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1 : 해체, 몽롱시작, 인드라 국유본론 백문백답
2012/02/09 07:09
http://blog.naver.com/miavenus/70130874525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봐. 신학이 설명할 수 있겠어? 철학이 필요할까? 그 무엇으로도 이해가 불가능하잖아. 어쩌면 신은 그 불가능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몰라. 바벨탑 말이야. 그렇군. 해체란 결국 바벨탑의 교훈인 것이야? 모른다고 했을 뿐이야. 그래. 그것이 너의 해체 방식이지. 알아. 모른다면서 아는 척 말하는 이들을 역시 모르면서 조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소크라테스 이후로 너처럼 통쾌한 철학자가 있을까? 후후. 유대인 랍비들이 생존하기 위해 그간 얼마나 애매한 말을 즐겨하였는지를 말이지. 모호한 영역에서는 늘 당신들이 있고, 그 틈새를 당신들이 개척하였지.
http://blog.naver.com/miavenus/70017119248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51 : 해체, 몽롱시작, 인드라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12/02/09
"몽"이라 함은 꿈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는 꿈꾼다 꿈은 쓸 데 없다 우리의 현실은 꿈처럼 지극히 비참하지도 행복에 부풀지도 않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한없이 증오스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그래서 꿈은 도식과 수치와 이윤으로도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처럼 우리 안에 상정되어 있지 않은 모든 것이다 한편 꿈은 시간 속에 놓여진다 차이를 낳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심장박동을 울려퍼지게 한다 꿈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배운다 그러나 꿈은 목적이 없다 꿈은 꿈이다 시간 속에 놓여진 카오스이다 바로 우리 몸이다 세계이다
나사가 인월리에 반응한다?
INDRA:
글 고맙습니다. 인월리는 국내외 거의 모든 주요 세력이 참고하고 있으며, 국유본이 눈여겨보는 세계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저널이다^^! (ㅍㅍㅍ~! ) 세상은 변화한다. 용기를 지녀야 한다. 해서, 여러분이 인월리 글에 고개만 끄덕여도 세상은 나비효과처럼 변화한다. ㅋ
기사를 보니 오히려 인드라 입장을 강화시키는 주장으로 보인다. 각종 기후 데이터를 보면 마치 주가 차트를 보는 듯하다. 소빙하기라고 불리던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있었다. 또한 로마 온난기와 중세 온난기라 각각 부르는 시대에도 상대적으로 추운 시기가 있었다. 그처럼 온도 측정이 이루어진 20세기, 특히 1980년대 이후를 보면 지속적으로 오르기 보다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올라간다는 점이다.
인드라는 애써 인위적인 요인이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이 시리즈 처음에 이미 밝힌 바 있다. 또한 인위적인 요인에서도 이산화탄소 외에 다른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인위적인 요인 외의 자연적인 요인들 역할이 상당함을 시사했다.
만일 인위적인 요인이 자연적인 요인을 압도한다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만큼 온도는 지속적으로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드라가 주장한 바는 1995년부터 지난 2005년까지 더웠다는 데에 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2005년부터 남북극 빙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지 않는가를 제기한 게다. 하고, 향후 십여 년간은 온도가 오히려 내려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 게다.
이에 대해 현재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흑점 이론이다. 흑점 이론이란 보통 11년 주기를 의미하는데, 80년 주기설도 있다. 11년마다 나타나는 흑점이 최고로 많이 나타나는 상승 꼭지점을 연결하면 80여년마다 패턴이 있다는 게다. 어떤 시기에는 유난히 흑점 활동이 저조한 시기가 있다는 게다.
1750년 이후 여섯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헌데, 무흑점이 길게 이어진 시대에는 지구 기후가 춥고, 가물다는 게다. 소빙하기 시기가 그렇다는 게다. 현재는 흑점이 덜 나타나는 시기이다. 2013년 5월 정도가 11년 주기상 흑점이 가장 많이 나타날 때이다. 초점은 이때의 흑점 수가 다른 때의 흑점 전성기 때와 달리 매우 낮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한국에 태풍이 오지 않았다. 많은 비가 와야 하는데 비도 적게 왔다. 지구온난화를 강조하는 이론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유난히 온난화가 진행되는 곳 중 하나다. 헌데, 지구 온난화 이론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한국에 가뭄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태풍과 비를 선사한다. 헌데, 올해 태풍이 없고, 비도 적게 왔다?~~!
지구 온난화에 인위적인 요인이 있지만 아직까지 자연적인 요인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여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울러 기후 분야가 복잡다단한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음을 강조하고픈 것이다.
제노그래픽 프로젝트는 인류 구원 프로젝트인가 인류 멸망 프로젝트인가
카터를 직접 뽑을 만큼 데이비드 록펠러의 초기 정치적 포지션은 노예민주당이었다. 대신 형 넬슨 록펠러가 공화당 포지션이었다. 양 록펠러는 공화당/노예민주당을 각각 맡아 로스차일드처럼 미국 정치를 조율하였다. 헌데, 넬슨 록펠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데이비드 록펠러는 공화당으로 옮긴다. 레이건과 레이건 민주당원을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공화당에 파견하여 공화당 주류를 만든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데이비드 록펠러 스스로도 마치 정몽준의 스승인양 공화당적인 행보를 하여 카터뿐만 아니라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을 만들어낸다. 예서, 노예민주당을 관리할 인물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오늘날 국유본 황제, 제이 록펠러였다. 하여, 제이 록펠러가 1985년 웨스트버니지아 주지사에서 웨스트버지니아 미국 노예민주당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는 주지사보다 상원의원이 당 장악이 보다 용이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후 1986년에 챌린저호 우주선 폭발 사고와 체르노빌 원전 사건 일어났다.
이제 우주공학 대신 생명공학^^? 1987년 미국 유전학자들이 아프리카 기원설, 혹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설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다. 하고, 이들은 순식간에 인류학계에서 주류가 된다.
1986년 미국 에너지부가 세계 처음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시작한다. 이후 1988년 9월 미국 에너지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해서, 2000년 6월 26일 미국 빌 클린턴 노예민주당 대통령은 마치 케네디의 아폴로 프로젝트를 선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와 민간연구기업인 셀레라제노믹스 회사의 크레이그 벤터와 나란히 서서 역사적인 인간 게놈 해독이 거의 완성되었음을 발표하였다. 2001년 2월 일차적인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고, 2003년에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http://blog.naver.com/minjaya?Redirect=Log&logNo=60002231494
예서, 인류의 기원 학설들을 살펴보자.
인류의 기원에 관한 학설을 대별하면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로 나뉜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까지만 해도 주류 가설은 다지역 기원설이었다. 하면, 다지역 기원설이란 무엇인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인 호모 에렉투스가 이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출현한 이후 180만 년 전에 세계로 퍼졌다. 이후 각 지역에 토착화된 호모 에렉투스가 각 지형에 걸맞게 각자 진화해왔다. 가령 유럽은 네안데르탈인, 아시아는 베이징원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원인이다. 빅터 로스차일드 시대이므로 아무래도 유럽중심적인 마인드가 있다 보니 이중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우위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 부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성과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40만 년에서 이십만 년 사이에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로 보이는 과도기 혹은 융합 단계가 있었다. 이후 이십만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만 생각하면 조지 오웰의 1984년 체제가 절로 떠올리게 되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수설이었다가 제이 록펠러 등장과 함께 오늘날 주류 가설이 된 아프리카 기원설은 무엇인가. 다 지역 기원설이 유전자 정보도 이용하지만, 주로 화석에 의존한다면, 아프리카 기원설은 유전자 중심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인간 유전자 샘플들로 인류의 조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는 유전자 다양성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보다 오래된 족속일수록 다양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에 이들 유전자간의 관계를 찾아가면 기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가문에서 직계와 방계가 넘쳐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언어도 오래된 지역에서 보다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될까.
유전자 분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한 모계 전승 분석이다. 획득한 유전자 정보에 따르면, 인류는 약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이브라고 명명된 유전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다. 다른 하나는 Y염색체를 통한 부계 전승 분석이다. 이 둘을 종합하면, 인류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 즉 아프리카를 탈출한 것은 60,000년 전 무렵이다.
예서, 아프리카 기원설의 주된 특징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6만여년 전에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 35,000년 전 호모 에렉투스를 절멸시켰다는 게다. 반면 다 지역 기원설은 양 종족 사이에 어떠한 식으로든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3만 년 전까지 생존했다면 호모 사피엔스 시기와 오랜 기간 겹치므로 이들 간의 융합 내지 변종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게다. 허나, 유전자 분석으로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가 오십만 년 전에 분기되었다는 게다. 해서, 이천 년대 접어들면서 아프리카 기원설은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보면, 오늘날 록펠러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먼 미래가 아니라 굉장히 가까운 과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은 국유본처럼 해양인이 주류였고, 미국을 건너갈 정도로 모험적이었다^^! 인류 조상을 알고 보니 세계화론자였던 게다~~!
허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 한반도인과 중국인은 독자적인 기원이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 대신 다지역 기원설을 주로 주장하는 측은 중국과 북한이다. 근래에는 지역 기원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호모 에렉투스도 기원했다는 자생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창장(長江)유역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 204만 년 전 인류라는 분석이 제기돼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측정 연대가 세계 학계에서 공인될 경우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원숭이 인간이 고대 인류로 진화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발견이 된다. 1985년 발견된 화석을 22년째 연구해 온 중국과학원 고척추 동물 및 고인류연구소는 "이 화석은 창장 강 유역에 200만 년 전부터 원숭이 인간이 살고 있었음을 입증한다"며 "중국의 인류 조상은 아프리카의 원숭이 인간이 아니라 중국 자체의 원숭이 인간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또 "중국 고대 인류 화석의 86%가 창장 강 유역에서 발견된 것"이라며 "이는 중국 인류 조상이 창장 강에서 발원해 점차 중국 북부인 란톈과 베이징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창장 강 싼샤 지역에 고고학자를 대거 투입해 5개 이상의 선사시대 인류 유적을 찾아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32791221
"북한이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발생해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명쾌하다. 70~100만 년 전 검은모루 유적을 남긴 원인이 력포사람과 덕천사람을 거쳐 승리산사람으로 발전하였고 조선 옛유형 사람을 거쳐 현대 한국인으로서의 특징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혈청학적 특징도 제시한다. 사람들의 혈액형과 유전자형들은 인종을 식별하고 각 민족들의 친연관계나 차이들을 확증해주는 중요한 지표로 인정된다. 그런데 북한의 장우진은 한민족의 경우 적혈구혈액형들인 레주스식 혈액형에서 나타나는 항원들의 양성인자 중 D항원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D항원의 양성인자는 아시아 인종에서는 99~99.5퍼센트, 유럽인종에서는 85%, 아프리카 인종에서는 91% 정도인데 한민족은 D항원의 양성자가 99.71%에 달한다. 특히 유전자 조성에 있어서도 한민족과 중국인들은 흑룡강 성의 중국인을 포함하여 완전히 다르다. 이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북한의 주장은 한국인은 우리 조국강토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본토기원의 주민집단으로 파악하면서 구석기시대부터 외부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어 순수하게 혈통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locku?Redirect=Log&logNo=20030607541
헬리코박터균을 통해 본 인류 이동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crXY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주장은 아프리카 기원설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중국과 북한의 주장은 물론 남한의 소로리인의 소로리볍씨 등 상당수가 영국 BBC방송을 통해 공인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헬리코박터균 분석을 통해 본 인류 이동 경로로 보자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아시아, 그것도 한반도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는 게다^^!
"슬기슬기사람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사람 뼈는 보다 많이 출토되었다. 남한의 청원 두루봉 흥수굴에서는 완전한 개체분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라 흥수아이로 이름 붙여진 이 주인공은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래턱뼈가 출토되어 복원한 승리산사람이 있으며, 두개골의 일부와 아래턱뼈가 발견된 만달 사람이 있다. 결국 역포사람과 덕천사람, 상시슬기사람은 우리 나라의 네안데르탈인이며, 흥수아이와 승리산사람, 만달사람은 우리 나라의 크로마뇽인이라고 할 수 있다."
http://php.chol.com/%7Enoza/khistory/01.htm
아프리카 기원설이 주류인 남한에서도 '흥수아이'가 등장했다^^!
둘, 현생 인류가 모두 이브의 자손은 아니다
"1995년과 2001년에는 멍고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가 아프리카의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멍고인은 형태와 문화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지니지만 아프리카의 유전적 계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멍고인의 존재는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비판하고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
http://cheonggye.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857261&contentno=857261
호주가 영연방 국가에서 보듯 빅터 로스차일드 영역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 쇠고기 파동으로 호주 쇠고기가 수입 고기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음을 상기할 때,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호주산 쇠고기가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안심할 수 있는 근거는 또 뭔가^^!
셋, 열처리 기술자 아프리카인?
"약 7만 2천년 전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에 살았던 고대 인류가 세심하게 화로를 조절해 돌 연장과 무기를 연마하고 모양을 다듬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견돼 인류의 열처리 기술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몇 만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연장 가공에 처음으로 불을 사용한 것은 약 2만 5천년 전 유럽에서였던 것으로 많은 학자가 믿어 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812332
농경의 시작은 청동기 시대부터라는 도식이 무너졌다. 이처럼 인류학 역시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에는 돈이 든다. 이 돈은 자본이 대고, 자본은 이 프로젝트 결과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를 현행 권력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본의 증식을 보장받는다. 쉽게 말해 국유본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게다. 이 기사는 언뜻 보면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기사로 보인다. 왜? 과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그간 믿어져온 것들에 대해 과신하지 말라는 숨은 메시지를 읽는다면? 다시 말해, 남한이나 북한에서 네안데르탈인처럼 장례 풍습을 드러낸 것 이상으로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십만 년 전에 그간 알려진 열처리 방식보다 더 뛰어난 고고학적 유물을 발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간 발굴된 것만 따져도 가능성은 충분히 로또 당첨보다 높다^^! 무엇보다 앞으로 아프리카 뉴스가 꽤 많이 등장할 것이다. 아이젠하워 때 스웨덴이. 클린턴 때 아일랜드가 부각되듯이...
넷, 해양인 이미지에 대한 과도한 덧칠은 페니키아 유태인설에 대한 강한 긍정?
아프리카 기원설이 근래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진취적인 해양인 모습을 고대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해서, 근래에는 흥미롭게도 그간의 아프리카 탈출 경로였던 시나이 반도로의 경로를 부정하고, 홍해를 직접 건너가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 중 근래 가장 유명한 이는 스펜서 웰스 Spencer Wells이다.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의 현지 조사책임자이자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다. 1994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스탠포드대학 유전학자 루카 카발리-스포르차 지도하에 연구했다. 이곳에서 그의 연구는 Y염색체를 이용해 인류의 지구 거주 시기 및 과정을 추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후 웰스는 옥스퍼드대학 웰컴트러스트 인간 유전학센터(Wellcome Trust Center for Human Generics)의 연구팀을 지휘했다. 2003년 PBS/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인류의 여행The Journey of Man: A Genetic Odyssey)(2002)을 발표했으며, 같은 제목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책이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로 번역되어 나왔다. 읽어보면, 본문보다 부록 격으로 수록된 각 유전자형 설명이 더 유익함을 이내 눈치를 챌 수 있다. 해서, 문제가 있는 그의 주장 역시 미디어적으로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 지를 그의 저서와 뉴스, 인터넷 글로 비교할 수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3029837
스펜서 웰스와의 인터뷰
http://www.bongwoo.org/zeroboard/view.php?id=pds&no=187
스펜서 웰스가 중앙아시아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일단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언급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하면, 아프리카를 떠난 족속이 중앙아시아에서 머물러 살다 일부는 유럽으로 가고, 다른 일부는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로 건너가는 인종의 분기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곳에서는 얼굴 형태는 유럽인인데, DNA로는 아시아인이거나, 그 반대로 얼굴형태는 아시아인인데 DNA로는 유럽인인 빈도가 높게 등장하고는 한다. 인드라는 예서, 조금 더 나아간다. 스펜서 웰스의 연구는 중앙아시아를 발칸화시키고, 박정희를 암살했던 브레진스키의 전략과 조응되기 때문이다. 헌데, 스펜서 웰스가 한국에 와서 황우석과의 관련에서 늘 뉴스의 주인공이었던 서정선을 만난다? 이것이 우연일까. 크레이그 벤터와 서정선 관계를 생각한다면^^!
http://kr.blog.yahoo.com/blog4usa/4.html
더 나아간다. 인드라가 사실 가장 흥미가 있었던 것은 제노그래픽 프로젝트가 페니키아인에 대한 추적을 한다는 것이다. 스펜서 웰스의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를 보면, 아슈케나지 유전자 분석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아슈케나지와 대별되는 세파라딤 유태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대신 레반트 지역의 페니키아인 동향을 살핀다는 데에 큰 관심을 보인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이 말이다. 왜 유대인 프로이드는 페니키아인이자 카르타고인이며, 오늘날 유태인의 조상인 한니발을 높이 평가했던 것일까^^! 왜 그들의 로마사 읽기는 늘 로마를 불편하게만 여기는 것일까?
http://blog.naver.com/vemplus?Redirect=Log&logNo=70001308031
다섯, 고대 인류는 정말 바다를 건너갔는가?
헌데, 오늘날보다 폭이 적다고 가정해도 16~18킬로 정도가 된다. 6만 년 전의 인간이 배를 만들어 건넌다고 해도 그 배란 그저 통나무 하나에 기대어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해서, 이러한 사건이 드물지만 가끔 일어난다고 볼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집단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허나, 백번 양보하여 이를 인정한다고 하겠다. 또한 말레이 반도에서 뉴기니를 거쳐 호주를 가는 경로도 이해가 된다. 당시에는 육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는 게다.
허나, 아라비아 반도에서 인도로, 호주에서 필리핀, 일본, 북아메리카로 건너가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처럼 완전히 판타지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 인드라 소견이다.
그보다는 태평양 섬으로의 인류 이주 역사처럼 굉장히 최근의 사례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싶다. 모두가 일만 년 이내의 사건들이다. 하면, 왜 이전까지 인류는 일만 년 이전에는 이들 섬과 아메리카 대륙에 가지 못했을까. 아라비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호주로, 호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직행할 정도의 항해력을 갖추었다면 이보다 오랜 시기에 이미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다를 건너갈 정도라면,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결론은 자명하다. 항해력이 없었다. 고로 아라비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호주로, 호주, 필리핀에서 뱃길로 일본으로 갔다는 것은 모두 허구다. 배가 발견된 예도 없다. 단, 일만 년 이내에는 가능한 사건일 수는 있다. 한국에서 이 시기 세계 최초의 배가 발견되었다.
여섯, Y염색체로 고인류 이동 파악이 가능한가?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수렵을 했다손치더라도 대부분은 채집이 중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컸기에 모계중심사회라고 알려져 있다. 모계중심사회에서는 부계의 핏줄을 확인하기 힘들었기에 Y염색체의 지속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서, 5만년 정도 후에 Y염색체의 공통 조상이 드러난다면, 이는 이 시기부터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이행했다는 표지로 간주할 수 있다.
Y염색체로 보는 유전자 분석으로만 일단 보자. 몽골 족속 중에 칭기스칸 족속인 브리야트 족속이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칭기스칸 족속이 황금씨족으로 군림하였기에 가능하다. 또한 근대 청나라 시절을 거치면서 중국 전역에 퍼진 만주족 씨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수메르 문명의 멸망 과정이다. 아카드 야만족에게 멸망당한 수메르 문명의 실태는 어떠했나. 수메르 귀족 여성들은 야만족에게 능욕을 당하면서 생존했다. 반면 수메르 귀족 남성들은 노예화하거나 죽었다.
이 시기 노예화는 종이 끊김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는 이후에도 되풀이되었다. 최근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통해서 조선과 중국, 동남아에 무수한 정자를 퍼뜨렸다. 여성의 씨는 제한되어 있으나, 남성의 씨는 무한하다고 할 만큼 짧은 시간에 퍼뜨릴 수 있다. Y염색체 분석으로 인류 경로를 참고할 수는 있되, 중요 지표로는 역사시대를 고려한다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일곱, 미톤콘드리아 DNA는 믿을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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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 DNA로 본 분석은 믿을만할 것인가. 미토콘드리아로 통해 본 유전자 분석과 Y염색체로 본 유전자 분석, 즉 아담과 이브의 차이가 십만 년 차이가 나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해서, 그만큼 Y 염색체 분석보다 여러모로 안정적일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허나, 여기에도 오류를 고려해야 한다. 해서, 이 오류를 감안해서 유전자 분석이 자칫 근대의 사건을 고대의 사건으로 만드는 데서 착오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간단한 계산만으로 한 명의 여성을 납치하게 되면 100년간 그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여성이 대략 50명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이 여성이 500년 전에 납치되었다면 그 후손의 수는 얼마나 될까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바빌론 유수나 최근 일제의 한인 강제이주나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를 생각해도 집단 강제 이주는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진 사안이다. 해서, 제한된 샘플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인류 이동 경로는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고대 인류의 이동과정을 잠시라도 생각해보자. 이동과정 중에 여성이 아이를 임신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그녀가 집단 내에서 매우 고귀한 신분이 아니면 안 된다. 해서, 그 신분은 모계사회이든, 부계사회이든 오늘날까지 살아남는다면 지배층 유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모계로 전승되는 이 사건은 이 모계 집단이 상대적으로 다른 모계 집단보다 상층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모계로의 전승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간 유전풀이 수메르에 도달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로 몽골 공녀로 고려시대에 수많은 여성이 몽골로 간 것을 생각할 수도 있는 게다. 당대 고려 여성은 기황후를 보더라도 몽골 여성과 동등하게 평가되었다. 당시에 몽골 지배층은 고려인에 대하여 같은 뿌리이되, 방계라는 인식을 했던 듯싶다. 해서, 몽골로 간 수많은 고려 여성은 대부분 몽골 지배층의 첩실이 되었던 게다. 단지 하층 노예였다면 씨를 뿌릴 수 없었겠지만, 상층 첩실이 되었기에 그만큼 모계 전승이 강화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왜구 집단을 고려해야 한다. 왜구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이 왜구무리 덕분에 한때 백제사 다루던 이들이 인도네시아 식민지 경영 담로제 운운할 정도다. 이들 왜구 무리가 한반도를 떠난 것은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 덕분으로 보인다. 허나, 그 이후로도 왜구는 끊임없이 한반도 삼남 해안지대를 약탈해왔다. 해서, 여전히 한반도 삼남 해안 지대에는 이들 왜구 무리 후손이 상존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산물로 보인다. 이들은 오늘날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 개념이 없는 동아시아 해적집단이다. 이들은 중국 남부, 필리핀 등 동남아, 대만, 한국 남부, 일본 등지에서 강간과 약탈을 일삼았다. 그만큼 이들 지역에 자신의 씨를 뿌렸을 것이며, 그만큼 여성들을 납치해서 이 곳 저 곳에 팔아치웠을 것이다. 해서, 도쿄 여자를 필리핀에 팔아먹기도 하고, 조선 남부해안 여성을 대만에 팔아먹기도 했을 것이다.
헌데, 이들이 아무리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문명인 곳에서 온 여성은 해당 지역에서 지배층의 전유물이 되었을 공산이 크다. 가령 사우디 왕가 첩실로 백인 여성이 우대받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이나 일본 성산업에서 러시아 백인 여성이 인기가 있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해서, 오사카나 나가사키, 도쿄에서 팔려온 여성일수록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귀족들은 더 높은 값에 사서 떡을 쳤을 공산이 크다.
분자시계 개념은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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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화석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분자시계만의 고려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란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에서 샘플도 문제지만, 현 거주지만으로 인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화석인 경우 연대측정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 해서, 해당 지역에 인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 한, 차라리 죠몬 토기 사기사건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다.
여덟, 유라시아 대륙 이동이 동서 이동이 아니라 남북 이동?
호모에렉투스는 분명 아열대 체질이다. 헌데, 네안데르탈인이니 북경원인도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이 살던 지역이 한때 아열대지역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발해 지역이나 북한 지역에서 아열대 및 열대 동식물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류 이동에는 세 가지 동인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 기존 장소가 기후 변화로 더 이상 살기가 힘들어졌거나 둘, 이상적인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였거나, 셋, 기존 장소를 다른 집단에게 빼앗기거나이다. 이중 대부분 요인은 첫 번째 기후 변화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탈출한 이유도 사막화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지 않겠는가.
한국과 같은 위도인 나라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터키 등 의외로 따뜻한 나라들이다. 해서, 18,000년~12,000년 전 한반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굉장히 좋은 기후일 가능성이 크다. 헌데,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 화석들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반도 지역은 빙하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십만 년 동안 수시로 아열대 지역화가 되어 고인류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열도에는 인류가 가서 살기에는 바다를 건너가야 하기에 잠시 육지와 연결이 되었던 20,000년에서 18,000년 사이의 빙하기시기에 이주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이주했다고 하더라도 상기한 시기처럼 빙하기 정점 시기여서 해수면이 매우 낮아 육지와 연결이 되었을 때로 추정해야 하므로 그 이전에 이주했다면 밀란코비치 주기를 고려하면 십오만 년 전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기원설 도표에도 보듯 해안선을 따라 동남부로 향했던 남방루트가 갑자기 북방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는 기후 변화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언제 일어났는가. 구석기 시대에도 자주 일어났지만, 아프리카 기원설은 5만년 이내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북상 시기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000년에서 18,000년 사이가 되겠다.
하면,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북방으로 왜 올라갔겠는가? 모험심? 개뿔. 그보다는 기후변화로 살 던 곳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아홉, 인류 멸절설이 신뢰할만한가?
설사 아프리카 기원설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들 아프리카인이 호모 에렉투스를 멸절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위적인 요인이라면 상대적으로 문명인이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시대에서 보면, 수메르인이 아카드인에게 멸망당한 것은 아카드인이 문명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였기에 아카드인이 수메르인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처럼 아프리카인이 전 세계 호모 에렉투스를 멸종시켰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야만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유 불문하고 호모 에렉투스 여자를 만나면 강간하고, 호모 에렉투스 남자를 만나면 죽였을 게다. 반면 호모 에렉투스 남자는 아프리카 호모 사피엔스를 만나면 오, 새로운 친구로군, 하며 속으로 재미있는 친구잖아, 라고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백인을 대했을 것이다. 그 야만스러움에는 이주자 특유의 병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비열한 족속들이 지배해온 역사이기에. 카인의 후예이기에.
해서, 멸절설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일까? 인류가 7만 년 전 기후변화로 멸종 직전에 처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7만 년 전쯤 인류는 극심한 가뭄으로 2000명 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류는 꾸준히 늘어가다 13만5000~9만 년 전 아프리카에 가뭄이 닥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이 무렵 인류는 두 무리로 나뉘어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뭄이 심해지면서 더욱 작은 그룹으로 분산돼 독립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가뭄이 끝나갈 시점에 다시 합쳐졌다는 것이다. 현 아프리카인은 이들 두 그룹이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초기 인류의 주류는 아프리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결국 이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이 노아방주설로 불리는 이유도, 성서의 아담/이브 관계를 역전시키는 까닭도 이것이다.
열, 아프리카기원설은 20세기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인가?
아프리카 기원설은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며 세계화를 주창할 때 주류 가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인류이동 경로를 보면, 제국주의 침략 경로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영국의 아시아/아메리카 침탈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알라스카 점령을 말해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호소력이 없다. 해서, 그 정점은 국유본이 임명한 버럭 오바마인 셈이다.
한단고기, 천부경 모두 시온의정서처럼 20세기 초반에 별안간 등장한 위서이다. 허나, 그 위서가 그만큼 정교하다면 그 의도를 살피는 것이 정당하지 않겠는가. 인드라 입장은 한단고기, 천부경을 진본으로 보는 입장도 아니고, 위서이기에 무조건 무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닌 게다. 한단고기, 천부경은 국제유태자본의 기획 작품으로 간주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스톤헨지 등 거석문화가 있는 만큼, 또한 종교적 이유로 중동에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작업을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듯 이미 1883년에 한국 고인돌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본국으로 넘기는 등 이 방면에서 치밀한 연구를 해왔다. 인드라는 한단고기나 천부경이 일본인이나 친일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수상스럽다. 해서, 인드라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주장해왔다. 한단고기, 천부경은 국제유태자본의 세계정부로 나아가기 위한 기획 작품이다.
하면, 오늘날 국유본은 왜 아프리카 기원설을 내놓고 있는 것인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대로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 함일까? 아니면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일까.
인류가 신종플루, 의료민영화, 교육파괴, 문화 붕괴, 노조멸절 등의 이유로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공공연한 협박이 아닐까? 또한 국유본의 수족들에게 선민의식을 부추기는 의도가 아닐까? 너희가 다 죽어도 이미 우리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이미 노아의 방주에 예약되어 있다는...
정리한다. 흡사 빅터 로스차일드의 마지막 반격 작전을 연상시키듯 거의 정설인양 여겨지던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면 반박하는 고고학적 발굴과 주장들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등장하고 있다. 마치 현 국제정치경제 상황과 잘 어울리는 구도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류 이론화하고, 이에 대해 주로 영국이 한편으로 옹호하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는 시비를 거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중국과 북한에서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면 반박하고 나서고, 가끔 영연방국가에서 흥미로운 화석이 출토되고...
가장 끔찍한 상상은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 모두 그 배후에 국유본이 있고, 국유본이 이들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상상을 하는가.
세 가지 우려 때문이다.
하나, 근본주의에 대한 우려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에서 국유본의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지만, 오늘날의 다지역 기원설에서는 과도하리 만큼 근본주의적인 이념을 목격하게 되고는 한다. 이러한 구도는 오늘날 한국 고대사 논쟁에서 안티환빠 대 환빠로 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보자면, 이는 초록불 대 솔본으로 볼 수 있다. 인드라는 초록불에게 주문한다. 서구 입론에 지나치게 맹목적이지 않은가. 그대가 환호하는 박노자나 아프리카 기원설을 이유립의 한빠에 대하듯 비판할 안목은 없는가. 솔본에게 주문한다. 그대의 이론을 굳이 수메르와 결부시키려는 이유는 초록불과 겉은 다르나 속은 같기 때문이 아닌가. 초록불이나 솔본 모두 누군가를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만족하는가? 오늘날 한국 여야 정치인들은, 아니 전 세계 정치인들이 오바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데, 그대들도 비슷한 신세가 아닌가?
이 구도는 언제부터 비롯되었는가. 록펠러가 만든 한국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권인 전두환 정권 때부터이다. 근본주의는 국유본의 좋은 먹잇감이다. 해서, 유적 발굴에는 큰 돈이 드는데, 혹 부시의 후원 하에 국유본이 북한에 다국적 담배공장을 운영했었는데, 이익금 중 일부를 자금화하고 지원해서 유적 개발에 나서도록 고무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쓸 데 없는 걱정까지 뜬다. 이라크 전쟁 등 중동전쟁에서 수도 없이 써먹은 것이 근본주의였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비판적으로 보되,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는 길없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둘, 중국과 남북한, 특히 요서 지역에서 화석이나 유물이 발견되는 것은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전쟁에 대한 우려를 깊게 한다. 국유본은 만주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되, 그 전쟁을 지속시킬 수 있는 명분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서 이라크, 인도만큼이나 만주 역시 그들에게 흥미로운 지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자면 한껏 상대를 치켜세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해서, 포브스지 등에서 마치 이라크 전쟁 전에 후세인을 평가하듯 김정일을 높이 쳐주는 것을 역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런 명단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낫다. 해서, 이 지역에서 근래 집중적인 화석의 발견은 한편으로 반갑지만, 다른 한편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셋, 아프리카 기원설은 인류의 대멸종서부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유전자 분석에 대한 과도한 맹신도 우려되지만, 그보다 더 큰 우려는 인류의 기원을 기후변화로 인류 2,000명까지 축소되었다가 불과 7만 년만에 60억 명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이는 인구 축소 계획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큰 명분을 가져다 줄 우려가 깊은 것이다.
소로인은 세계 최초로 벼농사를 지었는가?
고구려, 백제의 멸망, 발해의 멸망에는 기후변화가 간접 영향력을 끼친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추위와 기근으로 인해 기층민의 굶주리게 되고, 이를 빌미로 권력 교체, 국가 흥망이 일어날 가능성이 고대국가일수록 높다. 물론 발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멸망한 통일신라 역시도 마찬가지가 되겠다. 810, 860, 910년 큰 가뭄이 동아시아에 있었다면, 이로 인해 민란이 극심해졌을 것이며, 한반도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그 이전인 고조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봄직하다. 대체로 만주 지역과 화북 지역은 겨울이 춥고 여름은 더운 냉대대륙성기후이고,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밭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다. 반면 한반도는 런던이나 파리, 로마 등의 연강수량이 600∼700mm인데 비해 960 정도 된다. 해서, 우리의 상식은 한반도와 만주는 늘 냉대대륙성 기후이거나 온대성 기후로만 알고 있다. 헌데, 놀랍게도 이 지역에서 아열대, 혹은 기후에서만 서식하는 원숭이 등의 뼈가 발견된다.
평양 상원의 흑우리 상원강 기슭 우물봉 남쪽 절벽에 위치한 검은모루 동굴 유적에서는 60만년~4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쥐, 토끼류를 비롯해 아열대, 열대지방에 사는 원숭이, 코끼리, 끜쌍코뿔소, 물소 등의 동물상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 한반도가 열대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이후로도 한반도와 만주가 아열대 기후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시기가 있었다.
예서, 인드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18,000 년 전부터 10,000 전 사이의 한반도 기후이다. 왜인가.
소로리 볍씨 때문이다. 소로리 볍씨가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것이 공인을 받았다. 허나, 이는 기존 학설로는 설명이 어려워서 이래저래 비판을 받고 있다. 복잡한 이야기 대신 간단하게 인드라가 말하겠다.
벼란 것이 아열대성 기후에서 재배되는 것인데, 13,000 년 전에서 15,000년 전이면 여전히 빙하기 끝 무렵 시기이고, 한반도는 아한대 기후인데 벼 재배가 가능하겠느냐는 게다.
이에 대해 소로리 볍씨를 옹호하는 측은 아한대성 기후에도 벼가 자란다는 것을 내세워 타협책을 취한다. 즉, 야생 볍씨는 동남아시아, 중국에서 왔지만, 한반도에서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 단계인 순화벼로 인공적 흔적을 남겼다는 게다. 순화벼는 야생 상태의 벼를 식량 등의 목적으로 낟알도입 부분 인공적으로 자른 것을 말한다. 해서,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을 터인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인 게다. 과연 그럴까?
초점은 소로리 볍씨가 아한대에서 견딘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시 한반도 기후가 어떠했느냐가 초점인 게다. 만일 당대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성이었다면?
하나,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솔본 글에서 등장한 위스콘신 고지리학 기후이다. 18,000 년 전과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직후의 8,000년 전 동아시아 기후 분포이다. 이 분포 그래프만 봐도 잘 모르겠다? 이 시기의 해수면 상승을 참고하길 바란다. 18,000 년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빙하기였던 영거 드라이어스기에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지구적이기보다 국지적인 현상이었음을 의미한다.
18,000년 전 한반도는 초원지대와 수목지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인근에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농경의 출발은 무엇인가. 빙하가 극성을 부려 적도에서 상승한 물이 대부분 극지 빙하를 이루자 중위도권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든다. 이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어 인류가 사막 인근 지대로 몰리는 동시에 채집 식물의 품귀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당대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둘, 근래 지구 온난화 현상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에 비해 유난히 온도가 올라간다는 뉴스를 접했을 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당대에도 지구 평균 온도보다 더 많이 올라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게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을 때다.
셋, 18,000년~12,000년 전 사이에서 고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고들 한다. 그 이전에도 물론 넘어갔다. 예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왜 그들은 아메키라 대륙으로 넘어갈 생각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에. 먹을 게 많다? 추운데? 아니다. 당대 시베리아가 빙하권이 아니었다. 날씨가 온화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건, 인도네시아이건 살기가 좋았던 게다. 헌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접어들자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지역 등이 모두 인간이 살기 어려운 사막이나 밀림 지역이 되고만 것이 아닐까. 해서, 이들은 해수면이 급격히 높아지는 18,000 때부터 적도 지역에서 중국남부로, 한반도로 이주한 것이 아닐까. 이들이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곰족의 기원이 아닐까. 오늘날의 공통 조상은 이브이다. 하고, 59,000 년 전 아담의 아웃오브아프리카가 시작된 게다. 가뭄으로 추정되는 기후 변화로 사하라 이남에서 시나이반도, 혹은 홍해 루트로 이동을 했다.
셋, 하면, 왜 이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는가. 마지막 빙하기인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끝난 직후 한반도는 온통 밀림지대가 되어버렸다. 숲에서 초원으로 뛰쳐나온 인류가 살기에는 적합한 지역이 아니었던 게다.
예서, 솔본의 경우 한반도에 살던 이들이 기후변화로 인하여 초원 루트를 타고 수메르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두상만을 조각한 조각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학자들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금지된 신의 문명'의 저자 앤드류 콜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 이 괴상한 형상의 작은 입상들을 보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유토피아로 떠 올렸던 나의 자르모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 얇은 입술에 뾰족한 턱, 가늘고 긴 얼굴에 높은 광대뼈.. 째진 타원형의 눈을 한 대머리.." 자르모인들은 왜 이런 사람 같지 않은 얼굴을 만든 것일까?" 앤드류콜린스가 그의 책에 게재한 자르모의 작은 두상 조각상의 그림들은 그러나 제 눈에는 별거 아니었습니다. 바로 편두를 한 몽골리안 얼굴이었으니까요.."
http://blog.daum.net/coreehistory/10507611
하면, 팔천년 전에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배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일부는 배를 타고 떠났다는 말인가. 어디로?
헌데, 당대 중국에서 보면, 흑인 유골이 등장한다. 아직 황인종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도 황석리 유적지 등을 보면 서양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당시에도 여전히 오늘날 인종처럼 확연한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늘날 각 인종간 혼혈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골고루 지녔던 것이 당대 인류였던 게다.
해서, 수메르인의 얼굴이 설사 몽골리안 얼굴일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게다. 그 시대에 한반도에서는 정반대로 영국인과 유전자 배열이 흡사한 유골이 발견되었다면 말이다. 유전자 배열로는 서양인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http://blog.naver.com/liskangel?Redirect=Log&logNo=14003186248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8&aid=0000010546&
정리한다. 인드라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소로시대 소로인이다. 수메르인이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이라크인이겠느냐. 좀 똑독하게 굴자. 사대주의도 아니고, 국수주의도 아닌 길을 가야 한다. 길없는 길을 가야 한다. 이십여년 전부터 꿈꾸던 길. 허나, 아직도 머나먼 길. 허나, 국유본이 파놓은 함정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야만 하는 길.
해서, 소로인이다. 인드라는 한단고기이니, 천부경이니 이런 것 모두를 위서로 본다. 다만, 위서라 해서 무시하지 않는다. 위서로 판단하되, 내용은 시온의정서처럼 파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시온의정서만 생각하면 된다. 러시아 황제가 유태인을 잡고자 시온의정서와 같은 엄청난 떡밥을 던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인 게다. 마찬가지인 게다. 단지 친일을 위해서, 대동아공영권을 위해서 한단고기와 천부경이 필요했겠느냐는 게다. 이는 일본 일왕을 넘어서는 기획인 게다. 이런 기획을 할 이는 전세계에 국유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인드라가 추정하는 바는, 국유본이 일본 왕실 도서관 자료 등 한중일러시아 자료들을 모두 섭렵했다. 해서, 현재 중국에서는 동북공정, 한반도에서는 만주회복, 일본에서는 역사왜곡을 시켜서 지역 불안을 야기시키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 인드라 시각이다.
소로인이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벼를 재배했든, 최초의 농사를 지었든 다른 지역에서 시도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은 당대 환경조건이 절대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조건은 일반적이다. 인근에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인구가 몰렸고, 그만큼 채집 식물 양이 줄어들어 진화 압력이 가중되어 어떤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짙었다는 점이다.
소로인은 농경화에 성공했다. 허나, 지속적일 수는 없었다. 기후는 더욱 따뜻해졌고, 그런 이유로 한편으로 채집하며 잔류하는 부류와 다른 한편으로 농경지가 축소됨에 따라 이동을 하는 부류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고, 이동을 하는 부류는 5세기 훈족 이동처럼 최적의 장소를 찾아 이동했고, 그것이 이라크 초생달 지역일 수 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무엇인가. 농사는 더 이상 어려워졌다. 사시사철 얻어져야 당대 농사가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면, 여름 한 때만 가능하다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없다. 이때 한반도 황해평원이 황해로 변모했고, 이에 따라 소로인은 해안으로 접근하여 조개 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갔을 게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인드라는 키조개, 가리비, 굴, 꽃게 등을 구워서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하여, 한반도에서는 영거 드라이어스기 이후로 한반도에서 한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가 기원전 이천 년대부터 고고학적 유물이 등장하는 것은 지구적으로 당대 온난화 뒤에 한랭화가 잠시 불어 닥친 까닭에 가뭄이 든 것도 무관하지 않겠다. 이는 수메르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 오래 전과 마찬가지로 곤드와나 초대륙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진 야생볍씨를 재배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던 게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73766812
"농"이라 함은 육화된 꿈이다 의식적인 꿈이다 그래서 농은 쓸모가 있다 농은 할수록 는다 사람을 유쾌하게 한다 허물 없고자 한다면 농이다 술에도 친구와도 애인과도 글에도 농이 없다면 어찌 겨운 삶 이끌 수 있는가 농에는 권위주의가 없다 우아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농에는 성과주의가 없다 농에 급수 달아봐야 가치를 잴 수 있는가 농에는 엘리뜨리즘이 없다 다같이 웃자고 하는 일이다 사람 살리는 일이다 사람 되고자 하는 일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실천이다
인드라, 백두산호텔에 가다
INDRA 1997-03-21
인드라는 단군의 홍익인간 선포 기념식 초대장을 받고 백두산 호텔 리
셉션장에 갔다. 그곳에는 많은 유명인사가 군집해 있었다. 인드라는 돌아다
니면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단군이 인사하자 인드라는 말했다.
"등신, 육갑하네"
그러자 단군은 욕을 하면 모두가 이롭습니다, 라고 말했다.
재미가 생긴 인드라는 유명인사들에게 똑같은 말을 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각각의 반응들이다.
예수 :
이웃을 사랑한다면 다른 욕도 해 주세요.
부처 :
욕을 공양하시니 부처가 되시겠군요.
노자 :
어리석은 자여, 네가 도이니라.
공자 :
상가집 개보다 훨씬 군자다운 말씀이십니다.
소크라테스 :
나는 욕 먹는다는 걸 알 뿐이다.
데카르트 :
나는 욕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뉴튼 :
욕지거리도 작용 반작용 법칙이 작용한다.
원효 :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나니 내 거울이로고.
김부식 :
어찌 소국사람이 중국말을 함부로 사용하오?
만적 :
노예로 사느니 욕 먹는 게 사람 살 짓이다.
황진이 :
고렇게 안그런 척 한다고 튀어나온 아랫도리를 감출 수 있어요?
전봉준 :
날 욕할 시간 있다면
조선농민의 꿈을 실현시키고 나서 얼마든지 하시오.
김구 :
내 얼마든지 욕 먹을 테니 내 소원 조선독립 같이 함세.
신채호 :
하하하, 대한남아의 기개로세.
맑스 :
(대꾸 안하고 엥겔스와 계속 담소를 나누었다.)
바쿠닌 :
여보게, 그 말로 날 선동시킬 수 있다고 보나?
사드 :
히히히, 좆같은 놈아!
(그리고 내 입에 좆을 갖다 대길래 나는 사드에게 똥침을 넣었다.)
프로이트 :
분명히 네 꿈에 엄마하고 잤을 것이다.
니체 :
나라면 그따위 등신 같은 소리는 안한다.
버지니아 울프 :
나는 남자의 욕설을 혐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남자랑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르트르 :
네가 내게 욕하는 건 존재요,
내가 네게 욕하는 건 실존이다.
까뮈 :
좆까라. 사르트르!
카프카 :
우리는 다만 바퀴벌레일 뿐이다.
밀란 쿤데라 :
인드라 만세!
건전한 욕설에 농담이 꽃핀다.
마르께스 :
마콘도 마을에는 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살았었지.
알튀세르 :
그건 인본주의자의 전술이지, 아니야, 모르겠어
(그리고 베란다로 나가 자살했다.)
데리다 :
욕은 유령처럼 내게 다가왔다.
푸코 :
욕설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보드리야르 :
너는 욕을 생산하지만 나는 욕을 소비한다.
아인쉬타인 :
우주의 끝을 돌아 네 뒷통수 치기 전에 꺼져.
스티븐 호킹 :
욕설은 빅뱅처럼 빵 터지는 특이점이 존재합니다.
간디 :
(갑자기 내 입에 자기 귀를 갖다 대었다.)
레닌 :
경제주의자는 시도 때도 없이 하소연만 한다는 걸 입증하는군.
트로츠키 :
레닌 말이 맞소.
모택동 :
홍위병들아! 육갑은 지식인이 쓰는 말이다! 쳐죽여라!
스탈린 :
(귓속말로) 동무, 레닌주의의 기밀을 누설하다니 총살형이오.
히틀러 :
어머! 나를 욕하면 흥분 된다니까. 난 매져키스트라고.
(히틀러 보좌관이 내게 와서 '독일인의 숭고한 장점'이라고 설명해줬다.)
로마 교황 :
다른 데 가서 그같은 교황청의 비리를 말하지 마시오.
링컨 :
욕을 위한, 욕에 의한, 욕의 정치였을 뿐이오.
맥아더 :
노병은 욕 먹지 않는다, 다만 욕 먹었을 뿐이다.
케네디 :
네가 내게 욕하기 보다
내가 카스트로에게 할 수 있는 욕을 생각 하라니까.
레이건 :
하여간 나 건들이는 놈은 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감이라는 것만 알아.
클링턴 :
뽕 먹은 놈 빼고 다 등신이다, 으하하하
옐친 :
클링턴 말이 무조건 맞아요.
일왕 :
나 좆도 없는 놈이예요, 저대신 죽을 일본 사람 많아요.
봐주세요.
이승만 :
욕하면 죽고, 사과하면 삽니다
박정희 :
(깜짝 놀라 테이블에 숨었다 나타나서는)
휴우! 난 또 김재규인 줄 알았네.
전두환 :
그러니까 본인은... 솔직히~~ 무죄인데
에이! 왜 나만 갖고 그래?
노태우 :
믿어주세요. 이 사람 등신 아닙니다.
김영삼 :
아재요, 학실히 하소. 김정일이요, 내요.
김대중 :
한 번만 더 밀어주면 욕도 감수한다니까.
김종필 :
양반 입에서 욕이 나옵디까?
(박정희 뒤로 숨는다.)
김일성 :
내래 민족의 태양이니끼니
욕은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에게 하라우.
김정일 :
등신 육갑이 광폭(狂暴)정치의 핵심 아니겠슴메?
문선명 :
김일성이 가갸 나보다는 한 수 아래야.
나는 민족의 태양보다 더 위대한 인류의 태양이니까.
욕은 박헌영이든 김영삼이든 아무에게나 해.
조다윗 :
순대볶음을 먹으면 등신도 팔자 고칩니다
박홍 :
(김영삼에게 달려 간다.)
방금 무궁화 결사대한테 협박받았습니다. 잉잉~
이건희 :
욕 처먹는 데는 내가 일류다.
정주영 :
욕 처먹을 일이 있어도 장사에는 지장 없다
구자경:
욕 처먹을 지라도 싸랑해요, PCS!
김우중 :
욕 처먹을 일은 많고, 해 먹을 일도 많다.
스티븐 스필버그 :
욕일지라도 내게 포스를 줘, 헐리웃 말아먹게.
빌 게이츠 :
다음엔 틀림 없이 인드라 고문하기 프로그램 짜고 말겠어.
마이클 잭슨 :
공연와서 욕해요. 알죠? 입장료 12만원.
이문열 :
페미니스트 스파이가 틀림 없다!
조선일보 유근일 :
중립적으로 볼 때 말야, 넌 김정일 편이라고.
월간조선 조갑제 :
나를 욕하는 놈은 민족 영웅 박정희를 욕하는 놈이다.
(이때 박정희가 테이블 위에서 빠꼼 쳐다 보니까 짐시 외면한다.)
한국논단 양동안 :
나를 욕하면 빨갱이가 틀림 없다.
플라자 김완섭 :
그거 책 제목이야? 잘 뽑았네?
플라자 이무기 :
일리 있군요. 그러므로 미국식민지가 빨리 되야 합니다.
그래서 롬멜 만세!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그의 말은 이렇게 들렸을 뿐.)
최불암 :
허허, 낙선한 사람이 이제 유머에 등장하기도 쑥스럽네요.
전유성 :
나도 일주일만 하면 너 정도는 할 줄 안다.
조형기 :
용기를 내라. 네 욕설도 내 영어처럼 미국에서도 통할 거야.
장미희 :
깜사합니다!
서태지 :
됐어, 이제 그런 뻥은 됐어. 그걸로 족해.
인드라는 인사를 다 마치고 나서
단군 홍익인간의 심오한 이념을 되새기며 리셉션장을 떠났다.
"몽롱"이라 함은 꿈과 육화된 꿈간의 오르가슴이다. 에너지가 멋대로 흐르지만 육화된 꿈은 엔트로피마냥 일정한 방향을 가진다 쓸모 없는 것에서 쓸모 있기까지는 많은 것을 얻으며 그만큼 버려진다 자유로운 에너지는 자유롭고자 하는 의식을 달래기 위해 덜 자유로와진다 피곤한 의식을 망각함이 아니라 새롭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안으며 화해하며 싸운다 최루탄 속에서 눈물 지으며 달려간다 반짝이는 결혼 반지도 졸린 표정이다 절규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눈꺼풀이 찢어지도록 울부짖는다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흐드러지게 웃는다 일체감이다
문 명 비 판 론
98.1 인드라
1. 국경없는 자본의 공세 뒤에는
국경없는 노동력의 공세가 온다!
이 취지는 간단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은 더욱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민족국가라는 단위는 현재
까지 효율적이지만, 미래에는 보장할 수 없는 성격이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장치는 현재까지 아무 것도 없다.
매번 한국에서 있는 자원이라고는 인력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
기에는 맹점이 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가이다. 즉, 인구정책이 재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더이상 산아제한정책이 따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혼하는 가정이 급증하고, 결혼하지 않는 성인들이 늘어
나며, 결혼을 하여도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그러하다. 개인적 자유 때문이라
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각박해진 <세상살이>가 함축되어 있다.
더이상 아이가 자신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아울러 아이를 기를
만큼 형편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남녀가
함께 맞벌이를 해야 한다. 이것이 서구의 일반적 모습이었다.
그런 서구에서 최근 문제는 다름 아닌 <사회보장제도>의 위기이다. 이
위기는 재원 마련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재원 마련에 중요한 한 원
인이 바로 <경제적 활동 인구의 감소>이다. 서구의 인구는 마이너스이
거나 거의 정체된 채 그대로이다. 그러한 것이 누적되다 보니, 경제적
활동 인구가 부담해야 할 세금 폭이 점차 높아졌다. 노인층 등 각종 비
경제활동인구를 부양할 몫이 커진 것이다. 제조업의 의미도 이러한 경
제활동인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가능한 말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
력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니까 말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몇몇 미래학자들은 이러한 결과로 아프리카인들의 유럽 진입(해마다 지
브로울터 해협에서는 죽음을 각오한 아프리카인들의 탈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죽으나 바닷물에 빠져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
다.)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중국 경제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지역차별,
민족차별 등이 이루어져 소련식 중국 분열이 이루어질 전망(중국의 민족
정책은 소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불안함이 현
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당장 그러한 일이 일어날 리는 없지만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 이러한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울러 전세계적 공황 사태가 닥친다면
중국은 펄벅의 대지처럼 엄청난 인구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우
리도 경험한 바, 도시로의 무작정 상경 인구는 현재에도 엄청난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압록강, 두만강 등이 한강과 비교가 될 수 없
을 만큼 건너기 쉬우므로 한반도에 들어올 가능성도 많다.), 멕시코 등
히스패닉 인구의 북미 이동(멕시코인 등 중남미 사람들의 미국 국경
들어오기 또한 아프리카인의 그것과 비견된다.) 이러한 사태는 최근의
'국경없는 자유무역'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 공세에 버금하는 '국경
없는 인구이동'이라는 노동력의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벌
어진다면 살아 남을 민족국가가 과연 몇이나 있을 것인가. 사회보장제
도는 밑바닥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처럼 노
동임금의 불안정은 증폭될 것이며, 공동체의 파괴로 사회불안은 격화될
것이다. 만일 남북한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당장 임금격차, 생활수준
이 문제가 되는데, 이 경우에 휴전선을 잠정 유지시킨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한 오백만 북한 노동력의 진입 또한 고려되어야 할 일이
다.
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다. 싱가포르의 장점은 '아시아적 가치'에 있
지 않다. 오히려 서구 도시의 미래이다. 즉, 도시국가의 장점을 최대
한 살린 것이다. 삼백만의 인구, 좁은 땅덩어리로 인해 어떠한 정책이
든 급속하게 실험할 수 있으며, 재빨리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유럽의
소국가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들 내부는 공동체적 가치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으며, 서로에 대한 관계는 거의 한 가족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개인성은 사라지고, 집단적 가치가 중시된다. 이러한 것을 단지 유교
적 패턴을 촉매로 사용했을 따름이다. 마치 동네깡패 유방이 패거리들
을 이끌고 중국 정권을 획득하고 나서 장군이나 신하라는 것들이 동네
깡패처럼 노니 이들을 진정시키고자 유교를 도입했듯이 말이다. 그 당
시 유방이 유교를 도입한 것들은 지금처럼 엄청난 교리가 아닌, 국민
윤리 교과서만도 못한 것들이다. 즉, 이 정도도 안 하면 사람이 아니
다,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가령, 왕과 술마실 때는 막가파처럼 마시지
말고, 신하 예의 지켜서 술 마셔라! 등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교가 아니라 정권 유지라는 현실 과제였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폐쇄적 도시국가, 요새적 도시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삼
백만에 불과한 인구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을 하려 하니 개개인에
대한 투자가 막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결과로 싱가포르 어린이들은
어릴 적부터 투철한 교육을 받는데 그래서인지 대다수가 근시이다. 그
들은 일본교육보다도 더 집단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나, 성인이 되면
모두가 경찰관 인식에 도달한다. 그들은 도시국가의 톱니바퀴이며, 프
로그램화된 인간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국가에서는 실업도
없고, 거지도 없다. 모두가 일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하다 보니 <하층 노동력의 부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고,
값싼 말레이지아인의 유입이 불가피하다. 성공적이라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썼지만, 과연 이것이 효율적인가. 싱가포르의 인구정책은 마치
부잣집 주변에 경비견을 배치시키고, 첨단 경보장치를 동원하여 싱가
포르를 지키는 것이다. 만일 공황이 나서 싱가포르는 살 수 있겠지만,
말레이지아가 공황에서 못 견딘다면, 배고프고, 분노한 말레이지아인
들이 순식간에 싱가포르에 유입한다면, 싱가포르는 테러를 하든가, 망
하든가 하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무척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틈에 이러한
것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하지
만, 오만을 부리다가는 조만간 이런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애낳기 운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대안은 서구가 추구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에서는 출산 등에 혜택이 없으며, 각종 유아관련 생필품에 대한 면세
혜택이 없어 엄청나게 비싸며, 아이 관련 교육비는 상상을 불허한다.
이에 대해 서구는 출산에 대해서는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출산에
대해서는 무상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각종 유아관련 생필품 등에 대
해서는 갖가지 면세 혜택을 주어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사게 하며
, 각종 교육혜택을 부여하여, 이왕 낳은 아이들에 대한 보장을 하고
있다. 사회에서도 아이를 가지면 큰 축복으로 간주하며, 임신한 여성
에 대해서는 조심, 또 조심하여 과장되게 말한다면, 가히 <임산부의
천구>이라고 할 만하다. 미혼모와 아이에 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심지어 근래에 화제가 된 여죄수의 아이 문제 또한 고려대상이라는
점이다. (참고로 나는 대부분의 유아 물품을 주변에서 빌려 쓰고 있다
. 그런데 빌려온 것 중에 외제와 국산을 비교한다면, 해외에서 태어나
서 영국산을 쓸 수밖에 없어 영국산을 이용한 유아관련 제품들은 환율
폭등 이전 가격으로 따지면, 오히려 영국산이 국산보다 더 싸며, 질은
매우 뛰어났다. 기업인의 역량부족을 탓할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관
심이 있기에 이러하다고 본다. 옷에서부터 교재,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반면 국산은 로열티에다가 세금이 추가되고, 갖가지 비용 등
으로 질은 엄청 떨어지고, 값만 비싸다. 최근 옷을 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처음으로 유아 가게에 갔더니 입만 벌어졌다. 이러하다면, 누가
애 낳고 싶어하겠는가.) 아무튼 만일 이러한 조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면, 우리는 이런 조치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뛰어넘는 물가
폭등과 사회보장 축소, 실업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서유럽 사태를 조
만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나마 사회보장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왔다면, 우리는 그것조차 최근에야, 그것도 크게 미흡한 수준으
로, 심지어 각종 기금을 거덜나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서유럽조차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
라는 점이다. 모두들 <국경없는 자본이동>에 대해 아시아 전체가 벌벌
떨고 있다. 만일 <국경없는 노동력이동>이 벌어진다면 아시아는 어떠
할까? 나는 이에 대해 해소했다는 의견을 현재까지 들어 본 바가 없다.
즉, 자본주의의 두 축인 자본과 노동의 대이동은 과거 산업혁명 시대
만큼이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점이다. 그러하니 자본만 무서
운가? 몸뚱아리밖에 없는 노동력도 엄청 무서운 것이다.
제조업의 힘은 여러 곳에서 나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값싸고,
잘 교육받은 노동력이다. 만일 이러한 노동력이 민족국가 내에서 통
제불가능하다면,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민족 국가 내에서는 아무리
공장자동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다소 문제가 있을 지라도 현재 실업대책
처럼 재교육, 재배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
다. 그러나 민족국가 단위가 깨지면,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그 단
초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인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
노동자의 태도는 매우 호의적이다. 그러나 우리 생활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일이 온다면, 이는 서구 노동자들처럼 적대적일 가능성이 크
다. 온정도 어느 정도 배불러야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는 무력하다. 여기서 자본주의는 기존 사회주의까
지 포괄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하니 남녀차별로 인해 매년 엄청난 여아가 살해당하는 사태, 특
히 대구 같은 도시는 할 말을 잃게 한다. 대구 시민들에게 미안한 말
이지만, 대구는 미래 범죄자들의 온상이라 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미래의 모순을 하루바삐 앞당긴다는 점에서 어떤 이들은
축복할 일인지도 모른다.
2. <국경없는 노동력 이동> 이전에
<국경내 노동력 이동>이 온다!
그렇다면, 이는 <국경없는 노동력이동>이 본격화되면서 일어나는 것
이지, 민족국가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는 심각하지 않다는
말인가. 그러하지 않다.
정보사회, 정보고속도로, 첨단기술이 인류의 복지를 가져다 준다는
21세기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형>에만 국한
되는 것이다. 선진국일 지라도 유럽의 소도시를 가보면, 서울보다
정보화가 뒤떨어져 있다. 유럽 소도시에서 컴퓨터 구경하기가 어려
웠다. 컴맹도 부지기수다. 다시 말하자면, 서울만 떼어 놓고 보면,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어느 선진국 대도시와도 비견될 만한 도시이
다. 나라 전체는 후진국임에도 특정 도시는 그러하지 않다. 즉, 미국
의 부자나 브루나이의 부자나 거의 수준차이가 나지 않듯이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보사회란 민족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
니라 전세계 대도시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란 점이다. 아울러 이
러한 정보사회는 기존 공동체의 급격한 파괴를 부추길 것이다.
산업사회 진입으로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듯이 말이다.
통신하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감지했을 것이다. 기존 사회 가치와
별달리 차이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 통신함에도 불구하고, 통신을 오
래하다 보면 '통신적인 인간', '기계와 소통하는 것을 더 즐겨 하는
인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는 기술만의 문제인가. 아니다.
정보사회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효율성이라면, 바로 이러한
효율성은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기계화시키며, 프로그램화시키기 때
문에 인간 사이에 어떤 교류도 막아버린다. 그 대신 자신의 애견처
럼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충실한 컴퓨터를 사랑하는 것이다. 컴퓨터
이전에는 TV가 있었고, TV 이전에는 애견과 고양이가 있었듯이 말이
다. 과연 이러한 것을 과거 공동체론을 펼치면서 말할 수 있다는 말
인가? 우스운 일이다. 과거의 공동체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농촌 공동체 지키기>로 무작정 상경을 막지 못 했듯
이, <농촌 잘 살기 운동, 소득 증대 운동>으로 막지 못 했듯이 말이
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인들 또한 출세하여 당원이 되고,
평양으로 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가 오면 부자층은 더욱 줄어 더욱 극소수화된 사람들이
빈자층이 더욱 늘어 더욱 다수화된 사람들을 이끄는 사회가 올 것
이다. 이러한 상황이 곧 혁명적 상황인가? 그런 것은 아직까지 공
상에 불과하다. 각각의 빈자층은 더욱 분열화되고, 세분화되는데
반해, 극소수화된 사람들은 각종 첨단 기술의 혜택을 부여받아 보
다 통제된 관리체계를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싱가포르 담당
자처럼 말이다. 결코 SF적인 상황만이 아니다. 또한 SF소설이 공
상과학소설이라지만 정확히는 과학소설이라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
서 과학적 픽션이 과학적 현실로 얼마든지 찾아온다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것을 두고, 가령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
말을 말하며, 자원봉사자 같은 사람들의 지원을 기대한다지만, 그
의 뛰어난 현황 파악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말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극소수화된 사람들이 이기심의 극단
은 이타주의임을 깨달아 빈자층에 대한 아낌없는 노력만이 해결책
이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웃기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도대체 이러한
사태에 해결점이 없는데 무슨 동정심인가. 동정심도 자본이 활성화
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교회가 무슨 돈으로 건물을 짓나?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 하면, 십일조가 무슨 개나발인가?
산업사회가 본격화되니 더이상 아이들을 동네에서 만나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들은 오락실에서, 만화가게에서 놀다가 차츰 집에
서 논다. 모든 것이 집에 있고, 집에서만이 안전빵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처럼 형제자매가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맞벌이하는
부모들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격리된 시간에 보다 익숙해진다. 학
교나 사회는 이를 전혀 책임질 수 없다. 집 이외에는 아이들이 안
심할만한 구조는 어디에고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은 처음에
철저히 계층화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파트 아이들은 같은 평수
에 있는 친구끼리 어울리다가 이내 그조차도 의미가 없어질 수 있
다. 성인이 되어 데이트를 해도 집에서 하는 경향이 더 심해질 것
이다. 바깥에 나가 보면 죄다 돈인데, 그리고 가장 마음 편한 곳
이 집인데 굳이 바깥에 나가서 데이트할 일이 없다. 또한 격증하
는 실업 문제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면, 오갈 데 없는, 그리고
사회복지혜택이 극히 미미한 한국사회에서는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돈많은 부모는 이를 잘 막아주겠지만, 그 대신 부모의 이데
올로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돈없는 부모는 이를 전혀
보장할 수 없어 무능력자로 찍히고, 자살을 결심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아이를 내쫓든가 말이다. 목적의식적으로 집을 나오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경제활동인구가 되어서도 집에서 논다. 한국만의 일인가. 그렇지
않다. 서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며, 대학생들은 취직이 안 되니
대학에 눌러 붙어 있으면서 생활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시위중이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문제이다.
그리고 소위 정보화혁명(자본주의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일
부 학자들은 자본주의와 다른 종류를 제시하고 있는데 철없는 짓
거리라고 본다.)을 2차 산업혁명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기한 문제
를 더욱 철저하게 이끌어내는 동인이 될 것이다.
즉,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현재 게임에 중
독된 우리들 이상으로 가상현실에만 탐닉할 것이다. 우리는 기껏
해야 TV에 중독된 세대이지만 말이다. 더 심하면, 현실에 더이상
매력을 잃을 것이며, 현실에서 혁명이니 개혁이니에 전혀 관심조
차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였으며,
유일한 친구는 컴퓨터였으니까 그들이 커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
런 이들에게 현실에서 사회혁명을 요구한다는 건, 몇몇 엘리뜨들
의 오만에 불과하다. 그것은 어쩌면 극소수 지배계급들에게 싸구
려 온정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에게 어떤 교육
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논리를 요구하고, 책을 요구하고
, 이성적인 행동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듯 긴 글을 볼
만한 준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지금조차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MTV와 영화와 컴퓨터 게임에 취해 있는데 말이다.
기존의 인식으로 '요즘 애들은 도저히 안 돼! 버릇도 없는 데다가
비젼도 없어!'라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있다는 수천년된 말을 되
풀이할 것인가. 그들에게 남겨진 건, 그들이 전혀 원하지 않았지
만, 결국 컴퓨터에 복종한 소프트 프로그램이 운명이지 않겠는가.
말 잘 듣는...
3. 탈출하기
한 까다로운 고양이가 있었다. 외로워 미칠 것 같아 그 고양이를
데려다 길렀다. 그런데 너무나 까탈스러워 고양이 비위를 맞추기
가 신경질이 났다. 고양이를 안 기를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없으면 살기가 싫으니 고양이에 대해 보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양이에 대한 투자가 많아진다. 시간도 보다
많이, 돈도 많이, 애정도 많이... 처음에는 사람도 만나고 그랬
지만 이젠 사람 만나기가 싫다.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는 먹고 살기 위해 돈 벌었으나 고양이 길러야 하기 때문에 직장
도 때려 친다. 어느덧 고양이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고양이가 잠시라도 없으면, 살 의미
를 못 찾는 사람이 된 것이다. 24시간 내내, 꿈 속에서도 고양이
를 찾는다. 상상을 해본다. 고양이가 없다면... 자살하고 싶다.
그러나 갑자기 고양이가 도망갔다. 그 본성대로 자기의 갈 길을
간 것이다. 나는 까무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을 잃었다. 맹
목적이 된다. TV에 보니 남산 일대에서 다람쥐를 쫓으며 많은 고
양이들이 논다고 한다. 남산을 이잡듯이 뒤져 고양이를 간신히 찾
으나, 고양이는 외면한다. 자살밖에 없다. 고양이가 나의 신이었
기 때문이다.
문제는 늘 엘리뜨가 아니라 대중 개개인이다. 대중 개개인이 이러
하다면 엘리뜨가 아무리 천재적이더라도 해결방안은 없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엘리뜨 위주로 사고하고, 그것이 즉자적인 해결방식
이라고 여겨져도, 심지어 당장 생각해 보면 가능할 것 같아도, 따
지고 보면, 그러한 엘리뜨도 상기한 대중 개개인에서 과히 벗어난
인물은 아니다.
당신은 다만 다른 대중과 차별화되고 싶은 '키치적 욕망'에 따라
남들보다 고차원적이라고 여겨지는 '게임'을 즐기고 있을 따름인
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버전업'되는 흥미 만점의 게임에 말이다.
그런데 대중 개개인 역시 자기가 살고 있는 범주에서 이런 '게임
'을 즐기는 일인지 모른다. 그들 역시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을
가동하여 '현실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그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가장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바로 자기가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하니 당신이란 엘리뜨들과 대중 개개인이 무엇이 다르다는 말
인가. 당신이 하등하게 보는 대중 개개인도 당신을 단지 하등하게
볼 뿐인데 말이다. '게임'에 임한 모든 이들은 현실과 무관하게
자신들을 '엘리뜨 =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다른 게임을
한다고 하여 타인을 엑스트라로 볼 근거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논리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현실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의식, 자아의식, 이성, 대뇌 피질, 문명'
과 '본성, 본능, 욕망, 원시뇌'를 연결하는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고 한다. 전자를 강화시켜봐야 그것은 합리성의 극단 밖에 나타나
지 않아 파시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파시즘은 이성적인 극단
의 산물일 수 있다. 반면 그 반발로 후자만 강화시켜봐야 그것은
비합리성의 극단인 또 하나의 파시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파
시즘은 감성적인 극단의 산물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연결이다.
과연 이러한 연결이 가능한가. 그것은 단지 인간 신경과학의 발달
로 이뤄질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신경증 치료제가 아무리 발달
하더라도 사회가 그러하지 않다면 전혀 치료되지 않는다.
아주 가날프지만 희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 뇌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커가면서 인간 뇌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뇌신경간의 연결은 그의 사회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이 사회가 상기한 사회와 전혀 다른 사회로 이행될
수 있다면, 이러한 자극이 인간 내부에서 촉진되어 다른 방향으로
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매우 비극적이다.
당분간 이 사회에는, 그리고 전 세계에는 파시즘이 진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어느 시기에 다다르면 우리는
히틀러나 박정희를 꿈꾸는 시간이 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러한 상황에서, 나 같은 자가 만일 이러한 파시즘에 대해 결벽적
으로 저항한다면, 오히려 나 같은 자는 이지메 당할 수밖에 없고,
바보 취급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놈이 있나? 너라고
별 수 있나? 다 똑같지 그랴? 새로운 세대들은 안 그럴 거야? 모
, 이런 식의 너저분한 반응들 이면 속에는 자신만의 파시즘을,
자신만의 편협한 이기심을 끊임없이 세뇌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
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그 진실을 깨닫다가는 모든 것이 망가
지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진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그것이다. 그것
을 어찌 그 개인에게만 탓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대로 망가질
수밖에 없겠지.
이러한 대목에 이르르면, 지식인의 책무와 발언도 사실 껌값 같
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인수위 사람 주변에 청탁이 들
어온다는데 대다수가 박사학위라는 점을 더 인식했으면 싶다.
나는 이러한 것에 계속 저항해왔지만, 그조차도 바로 이러한 게
임의 일부가 아닌지 회의스러울 따름이다. 단지, 이러한 것을 한
번 말했다는 것에 자족하기에는 지나치게 내 신경이 예민한 편
이다.
"시"라 함은 때를 깨닫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시가 있었으나 권력자들이 전유했으며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서는 시가 있었으나 자유롭고 싶은 미혼모에 자유를 주노니 내게 예속하라는 말과 함께 발가락을 내밀었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다 어느 시대에서는 시가 있었으나 봉건 속박에 목말라하는 러시아 처녀에게 해방을 주노니 당에 헌신하라는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다 어느 시대에서는 흰 쌀과 고깃국이 사랑임을 교시한 아버지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었고 어느 시대에서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통령 되보자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시가 있었으나 경마장에서 팔리는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가 압권이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시는 있었고 있었으며 시는 없었고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보자 기침을 하자 모오든 쇠붙이여 가라 해설피 신작로에 나는 가요 죽어도 가요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 쓰러져도 조금씩 갉아먹어도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새벽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가끔씩 대학 교정에 총성이 울린다 소통이다
다시 쓰는 조선유학사 - 남명학, 좌파, 명품 민족주의론
3-1. 퇴계학은 박정희적 민족민주노선? 남명학은 공동체주의 노선?
무릇 상대적이다. 만일 오늘날 대한민국 지배계급 다수파가 개신교인이 아니라 유림이었다면, 또한 동네 곳곳에 교회가 있지 않고, 학당이 있었다면, 나는 필연코 유교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테면, 조기빈의 '반논어(원제:논어신탐)'에 근거하여 공구의 사상이란, 인(노예주)과 민(노예)의 관계를 논하되, 노예해방을 바라는 혁명노선을 '소인'파로 격하시켜 규정하는 반동 노선임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학은 시골 노친네 몇몇에게만 남아 있는.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추억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일부 글쓰기를 보자면, 아무 생각 없이 유교 폐단 운운하니, 구한말에 나라꼴을 개탄하면서 엉뚱하게도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거론하며 유교 대신 불교 탓을 하며 논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비판을 해댄다고나 할까.
해서, 오히려 이제는 유학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구십 년대에 지니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연구 집단을 형성하여 탐구한 듯싶다. 반면 나는 지나치게 직업적이어서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극복하고자,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독학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마침 유학이 능안에 의해 의제가 설정되니 반가운 마음도 있다. 예전에 조정환이 주도하던 자율주의 게시판에서 퇴계에 대해 쓰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 당시는 김대중 정권 치하였던 때였고, 나와 김대중 정권의 허니문 기간이 종료된 이후였기에,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나의 설정은 이랬다. 양명학=김대중식 3의 길, 또는 사회민주주의, 퇴계학=민족민주노선, 박정희 노선, 구좌파, 남명학=공동체주의, 꼼뮨주의라는 기획으로 접근했던 듯싶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가. 아니, 큰 틀에서는 같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이므로 이러한 기획에는 미묘한 수정이 필요한 것이다. 비판의 초점은 양명학이 아니라 퇴계학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주된 관심사는 '능안'이어야 한다.
아울러 좌파의 명품 민족주의론은 개인 '능안'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산물로서의 '능안', 즉 퇴계학으로서의 '능안'을 극복한다는 데에 있다. 아울러 이러한 비판은 한편으로는 동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3-2. 맹가주희주의
나는 사회사상을 접하면서부터 사회현실과 결부시켜 이해해왔다. 해서, 사회사상을 대할 때는 저절로 변증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령 똑같은 현상을 두고 정권을 잡기 전과 정권을 잡은 후에 해석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이다.
주희. 그는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주자학 역시도 혁명사상이었다. 11세기에 유학자들은 타락한 세상 원인을 불교와 도교로 보았다. 해서, 이를 혁파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천여 년간 유명무실했던 유학을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주희의 사상은 당대의 사상들을 모조리 다 비판함에 따라, 마치 팔십년대 운동권 팜플릿처럼 급진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당대의 주희 사상은 이단이다, 반역적이다 하여 뭇매를 맞았지만, 사후에는 오히려 지도이념으로 대우를 받았다.
식민지에서 맑스레닌주의에 가장 열광했던 층은 누구일까. 세계적으로 이들은 소시민계급의 지식인들이었다. 헤겔로부터 시작하여 혁명에 성공한 맑스레닌주의처럼,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공한 맹가주희주의는 즉각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고려에 당도하였다. 고려는 지방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로 왕권을 강화시키려던 정책으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해서, 학문을 익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식자층에 서서히 퍼져나가던 맹가주희주의는 고려가 원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주류종교이던 불교로는 사태 해결이 난망하다고 여겨지게 되어, 급속히 혁명적 사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젊고 혈기왕성하기에, 자신보다 공부를 못하고, 자신보다 총을 잘 쏘는 것도 아닌데 자신보다 높은 자리로 출세하는 귀족에 반감을 지닐 만큼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동시에 학교나 교회나 군대에 있으면서 단체 활동을 통해 순식간에 조직화가 가능한 집단이고, 선진사상을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을 만큼 먹고사니즘과 어느 정도 격리된 엘리뜨층. 이때 당대의 소시민계급이라 할 수 있는, 관료들과 관료지망생 사이에서 혁명사상으로서 맹가주희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게다.
하여, 마침내 이들 맹가주희주의자들은 출신이 불분명한 - 물론 족보로는 고려 무신란 당시 연루되어 만주로 피신한 집안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 집안이 천호장, 만호장을 하였다면, 원제국의 관료였고, 지금으로 보자면, 동학혁명에 나섰다가 실패로 돌아가 시골에 은신한 자의 아들로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나온 박정희라고 할 수 있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역성혁명에 나선 것이다. 즉, 쿠테타를 한 셈이다.
3-3. 이방원주의와 정도전주의의 대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권을 하였다. 전 세계 맹가주희주의자들이여! 기뻐할 일이다. 인민은 평화와 복지를 원하는데, 고려 왕씨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오직 패권전쟁만을 일삼았다. 해서, 나온 것이 "사불가론(四不可論)"이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우려가 있으며, 넷째,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해서, 맹가주희주의자들은 격변하는 동북아정세를 직시하여 혁명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낙마사고를 당한 틈을 타 정몽주는 이성계를 탄핵하여 축출하려 했다. 이를 알아챈 이방원이 정몽주을 회유하려 하여가란 시조로 속마음을 떠보니 정몽주는 단심가로 응답하고 거절하니, 이방원이 부하를 시켜 선죽교를 지나가는 정몽주를 척살한다.
예서, 조선의 율곡학파가 태어나는 셈이다. 유교 나라를 태어나게 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인 게다.
불교나라 고려왕국을 지키고자 유학적 지조를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불교나라 고려왕국을 혁파하고, 유교나라 조선왕국을 건설하고자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가.
율곡은 말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과업만 완수된다면 만사 오케이?"
하지만 집권하자마자 산적한 과제는 끝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방원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그의 이복동생들이었다. 태조는 강비를 총애했다. 어차피 남자란 족속들은 로리타 취향이 있는 게다. 여기에다 조선을 건국한 것은 사실상 자신의 힘이라고 여기는 정도전이 걸림돌이었다. 이방원은 유교나라를 위해서는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정도전은 유교나라란 제상이 강한 나라, 신하가 강한 나라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해서, 정도전은 얼굴마담으로서 적당하게 별 볼 일이 없는, 강비의 소생이자 이방원의 이복동생이자 고작 열 한 살짜리 방석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방석을 제거한다. 외척을 배격하지 않고서는 혁명에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던 셈이다.
예서, 조선의 퇴계학파가 태어나는 셈이다. 유교 나라를 태어나게 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왕권이 튼튼해야 한다는 교훈인 게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정도전과 같은 자에게 왕권을 맡겨 마치 고려 말 신돈처럼 왕을 수족처럼 부려 나라를 패망시킬 셈인가, 아니면 이방원과 같은 개혁군주가 나와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을 것인가.
퇴계는 말한다.
"네 어미가 더러운 창기에 불과한지, 아닌지 내게 말해 봐. 피는 깨끗해야 왕이 된다?"
조선 초기만 해도 서얼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경국대전이 완성되는 성종 무렵에 이르게 되면 서얼에 대한 규제가 확연하다 할 것이다. 이 원인은 이방원에게 있다 할 것이다. 왕권 강화. 순수한 피의 혈통만이 집권뿐만 아니라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은 신라의 골품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골품제는 신라 고유의 것이 아니라 유목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게다. 즉, 이 제도는 남성 유전자뿐만 아니라 여성 유전자도 귀하게 여겨 원시적인 방식으로 조상의 혁명성을 보존, 유지하려는 정책인 게다.
사단과 칠정이 기에 속한다? 만일 그렇다면, 시정잡배의 개싸움과 이방원의 권력투쟁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생각해 봐라. 방석의 권력의지와 방원의 권력의지를 같다고 볼 수 있냐? 이 한심한 작자들아! 백성? 지랄하고 있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책만 들입다 판 서생들아. 능안이 왜 그대들에게 이 대목에서 욕지랄을 하는 줄 알아? 바로 예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겠지.
3-4. 이방원주의와 남명학의 만남
그런데 이방원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이성계는 병중이어서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방번, 방석 형제가 살해당한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로리타 취향에 대한 자책감이 겹쳐져 왕위를 내놓았다.
이제는 함께 연속혁명에 성공한 한씨 소생들끼리의 내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방원의 연속혁명이 성공하자 하륜 등은 그를 세자로 밀었으나, 이방원은 전략상 사양했다. 대신 이방원은 야심이 별로 없던 둘째 방과에게 세자 자리를 위임한다. 이방원주의자는 정종 즉위 후,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방원의 한씨 동복형제들은 여전히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 불교나라 고려를 혁파하기 위해 양성한 사병이 문제였다. 고려도 건국 혁명 당시에는 사병이 필요하였지만, 그 위험성 탓에 사병을 금하였다. 주원장도 그렇다. 자신을 황제로 이끈 혁명 지원세력이었음에도 집권한 이후에는 누구보다 과민하게 혁명세력 탄압에 앞장서기 마련이다.
이방원의 라이벌은 넷째 형 방간이었다. 해서, 이방원은 묘안을 짜낸다. 사람은 죽이고, 아이디어만 취한다. 정도전이 추진했던 병권집중운동을 채택하여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그러자 방간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때, 공적을 세웠으나, 별 대우를 받지 못해 불만인 박포가 방원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짓 밀고를 하자, 방간은 사병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형세가 불리하였던 방간은 방원에게 패배하여 유배되고 박포는 사형에 처해졌다. 방간의 난이 수습된 후, 조정의 대신들은 수차례에 걸쳐 방간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끝까지 그를 죽이지 않고 유배시키는 데 그쳤다. 또한, 방원은 오히려 방간이 병이 나면 의원을 보내 그를 치료하게끔 도와주기도 하였다. 또한 방원이 상왕으로 있던 세종 때에도 방간에 대한 치죄가 논의되었지만 방원과 세종은 이를 거부하였다. 방간은 방원의 배려에 따라 천명을 누리다가 1421년 홍주에서 죽었다.
예서, 조선의 남명학이 태어나는 것이다. 유교 나라를 태어나게 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피의 순수성, 즉 혈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이 있어야 한다. 물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학이란 공허하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단지 언변 좀 세운다고 나라가 바로 서냐, 아니면 설령 언변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만큼 무력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나라의 균형을 잡는 것이 올바른가.
남명은 말한다.
"이 쌩기초도 모르는 잡것들아. 잘 들어라. 힘이 정의이고, 정의가 힘이여~!"
남명 후계들은 말만 번지르르 앞서서 십만 양성설 따위나 주장하던 율곡학파와 달리, 또한 오직 정통성 지랄만 해대던 퇴계학파와 달리, 오직 한 길로 힘을 기르는 데 힘을 썼다.
임진왜란과 같은 유사시에는 애국자로서 친일파를 척결하고, 외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지만, 평상시에는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민이 곧 유학이며, 진리임을 깨달아 후진 양성하는 데에 힘을 쏟게 된다.
"작"이라 함은 마당이다 마당은 오지랍 넓게 시간을 담는다 꿈과 사람과 글을 담고자 한다 미어터지더라도 보면 텅비어 있다 경계를 따지고 들어가면 애매하다 그러나 저마다 춤이 있으니 거지춤 양반춤 재벌춤 노동자춤 농민춤 지식인춤 마당쇠춤이 있으니 처음부터 구별 없이 난장이지는 않다 자기 마당이 있는 듯 저마다 마음껏 후리며 사위를 흠뻑이는데 때가 되면 모두 뛰어나와 난장이다 때로는 우기며 저 혼자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웃음거리인데 이조차 마당은 담는다 마당은 획일이지 않으면서 평등하다 흘러가면서 자유이다 조직이다
종부세가 폐지되어야 하는 열 가지 이유
- 종부세 옹호는 진보가 아니라 수구다
맹세하건대, 이 글을 쓰는 나는 종부세 대상자가 아니다. 가족 중에도 종부세 대상자가 없다. 그럼에도 부자들이나 반대한다는 종합부동산세를 나 역시 반대한다. 그렇다면 왜 반대하는가? 노방궁에서 놀고 있는 종부세 대상자 노무현 따위가 불쌍해서인가? 아니다.
종합부동산세란 무엇인가
http://100.naver.com/100.nhn?docid=776521
첫째, 종합부동산세 도입 목적은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와 부동산 투기 억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별도로 종부세를 신설할 것이 아니라 기왕에 있는 보유세 누진율을 조정하면 그만이다. 참고로 나는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자고 그간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왜 노무현 정권은 헌법을 위배하면서까지 보유세 누진율 조정이 아니라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을까.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던 것이다. 전국의 땅값을 들썩이게 했던 혁신도시 때문이다. 엄청난 땅값 보상을 무슨 돈으로 할 수 있겠는가? 지방세로는 재원 마련이 안 된다. 결국 별도의 종부세를 마련한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목표했던 부동산 투기가 억제되었는가? 아니다. 혁신도시로 말미암아 전국 땅값이 들썩였다. 이로 인해 전국은 이해찬 식 주말농장 바람이 불어서 떳다방이 기승을 부렸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채질했다. 그리고 보상을 받은 이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로또 당첨자와 행보가 같다. 안전 자산 선호로 인해 일단 집은 강남에 구할 것이며, 남은 돈은 다시 이해찬 식 주말농장처럼 다른 땅에 투자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강남 집값은 더욱 뛰어오르고, 혁신도시 대상지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으로까지 땅값이 상승하였다.
셋째, 노무현 정권은 왜 부동산 폭등을 방치하였는가? 부동산값 상승은 명목 GDP에 반영된다. 해서, 노무현은 부동산값 상승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GDP 상승하면 훗날 경제 성적 좋다고 자랑할 수 있으니까. 나아가 방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 부추겼다. 왜? 거래세를 그대로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거래세를 내리면 투기꾼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한다. 아니다. 오히려 부동산값 안정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거래세 인하가 되면 거래가 활발해져서 지난 노무현 정권 때처럼 매도 호가만 높이는 시장 불합리성을 해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 관계자가 이를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기에 오히려 거래세를 묶은 거다. 그래야 부동산값이 더 치솟기 때문이다. 거래세를 내리면, 부동산 가격은 시장 가격으로 하향안정화가 될 수 있다. 아파트 부녀자회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넷째, 더 나아가 종부세를 9억에서 6억으로 확대하고, 합산하였기에 부과 대상이 더욱 넓어졌다. 왜 노무현 정권은 종부세 대상을 확대시키는 고부군수 조병갑과 같은 악법을 강제했는가. 일부 언론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이념적 구도를 고착시키기 위해서라고 비판을 한다. 아니다. 틀렸다. 그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이 부과 대상을 더욱 넓힌 것은 혁신도시 따위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부동산값을 더욱 폭등시키기 위해서이다. 가령, 부과 대상을 넓혀서 부과 대상이 된 강남 아파트 소유자를 예로 들자. 소유자가 종부세 부과대상이 된 후 가장 먼저 취하는 경제 행위는 무엇일까? 아파트 매도 호가를 그 이상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종부세를 폐지하면 오히려 버블 세븐 아파트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취하게 된다.
다섯째, 혁신도시는 전면 재검토를 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일본 유바리시를 기억하는가. 파산한 도시, 유바리시 말이다. 공무원도, 주민도 모두 고통스러운 유바리시 말이다. 일본 버블시대를 웅변하는 대표적인 도시 유바리시. 전국의 시민들은 혁신도시가 지방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유바리시처럼 될 가능성이 없을까? 한국에도 유바리시가 없을까? 무안, 광주, 울진, 양양 공항 등 국내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공항을 떠올려 보자. 이 공항은 누구를 위한 공항일까. 수요도 없는데,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개발되어 땅부자들만 좋게 된 공항들. 이 공항 예산은 무엇으로 유지하고 있는가? 국고로 유지된다면 국고 보조금이 전액 삭감되어야 하며, 지역 예산으로 운영된다면, 지역민이 고통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냉정하게 말하겠다. 지역개발이란 미명으로 등장하는 지역개발사업. 그것은 이해찬 식 주말농장, 이해찬 식 부재지주, 혹은 농업 직불금을 받는 노무현 정권 치하의 공무원들에게나 도움이 될 따름이다. 지역민은 지역개발을 한다니 처음에는 다들 환영할 것이다. 그로 인해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어 떡고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유바리시 주민처럼 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주변 여건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혁신도시 달랑 들어선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 말해, 혁신도시로 말미암아 지역민은 보상은 없고, 고통만을 분담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근래 이명박 정부가 새만금 개발을 결정했다. 이것이 과연 새만금 지역민에게 기쁜 소식일까? 수도권 일원인 김포조차도 근래 불황을 맞이하여 개발 계획이 전면 재수정되고 있다. 이는 김포 주민에게 당장 악재라고 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다행스런 일이 될 것이다. 왜? 유바리시와 같은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반면 새만금 지역민은 어떠한가? 땅부자들이야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새만금 지역민이 아니라 강남 지역민일 것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새만금 지역민들은 새만금 개발로 인해 고통 분담이 가시화될 것이다.
여섯째, 지역 개발은 혁신도시 따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지역 개발 대안은 없는가. 있다. 농촌 특성화 마을 같은 것이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전국을 온통 헤집어서 골프장 만들어서 환경 파괴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각 지역 특색에 맞는 농촌 특성화 마을을 더욱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역균형개발 사업이다. 아울러 더 나아가 나는 한반도 일억 명 국가론과 생활공동체론을 제안한 바 있다.
변혁의 관점에서 본 일억 명 국가론
http://blog.naver.com/miavenus/60009292223
일억 명 국가론과 생활공동체를 다시 제안한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29728477
중앙집권적이어야 효율적인 사업이 있고, 지방분권적이어야 성공하는 사업이 있다. 이 두 문제를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말아먹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폐악은 당장 중지되어야 하며,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악법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지방 재정의 부실함을 고려하여 종합부동산세의 존치를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로 획득한 세금은 혁신도시 예산에는 0% 반영되어야 하며, 백 프로 농촌 특성화 마을과 같은 데에 전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농촌 특성화 마을은 부재지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 살아 있는 농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혁신도시는 이해찬 주말농장과 노무현 노방궁 따위를 위한 것이므로 전액 예산 삭감되어야 한다.
일곱째, 경기 불황 때 종부세 일부 위헌 결정이 부자들만을 위한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나 종부세 일부 위헌 결정이 부자들만을 위한 것일까? 검토하자.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 개정을 취하는 목적이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종부세가 개정되어 감세가 되면 일부 국민에 한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다. 가처분 소득이란 총소득에서 이자나 세금을 제외한 소득을 말한다. 금리가 인하되는 만큼 가처분 소득은 예금보다는 소비나 혹은 주식 등에 투자될 것이다. 이는 경기를 조기에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는 국내 내수를 진작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투하설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예다.
또한 부동산 가격 지표로 설명하자. 부동산 가격 동향을 알 수 있는 선행 지표는, 1. 법원경매 낙찰가율, 2. 강남 재건축 3. 강남 아파트 4. 강북 아파트 5. 수도권 아파트이다. 해서, 정책 순위도 대체로 이를 따르기 마련이다. 해서, 이명박 정부 정책은 현재 3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강북 아파트 대책이야 강북 아파트야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오른 것도 없기 때문에 기왕에 했던 도심 재개발 사업이나 충실히 하면 그만이다.
결국 현재 부동산 대책은 하향 안정화 대책에 초점이 모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명박 정부 정책이 과히 비난할 성격이 되지 못한다 할 수 있다.
여덟 번째, 부동산 대책은 금리 정책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부동산값이 오르면 금리를 상승시켜야 한다. 또한 부동산값이 내리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가장 성공적인 정책을 실시한 국가는 호주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저금리를 고수했다. 해서, 오히려 부동산값 상승을 부추겨 부동산 대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정권이 저금리를 고수한 이유는 몇 가지로 분석이 된다. 하나, 그나마 자신이 자랑을 할 수 있는 것이 증시 폭등밖에 없었고, 남아 있는 지지자도 대체로 주식꾼들이기 때문에, 증시 폭등을 위해서라도 저금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증시 폭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해서, 노무현 정권이 저금리를 고수한 것은 결코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홉 번째, 한국 부동산은 한국 자산의 최후 보루다
오늘날 비관론자들은 한국 부동산 비판에 여념이 없다. 상당수가 국제유태자본의 하수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들은 한국 부동산이 폭락해야만 국제유태자본이 한국에 다시 투자할 것이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 국가 부도론, 공황론을 유포시키면서 선진국과 한국 GDP와 부동산 지가를 비교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부동산은 GDP가 아니라 인구밀도가 보다 관계가 깊다. 즉, 미국은 한국보다 백배 큰 나라이고, 유럽 주요 선진국도 인구 대비 영토가 한국보다 크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경기 활황일 때, 뉴욕이나 LA 지가가 크게 상승한 반면, 내륙 지방의 지가 상승은 미미했다. 유럽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물론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해서, 인구밀도를 고려하면, 한국의 부동산 가치는 적정한 수준에서 약간 상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인위적으로 조성된 가격이므로, 종부세가 폐지되고, 거래세가 인하되면, 정상적인 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노무현 정권 때 조성된 혁신도시 대상 지역과 인근 지역의 지가이다. 이 지역 지가는 대폭락이 불가피하며, 또한 대폭락되어야 한다. 아무런 계획도, 비전도 없다. 예상 유동인구 증가도 없고, 자연출생율도 저조한 상황에서 등장한 혁신도시 따위는 제 2의 유바리시이며, 무안공항이다. 이는 지역민의 고통만을 안겨줄 따름이다.
그럼에도 왜 국제유태자본의 하수인들은 한국 부동산 비판에 열을 올리는가? 국제유태자본은 이미 한국 채권과 증시를 장악하였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다만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 부는 부동산에 상당한 방점이 있다. 국제유태자본이 부동산마저 장악한다면 한국을 온전히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한국 부동산은 역설적으로 국제유태자본으로부터 한국 부를 방어하는 최후 보루가 되었다.
열 번째, 종부세 따위로는 결코 빈익빈부익부가 되는 신자유주의를 해결할 수 없다.
단기 외채를 잔뜩 끌어들여서 외환위기를 증폭시킨 노무현, FTA 협상 사전 정지 작업으로 스크린쿼터축소를 시켜서 오늘날 한국 영화계를 개판으로 만들어놓고서 FTA 재협상을 외쳐 진보신당에서 비판을 하게 만드는 노무현, 숱한 노동자, 농민을 자살하게 만든 노무현, 부자는 더욱 부자로, 중산층을 거지로 만든 노무현.
냉정하게 따져 보자. 강남도 다 같은 강남이 아닐 것이다. 종부세 세금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낼 여유가 있는 이들은 낼 것이다. 타켓은 사실 이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비겁하게도 이들이 아니라 그 하위 계층이었다. 종부세 대상자라고 해서 소시민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6억 원 아파트? 별 게 아니다. 나는 그보다 임야 땅을 엄청나게 보유한 이해찬 주말농장식 5억 9천 만 원 짜리에 배팅하겠다. 나는 이런 이유로 진보신당에서도, 민주노동당에서 결국은 부유세를 내친 것으로 본다. 이벤트였을 뿐이다.
종부세는 오히려 기존의 부자를 더욱 강화시켜 계급 구도를 고착화할 따름이라고 보인다. 그야말로 종부세에 쩔쩔매는 자들은 강남에서 떠나라는 축객령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
부동산값을 진정시키고, 이해찬이나 노무현처럼 부동산을 과다 보유한 자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지역균형개발을 위해서 필요한 정책은 신자유주의 극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찬 주말농장이나 노무현의 노방궁을 지지하는 종부세 옹호 따위나 한다면, 이는 명백하게도 위헌이며, 국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으며, 서민조차 반발할 수밖에 없다. 해서, 종부세 옹호는 진보가 아니라 수구가 명백하다.
따라서 종부세 옹호하는 친일민주당은 해체됨이 마땅하다. 왜 집권할 때, 서민을 위한 유가 환급금이나 감세 정책을 펴지 않았는가? 오히려 과세했는가? 이것만 봐도 친일민주당은 서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다. 당장 해체됨이 마땅하다.
나는 강조한다. 노무현 구속 및 재산 몰수, 친일민주당 해체. 이 주장이 관철된다면, 한국 경제 발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작"이라 함은 말과 조직과의 공유이다 일체가 허요 허가 아니다 관계지음이다 내 것을 지극히 찾으매 내 것이 없고 네 것을 한없이 찾으매 네 것이 없다 그러나 찾음이 때가 있음이니 보이는 데도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암일지언정 내 운명일지언정 위장하고 왜곡하고 과장할지언정 어찌 부정할 수 있는가 허나 뒤통수가 가장 염원하는 끝이며 시바의 춤이니 흘러가는 대로 거스르지 않으며 몰입한다 이는 버거운 자기 부정이며 통일이며 운동이다 흐름이다
인드라의 조직론
1.
단결의 법칙 :
조직간 연대가 이루어지거나 하나가 되면
두 조직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 개의 분파로 나눠진다.
2.
토론의 법칙 :
조직 내부의 분파가 성립이 되면 첫번째는 생산적으로 흘러 상승 효과를 낳는다.
상승 효과의 최고점은 전면전으로 붙었을 때이다.
하지만 그후로 일정 시기가 흘러 다시 전면전 양상이 된다면
그때에는 그 조직이 가까운 시일내에 문을 닫거나 한 분파가 독립하거나 한다.
3.
배반의 법칙 :
위계질서가 자리잡은 곳에선
이병과 상병, 일병과 병장, 혹은 일학년과 삼학년, 이학년과 사학년 식,
기수별로는 징검다리식으로 공감대가 형성된다.
4.
위계의 법칙 :
내가 경험하고 추론한 결과,
엄밀하게 말해 모든 조직에서 수평 조직이란 있을 수가 없다.
5.
역설의 법칙 :
그간 단일 지도를 쭉 해오던 이가 권태를 느낄 때 다수 지도론을 내세우며,
다수 지도론을 쭉 해오던 이가 권태를 느낄 때는 단일 지도를 내세운다.
6.
출입의 법칙 :
조직의 평가는 일정 기간 동안 나가는 사람 수보다는
조직에 들어오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7.
비판의 법칙 :
경쟁하는 상대 조직으로부터 가장 비난받던 사람이 그 조직을 떠나면
그 조직 가까운 시일 내에 망한다.
8.
행동의 법칙 :
특정 시기에 열심히 한 사람보다 꾸준하게 성실히 한 사람이 지도자적 자질이 있다.
9.
리더의 법칙 :
편협한 사람일수록 순수한 편이고 일을 잘 한다.
10.
비난의 법칙 :
오프에서 늘 뒷다마 화제로 떠오르는 사람,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 익명에게 맨날 씹히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11.
조직생성의 법칙 :
무에서 자생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지는 예는 없다.
오로지 기존 조직에서 권력투쟁에 패배한 이들을 중심으로
이들에 호감을 느낀 이들이 뭉쳐서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12.
조직상동화 법칙 :
그렇게 해서 생긴 조직은 대부분 기존 조직과 대부분 놀랍도록 닮았다.
사람만 바뀌는데 시일이 지나면 지도자 성향도 비슷해진다.
13.
중간관리자 법칙 :
조직에서 제일 욕먹는 이들은 실제로 보면 중간 관리층이다.
대부분 억울하다고 볼 수 있다.
14.
개미와 베짱이의 법칙 :
일 열심히 하는 개미 한 마리당 베짱이 서너명이 달라붙은
숙주와 기생충들 구조가 대부분의 조직구조.
일이 잘 되면 베짱이들만 배부르고 일이 안 되면 개미만 피본다.
왜냐하면 베짱이들은 재빨리 다른 개미에게 달라붙어서
이들이 오히려 개미죽이라고 한다.
15.
라이벌 법칙 :
라이벌이 전면대결하면 라이벌 둘 다 큰 손해를 입고 제 3자가 가장 큰 이득을 챙긴다.
라이벌이 생존하려면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이와 가급적 싸우지 않는다.
16.
친목의 법칙 :
조직에서 일 안 하면서 일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일려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제일 효과가 크다.
그냥 만나면 된다.
17.
아이디어의 법칙 :
독창적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은 가급적 리더를 시키면 안 된다.
참모가 제격이다.
18.
연대의 법칙 :
연대하게 되면 오래되고 좋은 친구를 반드시 잃게 된다.
19.
독단의 법칙 :
이리저리 많이 재는 사람보다 독단적인 사람이 일을 잘 한다.
20.
피라미드 법칙 :
조직이 급신장하는 경우 맨끝물로 들어와 가장 열심히 일한 이가
벤처붐 일던 주식시장 끝물에 들어온 이처럼
조직이 하향 추세를 걷게 될 경우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
21.
측근의 법칙 :
지도자와 허물없이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후일 그의 가장 큰 적수가 된다.
22.
명망의 법칙 :
다른 조직에서 어떤 명성이 있건 다 소용없으며
일단 조직에 들어오면 누구나 새내기처럼 풋내기가 된다.
평가는 오로지 조직내에서의 언행으로만 평가되어야 한다.
23.
유능의 법칙 :
같은 영역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유능하다면
한 사람이 무능해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무능한 척해야 한다.
24.
무능의 법칙 :
모자란 사람 두 사람을 같이 일을 시키면 그중 한 사람이 유능해진다.
25.
경력의 법칙 :
경력이 화려할수록 일을 시키면 안 된다.
경력이 없을수록 일욕심이 있어서 일을 잘 한다.
26.
무명의 법칙 :
경력이 많은 경우 그가 그간 접하지 않은 다른 분야에 일을 시키면 된다.
27.
인사의 법칙 :
잘 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결과로 보면 잘 안 되고
힘들 것이라고 본 사람이 이외로 잘 하는 경향이 있다.
28.
칭찬의 법칙 :
칭찬은 누군가를, 혹은 대상을 비판할 때만 칭찬하라.
29.
비판의 법칙 :
비판은 누군가, 혹은 대상이 자기 조직 내부에서 먼저 비판할 때 비판하라.
30.
재정의 법칙 :
조직이 잘 나갈 때는 발생되지 않으나
잘 안 나갈 때 본전 생각이 날 때 우선 순위로 거론됨.
31.
초청의 법칙 :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을 외부에서 초빙할 경우 안 오다가 필요하지 않을 때 온다.
32.
좌우중도법칙 :
셋 중 하나는 쉽게 흥미를 내다 잃는 스타일이고 현실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사람.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삐딱하게 의도가 뭐요?
라고 묻는 스타일이고 무지 게으른 사람인데 권력지향적이기 보다는 독점욕이 많은 사람.
다른 하나는 일할 때 도망갔다가 밥먹을 때 나타나서 깐죽거리면서 딴청부리는 사람.
33.
교육의 법칙 :
대부분의 조직 교육은 술자리 등 사석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공개적인 조직 교육은 예비군훈련과 같은 요식행위.
34.
회의의 법칙 :
도대체 조직이 내게 해준 것이 뭐야?라는 생각을 할 때에는
스스로 조직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 때고 조직도 원할 때인데 비해
내가 조직을 위해 뭘 해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에는
조직이나 자신이나 경계할 때임.
35.
신입의 법칙 :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우겠다고 말하지만 들어오자마자 가르칠려고만 한다.
36.
고참의 법칙 :
초심으로 돌아가자면서 한 번도 지킨 적은 없다.
37.
시다바리 법칙 :
한 번 시다바리는 영원한 시다바리.
38.
스타의 법칙 :
스타 주변에서 자주 얼쩡거리면 스타된다.
39.
추억의 법칙 :
모든 조직원은 오늘보다 늘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40.
꿈의 법칙 :
오늘 누구만 없어지면 세상이 정말 좋아지고 조직이 잘 될 것이라고 여기는데
실제로 그 누구가 없어지면 흥미를 잃어 자신도 그 조직에서 없어진다.
41.
스토커의 법칙 :
조직에 대한 대부분의 스토커들의 실제 이유는
대의명분 같은 거창한 것보다는
대개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다가 하게 된 것.
42.
동지의 법칙 :
서로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이
조직내에서 어쩌다 견해가 같아지면 급속하게 친해지고
반대로 서로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이
조직내에서 그간 쭉 호흡을 같이 하다가 어느 하나의 견해로 나눠지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됨.
43.
도끼의 법칙 :
마음에 안 드는 자 권력을 주어 주인공시키기.
그러면 주인공이 축출됨.
관공서에선 옷벗음.
44.
비밀의 법칙 :
세상에 비밀은 없다,
모든 비밀은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에 공개된다고 여겨야
비밀이 유지된다.
45.
민주의 법칙 :
힘센 사람 뜻대로 되는 것.
"몽롱시작"이라 함은 오르가슴의 흐름이다 일체의 방해도 혼연히 뚫고 흐른다 내 안에 숨쉬는 공기를 네게 조금 주기보다는 전부를 주고 너 또한 내게 전부를 준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 시이다
"우리가 다루는 대상이 쓰여진 텍스트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철학자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텍스트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텍스트가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철학 텍스트를 읽고자 한다. 과거에 철학 텍스트는 그것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문학작품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철학 텍스트가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철학 텍스트가 문학 텍스트처럼 취급될 경우 철학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철학과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 http://memolog.blog.naver.com/miavenus/391
해체 놀이 중 하나는 단어나 문장을 괄호 안에 넣거나 아니면 단어 바꾸기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다루는 성경이 성서 기자가 쓴 기록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성서 기자, 목사, 신학자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기록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성서가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성서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 기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성서를 읽는 것이다. 과거에 성서는 과거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이단적 글쓰기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성서가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성서가 소설처럼 취급될 경우 성서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성서와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말씀과 성서 기록간의 한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본주의 기독교인 입장으로서는 결코 허용하고 싶지 않겠다. 데리다는 마르크스나 카프카처럼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유태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다루는 자본론이 쓰여진 텍스트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맑스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자본론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맑스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자본론이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자본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맑스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자본론을 읽고자 한다. 과거에 자본론은 그것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글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자본론이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본론이 공상적 사회주의자 글쓰기처럼 취급될 경우 자본론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자본론과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특정한 자본론 읽기는 보다 맑스주의적이라 하여 환영을 받는다. 반면 특정한 자본론 읽기는 오히려 맑스주의를 왜곡시킨다고 하여 반발이 크다. 맑스의 혁명적 동지라는 엥겔스적 읽기조차 맑스를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당하고, 맑스의 제자들조차 수정주의다 뭐다 비판을 당하고,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도 비판에서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보다 맑스 원본적인 것을 요구하는 셈이다. 지금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지금 우리가 패배하고 있는 것은, 맑스 독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게다. 즉, 맑스는 언제나 올바른데, 우리가 맑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식한 왕따파, 혹은 주사파만 비판하면 좌파인 줄 아는 헛똑똑이들은 자신들 역시 주사파와 다를 바 없는 원전주의에 빠져 있는지 모르고 있다. 더 나아가 과학 텍스트는 최신의 것을 받아들이고, 인문 텍스트는 최고의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역시 문제가 있는 주장이겠다. 과학이든, 인문이든 최신의 것에 기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루는 번역이 두 문화를 하나로 엮는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한 창작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번역자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번역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번역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번역물이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번역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번역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번역을 읽고자 한다. 과거에 번역은 그것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소설을 쓰듯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번역이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번역이 소설쓰기처럼 취급될 경우 번역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번역과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에만 건너오면 무엇이든 변형된다고 비판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과연 현실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어차피 물 건너오면 풍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인데 이를 무시하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문제이지 않을까. 특수성을 제거하는 보편성이 아니라 특수성을 포용하는 보편성에서 윌슨보다 레닌의 민족주의 정책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어떤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필연적이지 않을까. 만약 우리 모두가 데리다 저서에 대해 번역을 할 수 있다면 특정한 단 한 명이 번역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단 한 명만 번역하는 사회보다 우리 모두가 번역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보다 진보적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만 독점한 맑스, 데리다 독법보다 저마다 내놓는 맑스, 데리다 독법이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 맑스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면.
"우리가 다루는 기사가 소설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기자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기사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기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기사가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기사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기사를 읽고자 한다. 과거에 기사는 그것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소설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기사가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기사가 소설처럼 취급될 경우 기사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기사와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우리는 근래에 들어 부쩍 기자더러 소설을 쓰냐고 말한다. 영업사원들은 말한다. 조중동 신문 끊을 때 하는 소리가 있다. 벌써 일년인가요. 삼개월 공짜로 넣어드리죠. 부족하다구요. 육개월 어때요? 정치면이요. 소설이잖아요. 이해하시죠. 그래도 생활면에서는 읽어볼만 하지 않던가요. 아이 한자교육도 좋고, 지역 정보지 역할도 하고. 내가 영업사원을 해봐서 말하는데, 편집자나 기자보다 영업사원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길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 보다 재미나게 쓴 소설을 기사라고 하고, 재미없는 기사를 소설이라고 하자는 규약을 암묵적으로 설정하기.
"우리가 다루는 샘플이 조작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여론조사가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 -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논지를 자신이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과 여론조사 결과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내용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여론조사 발표 기관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쓰여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간극 사이로 '해체'가 비집고 들어서서 새로운 여론조사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론조사 기관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혹은 뒷받침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논리를 무시하고서 여론조사를 읽고자 한다. 과거에 여론조사는 그것에 합당한 특별한 지위를 요구했었다. 소설 쓰냐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주장에 입각해서 여론조사가 쓰여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가 소설쓰기처럼 취급될 경우 여론조사의 특별한 지위도 당연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하였던, 여론조사와 다른 형태의 글의 차이를 불식시키려 했던 데리다의 입장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셈이다."
재미있는가.
여기서 강조하고픈 것이 있다. 그렇다면 해체는 과연 이들을 모두 거부하는가. 아니다. 이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신학과 철학과 언론과 여론조사를 모두 살리고자 한다는 게다. 이 대목을 오해하기에 자산적 권리 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 해체에 비판적인 게다. 그렇다면 내가 뭘 먹고 살 수 있느냐는 반문인 게다.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공짜라면 난 뭘 먹고 살지? 약간의 쇼는 필요한 게 아냐? 라고 말하는 게다. 하여, 진실은 거짓에 더부살이하는, 전세, 월세사는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정인 게다.
어때? 해체 놀이 재미있어?
http://blog.naver.com/miavenus/70023202408
"몽"이라 함은 꿈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는 꿈꾼다 꿈은 쓸 데 없다 우리의 현실은 꿈처럼 지극히 비참하지도 행복에 부풀지도 않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한없이 증오스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그래서 꿈은 도식과 수치와 이윤으로도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처럼 우리 안에 상정되어 있지 않은 모든 것이다 한편 꿈은 시간 속에 놓여진다 차이를 낳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심장박동을 울려퍼지게 한다 꿈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배운다 그러나 꿈은 목적이 없다 꿈은 꿈이다 시간 속에 놓여진 카오스이다 바로 우리 몸이다 세계이다
"농"이라 함은 육화된 꿈이다 의식적인 꿈이다 그래서 농은 쓸모가 있다 농은 할수록 는다 사람을 유쾌하게 한다 허물 없고자 한다면 농이다 술에도 친구와도 애인과도 글에도 농이 없다면 어찌 겨운 삶 이끌 수 있는가 농에는 권위주의가 없다 우아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농에는 성과주의가 없다 농에 급수 달아봐야 가치를 잴 수 있는가 농에는 엘리뜨리즘이 없다 다같이 웃자고 하는 일이다 사람 살리는 일이다 사람 되고자 하는 일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실천이다
"몽롱"이라 함은 꿈과 육화된 꿈간의 오르가슴이다. 에너지가 멋대로 흐르지만 육화된 꿈은 엔트로피마냥 일정한 방향을 가진다 쓸모 없는 것에서 쓸모 있기까지는 많은 것을 얻으며 그만큼 버려진다 자유로운 에너지는 자유롭고자 하는 의식을 달래기 위해 덜 자유로와진다 피곤한 의식을 망각함이 아니라 새롭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안으며 화해하며 싸운다 최루탄 속에서 눈물 지으며 달려간다 반짝이는 결혼 반지도 졸린 표정이다 절규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눈꺼풀이 찢어지도록 울부짖는다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흐드러지게 웃는다 일체감이다
"시"라 함은 때를 깨닫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시가 있었으나 권력자들이 전유했으며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서는 시가 있었으나 자유롭고 싶은 미혼모에 자유를 주노니 내게 예속하라는 말과 함께 발가락을 내밀었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다 어느 시대에서는 시가 있었으나 봉건 속박에 목말라하는 러시아 처녀에게 해방을 주노니 당에 헌신하라는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다 어느 시대에서는 흰 쌀과 고깃국이 사랑임을 교시한 아버지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었고 어느 시대에서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통령 되보자던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였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시가 있었으나 경마장에서 팔리는 사랑 이데올로기 시대가 압권이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시는 있었고 있었으며 시는 없었고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보자 기침을 하자 모오든 쇠붙이여 가라 해설피 신작로에 나는 가요 죽어도 가요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 쓰러져도 조금씩 갉아먹어도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새벽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가끔씩 대학 교정에 총성이 울린다 소통이다
"작"이라 함은 마당이다 마당은 오지랍 넓게 시간을 담는다 꿈과 사람과 글을 담고자 한다 미어터지더라도 보면 텅비어 있다 경계를 따지고 들어가면 애매하다 그러나 저마다 춤이 있으니 거지춤 양반춤 재벌춤 노동자춤 농민춤 지식인춤 마당쇠춤이 있으니 처음부터 구별 없이 난장이지는 않다 자기 마당이 있는 듯 저마다 마음껏 후리며 사위를 흠뻑이는데 때가 되면 모두 뛰어나와 난장이다 때로는 우기며 저 혼자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웃음거리인데 이조차 마당은 담는다 마당은 획일이지 않으면서 평등하다 흘러가면서 자유이다 조직이다
"시작"이라 함은 말과 조직과의 공유이다 일체가 허요 허가 아니다 관계지음이다 내 것을 지극히 찾으매 내 것이 없고 네 것을 한없이 찾으매 네 것이 없다 그러나 찾음이 때가 있음이니 보이는 데도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암일지언정 내 운명일지언정 위장하고 왜곡하고 과장할지언정 어찌 부정할 수 있는가 허나 뒤통수가 가장 염원하는 끝이며 시바의 춤이니 흘러가는 대로 거스르지 않으며 몰입한다 이는 버거운 자기 부정이며 통일이며 운동이다 흐름이다
"몽롱시작"이라 함은 오르가슴의 흐름이다 일체의 방해도 혼연히 뚫고 흐른다 내 안에 숨쉬는 공기를 네게 조금 주기보다는 전부를 주고 너 또한 내게 전부를 준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 시이다
당신의 전생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드릴지..
어쨌든 과거의 당신은 아마도 여자 였으며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는 현재의 이스라엘 이고 대략 1200년 정도입니다.
당신의 직업 혹은 주로 했던 것은 어부, 요리사, 목수 입니다.
당신의 전생을 한번 볼까요?:
자연스런 성품의 철학자,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았으며,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냉철함과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지는거죠. 이제 당신은....: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을 배우셔야 겠군여. 당신은 내면의 성숙을 위해서 좀더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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