에서 미국 소비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른 것이다. 더 이상 미국 소비시장에 세계 소비를 주문하다가는 똥똥한 미국인이 빵 터질 수 있다.

   

대안은 있다.

   

그렇다. 중국이다. 십 억 인구이다. 중국 다음에는 인도이다. 이들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소비시장이 된다면 세계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거대한 프로그램 이름이 무엇이냐?

   

무엇이냐고?

   

워싱턴 컨퍼런스. 다른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이다.

   

 해서, 요즘 세계 경제기구와 경제인이 중국에 주문하는 사안이 무엇인가.

   

내수 확장 정책을 쓰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케바리~?

   

셋, 달러 휴지론을 주장하는 배후에는 국유본이 있다.

   

이것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허나, 인드라가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로스차일드가 나폴레옹 전쟁 때 어떻게 돈을 벌었나?

   

누구보다 먼저 워털루 전쟁 결과를 안 로스차일드임에도 런던 주식시장에 나타나 아무 말 없이 휴~ 하고 다 죽을 것처럼 말하고 사라졌다. 이에 런던 주식 투자자들은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고 공포에 빠져 앞다투어 주식을 팔고, 국채를 팔았다. 허나, 로스차일드는 주식과 채권을 헐값에 남김없이 사들여 일약 영국 최고의 부자로 등극한 것이다.

   

또한, 록펠러는 어떠한가?

   

록펠러가 로스차일드의 미국 하수인, 모건 덕분에 철도를 이용하여 미국 석유산업을 장악해가자, 록펠러에 반발하는 석유업자들이 속출했다. 이때, 반록펠러 동맹이 떴다. 록펠러에 반대하는 이들 다 모여라~! 해서, 모였더니, 안티록펠러 동맹이 말한다. 노조 만들면 곤란하다, 종북은 안 된다, 근본주의 입장 불가 등등등. 그렇게 해서 만든 안티록펠러 동맹? 알고 보니, 록펠러 자회사였던 게다~! 마치 박원순 캠프가 한나라당의 자회사이듯~^^!

   

국유본은 음모론 분야마저도 장악하고자 한다. 인드라는 이를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려 '골드스타인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정리하자.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국유본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빌미로 IMF SDR 통화라는 세계 통화로 이행중이다. 예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역 통화와 같이 간다는 것이다. 세계 통화 만드는 데 왜 유로 통화 같은 지역 통화를 왜 만들어? 하는 분들이 꼭 있다. 국유본은 백년지대계를 작성한다. 그냥 직빵으로야 SDR 세계 통화 만들면 그만일 것이다. 허나, 국유본은 심리를 굉장히 중시한다. 해서, 그 반발까지도 다 껴안고 가려는 것이다. 국유본이 원하는 것은 강제적으로 인민이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매트릭스 세계에 투항하는 것이다. 해서, 지금도 세계를 완전 장악할 수 있지만, 기다리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인민이 스스로 항복할 때까지.

   

나, 그냥 죽지 않기만 하면, 가상 세계에 빠져 평생 살래. 그러니 가상 세계 게임 빨리 만들어줘.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이제 이해가 가는가?

   

국유본이 기존 음모론에 대해서는 콧방귀를 날리면서도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이다.

   

전 세계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는 오직 인드라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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